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왈, 글에정치를 묻히지 말라 했다. 대구전에 밀가루 묻히는 것도 아니고, 자꾸정치를 묻히려 한다고. 그런 강박을 버리라고 친구가 그런 말을 했다. 그 친구는 내 글을 나보다 더 꼼꼼히 읽는 친구라서, 나는 조언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래, 정치 묻히지 마. 정치 섞지 마. 그런데, 이런 건 어쩌죠.

 
















사라 아메드의 <감정의 문화정치> 5장은다른 이들 앞에서 느끼는 수치심이다. 구체적 예시는 과거 호주 정부, 백인 정부가 호주 원주민(조상때부터 살고 있던 사람들)에게 행했던잔인한 폭력 행위에 대해명시적 사과를 하는 문제에 관한 것이다. 사과, 라고 하면 최근에 우리 국민들이 관심을 갖는 사과 이슈가 있기는 한데. 나는 그 사안이 사과의 문제라기보다는수사를 진행할 것이냐 말것이냐의 문제라고 생각하는데, 언론은 묘하게사과로 초점을 모아가는 듯 했다. 녹화 방송 대담에서 대통령은 사과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때로는 사과가 보상을 요구하는 근거가 되기도 한다. 사과가 느낌을 담은 표현이 아니라 책임을 입증하는 증거로 '받아들여질' 수 있기 때문이다. (353)

 


사과란 잘못의 인정이고, 그 후에는 행동의 변화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어떤 행위에 대해 사과한다고 말한 다음에도 이전과 같은 방식으로 행동한다면, '사과'가 지닌 힘은 사라질 수 있다.(354)

 


사과에 뒤따르는 다른 행동을 할 생각이 없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사과가 없어야 한다.  

 


결국 사과에 뒤따르는 다른 행동을 하지 않으려면 '어떠한 말도 하지 않는' 선택지만 남는다. (357)

 



우리나라 대통령의 경우, 어떠한 말도 하지 않을 수 없었기에다른 방법을 택한다. 대통령은, 면담하는 사람이 준비해 간 외국 회사 조그마한 백(우린 보통 명품백이라고 부르는 걸 KBS 간판앵커는 이렇게 부르더라)를 대통령 부인이 박절하게 내치지 못해 생긴 일이라 말했다.

 


엘리자베스 스펠먼이 지적한 것처럼 안타까움을 표명하는 일은 어떠한 책임도 지지 않겠다는 뜻이다. (360

 


대통령은 사과 없이 국민 걱정하는 일 없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니까, 국민은 걱정하는 게 아니고, 화가 났는……..

 



사람 아메드를 읽는 순간, 사과에 대한 모든 문장은 우리의 현실로 날아온다. 사과는 없고 안타까움은 있다. 명품백은 없고 파우치는 있다. 다큐는 있고 대답은 없다. 용산 집무실은 있고 대통령은 없다. 디올백은 없고 디올쇼핑백은 있다.


 



 


1차 행사 마치고 가볍게 2.


 



3차 행사를 마치고 대망의 4차 행사에 돌입했다. 전을 맡았던 동서가 갈비찜을 해온다고 해서 내가 전을 맡게 됐는데, 동서처럼 맛나게 예쁘게 부칠 자신이 없어 백화점에 갔다. 흐미, 비싸구나. 하지만, 할 수 없으니 저는 구입합니다. 커피를 한 잔 사가지고 집에 돌아와 어제 사 둔 고기와 부침가루, 계란을 꺼냈다. 백종원의 <명절 음식 소고기 육전으로 끝내 드립니다>를 두 번 봤다. 고기에 부침가루 바르고 계란 묻혀 튀기면 맛없기가 불가능할 거라 생각했는데. 그런데. 맛이 없다. 부침가루 쓸 거면 고기 후추 소금에 재어 두지 않아도 된다고 백종원이 그랬는데, 아무 맛이 안 나서, 다시 소금 뿌리고 계란에도 소금 넣고. 그래도 맛이 없다.

 


사과는 내가 해야 하나 보다. 우리집 비밀 창고에는 디올 파우치도 없는데, 나는 사과합니다.

맛이 없어요. 맛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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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넬로페 2024-02-10 00: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다 그렇고 앵커의 변명은 더 그렇고요 ㅠㅠ

단발머리님께서 맛 없다고 느끼시지만
기름 냄새 맡지 않고 그저 먹는 사람들은 다 맛있을 겁니다.
육전은 언제든 맛있어요^^

단발머리 2024-02-12 13:01   좋아요 1 | URL
앵커로 말하자면.... 질문도 아주 특이했죠. 참... 심기경호의 극치를 보여주었습니다.

페넬로페님 이 댓글 읽을 때만 해도 제 맘은 ㅠㅠㅠ 이랬는데요. 그 다음날 시댁 가서 먹는데, 식으면서 약간 간이 배었다고 할까요? 맛있지는 않지만 ㅋㅋㅋㅋㅋㅋㅋㅋ 먹을만 한거에요. 저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고 합니다.
페넬로페님 응원 진심 감사드립니다!!!

