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찾아야 할 물건이 있어서 작은아이 방 뒤쪽 베란다로 향했다. 작은 아이 침대 아래쪽도 찾아봤는데 거기에는 장난감과 블루 마블과 바둑판이 있었고 내가 찾는 건 없었다. 베란다 문을 열고 쌓여있는 물건들을 이쪽저쪽으로 내려놓고 가로로 길고 세로가 짧은 플라스틱 상자를 열었다. 큰 상자에는 앨범과 노트가 들어있었다. 그리고 일기와 일기장, 일기장들. 거기 있는 일기장과 노트는 거의 다 내 것이었다. 그 상자를 내려놓고 다음 상자를 열었다.

 


이건 편지 상자. 나 때는(라떼는) 편지를 자주 쓰지 않았던가. 친구에게, 동생에게, 다시 친구에게, 먼 곳에 있는 이에게. 따로 묶어둔 꾸러미가 보여 열어봤다. 내게 제일 많은 편지를 써 주었던 사람의 편지가 그 안에 잔뜩 들어있었고, 그리고 그 많은 편지 사이로 남편의 편지가 하나. 딱 하나 들어있었다. 정말 딱 한 번 쓰지는 않았을 텐데 다 분실했을까. 때는 바야흐로 조선시대. 한지 봉투에 한지 편지지. 정갈한 글씨가 보기에 좋다. 읽지는 않고 다시 편지를 봉투에 집어넣는다 (특이사항 1. 같이 살고 있음/특이사항 2. 글씨가 많음) 그리고 그 옆에 보이는 그 사람의 편지. 정확히는 크리스마스카드. 제일 오랜 시간 좋아했던 사람, 잘 되지도 안 되지 않은 그런 관계가 되어 버린 사람. 크리스마스를 잘 보내라는, 새해 복 많이 받으라는 그런 흔한 말. 정성 가득한 글씨 속에 보이는 그 사람의 마음. 이제는 내게 와서 닿을 수 없는.

 


2022년 단발머리 픽 올해의 책’  『마리 앙투아네트 베르사유의 장미』에서 츠바이크는 치밀한 고증을 통해 당시 역사적, 사회적 상황을 소상히 밝혀낼 뿐만 아니라, 마리 앙투아네트와 그의 연인 페르센의 심정을 자세히 그려낸다. 편지를 통해 전해지는 그들의 육성은 너무나 생생하다. 마리가 그의 시누이에게 쓴 편지, 페르센이 자기 여동생에게 쓴 편지가 특히 그렇다. 이 세상 어떤 글보다도, 편지는 더 직접적으로, 편지를 쓴 그 사람을 보여주는 듯하다. 그래서일까. 내게 남아 있는 편지 속에는, 그 사람들이 사랑했던 내가 아니라, 그들이 내게 보여 주고 싶어 했던 그들이 있다. 그 사람들이 여기에 있다, 우리집에. 여러분, 여러분의 과거가 여기 있어요. 여러분의 마음을 찾아가세요. 여기 있어요, 저희 집에. 작은 아이 방 옆 베란다, 플라스틱 상자 속에 여러분의 마음이 남아 있어요.

 

 


적립금 마감이 어제라고 알라딘이 하도 재촉하는 바람에 책을 한 권 샀다(한 권 살 때 진짜 한 권 사는 사람). 친애하는 잠자냥님 서재에서 발견한 책인데 잠자냥님의 픽은 언제나 옳고, 저자는 츠바이크니까. 기대감 200% 상승. 돌아섰더니 큰애가 또 급하게 필요한 책이라 해서 주문하려니 배송비가 붙는다. 어쩔 수 없이 내 책 한 권 더.

 



 

 















츠바이크 책이 왔는데, 어맛! 2부는 두 사람의 편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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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수하 2023-03-08 09:0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각주 51번 선물.. 뭘까요 저 선물.. (궁금하다)

<마리 앙투아네트 베르사유의 장미> 제가 책장에 꽂아뒀더니 아이가
베르사유의 장미 마리 앙투아네트? 뭔가 제목이 이상한데 라며.. (세로로 읽는 건 오른쪽부터라고 알려줬죠 ㅎㅎ)
근데 재밌어보인다 라고 했어요

과연 너에게도 재밌을까 ㅎㅎ

단발머리 2023-03-08 09:32   좋아요 1 | URL
찾아봤습니다.
<조제프 푸셰. 어느 정치적 인간의 초상>이라는 책이랍니다 ㅋㅋㅋㅋ 책 주고 받는 사이였네요, 두 사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번역도 되었다고 합니다. <어느 정치적 인간의 초상>.

아이가 몇 살인지에 따라서 다르지 않을까요? 재밌겠다,고 느끼는 그 마음이 너무 귀여운데요 ㅎㅎㅎㅎ

건수하 2023-03-08 09:47   좋아요 0 | URL
왜 굳이 선물에 각주를 달아놨을까 했더니 책이었군요 ^^
갑자기 푸근해지는 마음... :)

단발머리 2023-03-08 10:49   좋아요 1 | URL
프로이트가 츠바이크보다 25살 많았다고 하네요. 프로이트에 대한 애정이 ㅋㅋㅋㅋㅋㅋㅋ 물씬 묻어납니다. 저 2쪽 읽었음요^^

다락방 2023-03-08 09:2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크-
저는요 단발머리 님, 제가 가장 많이 편지를 쓴 이성은 저에게 편지를 보낸 적이 없고
저에게 편지를 쓴 이성들은 정작 제가 딱히 좋아하지 않았다는 눈물 없이 들을 수 없는 새드 스토리를 갖고 있습니다..

저도 편지함에 편지가 정말 많은데요, 그래도 태울거 다 태우고 이제 한 박스만 남겨뒀는데, 이젠 그것들도 다 태워도 될 것 같아요. 편지..라는 단어는 참 사람을 멜랑콜리하게 하네요...

단발머리 2023-03-08 09:35   좋아요 0 | URL
그래서 저도 10초간 제가 제일 편지를 많이 보냈던 사람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구요. 그리고 제게 편지를 보냈던 사람들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았으나... 여기까지가 끝인가보오 ㅋㅋㅋㅋㅋㅋㅋㅋ

연예인들이 열애 & 결혼 발표 & 사과 편지를 왜 손편지로 쓰는건가 궁금할 때 있었거든요.
그렇게 어려운 일이더라구요. 2023년의 현대에 ㅋㅋㅋㅋㅋ 손편지는 사랑입니다. 저는 조금 더 가지고 있으려고 해요.
편지들 & 엽서들 말입니다.

다락방 2023-03-08 09:2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그런데 ‘편지‘ 라고 하면 자연스레 김광진의 편지 생각나지 않나요?

여기까지가 끝인가보오 이제 나는 돌아서겠소
억지노력으로 인연을 거슬러 괴롭히지는 않겠소...

엉엉 ㅠㅠ

단발머리 2023-03-08 09:37   좋아요 1 | URL
저도 그 노래 너무 좋아하지 않겠습니까.
아이유가 리메이크 하기도 했는데 저는 옛날 버전이 더 좋고요. 수현 버전도 좋구요.

다락방님 픽, 오늘의 선곡이었습니다. 김광진이 부릅니다. <편지>

잠자냥 2023-03-08 10:0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니, 마리 앙투아네트 이야기하면 집에서 다들 이제 자리 박차고 일어나서 나가는 거 아닙니까?!ㅋㅋㅋㅋㅋㅋ

단발머리 2023-03-08 10:03   좋아요 1 | URL
그래가지고요 ㅋㅋㅋㅋ 제가 알라딘에서만 마리 이야기를 합니다. 츠바이크도요ㅋㅋㅋㅋㅋㅋ 잠자냥님, 저 아침에 츠바이크 2쪽 읽었는데요 아…. 참사랑이야, 이것은 ㅋㅋㅋㅋㅋㅋ 😍😍😍

책먼지 2023-03-08 10:1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는 최근에 츠바이크가 쓴 발자크 평전을 너무 재밌게 읽어가지고 이 책도 사기는 샀는데.. 아직 사기만 했네요..??? 저는 아직도 편지 쓰는 걸 좋아하는데.. 아무도 답장을 안해준다는 슬픈 사연.. 단발님 분명 책이 세 권인데 이게 어떻게 된 계산법이죠???

