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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부제는 창조, 진화, 지적설계에 대한 기독교적 관점들이며, 과학과 기독교의 핵심 이슈들에 대해 다양한 과학적 견해와 신학적 견해들을 살펴본다.

 

기독교에서는 하나님이 자신을 인간에게 계시할 때, 두 가지의 방법이 있다고 본다. 자연을 통한 자연계시와 성경을 통한 특별계시가 그것이다. 자연계시는 세계관, 정치에 영향을 받는 과학을 통한 인간의 해석을 뜻하며, 특별계시는 신학과 교회의 전통에 영향을 받는 성경을 통한 인간의 해석을 뜻한다. 자연과 성경 그 자체는 갈등이 없지만, 과학과 성경 해석, 세계관과 신학 사이에서는 잠재적 갈등이 있다고 본다. (83)


창세기 1장에 대한 일치론적 해석과 비일치론적 관점에 대한 논점이 아주 잘 정리되어 있고, 현재까지 밝혀진 과학 지식을 토대로 젊은 지구론을 반박한다. 대륙의 이동, 빙하층, 방사성연대측정 등을 통해 오랜 지구론이 현대의 과학 지식과 일치함을 주장한다. 100억광년 너머에 있는 우주의 존재, 달과 행성들, 소행성 공전 궤도, 운석의 방사성연대측정, 성단에 대한 연구를 통해 우주의 오랜 역사를 증명한다.

 


제일 관심이 가는 부분은 우주와 생명의 시작, ‘기원에 대한 것이다.

 


1940년대와 1950년대의 몇몇 천문학자들은 무신론적 세계관 때문에 정상우주론을 빅뱅 모델보다 선호했다. 그들은 우주에 시작점이 있었다는 생각에 반감을 드러내면서 빅뱅 이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과학적으로 설명하려 했다. 반면에 당시 그리스도인들 중에는 빅뱅 모델을 선호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 선구자 중 한 명이 조르주 르메트르(Georges Lemaltre)라는 벨기에 성직자로, 그는 우주 팽창을 설명하는 최초의 수학 모델을 발전시켰다. 그러다가 1965년에 우주배경복사가 발견되고 난 다음부터는 세계관과 상관없이 모든 천문학자가 빅뱅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187)

 

 

우주의 시작, 빅뱅에 관해서라면, 이 책, 이 문단이 떠오른다.




물리학자들은 우주가 무한에 가까운 고밀도에, 크기도 없는 순수한 에너지로 시작했다는 데 동의한다. ‘특이점이라 부르는 이 상황에서는 물리학 법칙들이 무너진다. 적어도 아직까지는 과학자들도 대폭발이 일어나던 그 첫 순간, 즉 처음 10-43초 동안 일어난 일을 해석하지 못한다(10-43초는 1초의 100만분의 1 100만 분의 1 100만 분의 1 100만 분의 1 100만 분의 1 100만 분의 1 100만 분의 1 10분의 1초다.) (<신의 언어>, 71)

 







『김상욱의 과학공부』 의 김상욱도 똑같이 말한다.

 




빅뱅이론을 이야기하면 반드시 나오는 질문. 첫째, 빅뱅 이전에는 무엇이 있었나요? 물론 아무것도 없었다. 텅 빈 공간이 있었다는 뜻이 아니라 진짜 아무것도 없었다. 시간조차도 없었다는 말이다. 솔직히 나도 이게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아마 대부분의 물리학자들도 비슷할 거다. (<김상욱의 과학공부>, 35)

 

 






이렇게 만들어진 우주에, 태양계에, 지구에 생명체가 살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었다는 것 역시 놀랍고 신기한 일이다. 호킹 박사는 말했다.

 




우주가 왜 꼭 이런 식으로 시작되었어야 했는지, 우리 같은 인간을 탄생시키려는 신의 의도적인 행위로밖에는 달리 그 이유를 설명하기가 매우 어렵다. (<신의 언어>, 80)

 




 



『과학시대의 도전과 기독교의 응답』 에서는 이렇게 표현한다.  



우주는 몇 가지 기본적인 상수들을 통해 우주의 운명이 어떻게 바뀔지 결정된다. 가장 중요한 상수들은 6개를 꼽아볼 수 있다. 전기력과 중력의 비율이라든가, 우주의 물질을 구성하는 원자들의 결합력과 그 중력의 비율, 우주 안에 들어 있는 총 질량, 우주 상수 등 6개가 주요 논의의 대상이다. 이 상수들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처럼 어떤 특정한 값을 갖고 있다. 그런데 이 6가지의 상수 값들이 초기 우주에 아주 조금, 가령 0.00000001%만 변하면 우주의 역사는 확연하게 바뀌어버려 지금과는 매우 다른 우주가 되었을 것이다. (<과학시대의 도전과 기독교의 응답>, 327)

 



 



현재까지의 과학 지식, 인간이 알아낸 정보와 지식만으로는 이 세계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알지 못 한다. 우주의 변두리에 속하는 태양계 속, 지구에 생명체가 살 수 있게 되었는지 설명하지 못 한다. 더 알 수 없는 것은, 왜 우주가 시작되었는가의 의문이다. 왜 우주는, 이런 방식으로, 이런 형태로, ‘시작되었는가.

 

 

진화에 대한 설명 역시 구체적으로 이어지는데, 학교에서 배우는 과학 지식과 교회에서 반복적으로 들었던 창조론 사이의 차이와 간극을 발견했던 사람이라면, 그 문제로 고민했던 사람이라면, 의문의 많은 부분이 해소될 것이다. 물론, 소진화의 범위를 넘어서 종의 멸종과 새로운 종의 등장, 공통조상과 관련된 부분은 보통의 기독교인이라면 받아들이기 힘든 내용이다.

 


 

진화론과 진화주의에 대한 비교가 특히 눈길을 끌었다. 대부분의 과학자가 생각하는 진화론(theory of evolution), 무작위적 돌연변이와 차별적 번식성공도를 통해 수세기 동안 종이 조금씩 변화하는 것(소진화)과 수백만 년을 주기로 이뤄지는 큰 변화를 모두 아우르는 용어다. (203) 이에 반해 진화주의(evolutionism)는 과학이 아니라 일련의 세계관적 신념을 가리킨다. 진화론을 이용해 무신론적 신념을 뒷받침하려는 진화주의는 이렇게 주장한다.



l  세계를 돌보는 창조자는 없다

l  인간은 신의 인도나 다스림 없이 순수하게 자연적 과정만을 통해 발생했다.

l  인간 존재에 고상한 목적 같은 것은 없다.

l  인간의 도덕성은 유전과 환경의 결과물일 뿐이므로, 절대적인 도덕성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이런 주장들은 과학이 아니라, 철학적이며 종교적인 진술이다. (204) 진화론은 과학적 연구를 통해 입증될 수 있지만, 진화주의는 신념의 문제다. 의미와 목적의 부재. 처음부터 끝까지, 시작부터 마지막까지 오직 우연에 기대는 진화주의환원주의적 무신론에 다름 아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다. 인간이 유인원과 공통조상을 가졌다는 화석학적, 유전학적, 해부학적 증거들을 받아들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나도 그렇다. 하지만, 공통조상이나 진화론에 동의하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모순되지 않는다. 인간이 유인원이나 다른 동물들과 같은 공통조상을 가진다 할지라도, 어떤 시점에서부터 인간의 계보는 다른 동물들의 계보에서 떨어져 나왔다. (304) 인간은 다른 동물과 특별히 다르게 만들어지지 않았을지 몰라도, 인간이 하나님과 인격적 관계를 맺는 방식은 (우리가 아는 한) 이 태양계 안에서는 특별함 그 자체이다. 끝없이 펼쳐지는 우주 공간 속에서 인간은 먼지처럼 보잘 것 없고 하찮은 존재지만,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크고 위대하다. 하나님의 눈에 인간은 특별하고 중요한 존재이다. (305)

 

 

과학은 이제 절대자의 자리에 앉았다. 과학적으로 증명된, 실험으로 확인된 정보와 지식에 대해서는 아무도 의심하지 않는다. 이를 의심하거나 거부하는 사람은 무지몽매한 사람으로 취급받기 일쑤다. 과학은 그 영역이 점점 더 넓어질 것이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의심 없이 신봉될 것이다. 하지만, 과학이 답할 수 없는 수많은 의문에 대해서는 질문이 계속될 것이다.

