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 그렇듯, 빼앗기듯 3월을 보내고, 정신차리니 4 3. 야구장 가느라 4.3. 기념식 안 간 게 아니라, 매년 가기 그래서 올해는 안 간다는 대통령. 말을 말아야지.

 


저번 주 월요일에, 출판사와 통화를 했다. 내 질문은 두 개였는데, 원서에서 볼 수 없었던 <chapter 15&16 : 아담>편은 어떻게 들어간 것이냐. 그 텍스트를 어디에서 구할 수 있느냐. 담당자가 퇴사해서(무슨 일이든, 어디든. 전화를 하면, 담당자는 항상 퇴사를 했다), 시간이 조금 걸릴 거라 했는데 답은 예상보다 빨리 왔다. 한국판 번역 작업 중에 저자가 해당 챕터를 추가로 넣기를 원해서 원고를 받았는데, 견본으로 받은 책이 4쇄여서, 20229월 이전에 구입한 원서라면 해당 챕터가 포함되지 않았을 거라 했다. 이어서 원고는 저작권사의 재산이어서 보내줄 수 없다고 했다. 저는 어디에서 구할 수 있느냐 물었지, 무료로 달라고는 안 했는데요, . 답장을 받기 전에 알게 되기도 했고요.


 

Three irresistible short stories by Ali Hazelwood the New York Times and Sunday Times bestselling author of TikTok sensation THE LOVE HYPOTHESIS, now available in paperback for the first time with a new, exclusive, bonus chapter.

 


a new, exclusive, bonus chapter. 바로 이거고, 그게 이거다.

 


전에는 감히 희망을 품지 않았으니까. 원래 애덤은 자기 자신에게조차 거짓말을 안 하는 타입이고, 이 상황극이 9 29일에 별 탈 없이 끝나리라는 망상을 품는 건 위험한 발상이니까. 하지만 올리브가 그를 믿는다면 그를 믿는다면야.

 


어쩌면 지금은 아닐지 모른다. 앞으로 당분간도, 올리브는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있고, 이런 일은 시간이 걸리게 마련이니까. 하지만 내년에는 두 사람 다 여기 보스턴에 있을 거고, 어쩌면, 올리브가 이미 그를 믿고 있다면, 어쩌면 애덤이 보살펴주게 해줄지도 모른다. 대가로 바라는 건 없다. 애덤을 사랑해줄 필요도 없다. 애덤이 두 사람 몫으로 사랑하니까. 하지만 그를 믿는다면...  (431)

 

 



 



 











































3월에는 이렇게 읽었다. 많이 못 읽었지만 그래도 읽긴 읽었다. 반 정도 읽거나 관심 챕터만 읽은 책도 몇 권 된다

유랑의 3. 3월이 이렇게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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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YDADDY 2023-04-04 09: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지속성의 기간을 제외하면 사랑의 끝은 언제나 이별이라는 것을 알기에 최소한 책이나 영화에서만은 해피엔딩으로 끝나길 바라는 것 같아요. 애덤과 올리브도 행복한 결말이면 좋겠어요. ^^

단발머리 2023-04-12 20:03   좋아요 1 | URL
애덤과 올리브는 더할나위 없이 행복한 결말이었습니다. 일단 결혼 전이고, 사귄지 1년째라서 그런거겠지요.
현실에서는 이런 행복이 어려우니까요. 저도 대디님처럼 행복한 결말을 응원하게 됩니다^^

건수하 2023-04-04 09:1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좌파의 길 다 읽으셨군요 ^^ 저보다 많이 읽으신 것 같은데..!!

4월 초반 조금 우울하긴 한데, 중반에도 생각이 많아질 것 같지만... 그래도 3월보다 더 충만한 독서 하시기를요.

단발머리 2023-04-12 20:09   좋아요 1 | URL
수하님의 4월 독서 응원합니다. 보부아르와 아렌트, 불굴의 지성사를 탐구하시는 충만한 4월 되시길용!

건수하 2023-04-12 20:58   좋아요 1 | URL
4월까지 보부아르, 5월에는 아렌트를 읽겠습니다! 🤭

다락방 2023-04-04 09:5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 사랑의 가설 팔아버린 거 왜이렇게 후회되죠? ㅋㅋㅋㅋㅋㅋㅋ 제가 너무 후회되기도 하고, 번역서 읽었으니 원서 좀 읽을 수 있겠지 싶어서 원서를 딱 꺼내왔는데, 펼쳤는데, 잘 모르겠더라고요? 아 어찌나 닫고 싶은지..

아무튼 이번주에는 이번 주의 원서를 읽어야 합니다... 아직 펼쳐보지도 않은 1인..

단발머리 2023-04-12 20:11   좋아요 0 | URL
사랑의 가설, 너무 좋습니다. 저는 애덤 같은 성격 너무 소극적이라 별로인데 (저돌적 사랑 좋아하는 편) 일편단심에 30점 추가합니다. 후회하지 마시고요 ㅋㅋㅋㅋㅋㅋㅋㅋ 오늘은 오늘의 원서를^^

바람돌이 2023-04-04 15:3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 책 원서로 보시는 분들이 하도 이야기를 많이 하셔서 저는 한국어판으로 한번 보려고 지금 도서관에서 대출해왔어요. 왠만하면 로맨스는 이제 그만 보려 했는데 말이죠. ㅎㅎ 아 원서와 한국어판에 다른 부분을 찾아내고 그걸 출판사에 또 알아보는 이 극강의 부지런함과 앎의 욕구 - 진짜로 존경해요. 단발머리님. ^^

단발머리 2023-04-12 20:14   좋아요 1 | URL
바람돌이님의 솔직담백한 평을 듣고 싶어요. 저는 애덤을 사랑합니다 ㅋㅋㅋㅋㅋ 진심이에요.
애덤이 로맨스 주인공으로 괜찮은지, 바람돌이님은 좋아하게 되셨는지 자세한 리뷰 부탁드려요. 출판사에 전화하는 극강 부지런함과 앎의 욕구는 챕터 15, 16이 sex scene이였기 때문이었음을 알려드리며 ㅋㅋㅋㅋㅋㅋㅋ

바람돌이 2023-04-13 11:25   좋아요 1 | URL
매우 매우 슬프게도 저는 저 책을 50페이지쯤 읽다가 그냥 도서관에 반납했습니다. 그동안 지나치게 많은 로맨스를 읽은 관계로 수많은 클리세를 섭렵한 결과 아 그냥 뻔하겠구나싶은..... 그래서 본격적인 러브라인까지 못가고 말았네요. ㅠ.ㅠ
단발머리님 아직 매우 젊음요. 섹스신에 앎의 욕구를 분출하시다니..... ㅋㅋ 저는 이제 그런 의욕도 안생기는군요. 이렇게 쓰고 나니까 또 저는 왜 저 자신이 안스러운 것일까요? ㅎㅎ

독서괭 2023-04-04 17: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단발님도 비교적 적게 읽으셨군요! 3월, 다들 바쁘신 모양입니다. 출판사에 전화하여 답을 받으시고 공유해주시니 좋네요. 최근 나온 원서를 새로 사셔야 추가된 부분 볼 수 있는 건가요..
사랑충만 당충만 ㅋㅋ

단발머리 2023-04-12 20:17   좋아요 1 | URL
최근 나온 원서를 새로 사셔야 추가된 부분을 볼 수 있다고 해서 그 책 구입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벌써 일주일째 고민만 하고 있어요. 왜냐하면 사랑과 당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독서괭님 독서도 응원합니다. 토지와 제2의 성, 제인에어를 넘어 어디로 가실지 너무 기대되는 거 있죠?

