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의 휴가책 후보 3번은여성주의책 같이 읽기’ 8월의 도서 하나인허랜드』이다. 


표제작 <허랜드> 아름답고 풍요로운 자연 속에서 처녀 생식을 통해 공동체를 유지하는 미지의 여인국에 대한 이야기다. 페미니스트 유토피아 소설의 효시로 회자되는데, 『이갈리아의 딸들』, 도리스 레싱과 어슐러 귄의 작품 여자들만의 세상 그린 수많은 소설들의 모델이라고 평가받는 작품이다.(알라딘 책소개) 




여자들만 사는 미지의 세상, 그녀들의 외모는 어떨까. 그녀들은 단발.




모자를 쓰지 않은 그녀들의 단발은 윤기가 자르르 흘렀다. 그녀들은 가벼우면서도 견고해 보이는 소재의 옷을 입고 있었는데, 튜닉에 반바지를 입고서 행전을 동여맨 복장과 흡사했다. (33)





그녀들이 마련해 준 잠자리는 어땠나. 견고하고 푹신함. 




가장 강하게 느낌은 몸이 아주 편안하다는 것이었다. 나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침대에 누워 있었다. 길고 널찍하고 평평한 침대는 견고하면서도 푹신했다. 이불은 최고급 리넨 섬유로 만든 포근하고 가벼운 누비이불 또는 담요로 보였고, 침대 시트는 시각적인 즐거움을 선사했다. (49) 




여성이 지배하는 세계, 여성만 존재하는 허랜드에서여성성 어떻게 발현될까. 여성성이 필요하지 않은 사회이므로 허랜드 여성에게는여성스러움 필요 없다. 




그녀들이 본질적으로 지닌 모성애가 문화 전체를 지배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게는 우리가 말하는여성스러움 현저히 부족했다. 때문에 나는 이내 우리가 너무도 좋아하는여성스러운 매력들 사실 전혀 여성스럽지 않으며 남성성이 반영된 결과물일 뿐임을 확실히 깨닫게 됐다. 여자들은 남자들을 즐겁게 해줄 의무가 있어 그런 특징들이 발달된 것이고 이러한 특징들은 여성 스스로 자아실현을 하는 데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105)





처녀생식과 공동육아를 통해 허랜드가 존립할 있다면, 허랜드에서 섹스란 어떤 의미일까. 어머니가 되기 위한 과정 혹은 사무, .  




미국에서는 남녀 간의 사랑이 어머니가 되는 , 그러니까 부모가 되는 것과 관계 없이 표출된다는 말인가요?” 

물론이죠. 우리가 생각하는 사랑은 사이의 깊고 달콤한 사랑이에요. 물론 아이를 원하고 언젠가 아이를 갖게 되겠죠. 그렇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사랑은 그게 다가 아니에요

그녀가 말했다. “, 그렇지만 너무나도 자연을 거스르는 일인걸요! 우리가 알고 있는 어떠한 생명체도 그러지 않아요. 미국에서는 다른 동물들도 그런가요?” (235)






긴긴 방학, 시간은 많고 날은 더웠다. 안방 에어컨을 켜고 가족이 침대에 눕는 밤이면 안방은명화극장 되었다. 알라딘의 지니를 따라 스미스의 영화 편을 보았고, 개봉 당시부터 지금까지 최고의 흥행작 하나인 <아바타> 보았다. 인간이 도달한 최고의 기술력을 이용해 나비족에게 접근해 자신들이 원하는 자원을 얻으려는 지구인. 예상대로 주인공은 나비족의 여인과 사랑에 빠진다. 나비족이 신성시하는 커다란 나무가 쓰러지는 장면에서 나비족이 느꼈을 두려움과 절망이 작은 화면으로도 그대로 전해져 마음이 좋지 않았다. 새로운 문명이 삶을 압박해 들어올 , 문명이 강력하고 폭력적일 , 내가 있는 일은 무어란 말인가. 쓰러지는 말고 내가 있는 무엇이란 말인가. 꼬박 이틀을, 나는 나비족이었다. 



여자만 사는 세상허랜드 단정하고, 조화로우며, 아름답고, 깨끗하다. 태곳적 자연의 모습이 반드시 그렇다고 수는 없기에여성=자연이라는 도식이 조금 뻔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 하지만, 1915년에, 무려 1915년에 자애롭고 풍요로우며 아름다운 여성만의 세계, 여성만의 세상을 꿈꿨던 샬롯 퍼킨스 길먼 식견에는 감복할 밖에 없다. 


2019 올해의 휴가책 후보 3번은허랜드』이다. 





그녀가 집요하게 물었다. "일을 하지 않는다면 뭘 하나요?"

"집과 아이들을 돌보죠."

엘라도어가 물었다. "동시에 두 가지를요?" ….

