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계철선 잭 리처 컬렉션
리 차일드 지음, 다니엘 J. 옮김 / 오픈하우스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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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인생의 마지막 ‘그 사람‘이 꼭 나일 필요는 없지만, 나는 그 사람이 나였으면 좋겠네. 나였으면. 근데 당신은 예쁜 여자들만 좋아하더라. 사귀던 여자들 내가 다 봐왔잖아. 나쁘다, 당신. 리처 당신, 나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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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4-07-01 09:3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왜요 왜왜 무슨일이야 왜왜 왜요 ㅠㅠㅠㅠㅠㅠㅠㅠ왜 여기서 리처가 뭘 어떻게 하는데, 누구 만나는데요, 만나서 뭐하는데요!! 아놔 ㅠㅠ 저 아직 안읽었는데 이 백자평으로 제가 미칠 것 같다는 소식 전해드립니다.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단발머리 2024-07-01 09:37   좋아요 1 | URL
하고 싶은 모든 이야기를 제가 접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제가 접습니다, 왜요? 이건 모두 다 다락방님을 위한 것.
저는 리처를 좋아합니다. 얼굴 생김새에 대한 자세한 묘사가 나옵니다. 전체적인 느낌이나 혹은 상상하는 걸 넘어서 제 생각에는 제일 자세한 묘사가 아닌가 싶어요. 제 스탈이고요. 암튼 좋아합니다.
그러나, 전 이 책을 마치며 무척 슬펐고요. 난 잭 리처의 행복을 바라지만ㅠㅠㅠㅠㅠㅠㅠ 히이잉! (뛰쳐나간다!)
 
젠더와 민족 트랜스 소시올로지 11
니라 유발-데이비스 지음, 박혜란 옮김 / 그린비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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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성‘womanhood은 관계성의 범주이며 그와 같이 이해하고 분석해야 한다. 더욱이 민족성nationhood의 구성물들이 대개 ‘남성성‘manhood과 ‘여성성" 모두의 특정 개념들과 관련 있다는 것이 이 책의 주요 주장 가운데하나다.
이 책의 인식론적 뼈대는 지식이 상황적이며(Haraway, 1990), 한 가지 입장에서 나오는 지식은 ‘완성되지 못한다(Hill-Collins, 1990)는 인식에 기반한다. - P15

공/사의 이분법은 페미니즘을 비롯한 사회과학 문헌에서 여성을 남성의 정반대 극에 자리매김할 수 있는 이분법들 가운데 단지 하나일뿐이다. 그 밖에 자연/문명의 구분도 있다. 여성과 자연의 동일시는 ‘문명‘화된 공적 정치 영역에서 여성을 배제하기 위한 명분이었을 뿐만 아니라 어느 문화에서나 남성보다 여성이 사회적으로 가치가 덜하다는 사실을 설명하기도 했다. - P23

미셸 푸코(Foucault, 1980a)와 토머스 래커(Laqueur, 1990)가 지적했듯, 역사적으로 그리고 이에 따라 문화적으로 분명했던 것은 단지 모든 인간을 남성 혹은 여성으로 구성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는 것이다. - P28

게이튼스는 이런 종류의 사고에 대해 이들이 환경론적인가 본질주의적인가로 귀결되는 단순화된 이분법적 사회이론에 근거한다고 비판하며, 적어도 몸은 결코 수동적이지 않다고 지적한다. 몸은 언제나 성이 있는 몸이기 때문에 동일한 행위라도 그것을 남성이 수행하는 여성이 수행하는가에 따라 각기 다른 개인적·사회적 중요성을 지닐 수 있다. 다시 말해, 자아는 언제나 상황적이다. - P30

앤더슨에 따르면, 민족은 기술 혁신이 ‘인쇄 자본주의‘를 성립했을 때에서야, 즉 독서가 ‘엘리트‘로부터 다른 계급에로 확산되고 사람들이 고전적 종교언어가 아닌 자신들의 언어로 대량 출판물들을 읽기 시작하면서 언어적·민족적 ‘상상의 공동체가 성립되었다. - P40

