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롱이를 유치원에 데려다 주고 주차장 가는 길은 아파트 뒷쪽의 작은 오솔길이었다. 가끔 까치가 내려와 내 앞을 걸어갈 때면 살포시 뒤따라 걷기도 했다. 까치가 어떻게 걷는지 아시는 분? 까치는 양발을 차듯이 쭉 뻗으며 걷는다. 체육시간에 넓이뛰기할 때처럼 말이다. 앞으로 쭉쭉.



그저께 노천온탕에는 나 하나 뿐이었는데 노천탕 왼쪽이 연못이라는 건 그땐 나도 모르고 있었다. 저기 멀리 바깥을 쳐다보고 있는데 하얀색 물체가 살살 움직이는 거다. 렌즈를 끼고 있었지만 밤눈이 어두운 나는, 저게 플라스틱인지 살아있는 물체인지 알 수가 없어 계속 쳐다보기만 했다. 살아 있는 거였다. 하얀색의 그 물체는 몸통은 오리 모양인데 목이 길었다. 학은 아니고 두루미 아닐텐데… 목이 길다. 아주 긴 건 아닌데, 오리는 아니고… 퍼뜻 머리 속에 단어가 떠오른다. 왜가리. 왜가리? 난 왜가리를 본 적이 없는데 어떻게 쟤가 왜가리인줄 알았지? 왜가리구나. 왜가리네. 용기를 내어 말을 건다.


끼룩끼룩.
끼룩끼룩.


왜가리가 사라진다. 대답하지 않고 날 바라보지 않고. 사라진다, 스르르.


그날밤 내가 본 왜가리는 내 눈으로만 저장했는데 이런 모양이었다. 검색한 후에 왜가리가 맞다는 걸 알고 기뻤다. 어젯밤에도 갔는데 시간을 못 맞춰서인지 만나지 못헸다. 오늘밤에는 만나고 싶다.


이따 보자, 왜가리야… 끼룩끼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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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4-02-20 09: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여긴 어디에요?
넘 멋져요~

단발머리 2024-02-23 08:20   좋아요 1 | URL
미야자키 공항 근처 호텔의 온천 가는 길입니다. 저는 이번 여행에서 온천가는 이 길이 참 좋더라구요. 조용하고 호젓하고.....
그리고 약간 뉴에이즈 비스무리한 음악이 ‘신비로운‘ 느낌으로 울려 퍼지거든요. 참 좋았습니다^^

잠자냥 2024-02-20 09: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나도 😝

단발머리 2024-02-23 10:35   좋아요 1 | URL
메롱을 드립니다. 아! 이거 컴퓨터니깐, 이따 드릴께요. 메롱! 🤪

은하수 2024-02-20 10: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왜가리 .. 넘 오랜만에 보는 생명체?라그 해야할까요. 반갑네요~~
애들 어릴때 왜가리 라는 동시 생각나요
왜가리야 웩?
어디가니? 웩
엄마찾니? 웩
아빠찾니? 웩~~
이런 동시요..ㅎㅎ
애들이 좋아했는데...

단발머리 2024-02-23 08:22   좋아요 0 | URL
아........ 은하수님! 제가 왜가리 이 동시를 몰라서 일본 왜가리에게 외국어로 말했군요.
웩, 웩! 이렇게 말걸었어야 했는데.... 제가 끼룩끼룩 해가지고... 이 친구가 도망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저, 이 동시 첨 보아요. 좋은데요. 웩! 웩! 웩~~

책읽는나무 2024-02-21 11: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 학창시절 때 별명 중 하나가 왜가리였었어요.
그 별명이 넘 싫어서 제대로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살았는데?....지금 보니 꽤 귀엽게 생겼네요?ㅋㅋㅋ

단발머리 2024-02-23 08:24   좋아요 0 | URL
곱고 아름다운 자태의 책나무님, 위의 왜가리를 보십시오. 너무 이쁩니다.
이 왜가리가 ㅋㅋㅋㅋㅋ(관찰 많이 한 편) 모습이 백조처럼 우아한데 머리 모양이 달라서요. 더 멀리서 보았으면 백조인가 했을거 같아요. 근데 가까이에서 보니 귀여운 왜가리. 왜가리 귀엽습니다. 물론 저에게서 도망갔지만 ㅋ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24-02-22 08: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어디에요? 풍경 근사하네요!
그나저나 맨 마지막 사진은.. 메롱인가요? ㅋㅋㅋㅋㅋ

단발머리 2024-02-23 10:36   좋아요 0 | URL
여긴 미야자키 공항 근처의 호텔, 온천 가는 길이에요. 큰온천 작은 온천이 있구요. 노천탕 옆, 작은 연못을 헤어치는 귀여운 왜가리를 ㅋㅋㅋㅋㅋㅋ 만났습니다.
맨 마지막 사진은 가는 길에 만난 동물 부조인데 ㅋㅋㅋㅋㅋㅋ 이렇게 확실한 메롱을 ㅋㅋㅋㅋㅋㅋㅋㅋ
제가 다른 동물들도 샅샅이 뒤졌습니다. 혹 다른 메롱이 있을까 싶어서요. 이 친구 뿐이었습니다. 메롱! 🤪

2024-02-23 10: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4-02-23 18: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큰아이가 아홉 살 정도 되었을 때의 일이다. 어렸을 때부터 큰아이를 가까이에서 지켜보시고 많은 시간을 보내셨던 시아버지에게 이제 제법 커버린 큰아이가 멀게 느껴지는 순간이 있었나 보다. 우리 **이가 어려서는 안 그랬는데. 우리 **이가 할아버지 옆에 잘 왔었는데, 하시며 아쉬운 마음을 표현하시는 거다. “아버님, 이제 **이가 많이 컸어요. 제 곁에도 안 오려고 해요.” 이렇게 시작을 하니, 나도 모르게 그즈음 읽었던 육아서의 어떤 문장들이 떠오랐다.