감은빛 2024-02-11 14: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이글 너무 좋은데요. 친구분께서 꼼꼼히 읽으실 수 밖에 없는 글을 쓰는 분이시죠. 단발머리님은. 케이비에스는 다시 땡전뉴스 시절로 되돌아가버렸나 봐요. 아니면 이메가 시절이나 그네공주 시절일수도 있겠지요.

제사음식은 원래 다 맛 없는 거 아닌가요? 전은 집에서 부치면 맛 없더라구요. 사먹는 전이 제일 맛있더라구요.

단발머리 2024-02-12 13:04   좋아요 0 | URL
감은빛님이 좋다고 해주시니 저도 ‘좋다‘고 믿고 싶어집니다 ㅎㅎ 우리는 KBS를 이렇게, 이런 식으로 잃어버리는건가 싶어 너무 아쉽습니다. 생각보다 노골적이어서 더 슬펐습니다.

저희집은 제사음식은 없지만서도, 전은 구입해 먹었는데 맛있었구요. 제가 만든 육전은 첨에는 난감한 형국이었지만, 그래도 나중에는 먹을 수 있을 만한 음식이 되어 다행이었습니다.
연휴 마지막 날이네요. 오늘까지 여유만만 즐거운 연휴되시기 바래요!!

공쟝쟝 2024-02-13 09:1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글에는 정치를 묻히고 .... 소금이랑 후추는 미리미리 고기에 묻혀두고 .... ㅋㅋㅋㅋㅋ

단발머리 2024-02-13 10:40   좋아요 1 | URL
위에 읽었나요, 쟝쟝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백선생은 부침가루 쓸거면 소금간 필요없다고 했다니깐요!!
그러나 너무 맛이 없었고. 나는 슬펐으며........
그 다음날 먹는데 먹을만해서 난 놀랐습니다. 먹을 수는 있었어요, 고기라서 그럴까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공쟝쟝 2024-02-13 11: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건 백선생이 잘못 한 것입니다!!! 그리고 원래 음식은 뜨거울때는 간이 잘 안느껴지는 법입니다!!!!미리미리 재워둔다. 부침가루 믿지말자 ㅋㅋㅋㅋ (이래뵈도 집에서 맛다시쟝으로 불림)

단발머리 2024-02-13 12:43   좋아요 1 | URL
제가 다르게 말한 유튜브도 보긴 했는데 아…. 그래도 백선생을 믿었ㅋㅋㅋㅋㅋㅋ
앞으로는 맛다시쟝님과 상의해야겠어요.
from 뜨거울 때 간이 잘 안 느껴지는 거, 이번에 확인한 사람 😁
 
공교로움. 해체되어야 합니까?
전략적 본질주의(Strategic Essentialism)
파도는 덮치고 모래는 쓸려간다.





 














첫 번째로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검은 피부, 하얀 가면>이라는 텍스트가 가진 독특함이다. 저자 이경원의 표현을 그대로 옮겨 보자면 딱히 자서전이라고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전문학술서로 보이기도 힘든 이 책은 정신의학, 심리학, 철학, 사회학 등의 온갖 범주를 넘나든다. (55/624)

 


파농의 정신과 삶은 사망 이후, 그가 선택한 조국 알제리에서도, 프랑스에서도 서서히 흩어지고 만다. 오히려 파농을 가장 파농답게기억한 곳은 생전에 파농이 가장 싫어했던 미국이라고 하는데, 특히 1960년대 미국의 흑인민권운동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 책의 저자는 파농의 부활이 어떤 방식으로든 파농의 순치와 전유를 수반하고 있다고 말하는데, 바로 그 점 때문에 <검은 피부, 하얀 가면>에 대한 복합적인 해석이 가능할 것 같다. 식민지 원주민의 주체 구성을 분석한 것이라는 <검은 피부, 하얀 가면>에 대한 평가는 온당하지만, 이 책을 읽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느낄 수 있듯이, 그것은 백인이 되고자 했던 파농 자신의 열망과 분리 불가능할 정도로 혼재되어 있다. 프랑스를 조국이라 생각하고, 프랑스어를 모국어라 여기며, 아프리카의 흑인을 니그로라고 생각하되 자신은 니그로가 아니라고 확신하는, 마르티니크 흑인 노예의 후손과 그 혼혈 가족들. 파농이 바로 그런 사람이었다. 파농을 이런 층위로만 묶어 두지 말라는 저자의 말에 밑줄을 긋고 그다음으로 넘어간다.

 


나는 스피박의 전략적 본질주의가 현재로서 여성이 선택할 만한 가장 합리적인 위치라고 생각한다. 전략적 본질주의를 한 번 더 인용한다.