메릴린 스트래던은 한 아이의 잉태가 지속적인 관계의 과정이기보다는) 단 한 번의 성행위의 산물이라는 개념과 마찬가지로 이는 유럽-미국 특유의 문화 지형도라고 주장한다(Strathern, 1996a; 1996b). 입양 아동들과 인공수정을 거쳐 태어난 자녀들이 이들이 성장하는 동안 지속적으로 돌보고 양육했던 부모들을 인정하지 않고) ‘참‘true 부모를 찾아 나서는 것이 유행이 된 상황은 이것이 서구적 유형의 정체성 구성이라는 점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 P60

정말 흥미로운 것은 사람들이 자신의 ‘진짜‘ 생물학적 혈통을 찾으려는 요구, 그리고 이 요구가 자기 정체성의 구성에 대해 갖는 직접적인 함의들이 발생함과 동시에, 다른 의학 및 유전 공학의 발달을 통해 인간의리고 최근에는 동물(돼지)의 신체부위를 이식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 P61

맬서스 정책의 효과는 매우 젠더적인 경우가 많다. 엄격한 자녀수 제한의 압력이 있는 곳에서, 그리고 남아가 사회 및 경제적 이유로 귀히 여김 받는 곳에서 낙태와 유아살해의 표적은 주로 여아들이었다. 중국이나 인도의 마을에는 맬서스 정책이 시행된 후 태어난 일정 연령집단이 100% 남성이라는 소문도 있다. - P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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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4-06-20 10: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단발머리 님, 저는 이 책 왜이렇게 어려워요? ㅠㅠ

단발머리 2024-06-20 11:23   좋아요 0 | URL
엄청 장난 아니게 어렵습니다. 힘내서 읽는 모든 분들에게 위로를 전합니다 ㅋㅋㅋㅌ참고로 전 재독인데도 어렵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
 
사나운 애착 비비언 고닉 선집 1
비비언 고닉 지음, 노지양 옮김 / 글항아리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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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나운 애착』을 읽고 쓴다.



내가 싫어하는 말 중의 하나가 '저거 꾀병이다'이다. 다른 사람의 고통을 손쉽게 재단하는 사람을 주의 깊게 본다. 고통에 대한 심오한 철학적 깨달음 때문이 아니라, 내가 그랬을 때 그런 이야기를 듣는 게 너무 힘들어서 그렇다. 아이 키우는 사람이 이 말을 하는 경우라면 더하다. 내가 보기엔 아이들만큼 어른들도 충분히 거짓말을 하는데 그런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거짓말쟁이'라는 굴레를 씌우는 게 잘못이다. 아이들은 금방 탄로 날 것이 분명한 사실을 왜곡하는 경우가 많은데(학원에 안 갔는데, 다녀왔다고 말하는 경우), 어른들은 더 계획적이고 치밀하다. 어른들은 보통 생략과 강조의 방법을 사용하는데(네, 그래요. 제가 그렇습니다), 일부 내용을 삭제하거나 다른 부분에 방점을 찍음으로써 중요한 사실이 보이지 않게 처리해 버린다. 아이들만큼 어른들도 거짓말을 잘하고, '저건 꾀병이야'라고 쉽게 말해버리는 건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자매품, 저 사람은 엄살이 심하다.



"저건 꾀병이야"라고 잘 말하지 않는 내가, "엄살이 심하네"라고 잘 말하지 않는 내가, 읽는다. 남편 잃은 아내의 슬픔에 대해 읽는다. 갑작스레 남편을, 내 인생의 사랑이라 확신했던 남편을 잃어버린 여인의 좌절에 대해 읽는다. 그 절박함을 읽는다. 처음부터 끝까지 이 시련의 주인공이 되겠다는 여성의 단호함에 대해 읽는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생각한다. 이건 너무 심하지 않아? 남편이 죽었다고 이렇게까지 한다고? 이거, 엄살 아니야?



