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과 파농




 












<파농>을 읽는다.

 


해설서를 읽는 일에는 장단점이 있다.

 





























단점을 이야기한다면, 그건 어디까지나 저자가 안내해 주는 범위 안에서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인데, <꿈의 해석을 읽다>는 양자오가 이해한 범위 안에서, <푸코, 바르트, 레비스트로스, 라캉 쉽게 읽기>는 우치다 다쓰루, <현대사상입문>은 지바 마사야가 안내하고 설명한 범위 안에서 이해할 수 있다는 거다. 그런 경우, 당연히 저자에 대한 신뢰가 독서의 바탕이 되어야 할 것이다. 저자의 설명과 통찰이 번뜩이는 경우라면, 원래 만나려던 책이나 인물보다 그에게 빠지는 경우도 가능할 텐데, 최근에 읽은 슬라보예 지젝의 <How to Read 라캉>이 그런 경우였다. 그의 말에 현혹되어(?) 이미 품절되었다는 <헤겔 레스토랑> <라캉 카페>를 도서관 찬스를 이용해 서둘러 준비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해설서 읽기의 장점이라면, 프로이트와 푸코와 바르트와 라캉의 정수를 혹은 엑기스를 살짝 맛볼 수 있다는 것인데, <꿈의 해석>을 혹은 <감시와 처벌>, <에크리>를 읽기 겁나는 경우에는, 이런 해설서는 친절하고 야무진 안내자가 되어 줄 것이다.

 



<파농>의 저자는 이경원이고, 그래서 이 해설서는 이경원의 파농이다.

 


저자는 후대인들이 파농을 기억하는 방식으로 고전적 파농주의와 비판적 파농주의가 있다고 말한다.

 


우선 고전적 파농주의는 ()식민주의의 극복이라는 정치적 목표와 연계되어 있었기에 혁명적 실천성을 띠고 있었던 반면 비판적 파농주의는 파농 연구가 서구의 제도권 학계로 편입되면서 탄생한 것이기에 파농의 제3세계적 맥락과 급진적인 색채가 희석되어 버렸다. 또한 파농이 전유한 이론의 두 축이 정신분석학과 마르크스주의라고 할 때, 고전적 파농주의는 오직 '마르크스적 파농'만 부각해왔고 비판적 파농주의는 그동안 간과되었던 '프로이트적 파농'에만 주목하고 있다. (90/624)

 
















고전적 파농주의의 대표작이 <대지의 저주받은 자들>이고, 비판적 파농주의에서 관심을 기울이는 파농의 저작은 <검은 피부, 하얀 가면>이다. 고전적 파농주의에서의 파농은 혁명가이고, 비판적 파농주의에서의 파농은 정신분석학자이다. 저자는 파농에 대한 이런 상반된 접근방식이 진짜 파농에 대한 논쟁으로 이어진다고 보았다. 파농을 정신분석학이나 탈구조주의의 틀로만 해석하는 것이 파농을 이해하기에 부족한 것처럼, 마르크스주의만으로 파농을 해석하는 것 역시 문제적이라고 주장한다. 저자가 예를 든다.

 


예를 들어, 페미니스트들은 어떤 급진적인 주장을 하기 위해 파농을 찾지 않는다. 그들이 파농에 눈길을 돌리는 이유는 젠더와 섹슈얼리티의 문제에 무관심한 제3세계 민족주의의 맹점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인물이 파농이라고 생각하거나, 반대로 파농에게서 제3세계적 페미니즘, 즉 페미니즘과 탈식민주의의 연대 가능성을 발견하기 때문이다. (88/624)

 


나는 이 단락에서 놀라고 말았는데, 파농의 책을 딱 1권 읽은 사람으로서, 비판적 파농주의, 정신분석학 측면에서 높이 평가받는 <검은 피부, 하얀 가면>을 읽고 정확히 위의 문단처럼 생각했기 때문이다. (추석과 파농: https://blog.aladin.co.kr/798187174/12050226)

 



내 영혼의 가장 검은 부분으로부터 [흑백] 줄무늬 지대를 가로질러 단번에 백인이 되려는 저 욕망이 솟아오른다. 

나는 흑인으로 인정받고 싶지 않다. 백인으로 인정받고 싶다. 

그런데-그리고 이 점이 헤겔이 기술하지 않았던 인정 형태인데-백인 여성이 아니라면 다른 누가 그렇게 해주겠는가? 그 여성은 나를 사랑함으로써 내가 백인의 사랑을 받을 가치가 있음을 증명해준다. 나는 백인 남성으로서 사랑받는다. 

나는 백인 남성이다. (63) 

 


한 번밖에 읽지 않았으니 내 생각에 확신을 가질 수는 없지만, 흑인과 결혼하지 않으려는 물라토(백인과 흑인 간의 혼혈) 여성에 대한 적의와 백인 여성의 사랑을 쟁취해 백인 남성이 되고자 하는 욕망이, 이 한 명의 흑인 남성 안에 혼재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인종 차별이라는 폭력 앞에서 백인 여성에 대한 숭배와 흑인 여성에 대한 멸시가 교차하고 있다. 더 하얘지기 위해 백인이 필요하고, 더 검게 되지 않기 위해 흑인을 피하고 싶은 건 남자든 여자든 마찬가지다. 두 번 버림당한, 혹은 버림당할 운명의 흑인 여성이 떠오른다.  

