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올해의 책 : 다시 페미니즘의 도전 

 

지금까지 제일 좋아했던 정희진 님의 책은 <영화가 내 몸을 지나간 후> <양성평등에 반대한다>였는데, 올해의 신간 따끈따끈한 이 책이 이제 최애의 자리에 올랐다. 또 다른 사유, 또 다른 연구가 더 필요할까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완벽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답을 요구하는 현재문제들에 대해 나 자신의 입장이 정리되지 않았다는 걸 발견하는 소중한 순간이 여러 번 이어졌다. 바로 다시 읽어야 할 책이다.

 

 
















2. 올해의 작가 : 비비언 고닉

 

1번 책만 아니라면 이 책이 올해의 책이 될 정도로 너무 좋았다. 비비언 고닉도, 이 책의 존재도 알고는 있었지만, 선뜻 찾아보지 못했는데, 눈밝은 독자 쟝쟝님이 이 책을 강력 추천해 주어서 읽게 되었다. 이 책이 특별히좋은 책이기는 하지만, 무엇보다 내가 이 책을 만났어야 하는 때에 만난 것이 신기하고 놀랍다. 오래 고민하고 궁금해하던 답을 이 책에서 찾았다. ‘논픽션 페르소나에 대한 글을 머릿속으로 반 정도 써두었는데, 첫 문장이 떠오르지 않아 내내 미루고 있다. ‘나는 이 책으로 나를 가르친다는 이슬아 작가의 말을, 이제는 이해할 것도 같다.  

 


















3. 올해의 여성주의 : 여전히 미쳐 있는

 

여성주의 책들은 모두 애정이 깊다. 어려운 책들이기 때문이기도 하고, 대부분의 책을 구입해서 그런 것도 같고, 알라딘 이웃님들과 같이 읽어서 그런 것도 같다. <여성, 인종, 계급> <페이드 포>를 제치고 내가 고른 한 권의 여성주의 책은 <여전히 미쳐 있는>. 실비아 플라스, 에이드리언 리치, 오드리 로드 등 시대의 변혁을 주도했던 이들의 삶이 깊은 울림을 주었다. 제일 감동 포인트는 닥터 질 바이든의 이야기다.

 


질 바이든은 노동자계급 가정에서 성장했다. 그리고 그녀는 조 바이든과 함께 아이들을 키우면서 더 높은 단계의 영문학 학위를 위해 공부했고 지역 전문대학교의 교수로 일했다. 그녀는 남편의 부통령 재직기간 내내 그 일을 계속했다. 친구인 미셸 오바마의 말처럼, 선거 유세 비행기 안에서도 "질은 항상 과제물 채점을 하고" 있었다. 이들 부부는 보통 '부통령과 바이든 여사'가 아니라 '부통령과 바이든 박사'로 소개되었다. (494)

 


질 바이든은 아이들을 키우면서 공부를 계속했고, 학위 과정을 밟았고, 고등학교 교사로 일하면서 박사가 되었다. 자유주의 페미니즘의 신화 베티 프리단의 주장대로 학교로 돌아가 학위를 취득했다’. 3-4문장 속에 깃든 고단함과 열정, 그리고 끈기가 그대로 전해져 마음이 좀 뭉클했다. 결심이나 도전에 무척 소극적인 나이지만, 앞서 있는 여성들의 투지와 노력을, 그 열정과 끈기를 나도 좀 배워야겠다, 그런 마음이 들기는 했다.

 

 















4. 올해의 자랑 : 감시와 처벌 

 

크게 자랑할 거 없는 인생이지만, 이 책 완독한 일은 좀 자랑해도 좋겠다. 많이 힘들었다. 사실 내가 읽고 싶은 푸코의 저작은 <광기의 역사>인데…’ 하는 말을 완독할 때까지 입에 달고 살았다.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읽은 나를 칭찬하고 싶다.

 

 
















5. 올해의 탈식민주의 : 친밀한 적


이런 이야기가 좀 부끄럽기는 하지만 그래도, 황금 가면보다 얇은 마스크를 쓰고 굳이 이야기하자면, 작년에 알라딘에 올렸던 여러 글 중에, 이 글(https://blog.aladin.co.kr/798187174/14974222)이 제일 마음에 들었다. 경험이 일천하고 지극히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나이지만, 지금 내가 만나는 세계, 내가 고민하는 문제, 내 힘이 넘치는 범위를 넘어서는 또 다른 사회, 또 다른 세계, 또 다른 우주에 대해, 더 자세히 알고 싶다. 더 엄정하게 쓰고 싶다.  

 





 









6. 올해의 동화책 : 두루미 아내


올해는 어느 해보다 동화책을 많이 읽었다. 동화책의 힐링 효과를 경험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테지만, 동화책을 읽고 더 감동 받는 사람은, 그림을 눈으로 따라 읽으며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아이가 아니라, 어른이다. 글자를 읽어주며 그림을 같이 살피는 어른이 아이만큼, 어느 경우엔 아이보다 훨씬 더 감동 받는다. 여러 책을 읽었지만, 기억에 남는 건 이 책, <두루미 아내>이다. 최근 <정희진의 공부> 12월호에 선물에 관한 에피소드에서 정희진 선생님은 자신에게 정말 소중한 것은 선물하지 않는 것이 좋다라는 말씀을 하셨는데, 그 이야기를 들으며 이 책이 떠올렸다. 자신에게 정말 소중한 것은 선물하지 말자. 주지 말자. 그녀가 정말 소중한 사람이어도. 그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어도. 주지 말자. 나에게 정말 소중한 그것은, 주지 말자.






















7. 올해의 소설 : 고통에 관하여, 재수사

 

올해의 소설은 우연하게도 모두 한국 소설이다. 제일 재미있게 읽은 건 정보라의 소설이고, 제일 흥미진진했던 건 장강명의 소설이다. 소설을 읽을 때, 나 자신이 부자라고 느낀다. 특히 이번 경우처럼 그 책들이 모두 내 책일 때, 그리고 새 책일 때, ‘호강하고 있다고 느낀다. 소중한 호강 타임을 선사해 준 두 분 소설가에게 이 자리를 빌려 감사드린다.  

 


 















8. 올해의 원서 : Lucy by the Sea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의 순위도 역시나 바뀌고 말았는데, 부동의 1<Oh, William!>이 아쉽게도 그 자리에서 쫓겨났다는 슬픈 소식이다. 드디어, 이 책을 읽고 나서 드디어, 나는 윌리엄과 화해했다. 나는, 아직도 그의 어느 부분을 끔찍하게 싫어하지만, 그를 안아주는 루시가 되어 버렸기에, 이제 그를 더는 미워할 수가 없다. 이런…  

 

 















9. 올해의 로맨스 : Unfortunately yours


 

이 책의 특장점이라고 한다면 암스테르담에서부터 날아왔다는 점인데, 그냥 날아온 게 아니라, 소중한 친구의 여행 가방 속에 쏙 담겨 날아왔다. 그에 못지 않게 내 마음을 사로잡은 건 표지. 표지의 그림이 예쁘기도 하지만, 컬러가!! 내가 정말 좋아하는 컬러다. 책표지가 그리 중요하지 않은 사람들도 많겠지만, 나는 아니다. 나는 책의 외모에 집착하는 사람인 것이다. 내용 또한 마음에 흡족한데, 네이비 실 출신의 남주와 매력적인 사업가 여주는 만날 때마다 최고의 대화 케미를 보여준다. 물론, 다른 케미도 보여준다.

