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미쳐 있는>을 여전히 읽는 중이다.



첫인상은 매우 강렬하고 매혹적이지만 두께가 주는 압박감이 상당하기는 한데, 책을 펴서 읽기 시작하면 생각보다 술술 잘 읽혀서 깜짝 놀라게 된다. 특히 도입부에 등장하는 힐러리 클린턴 이야기는 흥미도를 150% 상승시키는 효과가 있는데, 공저자 두 사람이 이 책을 집필하게 된 동기로 트럼프의 당선을 꼽았을 정도로 트럼프의 당선이 당대 미국 사회에 끼친 충격이라는 것은 가히 상상을 초월할 정도인 듯싶다.



데본주에 있는 13세기풍 초가집 코트그린으로 이사한 실비아 플라스는 모든 걸 가진 듯했다. 원하던 남자 테드 휴스를 남편으로 맞았고, 천사 같은 아이 둘을 얻었다. ‘진실과 약속으로 가득 찬 크리스마스이브’ (114) 같은 나날을 꿈꿨던 실비아. 하지만, 행복하고 소중한 나날들은 생각보다 훨씬 더 짧았다. 시골 생활의 외로움과 난방장치나 현대식 부엌 없는 오래된 집에서 두 아이를 돌보는 고단함(116)이 두 사람을 덮친 것이다. 그다음 두 사람의 이야기는 책의 표현 그대로 잘 알려져 있다’. 다른 여성과의 불륜 행각. 이를 알게 된 실비아. 강제로 쫓아냈던 테드가 돌아오기를 기다린 실비아. 테드가 런던으로 떠난 게 1962 8월이다. 그리고 1963 2 11, 실비아 플라스는 침실 책상 위에 폭탄처럼 보이는 원고를 남겨두고는 가스 오븐을 틀었다. (112)



기사로 읽은 최윤필의 <가만한 당신>에서는 <테드 휴즈-실비아 플라스 부부의 비극 속 조연으로 살다>에서 테드의 누나 올윈 휴즈를 다룬다. 실비아가 세상을 떠난 후, 법적으로 이혼 상태가 마무리되지 않았기에 실비아의 모든 작품의 저작권은 당연히 테드의 몫이었는데, 실제로는 생전에 실비아와 사이가 좋지 않았던 시누이 올윈이 실비아의 유작과 이후 실비아 전기에 대한 권한을 가지게 되면서 테드를 희생자로, 실비아를 자기중심적 몽상에 빠진 사람으로 몰아가는데최선의 노력을 다한다. 최윤필은 BBC 프로덕션의 귀네스 펠트로 주연의 <실비아>에서 테드가 자상하고 배려심 깊은 남자로 묘사된 데에도 이런 사연이 있었을 거라고 추측한다.







실비아의 선택은 실비아의 것이다. 그녀의 절망에 테드가 미친 영향이 가장 컸던 것을 부인할 수는 없겠지만, 그것이 테드의 잘못이라고 딱 잘라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물론, 나는 딱 잘라 파경의 가장 큰 원인은 테드의 불륜이라고 말하고 싶기는 하다) 다른 사람들로부터 도움을 받지 못해 실비아의 우울함이 더욱 심해졌을 수도 있고, 재능 있고 명석한 여성이었지만 당시 사회를 지배하던 집안의 천사에 대한 압박에서 자유롭지 않았을 수도 있다. 문학적 성취에 대한 갈망과 스스로에 대한 회의감 등은 예술에 천착하는 작가에게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모습이기도 하다. 실비아는 자신의 기쁨과 희망을, 절망과 탄식을 작품으로 남겨두었다. 하지만.  



어떤 진실은 끝까지 밝혀지지 않고. 그 진실과 가장 밀접한 관련이 있었던 사람은, 사건으로서의 사실 혹은 그 진실이 밝혀지는 것을 보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실비아의 작품은 테드와 올윈에 의해 편집되었다. 실비아와 동시대에 살았던 사람들은 테드와 올윈 때문에 죽음 직전 실비아의 진실에 끝내 다가가지 못했을 것이다. 이제 테드는 죽었고, 올윈도 죽었다. 실비아에 대한 진실과 테드와 올윈에 대한 진실, 실비아의 실제와 그들의 옳지 않은 행동에 대한 진실이 밝혀질 것이다. 하지만, 이제 실비아는 없고. 테드도 올윈도 없으며. 잘못된 사실을 진실로 믿고 있던 사람들도 이제는 없다. 죽었다. 아마도 죽었을 것이다.



남겨진 사람들은 실비아와 테드, 올윈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지만, 진실에 대한 수정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이다. ‘잘못된진실을 들은 사람들, 그 진실에 대한 수정본을 들어야 하는 사람들은 죽었다. 실비아는 1963 2 11일에 죽었다. 60년이 흘렀고, 오늘은 2023 12 18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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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3-12-18 13:5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여전히 미쳐있는 을 여전히 읽고 있습니다. 어휴 단발머리 님 글 너무 좋으네요. 처음에 힐러리 얘기로 시작해서 저도 참 인상깊고 좋았어요. 단발머리 님이 말씀하셨듯, 책을 펼치고나면 생각보다 잘 읽히더라고요. 그래봤자 아직 조금밖에 못 읽었지만요. 자, 쭉쭉 읽어나가 봅시다!!

단발머리 2023-12-23 17:02   좋아요 0 | URL
전 이제 다시 펼쳤습니다. 쓰고 싶은 맘도 들고 더 읽고 싶기도 한데, 일단 케이트 밀릿 글을 한 편 썼고요.
쉬는 시간 후에 다시 시작하겠습니다. 부릉부릉 부르릉!!