 


그러니까, <검은 피부, 하얀 가면>에서 내가 발견한 파농은, 탈식민을 시도하는 지식인이되, 완벽한 인간 백인으로 다시 태어나기 위해, 백인 여성이 필요한 혹은 백인 여성을 도구화’  해야만 하는 유색인 남성이다. 오리엔탈리즘의 렌즈로 니그로로 규정된 남성이 똑같은 방식으로 여성을 타자화, 한다고 나는 생각했다. 나는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고 생각하고, 페미니즘에 대한 이해 혹은 인식이 내 읽기 방식 중의 하나라고 생각하는데, 적어도 내게 <검은 피부, 하얀 가면>은 그렇게 읽혔다. 이 책의 저자는, 파농을 그렇게읽지 말아 달라고 신신당부한다.    

 


책의 후반부에는 <파농을 이해하기 위한 용어 해설>이라는 챕터가 있다. 여러 개념 중에 전략적 본질주의(Strategic Essentialism)가 눈에 띈다.

 


탈식민주의 비평가 스피박(Gayatri hakravorty Spivak)이 페미니즘의 여성주체 논쟁에서 본질주의의 모순을 피해가면서 동시에 본질주의를 전유하기 위해 제안한 개념이다. 가령 가부장제의 억압주체 '남성'을 데리다의 해체론을 이용하여 해체하면서 저항주체 '여성’을 구성하는 것은 논리적 모순이요 이론적 허구이지만, 저항담론의 토대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여성'이라는 일종의 본질주의적인 범주를 상정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그렇지 않으면 '여성’이 주체가 된 저항담론이 아예 출발할 수 없기 때문이다. (595/624)

 
















계급, 인종과 함께 사회적 분석 범주(category)로서 젠더가 작동하기에, 젠더에 대한 고려 없이 인간과 사회, 자연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사실(<다시 페미니즘의 도전>, 103)이지만, 젠더가 성차별, 구체적으로는 여성 집단에 대한 억압으로 강력하게 작동하는 것 역시 피할 수 없는 우리네 현실이다.  ‘여성이 주체가 된 저항 담론으로서의 파농 읽기가 가능하다고 생각하고, 그런 측면에서 탈식민주의를 지향하는 지식인이었으되 백인 여성을 희구했던 파농의 한계 역시 분명하다고 생각한다.

 


다만, 자신의 온 삶을 불태우며 흑인성식민주의타파를 위해 고군분투했던 파농에 대해 조금 더 알아보고 싶은 생각이 든다. 더 읽어봐야겠다.





댓글(8) 먼댓글(2) 좋아요(3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1. 파도는 덮치고 모래는 쓸려간다.
    from 의미가 없다는 걸 확인하는 의미 2024-01-29 16:55 
    내가 경계하게된 종류의 화법이 있다. 나 자신은 저들과 무관하다는 자기 인식이 드러나는. 너도 그래, 너도 똑같아라고 뱉어주려다가 참는다. 말해줘도 못 알아먹으니까. 어쨌든 나 자신은 무고하다고 항변하지만 이 구조 속에 있는 한 모두 한 비탈이라는 걸 그들은 알고 싶지 않은 것 같다. 정말로 무고하고, 그래서 대단하다고 생각했던 적도 있다. 아니 어떤 부분에서는 그런 이들을 인정하고 있다. 헌데 그게 백인성이고 그게 근대성이고 그게 애석한 (가끔 흠씬
  2. 저항주체인 여성의 전략적 본질주의
    from 책이 있는 풍경 2024-01-30 11:01 
    첫 번째로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검은 피부, 하얀 가면>이라는 텍스트가 가진 독특함이다. 저자 이경원의 표현을 그대로 옮겨 보자면 ‘딱히 자서전이라고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전문학술서로 보이기도 힘든 이 책은 정신의학, 심리학, 철학, 사회학 등의 온갖 범주를 넘나든다. (55/624) 파농의 정신과 삶은 사망 이후, 그가 선택한 조국 알제리에서도, 프랑스에서도 서서히 흩어지고 만다. 오히려 파농을 가장 ‘파농답게’ 기억한 곳은 생전에 파
 
 
다락방 2024-01-29 11:3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는 일단 파농 <검은 피부, 하얀 가면>부터 읽어봐야겠네요.

음, 좀 많이 다른 얘기인데, 나를 부정하기 위해서 혹은 나를 인정하기 위해서 여성을 도구화 하는 일은 빈번하게 일어났고 또 일어나는 것 같습니다. 파농은 인종에 대해 그랬다면, 저는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에서 주인공이 자신이 동성애자라는 걸 확실히 인식하기 위해 여성을 도구로 이용했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저는 그 영화를 싫어합니다.

이 페이퍼 읽으니 ‘필립 로스‘의 <휴먼 스테인>도 생각나고요.

