탈코르셋 선언 - 일상의 혁명 페미니즘 철학 세미나 1
윤지선.윤김지영 지음 / 사월의책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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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엄마 세대를 중심으로 알음알음 전해지던 과격한눈썹 문신 한껏 진화해, 요즘에는 주위의 여성들도 자연스러운 색상의 예쁜 눈썹 문신을 많이 하는데, 추천의 시작은, 편해이다. 급기야는 짱구 눈썹으로 무장한 딸애게조차 눈썹 문신을 권한다. 쟤도 해줘, 하면 얼마나 편한데. 요즘 유행에 맞춰 해준다니까. 



친하기는 하지만 친구는 아닌 지인들과 식사를 하고 있었는데, 이야기를 나누던 난데없이 쌍꺼풀 수술 고백 타임이 되어버렸다.  8명이 모여 있었는데, 중에 쌍꺼풀 수술을 사람이 , 나였다. 7명은너도 수술한 거였어?” 서로 묻기 바빴는데, 수술 시기, 수술법, 눈의 형태, 수술한 후의 얼굴 변화에 따라 쌍꺼풀은 모두 각각이었다. 불현듯 이렇게 획일화된 쌍꺼풀 시대를 살아가기에는 나같은 무쌍이 특별하지 않나 생각했다.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저자가, 역시나 기억나지 않는 어떤 책에서 말했다. , 가난한 사람들만이 성형하지 않는 시대가 도래할 것이다. 



여름옷이 많다. 여름을 좋아하고 여름옷을 좋아한다. 여름옷은 가볍고 세탁이 쉽고 저렴하다. 부담없이 여름옷을 산다. 대신 겨울에는 거의 교복 수준이다. 청바지에 티만 바꿔 입는다. 이번 여름을 맞이하면서, 힘들었던 나를 위로하는 마음에(?) 인터넷 쇼핑을 많이 했다. 특히 원피스를 많이 샀다. 원피스는 시원하고 체형을 가려주고 하나 값으로 벌이 완성된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모르게 자꾸 드레스 같은 원피스를 찾고 있는 나를 본다. 자꾸 원피스를 산다. 






탈코르셋 운동은 가부장제라는 구조적 지각판을 습곡, 침강, 단절시킬 있는, 맨틀과도 같은 미규정적이며 상이한 강도를 지닌 역량들의 다발체로서의 페미니스트 다중의 봉기로 해석할 있습니다. (26) 



달리 말해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은 자연적으로 여성-신체자원이라는천연적 노동대상물 타고 났으며 이를 보다 세련되게 관리하고 정교히 세공해내는 기술을 투입함으로써 스스로의 신체를가공된 노동대상으로 탈바꿈하는꾸밈노동 수행해야 하는 것입니다. (33) 





탈코르셋 운동은 가부장제에 대한 도전인가.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은신체 갇혀있다. 여성은 사람은 아니라, 여성이다. 남성이 인간의 표준이고 기준이기 때문이다. ‘여자가’, 혹은감히 여자가’, ‘어떻게 여자가라고 시작되는 모든 언설은어떠해야 한다고 이미 규정되어 있는 여성의 표준 전제로 한다. 중에서 여성을 여성으로 제약하는 가장 강력한 도구, 다시 말해 여성을 남성이 아닌 여성이 되게 하는 차별점이 바로이다. 따라서, 여성-신체자원을 타고난 여성은 화장, 다이어트, 성형 등의 꾸밈노동과 애교 섞인 말투, 순종적인 자세 등을 통해 자신의 신체를가공된 노동대상으로 바꾸어야 한다. 이를 거부하거나 반항할 경우, 강력한 비난에 직면한다. 아니, 무슨 여자가 저렇게 많이 먹어. 아니, 무슨 여자가 화장도 . 아니, 무슨 여자가 저렇게 목소리가 . 





