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을 산 이유는 게으를 권리라는 글을 읽기 위해서였는데, 목차를 보고는 여성문제를 먼저 읽었다. 마르크스주의자가 보는 여성주의에 대해서. 그 이해와 선견지명. 그리고 현재까지 계속되는 불평등과 거짓말에 대해 생각한다.

 

 

 

맘껏 게을러지려 하다가 급부지런해지는 어떤 아침.

 

    

 

 

철학자와 도덕가들은 신성한 가정의 이익을 들이대면 여성운동을 막을 수 있다고 믿을 정도로 단순했다. 그들은 여성이 셔츠에 단추를 달고 헤진 양말을 꿰매는 등의 가사노동에 전념하지 않으면 신성한 가족의 이익이 보호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여성의 의무는 이렇듯 눈에 잘 띄지 않고 보상도 없는 노동에 몸을 바침으로써 남성이 명민하고 우월한 능력을 충분히 발취하도록 뒷받침하는 것이라고 그들은 주장했다. 그런데 반항적인 여성들에게 가정숭배를 가르치려고 했던 철학자들은 같은 입으로 여성들에게 벽난로와 아이의 요람 곁을 떠나 공장에서 노동을 하도록 강요했고, 노동계급의 가정을 파괴하는 자본주의 산업을 찬양했다. (1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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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S 교육대기획 초대형 교육 프로젝트 학교란 무엇인가는 총 5개의 챕터로 이루어져 있다. 1. 칭찬 속의 진실게임 2. 아이의 생각을 여는 책 읽기의 힘 3. 배움의 역주행, 사교육을 파헤치다 4. 0.1% 영재들의 새로운 발견 5. 스스로 성장하는 아이들. 이 중에서 제일 관심이 가는 건, 아무래도 책 읽기에 관한 챕터다.

책 읽는 뇌, 하루 15분 책읽어주기의 힘, 책으로 가는 문

 

 

 

 

 

 

 

 

 

책 읽는 뇌의 저자 매리언 울프는 미국 메사추세츠 주 터프츠 대학의 엘리엇-피어슨 아동발달학과 교수이다. 오랫동안 인지신경과학과 아동발달을 연구해온 학자이며, 난독증으로 고생하는 아이를 기르는 엄마이기도 하다. 그녀의 주장, ‘인간이 책을 읽는다는 행위는 자연스러운 일이 아니다는 매우 인상적이었다

 

독서는 선천적인 능력이 아니다. 인류가 독서를 발명해 낸 것은 불과 수천 년 전이다. 인간은 이 발명품을 통해 뇌 조직을 재편성했고 그렇게 재편성된 뇌는 인간의 사고 능력을 확대시켰으며 그것이 결국 인지 발달을 바꾸어 놓았다. 독서는 인류 역사상 최고의 발명품이며 역사의 기록은 그 발명의 결과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책 읽는 뇌, 15)

 

하루 15분 책읽어주기의 힘은 교육에 완전 무관심한 나 같은 게으른 엄마가 유일하게 관심을 갖고 있는 책읽기에 관한 가이드북이다. 독서에 상을 내리지 않는다, 읽은 책에 대해 말하기 싫어할 때 더 이상 묻지 않는다, 방금 읽은 책의 내용을 기억하지 못한다고 혼내지 않는다,는 철저하게는 아니더라도 내가 따르려고 하는 몇 안 되는 독서 원칙들이다. 그 중에서 제일 강조되는 실천법은 제목 그대로다. 하루 15분씩 아이에게 책을 읽어준다. 이건 돈이 많이 드는 방법도, 많은 노력이나 기술, 훈련이 필요한 것도 아니다. 아이가 좋아하는 책을 고르고, 아이와 함께 앉아서, 책을 읽어준다. 소리 내어 읽어준다. 물론, 잠이 온다. 잠은 정확히 12분에 출몰한다. 15분 책 읽어주기가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하루 15분 책읽어주기가 주는 정서적 위안과 학습적 효과에 대해 듣게 된다면, 이 일을 마다할 사람은 없으리라 본다. 하루 15분 책 읽어주기. 바로 반대 주장 이어진다.