슬픔을 표출하거나 감당하는 각자의 방식이 있다. 갑작스레 남편을 떠나보낸 사람들 곁에 있은 적이 있다. 잠깐 몇 시간을, 그리고 그 후의 시간을 같이한 경우도 있고, 3일 내내 같이 있었던 경우도 있다. 그중에 누구도 이렇지 않았다. 비비언 고닉의 엄마 같지 않았다.


엄마는 머리를 쥐어뜯고 살갗을 찢고 몇번씩 혼절했다. 누구도 감히 엄마에게 손을 대지 못했다. 엄마는 기이한 투명 막 안에 홀로 격리되어 있었다. 사람들이 엄마 주변을 에워쌌지만 어느 누구도 그 안으로 침범할 수 없었다. 엄마는 마법에 걸렸다. 귀신에 홀려 있었다. (245/829)


귀신에 홀린 것과 같은 상태. 실패와 좌절, 압도적인 절망감 앞에 그녀는 쓰러지고 또 쓰러진다. 그 광경을 지켜본 가까운 사람이 말한다.


물론 한 번씩 지머먼 아줌마가 스토브 앞에서 수프를 저으며 참지 못하고 구시렁거리곤 했다.

"하루 종일 미친 사람처럼 울고 자빠졌네. 나라면 말야. 집에 갔는데 남편이 죽어 있으면 경사났네 하겠어".(264/829)


절망에 빠진 그녀에게는 이 말이 들리지 않는다. 완벽한 좌절, 완결된 실패 앞에서 아빠 잃은 아이들은 조연이 된다. 동생 혹은 사촌형을 잃은 사람들은 엑스트라가 된다. 스포트라이트는 오직 고닉의 엄마에게만 비춰진다. '엄살이 심하군.' 이 생각이 다시 떠오르기 직전, 이런 문장이 머리를 스친다.



하지만 일어나려던 엄마는 마비라도 온듯 다리가 후들거리고 꼬여 다시 주저앉았다. 눈동자가 뒤집어지고, 사지는 흐느적거리고, 발은 땅을 딛기를 거부하면서 단두대에 끌려가는 사람처럼 문으로 억지로 끌려갔다.(260/829)


그러니까, 이 '눈동자가 뒤집어지고'에서 내 마음도 같이 쿵! 하고 내려앉는다. 그녀는 '... 하는 척'한 것이 아니라, 정말 그런 것이다. 다리가 후들거리고 눈동자가 뒤집어지고 발을 제대로 땅에 내딛지도 못하는, 그런 상황, 그런 상태인 것이다.


남편이 아니라, 사랑하는 남편을 잃어서. 가족이 아니라, 온 세계를 잃어서. 그녀는 울고 있다. 울부짖고 머리를 쥐어뜯고 살갗을 찢고 파놓은 무덤 속으로 뛰어든다.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잃어버려서, 다시는 찾을 수가 없어서.



이 책을 읽고 말하고 싶었던 건 당연히, 당연하게도 나의 엄마 이야기였다. 내 엄마가, 나의 엄마가 비비언 고닉의 엄마와 얼마나 다른지 쓰고 싶었다. 대학에 들어간 이후, 친구들의 엄마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 다종다양한 엄마들의 모습에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나는 툭하면, 엄마를 앞에 앉으시라 하고는 쉼 없이 이야기했다. 엄마, 엄마가 제일 착해. 엄마가 엄마들 중에서 제일 착해. 10년쯤 지났을까. 이번에는, 20대 후반에 들어선 사촌 동생들이 입을 모아 말했다. 엄마(우리 이모) 같은 엄마는 없어요. 이모(우리 엄마) 같은 사람은 없어요. 엄마, 이모 같은 엄마는 없어요.


이미 나는 많이도 놀랐다. 시몬 드 보부아르 엄마에서부터 시작해 고닉의 엄마까지. 나는 우리 엄마가 내 엄마라서 얼마나 다행이고 감사한지 모르겠다. 엄마의 딸로 태어나서 참 감사하고 또 감사하다. 나도 내 딸에게 '그래도 엄마가 착해. 엄마들 중에서 엄마가 착한 편이야.' 이런 말을 듣고 싶지만, 글쎄. 나는 그런 말을 들을 만큼 착한 엄마는 아닌 것 같고. 우리 딸도 이리 말해줄것 같지 않아 쿨하게 접는다. '우리 엄마가 제일 착해' 이 말은 아빠에게나 많이 해드려야겠다.