 


탈식민주의 비평가 스피박(Gayatri hakravorty Spivak)이 페미니즘의 여성주체 논쟁에서 본질주의의 모순을 피해가면서 동시에 본질주의를 전유하기 위해 제안한 개념이다. 가령 가부장제의 억압주체 '남성'을 데리다의 해체론을 이용하여 해체하면서 저항주체 '여성’을 구성하는 것은 논리적 모순이요 이론적 허구이지만, 저항담론의 토대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여성'이라는 일종의 본질주의적인 범주를 상정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그렇지 않으면 '여성’이 주체가 된 저항담론이 아예 출발할 수 없기 때문이다. (<파농>, 595/624)

 



인류 초기 시대부터 여성이 하나의 집단으로 억압당해 왔음을 인식하는 일, 그러한 자각 없이는 저항 주체 여성이 주체가 된 저항 담론이 불가능하다. 쟝쟝님의 페이퍼에는 이 문장이 굵은 글씨로 표기된다. 근대적 주체성은 젠더화와 동시에 본격화되었다. 자본주의의 시작과 함께 자연, 식민지, 여성이 동시에 타자화되었다는 주장(혹은 그런 주장이라고 여겨지는데)인데, 여성에 대한 타자화의 시작점을 언제로 보는가에 따른 차이는 존재하지만, 근대의 백인-유럽-비장애인-남성이 인간의 표준으로 개념화되면서, 여성에 대한 억압이 더욱 강화되었다는 점에는 이견이 없다고 생각한다.

 

 

만국의 프롤레타리아가 단결할 때, 왜 여성은 단결하지 못했나. 혹은 왜 단결하지 않았나. 여성은 같은 성별(이점을 명확히 하려면 조금 더 복잡해질 것이기에, 여기서는 생물학적으로 여성으로 여겨지는을 뜻한다)의 여성보다 같은 계급의 남성과 스스로를 동일시하기 때문이다. 민족이 만들어진 관념인 것처럼, 여성은 관념이고 그래서 진짜 남자가 말이 되지 않는 것처럼, ‘진짜 여자또한 실재가 아니라 환상이라는 걸, 이제 우리는 안다. 하지만.  

 


아직도 각종 차별과 억압, 가난과 멸시, 감금과 폭력이 종교와 문화, 관습과 사회적 통념의 비호 아래 자행되는 현실 속의 여성들을 생각할 때, 그 여성들의 고통이 여자라는 이유가 아님을 증명하기 어렵다. 여전히 여성들은 억압받는 하나의 집단이다.

 



이를 주체 구성의 문제와 관련해 생각해 본다면, 나는 제3세계 사람이고, 유색인이며, 게다가 심지어!! 기혼 여성이기도 하지만, 그런 내게 주체의 죽음이 의미 있는 이유는, 주체와 자아에 대한 인식과 해석 없이, 다른 이의 정의와 규정에 매여 살 수 없기 때문이다. 타자로서 존재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필리스 체슬러에게서 답을 찾는다. 자유로워지는 것. 많은 일들, 많은 생각, 많은 사람에게 관심을 갖는 것에서 자유로워지는 것.

 
















여성의 가장 중요한 자아 정체성은 제한적이고 특정한 타인들을 위한 관심사와 몇몇 남성을 즐겁게 해주는 것에 근거하고 있다. 여성의 자아 정체성은 어떻게든 바뀌어야 하고 강인한 개인으로 살아남는 데 필수적인 것에 닻을 내려야 한다. 여성은 많은 일들과 많은 생각, 많은 사람들에 관심을 갖는 것에서 어떻게든 자유로워져야 한다. 자아 초점을 그처럼 급격하게 옮긴다는 것은 극도로 어렵고 두려운 일이다. 모든 여성적인신경과 감정이 날카롭게 자극되면서 심각한 대가가 따르게 된다. 어떤 여성은 그처럼 급격하게 초점을 이동시킬 때 미쳐버린다. (<여성과 광기>, 526)

 

 


앎비앎 친구님의 이 문단이 인상적이었다. 댓글로 쓰다가 또 길어져서(고질병임) 페이퍼로 썼다. 부지런히 더 읽고, 더 깊이 있게 이해하고, 더 명확하게 쓰고 싶은 마음이 드는 아침이다. 그럴 능력이 내게 있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적어도 해볼 수는 있겠다, 그런 생각이 든다. 나도 허심해지기로 했으니까.

 


아마 나는 아주 엉망으로 개념들을 활용/오용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여기까지가 나의 공부라고 생각하고 부끄러워하지 않기를 결단한다. 나에겐 내가 쓰는 것의 진위 여부를 보증해 줄 수 있는 것이 아마도 없지만 부지런히 읽었다는 것으로 정당화하련다. 부끄러움마저 책임지고 감당하기로 한다. 해체를 염두에 둔다는 것은 허심해지기로 하는 것이다. 만약 내가 잘못 알고 있거나 잘못 떠들었다면 그건 기꺼이 고치면 된다. 다 허물어도 된다. 파도는 덮치고 모래는 쓸려간다. 자국은 남지 않게 될 것이다. 인간 자신이 구축한 판타지 속에서 살아가기 위해 아무리 어떤 성을 쌓고 그림을 그린 대도. 바람은 파도는 불가항력

 

- 공쟝쟝, <파도는 덮치고 모래는 쓸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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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쟝쟝 2024-01-31 09: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헤헤! 이 글 역시 좋네요. 특히 체슬러 인용된 문장이 다시보니 뼈를 때립니다. 자아에 초점을 이동시키는 것! 나 스스로에게 집중하기 위해서 나 자신의 변화를 느껴보기 위해서 노력 중입니다. 단발머리님 굿 모닝!!

단발머리 2024-01-31 11:48   좋아요 1 | URL
이북은 엄청 빨리 읽게 되는데 이 책은 쉬운데도(?) 진도가 더디네요. 지금 반 정도 읽었는데, 또 할 이야기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번에는 푸코 나온당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번주에는 모닝이 일찍 시작되어서 지금은 매우 졸리네요. 쟝쟝님, 굿애프터 눈!
 
