픽션과 논픽션 중 어느 것이 더 현실을 반영하는가. 리얼한 두 개의 상황 중, 어느 상황에 더 몰입하는가. 누구의 불행이 더 큰가. 새 소설을 시작하기 전에는 한숨을 고르며 마음의 준비를 한다. 소설을 읽는 일이, 픽션을 읽는 일이 내게는 훨씬 더 큰 각오를 필요로 한다.

 

 

아침에는 <Lessons in chemistry>를 읽었다. 움베르트 에코는 아니지만 에코의 마음을 이해하니까. (“제 머릿속에는 아직도 낮에 소설을 읽는 것은 지나치게 쾌락을 좇는 것이라고 말해주는 가느다란 목소리가 있지 않나 생각한답니다.” <작가란 무엇인가 1>, 45) 아침에 소설을 읽는 일은 너무 큰 쾌락이니까. 아침에 소설을 읽는 건 너무 호사스러운 일이니까. 그래서 나도 아침에는 소설을 읽지 않는데, 그래도 소설을 읽고 싶을 때는 영어로 읽는다. 영어=공부라는 공식하에, 쾌락의 일부를 내어놓고 다른 언어가 선사하는 난해함을 껴안는다. 그렇게 어제 아침에는 이 책을 읽었다.

 


아무런 정보 없이 시작한 읽기. 당차고 야무진 주인공 앞에 시련이 닥쳐온다. , 아니. 잠깐만요. 아니, 벌써 이렇게 큰 고난이 닥쳐오면 이 주인공은 어떻게 살란 말이에요. ? 아니 잠깐만요. 고난에 고난, 난관에 난관을 거듭하던 주인공에게 찾아온 인생 최대의 위기. 그녀가 아이를 낳는다. 연신 울어대는 아기, 어찌할 줄 모르는 초보엄마 앞에 구원자가 나타난다. 길 건너편에 사는 나이 지긋한 아주머니. 죄책감에 찌든 초보엄마에게 과거에 자신에게 일어났던 일을 이야기해 준다.

 


"Years ago, when I was a new mother, Mr. Sloane was away on business and a horrible man broke into the house and said if I didn't give him all our money, he'd take the baby. I hadn't slept or showered in four days, hadn't combed my hair for at least a week, hadn't sat down in I don't know how long. So I said, 'You want the baby? Here." She shifted Madeline to the other arm. "Never seen a grown man run so fast." (145p)

 


엄마에게서 전해 들은 외할머니의 이야기와 똑같다. 첫딸을 낳은 후, 빽빽 울어대는 아이를 보며 어찌할 줄 몰랐다는 20대 초반의 외할머니. 저 아이가 콱 죽어버렸으면 했다는 외할머니. 그 후로 딸 셋과 아들 셋을 더 낳은 외할머니, 젊은 시절의 외할머니.

 

 


친정과 시댁, 그에 더해 친구들까지. 친구들은 지금까지도 우리집에 놀러 왔다가(큰애를 데리고 외출하기 어려운 나를 위한 가정방문) 큰애와 내가 경쟁적으로 친구에게 말을 걸려고 했던 일들을 이야기하며 웃는다. 나는 다급했고, 큰애는 절실했다. 친정과 시댁에서 그토록 전폭적으로 양육 지원을 해주셨는데도 그랬다. 자주 웃었고 큰 소리로 노래했지만, 힘들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그 시간을 떠올릴 때의 암담함은 여전하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의 나는, 미숙한 엄마였다.

 

나처럼 미숙한 엄마가 여기 나온다. 나처럼 미숙한데, 도와줄 사람이 없다. 내 몸도 천근만근인데, 내 몸 건사하기도 바쁜데, 쉬지 않고 울어대는 아이가 옆에 있다. 이 아이는 도대체 누구이며, 언제, 도대체 어떻게 여기에 왔는가. , 내 옆에 있는가. 주인공의 고단함이 너무나도 가까워 나는 도망치기로 결심한다. 그래서 펼친 책은 <사랑에 따라온 의혹들>.

 
















만만치 않게 극적이고 그리고 암담한 상황이 밀려온다. 엄마, 엄마란 누구인가. 도대체 누구이기에 이 고통을 엄마에게, 엄마의 이름을 가진 여성에게, 엄마라 불리는 여성에게 전가하는가.

 


일하는 엄마라서 햄이나 소시지를 너무 자주 먹였다, 일하는 엄마라서 영상을 너무 많이 보여줘 전자파에 과도하게 노출시켰다. 일하는 엄마라 시간이 없어 아이를 매일같이 재촉하며 압박을 줬다. 일하는 엄마라서 아이의 정서를 세심하게 보살피지 못하고 스트레스를 줬다. 일하는 엄마라서 아이의 이상징후를 제때 발견하지 못했다. 임신하고도 정신 못 차리고 체중 증가에 신경 쓰며 식단을 관리했다. 대학 때부터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 염색체 이상 소인을 물려줬다 등등 아픈 아이를 낳고 기른 엄마의 잘못은 끝이 없었다. 가임여성이 된2차 성징 직후로 거슬러 올라가 그때부터 지금까지의 삶을조각조각 분해해서 살펴봐야 할 판이다. 원인을 모르니 절망에서 벗어나기도 어렵다. 누가 재난을 초래했는지 알 수 없으니 복수할 대상도 없다. 결국 다시 엄마에게로, 나에게로 돌아온다. (39)

 
















<숭배와 혐오>를 읽었을 때였다. 책 속 문장들이 거부감 없이 이해될 때, 혼란스러웠다. 가족 간에는 허물을 보기 쉽고, ‘지극히예의를 갖추는 일이 어렵다. 이런저런 갈등과 다툼이 생길 때, 사람들이 흔히 저지르는 실수는 누군가를 원망하는 일이다. 이게 누구의 잘못, 또는 누구 때문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우리 집에서는 그게 나 때문’. ‘엄마 때문이라는 말이 자주 들렸는데, 이건 나의 개인적인 부주의(식구들 말을 주의 깊게 듣지 않는 편, 잘 기억하지 못하는 편)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내가 하지 않는엄마, 사회적인 일을 하지 않는엄마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아니었다. 다른 책을 읽던 중에, 엄마가 직업을 갖고 있는 경우에도, 엄마가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자리에 있는 사람이라도, 가족 구성원들의 원망의 대상은 같은 성별, 같은 이름이라는 걸 알았다. 엄마였다.