알리마가 승리를 거둔 듯 말했다. "거 봐요! 그럼 아이가 한 두 명이거나 전혀 없는데도 서너 명의 하인을 둔 여자들은 뭘 하나요?" 우리는 가능한 최선을 다해 설명했다. 하지만 우리는 정직하지 못했다. 그녀들은 ‘사회적 의무’를 우리와는 다르게 생각한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손님 접대, 파티 준비, 여가 생활 등을 사회적 의무로 둔갑시켜 들먹이는 것으로 그녀들의 질문에 답했던 것이다. (169-170쪽)

이곳에는 남자들이 없기 때문에 우리가 삶의 큰 부분인 남자들의 세상을 그리워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고, 우리는 그건 이 곳 여자들도 마찬가지일 거라고 은연 중에 생각했다. 그들에게 남자는 거의 무의미한 존재란 사실을 한참이 지나서야 깨달았는데, 테리만이 그 사실을 영영 깨닫지 못했다. 남자들, 남자, 남자다운, 남자다움 등 남자란 말에서 파생된 여러 단어들을 들을 때마다 우리는 세상과 세상에서 벌어지는 모든 활동들이 복잡하게 그려져 있는 거대한 이미지를 머릿속에 떠올린다. ‘남자로 성장’하고 ‘남자답게 행동’한다는 말이 함축하고 있는 의미는 진정 방대하다. 이 말의 거대한 배후에는 열을 맞추고 줄을 바꾸며 행진하는 남자들, 새로운 바다로 배를 몰아 항해하는 남자들, 미지의 산을 탐험하고, 말을 길들이고, 소를 몰고, 땅을 일구어 씨를 뿌리고, 곡식을 거두며, 대장간과 용광로에서 노동하고, 광산을 파고, 도로, 다리, 높은 성당을 건축하며, 큰 사업체를 운영하고, 온 대학에서 가르치고

온 교회에서 설교하는 남자들, 즉 온 세상에서 온갖 일을 하고 있는 남자들의 모습, 즉 세상 자체가 자리 잡고 있다.

반면 여자란 말을 들으면 한 성별로서만의 여성을 떠올린다.

그러나 지난 2천 년 동안 전혀 방해받지 않고 여성의 문명을 구축해온 이곳의 여자들은 여자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그들이 이루어낸 사회 발전만큼 거대한 이미지를 떠올렸다. 그들에게 남자라는 단어는 단지 한 성별로서의 남성을 의미할 뿐이었다. (23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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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9-08-22 15: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니, 단발머리님! 허랜드도 다 읽으신 겁니까?
그러고보니 벌써 22일인데 저는 허랜드 언제 읽죠? 하하하하하.

밑에 인용하신 문장들 중에 ‘그들에게 남자는 거의 무의미한 존재‘ 라는 문장이 유독 눈에 확들어옵니다.

단발머리 2019-08-22 18:40   좋아요 1 | URL
허랜드는 시녀이야기 보다 더 쉽게 넘어가는 듯해요. 여성들만 나와서 그런지 자극적이지 않고 순하고 그렇습니다.
금방 읽으실수 있을 거예요.
전 시녀이야기를 앞두고 있는데 그게 참 걱정입니다. 허허허.

psyche 2019-08-25 1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에는 저희집도 단발머리님 댁 처럼 안방 침대에 다 같이 모여 영화를 봤었어요. 이제는 아이들이 너무 커서 다 같이 누울수가 없어 그냥 거실에서 볼 수 밖에 없네요.ㅜㅜ

단발머리 2019-08-25 21:43   좋아요 0 | URL
저도 이렇게 넷이 나란히~~가 몇 년 안 남았다는 걸 실감했던 여름이었어요.
아롱이가 아직은 중학생이라서 가능한 일이기도 하구요.
너무 더워서 하악~~ 하면서도 지나가는 여름날 하루하루가 참 아까웠어요.
한국은 토요일부터 부쩍 서늘하네요. 계절의 변화라는게 참 신기해요^^
 



















여행을 가지 못해 여행책을 읽는다. 여행을 좋아하나 좋아하지 않나, 중에 택일해야 한다면, 좋아하지 않는다, 쪽에 가깝다. 멀리 가는 , 싸는 좋아하지 않았다. 신혼 때는 쉬는 날에 잠자는 최고의 휴식이었고, 아이들 어려서는 떠나자니 챙겨갈 너무 많아 여행이 싫었다. 아이들이 제법 자라고 나니 여행길이 기대되고 다녀와서도 즐겁다. 


큰아이가 초등학교 2학년 , 네가 중학교 2학년이 되면 우리 같이 유럽에 가자. 지나가는 말이 현실이 되어, 2 전에 유럽에 다녀왔다. 패키지 여행이라 준비할 것도 별로 없었고, 준비한 것도 없었다. 준비라고 하면 크레마 구입 정도? 다녀오고 나서야, 걸었던 , 지나쳤던 거리가 새록새록 기억나 다시 가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유럽이라니. 한동안은 어려 싶다. 




유시민의유럽 도시 기행』은 저자가 밝힌 대로 뭐라 말하기 곤란한 책이다. 관광 안내서는 아니고 여행 에세이도 아니다. 도시의 역사와 건축물에 대한 보고서도 아니고, 인문학 기행도 아닌 것이, 무엇도 아니면서 조금씩은 모두이기도 하니, 특이한 책이기는 하다. 다녀왔던 도시 로마와 파리를 먼저 읽었다. 내가 있던 자리, 내가 걸었던 거리의 이야기가 펼쳐질 때는 핸드폰 사진을 열어가며 이제는 과거가 되어버린 추억을 더듬었다. 전체 일정에 포함되지 않아 보지 했던 피오나 광장의 브루노 이야기는 이 책을 통해 처음 들었다.  







