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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한 편견
손홍규 지음 / 교유서가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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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그렇다거나 항상 그렇다고는 할 수 없지만, 글을 쓴다는 건 즐거운 일이다. 내게는 그렇다. 아무도 강요하지 않지만, 나 스스로의 ‘강제’가 즐겁다. 어수선했던 요즘 같아서는 글쓰기의 즐거움을 느끼기 어렵지만, 어쩌랴. 알라딘 신간평가단 리뷰작성일을 이틀이나 넘겼다. 기분 같은 걸 따질 때가 아니다. 죄송합니다. 이번 회차 마지막이라 근사하게 잘 쓰려고, 기한도 잘 맞추려고 했는데, 제가 저번주에는 불끈하고, 흥분하고, 후회하고, 생각하느라 리뷰를 작성하지 못했습니다. 부디 너그럽게. 

사람이 가장 행복할 건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할 때다. 자기의 시간을 자신이 원하는대로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이 진정으로 자기 삶의 ‘주인’이다. ‘노예’란 자신의 시간을 자기 마음대로 쓸 수 없는 사람이다. 하지만, 극한경쟁의 현대 자본주의 사회를 살면서 자신이 하고 싶은 일만 하면서 사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많은 사람들은 하기 싫은 일을 하면서 산다. 하기 싫은 일을 하면서 산다. 먹고 살기 위해서 하기 싫은 일도 하면서 산다.

 

 

나는 종종 나를 소설가라고 소개하면, 자기가 원하는 일을 할 수 있으니 행복하겠다고 부러워하는 회사원이나 주부들을 자주 만난다. 그때마다 나는 심히 의심스럽다. ‘당신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하지 않고 있단 말인가? 어떻게 원하는 것을 하지 않을 수 있단 말이지? 당신이 무의식 중에 정말로 원하는 것은, 회사원이나 주부로서 안정된 삶을 살면서 소설가나 화가를 보면 “자기가 원하는 일을 할 수 있으니 행복하겠어요!”라고 말하는 바로 그 삶이 아닐까?’ (『나를 바꾸는 글쓰기 공작소』, 19쪽)

 

사람들이 진심으로 원하는 건, 일상에 불편함이 없을 정도로 돈을 벌 수 있는 일을 하면서 사는 것이다. 많은 경우 자신이 하고 싶은 일보다 자신에게 돈을 줄 수 있는 일을 선택한다. 말로는 “자기가 원하는 일을 하면서 살다니 너무 멋져요. 너무 낭만적이예요. 당신은 행복하겠어요.”고 하지만, 실제로는 ‘돈’으로 인한 경제적인 어려움을 피해 안정적인 수입이 보장되는 삶을 선택한다. 대부분 그렇다. 그것이 나쁘다고만 할 수 없고, 그것 또한 엄연한 우리의 현실이다. 그런데 가끔, 정말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하면서 살아가는 사람을 만날 때가 있다. 멋지고 근사한 일이다. 하지만,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기 위해 불편한 삶까지도 감수하는 그들의 진짜 모습을 엿보게 될 때, 그럴 때, 웬지 짠한 마음이 든다.

고향집에 내려가면 밥을 먹게 되어 좋다. 밥상머리의 주된 이야깃거리는 대처에서 홀로 사는 아들 녀석 즉 가련하기 짝이 없는 가난하고 볼품없는 내가 대체 뭘 먹고 사느냐다. 어느 날 나는 생각 없이 라면 먹지요,라고 했는데 아마도 그런 말을 내뱉은 이유는 내 한심한 신세를 견디는 건 나 자신이라는 사실을 강조해두고 싶어서였는지도 모른다. 어머니는 파나 양파 혹은 계란을 넣어 먹느냐고 물었고 나는 귀찮아서 그냥 라면만 끓여 먹는다고 대답했다. 그때 아버지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이놈아, 라면엔 계란을 넣어야지! 라면만 먹으면 죽어! (<라면엔 계란>, 14쪽)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돈과 명예, 인기를 얻는다는 건 참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자신에게 돈과 명예, 인기가 주어지지 않는다 해도, 자신이 좋아하는 일, 정말 하고 싶은 일을 성실하게 해나가는 사람들 때문에 행복할 때가 있다. 시와 소설, 내가 사랑하는 멋진 문장들, 내가 좋아하는 근사한 글을 써 주는 모든 ‘작가들’을 대표해, 손홍규님에게 고마움을 표한다.

 

고맙습니다.

당신의 산문이, 병원 보호자 침대에 누워, 멈춘 것 같은 시간과 씨름하던 저에게 작은 위로가 되었습니다.

라면을 먹으며 써내려갔을 당신의 문장이, 여러번 제게 웃음을 줬습니다.

고맙습니다, 작가님.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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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5-07-29 08: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저 읽고 싶어졌어요. 헷 :)

단발머리 2015-07-29 08:55   좋아요 2 | URL
좋은 글이 많은데, 제가 이 페이퍼 급조하느라 다 옮기지를 못 했어요.
제가 좋아한 꼭지는 <환대>, <여름밥상>, <등록금>이예요.
산문을 읽었으니, 이제 손홍규의 소설을 읽어야할텐데... 바쁘군요.
제가, 주말에 약속도 있고 해서요. 후훗!

책읽는나무 2015-07-29 08: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라면만 먹음 죽어!!
갑자기 웃음이 빵~~^^
아버지의 애틋함이겠죠?라면에 계란은!!
글이 좋아 읽고 싶어지는 책이네요^^

단발머리 2015-07-29 08:57   좋아요 1 | URL
아버지의 애틋함을 전하는 글이 꽤 많아요.
가난한 농부와 대지의 신 어머니 사이의 외동아들입니다, 작가님이요.
저는 서울에서 나고 자라 이런 글을 읽으면 아주 오래 전 사람처럼 느껴지는데,
작가가 젊더라구요. 75년생이니까요.
저보다는 많으시군요.@@

2015-07-29 11: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7-30 08: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7-29 08: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7-29 09: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7-29 09: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7-29 09: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양철나무꾼 2015-07-29 09: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대학 다니며 공부할때 컵라면을 하도 먹어서 한때는 라면 스프 냄새만 맡아도 오바이트가 쏠리는것 같았거덩요.
라면을 다시 먹기시작한지 얼마 안됐어요.
전 라면을 꼬들꼬들하게 살짝 익혀먹는데,
이 글 보니 게란 넣어 푹 익힌 라면 먹고 싶어요, 추릅~~~~!

