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수사 1
장강명 지음 / 은행나무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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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나 해서 찾아보니 기억이 맞았다. 제일 먼저 읽은 장강명 책은 <한국이 싫어서>. 헬조선이라는 단어가 유행하던 때, 혹은 그 단어가 막 알려지기 시작하던 때이긴 한데 다들 이렇게 생각하기는 했지만 그걸 딱 밖으로 표현하기는 거시기(?)하다고 느낄 때, 장강명은 적의를 드러내지 않으면서 한국을 싫어하는 마음을 이렇게 표현했다. <한국이 싫어서>.

 


그다음 책은 <5년 만의 신혼여행>. 이 책도 우연히 읽게 되었는데 편안하고 재밌고 술술 읽혔다. 이후에장강명이라는 작가를 찾아보면서 그의 특별한 이력에 더욱 감탄하게 되었고(기자 생활 중에 공모하여 쟁쟁한 문학상을 연거푸 수상/아내와의 에피소드), 주경야독의 꿈을 이룬 그를 더 좋아하게 되었다. <표백>을 읽은 후에 나의 안목에 대해 더 과한 칭찬이 필요하다고 여겼고, 적어도 그의 이름을 보고 책을 사도 후회할 일은 없겠다 생각하게 됐다. <댓글부대>는 앞부분만 읽었고(쏴리), <당선, 계급, 합격>의 문제의식에 크게 공감했고, 이런 인식이 사회적으로도 널리 공유되었으면 했는데 생각보다 책이 큰 호응을 받지 못한 것 같아 안타까웠다.

 


그리고는 이렇게 세 권 <책 한번 써봅시다>, <, 이게 뭐라고>, <소설가라는 이상한 직업> (모두 에세이구나) 읽었다. 책과 관련된 책들이고 작가의 삶에 관한 책이라 재미도 있고 부담감 없이 읽을 수 있기는 한데, 돈이 최고의 가치인 현대 사회에서소설가라는 이름의 생활인으로 살아가는 게 얼마나 팍팍한지가 느껴져서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장강명 정도의 작가도 이러할진대, 이제 막 1-2개의 히트작(?)을 낸 신인 작가나 작가 지망생, 시인들은 어떻게 생활을 꾸려갈까. 한국 출판계의 고질적 문제들을 작가 몇 사람이나 소수 독자의 힘으로 바꿔나갈 수는 없을 것이다. 그래도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까 고민하게 되었고. 독자로서 할 수 있는 일이라면 1) 책을 구입하고 2) 도서관에 책을 신청하고 3) 서평을 쓰고 4) 독서 모임 하기, 정도를 생각할 수 있겠다. 1, 2번 완료하고, 3번 진행 중이며 4번은... 저랑 장강명 뽀개기 하실 분? 제가 친구 따라 푸코 읽기 해야 해서 많이 바쁘기는 한데, 장강명이랑 도선생엮어 읽기로 진행하신다면 참가 용의 있습니다. 연락주세요, 010-1234-5678. 

 

 


소재의 특별함으로 승부하는 소설이 있을 테고, 독창적인 구조의 변화를 시도하는 소설도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소설은 이야기의 힘, 그 자체로 밀고 가는 힘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야기란, 우리가 열광하는 이야기란 일정한 형태를 가지고 있고, 그것은 그리스 비극으로부터 반복되어 온 것으로서. 그래서 새로 쓸 수 있는 건 문장뿐이라고 김연수가 말했었고. 결국 이 세상에 완벽하게 독창적이고 새로운 소설이라는 건 존재하지 않는다. 구조에 변화를 주고 익숙한 이야기를 어떻게, 어떤 문장으로 풀어가느냐가 중요할 테고, 주인공이 갖는 매력, 사건들 사이의 연결성, 개연성 혹은 핍진성 등이 중요하겠지만, 내 소설 선택의 가장 중요한 요소는 작가의이름인 것이며. 그래서 오늘은 장강명.

 

 


소설은 22년 전 미제 살인 사건을 맡게 된 강력계 형사인 연지혜가 피해자의 독서 모임 회원들을 한 명씩 만나면서 사건 당시 밝혀지지 않았던 사건의 실마리를 추적하는 과정을 담았다. 챕터를 번갈아 가며 범인의 독백이 이어지는데, <죄와 벌>의 로쟈와 <지하로부터의 수기>의 지하인, 그리고 <악령>의 주인공 스타브로긴이 범인을 지배하는 세 개의 인격으로 독백을 이어간다. 죄책감이 아니라 이 나라의 형사사법 시스템과 싸우고 있다는 고백에서부터 시작해 선과 악, 죄와 벌 특별히 인간의 고통에 대한 범인의 사유는 현대 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이 주를 이룬다.

 


사랑하는 이를 병이나 천재지변으로 떠나 보내는 것과 살인사건으로 잃는 것은 모두 같은 손실이다. 그런데 사람들이 느끼는 정의감은 매우 부조리해서, 그 죽음의 배후에 다른 인간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반응이 판이하게 달라진다. 하지만 내가 처벌된다고 해서 그들의 손실이 보상되는 것도 아니고, 그들의 분노가 가시지도 않을 거다. 그렇다면 나를 벌 주기보다 그들이 관점을 달리하는 게 더 생산적인 일 아니겠느냐고 지하인은 궤변을 펼친다. (44)

 


범인은 계속해서 자신의 살인을 변명하고 자신의 범죄가 지탄받지 말아야 할 이유를 나열하고, 다른 이들이 저지르는 범죄와 자신의 범죄와의 차이점이 무엇인지 묻는다. 범인의 이야기는 너무나 진지하고 치열해서, 1권을 30쪽 정도 읽고 바로 2권과 장강명의 신간 SF소설 <당신이 보고 싶어하는 세상>을 주문했다. 나는 장강명을 읽는다.  

 

 


거대 담론이 사라진 시대, 각자도생이 당연한 시대에 신과 인생의 의미, 행복과 고통에 대해 이야기 한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죽음과 자살, 영원과 불안에 대해 이야기하는 건 어떠한가. 환경운동과 채식주의는 또 어떤가.

 


모든 것이 허용될 때, 그래서 어떤 것에도 의미가 깃들 수 없고 진리라는 것이 성립할 수가 없을 때, 우리는 자살하지 않고 무엇을 할 수 있는 걸까? 카뮈는 반항하라고 한다. 끝내 의미를 발견할 수 없겠지만 의미를 구할 수 없다는 현실 그 자체에 우리가 시시포스처럼 끊임없이 반항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99)

 


그렇다면 지구온난화를 막기 위해, 귀여운 북극곰들을 살리기 위해 해야 할 일은 명확하다. 종이컵이 아니라 해외여행을 막아야 한다. 관광 목적의 출국은 5년에 1회 정도로 제한해야 한다. 유명 해외 관광지의 사진을 블로그나 인스타그램에 올리는 사람들을 비난해야 한다. 그러나 탄소 줄이기 캠페인은 종이컵 쪽에 더 초점을 맞춘다. 해외여행보다는 종이컵이 종교적 금지 대상에 좀 더 어울리기 때문이다. 종이컵 쪽이 보다 일상적이고, 현시적(顯示的)이며, 고통스럽다(보통 사람들은 해외여행을 그리 자주 가지 않으며, 해외여행을 가지 않는 상태는 티가 나지 않지만 텀블러는 눈에 잘 띈다). (206)

 


채식주의도 비슷하다. 육식이라는 유혹을 참는 일은 일상적이고, 현시적이며, 고통스럽다. 그리고 자주 논리적 모순에 부딪힌다. 동물 복지를 위해 고기를 먹지 않는 사람이 고양이를 키워도 될까? 고양이는 동물성 단백질을 먹어야 하고, 고양이 사료는 닭이나 연어로 만든다. (206) 

 

 


계몽주의, 인권에 대한 부분이 흥미로웠다. 유발 하라리도 <사피엔스>에서 민주주의의 개념과 더불어 인권개념에 대해 길게 설명했는데, ‘인권이라는 개념 자체가 역사적으로 특정한 시기에 발명되고 정교화되었다는 점을 지적했다는 점에서 이 책의 논의와도 비슷하게 읽혔다. 그리고 물론 죽음과 의미에 대한 부분도.