화장이나 외모 꾸미기에 대한 여성들의 취향이나 관심, 아름다움에 대한 열망, 인형이나 분홍색에 대한 선호, 나긋나긋한 말투나 수동적 태도 등은 여성에게 각인된아비투스’(habitus) 드러냅니다. 여기서 아비투스란 사회적으로 범주화된 계층적 가치가 육체에 각인된 상태로서, 개인은 자신이 속한 사회적 계층성을 온전히 체현한 방식으로 말하고 생각하고 행위하고 무언가를 선호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화장과 같은 꾸밈노동을 여성 개인의 사적인 취향이나 기호로 오인하도록 만드는 구조야말로 성별 계층성에 의해 도식화된 개인의 행동패턴과 특정 라이프스타일의 재생산 효과가 얼마나 개인의 신체와 사고방식에 온전히 침습되어 있는가를 방증하는 것이라 있습니다. (74) 




여성이 하나의 단일한 계층으로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아비투스 이념이 이해되지 않을 것이다. 혹은 이해할 없을 것이다. 사회적으로 범주화된 계층적 가치가 육체에 각인되어, 성별 계층성에 의해 도식화되는 . , 같은 조건의 남성에게는 요구되지 않거나 요구될 없다고 생각되는 조건들이여성이라는 이유로 당연히 요구된다는 것이다. ‘여성이라고 이름 붙이는 계층 전체에. 예를 들자면. 





최근 충남의 카페에서는 여성 아르바이트생이 머리를 짧게 자르고 화장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해고되는 부당한 일이 있었다.


변호사 같은 전문직 여성도 예외는 아니다. 이른바접견 전문 변호사문제이다. 변호사 접견이 잡히면 구치소 수감자는 좁은 감방에서 벗어나 횟수·시간 제한 없이 접견실에 머물 있다. 점을 이용해, ‘접견 전문 변호사 부유한 남성 수감자의 심부름꾼·말동무가 되는 대신에 시간당 30~300 원을 받는다. 그래서 일부 로펌은 젊은 신규 여성 변호사를 부유한 남성 수감자를 위한접견 전문 변호사 채용하고, 신체 치수와 사진을 제출하라고 요구한다.  <노동자연대,  268,  2018-11-28> 




예전에 백화점 판매직 여성들에게 강요되던 화장 강요 안경 착용 금지가 이제는 아르바이트생에게, 여성 아르바이트생에까지 확대되었다. 변호사라는전문직여성이어도, ‘예쁘고 단정한용모를 요구 받는다. 참고사항 정도가 아니다. 신체 치수와 사진으로 증명해야 한다. 





우리 사회에서 여성성 과잉 전시 행위는 지극히 정상이라 여겨지는 반면, 강요된 여성성과 다른 방향의 모습들을 전시하는 행위는 폭력적이고 과격한 것들로 해석된다는 것은 과연 무엇을 의미할까요? 이와 같은 실천 행위들은 사회가 요구하지 않는 가치체계를 여성들이 재현하는 모습을 통해 반감과 반발심을 불러옴과 더불어 두려움, 체제전복의 공포감, 혁명의 가능성이라는 정동 또한 이끌어내고 있습니다. (46) 





우리 사회의 여성성 전시가 얼마나 과한지는, 5 여아의 옷만 봐도 있다. 5 여아들이 얼음공주 엘사와 백설공주, 잠자는 숲속의 공주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고 있다. 엘사와 백설공주, 잠자는 숲속의 공주 드레스를 입고 얼마나 행복해하는지, 물론 알고 있다. 다만, 5 여아에게 그대로 늘여서 입으면 엄마가 입어도 만큼 여성스런 옷을 입히고, 불편하고 답답한 검정, 빨강, 분홍 구두를 신겼을 , 그리고 그 모습이 예쁘다고 박수치는 우리 사회의 여성성이 너무 과하지 않은가, 너무 여성성 충만한 세상 아닌가, 의문을 가질 수도 있다는 말이다. 



머리를 샴푸하고 말리는데 들이는 시간과 노력이 아까워 머리를 짧게 자른. 