잠자냥 2023-12-18 14:4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여전히 ㅋㅋㅋㅋㅋㅋ 그래도 술술 읽히죠?!
저는 그래서 최윤필의 관점을 좋아합니다.
실비아 플라스가 오죽하면 머리를 오븐에..-_-

단발머리 2023-12-23 17:03   좋아요 0 | URL
여전히 술술 읽힙니다. ‘여전히 미쳐 있는‘, ‘여미처‘ 사이에 담담한 ‘잠자냥‘ 제가 발견했습지요.

공쟝쟝 2023-12-18 16:2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여미쳐 진짜 재밌죠? (재밋는 거랑 별개로 저도 읽다 맘ㅋㅋ 그런 책 천권있음) 저 관련한 글 읽었었는 데, (양효실 에세이였음) ...... 실비아의 대단히 멋진 아버지랑도 꽤 관련이 있다고 생각했었어요. (죽기 얼마 전에 아빠 개새끼 하는 시 쓰고 죽었음 ㅜㅜ)

단발머리 2023-12-23 17:04   좋아요 0 | URL
죽기 전에 쓴 ‘아빠 개새끼‘ 시를 저도 좀 찾아보려고요. 그렇게 욕하고 싶은 사람이 아빠 뿐만은 아니었겠지요.
양효실씨는 또 누구시랍니까........ 아, 할 거 겁나 많음요.

수이 2023-12-18 16:3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환생해서 다시 시 쓰고 다시 소설 쓰고 다시 평론 써주면 좋겠다 싶은 이미 죽은 여성들 중 실비아 플라스는 단연 탑. 가슴 아픕니다.

단발머리 2023-12-23 17:05   좋아요 0 | URL
저도 딱 그 생각했어요. 더 썼어야 하는 사람, 더 오래 살았어야 하는 사람.
1. 실비아 플라스
2. 캐롤라인 냅

독서괭 2023-12-21 16: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읽기 시작했습니다! 오, 실비아 플라스에 대해 그런 이야기들이 나오는군요? 흥미진진!

단발머리 2023-12-23 17:07   좋아요 1 | URL
저 반 읽었거든요. 독서괭님 달려 읽으시면 금방 저보다 앞서 읽으시겠군요.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너무 많아요, 진짜....
흥미진진하고 슬픈 이야기들.......
 

 













원서 읽을 때는 번역본이 있어도 찾아보지 않는 편이다. 않는 편, 이 아니라 거의 찾아보지 않는다. 유난한 영어 실력이 있어서는 아니고(아니고 2, 아니고 3) 귀찮아서 그렇다. 나중에 번역본을 찾아 주르르 읽더라도 읽을 때는 그냥 원서만 읽는다. 하지만, 번역본과 함께 원서를 읽는 것은 굳이 영어 공부가 아니더라도 깊이 읽기의 좋은 방법이기는 한데, 그게 바로 오에 겐자부로의 읽기법/공부법이다. 그에 대해서는 내가 간단하게 글을 써 둔 것이 여기(https://blog.aladin.co.kr/798187174/7834499)에 있다.

 


<Edible Economics>에는 어려운 단어가 많이 나오는 편은 아니고, 구조도 많이 어렵지는 않아서 짬짬이 읽고 있었는데, 한글로 읽으면 더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겠구나 싶어 근처 도서관에 상호대차를 신청했다. 교회에서 오는 길에 책을 대출했는데, 주일에는 오전에 나갔다가 오후에 돌아오기에 바로 집으로 가고 싶은데, 그날따라 백화점에 볼일이 있어서 혼자 백화점으로 갔다. 남편이 오기를 기다리면서, 방금 대출한 책을 꺼내 들었다. 주일 오후, 백화점 지하 1층 푸드코트. 북적이는 사람들 틈에서 커피 한 잔 없이 책을 펼쳐 들었다. 잠깐 고개를 숙였다가 다시 들었더니 40분이 흘러 있었다. 나의 집중력 무엇. 베즐리에 가서 밤 많은 식빵을 하나 사서 열어 놓고는 다시 읽기를 시작했다.

 

 

<마늘에서 초콜릿까지 18가지 재료로 요리한 경제 이야기>가 부제인 이 책은 식재료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한다. 그 재료가 쓰이는 방식, 요리에 대한 이야기에서 시작해 자연스레 산업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가고, 그에 대해 사람들이 경제에 대해 가지고 있는 오해에 대해 설명해 준다. 그래서 <1>의 제목이 편견 넘어서기. 챕터 2의 주제는 오크라인데, 오크라는 목화, 카카오, 히비스커스, 두리안 등이 함께 속한 아욱과 식물인데, 미끌미끌한 식감이 특징이다. 오크라는 아프리카에서 납치되어 노예로 끌려온 사람들과 함께 미국을 비롯한 아메리카 대륙에 들어왔다고 한다. (65) 아이티 혁명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지고, 이는 자유 시장에 논의를 불러온다. 자유 시장의 팬들이 자본주의를 옹호할 때 자유의 개념을 자주 사용한다(73). 그 자유란, 누구의 자유인가, 라는 질문.