 


프란츠 카프카는 친구이자 비평가였던 막스 브로트에게 자신의 원고를 전부 태워달라고 부탁했다. 만약 브로트가 그 유언을 지켰다면, 카프카의 삶은 의미가 없어지는 걸까? 카프카가 의미 있는 삶을 살았는지 여부는 그가 무엇을 남겼느냐에 달린 문제인가? 그런데 우리 대부분은 결국엔 다 잊히지 않나? 그 말은 우리 대부분은 무의미한 존재라는 뜻일까? (233)

 


233쪽의 위의 챕터를 읽으면서는 당연히 오르한 파묵이 생각났다. 그의 책 <소설과 소설가>라고 기억하는데, 정확한 워딩은 기억나지 않고 대충 이런 의미였다. ‘내 책은 100년 뒤에도 읽힐까? 200년 뒤에도 읽힐까? 내 책이 200년 뒤에도 읽힌다는 게 내게 의미가 있을까? 200년 뒤라면 나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도 않을 텐데, 그 책이 읽힌다는 게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나와 상관이 있을까?’ 대답은 기억나지 않고 그의 질문만 기억에 남는 건, 그 역시 대답하지 않고 묻기만 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두 죽을 운명이고, 태양은 곧(아마도 50억 년) 수명을 다하고, 지구는 없어질 것이다. 그러니까, 이제. 혹은 그럴 것이기에 결국. 우리 삶은 아무런 의미가 없나. 우리의 삶과 죽음은 아무런 의미가 없나. 답 없는 물음은 계속된다. 이건 나만의 오래된숙제로 남겨두기로 한다.

 

 

 


최근에 장강명의 <소설가라는 이상한 직업>을 읽고 페이퍼를 썼더랬다. <노르웨이의 숲>을 쓰고 난 이후에 하루키가 어떻게 다른 사람이 되었는가에 대한 이야기가 인상적이었는데, 나 역시 이 소설을 읽으며 여러 번, ‘~~장강명!’을 소리 내어 외치기도 했으니. 소설가 장강명은 <재수사> 이전의 장강명 <재수사> 이후의 장강명으로 나뉠 수 있을 것이다. 뒤쪽 책날개에는 이런 짧은 글이 있다.

 

 


작품이 곧 자기소개가 되는 것.

무슨무슨 소설을 쓴 사람으로 소개되는 것.

거기서 더 나아가면 작가와 작품이 동의어가 되는 것.

 

피와 살이 있는 인간 장강명과

동의어가 될 수 있는 책을 쓰고 싶다.

 



앞으로도 장강명은 계속해서 쓸 테고 다루는 소설의 영역을 확장해 가고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내고 아름다운 문장의 주인이 되겠지만, 나는 이 책 <재수사>에서 장강명은 자신과 동의어가 될 수 있는 책을 쓰는 일을 시작했다고 생각한다.


 

작가와 작품이 동의어가 되는 세계로 입장한 장강명에게, 기립박수를 쳐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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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오 2023-07-29 22:2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장강명 이 인간.. 단발님의 애정을 듬뿍 받는 인간..... 기립박수까지!! 😤

단발머리 2023-07-30 07:53   좋아요 0 | URL
장강명을 한두권 읽어보실 것을.... 살포시 추천합니다. 물론이죠, 장강명 말고도 우리는 읽을 작품이 많고요.
장강명도 읽어도 괜찮다고 ㅋㅋㅋㅋㅋ 말하고 싶어요. 이 작품 <재수사>는 특히 제 스타일이고요.
오늘도 덥대요. 은오님 어디 시원한대로 피신하세요, 어여~~~~

책읽는나무 2023-07-29 23: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갑자기 장강명이 부럽다.
ㄴ자의 케찹 속에도 장강명 글자가 보이는 것 같아요.
<재수사> 아직 안 읽어봤는데 한 번 읽어봐야겠군요.^^
장강명 뽀개기 하고 싶어도 전 단발 님의 지성을 따라갈 수가 없어서 포기할랍니다.
푸코 뽀개기를 하는 사람에게 어떻게 감히...ㅋㅋㅋ

단발머리 2023-07-30 07:58   좋아요 1 | URL
장강명을 부러워하지는 마소서 ㅋㅋㅋㅋㅋ 왜냐하면 장강명은 이 글을 안 읽을 것이며 ㅋㅋㅋㅋㅋ

사실 위 페이퍼에 제가 안 썼는데요. 제가 2권의 30퍼센트 정도 읽고 범인이 누군지 알게 된 거에요. 식구들한테 아! 범인 알게 됐어, 근데 벌써 범인이 나왔네! 그랬거든요. 다 읽어보니 그 사람이 범인이 아닌 것입니다. 앜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저의 추리력 어쩌란 말입니까ㅋㅋㅋㅋㅋㅋ
푸코 쪼개기는 맡으신 분이 계셔서 괜찮아요. 물론 따라가기 헉헉대지만요.
오늘도 많이 덥다고 합니다. 더위에 건강 조심하셔요, 책나무님!!

독서괭 2023-08-02 12: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잉! 장강명 한권도 안 읽었고 크게 관심이 없었는데요, 단발님의 글 읽으니 읽어봐야겠다 싶네요. 오호. 인용문들도 다 흥미로워요. 단발님의 오래된 숙제를 어떻게 풀어나가실지 계속 지켜보겠습니다^^

단발머리 2023-08-04 19:20   좋아요 1 | URL
장강명의 한 권이 제게는 <악령>이었거든요. 이 책 읽고 <재수사(2권)>로 바뀌었습니다. 저는 소심하게 ㅋㅋ 장강명을 추천해 봅니다. 오래된 숙제는 간간히 리포트 올리겠습니다. 계속 쭈욱~~~~~~~ 지켜봐주세요!!
 
소설가라는 이상한 직업
장강명 지음 / 유유히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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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그래 24>에서 연재되었던 글을 묶은 것이다. 소설가라는 이상한 직업과 관련된 이상한 일들을 가감없이 보여주는 책인데. , 나는 뭐 여러 번 가슴이 찌릿찌릿하니 마음이 참 그랬다. 소설 쓰기를 직업으로 삼는 사람의 평범한 일상은 그것이 실제의 경험인가 싶을 정도로 냉정한에피소드들이 많았다. 이건 작품 홍보를 위해 혹은 경제적인 이유에서 강연을 나가게 되었을 때 에피소드 중 하나다.




서글프게도 그런 손톱만 한 우위를 악용하는 이들이 있다. 강연료를 묻는 순간 연락이 끊기는 섭외자들이 꽤 많다. 공짜 강연을 바랐을 확률이 매우 높다. 강연장에 와서야 그 강연이 재능기부 행사였음을 알게 됐다는 작가나 번역가도 있다. 끝까지 강연료를 묻지 못했는데 나중에 입금된 금액을 보고 너무 소액이라 속앓이를 했다는 이는 부지기수. (172)



물론 취지에 공감해 강연료에 관계없이 기꺼운 마음으로 참여한 자리도 있다. 그런데 그랬다가 후회한 적도 많다. '가난한 소설가에게 우리가 좋은 기회를 줬다'고 믿고 생색을 내는 상대 앞에서 얼굴이 굳어지면 내가 소인배인 건가. 참석자들에게 냉대받고 나의 역할은 얼굴 마담이었음을 뒤늦게 깨닫는 순간엔 미소가 잘 안 지어지는데, 어떻게 해야 하나. , 그리고 지역 독서모임 중에는 다음 기초의원 선거 출마 준비자의 사적 네트워크 같아 뵈는 곳도 있다. 작가들은 주의하시길. (175)



사람들은 작가들이 특별히 문학을 업으로 하는 작가들이 하늘 위에 둥둥’ (갑자기 생각나는 쟝쟝님, 쟝님 좋겠다!) 떠서 살 거라고 추측하고 싶어 한다. 우리가 바라는 세상 너머를 보여주기를 원하고 그런 삶을 추구하기를 원한다. 먹고 사는 것 같은 소소하고 일상적인 문제보다 그 너머를, 그 이상을 혹은 그 이하를, 인간 내면의 밑바닥을 보여주기를 원한다. 하늘과 땅, 천국과 지옥을 그려내는 그들이 밥을 먹고 빵을 사고 커피를 마시고 옷을 입고 집을 사고 차를 사는 것 같은 문제에는 왠지 모르게초연하기를 원한다. 혹은 원하는 것처럼 보인다. 예전에는 예술가들에게도 그런 자의식이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 그래서 조정래 선생님은 황홀한 글감옥같은 표현을 쓰기도 하셨다. 감옥에 갇힌 운명, 계속해서 써내야만 하는하지만, 그런 직업적 소명을 받드는 행운도 어디까지나 베스트셀러 작가에게나 가능한 일이고. 아니다, 정확히는 초 베스트셀러 작가에 방송 출연도 많이 하는 작가에게나 가능한 일이다.



미리 강연료를 알려 주지 않거나 아주 소액만을 입금하거나 혹은 재능 기부라고 주장하는 사람들 마음속에는 이 사람들(작가들, 예술가들, 소설가들, 시인들)은 이 세계를 지배하는 자본의 원리 바깥에 있다고 믿는 것 같다. 말이 안 된다. 대학 축제에 아이돌을 부르면 얼마나 많은 돈이 드는지 그 사람들은 알까? 조그마한 지역 행사에 이름을 한 번 정도 들어봄 직한가수가 초청되었을 때 얼마나 많은 돈을 내야 하는지 알까. 모를까? 모르지 않고서야 어쩜 이 예술가들에게만 땅을 밟지 말고 하늘에 둥둥떠 있으라고 말하는 걸까.