단발머리 2015-07-29 09:19   좋아요 0 | URL
저는, 집에 혼자 있게 되면서, 아이들 유치원 보내고 혼자 밥 차려먹기 싫어서 라면을 많이 먹었어요.
요즘엔 조금 자제하고 있어요. 라면이 먹을 땐 즐거운데, 끝이 별로인 것 같아요.

양철나무꾼님은 꼬들꼬들한 라면을 좋아하시는군요.
저도 꼬들꼬들한 라면을 추구하지만, 실제로는 푹 익혀서^^ 먹습니다.

아무개 2015-07-29 09:33   좋아요 0 | URL
저는 늘 해장용으로 라면을 먹기때문에
푸욱~익혀서 계란 넣고 파도 넣고 후루윽 쫩쫩~ ^^

단발머리 2015-07-29 09:48   좋아요 0 | URL
그러니까 계란을 넣어야하네요. 파도 슝슝 넣고... 아, 라면 먹고 싶당/신라면/진라면/비빔면 중에서 ㅋㅎ

지금행복하자 2015-07-29 09: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제목이 참 좋아요. 최근 읽은 책중 추천해달라기에 이 책 추천했어요. 내용도 좋고 제목은 더 좋다고~ 편견이 없을수 없으니 기왕 좀 다정해지자고요~~ ㅇᆞ

단발머리 2015-07-30 08:57   좋아요 0 | URL
다정해지기가 생각보다 참 어려워요.
제 모토가 다정한 엄마, 웃기는 엄마거든요.
실패할 때가 많습니다. @@

저도 이 책 많이 추천하게 될 것 같아요. 오랫동안 책을 안 읽던 사람들은 아무래도 소설보다는 에세이가 다가가기 쉽더라구요. 많이 추천해서, 작가님이 라면말고 다른 것도 드실 수 있도록...

에이바 2015-07-29 10: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 왜 제목을 보니 불독맨션의 ˝나성에 가면˝이 떠오르죠? 나성에 가면 편지를 띄우세요♪ 전 계란 넣으면 국물이 진해져서 아주 가끔만 먹어요. 국물라면은 잘 먹지 않는게 전 불닭볶음면에 빠져 있거든요ㅎㅎ 그래도 라면에 계란 넣으라는 아버지의 사랑이 느껴져서 좋아요 뭉클하고..

단발머리 2015-07-30 08:59   좋아요 0 | URL
전 불닭볶음면이 매워서요. 한 번 먹어보고 완전 아웃 당했는데, 이 지긋지긋한 더위가 다 지나가면, 꼭 다시 한 번 도전해보고 싶습니다. 먹고 나서 제가 리뷰를 올릴께요. ㅎㅎㅎ

소리치는 아버지 사랑이 완전 뭉클하죠. 아... 부모님 마음이란...

AgalmA 2015-07-29 12: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본문 언급처럼...100%는 아닐 지라도 다들 가능한 선택지에서 자신이 원했고 선택한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해요. (여기서 자본주의와 환경 등등은 살짝 넘어갑니다) 가지 않은 길에 대한 열망이 ˝지금˝을 늘 불만족스럽게 생각하게 만든다 싶습니다.
100% 완벽한 소녀(하루키 단편 제목 원용)를 만나 사랑하면 좋겠지만 그건 정말 천운^-^;

단발머리 2015-07-30 09:02   좋아요 0 | URL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산다는게 쉽지 않으니까요.
원하는 삶에 대한 동경이란 건 죽을 때까지 계속될테구요.
후회가 더 많지 않도록 오늘 하루만이라도, 일정 부분, 하루치라도 만족하고 살았음 해요.
전, 그래요~~ ㅎㅎ

오후즈음 2015-07-29 23: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작가의 전작들도 읽으면서 느낀것은 정말...작가가 정말 착한 심성을 가졌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그래서 글도 이렇게 읽고 나면 흐믓하게 쓰는건가...뭐 그런 생각했어요 :) 저도 평가단이라서 겟한 책이었는데 다 읽고 나서 이 책이 나에게 와서 참 좋았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

단발머리 2015-07-30 09:04   좋아요 0 | URL
오후즈음님도 그러셨군요. 항상 좋았겠지만, 이번에 신간평가단 책들 정말 다 마음에 들었어요.
더 많이 읽어야겠다, 더 따뜻한 마음으로 살아야겠다, 그런 생각을 많이 했어요.

글만 보고 사람을 다 알 수 있는건 아닐테지만, 그러게요.
글을 읽다보면 글을 쓴 사람이 막, 느껴지니까요. 신기한 일이예요.

오늘도 꿀꿀한 날씨네요. 그래두 즐거운 하루 되시기를... *^^*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
리베카 솔닛 지음, 김명남 옮김 / 창비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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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http://anateresafernandez.com/)

 

 

 

 

1. 가르치려는 남자들 vs 받아들이는 여자들

man + explain의 합성어 mansplain은 이 단어의 탄생과는 관계가 없다고 말하는 저자의 설명과는 상관없이 이 책이 발표된 직후에 만들어져 많은 사람들에게 사용되고 있으며 그녀의 독특하면서도 일반적인 일화 때문에 그녀를 이 단어의 창조자로 아는 사람도 많다고 한다. 그 해에 주목할 만한 책으로 꼽히는 의미 있고 훌륭한 책의 저자를 바로 눈 앞에 두고도 그 책을 읽지도 않았으면서도 침을 튀기며 열을 올리며 그 훌륭한 책에 대해 말하는 어떤 돈 많은 남자에 대한 이야기와 긴밀히 맞닿아 있는 채로 말이다.

어떤 남자들은 남자들이 자꾸 여자를 가르치려 드는 것은 사실 젠더화된 현상으로 볼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 대개 여자들은 지적했다. 여자들이 제 입으로 직접 겪는다고 말한 경험을 기각할 권리가 자신에게 있다고 우긴다는 점에서, 그 남자들이야말로 내가 그들이 종종 그런다고 말한 바로 그 방식으로 여자들을 가르치려 드는 셈이라고. (27쪽)

 

자신이 직접 겪은 일에 대해서도 그렇지 않다고, 네 생각이 틀렸다고, 네가 오해한 거라고 말하는 남자들을 대면하는 일이 즐겁고 유쾌한 일이 아님은 분명하다. 그 이야기만 가지고도 한 권의 책이 나옴직하며, 이 책은 그에 대한 답이다.

하지만, 그것보다 내가 더 주목하는 건 이런 부분이다.