 


어머니는 언제나 실패했다. 내 주장의 핵심은 그러한 실패가 재앙이 아니라 정상적인 것이며 실패 역시 어머니에게 맡겨진 임무의 일부라는 점이다. 어머니는 우리가 세상에 들어서는 입구이기에 너무도 당연하다는 듯 사회적 퇴보를 막는 신성한 임무를 짊어지게 된다. 현대가족에서 이러한 경향은 사회적으로 진화해 모든 일의 책임을 어머니에게 묻는 방식으로 등장한다. 그 결과 어머니는 세상의 온갖 병폐 뿐 아니라 개인의 삶에서 불가피한 실패 뒤에 찾아오기 마련인 분노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에 죄책감을 갖게 된다. (41)

 


그러니깐 실패의 원인으로 여성, 어머니가 주목받는 것이 아니라, 실패가 어머니의 임무 중 일부라는 사실이, 우리의 현실이다. 픽션과 논픽션, 모두에서 그렇다. 실패는 엄마가 수행하는 임무의 하나이고, ‘엄마를 탓함으로써 다른 이들은 그 에서 벗어난다. 탈출한다.

 

 


나는 둘째를 낳은 후, 아주 조금 철이 들었는데, 실천하려고 다짐한 일 중 하나가 엄마에게 짜증 내지 않는 거였다. 구체적으로는 엄마에게 큰 소리로 말하지 않기가 내 목표였다. 항상 잘 지켜지는 건 아니고, 안 될 때도 많지만, 내 수준에서는 노력하고 또 노력하고 있다. 엄마에게 짜증 내지 않기. 실패의 원인이 엄마라고 생각하지 않기. 엄마의 잘못이 아닌 일에 엄마를 원망하지 않기. 다정하게 말하기. 전화 자주 하기. 카톡 자주 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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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쟝쟝 2024-03-30 22:1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아… 글 정말 너무 좋습니다.. 엄마 당사자ㅋ… 🥹의 입장에서 읽으니 좀 더 와닿고… 실패의 이유를 나와 가까운 나 아닌 다른 이에게서 찾는 일(미워하고 원망하는 일)은 쉽고 쉬운 일이라 그 첫번째 대상이 엄마가 된다는 말이 뼈 아파요. 그리고… 어쩌면 그게 아주 오랜 가부장 5천년치의 여성에 대한 타자화의 토대이며 우리 일상에서 반복되어 왔다는.. (어머니 숭배와 혐오…).
사실 진짜 문제는 그렇다면 엄마는 누구를 탓하나?… 라는 것일텐데. <사랑에 따라온 의혹들> 속의 이 훌륭한 엄마는 자신을 탓하지 않기로 하더라고요. 그리고 그걸 씁니다. 반가웠어요. <82년생 김지영>은 미치 잖아요. ㅜ..ㅜ 현실의 작가님은 안미치려고 고군분투!!! 어쨌든 나는 다행스럽게도 지금을 살아서 이 여성들의 글을 읽으면서 자칫 그렇기 쉽게(자책) 사회화되느라 힘들었던 저 자신을 생각해보곤 합니다. 다행이라는 생각 뒤에 따라오는 건 고마움. 내 분노가 고마움이 되기까지… 글을 더 읽자. 하아…

단발머리 2024-04-02 08:32   좋아요 1 | URL
이 댓글이 제 글보다 더 좋은데요 ㅋㅋㅋㅋㅋ 전 이 책 읽으면서 참 복잡한 마음이 들었고 그걸 다 쓰지를 못했어요. 백자평도 쓰다가 포기했고요. 좋은 리뷰 쓰고 싶은데 뭐랄까.... 제 경험하고 막 섞이니깐 (그니깐 저의 절망 포인트?) 말로 풀어내지 못하겠더라구요.
자신을 탓하지 않고 용감히 맞선 저자, 신성아님에게 응원과 사랑을 보냅니다. 할일이라는 건 이 책을 사고 또 사는 일일텐데. 아, 읽기 힘든 책인건 또 사실이구요. 그래도 나도 받은 것처럼, 나도 선물해야지~~ 그런 맘입니다.
글을 더 읽자.... 하아.....

공쟝쟝 2024-04-02 09:13   좋아요 1 | URL
어떤 책은 심정적으로 읽기 어렵습니다. 지적으로가 아니라 심정적으로…. 저는 (지난 몇년 동안)훈련이 되었다고 생각했는 데, 이거 읽으면서 아직 멀었다고 생각했어요. 저자가 닿은 인식 과정은 공감되었지만… 너무 많은 말이 속에서 우글대다 사라졌지만… 그나마 제가 떠들 수 있는 건 그건 아마 엄마 당사자 단발님 보다 경험이 딱 붙어 있지는 않아서 그럴 거예요….
사랑에는 의혹이 필요합니다…
사랑이기에 의혹이 필요합니다…😭

단발머리 2024-04-02 20:02   좋아요 1 | URL
네, 맞아요. 쟝님.... 그니깐 전 신상아 작가의 글을 따라 읽으면서 저 자신의 경험, 시간, 과거로 ‘돌아갈 수 밖에‘ 없었거든요. 특히 아이와 부모 사이의 관계가 일방이 아니라는 그 지점에서, 권력의 작동에 관한 푸코의 문장이랑 아스시 난디의 문장도 떠올랐구요. 쉽게 읽을 수 없는 책이더라구요. 참 잘 쓴 글이기도 하구요. 정희진쌤의 추천글이 괜히 나온게 아니구나, 그런 생각.
근데 그런 마음을 솔직히 표현하셨다는 점에서 역시 정희진쌤... 그런 생각도 했었더랬죠. 아, 리뷰 쓸 수 있을 것인가....