 

책에는 효과 같은 게 없습니다. ‘이제야 되돌아보니 효과가 있었구나.‘라고 알 뿐입니다. 그 때 그 책이 자신에게 이러저러한 의미가 있었음을 수십 년이 지나고 나서야 깨닫는 것입니다... 책을 읽어야 생각이 깊어진다는 말을 생각하지 말기로 합시다. 책을 읽는다고 훌륭해지는 것도 아니니까요. 독서라는 것은 어떤 효과가 있다든가 하는 문제가 아니니까요. 그보다는 어렸을 때 역시 이것이라 할 만큼 자신에게 아주 중요한 한 권을 만나는 일이 더 소중하다고 생각합니다. (책으로 가는 문, 141)

 

책을 읽는다고 생각이 깊어지지 않는다는 생각을 자주하게 된다. 물론이다. 책을 읽는다고 훌륭해지는 것도 아니다. 아이가 역시 이것이라고 할 만한 한 권을 만나게 해 주었다면 그걸로 된 거다.

책읽기는 선천적으로 얻어지는 능력이 아니기에 쉬운 일이 아니다. 하루 15분 소리 내어 책을 읽어줌으로, 아이가 즐겁게 책읽기를 시작할 수 있도록 도와주되, ‘역시 이것이라고 할 만한 한 권을 스스로 찾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챕터 1의 내용 중, <야채 주스 먹기> 실험이 있는데, 이것은 아이들이 먹기 싫어하는 야채주스를 먹게 하는 방법으로 칭찬이 사용되었을 때, 그리고 칭찬이 중단되었을 때 아이들의 반응을 관찰한 것이다. 결과는 예상과 다르다. 칭찬에 길들여진 아이들은 칭찬스티커를 주지 않자 바로 야채 주스를 거부했다. 반면에 칭찬을 해주지 않은 팀은 야채 맛에 점점 익숙해지면서 실험이 끝나는 시점에는 스스로 야채 주스를 많이 먹게 되었다. 뇌가 달콤한 칭찬에 길들여질 경우, 칭찬이 사라졌을 때 의욕마저 사라진다는 것이다. 교육학자 알피 콘은 <야채 주스 먹기> 실험과 관련해 이렇게 조언했다.

 

알피 콘의 칭찬 방법 (68)

1. 아무 말 없이 지켜보기

2. 보고 있는 것을 설명해주기 : 그림에 보라색을 많이 사용했구나.

3. 본 것에 대해 질문학기 : 네가 가장 좋아하는 색깔이 보라색이니?’

4. 과정에 대해 인정하고 물어보기

 

챕터 4에는 0.1% 아이들의 부모들에 대한 이야기가 소개되었다. 이전에 아이와 엄마의 인터뷰 영상을 보았던 것도 기억나는데, 0.1% 부모들 대화법의 특징은 감정에 호소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부모와 대화하는 도중 일반 아이들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거나 눈물을 흘리는 반면, 0.1% 아이들은 여전히 편안한 표정이었다. 엄마가 나와 다른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자기 잘못에 대해 되돌아보는 자세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245)

 

긍정의 대화법 중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은 바로 공감이다. 공감은 말 그대로 아이의 감정이나 의견에 대해서 자신도 그렇게 느껴주는 것이다. “너는 많이 줄였다고 하는데 엄마가 보기에는 다른 사람들에 비해 많이 하는 것 같아”. 스스로 컴퓨터 게임을 자제하지 못해 후회하는 아이에게 엄마는 비난 대신 공감을 해 준다. 아이는 엄마가 자신의 생각을 인정하고 함께 걱정해 준다는 것을 느끼기 때문에 그다음에 이어지는 충고를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246)

 

 

이제 마지막이다. 보통 교회에서 쓰는 전문 용어은혜 받았다고 하는데, 이 책을 시작할 수 있게 된 건 머리말의 이 문단에서 '은혜를 받았기' 때문이다.

 

배움의 과정이 행복하고 진실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는 교육이란 의도와 목적을 가지고 아이에게 개입하고 조종하는 것이 아니라, 자녀와 부모, 교사와 학생의 관계 속에서 신뢰를 바탕으로 한 정서적 교류가 핵심이어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자 했다. (7)

 

나는 실제로 부모가 되어야만 자녀를 양육할 때 얻게 되는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다고 생각지 않는다. 애정을 가지고 아이를 가까이에서 지켜보다 보면, 관찰하고, 이야기 나누고, 의미 있는 시간을 공유하다 보면 아이를 키운다는 것’, 작은 아이가 한 사람의 독립된 인격으로 성장한다는 것이 얼마나 경이롭고 환상적인 일인지, 그것이 우리의 삶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어떤 부모가 될 것인가는 곧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라는 질문과 같다. 아이는 같이 산다. 내가 말하는 것을 들을 뿐만 아니라, 내가 실제로 어떻게 사는지를 가까이에서 본다. 내가 어떤 사람으로 보여지는가 혹은 내 아이가 어떤 사람으로 자라기를 원하는가를 넘어서서, 내가 어떤 사람인가를 아이는 스스로 판단한다.