2023-09-28 14: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9-28 14: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ygy7130 2023-11-27 13: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궁금했던 부분인데 알려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단발머리 2023-11-27 21:12   좋아요 0 | URL
도움이 되셨다니 다행입니다 ㅎㅎ
 
당신이 무의식으로 흘려보낸 기억을 찾아드립니다
사랑의 가설
앨리 헤이즐우드 지음, 허형은 옮김 / 황금시간 / 2022년 1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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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이 책을 다시 읽는데 참 좋았다. 여러 번 읽었고 오디오북으로도 여러 번 들었는데, 이번에 번역본으로 읽으면서 내가 얼마나 띄엄띄엄 읽었는지 확인할 수 있었고. (다시 보니 좋은 상황이 아니라 슬픈 상황이다). 새로운 이야기처럼 읽혀서 좋았다.

 


사건의 주도권이 올리브에게 있어서 좋았다. 로맨스의 기본 규칙, fake-relationship이 이루어질 때, 관계를 시작한 사람(다짜고짜 키스)이 올리브였고, 그 관계를 끝낸 사람이 올리브여서 좋았다. 책 뒷부분에서 애덤이 올리브를 오랫동안 짝사랑해왔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올리브가 학교에 입학하기 전부터 시작해 이후 3년 동안, 올리브를 너무나 좋아했지만, 올리브와 자신이 같은 학과이고, 교수인 자신에게 박사과정 학생인 올리브가 부담을 느낄까 봐 애덤은 애정을 전혀 표현하지 못한 터였다. 가짜 연애를 시작한 후, 올리브의 마음을 얻기 위한 애덤의 분투가 펼쳐진다. 자연스럽게 그러면서도 부담스럽지 않게. 꼼꼼하게 그리고 다정하게. 두 사람 앞에 장애물이 나타났을 때, 올리브는 그를 위해 자신의 불편함을 감수하기로 결정한다. 진실을 말해서 그의 커리어에 방해가 되느니, 차라리 거짓을 말하면서 그와 헤어지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그렇게 행동한다. 그 결정이 어리석은 것이었거나 혹은 애덤의 본심과 동떨어진 것이었다 해도, 당시 올리브 생각에는 그게 최선이었다. 올리브는 그를 위해 그렇게 행동한다. 주도권. 두 사람 관계의 주도권을 가진 사람이 올리브여서, 나는 그게 좋았다.

 



생각해보니, <제인 에어>에서 내가 좋아하는 장면도 그 장면이다. 집시 여인으로 변장해 제인의 마음을 떠보려 했던 로체스터와 제인의 대화 장면이나 제인과 로체스터가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는 장면, 두 사람의 재회 장면이 아니라. 내가 제일 좋아하는 장면은 제인이 로체스터와 이별하는 장면이다. 하나님이 정해둔 법을 말하며 제인이 로체스터와의 결혼에 응할 수 없음을 말하고, 로체스터가 그녀의 발 앞에서 간청했을 때, 그를 위로하는 제인을, 하지만 결국에는 그를 떠나는 제인을, 나는 그런 제인을 사랑한다. 당신을 용서합니다. 그리고 나도 당신을 사랑해요. 하지만, 나를, 당신을 사랑하는 나를, 당신에게 줄 수는 없어요.

 

 


여주인공이 쥐고 있던 주도권을 남주인공이 결정적으로획득하는 지점은 두 사람 사이에 섹스가 중심으로 떠올랐을 때다. 올리브와 애덤의 뜨거운 밤이 생생한 챕터 16 초반, 주도권은 분명 올리브에게 있다. 하지만, 이내 주도권은 애덤에게로 넘어간다. 시작한 사람은 올리브지만, 실행한 사람은 애덤이다. 먼저 손을 뻗은 사람은 올리브지만, 상황을 이끌어간 사람은 애덤이다. 경험 많은 애덤과 경험 없는 올리브의 모습이 겹쳐지면서 이런 상황은 점점 더 강화된다.

 


제인과 로체스터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제대로 된, 남자 같은 남자를 만나본 적이 없는 제인과 기혼자일 뿐만 아니라 전 세계를 돌며 방탕한 생활을 일삼던 로체스터는 나이, 계급, 재산의 차이뿐 아니라 성적 체험이라는 측면에서 극명한 대조를 보인다.

 








<브리저튼 시즌 2>에서는 섹스를 가르쳐주는남주와 섹스를 배워가는여주의 모습이 그려진다. 백작 신분의 남주와 조금 더 낮은 신분의 여주를 비교하는 것이 마뜩짢다면, 안소니와 그의 여동생 다프네를 비교해도 되겠다. 풍부한 성적 경험이 매력이고 강점이 되는 남성에 비해, 같은 신분에 속한 여성에게 성적 경험은 인생 최대의 약점으로 기능한다. 결혼으로 구제되지 않는, 결혼으로 마무리되지 않는 여성의 성적 경험은 곧 파멸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알라딘의 케미스트리 리딩 친구는 양자오를 잊어버린 나를 안타까워하며 훌륭한 글을 써주었는데(https://blog.aladin.co.kr/jyang0202/14466029 : 당신이 무의식으로 흘려보낸 기억을 찾아드립니다/쟝쟝님)그 글은 재미있고 유익하고, 나는 친구에게 참 고맙지만. 고맙지만, 나는 우회전 안 하고 좌회전했다. 양자오를 지나쳐 애덤에게로 갔다. 정신 분석이라는 장대한 위업 앞에서 연구 대상 무의식이 아니라 탐구 생활 섹스에게로 갔다.