단발머리 2023-03-08 10:28   좋아요 4 | URL
제가 최근에 읽은 츠바이크는 마리 앙투아네트구요. 프로이트 찍고 발자크 쪽으로 간다,가 일단 제 계획입니다. 책먼지님이 먼저 읽으시면 제가 사뿐히 따라가겠습니다. 편지 쓰는 거 아직도 좋아하신다니 너무 좋으네요. 손편지 쓰시는 분들 진심 존경합니다.

글고 계산은 이게 말이지요. 쩝. 적립금 때문에 산 거구요. 그니까 3월의 책 아직 사기 전입니다. 큰애 책은 제 책 아니니까 안 산 거구요. 여성주의 책은, 책 산 거 카운트할 때 안 들어가는 거거든요. 그래서, 위에 책은 세 권이지만 저는 아직 3월의 책 안 산 1인으로서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책먼지 2023-03-08 10:41   좋아요 3 | URL
ㅋㅋㅋㅋ 단발님 저 마리앙투아네트 산 거고 프로이트를 위하여 저 친구는 초면입니다!! 츠바이크 책이 두 권인데 제가 무턱대고 “이 책” ㅋㅋㅋㅋ 제가 단발님을 따라갑니다!!!
뭐죠? 이 기적의 계산법은??? ㅋㅋㅋㅋㅋㅋㅋ 물구나무 서서 봐도 한 권인데!!! 제가 잘못했네요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단발머리 2023-03-08 10:53   좋아요 3 | URL
먼저 가셔도 돼요 ㅋㅋㅋㅋㅋ 먼저 가세요, 책먼지님! 저는 여기저기 흩어진 책들 조금만 더 정리해보고요.

이 놀라운 기적의 계산법 저도 알라딘 이웃님들에게서 배운 거에요. 신통방통 계산법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정희진쌤 추천 <고통받는 몸>이랑 <미디어의 이해>에 5만원 채우고 원서 한 권 넣어서 2,000원 추가 마일리지 받는거 계산 돌리고 왔습니다. 3월의 책 사야하니까요 ㅋ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23-03-08 10:56   좋아요 4 | URL
아 이 기적의 계산법에 빵터집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책먼지 2023-03-08 11:09   좋아요 3 | URL
단발님 책은 왜 한번에 한권밖에 읽을 수 없을까요??? 이 책 펴면 저 책이 아쉽고 저 책 펴면 또 이 책이 아쉽고.. 독서는 저에게 비교적 단순한 일이었는데 독서마저 점점 복잡해집니다ㅠㅠ

으악ㅋㅋㅋㅋㅋㅋ 이런 식이면 올해 책 덜 사기 새해 결심 자동 달성이네요??? 더 사도 되겠어요 휴우..

단발머리 2023-03-08 12:08   좋아요 3 | URL
책먼지님의 그 고민이 바로 저의 고민이기도 합니다. 저는 여러 책을 동시에 읽는데 그러다 보니 읽지 못하고 지지부진해지는 책이 있는가 하면 각 책의 내용이 막 혼합되어서 ㅋㅋㅋㅋㅋㅋㅋㅋ @@게 되기도 하구요.

알라딘 월드 입성하신 순간 ‘책 덜 사기‘는 불가능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 세상 어디서도 이렇게 책 많이 사시는 분들은 없습니다. 게다가 ㅋㅋㅋㅋㅋㅋ 그렇게 많이 사놓고도 다른 사람 페이퍼 보면서.... 그래도 난 덜 사는 편이야....이렇게 혼잣말 하시구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시 한 번 축하드립니다, 웰컴 투 알라딘 ㅋㅋㅋㅋㅋㅋㅋㅋ

건수하 2023-03-08 13:41   좋아요 3 | URL
제가 이 계산법 보고 오늘 페데리치 책을 여성주의책읽기에 넣자고 다락방님께 굳이 건의했구요 ㅋㅋㅋ

다들 누가 얼마나 책을 사는지 투명하게 알 수 없기 때문에... 그래도 난 덜 사는 편이라고 위안하기가 좋아요 ㅋㅋㅋ


책먼지 2023-03-08 14:17   좋아요 3 | URL
으악ㅋㅋㅋㅋㅋ 여러분 제가 진짜 격하게 사랑합니다ㅋㅋㅋㅋㅋㅋㅋ 이거 아닌 거 같은데.. 또 이거 맞는 거 같고.. 에라 모르겠다ㅋㅋㅋㅋㅋㅋ
 



 
















결혼식이 끝나고 만났을 때, 고등학교 절친인 그 친구는 신부보다 신부 엄마가 더 예뻤다고 말했다. 그래? 하고 웃어넘겼는데, 다른 친구 두 명에게서 똑같은 말을 듣고 나니 정말 그런가 싶어 엄마를 자세히 살펴봤다. 맞다, 엄마는 달라져 있었다. 내가 이런 말을 하면 교회를 다니는 사람이든 다니지 않는 사람이든 이해하기 어려울 테지만, 사실인즉 그렇다. 엄마는 예수님을 만나고 인생이 바뀌었다. 또 다른 말로 하면 엄마는 예수님을 만나고 새 생명을 얻었다. 죽을 목숨이 죽지 않게 됐다. 다시 살아난 엄마는 생명력으로 활활 불타올랐고, 나는 여전히 엄마표 횃불의 온기에 기대 산다. 엄마는 밝아졌고, 환해졌고, 그리고 예뻐졌다. 작고 부끄럼을 많이 타던 내 엄마, 남들 앞에서 말 한마디 못 하던 내 엄마가 환하고 아름다운 사람이 되었다. 엄마가 변했다.


 
















<인종 토크>에서는 인종 차별을 받는 자신의 처지를 온전히이해하지 못하는 백인 엄마에 대한 원망이 그려진다. 하얀 엄마를 가진 검은 여자아이의 마음. 친할머니 손에 자란 마야 안젤루가 처음 엄마를 만났을 때, 마야는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여성을 만났다고 말한다. 엄마가 우리를 버린 이유를 이해할 수 있다고, 엄마처럼 예쁜 사람이 우리처럼 막돼먹은 아이들을 키울 수는 없다고, 어린 마야가 생각한다. (<새장에 갇힌 새가 왜 노래하는지 나는 아네>) 하얀 엄마를 가진 검은 여자아이의 생각.

 


서인도제도 출신 오드리의 부모는 두 사람만의 대화가 필요할 때 그레나다어를 사용한다. 오드리의 아버지는 오드리 자매들처럼 흑인이지만(흑인으로 분류되는 사람이지만), 오드리의 엄마는 그렇지 않다. 그녀는 백인에 가까울 정도로 하얀 사람이다.

 


1920년대, 1930년대의 뉴욕에서 흑인이자 외국인인 동시에 여성으로서 살기란 녹록한 일이 아니었는데, 특히나 어머니 당신은 백인으로 여겨질 만큼 피부색이 희었던 반면 자식들은 그렇지 않았기에 더했다. (<자미>, 35)

 



아름다운 어머니에 대한 동경. 이것이 최초로 나의 것인 엄마에 대한 동경인지 혹은 아름다움에 대한 동경인지를 뚜렷하게 구분할 수는 없다. 이 두 가지는 항상 함께 오지 않던가. 내가 사랑하는 것은 아름답고, 나는 아름다운 그것을 온 마음을 다해 사랑한다. 사랑할 때, 나는 그 사람을 숭배하고, 내가 숭배하는 그 사람은 이 세상에서 홀로 완벽한 존재이다.

 


나는 엄마의 사랑을 충분히 받았다. 과하다고 생각한 적은 여러 번 있었지만, 부족하다고 느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모범생이고 뭐든지 잘하는 언니 둘과 함께 엄마를 나눠 써야하는 오드리의 심정에 대해 나는 잘 모르지만. 내가 사랑하는 그 사람을, 그의 사랑과 관심과 애정을 갈구하는 그 애절한 마음은 조금은 알 것도 같다.

 

 


더욱이 내가 갈망하는 존재가 어디서든 빛을 발하는, 아름답고 위풍당당하며 하얀존재일 때, 경외감은 더욱더 강렬해진다. 이런 감정은 분리될 수 없는 복잡한 심경의 복판에 자리한다. 사랑하는 그 존재가 나의 엄마이기 때문인가 혹은 내 엄마가 백인 여자이기 때문인가. <검은 피부, 하얀 가면>의 프란츠 파농이 생각나는 대목이다.