즉, 다른 여성들에 비해서 스스로 생각하고 발언할 권리를 훨씬 많이 인정받아온 사람(17쪽)인 저자가, 이미 다양한 주제로 예닐곱권의 책을 저술해 공히 작가로서의 이력을 소유하고 있는 저자가, 공교롭게도 같은 주제에 관한 다른 책이 동시에 출간되었다는 그 남자의 말을 믿는다는 것, 내가 그걸 놓쳤을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을 기꺼이 받아들인다는 것(13쪽) 말이다.

남자들은 네가 모르는 게 있다고 말하며, 여자들은 자신들이 모르고 있다고 믿는 것. 남자들은 여자들이 어떤 분야에서든 자신보다 더 구체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고 믿으며, 여자들 또한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는 것. 남자들은 가르치려 들고, 여자들은 남자들의 가르침을 받아들인다는 것, 말이다.

 

 

2. 폭력, 통제의 욕망

부연하자면, 총에 맞아 죽은 여성들의 3분의 2 가까이는 현 파트너나 전 파트너에게 살해되었다. (49쪽)

이 나라에서는 9초마다 한번씩 여자가 구타당한다. 확실히 짚어두는데, 9분이 아니라 9초다. 배우자의 폭행은 미국 여성의 부상원인 중 첫 번째다. (49쪽)

 

여성에 대한 폭력, 광범위하고 뿌리 깊고 끔찍하지만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여성에 대한 폭력은 타인, 즉 여성에 대한 ‘통제’의 욕망(45쪽)에 근거하는데, 자신의 욕망이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 이들의 분노는 ‘통제 불가능한 격렬한 분노’가 되어 자신의 통제를 벗어난 사람을, 연인을, 파트너를, 아내를 살인하는 데까지 이른다. 비극은 내가 너를 통제하겠다는 생각, 너는 나의 지배 아래 있어야한다는 생각, 그것을 거부했을 때는 준엄한 심판을 내리겠다는 생각, 잘못된 이런 작은 생각에서 시작된다. 잘못된 작은 생각은 예상치 못한 환경에서 분노를 일으키며, 분노 유발자인 여성에게는 ‘응징’이 내려진다. 모든 성폭력이 이런 작은 생각에서 시작된다.

 

 

3. 고위직 남성의 성범죄, 도미니크 스트로스깐 IMF 전 총재의 경우

전지구적으로 대대적인 빈곤과 경제적 불공정을 낳은 IMF를 이끄는 특출하게 강력한 그 우두머리는 현재 뉴욕 어느 고급 호텔의 스위트룸에서 아프리카 출신 이민자 여직원을 성폭행한 혐의를 받고 있다. (68쪽)

 

한국에도 미국의 고급 호텔을 배경으로 하는 이에 버금가는 일화가 있어 원치 않게도 사건의 개요 및 전개상황이 매우 쉽게 이해된다. 

 

[5월 7일-역사 속 오늘] 윤창중 성추행, 끝나지 않은 진실게임

시사위크, 권정두 기자 2014.05.07

윤 전 대변인은 “30분가량의 술자리를 마친 뒤 숙소로 바로 잠들었다. 다음날 아침 노크 소리가 들려 긴급 브리핑 자료를 가져다주는 줄 알고 황급히 문을 열었더니 A씨가 있었다. 그래서 ‘여기 왜왔어, 빨리 가’라고 말한 뒤 문을 닫았다”고 해명했다. A씨가 자신의 방으로 온 이유에 대해서는 전날 모닝콜을 부탁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반면 현지 인터넷 커뮤니티를 통해 전해진 내용은 윤 전 대변인이 8일 새벽 A씨에게 수차례 전화를 걸었고, 새벽 6시쯤 A씨가 뒤늦게 전화를 받자 화를 내며 자신의 방으로 오라고 지시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윤 전 대변인이 알몸 상태로 A씨를 맞았다는 것이 2차 성추행의 내용이었다.

기사 원문 (http://www.sisaweek.com/news/articleView.html?idxno=22827)

 

세상에서 가장 유력한 남자중의 하나였던 고위직 남성의 범죄, 정확히는 고위직 남성의 성범죄에 대해 항거할 때, 합의를 거부할 때, 피해자는 자신의 인격을 증명해야만 한다. 피해자가 오해한 것이라고, 잘못 생각한 것이라고 말하는 가해자와 싸워야할 뿐만 아니라, 피해자를 매춘부로 중상하는 언론과도 싸워야 한다.(85쪽)

아프리카 출신의 이민자 여성이 배불뚝이 60대 노인의 알몸을 보자마자 성적 기운이 충만해져 ‘합의에 의한 성관계’를 가졌다는 가해자 측의 이야기(86쪽)는 상식적으로는 이해하기 어렵다. 하지만, 고위직 남성의 성범죄에 대항할 때는 이 정도가 당연하다. 고발자, 즉 피해자에 대한 인신 공격과 언론의 무자비한 태도에 맞서기 위해서, 피해자는 자신이 받은 상처와 고통에 직면할 시간조차 없다. 그녀는 일어서서 맞서야만 한다. 세상은 가해자, 유력한 남자 편이다.

 

 

4. 빨래-널기 = 말소-되기

 

 

 

여기 아나 떼레사 페르난데스 (Ana Teresa Fernandez)의 그림에서, 여자는 존재하는 동시에 말소되었다. (102쪽)

 

존재하는 동시에 말소되는 여자라는 존재는 수천년을 이어온 족보에 등장하지 않는다. 자매들, 고모들, 어머니들, 할머니들, 증조할머니들, 방대한 인구가 종이에서, 그리고 역사에서 지워진다(103쪽). 책 속의 예는 인도의 것인데, 한국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할아버지-아버지-아들’로 이어지는 족보만 존재한다. 아무도 여자의 이름이 족보에 올라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여성의 비존재는 여러 가지 형태로 나타난다.