후반부에는 고닉의 사랑 이야기가 나오는데, 그 부분을 읽으면서 비로소 『끝나지 않은 일』에서 고닉의 문장들이 이해됐다. 자세히 쓰고 싶은데 앞으로 이 책을 읽으실 분들의 즐거움을 앗아가지 않기 위해 여기까지만 쓴다. 참고로 이 책은 1987년에 나왔다.


고닉이 만난 남자들 가운데 니노(개새)와 비슷한 남자가 1명 나온다. 일부다처제에서 살았으면 참 좋았을 그런 남자. 니노 뒤의 괄호는 '페란테 피버'의 <나폴리 4부작>를 읽으신 분들만 동의하실 수 있을 테지만, 적어도 내게 니노는 그런 사람이라 저 표현을 포기할 수는 없다. 사실 괄호도 내가 많이 양보한 거다. 오히려 그 특정 동물에게 미안해지려고 한다.


바로 『짝 없는 여자와 도시』를 시작했다. M리의 서재에 있어서 읽기도 간편하다. 『아무도 지켜보지 않지만 모두가 공연을 한다』는 구입하려고 한다.

고닉이 나를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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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아 2024-06-13 10: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니노는 정말이지 역대급 (개새)가 맞습니다. 지금도 생각만 하면 절레절레...ㅋㅋㅋㅋㅋ 와 <사나운 애착>을 아련하게 떠올리게되는 그런 글입니다. ^^ 저는 언급하신 장면들에서 울다가 또 웃기도 했더랬죠. 정작 고닉은 옆에서 힘들었을 것 같기도해요. 그러고보니 제목 참 적절합니다.

단발머리 2024-06-14 11:20   좋아요 1 | URL
네, 미미님. 역대급 개새 니노는 정말 타의 추종을 불허합니다. 그런 니노를 사랑하는 레누의 심정에 대해서는 나중에 같이 이야기해 봐요^^

저는, 고닉의 엄마를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진이 빠지더라구요. 어린 고닉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싶어서요. 에휴...

잠자냥 2024-06-13 10: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왜 안 고치셨죠? ㅋㅋㅋ

단발머리 2024-06-14 11:20   좋아요 0 | URL
진지하게, 겁나 진지하게 고칠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고치는 게 나아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24-06-13 11: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단발머리 님은 아무리 화가 나도 보통 글에 욕을 쓰지 않으시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새‘라고 표현하신 걸 보니 니노에 대한 분노가 얼마나 큰 지, 그 놈이 얼마나 나쁜놈인지 나폴리 시리즈 안읽은 사람들도 알 수 있을듯합니다. 니노 으.. 너무 싫어요. 으.. 싫어.

저는 고닉의 글보다 고닉을 읽고 쓴 단발머리 님의 글이 더 좋습니다. 그리고 고닉이 있어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고닉이 단발머리 님께 읽을 거리를 주고 생각할 거리를 주고 쓸 거리를 주어서 정말 감사합니다!!

단발머리 2024-06-14 11:23   좋아요 1 | URL
네, 그렇습니다. 저는 글에 욕을 쓰지 않는 편인데, 정말 니노에 대해서라면 ‘개새‘도 아깝습니다. 니노 같은 인간의 승승장구에 대해 저는 관심이 많습니다. 자매품: 빌 클린턴

다락방님의 감사한 마음, 고닉님에게 꼭 전해드리고 싶어요. 사실 저는 인상에서부터 고닉이 별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였거든요. 그래서 이름 알아도 얼굴 보고 안 읽은 ㅋㅋㅋㅋ 이제 제가 정말 사랑하고 아끼는 작가가 되셨습니다. 내 안에 고닉 있다! 이런 거 한 번 해야겠어요!