 

 

우주는 어떻게 시작되었는가.

우주는 왜 이런 식으로 시작되었는가.

지구는 어떻게 생명체가 살 수 있는 완벽한 환경으로 조성되었는가.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

우리는 왜 태어났는가.

죽음 이후에는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나는 누구인가.

도대체 나는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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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 다녀와서 바둑학원 가기 전에 30분 정도의 시간이 있는데, 아롱이는 그 시간에 꼭 게임을 하고 싶어한다. 보통 <클래시로얄>과 함께하는데 부수고 때리고 깨뜨리는 소리가 너무 커서 소리를 좀 줄이라고 했다. 설마 들릴 소냐. 두번째로 좋아하는 간식 비요뜨 초코링을 밀어 두고 게임 삼매경이다.


내가 읽고 있던 부분은 바로 여기다.



임신하면 처음 몇 달 동안은 흔히 식욕부진과 구토가 따른다. 이런 일은 다른 어떤 가축의 암컷에게서도 찾아볼 수 없다. 이 현상은 유기체를 자기 것으로 만들려고 하는 종에 대한 유기체의 반항을 나타낸다. 유기체는 인, 칼슘, 철분이 결핍되는데, 결핍된 철분은 나중에 보충하기도 곤란하다. 과도한 신진대사 활동은 내분비계통을 자극하고, 자율신경계통은 흥분상태가 된다. 혈액은 그 비중이 감소되어 빈혈증을 초래하고, ‘단식하거나 굶주린 사람, 연속 채혈을 한 사람이나 회복기 환자 등의 혈액’과 비슷해진다. … 출산 그 자체가 고통이요 위험이다. 육체가 종과 개체를 동시에 만족시킬 수 없다는 점이 이런 위기에서 가장 명백히 드러난다. (57쪽)




새삼 내가 이 모든 과정들을, 시간들을, 고통들을 잘 견뎠다는 게 놀랍다. 나는 입덧도 심하지 않았고, 잘 돌아다녔고, (하나둘 영차!하고는) 잘 낳았고, 15개월을 모유 수유까지 했는데. 내 주위의 엄마들은 모두 다 그렇게 잘 했고, 잘 해냈고, 다들 그렇게 아이를 낳는 거라 생각했는데. 무미건조하게 사실과 현상만을 나열한 이 문단을 읽는데, 문득 내가 이 시간들을 이미 겪었다는 것이, 이 일들이 내 몸을 통과했다는 것이, 다시금 놀랍고 조금, 아주 조금 대견하기도 하다.




내 앞에 앉은 아이가 아롱이라서 그런 것 같다. 

언젠가, 나는 임신과 출산이 여성의 특권이며, 내가 너희들을 낳았다는 걸 난, 정말 기쁘게,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두 아이에게 자신만만하게 이야기했지만.

그리고 그 생각에는 지금도 변함이 없지만.




이 문단을 읽고 있는 내 앞에, 만약 딸롱이가 앉아 있다면, 난... 

이어갈 수 없는 그 모든 말들을 말줄임표 속으로 집어넣어야 할 것 같다.

이렇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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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7-06-30 18: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주 조금이 아니라 아주 많이 대견해하셔도 돼요, 단발머리님.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단발머리 2017-06-30 19:00   좋아요 1 | URL
네, 그럼 조금만 더 대견하게 여길께요. ^^

다락방님께서 <멀고도 가까운>에서 인용해주셨던 그 문단이 생각났어요. 이 부분이요~~~



우리의 삶을 만들어 가는 것들은 아주 희미하고, 예측할 수 없다. 때문에 우리는 가까스로 탄생한다. 우리가 사랑하기로 되어 있는 사람은 좀처럼 만나지지 않고, 숲에서 길을 찾는 것은 어렵고, 하루하루의 대혼란에서 살아남는 것도 힘들다. 근원으로 올라가면 두 사람이, 본인들이 바랐든 바라지 않았든 우연히 함께 있었다. 둘은 서로의 유사함에 혹은 차이에 끌린다. 각자의 두려움과 한계를 오랜 기간 극복하고, 두 세포가 하나로 합쳐지는 바로 그때 우리는 생겨난다. 수백 만 개의 정자가 하나의 난자 안에서 헤엄치고, 어찌어찌해서 여정을 완수한 단 하나의 정자가 역시 단 하나의 어머니 세포와 만나 우리를 낳는다.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가냘픈 그 짝짓기. 다른 사람들도 모두 어머니의 몸 안에서 벌어지는 그 혼란을 겪은 후 지상에 나오게 된다. 그런 일을 겪지 않고 세상에 나오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그뿐만 아니라 너무나 연약한 유년의 몇 해 동안, 단 한순간이라도 어머니가 한눈을 팔았더라면 당신은 촛불처럼 훅 꺼져 버렸거나, 욕조에서 익사했거나, 바닥에 떨어진 단추를 삼키다 목이 막혀 죽었을 것이다. (106쪽)


그런 일을 겪지 않고 세상에 나오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에서 저는 정말 철퍼덕 했어요. 아빠도 고생하셨겠지만, 엄마가 무던히도 생각나는 구절이예요.

저는.... 효녀가 될까봐요. 앞으로....

다락방 2017-06-30 19:01   좋아요 1 | URL
아아 이 부분 정말 너무나 좋죠! 저도 읽다가 너무 좋았던 부분 ㅜㅜ 그런 일을 겪지 않고 세상에 나오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아아 정말 좋습니다 ㅜㅜ

단발머리 2017-06-30 19:05   좋아요 1 | URL
그런 일을 겪지 않고 세상에 나오는 사람이 단 한명도 없다는 점에서...

우리는 모두 평등하고,
우리는 모두 소중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더 나은 사람도,
더 못한 사람도
없다는 생각이요. ㅎㅎㅎㅎㅎ

cyrus 2017-06-30 18: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임산부들이 겪게 되는 힘든 일이 많지만, 그 중에 임산부 입장에서 가장 힘든 일이 먹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뱃속에 있는 태아의 건강을 위해 먹지 말아야 할 음식을 먹고 싶어도 참아내는 모습이 정말 대단해요.

단발머리 2017-06-30 19:04   좋아요 1 | URL
네, 맞아요. 먹는 일이 힘들지요. 그런데... 정말 힘든 건요. 먹고 싶은걸 참는 게 아니라, 먹고 싶은데, 배고픈데...
헛구역질이 나서 먹을 수 없는 거예요. 먹고 싶은데 못 먹는 거요.

태아의 건강을 위해 먹지 말아야 할 음식이 있다고는 하던데, 그것도 사람들이 만들어 낸 이야기 같아요.
태아의 건강을 위해서라기 보다는... 뭐랄까. 그것도 문화의 영향이 있겠지만, 예쁜 아기를 낳아야한다는 강박이
임산부의 식생활까지 제재하는 느낌이요.
요즘에는 가리지 않고 그냥 임산부가 먹고 싶은 걸 먹는것 같더라구요.^^

비로그인 2017-06-30 19: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단발머리님은 정말 감동적으로 대단한 일을 해내신 거예요 모유수유만 해도 얼마나 힘든데요 ㅠㅠ
저도 두아이 출산해 돌보면서 여러번 유체이탈... 지금도 내영혼은 어딨는지.....
(저희집소년은 아레나10이라며 언제 같이 한판 뜨자는 ㅋㅋㅋㅋㅋㅋㅋ)
바둑학원이라니 멋져요~~♥

단발머리 2017-07-01 15:03   좋아요 0 | URL
아른님~~ 참말로 감사합니다 😊
저는 낳는 수고는 그럭저럭 잘 해냈는데 아직도 먹이는게 넘 힘들어요 ㅠㅠ
아른님 건강밥상이 너무 부럽고...
우리는 같은 물품을 사용하니 언젠가는 나도... 하는 생각에 작은 희망의 끈을 꼭 잡고 있습니다. 그나저나 저희집 아롱이가 아른님댁소년의 점수가 어떻게 되는지... 간곡히 물어보고 있어요. ㅎㅎㅎㅎㅎㅎㅎㅎ

Jeanne_Hebuterne 2017-07-01 02: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부하는 책상, 멋져요!