 

 


리드 모어 하고 싶다. 독서대가 큰 도움을 주어야 한다. 도움이 많이 필요하다고 한다. <인간의 우주적 초라함과 삶의 부조리에 대하여>를 고민하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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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쟝쟝 2023-03-31 00:3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봄에는 섹스생각 금지입니다! 단발님도 조심하세요! 섹스는 위험해서 아이를 부릅니다! ㅋㅋㅋㅋ (프로이트는 섹스를 빼놓을 수 없죠…. 리비도… 성충동이란?…!!)
음음 ㅡ 배워가는 여주와 배워주는 남주사이의 사랑에 대한 관심이군요?! 저는 이런 종류의 이성애를 전부는 아니지만…. 일부는 여성의 권력의지라고 읽어요.(이건 사실 내가 그랬던 것 같아요. 저도 뭔가를 가르쳐주는 남자를 꽤 오랫동안 좋아한 적이 있었는 데, 나중에 그 남자가 아니라 그의 위치와 권위를 내가 갖고 싶은 거였고, 내가 그 자리에 가게 되자 그 남자 좋아하던 맘이 짜게 식음ㅋㅋㅋㅋㅋ 이상형이란 내가 되고 싶은 사람이구나 했어요 ㅋㅋㅋ 그 후론 잘생긴 남자만 좋아했다 ㅋㅋㅋ) 그러니 섹슈얼리티가 통제되던 시절의 여성은 정말 무기력했을 것 같다능….ㅠㅠ… 현실에서는 여자들이 자아실현을 더 많이해서 권력을 더 많이 가지면 조금 완화될 거라고 생각해요. (응?) 일전에 교수와 자는 여학생에 대해서도 ㅋㅋㅋ 살짝 이야기 나왔던 것 같은뎅… 늦은 밤에 탐구는 깊은 숙면에 도움을 주지 못하기 때문에 댓글은 이쯤 합니다 ㅋㅋㅋ

단발머리 2023-04-03 20:44   좋아요 1 | URL
쟝님의 이 댓글 내용 그대로 ㅋㅋㅋㅋㅋㅋ <섹스할 권리>에서 저자 아미아 스리니바산이 이 문제를 다루죠. ˝여학생의 경우, 교수처럼 되고 싶다는 마음과 교수의 관심을 얻는 것을 혼동할 위험을 가지고 있다.˝ 요즘에는 상황을 더 잘 이해하는 여성들이 많아진 건 사실이지만, 아직 나이가 어리고 경험이 부족한 여성에게 이건 상당히 어려운 문제일 수 있구요. 한편으로 극히 개인적인 문제로 여겨질 테니까요.

열일곱의 한나 아렌트가 생각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오늘밤도 숙면은 어렵겠네요 ㅎㅎㅎㅎㅎ

2023-03-31 00: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4-03 20: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난티나무 2023-03-31 23:2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주도권과 섹스! 캬!!!!!!!

단발머리 2023-04-03 20:45   좋아요 0 | URL
섹스에서의 주도권에 대해서는 저는 할말이 많기는한데 머리속이 복잡하기만 하고 잘 정리가 안 되네요.
언젠가 도전해보겠습니다. 그전에 <포르노그래피> 읽으면 좋을텐데요 ㅎㅎ

다락방 2023-04-03 08:3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 이 글 읽고 있는데 다른 부서 직원이 인터폰으로 절 찾아서 급 분노할 뻔 했어요. 아주 재미있게 읽고 있었거든요.

얼마전에SNS 에서 영어책 읽을거면 로맨스 말고 청소년 소설을 읽으라는 글을 봤거든요. 그런데 저는 단발머리 님도 그렇고 저도 그렇고 로맨스를 앞으로 더 읽어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원하는 만큼 읽어도 된다고 생각해요. 원래도 그렇게 생각했지만 단발머리 님의 이 글을 읽고나니 더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어휴 진짜 단발머리 님 좋아 너무 좋아 짱 좋아. 만세입니다. 책은 역시 읽는 사람의 몫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우린 계속 읽고싶은만큼 로맨스 읽읍시다, 단발머리 님!

저는 오늘 케이트 밀렛의 성정치학 읽으면서 언급되는 ‘밀‘과 ‘러스킨‘ 부분에서 브리저튼 시리즈 또 생각했거든요. 로맨스 소설을 읽으면서 생각하는 것들만 적어두어도 사회학 혹은 인문학 책들이 만들어질 것 같아요. 단발머리 님의 이 글 읽으니 씐나요!!

단발머리 2023-04-03 20:50   좋아요 0 | URL
다락방님 말씀에 다 동의해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저는 어려운 책보다는 쉬운 책을 읽을 때, 더 빨리 읽게 되어서요. 양이냐 질이냐의 문제에서, 저처럼 ‘분량‘ 순수하게 물리량으로서의 양을 중시하는 사람은 로맨스를 읽는게, 그러니까 좋아하는 분야를 읽는 게 맞는 것 같아요.

로맨스도 그렇지만 소설이 어떤 장르보다 삶을 투명하게 보여주니까요. 저는 그것 자체로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로맨스는 특히 남녀 관계를 중심으로 놓고 이야기를 써내려 가다보니 여성주의와 닿는 부분이 많은 거 같아요. 락방님이 허락해 주셔서 ㅋㅋㅋㅋㅋ 오늘밤에도 로맨스 소설 하나 살까 생각중입니다. 화끈하게 뜨겁고, 아이스크림처럼 달콤한 ㅋㅋㅋㅋㅋ

다락방 2023-04-03 22:09   좋아요 1 | URL
뭐 샀는지 공유 부탁합니다. 저도 참고하게요 ㅎㅎ
 


 















언제였는지 기억도 가물가물한데 정희진 선생님은 화이트보드에 마르크스프로이트를 나란히 쓰셨다. 근대, 구조, 개인 등에 대해 말씀하시던 중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적어도 이 두 사람의 사상 정도는 알고 있어야 한다고 하셨다. 마르크스는 물론 프로이트도. 내게는 너무 먼 당신이여, 머나먼 당신 그대 프로이트여.

 















프로이트를 생각하면, 제일 먼저 프로이트 본격 비판서(?)’인 베티 프리던의 <여성성의 신화>가 생각난다. 엄격한 도덕관념과 여성 혐오가 지배하던 빅토리아 문화 속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었던프로이트와 그의 이론은 그 시대 여성이 간절히 원했던 것이 남근이 아니라, 남근을 가진 사람들이 마음껏 누리는 자유와 지위(232)”였음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고 프리던은 비판했다.

 















프로이트 하면 빼놓을 수 없는 필립 로스. 남녀 사이의 성적 긴장이야말로 이 세상 가장 중요한 일이며, 섹스야말로 남녀 사이의 가장 긴급한 용무라는 그의 주장. 뼛속까지 프로이트주의자. 프로이트와 연결해서 보자면 결정판은 역시 <포트노이의 불평>이 될 것이다.