추석과 파농




 












<파농>을 읽는다.

 


해설서를 읽는 일에는 장단점이 있다.

 





























단점을 이야기한다면, 그건 어디까지나 저자가 안내해 주는 범위 안에서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인데, <꿈의 해석을 읽다>는 양자오가 이해한 범위 안에서, <푸코, 바르트, 레비스트로스, 라캉 쉽게 읽기>는 우치다 다쓰루, <현대사상입문>은 지바 마사야가 안내하고 설명한 범위 안에서 이해할 수 있다는 거다. 그런 경우, 당연히 저자에 대한 신뢰가 독서의 바탕이 되어야 할 것이다. 저자의 설명과 통찰이 번뜩이는 경우라면, 원래 만나려던 책이나 인물보다 그에게 빠지는 경우도 가능할 텐데, 최근에 읽은 슬라보예 지젝의 <How to Read 라캉>이 그런 경우였다. 그의 말에 현혹되어(?) 이미 품절되었다는 <헤겔 레스토랑> <라캉 카페>를 도서관 찬스를 이용해 서둘러 준비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해설서 읽기의 장점이라면, 프로이트와 푸코와 바르트와 라캉의 정수를 혹은 엑기스를 살짝 맛볼 수 있다는 것인데, <꿈의 해석>을 혹은 <감시와 처벌>, <에크리>를 읽기 겁나는 경우에는, 이런 해설서는 친절하고 야무진 안내자가 되어 줄 것이다.

 



<파농>의 저자는 이경원이고, 그래서 이 해설서는 이경원의 파농이다.

 


저자는 후대인들이 파농을 기억하는 방식으로 고전적 파농주의와 비판적 파농주의가 있다고 말한다.

 


우선 고전적 파농주의는 ()식민주의의 극복이라는 정치적 목표와 연계되어 있었기에 혁명적 실천성을 띠고 있었던 반면 비판적 파농주의는 파농 연구가 서구의 제도권 학계로 편입되면서 탄생한 것이기에 파농의 제3세계적 맥락과 급진적인 색채가 희석되어 버렸다. 또한 파농이 전유한 이론의 두 축이 정신분석학과 마르크스주의라고 할 때, 고전적 파농주의는 오직 '마르크스적 파농'만 부각해왔고 비판적 파농주의는 그동안 간과되었던 '프로이트적 파농'에만 주목하고 있다. (90/624)

 
















고전적 파농주의의 대표작이 <대지의 저주받은 자들>이고, 비판적 파농주의에서 관심을 기울이는 파농의 저작은 <검은 피부, 하얀 가면>이다. 고전적 파농주의에서의 파농은 혁명가이고, 비판적 파농주의에서의 파농은 정신분석학자이다. 저자는 파농에 대한 이런 상반된 접근방식이 진짜 파농에 대한 논쟁으로 이어진다고 보았다. 파농을 정신분석학이나 탈구조주의의 틀로만 해석하는 것이 파농을 이해하기에 부족한 것처럼, 마르크스주의만으로 파농을 해석하는 것 역시 문제적이라고 주장한다. 저자가 예를 든다.

 


예를 들어, 페미니스트들은 어떤 급진적인 주장을 하기 위해 파농을 찾지 않는다. 그들이 파농에 눈길을 돌리는 이유는 젠더와 섹슈얼리티의 문제에 무관심한 제3세계 민족주의의 맹점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인물이 파농이라고 생각하거나, 반대로 파농에게서 제3세계적 페미니즘, 즉 페미니즘과 탈식민주의의 연대 가능성을 발견하기 때문이다. (88/624)

 


나는 이 단락에서 놀라고 말았는데, 파농의 책을 딱 1권 읽은 사람으로서, 비판적 파농주의, 정신분석학 측면에서 높이 평가받는 <검은 피부, 하얀 가면>을 읽고 정확히 위의 문단처럼 생각했기 때문이다. (추석과 파농: https://blog.aladin.co.kr/798187174/12050226)

 



내 영혼의 가장 검은 부분으로부터 [흑백] 줄무늬 지대를 가로질러 단번에 백인이 되려는 저 욕망이 솟아오른다. 

나는 흑인으로 인정받고 싶지 않다. 백인으로 인정받고 싶다. 

그런데-그리고 이 점이 헤겔이 기술하지 않았던 인정 형태인데-백인 여성이 아니라면 다른 누가 그렇게 해주겠는가? 그 여성은 나를 사랑함으로써 내가 백인의 사랑을 받을 가치가 있음을 증명해준다. 나는 백인 남성으로서 사랑받는다. 

나는 백인 남성이다. (63) 

 


한 번밖에 읽지 않았으니 내 생각에 확신을 가질 수는 없지만, 흑인과 결혼하지 않으려는 물라토(백인과 흑인 간의 혼혈) 여성에 대한 적의와 백인 여성의 사랑을 쟁취해 백인 남성이 되고자 하는 욕망이, 이 한 명의 흑인 남성 안에 혼재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인종 차별이라는 폭력 앞에서 백인 여성에 대한 숭배와 흑인 여성에 대한 멸시가 교차하고 있다. 더 하얘지기 위해 백인이 필요하고, 더 검게 되지 않기 위해 흑인을 피하고 싶은 건 남자든 여자든 마찬가지다. 두 번 버림당한, 혹은 버림당할 운명의 흑인 여성이 떠오른다.  