 


거기에 더해 프리드먼이나 헤리티지 재단이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자유는 좁디좁은 경제적 자유의 개념 중에서도 자산 소유자(지주와 자본가)가 가장 큰 이윤을 내는 방법으로 자신의 자산을 사용할 수 있는 자유다. 자산가의 자유와 충돌할 가능성이 있는 다른 사람들의 경제적 자유 - 노동자들이 집단행동을 할 자유(예를 들어 파업), 실직한 노동자들이 새 직장을 구할 때 강력한 복지 국가의 보호를 받아 좀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는 여유를 누릴 자유 등 - 는 잘해야 그냥 무시되고, 많은 경우에 반생산적이라는 이유로 비난을 면치 못한다. 최악의 경우 노예화된 아프리카인처럼 누군가가 '자산'으로 정의되면 그들의 비자유는 폭력, 심지어 전쟁을 불사하고라도 관철되어서 그들의 '소유주'의 자유로운 재산권 행사를 보호해야 한다. (75)

 


자유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추구하는 자유가 자본가의 자유임을 우리는 모르지 않는다. ‘안전한 일터에서 생명과 건강을 위협받지 않으면서 즐겁게 일할 자유’, ‘귀여운 자녀와 충분한 여가 시간을 보낼 자유같은 것은 아무도 이야기하지 않는다. 언론사의 대주주는 기업가이거나 그들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적인 경제학자로서 약자의 권리, 노동자의 권리에 대한 이런 발언이 나는 참 소중하다고 생각한다.

 

 

 

이제 번역본이 손에 들어왔으니 다시 원서로 돌아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 나의 17,800원을 안타까워하며, 원서에서 마음에 들었던 구절을 올려본다.

 


 


하지만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살아갈 것인가? 이해할 수 없는 경제학 이론이 난데없이 나타나 우리가 몸담은 세상 전체를 뒤집어엎고 주물럭거리는 것을 절망 어린 침묵 속에서 그저 바라보고만있을 것인가? 지금 우리 사회가 만들어지고 돌아가는 방식에 만족한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가? 자신이 우리 모두에게 가장 중요하다고 믿는 원칙과 정부의 철학이나 정책이 일치하는가? 세계적인 거대 기업과 평범한 노동자가 공평하고 정당하게 세금 부담을 나누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모든 어린이가 잠재력을 100퍼센트 발휘해 가장 성공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이 기울여지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우리 사회의 가치가 공동체, 공동의 책임, 모두가 공감하는 목표를 향상시키는 방향과 일치한다고 믿는가? 독자들의 답이 어떨지 짐작이 간다. 그리고 나도 거기에 동의한다.(36)



Tell me. 번역서는 이 부분을 다음 문장과 부드럽게 연결했던데, 나는 이 표현이 이대로 좋았다. Tell me.

 

내가 이런 자세를 좋아하는가 싶기는 하다. 그러니까 몸의 반 정도를 소파에 뉘고 한가하고 여유롭게 이 책을 읽어나가는 소극적인 독자가 아니라, 조금 확대해석하자면, 이 책을 같이 만들어 가는 사람으로서의 독자. 읽기 과정에서 저자와 소통하는 주체로서의 적극적인 독자. 그런 독자에 대한 호명을, 나는 좋아하는 듯하다.

 

 

텔 미. 물론! 텔미, 하면.... 텔미, 텔미, 테테테테텔미,에 익숙한 세대로서 춤은 안 되더라도 나의 텔미는 원더걸스의 그 텔미일테지만, 혹 모르는 일이다. 이제 나의 텔미는 장하준의 이 텔미일지도.

 


Tell me.

텔 미.

텔미 텔미 테테테테텔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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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수하 2023-12-12 13:4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의 Tell me는.... 더 옛날 노래네요. 샵의 Tell me, Tell me ...

왜 원더걸스가 먼저 떠오르지 않았을까요..

잠자냥 2023-12-12 13:59   좋아요 2 | URL
헐........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근데 전 <텔 미 썸딩> 생각 나고..ㅋㅋㅋㅋㅋㅋ

건수하 2023-12-12 14:14   좋아요 1 | URL
둘다 1999년이네요?

어우 전 그 영화는 안봤습니다... 그런 거 잘 못봄..

단발머리 2023-12-12 15:44   좋아요 1 | URL
건수하님 / 샵이 더 오래된 그룹 같은데.... 그건 진짜 왜일까요? ㅋㅋㅋㅋㅋㅋㅋㅋ전 그 노래를 몰라욬ㅋㅋㅋ

잠자냥님 / 덕분에 <텔 미 썸딩> 찾으러 갑니다. 건수하님 말씀의....그런 거...가 뭘까요?

건수하 2023-12-13 10:19   좋아요 0 | URL
빨간 액체가 많이 나오는 거요...

다락방 2023-12-12 14:1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경제서적 영어로 읽는 단발머리 님이라니!! 듀오링고 기초부터 시작하고 있는 저는 단발머리 님의 멋짐에 뿅갑니다. 경제도 어렵고 영어도 어려운데 경제를 영어로.. 샤라라랑~ ♡.♡

단발머리 2023-12-12 15:49   좋아요 1 | URL
듀오링고 말씀하셔서 좀 찾아보니 무척 흥미로워보여요. 문제는 저는 <작심3일> 인간이라 할 수 있을까, 싶어요.
왜냐하면 저도!! 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이게 무슨 말? @@) 듀오링고 해보시고 괜찮으면 알려주세요. 무료인거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네요.