 
















아는 것이 힘이 아니라 아는 것이 섹스라는 기발한 주장은 <프로이트 패러다임>에 나온다. 2020년 당시, 엄청 유행하던 ‘syo님표 프로이트 리스트중 하나다.

 


 적당한 말이 없어서 일단 인식애적인 충동이라고 번역했는데 원래는 지식을 좋아하는 충동입니다지식을 대상으로 하는 충동인 것이죠.

지식을 좋아하는 충동물론 이 충동은 당연히 성적인 충동입니다성적인 충동 중에는 구강 충동이나 항문 충동이 있듯이 인식애적인 충동이 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입이나 항문으로 충동 활동을 하듯이 머리로 하는 충동 활동이 있다는 것이죠그런데 이것이 단순히 지식욕은 아닙니다여기서 지식을 좋아하는 충동이란 뭔가를 알고자 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지적인 욕구이긴 한데그것이 곧 성적인 충동의 일종인 경우입니다.  아는 것이 힘이 아니라 아는 것이 섹스가 되는 경우입니다뭔가를 알고자 하는 욕구가 곧 성적인 충동의 연장선상에서 작동하는 것입니다지식이 곧 성적인 충동의 대상이 되는 경우죠. (157)


 















양자오의 <꿈의 해석을 읽다>도 프로이트 사상을 대략 이해하는 데는 큰 도움이 되었으나, 지금은 다 잊어버렸다는 안타까운 소식이다.

 

다윈주의에서 받은 영감과 암시에 따라 프로이트는 이렇게 주장한다사람이 사람인 이유, 인간이 다른 생물과 다르게 진화의 최첨단에서 고등생물로 진화할 수 있었던 이유는 우리가 한편으로 강렬한 성욕을 가졌음에도 다른 한편으로 성욕을 억압하고나아가 성욕이 품고 있는 거대한 잠재력을 다른 곳에 쓰도록 자극할 수 있기 때문이다(131).


 















(미리 읽어 두어) 뿌듯한 책은 <인간 모세와 유일신교>이다. 한나 아렌트의 <전체주의의 기원>과 닿아 있는 부분이 있어 확인한다고 꺼내 두었다. 프로이트 저작은 이 책, 딱 한 권 읽었다. 192, 책은 작고 두께는 얇다. 다음 책은 <늑대 인간>으로 찜해 두었다.

 

















(이제야 나온다) 이 책 <프로이트를 위하여>는 프로이트를 사랑하고 존경하는 츠바이크의 애정이 곳곳에 묻어나는 책이다. 1부는 프로이트 평전이고, 2부는 두 사람 간의 편지 & 엽서. 그리고 3부는 프로이트에 관련된 서평, 추모 연설 등을 묶어 두었다.

 


질병의 유일한 원인이 이었던 시대, 치료 또한 에게 기댈 수밖에 없었던 시대가 끝나가고 있었다. 현대 의학은 종교적인 것, 마법적인 것과 분리되었고, 이제는 일종의 과학으로서 대학에서 연구되기 시작했다(26). 과학적 의학에서 주도권은 의사가 쥐고, 오직 의사만이 치료의 주체가 된다. 기적적 치유의 탈신비화에 맞서 싸운(30) 첫 번째 사람인 파라켈수스는 이러한 현실에 반대한다.

 


'취급Behandlung'이라는 단어에 문제의 핵심이 놓여있다. 다시 말해 과학적 의술에서는 환자가 대상으로 취급되는 behandel' 반면, 영적 치유는 환자에게 우선 그 자신이 영적으로 '행위하기handeln'를 요구한다. 그 자신이 '주체'로서, 치료의 담당자이자 실행자로서, 질병에 맞서 할 수 있는 한 최대의 능동성을 펼쳐 보이라는 것이다. 스스로 영적으로 떨쳐나서라, 의지의 통일에 집중해라, 자신의 존재 전체를 질병 전체를 향해 내던져라, 하는 환자를 향한 이 호소 속에 모든 정신적 치유의 본질적이고도 유일한 치료제가 존립하며, 그렇기에 많은 경우 치료사의 치료 행위는 다름 아닌 말하기에 국한된다. (33)



 




수술과 약물을 통해서가 아닌 말하기를 통한 치료. 이 황당하고 불가능해 보이는 치료법 앞에서 일부는 부정적 감정을 드러냈고, 일부는 혐오의 시선을 보이기도 했다. 과학적 성과와 결과물, 객관성에 역행하는 사기꾼, 거짓말쟁이. 성의 문제를 에둘러 표현하지 않고 온 사회에 맞서 정면승부를 벌였을 때는 그에 대한 비난이 한층 더 고조되었다. 프로이트는 끝내 정교수가 되지 못했다. 궁정 고문관도, 추밀 고문관도 되지 못했다. 정교수들 사이의 비정규 교수, 끝까지 프로이트는 비정규 교수였다. (90)  

 



프로이트를 비난하기는 얼마나 쉬운 일인가. 츠바이크는 정신 분석의 한계를 지적한다. 프로이트가 주장한대로 소수정예의 훈련된 전문가를 통한 정신 분석만이 치료 효과를 낼 수 있다고 말했고, 프로이트의 정신분석 기술이 심리 치료 영역에서 최종적이자 결정적인 것은 아니라는 점을 명확히 짚어냈다.(146)

 


하지만 츠바이크는 더 많은 시간 공을 들여 프로이트의 공로를 치하한다. 무의식이라는 대륙의 발견이 어떤 의미인지, 기존의 관념을 깨어 부수기 위해 온 사회와 맞서 혈혈단신으로 싸우는 일이 얼마나 힘든지를 말한다. 타협하지 않는 의지의 소유자, 프로이트와 같은 불굴의 의지를 가진 자만이 이루어낼 수 있었던 역사적 성과들을 꼼꼼히 되짚는다. 프로이트의 천재성과 위대함에 감탄하게 된다면, 그 반은 츠바이크의 몫이다.