책읽는나무 2024-03-31 07:4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엄마. 김치 냉장고 위 치웠어요.˝
ㅋㅋㅋㅋ
어머님 정말 흐뭇하시겠습니다.^^
이모티콘도 쓰시고...어머님 멋쟁이셔요.
예전에 지인 한 분이 친정 어머님이 집에 오시면 김치 냉장고 위를 매번 치워 주시고 위에 아무것도 올리지 말고 살아보라고 포스트 잇 메모를 붙이고 가셨는데 어머니 가신지 일주일이 지나면 다시 도루묵이 되더란 말이 생각납니다.ㅋㅋㅋ
우리 집은 아빠가 계셔서? 김치 냉장고 위를 치우지 않고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군요?ㅋㅋ
대신 아빠는 김치 냉장고 위에 올려둔 시계를 못보겠다고 하십니다. 그 시계 앞에도 뭔가 자꾸 쌓여서 시계를 가려버리고 있거든요.
김치 꺼내기 참 힘든 세상이에요.ㅋㅋㅋ

엄마, 여성......늘 양가적 감정을 달고 살아서인지 단발 님의 이런 글이 참 좋아요.
저도 애들 어릴 때 집에 누가 방문하면 서로 손님에게 말 걸기 바빴던 적이 떠오르네요.^^
책들...아직 읽지 않은 책들이라....많은 생각들이 떠오르게 하는 좋은 책들인가보다. ✍️하고 갑니다.^^

단발머리 2024-04-02 08:49   좋아요 2 | URL
저의 집의 마지막 보루 김치 냉장고 위를 과자와 쿠키, 음료와 책, 노트, 필기구가 장악한지 이미 오래되었습니다. 그렇게 많이 쌓아두다 보니 김치 꺼내기가 귀찮아서 그냥 김치 없이 밥 먹을 때도 많았구요ㅋㅋㅋㅋ 아이구야 ㅋㅋㅋㅋㅋㅋㅋ
김치를 위해 우리는 김치 냉장고를 샀지만 김치 꺼내기 힘든 이 세상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제가 이번 봄을 맞이해 집 좀 치운다고 여러 계획을 세웠으나 모두 지지부진한데요. 바퀴 달린 작은 서랍장을 샀어요. 거기에 과자, 쿠키, 음료, 책, 노트를 모두 옮겨서, 일단 식탁 위와 김치 냉장고 위를 깨끗하게 치웠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제 거실과 책장과 옷장과 신발장만 정리하면 됩니다. 미니멀리즘으로 돌아오는 단발머리되겠습니다!!

서로 손님에게 말 걸기 바쁠 때 정겨운 모습인 건 맞는 거 같아요. 후배가 아직도 그 날이 기억난다고 종종 웃는 얼굴로 말하기도 합니다.
오늘도 좋은 날 되시길 바래요, 책나무님! 서울은 오늘, 낮에 따뜻하다고 합니다!

독서괭 2024-04-03 17: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단발님, 김치냉장고 치워뒀다는 카톡 너무 귀엽네요♥
엄마라는 이름에 너무 많은 걸 전가하는 것.. 그걸 너무 당연하게 생각해 왔지요. 저도 엄마에게 다정해야겠어요. 자주 안 보고 가끔 도움만 받으니 이젠 짜증낼 일은 별로 없지만, 엄마가 더 나이드시면 또 어떻게 될지..
저는 아이들이 제 탓 하면 반드시 따지고 듭니다. ˝왜 엄마 탓을 해? 네가 속상한 건 알겠어. 그런데 왜 엄마 탓을 하지?˝ 하고 짚고 넘어갑니다. 준비물 못 챙겨준 때도 당당하게 ˝네가 챙겼어야지˝하고 말합니다 ㅋㅋㅋ

단발머리 2024-04-04 09:32   좋아요 0 | URL
제가 김치냉장고 위에 책이랑 과자 쌓아두어서 김치를 못 꺼내먹는 역사가 하도 길어서요 ㅋㅋㅋㅋㅋㅋ 예전에 살던 곳에서도 비슷한 형국 ㅋㅋㅋㅋㅋ 그래서 치운김에 자랑했네요^^
저는 독서괭님의 응대&태도가 옳다고 봅니다. 당연히 준비물, 자기가 챙겨야지요. 저는 그걸 조금 늦게 시작해서 처음 그 이야기 했을 때 얘가 놀라더라구요 ㅋㅋㅋㅋㅋㅋㅋㅋ 앗! 이게 내 일이었구나!를 깨닫는 순간, 인생은 혼자라는 깨달음 ㅋㅋㅋㅋㅋ독서괭님 정말 잘하고 계세요. 언니~~ 라 부르며 따라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아요. 언니~~라 부르지 않으며 따라하겠습니다!!
 




 












몇 년 전, 엄마 아빠를 모시고 칠순 기념 여행을 떠났을 때의 일이다. 엄마가 사진 찍는 걸 엄청나게 좋아하시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 여행에서 그야말로 엄마의 참모습을 보고야 말았는데다른 사람들은 어쩐지 모르겠다. 같은 장소, 같은 포즈로 4-5컷이면 난 적당하다고 생각하는데, 엄마는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으시면서 연신 더 찍어!”를 외치시는 거다. 원도 한도 없이 엄마 사진을 찍었던 기억이 난다.