베일은 일종의 프라이버시의 벽이었고, 여자가 한 남자의 소유라는 표지였으며, 휴대 가능한 감금용 건축물이었다. 휴대성이 그보다 떨어지는 건축물은 여자들을 집 안에, 집안 일과 양육으로 이뤄진 가정의 영역에 가두었다. 그럼으로써 공적인 삶을 갖지 못하게 했고, 자유롭게 돌아다니지 못하게 했다. (108쪽)

 

 

 

 

 

 

남자의 소유로서 인식되는 여자가 ‘발언하는 것’,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그것 자체로 이미 거대한 도전이다. 여자는 침묵을 강요당하며, 침묵의 요구를 거절했을 때, 연인이나 남편, 옛 배우자에게 살해당한다(112쪽).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모든 여자들은 지금도 그들을 사라지게 하려는 세력들과 싸우고 있는 셈이다. 여자의 이야기를 자기가 대신 말하려는 세력들과, 여자를 이야기와 족보와 인권헌장과 법률에 기록하지 않으려는 세력들과. 자신의 이야기를 단어로든 이미지로든 스스로 말할 수 있는 능력은 그 자체로 이미 승리다. 그 자체로 이미 반란이다. (112쪽)

 

 

 

5. 아, 공부

존경하는 필립 로스의 신작 『네메시스』에 푹 빠지지 못한데는, ‘페미니즘’의 영향이 컸다. 수많은 권장 도서들 중, 나름대로 뽑은 리스트에 따라 책을 읽고 있는데, 『행복한 페미니즘』은 다 읽었지만 어떻게 리뷰를 써야할지 모르겠고, 『페미니즘, 왼쪽 날개를 펴다』는 2번째 논문에서 좌절, 잠시 휴지기이다. 공부하고 계시는 애정님들의 글도 읽어야 하는데, 금방 금방 쉽게 읽을 수 있는 글이 아니라, 두 번 이상 읽는 경우도 많고, 또 심각하게는 아니더라도 진지하게 생각도 해봐야 한다. 책 읽는 속도가 달팽이, 거북이와 경쟁하는 수준이라, 이 모든 게 버겁다.

아무도 강제하지 않은 이 일을, ‘페미니즘’을 대해 알고 싶다,는 작은 생각 하나로, 읽고 싶은 재미있는 책들을 뒤로 하고, 난생 처음 보는 책들과 씨름하며 낑낑대고 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내가, 결혼이라는 제도 속에 안착해서, 그 안에서 일을 하지 않고, 사회적 고용 관계에 있지 않으면서도 삶을 보장받으면서 살고 있는 내가 (그래요, 권인숙씨, 저 뒤끝 있어요. 그래도 파란 지붕 아래 어떤 분보다는 한결 나으니, 대충 이쯤에서 넘어가세요), 페미니즘을 공부한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잘 모르겠다.

페미니즘의 역사를 꿰찬다거나 특별한 깨달음을 얻겠다는 야심찬 목표가 있는 것도 아니다. 공부하겠다,고 줄 섰지만(나는 지금 후회하고 있나@@) 생각만큼 잘 안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스물스물 올라오고 있다. 한 가지는 확실한데, 여하튼 나는 ‘읽겠다’는 거다.

잘 정리하지 못할 수도 있고,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고, 내가 이해한 바를 정연하게 표현하지 못할 수도 있겠지만, 일단 해보기로 한다.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

 

 

반복합니다. 책을 읽고 텍스트를 읽는다는 것은 그런 정도의 일입니다. 자신의 무의식을 쥐어뜯는 일입니다. 자신의 꿈도 마음도 신체도, 자신이 살고 있는 세계 일체를, 지금 여기에 있는 하얗게 빛나는 종이에 비치는 글자의 검은 줄에 내던지는 일입니다. (87쪽)

 

사사키 이타루가 말한 바, 이것은 나의 무의식을 쥐어뜯는 일이고, 하얗게 빛나는 종이에 비치는 글자의 검은 줄에 나를 내던지는 일이다. 지금까지 내가 겪어왔던 모든 불평등에 항거하는 일이며, 아직도 폭력과 협박, 살해의 위협 속에 살아가는 아시아, 아프리카, 아메리카 혹은 한국의 어떤 여인의 침묵에 귀기울이는 것이다.

읽는다.

이렇게 어설프게 시작하지만, 시작은 반이고, 반이면 많이 왔다.

시작한다. 그리고.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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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5-07-25 2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트로스깐 사건을 보면서 저도 윤 모 씨 사건이 생각났어요. 이 사건도 정말 냄비 끊듯이 미디어에서 떠들다가 어느새 잊혔잖아요. 고위직 남성 성범죄의 심각성을 논의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어야 하는데 그냥 새누리당을 공격하기 쉬운 야당의 이슈로 끝나고 말았어요.

2015-07-25 20:46   좋아요 1 | URL
전 ˝국가적망신˝ 운운하는 언론도 너무 싫었어요. 마치 국가적 망신이라도 당하지 않았으면 그냥 넘어갈 수 있었던 일이라는 뉘앙스라. 고위 공직자의 성 인식이 이정도 수준이라는 것부터 논의하는게 아니라 `다 된 밥에 재뿌렸다`는 식의 보도들이었잖아요. 그러니까 일부 종편에서 그당시에 피해여성 평소 행실 어쩌구하는 소리가 나올 수 있었을거구요.

단발머리 2015-07-25 22:02   좋아요 0 | URL
아, cyrus님도 그러셨군요. 제가 요즘 기사 살펴보다가 알게 됐는데요. 유야무야된 것 같더라구요.
일단 미국쪽에서도 강하게 밀어붙이는게 외교적으로 부담스럽구요.
무죄라고 주장하는 윤 모씨가 억울함을 해소하려면 미국에 가야하는데, 갈 생각은 전혀 없는것 같구요.

그냥, 이렇게 넘어가는 것 같아요. 대통령을 수행하는 고위직 남성이니까요.

단발머리 2015-07-25 22:29   좋아요 0 | URL
롸님, 안녕하세요. 주제는 무척이나 안녕하지 못하지만요.^^

`국가적 망신` 말하는 사람들이 피해여성의 행실 어쩌구 저쩌구 하는 것 같아요. 그것마저도 스트로스깐 사건하고 유사하네요. 그게 고위직 남성의 성범죄를 은폐하는 수순인 것 같아요.
부인하고, 언론 플레이하고, 피해여성을 깍아내리고.

이 책에서, 저자가 이런 말을 했는데요.
여기는 미국이다. 경찰이 `성폭행을 당했다`는 그 여성의 말을 믿었다는 사실이 자랑스럽다.
대략 이런 이야기였던 것 같아요, 윤씨 사건도 마찬가지인것 같아요.
그 여성이 한국 여성이었다면 이 문제는 보도되지도 못했을 것 같아요.
언론에 말했어도 덮었을 것이고, 보도되었다면 바로 피해자에 대한 `마녀사냥`으로 몰아갔을 가능성도 충분하구요.