단발머리 2017-07-01 15:05   좋아요 0 | URL
감사해요^^
원래 용도라면.. 저희집 식탁이예요~~
하지만 제가 책을 펴면 금방 공부하는 책상이 됩니다 ㅎㅎㅎ

2017-07-03 22: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7-05 15: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유부만두 2017-07-04 14: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각잡고 공부하시는 겁니까?!!!! 시험도 보시구요?!
요점정리 노트 공유좀 부탁하구요~~~ ㅎㅎㅎㅎ

단발머리 2017-07-06 15:19   좋아요 0 | URL
각은 잡았는데 저기 저 페이지에서 한 쪽도 못 나갔다는... 슬픈 소식입니다 ㅠㅠ 혼자 하는 거라 시험은 없구요 (야호!)
요점 정리는 해볼까 하고 있는데...
어떻게~~~ 열심히 해볼까요?! ㅋㅋㅋ
 










 






금정연의 책 『서서비행』을 읽고 나서 오랫동안 기억에 남았던 문장은 이렇다. “나는 아직 좋은 서평이란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정확히 답하지 않았다. 사실 그 대답은 너무 뻔하다. 좋은 서평이전에 좋은 이어야 한다는 것.” 『서서비행』이라는 책 제목과 함께 금정연이라는 이름도 기억해뒀다.














서평가, 다른 이들의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우스꽝스러운 직업(10)을 가진 사람의 책 이야기는 너무나 즐겁다. 예를 들면, 아직까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완독하지 못한 독자들을 향한 이 달콤한 위로의 말들이라니. 무라카미 하루키의 1Q84에는 이런 대화가 나온단다.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어때?” 갑자기 교양을 시험당한 아오마메는 되묻는다. “당신은 읽었어요?” 그러자 다마루가 담담하게 말한다. “아니. 나는 교도소에도 간 적이 없고, 어딘가에 오래 은신할 일도 없었어. 그런 기회라도 갖지 않는 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완독하는 건 어려운 일이라고들 하더군.” 이어지는 대화는 점입가경이다. “주위에 누군가 다 읽은 사람이 있었어요?” “교도소에서 오랜 시간을 보낸 사람이 내 주위에 없는 건 아닌데, 다들 프루스트에 흥미를 가질 만한 타입이 아니었어.” (40)





금정연의 다정한 속삭임에도 불구하고, 아니 오히려 바로 그 속삭임 때문에, 나는 반드시, 반드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을 완독하리라 다짐한다. 책장 맨 윗 칸에서 우아하게 자기 자리를 지키고 있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1을 당장 뽑아 책표지를 과감하게 벗겨 내서는, 자주빛 새 책을, 식탁 옆 책탑 맨 위에 척 하니 올려둔다. 반드시 읽고 말리라. 금정연이 끝까지 못 읽은 이 책을, 나는 읽고야 말리라. 반드시 읽어내리라. 읽어 내고야 말리라. 다짐과 결심, 그리고 화이팅.








글을 써서 먹고 산다는 것, 글쓰기로 생계를 유지한다는 것에 대해 내가 가지고 있는 낭만적인 생각들은 금정연의 솔직함 앞에서 일순 부끄러워진다. 마감에 쫓겨 글을 쓴다는 것, 쓸 내용이 없는데 쓴다는 것, 쓰기 싫은데 쓴다는 것, 잘 안 써지는 데 쓴다는 것. 그런 것들은 얼마나 사람을 지치게 하는가. 얼마나 큰 좌절감을 안겨 주는가. 멋져 보인다고, 멋진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글을 쓴다는 건 얼마나 고단한 일인가. 그런데 글을 써서 먹고 살겠다니. 글쓰기로 생계를 유지하겠다는 생각이 잘못된 건 아니지만, 왜 하필 이 나라에서. 이 나라의 말로. 이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5천만. 하지만, 사람들은 거의 책을 읽지 않아, 한 달에 책 한 권 읽는 사람도 찾기 어렵다. (알라딘 마을 제외^^) 글을 써서, 책을 써서 먹고 산다는 건, 정말 쉬운 일이 아니다.



책을 읽고 원고를 납품하는 와중에도 원고 수입은 적고, 생계는 빠듯해 생각에 자주 빠지게 된 어느 즈음, 몸이 아파 찾은 병원에서는 금정연에게 내시경 검사를 하자고, 그리고 혈액 검사도 해야한다고 했다. 비용은 대략 30만원. 그 다음 페이지 전체는 가히 이 책의 백미라 할 수 있는데, 아무리 줄이려고 해도 줄일 수 없는 명문장들 뿐이다. 상황이 그렇고, 표현이 그렇다.




그런데 바로 그 다음 날,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한 번도 원고를 기고한 적 없는 잡지의 청탁 전화였다. 원고료는 30만 원이라고 했다. 내 속을 들여다보는 대가로 내가 의사에게 지불했던 바로 그 금액이었다.


하지만 뜻밖의 지출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며칠 후 혈액 검사 결과를 듣기 위해 찾아간 병원에서는 추가적인 조치가 필요하다고 했다. 10만원. 그러자 이틀 후, 역시 한 번도 원고를 기고한 적 없는 잡지에서 그만큼의 원고료를 주겠다는 청탁 전화가 걸려왔다.


우스운 우연이었다. 나는 간단한 테스트를 해보기로 했다. 재정 상황을 점검한(그건 정말 간단한 산수였다) 나는 얼마의 돈이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나와 내 통장에게 약간의 심리적 안정을 줄 수 있는 돈이었다. 나는 얼마가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생각했으며, 생각했다. 밤이 새도록, 생각에 생각을 거듭했다. 그러자 정말 그 돈이 당장 필요한 것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아침이 밝았다. 또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출판사에서 일하는 친구의 전화였다. 그는 내게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을 했고, 보수로 바로 그 얼마만큼의 금액을 제시했다. 정확히 같은 금액을. 그때 내 입에서 나도 모르게 흘러나온 씨발이라는 감탄사는 아마 이런 뜻이었으리라 : “론다 번과 이지성이 옳았단 말인가!” 나는 웃을 수도, 울 수도 없었다.


아무리 그래도 인생을 시크릿가득한 꿈꾸는 다락방으로 만들 수는 없는 일 아닌가? 그래서 나는 거절했다. 거짓말이다. 다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판단했을 뿐이다. (234)




나는 론다 번과 이지성의 주장이 다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게 믿는 사람들에게 그런 일들이 종종 일어난다고,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론다 번과 이지성이 완전 거짓말쟁이가 아니라면, 그들의 이야기 속에 일말의 진심 혹은 진실을 포함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그들이 믿는 원리 혹은 신념을 다른 사람들에게 일률적으로 강요하는 건 잘못됐다고 생각한다. 어떤 사람이 말하는 간절함이 다른 사람에게는 다르게 이해될 수 있기 때문이다. 간절하게, 더 간절하게 혹은 열심히 더 열심히,는 간절함과 열심을 마음 속 깊이 다짐하는 사람에게 고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간절함과 열심이 이룬 결과에 대한 책임이 노력하고 애쓴 사람에게만 강제된다는 것 역시 문제다. 사회 속 부조리의 책임을 개인에게만 돌리는 건 비겁한 일이다.