이 책 전체를 통틀어 나는 이 문단이 제일 좋았다. 좀 길지만 그대로 인용해 보겠다.



헌신할 수 있는 일인가. 어떤 직업의 귀천은 그 질문으로 대강 가늠할 수 있지 않을까. 모든 직업이 임금의 대가로 종사자에게 시간을, 추가 노동을, 감정을, 가끔은 건강이나 그보다 더한 것까지도 요구한다. 그런데 사모펀드 CEO가 과로로 쓰러졌다는 소식을 들으면 우리는 혀를 끌끌 찬다. 뭣이 중한지 모른다며. 큰돈을 벌게 해주는 직업인지는 모르지만 몸을 해치면서까지 추구할 일은 아니라고 예리하게 알아차리는 것이다.



하지만 소방관의 희생을 우습게 여기는 이는 아무도 없다. 화재 현장이 아니라 훈련 중에 일어난 사고에 대해서도 그렇다. 우리는 슬퍼하면서도, 소방관이라는 직업에는 그럴 가치가 있다고 인정한다(그 희생이 괜찮다는 소리는 당연히 아니다). 그 가치는 높은 연봉과는 다른 무엇이다. 종사자의 영혼을 충만하게 하는 것.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대답해주는 것. 퇴근 뒤에도, 심지어 퇴직 뒤에도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 나는 소설가도 그렇다고 생각한다. (9-10)





나는 소설이, 문학이, 예술이 인간에게 선사하는 즐거움을 오래오래 누리고 싶다. 그렇다면 누군가는 써야 한다. 책상 앞에 앉아서, 문장과 씨름하며, 단어를 고르고 지우는 그 지겨운 일을 반복해야 한다. 그리고 그 사람이 그 일을 하는 동안에는 당연히! 경제 활동을 할 수 없다. 돈을 벌 수 없다. 밥벌이를 할 수 없다.



인간은 일을 할 때, 행복하지 않다. (아니라고 하시는 분들에게 축복을. 재산이 100억인데 계속 일을 하고 싶다고 하시는 분들에게 축복을. 그 일이 먹고 살기 위한 일이 아니라, ‘의미 있는일임을 알아채시는 분들에게 축복을!) 인간이 일하고 싶어 하는 이유는, 일을 통해 자아를 실현하고 타인을 도울 수 있기 때문이다. 자기 능력을 발휘(과시)하고 다른 이들에게 유익을 끼칠 수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생활을 책임진다는 자긍심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일 중에 하기 어려운 일’, 큰 위험을 담보하는 일이나 육체적, 정신적으로 감당하기 힘든 일을 하는 사람에게 그에 맞는 보상존경이 주어져야 한다. 우리네 세상이 돈이 최고인 세상이 되어, 갭투자로 어마어마한 이득을 본 사람이나 비트코인으로 수십억을 손에 넣은 사람을 부러워하는 세상이 되기는 했지만 말이다.



다른 한 편으로 우리는 간호사님을, 소방관님을 그리고 민원 폭주로 괴로워하는 일부의 착한 경찰관님을 존경한다. 특별히 보육 시설에 근무하는 분들의 경우, 해당 노동의 성격이 여성적인 일, ‘여성의 일이라고 여겨지기에 더욱 저임금으로 인해 고통받는다. CCTV 속의 포악한 보육 선생님들은 비교적 쉬운경로(적은 비용과 시간)를 통해 유치원, 어린이집의 보조 선생님으로 채용되지만, 저임금은 물론이요 고용 연장 보장 없이 육체적으로고된 보육과 영유아 케어를 도맡아야 한다. ‘다정할 수 없는 구조가 존재한다.



노동은 고되다. 고된 노동의 수행이 성스러운 것으로 해석된 건 비교적 최근이다. 중세 시대, 농민들의 실제 노동시간이 그리 길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여러 자료/책은 어마어마하다. (정확히 기억해 내지 못하는 나의 초라한 기억력을 탓한다.) 흑인 노예들이 대농장주의 횡포에 태업으로 맞섰던 일 역시 역사적으로 잘 알려진 사례다. "노동은 신성하다.”, “열심히 일해야 한다.” 이러한 노동윤리는 근대의 발명품이며, 노동 윤리의 과대 포장에 앞장서 온 자본의 논리가 개신교 전통과 결합함으로써 그 쓰디쓴 열매를 맺었다. 소명과 사명. 천직을 성실함으로 대하는 것이 신의 뜻이라고 믿게 되었다.



자본가의 이익은 노동자의 시간을 착취하는 데서 비롯된다. 실제 노동 시간은 8시간이지만, 그 노동을 가능하기 위한 수면 시간, 휴식 시간 등 재생산에 필요한 시간비용을 자본가는 지급하지 않는다. 가족들이 집에 돌아와 쉴 수 있도록 해 주는 게 직업이었던 내게, 아무도 임금을 지급하지 않았던 바로 그 상황이다. 설정 자체가 착취다. 일할수록 손해다. 오늘 오전에 해야 할 일 하나가 갑자기 취소되어서 자유 시간이 생겼다. (이 글을 쓸 수 있는 이유) 친정 단톡방에, 1시간 쉬게 되었다 자랑을 했다. 아빠가 답했다. “그렇게 일하고도 한달월급 받아 일좀 많이 해.” 엄마가 답했다. “내가 답했다. “너무 많이 해요 지금도 ㅋㅋㅋ 살살 해야 함 ㅋㅋ 에너지 절약 차원에서 ㅋㅋㅋㅋㅋ



개미 같은 사람들. 우리 아빠 같은 사람들. 평생을 열심히 일하고도 또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 잠깐 쉬어도 미안한 사람들. 자기 먹을 것을 자기가 책임지겠다는 사람들. 그 사람들의 그 부지런함을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모르겠다. 내가 나이브하다는 걸 안다. 사람마다 환경과 처지가 다르다는 걸 인정한다. 다만 나는 열심히 일한다는 게 기쁨의 한 축이 될 수는 있지만, 자긍심의 축이 될 수는 없다,고 말하고 싶은 것 같다.







나는 카프카의 <변신>노인 문제로 읽었다. 매일 아침 5시에 기차를 타고 출근해서 돈을 벌어 오던 주인공. 그가 흉측한 벌레로 변해 버렸을 때. 외양은 흉측하고(냄새가 난다고 했던지 그건 잘 기억이 안 난다),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하나도 없고, 무슨 일인가를 한다 해도 도움이 되지 않을 때. 그가 사라져 주기를 혹은 죽기를 바라는 가족의 마음들. 쓸모없는 인간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 이제는 쓸모없는 사람, 자기 밥값도 못하는 사람, 자기 관리도 안 되는 사람, 오히려 돈, 시간, 돌봄이 필요한 사람. 한때 가족이었던 사람. 이제 그 사람을 어쩌면좋단 말인가.



인간을 효용으로만 볼 때, 실직한 가장은 집에서 찬밥 신세다. 인간을 쓸모로만 이해했을 때, 여자가 암 걸리면 이혼당한다. 인간을 실적으로만 바라봤을 때, 자식이 공부 못 하면, 그 자식은 창피한자식이다. 이런 세태에 대해 우리는 옳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밥벌이못하는 사람에 대해서는 엄격한 시선을 거두지 않는다.  2, 30대의 젊은이들(생각보다, 제가 나이가 많아요)이 취업을 포기하는 건, 그들이 갈 만한 좋은 직장이 없기 때문이다. 그들이 배가 불러서그런 게 아니다. 소설가라면 3년 혹은 5년은 자기 자신에게 집중하면서 습작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반드시 필요하다. 그 기간에는 돈을 벌 수 없다. 우리는 밥을 먹어야 살 수 있는데돈을 벌러 갈 시간이 없다. 그래서, 내 결론은. 다시 한번. 나이브하게. 최저임금 인상과 기본 소득이다.



돈이 필요해 급하게 아르바이트를 2개 정도 하면 적어도 당분간먹고 사는 데 지장이 없었으면 좋겠다. (정치 출사표로 느껴진다는 댓글은 사양입니다. 전 이미 충분히, 매우 엄청나게 정치적입니다) 한 사람당 한 달에 50만원 (70만원이라고 적었다가 20만원 깎았다) 정도라도 기본 소득이 지급된다면 그 돈을 가지고 그다음을 도모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이건 물론 집 문제, 아파트 문제, 교육 문제와 얽혀 있지만 오늘은 여기까지만)



그래서 내가 말하고 싶은 건.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자는 것이다. 일에 대한 환상에서 벗어나자는 것이다. 일이 주는 기쁨이 얼마나 한정되어 있는지 말하자는 것이다. 보람 있고 의미 있는 일을 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최소한의 생활을 보장해 주자는 것이다. 나를 기쁘게 했던, 울고 웃게 했던 소설가들이 계속 소설을 쓸 수 있게 하자는 것이다. 그리고.