 


아버님, 아이의 몸을 구성하는 세포가 각각 다르기는 하지만 장세포는 한두 달 안에 바뀌고, 다른 세포들도 순차적으로 바뀌잖아요. 6-7년 안에 모든 세포가 다른 세포로 대체돼요. 이 아이는 아버님이 5년 전에 안고 계시던 그 아이가 아니에요.”라고 말할 수는 없고. 그래서 아버님, 그때는 얘가 어렸고, 이제 진짜 자기 성격이 나오나 봐요. 근데 (사람을 별로 안 좋아하고 시크해 보이는) 이게, 얘에요.” 변했다고 생각하는 아버님도, 현재가 아이의 본 모습이라고 말한 나도 틀렸다. 아이는 그 아이가 아니고, 이 아이는 또 변해버린다. 같은 이름, 과거의 사진으로 아이를 잡아 두려고하지만, 아니다. 이 아이는 그 아이가 아니고, 이 아이는 지금의 내 아이와는 다른 사람이다. 본질적인 정체성이라는 건 없다, 우리 모두 알다시피.

 



이 책에서 제일 먼저 밑줄을 긋게 되는 단어는 횡단-신체성trans-corporeality’(18)이다.

 


인간을 자연의 정복자로, 군림하는 주인으로 인식하는 세계 속에서 자연 파괴와 환경 오염은 인간 도구의 손실이며, 그 결과는 인간에게 해악으로 작동한다. 문명의 대표자이자 유일한 승계자인 인간에게 자연은 자원으로서존재할 뿐이다. 환경정의에 관한 책, 자연에 대한 책, 인간의 반성에 관한 책일 것이라는 예상을 뒤엎는 지점에 이 책이 있다.

 


예를 들면, 생물학적 몸을 고려의 대상에서 제외하지 않는 버크는 몸을 "변화하고 있고, 변화 가능하며, 변신이 가능한 것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그녀에 따르면, 세포는 "지속적으로 자신을 새롭게 하고", 뼈는 "언제나 리모델링하며", "신체 내부들은 지속적으로 내부 또는 외부의 변화에 반응하고, 세계에 영향을 행사하고있다". (26)

 


변화하는 몸. 리모델링되는 뼈와 변신하는 세포들. 내부 또는 외부의 변화에 반응하고, 그리고 바깥 세계에 영향을 미치는 신체. 저자가 주창하는 대로, 페미니즘이 생물학적 결정론에 쉽게 승복하지 않고, 그것을 무의미하게 만드는 일에 노력해야 한다는 주장을 따라가다 보면, 당연히 주체성 개념의 전환’(63)에 맞닥뜨리게 된다.

 


 

현대 사회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겨지는 가치는 무엇일까. 그 어떤 경우에라도 훼손당하지 않아야 한다고 공인되는 건 무엇일까. 인권이 아닐까. 다른 말로 하면, 현대 사회에서 제일 중요한 무언가를 한 가지만 꼽으라고 한다면, 나는 그것이 혹은 개인이라고 생각한다. 집단이나 단체를 이루는 가장 작은 단위로서의 개인’. ‘개인이라는 관념은 근대 서구에서 발명된 것이다. 한국 전쟁 이후, 농업 중심의 밀집 사회에서 도시화, 산업화를 거치면서 개인에 대한 갈망은 공동체 중심의 한국 사회 전반에 강력하게 작동했다.

 


국가, 지역, 친족, 대가족까지 나의 확장인 우리로 여겨지던 시대가 그렇게 끝났다. 이제 아이들은 함께 살지 않는 할아버지, 할머니를 우리가족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의 개념이 축소될수록 개인의 개념은 더 확고해질 수밖에 없다. ‘우리라는 집합에서 구별되는 ’. 내 생각과 느낌에 더 큰 신뢰를 품게 되고, 내 시간과 공간이 더욱 소중하게 느껴진다. 바야흐로, ‘가 주인인 세상이 왔다. 호오의 결정이 이루어지는 지점. 그 판단의 최종 심급은 나. 바로, ‘이다.

 


사회정의를 위한 민권운동과 차별 철폐 조처affirmative action, 정체성 정치identity politics개인을 몸의 안과 밖의 경계가 분명하고 유기체적인 개체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는데, 인간 몸과 보건, 인권이 특정 장소의 물질 - 종종 독성 있는 물질 - 의 흐름과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되면 그러한 운동의 성격이 심오하게 바뀔 것이다.

 


위 문단 속 여러 정치 운동의 시작점은 당연히 개인이다. 인종으로, 성별로, 계급으로 구별되는 ’, ‘라는 구체적 대상에 대한 차별, 모멸, 박해, 폭력이 이러한 운동의 원인이자 원동력이 되어 왔다. 하지만, 만약 우리 인간이, 한 개인이 그렇게 고정된 물질이 아니라면? 몸의 안과 밖의 경계가 분명하고 유기체적인 개체가, 아니라면? 우리 인간이 그렇게 닫힌존재가 아니라 좀 더 열린존재라는 걸 인정한다면?

 


의 몸은 고정된 것이 아니고, ‘의 범위는 유동적이며, ‘의 내부는 외부와 영향을 주고받는다. ‘는 끝없이 확장된다. 그제야 우리는, 우리를 둘러싼 자연이 아닌 살된 존재fleshy beings(19)로서의 환경과 마주 할 수 있다. 제대로 혹은 정면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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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하수 2024-02-15 20:42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단발머리 님리뷰 읽으니 책에 다가간 느낌입니다.^^
전 펼쳤다 첨부터 벽을 느꼈네요.
만만치 않군, 어렵군! 이런 벽이요.
계속 읽으면 읽을만해질까나요?
다시 도전할지 고민중입니다.