브루노는 카톨릭 사제였지만 정통신학을 의심한다는 혐의로 이십대에 도망자가 되었고, 칼뱅주의자들에게도 이단으로 몰려 죽을 뻔한 위기를 겪었다. 후에 로마 교황청 종교재판소에서 7 동안 재판을 받았는데, 자신의 철학과 과학 이론을 통째로 부정하라는 교황청의 요구를 거부하면서 사형을 선고받았다. 선고 열흘 만에, 입에 재갈을 채로 화형을 당했는데, 그의 나이가 52세였다. 모자 달린 망토를 걸친 우울한 표정의 브루노. 활기찬 노천식당이 즐비한 광장 중앙의 브루노 동상은 1899, 빅토르 위고, 헨리 입센, 무정부주의자 바쿠닌 등의 지식인들이 사상의 자유를 위해 순교한 브루노를 기리기 위해 그가 화형 당한 장소에 건립했다고 한다. 조용히 하라고, 입을 다물라고 강요받았던 사람이 일을 강제한 포악한 사람들보다 오랫동안, 가까이 사람들 곁에 남아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유럽 도시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면, 유럽 도시 여행을 다녀왔다면, 책이 제격이다. 

올해의 휴가 후보 2번은유럽 도시 기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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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9-08-21 16: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제 다시 가보게 될 지 모르는
유럽을 유시민 선생의 인도로
읽는 재미는 또 어떨지 궁금하네요.

저도 유럽에 다시 가고 싶습니다 참말로.

단발머리 2019-08-21 16:52   좋아요 0 | URL
위의 브루노 이야기랑 파리의 루이 00세들과 공식 애인들 이야기가 재미있었어요. 저는 패키지 여행이라 주는 대로 먹어야 했는데, 무엇무엇을 먹었다,도 좀 부러웠구요.

유럽에 다시 가고 싶습니다, 진정....

책읽는나무 2019-08-21 16: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어제 미용실 갈때 가방에 책 두 권 챙겨 갔는데 그 중 한 권이 이 책이었어요.
비록 다른 책을 읽어버렸지만요.
음......유럽 여행을 준비하는 자!
유럽 여행을 다녀온 자!
가 읽어야 할 책인데 전 미용실로 떠나면서 준비해간 책이라니.....좀 깨네요ㅋㅋ
아..나도 유럽 가고 시포요^^

단발머리 2019-08-21 16:49   좋아요 0 | URL
아이고, 잊어버린 책 어여 찾으셔야 할텐데요...ㅠㅠ 미용실에서 만나는 유럽도 근사할 것 같아요. 아직 유럽 여행 전이시라면 책나무님은 준비하는 자! 되시겠네요 ㅎㅎㅎㅎㅎㅎㅎ 치밀하고 꼼꼼한 성격이 못 되는지라 저는 패키지에도 만족했답니다. 비수기를 이용한 홈쇼핑 상품이 참 좋다고 하대요. 또 한 번의 유럽 여행을 언제 가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유시민 작가님의 이 시리즈는 나오는대로 읽어볼 예정입니다. 팬심 더하기 여행 준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psyche 2019-08-25 10: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들을 데리고 바리바리 싸가지고 어디 여행가는 게 번거롭고 귀찮아서 안 가다보니 이제 아이들이 커서 같이 즐겁게 다닐만 한데도 안가게 되네요. ㅜㅜ 그래도 유럽은 언젠가 한번 가보고 싶어요.

단발머리 2019-08-25 22:33   좋아요 0 | URL
저희집도 이제 좀 놀아야겠다~ 했더니 큰애가 고등학교에 들어갔어요. 좀 더 일찍 놀것을... 하면서 가끔은 막내랑 셋이 나가기도 해요. 그럴때마다 큰애가 걸리고... 곧 막내도 고등학생이 되겠지~ 하면 또 왠지 쓸쓸해집니다.
유럽은 저도 다시 한 번 가보고 싶습니다^^

icaru 2019-08-29 16: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아! 멋져요! 유시민의 그 책이 그무엇도 아니면서 조금씩 그 무엇이라니, 표현 한번 기가막혀요...
저는 내년에 우리 큰애 중2가 되는뎅~ 유럽여행 한번... 못갈것도 없지않아??? 하면서도 참 요원한 ㅋㅋㅋㅋ

단발머리 2019-08-31 07:28   좋아요 0 | URL
유시민 작가님이 쓰신 표현 그대로에요. 내 책은 그 무엇무엇이면서 동시에 그 무엇도 아니다.
굳이 나누자면, 전 유럽 역사서에 가깝지 않나 싶어요. 가게 될 장소에 대한 풍부한 조사가 특히 눈에 뜁니다.
풀어주는 사람이 유시민 작가님이니까요, 뭐 어떤 내용이든 재미는 보장합니다.

제 친구는 중부유럽, 동부유럽 포함 10박 11일을 홈쇼핑 상품으로 다녀왔는데 아주 만족하더라구요.
패키지였는데 거의 항공권 수준의 합리적 가격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저도 처음이기도 하고 준비도 잘 못하는 사람이라 패키지 다녀왔어요.
둘째가 5학년 되는 해였는데, 이동시간 절약하고 제일 적게 걷는 방법이 패키지라고도 하더라구요.
개인 관광객들은 차에서 우르르 내리는 우리 패키지 여행객들을 어찌 볼지 모르겠지만, 전 나름 만족스러웠어요.

icaru 2019-09-05 10:02   좋아요 0 | URL
합리적 가격이라는 말에 눈이 번쩍!!! ㅋㅋ 아 좋으네요~ 패키지로 고려해 보겠습니다! 음!!!
 