강명씨강명씨가 이 글을 읽을지 어쩔지 잘 모르겠어요. (제 친구는 분명 강명씨가 알라딘을 하고 있다고 했어요) 천상계 우리 정희진쌤도 댓글 다시더라구요. 강명씨도 댓글 달아주면 나는 좋겠지만, 안 달아줘도 상관없어요. 저번 주에 푸코 만나야 해서 좀 바빴어요. 이 페이퍼 쓰는 데도 시간이 많이 들었을 거 같죠? 이번주에 진짜, 진짜 <재수사> 들어갑니다. 기다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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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3-07-11 14: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강명씨도 기다리겠지만 저 역시도 단발머리 님이 <재수사> 들어가시기를 기다립니다. 그러면 또 이런 글이 나올 거 아녜요? 기다립니다.

제가 어제 읽은 책에 카프카에 대해 나오는데, 이 페이퍼랑은 연관이 없기 때문에 먼댓글을 달지는 않고 그러나 페이퍼는 하나 쓸게요. 오늘 이 페이퍼 읽으니 그 책에 대해 쓰고 싶어졌어요. 슝 =3

단발머리 2023-07-11 14:30   좋아요 0 | URL
혹…. 강명씨? 😍😍😍😍😍

미미 2023-07-11 15:4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요즘 아르바이트 검색하면 정규직을 아르바이트라고 광고하고 있더라고요.
하루 10~12시간이 언제부터 아르바이트가 된 건지...
저는 딱 4시간만 일하고 싶어요ㅋㅋㅋㅋ
기본 소득도 필요하고 최저임금도 더 올려야 합니다. 이런 거 제일 아까워하는 정치인들이
나라 돈은 눈먼 돈이라며 자기 주머니만 채우고 있는 현실.

다락방 2023-07-11 16:16   좋아요 3 | URL
버트런트 러셀이 <게으름에 대한 찬양> 에서 바로 그 네시간 노동을 주장합니다. 우리 모두 네 시간만 일하자!! 그러면 여유시간도 생기고 빈부의 격차도 줄어들 것이다!! 저는 그런 버트 러셀을 지지합니다. 얼쑤.

단발머리 2023-07-11 16:22   좋아요 2 | URL
딱 4시간 의견 너무너무 좋은데요. 저 그럼 진작 퇴근해서는 ㅋㅋㅋㅋ

마르크스의 둘째 사위 폴 라파르그의 <게으를 권리>를 옮겨봅니다. 좋아하실 분들이라서요 ㅋㅋㅋ


사회가 요구하는 노동의 양은 제품 소비와 원자재 공급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제한된다. 상황이 이러한데 어찌하여 1년 치의 일을 6개월 만에 미친 듯이 해야 하는가? 6개월 동안 하루에 12시간이나 일하는 대신에 1년 내내 노동량을 골고루 분산시켜 모든 노동자가 하루에 대여섯 시간만 일하게 하지 않는 이유가 무엇인가? 노동자들이 매일매일의 일거리를 보장받게 된다면 더 이상 서로를 시샘하지도, 서로에게서 일거리나 먹을 것을 빼앗지도 않을 것이고, 심신이 기진맥진해지지도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게으름이라는 미덕을 실천하기 시작할 것이다. (38쪽)

달자 2023-07-11 17:0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단발머리님과 다락방님이 나누신 말씀이랑 비슷한 내용이 정희진 선생님의 7월호 매거진에서 나왔던 것 같아요. 북반구 기준, 여름에 모두 더운데 진 빼면서 일하면서 건강 해치고 에너지 과소비 하고 그 와중에 피서를 가니 어쩌니 할 바엔 그냥 7,8월에 모두가 노동을 중단하자! 그래도 세상은 문제없이 돌아갈 것이다!

단발머리 2023-07-15 15:57   좋아요 0 | URL
저도 그 부분 들었는데요. 너무 귀가 솔깃하더라구요. 7, 8월 모두 노동 중단, 지구 멈춤, 한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물론 시간이 전부 돈인 자본가들이 그렇게 하지 않을테지만요. 휴우...

책읽는나무 2023-07-11 17: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요즘은 노동에 대한 단발 님의 현학적인 글이 돋보입니다.^^
이 책은 읽어보지 못했는데 좀 가슴 아픈(?) 내용이군요?
예전에 장강명 작가의 다른 에세이를 읽었을 때, 이 작가는 ‘소설가‘라는 어떤 타이틀이 아니라 진정 직업이라고 생각하며 제 시간에 출근하듯 식탁에 앉아 글을 쓰고 집안일을 하고...재택근무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었어요.
한여름엔 집 안이 너무 더워 아파트 독서실에 가서 글을 쓴다는 대목도 인상깊었습니다.
그래서 저도 작년에 전기세를 아낄겸 아파트 독서실에 가서 책을 읽어 보기도...^^;;
다른 작가들도 물론 소설가나 시인이 직업이란 생각으로 글을 쓰시겠지만 장작가님은 소설가라는 직업에 대해 임하는 자세가 어떤 환상을 깨고 좀더 구체적이고, 솔직하게 대한다는 느낌을 받았더랬습니다. 근데 이 책은 더 구체적이고 솔직한 책이로군요?^^

전 인용문을 읽으면서 장강명이란 이름 난 작가가 이 정도의 대접을 받고 산다면, 책이 그닥 많이 팔리지 않는 작가들의 삶이란 어떤 것일까? 그런 생각이 듭니다.
작가들이 쓴 에세이를 종종 읽다 보면.....
암튼 그래서 한국 작가들의 책을 자주 사야겠다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특히 서점에 갔을 때 번역 책보다는 한국 작가들의 책을 한 두 권 사곤 하는데...넘 미비해서 이게 어떤 큰 의미가 있을까? 싶기도 하구요.
이럴 땐 내가 좀 돈이 많았더라면? 그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ㅋㅋㅋ
어디 4시간만 일 하는 곳 있음 연락 주세요^^

단발머리 2023-07-15 16:02   좋아요 0 | URL
책나무님 말씀이 딱인데요. 장강명 작가는 작가의 삶에 대한 환상을 벗겨내고 구체적으로 이야기하고 솔직하게 쓰는데요. 가끔 그런 맘이 아픈 순간들이 있어요. 이를테면, 작업실이 어디냐,고 묻는다는 거에요. 그러면 아이도 없고 아내 출근하면 혼자라서 집에서 쓰는데.... 그럴 형편이 안 된다... 이런 문장 만나면 마음이 좀 그렇고요. 모든 작가가 작업실 가지는 건 어렵겠지만 창작 활동하려는 사람들에게 열린 공간이 있었으면 좋겠다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토지 문화관> 시설 관련해서 읽을 때 아... 돈 많이 번 작가들 뿐 아니라 국가에서도 이런 시설 많이 지었으면 좋겠다, 그런 생각도 혼자 해보고요.

4시간만 일하는 곳 찾으면 연락드릴게요^^

단발머리 2023-07-15 16:18   좋아요 0 | URL
잠깐.... 근데 혹시...... 강명씨?

공쟝쟝 2023-07-14 13:2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자신의 유용성을 증명(대체 누구에게?)하기 위해 너무 열심히 산 나머지 다른 사람들도 쓸모로만 생각할뻔 한 사람이 읽기에 적당히 아픈 글 감사히 읽었습니다. 하지만 내가 (너에게, 이 조직에게, 가족에게, 친구에게) 쓸모 있다는 것을 어필하는 이유는 사랑받고 싶어서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사랑과 쓸모는 애시당초 불화하는 속성을 지닌 것 도 같아요. 지금 내가 가장 사랑하는 존재는 가장 쓸데가 없이 털을 뿜고 더워죽겠는 데 피부위로 올라오거든요. 뿐만 아니라 말도 못합니다ㅋㅋㅋㅋㅋㅋㅋ

강명씨, 저성장 한국 사회의 숙제... 열정 페이... 특히 창작자들에게 쏟아지..... 강명씨 같은 분이 지적해주시는 거 너무 귀합니다. 작사료 안받아도 되는데 후배들 생각해서 굳이 받는 다는 김이나 작사가도 떠올려지고요. 짝짝짝. 제가 요즘 근대적 문제설정을 탈구축하는 작업에 몰두 중인데 (ㅋㅋㅋ 아니 너무 둥둥 떠버리네) 역시나 한국은 봉건적 관습부터 타파.... 물론 이 순서를 정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까지 (독서로) 알게 되었는 데... 강명씨... 일단 제가 강명씨 소설을 이해하려면 도스토옙스끼부터 깨고와야하는데 도끼 읽을 시간이 없어서 어떡하죠? 강명씨... 그래도 나는 강명씨의 <표백>의 문제의식을 (여성혐오 감안하고) 이젠 조금 다르게 이해합니다. 그리고 강명씨는 역시 소설보다 에세이를 잘쓰는 것이 당신은 당신이 좋아하는 조지 오웰. 메롱~ 강명씨~ 소설은 필립로스가 잘쓰고 조지 오웰은 소설 못쓰던데요? 강명씨 메롱~ ㅋㅋㅋ

단발머리 2023-07-15 16:10   좋아요 0 | URL
적당히 아픈 글은 어떤 글인지... 궁금하군요. 사랑과 쓸모는 애당초 불화하죠. 사랑하는 사람에게 쓸모 있는 사람이 되되, 사랑하는 사람의 쓸모를 구하지 말자, 가 저의 모토이기는 합니다. 인간에게 기대치가 낮은 단발머리의.... 그 어떤.... 거시기...