 


그러니까, <검은 피부, 하얀 가면>에서 내가 발견한 파농은, 탈식민을 시도하는 지식인이되, 완벽한 인간 백인으로 다시 태어나기 위해, 백인 여성이 필요한 혹은 백인 여성을 도구화’  해야만 하는 유색인 남성이다. 오리엔탈리즘의 렌즈로 니그로로 규정된 남성이 똑같은 방식으로 여성을 타자화, 한다고 나는 생각했다. 나는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고 생각하고, 페미니즘에 대한 이해 혹은 인식이 내 읽기 방식 중의 하나라고 생각하는데, 적어도 내게 <검은 피부, 하얀 가면>은 그렇게 읽혔다. 이 책의 저자는, 파농을 그렇게읽지 말아 달라고 신신당부한다.    

 


책의 후반부에는 <파농을 이해하기 위한 용어 해설>이라는 챕터가 있다. 여러 개념 중에 전략적 본질주의(Strategic Essentialism)가 눈에 띈다.

 


탈식민주의 비평가 스피박(Gayatri hakravorty Spivak)이 페미니즘의 여성주체 논쟁에서 본질주의의 모순을 피해가면서 동시에 본질주의를 전유하기 위해 제안한 개념이다. 가령 가부장제의 억압주체 '남성'을 데리다의 해체론을 이용하여 해체하면서 저항주체 '여성’을 구성하는 것은 논리적 모순이요 이론적 허구이지만, 저항담론의 토대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여성'이라는 일종의 본질주의적인 범주를 상정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그렇지 않으면 '여성’이 주체가 된 저항담론이 아예 출발할 수 없기 때문이다. (595/624)

 
















계급, 인종과 함께 사회적 분석 범주(category)로서 젠더가 작동하기에, 젠더에 대한 고려 없이 인간과 사회, 자연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사실(<다시 페미니즘의 도전>, 103)이지만, 젠더가 성차별, 구체적으로는 여성 집단에 대한 억압으로 강력하게 작동하는 것 역시 피할 수 없는 우리네 현실이다.  ‘여성이 주체가 된 저항 담론으로서의 파농 읽기가 가능하다고 생각하고, 그런 측면에서 탈식민주의를 지향하는 지식인이었으되 백인 여성을 희구했던 파농의 한계 역시 분명하다고 생각한다.

 


다만, 자신의 온 삶을 불태우며 흑인성식민주의타파를 위해 고군분투했던 파농에 대해 조금 더 알아보고 싶은 생각이 든다. 더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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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파도는 덮치고 모래는 쓸려간다.
    from 의미가 없다는 걸 확인하는 의미 2024-01-29 16:55 
    내가 경계하게된 종류의 화법이 있다. 나 자신은 저들과 무관하다는 자기 인식이 드러나는. 너도 그래, 너도 똑같아라고 뱉어주려다가 참는다. 말해줘도 못 알아먹으니까. 어쨌든 나 자신은 무고하다고 항변하지만 이 구조 속에 있는 한 모두 한 비탈이라는 걸 그들은 알고 싶지 않은 것 같다. 정말로 무고하고, 그래서 대단하다고 생각했던 적도 있다. 아니 어떤 부분에서는 그런 이들을 인정하고 있다. 헌데 그게 백인성이고 그게 근대성이고 그게 애석한 (가끔 흠씬
  2. 저항주체인 여성의 전략적 본질주의
    from 책이 있는 풍경 2024-01-30 11:01 
    첫 번째로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검은 피부, 하얀 가면>이라는 텍스트가 가진 독특함이다. 저자 이경원의 표현을 그대로 옮겨 보자면 ‘딱히 자서전이라고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전문학술서로 보이기도 힘든 이 책은 정신의학, 심리학, 철학, 사회학 등의 온갖 범주를 넘나든다. (55/624) 파농의 정신과 삶은 사망 이후, 그가 선택한 조국 알제리에서도, 프랑스에서도 서서히 흩어지고 만다. 오히려 파농을 가장 ‘파농답게’ 기억한 곳은 생전에 파
 
 
다락방 2024-01-29 11:3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는 일단 파농 <검은 피부, 하얀 가면>부터 읽어봐야겠네요.

음, 좀 많이 다른 얘기인데, 나를 부정하기 위해서 혹은 나를 인정하기 위해서 여성을 도구화 하는 일은 빈번하게 일어났고 또 일어나는 것 같습니다. 파농은 인종에 대해 그랬다면, 저는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에서 주인공이 자신이 동성애자라는 걸 확실히 인식하기 위해 여성을 도구로 이용했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저는 그 영화를 싫어합니다.

이 페이퍼 읽으니 ‘필립 로스‘의 <휴먼 스테인>도 생각나고요.

저는 인종(차별)에 대한 책을 많이 읽지 않았는데, 이렇게 단발머리 님이 그에 대한 이야기를 써주실 때마다 좋아서 읽습니다.