단발머리 2024-02-15 21:44   좋아요 2 | URL
책에 다가간 느낌이시라니 너무 좋네요. 이제 제가 더 가까이 다가갈 차례입니다.
저도 많이 어렵게 느껴지기는 한데 지난달(<공포의 권력>)의 기억을 소환하면서 읽는 중입니다.
전 너무 어려울 때는 그래, 이 책은 밑줄긋기라도 정리해 두자, 이렇게 생각하며 읽습니다. 그러면 마음이 가벼워서 책장이 잘 넘어가기도 하구요.
다시 한 번 도전하시기를........... 소심하게 권해드려요, 은하수님! 저도 그런 마음으로 읽으려 합니다! 😅

다락방 2024-02-16 10:18   좋아요 2 | URL
은하수 님, 화이팅!!
저도 아직 1장에 머무르고 있습니다!!

2024-02-16 09: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4-02-16 10: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락방 2024-02-16 10:2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미미 님은 벌써 완독하시고 리뷰 적으셨더라고요?
오늘 단발머리 님의 이 글을 읽으면서 참 좋다고 생각합니다.
항상 여성주의 책 같이읽기 하면서 다른 분들의 같은책 다른 감상 보는게 즐거웠지만, 이번 책에 대해서는 더 그런것 같아요. 저도 천천히 읽고 있어요. 천천히 읽을 수밖에 없는 책이고요. 어렵지만, 공포의 권력에 비하면야 읽을만 합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도 그렇지만 다른 분들의 이 책 관련 글을 보면서도 뭔가 뿌듯하고 똑똑해지는 느낌입니다. 만약 제가 잘못 이해한다면 여러분들이 다 잡아주겠거니 하는 믿음도 생기고요.

저는 아직 1장 읽는 중이지만 도나 해러웨이와 크리스테바 생각났거든요. 그에 대해서 정리해야지 하고 있는데 못하고 있어요. 주말에라도 글을 쓸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빠샤!!

자, 우리 독서 화이팅!!

단발머리 2024-02-16 10:35   좋아요 4 | URL
저도 시작하자마자 느낀건데 뭐랄까... 생각의 방향이 제가 예상한 것과는 다른 쪽이어서요. 제 수준에서의 짐작을 좀 덜어두고 읽어야겠다, 그런 생각은 들었어요.
여성주의 책 같이읽기,가 읽는 일에도 도움이 되지만 다락방님 말씀대로 쓴 글을 읽으며 서로 배워가는 시간이 참 좋은것 같아요. 각자의 밑줄이 다르고 생각이 다르고, 또 그걸 발견하는 시간들이요. 이 책이야말로 ‘알라딘 대중지성‘의 힘을 모아야만 읽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생각해 보니 지난달에도 그랬네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힘내서 더 읽어보자구요! 뽜야!!

책읽는나무 2024-02-26 09:3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책을 펼쳐서 읽다가 아차, 싶었어요. ‘페미니즘과 환경정의‘란 소제목만 보고 읽다가 제가 생각한 그런 내용이 아닌 것 같아 독서의 방향을 잡고자? 얼른 들어와 다른 분들의 글을 읽어보고 있어요. 단발 님의 글은 역시^^ 지성적인데도 뭔가 따뜻함과 친근함이 있어 참 편하게 읽힙니다. 늘 그랬던 것 같아요. 책을 어제 읽기 시작했는데 좀 어려워 다시 첫 장으로 돌아가 읽어보려구요. 저도 단발 님의 시선으로 읽었으면 좋으련만....지식이 좀 부족합니다.ㅋㅋㅋ 그래도 열심히 열독하겠습니다.^^

단발머리 2024-02-27 21:10   좋아요 1 | URL
우리 책나무님은 너무 겸손하세요. 저도 배우고 싶은 품성입니다.
좋은 글이라 칭찬해 주셔서 제가 항상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점, 꼭 말씀드리고 싶어요. 부족한 점이 많은데 책나무님이 편하게 읽힌다고 하시니, 제 마음이 너무 좋아요. 이 책 어려워서 쉬엄쉬엄 가고 있는데 책나무님 댓글에 운동화끈 다시 매고 열심히 달려보렵니다. 책나무님 독서도 화이팅이에요!!!!!!
 
















계획이 없는 사람이기는 한데, 원래 계획으로는 이 책을 다 읽고 리뷰를 쓰리라, 잘 정리된 리뷰를 쓰리라 했는데, 그렇게 했다간 아무것도 못 쓸 것 같아, 일단 1장을 정리해 둔다.


 

1장의 제목은 <고통의 우연성>이다. 도입은 지뢰 제거 사업의 후원자를 모으기 위한 소식지의 일부이다. 발신자인 자선단체는 사회경제적 관계로 인해 고통 당하는 이들을 후원하며 돕는 훌륭한 일에 서구의 독자를 초대한다. ‘착하고 선량한시민으로 행세하려는 이들에 대한 사라 아메드의 평가는 박절하다. ‘서구는 먼저 빼앗고 난 뒤에 베푸는 셈이다(61)’. 그다음 단락부터는 고통의 근원적 의미에 대해 추적이다.

 

프로이트는 자아란 다른 무엇보다도 신체적이라고 주장(65)했는데, 아메드는 그중에서도 신체적 자아의 형성이 표면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보았다. 인간에게 있어 표면은 어디일까. 피부? 피부. 로즐린 레이가 이야기하듯이 자아와 세계를 구분하는 경계인 피부를 통해…… 모든 인간 존재는 수많은 인상을 받게 된다.” (67)

 

개별적일 수밖에 없는 고통. 고통당할 때, 고통받는 이는 고통에서 벗어나고자 한다. 고통 혹은 고통의 원인이라고 생각하는 대상으로부터 도망가려고 한다.