강명씨 읽으려면 도선생 읽어야 돼요. 저 지금 <재수사> 읽는데 3장에 한 번씩 라스콜니코프 나와요. 저두 아주 예전에 읽어서 다시 읽어야 되나, 차라리 백치를 읽을까 하고 있습니다. 소설보다 에세이 잘 써요, 라는 말은 소설 뽀개고 해주시고요.
그리고.... 강명씨..... 이거는 나만 해야 돼요. 강명씨 싫어한다 했잖아요. 물론 강명씨 새책 나오는 족족 사는 사람은 쟝님이지만, 강명씨~~ 라던가 강명씨 메롱 ㅋㅋㅋ 이런 거는 나만 해야 돼요. 참고바랍니다.

2023-07-15 22: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7-17 09: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7-27 13: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icaru 2023-07-29 14: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단발머리 님 글 멋있어요! 통찰도 넘나 멋있고~ 변신을 노인문제로 읽었다는 말에 눈시울이 뜨거워졌어요! 저는 변신을 읽으며 잠자가 집밖으로 탈출했으면 좋겟다고 생각했는데, 그것은 곧 죽음이었던 ㅎㅎㅎㅎ
노인문제에 대비해서 생각해 보니까 ... 사랑과 쓸모가 애당초 불화라는 말도 가슴 미어지는 통찰이십니다. ㅠㅠ

단발머리 2023-07-29 20:47   좋아요 0 | URL
좋게 읽어주셔서 너무너무너무 감사합니다. 원래 icaru님 저를 좋게 봐주셔서 제 글도 좋게 읽어주시고^^
전 변신도 노인문제로 읽었지만 요즘엔 다른 책, 다른 설정도 노인 문제로 읽힐 때가 있어요. 그건 좀 자세히 살펴봐야할 거 같고요.
가슴 미어지는 통찰은 역시 사랑에 대한 것이구요 ㅠㅠㅠㅠㅠ
 
신기한 독 온 겨레 어린이가 함께 보는 옛이야기 3
홍영우 글.그림 / 보리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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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제목을 정해 놓았던 게 5월 중순 같은데 정확히는 기억이 안 난다. 매일매일 새로운 뉴스로 이전의 쇼킹한 뉴스를 덮는 요즘이라 더욱 그렇다. 그때는 일본에 대한 뉴스로 한참 시끄러울 때였다. 국민 전체 아킬레스건, 일본 문제를 건드린 윤. 오므라이스 먹으며 독도를 갖다 바치는 건 아닌지 심하게 걱정했었다. 그때쯤, 몇 개의 시국선언이 눈에 들어왔다.  

 


아주 옛날 일이라 요즘 사람들은 모를 수도 있겠다. 노무현 대통령과 맞대결 후보였던 이회창의 지지율이 밤낮으로 엎치락뒤치락하던 때, 그러니까 대선을 한 달 정도 남긴 시점에 각종 단체에서 시국선언이 이어졌다. 호남 지역 교수들에게서 시작된 시국선언은 교육계와 노동계까지 오랜 기간 계속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지금에서야 할 수 있는 말이지만 보수당의 대통령 후보로서 이회창은 양호한 사람이다. 본인 포함 그 집 남자 3명이 모두 군대에 가지 않은 신기록만 아니었다면, 이회창은 이 나라의 대통령이 되었을 것이다. , 그리고 IMF. 자질은 모르겠지만 적어도 이회창은 대통령직을 수행할 만한능력이 있는 사람이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명박, 박근혜, 윤석열을 기억하자. 이회창에게는 적어도 보수의품격을 조금은 기대해도 됐었으리라


 

윤석열 정부의 무능과 패악, 무엇보다이해할 수 없는특이한 정책과 그 정책의 집행에 대해서 비판하는 소리를.... , 듣기에도 피곤하다. 그래서 뉴스를 안 보고, 안 읽고 산다. 엉망이 되었다고 말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건 모르고 당하는 고생이 아님을..... 힘주어 말하고 싶기는 하다.  


 

우리는 몰랐나. 우리는 정말 몰랐다고 말할 수 있나. 나는 사태의 결국, 윤석열의 당선에 언론이 지대한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물론 김대중, 노무현도 적대적인 언론 환경에서 싸웠고, 지난한 혈투 속에 결국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그때와 지금의 다른 점은, 그때는 종편이 없었다는 점, 그때는 티비조선이 없었다는 점, 그때는 임영웅이 없었다는 점을 들 수 있겠다.  

 


 

우리는 정말 몰랐나. 전 국민이 지켜보는 방송사 토론회에 나오면서 손바닥에자를 쓰고 나타나는 사람인 것을, ‘일주일에 120시간이라도 바짝 일해야 한다라고 말하는 사람인 것을, ‘후쿠시마 원전 폭발은 없던 일이다. 원전 자체가 붕괴된 것이 아니어서 방사능 유출은 안 됐다라고 말하는 사람이었음을, 정말 몰랐다고 할 것인가.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치를 잊은 듯한 미국에 대한 저자세 외교, 일본에 대한 굴욕 외교, 중국/러시아/북한에 대한 막가파 외교를 걱정하는 소리가 높다. 그다음은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 문제였고, 이제 백년지대계 교육 문제까지. 대통령 투표 결과로, 촛불의 힘으로 대통령에 당선된 이전 정부조차 반국가단체라고 부르는 호기. 그 결기 혹은 객기를.  

 


우리는 정말 몰랐나. 몰랐다고 말할 수 있나. 윤석열이 아니면 이재명이었을 텐데. 평생 민주당을 지지했지만,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 이재명을 선택하지 않은 사람들을 나는, 알고 있다. 험한 인생에, 흠과 결격사유가 왜 없을까. 하지만, 대통령 중심제의 이 나라에서 윤석열 vs 이재명이라는 선택지 앞에 사람들은 윤석열을 택했다. 윤석열도 싫지만, 조국이 더 싫고, 국민의힘이 밉지만, 민주당은 더 밉고... 그렇게 우리는 윤석열 보유국의 희한한 역사 속으로... 

 



그 일, 그 정치적 결정이 내 삶에 영향을 미치기 전까지, 그때까지는 그냥 모른 척 한다. 길을 걷다가 젊은이들 158명이 한 자리에서 죽었는데도 사람들은 모른 척한다. 멀쩡한 청와대에 들어가지 않겠다 해도 모른 척한다. 북한을 자극하고, 일본에 엎드리고, 미국 파티에서 대통령이 바보가 되어 돌아와도, 우린 다 모른 척한다. 그리고 방사능 오염수를, 우리 집 앞마당에 붓는다니 그제야 조금 정신을 차리려고 하다가, 수능 문제 가지고 설레발을 쳐대니 그제야, 사람들이 조금씩 말을 하기 시작한다. 진짜 이상한 시대를 우리가 살고 있음을 재차 확인하는 슬픔

 

 


이미 알고 있는 이 절망과 앞으로도 많이 남아있는 암담한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까. <신기한 독>을 읽어보며 생각해 보자. (유부만두님, 보소서!! 이 부분은, 유부만두님 특별 헌정입니다^^)  

 

 


옛날 어느 마을에 농사꾼 하나가 살았다. 괭이질하다가 괭이에 뭐가 걸려 살펴보니 커다란 독이다. (예의 그 주인공, 신기한 독이다) 모양이 찌그러진 헌 독이라 그냥 버릴까 하다가 아까워서(재활용 정신) 집에 가져와서는 그 속에 괭이를 넣어두었다. 다음날 일하러 가려고 괭이를 꺼내니 괭이 하나 나오고, 독 안에 괭이 하나 더. 그것마저 꺼내니 하나 더? ? 이건 뭐지? 1+1도 아니고? 신기한 마음에 엽전 넣어보니, 엽전에도 같은 현상이…. 농사꾼의 신기한 독 이야기는 소문을 타고, 마을 부자 영감 귀에 들어간다. 부자 영감은 이 밭의 원래 소유자였던 돌아가신 할아버지를 들먹이며 신기한 독의 소유권을 주장한다. 마음씨 착한 농사꾼은 이 독을 부자 영감에게 주려고 하지만, 마을 사람들은 부자 영감 행복해질 그 꼴이 보기 싫어 원님에게 재판을 받으라 권한다.