나는 어떤 부모인가. 나는 어떤 사람인가. 책을 좋아한다고 말은 하지만, 사실은 스마트폰 중독이다. 정직해야 한다고 말은 하지만, 거짓말을 하고 1800원밖에 안 되는 주차 요금을 내지 않은 적이 있다. 아이는 내 옆에서 내가 하는 말을 듣고, 내 행동을 가늠한다.

어떤 부모가 될 것인가.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 정확하고 부지런한 이 귀여운 관찰자 바로 옆에서, 나는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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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섬 2016-07-12 12: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야채주스 먹기 실험 결과에 수긍이 돼요. 칭찬에 길들여진 뇌가 칭찬이 사라진 후 의욕이 사라진다는 것에 밑줄을 좌악 그어요.
비폭력대화 책에서도 칭찬의 언어도 조심해야한다고 하더라구요.

어떤 부모가 될 것인가,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의 고민이 결국 생각의 힘을 키우는 것 같습니다.^^

단발머리 2016-07-12 12:51   좋아요 0 | URL
칭찬하지 않으면서 나쁜 행동을 금지시키고 좋은 일에 대해 장려하는 방법이 있어야할 텐데...
지혜가 부족한 엄마는 고개를 숙입니다.

어떤 부모,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는 저의 일상적이고 오래된 고민입니다.
생각의 힘도 키워줬으면 좋겠네요. ㅎㅎㅎ

cyrus 2016-07-12 17: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부모가 아이에게 강요하듯이 책을 읽도록 가르치게 되면, 아이의 대인 관계 능력이 떨어지고, 이를 방치하면 자폐적인 면이 생길 수 있다고 인터넷 뉴스에서 봤습니다. 단발머리님의 글에도 나와 있듯이 부모와 자녀가 함께 책을 읽어야 합니다. 저는 미혼이지만, 부모가 되면 자녀에게 독서를 강요하는 싶은 생각이 없어요. 사실 제가 독서를 강요하는 어머니 밑에서 자랐습니다. 얼마나 심했으면 제가 오락실에 가는 걸 막았습니다. 그래서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거의 집에 책 보면서 자랐습니다. 그때 경험 때문에 지금도 제가 대인 관계 능력이 부족하다고 생각해요.

단발머리 2016-07-13 13:56   좋아요 0 | URL
아.. 어머님이 독서를 강요하셨군요. 그래도 제가 어머님 편을 조금 들어보자면요.
저도 강요하지 말아야지, 이 좋은 것을 강요하지 말야하지 하면서도 핸폰만 들여다보는 아이를 보면 속이 터집니다. 그래서 저도 독서를 강요한 적이... 있었음을.... 고백합니다. cyrus님은 그러시지 않았겠지만요. ^^

그나저나 cyrus님도 오락실 세대군요. 이렇게 반가울수가...
세대에는 두 가지가 있잖아요. 오락실 세대와 pc방 세대 ㅎㅎㅎㅎㅎㅎㅎ

cyrus 2016-07-13 15:55   좋아요 0 | URL
제가 오락실의 마지막 황금기, PC방 등장의 서막을 목격한 세대입니다. 그런데 PC방도 많이 가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스타크래프트 같은 게임을 못해요. 남자들은 PC방에 게임을 같이 하면서 우정이 돈독해지는데, 저는 그런 경험이 없어서 친구 사귀는 일이 어려웠어요. 다행히 저의 약점을 이해해주는 친구들을 만났습니다. PC방을 자주 안 가서 좋은 점이 게임중독에 고생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만약 제가 PC방에 죽치고 앉았으면, 알라딘에 나타나지도 않았을 겁니다. ^^


수퍼남매맘 2016-07-13 00: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야채주스 실험은 예전에 ebs 에서 방영한 ˝ 칭찬의 역효과 ˝ 를 떠올리게 하네요 . 동의합니다.