 


고통은 주로 '이미 있는 것'으로 경험된다. 고통은 이해하기도 설명하기도 어렵다. 과거의 고통이든 현재의 고통이든 설명하기 쉽지 않다. 고통을 겪은 경험을 이야기할 때면 우리는 이를 '나의 고통'으로 간주한다. 타인의 고통을 느낄 수 없기 때문이다. (77)

 


사랑하는 상대가 느끼는 감정을 그대로 느끼기를 바랄 뿐 아니라 상대를 대신해서 고통을 느낄 수 있기를 바란다는 점에서 이때 사랑은 공감을 의미한다. 하지만 그렇게 바라는 이유는 그럴 수 없기 때문이다. … 상대가 무엇을 느끼는지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하는 바로 그 순간 주체는 상대가 느끼는 것과는 다른 것을 '느낀다’. (78)

 


고통받는 사람은 주위의 사람에게 자신의 고통을 토로한다. 고통받는 사람이 원하는 것은 이해와 공감이다. 하지만, 자아 경계 밖의 외부에서 그를 제대로이해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근본적으로 타인의 고통은 이해 불가능하다. 그가 나의 고통을 헤아릴 수 없듯이, 나 역시 그의 고통을 이해할 수 없다. 우리는 각자의 육체속에 묶여 있기 때문이다. 개별적인 존재로서의 나는, 내 육체 속 나의 고통만을 인지할 수 있다.

 



그렇다면, 고통받는 사람의 옆에서 할 수 있는 일이란 무엇일까. 엄기호는 이렇게 썼다.



 













고통은 동행을 모른다. 동행은 그 곁을 지키는 이의 곁에서 이뤄진다. 그러므로 고통을 겪는 이가 자기 고통의 곁에 서게 될 때 비로소 그 곁에 선 이의 위치는 고통의 곁의 곁이 된다. 이렇게 고통의 곁에서 그 곁의 곁이 되는 것, 그것이 고통의 곁을 지킨 이의 가장 큰 기쁨이다. 그렇게 되었을 때 비로소 고통의 곁에 선 이는 고통을 겪는 이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된다. (<고통은 나눌 수 있는가>, 249)


 

나눌 수 없는 고통, 전할 수 없는 고통을 함께하는 방법. 고통당하는 사람 곁에 있다가 그의 고통에 같이 침몰당하지 않는 방법에 대해 그는 말한다. 고통의 곁에서 그 곁의 곁이 되라고.

 


<고통의 정치>에서 아메드는 호주 원주민에 대한 백인 정부의 잔혹한 정책(원주민 어린이를 원가족 및 원주민 공동체로부터 강제로 분리시켜 백인 가정에 보냈던 일, 70년 동안 강제 분리 정책으로 최소 10만 명의 원주민 어린이가 고통을 겪었다고 알려짐)을 고발하면서, 호주인들이 개인적으로 죄책감을 느끼거나 자신의 책임을 인정해야 한다는 주장을 담은 보고서 <이제는 이들을 집으로>를 비판하면서 이렇게 쓴다.

 


몸으로 형상화된 국가는 이와 같은 방식으로 고통에 반응하면서 원주민의 몸을 대신한다. 원주민의 고통을 자신의 고통으로 내세우는 것이다. 이미 지적했듯이 타자의 고통을 나의 고통으로 해석하는 일, 타자의 몸(여기서는 국가의 몸)을 회복시킨다는 이유로 타자에게 공감하는 일은 폭력을 수반한다. 그러나 타자의 고통이 국가의 고통으로 전유되고 타자의 상처가 국가의 손상된 피부로 물신화되는 일에 대해 타자의 고통을 잊어버리는 방식으로 대응하지 말아야 한다. 오히려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은 불가능한 것을 듣는 법을 배우는 일이다. (89)

 


핵심은 타자의 고통을 나의 고통으로 해석하는 일이다. 이런 상황에서의 공감은 타자에 대한 폭력이다. 섣부른 이해, 과한 공감이 타자의 고통을 삭제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들어야 한다. 고통에 대해 듣는 일은 불가능한 것이지만, 이 불가능한 일을 함께하는 것. 그녀/그에게 듣는 것. 그것을 배우는 일이, 외부로서의 내가, 혹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의 전부이다.

 

 


연휴 첫날에는 시아버지를 모신 곳에 다녀왔다. 5년이 흘렀지만, 아직도 실감이 나지 않는다. 그 앞에만 서면 순간적으로 멍해진다’. 연휴 둘째 날에는 시댁에 갔다. 아침을 먹고 치우고 커피를 마시고, 점심을 먹고 치우고 과일을 먹고 돌아왔다. 연휴 셋째 날에는 교회에 갔다가 엄마 아빠와 식사를 하고 커피를 마시고 돌아왔다. 연휴 네째 날에는 밀린 빨래를 하고 배불러서 밥은 많이 먹지 않고, 아침저녁으로 커피를 마셨다. 책을 링크할 수도, 제목을 말할 수도, 작가 이름을 말할 수도 없는 로맨스를 한 권 읽었다. (궁금하신 분 비댓 달아주시면, 제가 그 분에게만 살짝쿵 ㅋㅋㅋㅋㅋㅋㅋ) 가끔 주위 사람들이, 영어 공부를 꾸준히 한다며, () 영어 공부의 목표가 무엇이냐 물을 때가 있다. 누가 묻던지 내 대답은 하나인데, 영어책을 빨리읽고 싶어요, 가 내 답이다. 읽고 싶은 책을 빨리 읽는 것. 내가 이렇게 빨리 읽는 사람인지 몰랐다. 0.6, 정확히는 4-5시간 만에 한 권을 다 읽어버렸다.  

 


어제 아침에는, 음식이 뜨거울 때는 간이 잘 안 느껴진다는 걸 알게 됐다. 몰랐던 건 아닌데, 막상 그 상황이 닥치자 까맣게 잊어버렸던걸, 친구가 알려줬다. 너무나 확실한 맛없음에 실패의 아이콘으로 부상한 육전이 그래도 먹을 수 있는육전으로 변신한 것에 감사한 마음이다.