그리고 저... 이제 번역본 손에 잡은 사람.... 다시 원서로 돌아가기 어려울거 같아요. 샤라라랑~~

다락방 2023-12-12 16:18   좋아요 2 | URL
아 듀오링고 는 무료이긴 한데요(저도 무료 사용중), 무료는 광고.. 가 나옵니다. 흠흠. 그렇지만 프로그램 자체는 지속적으로 하면 영어 실력에 도움이 될 거로 보여요. 저 이제 사흘째인데 현재까지는 무척 재미있게 하고 있습니다. 저에게 이걸 소개시켜준 친구는 delicious 스펠링을 틀려서 무척 절망했다고 하더라고요? 기초부터 착실히 다져나갈 수 있습니다. 또한,

이거 다른 외국어도 가능해요! 물론 다른 외국어는 영어 기반이긴 합니다. 공부 자체를 영어로 해야 해요. 하하하하하. 저는 일단 한국어로 공부하는 영어만 하고 있긴 한데, 단발머리 님은 프랑스어 공부 하셨으니 프랑스어 하셔도 좋을것 같아요. 참고로 제 친구중 한 명은 러시아어를 공부하고 있습니다. 후훗.

또한, 유료전환하면 당연히 광고가 없는 걸로 알아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저도 하다가 재미 붙이면 유료로 넘어갈지도...

단발머리 2023-12-12 18:20   좋아요 0 | URL
정확하고 세세하고 다정한 안내 감사드려요, 다락방님!!

저도 해볼래요! 하고 싶지만 그러다가 누군가 ㅋㅋㅋㅋㅋㅋㅋㅋ 알라딘의 누군가.... 듀오링고 어때요? 하고 물어보시면 큰일이니 ㅋㅋㅋㅋㅋㅋ 조용히 혼자 한 번 해보겠습니다. 당근!! 무료 버전을 이용해야겠지요.

영어로 프랑스어는 안 됩니다. 그건 정말 안 될 일입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파묻힌 여성>은 여성 종속을 역사적 관점에서 추적한다. 여성 종속의 기원과 관련해서, <가부장제의 창조>의 거다 러너의 생각은 레비-스트로스와 클로드 메이야수에 가까운 것으로 보인다.

 















엥겔스와 그의 추종자들은 사유재산이 먼저 발달하고이것이 “여성이라는 성의 세계사적 전복을 초래했다고 생각한다. 그런가 하면 레비-스트로스와 클로드 메이야수는 사유재산이 생기게 된 것은 여성교환을 통해서였다고 믿는다. (<가부장제의 창조>, 87

 

, 재화가 부족했던 신석기 시대에 사유재산의 첫 번째 전유는 재생산이 가능한 여성의 노동력에 대한 전유로서 가능했다고 본 것이다. (<가부장제의 창조>, 91) 이 책 <파묻힌 여성>의 저자 역시 이와 비슷한 입장이다.

 


클로드 레비 스트로스(1908~2009)가 여성의 교환을 '긍정적인 거래"라고 불렀다면, 프랑수아즈 에리티에는 남성이 지배권을 가지고 있고 여성의 가치가 낮게 평가된 것으로 본다. "지구상의 여러 곳에서, 성격이 서로 다른 집단이, 남성이 여성을 교환한다. 이 때문에 나는 인류의 시작부터, 그리고 구석기시대가 시작했을 때부터 성에 따른 차별적 가치가 있었다고 말할 수 있다." (<파묻힌 여성>, 35)

 

 















<캘리번과 마녀>의 실비아 페데리치는 급격한 출산율 감소로 인한 사회적 불안의 원인으로 일부 여성들이 지목되고, 이들을 마녀로 규정하면서 진행된 마녀사냥이 여성을 종속화하는 데 중요한 기점이 되었다고 분석한다. 분만 과정에서 이루어지는 여성들의 협동적인 작업이 마녀들의 주술 활동으로 정의되면서, 출산에 대한 여성의 제어권이 박탈당하고, 출산 작업 공간에서 산파들이 쫓겨나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남성 의사가 출산 전 과정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맡게 되었다는 지적이다. 여성의 신체가 노동력을 재생산하는 도구, 출산 기계로 전락하게 된 것이다.

 


 












<가부장제와 자본주의>의 공동 저자들은 가부장제와 자본주의의 결합이 제3세계의 여성들뿐 아니라 제1세계의 여성들의 삶도 종속화시켰다고 주장했다. 국제 노동 분업을 통해 유럽과 미국의 여성이 제일 먼저 해고되고, 직장을 잃은 여성들은 가정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는데, 결국 남편의 임금에 의지해 살아가야 하는 제1세계 여성들에게는 가정의 천사로서의 수행이 기대되었다. 한편 제3세계 여성들은 임금 노동자가 아니라 직장에 나온 가정주부로 인식되어 비인간적 노동시간과 저임금의 횡포에 시달렸다. 가부장제와 자본주의의 결합으로 양 세계에 속한 여성들이 모두 억압받게 된 것이다. 


 















<그림자 노동>에서 이반 일리치는 지위가 박탈되면서 전혀 새로운 계급으로 만들어진 가정주부의 탄생을 1830년대로 특정하고 있다. 좀 길지만 그대로 인용해 보겠다.  