 


일본에 갔을 때, 나는 남편이 걸어가는 모습을 뒤에서 찍고는 했는데, 마음에 드는 사진이 여럿 있었다. 남편은 사진을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는데, 내가 사진 찍는 걸 좋아하니 스팟이 나오면 사진을 찍어준다고 했다. 선글라스로 얼굴은 가릴 수 있지만 뱃살은 감출 수 없는 관계로, 대부분의 사진은 뒷모습이었다. 노력 없이 그냥 서 있는데도 나중에는 그 일도 귀찮아서 이제 그만 찍어!’를 외치곤 했는데, 남편은 남편대로 저리 가 보라, 이리 서 보라, 를 세세히도 주문했다. 덕분에 이런저런 사진을 갖게 되었고.


 


 







큰애와 싱가포르에 갔을 때는 가면서부터 네 사진은 내가 책임진다고 장담하기는 했는데. , 나의 각오는 참으로 사소한 것이었으니. 큰애는 엄마보다 더한 사람이었다. 아무리 찍어도 그 스팟을 벗어나지 않으면서 오히려 다양한 포즈와 표정을 시연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여행 목적이 콘서트 관람이었기에 다른 일정은 그리 많지 않았고, 보통 싱가포르 여행에서 추천한 관광지들은 예전에 남동생이랑 같이 갔던 곳이라 모조리 패쓰했다







나는 가든스 바이 더 베이에서 슈퍼트리를 보는 게 좋았다. 이 많은 사람들이, 아름다운 자연 경관을 뒤로 하고, 인간이 조성한 공원에, 전기의 힘을 빌려 펼쳐지는 쇼에 감탄한다는 사실이 아이러니로 여겨졌다. 우리가 열광하는 그 무엇은, 인간의 손으로 만들어진 인간의 작품인 그 무엇일까, 하는 생각.

 



 





가기 전부터 다락방님이 카야 토스트를 꼭 먹고 오라 신신당부하셨는데, 세상에그걸 먹으러 갈 시간이 없어 먹지 못했다. 가능하면 카야쨈을 사오고 싶었는데 그것도 실패. 대신 대형 쇼핑몰의 커피숍에서 카야 크로아상을 먹을 수 있어서 아쉬움을 간신히 달래기는 했다.




 


유재석씨가 다녀갔다는 현지 맛집 누들은 새우가 듬쁙 들어가서 그런가 감칠맛이 특별했고, 싱가포르 가면 무조건 먹어야 한다는 크랩도 맛있었다. 칠리크랩, 시리얼 새우, 볶음밥, 프라이드 번보다 나는, 저 코코넛의 시원하고 달콤한 맛이 그립기는 하다.


 






제일 좋았던 건, 호텔 앞 동네맛집에서 먹었던 아침이다. 동네 사람들과 관광객들이 줄을 서서 먹는 집이었는데, 아주 작은 가게가 내내 북적북적했다. 예쁜 연두색의 판단(Pandan) 팬케이크도 신기했고, Shakshouka Eggs도 맛있었지만, 기억에 남는 건 환한 미소로 맞아준 젊은 남자 직원. <알라딘>의 알라딘을 닮았는데, 정확히는 알라딘보다 더 잘생겨서 확실히 기억이 난다.

 






가포르 여행 후기 : 카야 토스트를 먹지 못했지만, 알라딘은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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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4-03-26 23:5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헐 지금 배고픈데…. 😿😿😿

단발머리 2024-03-27 08:45   좋아요 2 | URL
큰 기쁨 드리고 싶었는데 큰 실망 드렸나요....

잠자냥 2024-03-26 23:5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밉다 미워… 배고파 🙀😹😹😹

단발머리 2024-03-27 08:45   좋아요 2 | URL
앞으로 음식 페이퍼는 꼭! 이 시간에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잠자냥님 우는 모습에 기쁨 느끼는 나는 무엇? ㅋㅋㅋㅋㅋㅋㅋㅋ

잠자냥 2024-03-27 08:58   좋아요 1 | URL
지금도 배고파요!!!!!🤣🤣😿😿😿
누구처럼 아침에 장칼국수 끓여먹지 않는 사람 올림.

단발머리 2024-03-27 09:00   좋아요 1 | URL
아…. 빈 속이시구나😢😢😢😢😢 이건 놀릴 수가 없네요. 아… 어쩌나…
아침에 장칼국수 끓여먹는 게 역시나 불가능한 사람 올림.

잠자냥 2024-03-27 09:43   좋아요 0 | URL
삶은 달걀 먹었어요... 채워지지 않는 배고픔에 소보루빵을 먹겠읍니다~!!
근데 지금 먹을 수 있다면 저는 저 새우 둥둥 떠 있는 누들이 좀 땡기네요. ㅋㅋㅋ
그림의 떡..아니 그림의 누들.

단발머리 2024-03-27 11:02   좋아요 1 | URL
삶은 달걀 : 건강식, 소보루빵 : 저의 최애빵 ㅋㅋㅋㅋㅋㅋㅋㅋ
새우 둥둥 누들은 진짜 국물도 남김 없이 먹었는대요. 그림의 누들 ㅋㅋㅋㅋㅋㅋ 방문 권합니다.
현금으로만 가능합니다. 싱가포르 거의 다 카드 사용가능한데, 이 집은 현금이더라구요 ㅋㅋㅋㅋㅋㅋㅋ

햇살과함께 2024-03-27 00: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요 배고파요 으ㅡㅡㅡ

단발머리 2024-03-27 08:44   좋아요 1 | URL
송구합니다. 참고로 저도 배고파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햇살과함께 2024-03-27 09:19   좋아요 1 | URL
전 이제 배불러서 편하게 보고 있어요 ㅎㅎ
배불러도 먹고 싶네요. 다 넘나 맛있게 생겼어...