2024-06-14 11: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4-06-14 11: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가부장제와 자본주의 - 여성, 자연, 식민지와 세계적 규모의 자본축적 아우또노미아총서 45
마리아 미즈 지음, 최재인 옮김 / 갈무리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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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독이라 쉽게 넘어갈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탁탁 걸리는 문장들을 자주 만났다.

 


여성은 가축이 되었다. (156)

결혼제도는 남성과 여성과 재산을 축적하는 메커니즘이었다.(157)

여성은 영원한 소수자가 되었다. (169)

사냥꾼-남성은 기본적으로 생산자가 아니라, 기생자이다. (172)

우리의 현재 가족 개념은 부르주아의 가족 개념이다. (234)

여성 노동력은 저렴했다. (235)  

 


인류가 사냥꾼에서 목축유목민이 되는 과정, 목축유목민에서 농경 생활을 바탕으로 정주하게 되는 과정, 자본주의가 등장해서 발달하는 과정에서 사회 변화의 동력은 경제적 이해(이득)’.

 


사냥꾼 사회에서 목축유목민으로 넘어가는 과정에 가장 먼저 가축화된 것은 여성이었는데, 이는 여성만의 고유한 능력, 재생산(출산) 능력 때문이었다. 이웃 부족과의 전쟁 이후 상대 부족 남성들을 모두 살해했던 이유는 위험 요소만 가중시킬 뿐 쓸모가 없었기 때문(159)이고,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여성과 어린이들은 전쟁에서 승리한 부족의 소유가 되었다. 정확히는 사유 재산이 되었다.(158)

 


반복하자면, 당시 사회 구조 속에서 납치와 탈취로 여성 또는 여성의 육체를 얻는 방식은 다른 어떤 방법보다도 빠르고 확실한 부의 축척 방식이었다. 인류 초기의 남성과의 주도권 싸움에서 패한 여성, 여성 집단은 오늘날까지도 그 패배의 영향 아래 살고 있다. 여성 혐오는 인류 문명의 근간이 되었고, 이를 바탕으로 한 정치, 경제, 문화적 압박은 여성을 인간이 아닌 여성으로만 한정했다.

 


생산자이자 노동자인 여성을 외부에서 더 많이 데려오기 위해 습격과 노예제를 이용하는 대신, 승혼제도로 발전시켰다. 이를 통해 유력자는 자신의 공동체나 계급에 속한 많은 여성에게 접근할 뿐 아니라, 약한 남성의 여성에게도 접근했다. 여성은 불균형 혹은 불평등한 결혼시장에서 하나의 상품이 되었다. 좀 더 많은 여성을 통제하는 것이 곧 부의 축적으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163)

 


봉건시대에도 여전히 여성은 교환 상품으로 취급되면서 하나의 상품으로 기능한다. 그런 상황에서, 여성의 신분은 중요하지 않다. 왕국의 공주이건, 가난한 농민의 딸이건, 상관없이 남성들의 정치적 이유 때문에 여성은 거래되고 교환된다. 이 경우에도 가장 중시되는 것은 경제적 이해관계다.

 


여성은 자신의 생산성, 자신의 섹슈얼리티, 자신의 생식 능력에 대한 통제권을 자발적으로 남편과 유력자(교회, 국가)에게 넘겨주지 않았다. 수세기 동안 성적 생산적 자율성에 대한 가장 잔혹한 공격을 당한 끝에 유럽 여성은 의존적이고 길들여진 가정주부가 되었다. 오늘날 우리는 이런 원리 아래 살고 있다. 아프리카에서의 노예 습격과 대응하는 것이 마녀사냥이다. (168)

 


대부분의 희생자가 여성이었다는 점, 이를 통해 산파들이 출산 과정에서의 주도권을 빼앗겼다는 점, 여성 집단에 대한 혐오가 극에 달았다는 것에 더해, 어쩌면 이보다 더 중요한 측면은 경제적인 부분일 것이다. 말 그대로, 마녀사냥은 돈이 되었다. 마녀재판에 관계했던 변호사나 집행관들에게는 재판에 들인 노고와 시간을 보상하기 위해 사례금이 지급되었고, 처형된 마녀의 재산은 모두 선제후에 의해 압수되었다. (197)

 


신대륙의 발견(?)과 제국주의 침략으로 인해 식민지 본국은 막대한 경제적 이익을 얻게 된다. 내부적으로는 식민지 본국의 여성들을 가정주부화하고, 식민지의 자연과 본토인들을 폭력적으로 착취하고 억압한 결과다. 그 일은 유럽의 백인 남성들에게 돈이 되었다’.