 


그러나 로고스, 창조력을 지닌 말이 어떤 기적을 일으킬 수 있는지, 입술이 허공 속에 일으킨 그 마법적 진동이 얼마나 많은 세계를 일으키기도 하고 허물기도 했는지를 아는 사람이라면, 다른 모든 영역과 마찬가지로 치료술에서도 오로지 말로 인해 진짜 기적들이 수없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에, 위로의 말과 눈길만으로 인격이 인격에게 보내는 그 신호만으로, 오로지 정신에 의해, 때때로 완전히 망가져버린 기관들이 다시 한 번 재건된다는 사실에 그다지 놀라진 않을 것이다. (35)

 


몸과 정신, 신체와 영혼, 그리고 정신 분석의 역사를 알고 싶은 사람이라면 1독을 해 봄직하다. 나는 츠바이크의 다음 책으로 간다. <츠바이크의 발자크 평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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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당신이 무의식으로 흘려보낸 기억을 찾아드립니다
    from 의미가 없다는 걸 확인하는 의미 2023-03-30 15:09 
    찾아가는 서비스ㅋㅋㅋㅋㅋ단발머리님의 페이퍼에 엮인 글 쓰려고 나 굳이 책장에서 이 책 다 빼오는 수고와 노동을 하기로 하였습니다. 여기서 추천하는 책이 굳이 있다면? 정도언 아저씨의 책(프로이트의 의자)정도 인 것 같고, 여기서 퀴즈. 여기서 제가 가장 뽑아오기 싫었던 책은? ㅋㅋㅋ향후 맞이하게 될 수많은 정신분석 지식, 무의식, 상징계 등을 다루는 페미니스트들의 이론을 더듬더듬 읽어보기 위해 양자오 선생님의 프로이트 설명을 한번 더 가져와서 가까운 전
 
 
다락방 2023-03-30 08: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단발머리 님, 앙투아네트 이후로 츠바이크에 완전 푹 빠지셨군요!

저는 여성학 처음 관심갖고 책 읽으면서 또 강연을 여기저기 들으러 다녔는데요. 그 때 정말 프로이트에 대한 여성주의 선생님들의 비난을 많이 들었어요. 저는 프로이트에 관심도 없다가 그 험담으로 프로이트를 먼저 접했는데, 그런데 그게 저에게는 나름 도움이 되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프로이트에 대해 관심도 좀 생겼고요. 정작 프로이트가 쓴 책은 한 권도 읽어보지 못했는데, 저 모세 책.. 봐야겠어요. 저 책 보겠다고 벼른지 한참된 것 같은데 ㅎㅎ

단발머리 님의 책읽기 빠샤!!

단발머리 2023-03-30 22:22   좋아요 0 | URL
저의 첫 츠바이크는 <초조한 마음>이죠. 다락방님 서재에서 발견한 책이고요. 띄엄띄엄 읽는 편인데 연달아 두 권 읽었습니다 ㅋㅋㅋㅋ 한 권만 더 읽으려고요.

저도 다락방님과 비슷한 경험을 한 것 같아요. 프로이트 꼭꼭 씹는 이야기를 많이도 들었습니다. 정희진 선생님이 프로이트를 높이 평가하시는 걸 글에서도 강연에서도 언뜻언뜻 들으면서 많이 궁금하기는 했는데, 이 책 읽고나니 ‘프로이트 팬‘ 정도는 아니어도 프로이트편 될 거 같더라구요. 정말 대단한 사람인 건 분명하고요. 시대적 한계를 가지고 있지만 분명코 시대를 넘어선 사람이고요.

무엇보다 ‘말‘을 통한 ‘치료‘에 전 관심이 많은데요. 기독교가 특히 ‘말‘에 대해 ‘강박적으로‘ 주의하고 또 중요하게 여기는 지점들을 제가 알고 있기 때문에 더 그런 것 같아요. 프로이트는 어렵기도 하거니와 너무 두꺼워서 좀 두렵기는 한데, 그래도 저는 <늑대 인간>을 ㅋㅋㅋㅋㅋㅋ 찜해 두었어요. 그 늑대인간, 우리가 바라고 생각하는 그 늑대인간, 아닐 테지만요^^

다락방 2023-05-24 09: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프로이트의 늑대인간을 사려고 했는데 이렇게 또 단발머리 님과 만나네요. 땡투 드립니다요!! ㅎㅎ
 
사랑의 가설
앨리 헤이즐우드 지음, 허형은 옮김 / 황금시간 / 2022년 1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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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에는 달달한 거 읽겠다고 가벼운 마음으로 펼쳤다. 역시나 달달하고 달콤하다. 408쪽에서 438쪽까지 <15& 16 : 애덤>은 애덤의 속마음 토크라서 좋기는 한데, 원서에는 없던 부분이라 어디서 그 텍스트를 구했는지 궁금하다. 월요일 아침에 출판사에 전화해서 물어보리라




음하하하하하하하핫! 놀릴 것이 분명한 친구의 청아한 목소리가 귓가에 생생하게 들린다. 아니, 그 책을 또 읽었어? , 읽었어요. 읽었어요, 이 책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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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3-03-27 09:2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아 저 이거 종이책 읽고 팔았거든요? 전자책 있나 보고 사야겠어요. 아휴. 저 요즘 이성애로맨스 소설이 왜이렇게 읽고 싶은지!! 봄이라 그런걸까요?

(잠시후)전자책, 없는 것으로 밝혀져..

단발머리 2023-04-03 20:51   좋아요 0 | URL
전자책 아직 없지요? 출판사에 전화해 볼까요? ㅋㅋㅋㅋㅋㅋㅋ

건수하 2023-03-28 10: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단발머리님 강추 책이라 (마음에) 담아두고 있습니다 :)

단발머리 2023-04-03 20:54   좋아요 1 | URL
강추라기 보다는 ㅋㅋㅋㅋㅋㅋㅋ 그냥 제가 좋아한다고요. 아... 뜨거워라. 생각만 해도 뜨거워지는 ㅋㅋㅋㅋ 마법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수이 2023-03-29 12: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수요일입니다. 전화 하셨습니까???

단발머리 2023-04-03 20:54   좋아요 0 | URL
전화했구요 ㅋㅋㅋㅋㅋㅋ 뭐, 책을 사는 걸로 결론이 ㅋㅋㅋㅋㅋ 자세한 사항은 다음 페이퍼에서 풀어드리겠습니다^^
 



싱가폴에 갔을 때였다. 그때 우리는 호텔을 잡지 않고 동생 숙소에서 머물렀다. 동생이 출근하면 수영장으로 나가 한국에서 가져간 돌고래 튜브에 바람을 잔뜩 불어 넣고는 작은 애를 태워 큰애가 쓱쓱 밀고 다녔고, 동생이 돌아오면 큰애와 동생이 펼치는 삼촌-조카배 수영대회를 구경하기도 했다.