 


나는, 그만두고 갔으면 좋겠는데. 세월은 뭐가 그리 좋은지. 내가 그리 좋은지. 손목을 휙 잡아채서는 확확 끌고 간다. 이렇게 시간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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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수하 2024-02-14 09: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궁금하지 않지만, 비댓으로 여쭤봐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저도 영어책을 빨리 읽고 싶어요. 300 words 2월에 시작해보겠다던 다짐은 저 멀리 가버렸네요.

단발머리 2024-02-14 10:19   좋아요 1 | URL
비댓으로 여쭤보시면 언제든 알려드릴 의향이 있습니다, 건수하님에게는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책 제목을 말하고 싶은 저의 마음이 뾰족뾰족 다 드러났는가 봐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저는 일전에 구입한 504를 마저 하고 ㅋㅋㅋㅋㅋㅋ 근데 건수하님, 방금 확인해보니 그 시리즈 거의 다 품절됐네요.
601 words 빼고는 다 이북만 남았네요.

건수하 2024-02-14 10:44   좋아요 0 | URL
단발머리님 그럼 300은 끝내신 건가봐요!! 멋져요!

저에겐 1100이 있습니다... 왜 그런 걸 샀었을까요... =ㅁ=

단발머리 2024-02-14 11:27   좋아요 1 | URL
앗! 사실 그게 ㅋㅋㅋㅋㅋㅋ 제가 알라딘 이웃님 이 시리즈 공부하시는 거 보고 ‘읽고 싶어요‘를 했는데 라파엘님이 보시고는 300 보고 504 가시려거든, 건너뛰고 가도 된다 하셔가지고요 ㅋㅋㅋㅋㅋ 제가 바로, 네~~ 하고는 ㅋㅋㅋㅋㅋㅋ
겹치는 단어도 많고 그 시리즈 중에서는 504가 제일 활용도가 높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저, 이 책 스프링 분철도 했습니다. 모양을 버리고 실용을 택했건만.........

2024-02-14 09: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4-02-14 10: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4-02-14 10: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단발머리 2024-02-14 10:41   좋아요 0 | URL
표지가 2개에요. 제 꺼는 파란색입니다. 굳이 밝힘 ㅋㅋㅋㅋㅋㅋㅋ

2024-02-14 10: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단발머리 2024-02-14 10:49   좋아요 0 | URL
전 이북으로 사서 그 책을 들고 다닐 일은 없었습니다만은 ㅋㅋㅋㅋ 살색은 좀 ㅋㅋㅋㅋㅋㅋ

은오 2024-02-14 10:3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그래서 제가 양념치킨도 떡볶이도 식었을때 먹는걸 더 좋아해요 단발님!! ㅋㅋㅋㅋㅋㅋ 육전도 식은게 더 맛있군요?!
그냥 읽고싶어서 아니고 “빨리” 읽고 싶어서 영어공부하신다는 단발님이 너무 멋집니다.....🤧

단발머리 2024-02-14 11:28   좋아요 1 | URL
아.... 역시 은오님 따라해야 해요. 저도 떡볶이 식었을 때 더 맛있다는 걸 느끼고는.... 오늘 이 집 맛있게 잘했네... 그런 말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은오님은 미리 알고 있었다!!!
‘빨리‘ 읽고 싶은 제 마음은 멋질 수도 있는데, 어쩌죠. 저는 계속 ‘느리게‘ 읽는 사람이랍니다.

잠자냥 2024-02-14 13:29   좋아요 1 | URL
육전은 아닐걸.....;;;

단발머리 2024-02-14 13:31   좋아요 2 | URL
맛있었다구요! 첫날보다 둘째날이!!
먹어볼테에요, 잠자냥님!! 😡

은오 2024-02-15 19:15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독서괭 2024-02-14 11: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단발님 연휴기간 바쁘셨네요! 공감이 때로 폭력이 될 수 있다는 점을 마음 깊이 새겨야겠습니다..
˝제목을 말할 수도, 작가 이름을 말할 수도 없는 로맨스˝ ㅋㅋㅋㅋㅋ 왜요? ㄷ님은 책표지도 막 올리셨던데 ㅋㅋㅋ 저도 그런 책 왕년에 여러권 읽었습니다만 ㅋㅋㅋ 우리 서로 묻지 않기로 해요 ㅋㅋ

단발머리 2024-02-14 11:30   좋아요 1 | URL
바쁘지 않았는데 저도 혼자 있는 시간은 별로 없었구요. 애들이랑 복작복작 (고3인데 집에서 공부함 ㅋㅋㅋㅋㅋ) 그렇게 지냈습니다.
묻지 않으셔서 제가 말할 수는 없습니다만 어떤 분이 표지 보시고 (어이쿠) 깜짝 놀랐다는 후문 전해주셨습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나중에 독서괭님께 따로 묻기로 하겠습니다!

2024-02-14 11: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4-02-14 12: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단발머리 2024-02-14 12:10   좋아요 0 | URL
좋은 시간 되시길 바랍니다 ㅋㅋㅋㅋㅋㅋㅋ

2024-02-14 12: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4-02-14 12: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공쟝쟝 2024-02-14 17: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의식적으로 공감을 거부하려는 ‘터프’한 시도의 개척(?)자에 우리의 아렌트가 있었던 기억이 납니다. 당시 저는 ‘젠더화된 공감’ 쪽에 더 무게를 두고 읽었더랬는데, 단발님(혹은 아메드)처럼 몸-고통-텍스트(해석, 혹은 재현의 윤리려나요.)로도 한번 더 읽어봐야지 싶어져요.
‘감정이 대상에 대한 해석과 따로 떨어져있지 않은 작동’이며 ‘어떤 기호’와 관련된 일이라면… 아메드의 말대로 감정이 세계를 바꿀 수 있을까유? (실은 희망에 차서 읽기시작했더이다) 구러나 있다 손 치더라도 자본이 생산하는 들뜨고 헛한 정동의 속도(즉 세계를 더 나쁘게 만드는 속도)엔 못미칠 듯 한데… -from. 아… 그리하여 문화정치 읽다 말고 다른데에 또(!) 정박해 있는 사람ㅋㅋ

단발머리 2024-02-14 18:25   좋아요 1 | URL
얼마나 터프한지 이루 다 말할 수 없습니다. 제가 <파농>을 읽고 있는데(아직도) 아렌트가 파농을 그렇게 대차게 까더라구요. 저자는 아렌트를 ㅋㅋㅋㅋㅋㅋㅋ 책 읽던 저는 아렌트를 까는 저자 쪽으로 많이 기울어서, <전체주의의 기원> ‘읽고 있어요‘인 사람으로서 커다란 자괴감을.....