 


원님 앞에서 이루어지는 하나 더의 기적. 이제 부자 영감이 문제가 아니라 원님이 문제다. 신기한 독이 탐이 난 원님은 두 사람에게 이 귀한 물건을 나라에 바치라 명을 내린다






그러고는 그날 퇴근길에 그 독을 자기 집으로 가져간다. 무얼 넣으면 좋을까, 행복한 고민을 하면서. 대청 마루에 고이 모셔둔 소중하고 소중한 신기한 독. 독 안을 들여다보시던 원님의 늙으신 아버지, 독 안으로 쏙 들어가시고. 아버지 꺼내니 다시 아버지. 그 아버지 꺼내니 또 아버지. 마루 가득한 아버지들의 뜨거운 한 판. 아버지들의 야단법석에 신기한 독은 깨지고 마루에는 아버지만 그득. .

 

 



책은 선택에서부터 이미 하나의 경향이다. 어느 방향으로든 가게 되어 있다. 작가, 그림, 출판사가 모두 그렇다. 나는 <신기한 독>을 골랐다. 선택은 아이들이 하겠지만 아이들의 선택은 어디까지나 내가 도서관에서 선택한 책의 범위 안에있다. 이야기를 읽고 그림을 본다. 그리고, 이 장면에서 내가 묻는다.

 


 


원님이 그 독을 자기 집으로 가져가네. 이것 봐. 원님은 그 신기한 독에 무엇을 넣을까 고민하느라 완전 즐거운 표정이다, 그치? 근데 이 사람들은 뭐하고 있어? 마을 사람들은 뭐하고 있는 거 같아? 잘 봐봐, 이 사람들, 뭐하고 있는 거 같아? 눈을 흘기면서 입을 삐죽빼죽하고 있잖아, 그치? 이 사람들….. 원님 욕하고 있다? 내가 보기엔 그래. 원님이 재판 받으러 온 농사꾼과 부자 영감에게 이 신기한 독을 나라에 바치라 하고서, 그 신기한 독을 자기 집으로 가져 가잖아. 그러면 안 되는데. 그걸 막을 수는 없어, 왜냐하면 원님이니까. 그래서, 사람들은 뭐해? 욕을 한다, 그렇지? 그때는 여론이라는 말도 없었을 테지만 말이야. 평판은 무시할 수 없거든. 사람들이 욕을 하고 있어. 그게 할 수 있는 일이니까. 원님이 포졸을 앞세워 그 신기한 독을 자기 집으로 가져가는 걸 막을 수는 없지만, 욕은 할 수 있으니까. 욕을 해야지, 원님 욕을원님 욕 많이 해야 해. ! 원님 나빴어! 이렇게 욕을

 

 


이제 겨우 1년 지났고, 앞으로도 4년이 남았다. 지금까지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새로운 대한민국을 경험하게 될 것 같은 불안한 예감. 선거를 통해 당선된 대통령, 탄핵도 어려울 것 같은 상황. 그래도 여기가 내 방이고 내 담벼락이어서, 나는 원님 욕을 여기에 쓴다. 신기한 독 마음에 든다고 집에 가져다 놓으면 아버지 쏙 들어가셨듯이, 검찰 앞세워 수사권 마음대로 휘두르면 결국 신기한 독은 깨지고 마당에 아버지만 가득할 것이다.  

 


 

일본 방사선 오염수 방류 반대한다.

일본에 대한 굴욕 외교 반대한다.   

북한에 대한 적대적 외교 노선 반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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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부만두 2023-07-01 18:0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전 그저 맘 달랠 500원 어치 옛날 이야기를 원했을 뿐이에요. ㅠ ㅠ 속상한 뉴스에 지쳐서 트위터를 지우고 왔는데 옛 이야기에 용산 발라놓으심;;;

그나저나, 이 “이상한 독”은 제가 읽은 “30일의 밤”에 나오는 ‘이상한 상자/문’과도 닿아 있어요. 나 아닌 다른 나, 멀티버스의 제임스들이 다른 우주를 탐내며 투쟁하는 액션 스릴러 드라마! 추천은 500원 어치만 해드림.

그러니까 원님의 아버지, 본체의 그 분은 호기심에 이상한 독/상자를 통과해 멀티버스를 만든 거죠. 근데 문제는 들어간 곳으로 나왔기에 그 멀티버스는 바로 여기 이곳 현생에 쏟아졌어요. 우짜지요?
도플갱어의 규칙 (서로 만나면 하나만 남고 사.망.)은 통하지 않고 멀티 아닌 멀티버스의 착각으로 또같은 복제 아부지들만 가득. 원님은 강제 복제 멀티 효도로 여생이 꽉 채우실텐데.

독이 깨졌으면 멀티버스 아버지들도 퇴장하셔야 하는데 아무래도 한 번 이 세상에 올라와 으리으리한 원님이 내 아들이라 기분 좋으신 분들은 그냥 이 세상이 내 세상이다 하며 유병장수 하실 거란 말이죠. 아…. 이거 진정 끔찍하게 다크한 조선시대 sf 이야기네요. 그 뒷수습의 여파가 마을 사람들에게 미칠 테니까요.

마을 사람들이 원님의 독 사유화를 막을 수 있었을까요? 이 스토리 라인에서? 아니면 현실에서? 첨에 그 독을 땅에서 파낸 사람이나 욕심쟁이 이웃이나? 결국 누군가의 집에서 ‘이걸 죽이지도 없애지도 못해서 인생의 업보고 저주’가 될 존재들을 잔뜩 불려 놓지 않았을까 그래서 다른 버전의 수습 못 할 비극을 주위 사람들, 후세에 남기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결국 나쁜 원님의 이 우주는 독을 파낸 순간 부터 망조가 들었던 것이고… 이미 원님의 세상은 디스토피아.

아 무섭잖아요.

단발님 좀 밝고 재밌고 뒷처리 깔끔한 옛이야기로 제 맘 달래주세요. 더운데 진땀 나요.

단발머리 2023-07-01 21:11   좋아요 0 | URL
하하하 정말 그랬네요. 옛이야기에 용산 발랐군요. 용산 땅콩쨈 샌드위치....

˝30일의 밤˝의 ‘이상한 상자/문˝ 이야기에 급 관심이 갑니다. 멀티버스가 ㅋㅋㅋㅋㅋ 아, 여기에 멀티버스가 나오는군요.

전 뭐랄까요. 원님에게 남은 것이 아버지라는 점에서, 효를 당연시하고, 강제하고, 장려하는 문화 속에서 ‘효의 실천‘이 얼마나 어려운것인지를, 특히 아버지요. 강조하고 싶지 않았나 싶어요. 어머니는 가정 경제에 여러모로 보탬이 되니까요. 얼마 전에 여성의 나이가 84세가 되어야 가사 노동에서 ‘비로소‘ 해방된다는 기사를 봤어요. 늙으신 아버지라니, 권위를 내세우는 아버지(이 놈아, 나를 얼른 여기에서 꺼내라!!)가 대청 마루 한 가득 ㅋㅋㅋㅋㅋ 욕심 내고 권력의 사유화 추구하더니ㅋㅋㅋ 원님이 받을 수 있는 가장 큰 벌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러고 보니 그것도 용산과 똑같네요. 우앗, 평행우주?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원님의 독 사유화는 막을 수는 없었을것 같아요. 글쎄요, 저는 이 신기한 독이 착한 농사꾼의 집에 계속 있었더라면... 하는 나이브한 생각을 가지고 있기는 합니다. 다만 저는 못된 짓 하는 원님을 ‘욕해야 한다‘에 방점을 찍다보니, 사실 이 생각을 못 했더랬습니다.

멀티버스와 디스토피아를 소환해주시는 유부만두님 식견에 저는 또 댄스를 ㅋㅋㅋㅋㅋ(오늘 에어켠 켰어요, 그래서 댄스 가능합니다)

깔끔한 옛이야기 만나면 다시 한 번 소개 타임 갖겠습니다. 근데 전반적으로 전래동화는 장르가 호러에요. 그죠? ㅋㅋㅋㅋㅋㅋ

2023-07-01 18: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7-01 18: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건수하 2023-07-01 19: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이야기 읽어본 듯도 한데… 그런데 끝이 저렇게 무서운 이야기인 줄 몰랐어요. 어릴 때는 무섭다고 생각 못한 거겠죠 ^^;

저도 모르게 누군가가 여러 명인 세상을 상상해 버렸습니다….. 🥶

저는 요즘 ‘장도리’를 보며 후원하며… 그 힘으로 견디고 있어요.