 
















내 영혼의 가장 검은 부분으로부터 [흑백] 줄무늬 지대를 가로질러 단번에 백인이 되려는 저 욕망이 솟아오른다. 

나는 흑인으로 인정받고 싶지 않다. 백인으로 인정받고 싶다. 

그런데-그리고 이 점이 헤겔이 기술하지 않았던 인정 형태인데-백인 여성이 아니라면 다른 누가 그렇게 해주겠는가? 그 여성은 나를 사랑함으로써 내가 백인의 사랑을 받을 가치가 있음을 증명해준다. 나는 백인 남성으로서 사랑받는다. 

나는 백인 남성이다. (<검은 피부, 하얀 가면>, 63) 

 


백인 남성이 되기 위해 백인 여성의 사랑을 갈구하는 파농. 백인 여성에게 선택받음으로써 백인 남성이 되어버린 파농. 되고 싶은 혹은 되어야만 하는.  

 

 



급하다고 하는 큰애 책을 하나 사고, 사면서 내 책도 하나 샀다. 3월에는 독서대 하나, 책 한 권만 사는 걸로 목표를 잡았는데, 그 한 권이 뭔지 모르겠어서 지금 제일 읽고 싶은 책 한 권을 주문했다. 그러고 보니 3월의 도서를 아직 구입하지 않았군. 하지만 이웃님들과 같이 읽는 여성주의 책은 권수에 포함되지 않으니 나중에 구입하면 되겠고(모두 그렇게 카운트하지 않나요? 여성주의 책은 권수에 포함하지 않잖아요? 맞죠?ㅎㅎㅎ). 기억나지 않는, 원래 사려고 했던그 한 권을 기억해 내는 일이 오늘의 과제 되시겠다. 기억이 안 난다. 안 나고 있다.

 

















내 어머니가 다른 여자들과 달랐기에, 때로 나는 남들과 다르다는데서 오는 기쁨과 특별함 같은 긍정적인 감정을 느꼈다. 그러나 때로는 같은 이유로 고통을 느끼기도 했는데, 나는 어린 시절 그것이 내가 느끼는 슬픔 대부분의 원인이라 생각했다. 내 어머니가 다른 어머니들과 같았더라면 남들이 날 더 좋아했을지도 몰라. 그러나 어머니가 남들과 다른 건 계절 같은 것, 추운 날씨 같은 것, 6월의 안개 낀 밤 같은 것이었다. 이유도 계기도 필요치 않은, 원래 그런 것이었다. - P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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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3-03-03 08:4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는, 한번은, 엄마가 저를 질투한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어요. 제가 어떤 성취를 이뤘을 때 혹은 자유로울 때. 그럴 때 엄마가 저를 축복해주고 저를 돕지만, 가장 먼저 엄마에게 질투가 찾아들었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어요. 그 생각은 찾아왔다가 금세 사라지는 것 같긴 했어요. 그런데 그게 어느 순간 보였던 적이 있어요. 단발머리 님은 어머님이 가진 아름다움에 대한 동경을 말씀하셨는데, 저는 이걸 읽으면서 본인과 다른 인생을 살아가는 딸에 대한 질투, 가 생각나네요. 물론 엄마의 질투가 잠깐 보였다고 해서, 그일로 인해 제가 엄마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을 갖진 않아요.

저는 최근에 사려고 했다가 도저히 못사겠는 책이 <인생 수업> 입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중고샵에 갔더니 너무 낡아서 사기 싫고 그래서 새 책으로 사려니, 아무리 정희진 쌤이 추천했어도 새 책으로 사기가 아까운... 마음이 들어서요? 이럴 때는.. 어떡하나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단발머리 님의 ‘그 한 권‘은 어떤 책일까 생각하며 제 장바구니를 보다가 계속 들어있기만 한 <인생 수업>을 노려봅니다.

단발머리 2023-03-03 08:56   좋아요 3 | URL
그럴 수도 있을 거 같아요. 그런 감정, 그런 느낌은 어쩌면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딱! 발산되고 그리고 상대도 느껴버리는 거니까요. 할머니 세대와 그 자녀세대, 그리고 우리 어머니 세대와 우리 세대는 사실 삶의 질이 차이가 나잖아요. 그것도 아주 많이요. 본인과 다른 인생을 살아가는 딸에 대한 질투는 그래서 일면 사랑이고 일면은 동경 같기도 하구요. 그래서 백설공주 속 왕비 친모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인생수업, 저는 진짜 표지때문에 안 읽고 싶은데요. 어쩜 그런가요. 정희진쌤 강추책이라 일단 읽어는 봐야지 싶어요. 너무 낡은거는 안 돼요. 우리는 새 책도 잘 안 읽는데, 낡은 책은 더더욱..... 우선수위에서 밀려납니다. 새 책 사시고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 한 권 좀 찾아주시면 안 돼요? 아, 소설 같기도 한데.... 뭘까요, 대체? 🧐

다락방 2023-03-03 09:30   좋아요 2 | URL
맞아요, 단발머리 님. 그러고보면 저는 제 조카들 볼 때마다 ‘너는 너가 얼마나 많은 걸 누리는건지 알까‘ 라는 생각을 하곤 하거든요. 어린시절부터 공연이나 전시회 보여주는 부모라니. 그런거 저는 경험하지 못한거거든요. 그렇다면 내 딸에 대한 질투 라는 감각은 저에게도 찾아오는 것이기도 한 것 같아요.

그리고 그 한 권에 대해 추측해보자면, ‘아니 에르노‘의 <젊은 남자> 는 아닐까요?


단발머리 2023-03-03 10:05   좋아요 0 | URL
네, 맞아요. 우리 아이들, 조카들은 우리들과는 다른 세상에 살죠. 그 아가들은 자신들이 얼마나 많은 걸 누리는지 알지 못하겠죠, 계속 알지 못할 거 같기는 해요. 왜냐하면 할머니가 아궁이에 불 피워서 밥하고 얼음 깨서 빨래하신 거 전 모르잖아요. 할머니도 엄마도 그렇게 사셨는데 말이지요.

제게는 아니 에르노의 <여자아이 기억>은 있습니다. 브론테 면기 받으려고 구입했죠. <젊은 남자>도 아닙니다만 ㅋㅋㅋㅋㅋ

다락방 2023-03-03 09:4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 단발머리 님! 이 페이퍼를 놓고 추측해보건대, 혹시 ‘넬라 라슨‘의 <패싱> 아닐까요?

단발머리 2023-03-03 09:57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 지금 계속 추측하시고 있는거에요? 전 진짜 모르겠는데요. 계속 추측 좀 ㅋㅋㅋㅋㅋㅋㅋㅋ <패싱>은 아닙니다 ㅋㅋㅋㅋㅋㅋㅋ 락방님, 화이팅! 커피 다시 내렸죠? 저도 지금 커피 내리고 있어요.

바람돌이 2023-03-04 18: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이벤트 있는 사나운 애착과 짝없는 여자와 도시는 사셨나요? ㅎㅎ

저는 결혼초에 남편이가 자기 어머니 젊었을 때 사진 보면 엄청 미인이었다고 막 자랑해서 속으로 별로 안그럴거 같은데 하다가요. 실제로 사진보고 멘붕이었습니다. 도대체 어디가 미인이란거야? 응응???? 사랑으로 콩깍지가 끼면 음...... ㅎㅎ
그런데 그 어머니와 피부색마저 다르다라... 최근에 본 아이 엠낫 유어 니그로에 흑인 어머니가 백인처럼 하얀 딸을 학교에 찾으러 가는 장면이 나와요. 자신이 흑인임을 숨기고 있던 하얀 딸은 엄마를 원망하면서 뛰쳐나가고요.
사랑은 뭘까요? 그리고 가족은 뭘까요? 그냥 사랑하고 좋아하고 둥기둥기하면서 콩깍지 끼워서 살면 좋겠는데 말이죠. 어째 쉬운건 하나도 없는지.... ^^