 

 



알라딘이 소중한 건 알라딘 서재 이웃님들이 화면 저 편에 계시기 때문이다. 눈팅만 하시는 분들께 감사드리고(올해에는 좋아요좀 눌러 주세요), ‘좋아요눌러 주시는 분들께 감사드리고(올해에는 댓글좀 달아 주세요), 댓글 남겨주시는 분들(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께 감사드린다.

 


읽기와 쓰기는, 언제 어디에서나 즐길 수 있고, 다른 취미 생활에 비해 돈도 적게 드는 편이다(예외인 분들, 본인들은 아실 거라 생각합니다 ㅎㅎ). 읽고 쓰는 즐거움을, 그 누구에게도 빼앗기지 않겠다.

 


누구도, 내게서 그 즐거움을 빼앗아갈 수 없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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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4-01-03 13:5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제목만 보고 혹시 올해의 책 리스트일까 두근거리며 왔는데 역시나 맞네요. 으하하하하. <루시 바이 더 시>가 오 윌리엄을 제쳤다고요? 오 마이 갓.. 얼른 번역본 나왔으면 좋겠어요. <Unfortunately yours> 완독하신 것도 축하합니다. 대화 케미 말고 어떤 다른 케미가 있다는건지 전혀 전혀 짐작이 안되지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저는 저 책의 번역본을 기다립니다. 제발 어딘가에서 누군가가 번역 좀 해주었으면..

올해도 열심히 읽고 열심히 써주세요. 2024년 정리 페이퍼에서는 저랑 겹치는 책이 많았으면 좋겠네요! 새해에도 잘 부탁합니다, 단발머리 님!!

(그런데 읽기와 쓰기라는 돈 안드는 취미에 예외인 사람은 대체 누구래요? 모르겠네요?) 그럼 이만. 슝 =3=3=3=3

단발머리 2024-01-03 14:12   좋아요 1 | URL
<루시 바이 더 시> 정말 좋았는데, 제게는 화해의 책, 용서의 책이며 ㅋㅋㅋㅋㅋㅋㅋ <Unfortunately yours>의 대화 케미 말고 다른 케미는........ 직접 확인 부탁드려요. 말로 다 할 수 없는 온갖 기예가 ㅋㅋㅋㅋㅋㅋ 차고 넘칩니다!

올해는 작년보다 더 열심히 읽고 쓰는 단발머리가 되려고 해요. 다락방님과 더 많이 겹쳐 읽으면서, 더 많이 읽고 쓰고 싶고요.

그나저나 그 분들을 모르시다니 정말 놀랍네요. 골프채 하나만 해도 30만원 아니 100만원이 넘는 물건이 상당하다고 하니 2만원 3만원 책값이 무척 저렴하다 할 수 있겠지만, 한 주에 두 번씩 결제하고, 한 번에 8만원 이상씩 결제하는 분들이 있다고 하대요. 세상에 이럴 수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blueyonder 2024-01-03 22:3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읽고 생각할 거리를 많이 던져주시는 단발머리 님, 즐거운 독서와 글쓰기 하시는 한 해 보내시기를 기원 드립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단발머리 2024-01-03 17:01   좋아요 2 | URL
blueyonder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올 한 해도 잘 부탁드립니다.
인사 말씀은 다락방님께 잘 전해드릴께요! ^^

다락방 2024-01-03 17:05   좋아요 3 | URL
안녕하세요, 블루 님? ㅎㅎㅎㅎㅎ

단발머리 2024-01-03 17:08   좋아요 1 | URL
읽고 생각할 거리를 많이 던져주시는 다락방님, 올 한 해도 건승과 책탑과 요리 사진 부탁드립니다!!

blueyonder 2024-01-03 22:41   좋아요 2 | URL
앗 제가 실수를… ^^;;; 단발머리 님 다시 한 번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다락방 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어찌할까 하다가 위에 처음 올린 제 댓글을 수정했습니다~

단발머리 2024-01-04 21:11   좋아요 1 | URL
블루님~~ 새해 복 더블로 많이 받으시고요! 올해도 서재에서 자주 뵈어요^^

2024-01-03 16: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4-01-03 16: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공쟝쟝 2024-01-03 16:1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제가 올해 잡기 시작하여 찬찬히 읽어가고 있는 책은 <공부하는 글쓰기>라는 책인데요. 이 책에서 주장하는 바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생각을 명료하게 하는 방식으로의 글쓰기 입니다. 엄정하게 쓰고 싶다는 말에서 찌릿- 단발님의 명료한 사유 과정을 쫓아가고 싶어요. 부지런히 읽는 건 원래 잘하시니 즐거이 써주시며 과정 나눠주시는 2024년 기대합니다. -애독자n 올림-

단발머리 2024-01-03 17:02   좋아요 0 | URL
생각을 명료하게 하는 방식으로의 글쓰기.... 기억할게요.
즐거이 나누고 싶지만 밑천이 얼마 안 되서 금방 재료 소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애독자님, 감사합니다!

건수하 2024-01-03 16:1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단발머리님 외 몇 분이 댓글을 달아주셔서 제가 서재에 연착륙했지요. 단발머리님의 지분이 매우 큽니다. 언제나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새해에도 잘 부탁드려요.

<다시 페미니즘의 도전> 벌써 다 읽으셨어요? 전 여기저기 얻어맞아 어질어질 하던데... 마저 열심히 읽어봐야겠어요 :)
<상황과 이야기> 랑 <멀리 오래 보기> 다 좋다고 들어서... 기대가 됩니다. <사나운 애착>이나 <짝 없는 여자와 도시>보다 좋을 것 같은 예감이에요.

<감시와 처벌>... 고생하셨어요. 제 책장에 남아있는 책이 약간 불쌍해요... ㅎㅎ

단발머리 2024-01-03 17:07   좋아요 1 | URL
제 지분이 크다고 하시니 건수하님 우량주 쭉쭉 상승하시어 저도 돈벼락을 맞아 보고 싶습니다. 일단 우산 준비하겠습니다 ㅋㅋㅋ

<다시 페미니즘의 도전> 은 몰아서 읽었어요. 어질어질해서 후다닥 읽었습니다. 바로 다시 읽으려고 하고요.
건수하님은 고닉책 많이 읽으셨나봐요. 전 <상황과 이야기> 읽고 <멀리 오래 보기>만 준비해두었습니다. <사나운 애착>이 좀 걱정스럽기는 하지만, 다 읽어볼 심산입니다ㅋㅋㅋㅋㅋㅋㅋ

건수하님댁 <감시와 처벌>이 기다리고 있다고, 아까 제게 메모 전해주고 갔습니다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건수하 2024-01-03 17:53   좋아요 0 | URL
비비언 고닉은 번역된 것 중 <상황과 이야기> 랑 <멀리 오래 보기> 빼고 세 권을 읽었습니다 :)

<감시와 처벌>이요...? 저런, 왜 제게 직접 말하지 않고.... ==33

단발머리 2024-01-03 20:24   좋아요 1 | URL
<감시와 처벌> 그 친구가 참.... 수줍음이 많더라구요. 조심스레 메모를 건네더라구요.