피해여성이 미국 시민권자였다는 게, 이 사건의 핵심인거죠.
그녀는 한국계이기는 하지만, 미국인이고, 그래서 미국 국민에 대한 성추행,성폭행 사건으로 인지된거죠.

참... 한숨 나오는 세상입니다.

에이바 2015-07-26 11: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지금 페미니즘 서적 여러 권 읽는 중인데 리뷰 쓰기가 어려워요. 전부 연결되어 있는 주제라 어떤 건 여기, 어떤 건 저기 이렇게 쓰는게요. 일단 메모들 하며 독서중인데~ 아 어렵네요ㅎㅎ 이 책 좋더라고요. 칼럼을 모아둔 거라고 생각 못했는데 그래서 다 좋았습니다. 열심히 공부하고 생각하면 돼죠. 스테퍼니 스털처럼요ㅋㅋ 진정한 빨래하는 페미니즘! 권인숙 씨 발언이 어떤 시각에서 나온 건 줄은 알겠지만 마음쓰지 마세요. 연대! la solidarite! 연대가 중요합니다.^^

단발머리 2015-07-26 17:32   좋아요 0 | URL
에이바님 페미니즘 리뷰, 기다리고 있습니다. 메모를 하면서 독서중이시라니 더욱 기대되네요.
제 리뷰가 좀 부족합니다. 톡톡 튀는 작가의 문체를 잘 전달하지 못한 것 같아요.
방금 읽었지만, 바로 또 읽고 싶네요.

그리고, 감사해요.
제가 권인숙씨 이야기를 여러번 하면서요, 저도 누가 나 좀 말려줬으면~~ 했거든요.
저, 말려주셔서 감사해요. ㅎㅎㅎ

연대해야죠. 아무렴요. 그래야죠. 연대가 중요합니다. ^^

아무개 2015-07-29 09: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단발머리님 글이 왜 즐찾 브리핑에 안 떳을까요 ㅠ..ㅠ

저는 페미니즘 공부는 아마도 평생을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정희진 씨의 책을 읽고 들더라구요.
여성학 하나만을 공부해서는 안되는 학문.
군사학, 남성학, 정치학, 생태학, 의학, 심리학 등등 연계된 학문이 너무 많아서
파도파도 끝이 안보일것 같더라구요.
그래서 어차피 끝도 없을테니
끝까지 할 생각일랑 접고
가는데 까지 가보자...뭐 이러고 있습니다.

함께 걸어가 주실꺼죠?
웃으면서 즐겁게!^^

단발머리 2015-07-29 09:14   좋아요 0 | URL
글게요, 왜 안 떴을까요? ㅋㅎㅎ

처음에 이적 엄마가 `여성학`을 전공한 학자다 듣고, 참.... 여성학이 뭐냐,하고 무식한 소리했었는데, 읽을 게 끝도 없는 것 같아요. 위의 말씀하신 연계된 학문을 다 섭렵하지 않더라도, 대충은 읽어야할텐데.
저도 뭐, 평생의 공부거리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아무개님이랑 함께 걸어는 가겠으나,
저는... 웃으면서는 안 갈꺼에요.
짜증을 내면서, 투덜거리면서... 그러면서 가요. 힘은 내서요*^^*
 
집 나간 책 - 오염된 세상에 맞서는 독서 생존기
서민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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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뱃속까지 보여주는 화끈한 솔직함

서평집은 인지도로 낸다는 점을 고려하면, 책을 내도 괜찮은 수준에 이른 것이다. 물론 우리나라에는 나보다 인지도가 높은 분이 숱하게 있다. 하지만 그분들은 너무 바빠서 책을 읽을 시간이 부족하고, 어쩌다 읽어도 서평 같은 걸 잘 쓰지 않는다는 치명적 단점이 있다. 적당히 인지도도 있으면서 서평도 봐줄 만큼은 써야 한다는 기준을 충족하는 사람이 몇 없는 탓에 내가 서평집을 내게 되었다. 안타까운 점은 2014년 이후로 방송 출연을 거의 못하고 있어 인지도가 큰 폭으로 떨어지고 있다는 것인데, 그게 바로 인물과사상사가 서둘러 서평집을 만들게 된 이유였다. (8쪽)

 

이렇게 ‘생각’할 수는 있겠다. 서평을 쓰는 이유가 책 한 권을 다 읽었다고 자랑하기 위해서라거나, 금전적 이익 때문(5쪽)이라는 ‘생각’ 말이다. 하지만, 그 사실을 실제로 말하기는 쉽지 않다. 다른 사람에게 멋진 모습, 근사한 모습으로 보여지고 싶은 것은 인간의 근본적인 욕망이다. 그런데, 그 욕망을 인정하고, 자신 안에 그런 모습이 있다는 걸 인정하고, 그것을 공개적으로 ‘말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쉽지 않은 일을, 골몰히 생각해보면 나름 어려운 이 일을, 저자는 참 쉽게 한다. 솔직하게 말한다. 이런 이유로 서평집을 냈노라고 말한다. 그의 이런 솔직함은 저자의 대한 아무런 정보 없이 이 책을 읽은 사람들에게는 ‘급호감’을, 이미 그의 솔직함을 잘 알고 있는 이들에게는 흐뭇한 ‘미소’를 짓게 한다. 그의 솔직함이 독자를 무장해제 시킴과 동시에 저자와 독자의 암묵적 거리를 단숨에 단축시킨다.

 

2. 이런 생각 또 없습니다, 독특한 시선

      

 

 

 

『유령퇴장』은 작년에 내가 읽었던 책 중 Best 3에 속하는 책이고, 필립 로스의 작품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작품이다. ‘70대의 노인이 자신보다 40살이 어린 30대의 유부녀에게 끌린다는 이야기‘ 너머의 다채로운 빅재미를 엿볼 수 있다. 물론, 그 이야기가 가장 매력적이다.

내가 매료된 부분은 주커먼과 에이미의 가상대화인데, 에이미의 어린 시절을 묻는 이야기, 그녀가 읽었던 책 이야기, 주커먼이 권하는 책이야기가 길게 이어진다. 관심 가는 여자, 유혹하고 싶은 여자에게 독서 이력을 묻는 남자라니. 이런 남자야말로 진짜 ‘뇌색남’이다.