단발머리 2023-04-04 12:32   좋아요 1 | URL
헤헤헤 저 이벤트 도서는 안 샀는데요 ㅋㅋㅋㅋ 안 살 거 같습니다. 저는 리뷰대회 참석해도 유력한 사람 아니니까 바람돌이님 한 명 제끼는 거에서 저는 빼주시고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바람돌이님 댓글 읽고 나니 아이 엠낫 유어 니그로, 더 궁금해지네요. 그 아이의 절망 ㅠㅠㅠㅠㅠ 하얗고 사실은 검지만 하얗고 싶은 아이의 마음이 막 떠오르구요. 제가 사랑하는 로스의 <휴먼 스테인>도 생각나네요. 그 주인공은 백인 여자랑 결혼하고 싶어 가족들하고 절연하거든요. 아이 기다리면서 혹 아이가 검은 피부면 어쩌나... 그런 맘....
진짜 사랑은 뭘까요? 콩깍지일까요? ㅋㅋㅋㅋㅋㅋㅋ 그게 다일까요? ㅋㅋㅋㅋㅋㅋㅋㅋ

2023-03-07 10: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단발머리 2023-03-07 10:42   좋아요 0 | URL
🥸😎🤪😜😝🤓🤣😂🥹🥵🥵🥵🥵🥵🥵🥵🥵🥵🥵🥵
 
여성, 인종, 계급 Philos Feminism 2
앤절라 Y. 데이비스 지음, 황성원 옮김, 정희진 해제 / arte(아르테) / 2022년 9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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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종주의에 대한 언급에는 동의하지만 가사노동에 대한 논의는 조금 더 정교했어야 하지 않나... 그런 생각도 든다. 사회주의 여성운동의 역사를 알게 되어 놀라우면서도 기뻤고, 조선 사회주의 혁명 여전사 트로이카가 떠오르기도 했다. 브라운밀러에 대한 논쟁 부분은 조금 더 생각해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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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티나무 2023-02-27 02:2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브라운밀러 책 꺼냈지 말입니다😘

단발머리 2023-02-28 10:14   좋아요 0 | URL
브라운밀러 큰일났네요. 난티나무님이 속속들이 파헤쳐주십시오! 🥰

다락방 2023-02-27 07:4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완독 축하합니다!!

제가 브라운밀러 읽을 당시 이 책을 읽기 전이었으므로 의견의 브라운밀러 쪽으로 기울어지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여성, 인종,계급>을 읽으면서 아주 확실히 사람에겐 자신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기준이 있고 또 자신의 정체성을 어디에 가장 맞추느냐도 다 다르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브라운밀러 의 경우엔 그 무엇보다 ‘여성‘이었고 <흑인 페미니즘 사상>의 ‘패트리샤 힐 콜린스‘는 ‘흑인 여성‘ 이었다면, 앤절라 데이비스는 ‘흑인‘ 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가사 노동에 대해서는 저도 읽으면서 갸웃해서 앤절라 데이비스에게 반대한다기 보다는 앤절라 데이비스가 가사노동에 대해 더 길게 더 자세히 말해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읽느라 고생하셨습니다!!

단발머리 2023-02-28 10:26   좋아요 0 | URL
저는 다락방님의 이 댓글이 이 책의 위치를 가늠하는 중요한 표지가 된다고 생각해요. 지적해주신대로 앤절라 데이비스는 ‘흑인’과 ‘계급’에 방점을 찍은 거 같기는 해요. 가사노동에 대해서는 데이비스가 간단히만 언급해서 그러면도 있겠지만 전 이 부분에서는 사회주의운동가들의 인식 자체가 ‘가정생활’이라는 활동 자체를 경안시하는 건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더라구요. 다 외주화 하자고 해서 조금 놀랐습니다. 락방님도 고생많으셨어요!
이번달도 클리어!!

책읽는나무 2023-02-27 11:4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제 막판 몇 장만 남겨 놓고 있어요.
저는 마거릿 생어의 피임과 여성 해방 대목에서 조금 갸웃?
마거릿 생어 책 쓰다듬다 일단 내려놓았어요^^;;
책을 읽지 않아서 이 사람 나오면 갸웃? 저 사람 나오면 갸웃?
백인 여성들의 주장이 흑인 여성들의 입장에선 또 저렇게 느끼고, 해석이 될 수도 있는 것이구나!
암튼 이 책도 조금 놀라움이었습니다.

단발머리 2023-02-28 16:31   좋아요 1 | URL
저도 마거릿 생어에 대한 부분이 제일 놀라웠어요. 백인여성에게 권리의 문제지만 흑인여성에겐 생존의 문제구요 ㅠㅠ
저도 여러번 놀라서요. 지금 쉬고 있어요 ㅎㅎㅎ
책나무님 리뷰 읽으러 이제 갑니다요, 슝!!

공쟝쟝 2023-02-27 14:28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저 딱 한마디만 자문을 구합니다… 이 책 때 안타게 보관하는 방법좀 알려주세요… 몇번 펴보지도 않았는데 책 표지 드러워져서 보기가 싫음 ㅋㅋㅋㅋ 지우개로 닦고 커버라도 씌워야 합니까? 진짜 너무 때 잘타는 재질임…

햇살과함께 2023-02-28 15:16   좋아요 1 | URL
공쟝쟝님 저랑 같은 반가운 고민을 ㅋㅋㅋ
저 이 책 받자마자 딱 때 잘 타게 생겨서 바로 문방구 가서 종이 포장지 사서 책싸개 하고 들고 다녔어요 ㅋㅋㅋ

단발머리 2023-02-28 16:33   좋아요 2 | URL
쟝쟝님 / 저는 집에서만 읽고요 ㅋㅋㅋㅋ 한 자리에서만 읽고요. 아, 외출했을 때는 북커버에 담아가지고 나갔습니다. 책 읽기 전에 우리 모두 얌전히 손 깨끗히 씻잖아요. 그렇게 준비하고 나서 읽잖아요, 우리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햇살과함께님 / 우아 ㅋㅋㅋㅋㅋㅋ 햇살과함께님 제 스탈이시네요. 전 이 책은 한참 고민했거든요. 참고로 전 <다락방의 미친 여자> 선물 받은 종이 포장지로 책싸개 해서 집에서 읽었습니다 ㅋㅋㅋㅋㅋㅋ

얄라알라 2023-02-27 15: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완독 축하드립니다.

브라운 밀러, 마거릿 생어..
꼬리에 꼬리는 무는^^ 다들 공부에 진심이십니다!

몇 달 손 놓았더니, 댓글 알아듣기도 어려워진 지경....완행열차로 천천히 뒤쫒아 가겠습니다

단발머리 2023-02-28 16:34   좋아요 1 | URL
얄라알라님 감사합니다.

이 책이 여러가지 공부할 거리, 생각거리를 많이 던져주더라구요. 이 책 참 좋았습니다, 저는요.
완행열차 잘 올라오고 있나요? 지금 대전쯤 오셨나요? ㅎㅎㅎㅎ

얄라알라 2023-02-28 16:39   좋아요 0 | URL
ㅎㅎㅎ 단발머리님, 농담도 참 우아하셔라^^
대전?^^ 아....아직 해남 땅끝마을에서 크게 올라오진 못했습니다

하필 또 오늘 [인간이하]라는 책을 집었는데, 넘 재미있어서 오후를 그 책과 보내다 보니...문어발 독서의 폐해입니다...내일이면 3월인데, 계속 해남에 있다니^^;;;;

얄라알라 2023-02-28 16:39   좋아요 1 | URL
하지만 공부를 좋아하시는 단발머리님께서 추천하시고 완독하신 책이니, 천천히라도 촘촘히 읽겠습니다용!

햇살과함께 2023-02-28 15: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완독 축하드립니다!!!

가사노동 부분은 마지막에 급하게 마무리한 느낌이라 저도 조금 아쉬웠어요.
앤절라 데이비스의 정체성에 맞게 ‘흑인‘ ‘공산주의자, 사회주의자‘에 대한 애정이 뿜뿜 느껴졌습니다.

단발머리 2023-02-28 16:39   좋아요 1 | URL
햇살과함께님 감사해요 ㅎㅎㅎ

앤절라 데이비스의 삶 자체가 너무 투쟁적이고 또 용사잖아요. 그의 삶 전체가 너무 멋지더라구요.
그런 삶을 살았던 사람만이 쓸 수 있는 글이라고 생각해요.
 





 













강간에 대한 본격 연구서인 『우리의 의지에 반하여』를 읽으면서, 백인 남성의 흑인 노예 여성에 대한 계획적, 조직적 강간이 성적 모험 혹은 성적 취향의 이유로 출발했을지 몰라도 그 궁극의 지점이 이었다는 걸 발견했을 때, 가장 충격을 받았다.