˝단발머리님, 건수하님과 친하신 거 같던데요.... 가능하시면 올해 안에 저 좀 이 책장에서 꺼내달라고.... 건수하님께 말 좀 잘해 주세요. 저도 항상 이렇게 살 수는 없잖아요. 부탁드립니다. <감시와 처벌> 드림˝

건수하 2024-01-03 20:34   좋아요 1 | URL
일단… 마음은 잘 알겠다고 전해주십시오…. 😌

단발머리 2024-01-03 20:43   좋아요 1 | URL
얼른 연락주세요. 저한테 날도 잡아 달라 했어요. 🤪

자목련 2024-01-03 16: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단발머리 님의 페이퍼 읽으면서 ‘자신에게 정말 소중한 것은 선물하지 말자‘, ‘읽고 쓰는 즐거움을, 그 누구에게도 빼앗기지 않겠다‘. 를 꼭 기억할게요!
페이퍼의 마지막 자신은 역시나 좋고요!

단발머리 2024-01-03 17:09   좋아요 0 | URL
네, 제게 가장 소중한 것은....... 시간입니다. 나 혼자만 쓸거야, 라고 맨날 다짐을 ㅋㅋㅋㅋㅋㅋㅋ 다짐을 한답니다.
자목련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올해도 자주 뵈어요!!

독서괭 2024-01-03 17: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물론, 다른 케미도 보여 준다” ㅋㅋㅋㅋㅋㅋㅋㅋ
<감시와 처벌> 완독에 박수 백만번 보내드립니다👏👏👏👏👏👏👏👏👏👏 고생하셨어요!
올려주신 책들 중 그래도 페이드포 읽었고, 여미쳐 거의 다 읽었네요. 두루미 아내? 읽어봐야겠습니다.
읽고 쓰는 즐거움 누가 빼앗으리! 우리 꼭 쥐고 놓치지 말아요~ 단발님 올해도 함께해요~^^

단발머리 2024-01-03 20:29   좋아요 1 | URL
다른 케미가 궁금하신 모든 분들께 1독을 권합니다. 새로운 세계가 열립니다. 앗 뜨거워라!!

<두루미 아내>는 제 생각엔 동화라고 하기엔 좀 그래요. 잔혹동화라면 또 모를까요.
읽고 쓰는 즐거움, 올 한해도 한껏 누려보아요, 독서괭님!! 같이 갑시다!!

거리의화가 2024-01-03 17:4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친밀한 적 리뷰 기억나요. 비록 댓글은 못 달았지만. 리뷰 읽고 그 책 꼭 읽어봐야겠다 생각했었는데 역시 생각만이었다는… 탈식민주의에 관심이 많기 때문에 언젠가는 꼭 읽어보겠습니다. 댓글다는 것이 생각과 정리를 요하기도 하고 조심스럽기도 해서 항상 뒤로 밀립니다. 앞으로는 댓글 다는 횟수를 좀 더 늘려볼게요. 단발머리님 올해도 즐독하시고 좋은 글 많이 올려주시기를^^

단발머리 2024-01-03 20:50   좋아요 1 | URL
거리의화가님이 읽으신다면 새로운 <친밀한 적>의 해석이 가능하리라 생각합니다. 댓글도.... 저도 자주 달고 싶기는 한데, 거리의화가님 말씀대로 댓글다는 게 조심스러운 일이기는 한 것 같아요.
내년에도 거리의화가님의 좋은 리뷰, 좋은 사유 기대하겠습니다. 올해네요 ㅋㅋㅋㅋㅋㅋ 올해에도 자주 뵈어요^^

2024-01-04 12: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4-01-04 12: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은오 2024-01-04 13:5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고닉 언니는 저한테도 올해의 언니입니다!!!!! 저는 상황과 이야기보단 <사나운 애착>과 <짝 없는 여자와 도시>가 더 좋긴 했지만요! ㅎㅎㅎ
솔직히 감시와 처벌 완독하신건 창문에 플랜카드 붙이셔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
제게도 알라딘과 단발님이 넘 소중합니다!! 2023년 넘 감사했어요 단발님~❤️ 올해도 잘부탁드립니다!! 뽀뽀!!!!!!!!! 💋💋💋💋💋💋💋💋💋💋

단발머리 2024-01-04 21:15   좋아요 1 | URL
고닉 언니까지 섭렵하셨으니 이제 이 동네 언니들은 다 은오님 관리하에 들어갔다고 보면 되겠네요. <사나운 애착>, <짝 없는 여자와 도시>도 좋다고 하셔서 무척이나 기대가 된다고 합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플랜카드는 함 생각해 볼게요. 제가 진짜 플랜카드를 좋아하거든요! 경! <단발머리 감시와 처벌 완독> 축!
뽀뽀는 감사하기는 한데.... 위 댓글을, 결혼도 해 주지 않으면서 맨날 약올리는 잠자냥님이 싫어합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psyche 2024-01-05 15: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간만에 와서 좋아요만 누르고 지나가려다 새해 복 많이 받으라고 하시길래 댓글 남겨요.
단발머리님 잘 지내시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단발머리 2024-01-06 11:02   좋아요 0 | URL
프시케님~~~~~~~ 제가 맨발로 ㅋㅋㅋㅋㅋㅋㅋㅋ 나옵니다.
그냥 지나가시지 않으시고 댓글 눌러주셔서 감사해요. 프시케님도 잘 지내시죠? 읽은 책 올리시는 거 제가 잘 보고 있습니다.
프시케님,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요. 올해에도 잘 부탁드려요!

라로 2024-01-08 13: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프님처럼 좋아요만 누르고 가려고 했는데 Lucy by the Sea를 올해의 원서에 올려놓으신 것과 새해인사를 하고 싶어서 댓글남깁니다. Lucy by the Sea가 호불호가 좀 갈리는지 미국 독자들은 별로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프님이 그러셨는데 저는 좋았거든요.ㅎㅎㅎ 단발머리님 늘 열심히 읽으시고 좋은 글들 써주셔서 감사드리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단발머리 2024-01-08 14:01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라로님! 저는 스트라우트 책 중에 이 책이 제일 좋았거든요. 다 읽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저는 루시가 나오는 시리즈가 맞는 것 같아요 ㅎㅎ 이 책 읽으면서 윌리엄도 용서(?)하게 됐고요.
라로님,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요. 올 한 해도 건강하시고 원하시는 일들 다 이루시는 한 해 되시길요!!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홍은주 옮김 / 문학동네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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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 아이들과 영어책, 그중에서도 챕터북을 신나게(?) 읽어나갈 때의 일이다. 그때도 이미 읽을 만한 챕터북들이 어마어마하게 많이 수입되고 있어서, 만약 어떤 엄마가 아이에게 영어책만 읽히겠다고 작정(?)을 한다 해도 그게 가능할 정도였는데, 그러다 보니 그 많고 많은 영어책 중에서 내 아이에게 맞는, 내 아이가 흥미를 느낄 만한 영어책을 찾는 일이 가장 어려운 일 중 하나가 되어 버리고 말았다. 읽을 책이 없어서가 아니라, 읽을 책이 너무 많아서 벌어진 일이었다.