단발머리 2024-03-27 09:21   좋아요 0 | URL
반가운 댓글입니다 ㅎㅎ
전 저 중에 딱 하나만 다시 먹을 수 있다면 코코넛 주스 먹고 싶어욬ㅋㅋ 빨대로 마시고 숫가락으로 과육을 살살 긁어서 말이죠 ㅋㅋㅋㅋㅋㅋㅋㅋ

잠자냥 2024-03-27 09: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너무 배고프다는 소리만 한 거 같아서 다시 왔읍니다~!!
단발머리 아닌 단발머리 님! 뒷모습이 아름다우십니다~!!

단발머리 2024-03-27 11:04   좋아요 1 | URL
배고프다는 솔직한 말씀이 제일 반갑습니다. 저는 성공했구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단발머리 아닌 단발머리의 뒷모습, 많이 부끄럽네요.
5-6번을 올릴까말까 고민하다 올렸는데, 아.... 잠자냥님의 이 댓글 캡처 결정!!
🤪🤪🤪😝😝😝🥰🥰🥰

그레이스 2024-03-27 11: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ㅋㅋ
제 동생이 그래요
찍고 나서도 얼굴이 이상하게 나왔다고, 손가락을 벌여 확대하면서 여기저기 이상하다고 다시 찍으라고...^^
스마트 폰을 없애든지 저 손가락을 묶어놓든지 해야지 ㅠ
지쳐서 ˝그게 너야!˝ 했네요.
필름카메라 시절이 더 좋아요.
ㅎㅎㅎㅎ

단발머리 2024-03-27 11:24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 가끔 그렇게 사진에 진심인 분들 계시더라구요. 옆사람 쪼금 괴롭지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레이스님의 동생분이 그런 분이시군요.
저는 고등학교 때도 필름카메라 찍고 그랬는데 이제는 그럴 기회가 없네요. 삭제와 보존의 핸즈폰!!

다락방 2024-03-28 11: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크-
저도 싱가폴 갔을 때 저 크랩 먹었던 사람으로 그 맛을 아는바, 크랩 먹고 싶네요 ㅋㅋㅋㅋ 그런데 말입니다
판단 팬케익도 맛있을 것 같고 새우 둥둥 누들은 새우를 별로 안좋아하지만 넘나 먹고싶네요? 국물까지 다 먹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카야토스트 못드신 건 아쉽지만, 아니 다른 맛난걸 드셔서 보는 제 마음이 흡족합니다.
사진 속의 단발머리 님, 너무 흑흑 좋네요. 이런 페이퍼는 천개쯤 써주셔야 할듯합니다. -아침에 장칼구수를 먹기도 하지만 어제 아침엔 삼겹살 먹었던 사람 올림.

단발머리 2024-03-28 11:36   좋아요 0 | URL
저도 크랩이요, 그리고 새우누들, 그리고 코코넛 쥬스, 그리고 판단 팬케이크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담에는 또 다른 음식에 도전하고 싶지만, 그 때는 카야 토스트! 놓치지 않을 거에요!!!!!!!!!!!!!!!!
싱가폴 여행 준비하면서 보니까, ‘여자 혼자 여행하기 좋은‘ 이라고 많이 광고하더라구요. 안전도 그렇고, 전 무엇보다 지하철이 그렇게 좋더라구요. 우리나라랑 넘 비슷하기도 하고요. 담에는 또 다른 곳으로 여행가고 싶습니다. 아직 혼자는 쫄리지만 ㅋㅋㅋㅋㅋ

- 아침에 장칼국수를 먹기도 하지만 어제 아침에 삼겹살 드셨던 다락방님을 좋아하는 단발머리 올림.

다락방 2024-04-03 15:23   좋아요 1 | URL
단발머리 님, 아무래도 제가 싱가폴 다시 다녀와야겠어요. 카야토스트 싱가폴에서 먹어봐야겠거든요. 제가 다녀올게요. 필! 승!

단발머리 2024-04-03 15:31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 너무 좋죠! 아, 저도 마침 카야토스트 먹어야 하는데 말이지요.
근데 지금은 뭐든지 먹고 싶어요. 뭐든지 먹고 싶은 배고픈 오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7: 마르크스주의 사전에서 젠더: 용어의 성적 정치학>을 읽고 쓴다. 지금까지 읽은 논문 중에서 가장 강력하다. 이 챕터에서 해러웨이는 과학자라기 보다는 페미니스트 이론가로 느껴진다

 


젠더 논의에서 우리는 여자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여자가 되는 것이다는 시몬 드 보부아르의 주장은 출발점이다. 젠더는 성차를 자연화하는 것에 반발한다.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저술에서 두 사람은 노동의 성별 분업의 근간이 자연스러운 이성애라고 보았다. 또한 결혼에서의 경제적 소유관계가 여성을 억압하는 근거가 된다고 했을 때, 남자와 여자 사이의 특수한 성의 정치학을 배제했다. (237-8)  

 


젠더 정체성 패러다임은 이분법적 범주의 정치적-사회적 역사를 추적하는데 실패했을 뿐만 아니라, 섹스/젠더를 심문하는 데도 실패했다.(142) 긴급한 성차의 정치적 투쟁을 하고 있는 페미니스트들에게는 생물학적 결정론에 맞서 싸우는데 섹스/젠더의 구분이 너무나 유용했기 때문이다.

 


혜성처럼 등장한 주디스 버틀러에게 페미니스트들이 보인 거부감은, 여성의 행위자성 개념이 상실될까 하는 두려움 때문이었다.(244) 버틀러는 무엇이라 말했나. “남성()과 여성()은 존재가 아니라 반복적 수행을 거쳐 구성되는 사회적 규범(norm)이자 임의의 범주(category)”이다. (<한국 남성을 분석한다>, 40) 이는 서구인들의 주체에 대한 사고에 커다란 균열을 가져온다.