저자의 독특한 시선은 이 지점에서 발휘되는데, 조지 W. 부시 George W. Bush가 재선에 성공한 2004년의 상황을 박근혜 대통령의 당선과 연결지어 설명한 것이다. 이 부분을 읽을 때는, 나도 그 생각을 했었다. (은근슬쩍 묻어가기^^) 박근혜 대통령의 당선이 ‘확실’하다는, 불길한 방송 사고부터 시작해서, 다음날, 그 다음날 아침까지도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박근혜’라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고, 믿을 수가 없었다. 완벽한 절망. 그 상황을 저자는 이렇게 풀어 쓴다.

발기도 안 되는 노인이 왜 여자에게 집적대는 걸까? 어쩌면 이 장면은 상징적인 비유일지도 모르겠다. 발기불능은 영영 집권이 불가능해진 우리나라 좌파를, 노인이 집적대는 유부녀는 이미 새누리당과 결혼한 우리나라 유권자를 상징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여전히 집적대는 노인에게 유부녀는 그의 발기불능을 상기해준다. ... 책에서 노인은 결국 뉴욕을 떠난 원래 있던 산속으로 돌아가려고 결심하는데, 이는 저자가 한국 좌파들에게 “정치판을 떠나라”라는 메시지를 던지는 것 같다. (27쪽)

 

부시가 당선되었을 때 에이미의 절망과 박근혜가 당선되었을 때 2030세대들의 절망은 나도 연결해서 생각할 수 있었지만, 발기불능 = 한국좌파, 유부녀 = 새누리당과 결혼한 우리나라 유권자, 의 해석은 정말 창의적이다.

저자만의 독특한 해석, 특별한 독법은 『유령퇴장』을 식탁 위에 두고 짬짬히 읽어가는 내게 이 책의 재독, 삼독을 간곡히 권유한다.

 

3. 유쾌상쾌 거침없는 매서운 비판 정신

 

 

아래 인용은 존 퀘이조의 『콜레라는 어떻게 문명을 구했나』에 대한 글이다.

사후의 일이기는 하지만 스노가 바라던 안전한 물 공급은 결국 이루어졌고, 이제 웬만한 나라에서는 콜레라 환자를 찾아보기 힘들다. 국정원이 바라는 것처럼 유우성이 결국 간첩이라고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국정원에도 상하수도 시설을 만들어 국정원을 망치는 더러운 물을 차단해야 한다는 것. 하지만 결국 스노의 의견을 받아들인 빅토리아 여왕과 달리 우리나라 대통령은 국정원이 깨끗해지는 걸 바라지 않는 것 같아 걱정이다. 괜히 간첩으로 몰리지 않게 우리가 정신 차리고 살아야 하는 이유다. (87쪽)

 

정부의 잘못에 대해 불평하는 사람들은 많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차원’에서 불만의 토로이다. 누구라도 정색을 하고 물어볼라치면, 은근슬쩍 꼬리 내리기 십상이다. 하지만 저자는 정부에 대한 비판, 정책에 대한 비판, 대통령에 대한 비판을 ‘글’로 풀어내고 있다. 일전에 고소를 당했을 때, 변호사에게 전화를 걸어 조언을 구하고, 산더미 같은 자료를 준비하셨던 지혜로운 아내를 두셨으니 망정이지(42쪽), 읽을 때마다 속 시원하고 통쾌한 건 사실이지만, 조금 걱정스럽기도 하다. 고소장 한 장에 벌벌 떨면서 “앞으로 글을 좀 부드럽게 써야겠다”라고 자체 검열하는 자신을 돌아보면서도(45쪽), 날선 비판을 멈추지 않는 그의 용기가 새삼 존경스럽다.

 

        

 

 

 

저번주 토요일에는 교보문고 명강의 BIG 10에 다녀왔다. 마태우스님의 책은 무척 재미있지만, 강의는 5배 정도 더 재미있었다. 초등학생들이 적지 않게 참석했는데, 이 아이들은 마태우스님의 책을 다 읽었는지, 퀴즈란 퀴즈는 죄다 아이들이 맞혀 좋은 책선물을 많이 받아갔다. 기술이 부족해 마태우스님의 멋진 모습을 잘 포착하지 못 해 아쉬울 뿐이다. 사인을 받을 때, ‘단발머리’라고 써달라고 부탁드렸더니, 그 바쁜 와중에도 단발머리는 아니시잖아요, 라며 깨알개그를 선사하셨다. 주최측에서 준비한 네팔 어린이 돕기 팔찌는 아롱이 선물로 재탄생했다.

간만에 즐거운 외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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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개 2015-06-29 13: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앗 저도 저 팔찌 받았어요!
끝번호가 0,3,6인가 맞죠? ㅎㅎㅎ

마태우스님 싸인 바뀌셨네요.
그전엔 멋진 말그림이였는뎅

그나저나 우리는 왜 일면식도 없으면서
두리번 거리면
알라디너를 알아볼수 있을꺼라 생각했던 것일까요. ㅋㅋㅋㅋㅋ

단발머리 2015-06-29 19:50   좋아요 1 | URL
앗!! 아무개님도요? 그럼 우리 팔찌 받는 줄 앞에서 마주쳤을 수도 있겠군요. ㅋㅎ
저는 3으로 끝났어요.

아무래도 말은 그리려면 시간이 좀... 그래서 바꾸신것 아닐까요?

그게 저의 가장 큰 의문이죠. 저는 왜!!! 알라디너들을 만나면 단박에 알아볼거라고 생각했을까요?
이마에 `알라딘`이라고 써 있지도 않는데 말이죠.
저도 그게 의문입니다.
다음에는 ˝알라딘˝이라고 써서 등에 붙이고 나갈까봐요. 진짜로요~~~~~

AgalmA 2015-06-29 13: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필립 로스 <유령퇴장>이랑 존 쿳시 <추락>이랑 비교해 읽어보고 싶어요...늘 그랬는데 시간이 없는 걸까요. 제 맘이 거기까지 다다르지 못한 걸까요ㅎ

서버가 해외면 못 잡는다고 푸념하듯이 대통령, 나라 질타를 맘껏 하려면 해외에서;; 쿨럭)) 젠장)))

˝단발머리는 아니시잖아요˝ ㅋㅋ 마태우스님 유해진 닮았어요. 실례는 아니겠죵ㅎ;;
하트머리ㅋㅋ 보슬비님 유머 실력도 상당한데!
그래! 유머를 서재에서 배우는 거야!!ㅎㅎ

단발머리 2015-06-29 19:55   좋아요 1 | URL
아하... 저는 그래서 또 존 쿳시의 <추락> 검색 들어갑니다.
Agalma님 많이 바쁘시고 시간도 없으시니까, 한가한 제가 비교하면서 읽어볼께요.^^

마태우스님을 실제로 본 사람으로서 말씀드릴께요.
유해진보다는 마태우스님이 더 멋지구요.