그러니까, 나는 할 수 있는 일을 매일 할 때 우주는 우리를 돕는다”(<지지 않는다는 말>, 204)는 말이 우리네 삶 속에서 이루어지는 경우도 제법 많지만, “어쩌면 내 뜻대로 이뤄지지 않는 이 현실이 내 삶의 궁극적인 목적지일지도 모른다”(<소설가의 일>, 251)는 말 역시 긍정하고 있다는 뜻이다.















『롤랑 바르트, 마지막 강의』에 대한 글, <우리 삶의 노정 중간에서>는 빨간 책방에서 이동진 작가가 일부 낭독해줬었는데, 바로 이 문장 때문에, 바로 이 문장을 직접 확인하기 위해 나는 이 책을 읽었다.


시도하기 위해 희망할 필요도 없고, 지속하기 위해 성공할 필요도 없습니다. “


권태와 두려움을 이기는 방법도, 새로운 삶의 장 역시도 글쓰기일 수 밖에 없다는(102), 바르트의 말은 그의 다른 말도 궁금하게 만든다. 금정연을 읽고, 금정연이 밑줄 친 문장을 읽고, 프루스트를, 롤랑 바르트를 다시 보게 됐으니, 금정연은 성공한 셈이다. 나는 금정연 덕분에 줍게 된 이 문장을 들고, 롤랑 바르트에게로 간다. 한 발짝 또 한 발짝, 발을 뗀다.



시도하기 위해 희망할 필요도 없고, 지속하기 위해 성공할 필요도 없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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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시도하기 위해 희망할 필요도 없고, 지속하기 위해 성공할 필요도 없습니다.
    from 의미가 없다는 걸 확인하는 의미 2022-11-30 23:30 
    가끔 황홀할 수준의 독서가들을 보면, 내 주제에 까불었구나 많이 겸손해진다. 물론 내 인생도 나름의 독서를 즐긴 인생이었으나 그것은 알라딘을 모를 때의 이야기고 ㅋㅋㅋㅋ 아, 진짜. 어쩌지? 당신들 진짜 누구세요, 다? 여러분은 왜 날 뒤메질 독서가로 만드는 가. 진심… 먹고 사는 것이 불안한 제가 50살 이후에도 무리하지 않는 삶을 꿈꾸면서 유튜브를 하긴 하는 데… 내 주제에 북튜버를 해도 된단 말인가? (뭔가 수익이 날만한 콘텐츠를 짜보려 했으나 그
 
 
2017-06-19 16: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6-19 16: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6-19 16: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단발머리 2017-06-20 07:28   좋아요 0 | URL
<때가 되면 테헤란>이군요. 함 찾아봐야겠어요.
아하.......
시숙제 할 때가 좋았어요.
제 앞에는 꿈섬님이, 제 옆에는 쑥님이, 그리고 너머너머에는 야나님이 있었더랬죠.
바로 어제 같고, 그리고 꿈 같아요.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다락방 2017-06-19 16: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앗 정말 그렇단 말입니까?
저도 마음속으로 필요한 액수를 어마어마하게 생각해야 겠다고 결심하지만,
그전에 이미 사실 저는 다른 걸 간절히 빌고 있네요.
사람이 가장 원하는 걸 빌게 되는 것 같아요.

단발머리 2017-06-19 17:45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저는 읽으면서... 왜 금정연은...
엄청난 금액을, 평생 일하지 않아도 되는 금액을 생각하지 않았나....
그런 생각을 했었습니다.
저는 너무 탐욕적이예요. ㅠㅠ
다락방님은 뭘 빌었을까요. 다락방님은 뭘 간절히 원했을까요. *^^+

2017-06-19 19: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6-19 19: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yamoo 2017-06-19 2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나두 아는 책이 없네요..--;;

단발머리 2017-06-20 11:59   좋아요 0 | URL
yamoo님과 제가 책 취향이 많이 다른가봐요. ㅎㅎㅎㅎㅎㅎ
저도 yamoo님처럼 철학책 읽고는 싶은데.... 어렵습니다. ㅠㅠ

AgalmA 2017-06-21 01: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롤랑 바르트 글 좋은 거야 금정연 아니어도 잘 알아서 이참에 널리 알려지는 게 싫으면서 좋으네요ㅎㅎ.
<롤랑 바르트, 마지막 강의> 책값 비싸서 도서관에서 빌려서 조금씩 읽다가 반납하곤 했는데 쿡쿡 찌르는 명문으로 가득하죠!
돈 받는 것도 아닌데 이렇게 열심히 글을 쓰고 있는 게 가끔 아니 자주 화납니다. 나를 위해 쓰고 있는 게 맞나 싶을 때가 있으니까요. 그렇다고 대충 쓸 수도 없죠ㅎㅎ; 누가 인정해 주지 않아도 시시하고 싶진 않으니까.

단발머리 2017-06-21 12:55   좋아요 0 | URL
전 금정연을 읽고, 롤랑 바르트를 다시 봤습니다.
저기 저 멀리에 있는 사람에서, 나에게 무언가 이야기해 줄 수 있는 사람으로요^^
좋은 건 널리 널리 알려야 합니다.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AgalmaA님의 글은 읽을 맛이 나지요. 암요암요. 대충 쓸 수 없죠.
아갈마님을 위해서, 그리고 알라딘 이웃을 위해서^^

공쟝쟝 2022-11-30 18: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017년의 단발머리님아! 2022년의 내가 이 글을 읽으면서 이래요, 와 역사 너무 너무 대단해! 책읽는 건 너무 멋져!
 



















아나운서 고민정, 시인 조기영 부부의 인터뷰를 읽었다. 조기영 시인이 말했다. “아이들은 저를 엄마라 부르고, 아내를 아빠라 부를 때가 있어요.” 아이들은 엄마를 아빠로, 엄마를 아빠라 부르기도 한다. 흔한 일이다. 우리집 아롱이도 아빠와 많은 시간을 보낸 긴 연휴 뒤에는 며칠동안 나를 아빠로 부른다. 그런데, 고민정 부부의 경우 엄마가 아빠 같고, 아빠가 엄마 같기에 상황이 조금 다르다. 아침마다 안녕! 손을 흔들며 집을 떠나 밖으로 나가고, 자주 만날 수 없고, 돈을 벌어오는 사람이 아빠고, 학교 다녀온 아이를 맞아주고, 숙제 하는 것을 도와주고, 밥을 차려주는 사람이 엄마라면, 고민정 아나운서가 아빠고, 조기영 시인이 엄마다. 그러니 아이들이 아빠를 엄마로, 엄마를 아빠로 부른다.




『당신이라는 바람이 내게로 불어왔다』, 『그 사람 더 사랑해서 미안해』















대선 당시 심상정 후보의 남편 이승배씨의 인터뷰를 tbs 교통방송 <김어준의 뉴스공장>에서 들었는데, 그 분은 이런 말씀을 하셨다. “2004년 진보정당이 국회에 입성할 당시, 결정해야 할 중요하고 긴박한 일들이 많아 이 사람이(심상정 후보) 바깥일을 잘 할 수 있도록 내가 가사를 전담하기로 했다. 집안일에는 신경 쓰지 않도록, 내가 다 알아서 했다. ”


두 가정 다 일반적인 경우라 하기 어렵다. 밥 차려주는 아빠와 바깥일에 바쁜 엄마.



가고 싶은 나라 스웨덴에는 Latte  Daddy 라떼 대디라는 말이 있다고 한다.  Latte  Daddy 라떼 대디란, 직장 일을 멈추고 집에서 아이를 돌보며, 유모차를 끌고 다니다가 오후에는 이웃의 Latte Daddy 들과 달콤한 라떼를 즐기는 육아휴직 아빠들을 가리킨다. 스웨덴은 아빠들의 90일 육아휴직이 의무 사항이기에 아이들과 즐거운 한 때를 보내고 있는, 행복하게 웃는, 밝은 표정의 아빠들을 볼 수 있다고 한다. (<미디어숨>, 스웨덴의 Latte Daddy를 아시나요?”)