 


서구인에게 고유하고 적절한 상태는 자아에 대한 소유권을 갖는 것이다. 마치 재산처럼, 핵심적인 정체성은 소유하는 것이다. (143)  

 


하지만, 이러한 섹스/젠더 차이 담론은 그간의 정치적, 과학적 경합 과정에도 불구하고, 자연/문화, 섹스/젠더의 인식론적 이항 대립적 프레임 내부에 자리했다. 1980년대 젠더 범주와 섹스/젠더 이분법에 대한 의구심이 증폭하면서, 또 다른 섹스/젠더에 대한 논의가 전개되었다.

 

 


루빈은 남성이 여성을 교환하는 섹스/젠더 체계 속에서 욕망의 심층구조를 만족시키기 위해 이성애가 의무적으로 작동함을 지적했다. 의무적 이성애를 여성 억압의 핵심으로 파악한 것이다. 에이드리언 리치의 강제적 이성애’, 모니크 위티그의 의무적 이성애와도 연결된다. (249) 이는 자연스레 결혼 경제로부터 여성들의 철수를 불러왔는데, 여성은 생산한 산물(아이들을 포함)을 교환하고 전유하는 남성들의 문화 바깥에 존재하는 동시에, 역사적인 주체로 자아를 구성하게 되었다.

 

 


시작점은 당연히 정체성이고, <, , >의 문장은 거기에 정확히 맞닿아있다

(사이보그와 페미니즘의 미래, https://blog.aladin.co.kr/798187174/14291728



 













인간은 언제나 이미 타자이고, 우리의 유일무이해 보이는 개별 자아들에 거주하고, ‘자아들을 구성하는 외부인들, 이질적생명 복합체들이라는 것이다. (376)

 



생물학적 여성이라는 굴레에 스스로 갇히기로 할 경우, 정체성의 정치가 가질 수밖에 없는 제한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나는 한계라고 쓰지 않았다. 맨 앞에 서고, 목소리 높여 소리 지르고, 용기 내어 싸우는 여성들에게 한계는 없다. 하지만, 반드시 그다음 단계로 넘어가야 한다. 열망을 실현하는 데 필요한 전략은 구체적이어야 하고, 이는 느슨한 형태의 모습이라 하더라도 연대를 통해 이루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의 범위를 어떤 방식으로 넓혀갈지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끼어드는 모든 남성의 목소리를 거부한다. ‘이런 페미니즘은 안 된다고 말하는 목소리를 거부한다. ‘페미니스트는 어떠해야 한다는 말을 거부한다. 오천 년 가부장제의 역사 속에서 주어진 특권을 지금 이 시간까지 누려왔다면, 필요한 건 참견이 아니라 반성이다. 나는 내 말을 알아듣는 여성에게만 말할 것이고, 우리의 현실에 공감하는 남성하고만 말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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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쟝쟝 2024-03-25 02:2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심쿵💘 5장 막 읽고 자려는 참인데 낼아침엔 7장을 시작해야겠어요. 버틀러의 섹스는 언제나 젠더였다에 준하는 통찰이 사이보그 선언이라는 것. 여신이 아니라 사이보그가 되겠다.로군요. (총체화, 여성없는 여성주의… 이분법… 서구적 주체…) 맥락이 더 깊게 읽혀서 지금 감동받고 놀라는 중… 😭 그걸 꼭 그렇게 했어야하는 이유들…😭😩😭멋져…

단발머리 2024-03-27 08:49   좋아요 1 | URL
댓글에 요약 너무 잘해주셔서 더할 말이 없네요. 여성 없음, 여성성 없음, 여성됨 없음과 이분법 해체, 그리고 전략적 본질주의에 대해서 다시 한 번 고민해 봅시다. 저는 대강은 알듯 한데, 말이나 글로는 아직 정리가....
노트 좀 빌려주시기를 간곡히 요청하는 바입니다.

건수하 2024-03-25 08: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7장까지 읽었는데… 6장까지와 많이 달라서 놀랐고 그동안 많이 본 개념이었지만 어려워서 놀랐습니다. 단발머리님 글을 정독하고 7장도 다시 읽어봐야겠어요.

8장이 사이보그 선언문인데. 다시 읽으면 처음 읽는 것 같지 않을까 싶습니다 ^^

단발머리 2024-03-27 08:50   좋아요 0 | URL
해러웨이가 많이 어려워서 저도 예전에 읽었던 책들 꺼내 놓고 찬찬히 읽어가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오늘 27일인데 아직도 백쪽이상 남았네요ㅠㅠㅠㅠ
사이보그 선언문이 쪼금이라도 다르게 읽힐 거라는 기대를 가지고는 있습니다^^ 건수하님의 감상평도 기다릴게요!!

다락방 2024-03-25 11: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끼어드는 모든 남성의 목소리를 거부한다. ‘이런 페미니즘은 안 된다’고 말하는 목소리를 거부한다. ‘페미니스트는 어떠해야 한다’는 말을 거부한다. >

이 구절이야말로 오늘의 밑줄입니다, 단발머리 님.

단발머리 2024-03-27 08:53   좋아요 1 | URL
오늘의 밑줄에 선정된 소감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 있기까지 <여성주의 책 같이읽기> 책 선정과 스케쥴 관리, 그리고 좋은 글로 이끌어주신 다락방님과 영차영차 서로 도우며 함께하는 알라딘 이웃님들에게 이 영광을 돌립니다.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좋은 밑줄로 승부하는 단발머리가 되겠습니다!
 

















<5. 영장류의 본성을 둘러싼 경합: 연구 현장에 있는 남성-수렵자의 딸들, 1960-1980> 부분은 노트, 몇몇 분들이 부러워하시며(아닌가요?ㅎㅎ) 궁금해하시던 바로 그 노트의 요약 부분이다.