유머를 서재에서 배우시고, 갈고 닦으세요~~ 보슬비님 같은 고수분들이 아주 많구요.
참고로 저는 Agalma님 유머 스타일도 좋아합니다^^

icaru 2015-06-29 16: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캬오~ 단발머리님이시닷,, 하트 치워주세요 미투요!

단발머리 2015-06-29 19:56   좋아요 0 | URL
우하핫....
마태우스님을 봐주시구요.
저기 줄 서서 기다리면서 다른 사람들 보면서 느낀 건데요. 마태우스님이 머리가 작으세요.
그래서 사진 옆의 사람이 대두처럼 나옵니다.
김수현 옆 일반인처럼요.
제 사진도 그런 식으로 나왔구요. 공개 못 하는 진짜 이유는....

제가 너무 명랑하게 나와서요.
저, 명랑한 여자로 나왔어요. 흐흑...................................................

다락방 2015-06-29 17: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오- 단발머리님의 저 하트 안에 숨겨진 초미모의 포쓰가 느껴져요!! >.<

단발머리 2015-06-29 19:58   좋아요 1 | URL
진짜, 다락방님도.... 히히힛...
다락방님, 사랑합니다.

다락방님이 완전 초미모시죠. 저는 아닙니다.

저는 그런 삶을 살아오지 않았습니다!!!

마태우스 2015-07-04 04: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단발머리님 이런 멋진 서평 써주셔서 감사드립니다. ㅠㅠ 제 강의도 들으시고, 흑, 뭐라고 감사의 마음을 전해야 할지, 앞으로 나오는 책은 꼬박꼬박 보내드릴게요! 글구 저도 페미니즘 공부 한창 했었는데, 그때 읽은 책 중 하나가 행복한 페미니즘이었지요. 저도 님 서재 가끔 들러서 인사 올릴게요.

단발머리 2015-07-04 22:48   좋아요 0 | URL
마태우스님~ 저자 직접 방문 완전 감사드립니다. 저, 가족들한테 막 자랑하고 이 화면 캡쳐했어요~ 마태우스님의 역작과 야심작들은 제가 모두 차곡차곡 사 모을테니 걱정마시구요~ 앞으로도 재미있고 유익하며 감동까지 주는 좋은 책들 많이 쓰시기를 바래요~~~ 마태우스님과 아리따우신 사모님, 그리고 귀여운 기생충들을 응원합니다!!!
 
[나의 사적인 도시]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나의 사적인 도시 - 뉴욕 걸어본다 3
박상미 지음 / 난다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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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평가단을 하면서 완전 좋은 점은 내가 신청한 책이 선정되어 내게로 오는 일이고, 나름 좋은 일은 내가 신청하지 않은 책을 읽으면서 새로운 저자, 새로운 책을 알게 되는 것이다.

박상미 에세이, 『나의 사적인 도시』는 나름의 즐거움을 준 책이다.

미술에 대해서는 모르는 내가, 더더욱 현대 미술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는 내가 이 책을 재밌게 술술 읽어낼 수는 없었지만, 예술을 다루는 사람의 진솔한 속이야기를 듣는 재미는 솔솔했다.

여기 그려진 뉴욕은 나만의 특별한 뉴욕이다. 그 안에서 내가 본 것, 내가 느낀 것, 내가 생각한 것은 모두 뉴욕이란 도시의 일부이고, 나만의 사적인 뉴욕이다. 사적이라 해도 부끄러워하지 않기로 했다. 어차피 모든 일은 지독히 사적인 것에서 비롯하니까. (서문)

그녀만의 사적인 이야기, 뉴욕에 대한 사적인 이야기가 잔잔하게 펼쳐진다. 미술을 공부하기에 여러 미술작품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내게는 생소한 작가들이고, 처음 보는 작품들도 많았지만, 그녀의 설명과 함께 하니 조금 더 쉽게 이해된다.

 

 

 

<뉴욕 부류>의 글도 재미있었는데, “서울과 별로 다를 게 없던데? 더럽기만 하고”라고 말하며 뉴욕을 좋아하는 않는 사람들은 보스턴 백인 동네를 아주 좋아한단다. 깨끗하고 예쁘고 안전하다면서 말이다. 그녀가 생각하는 뉴욕을 즐길 줄 아는 사람들이란 공항에서 맨해튼으로 들어오는 미드타운 터널을 통과할 때부터 흥분했다는 사람들이다. (215쪽)

그런 사람들이 뉴욕을 즐기는 장소는 타임스퀘어, 센트럴파크, 그리고 밀도가 높은 빌딩 숲이라 한다. 뉴욕에 가게 된다면, 도전해보고 싶다. 인생에 놀랄 일만 있다면 그것 또한 별로겠지만, 가끔은 예상치 못한 일들도 일어나기 마련이니까. 뉴욕에 가게 된다면 타임스퀘어, 센트럴파크 그리고 밀도가 높은 빌딩 숲 사이에 서 보겠다. 마천루가 그리는 밀도의 미학과 1점 소실 원근법의 드라마(216쪽)를 경험해 보고 말테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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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aru 2015-06-25 15: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박상미의 <뉴요커>라는 에세이를 재밌게 읽었어요. 그당시에 읽었던 책 팔할은 중고로 내놨던 거 같은데, 뉴요커는 갖고 있어요.. ㅎ 책이 나름 예뻐서...

단발머리 2015-06-25 15:32   좋아요 0 | URL
나름 유명한 필자군요. 전 이번에 처음이었는데 담백함 느낌이 좋았어요. 많이 어렵긴 했지만요^^

다락방 2015-06-25 17: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히히 저는 십년전에 타임스퀘어, 엠파이어스테이트, 센트럴파크에 다녀왔습니다! 히히히

단발머리 2015-06-25 17:47   좋아요 0 | URL
다락방님께는 십년전 추억이고, 저한테는 미래 계획이네요. 우앙~~~~~부럽습니다.

AgalmA 2015-06-27 2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신간평가단 신청하고 싶다가도, 워낙 책을 이것저것 읽는 제 습관과 새로운 시스템에 적응 회피증 때문에;_;)
평가단이 원하는 책을 건의하고 의견조율을 하나 보죠? 알라딘에서 일괄적으로 정해서 주는 줄 알았어요.