쾌락독서 - 개인주의자 문유석의 유쾌한 책 읽기
문유석 지음 / 문학동네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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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문서를 펼쳐 보니일주일 며칠  페이퍼는 북플에서 작성한 것이라 일주일 만이다 맘대로 2019올해의 휴가 책을 선정해 보려 한다휴가는  갔는데올해의 휴가 올해는 예상대로 휴가를 가지  했다아이의 보충 수업 일정 때문이었는데역시 예상대로 며칠은 에어컨이 빵빵한 곳에서 아침부터 밤까지 서늘하게 보내기는 했다 밖을 나설 때마다 손에 들었던  중에 올해의 휴가책을 골라본다첫번째 책은 문유석 판사의 『쾌락독서』. 



 책의 특장점이라고 한다면부담없고 재미있는 책수다를 마음껏 들을 수 있다는 것이판사라는 사회적 지위에 괘념치 않고(괘념할 경우 말할  없을 것이므로), 자신이 어떻게 책에 대한 관심을 지속해 왔는지를 고백한다(고백이라 하는 이유는 그의 초창기 독서이력에서 야한  찾기를 고려한 것이다).  





물론 어차피 어떤 고전 명작이든 사춘기 사내아이의 눈에는 오로지 어른들의 성과 연애를 엿볼 기회였을 뿐이다별다른 매체가 없던 시절문학만이 소년의 성적 호기심 충족 수단이었으니까양주동판 <국어대사전구석구석을 집요하게 뒤져  자로 끝나는 말부터 소설에 나오는 ‘용두질’ ‘공알운운의 고급 용어까지 습득하기도 했습지요. (45) 





저자의 다양한 독서 스펙트럼에는 한껏 박수를 보내고 싶다그가 말하는   대부분이 읽기는 커녕 들어보지도 못했던 제목의 책들이다 





그에게서는 언제나 비누 냄새가 났다 시작하는 강신재의 <젊은 느티나무> 여학생들 할리퀸 로맨스 읽듯이 가슴 설레며 읽고손소희의 <남풍>에서 세영과 남희의 기구한 사랑에 멍해지고박화성의 <태양은 날로 새롭다> 보며 통속적인 신파 드라마 같다고 느끼면서도 여자 캐릭터들이  이쁘고 매력적인 것처럼 묘사되어 남주인공에 감정이입하며 열심히 읽기도 하고. (49) 





한국문학대전집에서 시작되어 서양문학으로 이동해 스탕달모파상제임스 조이스를 읽던 호르몬 과잉 사춘기 소년은 급기야 가슴 콩닥거리는 연애 이야기에 이른다이른바 ‘순정만화 시기 다다른 것이다. 





돌이켜보면  시기가 내게   선물이 하나 있다나와 다른 성인 사람들의 내면을 간접적으로나마 경험해볼  있었다는 것이다어려서부터 많은 명작들을 읽어왔지만  명작들의 대부분은 나와 같은 남성의 시점으로  것들이었다주인공인 남성들의 욕망번뇌방황은 실감나게 묘사되어 있었지만등장하는 여성들의 내면은 알기 힘들었다그녀들은 그저 신비로운 존재였다눈부시게 아름답거나 눈물겹게 희생적이거나무슨 “영원히 여성적인 것이 우리를 이끌어올린다 늙은 괴테 은교 찾는 소리나 ‘자애로운 국모’ 등등의 마거릿 대처 탄광노조 굴복시키는 소리 말이다아니인구의 50퍼센트는 신비화하기엔 지나치게  집단 아닌가. (104) 





그는 한결같이 자신은 ‘재미 위해 책을 읽어왔노라 말한다읽을 책을 고를 때도 앞부분을  읽어봐서 재미있는 책을 고르고재미있게 읽은 책에 대해 친구동료들과 책수다를 떨고그리고 재미있게 읽은 책에 대한 글을 여기저기에 써왔노라고 말이다하지만 순수한 재미를 추구했던 독서 여정 순정 만화 시기를 통해 그는 ‘여성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된다아름다움과 희생한없이 미화되고 무조건적으로 신비화되었던 인구 50퍼센트의 꿈과 사랑우정과 비전에 대해서 말이다여학생은 순정만화 코너에남학생은 소년만화 코너에 일사분란하게 나뉘어 앉아 있던(107   시절순정만화 읽기를 통해 그는사람이  가지 성으로 간단히 분류할  있는 단순한 존재가 아님을 배우게 된다. 재미를 찾아, 재미만을 찾아 여학생 전용 순정만화 코너에서 만화책의 책장을 넘기면서. 




자신이 좋아하는 책만 읽고자신이 좋아하는 글만 쓴다는 문유석의 책읽기를 통해  줌의 더위를 덜어냈다진지할 것이 예상되어 더욱 궁금한 그의 판결문도 읽고 싶기는 한데어떻게 어떤 방식으로 찾아야할지  모르겠다. 