 


음식 가공과 저장, 양초와 비누 제조, 실쌈, 제화, 퀼팅, 양탄자 짜기, 소형 가축 기르기, 텃밭 농사 등이 모두 가정 안에서 이루어졌다. … 가정의 자급자족을 유지하는데 여성도 남성 못지않게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남성이나 여성이나 집에 가져오는 수입은 비슷했다. 경제적으로 여성은 여전히 남성의 동반자였던 것이다. … 하지만 1830년이 되자 상황이 달라졌다. 상업적 영농이 자급농을 대체하기 시작했고, 생활 임금을 버는 일이 상례가 되었으며, 부정기적 임금 노동은 빈곤의 징표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여성은 가족의 생계를 책임진 가정의 안주인에서, 자녀가 일하러 가기 전에 머무는 장소, 또는 남편이 휴식을 취하고 수입을 지출하는 장소의 관리인으로 전락했다. 앤 더글러스는 여성의 이러한 변형을 지위 박탈’(disestablishment)이라고 불렀다. (198)


 




지금은 어떨까. 나는 초소형 카메라와 스마트폰의 등장이 여성의 종속을 가속화하는 중요한 요인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화장실에 몰래 설치된 불법 카메라는 일면식도 없는 여성의 신체를 촬영하는데 쓰이고, 발각되지 않는 경우 불법으로 촬영된 영상은 야동 사이트를 통해 유통되고 있으며, 일부 무법한 사람들이 회식 예약 장소에 미리 방문해 회사 여직원이 사용하게 될 화장실에 불법 카메라를 설치하는 데까지 이르렀다. 이것이 우리의 현실임을, 우리는 부인할 수 없다. 또한 연인 사이의 은밀하고 개인적인 애정사가 불법으로 촬영되어 이별을 전후에 협박용으로 혹은 복수형태로 악용되고 있는 디지털 성범죄(리벤지 포르노)의 경우, 당사자들이 심각한 피해를 호소해도 무한 반복되는 가상 세계에서의 추적과 완벽 삭제는 매우 어려운 일임이 분명한다.

 

 


역사를 통해 확인되듯이 여성 혐오는 무한 반복된다. 그 시작점을 추적하려는 것이 <파묻힌 여성>의 목적이었을 것이다. 종교의 이름으로 이루어졌던 여성 혐오는 과학의 이름으로 이루어지고, 가정주부 이상화는 완벽한 워킹우먼에 대한 찬사로 이어진다. 코르셋은 양악 수술로 이어지고...... 



여성 혐오는 계속 이어지고 있다. 어떻게 끝을 내야할지 모르겠다.

여성 혐오는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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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괭 2023-12-07 06:1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헐 저런 사건이 있었어요? 미친넘 🤬🤬🤬
진짜 어떻게 끝을 내야 하나요? ㅠㅠ 어제 본 기사 제목은 “엄마들, 브런치 즐기려 소아과 오픈런” 이었습니다. 🤬🤬🤬 이러면서 애 낳으라니..
단발님의 그동안의 독서가 빛을 발하는 글이군요👍👍👍

다락방 2023-12-07 07:40   좋아요 1 | URL
저도 어제 그 기사 제목 보고 미쳤구나 했어요. 브런치 즐기려고 소아과 오픈런 이라니요. 그게 말입니까 방굽니까. 제 남동생도 아기 진료보려고 오픈런하는데 실상을 이렇게 깔아 뭉개나요. 어휴.. ㅠㅠ

단발머리 2023-12-07 11:04   좋아요 1 | URL
독서괭님 / 아침 6시에 독서괭님의 시원한 분노를 마주하고 저는 굿모닝!으로 답했습니다.
오늘 아침에도 저 기사 분석기사 나오던데요. 다들 미친거 아닌가 싶습니다, 진짜........

다락방님 / 사정을 아는 사람들은 다 아는데 말이에요. 예전에 제가 살던 아파트에서 입주민 회의하는데 놀이터 바닥이 모래여서 다른 소재로 바꾸자는 안건이 있었는데 대부분이 반대하셨대요. 그 분들 자녀들은 이미 장성했고 결혼해서 다른 지역에 사니까... 현재 이 아파트에 사는 아이들은 안 보이는 거에요. 누가 놀이터에서 노냐고. 그 비용이 얼마냐고... 하셨다는 슬프고 어이없는 이야기...............

다락방 2023-12-07 07:4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매일, 어김없이 매일 불법촬영에 대한 기사가 쏟아지는데, 어째서 왜 계속 불법촬영을 할까요? 안들킬 거라고 자신하는 걸까요? 설치할 생각을 하다가도 그런 기사를 보면 아이쿠 잡히면 안된다, 하지 말자, 라는 생각을 하지 않는 이유가 뭘까요? 저는 특히나 불법촬영 범죄에 대해서는 열등감이 가해로 이어진다고 보는데, 굳이 숨어서 몰래 훔쳐보는 그 못남을 스스로에게 허락하는 이유가 뭘까요? 타인에 대한 혐오가 이어진다는 것, 한쪽 성별에 대한 혐오가 이렇게나 오래 이어진다는 건, 다른 한쪽의 열등감을 결코 극복하지 못하는 것에 다름 아니겠지요. 못난이들...

읽느라 고생하셨습니다, 단발머리 님.

단발머리 2023-12-07 11:07   좋아요 2 | URL
오늘 아침에도 불법 촬영에 대한 기사 읽는데 정말.... 밖에서는 화장실 이용을 말라는 건지, 여자들은 다 집에만 있어야 하는지... 막 이런 어이없는 생각도 들고요.
전, 그 사람들이 아이쿠 잡히면 안 된다, 하지 말자... 보다는 나는 안 걸릴 거야... 라고 생각할 거 같아요. 걸리지 않을 것 같고 혹 걸리더라도 그 대가가 생각보다는 크지 않으니까요. 그로 인해 얻게 되는 경제적 이익 때문이라고 생각하는데... 문제의 핵심은 수요라고 생각합니다. 그 사이트에 가입하고 혹은 회비를 내고 활동하는 사람들....
이걸 어쩌면 좋을지 .... 전 진짜 답을 못 찾겠어요 ㅠㅠㅠ

은오 2023-12-07 23:2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니 남 오줌똥 싸는 걸 보고싶나 미친놈들 진심 남자들 똥싸는거 몰래 찍은영상 줘도안보고싶은데 다들진짜 재기(-)했으면

단발머리 2023-12-08 12:25   좋아요 1 | URL
저는 그 심리에 대해 더는........... 진지하게 생각 안 하려고 해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영역..... 헐....
 



