30 혹은 40, 화장하는데 들이는 시간과 노력이 아까워 민낯으로 외출을 한다. 

체형을 보완하기 위해 몸을 옥죄는 불편한 대신 편안하고 튼튼한 옷을 입기로 한.

 

여기, 어느 지점에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면이 있나. 여기, 어느 지점에 남자를 적으로 규정하는 지점이 있나. 여성의 <탈코르셋 선언> 어디에, 반사회적, 반공동체적 영향이 존재하는가. 






여성은 연애와 결혼이라는 사적 영역에서든, 취업과 승진이라는 공적 영역에서든 자신의 신체를 물리적, 감정적, 심미적, 도덕적 차원에서 전방위적으로 개발해야 하며 이는 타자의 이익 – 남편과 가족에게 편의 제공하기, 애인의 성적 욕망에 화답하기, 기업의 용모 단정 규준에 복종하기 등 – 을 위해 기꺼이 이용 가능한 ‘자원’(resource)으로 채굴되고 착취됩니다. (39쪽)

남성의 신체자원이 성적으로 동일한 방식과 강도로 채굴되고 착취되지 않는 이유는 그들의 신체가 가부장적 교환가치 – 남성 욕망경제의 기호품이자 부계혈통의 세대 재생산 도구 – 로 결코 환원되지 않는 성질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여성의 성적 신체자원은 그들의 노동력의 기본값(default value)으로 설정되어 있기에 업무의 분야에 상관없이 여성들을 향한 아름답고 젊어 보이는 외모에 대한 요구는 사회적으로 이미 조건화되어 있습니다. (41쪽)

다른 한편으로 탈코르셋 운동은 가부장제 자본주의에 대한 주요한 소비파업 운동으로 작동하고 있습니다. 이는 소위 여성용품이라는 이유만으로 더 낮은 기능성을 갖춘 제품을 더 비싸게 파는 소위 ‘핑크 택스’(Pink Tax) 상업 전략에 대항하는 방식으로서, 성별에 따른 저임금 상태의 여성들에게 더 많은 소비를 명령하는 수많은 화장품과 여성 용품, 여성 면도기, 여성 의류에 대해 보이콧하고 그것의 불필요함을 전면화하여 드러냅니다. 이처럼 탈코르셋 운동은 여성을 끊임없이 빈콘케 하는 동시에 외모를 억압하는 화장품 소비를 멈추고, 여성들의 현재와 미래를 충만하게 하는 여러 자산 축적 비법들과 편하고 싼 제품들에 관한 정보를 공유하고, 생활기술들의 전략들을 나누는 행위들이 동반되는 전 방위적 차원의 삶의 혁명 운동이기도 합니다. (69쪽)

예컨대 남성보다 가녀린 신체, 선이 곱고 예쁜 이목구비, 볼륨감 있는 몸매, 긴 머리, 호전적이지 않고 부드럽고 순종적인 태도와 눈빛, 배려심, 착하고 고운 마음씨, 애교 등은 임의적이고 우연적인 특성들의 총합일 뿐이지만, 이것이 남성과 확연히 대별되는 신체적, 심리적 차원의 성별 특성들의 총체를 형성함으로써 결국에는 ‘여성’이라는 하나의 균질하고 동질적인 성별 계승성의 고유한 특질(property)로서 고정화되기에 이르는 것입니다. (75쪽)

[오해 1] “외모 꾸미기는 내가 좋아서 하는 것인데 왜 그만두라고 하는 것인가요?”