2019올해의 휴가  후보 1번은 문유석의 『쾌락독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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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22598 2019-08-21 23: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단발머리님도 재밌게 있으셨다니 기쁘네요 ^^ 문유석님의 어릴때 책 읽기의 취향...특히 야한 부분을 고대하며 읽으셨다는 고백...이제 나도 다른 사람에게 나도 그랬다며..자신있게 얘기할 수 있는 큰 용기를 주셨어요 ㅋㅋ

단발머리 2019-08-22 09:34   좋아요 0 | URL
그렇게 솔직히 말하지 못하는 분들이 사실 대다수죠. 문유석님을 통해 많은 분들이 고백하게 되는 계기가 될 수 있겠네요.
저를 포함해서요 ㅎㅎㅎㅎㅎㅎㅎㅎ
 




















이처럼 일기의 본질이 쓰는 행위 그 자체에 있다는 사실은 스테파니 도우릭의 『일기, 나를 찾아가는 첫걸음』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이 책은 일기 쓰기는 물론이거니와 다른 모든 글쓰기와 관련해서도 상당히 훌륭하다. 일기를 잘 쓰기 위한 지침같은 건 이 책에 없다. 대신 이 책은 아무것이나, 심지어는 쓸게 없다는 사실마저도 일기의 소재로 삼을 것을 권한다. 일기란 잘 쓰는 게 아니라 자주 쓰는 것이기 때문이다. 책에 나오는 수많은 조언 중 하나인 다음의 글을 보면, 『카프카의 일기』에 나오는 '일러두기'가 떠오르지 않을 수 없다.

일기를 쓸 때 정말 중요한 요소는 열정, 감각, 진실함, 연민, 호기심, 통찰, 창의성, 자발성, 예술적 기교, 기쁨이다. 맞춤법이나 문법, 단정한 글씨, 어순, 시간 순서, 완성도 따위는 일기 쓰기에서 별로 중요치 않다.


(18절)





하루의 중요한 일과 중 하나였던 일기쓰기가 내 인생에서 사라진 건 퇴사하고 나서이다. 아무것도 쓸 일이 없어서가 아니라, 아무것도 중요한 일이 아니라고 여겨져서. 사실 그 때야말로 스팩터클 이벤트의 연속이었는데도 말이다.



삼일간 인터넷이 안 되는 곳에서 정해진 단체 일정을 따르다 보니 가끔은 이런 생활도 괜찮겠다는 기특한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는 검색 삼매경.



얼마 남지않은 여름의 낮과 밤이 이렇게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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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19-08-18 02: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며칠 전 라디오 방송을 들으니 부산에 쌍무지개 떴다는 말이 나오더군요 부산 쪽이었을지... 김연수가 나온 라디오 방송도 들었습니다 뭔가 말했는데... 생각나는 건 별로 없군요 하나 있네요 일기를 보니 힘들었던 일이 시간이 가면 사라진다고 한 거예요 다 그런 건 아니겠지만, 많은 일은 시간이 가면 나아지고 사라지기도 하죠 저는 쓸데없는 걱정을 더 많이 하지만...


희선

단발머리 2019-08-18 07:36   좋아요 1 | URL
부산에도 쌍무지개가 떴었군요. 제가 있던 곳은 철원쪽이었어요. 비가 쏟아지고 난 후 거짓말처럼 날이 개더니 이렇게 예쁜 장면이 연출되더라구요. nn이 책을 읽다보니 내밀한 기록일 수 밖에 없는 일기쓰기의 힘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주의를 기울이게 되는데, 김연수는 쓸데없는 걱정에 대해서도 쓰라고 하네요. 한참이나 일기쓰기를 하고 있지 않은 저도 일기쓰기를 다시 한 번 해볼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탈코르셋 선언 - 일상의 혁명 페미니즘 철학 세미나 1
윤지선.윤김지영 지음 / 사월의책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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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엄마 세대를 중심으로 알음알음 전해지던 과격한눈썹 문신 한껏 진화해, 요즘에는 주위의 여성들도 자연스러운 색상의 예쁜 눈썹 문신을 많이 하는데, 추천의 시작은, 편해이다. 급기야는 짱구 눈썹으로 무장한 딸애게조차 눈썹 문신을 권한다. 쟤도 해줘, 하면 얼마나 편한데. 요즘 유행에 맞춰 해준다니까. 



친하기는 하지만 친구는 아닌 지인들과 식사를 하고 있었는데, 이야기를 나누던 난데없이 쌍꺼풀 수술 고백 타임이 되어버렸다.  8명이 모여 있었는데, 중에 쌍꺼풀 수술을 사람이 , 나였다. 7명은너도 수술한 거였어?” 서로 묻기 바빴는데, 수술 시기, 수술법, 눈의 형태, 수술한 후의 얼굴 변화에 따라 쌍꺼풀은 모두 각각이었다. 불현듯 이렇게 획일화된 쌍꺼풀 시대를 살아가기에는 나같은 무쌍이 특별하지 않나 생각했다.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저자가, 역시나 기억나지 않는 어떤 책에서 말했다. , 가난한 사람들만이 성형하지 않는 시대가 도래할 것이다. 



여름옷이 많다. 여름을 좋아하고 여름옷을 좋아한다. 여름옷은 가볍고 세탁이 쉽고 저렴하다. 부담없이 여름옷을 산다. 대신 겨울에는 거의 교복 수준이다. 청바지에 티만 바꿔 입는다. 이번 여름을 맞이하면서, 힘들었던 나를 위로하는 마음에(?) 인터넷 쇼핑을 많이 했다. 특히 원피스를 많이 샀다. 원피스는 시원하고 체형을 가려주고 하나 값으로 벌이 완성된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모르게 자꾸 드레스 같은 원피스를 찾고 있는 나를 본다. 자꾸 원피스를 산다. 