 

1. 과학은 우리의 신화

2. 페미니즘은 과학과 마찬가지로 하나의 신화, 공적 지식을 위한 경합

3. 영장류를 자연 상태의 협동의 모델로 간주

인간 사회 속 여러 갈등과 문제의 답을 영장류의 행동 양식에서 찾으려 함. 1950-60년대의 미국.

4. 부계적 영장류학

1) ‘남성 수렵자가설 : 사냥은 남성적 혁신

2) 남성의 생활양식을 인간의 과거와 미래의 동력으로 취급, 사냥을 변화의 원칙으로 삼음(157)

3) 수컷 우세 위계가 협동이라는 전도유망한 현상을 만들어내는 핵심 매커니즘으로 작동(166)

 


<6. 부치 에메체타 읽기: 여성학 연구에서 여성의 경험을 위한 쟁점들>. 6장은 더더욱 정리가 어려운데, 이 챕터를 요약, 정리하려면 해러웨이의 말을 그대로가지고 와야 하기 때문이다. 집단적일 수밖에 없는 페미니즘과 정치적으로 작동하는 차이를 어떤 방식으로 이해하고 설명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가 주를 이룬다.

 

경험은 여성들의 운동에 주요한 제품이자 수단이다. (197)


경험은 기호학이며 의미의 체현이다. (198)


상황적 지식은 언제나 표지된(marked) 지식이다. (200)


여성은 특권적인 담론의 장소. (205)


픽션 읽기는 여성학 실천에서 강력한 자리를 차지해 왔다. (206)


모든 읽기는 잘못된 읽기이자, 다시 읽기이며, 편파적인 읽기이자 강제적 읽기이며 상상된 텍스트의 읽기이기도 하다. (224)

 


하나의 문장이 하나의 문단, 하나의 글을 요구한다. 못 본 체하며, 다음 챕터로 넘어간다.

 

 


<7. 마르크스주의 사전에서 젠더: 용어의 성적 정치학>를 읽는다. 이 힘든 책을 꾸역꾸역 읽다 보면 좋은 날 온다. 웃게 되는 날 온다. 설사, 그게 어이없음과 놀라움, 그리고 현타의 순간일지라도.

 


나에게 제시된 과제는 거의 다섯 페이지에 이르는 섹스/젠더에 관한 것이었다. 멍청하게도 나는 그 과제를 수락하겠노라고 답했다.

 

하지만 즉시 문제가 생겼다. 나는 영어 사용자이며, 독일어, 프랑스어, 스페인어는 그럭저럭 했지만 곤란할 때도 있었다. 이런 기형적 언어능력은 미국이 장악했던 여러 기획의 헤게모니와 백인 중에서도 특히 미국 시민들의 비난 받을 만한 무지로 인해 왜곡된 사회세계에서 살아온 나의 정치적 위치가 반영된 것이었다. (230)

 


인문학을 공부하는 사람이 여러 개의 언어를 알고/활용하는 건 어쩌면 기본값일 수 있는데, 지금 딱 생각나는 사람은 5개 국어를 한다는 에바 일루즈이다. 그 기본값과 그 기본값을 갖추었지만 약간 부족해 곤란을 겪는 도나 해러웨이님의 육성 전해진다.  

 

“… 그럭저럭 했지만 곤란할 때도 있었다.”

 


가장 흥미로운 문장으로 이 문장을 꼽는다. 그럭저럭 했지만 곤란할 때도 있었다. 나를 웃게 만드는. 절망하게 만드는. 그럭저럭 했지만 곤란할 때도 있었다. 영어도, 독일어도 프랑스어도 스페인어도 아니고, 한글로 된 책을 읽으며 곤란한 나의 상황, 나의 경험, 나의 처지, 나의 현실.

 



출근 날짜는 아직도 확정이 안 됐고, 그래서 나는 자꾸 집 밖으로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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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4-03-23 14: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앗! 저도 230쪽 저 부분 페이퍼 쓰려고 찜한 부분이고요, 저 부분 읽으면서 단발머리
님 생각을 자연스레 했습니다. 여기 읽으면 단발머리 님도 그낭 못넘어가시겠지, 하고요. 하하하하하

단발머리 2024-03-23 16:42   좋아요 0 | URL
이제 제가 어떤 사람인지 아시겠죠? 제가 말이죠. 해러웨이 읽다가 생각나는 사람이에욬ㅋㅋㅋㅋㅋ(으쓱으쓱) 🤪🤪🤪

다락방 2024-03-23 14: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샤를리즈 테론은 8개국어 한다더라고요??!! 😱

단발머리 2024-03-23 17:21   좋아요 0 | URL
저 이 배우 완전 좋아하는데 스노우화이트에서 흐미 ㅋㅋㅋㅋㅋ 8개 국어 가능하면 외교관해야 하는거 아닐까요? ㅋㅋㅋㅋㅋ

다락방 2024-03-23 15: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 판교의 한 까페에서 유대인의 역사 읽고 있는데요, 테일러 스위프트의 노래 <blank space> 나오고 옆자리 여자분이 따라 불러요!!