단발머리 2024-01-30 11:08   좋아요 0 | URL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의 그 측면을 전 쪼금 알거 같은데요. 그니깐 전 그 영화도 책도 안 봤지만 말입니다. 둘이 아름답게 사랑할 때 그 여자아이에 대해.... 그게 더 이상 사랑받지 못한 사람의 마음과 좀 혼동되기는 하는데, 암튼 전 그런 마음이 들더라구요.
얼른 읽어봐야겠어요. 여름 배경이니까 겨울에 읽자 심정ㅋㅋㅋㅋㅋㅋㅋㅋㅋ

<휴먼 스테인>은 완전! 연관 도서 맞다고 생각해요. 뮬라토.....의 위치와 고민과 갈등이 자세히 나오니까요.

은오 2024-01-29 13:3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결국 또 여성 도구화 ㅋㅋㅋ 그쵸 흑인 남성도 그점에선 마찬가지고 xy의 한계....
오늘도 역시 지적임이 묻어나는 단발님의 글!!!!! 잘읽었습니다

단발머리 2024-01-30 11:04   좋아요 1 | URL
xy의 한계를 알아차린, 진즉에 알아차린 이 영리한 여성들을 보라!
퀴즈대회 1위에 빛나는 은오님 축하합니다! 한 번 더 축하할 일이에요. 번호 건은 조금 아까비.................

공쟝쟝 2024-01-29 16: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단발님의 파농에 나의 알튀세르 읽기를... 접 붙이는 글을 작성하고 트랙백을 걸었습니다.......... (거기다 비비면 안된다구요?ㅋㅋㅋ 힘듭니다.)

단발머리 2024-01-30 11:02   좋아요 0 | URL
짧은 글에 트랙백 걸었습니다. 일할 때이니 알라딘 금지인데 말이에요. 그죠? ㅋㅋㅋㅋㅋㅋ
힘내서 일하세요, 사장님!!!

망고 2024-02-08 15: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파농 ˝대지의 저주받은 자들˝ 진짜 옛날에 읽어서 기억도 안 나요ㅋㅋㅋㅋㅠㅠ 하지만 ˝검은 피부 하얀 가면˝은 읽어보고 싶습니다. ㅎㅎ

단발머리 2024-02-10 00:04   좋아요 0 | URL
예전도 아니고 옛날에~~~ <대지의 저주받은 자들> 읽으신 망고님, 제가 존경합니다!
즐거운 설연휴 되시길요. 벌써 빨간 글씨 2일차입니다 ㅋㅋㅋㅋㅋㅋㅋ
 





 













쌓아놓은 책/읽고 있는 책들을 모른 척하고, 지금 읽고 있는 책은 <Christmas Guest>. 피터 스완슨 책인데 얇아서 어제 다 읽을 줄 알았는데, 낮에는 다른 거 하다가 못 읽고. 밤에 책을 펼쳤는데, 심상한 기운이 스르르 몰려온다. 무서운 거 못 읽는 나는, 아침이 되어서야 다시 책을 펼친다.

 


나와 엠마, 그리고 엠마의 잘생긴 오빠 애덤이 묘한 삼각관계를 만들어가면서, 인류의 원초적 공포와 금기인 근친상간나오는 건가, 의심하면서 한 장 한 장 넘겨간다.  

 


 









작년 말부터 어제까지의 책을 올려둔다. 가끔 K문고(주로 원서)와 그래24를 이용하기도 해서, 그 책을 샀던가? 하고 헷갈린 적이 몇 번 있었는데, 사진을 찍어 두니 좋았다. <사진>에 들어가 책 이름을 검색하면, 그 책이 나온다는 걸 알게 됐다. 언제 샀는지도 알 수 있고. 그 후로는 바로 사진을 찍어 둔다. 처음 두 개의 사진에서 누워 있는 책들은 내가 '산 책이고, 당당하게 서 있는 책은 선물 받은 책들이다. 마지막 사진은 책이 두 권이라 둘 다 세워보았다.

 


책 표지에 관한 한 외모 지상주의자인 나를 배려한 친구들의 뛰어난 안목에 항상 감탄하는 나로서는, 이번에도 어김없이 찬탄과 기쁨과 감사를 친구들에게 돌려드린다.

 

















잠자기 전에 읽는 책은 이 책이다. 내 평생에 가장 사랑하는 제인 에어의 어린 시절과 형제자매들과의 행복한 습작 시기 등을 보여주는 책인데, 하루에 2장씩 아껴서 읽는다. 선물해 준 친구가 아껴 읽지 말고 편하게 마음 갈 때 읽으라고 했는데, 나는 아껴 읽는다. 하루에 4페이지, 하루에 2장씩. 아껴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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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1-25 18: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4-01-25 18: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은오 2024-01-26 07: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 너무 좋은책은 아껴읽는게 안되던데 단발님은 아껴읽기가 가능하시군요 ㅋㅋㅋ 좋은책일수록 허겁지겁 읽게되더라고요 ㅋㅋㅋ
저 분홍색 책 너무 귀엽습니다 🥹

단발머리 2024-01-27 15:38   좋아요 0 | URL
저 아껴읽다가 후회된 적이 많은데... 좋아하는 책 아껴읽습니다. 가끔 홀랑 읽고 다시 천천히 읽는 경우도 있구요.
저 분홍색 책 ㅋㅋㅋㅋㅋㅋㅋ 어쩌나, 책 아니고, 다이어리에요. 책 사야 준다기에 책을 샀ㅋㅋㅋㅋㅋㅋㅋㅋㅋ
수고많으세요, 은오님! 1등 확정 귀염둥이 화이팅!!!