단발머리 2015-06-27 20:52   좋아요 0 | URL
네~ 신간평가단이 신청한 책 중에서 출판사와 연락이(?) 되는 책으로요. 저는 풀이 좁아서 신청한 책이 많이 선정되었다죠~~ 저도 아직 적응이 안 됐는데 벌써 6개월이 지났다는..... 슬픈...

AgalmA 2015-06-27 2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출판사와 연락이 안되는 경우도 있어요? ㅎㅎ재밌다. 그러게, 벌써 6개월이군요. 흥미로운 신간이 많은 시즌이라면 신간평가단 대박이겠군요! 신기신기

단발머리 2015-06-27 21:22   좋아요 1 | URL
연락은 되는데, 책은 공짜로 못 준다~~ ㅋㅎㅎ 그런 경우가 있겠죠. 네~ 좋은 책이 많아서 좋았어요. 다음에도 하고 싶은데... Agalma님은 인문/사회쪽으로 하시면 딱이신데요~~~^^

AgalmA 2015-06-27 2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 그래도 이번에 인문/사회쪽에 <롤랑 바르트 마지막 강의> 신간평가단 책인 거 보고 얼마나 땅을 치며 부러워 했던지;_;))...

단발머리 2015-06-28 07:37   좋아요 0 | URL
이번에 또 모집하거든요. 6개월에 한 번씩이요. 저는 신간평가단을 연속으로 5번 하신 분도 보았어요. 성실하게 활동하면 오래 하시는 것 같아요. 다른 인터넷서점 신간평가단은 책 그냥 줘도 읽고 싶지 않은데 일단 알라딘은 그 쪽으로는 탑입니다^^ 선정된 책들이 와우!!! 앗! 사은품도 탑인가요? ㅋㅎㅎㅎㅎ
 
[나는 왜 쓰는가]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한창훈의 나는 왜 쓰는가
한창훈 지음 / 교유서가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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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과 외곽을 그리는 소설이 의미를 잃는 시대에 나는 소설가로 살고 있다. 변방의 삶을 그들의 언어로 쓴 소설이 나오면 으레 고색스러운 방 하나에 한꺼번에 모아놓고 체크인 해버리는 게 요즘 풍토이다. 토속적이다, 질펀하다, 한마디 내뱉어주면 된다고 여긴다. 평론가들의 모국어 기피, 근친 혐오. 그 배경 속에서 쓰고 있다.

도시에서 살기 때문에 욕망과 만나고, 그렇기 때문에 우울하고, 우울하기 때문에 웬만한 책임은 피할 수 있는 소설이 대부분이다. 대중 속의 고독도 사람의 일이라 작가가 그곳으로 손을 뻗지 않으면 안 되지만, 너무 많이들 어두운 카페로 걸어들어가버렸다. 개인의 우울이 사회의 비참보다 더 크고 강렬해져버린 것. 이른바 문학적이다. 그러나, 문학을 키우는 것은 비문학적인 것이라고 나는 믿고 있다. (108쪽)

 

서울에서 태어나 자라, 서울이 고향인 나에게 한반도 저 끝 바다에서 들려오는 소리, 냄새, 정취, 풍경은 오히려 이국적이다. 그럼에도 그 토속적이고, 질펀하며, 끈끈한 그 무언가는 계속 내 마음을 끈다. 더 많이 듣고 싶다. 더 많이 읽고 싶다. 하나의 완벽한 우주, 하나의 완전한 세계, 한창훈이 만드는 우주, 한창훈이 만드는 세계를 말이다.

돌아올 준비를 하는 잠깐 동안 서둘러 낚시를 던진다. 기다렸다는 듯이 뭔가가 물어댄다. 노래미, 용치놀래기 따위다. 뭐라도 좋다. 운좋으면 감성돔과 문어도 문다. 아주 커다란 동갈치를 낚은 적도 있다.

오후 새참으로 충분하다. 잡은 생선 회 뜨고 대가리와 껍질에 점심때 남은 김치를 넣고 소금 간하여 앉은뱅이 냄비 하나 대충 끓여놓으면 훌륭한 안주가 된다. 되들이 소주병이 빛을 발하는 것도 그 때이다. (32쪽)

 

근래에 젊은 작가들의 발랄한 문체와 최첨단 소재가 등장하는 소설이나 에세이를 읽을 때면 이들이 나와 같은 시대, 같은 공간에 존재함을 새삼 확인하게 된다. 나와는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작가들이 살고 있음을 느낀다.

이 책에서는 예전에 상상했던 시인, 소설가, 작가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는데, 이를 테면, 시인은 가난해야 한다거나, 소설가는 여러 직업을 전전하며 전국을 떠돌아야 한다거나, 작가는 깊은 동굴 속에서 격력한 기침을 참아가며 인고의 순간들을 창작의 재료로 삼는다는 생각들이 꼭 상상만은 아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내가 ‘환상적인 모습’으로 상상했던 작가의 ‘원형적 모습’을 여기저기에서 만나 볼 수 있다. 생소하면서도 놀랍다. 작가님이 좋아하는 형, 유용주 시인에 대한 이야기다.

사건사고 많았다. 오해 때문에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뜯어말리고 달래서 들쳐업고 들어온 날도 많았다. 풀어낼 방법이 없는 슬픔. 제멋대로 돌아가는 상황. 파멸되어버리고 싶은 충동. 그게 수시로 얼굴을 디밀었다. 피는 더 데워지고 주먹 불끈거려졌다. 껍질은 삭풍에 벗겨지는데 용광로 같은 마음속 불길은 여전히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한겨울 이불도 안 덮고 밤을 새우곤 했다. (185쪽)

 

마음에 불꽃을 품고 사는 일이 어디 쉬울까. 시를 쓸 수 밖에 없는 삶을 산다는 건 또 어떨까. 시시때때 안현미, 곤두박질 안현미, 그리하여 한번 더 안현미를 외치는(260쪽) 작가님이 말한다.

그럼 됐지 뭘 더 바라겠는가. 그러니 너무 열심히 살지 말자. 시인의 성공은 세상의 실패를 증명하는 척도이다. 좋은 세상에는 아픈 시인이 있을 리 없으니까. 그리고 무엇보다도 걱정 없는 것은, 계약의 시간이 끝나기를 기다리는 근사한 자세를 그녀는 이미 알고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262쪽)

 

이제는 그의 소설을 읽어야겠다.

수필의 말이 아닌, 소설의 언어로, 한창훈을 읽고 싶다. 읽어내고 싶다.

그가 들려주는 바다의 이야기를 들어 보고 싶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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