 


영어유치원은 물론이고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부터 영어 학원에 다니는 것이 자연스러운 나라에서, 영어 학원을 보내지 않겠다고 결심한 한 엄마는 그렇게 아이가 관심을 가질 만한영어책을 찾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림책을 웬만큼 읽었지만, 두꺼운 소설책을 읽기에는 아직 부족한 아이에게는 챕터북이라는 징검다리가 있었는데, 그에 속하는 책들 역시 어마어마한 양을 자랑했다. 더욱이 큰아이는 여자아이가 주인공인 내용에 감흥을 느끼지 않았고, 말괄량이가 주인공이면 더더욱 공감하지 못했다. 학교생활의 이런저런 에피소드에도 크게 관심이 없어서 그런 책들을 제하고 나니 이런 종류의 책들만 도전이 가능했다. 동물이 주인공인 책들 혹은 판타지물. 그렇게 우리는 힘겹게 네게 딱 맞는챕터북을 찾아 헤매었다. 내용을 알아야 추천할 수 있으니, 전부는 아니지만 이런저런 책들을 나도 같이 읽었다.

 


그중에 오래 기억에 남는 책이 있는데, 그건 바로 댄 그린버그의 <Zack Files> 시리즈의 첫 번째 책 <잭의 미스터리 파일 1 : 벽장 너머의 세계>이다. 화장실 수납장을 열게 된 잭, 그 속에서 자신과 똑같은 사람을 발견하고, 그 너머에, 화장실 수납장 너머에 자기와 똑같은 사람이 살아가고 있음을 알게 된다. 평행 우주. 평행 우주론의 어린이 버전이다. 평행 우주, ‘우리가 속한 우주가 아닌 또 다른 우주 세계가 존재한다는 건 어디까지나 가설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우주 세계가 아닌 평행선상에 위치한 곳에 존재하는 다른 우주. 같은 시간을 공유하지만, 공간과 차원이 다른 수없이 많은 우주. 그리고 그 우주에 살고 있는 나. 혹은 로 보이는 어떤 존재.

 

 


열여섯 혹은 열일곱 살의 소년이 만나 사랑을 느끼게 된 열다섯 살의 소녀는 어느 날 갑자기, 소년의 인생에서 사라져 버린다. 버려진 느낌과 황당함, 슬픔과 외로움을 담담히 감당하던 소년은 소녀가 말해주었던 그 도시를 찾아 떠나고, 그곳에서 그렇게 그리던 소녀를 다시 만나게 된다.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는 예전의 연인을 매일 만나면서 그는 그곳에서 잠시 편안함을 느끼기도 하지만, 자신에게서 떨어진 그림자의 죽음이 다가오면서 고뇌에 빠지게 된다.

 


소년이 그리던 삶은 여기에 있다. 매일 소녀의 얼굴을 볼 수 있고, 소녀가 내려주는 쑥색 약초차를 마시고,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소녀와 이야기를 나누고, 일과를 마친 후에는 소녀를 집까지 바래다주는 삶. 그가 원하는 모든 것이 바로 이 세계에 있다. 도시의 불확실한 벽, 높고 두터운 벽 안쪽에, 그가 원하는 삶, 그가 바라던 삶이 있다. 하지만, 소년은 여전히 혼란스럽다. 내가 만나는 소녀, 나와 함께하는 이 소녀는 실체일까. 혹 이전 세계에서 만났던 그 소녀가 실체인 것은 아닐까. 지금의 나는, 혹시 허구가 아닐까. ‘에게서 강제로 떨어져 나가 이제 곧 숨을 거두게 될 그림자가 나의 진정한 실체인 건 아닐까. 소년은 그림자를 살리기로 결심하고 자신은 그 불확실한 벽 저쪽의 도시에 남아있기로 결정한다. 하지만 그는 원래의 세계로 돌아오고 만다.

 


이쪽 현실세계에서 그는 중년에 접어든 특징 없는 남자다. 지방의 작은 도서관의 도서관장으로 일하게 된 그에게 이제 새로운 우주가 열린다. 매일 같은 옷을 입고, 걸어서 출퇴근하고, 집으로 돌아와서는 장을 보고 청소를 하고 다림질을 한다. 신비로운 존재인 이전 도서관장 고야스 씨와의 만남을 접점으로 그는 옐로 서브마린 요트파카 차림의 소년 M**와 더욱 가까워지고, 그를 통해 도시에 대해 듣게 된 서브마린 소년은 바로 그곳, 불확실한 벽 안쪽으로 가고 싶어 한다. 그의 임무였던 오래된 꿈 읽기, 도서관에서 보내는 일상을 서브마린 소년은 원한다

 

 


플라톤의 이데아론이나 장자의 호접몽을 떠올리지 않더라도 평범하면서도 담백한 하루키의 문장들은 하나의 의문, 하나의 질문으로 나를 이끌어간다. 어떤 세계가 진짜일까. 어느 세계 속의 내가 진짜일까. 내 행세를 하는 저 그림자는 도대체 누구일까. 나는 누구일까. 나는 어떤 사람일까.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요구되는 특정한 기대나 사회가 원하는 일정한 역할의 수행자로서의 가 아니라, 그냥 나. 나는 어떤 존재일까. 소설 속 고야스 씨는 자신을 단순한 일개의 통과점으로 본다(380). 부모에게서 한 덩어리의 정보를 물려받아 자기 나름의 수정을 더해 자기 아이에게 물려주는 존재, 긴 쇠사슬의 고리 하나(380)로서 말이다.

 


700쪽이 넘는 두꺼운 소설을 따라 읽어가면서도 누가 진짜인지 확신할 수가 없다. 불확실한 벽 저쪽의 도서관장이 진짜인지, 불확실한 벽 이쪽의 오래된 꿈 읽는사람이 진짜인지. 하지만, 이쪽 아니면 저쪽, 이 세계 아니면 저 세계를 고집하던 나의 옹졸함은 어느 틈엔가 사라져 버린다. ‘하나도 빠짐없이 네 것이 되고 싶다던 소녀(110), 당신과 다시 한번 하나가 되고 싶다던 그림자(153), 그리고 본래에 가까운 당신 자신이 되기 위해 하나가 되어야 한다고 말하는 서브마린 소년(722)은 하나로 연결된다. 나는, 갑자기 사라져 버린 열다섯 살의 소녀이고, 다시 한 번 생각해보라며 애원하는 그림자이며, 하루종일 책만 읽는 그 서브마린 소년이다. 불확실한 벽 저쪽의 내가 인 것처럼, 불확실한 벽 이쪽의 나 역시 이다. 두 세계에 모두 속하는, 혹은 속하지 않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하나. 판단하지 않는 것이다. 시간이 멈춘 것처럼 느껴지는 그 찰나, 지금 현재만이 내가 살 수 있는 유일한 순간이고, 이 세계와 저 세계로의 나의 낙하를 받아줄 이는 바로 나, 나 자신뿐이다.