저는 인종(차별)에 대한 책을 많이 읽지 않았는데, 이렇게 단발머리 님이 그에 대한 이야기를 써주실 때마다 좋아서 읽습니다.

단발머리 2024-01-30 11:08   좋아요 0 | URL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의 그 측면을 전 쪼금 알거 같은데요. 그니깐 전 그 영화도 책도 안 봤지만 말입니다. 둘이 아름답게 사랑할 때 그 여자아이에 대해.... 그게 더 이상 사랑받지 못한 사람의 마음과 좀 혼동되기는 하는데, 암튼 전 그런 마음이 들더라구요.
얼른 읽어봐야겠어요. 여름 배경이니까 겨울에 읽자 심정ㅋㅋㅋㅋㅋㅋㅋㅋㅋ

<휴먼 스테인>은 완전! 연관 도서 맞다고 생각해요. 뮬라토.....의 위치와 고민과 갈등이 자세히 나오니까요.

은오 2024-01-29 13:3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결국 또 여성 도구화 ㅋㅋㅋ 그쵸 흑인 남성도 그점에선 마찬가지고 xy의 한계....
오늘도 역시 지적임이 묻어나는 단발님의 글!!!!! 잘읽었습니다

단발머리 2024-01-30 11:04   좋아요 1 | URL
xy의 한계를 알아차린, 진즉에 알아차린 이 영리한 여성들을 보라!
퀴즈대회 1위에 빛나는 은오님 축하합니다! 한 번 더 축하할 일이에요. 번호 건은 조금 아까비.................

공쟝쟝 2024-01-29 16: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단발님의 파농에 나의 알튀세르 읽기를... 접 붙이는 글을 작성하고 트랙백을 걸었습니다.......... (거기다 비비면 안된다구요?ㅋㅋㅋ 힘듭니다.)

단발머리 2024-01-30 11:02   좋아요 0 | URL
짧은 글에 트랙백 걸었습니다. 일할 때이니 알라딘 금지인데 말이에요. 그죠? ㅋㅋㅋㅋㅋㅋ
힘내서 일하세요, 사장님!!!

망고 2024-02-08 15: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파농 ˝대지의 저주받은 자들˝ 진짜 옛날에 읽어서 기억도 안 나요ㅋㅋㅋㅋㅠㅠ 하지만 ˝검은 피부 하얀 가면˝은 읽어보고 싶습니다. ㅎㅎ

단발머리 2024-02-10 00:04   좋아요 0 | URL
예전도 아니고 옛날에~~~ <대지의 저주받은 자들> 읽으신 망고님, 제가 존경합니다!
즐거운 설연휴 되시길요. 벌써 빨간 글씨 2일차입니다 ㅋㅋㅋㅋㅋㅋㅋ
 
[공포의 권력] 아브젝시옹과 동물성
공포의 권력 동문선 문예신서 116
줄리아 크리스테바 지음, 서민원 옮김 / 동문선 / 2001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공포의 권력>을 읽었다.

 


도리어 실망스러웠던 부분은 챕터 4, ‘<성서> 속의 혐오에 대한 기호학이다.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해왔던 사람으로서 그나마 조금 쉽지 않을까 하는 작은 기대를 하고 있었는데, 이런. 인용된 성경 구절들은 익숙한데 그 해석으로 들어가자면, 나도 모르게 이런 표정(@@)이 되어 버렸고. 설득되지 않았는데 반박하기도 좀 어려운, 그렇게 애매모호한 시간을 이럭저럭 지나쳐왔다.

 

 

음식물에 대한 혐오가 여성의 육체나 생식능력이 야기시키는 혐오와의 유사성을 갖는 연장선에서, ‘나에게서 분리되어야 하는 것대변어머니인 것은 의미심장하다(165). 대변이 육체를 가로지르며 내 안에 존재했던 것이면서 동시에 영원히 내게서 추방되어야 할 것인데 반해, 인간의 가장 근본적인 정신적 분리 작용이 어머니에게서의 분리(165)인 것은 자신과 하나인 줄 알았던 어머니가 사실은 자신과 구별된 존재임을 인지하는 데서 시작된다. 이는 126쪽에서도 확인된다.

 


오염에 대한 이같은 가치 기준으로 볼 때, 육체란 방비하고 보존하는 존재 혹은 영원히 숭고한 존재가 될 것이다. 제어할 수 없는 생식 능력을 가진 어머니에 대한 공포는 나의 육체를 밀쳐낸다. 즉 내가 카니발리즘으로 어머니를 거절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어머니의 기각(아브젝시옹)이 나를 타자의 육체, 나의 분신, 나의 형제의 육체에 대한 경의로 인도하기 때문이다. (126)

 


한편으로 ‘<성서>에 나타나는 분리의 내재화 과정속에서 모성의 위치도 흥미롭다.