단발머리 2023-07-01 18:19   좋아요 1 | URL
그림이 귀엽고 글씨도 적어 진입 장벽은 낮은데 ㅋㅋㅋ 마무리가 장난 아니죠? 초고령화 사회에 가장 무서운 이야기 되시겠습니다.
저, 장도리 검색하고 왔습니다. 그림이 귀엽네요. 수하님에게 화이팅을 주는 고마운 장도리 ㅋㅋㅋㅋㅋㅋ

책읽는나무 2023-07-02 00: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욕심많고 비열한 원님!
부전자전이라고 원님이 닮았을 자기 아버지가 그득하게 되면.....원님만 괴로운 인생이면 될텐데...괜스레 모든 화를 불쌍한 백성들이 뒤집어 쓰게 생겼네요.
현생의 우리처럼요ㅜㅜ

좀 밝은 이야기로 옛이야기 3탄을 기대하겠습니다.
단발 님 참 이야기꾼이십니다.^^
하지만 나라 이야기는...에혀....ㅜㅜ

단발머리 2023-07-04 18:29   좋아요 1 | URL
원님 아버지는 원님처럼 욕심쟁이일테니까요. 원님이 고생 많이 해야할텐데... 책나무님 말씀처럼 불쌍한 백성들이 원님 아버지 봉양해야 하나 급 걱정되네요.

3탄도 기다리시면 제가 또 ㅋㅋㅋㅋㅋㅋ 책을 많이 읽을게요!!

독서괭 2023-07-03 13: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윽 저는 저 이야기에서 독에 빠진 사람이 아버지가 아니라 아들인 걸로 봤었어요. 아버지 쪽이 훨씬 무섭네요;;; 아마도 원님보다 원님 아내가 더 무서웠겠죠? 저라면 도망갈 듯..

단발머리 2023-07-04 18:30   좋아요 1 | URL
아들이 독에 빠져도 큰일이지만 ㅋㅋㅋㅋㅋ 역시 아버지 쪽이 무섭겠죠. 아내, 자식, 어머니가 아닌 아버지가 여럿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원님은 고생 좀 해야 합니다!!
 
러스트벨트의 밤과 낮 - 여성 철강 노동자가 경험한 두 개의 미국
엘리스 콜레트 골드바흐 지음, 오현아 옮김 / 마음산책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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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차별과 혐오를 넘어 통합을 노래하는 여성 철강 노동자의 목소리’로 읽을 수도 있겠으나, 그보다는 ‘양극성 장애 분투기’로 읽는 것이 더 정확해 보인다.


가난하고 공화당을 지지하며 기독교인인 미국인들의 생각을 엿볼 수 있고, ‘임신중단’이 미국에서 얼마나 정치적으로 극명한 주제인지도 확인할 수 있다.


책 뒷면, 사회학자 오찬호의 분석이 제일 명확하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의 제일 주요한 문단은 여기 399쪽이다.




어린 시절에 들은 온갖 상투적인 말이 일시에 떠올랐다. 꿈꾸면 이룰 수 있어! 너는 무한한 잠재력을 가진 특별한 꽃이야! 맞는 말이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었다. 어쩌면 하나의 문화로서 우리는 이 빌어먹을 특별하다는 감정에 매료된 나머지, 나라를 온통 집어삼킨 개인주의의 유독성에 눈을 감았는지 모른다. 우리는 독선과 거만, 개인적 쾌락, 개인적 이야기, 개인적 믿음, 개인적 자만에 꼼짝없이 예속되어 눈가리개를 한 채 이데올로기에 매달리기를 원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깊이 들여다보지 않아도 되는 공간을 선호했다.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의 복잡다단한 면을 존중하지 않아도 되고, 뜻을 달리하는 사람들과 공동체를 이룰 필요도 없으며, 우리의 현실을 복잡하게 만들거나 부정하는 것들이라면 제거하고 무시할 수 있는 그런 공간을 선호했다. 공동체 대신에 열차 사고와 재앙과 스캔들을추구했다. (399쪽) 




의사들은 혼합 상태의 양극성장애가 제일 위험한 형태 가운데 하나라고 말한다. 울증은 자살 충동을 일으키고 조증은 충동을 더한다. 혼합 상태의 양극성장애를 가진 사람이 자살을 결심하면 실행할 가능성이 훨씬 높다. 이런 발병 시기 중간에는 속수무책으로 변덕에 휘둘린다. 미사일에 묶인 채 고요한 도시로 날아가는 걸 무기력하게 지켜볼 따름이다. 그러다가도 허공에 대고 재잘거리는 귀뚜라미가 된다. 줄에 매달린 꼭두각시였다가 꼭두각시의 목소리를내는 술 취한 복화술사로 변하고 그다음 순간에는 이상하게도 꼭두각시놀음을 창가에서 지켜보는 관음증 환자가 된다. 한마디로 아이를 키울 수 있을지 스스로 회의하게 하는 그런 질병이었다. - P49

"제발, 성모 마리아님, 제발요."
몇몇 신자는 소지품을 챙겨 뒷문으로 살짝 빠져나갔다.
"제발요."
오르간 연주가 끝나는 것에 맞춰 부모님은 몸을 돌리고 일어섰다. 눈가에 눈물이 고였지만 애써 참았다. 성모님은 침묵을 통해 말씀하신 거였다. 넌 스스로가 생각하는 것만큼 중요한 아이가 아니란다.
부모님이 입구를 향해 걸어갔고 나는 그 뒤를 따랐다. 스스로 평범한 아이라고 체념하려는 순간, 등 뒤에서 여자 목소리가 들렸다.
"그래, 잘 가거라."
나는 주위를 돌아보았다. 긴 의자들은 텅 비어 있었다. 부모님과언니를 빼면 복도도 비어 있었다. 목소리가 들릴 만한 곳에 다른 여자는 없었다. 엄마의 팔을 잡아당겼다.
"엄마도 들었어?" 내가 물었다.
"뭘 들어?"
"여자 목소리."
"여자 누구?"
"아니야, 됐어." - P58

친구들은 나를 버렸다. 부모님은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해했다. 입원을 1년에 몇 번이나 했지만 내 상태는 약물에 반응하지 않았다. 급기야 의사들은 전기충격요법을 쓰기에 이르렀다. 그 치료를 받는동안에는 일을 할 수도, 학교에 갈 수도 없었다. 치료에 필요한 강한 진정제는 정신을 혼미하게 했고, 부작용으로 사고력과 기억력은 온전하지 못했다. 페인트칠과 독서는 커녕 장도 보러 가지 못할 지경이었다. - P138

내가 보기에 토니는 쉽게 사랑할 수 있는 동물을 좋아하는 듯했다. 오후에 학교에서 돌아오면 문 앞으로 달려와 꼬리를 흔드는 개에게는 성의를 다했지만, 당장에 뿌듯함을 느끼게 해주지 않는 동물에게는 큰 열의를 보이지 않았다. 사고가 난 날, 나를 보러 왔을 때 토니는 내가 보여주고 싶은만을 보았다. 나는 잘 지내는 사람처럼 보였다. 집은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고 눈물이 흘렀던 자리에는 지친 미소가 자리 잡았다.
"재미있는 것 좀 할까?" 내가 물었다. "게임 할까? 아니면 점심 먹으러 나갈까?" - P155

후에 부시가 아프가니스탄을 공격하기로 결정했을 때 나는 안도했다. 이라크를 공격하기로 결정했을 때는 그를 지지했다. 오래 청취한 라디오 토크쇼는 가톨릭교회와 같은 교훈을 가르쳤다. 두렵지않은 게 두려웠다. 부시의 정책에 동의하지 않는 민주당 지지자들이 두려웠다. 불시에 우리를 공격할 수 있는 테러리스트들이 두려웠다. 두려움을 키우지 않는다면 악귀가 언제 나를 놀라게 할지 몰랐다. 그래서 나는 부시를 지지했다. 부시가 누구든 공격하길 원했다.
복수심에 불타 자기방어를 과하게 하는 것 같아도 상관없었다. 그것은 나약함을 느끼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 P185

‘미래의 남편감을 찾아 대학 생활을 하는 게 나쁜 일은 아니지만, 우리가 별 공통점이 없다는 건 분명해 보였다. 내가 다닌 여자고등학교에는 말괄량이가 수두룩했다. 우리는 목표도 이상도 높았다.
공부에는 진지한 반면 농담에는 무심했다. 5년 계획을 세웠고, 여자가 주부가 되기 위해 태어난 건 아니라고 믿었다. 프랜시스칸 대학교에서 만난 사람들은 생각이 다른 것 같았다. 미시즈 학위를 따고 싶다는 여학생의 말에도 움찔하는 사람이 없었고, 다들 신앙생활을 쉽게 했다. - P220