단발머리 2016-07-13 13:58   좋아요 0 | URL
네...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ebs에서 실험하고 방영한 것을 모아서 낸 책 같아요.
저는 상위 0.1% 아이들의 부모들과 일반 아이들의 부모들간의 대화를 비교실험한 방송을 본 적이 있습니다.
네, 칭찬도.... 생각하면서.... 해야겠어요~~
 

 

 

 

 

 

 

 

 

 

 

어제는 간만에 친구들을 만났다. 나름 중간이라 생각해서 약속 장소를 종각역으로 잡았는데, 노원, 일산, 천안에서 모이자니, 단톡방에서는 계속 나 늦어’, ‘미안, 나 늦었어가 카톡카톡거린다. 의도치 않게 일찍 도착해버린 나는 반디앤루이스로 들어갔다. 이 책 한 번, 저 책 한 번, 은근 슬쩍 만지고 쓰다듬고 즐거운 신간 탐험의 시간을 보내던 중, 알록달록 시집 코너에서 멈춰섰다. ... 아름다운 이 자태란.

 

 

 

 

 

 

 

 

 

 

 

 

최근에 읽은 사랑은 지옥에서 온 개가 참 좋아서, 다른 시집들도 도전해 보고 싶던 차였다. 사슴1순위, 지옥에서 보낸 한철0순위다. 그리고는, 이 책 욥의 노래를 집었는데... ? 지은이가 없고, 옮긴이만 있네. 그렇다면

, 나는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이 책 욥의 노래는 구약성경 중 하나로 개신교에서는 욥기라고 부르는 성경을 번역한 것이다. 이미 읽었던, 그러나 어렴풋하게만 기억나는 욥기, 욥의 노래.

 

 

 

 

 

 

 

 

집에 돌아와 성경을 펼친다. 요즘은 나는 성경을 읽을 때 메시지성경을 읽는다. 그래, 욥의 노래. 바로 이거였어.

한 장, 두 장, 성경을 넘긴다.

이 성경은 아름다운 한 편의 시이고, 그리고 이 비탄의 노래는 성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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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고 썼으니 강신주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은 클릭하지 않으리라 믿고 팬심에 의거, 강신주님 근황을 소개한다. 저번주에 올렸어야 하는데, 여름 감기로 해롱대느라 조금 늦었다.

 

 

1. 비밀 독서단

 

 

 

지난주, 2016628, 케이블 TV OtvN 예능 프로그램 비밀독서단 2’대한민국이 사랑한 작가 특집에 강신주님이 출연했다. 강신주의 감정 수업을 가지고 청취자들의 고민을 듣고 이야기를 나누는 형식이었는데, 작가, 그것도 대한민국이 사랑한 작가를 초대해 놓고, 패널들의 말이 많았다. 강렬한 노랑머리 염색과 좀처럼 보기 힘든 양복 차림의 강신주님 때문에 그런대로 봐주었다.

 

 

 

 

 

 

 

 

 

강신주님이 추천한 책은 폴 라파르그의 게으를 권리라는 책이었는데, ‘게을러야만 행복에 대해 고민할 수 있다’, ‘게으를 수 있는 권리는 강자의 덕목이다’, 라는 이야기들이 귀에 쏙쏙 들어왔다.

 

 

2. 돌아온 강신주의 마지막 철학 강의

 

 

 

 

 

 

 

 

 

벙커 강좌는 김어준의 파파이스에서 알게 되었는데, 이번주 방송분에서 김어준씨가 거의 다 마감되고 있다고 광고하는 걸 들었다. 오늘 확인해보니 챕터 1은 이미 마감되었다. 만약 듣게 된다면 동양철학에 대해서 듣고 싶기는 한데. 강의 기간이 너무 길고, 비용도 만만치 않다. 텍스트는 7월 출간 예정인 철학 vs 철학개정판이라고 한다.

 

 

 

 

 

 

 

 

 

철학자 고병권님의 다아너마이트 니체강의도 듣고 싶기는 하다. 듣고는 싶으나....

감당할 수 있겠나.

고병권을, 니체를...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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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7-06 20: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7-06 20: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의도하지 않아도 시를 읽을 때는 나도 모르게 정좌를 하게 된다. 하얀 책을 읽을 때 장갑 끼는 걸 고려하시는 분에 비할까 보냐마는(안녕하세요~~ 아름답고 섬세하신 님^^), 시를 읽을 때는 손을 씻고 바르게 앉아 시집을 펼친다. 웬만하면 시집은 들고 다니며 읽지 않는다. 구겨지면 안 된다. 시집은 항상, 새 시집 같아야 한다. 한 편, 한 편 정성 들여 읽는다. 물론 오래 걸린다. 서너 편을 읽은 후에는 쉬어야 한다. 시간이 필요하다

시를 대하는 내 마음이 변한 건 아닌데, 이 두 개의 시집은 빨리 읽었다. 빨리 읽을 수 있었다. 그게 싫기도 했고 또 좋기도 했다.