 


위협적이지만 영양을 공급하는 이질성으로서의 모성은, <신약> 이후의 텍스트와 후세의 신학에서 죄 많은 육체로만 각인될 뿐이다. (179)

 


그리스의 아폴론적 육체관에서는 육체를, ‘충동적 육체완전히 역전된 육체로 이해하면서도 이 두 종류의 육체가 결코 나누어질 수 없다고 이해하는데, 후자의 승화된육체가 전자의 도착적인 육체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신약 성경의 많은 부분을 저술했던 사도 바울 역시 그리스적 세계관에서 완벽하게 탈출했다고 보기는 어렵겠지만, 다음과 같은 성경 구절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육체, 영이 아닌 육체가, 하나님의 영이 거하는 거처가 될 수 있음을 설파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우리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이르시되 내가 그들 가운데 거하며 두루 행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되리라 (고린도후서 6 16)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았고, 또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머릿속의 두루뭉술한 그 무엇을 명확하게 끄집어내는 일이 쉽지 않았다. 여성 혐오와 어머니 혐오에 대한 이야기는 앞으로도, 어쩌면 이 지구의 문명이 계속되는 한 반복되는 이야기가 될 것이기에, 일단 오늘은 여기에서 접는다. 참 수고가 많았다고 한다. 존경하는 친구들, 이웃님들의 건투를 빈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3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햇살과함께 2024-01-27 16: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

단발머리 2024-01-27 16:04   좋아요 0 | URL
🤗🤗🤗🤗

다락방 2024-01-27 16: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헉 대박 대박!!!!!!!!!!! 고생하셨습니다!!!!!

단발머리 2024-01-27 16:42   좋아요 0 | URL
힘든 시간 곧 지나가리라! 뽜야!
 





 













쌓아놓은 책/읽고 있는 책들을 모른 척하고, 지금 읽고 있는 책은 <Christmas Guest>. 피터 스완슨 책인데 얇아서 어제 다 읽을 줄 알았는데, 낮에는 다른 거 하다가 못 읽고. 밤에 책을 펼쳤는데, 심상한 기운이 스르르 몰려온다. 무서운 거 못 읽는 나는, 아침이 되어서야 다시 책을 펼친다.

 


나와 엠마, 그리고 엠마의 잘생긴 오빠 애덤이 묘한 삼각관계를 만들어가면서, 인류의 원초적 공포와 금기인 근친상간나오는 건가, 의심하면서 한 장 한 장 넘겨간다.  

 


 









작년 말부터 어제까지의 책을 올려둔다. 가끔 K문고(주로 원서)와 그래24를 이용하기도 해서, 그 책을 샀던가? 하고 헷갈린 적이 몇 번 있었는데, 사진을 찍어 두니 좋았다. <사진>에 들어가 책 이름을 검색하면, 그 책이 나온다는 걸 알게 됐다. 언제 샀는지도 알 수 있고. 그 후로는 바로 사진을 찍어 둔다. 처음 두 개의 사진에서 누워 있는 책들은 내가 '산 책이고, 당당하게 서 있는 책은 선물 받은 책들이다. 마지막 사진은 책이 두 권이라 둘 다 세워보았다.

 


책 표지에 관한 한 외모 지상주의자인 나를 배려한 친구들의 뛰어난 안목에 항상 감탄하는 나로서는, 이번에도 어김없이 찬탄과 기쁨과 감사를 친구들에게 돌려드린다.

 

















잠자기 전에 읽는 책은 이 책이다. 내 평생에 가장 사랑하는 제인 에어의 어린 시절과 형제자매들과의 행복한 습작 시기 등을 보여주는 책인데, 하루에 2장씩 아껴서 읽는다. 선물해 준 친구가 아껴 읽지 말고 편하게 마음 갈 때 읽으라고 했는데, 나는 아껴 읽는다. 하루에 4페이지, 하루에 2장씩. 아껴 읽는다.










댓글(10) 먼댓글(0) 좋아요(3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24-01-25 18: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4-01-25 18: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은오 2024-01-26 07: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 너무 좋은책은 아껴읽는게 안되던데 단발님은 아껴읽기가 가능하시군요 ㅋㅋㅋ 좋은책일수록 허겁지겁 읽게되더라고요 ㅋㅋㅋ
저 분홍색 책 너무 귀엽습니다 🥹

단발머리 2024-01-27 15:38   좋아요 0 | URL
저 아껴읽다가 후회된 적이 많은데... 좋아하는 책 아껴읽습니다. 가끔 홀랑 읽고 다시 천천히 읽는 경우도 있구요.
저 분홍색 책 ㅋㅋㅋㅋㅋㅋㅋ 어쩌나, 책 아니고, 다이어리에요. 책 사야 준다기에 책을 샀ㅋㅋㅋㅋㅋㅋㅋㅋㅋ
수고많으세요, 은오님! 1등 확정 귀염둥이 화이팅!!!

수이 2024-01-26 07: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렇게 좋은 책 선물해주는 친구라니 단발님은 역시 주변에 멋진 이들이 한가득! 단발님 전생은 대체 어땠을까? 저 혼자 가끔 궁금해합니다.

단발머리 2024-01-27 15:39   좋아요 0 | URL
그러니깐요. 친구들의 안목에 항상 감탄하는 단발머리입니다.
제 전생은...... 하하하! 궁금하네요, 저도요!!!