앤 해서웨이와 로버트 드 니로의 영화 <인턴>에서 앤 해서웨이는 창업 1년 반 만에 직원 220명의 성공 신화를 이룬 CEO 역을 맡았는데, 영화 속 앤 해서웨이의 남편 역시 Latte Daddy. 바쁜 엄마, 일하는 엄마를 대신해 아이의 간식을 챙겨주고, 밥을 먹이고, 아이의 소소한 일정을 챙긴다. 그러다가, Latte Daddy 는 이웃집 Latte Mommy와 바람이 나는데자세한 내용은 영화에서.






















남자가 바깥일, 여자가 집안일을 해야한다는 생각은 언제부터 인간 사회를 지배해 왔을까. 수렵채집생활에서 농경정착시대로 들어서면서 여성의 역할은 크게 축소되었다. 또한 자본주의 경제의 등장이 남자 바깥일, 여자 집안일의 통념을 공고히 했다



『그림자 노동』의 저자 이반 일리치는 상업적 영농이 자급농을 대체하고, 생활 임금을 버는 일이 상례가 된, 1830년을 중요한 기점으로 본다. , 사고 파는 행위의 중심이 물물교환이던 자급자족 경제 시대에는 남성이나 여성이나 집에 가져오는 수입이 비슷했고, 경제적으로 여성은 여전히 남성의 동반자였다는 것이다. 식량 생산이나 의복과 도구를 만드는 일에 여성들은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었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1830년 이후, 여성은 가족의 생계를 책임진 가정의 안주인에서, 자녀가 일하러 가기 전에 머무는 장소, 또는 남편이 휴식을 취하고 수입을 지출하는 장소의 관리인으로 전락했다. (199)


자본주의 사회에서 여성의 무임금 가사 노동은 보이지 않는 그림자 노동이며, 여자에게 이러한 그림자 노동이 부여된 것은 과학적으로 여성은 원래 그림자 노동을 하도록 만들어졌으며, 집안을 돌보는 것이 여성의 본성이라는 주장때문이었다. (190)




『여성의 신비』에서 베티 프리단은 해부학적 이유로 여성의 운명을 규정하고가정을 돌보는 것이야말로 여성의 최고의 선택이라는 주장들이 여성을 가정이라는 울타리 속에 가두었을 뿐만 아니라, 무력감의 울타리 속에도 가두었다고 주장한다

 



낡은 관습과 여성의 신비가 주는 새로운 매력은 여성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발견할 수 있게 성숙해지는 길, 즉 인간으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선택하는 길을 봉쇄해버렸던 것이다. 여성의 해부학적 신체 조직이 곧 여성의 숙명이라고 여성의 신비에 도취한 이론가들은 말한다. 즉 여성의 자아는 여성의 신체적 구조로 결정됐다는 것이다. (154)







여성의 신비에 사로잡힌 여성은 개인적인 목표와 설계를 갖지 못한다. 자아 실현을 이룰 수 없으며, 어느 순간 자신이 누구인지조차 알지 못 한다. 의식주, 성생활, 생존에 관한 욕구 만큼이나 인간에게 본능적인 지식의 욕구, 자아 인식의 욕구를 지속적으로 억압당한 채 그냥 그렇게’ 또는 '의미없이' 살아간다. (514)



정희진의 『페미니즘의 도전』이다.





가족 구조에서 어머니의 노동이라고 간주되는 육아와 가사는 문화적으로 비하되고 경제적으로 보상되지 않는다. 어머니의 일이 단순하고 반복적인 미숙련 노동이라는 인식은 공적 영역에도 확장되어, 노동 시장에서 여성 노동에 대한 낮은 평가와 연결된다. … 배려와 보살핌, 감정 노동을 중요한 노동 요소로 요구하는 사회복지사나 간호사, 유치원 교사의 저임금은 이들 노동의 특징이 어머니의 노동을 닮은, 성별화된 것이기 때문이다. (67)






특정한 역할과 임무 그리고 책임이 여성에게만 귀속되었고, 여성이 지속적으로 맡아왔던 일들이 문화적으로 비하되었다. 하찮은 일이기에 경제적 보상이 필요 없었고, 경제적 보상이 없었기에 더욱 하찮은 일로 취급되었다.




그렇다. 이 페이퍼는 고정된 성역할이 여성과 남성에게 미치는 해악에 관한 것이며, 또한 가사 활동이라는 제한되고 반복적인 일에만 자신의 역량을 발휘하도록 강요된 여성들의 슬픔에 관한 것이다.  


또한 이 페이퍼는, 국민의당 이언주 의원이 강경화는 셀럽일 뿐, 외교부 장관은 국방 잘 아는 남자가 해야한다는 말도 안 되는 헛소리에 대한 답이며, “딸 셋 중 맏딸로서 경제력이 없는 친정 부모님을 늘 부양했다는 강경화 외교부 장관 후보자에 대한 지지의 글이다.


또한 이 페이퍼는, 여성이 자신의 역량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는 새로운 사회에 대한 기대를 담은 글이고, Latte Daddy가 되어 별처럼 빛나는 아이의 순간 순간을 함께하자는 초청의 글이며, 여성과 남성, 남성과 여성, 우리 모두 고정된 성역할의 벽을 뛰어 넘자는 초대의 글이다.



고정된 성역할의 견고한 벽을 넘어선 그 곳에는,

이렇게 두 가지가 있다.



Latte Daddy와 강경화.



환한 표정의 Latte Daddy가 있고,


그리고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자랑스러울 게 분명한 여전사 강경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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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7-06-12 15: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와 단발머리님 진짜 멋지다.
애정합니다 단발머리님.
이런 글을 써주셔서 애정하고, 그림자 노동을 또(!) 저보다 먼저 읽으셔서 존경합니다.
아, 단발머리님 진짜 ㅠㅠ 페미니즘 공부하는 분이셔서 진짜 제가 든든하고 너무 좋고요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저도 더 열심히 공부하겠습니다. (불끈!)

단발머리 2017-06-12 15:52   좋아요 1 | URL
페미니즘 책을 읽고는 있지만, 아직 다락방님이 든든해 하실 만큼은 아니어요~~
아까도 <그림자 노동> 중에서, 가사노동보다 더 큰 범위인 그림자노동에 대한 설명 읽다가,
에라 모르겠다~~ 해버렸답니다. ㅠㅠ
하지만, 이렇게 응원해주시는 다락방님이 계셔서 엄청 씐납니다.
우리 같이 달려요~~~~~~~~~~~~~~~~~~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cyrus 2017-06-12 16: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국방을 잘 아는 남자’ 대부분이 방산비리를 저지른 적폐 세력입니다. 문 정부가 방산비리 척결에 본격적으로 시동을 걸기 시작해서 다행입니다. 그동안 국방부의 조직 체계가 호모 소셜에 가까워서 방산비리를 눈 감을 수 있었습니다.

단발머리 2017-06-13 10:50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국방을 잘 안다고 맡겼더니 방산비리의 주범으로 변신들을 하셔서~~
문 대통령님 할 일 너무 많아서 좋기도 하고,
그런데도, 나라를 이렇게 해 놓고도 발목 잡는 야당 보면... 아이구...

레삭매냐 2017-06-12 16: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 <인턴>에서 라떼 대디가 바람나는 장면
은 정말 충격적이었습니다만.

이반 일리치의 <그림자 노동>은 기회가 된다
면 꼭 한 번 읽어 보고 싶은 저작입니다.
버킷 리스트에 담아 두었네요.