수이 2024-01-26 07: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렇게 좋은 책 선물해주는 친구라니 단발님은 역시 주변에 멋진 이들이 한가득! 단발님 전생은 대체 어땠을까? 저 혼자 가끔 궁금해합니다.

단발머리 2024-01-27 15:39   좋아요 0 | URL
그러니깐요. 친구들의 안목에 항상 감탄하는 단발머리입니다.
제 전생은...... 하하하! 궁금하네요, 저도요!!!

미미 2024-01-26 14: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단발님! 이 서점이 어디예요?
서점 이름으로 <감탄><표지 지상주의>도 괜찮겠습니다>.<

단발머리 2024-01-27 15:41   좋아요 1 | URL
저기 위의 사진이라면ㅋㅋㅋㅋㅋ 다 집에서 찍은 사진입니다. 책상이 너른 나무책상이라 그런가봐요.
<표지 지상주의> 서점이름으로 좋아요. 혹 제가 서점 내게 되면 ㅋㅋㅋㅋㅋㅋ 애용할까봐요.

그레이스 2024-01-26 16: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해봤습니다.
사진찍어서 검색하는거!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

단발머리 2024-01-27 15:43   좋아요 1 | URL
아~~~ 그레이스님 검색 가능하셨다니 넘 좋은데요. 핸드폰마다 다를 수도 있을 거 같아요.
전 그거 알게 된 이후로 구입한 책들 사진 꼭 찍어둡니다. 원래 책사진을 많이 찍기는 하지만요 ㅎㅎㅎ
 






 












요즘 듣는 책은 <Lucy by the Sea>이다. 크레딧이 모였는데 딱히 눈에 띄는 책이 없어서 다시 읽을 책으로 사자, 하는 마음에 샀다. 운전할 때만 잠깐씩 듣는데 참 좋다. 내용도 평이하고 어려운 단어가 많이 나오지 않아서 (시제는 좀 까다로운 편) 마음 편히 듣고 있는데, 읽어주시는 성우 분이 과하지 않게 읽어주셔서 더 편안하다.


 




전작<Oh! William!>에서의 윌리엄과 이 책 속의 윌리엄은 다른 사람처럼 느껴진다. 나는 <Lucy by the sea>를 읽고 윌리엄과 화해했다. 그를 다시 받아주기로, 그를 안아주기로 했다. 루시의 어떠함을 보충해 주는 그를 알게 되었고, 이제 루시도 그의 어떠함을 안아줄 수 있음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어젯밤에는 <Oh, William!>을 꺼내 읽다가 재미있는 문단을 발견했다. 루시는 결혼 후 재혼했고, 윌리엄은 에스텔을 세 번째 아내로 맞았다. 두 사람은 가끔 만나고 전화 통화를 하기도 하는데, 그날, 윌리엄은 루시에게 전화해서는 크리스마스 때 에스텔에게 값비싼 꽃병을 선물했고, 에스텔에게서 조상에 대해 찾아볼 수 있는 온라인 사이트 회원권을 선물받았다는 이야기를 한다. 이 부분이 얼마나 재미있던지. 이렇게나 재미있다.

 

 

그가 그 선물에 실망했다는 것을 말투로 알 수 있었다. 윌리엄에게는 늘 선물이 중요한 의미였지만, 나는 한 번도 그걸 이해한 적이 없었다. "그래도 에스텔이 머리를 잘 썼네." 내가 말했다. "아이디어 정말 좋은데." 내가 말했다. "당신은 어머니에 대해 아는 게 거의 없잖아, 윌리엄. 좋은 기회일 수도 있어." 내가 그렇게 말했던 게 기억난다. 그리고 그는 그저 "그래. 그럴지도" 하고 말했을 뿐이었다. 나를 지치게 만든 게 바로 윌리엄의 그런 모습이었다. 기품 있고 유쾌한 태도 이면에 존재하는 잘 토라지는 소년. 하지만 그러든 말든 상관없었다. 그는 더이상 내 것이 아니었으니까. 그리고 나는 전화를 끊고 생각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그가 더이상 내 남편이 아니라는 사실에 대한 안도였다. (<, 윌리엄!>, 49)

 

 

당연히 이 문단의 하이라이트는 이 문장이 되시겠다. But I did not care, he was no longer mine. 그는 더이상 내 것이 아니었으니까.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사람의 투정은, 나와는 상관 없는 일이지. 하나님, 감사합니다.