미미 2024-01-26 14: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단발님! 이 서점이 어디예요?
서점 이름으로 <감탄><표지 지상주의>도 괜찮겠습니다>.<

단발머리 2024-01-27 15:41   좋아요 1 | URL
저기 위의 사진이라면ㅋㅋㅋㅋㅋ 다 집에서 찍은 사진입니다. 책상이 너른 나무책상이라 그런가봐요.
<표지 지상주의> 서점이름으로 좋아요. 혹 제가 서점 내게 되면 ㅋㅋㅋㅋㅋㅋ 애용할까봐요.

그레이스 2024-01-26 16: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해봤습니다.
사진찍어서 검색하는거!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

단발머리 2024-01-27 15:43   좋아요 1 | URL
아~~~ 그레이스님 검색 가능하셨다니 넘 좋은데요. 핸드폰마다 다를 수도 있을 거 같아요.
전 그거 알게 된 이후로 구입한 책들 사진 꼭 찍어둡니다. 원래 책사진을 많이 찍기는 하지만요 ㅎㅎㅎ
 
나 없이는 존재하지 않는 세상 - 카를로 로벨리의 기묘하고 아름다운 양자 물리학
카를로 로벨리 지음, 김정훈 옮김, 이중원 감수 / 쌤앤파커스 / 2023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카를로 로벨리의 네 번째 책이다. 몇 번째 책인지가 중요한 이유는 읽지 못한 작가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모든 작가 혹은 대부분 작가의 작품을 다 찾아 읽을 수 없다면(현재로서는 그럴 것으로 보인다), 한 작가의 책을 깊이 파기보다는 그녀/그의 대표작을 읽고, 또 다른 작가, 다른 우주로 넘어가겠다는 게 내가 선택한 방식이다. 그런데, 로벨리의 책은 이번이 네 번째다. 잘 이해하지도 못하는 과학책을 네 권이나 읽을 수 있었던 건, 첫째 그의 책이 묘하게 흥미롭기 때문이고, 둘째 그의 책이 작고 얇기 때문이다. 이번 책은 이북으로 읽어서 작고 가벼운느낌을 맘껏 누리지 못해 조금 아쉽다.

 


하이젠베르크의 발상은 단순하고 대담했다. ‘전자가 궤도를 따라 움직이는 물체라는 생각을 포기하자. 전자의 움직임을 기술하는 것을 포기하자…. 모든 것을 오직 관찰 가능한 양에 근거해서만 설명하자.’ (전자책, 22/275) 40대인 보른의 후원 아래 20대의 하이젠베르크, 요르단, 디랙, 파울리는 양자 상태에 관한 이론을 완성해 나간다. 이 이론은 세계에 대한 이론 가운데, 지금까지 단 한 번의 오류도 없고 지금도 그 한계를 알지 못하는 유일한 근본 이론(32)이라고 한다.

 


이후 슈뢰딩거가 등장해 파동역학에 대한 이론을 정교화하고, 이 과정에서 하이젠베르크와 슈뢰딩거는 서로의 주장에 대해 신랄하게 비판한다. 저자는 “(슈뢰딩거의) 파동역학도 하이젠베르크의 행렬만큼이나 모호하다고 보았다. 45쪽에 근거해 양자역학의 핵심 아이디어를 정리하면 이렇다.

 


1. 관찰 가능한 것만 설명한다 (하이젠베르크)

2. 확률만을 예측한다 (보른)

3. 입자성; 양자 현상은 세계가 아주 작은 규모에서는 입자적이다

 


여기까지의 독서는 <저것은 아이패드요, 이것은 글씨입니다>의 독서이다. 이 이론을, 파인만이 이걸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은 없다고 했던 이 이론을, 이해하겠다 굳게 결심할 필요는 없다. (천생 문과인 저는, 없다고 봅니다) 어차피 양자의 세계를 인간이 다 이해하는 일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적어도 현재까지는) 읽으면 된다. 그냥, 읽으면 된다.

 


본격적으로(?) 흥미로운 양자 중첩이 이제야 나온다.

 


양자 중첩이란, 어떤 의미에서 서로 모순되는 두 가지 속성이 동시에 존재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한 대상이 여기에 있으면서 저기에도 동시에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62)

 


여기에 있으면서도 저기에 동시에 있다는 것. 서울에도 수원에도. 광주에도 부산에도, 동시에 있는 것 말이다. 3차원 세계에 사는 우리가 이걸 이해할 수 있을까. (아시는 분 연락 바랍니다. 010-1234-5678) 이제 저자가 최초로 양자 간섭(양자 중첩의 결과)을 눈으로 관찰한 경험을 소개한다.

 


 



광자로 이루어진 광선이 프리즘에 의해 두 개로 나뉜다. 두 경로(왼쪽과 오른쪽)을 모두 열어두면 모든 광자가 아래쪽 검출기에 도달한다. 그러나 두 개의 경로 중 하나(왼쪽 또는 오른쪽)을 막으면 광자의 절반은 아래쪽에, 나머지는 위쪽 검출기에 도달한다. (64) 두 경로가 모두 열려 있을 때 위쪽 검출기에 광자가 하나도 도달하지 않게 되는 현상이 양자 간섭의 한 예(65)라고 하는데, 더 놀라운 일은 그다음이다.