이 책의 포인트는 <감정의 문화정치>에서 ‘정치‘라고 전 생각합니다. 고통과 공감, 사과의 문제를 국가가 그 스스로를 주체로 만들어 가는 과정 속에서 설명하잖아요. 근데, 저는 그 부분보다 ‘고통‘ 그 자체에 대한 아메드의 통찰에 많이 공감하기 때문에.... 그 부분에 두꺼운 밑줄을 그었구요.

쟝님의 질문에 대한 답은... 저도 잘 모르겠군요. 책 읽다가 알게 되면 연락줘요. 010-1234-5678

그레이스 2024-02-27 23: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 장하준교수가 말한 경제를 정치와 나눌수 없다는 말 경제학을 아는것은 시민의 의무이자 권리라고 했던 그 말이 모든 것이 정치와 연결될 수밖에 없다는 인사이트를 주었습니다.

하지만 가끔 피곤을 느끼게 되죠.

단발머리 2024-02-27 21:12   좋아요 1 | URL
그레이스님 댓글 너무 좋아요. 장하준 교수 이야기 100% 동감합니다.
돈에 의한 지배, 탐욕에 의한 지배를 우리가 너무 쉽게 받아들이고 있는 건 아닌가, 그런 생각도 들고요.

피곤하다는 말씀 역시 공감합니다. 이제 곧 선거철인데 피곤함 이겨내고 투표로 이어가야 할 텐데요......... (먼 산)
 



친구 왈, 글에정치를 묻히지 말라 했다. 대구전에 밀가루 묻히는 것도 아니고, 자꾸정치를 묻히려 한다고. 그런 강박을 버리라고 친구가 그런 말을 했다. 그 친구는 내 글을 나보다 더 꼼꼼히 읽는 친구라서, 나는 조언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래, 정치 묻히지 마. 정치 섞지 마. 그런데, 이런 건 어쩌죠.

 
















사라 아메드의 <감정의 문화정치> 5장은다른 이들 앞에서 느끼는 수치심이다. 구체적 예시는 과거 호주 정부, 백인 정부가 호주 원주민(조상때부터 살고 있던 사람들)에게 행했던잔인한 폭력 행위에 대해명시적 사과를 하는 문제에 관한 것이다. 사과, 라고 하면 최근에 우리 국민들이 관심을 갖는 사과 이슈가 있기는 한데. 나는 그 사안이 사과의 문제라기보다는수사를 진행할 것이냐 말것이냐의 문제라고 생각하는데, 언론은 묘하게사과로 초점을 모아가는 듯 했다. 녹화 방송 대담에서 대통령은 사과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때로는 사과가 보상을 요구하는 근거가 되기도 한다. 사과가 느낌을 담은 표현이 아니라 책임을 입증하는 증거로 '받아들여질' 수 있기 때문이다. (353)

 


사과란 잘못의 인정이고, 그 후에는 행동의 변화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어떤 행위에 대해 사과한다고 말한 다음에도 이전과 같은 방식으로 행동한다면, '사과'가 지닌 힘은 사라질 수 있다.(354)

 


사과에 뒤따르는 다른 행동을 할 생각이 없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사과가 없어야 한다.  

 


결국 사과에 뒤따르는 다른 행동을 하지 않으려면 '어떠한 말도 하지 않는' 선택지만 남는다. (357)

 



우리나라 대통령의 경우, 어떠한 말도 하지 않을 수 없었기에다른 방법을 택한다. 대통령은, 면담하는 사람이 준비해 간 외국 회사 조그마한 백(우린 보통 명품백이라고 부르는 걸 KBS 간판앵커는 이렇게 부르더라)를 대통령 부인이 박절하게 내치지 못해 생긴 일이라 말했다.

 


엘리자베스 스펠먼이 지적한 것처럼 안타까움을 표명하는 일은 어떠한 책임도 지지 않겠다는 뜻이다. (360

 


대통령은 사과 없이 국민 걱정하는 일 없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니까, 국민은 걱정하는 게 아니고, 화가 났는……..

 



사람 아메드를 읽는 순간, 사과에 대한 모든 문장은 우리의 현실로 날아온다. 사과는 없고 안타까움은 있다. 명품백은 없고 파우치는 있다. 다큐는 있고 대답은 없다. 용산 집무실은 있고 대통령은 없다. 디올백은 없고 디올쇼핑백은 있다.


 



 


1차 행사 마치고 가볍게 2.


 



3차 행사를 마치고 대망의 4차 행사에 돌입했다. 전을 맡았던 동서가 갈비찜을 해온다고 해서 내가 전을 맡게 됐는데, 동서처럼 맛나게 예쁘게 부칠 자신이 없어 백화점에 갔다. 흐미, 비싸구나. 하지만, 할 수 없으니 저는 구입합니다. 커피를 한 잔 사가지고 집에 돌아와 어제 사 둔 고기와 부침가루, 계란을 꺼냈다. 백종원의 <명절 음식 소고기 육전으로 끝내 드립니다>를 두 번 봤다. 고기에 부침가루 바르고 계란 묻혀 튀기면 맛없기가 불가능할 거라 생각했는데. 그런데. 맛이 없다. 부침가루 쓸 거면 고기 후추 소금에 재어 두지 않아도 된다고 백종원이 그랬는데, 아무 맛이 안 나서, 다시 소금 뿌리고 계란에도 소금 넣고. 그래도 맛이 없다.