찰스 부코스키의 시 중에서는 나는 여성혐오자가 아니에요가 좋았다. 해설에는 이런 설명이 있다.

 

그의 작품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섹스, 알코올 남용, 폭력에 대해서는 불쾌하다는 반응과 마초이즘(Machoism)’의 풍자라는 정반대의 평가가 엇갈리고 있다.(129)

 

불편한 시가 있는 건 사실이다. 불편하다는 건 그의 작품 속 알콜과 폭력의 문제 뿐만 아니라, 여성을 대하는 그의 태도가 불편하다는 것이다. 그것이 어떤 면에서는 마초이즘의 풍자라는 해설도 이해되기는 하다. 미묘하게 두 지점을 오가는 것 같다. 내가 더 불편해야 하는지는 아직은 잘 모르겠다. 적어도, 이 한 개의 시에 대해서는, 나는 많이 불쾌하지 않았다. 팬레터를 쓰고 찾아오겠다고 하고 자신에게 전화하라고 말하는 여자들, 젊은 여자들에게 는 말한다.

 

 

부디 그대의

몸과 그대의

인생을

그것에

걸맞은

젊은 남자들에게

주세요

― 「나는 여성혐오자가 아니에요부분 47

 

 

 

 

 

 

 

 

 

나는 시를 잘 못 외우는데(사실, 나는 뭐든지 잘 못 외운다. 전화번호도, 계좌번호도, 우편번호도, 도로명 주소도. 모두 다 숫자들이군. 시도 더한다. 시도 잘 못 외운다.), 유진목의 시 중에, 몇 개는 외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매일같이 당신을 중얼거립니다 나와 당신 하나의 문장이었

으면 나는 당신과 하나의 문장에서 살고 싶습니다 몇 개의 간

단한 문장 부호로 수식하는 것 말고 우리에게는 인용도 참조도

필요하지 않습니다...

― 「당신, 이라는 문장부분 76

    

 

나와 하나의 문장 속에 살 수 있는 당신을 생각하고, 인용도 참조도 필요하지 않은 당신과 나의 관계에 대해 생각한다. 달콤하고 따뜻하다.

 

 

어디로 가야 당신을 볼 수 있습니까 모든 게 다 당신이야 나

는 말하지 않습니다 나는 당신이 당신에게만 있는 것이 고맙습

니다 당신이 어디에 있는지 가르쳐 주세요 내가 그리로 가겠습

니다

― 「첩첩산중부분 80

 

하루 종일 달린다. 물 고인 논을 지나 마을을 지난다. 건장한 사내 백발의 노인 발가벗은 아이를 지나, 첩첩산중 사내들은 소를 데리고 사라져 가고, 나는 당신도 없고 사랑도 없고 욕망도 없고 아무것도 없는 곳으로 달리고 달려간다. 남빛 하늘로부터 시작해 이렇게 달리고 또 달리는 이유는 당신에게 가닿기 위해서다. 고마운 당신, 당신에게만 있는 당신에게 가기 위해서다. 당신이 어디에 있든지 내가 그리로 가기 위해서다. 당신에게로 내가 가기 위해서다.

 

  

  

나는 일생을 다해 중요한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그것만큼

어려운 일이 또 없을 겁니다 무엇이 나를 중요하게 여긴단 말

입니까 언제든 죽을 수 있기 때문에 마음은 편안합니다 행복한

순간이 오면 죽고 싶습니다 그럭저럭 아직까지 살아 있는 것도

보면 우유분단해서일까요 이건 어디까지나 나의 경우입니다

― 「밝은 미래부분 34

 

행복한 순간이 왔을 때, 죽고 싶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죽고 싶지는 않다. 죽지 않고 살아서 행복을 느끼고 싶다. 누리고 싶다. 어쩌면 내가 그런 행복을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죽고 싶도록 만드는 행복, 이젠 죽어도 괜찮겠다고 느껴지는 행복, 나는 그런 행복에까지는 도달하지 못한 것 같다. 내가 느끼는 행복은, 이 순간이 멈췄으면 하는 행복이다. 어느 때, 어느 순간, 찰나의 느낌이다. 그냥 지금 이대로 멈춰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 그런 생각 말이다.