어느당의 헛소리 일삼는 국회의원의 작태에
정말 기가 막힙니다. 독일 국방부 장관은
애가 일곱인가 되는 여성 분이신데, 그렇다
고 독일 국방이 엉망진창이 되었다던가요?

같은 여성의 능력을 폄훼하는 발언에 기가
막힐 노릇입니다.

단발머리 2017-06-13 10:57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레삭매냐님^^

네, 라떼 대디 바람날 때, 그리고 앤이 그걸 모른 척 하면서 가정을 지키려 애쓸 때
맘이 참.... 그랬어요. ㅠㅠ

어느당은 곧 사라질 것 같습니다. 이름만 국민이 들어가면 뭐 하겠어요.
국민의 뜻이 어디있는지도 모르는데요.
무엇보다 헛소리 국회의원의 ‘여자 아닌 남자가...‘라는 워딩 자체가 잘못인 것 같아요.
능력을 가지고 말했다면 (물론 이제 반기문 사무총장까지 전 정부 모든 외교부 장관들이 강경화 후보자의 능력을 보증하고 있지만...) 차라리 괜찮았을텐데요.
여자 아닌 남자라니.... 참.... 어이가 없습니다.


꿈꾸는섬 2017-06-13 08: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멋진 글이에요.
라떼 대디와 강경화~ㅎ
그림자노동, 페미니즘의 도전 찜해둘게요.^^
인턴, 영화 아직 못봤는데ㅎㅎ 궁금하네요.
좋은 아침, 행복한 날 되세요.^^

단발머리 2017-06-13 10:59   좋아요 0 | URL
멋지다고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꾸벅^^
영화 <인턴>은 즐겁게 볼 수 있는 영화예요.
<페미니즘의 도전>은 꼭 도전하시기 바랍니다. ㅎㅎㅎ

오늘도 날이 좋네요. 꿈섬님~~
좋은 하루 되세요^^

블랙겟타 2017-06-13 1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단발머리님 오랜만에 글남겨요.
저는『당신이라는 바람이 내게로 불어왔다』와『그림자 노동』사두기만 하고 아직 못읽었는데 단발머리님이 먼저 읽어보시고 글올려 주셔서 감사해요 ^^ 얼른 읽어봐야겠어요. 단발머리님도 읽고 저도 최근에 읽었던 『아내가뭄』도 이런걸 다루기도 했었죠. 사실 저는 최근, 젠더역할과 경력단절, 여성임금에 대해 관심이 많은데 스웨덴처럼 한국에서 남성들도 의무적으로 육아휴직을 해야된다고 생각하는데 마침 심상정 의원이 약속대로 ‘슈퍼우먼 방지법‘을 발의하셨더군요. 조금씩이라도 현실에 반영되었으면 좋겠어요.

단발머리 2017-06-13 11:09   좋아요 1 | URL
블랙겟타님, 안녕하세요^^ 저는 사실..... <당신이라는 바람이 내게로 불어왔다>는 아직 읽지 못 했어요.
고민정 아나운서와 조기영 시인 사진 넣을까 하다가, 그래도 책 제목이라도 알리고 싶어,
책을 링크했습니다. ㅠㅠ 블랙겟타님이 먼저 읽으시고 리뷰 써 주세요~~

블랙겟타님도 공부하는 중이시군요. 너무 반갑습니다.
저도 젠더역할과 여성임금에 대한 관심이 많은데, 그 중에서도 저는 ‘가사노동‘의 사회적 의미에 대해 관심이 많아요. 지금 제가 사회적 일, 고용관계에 근거한 일을 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구요.
<아내 가뭄>에 나왔던가요. 스웨덴의 경우, 아빠가 육아휴직을 쓰지 않으면 불이익을 받게 될 정도로, 육아휴직 자체가 강제적이라는 걸 읽었던 기억이 나네요. ‘슈퍼우먼 방지법‘을 자세히는 모르지만, 이런 것도 반영되면 좋겠어요.
육아 휴직 써라~~ 하면 아빠들은 특히 사용하기가 어려우니까, 법적으로, 강제적으로 3년 이내에 6개월이상 육아휴직 써라~~~ 이런 식으로요. 아~~ 너무 좋은 세상이다. 완전 불가능한건 아니겠죠? ^^

블랙겟타 2017-06-13 11:36   좋아요 0 | URL
우와 단발머리님도 비슷한 주제에 관심이 많다니까 엄청 반가운데요? ㅎㅎㅎ 네. 저도 동감해요. 아이들이 어릴때부터 엄마와만 관계를 맺어야되는것이 아닌 아빠와도 관계를 맺어야 아이들이 커나갈때 좋은 영향을 받을꺼라 봐서 아빠도 법적으로, 강제적으로 육아휴직을 써야해야된다고 생각해요. ^^

단발머리 2017-06-13 11:57   좋아요 1 | URL
반가워요~~~ 반갑구먼~~~~ 춤이라도 덩실덩실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특히, 육아휴직은 가능한 아이가 어릴 때 쓰는 게 좋은 것 같아요.
물론 모유수유할 때는 엄마가 꼭 필요하지만 (뭐, 이런 당연한 말을 ㅋㅋㅋㅋ)
아이가 조금 커서 이유식 먹을 때만 되어도, 아이가 알거든요.
아, 나한테 이 맛난 걸 주는 사람은, 날 보고 웃어주는 사람은, 날 씻겨주는 사람은...
엄마 말고 다른 사람, 아빠구나...

새로 나온 박카스 광고 보셨어요? <딸의 인사> 편.
출근하는 아빠에게 이쁜 아이가...
아빠, 또 놀러 오세요~~~~ 하더라구요.
하도 아빠 얼굴을 못 보니까. ㅎㅎㅎ 슬프지만 웃긴... 웃기면서 슬픈...

블랙겟타 2017-06-13 11:57   좋아요 0 | URL
네. 맞아요. 어릴때 써야죠 ㅎㅎ
아이들에게도 그렇지만 육아라는게 얼마나 힘든 노동입니까. ㅜㅜ 같이 부담해야죠.
박카스 광고는 아직 못봤는데 어떤 장면일지 상상이 가네요 ㅜ
현실은 남녀 모두 일하는 가구는 늘어나는데 아내 역할은 언제나. 여성들이 하니..

단발머리 2017-06-13 12:03   좋아요 1 | URL
맞아요. 육아 진짜 힘들죠. ㅠㅠ

근데 저는 힘들고 어렵기도 하지만, 기쁜 순간 있잖아요.
아이랑 짠! 눈이 마주치고, 같이 웃고, 서로 살을 비비고, 끌어안고....
그 때가 주는 행복감을 남자들도 누릴 수 있는 ‘기회‘를 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아이를 같이 키우는 건 너무나 당연하지만, 육아 초기 시기에 그런 기쁜 순간, 순간을 알아채는
남자들이, 아빠들이 나중에도 아이와 더 가깝게 지낼 수 있다고 봐요.
기저귀 갈아준 아빠가 자전거도 밀어주고 같이 캐치볼도 하구요. 그런 식으로요... ㅎㅎㅎ

문제는 사회니까.....
남자가 가정에 있는 시간을 늘이고, 아내의 가사 부담을 덜어 주고...
말은 쉬운데... 휴우...

블랙겟타 2017-06-13 12:33   좋아요 0 | URL
네. 육아를 통해 힘든부분도. 기쁨을 느낄부분도 당연히 둘다 남자도 누려야된다고 생각해요.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아직 사회나.. 현실은..받쳐주질 못하네요.ㅜㅜ
 











 







진화심리학이 구애하는 남성과 선택하는 여성이데올로기를 강화하는 데 어떻게 작동하는지 논증하고 있는 이 책은 『하버드 사랑학 수업』의 저자 마리 루티에 의해 쓰여졌다. 저자의 의문은 진화심리학이 자신들이 믿고 있는 특정한 이념을 주장하기 위해 과학을 도구로 사용한다는 것에서 시작한다. 그녀는 신념을 신념대로 주장하라고 말한다. 연구자 자신도 특정 부분에 끌리고 있음을 인정하라고 말한다. ‘과학이라는 커튼 뒤에 숨지 말고 밖으로 나오라고 말한다.