 




 


관찰하는 일로 일어날 일을 바꿀 수 있다. 더 정확히는, 관찰하려는 뜻만 보여도 광자의 움직임이 다른 결과를 나타내는 것이다. 이를 전문용어를 이용해, 저자는 우리가 관찰하는 순간 파동함수는 붕괴합니다라고 쓰고 있다. (68) 하이젠베르크의 질문을 재구성해 풀어내면 이와 같다.


 

관찰이란 무엇인가?’, ‘관찰자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마침내 우리를 관계라는 개념으로 인도합니다. (89)

 


본인이 인도하고, 본인이 답을 내어놓는다.

 


그 해답의 열쇠이자 동시에 이 책의 핵심 아이디어는, 과학자도 측정 장비와 마찬가지로 자연의 일부라는 단순한 사실입니다. 양자론이 설명하는 것은 자연의 한 부분이 자연의 다른 부분에게 어떻게 자신을 나타내는가 하는 것이죠. (95)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논의는 상호작용으로 나간다. “대상은 대상이 상호작용하는 방식 그 자체로 존재한다(97)". 이게 얼마나 멀리 나온 길인가. 멀리도 가셨습니다.


 

세계의 기원, 우주의 시작을 설명하고자 인간은 우주와 세계의 기초/기본이 무엇인지 알고자 했다. 나는 서구가 쪼개는방식으로 이 문제에 맞섰다고 생각한다. 그 대상이 신체라면 해부하고, 물체라면 더 작은 구조를 밝혀내기 위해 애썼다. 더 작게, 더 작게, 쪼개고 들어가 만난 것들, 발견한 것들이 원소이고 원자이다. 그렇게 어렵게 만난 광자가 움직인다. 움직이는데, 법칙에 따라, 규칙에 따라 움직이는 게 아니라, 마치 의식이 있는 것처럼, ‘생각이 있는 것처럼 움직인다. 관찰하는 것만으로도 일어날 일이 바뀌어 버린다. 이쪽에서 보고 있으면 저쪽으로 간다. 저기 멀리서 기다리고 있으면, ‘기다리고 있다는 것만으로 광자가 경로를 바꾸어 버린다. 보지도 않았는데. 저기 멀리서 기다리고만 있었는데 말이다.

 

 


이제 내가 제일 좋아하는 부분이 나온다. 이걸 쓰고 싶어서 여기까지 왔다.

 


사물의 속성은 다른 사물과의 상호작용 속에서만 존재하는 것이죠. 양자론은 사물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방식에 대한 이론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오늘날 우리가 가진, 자연에 대한 최선의 설명입니다. (99)

 


속성은 대상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대상과 대상 사이에 놓인 다리인 것입니다. 대상은 맥락 속에서만, 즉 다른 대상과의 관계 속에서만 존재하며 다리와 다리가 만나는 지점입니다. 이 세계는 거울처럼 서로가 서로에게 비쳐야만 존재하는 관점들의 게임인 것입니다. (111)

 


대상이 맥락 속에서만, 즉 다른 대상과의 관계 속에서만 존재한다는 것은, 사회학 서적에서나 볼 수 있을 만한 문장이다. 우리는, 인간이 인간과의 관계 속에서 존재한다는 것, 그리고 그 인간에 대한 이해는 그가 속한 사회적, 역사적 맥락 속에서 (비로소 아주 조금) 독해될 수 있음을 안다. 과학자의 설명으로 듣는 상호작용과 맥락. 문화 비평가의 문장으로 들으면 이러하다.

 


어떤 종류의 친구라 할지라도 우리는 우리가 스스로 자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그들의 영향을 받는다. 우리 중 누가 사랑하는 이들의 인정을 염두에 두지 않을 채 말하고 행동하는가다른 사람의 동의는 일종의 두 번째 양심이 아닌가?   우리는 다른 이들에게 의지하도록 태어났고 우리의 행복은 다른 사람의 손에 쥐어져 있다. ‘우리라는 인물의 형태는 주위 사람들에 의해 주조되며색을 부여한다우리의 감정이 부모의 영향을 받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진리의 발견>, 94)

 


오늘의 결론. 광자는 관찰자를 의식한 듯 경로를 바꾸어 양자 간섭을 그 결과로 나타내고, 사물의 속성은 다른 사물과의 상호작용 속에서만 존재하는 것이며, 속성은 대상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대상과 대상 사이에 놓인 다리로서, 모든 사물이 그러하듯 인간 역시 다른 인간과의 상호작용 속에서 존재한다. 저자의 표현을 그대로 옮기자면, 다른 사물, 다른 인간과의 상호작용 속에서존재한다.

 


사물은 맥락 속에 존재한다. (168)




댓글(5) 먼댓글(0) 좋아요(3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다락방 2024-01-25 07:4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ㅋ ㅑ ~
너무 좋은 글이네요. 감히 제가 읽어보지도 못하는 과학책을 단발머리 님이 읽고 써주시니 아아 이럴 때 저는 알라딘 하는 보람을 느낍니다. 계속 과학책 읽고 써주세요. 글 읽고 쓰는 단발머리 님 응원하지만 과학책 읽고 쓰는 단발머리 님은 더 응원합니다.