1. 작품제목 : 바삭한 황태칩 




2. 작품제목 : 여전히 미쳐있는 




3. 작품제목 : 마이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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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3-12-05 10:0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4강이요.

단발머리 2023-12-05 10:21   좋아요 2 | URL
이런…. 예리하신 분 ㅋㅋㅋㅋㅋ

독서괭 2023-12-05 10: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마이쮸 ㅋㅋㅋㅋㅋ

단발머리 2023-12-05 10:22   좋아요 0 | URL
4가지 맛 중에 저게 젤 맛나요! 청포도맛 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23-12-05 11: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정답. 황태칩!!

단발머리 2023-12-05 11:54   좋아요 0 | URL
1번 정답, 맞추셨구요!

다락방 2023-12-05 11: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정답. 형광펜!!

단발머리 2023-12-05 11:54   좋아요 0 | URL
2번 정답, 맞추셨습니다.

다락방 2023-12-05 11: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정답. 테일러 스위프트!!!

단발머리 2023-12-05 11:55   좋아요 0 | URL
1, 2번 공통정답 테일러 스위프트 맞추셨고요.

이제 1, 2, 3 공통정답만 맞추시면 됩니다. 갈 길이 멀지 않아요. 화이팅!!!

다락방 2023-12-05 12:13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정답. 책상!!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단발머리 2023-12-05 13:05   좋아요 0 | URL
땡! ㅋㅋㅋㅋㅋㅋ 🤪🤪🤪

우끼 2023-12-06 01: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페미니즘의 도전!!

단발머리 2023-12-06 18:46   좋아요 0 | URL
거의 정답입니다. 다시 도전!!

우끼 2023-12-06 22: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희진!!! 혹은 다시 페미니즘의 도전!!

단발머리 2023-12-06 22:25   좋아요 1 | URL
2개로 도전하시면 안 됩니다!! ㅋㅋㅋㅋ

우끼 2023-12-06 22: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앗 그럼 다시페미니즘의 도전으로!!

단발머리 2023-12-06 23:00   좋아요 1 | URL
우끼님~~ 일단 주무시고요 ㅎㅎ
내일 다시 도전!!

우끼 2023-12-06 23: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집에가고싶어요.. ㅜㅜㅜㅜ(회사입니다..)
안녕히주무세요..

단발머리 2023-12-06 23:03   좋아요 1 | URL
에구 어째요 ㅠㅠㅠ 일이 아직 안 끝났나여? ㅠㅠㅠ 얼른 들어가셔야 하는데….

DYDADDY 2023-12-06 23:46   좋아요 2 | URL
극단적 야근이시군요. 몇년에 한 번 있는 일이기를, 내일은 휴일이시기를 바라요. ㅠㅠ

우끼 2023-12-08 12: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정희진!!(앗..)

단발머리 2023-12-08 13:00   좋아요 1 | URL
어뜩해 ㅋㅋㅋㅋㅋ (제가 생각한) 정답 아닌데 정답으로 해야겠어요! 정답입니다!! 💕

잠자냥 2023-12-08 13:03   좋아요 1 | URL
엥?! ㅋㅋㅋㅋ

우끼 2023-12-08 13: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원래 생각한 정답이 뭔가요 궁금해요!!

단발머리 2023-12-08 14:15   좋아요 1 | URL
원래 정답은 ㅋㅋㅋㅋ 저 혼자 정한ㅋㅋㅋ <연두 - 다시 페미니즘의 도전> 입니다ㅋㅋ

독서괭 2023-12-08 13: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연두색!!

단발머리 2023-12-08 14:16   좋아요 2 | URL
원래 정답은 ㅋㅋㅋㅋ 저 혼자 정한ㅋㅋㅋ <연두 - 다시 페미니즘의 도전> 입니다ㅋㅋ괭님 짱!!
 















책이란 자고로... 읽을 때, 생각이 떠오를 때 바로바로 정리해 두는 게 좋다. 나도 아는데. 그대로 잘 안되고. 새로운 책은 새로운 생각을 불러오고, 작은 생각 덩어리는 어제의 눈송이처럼 여기저기 떠돌다가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고. 어제의 눈송이는 흔적도 찾을 수 없지만 <파묻힌 여성><세계 그 자체> 페이퍼는 그대로 남겨져.

 

 

무성애를 정면으로 다룬 이 책을 읽다가 로맨스 소설을 떠올리는 건 어쩌면 너무 당연한 일이다. 내 로맨스 소설 인생의 시작점인 <The Love Hypothesis> (<사랑의 가설>)을 떠올렸는데, 상황은 이랬다.