 


 

진화심리학자들이 우리들에게 남성과 여성이 어떻게 다른지 알려주겠다고 말할 때, 그들은 대개 문화적 신화 만들기에 가담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그들이 특정한 사회적 이념을 지지하기 위해 자신들이 하고 있는 이른바 과학을 이용한다는 점이다. 이 이념의 핵심은, 자식을 가능한 많이 남기라는 진화적 명령으로 연애 행동(이른바 짝짓기 행동’)의 모든 면을 설명할 수 있다는 믿음이다. 다시 말해, 연애는 섹스의 문제고, 섹스는 아기를 만드는 문제다. (21)

 



나 역시 젠더와 성에 대해 진화심리학자들이 말하는 방식들 가운데 특정 부분을 선택적으로 보고하고 있음을 잘 알고 있다. 그들처럼 내 동기도 이념적이다. 하지만 차이가 있다면 나는 내가 객관적인 주장을 제시하고 있다고 주장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34)

 



언론의 자유가 있는 나라에서는, 상상할 수 있는 가장 불쾌한 생각조차 박해받지 않고 말할 자유가 있다. 그러니 남성의 공격성과 여성의 조신함을 기본축으로 하는 성 문화를 예찬하고 싶다면 그렇게 하라. 단 이러한 예찬이 과학적으로 정당하다는 말만은 제발 하지 말아 달라. (35)

 

 



인간의 짝짓기는 정자 전달만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 인간의 섹스는 관계를 시작하고 유지하기 위한 것이다. 『진화의 무지개』의 저자 러프가든의 표현을 그대로 빌리자면, 실제로 이루어지는 짝짓기의 횟수는 수태에 필요한 것보다 백배에서 천배쯤 더 많다. (58) 러프가든은 현대 성 선택설이 기만을 진화 원리로 격상시키는 것이 실수라고 주장한다. (59) , 정자 전달을 위해 더 많은 여성과 성관계를 가지려는 남성은 여성을 자신의 침대로 꼬셔올 때까지 계속해서 그녀를 속여야하며, 자신을 유혹하는 남성이 여성 자신과 자신의 후손에게 안식처가 될 수 있음을 확신할 때까지 여성은 계속해서 남성의 진심을 시험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타적이고 희생적인 사랑 이면에 정말 이러한 투쟁이 펼쳐지고 있는가. 그것이 남성과 여성, 여성과 남성 관계의 기초인가. 사랑에 빠진 두 사람은, 키스할 때조차, 서로를 적으로 여기며 탐색을 멈추지 않고 서로의 진심을 가늠하기 위해 애쓰는가. 이것이 진화심리학이 말하고자 하는 것인가. 이런 방식, 이런 형태, 이런 사랑이?

 

 


『도덕적 동물』의 저자 라이트는 현대 미국 사회를 일부다처제 사회로 바꿀 것을 제안하는데, 그것만이 일부일처제로 고통받고 있는 남성들을 구원하며, 남성의 부양이 필요한 가난한 여성들을 도울 수 있는 적합한 방법이라고 주장한다. (63) 기회주의적 섹스를 호시탐탐 노리는 남성들은 여러 명의 아내를 둠으로써, 그 자신의 본능에 충실할 수 있게 될 것이고, 여성들은 잘난 남편을 공유하며 경제적 이득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이다. 정말 그럴까? 라이트가 그리는 이상적인 사회를 떠올려보면, (물론 잘 되지 않겠지만, 억지로라도 떠올려 보면) 돈 많은 일부 남성들은 여러 명의 아내를 얻는 반면, 여성의 성은 강력하게 제한될 것임을 예상할 수 있다. 라이트의 주장은 진화심리학의 이름을 빌리고 있지만, 빅토리아 시대 영국에 존재한 도덕 질서를 복원하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욕망의 진화』의 저자 데이비드 버스의 주장에 대한 논증에서는 버스의 진화심리학 대중서에서의 주장과 학술 논문에서의 결론이 사뭇 다르다는 것을 밝혀내고 있다. 우선 버스는 배우자 자질에 대한 선호도에 나타나는 차이에서 성차이로 설명할 수 있는 부분은 아주 작았음을 시인한다. “일반적으로 배우자 선호성별이 미치는 효과는 문화의 효과에 비해 작았다.” 총 서른한 가지 자질에 대한 선호도를 조사한 결과, 선호도에 나타나는 총 차이 가운데 성차이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은 2.4퍼센트에 불과했다. (99) 버스의 학술 논문에서 배우자감에서 바라는 열여덟 가지 자질에 대한 비교문화적 연구에서 남성과 여성 모두 상호 끌림 사랑’, ‘신뢰성’, ‘정서적 안정과 성숙함그리고 긍정적 성향을 가장 중요한 네 가지로 꼽았을 뿐만 아니라, 남성들과 여성들은 이 자질들을 같은 순서로 선호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버스는 대중서에서는 남녀 사이에 보편적 성차이가 있다고 주장한다. 버스의 책은 여성들은 무엇보다 돈(그리고 지위)를 원하는 반면 남성들은 무엇보다 젊음(그리고 아름다움)을 원한다는 개념에 의존하고 있다. (102) 무엇 때문일까. 왜 진화심리학자들은 자신들의 연구를 특정한 방향으로만 해석하는 것일까. 왜 같은 데이터를 가지고, 정반대의 결론을 도출하는 것일까. 그 이유는 무엇일까. 저자는 이렇게 설명한다.

 

 


진화심리학이라는 분야는 남녀에 대한 문화적 가정들을 토대로 가설을 세우고 이러한 가설의 타당성을 입증하기 위해 증거를 조작하는 데 망설임이 없는 과학인 것이다. (105)

 


 

중학교 때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를 정독했다. 남자들은 혼자 있고 싶을 때 동굴로 들어간다는 설명이 옳다고 굳게 믿었고, 그 연장선장에서 남자와 여자는 다르다고, 다르게 생겨 먹었다는 주장을 의심하지 않았다. 남자는 성적으로 갑자기 확! 돌아(?)버리는 경우가 있는데, 그 때 남자의 그 욕구, 그 성욕이란 건 도대체 어찌할 수 없는 거라는 이야기를 들으며 컸고, 방법은 여자가 조심하는 것 뿐이라는 설명을 마음에 새기며 자랐다.


 


이 세상 모든 남자가 섹스에 목매달지 않는다는 것, 섹스를 좋아하는 여자도 있다는 걸 알게 된 건 비교적 최근이다. 자동차, 좋은 직장, 신용카드가 아니더라도 여자를 유려하게 유혹하는 남자가 있다는 걸 알게 된 것도, 자랑할 만한 것이 없는 평범한 남자에게 미친듯이 돌진하는 어떤 예쁜 여자가 있다는 걸 알게 된 것도, 예쁘지 않은데도 자신만의 특별한 매력으로 남자를 줄 서게 만드는 여자가 있다는 걸 알게 된 것도, 모두 다 최근의 일이다. 아니, 어쩌면 나는 이미 알고 있었을 수도 있다.

 


다만 구애하는 남성과 선택하는 여성의 이데올로기 밖에 있는 남성과 여성을 나도 모르게 예외로인식한 것일 수도 있다. 남성은 성에 적극적이고, 적극적이어야 하며, 생물학적으로 적극적일 수 밖에 없다는 주장. 여성은 성에 소극적이며, 관심이 없고, 자신의 즐거움이 아닌 남성을 위해 섹스한다는 주장. 그것만이 옳다고 여겨지는 사회 분위기, 그런 설명이 과학적이라는 믿음.

 

 


진화심리학이 어떻게 남성의 바람기를 긍정하고, 여성의 성을 억압했는지 보다 더욱 관심이 갔던 주제는 결혼에 대한 부분이다.