 


첩과 번식용 여자라는 역할은 노예제의 마지막 10년 동안 노골적인 성매매 형태로 발전했다. 가장 예쁘고 백인에 가까운노예를 뉴올리언스 시장에서 대놓고 성적인 용도로 팔았다. 이때 쓰인 무신경한 용어가 팬시걸이었다. 포르노 문학에서 가장 인기 있는 주인-노예 관계의 도착 환상이 현실에서 이루어졌다. (<우리의 의지에 반하여>, 258)

 



『흑인 페미니즘 사상』의 힐 콜린스는 당시의 상황을 이렇게 적었다.

 


특히 그중에서도 남부의 오래된 노예제 사회에서 점차적으로 백인여성과 구분하기 어려워지고 (의도적으로 그렇게 되도록 길러졌으며) 바로 이 때문에 애첩인 노예로 매우 중시되었던 아름다운 젊은 혼혈여성 (백인 신사의 손에서) 가학적으로 다루어졌다는 사실만 보아도 분명하다. (<흑인 페미니즘 사상>, 239)

 



흑인 노예 여성들은 흑인 노예 남성들과 똑같이 일했다. 같은 시간 일어나, 같은 일터로 향했고, 똑같은 할당량을 부여받았다. 그들의 삶이 더 비극적이었던 이유는 백인 농장주, 백인 농장주의 아들, 백인 관리인 가끔은 흑인 관리인까지 더해 층층이 쌓인 남성들에 의해 조직적으로 성적 억압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번식용 여자로서 재생산의 억압까지 받았기 때문이다.

 


지옥 같은 삶을 살던 그들에게 해방의 날이 밝아오고 있었다. 백인 여성과 흑인 여성, 흑인 남성이 힘을 합쳐 과 같은 위치에 있는 백인 남성에 대항했다. 하지만 노예 해방 후에는 백인 여성들이 줄곧 주장해왔던 참정권 확대가 백인 여성이 아닌 흑인 남성에게로 향했다.

 


처음부터 일관되게 여성 운동에 함께해왔던 프레더릭 더글러스는 그 특정한 역사적 국면에 여성 투표권 투쟁보다 흑인 투표권 투쟁을 전략적 우위에 놓아야 한다”(131)고 주장했다. 백인 여성들은 인종차별적인 언사를 동원해 이를 비난했다. 흑인 여성인 앤절라 데이비스는 상황을 이렇게 평가한다.

 


남부에서 흑인을 상대로 자행되는 광범위한 폭력과 테러를 고려하면 중간계급 백인 여성보다 흑인에게 투표권이 더 절박하다는 주장은 논리적이고 설득력 있었다. 과거 노예였던 이들은 여전히 목숨을 지키기 위한 투쟁에서 헤어나지 못했고, 더글러스가 보기에는 투표권만이 그들의 승리를 보장해 줄 것이었다. 반면 엘리자베스 캐디 스탠턴과 수전 B. 앤서니를 통해 그 이해관계가 대변되는 백인 중간계급 여성들은 목숨이 육체적으로 위험한 상황이라고 주장할 수 없었다. (<여성, 인종, 계급>, 133)

 



백인 여성들의 자기 이익에 대한 방어와 남북 전쟁 이후 흑인 평등 운동 사이의 위태롭고 피상적인 관계는 그렇게 파국을 맞았다.

 


백인 여성들을 비난하는 건 오히려 쉬운 일이다. 이 책의 제목처럼 우리가 속한 현실은 여성 문제와 인종 문제, 그리고 계급 문제가 혼재되어 있다. 갈등의 요인을 하나로만 이해할 수 없다. 젠더는 그 어떤 사회적 억압보다 교묘하게 감추어져 있어 그 실상을 깨닫기가 어렵다. 남녀평등을 목 놓아 외치는 사람도 저녁 차리는 일은 여자의 일이라고 생각한다. 여성의 일, 여성적인 일, 여성다움에 대한 생각들이 많이 변화된 것은 사실이지만, 여전히 남녀의 구별과 다른 대우가 자연적인 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다.

 
















거다 러너가 서술한 바와 같이, 1848년 왕정에 반대하는 혁명에서 여성들은 혁명전과 도시 운동에 참여하고, 임시 정부에 투표권을 청원하는 등 활동적인 역할을 했지만, 남성들의 일반 투표권만 시행되었고 여성들은 끝내 배제되었다. 1871년 파리 코뮌의 상황도 비슷해서 여권 운동과 코뮨에 참가한 소수의 급진적 여성 운동은 황폐화되었고, 프랑스 여성들은 1938년이 될 때까지 자신들의 인격과 투표권을 법적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역사 속의 페미니스트>, 394) 이는 프랑스에서만 일어난 일이 아니다. 소련 혁명에서도, 중국 혁명에서도, 남자들 못지않게 사회주의 혁명에 헌신했던 위대한 혁명 지도자 여성들의 이름은 역사 속에서 지워졌다. 혁명군이 진군할 때 여성들은 남성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지만, 혁명이 성취된 후에는 뒤쪽으로, 보이지 않는 곳으로, 가정으로 자리를 옮길 것을 요구받았다. 여성 문제는, 언제나 다음 문제였기 때문이다.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다. 이러한 고민과 갈등이 백인 여성 내부에서만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1991, 오클라호마 대학 교수였던 아니타 힐은 클레런스 토머스 대법원장 후보자의 성희롱 사실을 폭로했다. 그녀의 사건은 성희롱, 인종, 권력의 문제로 이해되었지만, 가장 주요한 지점은 클레런스의 성희롱이다. 클레런스는 이를 인종차별의 문제라 규정하고, “흑인이라 민주당으로부터 공격당했다고 내세우며 혐의를 부인했고, 52 48로 대법관으로 임명되었다. 청문회 이후 아니타 힐은 반대 세력으로부터 각종 협박 편지와 소포를 받았으며, 종신 교수직이 보장되어 있던 대학과 고향을 떠나야만 했다. 그녀를 비난하는 이유는 한 가지였다. 같은 흑인으로서 흑인 대법관 임명에 지장을 주었다는 것이다. (2023 2 18/시사저널, http://www.sisajournal.com/news/articleView.html?idxno=177756)

 
















흑인 여성들의 딜레마는 여기에 있다. 흑인 여성들은 흑인 남성들과 함께 백인 남성들 그리고 일부 백인 여성들의 억압의 대상이었다. 가정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흑인 남성들은 흑인 여성들을 억압하고 구속했다. 하지만, 백인 남성에 저항하는 위치에서 그들은 동료이자 동지였다. 흑인 여성들은 아버지, 삼촌, 남편, 남동생, 아들, 손자가 피부색이 검다는 이유로 무차별적 폭력과 린치의 위협 속에서 죽어가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들은 한마음으로 투쟁했고, 자신과 가정,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 흑인 남성들과 함께 싸웠다. 『페미니즘과 기독교의 맥락들』 의 저자 백소영이 말했던 흑인 여성들의 페미니즘, 살고 살리라의 실천으로서의 '우머니즘'이다. 그들은 자녀들을 위해, 아들과 딸을 위해 분연히 일어나 백인들의 폭압에 맞서 싸웠다.

 


하지만, 동지이자 동료, 남편이자 애인인 흑인 남성이 그들을 억압할 때, 특별히 백인 남성과 똑같은 형태의 성 착취로 그들을 억압할 때, 흑인 여성이 겪어내야만 하는 배신감과 실망은 이루 다 말할 수가 없다. 흑인 여성의 내부는 누구인가. 인종적으로 이질적이지만 여성의 경험을 공유하는 백인 여성인가. 성적으로 자신을 위협할 때도 있지만 인종적 동질성을 가지고 있는 내 가족, 내 남자인 흑인 남성인가.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선택에 관한 것이다.