 

 


외출할 때도 굳이 이 두꺼운 책을 가방에 넣고 집을 나섰는데, 다음, 그다음 이야기가 너무 궁금했기 때문이다. 고만고만한 아이들과 씨름하는 순간마다 도서관이 내게 그랬던 것처럼, 소설 속 중년의 가 만나는 새로운 우주 역시 도서관이다. 이곳은 안전하고, 시간이 멈춘 곳이고, 그리고 나의 낙하를 받아줄 이가 기다리는 곳이다. 내가, 나를 기다리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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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3-12-29 10:2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제가 일곱번째 좋아요를 누른 사람입니다.

무라카미 하루키 책의 리뷰를 단발머리 님이 써주실 줄은 몰랐는데, 뜻밖이라 그런지 더 좋네요. 저는 아직 절반도 못읽었는데 음, 리뷰를 쓴다면 이 방향이다, 라고 혼자 정한 건 있거든요? 그 방향과 단발머리 님의 리뷰가 너무나 달라서 또 놀라고 즐겁습니다. 감상은 역시 독자의 몫이구나 싶고요. 초반에 힘겹게 읽다가 어느 순간부터 제가 좋아하는 이야기가 되어서 재미있게 읽고 있습니다. 단발머리 님의 리뷰도 아주 즐겁게 읽었습니다!!

단발머리 2023-12-29 10:33   좋아요 0 | URL
다락방님이 좋아요,를 누르신 여섯분들과 이 영광을 ㅋㅋㅋㅋㅋㅋㅋ ‘좋아요‘의 영광을 나누고 싶습니다.

저는 솔직히 하루키를 많이 (사실은 거의) 안 읽었는데, 몇 권 읽으면서 느꼈던 거는... 계속 읽게 만드는 힘이 정말 대단해요. 자극적이지도, 사건이 많지도 않은데, 이야기가 이리로 저리로 뻗어가는게 말이에요.
다락방님의 생각은 제 리뷰와 완전 다른 방향이라니 그 리뷰, 저도 꼭 읽어보고 싶네요. 가능하면 31일 전에 리뷰 올려주시기를... 간곡히 바라 마지 않습니다.

다락방 2023-12-29 10:46   좋아요 2 | URL
제가 31일 전에 과연 쓸 수 있을까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저 어제도 야근에 오늘도 야근에 내일도 술 모레도 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화이팅!!

단발머리 2023-12-29 10:52   좋아요 0 | URL
아.... 연말에 야근이라니 ㅠㅠㅠㅠㅠㅠ
내일도 모레도 일정이 빡빡하시네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 화이팅!! (*5)

다락방 2023-12-31 14:23   좋아요 1 | URL
저 이 책 막 다 읽었고 마지막 부분에서 단발님이 왜 이렇게 리뷰를 쓰셨는지 확- 이해됐습니다. 어휴 ㅠㅠ 너무 좋네요 ㅠㅠ 저 하루키가 좋습미다 ㅠㅠㅠㅠㅠ

mytripo 2023-12-29 12: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니 선생님 그래서 학원 없이 영어교육 성공하셨는지 막 여쭤보는 k-학부모..

단발머리 2023-12-29 15:41   좋아요 1 | URL
아이고야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학원 없이 영어교육까지는 맞고요. 성공했는지는 저도 잘 모르겠어요.
똑같은 과정을 거쳤지만 두 아이의 영어 성적에 차이가 많아서요.. 결론은, 공부는 각자 하는 걸로.
이렇게 나버리고 말았거든요 😳😳😳

mytripo 2023-12-29 14:20   좋아요 1 | URL
저는 대댓글 왜 때문에 안써지는거죠?
학원 다녔어도 성적 차는 비슷했을 것 같아요. 고생하셨습니다.👍

단발머리 2023-12-29 15:42   좋아요 0 | URL
우앗! mytripo님! 제가 한 일은 별로 없었지만 귀한 말씀에 눈물이....😢😢😢
감사합니다!!

수이 2023-12-30 16:3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제가 제목을 보고 깜놀했는데 말이죠 단발님, 물론 이렇게 말하는 건 좀 뻔한 이야기가 되기도 하는데 말이죠. 몸을 던지고 영혼을 던졌을 때 받아줄 수 있는 이가 나 말고 또 어딘가 누군가가 있지 않을까요. 물론 보편적으로 말하면 일단 엄마라는 존재가 떠오르기는 하지만 그 엄마가 항상 모든 딸아들을 받아주는 것도 아니지만 말이죠.

단발머리 2024-01-03 20:51   좋아요 0 | URL
나 말고 또 어딘가 나를 받아주는, 나의 낙하를 받아주는 이가 있죠. 제게도 있습니다. 그런 존재가 ㅋㅋㅋㅋㅋㅋㅋㅋ
수이님은 이걸 캐치해 내셨으니, 그런 존재의 존재를 아시는 분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수이님의 낙하를 받아줄 이!!

독서괭 2023-12-31 18: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영어학원 안 보내기 결심.. 정말 어려운 결심을 하고 해내셨군요. 대단합니다👍👍👍 저도 학원을 많이 안 보내려고(공부학원은) 생각하고 있는데 막상 학년이 올라가면 어찌될지..^^; 아이들에 맞는 영어책 찾는 게 또 일이긴 하더라고요. 아휴.
하루키 리뷰 다들 자기 색깔이 있으셔서 재밌네요. 낙하를 받아줄 이라니, 제목도 너무 멋지고요. 도서관이야기라 조금 당기는 책입니다.
단발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단발머리 2024-01-03 20:54   좋아요 1 | URL
영어학원을 안 보내기는 했는데.... (말줄임표 속에 많은 말이 들어가 있습니다) 학원을 안 가면서 공부한다는게 일단 한국에서는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인 거는 같아요. 어렸을 때 공부습관이 만들어지면, 괜찮을 거 같기는 하지만... (먼 산)
전 이번에도 하루키가 좋았습니다. 웃긴 구절을 좀 발견했거든요. 소소한 인물의 소소한 유머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독서괭님, 내년에도 더 자주 뵈어요! 새해 복 많이많이 받으시고요!
 
강제적 이성애와 무성애의 섬 (feat. 수하님)

 















케이트 밀릿의 <성 정치학>의 존재를 알게 된 건 2018년이었다. 이미 품절 상태였고, 친절한 알라디너님은 애인이 비싼 중고를 구해주었다 자랑하시기도 했다. 애인 없는 나는 원서를 구입해서는 2쪽 읽고 바로 고이 보관 모드로 들어갔고, <성 정치학> 2020년에 재출간되었다. 당시 책소개에 이런 문단이 있어 페이퍼에 적어 두었는데, 지금 확인해 보니 알라딘 책소개는 좀 바뀌어 있어서, 그래24의 책소개를 가져와 본다.