위의 댓글 써놓으니 갑자기 생각이 나는데, 개그우먼 장도연 있잖아요? 알라딘에서 책을 그렇게 산대요.
장도연이 이 글을 보고 이 책도 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레이스 2024-01-25 08:13   좋아요 1 | URL
혹시 그 비회원?!.....ㅋㅋ

단발머리 2024-01-25 09:34   좋아요 3 | URL
다락방님 / 응원과 지지와 성원 감사해요, 다락방님!
사실 저는 과학책 읽어도 태반이 모르는 일이고, 이 책도 읽으면서 두어번 그만 읽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저는 물리학자가가 우주, 세계, 인간에 대해 말하는게 꼭 듣고 싶어서요, 끝까지 읽었는데 참 좋네요. 제가 그 생각에 동의하든 동의하지 않든 말이에요.

장도연씨가 이 글을 읽고 이 책도 샀으면 좋겠네요. 도연씨, 제가 팬입니다! 알라딘 자주 오세요!!

그레이스님 / 사랑 고백에 얼른 ‘좋아요‘ 누르신다는 그 분이요? 장도연씨.... 보고 있나요? 그대가 맞나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레이스 2024-01-25 09: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잘 읽었습니다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포함 2권 읽었는데,, 이 책도 읽고 싶네요^^

단발머리 2024-01-25 09:35   좋아요 1 | URL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를 읽으셨으면 이 책도 어렵지 않게 읽으실 수 있을 거에요. 저는 읽었던 로벨리의 네 권 중에, 이 책이 제일 흥미로웠어요.
그레이스님 리뷰도 보고 싶네요!!
 






 












요즘 듣는 책은 <Lucy by the Sea>이다. 크레딧이 모였는데 딱히 눈에 띄는 책이 없어서 다시 읽을 책으로 사자, 하는 마음에 샀다. 운전할 때만 잠깐씩 듣는데 참 좋다. 내용도 평이하고 어려운 단어가 많이 나오지 않아서 (시제는 좀 까다로운 편) 마음 편히 듣고 있는데, 읽어주시는 성우 분이 과하지 않게 읽어주셔서 더 편안하다.


 




전작<Oh! William!>에서의 윌리엄과 이 책 속의 윌리엄은 다른 사람처럼 느껴진다. 나는 <Lucy by the sea>를 읽고 윌리엄과 화해했다. 그를 다시 받아주기로, 그를 안아주기로 했다. 루시의 어떠함을 보충해 주는 그를 알게 되었고, 이제 루시도 그의 어떠함을 안아줄 수 있음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어젯밤에는 <Oh, William!>을 꺼내 읽다가 재미있는 문단을 발견했다. 루시는 결혼 후 재혼했고, 윌리엄은 에스텔을 세 번째 아내로 맞았다. 두 사람은 가끔 만나고 전화 통화를 하기도 하는데, 그날, 윌리엄은 루시에게 전화해서는 크리스마스 때 에스텔에게 값비싼 꽃병을 선물했고, 에스텔에게서 조상에 대해 찾아볼 수 있는 온라인 사이트 회원권을 선물받았다는 이야기를 한다. 이 부분이 얼마나 재미있던지. 이렇게나 재미있다.

 

 

그가 그 선물에 실망했다는 것을 말투로 알 수 있었다. 윌리엄에게는 늘 선물이 중요한 의미였지만, 나는 한 번도 그걸 이해한 적이 없었다. "그래도 에스텔이 머리를 잘 썼네." 내가 말했다. "아이디어 정말 좋은데." 내가 말했다. "당신은 어머니에 대해 아는 게 거의 없잖아, 윌리엄. 좋은 기회일 수도 있어." 내가 그렇게 말했던 게 기억난다. 그리고 그는 그저 "그래. 그럴지도" 하고 말했을 뿐이었다. 나를 지치게 만든 게 바로 윌리엄의 그런 모습이었다. 기품 있고 유쾌한 태도 이면에 존재하는 잘 토라지는 소년. 하지만 그러든 말든 상관없었다. 그는 더이상 내 것이 아니었으니까. 그리고 나는 전화를 끊고 생각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그가 더이상 내 남편이 아니라는 사실에 대한 안도였다. (<, 윌리엄!>, 49)

 

 

당연히 이 문단의 하이라이트는 이 문장이 되시겠다. But I did not care, he was no longer mine. 그는 더이상 내 것이 아니었으니까.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사람의 투정은, 나와는 상관 없는 일이지. 하나님, 감사합니다.

 


 

아빠는 호감형이다. 아빠를 아는 모든 사람이 아빠를 좋아하는데, 특별히 아빠가 그 사람들에게 유익할 만한 어떤 행동을 해서가 아니라, 그냥 사람들이 아빠를 좋아한다. 까다롭기로 하면 이 세상 누구도 안 부러울 시어머니가 상견례를 마치고 나서 아버지가 참 좋으시다고 하셨다. 친정 에어컨을 수리해 주셨던 분이 우리 집에도 잠깐 들르셨는데, 아빠가 너무 좋으시다는 이야기를, 일을 보시는 내내 계속하시는 거다. 기사님, 저희 아빠를 30분 만나셨잖아요. 우리 아빠를 어떻게 아시죠? 그분이 제 아빠라니깐요.