나는 ‘연대‘라고 쓰인 팻말을 손에 든 채 그 남자의 저주 섞인 비난으로부터 멀어져갔고, 그 순간 두려움이 메마른 나뭇가지처럼 툭부러져 내리는 걸 느꼈다. 애초의 생각과 달리 재생산권이나 정치적주장이 아닌, 실제로는 나를 떠난 적이 없는 믿음에 고양된 채 거대한 인파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이 믿음은 바리케이드의 양쪽으로-예전엔 제 자신의 신성함에 도취된 독선적인 십대 소녀로서, 지금은 어둠 속에서 속죄의 기도를 드렸던 여성으로서 나를 데리고갔고, 이제 나는 더 이상 어린 시절 배운 그 두려움에 빚지지 않았다. 반대 시위대의 외침은 분홍색 모자의 물결에 묻혀 점점 멀어져갔고 정치적 견해보다 더 깊은 무엇인가가 내 안에서 변화했다는 것을 나는 알았다. 어쩌면 그 긴 어둠의 시간이 지난 뒤, 예배당에서 드렸던 기도-여성으로 제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게 해주세요가 마침내 응답받은 것인지도 모른다. - P3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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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 2023-05-27 22:4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읽은지 몇 년 되어서, 오찬호 선생님의 리뷰? 추천사?가 있었는지 가물했는데, 단발머리님께서 알려주시네요.

˝분투기˝로 분류하신 단발머리님의 의견에 동조합니다.
그런 인상을 많이 받았어요.

완독 축하드립니다!

단발머리 2023-06-10 16:51   좋아요 1 | URL
완독 축하 감사드리려고 하니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되었네요 ㅠㅠ
얄라알라님 이번달에도 같이 읽기 화이팅해요! 벌써 10일이라고 합니다.

다락방 2023-05-28 12:3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완독하셨군요!! 고생하셨습니다!!

단발머리 2023-06-10 16:51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ㅎㅎ 벌써 6월이라서요. 6월 책은 주문했더니 바로 오더라구요.
이제 시작하면 되겠는데 말입니다. 허허.

책읽는나무 2023-05-28 23:3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시간 빠듯하셨을텐데...
완독 축하드립니다^^

‘양극성 장애 분투기‘
놓치고 있었구나 싶어서 아차..싶었네요.^^

단발머리 2023-06-10 16:53   좋아요 1 | URL
책나무님 축하 인사 감사드려요. 답이 넘 늦었네요 ㅠㅠ

저는 ‘정신 건강‘에 대한 이야기랑 종교 이야기가 제일 솔깃했거든요. 역시 책에서 각각 ‘꽂히는‘ 부분이 있는가 봐요.
우리 6월에도 화이팅입니다!!

건수하 2023-05-29 01:5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단발머리님 완독 축하드립니다! 바쁘고 피곤하셨을텐데 고생하셨어요.

저도 요즘 <미괴오똑>을 읽어서인지 - 여기서는 우울증을 다루지만 - 양극성 장애 얘기에 좀더 집중하게 되었어요.

단발머리 2023-06-10 16:59   좋아요 1 | URL
수하님 축하인사 감사해요. 답이 넘 늦었어요. 저는 어디서 무엇을 하고 다니나요......

전 <미괴오똑>을 전자책으로 읽었는데 지적으로, 또 (경험이라는 측면에서) 무척 자극적이었다는 기억이 있어요.
필리스 체슬러(우리가 서로 공유하는 바로 그이/카불의 신부)의 <여성과 광기>하고도 많이 겹쳐져 보였구요.
수하님 리뷰 기다리고 있을게요. 아니, 벌써 쓰셨을까요? ㅎㅎㅎ

건수하 2023-06-10 17:32   좋아요 1 | URL
저도 전자책으로 들었는데, 뭔가 써보려니 강렬한 느낌만 남아있고 잘 기억이 나지 않아서 다시 읽고 써보려고요 ^^

단발머리 2023-06-10 17:33   좋아요 1 | URL
더 시간 지나면 더 기억 안 납니다. (찰싹! / 회초리 소리) 서두르세요! ㅎㅎㅎ
 
Every Vow You Break : 'Murderous fun' from the Sunday Times bestselling author of The Kind Worth Killing (Paperback, Main)
피터 스완슨 / Faber & Faber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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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오늘의 교훈 : 


모르는 남자와 사랑에 빠지지 말 것이며, 남성연대를 얕보지 말고, 과학기술 발전의 나쁜 측면에만 집중하지 말라. 




2. 오늘의 문장 : She couldn't see it. 


나쁜 놈이 나쁜 속마음을 감추고 나쁜 짓 하려고 달려들 때, 그 진의를 파악하기는 불가능에 가깝다. 뭔가 부족해서 그녀가 알아채지 못한 것이 아니다. 그녀가 피해자가 된 것이 그녀의 잘못은 아니다.  




3. 오늘의 고전 : 독자여, 나는 그와 잤다. (Reader, she thought, I slept with him.) (44) 


당연히 바로 그 책. 독자여, 나는 그와 결혼했다,의 <제인 에어>.  











독자들의 성원에 힘입어 실사 공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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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독자여, 나는 그와 잤다.
    from 마지막 키스 2023-05-09 10:18 
    《기척》은 《제인 에어》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써낸 '레이철 호킨스'의 소설이다. 레이철 호킨스를 내가 들어본 것 같고 읽어본 것 같아서 검색해보니 읽은 작품이 없더라. 그런데 왜이렇게 이 이름이 익숙하지? 엄청 익숙한데? 하고 곰곰 생각해보니, 오호라, 폴라 호킨스였다. 내가 읽은 건 폴라 호킨스였어. 호킨스 라는 성 때문에 내가 들어본 것 같았구나!진 리스가 《광막한 사르가소 바다》를 썼는데 레이철 호킨스가 《기척》을 쓰다니. 《제인 에어》가 읽고나
 
 
건수하 2023-04-25 10:2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3번에 빵 터졌습니다 ㅎ

단발머리 2023-04-29 18:59   좋아요 0 | URL
저도 3번이 제일 마음에 듭니다. 하하하

다락방 2023-04-25 10:3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벌써 다 읽으셨군요! 멋져요! >.<

그나저나, 저는 저 문장 언젠가 써먹어 보고 싶네요.

독자여, 나는 그와 잤다. ㅋ

단발머리 2023-04-29 19:01   좋아요 1 | URL
저, 피터 스완슨 책 한 권 더 주문했어요. <죽여 마땅한 사람들>이요. 제가 함 읽어보겠습니다.

그 문장 써먹을 날이 꼭 있기를요^^

책먼지 2023-04-25 14:3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는 샬럿 브론테나 제인 오스틴이 저렇게 능청스럽게 독자에게 말 걸 때 진짜 너무 좋더라고요..💕

단발머리 2023-04-29 19:02   좋아요 2 | URL
네 맞아요 ㅋㅋㅋㅋㅋ 저두 그래요.
저렇게 작품 바깥에서, 작가가 독자에게 말 걸 때 엄청난 ‘권위‘가 느껴져서, 전 그래서 좋더라구요^^

책읽는나무 2023-04-25 14: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3번!!!
마구 상상되어지는 문장이군요?ㅋㅋ
근데 뜬금없는 질문인데요.
저 밑줄 사진 속 연필로 그으신 건가요?
어쩜 저렇게 예쁘게 그와 잤다는 문장에 그어지는 건가...싶네요?
단발 님이 하는 건 왜 다 예뻐보이는 건가요?
왜, 왜????^^

단발머리 2023-04-29 19:04   좋아요 1 | URL
저 밑줄 사진 속 연필로 슥슥 그었습니다 ㅋㅋㅋㅋㅋㅋ 가 아니고, 정성껏 그었습니다.
저 문장이 좋아서 정성들여서 그었습니다. 저 연필이 참 좋은 연필이구요.

저를 애정해주셔서 ㅋㅋㅋㅋㅋ 그래서 예뻐보이는 거 아닐까요? 헤헤헤. 앞으로도 많은 사랑과 관심 부탁드리고요!!

독서괭 2023-04-25 15: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독자여!!ㅋㅋㅋㅋ 패러디 재밌네요~~
원서 읽기 능력자 단발님 부럽다..

단발머리 2023-04-29 19:06   좋아요 1 | URL
네, 독자여! 저 패러디 너무 재미있었어요.
원서 읽기 능력자는 아니지만 부럽다고 해주셔서 샤라랑~~~~~~~~~ 💕

다락방 2023-05-02 09: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그런데요 단발머리 님. 이 책에 인셀이 나오나요?

단발머리 2023-05-02 20:39   좋아요 0 | URL
이 책에 인셀은 안 나오고요. 근데 인셀만큼 여성을 ‘의심하고 끝없이 미워하는‘ 남성들이 등장합니다.
떼로 등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