《성 정치학》은 케이트 밀렛에게 크나큰 명성을 가져다 주었지만, 그는 이러한 관심에 미처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가부장제의 기원에 의문을 제기한 밀렛에게 전통적인 이성애적 가정을 무너뜨리려 한다는 비난이 쏟아졌다. 저명한 비평가 어빙 하우는 “이른바 시대 정신이라고 착각하는 것들을 대충 어지럽게 짜깁기한 것에 불과하다”라고 비판하면서 “배운 티를 내려 애쓰고 있다”라고 평가 절하했다. 결정적으로 레즈비언 문제를 놓고 페미니즘 운동이 분열되어 있던 당시, 1970년 컬럼비아 대학교에서 열린 컨퍼런스 도중 한 페미니스트 활동가로부터 성적 정체성에 대한 질문을 받은 밀렛은 힘겹게 “레즈비언”이라고 답했다. 불과 몇 개월 전 “여성 해방의 마오쩌둥”이라며 치켜세웠던 《타임》은 “페미니스트들을 레즈비언으로 치부하는 회의론이 강화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밀렛의 고백 이후 많은 진보적 페미니스트가 등을 돌렸다. (<Yes 24 책소개>)   



나는 이걸 이렇게 이해했다. 그러니까, 케이트 밀릿은 레즈비언이었지만, 그걸 공식적으로 인정하기는 꺼려할 수 밖에 없었는데, 공개적인 장소에서 페미니스트 활동가의 질문에 자신이 레즈비언이라는 사실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고. 나는 그렇게 이해했다. 이 책 <여전히 미쳐 있는>에서는 상황이 좀 다르게 읽힌다.


















동성애자와 여성의 해방운동에 관한 어느 모임의VER패널로 참가했을 때는 한 청중으로부터 'L 워드'를 사용하라는 요구를 받았다. "500명이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당신 레즈비언이에요? () 그렇다고 말해! 네가 레즈비언이라고 말해!' 라면서. 나는 네, 라고 대답했다. 그녀가 하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알았으니까. 마치 파시스트의 칙령처럼 융통성 없는 저 말은, 양성애는 핑계에 불과하다는 뜻이었으니까. 나는 그렇다고, 나는 레즈비언이라고 대답했다. 마지막 힘을 쥐어짠 것이었다." (<여전히 미쳐 있는>, 205)



자신이 급진주의자임을 증명하고 싶었던 밀릿의 나는 레즈비언이라는 대답(206). 혹은 그러한 대답에 대한 압박은 페미니즘 운동이 불꽃처럼 타오르던 시기에 레즈비언니즘의 위치를 다시 한 번 확인하게 한다. 티그레이스 앳킨슨의 표현대로 페미니즘은 이론이며 레즈비어니즘은 그 실천이라는 의식이 급진적인 페미니즘 운동 전체를 좌지우지했고, ‘라벤더 위협의 힘으로 급진적 레즈비언 단체를 여성주의 운동과 분리시키고 싶어했던 베티 프린단 같은 세력의 반항 또한 만만치 않았다. 이런 저런 사정들로 인해 여성주의 운동가들 사이의 분열은 더욱 가속화됐다.


한국에서도 그런 열풍이 불었던 적이 있다. 화살표는 전후좌우 방향이 없었다. 남성이 여성을 검증(?)하기 위해 악의적으로 묻는 경우도 있었지만, 여성이 여성에게 묻는 경우도 있었다. “당신 페미니스트야?” 대답은 Yes or No. 페미니스트에 대한 정의가 천차만별인 것은 아무 상관이 없었다. 왜 당신은 대답하지 않느냐, 왜 공식적으로 밝히지 않느냐의 질문이 페미니즘의 고전을 저술한 사람에게까지 이어졌다. 밀릿의 표현을 빌리자면 마치 파시스트의 칙령같은 질문.




이성애는 가부장제를 지탱하는 강력한 버팀목 중 하나이다. 남성다움과 여성다움 그리고 남성과 여성과의 구별이 이성애를 떠받치고 있다. 하지만, 공기처럼 우리를 지배하는 이성애 가부장제 속에서 우리가 진짜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안다는 것, 대답한다는 건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저는 결코 이성애자 페미니스트들이 거짓 의식을 '세뇌당한' 상태로 헤맨다는 주장을 하지 않았습니다. '적과의 동침'이라는 표현이 유용하거나 심오하다고 생각해본 적도 없습니다. 호모포비아는 너무 널리 퍼진 용어라 이성애 페미니즘의 성적 유아론을 밝혀내고 대화를 나누기엔 별로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이 에세이를 통해 저는 이성애자 페미니스트들이 자신의 이성애 경험을 비판적으로, 나아가 적대적으로 검토해 보길, 자신이 속한 제도를 비평해보기를, 여성의 자유를 위해 그 규범과 함의를 놓고 투쟁하기를, 레즈비언 페미니스트의 관점으로 제시하는 수많은 자료에 좀 더 마음을 열어주기를, 이성애 제도 안의 개인적 특권과 개인적으로 '좋은 관계'를 맺자는 해결책에 안주하지 않기를 요청하고자 노력했습니다. (<우리 죽은 자들이 깨어날 때>, 284)



그래서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최대 한도의 도전은, 나의 이성애 경험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남자와의 연애와 사랑과 섹스를, 그 경험을 적대적으로 검토하는 것이다. 레즈비언 페미니스트의 주장에도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 ‘이성애 제도안에서 내가 가지고 있는 (혹은 가지고 있음에도 인정하지 않고 있는) 특권에 안주하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이 책을 마저 읽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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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2-23 17: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12-23 19: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독서괭 2023-12-23 21:3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엄머 찹쌀떡아이스 인절미?? 맛있겠네요 ㅎㅎ
제 지인도 몇년 전에 여자가 결혼을 꼭 해야하는가, 결혼제도 안에서 여성이 입는 불이익에 대해 말했다가 상대 여성이 “너 페미니스트야?”라고 물어서(검증어조로) 황당했다고 하더군요..
단발님 화이팅!!

단발머리 2023-12-24 17:51   좋아요 1 | URL
너무 맛있다는 소식입니다! 아주 맛나요! 그런 질문들은 그래도 뭔가(?) 아시는 분들이죠. 전 은근슬쩍 이야기하면 듣는 분들이 아~~ 그런가? 그렇네… 이런 분위기에요.
독서괭님도 화이팅!! 💕🎄

2024-01-16 12: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4-01-16 13: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1. 장하준의 경제학 레시피 /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 커리어 그리고 가정

 


2012년의 이 옛날 사진은,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를 도서관에서 빌려 읽고 나서 첫 페이지를 찍어둔 것이다. 그때 써둔 페이퍼를 찾아보니 이 페이지가 특히(!) 마음에 들어 출판사에 전화를…. (제가 이렇게 자주 출판사에 전화하는 사람이었네요. 몰랐어요, 나도) 지금 사도 저 페이지는 똑같나요? 물었더니 초판 일부에만 저 부분이 들어간 거라고 해서 눈물을 머금었다는 슬픈 이야기. 그러니까 저 책이 내게는 장하준의 첫 번째 책이다. 인간의 이기심을 그대로 두지 말고 공정하게경쟁이 이루어지도록 공평한 경기장을 만들자는 주장이 너무 신선했던 기억이 난다.