 

아침을 먹고, 자리에서 두 권, 소파에서 1, 학습만화 와이를 정독하던 아롱이는 학교 갈 생각도 하지 않고 공기 연습을 시작한다. 요 근래에 학급에서 공기가 유행이라 요즘 부쩍 공기놀이에 열심이다. 공깃돌을 던지고 받고 또 던지고 받는다. 설거지를 하다가 공깃돌을 던지고 있는 아이 앞에 앉는다. 아이가 놀라며 왜에?”하고 묻는다. 나는 그 가 어떤 인지 안다. 아롱이의 ?’엄마도 같이 할 거야?”하고 묻는 이다. 고개를 저어 아니라고 말한다.

다시 공깃돌을 던지고 받는다. 던지고 또 받는다. 이번에는 손등에 올린 공깃돌을 공중으로 던져 움켜쥐는 연습을 한다. 다시 잡은 공깃돌 3. 아리랑은 더블이니까 6. 학교 갈 생각은 하지 않고 오로지 공기놀이에만 열중한다.

내가 말한다.

아롱아, 우리나라 4학년 어린이 중에서 행복한 어린이 10명 추리면, 네가 10명 안에는 들 거야.”

아무 말 없이 공깃돌을 공중으로 날리던 아롱이가 잠시 틈을 내, 고개를 들고는 말한다.

아마, 5명 안에는 들 걸?”

다시 공깃돌을 던진다. 이번에는 공깃돌 2. 아리랑에 성공했으니까 4연이다.

 

2016620일 오전 825.

멈추고 싶은 시간.

행복해서 잠깐 멈추고 싶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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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6-20 14: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단발머리 2016-06-20 14:28   좋아요 0 | URL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오늘도 한참을 머뭇거리다 당신 옆에 쉼표를 놓아 두었습니
다 나는 다음 칸에서 당신을 기다립니다 쉼표처럼 웅크려 앉는
당신 그보다 먼저는 아주 작고 동그란 점에서 시작되었을 당신...

- 당신, 이라는 문장

2016-06-20 14: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단발머리 2016-06-20 14:39   좋아요 0 | URL
다시 사랑 샘솟는가요? 숙제 한 방에 날아갈 수도 있어요... ㅋㅎㅎ

2016-06-20 14: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6-20 14: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6-20 14: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6-20 14: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6-20 14: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6-20 14: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6-20 15: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단발머리 2016-06-20 15:17   좋아요 0 | URL
만나면 내가 전할께요. 아멘!! ㅎㅎㅎ

2016-06-20 15: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단발머리 2016-06-20 15:16   좋아요 1 | URL
1. 아롱이는 저도... 부럽습니다^^
2. 저는 이제 적응했어요. 이젠 전화번호 7자리도 한 번에 못 외워요ㅠㅠ
3. 고마워요. 저도 이유는 모르겠지만, 님의 말씀이 고맙네요~~
좋은 하루되세요~~~^^

icaru 2016-06-20 16: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저도 비밀댓글로 쓰야하는긴가,, 잠시 고민 ㅋ -- ˝왜에?˝ 라는 두 글자에 함축된 것을 서로에 대해 통찰을 발휘할 수 있다니 대단히 가까운 사이인거네요... 아 부럽부럽.. 언어를 뛰어 넘어요!

살아있는 것도 우유부단 ... 이라니 아... ㅎㅎㅎㅎ ;;

저는 우유부단 대마왕~~!!

단발머리 2016-06-21 08:53   좋아요 0 | URL
위에 분이랑 어느 멋진~~ 남자분 이야기를 하느라 비댓이었어요.
가끔은 비댓이 엄청 재미있습니다.
특히 못 읽는 사람들에게는 궁금증을 선물로 드립니다. 마구마구.
저는 이렇게 댓글 쓴 적도 있어요.
위의 비댓글 다 뭔가요? 공개해 주세요~~ 라고요 ㅎㅎㅎ

아롱이랑 저는 그런 사이입니다. 항상 사이가 좋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런 지점이 여럿 있다고,
저는 믿고 있어요.

우리는 모두 우유부단합니다. 항상... 지금까지요.

cyrus 2016-06-20 17: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는 여성혐오자가 아니에요」 시 전문을 꼭 읽어보고 싶군요.

단발머리 2016-06-21 08:54   좋아요 0 | URL
찰스 부코스키의 시가 모두 편한 건 아닌데, 이 시 <나는 여성혐오자가 아니에요>는 유쾌했어요.
cyrus님도 읽으시면 좋아하실 듯 해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