 


참정권 획득을 위해 흑인들에 대한 인종주의적 발언을 내뱉었던 백인 여성들이 존재하는가 하면, 흑인의 정치력 향상을 위해 성 비위문제를 묻어두고 가야 한다고 주장했던 흑인 여성들이 있었다. 어느 순간, 특정한 어느 시점에는 선택해야 한다. 강제적 이성애와 오천 년 가부장제의 무게는 백인 여성과 흑인 여성을 숨 막히게 하고, 서로에 대해 실망하게 만들지만. 연대해야 한다, 두려움을 이겨내고 연대해야 한다. 미움을 뒤로 하고, 연대해야 한다. 하지만, 어느 순간에는 선택해야 한다. 그 선택이 나, 개인으로 존재할 수 없는 라는 존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오래오래 생각해봐야 하고, 그 후에는 선택해야 한다. 선택의 몫은 자신에게로 돌아온다.

 

 


흑인 여성과 백인 여성 중에 고르라고 한다면 나는 백인 여성 쪽이다. 내 마음이 아니라 내 위치가 그쪽에 가깝다는 뜻이다. 적어도 나는 생존을 위협받지는 않았고, 노골적인 성 착취의 위협 속에 있지 않았다. 교육받을 기회가 열려 있었고, 결혼 이후 육아를 이유로 일하지 않고있다. 한편으로, 나는 흑인 여성이다. 멀쩡하게 길을 걷다가 끌려가서 무슨 이유 때문인지도 모르게 죽임을 당한 아들, 애인, 남편을 위해서, 공동체 내에서 벌어졌던 성 착취문제를, 그 문제 제기를 조금만 더 미루면 안 되겠냐고 말하는 흑인 여성이다. 아니타 힐에게 폭탄을 보내고 항의 서신을 보내지는 않지만, 적어도 1001 정도로 아니타 힐에게 서운한 마음을 갖는 흑인 여성. 나는 백인 여성이고 또한 흑인 여성이다.

 

 


2022년 대한민국 제1야당의 대통령 후보이자 여론조사에서 줄곧 1위를 차지하던 윤석열은 여성가족부 폐지를 공약으로 내걸었다. 최대 의석수를 가지고 있던 여당의 대통령 후보이자 여론조사에서 줄곧 2위를 차지하던 이재명은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 는 주장은 현실을 왜곡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가지고 있는 모든 역량을 다 쏟아부었지만, 보수 편향의 언론 환경과 분단의 현실은 0.73%의 차이로 윤석열과 국민의힘이 웃을 수 있게 했다.

 


기표소 천을 들치고 들어가면 항상 갈대처럼 마음이 흔들리던 나. 이번 한 번만, 이번 딱 한 번만 더 도와줘야 해. 작년에는 고민도 없이 기표하고 나왔다. 상황이 너무 엄중해서 고민할 시간도 여력도 없었다. 본 투표 날에는 집에서 6시 개표 방송을 기다렸다. 안타까운 마음을 어쩌지 못해 안절부절못하는 1인에게 그 아쉬운 마음을 조금이라도 덜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줬다. , 그런 방법이 있어요? 얼른 제 방으로 뛰어가 5만 원짜리를 들고 왔다. 그래, 너도 5만원. 나도 5만원.

 


미안해요, 난 선택을 해야했어요. 이번에도 어쩔 수 없었어요, 미안해요. 당신에게는 돈을 보냅니다. 표를 주지 못해 미안해서 돈을 보내요. 선택할 수밖에 없었어요. 다음에는 돈을 보내지 말고 내 표를 줄 수 있기를, 꼭 그럴 수 있기를 바라요. 꼭이요. 그런 마음으로 송금 버튼을 눌렀다.

 

 


각자의 상황은 다르고, 우리는 선택해야 한다. 선택의 책임은 각자의 몫이다. 내가 돈을 송금한 사람은 1980년 서울대학교 최초로 총여학생회를 창설하고, 서울대학교 초대 총여학생회장이 된 사람이고, 내가 표를 준 사람은 중학교 대신 공장에서 10대를 보낸 사람이다. 대한민국의 대통령은 윤석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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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3-02-20 11:29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제가 오늘 제 페이퍼에 단 댓글에도 ‘나의 선택‘이란 워딩을 했는데요, 네 저는 제 선택을 한것이죠. 친구라고 애인이라고 가족이라고 그 선택들이 다 같을 수는 없을겁니다. 그러나 이 페이퍼의 흐름을 따라가다보면, 결국 단발머리 님이 내린 선택과 어떤 미안함이 저랑 그대로 같네요. 당연히 단발머리 님과 저의 선택이 늘 겹치는 게 아니고 다를 때가 더 많겠지만, 이번엔 같았는데.. 그런데 결과는 대통령 윤석열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후아-

오늘 술 한 잔 해야겠습니다... (갑자기 오늘 음주 핑계를 댄다)

단발머리 2023-02-20 11:53   좋아요 6 | URL
전, 연대의 힘을 믿습니다. 반드시 그래야하구요. 작은 차이를 크게 말할것이 아니라 큰 차이, 아예 방향 자체가 다른 것에 대해 명확하게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따뜻한 보수가 가능하다고, 전 생각합니다. 다만 정권 잡은 보수가 노인들에 대한 의료혜택을 축소하고, 군인들 예산을 축소해서 자기 살 집 짓겠다고 할 때, 적어도 그렇게 행동하는 걸 알기는 알아야 하는데....

다락방님과 저의 선택이 같을 수도 다를 수도 있겠지요. 우리의 선택이 달라도 서로에 대한 믿음이 있으니 걱정은 없고요. 한편으로는 우리의 선택이 힘을 얻기 위해서는 더 많은 선택들이 비슷하면 좋겠다, 그런 생각도 해봅니다.

조금만 드셔요~~~ 월요일입니다^^

단발머리 2023-02-20 11:54   좋아요 2 | URL
댓글 고마워요, 다락방님..... 무슨 맘인지, 우리가 서로 어떤 맘인지 알 수 있어서.... 감사해요.

다락방 2023-02-20 12:12   좋아요 4 | URL
어휴 나이 들면서 눈물이 많아져가지고 단발머리 님 댓글 읽는데 코가 찡하네요.
우리의 선택이 달라도 서로에 대한 믿음이 있다는 단발머리 님의 말씀, 저도 꼭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미미 2023-02-20 13:21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인종주의가 먼저냐 성차별이 먼저냐 복잡하게 얽혀 있어서 함께 머리를 맞대고 골몰해야 하는데
결국 선택은 자기 이익과 가깝게 가는 것 같아요. 지금의 제 생각에는 인종주의보다 성차별이 더 뿌리깊고 성차별보다 동물에 대한 착취가 먼저였다고, 전제였다고 보는데요. 공부할 수록 어렵지만 함께 문제의식을 놓지 않다보면 더 나은 생각들이 나오리라 믿습니다. 단발머리님 잘 읽었습니다.^^*

단발머리 2023-02-20 13:59   좋아요 4 | URL
맞아요, 미미님. 결국에 선택은 자기의 이익과 가까운 쪽으로 가는거 같습니다. 가끔 그 간극을 뛰어넘는 분들이 계시기는 한데 그게 생각보다 무척 힘든 일이기도 하구요.
인종주의보다 성차별이 더 뿌리깊다는 미미님 의견에 저도 동의합니다. 동물에 대한 착취 부분은, 이 부분을 제대로 그리고 정확히 인정하는 건 참 어려울 거 같아요. 저는 아직도 그렇더라구요.
문제의식을 놓지 않으면서 오래오래 같이 공부해요, 미미님^^

건수하 2023-02-20 16:5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제 글에 다셨던 단발머리님 댓글과 관련된 내용이 맨 위에 있었네요. 제가 이 글을 뒤늦게 읽었어요. 백인에 가까운 노예... 쿼드룬 (흑인의 피가 1/4 섞인 사람) 이라는 용어도 <톰 아저씨의 오두막>에 나오더라고요. 우아하고 아름답다며... 그게 저런 거였군요.

어휴.. 정말 연결 안 되어 있는게 없네요. 단발머리님 덕분에 오늘도 배우고 갑니다.

건수하 2023-02-20 17:06   좋아요 1 | URL
선택은 자기 이익과 가깝게. 저는 아직 이익이 잘 보이지 않아서 마음으로 선택하고는 있는데..

이재명 민주당 대표 체포동의안 관련해서 박지현 씨 말에
(제가 표결할 건 아니지만) 어떻게 해야할지 난감해지더군요.