 



이번에 읽은 책은 대중에게 더 다가간다는 느낌이 강하다. 요리 혹은 식재료로 이야기를 시작하면서도 이전의 관점을 놓치지 않고 주장에 대한 여러 경제학 통계와 그에 대한 장하준식해설이 곁들여 있다. 특히 아내의 권유에 따라 용기를 내어 기술했다는 <챕터 13장 고추>돌봄 노동부분이 눈에 띈다.

 


돌봄 노동에 대한 관점과 관행과 제도를 바꿔야 한다. …. 셋째, 관점과 관행의 변화는 제도 변화를 통해 공고히 해야 한다. 무보수 돌봄노동에 대한 인정과 인식 변화는 복지체제의 변화로 공식화되어야 한다. 양성 모두에게 유급 돌봄휴가(어린이 양육하기, 노인 돌보기, 병든 친척과 친구 돌보기 등을 위한)를 더 길게 허용해야 하며, 집에서 풀타임으로 아이를 돌보는 부모나 보수를 받는 일을 하는 부모 모두에게 값싼 보육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263)

 


보이지 않는 모든 종류의 돌봄 노동이 여성에 의해 이루어지고, 이것이 무료로 이루어지는 현실에 대한 진단. 돌봄 노동을 가시화하는 여러 방식에 대한 논의 또한 이어진다. 여성의 임금이 상승했을 때 가정 경제가 어떤 도움을 받을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주장과 논거가 이어지는데, 이 당연한 말을 사람들은 여전히 믿지않는다. 남녀 임금 격차를 좁히고, 전통적으로 남성이 지배적이었던 직군에 여성이 더 쉽게 진출할 수 있게 하는 것, 보수를 받는 돌봄 노동의 임금 상승을 위해 최저 임금을 올리고 노동 환경을 개선하는 것 등의 조치가 필요하다(262). 2023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클라우디아 골딘의 <커리어 그리고 가정> 역시 성별 임금 격차의 핵심 원인을 밝혀낸' 책으로 주목받고 있다다정한 이웃님이 선물해 주셔서 고이 모셔놓고 있는데, 이어서 읽으면 좋을 듯하다.  

 

 
















2. 녹색 평론 184호 

 


일론 머스크가 내놓은 테슬라 로봇 옵티머스 2세대는 보완할 부분이 몇 가지 보이기는 하지만, 이미 충분히 인간에 가까운 모습이다. 물리적으로 완벽한 물체(신체라고 하기는 좀 그렇다)에 자신의 뇌를 다운로드해서 다른 행성(구체적으로는 화성)에서 살 수 있기를 바라는 사람의 꿈은 점점 더 구체화되고 있다.

 


그리고 어쩌면 지구가 녹색이기를 바라는 마지막 바람은 이 책에서 구체화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녹색평론> 사서 읽는 사람 아닌데 정희진 선생님 글이 있다고 해서 일부러 구입했다. 물론, 다 읽지는 않고 정희진 선생님 글읽었다. [딜레마가 아닌 파국; 영화 <오펜하이머>를 보고]. 발전주의에 대한 비판과 기술 발달로 인해 인류가 얻게 된 핵무기라는 결말. 우리에게 희망이 있는가. 희망이라는 게 가능한가.

 


나는 물건을 파괴하지 않는 아류 러다이트주의자다. 다시 말해 '멈춤' 외에는 대안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성찰적 과학자의 질문, "다시 한번 묻는다. 인공지능 그리고 그다음을 이어갈 또다른 과학의 발전은 계속 인류를 더 나은 미래로 이끌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나의 답은, "당연히 아니다"이다. 과학기술은 발전하면 할수록 인류를 불행하게 한다. 이익을 보는 이들은 지구를 버리고 화성에 가서 살고 싶은 극소수 자본가뿐이다. (198)

 


인류의 운명은 이미 정해져 있고, 그 끝은 그리 멀지 않아 보인다. 녹슬지 않는 새로운 몸을 입고 화성으로 이사 가려면, 일론 머스크는 더 열심히 일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3. 트렌드 코리아 2024

 

베스트셀러 읽는 엄마라서(나의 끈질김을 보라. 우리 집 얘들은 제 글을 읽지 않습니다. 그래도 말하고자 합니다. 얘들아, 나의 끈질김을 보라!) 일 년에 한 번은 꼭 훑어본다. 자세히는 안 보고 쓱~~ 본다. 신문도 안 읽고, 주간지도 안 읽는 나여서, 그래서 본다. 2024, 내년의 트렌드는 무엇인가. 영어 알파벳 조합에 따라 키워드 10개를 꼽았단다. 여기에도 보이는 돌봄경제’.

 







 













4. 나일 강의 죽음 /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 다섯 마리 아기 돼지

 


처음 읽는 아가사 크리스티. 작은애가 중학생일 때, 집 근처 새 도서관에서 반짝반짝 새 책으로 시리즈 빌려다 주던 사람이 바로 나인데. 이번에는 내가 읽으려고 빌렸다. 처음에 예상한 사람이 범인인 것은 맞았는데, 아가사의 설명 따라가다가 잠시 헷갈렸다. 두 권 정도 더 읽어야겠다 싶다.

 



 














5. Nine Lives / The Kind Worth Saving / The Christmas Guest  


 

피터 스완슨은 이 책까지 총 3권 읽었고, 두 권 더 주문해서 (알라딘 미안, 교보가 만원이 싸더라) 총 다섯 권이다.


 

첫 페이지에 9명의 이름이 나열되어 있다. 여남이 섞여 있고, 나이도, 직업도, 사는 지역도 제각각이다. 5분의 1 정도 읽으면서 이들의 공통점을 찾아냈는데 모두 ‘having an affair’, '불륜 중'. 전문 용어로 바람을 피고 있'다. 내 예상이 맞았는지 확인하기도 전에 벌써 3명이나 죽었다. (이런!!) 유튜브에 오디오북이 있어서 어제는 찬찬히 읽다가 맘이 급해서 오늘은 줄거리만 따라 허겁지겁 읽어가고 있다.