아름다움이란 가치는 결코 내내적이지 않습니다. 늘 그 아름다움을 판단하고 평가하는 남성 인식주체의 인정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점에서 여성들이 추구하는 아름다움에 대한 욕망은 자족적인 것도, 독립적인 것도, 온전히 자유로운 것도 아닙니다. 또한 앞서 살펴본 대로 사회학자 부르디외에 따르면 여성의 사적 취향과 기호, 욕망, 앉거나 걷는 자세, 태도, 어투, 제스처까지 사회적으로 구별되는 성별 계승성에 의해 각인되고 결정됩니다. 여성이 온전히 자유롭게 선택하는 취향으로서의 외모 꾸미기란 사회적 환상에 불과합니다. (93쪽)

우리 대다수가 꾸밈노동의 완벽한 수행을 찬사와 무조건적인 박수로 맞이했었다면, 여성들의 민낯과 짧은 머리는 사람들에게 일종의 ‘불편함의 감각’을 선사합니다. 왜냐하면 짧은 머리를 하고 바지를 입은 여성들은 기존의 여성성 수행 방식에 대한 반란자들이자 이 억압적 사태에 ‘동참하지 않음’을 선언하고 그것을 자신의 몸으로 보여줌으로써 여전히 꾸밈노동을 지속하고 이는 사람들에게 이전엔 느껴보지 못했던 윤리적 불편함을 일으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런 불편함을 느끼는 사람들이 탈코르셋 운동을 배제와 차별의 정치라고 반박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제까지의 코르셋이야말로 수많은 여성들을 스스로의 신체와 불화케 하고 아름다운 기준에 충족되지 않는 여성들에 대한 차별과 배제를 정당화했다는 것을 우리는 반드시 깨달아야만 합니다. (99쪽)

화장이 주는 기쁨의 정동의 강도보다 탈코르셋 운동을 실천하는 이들이 드러내는 존재역량의 상승의 사진들과 경험담들, 이로 인한 새로운 삶의 양식들의 전략과 태도들이 더 많이 사회적으로 발화되고 공유됨으로써 탈코르셋이 주는 기쁨의 정동의 강도가 더 높아질 때, 많은 여성들은 그 기쁨의 정동의 물결을 스스로 따를 것입니다. (102쪽)

이미 유명 브랜드 브라의 광고에서는 아름다움을 위해 편안함을 포기했던 과거에서 벗어나 편안함이 곧 아름다움이라고 속삭이는 여성 모델이 출연하고 있으며, 아름다울 미는 타인을 위한 것이 아니라 ‘me’, 즉 나를 위한 것이라는 여성 화장품의 광고문구도 등장하고 있습니다. 이는 자본주의가 아주 탄력적이며 영리하게 여성 소비자들의 탈코르셋 운동 여파를 반영하고 주요 고객층의 니즈를 흡수하려는 전략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108쪽)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여성의 신체 형상에 있는 굴곡짐과 구부정함 등이 하층민의 그것과 유사한 것으로 여겨졌다는 점입니다. 이미 여성의 신체적 특징을 계급제도에서의 하층민의 징표이자 열등함의 표식으로 규정했다는 점에서 초기에 등장한 코르셋도 여성혐오에 관통되어 있는 것임이 드러납니다. (부록: 코르셋의 간략한 역사, 1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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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almA 2019-08-14 16: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문제가 참 복잡하고 끝이 없게 됐죠. 가부장제 틀 비판만으로는 어렵지요. 손끝, 발끝, 온몸의 털까지 케어를 하라는 자본주의 시장이 더 문제라고 봅니다. 여성의 가사 활동을 돈으로 환산하면 얼마냐 식으로 서비스 가치 기준으로 환산도 하고 있습니다. 많은 것들을 서비스, 가치 비교하는 것도 무척 자본주의적이죠. 이 놈의 세상은 이렇게라도 수치화해서 보여주지 않으면 안 되니까.

생존하려면 조금이라도 더 얻으려면 자기 관리는 물론 업그레이드도 계속해야 하는 상황이니 다같이 ‘자연인‘으로 살자는 늘 캠페인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건 불안감일 뿐이다, 아비투스화된 사회인식이다 끝없이 말해도 돌아가는 판은 참 안 바뀌죠. 요즘은 화장하는 남성들도 꽤 있던데요. 이 꾸미기는 생존 전략에서 쉽게 놓지 못할 무기입니다. 그 뿐인가요. 꾸미기는 여가 생활, 자기 만족, 친목 활동 등 인간 삶의 기본 요소니 단점 하나만 덜어낼 수도 없습니다.