 


사과는 내가 해야 하나 보다. 우리집 비밀 창고에는 디올 파우치도 없는데, 나는 사과합니다.

맛이 없어요. 맛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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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넬로페 2024-02-10 00: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다 그렇고 앵커의 변명은 더 그렇고요 ㅠㅠ

단발머리님께서 맛 없다고 느끼시지만
기름 냄새 맡지 않고 그저 먹는 사람들은 다 맛있을 겁니다.
육전은 언제든 맛있어요^^

단발머리 2024-02-12 13:01   좋아요 1 | URL
앵커로 말하자면.... 질문도 아주 특이했죠. 참... 심기경호의 극치를 보여주었습니다.

페넬로페님 이 댓글 읽을 때만 해도 제 맘은 ㅠㅠㅠ 이랬는데요. 그 다음날 시댁 가서 먹는데, 식으면서 약간 간이 배었다고 할까요? 맛있지는 않지만 ㅋㅋㅋㅋㅋㅋㅋㅋ 먹을만 한거에요. 저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고 합니다.
페넬로페님 응원 진심 감사드립니다!!!

감은빛 2024-02-11 14: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이글 너무 좋은데요. 친구분께서 꼼꼼히 읽으실 수 밖에 없는 글을 쓰는 분이시죠. 단발머리님은. 케이비에스는 다시 땡전뉴스 시절로 되돌아가버렸나 봐요. 아니면 이메가 시절이나 그네공주 시절일수도 있겠지요.

제사음식은 원래 다 맛 없는 거 아닌가요? 전은 집에서 부치면 맛 없더라구요. 사먹는 전이 제일 맛있더라구요.

단발머리 2024-02-12 13:04   좋아요 0 | URL
감은빛님이 좋다고 해주시니 저도 ‘좋다‘고 믿고 싶어집니다 ㅎㅎ 우리는 KBS를 이렇게, 이런 식으로 잃어버리는건가 싶어 너무 아쉽습니다. 생각보다 노골적이어서 더 슬펐습니다.

저희집은 제사음식은 없지만서도, 전은 구입해 먹었는데 맛있었구요. 제가 만든 육전은 첨에는 난감한 형국이었지만, 그래도 나중에는 먹을 수 있을 만한 음식이 되어 다행이었습니다.
연휴 마지막 날이네요. 오늘까지 여유만만 즐거운 연휴되시기 바래요!!

공쟝쟝 2024-02-13 09:1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글에는 정치를 묻히고 .... 소금이랑 후추는 미리미리 고기에 묻혀두고 .... ㅋㅋㅋㅋㅋ

단발머리 2024-02-13 10:40   좋아요 1 | URL
위에 읽었나요, 쟝쟝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백선생은 부침가루 쓸거면 소금간 필요없다고 했다니깐요!!
그러나 너무 맛이 없었고. 나는 슬펐으며........
그 다음날 먹는데 먹을만해서 난 놀랐습니다. 먹을 수는 있었어요, 고기라서 그럴까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공쟝쟝 2024-02-13 11: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건 백선생이 잘못 한 것입니다!!! 그리고 원래 음식은 뜨거울때는 간이 잘 안느껴지는 법입니다!!!!미리미리 재워둔다. 부침가루 믿지말자 ㅋㅋㅋㅋ (이래뵈도 집에서 맛다시쟝으로 불림)

단발머리 2024-02-13 12:43   좋아요 1 | URL
제가 다르게 말한 유튜브도 보긴 했는데 아…. 그래도 백선생을 믿었ㅋㅋㅋㅋㅋㅋ
앞으로는 맛다시쟝님과 상의해야겠어요.
from 뜨거울 때 간이 잘 안 느껴지는 거, 이번에 확인한 사람 😁
 
공교로움. 해체되어야 합니까?
전략적 본질주의(Strategic Essentialism)
파도는 덮치고 모래는 쓸려간다.





 














첫 번째로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검은 피부, 하얀 가면>이라는 텍스트가 가진 독특함이다. 저자 이경원의 표현을 그대로 옮겨 보자면 딱히 자서전이라고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전문학술서로 보이기도 힘든 이 책은 정신의학, 심리학, 철학, 사회학 등의 온갖 범주를 넘나든다. (55/624)

 


파농의 정신과 삶은 사망 이후, 그가 선택한 조국 알제리에서도, 프랑스에서도 서서히 흩어지고 만다. 오히려 파농을 가장 파농답게기억한 곳은 생전에 파농이 가장 싫어했던 미국이라고 하는데, 특히 1960년대 미국의 흑인민권운동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 책의 저자는 파농의 부활이 어떤 방식으로든 파농의 순치와 전유를 수반하고 있다고 말하는데, 바로 그 점 때문에 <검은 피부, 하얀 가면>에 대한 복합적인 해석이 가능할 것 같다. 식민지 원주민의 주체 구성을 분석한 것이라는 <검은 피부, 하얀 가면>에 대한 평가는 온당하지만, 이 책을 읽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느낄 수 있듯이, 그것은 백인이 되고자 했던 파농 자신의 열망과 분리 불가능할 정도로 혼재되어 있다. 프랑스를 조국이라 생각하고, 프랑스어를 모국어라 여기며, 아프리카의 흑인을 니그로라고 생각하되 자신은 니그로가 아니라고 확신하는, 마르티니크 흑인 노예의 후손과 그 혼혈 가족들. 파농이 바로 그런 사람이었다. 파농을 이런 층위로만 묶어 두지 말라는 저자의 말에 밑줄을 긋고 그다음으로 넘어간다.

 


나는 스피박의 전략적 본질주의가 현재로서 여성이 선택할 만한 가장 합리적인 위치라고 생각한다. 전략적 본질주의를 한 번 더 인용한다.