 

등장인물들이 어렸을 때 읽던 책 이야기를 하는데 아가사 크리스티가 나온다. 한 명은 크리스티 소설을 다 읽었다고 하고, 한 명은 그 중에서 어떤 책의 내용에 대해서 이야기하는데 제목이 기억 안 난다고 하니, 다른 사람이 제목(<The A. B. C. Murders>)을 알려주는 훈훈한 장면이 이어진다. 아가사 크리스티 딱 한 권 읽은 사람이고, 내가 읽은 책은 언급이 안 되었지만 뿌듯한 마음에 혼자 웃었다. 아무도 없어서 크게 웃어도 되는데 조용히. 이럴려고 내가 아가사 크리스티를 한 권 읽은 거야. 헤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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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3-12-22 14:2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 정말 글 좋다고 쓰려다가 마지막 사진 보고 다 날아가버리네요. 사진이 너무 좋아서요. 뒤에 저 훌륭한 배경하며..!!
단발머리 님 열심히 읽고 계셔서 너무 좋네요. (저는 게을리 읽고 있습니다만..)

단발머리 2023-12-23 16:57   좋아요 0 | URL
제 책이면 좋을텐데요 ㅋㅋㅋㅋㅋㅋㅋ 도서관입니다. 저 자리가 원래 책상 자리였는데 오랜만에 가보니 편안한 스타일로 바뀌었더라구요. 사람이 없어서 혼자 찰칵! (소리 안 나는 카메라로 찍었습니다 ㅋㅋㅋ)
다락방님도 열심히 읽으세요! (촤락~~~~~~~~~~~~~~~~~~)

은하수 2023-12-23 11: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헤헤. . . 글 너무 좋네요... 사진도요^^
더 이상 말이 필요없네요.
<커리어 그리고 가정>은 저도 읽는 중인데... 진도가 안 나가요.
어렵진 않은데 그러네요.
꾸준히 읽고 계신 모습 넘 멋지십니다!

단발머리 2023-12-23 16:58   좋아요 1 | URL
<커리어 그리고 가정>을 가지고 계시군요? 저도 곧 시작해야지 하고 일단 책장에서 꺼내 두었습니다.
꺼낸 다음에는 쌓아놓기는 하지만, 일단 2단계에 진입했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
은하수님의 격려 말씀 듣고 나니 더 꾸준히 읽어야겠다! 결심하게 되네요. (불끈!!)
 













읽지 않아도 책 구비에 진심인 사람인지라 오후 수업에서 신경 쓴 부분은 다양한 동화책을 준비해 놓는거였는데, 학교 도서관만 이용하기에는 권수가 부족해서 동네 도서관 두 곳의 책을 대출해 준비해 놓기는 했다.

 


이 책에서는 이 페이지가 제일 근사했다. 주몽과 세 친구가 부여 금와왕 아들들의 추격을 피해 달아나는 장면. 책에는 시퍼런 강물이라고 나오는데, 연두색과 초록색의 조화, 아니면 에머랄드빛이라 해야 하나. 아무튼 두 페이지가 시원하게 하나로 엮여 바다를 멋지게 표현했다. 바다, 하니까 떠올라서 핸드폰을 뒤져보니 오키나와 갔을 때의 사진이 있어서 그것도 같이 올린다. 여름, 그립다.

 


 






주몽은 커다란 알에서 태어났다. 주몽은 우리처럼 사람인데 어떻게 알에서 태어났나. 이런 이야기를, 나는 이런 이야기를 나눈다. 이야기 자체에 몰입해야 하는데, 주인공의 난관에 같이 함몰되어야 하는데. 난생, 태생, 난태생. 우리 포유류는 난생이야, 태생이야? 오리너구리 이야기도 잠깐 해주시고.

 


길이길이 남기고 싶은, 알라딘에 박제하고 싶은 건 이 페이지다. 나는 이 이야기의 이 부분을, 이번에 처음 들었고 처음 알았다. 해모수는 하백의 딸 유화와 정을 통한 사이인데, 하백은 해모수가 영 마뜩잖았다. 해모수를 시험하기로 한 하백, 프랑스 파리의 한식 전문점에서 대통령이 재벌들 불려서 술 멕이듯, 해모수에게 술을 만땅으로 먹이고는 유화와 함께 가죽 상자에 가두어 두었다. 아침이 되고, 다섯 용이 황금 수레(해모수 자가용)를 끌고 하늘나라로 올라가려고 부릉부릉 부르릉하니, 잠에서 깬 해모수는 깜짝 놀라




 

해모수는 얼른 유화의 비녀를 뽑아 가죽 상자를 찢고는 혼자 하늘나라로 올라가 버렸어요.

곧 다시 만나게 될 거요!”라는 말을 남기고……

 


어머나. 혼자 간다, 해모수가. 아이구야. 화가 잔뜩 난 하백은 그 길로 유화를 집에서 쫓아내고. 그다음은 우리 모두 다 아는 이야기. 해모수가 떠나듯 주몽도 부여를 떠난다. 어쩔 수 없었지만 그렇게 다들 떠난다. 남겨진 건 여자 그리고 아이. 혹은 엄마 그리고 아이. 해모수가 가죽 상자에서 탈출하려 할 때 필요한 게 유화의 비녀라는 점도 눈길을 끈다. 유화 소유의, 유화를 위한 도구를 해모수는 자신의 탈출을 위해 사용한다. 그리곤 버린다. 유화의 머리카락은 헝클어지고 비녀는 저만치서 나뒹군다. 이런 이야기는 물론 하지 않는다. 어머, 해모수 혼자 간 거야? 정도에서 접는다. 지나친 개입은 옳지 않다. 해석은 어디까지나 자신의 몫이고, 아이들이라고 그걸 하지 못할 리 없다.

 

 


계약 만료는 지난 금요일이라 이제 퇴사 2일차다. 집에서 보낸 시간이 그렇게 길었는데도 겨우 몇 개월만에 시간에 대한 개념이 바뀐 듯하다. 아니면 퇴사 2일차라 그럴 수도 있겠다. 자꾸 시계를 쳐다보게 된다. 지금 이 시간쯤에 나는 출근 중이었고, 다음 시간을 준비하고 있었고, 커피를 마시고 있었고, 그리고 **이를 만나고 있었고. 지금 이 시간에는 책상을 닦고 있었다. 집은 안 치워도 책상 위는 항상 깔끔했던 나. 과거의 나.

 


오랜만에 집에서 커피를 내렸더니 너무 진하게 됐다. 물을 더 부어야겠다. 따뜻한 물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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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2-19 09: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12-19 09: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12-19 09: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12-19 09: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독서괭 2023-12-21 16: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동안 선생님으로 일하셨군요!! 국어수업? 독서교육? 너무 잘 어울려요. 퇴사생활에 다시 적응하시려면 시간이 좀 걸리겠네요. 알라딘 서재에서 더 많은 활동을 기대합니다.
집은 안 치워도 책상은 깔끔하셨군요. 전 책상도 안 치우는데.. 흠..
커피를 한약처럼 ㅋㅋㅋ

단발머리 2023-12-24 17:52   좋아요 1 | URL
국어수업도 하고요. 독서교육은 안 하지만 같이는 읽어요^^
알라딘 서재에서 더 많은 활동을 제가 계획했었지요. 계획을 했습니다. 그러나 ㅋㅋㅋㅋ
집에서는 아메리카노로 마시니까요. 과자 없으면 마실 수가 없습니다, 당최 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