탈코르셋 운동은 가부장제라는 구조적 지각판을 습곡, 침강, 단절시킬 있는, 맨틀과도 같은 미규정적이며 상이한 강도를 지닌 역량들의 다발체로서의 페미니스트 다중의 봉기로 해석할 있습니다. (26) 



달리 말해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은 자연적으로 여성-신체자원이라는천연적 노동대상물 타고 났으며 이를 보다 세련되게 관리하고 정교히 세공해내는 기술을 투입함으로써 스스로의 신체를가공된 노동대상으로 탈바꿈하는꾸밈노동 수행해야 하는 것입니다. (33) 





탈코르셋 운동은 가부장제에 대한 도전인가.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은신체 갇혀있다. 여성은 사람은 아니라, 여성이다. 남성이 인간의 표준이고 기준이기 때문이다. ‘여자가’, 혹은감히 여자가’, ‘어떻게 여자가라고 시작되는 모든 언설은어떠해야 한다고 이미 규정되어 있는 여성의 표준 전제로 한다. 중에서 여성을 여성으로 제약하는 가장 강력한 도구, 다시 말해 여성을 남성이 아닌 여성이 되게 하는 차별점이 바로이다. 따라서, 여성-신체자원을 타고난 여성은 화장, 다이어트, 성형 등의 꾸밈노동과 애교 섞인 말투, 순종적인 자세 등을 통해 자신의 신체를가공된 노동대상으로 바꾸어야 한다. 이를 거부하거나 반항할 경우, 강력한 비난에 직면한다. 아니, 무슨 여자가 저렇게 많이 먹어. 아니, 무슨 여자가 화장도 . 아니, 무슨 여자가 저렇게 목소리가 . 





화장이나 외모 꾸미기에 대한 여성들의 취향이나 관심, 아름다움에 대한 열망, 인형이나 분홍색에 대한 선호, 나긋나긋한 말투나 수동적 태도 등은 여성에게 각인된아비투스’(habitus) 드러냅니다. 여기서 아비투스란 사회적으로 범주화된 계층적 가치가 육체에 각인된 상태로서, 개인은 자신이 속한 사회적 계층성을 온전히 체현한 방식으로 말하고 생각하고 행위하고 무언가를 선호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화장과 같은 꾸밈노동을 여성 개인의 사적인 취향이나 기호로 오인하도록 만드는 구조야말로 성별 계층성에 의해 도식화된 개인의 행동패턴과 특정 라이프스타일의 재생산 효과가 얼마나 개인의 신체와 사고방식에 온전히 침습되어 있는가를 방증하는 것이라 있습니다. (74) 




여성이 하나의 단일한 계층으로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아비투스 이념이 이해되지 않을 것이다. 혹은 이해할 없을 것이다. 사회적으로 범주화된 계층적 가치가 육체에 각인되어, 성별 계층성에 의해 도식화되는 . , 같은 조건의 남성에게는 요구되지 않거나 요구될 없다고 생각되는 조건들이여성이라는 이유로 당연히 요구된다는 것이다. ‘여성이라고 이름 붙이는 계층 전체에. 예를 들자면. 





최근 충남의 카페에서는 여성 아르바이트생이 머리를 짧게 자르고 화장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해고되는 부당한 일이 있었다.


변호사 같은 전문직 여성도 예외는 아니다. 이른바접견 전문 변호사문제이다. 변호사 접견이 잡히면 구치소 수감자는 좁은 감방에서 벗어나 횟수·시간 제한 없이 접견실에 머물 있다. 점을 이용해, ‘접견 전문 변호사 부유한 남성 수감자의 심부름꾼·말동무가 되는 대신에 시간당 30~300 원을 받는다. 그래서 일부 로펌은 젊은 신규 여성 변호사를 부유한 남성 수감자를 위한접견 전문 변호사 채용하고, 신체 치수와 사진을 제출하라고 요구한다.  <노동자연대,  268,  2018-11-28> 




예전에 백화점 판매직 여성들에게 강요되던 화장 강요 안경 착용 금지가 이제는 아르바이트생에게, 여성 아르바이트생에까지 확대되었다. 변호사라는전문직여성이어도, ‘예쁘고 단정한용모를 요구 받는다. 참고사항 정도가 아니다. 신체 치수와 사진으로 증명해야 한다. 





우리 사회에서 여성성 과잉 전시 행위는 지극히 정상이라 여겨지는 반면, 강요된 여성성과 다른 방향의 모습들을 전시하는 행위는 폭력적이고 과격한 것들로 해석된다는 것은 과연 무엇을 의미할까요? 이와 같은 실천 행위들은 사회가 요구하지 않는 가치체계를 여성들이 재현하는 모습을 통해 반감과 반발심을 불러옴과 더불어 두려움, 체제전복의 공포감, 혁명의 가능성이라는 정동 또한 이끌어내고 있습니다. (46) 





우리 사회의 여성성 전시가 얼마나 과한지는, 5 여아의 옷만 봐도 있다. 5 여아들이 얼음공주 엘사와 백설공주, 잠자는 숲속의 공주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고 있다. 엘사와 백설공주, 잠자는 숲속의 공주 드레스를 입고 얼마나 행복해하는지, 물론 알고 있다. 다만, 5 여아에게 그대로 늘여서 입으면 엄마가 입어도 만큼 여성스런 옷을 입히고, 불편하고 답답한 검정, 빨강, 분홍 구두를 신겼을 , 그리고 그 모습이 예쁘다고 박수치는 우리 사회의 여성성이 너무 과하지 않은가, 너무 여성성 충만한 세상 아닌가, 의문을 가질 수도 있다는 말이다. 



머리를 샴푸하고 말리는데 들이는 시간과 노력이 아까워 머리를 짧게 자른. 