 


 

우리는 사랑을 지속성과 동일시하도록 훈련받는다. 어느 정도냐 하면, 우리는 지속되는 관계가 우리를 아무리 비참하게 만들지라도 그것을 성공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반대로 우리는 지속되지 않는 관계는 아무리 즐겁다 해도 아무리 생기 있고, 활력이 넘치고, 자신을 탈바꿈시키는 경험이라 해도 실패라고 생각한다. 사랑을 장기적인 안정과 결부시키는 성향은 우리 마음속에 너무도 깊이 뿌리박혀 있어서 사람들은 감히 그 대안을 진지하게 생각해볼 엄두조차 내지 못한다. (250)

 

 


사랑과 지속성을 꼼꼼하게 연결시키고, 일부일처제의 결혼 제도 속에서 지속되는 관계만이 진짜 사랑이라고, 그것만이 진정한 행복이라는 사회적 공통 믿음에 대해 저자는 그 대안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한다. 결혼 제도는 영혼의 근대적 개념, 즉 사랑 없이 텅 빈 존재를 만들어냈을 뿐이라는 (247) 주장에 동의하고, 행복한 결혼에 반대하지 않지만, 결혼을 행복의 정점으로 이상화하는 것 또한 잘못된 것임을 지적한다. 결혼 외에 사랑하는 관계를 영위하는 더 나은 방법에 대한 고민은 저자의 고민일 뿐만 아니라, 가족 붕괴, 가족 해체, 1인 가정, 저출산의 시대를 사는 우리 모두의 고민일 수도 있겠다.














 

















네 권의 책 『도덕적 동물』, 『욕망의 진화』, 『연애』, 『왜 결혼과 섹스는 충돌할까』의 주장들을 조목조목 비판하면서 논증의 형식으로 이어져 가는 책이기에, 앞의 책을 읽어본 사람이라면 더 쉽게 이해될 수 있을 법하나,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 남성의 성욕, 성욕 자체가 아예 없는 여성의 성욕에 대해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왔던 사람이라면, 그들의 주장은 이미 너무나 자세히 알고 있는 바, 저자의 반박을 따라가는 것이 어렵지는 않다.



 

이 책의 추천사 또한 그 자체로 훌륭한 한 편의 글이라, 읽기의 즐거움을 더해준다. 정희진이다.

 

 


나는 과학이 말하는 성차별이 불편합니다는 과학이나 성차별에 국한되는 책이 아니다. 지식이 만들어지는 앎의 원리를 일깨운다. ‘지적 대화를 위한 깊고 넓은 지식을 원한다면 이 책이 출발점이다. 근래 나온 책 중에서, 가장 중요한 텍스트다

 



                                                                                                     정희진 (<<페미니즘의 도전>>, <<낯선 시선>>의 저자)






 


진화심리학의 여성혐오는 확실히 문제지만, 문제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진화심리학의 더 큰 문제는, 현대 페미니스트들이 낡고 권위적인 관행으로 여기는 젠더 프로파일링을 고집하는 것이다. (138쪽)

진화심리학의 모범 답안은 남성과 여성에 관한 ‘진실’이 현재의 평등주의적인 문화보다 더 뿌리 깊은 영역인 생물학에 있음을 암시한다. (144쪽)

많은 자기계발서 저자들은 여성이 남성보다 섹스에 대한 관심이 (이른바) 덜한 것은 사회적 요인보다는 생물학적 요인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198쪽)

내가 라이트에게 분노하는 점은 그가 억눌린 빅토리아 시대의 신사 숙녀들처럼 행동해야 한다고 우리를 설득하기 위해 ‘과학’을 이용한다는 것이다. (213쪽)

라이언과 제타는 이른바 중년 남성의 위기를 분석하면서 이렇게 묻는다. 다른 때는 그렇게 똑똑하고 자상하고 다정하고 신중한 남성들이, 대체 뭐 때문에 순간의 성적 흥분을 위해 그렇게 많은 것을 걸까? 이어 대해 라이언과 제타는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지극히 평범한 대답을 내놓는다. 바로 생물학적으로 그렇게 생겨 먹은 탓에 남자들은 다양한 성경험 없이 살 수 없다는 것이다. … 두 저자는 남성들의 성욕 과잉에 대해 작가이자 영화감독인 노라 에프런이 한 말을 인용한다. "남자들의 문제는 자신이 좋은 사람이냐 아니냐가 아니다. 그들의 문제는 인생의 어느 순간이 오면 한 여자에게 충실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냥 그런 거다. 그들 잘못이 아니다." … 나는 대부분의 독자보다 바람피우는 남자들 – 그리고 바람피우는 여성들 – 의 심정을 잘 이해한다고 자부하지만, 그렇다고 용서 운운하며 오버하지는 말자. 한 남자가 아내를 두고 바람피우면 그것은 그 남자 잘못이다. (218쪽)

이미 분명하게 밝혔지만, 나는 남성과 여성이 똑같이 성적으로 문란한 경향이 있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나는 그러한 경향을 억제하기 위한 도덕주의적 시도에는 조금도 관심이 없다. 내 요지는 문란함의 젠더화 – 즉 그것이 특별히 남성의 기질이라는 생각 – 가 여성에게, 남성의 상처 주는 성행동을 용서하도록 극단적인 압력을 가한다는 것이다. (233쪽)

내가 진화심리학을 조사하면서 알아낸 특기할 만한 사실은 이 분야가 성 –특히 여성의 성-을 생식과 떨어뜨려 생각하는 것을 두려워한다는 것이다. (241쪽)

젠더 프로파일링은 단지 생기를 앗아가는 것만이 아니라 비윤리적이다. 독자들이 이 책에서 얻어 가기를 바라는 것을 딱 하나만 고른다면, 그것은 젠더 프로파일링이 관계를 다루는 폭력적인 방식임을 아는 것이다. 우선 무엇이 남성과 여성을 다르게 만드는가에 시선을 고정할수록, 우리는 사랑한다고 고백한 상대방을 포함한 타인들의 특이성을 볼 수 없게 된다. (28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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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7-06-08 16: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단발머리님 벌써 이 책 다 읽으셨군요! 저는 또 진작에 사두고 아직..

저 지금 필립 로스 읽고 있는데요(휴먼 스테인), 이거 은근 불편한 시점이 많네요. 프랑스 여자 교수 설명하는 부분에서, 페미니스트에 대해 깔보는(?) 시선 같은 걸 갖고 있는 것 같아요. 그런 부분들이 불편하게 읽혀서 당황스러워하고 있어요. 흐음..


단발머리 2017-06-08 16:26   좋아요 1 | URL
필립 로스에 대해서라면... 최근에, 인터뷰 기사를 본 적이 있거든요. 어디에서였는지는 기억이 안 나는데...
질문하는 사람이 필립 로스에게 페미니스트들이 당신 소설을 불편해한다더라. 이렇게 질문했더니,
필립 로스가, 뭐라고? 나는 개의치 않는다. 이런 식으로 답했던거 같아요. ㅠㅠ

제가 2년 전쯤에 필립 로스를 읽었을 때도 불편한 부분이 있었거든요. 지금 읽으면 또 어떻게 읽힐지.
사실 궁금하면서도.... 아....

이 문제랑 관련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전 김훈을 좋아하지만, 좋아했지만, 한결같이 불편했어요.
읽을 때마다 불편했고, 그래서 <칼의 노래> 는 다시는 읽고 싶지 않다, 이런 생각도 했거든요.
근데, 최근 작품 <공터에서>로 논란이 있었잖아요. 그 때 혼잣말을 했죠.
그래... 내 느낌이 맞았어. 불편해. 불편했어. 왜 여자의 신체만...난 김훈이 불편해.

어찌되었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휴먼스테인> 독서 여행이 부디 즐거운 시간 되시길....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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