단발머리 2023-02-20 17:25   좋아요 2 | URL
수하님 1 / 백인에 가까운 노예... 이 부분에 대해서는 저는 김승섭씨의 <우리 몸이 세계라면>이라는 책이 기억에 남습니다. 수하님 아실지도 모르는데.... 간단히 덧붙이자면.... 한 미국 여성이 남미 여행가려고 여권을 만들기 위해 출생증명서를 떼었는데, 출생증명서에 흑인이라고 기재된 겁니다. 백인인 줄 알고 평생 살았는데 말이지요. 주정부에 자신의 인종 구분을 바꿔달라 청원을 넣었는데 5년간 가계를 추적해보니, 그녀의 할머니의 할머니의 할머니가 흑인 노예였다는 겁니다. 그녀 몸 속에 32분의 3의 흑인의 피가 흐르기 때문에, 그녀는 흑인이라는.... 재판에서 패소했습니다, 그녀는...

수하님 2 / 저 역시 마음으로 선택하기는 합니다. 오래오래 생각하고요. 박지현 씨 말에는 저도 조금 난감하기는 합니다.
(먼 산) (아주아주 먼 산)

공쟝쟝 2023-02-21 23:5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정희진 해제 읽고 가슴이 벅차올라서, 진짜 너무 좋다 이러면서. 읽다 말고 서재켜고 단발머리님한테 댓글달기! ㅋㅋㅋ

˝(15)페미니즘은 그 자체로 모순적인 사상이다. 그러나 이는 페미니즈의 한계가 아니라 어느 사상보다도 복잡하고 깊은 사유를 요구하는 여성주의만의 자원이다.˝

너므 맞는 말 같아요. 왜냐면 제가 진짜 사유를 깊게 한다는 걸 점점 더 느끼고 있거든요!! (물론 가끔 그러다가 몸이 지쳐버리는 날들도 오지만 ....) 어떤 책을 읽을 때, 이게 무슨 못알아 먹을 소리인가.. .이랬던 것들이 이젠 점점 더 깊이 이해하고 있는 나 자신의 읽기가 엄청 성장한 것 같은 그런 기쁨 아시나요? ㅜㅜ (ㅋㅋㅋ 죄송해요 오랜만에 나타나서 잘난척해서..) 이 기쁨을 나누고 싶다.. 쁘아앙. ㅜㅜ

단발머리 2023-02-22 08:05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래요, 우리 선생님 많이 바쁘시더라. 해제 좋을 때마다 선생님! 너무 좋아요! 막 이러면 안 되겠지요 ㅋㅋㅋ 내 서재에 댓글 달아요. 정희진쌤 해제 너무 좋아요 ㅋㅋㅋㅋㅋㅋㅋ

그 자체로 모순적인 사상이라는 걸 깨달아갈때, 더 깊이 이해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할 때 느끼는 희열과 기쁨을 같이 누립시다. 서로에게 레퍼런스가 되고 인용이 되고 출처가 됩시다 ㅋㅋㅋㅋㅋㅋㅋㅋ

바람돌이 2023-02-25 12: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기 흑인여성의 선택의 문제같은건 사실 우리 현실에서도 늘 있어왔던 일이고 부닥치는 문제라고 생각해요. 예전에 민주노총 내에서 성희롱 문제가 발생했을 때 노동운동의 대의를 위해서 묻고가야한다는 의견이 대세였죠. 우리 일상에서 대통령선거에서 누구를 찍을 것인가 하는건 선택의 문제가 맞다고 생각해요. (아 저는 이번에 처음으로 단발님과 같은 사람을 찍었는데 말이죠. 역시 똑 떨어졌습니다. 여태까지 내가 찍은 사람 대통령 되는거 한번도 본적 없음요. ㅠ.ㅠ)
하지만 흑인여성이 자신을 성적으로 억압하는 흑인남성과 연대할 것인가? 아니면 백인여성과 연대할 것인가의 문제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원칙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을 억압하는 사람과 어떻게 연대할까요? 흑인남성이든 백인여성이든 다 말입니다. 그 모두와 싸울 수 있는 연대를 찾는 것이 정답이고 비록 소수라 할지라도 옳은 것을 찾는게 맞다고 생각해요. 여성을 억압하든 흑인 대법관이라.... 누군가를 억압해본 이들은 누구든지 다시 억압할 수 있다. 그리고 자신의 인종을 배신하는 것도 뭐 언제든지 가능하지 않을까 뭐 그런 생각들을 주절이 주절이 해보네요. ㅎㅎ

단발머리 2023-02-28 22:25   좋아요 1 | URL
저는 바람돌이님 의견에 완전 동의합니다. 우리가 직면하는 선택의 문제에 있어서요. 여태 찍은 사람 대통령 되는거 한 번도 본 적 없으시다니... 슬픔이 사무칩니다.

자신을 억압하는 사람과 연대하는 문제에 있어서는 바람돌이님과 제 의견이 다른 거 같아요. 바람돌이님은 ‘그 모두와 싸울 수 있는 연대을 찾는 것이 정답‘이라고 하셨고 ‘비록 소수라 할지라도 옳은 것을 찾는게 맞다‘고 하셨는데요. 저 같은 경우는, 저는 이 부분에서는 한결같은 편인데요. 어느 쪽으로든 ‘그나마 나은‘ 쪽을 선택해 연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옳은 생각을 나눠가진 딱 한줌의 사람들로는 세상을 바꿀 수 없다고 생각하고요, 그나마 말 통하는 사람들과 ‘공통 분모‘를 찾아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런 점에서 흑인 여성들의 고민은 참으로 깊고 또 애닳다 하지 않을 수 없겠습니다.

제가 이번주에 정신이 없어서 댓글이 많이 늦었어요. 이번주는 바람돌이님 바쁘시고 ㅎㅎ 다음주에도 바쁘실 예정이신거죠?
또 다른 시작 응원합니다!!

우끼 2023-03-02 23: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혹시 흑인페미니즘 사상 이 책 구매해서 읽으셨는지요…?? 읽으려고 검색해보니 품절인데 중고책은 두배 이상 가격이네요 ㅜㅜ

단발머리 2023-03-02 23:21   좋아요 1 | URL
네에… 전 2020년에 구입했는데 품절되었군요 ㅠㅠ 도서관을 찾아보시면 어떨까요? ㅜㅜ

우끼 2023-03-02 23:35   좋아요 1 | URL
네 ㅠㅠㅠㅠ 답변감사합니다!!! 제가 늦었네요..

단발머리 2023-03-02 23:37   좋아요 1 | URL
우끼님이 늦으신게 아니라 ㅠㅠ 이 좋은 책이 품절된게 이상한 일이죠. 혹 개정판 나오지 않을까요? 정보가 1도 없지만 그렇게 믿고 싶네요 ㅜㅜ
 

















1. The Message 메시지 구약 시가서

 

연초마다 세우는 올해의 계획은 매년 비슷비슷하다. 성경 읽기와 영어 공부. 다이어트는 아니다. 성경 읽기와 영어 공부와 다이어트를 포함하지 않는 운동. 야무지게 읽어보겠다고 오더블도 구입했다. 오더블은 몇 달 이용하다가 환율이 너무 올라서 멤버십을 취소했는데, 작년 말에 4개월 동안 7.9 달러라고 해서 다시 가입했다. 신구약을 통틀어 가장 길고, 가장 장수가 많은(150) <시편>은 내게는 좀 특별한 성경이다. 길지 않은 인생, 말이 안 나오게 답답한 순간마다 시편을 펴서 읽는다. 미운 사람이 너무 미울 때 시편을 읽고, 기도가 안 나올 때 시편을 읽는다. 기쁨과 원망, 탄식과 기도, 노래와 찬양이 가득한 구절들 속에서 내 영혼은 잠깐 쉴 틈을 얻는다. 시편 49 20절은 시편 49 12절과 똑같다.

 


We aren’t immortal. We don’t last long. Like our dogs, we age and weaken. And die.

(Psalms 49 : 20)

  


















2. Josh and Hazel Guide to Not Dating

 

친구들과 함께 읽는다. 두 사람이 공동으로 집필한 책이지만 두 사람이 오롯이 녹아 있어서 그 사실을 모르고 읽는다면 당연히 눈치챌 수 없을 것이다. Christina Lauren도 필명이다.