짧은 치마를 입는 건 내 자유고 내 만족감을 위해서라고 말하고, 브라를 착용하고 화장하는 건 남성에게 잘 보이기 위한 그들의 가치 기준에 끌려다니는 거다 그렇게 이분법으로 나눌 수 있는 것인가요. 우리의 선택은 늘 자유와 방어가 혼재해 있습니다. 문제를 따지다보면 늘 나오게 되는 지점에 또 다다르게 됩니다. 어디까지가 내 ‘자유의지‘인가, ‘자유의지‘가 있기는 한가.

아름다움의 기준이 꼭 남성 인식주체에서 비롯되기만 할까요. 남성, 여성을 가리지 않고 고운 피부, 아름다운 곡선, 표정, 태도, 목소리 등등에 대한 호감은 유전자에 들어 있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자동반사적으로 느끼는 것 같다 싶은데요. 뱀에 대한 혐오가 즉각적이듯이요. 생물계에서도 어떤 종은 짝짓기를 위한 꾸미기 전략이 치열하죠. 인간이기에 가부장제가 특수하게 작용하는 거겠지요. 동물계 사례와 비교한 생물학적 분석을 페미니즘 쪽에선 문제 축소 혹은 왜곡으로 보는 시각차가 있죠. 그래서 생물학과 페미니즘 사이가 안 좋은 건 자주 봅니다^^; 이런 복잡한 상황이라 저는 진화와 인간 본성 공부에 더 흥미를 느끼게 되는지도 모르겠어요.

단발머리 2019-08-17 14:10   좋아요 2 | URL
제가 인터넷이 안 되는 지역에서 며칠 지내느라 댓글이 늦었어요, 아갈마님^^n이미 지구는 자본주의에 의해 완전 점령당했다고 보는게 맞는것 같아요. 이 지구에 돈의 힘을 이길수 있는게 있을까 싶고요. n탈코르셋 선언에 대한 평가가 제각각일수는 있겠지만 제가 이 책의 주장 중에 동의하는건 지나친 여성성의 표현 혹은 과시에 대해서는 찬성과 동의의 한 목소리만 존재한다는 데 있어요. 나의 자유라고 말하는 것과 별개로 여성에게는 일방적으로 화장이 요구되는 문화를 무시할 순 없으니까요. 남성 역시 피부톤을 정돈하고 하얀 피부 표현을 위해 썬크림, 보정크림을 사용할 수는 있지만 자신의 장기를 훼손하는 정도의 미용 도구가 강제되지는 않으니까요. nn저도 이 부분은 아직 모르는게 많아요. 원피스 좋아하고 립스틱은 분홍만 바르는 제가, 이해하는 것과 받아들이는 것 사이의 간극을 어떻게 극복하게될지 그것도 모르겠구요. 진화와 인간본성에 대한 아갈마님의 탐구 열정을 통해 새로운 시각을 알아가고 싶네요.
 



주님, 곧장 요점을 향해 날아가는 날개를 주소서.





너무 지나친 억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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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토니 모리슨은작가란 무엇인가 2』에서 읽는 것이 실제로 직업이죠 토니 모리슨이다. 남자들이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작가라는 위치를 자신은 받아들일 없었다고 말하는 그녀. 글쓰기가 인생의 핵심이고 마음을 몽땅 차지하고, 기쁨을 주고 자극을 주는데도 스스로를 작가라고 말할 없어, 직업을 묻는 질문에편집자에요혹은교사에요라고 대답했다는 그녀. 토니 모리슨이 2019 8 6, 88세의 나이로 타계했다. 










































나는술라』만 읽었다. 『빌러비드』, 『가장 푸른 눈』, 『재즈』, 『하느님 아이를 도우소서』, 『솔로몬의 노래』, 『자비』 남아있고, 엄마를 위한 페미니즘 소설 선집이등 시민』 있다. 그녀의 말이, 그녀의 책이 바다를 건너 나라, 우리의 말로 번역되어 있다는 얼마나 다행한 일인지 모르겠다. 그녀는 떠났지만 그녀의 책은 남았다. 남겨진 사람들에게. 