 


애덤과 올리브는 장소, 시간, 감정의 3박자가 완벽한 하모니를 이루는 특정한 시점에 도달했다. 진한 키스 후 섹스 직전의 상황인데, 자꾸 머뭇거리는 올리브의 기색을 눈치채고 애덤이 말한다. 하기 싫으면 하지 않아도 돼. 사귀는 사이 아니어서 섹스가 좀 그렇다면, 안 해도 돼. 이런 당연한멘트를 날리는 남자가 신사라고 대접받는 사회. 애덤은 신사다. 올리브는 그게 아니라고 말하는데, 그 대사가 참 길고 자세하고 구체적이다. 나한테는 성적 끌림이 그렇게 자주 일어나지 않는다. 나한테 무슨 문제가 있는 건지는 모르겠다. 근데 나는 널 정말 좋아하고, 또 너를 믿는다, 그래서 나는 너랑.... (이하 생략)

 

그렇다면 성적 '끌림은 특정인을 향한 혹은 특정인에 의해 유발된 꼴림이다. 그 파트너와 성적으로 엮이고 싶은 욕망이다. 표적이 있는 리비도. 음식에 비유하면 이렇다. 사람은 허기를 느끼면서도 먹고 싶은 특정한 음식이 없을 수 있다. 생리적 허기가 성적 충동과 비슷하고, 성적 끌림이 특정요리를 향한 갈망과 가깝다. 사람마다 성적 충동이 다른 것과 마찬가지로 경험하는 성적 끌림의 정도도 다르다. (44)

 


경험하는 성적 끌림의 정도는 다르다. 당연히 어떤 대상에게 성적 끌림을 느끼냐는 것도 사람마다 다를 테고. 이 책에서 문제 삼는 건 왜 모든 사람이 성적 끌림을 느낄 거라고 생각하는냐는 것이다. 당연히 떠오르는 필립 로스. 남녀 사이에 가장 중요하고 시급한 일은 섹스라고 말하는, 주인공의 말을 통해 그렇게 말하는 필립 로스를 5초간 생각한다. 저자는 이를 이렇게 비판한다.


 

강제적 섹슈얼리티의 연장인 섹스 신화는 두 부분으로 구성된다. 하나는 빤하다섹스는 어디에나 있고, 노래 가사부터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지나 립스틱이 발린 채 햄버거를 먹는 여자들의 입과 그 목을 타고 흐르는 육즙을 클로즈업한 이미지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거기에 푹 절어 있다는 것. 두 번째는 섹스가 더 특별하고 더 중요하며, 인간이 하는 어떤 행위보다도 더 강력한 짜릿함과 완벽한 쾌락을 선사한다는 믿음이다. 섹스하지 않는 건 쾌락도, 혹은 쾌락을 즐길 능력도 없다는 뜻이다. (71)

 


그럴까. 섹스는 정말 인간의 어떤 행위보다도 더 강렬한 짜릿함과 완벽한 쾌락을 주는 행위일까. 그 쾌락의 유통기한은 언제까지일까. 인간이 누리는 쾌락의 속성상, 동일한 상대와의 동일한 행위가 쾌락의 강도를 보장해 주지는 않을 텐데, 그렇다면 그건 모르는 상대와의 미지의 경험만을 의미하는 것일까. 그것이 평생 가장 우선시되고 추구되어야만 하는 중요하고 소중한 가치일까.

 




내가 이해하는 한에서 성적 끌림은 육체적 이유로 특정인과 섹스하고 싶다는 욕망이다. 성적 끌림은 순간적이고,내 뜻과 무관할 수 있다. 의식의 고양, 신체의 각성에 정신의 바람이 합쳐진 것이다. 내 유성애자 친구들은 방금 만난 사람에게, 같이 있어도 즐겁지 않은 사람에게, 좋아하지 않거나 심지어는 멋지다고도 생각하지 않는 사람에게 성적 끌림을 느낀다고 한다. - P42

‘강제적 섹슈얼리티’라는 말이 친숙하게 들리는 건 시인 에이드리언 리치 Adrienne Rich의 강제적 이성애compulsory het-erosexuality 개념을 빌린 말이기 때문이다. 리치는 1980년 에세이 「강제적 이성애와 레즈비언 존재Compulsory Heterosexual-ity and Lesbian Existence」에서 이성애란 그저 어쩌다 대다수의 지향이 된 성적 지향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이성애는 학습되고 조건화되고 강화된 정치적 제도다. - P68

성 정치학은 1970년대와 1980년대 미국 페미니즘 담론의 중심이 되었다. 이 시기에는 활동가 캐서린 매키넌Catha-rine MacKinnon과 앤드리아 드워킨Andrea Dworkin이 훗날 성 부정 페미니즘으로 알려질 운동을 이끌었다. 이성애 섹스는 불균형한 권력 역학 안에서 이루어지며 그렇지 않을 때가 없기에 섹스에 대해 진정한 동의를 이루기란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이 기본 논지다. 이들의 구조 분석은 가부장제 아래의 섹스란 어쩔 수 없이 손상되며 자유롭지 않다는 결론으로 이어졌다. 이런 전통에서 등장한 활동 단체는 포르노그래피와 사도마조히즘, 성 노동에 반대했고 이 모두를 남성이 여성을 비하하고 상처 입히는 착취의 방식으로 봤다. - P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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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3-11-29 11:3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사랑의 가설에서 올리브가 그랬죠. 전혀 떠올리지 못하고 있다가 이 페이퍼 읽으면서, 아 맞아 그랬지! 했어요. 그래서 저는, 그게 뭐든, 책을 읽는 것은 어떻게든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로맨스 소설을 비하하거나 무시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건 그들이 그 책으로부터 가져가는 게 없어서라는 생각을 저는 합니다. 어떤 책이든 그 안에서 뭔가 건질 능력이 있는 사람들은, 어떤 책을 읽어도 가져올 게 있지요. <에이스> 읽으며 <사랑의 가설> 가져오는 단발님, 진짜 이 세상 멋짐이 아니네요. 제가 감탄합니다. 그런데,

저는 왜 에이스 읽기 싫죠? 손이 안가네요. 동물성애처럼.. 하하하하하하하하하 ㅠㅠ

잠자냥 2023-11-29 12:32   좋아요 3 | URL
그런데 왜 샀죠?