 


탈식민주의 비평가 스피박(Gayatri hakravorty Spivak)이 페미니즘의 여성주체 논쟁에서 본질주의의 모순을 피해가면서 동시에 본질주의를 전유하기 위해 제안한 개념이다. 가령 가부장제의 억압주체 '남성'을 데리다의 해체론을 이용하여 해체하면서 저항주체 '여성’을 구성하는 것은 논리적 모순이요 이론적 허구이지만, 저항담론의 토대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여성'이라는 일종의 본질주의적인 범주를 상정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그렇지 않으면 '여성’이 주체가 된 저항담론이 아예 출발할 수 없기 때문이다. (<파농>, 595/624)

 



인류 초기 시대부터 여성이 하나의 집단으로 억압당해 왔음을 인식하는 일, 그러한 자각 없이는 저항 주체 여성이 주체가 된 저항 담론이 불가능하다. 쟝쟝님의 페이퍼에는 이 문장이 굵은 글씨로 표기된다. 근대적 주체성은 젠더화와 동시에 본격화되었다. 자본주의의 시작과 함께 자연, 식민지, 여성이 동시에 타자화되었다는 주장(혹은 그런 주장이라고 여겨지는데)인데, 여성에 대한 타자화의 시작점을 언제로 보는가에 따른 차이는 존재하지만, 근대의 백인-유럽-비장애인-남성이 인간의 표준으로 개념화되면서, 여성에 대한 억압이 더욱 강화되었다는 점에는 이견이 없다고 생각한다.

 

 

만국의 프롤레타리아가 단결할 때, 왜 여성은 단결하지 못했나. 혹은 왜 단결하지 않았나. 여성은 같은 성별(이점을 명확히 하려면 조금 더 복잡해질 것이기에, 여기서는 생물학적으로 여성으로 여겨지는을 뜻한다)의 여성보다 같은 계급의 남성과 스스로를 동일시하기 때문이다. 민족이 만들어진 관념인 것처럼, 여성은 관념이고 그래서 진짜 남자가 말이 되지 않는 것처럼, ‘진짜 여자또한 실재가 아니라 환상이라는 걸, 이제 우리는 안다. 하지만.  

 


아직도 각종 차별과 억압, 가난과 멸시, 감금과 폭력이 종교와 문화, 관습과 사회적 통념의 비호 아래 자행되는 현실 속의 여성들을 생각할 때, 그 여성들의 고통이 여자라는 이유가 아님을 증명하기 어렵다. 여전히 여성들은 억압받는 하나의 집단이다.

 



이를 주체 구성의 문제와 관련해 생각해 본다면, 나는 제3세계 사람이고, 유색인이며, 게다가 심지어!! 기혼 여성이기도 하지만, 그런 내게 주체의 죽음이 의미 있는 이유는, 주체와 자아에 대한 인식과 해석 없이, 다른 이의 정의와 규정에 매여 살 수 없기 때문이다. 타자로서 존재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필리스 체슬러에게서 답을 찾는다. 자유로워지는 것. 많은 일들, 많은 생각, 많은 사람에게 관심을 갖는 것에서 자유로워지는 것.

 
















여성의 가장 중요한 자아 정체성은 제한적이고 특정한 타인들을 위한 관심사와 몇몇 남성을 즐겁게 해주는 것에 근거하고 있다. 여성의 자아 정체성은 어떻게든 바뀌어야 하고 강인한 개인으로 살아남는 데 필수적인 것에 닻을 내려야 한다. 여성은 많은 일들과 많은 생각, 많은 사람들에 관심을 갖는 것에서 어떻게든 자유로워져야 한다. 자아 초점을 그처럼 급격하게 옮긴다는 것은 극도로 어렵고 두려운 일이다. 모든 여성적인신경과 감정이 날카롭게 자극되면서 심각한 대가가 따르게 된다. 어떤 여성은 그처럼 급격하게 초점을 이동시킬 때 미쳐버린다. (<여성과 광기>, 526)

 

 


앎비앎 친구님의 이 문단이 인상적이었다. 댓글로 쓰다가 또 길어져서(고질병임) 페이퍼로 썼다. 부지런히 더 읽고, 더 깊이 있게 이해하고, 더 명확하게 쓰고 싶은 마음이 드는 아침이다. 그럴 능력이 내게 있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적어도 해볼 수는 있겠다, 그런 생각이 든다. 나도 허심해지기로 했으니까.

 


아마 나는 아주 엉망으로 개념들을 활용/오용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여기까지가 나의 공부라고 생각하고 부끄러워하지 않기를 결단한다. 나에겐 내가 쓰는 것의 진위 여부를 보증해 줄 수 있는 것이 아마도 없지만 부지런히 읽었다는 것으로 정당화하련다. 부끄러움마저 책임지고 감당하기로 한다. 해체를 염두에 둔다는 것은 허심해지기로 하는 것이다. 만약 내가 잘못 알고 있거나 잘못 떠들었다면 그건 기꺼이 고치면 된다. 다 허물어도 된다. 파도는 덮치고 모래는 쓸려간다. 자국은 남지 않게 될 것이다. 인간 자신이 구축한 판타지 속에서 살아가기 위해 아무리 어떤 성을 쌓고 그림을 그린 대도. 바람은 파도는 불가항력

 

- 공쟝쟝, <파도는 덮치고 모래는 쓸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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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쟝쟝 2024-01-31 09: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헤헤! 이 글 역시 좋네요. 특히 체슬러 인용된 문장이 다시보니 뼈를 때립니다. 자아에 초점을 이동시키는 것! 나 스스로에게 집중하기 위해서 나 자신의 변화를 느껴보기 위해서 노력 중입니다. 단발머리님 굿 모닝!!

단발머리 2024-01-31 11:48   좋아요 1 | URL
이북은 엄청 빨리 읽게 되는데 이 책은 쉬운데도(?) 진도가 더디네요. 지금 반 정도 읽었는데, 또 할 이야기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번에는 푸코 나온당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번주에는 모닝이 일찍 시작되어서 지금은 매우 졸리네요. 쟝쟝님, 굿애프터 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