30 혹은 40, 화장하는데 들이는 시간과 노력이 아까워 민낯으로 외출을 한다. 

체형을 보완하기 위해 몸을 옥죄는 불편한 대신 편안하고 튼튼한 옷을 입기로 한.

 

여기, 어느 지점에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면이 있나. 여기, 어느 지점에 남자를 적으로 규정하는 지점이 있나. 여성의 <탈코르셋 선언> 어디에, 반사회적, 반공동체적 영향이 존재하는가. 






여성은 연애와 결혼이라는 사적 영역에서든, 취업과 승진이라는 공적 영역에서든 자신의 신체를 물리적, 감정적, 심미적, 도덕적 차원에서 전방위적으로 개발해야 하며 이는 타자의 이익 – 남편과 가족에게 편의 제공하기, 애인의 성적 욕망에 화답하기, 기업의 용모 단정 규준에 복종하기 등 – 을 위해 기꺼이 이용 가능한 ‘자원’(resource)으로 채굴되고 착취됩니다. (39쪽)

남성의 신체자원이 성적으로 동일한 방식과 강도로 채굴되고 착취되지 않는 이유는 그들의 신체가 가부장적 교환가치 – 남성 욕망경제의 기호품이자 부계혈통의 세대 재생산 도구 – 로 결코 환원되지 않는 성질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여성의 성적 신체자원은 그들의 노동력의 기본값(default value)으로 설정되어 있기에 업무의 분야에 상관없이 여성들을 향한 아름답고 젊어 보이는 외모에 대한 요구는 사회적으로 이미 조건화되어 있습니다. (41쪽)

다른 한편으로 탈코르셋 운동은 가부장제 자본주의에 대한 주요한 소비파업 운동으로 작동하고 있습니다. 이는 소위 여성용품이라는 이유만으로 더 낮은 기능성을 갖춘 제품을 더 비싸게 파는 소위 ‘핑크 택스’(Pink Tax) 상업 전략에 대항하는 방식으로서, 성별에 따른 저임금 상태의 여성들에게 더 많은 소비를 명령하는 수많은 화장품과 여성 용품, 여성 면도기, 여성 의류에 대해 보이콧하고 그것의 불필요함을 전면화하여 드러냅니다. 이처럼 탈코르셋 운동은 여성을 끊임없이 빈콘케 하는 동시에 외모를 억압하는 화장품 소비를 멈추고, 여성들의 현재와 미래를 충만하게 하는 여러 자산 축적 비법들과 편하고 싼 제품들에 관한 정보를 공유하고, 생활기술들의 전략들을 나누는 행위들이 동반되는 전 방위적 차원의 삶의 혁명 운동이기도 합니다. (69쪽)

예컨대 남성보다 가녀린 신체, 선이 곱고 예쁜 이목구비, 볼륨감 있는 몸매, 긴 머리, 호전적이지 않고 부드럽고 순종적인 태도와 눈빛, 배려심, 착하고 고운 마음씨, 애교 등은 임의적이고 우연적인 특성들의 총합일 뿐이지만, 이것이 남성과 확연히 대별되는 신체적, 심리적 차원의 성별 특성들의 총체를 형성함으로써 결국에는 ‘여성’이라는 하나의 균질하고 동질적인 성별 계승성의 고유한 특질(property)로서 고정화되기에 이르는 것입니다. (75쪽)

[오해 1] "외모 꾸미기는 내가 좋아서 하는 것인데 왜 그만두라고 하는 것인가요?"

아름다움이란 가치는 결코 내내적이지 않습니다. 늘 그 아름다움을 판단하고 평가하는 남성 인식주체의 인정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점에서 여성들이 추구하는 아름다움에 대한 욕망은 자족적인 것도, 독립적인 것도, 온전히 자유로운 것도 아닙니다. 또한 앞서 살펴본 대로 사회학자 부르디외에 따르면 여성의 사적 취향과 기호, 욕망, 앉거나 걷는 자세, 태도, 어투, 제스처까지 사회적으로 구별되는 성별 계승성에 의해 각인되고 결정됩니다. 여성이 온전히 자유롭게 선택하는 취향으로서의 외모 꾸미기란 사회적 환상에 불과합니다. (93쪽)

우리 대다수가 꾸밈노동의 완벽한 수행을 찬사와 무조건적인 박수로 맞이했었다면, 여성들의 민낯과 짧은 머리는 사람들에게 일종의 ‘불편함의 감각’을 선사합니다. 왜냐하면 짧은 머리를 하고 바지를 입은 여성들은 기존의 여성성 수행 방식에 대한 반란자들이자 이 억압적 사태에 ‘동참하지 않음’을 선언하고 그것을 자신의 몸으로 보여줌으로써 여전히 꾸밈노동을 지속하고 이는 사람들에게 이전엔 느껴보지 못했던 윤리적 불편함을 일으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런 불편함을 느끼는 사람들이 탈코르셋 운동을 배제와 차별의 정치라고 반박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제까지의 코르셋이야말로 수많은 여성들을 스스로의 신체와 불화케 하고 아름다운 기준에 충족되지 않는 여성들에 대한 차별과 배제를 정당화했다는 것을 우리는 반드시 깨달아야만 합니다. (99쪽)