 


한가한 오전에 동네를 배회할 때면 휠체어를 밀고 있는 사람과 휠체어에 앉은 사람을 자주 볼 수 있었다. 휠체어에 앉은 사람은 대부분 남성 노인이었고, 휠체어를 밀고 있는 사람은 젊은 여성이었다. 인종적 구분이 무의미하지만 내가 쓰려는 것과 어느 정도 관련이 있다고 생각해 굳이 언급하자면 휠체어의 노인은 아시아인이었고, 뒤쪽의 여성은 좀 더 검은 피부였다. 세탁실 뒤쪽으로 작은 공간이 있었고, 동생은 그곳이 메이드가 살도록 만들어진 방이라고 했다. 1평이나 됨직한 좁은 공간이었다. 필리핀 출신의 젊은 여성들이 싱가폴에 살면서 가사 도우미, 간병인, 메이드 등의 일을 하면서 본국으로 돈을 송금하는데 그 금액이 필리핀 의사의 월급과 비슷하다는 말도 했다. 10년 전 일이다.

 


가사 도우미 일을 하던 젊은 여성들의 추락사가 흔하다는 말도 했다. 앞 베란다라는 개념 자체가 없는 싱가폴 주택의 경우, 문을 열면 바로 바깥으로 연결되는데, 돈을 모아 본국으로 보내고 부모님과 동생들의 생활비를 내어주던, 실질적 가장 역할을 하던 젊은 여성이 어느 날 갑자기 창문 밖으로 추락할 일이 무엇일까. 남자 고용주의 노골적인 성적 학대와 이를 질투하는 여성 고용주. 안쪽에서 밀지 않고서야 스스로는 떨어질 수 없는데의심은 남성 고용주와 여성 고용주에게로 향하지만, 대부분은 이유를 알 수 없는 자살로 결론지어진다고 했다.

 

 
















'사회적 재생산'이란, 인간 존재와 사회적 유대를 생산하고 지탱하는 상호작용, 필수재 공급, 돌봄 제공의 형태들을 뜻한다. '돌봄', '감정노동', '주체화subjectivation' 등으로 다양하게 불리는 이러한 활동은 자본주의의 인간 주체들을 형성하고, 그들을 육체를 지닌 자연적 존재로 지속시킨다. 또한 그들을 사회적 존재로 구성하고 그들의 활동반경을 이루는 아비투스habitus 와 사회-윤리적 내용 혹은 인륜성Sittlichkeit 을 형성한다. (40)

 


자본주의의 존립을 위해 필수적인 사회적 재생산 활동이 시장 바깥에서, 즉 가정과 지역사회, 그리고 학교와 어린이집을 포함한 공공기관에서 이루어질 때, 그 대다수는 비-임금 노동 형태(41)로 이루어진다고 낸시 프레이저는 쓴다. 자본주의의 구성 단계에서 생산을 남성에게, 재생산을 여성에게 배분함으로써, 노동자 1인 가정의 소득 대부분이 남성의 임금으로 채워질 때, 여성의 종속은 빠르게 강화되었다. 여성의 소득이 남성의 소득과 상당 부분 가까워지고 있는 현재에도 여전히 생활을 의미하는 재생산노동은 여성만의 것이어서, 일하는 여성은 정규직이든 파트타임이든 상관 없이 집안일을 병행해야만 한다. 이중, 삼중노동을 강요받고 있는 셈이다.

 
















<가부장제와 자본주의>에서 마리아 미즈는 제1세계 여성의 안락한 삶을 위해 제3세계 여성들의 삶이 희생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3세계의 여성들은 임금 노동자로서가 아니라 직장에 나온 ‘가정주부로서 인식되기 때문에 온전한 임금을 지불 받지 못 한다3세계의 여성들 중 특별히 농촌 여성들은 가정의 주요 부양자임에도 불구하고 가정주부화는 저임금을 정당화한다.(262또한 제1세계 여성이 아무런 거리낌 없이 구매하고 폐기해 버리는 상품은 제3세계 여성 노동자에 대한 열악한 처우와 비인간적 노동시간저임금으로 얻어진 것이며, 이는 가부장제와 자본주의의 교묘한 결합으로 가능했다양 세계에 속한 여성을 모두 억압해 얻은 결과라고 주장한다.

 


남성과 여성, 어린이와 노인에게 필요한 재생산 노동이 여성에게만 요구되고, 무임금으로 그 일을 수행하던 제1세계 여성들은 적은 비용으로 제3세계 여성을 고용한다. 남성과 여성이 공동으로 짊어져야 하는 재생산 노동이 임금화되는 순간, 그 노동은 가시화되어 정당한경제 활동으로 인정받는다. 이는 제3세계 여성에게는 중요한 수입이 되는 것으로, 가혹한 이중 노동에 처한 제3세계 여성의 아이들은 돌봄 노동의 사각지대에 놓이게 된다. 피라미드의 맨 아래에는 제3세계의 아이들이 있다, 여성들과 함께.

 

 

















그제 밤에는 <자두>를 읽었다. 눈은 피곤해서 자꾸 감기는데, 그다음이 너무 궁금해서 멈출 수가 없었다. 중환자실 앞 의자에 앉아 하염없이 기다리던 순간들과 병실에 누운 환자를 바라보며 이어졌던 기도, 간간히 흘러내렸던 눈물을 생각했다. 어려움을 겪을 때 모든 관계가 더 단단해지는 건 아니라는 것, 오히려 봉합되었던 감정과 미움이 폭발할 수도 있다는 걸 배워야 했던 시간이었다. 억울하다고 말할 수 없어서 복받치는 감정에 휘둘리던 때도 그때였다. 또렷한 기억과 선명한 문장들이 쌍둥이처럼 만나는 순간이었다. 세진의 시아버지가 좋은 분이었다는 이야기에서부터 느껴지던 불안감은 무난한 세진의 성격과 맞물려 소용돌이를 쳤다.

 


처음부터 그들은 한통속이었습니다. (104)

 


아직도 철없는 나는, ‘그들에 남편이 속하지 않았으면 좋았을걸, 하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럴 수 없는 것이, 남편은 비겁한 자식이었다. 알고 보니, 어려움을 겪고 보니, 눈을 뜨고 다시 살펴보니, 그랬다. 남편은 비겁한 자식이었다.

 


도둑년이라며 간병인 황영옥의 머리채를 잡아채던 시아버지는 새로 맞이한 남성 간병인을 선생님이라 부르며 깍듯이 대한다. 덜 일하고 더 많이 버는 남성 간병인은 틈이 날 때마다 쉬는 시간을 갖는다. 이게 현실이다. 사람이 사람을 대하는 태도, 는 오랜 기간에 걸쳐 만들어지고, 쉽게 변하지 않으며, 그 사회를 사는 사람들을 규정하고 억압한다. 그래서 가능하다. 남성 간병인은 덜 일하고 더 많이 번다.