 


 

아빠는 호감형이다. 아빠를 아는 모든 사람이 아빠를 좋아하는데, 특별히 아빠가 그 사람들에게 유익할 만한 어떤 행동을 해서가 아니라, 그냥 사람들이 아빠를 좋아한다. 까다롭기로 하면 이 세상 누구도 안 부러울 시어머니가 상견례를 마치고 나서 아버지가 참 좋으시다고 하셨다. 친정 에어컨을 수리해 주셨던 분이 우리 집에도 잠깐 들르셨는데, 아빠가 너무 좋으시다는 이야기를, 일을 보시는 내내 계속하시는 거다. 기사님, 저희 아빠를 30분 만나셨잖아요. 우리 아빠를 어떻게 아시죠? 그분이 제 아빠라니깐요.

 


아빠는 호감형이고, 가족을 포함한 모든 사람이 그걸 알고 있다. 그런데 엄마는 아빠를 별로라고 하신다. 사고 방식, 문화 양식, 행동 방식이 안 맞는다고 하신다. 체력을 바탕으로 한 젊은 시절의 신나는(?) 부부싸움 올나이트 시절은 물론이고, 심지어 첫인상부터 안 좋았다 하시니, 이 결혼의 신비를, 나는 내 나이 마흔이 넘어서도 전혀 헤아리지 못할 지경이다. 아무튼 엄마는 아빠가 마음에 안 들고, 아빠도 엄마를 마음에 안 들어 하신다. 이런 엄마, 아빠를 별로라 하시는 엄마가 아빠의 생활 습관에 대해 잔소리를 하신다. 아빠의 건강과 행복한 노년은 자식으로서는 너무 중요한 일이다. 지금은 엄마랑 단둘이 생활하시니 엄마의 삶에도 중요한 요소가 될 수 있겠지만, 엄마의 걱정은 그 정도를 넘어선다. 물론 아빠의 생활 습관이 건강을 해치기에 딱 알맞은 것은 사실이고, 건강 관리가 인생의 최우선 과제 중 하나인 엄마 같은 사람으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면이 적지 않겠지만, 요는. 엄마의 걱정은 진지하다는 거다.

 


엄마는, 진지하게 아빠의 건강을 걱정하고, 듣는 사람은 받아들이기 힘든 고농도의 잔소리 폭격으로 아빠를 지치게 한다. 왜 그럴까. 왜 엄마는 좋아하지도 않는아빠의 건강을 이다지도 걱정하시는 걸까.


 

 

루시의 말에 답이 있다. 아빠는 엄마꺼니까. 엄마의 관리하에 있으니까. 엄마의 관할 아래 있으니까. 아빠의 일은 엄마의 일이고, 엄마는 거리 조절에 자주 실패하시니까. 왜냐하면, 아빠는 엄마꺼니깐. 좋아하지 않지만, 내 꺼니깐. 칠순의 엄마에게 이혼을 권할 수는 없는 일이어서 혼자만 알고 있기로 한다.

 

 


윌리엄은 루시꺼가 아니었지만, 이제는 루시꺼다.

엄마는 모르시는 것 같던데, 아빠는 엄마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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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4-01-22 08: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희 엄마도 언젠가부터 아빠를 미워하고 계시거든요. 여러가지 이유로요. 이건 다소 진지한 버젼이죠. 물론 저 역시 마찬가지고요. 그런데 지금도 끊임없이 엄마는 아빠한테 잔소리를 하시고 아빠는 듣다가 가끔 버럭 하십니다. 그 잔소리는 식단에 관한 것이고, 아빠는 심근경색에, 신장이 안좋아 식사 조절을 하셔야 하는게 맞아요. 그런데 조절하라고 하면 그것은 아빠에게 잔소리가 되고 아빠는 화를 내고. 저는 옆에서 보다가 ‘엄마, 그냥 둬. 아빠가 뭘 드시든 말든. 말하는 엄마 스트레스고 듣는 아빠 스트레스고. 아빠는 아빠 책임이야. 죽고 사는 문제는 다 자기가 결정하는거야.˝ 라고 했답니다. 엄마도 이제 잔소리 안할거라고 하면서 또 잔소리를.. 저는 두분 다 이해가 안되는데, 오늘 단발머리 님의 이 글을 읽으면서, 어쩌면 아빠가 엄마꺼라서 그런거라는 생각이 드네요. 엄마꺼 하기 싫지만, 그런데 엄마꺼라서.. 어쨌든 엄마꺼니까.....

단발머리 2024-01-22 09:16   좋아요 0 | URL
네, 그러니깐요. 엄마들의 잔소리는 건강에 관련된 거네요. 식단과 생활습관... 저희 엄마는 아빠 핸드폰 많이 하시는 것도 잔소리 엄청 하시거든요. 눈 나빠진다고요. 그렇다면.... 그런 면에서 보면....

엄마가 아빠를 더 좋아하는게 아닌가 싶기도 해요. 아빠는 엄마한테 큰 관심이 없으세요. 아빠는 친구가 많으신데 엄마를 간절히 찾는 경우는 집에 돌아왔을 때 엄마 안 계실때에요. 너희 엄마 어디 갔니? ㅋㅋㅋㅋㅋ아빠, 저도 몰라요 ㅋㅋㅋㅋㅋ전화를 안 받는다 ㅋㅋㅋㅋㅋ 다시 해보세욬ㅋㅋㅋㅋㅋ
엄마들의 잔소리는 무척 간절하잖아요. 저는 부담스럽습니다. 좋아하지도 않는데 이어지는 잔소리.
그 강도와 빈도와 농도...... 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