우리는 죽는다. 어쩌면 그게 삶의 의미다

하지만 우리는 언어를 쓴다. 그게 우리 삶의 척도일지도 모른다. 



We die. That may be the meaning of life. 

But we do language. That may be the measure of our lives.          - 토니 모리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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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가가 전하는 조언


1) 요가에서 말하는 노화와 죽음의 완전 극복

2) 나이 들어가는 자신을 위해 기도해요



17세기 어느 수녀의 기도



주님, 주님께서는 제가 늙어 가고 있고

언젠가는 정말 늙어 버릴 것을 저보다도 더 잘 알고 계십니다.

저로 하여금 말 많은 늙은이가 되지 않게 하시고

특히 아무 때나 무엇에나 한마디 해야 한다고 나서는

치명적인 버릇에 걸리지 않게 하소서.

저를 사려 깊으나 시무룩한 사람이 되지 않게 하시고

남에게 도움을 주되

참견하기를 좋아하는 그런 사람이 되지 않게 하소서.

제가 가진 크나큰 지혜의 창고를 

다 이용하지 못하는 것은 참으로 애석한 일이지만

저도 결국에는 친구 몇 명은 남아 있어야 하겠지요.

끝없이 이 얘기 저 얘기 떠들지 않고

곧장 요점을 향해 날아가는 날개를 주소서.





곧장 요점을 향해 날아가는 날개. 하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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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때도동시 읽기 즐기는 편인데 최근에 심해졌다. 더위 때문이라고, 폭염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페미니즘의 역사, 쾌락독서, 페미니즘과 기독교의 맥락들 

사회주의 페미니즘, 글을 쓰고 싶다면, 해러웨이 선언문  



































29쪽을 읽으면만화로 보는 성차별의 역사』 속 왠지 귀여운 원시인들이 생각난다. 





수렵, 채집 사회에서 남자들은 활과 창으로 사냥해서 고기를 가져옵니다. 고기는 공동체 전체 식량의 20퍼센트에 불과하지만, 아주 높이 평가됩니다. 여자들은 열매를 채집합니다. 이것은 고기보다 낮게 평가되지만, 그들 식량의 80퍼센트를 차지합니다. 이런 여러 집단을 연구한 민속학자들은 한결같이 비율이 집단마다 똑같다고 말합니다. 그러니까 여자들은 공동체의 생존에 아주 중요한 역할을 했지만, 어디서나 사냥이 채취보다 훨씬 높이 평가되었습니다. (29) 




















134쪽을 읽으면양성평등에 반대한다』 떠오르고, 




남성은 자신을 다르게 보지 않지만, 여성은 다르고 여성만의 특성이 있다는 역설이 발생했고 그것이 지금까지 효력을 발휘하고 있는 거죠. 남성은 누구와도 다르지 않고, 역설적으로 남성적인 동시에 중성적인 인간이라는 겁니다. (134) 






이분법은 반반으로 분리된 상황을 묘사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주체와 타자가 하나로 묶인 주체 중심의 사고다. 주체(one) 자신의 경험을 중심으로 삼아 나머지 세계인 타자(the others) 규정하는 , 다시 말해 명명하는 자와 명명당하는 자의 분리, 이것이 이분법(dichotomy)이다. 이분법은 대칭적, 대항적, 대립적 사고가 아니라 주체 일방의 논리다. … 젠더(gender) 남성의 여성 지배를 의미한다. 양성은 개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여성성 하나만 존재한다. 남성성은 젠더가 아니다. 남성적인 것은 남성적인 것이 아니라 보편적인 것으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양성평등에 반대한다』, 33) 





136쪽을 읽으면서는, 시몬 베유』 얼른 읽고 멋진 여성에 대해 더 알고 싶다 생각했다. 




