 


아빠는 호감형이고, 가족을 포함한 모든 사람이 그걸 알고 있다. 그런데 엄마는 아빠를 별로라고 하신다. 사고 방식, 문화 양식, 행동 방식이 안 맞는다고 하신다. 체력을 바탕으로 한 젊은 시절의 신나는(?) 부부싸움 올나이트 시절은 물론이고, 심지어 첫인상부터 안 좋았다 하시니, 이 결혼의 신비를, 나는 내 나이 마흔이 넘어서도 전혀 헤아리지 못할 지경이다. 아무튼 엄마는 아빠가 마음에 안 들고, 아빠도 엄마를 마음에 안 들어 하신다. 이런 엄마, 아빠를 별로라 하시는 엄마가 아빠의 생활 습관에 대해 잔소리를 하신다. 아빠의 건강과 행복한 노년은 자식으로서는 너무 중요한 일이다. 지금은 엄마랑 단둘이 생활하시니 엄마의 삶에도 중요한 요소가 될 수 있겠지만, 엄마의 걱정은 그 정도를 넘어선다. 물론 아빠의 생활 습관이 건강을 해치기에 딱 알맞은 것은 사실이고, 건강 관리가 인생의 최우선 과제 중 하나인 엄마 같은 사람으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면이 적지 않겠지만, 요는. 엄마의 걱정은 진지하다는 거다.

 


엄마는, 진지하게 아빠의 건강을 걱정하고, 듣는 사람은 받아들이기 힘든 고농도의 잔소리 폭격으로 아빠를 지치게 한다. 왜 그럴까. 왜 엄마는 좋아하지도 않는아빠의 건강을 이다지도 걱정하시는 걸까.


 

 

루시의 말에 답이 있다. 아빠는 엄마꺼니까. 엄마의 관리하에 있으니까. 엄마의 관할 아래 있으니까. 아빠의 일은 엄마의 일이고, 엄마는 거리 조절에 자주 실패하시니까. 왜냐하면, 아빠는 엄마꺼니깐. 좋아하지 않지만, 내 꺼니깐. 칠순의 엄마에게 이혼을 권할 수는 없는 일이어서 혼자만 알고 있기로 한다.

 

 


윌리엄은 루시꺼가 아니었지만, 이제는 루시꺼다.

엄마는 모르시는 것 같던데, 아빠는 엄마꺼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3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다락방 2024-01-22 08: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희 엄마도 언젠가부터 아빠를 미워하고 계시거든요. 여러가지 이유로요. 이건 다소 진지한 버젼이죠. 물론 저 역시 마찬가지고요. 그런데 지금도 끊임없이 엄마는 아빠한테 잔소리를 하시고 아빠는 듣다가 가끔 버럭 하십니다. 그 잔소리는 식단에 관한 것이고, 아빠는 심근경색에, 신장이 안좋아 식사 조절을 하셔야 하는게 맞아요. 그런데 조절하라고 하면 그것은 아빠에게 잔소리가 되고 아빠는 화를 내고. 저는 옆에서 보다가 ‘엄마, 그냥 둬. 아빠가 뭘 드시든 말든. 말하는 엄마 스트레스고 듣는 아빠 스트레스고. 아빠는 아빠 책임이야. 죽고 사는 문제는 다 자기가 결정하는거야.˝ 라고 했답니다. 엄마도 이제 잔소리 안할거라고 하면서 또 잔소리를.. 저는 두분 다 이해가 안되는데, 오늘 단발머리 님의 이 글을 읽으면서, 어쩌면 아빠가 엄마꺼라서 그런거라는 생각이 드네요. 엄마꺼 하기 싫지만, 그런데 엄마꺼라서.. 어쨌든 엄마꺼니까.....

단발머리 2024-01-22 09:16   좋아요 0 | URL
네, 그러니깐요. 엄마들의 잔소리는 건강에 관련된 거네요. 식단과 생활습관... 저희 엄마는 아빠 핸드폰 많이 하시는 것도 잔소리 엄청 하시거든요. 눈 나빠진다고요. 그렇다면.... 그런 면에서 보면....

엄마가 아빠를 더 좋아하는게 아닌가 싶기도 해요. 아빠는 엄마한테 큰 관심이 없으세요. 아빠는 친구가 많으신데 엄마를 간절히 찾는 경우는 집에 돌아왔을 때 엄마 안 계실때에요. 너희 엄마 어디 갔니? ㅋㅋㅋㅋㅋ아빠, 저도 몰라요 ㅋㅋㅋㅋㅋ전화를 안 받는다 ㅋㅋㅋㅋㅋ 다시 해보세욬ㅋㅋㅋㅋㅋ
엄마들의 잔소리는 무척 간절하잖아요. 저는 부담스럽습니다. 좋아하지도 않는데 이어지는 잔소리.
그 강도와 빈도와 농도...... 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