화장이 주는 기쁨의 정동의 강도보다 탈코르셋 운동을 실천하는 이들이 드러내는 존재역량의 상승의 사진들과 경험담들, 이로 인한 새로운 삶의 양식들의 전략과 태도들이 더 많이 사회적으로 발화되고 공유됨으로써 탈코르셋이 주는 기쁨의 정동의 강도가 더 높아질 때, 많은 여성들은 그 기쁨의 정동의 물결을 스스로 따를 것입니다. (102쪽)

이미 유명 브랜드 브라의 광고에서는 아름다움을 위해 편안함을 포기했던 과거에서 벗어나 편안함이 곧 아름다움이라고 속삭이는 여성 모델이 출연하고 있으며, 아름다울 미는 타인을 위한 것이 아니라 ‘me’, 즉 나를 위한 것이라는 여성 화장품의 광고문구도 등장하고 있습니다. 이는 자본주의가 아주 탄력적이며 영리하게 여성 소비자들의 탈코르셋 운동 여파를 반영하고 주요 고객층의 니즈를 흡수하려는 전략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108쪽)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여성의 신체 형상에 있는 굴곡짐과 구부정함 등이 하층민의 그것과 유사한 것으로 여겨졌다는 점입니다. 이미 여성의 신체적 특징을 계급제도에서의 하층민의 징표이자 열등함의 표식으로 규정했다는 점에서 초기에 등장한 코르셋도 여성혐오에 관통되어 있는 것임이 드러납니다. (부록: 코르셋의 간략한 역사, 1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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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almA 2019-08-14 16: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문제가 참 복잡하고 끝이 없게 됐죠. 가부장제 틀 비판만으로는 어렵지요. 손끝, 발끝, 온몸의 털까지 케어를 하라는 자본주의 시장이 더 문제라고 봅니다. 여성의 가사 활동을 돈으로 환산하면 얼마냐 식으로 서비스 가치 기준으로 환산도 하고 있습니다. 많은 것들을 서비스, 가치 비교하는 것도 무척 자본주의적이죠. 이 놈의 세상은 이렇게라도 수치화해서 보여주지 않으면 안 되니까.

생존하려면 조금이라도 더 얻으려면 자기 관리는 물론 업그레이드도 계속해야 하는 상황이니 다같이 ‘자연인‘으로 살자는 늘 캠페인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건 불안감일 뿐이다, 아비투스화된 사회인식이다 끝없이 말해도 돌아가는 판은 참 안 바뀌죠. 요즘은 화장하는 남성들도 꽤 있던데요. 이 꾸미기는 생존 전략에서 쉽게 놓지 못할 무기입니다. 그 뿐인가요. 꾸미기는 여가 생활, 자기 만족, 친목 활동 등 인간 삶의 기본 요소니 단점 하나만 덜어낼 수도 없습니다.

짧은 치마를 입는 건 내 자유고 내 만족감을 위해서라고 말하고, 브라를 착용하고 화장하는 건 남성에게 잘 보이기 위한 그들의 가치 기준에 끌려다니는 거다 그렇게 이분법으로 나눌 수 있는 것인가요. 우리의 선택은 늘 자유와 방어가 혼재해 있습니다. 문제를 따지다보면 늘 나오게 되는 지점에 또 다다르게 됩니다. 어디까지가 내 ‘자유의지‘인가, ‘자유의지‘가 있기는 한가.

아름다움의 기준이 꼭 남성 인식주체에서 비롯되기만 할까요. 남성, 여성을 가리지 않고 고운 피부, 아름다운 곡선, 표정, 태도, 목소리 등등에 대한 호감은 유전자에 들어 있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자동반사적으로 느끼는 것 같다 싶은데요. 뱀에 대한 혐오가 즉각적이듯이요. 생물계에서도 어떤 종은 짝짓기를 위한 꾸미기 전략이 치열하죠. 인간이기에 가부장제가 특수하게 작용하는 거겠지요. 동물계 사례와 비교한 생물학적 분석을 페미니즘 쪽에선 문제 축소 혹은 왜곡으로 보는 시각차가 있죠. 그래서 생물학과 페미니즘 사이가 안 좋은 건 자주 봅니다^^; 이런 복잡한 상황이라 저는 진화와 인간 본성 공부에 더 흥미를 느끼게 되는지도 모르겠어요.

단발머리 2019-10-22 18:45   좋아요 2 | URL
제가 인터넷이 안 되는 지역에서 며칠 지내느라 댓글이 늦었어요, 아갈마님^^ 이미 지구는 자본주의에 의해 완전 점령당했다고 보는게 맞는것 같아요. 이 지구에 돈의 힘을 이길수 있는게 있을까 싶고요. 탈코르셋 선언에 대한 평가가 제각각일수는 있겠지만 제가 이 책의 주장 중에 동의하는건 지나친 여성성의 표현 혹은 과시에 대해서는 찬성과 동의의 한 목소리만 존재한다는 데 있어요. 나의 자유라고 말하는 것과 별개로 여성에게는 일방적으로 화장이 요구되는 문화를 무시할 순 없으니까요. 남성 역시 피부톤을 정돈하고 하얀 피부 표현을 위해 썬크림, 보정크림을 사용할 수는 있지만 자신의 장기를 훼손하는 정도의 미용 도구가 강제되지는 않으니까요. 저도 이 부분은 아직 모르는게 많아요. 원피스 좋아하고 립스틱은 분홍만 바르는 제가, 이해하는 것과 받아들이는 것 사이의 간극을 어떻게 극복하게될지 그것도 모르겠구요. 진화와 인간본성에 대한 아갈마님의 탐구 열정을 통해 새로운 시각을 알아가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