 


I’m far more my mother’s daughter than my father’s, personality-wise, but I look exactly like my dad : dark hair, dark eyes, dimple in the left cheek, wiry and not as tall as I’d like to be. Mom, on the other hand, is tall, blond, and curvy in all the best snuggly-mom ways. (36p)


 

유전에서는 우와 열을 가르는 게 의미 없는 일이고, 그걸 선택하는 일도 불가능하다. 가까운 미래에 그게 가능해질 거라는 전망이 있기는 하지만 우리 세대에서 그게 어느 정도 가능할지는 모르겠다. 주인공 헤이즐은 외모는 아빠 판박이지만 성격은 엄마 쪽이다. 그 반대였으면, 하는 생각을 1초간 했다.

 

큰아이는 외모도, 성격도 제 아빠를 닮았다. 두 사람은 서로를 깊이 이해하지만, 한 번 싸우면 오래 간다. 작은 아이는 외모는 제 엄마와 아빠를 반씩 닮았고, 성격은 제 엄마를 닮았다. 우리 집에서 인기가 제일 많다. 나는 외모도, 성격도 아빠를 닮았다. 사고방식, 생활 태도, 인생관 자체가 비슷하다. 엄마가 나를 앞에 앉혀놓고 아빠 욕할 때, 팩폭처럼 느껴져 불편할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엄마는 나를 사랑하고, 아빠를 싫어한다.

 




 













3. 눈먼 자들의 도시

 

모든 사람들이 눈멀었을 때 눈 뜬 사람, 사람들의 눈이 떠졌을 때 눈이 멀었던 단 한 사람. 지옥 같은 현실 한가운데서 윤리와 책임감, 용기와 연민이 그 여인 한 사람에게로 모인다. 인류 최후의 구원자는 여성이며, 여성일 수밖에 없음을 보여주는 소설.

 

그 용감한 여인의 남편이 싫다. 나쁜 데다가 비겁한 그 의사가 싫다.

 





 












4. 누가 민족국가를 노래하는가

 


주디스 버틀러와 가야트리 스피박의 대담집이다. 아렌트의 국가 없음개념을 중심에 두고 논의한 것임을 모르고 시작했다. 아렌트 님 너무 많이 나오신다. 특이 사항은 판형이 작고 분량이 적다는 것(140). 한 자리에서 후루룩 읽을 수 있겠으나, 나는 그러지 못했고. 버틀러와 스피박이 누가 누가 더 어렵게 이야기하나 대결하는 건 아닌데, 쉬운 내용은 아니어서, 중간중간 건너뛰며 읽었다.

 


아렌트가 고대 그리스 도시국가의 사적인 영역(유색인종과 노예, 아동, 그리고 참정권이 없는 외국인이 물질적 삶의 재생산을 책임지는 영역)을 정치의 영역 밖으로 이해함으로써, 여러 인간 존재들의 배제를 통해 정치의 영역을 구성했다, 고 버틀러는 지적한다(23). 정체성의 정치 반대편에 서 있던 아렌트가 유대인도, 페미니스트도 될 수 없었던 것이 바로 이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유대인의 비극을 정치체의 부재때문이라고 했을 때, 아렌트가 대안적 정치체로 생각한 것은 연방주의(30)였다고 버틀러는 말한다. 『전체주의 기원』을 3분의 1밖에 읽지 못한 나로서는, 그 책을 얼른 읽고 이 책으로 다시 돌아와야겠다는 생각뿐이다.  

 


자본의 전 지구화와 민족국가의 쇠퇴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스피박은 국가의 재발명이 민족 국가를 넘어 비판적 지역주의critical regionalism로 진행한다고 보았다(76). 다국적 자본의 힘이 개별 국가의 힘을 넘어서서 실제로는 경제권을 통한 전 세계적 만능 통치가 가능한 현재 상황에서 오래 고민해봐야 할 문제인 건 확실한 듯하다.

 


버틀러의 이 문단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 정확히는 이 문장. “하지만 자유를 요구한다는 것은 분명 이미 자유를 실행한 것입니다.”

 


다시 말해, 내가 '나는 자유롭다'라고 말한다고 해서 그 수행적 발화 자체가 당장 나를 자유롭게 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자유를 요구한다는 것은 분명 이미 자유를 실행한 것입니다. 또한 이를 적법하게 받아들일 것을 요청하는 행동은 자유의 행사와 현실의 간극을 공적 담론 안에서 공표함으로써 그것을 가시화하고 결집시킵니다. (68)

 


버틀러의 말을 잘 이해한다거나 버틀러의 사상에 크게 감동받아서는 아니고. 그냥. 버틀러는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이라서, 그래서 읽는다. 내 스타일이다, 그냥 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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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3-02-17 09:1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오, 저 버틀러가 단발머리 님 스타일이라는 거 너무 잘 이해하겠는데요, 왜냐하면 저 사진을 보고 그걸 이해하지 못하기란 쉽지 않은 일 같으니까요. 그런데 바로 밑에 스피박 보니, 오, 저는 스피박이 좋네요. ㅋㅋㅋㅋㅋ 스피박 좋은데요? 스피박이 제 스타일인 걸로... ㅎㅎㅎㅎ

버틀러와 스피박의 대담집이라니, 와 진짜. 멋짐의 끝판왕이네요. 140쪽이라니 저도 사고 싶지만, 읽을 자신이 없으므로 살짝 보류하겠습니다.

‘We aren’t immortal. We don’t last long. Like our dogs, we age and weaken. And die.‘
이 문장 세 번 읽고 갑니다.

단발머리 2023-02-17 10:18   좋아요 1 | URL
너무 잘 이해가 된다고 하시니 저도 좋기는 한데.... 아, 나만 좋아해야 하는데, 그런 맘도 있습니다. 하하하. 두 분 너무 멋져요. 이런 대화가 있어요.

버틀러 : 제가 너무 오래 얘기하는 것은 아닐지 모르겠네요. 덧불이실 얘기가 많이 있겠지요?
스피박 : 하고 싶은 만큼 말씀하세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 책의 제일 주요한 논의 지점은 아렌트의 ‘국가 없음‘입니다. 고로 안 사셔도 되지만 다락방님 읽어야만 하는 책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오늘의 표현 : We aren’t immortal. We don’t last long. Like our dogs, we age and weaken. And die.

잠자냥 2023-02-17 10:3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 그런데 갑자기 드는 궁금함.... 다락방 그 인간은 요즘 성경읽기 안 하나 봐요?

단발머리 2023-02-17 11:28   좋아요 2 | URL
작년에 1독을 마치셨습니다. 다락방 그 인간 ㅋㅋ아, 역시 저한테는 착착 안 붙네요.
다락방 그 분이요 ㅋㅋㅋㅋㅋㅋ 올해는 안 하시는 듯 ㅋ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23-02-17 11:27   좋아요 1 | URL
1독을 끝냈고 2독을 마음 먹고 있습니다만, 한 번 시작하면 매일 해야 하기 땜시롱 시작을 못하고 있습니다. 백수 되면 하려고요... (먼 산)

다락방 2023-02-17 11:28   좋아요 3 | URL
그리고 저 바빠요. 소설도 써야 돼요... (어쩐지 달려나간다)

단발머리 2023-02-17 12:27   좋아요 0 | URL
웅웅 바쁘시더라구요 ㅋㅋㅋㅋ 기대만발입니다. 다음회에 계속되는 빨간 ❤️이야기 ㅋㅋㅋ 아, 알라딘 이름 잘 지었네. 투비컨티뉴드 ㅋㅋㅋㅋㅋㅋ

바람돌이 2023-02-17 23: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저 두분 사진 처음보는데요. 두분 분위기 비슷함요. 거기다가 너무 우아한거 아니예요? 제가 갖고 싶은 분위긴데 왜 나는 나이들수록 코믹버전만 늘어가는가말이죠. ㅠ.ㅠ
누가 민족국가를 노래하는가? 저 역시 노래 안합니다. ㅎㅎ

단발머리 2023-02-20 11:22   좋아요 0 | URL
그르죠? ㅋㅋㅋㅋㅋㅋ 저는 버틀러를 좋아하고 스피박을 좋아합니다. 두 분의 공통점이라면 우아한 모습. 그리고 어려운, 너무나도 어려운 텍스트...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
저는 코믹을 추구하는 1인으로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바람돌이님!! 반갑습니다!!

서니데이 2023-03-13 17: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단발머리 2023-03-13 20:45   좋아요 1 | URL
서니데이님 축하 댓글 감사해요! 편안하고 행복한 저녁 시간 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