아기가 자고 있을 , 아침 일찍 도서관에 갔더니 사람들이 없었다. 도서관이 이렇게 시원한데, 왜요? 다들 어디 갔어요? 라고 혼잣말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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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겟타 2019-08-09 15: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저 금방 읽은 책에서 시몬베유의 『노동일기』, 『중력과 은총』의 구절이 인용된 걸 봤어요
저도 시원한! 도서관에 있답니다. 단발머리님.(˘⌣˘*)

단발머리 2019-08-12 09:04   좋아요 1 | URL
읽고 있는 책이나 골라 놓은 책에서 아는 작가를 발견했을 때 진짜 반갑죠~~
나만 반갑지만, 반가운 마음이야 그지 없습니다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전, 노동일기, 중력과 은총이라는 제목의 책을 블랙겟타님께 처음 들어봐요. 그걸 또 찾아보러 가야겠습니다.

블랙겟타 2019-08-12 09:17   좋아요 0 | URL
아 단발머리님, 『노동일기』가 아니라 『노동일지』였어요.(•́✧•̀●)

단발머리 2019-08-12 09:26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ㅋ 접수되었습니다.
노동일지. 블랙겟타님, 굿모닝^^

블랙겟타 2019-08-12 09:24   좋아요 0 | URL
단발머리님도 굿모닝! ( ‘◟ ‘)

잠자냥 2019-08-13 11:18   좋아요 1 | URL
<중력과 은총>, <노동일지>를 쓴 시몬 베유(철학자)와 <나, 시몬 베유>의 시몬 베유(정치인)는 전혀 다른 사람입니다. 이름이 똑같고 두 사람 모두 프랑스 여성이라 많은 분들이 같은 사람이라고 착각하시더라고요. ^^;;

블랙겟타 2019-08-13 13:55   좋아요 1 | URL
제대로 확인안하고 성급하게 덧붙인 글을 달았었네요. (˃̣̣̣̣̣̣︿˂̣̣̣̣̣̣ ) 검색해보니 잠자냥님 말대로 제가 언급한 시몬 베유는 철학자이고 노란색 책 저자는 정치인 시몬 베유 였네요. 죄송합니당 ㅠㅠ 잠자냥님 덕분에 소중한 정보 알아가네요. 감사합니다! 알려주셔서 (੭˙꒳​˙)੭ 이젠 헷갈리지 않을꺼에요.

단발머리 2019-08-13 12:58   좋아요 2 | URL
아하~~~ 저도 몰랐어요. 지금 잠자냥님 댓글 읽고 저자 소개 읽어봤네요. 어쩜 이렇게 훌륭한 분들이 이름이 똑같을까요. 두사람 모두 유대인 집안이기도 하구요. 잠자냥님 덕분에 새롭게 두 분을 알게 됐네요. 잠자냥님 완전 멋져요!!! 😍

잠자냥 2019-08-13 13:53   좋아요 1 | URL
프랑스에도 알고 보니 작명가가 있는 게 아닐까요? 훌륭한 사람 되는 이름- 시몬 베유 ㅋㅋㅋㅋ

단발머리 2019-08-13 13:58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 일리가 있는 말씀입니다. 시몬 베유-라는 이름을 쓰면 유명하고 훌륭한 사람이 됩니다!! 이런 거요 ㅎㅎㅎㅎㅎㅎㅎㅎㅎ

수연 2019-08-09 18: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도서관 말고 카페에서 와인에이드 마셨어요 크크, 시몬 베유 빌리러 도서관 가야겠어요.

단발머리 2019-08-12 09:05   좋아요 0 | URL
아주 좋아요. 카페에서 와인에이드.... 정말 좋은 선택이었습니다.
전, 이 댓글 읽을 때 도서관에 올가 빌리러 가던 길이었죠. 데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