 



 

<자두>에 대한 극찬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찾아 읽게 된 건 바람돌이님의 페이퍼 덕분인데, 에이드리언 리치의 이야기가 나온다는 말에 솔깃했다. 이주혜 님이 번역하신 에이드리언 리치의 책은, 이 책 <우리 죽은 자들이 깨어날 때>일 테고, 원서는 이 책 <Essential Essays: Culture, Politics, and the Arts of Poetry (2018)>일 것이다.  



 














에이드리언 리치에 대해서 생각할 때.

 


그러니까 나는 그의 시, 그의 산문, 그의 사상을 잘 알지 못하고 그의 삶, 결혼과 이혼에 대해서도 간결한 몇 개의 문장으로 추측할 수 있을 뿐이지만. 한때 사랑했던 사람을 자살로 잃고 그 일로 세간의 비난을 받는 일에 대해서, 엘리자베스 비숍과의 대화(<자두>, 17)에 대해서 생각하기는 했다. 내가 헤어지자고 했던 사람이 내게 더 이상 매달리지 않고, 자신을 파괴하는 형식으로 내 요구를 거절했을 때. 내게는 키워야 하는 아들 셋이 남겨져 있어 나도 그처럼 똑같이 죽을 수 없을 때. 한없이 쏟아지는 세상의 비난을 피해 갈 수 없을 때. 그 남자가 생각보다훨씬 더 괜찮은 남자라는 걸, 내가 기억할 때. 리치는 어땠을까. 리치는 그 시간을 어떻게 살아냈을까. 그런 생각을 종종 하기는 했다. 딸이며, 어머니이며, 페미니스트이며, 레즈비언이며, 비평가이며, 시인이며 운동가이며 그리고 사상가인 리치는. 내 고민과 생각과 상상의 원천이다.

 


내 남편은 섬세하고 다정한 남자로 아이들을 원했고 학계에 직업을 가진 50대 남자로서는 드물게 기꺼이 '도와주려’ 했다. 그러나 이 '도움'은 너그러운 행동으로 이해되었고, 가족 안에서 진짜 일은 그의 일, 그의 직장생활이었다. 사실 이 사실은 몇 년간 우리 두 사람 사이에 문제가 되지도 않았다. 나는 작가로서 나의 몸부림이 일종의 사치이자 나만의 특이성이라고 생각했다. 내 일은 대개 돈이 되지 않았다. 일주일에 단 몇 시간이라도 글을 쓰기 위해 가사도우미를 고용하면 심지어 돈이 더 들었다. (<우리 죽은 자들이 깨어날 때>, 144)

 


리치를, 더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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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내 이야기에 진지하게 응해줄 친구들이 있다는 것
    from 의미가 없다는 걸 확인하는 의미 2023-04-16 12:58 
    수술을 앞두고 서울에 올라와 한 밤 자고 간 A에게 책 한 권을 쥐어서 보냈다. 정희진의 공부 팟캐스트도. 신나고 재밌는 일로 삶이 가득하다는 엔프피종 답지 않게 수술을 앞두고 살짝 침울해진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자신이 이과형 인재임을 어필하며 즐겁게 읽은 소설을 이야기할 때 즈음에는 내가 아는 신나는 A로 돌아와 있었다. 다시 만나기 전까지 이과형 소설을 조금 더 찾아놓기로 내심 마음을 먹긴 했는데, 글쎄 이건 나의 마음일 뿐.<애프터 양>
 
 
건수하 2023-03-25 16:49   좋아요 7 | 댓글달기 | URL
가사 도우미 일을 하던 젊은 여성들의 추락사… 섬뜩하네요. ㅠㅠ 성추행 성폭행을 피하려다가 그렇게 될 수도 있을 것 같고..

오랫만에 단발머리님 단정한 글을 읽으니 좋아요.

단발머리 2023-03-25 17:45   좋아요 4 | URL
저도 오래오래 마음에 남더라구요. 휴일에는 그 여성들이 다같이 모여서 공원 같은데서 도시락 나눠먹고 이야기하고 그런다고 그래요. 동그랗게 원을 그려 앉아서요. 그 시간이 얼마나 달콤하고 행복할까. 인생의 무거운 짐을 같이 지고 가는 친구, 언니, 동생들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게 됐구요.

단정하다고 해주시니 감사합니다. 단정하게 다시 태어날거에요. 진심입니다^^

2023-03-25 17: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3-25 17: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공쟝쟝 2023-03-25 20:39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오늘 리뷰도 너무 좋아요. 방금 인생 영화가 될듯한 영화를 한편 보고 왔는 데요, 가까운 미래세계에서 돌봄은 안드로이드의 몫이에요. 리퍼 제품 안드로이드의 리셋 안된 메모리에 접속해서 펑펑 울다 왔고, 그 안드로이드가 수행하는 것이 너무도 너무도 (어쩌면 저의 과잉해석이겠지만요.) 인격없는 위치로서의 엄마의 이야기로 또 읽고 말았기 때문에 저는 한동안 가슴이 아파서 영화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답니다.

페이퍼 읽으며 묻고 싶었던 이야기는요. 왜요. 왜 그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그 시간들을 규정짓는 언어가 생기고 나서야 저는 그것들이 폭력이었음을 알게 되고 이렇게 아픈 걸까요. 고통에 언어가 없었기 때문인가요, 그걸 고통으로 인식하는 언어를 가졌기 때문인가요? 만약 내가 빠져나오지 않고 그 시간들이 지속되었다면, 언어를 공부해서 획득하려 하지 않았다면 그것은 폭력이 아닌 것이 되고 그냥 계속 그대로 머물러서 그 안에서 행복했으면 정말 행복하게 되었을까요?

그러니까 1세계 여성이 3세계 여성의 돌봄을 싸게 산다는 건 그건 1세계의 언어고 3세계 여성의 경우는 가족에의 기여가 더 행복할 수도 있는 거잖아요. 그런데. 이제 언어를 가진 나는 그게 안되고.... 저는 아직도 아빠 밥‘만‘해줘도 돼서 너무 좋은데, 다른 가족들 밥하다가 아파서 아빠 밥을 못하는 게 슬프다는 엄마를 어떤 식으로 바라보아야 윤리적인 건지 고민되거든요. 공부를 하면할 수록 다 어휴~ 아무튼 슬픔이 밀려와요~ 난 그런 세상과의 눈물의 이별을~~ 답은 없죠. 다만 먼저 고민하고 아파한 여성들의 글씨를 읽는 방식으로 연대할 뿐.... 공부의 슬픔이여... 리치여.... ㅜㅜ

건수하 2023-03-26 08:12   좋아요 1 | URL
그건 1세계의 언어... 사실 그렇긴 해요 ㅠㅠ

그 언어를 다른 상황에 있는 누구에게 강요할 수는 없고...
그래서 결국 자기 만족이 되는 것 같기도 해요.