단발머리 2023-11-29 13:20   좋아요 3 | URL
다락방님 / 어떤 책이든 그 안에서 뭔가 건질 능력이 있는 사람들은, 어떤 책을 읽어도 가져올 게 있지요.

라는 다락방님 말씀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버섯 책이 그랬고, 코스모스가 그랬죠!! 특히 저는 소설이 ‘쉽게 읽히는‘ 그 ‘용이함‘ 너머에 가르치고 전달하는 많은 메시지가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소설이 최고에요!!

에이스 쉽게 쭉쭉 읽힙니다. 섹스의 동력을 잃어버린 것이 잘못이 아니라는 깨우침이.... 찬찬히 이어집니다. 저는 반 정도 읽었어요.

잠자냥님 / 곧 읽으실 예정입니다 ㅋㅋㅋㅋㅋㅋㅋ 곧 ㅋㅋㅋㅋㅋㅋㅋㅋ

독서괭 2023-11-29 13:51   좋아요 2 | URL
그런데 왜 샀죠? ㅋㅋㅋㅋ

다락방 2023-11-29 14:46   좋아요 3 | URL
아니 얘들아, 있어봐. 읽을 거야. 읽을 거라고.. 읽기 싫을 뿐이야. 읽긴 읽을 거라고..

잠자냥 2023-11-29 12: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래서 나는 너랑.... (이하 생략)˝

좀 궁금하네요. ㅋㅋㅋ

단발머리 2023-11-29 12:34   좋아요 1 | URL
잠자냥님이니까 특별히 알려드리는 거에요. 다른 사람한테 말하지 마요.

˝그래서 나는 너랑... 하고 싶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잠자냥 2023-11-29 12:35   좋아요 1 | URL
아.........

단발머리 2023-11-29 12:40   좋아요 0 | URL
앗?!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독서괭 2023-11-29 13: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단발님도 <에이스> 읽고 계시군요! 저도 다락방님과 비슷한 이유로 별로 안 끌리는 책인데..(저도 단연코 유성애자라 ㅋㅋ) 읽어야하나.. 다들 잘 정리해주시니 안 읽어도 되나... 그러고 있네요 ㅎㅎ

잠자냥 2023-11-29 14:23   좋아요 4 | URL
지독한 유성애자 다락방
단연코 유성애자 독서괭
아이코 반성애자 잠자냥
완전한 무성애자 은바오

다락방 2023-11-29 14:47   좋아요 2 | URL
독서괭 님, 사랑해요 ♡

독서괭 2023-11-29 15:00   좋아요 1 | URL
아잉♥️ 우린 또 지독한, 단연코 이성애자 ㅋㅋㅋ

햇살과함께 2023-11-29 15:56   좋아요 0 | URL
전 유성에서 무성으로 변태 중이라. 이 책 읽어보고 싶네요!

단발머리 2023-12-02 08:54   좋아요 0 | URL
독서괭님 / 저도 물론 그랬는데요. (어디에서 그랬는지는 안 밝힘 ㅋㅋㅋㅋㅋ) 이걸 소수자 문제로 읽을수도 있잖아요. 제게도 겹치고 생각나는 부분이 있더라고요. 곧 페이퍼로 돌아올게요. (제가 정말 쓰지도 않고 쓰겠다 공언한 페이퍼가 벌써 몇 개인가요... 한숨.... )

잠자냥님 / 이 깔끔한 정리에 박수를 보냅니다. 누가 제일 느긋한가 ㅋㅋㅋㅋㅋㅋ 전 그게 궁금하네요.

다락방님 / 두 분 오래오래 행복하세요!!!

햇살과함께님 / 저도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현재는 아니지만 그 쪽으로 조금씩 가고 있는듯하고요. 햇살과함께님도 재미있게 읽으실 수 있을 거에요. 저는 예상보다 훨씬 재미있게 읽고 있습니다^^

수이 2023-12-01 08: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성향이 나오네요 으흠, 흥미로운. 저도 읽어보고 싶어졌습니다. 가부장제를 벗어나서 섹스를 해야 하는데 남성이랑 하는 이성애 섹스는 모두 가부장제 안으로 포괄되는 거죠?

단발머리 2023-12-02 08:51   좋아요 1 | URL
남성이랑 하는 이성애 섹스가 가부장제 안으로 포괄되는 게 맞을 수도 아닐 수도 있을 거 같아요.
이런 방식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섹스를 안 하는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게 바로 그런 거지요. 섹스 없는 세상.... 생각보다 훨씬 진지하고 재미있습니다.

수이 2023-12-02 09:47   좋아요 2 | URL
난 시러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단발머리 2023-12-03 16:14   좋아요 0 | URL
수이님의 ‘시러‘를 좋아합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푸핫!!

얄라알라 2023-12-04 10: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첫문단에서 격하게 공감하다가....마치 신문기사인양 제 3자인양 느껴지게 표현하신데서 푸흐흣^^ 웃고갑니다.

글자체는 정갈한 신사임당체, 글은 ^^ <사랑의가설>부터 전 읽어야겠는데요~~에이스는 그 후!

단발머리 2023-12-05 15:49   좋아요 1 | URL
사랑의 가설을 읽고 나시면 에이스가 좀 다르게 읽힐 수도 있을거 같아요.
얄라알라님의 뜨거운(?) 리뷰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