단발머리 2024-03-23 15:55   좋아요 0 | URL
아…. 판교 아니면 제가 거기 갈텐데욬ㅋㅋㅋㅋ 저 그거 댄스 가능합니다. 테일러 부족한게 없는데 춤을 못 추더라구여 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대로 출 수 있음요!
락방님 주말에도 열일! 화이팅! ❤️‍🔥

잠자냥 2024-03-23 21:04   좋아요 1 | URL
아니 왜 판교까지 ㅋㅋㅋㅋㅋ

다락방 2024-03-23 22:57   좋아요 1 | URL
그러게요. 제가 왜 판교까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저도 참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잠자냥 2024-03-23 23:00   좋아요 1 | URL
오늘 또 집안 초토화해서 음식 만들고 빵 만들어서 판교 배달 간 거 같은데….🤣🤣

다락방 2024-03-23 23:50   좋아요 1 | URL
오늘은 안만들었고요 ㅋㅋㅋ 내일 만들 예정입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단발머리 2024-03-24 08:39   좋아요 0 | URL
그날이 바로 오늘이라고 합니다. 오늘도 바쁜 하루 되시겠어요. 기대만발! 🤗

은오 2024-03-23 22:2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에바 일루즈 언니가 5개국어를 하는군요?! 어쩐지 똑똑하더라... 난 한국어 하나 제대로 하는 것도 힘든데.... 😭

단발머리 2024-03-24 08:38   좋아요 0 | URL
하지만 은오님처럼 한국어에 능통하면 일루즈 안 부럽습니다! 마음을 말랑하게 하는 완벽한 한국어 구사의 달인! 👍🏼
 





 













<4. 태초에 말씀이 있었다: 생물학 이론의 창세기>를 읽었다.

 


부계에 주목하며 사회생물학에 절대적인 신뢰를 보냈던 데이비드 바래시(132)는 자신을 포함해 유독 남자들, 즉 과학자 아들들을 통해 다윈이 사회생물학을 탄생시켰다고 주장하고 싶어했다. ‘사회생물학이라는 명칭 자체는 E.O 윌슨의 동일한 제목의 책에서 유래했는데, 윌슨은 사회생물학이 과학과 인문학이라는 두 문화를 연결하는 관점을 제공한다고 주장(135)했다.

 


제일 중요해 보이는 문단은 여기다.

 


사실에는 이론이 실려 있다. 이론에는 가치가 실려 있다. 가치에는 역사가 실려 있다. 이런 경우 그런 역사는 특정한 연구자가 일상적이고 경험적인 젠더 지배로부터 가능한 멀리 벗어나서 신빙성 있는 젠더 연구를 하는 것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사실상 연구 대상으로서 젠더와 섹스의 구성 자체가 발생과 기원이라는 문제를 재생산하는 것의 일부가 된다. 인본주의를 비롯하여 그와 연관된 생명과학과 인문과학이라는 역사적 프로젝트는 자아의 성취를 위한 그리고 자아를 위한 연구이다. 지식의 특권적 대상으로서 섹스와 젠더의 구성은 자아를 추구하는 도구다. 이런 구조물은 환영적 주체를 추구하는 끝없는 퇴행으로 되살아남으로써 역설적이게도 전체주의적인 대상, 즉 자연, 유전자, 말씀과 같은 대상을 정기적으로 발견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140)

 



특정한 역사적 조건 아래 출현한 과학이 다가올 인류세에 만능키가 되지 않게 하기 위한 페미니즘의 질문은 무엇인가. 페미니즘의 목소리는? 그 내용은 무엇인가? 라고 저자가 묻는다.

 


잠깐 쉬고 갈게요. 책 내용은 너무 좋고, 밑줄도 엄청 은혜스로운데, 사실, 잘 모르겠어요. 한 템포 쉬고 바로 따라갑니다

갑니다, 갑니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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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괭 2024-03-20 18: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거슨 별다방에서 파는 케이크?? 😳

단발머리 2024-03-20 20:03   좋아요 1 | URL
가 정말 맞습니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블루베리 치즈 케이크요. 엄청 어려운 책 읽을 때 먹습니다. 아껴서 먹습니다. 가족 1인과 나눠 먹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

햇살과함께 2024-03-20 21: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니 노트도 있었어요??

단발머리 2024-03-21 07:36   좋아요 0 | URL
넹~~ 북펀딩할 때 저 노트도 같이 구매(?)하는 옵션이 있어서 그걸 선택했어요. 무선이라 쓰기가 편하다고 합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관심과 사랑 감사드립니다^^

다락방 2024-03-21 07:47   좋아요 0 | URL
저 왜 노트 있는거 지금 알았죠? 저도 펀딩 했는데????

단발머리 2024-03-21 16:34   좋아요 0 | URL
펀딩할 때 있었어요 ㅋㅋㅋㅋ 지금도 책 사면 노트 증정한다고 해요. 그러나 책을 또 살 수는 없다 ㅋㅋㅋㅋㅋ🤪🤪🤪

다락방 2024-03-21 07: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가 오늘 아칭에 읽은 부분을 여기서 똭 만나네요. 저도 밑줄긋기 하나 해야겠습니다!! 빠샤!!

단발머리 2024-03-21 16:34   좋아요 0 | URL
계속 읽고 있습니다. 그러나…
🤔🤪🤔🤪🤔🤪😳😳😳😳

서곡 2024-03-21 18: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흠 저도 스벅 갈 기회 생기면 저 케잌을 먹어봐야겠습니다!! ㅎㅎ 단발머리님 얼마 안 남은 이 달 잘 보내시기 바랍니다~~

단발머리 2024-03-22 15:30   좋아요 1 | URL
네, 서곡님! 스벅 가시게 되면 저 케익 드셔보세요. 맨날 초코케잌 주문하는 저같은 어린이 입맛에도 아주 맛있다고 합니다 ㅋㅋㅋ
서곡님도 3월의 남은 남들 좋은 시간으로 꽉꽉 채우시기 바래요~~~ !!

서곡 2024-03-22 20: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초코는 사랑이지요 그리고 클래식이고요 ㅎㅎㅎ 감사합니다 단발머리님 굿이브닝요!!!

단발머리 2024-03-23 10:56   좋아요 1 | URL
맞아요 ㅋㅋㅋㅋㅋ 초코는 사랑입니다. 찐사랑 초코사랑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초코로 된 건 뭐든 좋아하는 단발머리가 서곡님의 굿데이를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