단발머리 2023-04-03 21:03   좋아요 1 | URL
쟝쟝님 / 저도 그건 잘 모르겠더라구요. 근데 언어를 획득한다는 것, 설명한다는 것 말이에요. 어쩌면 그렇게 어렵지 않을 수도 있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걸 ‘설명‘하지 않은채로 받아들이는 거 같더라구요. 일부는 체념이고요. 일부는 수용이고요. 그런 순간을 모두 ‘불행‘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그건 또 다른 문제인 거 같아요.

돌봄을 싸게 산다는 건 1세계의 언어이고 3세계 여성의 경우는 가족에의 기여가 더 행복할 수도 있을 테지만. 모성을 어떤 범위로 설명하던지 간에 어떤 여성이 ‘경제적인‘ 문제 때문에 자기 아이를 떼어 놓고 돈 벌러 간다면 말이지요. 놓고 가는 아이들에 대한 걱정을 ‘행복‘이라는 말로 바꿀 수는 없을 것 같아요. 내 새끼 입에 밥 넣어줘야 해서 나가는 거니까요.

수하님 / 네, 맞아요. 저도 항상 그게 고민이에요. ‘너, 억압 받고 있는 거야.‘ ‘너, 그거 따져야 하는 거야‘라고 쉽게 말할 수는 없는 거니까요 ㅠㅠ

잠자냥 2023-03-25 21:06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페이퍼 ㅎㅎㅎ

단발머리 2023-04-03 21:04   좋아요 2 | URL
라고 굽쇼? 신난다!!!!!!!!!!!!!!!!!!

건수하 2023-03-26 08:2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일주일에 단 몇 시간이라도 글을 쓰기 위해 가사도우미를 고용하면 심지어 돈이 더 들었다.

전에 <돌봄과 작업>이라는 책 북토크에 갔었는데, 홍한별 번역가가 그러더군요. 베이비시터를 쓰니까, 그만큼 돈을 벌어야한다는 동력이 생겨서 더 열심히 하게 되었다고... 사실 베이비시터 비용이 더 들 수도 있는데, 그렇게 생각하며 자신을 채찍질했던 것 같아요.

독서대도 예쁘고, 컵도 예쁘고, 깨끗한 책상도 예쁩니다 :)

단발머리 2023-04-03 21:06   좋아요 1 | URL
전 오히려 그런 생각 들었어요. 에이드리언 리치니까..... 가사도우미 고용해서 글 쓰면 우리 모두에게 땡큐.
만약 그 여성이 그렇게 많이 벌지 못한다면, 혹은 앞으로도 그럴 가능성이 적다면... 그 비용을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앞으로 제 모든 사진은 이 독서대와 함께할 것임을 약속드리며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책상은 이미 더러워졌ㅋㅋㅋㅋㅋ

건수하 2023-04-04 13:57   좋아요 0 | URL
저게 다미여 찻잔이었군요. 왜 안샀는가... ;ㅁ;
독서대여 자주 만나요~ ^^

책읽는나무 2023-03-26 09:4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가사 노동의 고통 하지만 그 이면의 차별의 고통, 그리고 끝없는 자식 돌봄. 자식으로서의 죄책감이 깃드는 부모님의 간병 돌봄.
그리고, 마지막은 에이드리언 리치!
맞네. 아직도 안 샀네? 뒤늦은 깨달음!
그리고 다미여 찻잔! 저건 나 또한 잘 산 굿즈ㅋㅋㅋ

단발머리 2023-04-03 21:07   좋아요 2 | URL
저 아직도 에이드리언 리치 안 읽은 책 많이 남아서 무척 기쁘고 감사합니다.
다미여 찻잔, 너무너무 좋아요. 물 부어 마셔도 근사하고, 얼음 동동 띄우면 더 좋구요.

다락방 2023-03-27 09:3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제가 아주 오래전에 홍콩에 처음 갔을 때요, 그 때 버스 안에서 바깥 풍경이 바로 그 풍경이었어요. 가사도우미들이 바깥에 다들 나와 있던 풍경이요. 그 때는 그게 도대체 뭘 뜻하는지 몰랐어요. 사람들이 많이 모여있길래 시위인가? 했는데 분위기는 시위가 아니었거든요. 다들 가만 있는데 그건 시위가 아니잖아? 도대체 그게 뭘 뜻하는지 모르고 대체 뭘까, 하다가 나중에야 그 풍경이 가사도우미들이 집에서 나와 같은 일을 하는 사람들과 만나서 나름의 쉼을 갖는다는 것임을 알게 됐어요. 그러나 그 쉼은, 노동하는 집에서 계속 머무르면서는 불가능했기에 나와야만 했던 것이고, 나와서는 돈이 드니까 마땅히 갈 데가 없었던 것이고요.

저는 홍콩에 처음 갔을 때 좋은 감정보다 좋지 않은 감정이 더 많았었어요. 정확히는 불편한 감정이라 할 수 있을 텐데요. 제가 있던 호텔 근처와 도심의 풍경이 정말 너무 심하게 달랐거든요. 빈부의 격차가 확 느껴지더라고요. 어떻게 이럴 수가 있나 싶었고, 그리고 제가 갔던 당시에도 시위가 있었어요. 이 사람들은 살아보겠다고 시위하는데 나는 호텔에 있네, 하면서 굉장히 복잡한 감정이 들었더랬어요.

저도 <자두> 읽고 에이드리언 리치 꺼내놨는데 여태 못읽었네요.

단발머리 님, 계속 읽고 써주세요. 생각도 많이 많이 해주시고요!!

단발머리 2023-04-03 21:13   좋아요 1 | URL
저는 필리핀 갔을 때 그랬어요. 공항에서 호텔로 이동하는데 옆으로 보이는 풍광이 좀 그랬거든요. 근데 호텔이랑 근처 섬으로 들어가니 여긴 뭐, 천국이 따로 없는 거에요. 음식도 다 고급이고요. 저도 맘이 참 거시기했습니다.

집을 떠나 돈을 벌어 그 돈으로 고국의 가족을 부양하는 젊은 여성들이 서로를 의지할 수 있다니 다행이고요. 쉬는 날 같이 도시락 까먹으면서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이 친구면서 동료가 되어 연대할 수 있었으면 좋겠고요....

더 읽고, 더 쓸게요. 근데 오늘은 아니고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수이 2023-03-29 12: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저거 사야 하나요? 파랑이??

단발머리 2023-04-03 21:14   좋아요 1 | URL
일단 쪼금 읽어보니 어렵습니다. 하지만 수이님은 읽으실 수 있을 거 같아요. 읽어야 합니당!!!!!!!!!
에이드리언 리치 아닙니꽈. 에/이/드/리/언/리/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