 


처음에는 부르주아 여성이 그다음으로는 노동계급의 여성이 핵가족 결혼제도안에 묶이게 되었다. 여성의 재산권은 극도로 제한되었고, 기혼 여성이 일하고자 할 때 남편의 허락이 필요했다. 기혼 여성의 임금은 남편의 재산으로 귀속되었고, 그마저도 일할 기회를 얻지 못한 여성들은 가정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날 길이 없었다. 경제적으로 고립되었기 때문이다.

 

 



피 묻은 여성 운동의 결실로 이제 여성에게 불가능한 일은 없는 것처럼 보인다. 여성은 이제 투표할 수 있다. 여성도 대통령이 될 수 있고, 총리가 될 수 있으며, 대법원장이 될 수 있다. 그룹의 총수가 될 수 있고, 과학자가, 의사가, 교수가 될 수 있다. 자유주의 페미니즘의 주장은 옳고, 옳은 측면이 있다. 하지만, 이제는 바야흐로(?) 신자유주의 시대다. 정희진은 신자유주의 체제를 개인을 보호하는 공동체나 사회 구조가 작동하지 않고, ‘각자 알아서살아야 하는 통치 방식이라고 말했다. (<다시 페미니즘의 도전>, 9) 우리는 그 시대에 도착했다. 이미 도착해 버렸다. 가부장제를 이겨버린 신자유주의의 위용에 압도되지 않을 사람이 없다.

 


여성의 납치로 재산을 축적했던 시대를 거쳐, 마녀사냥을 통해 돈을 벌었던 시대가 지나갔다. 여성에게 돈을 빼앗아 남자에게만 재산권/상속권을 주었던 시대가 저물었고, 여성의 교육을 적극적으로 방어하고 여성을 가정에만 묶어두어 남자만 경제적 이득을 얻었던 시대가 끝났다. 여성의 진입이 불가능했던 여러 직업군에 이제 여성도 진출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제 여성도 돈을 벌 수 있다. 자신의 생활을 자신의 힘으로 꾸려갈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를 정희진은 <신자유주의 통치와 페미니즘/알라딘 아카데미> 강연에서 이렇게 표현했다. “신자유주의가 만들어낸 환경 속에서 각자도생의 진정한(?) 남녀평등이 이루어졌다.”  

 


이를 내 위치/자리/처지/환경에 적용해 보자. 나는 가사 노동을 주로 하고, 사회적 계약 관계에 들어가지 않은 전업주부로 19년을 살았다. 나는 그 누구에게서도 1원 한 푼 받지 않았다. 받지 못했다. 그건 내가 일을 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나는 태업 주부이고, 불량 엄마이지만, 아무튼 나도 가정을 꾸려나가기 위해 얼마간의 일을 했다’. 하지만, 내 일은 국가 경제 지표에 포함되지 않는, 추상적으로만 존재하는 것이기에, 나는 돈을 받지 못했고, 사회적으로 문화적으로 노는 사람으로 분류되었다. 남편이 벌어오는 수입의 일부가 나의 노동에 빚진 결과물이지만, 그 일부가 내 것이라고 말할 수 없었다. 그 돈과 나의 연관성을 밝힐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내가벌지 않았다는 이유에서였다.

 


작년부터 일을 시작한, 사회적 고용 관계에 들어선 나는, 비정규직이라고 부르지도 못할 일용직노동자다. 사람들이 부러워할 만한 일은 아니지만, 부끄럽거나 하찮은 일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인간 성장의 중요한 한 순간과 내 일이 맞닿아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내가 만나는 사람들, 아이들을 소중하게 여기고, 내 힘을 다해 그들을 진지하게 대하려 애쓴다. 하지만, 은 그렇게 취급받지 않는다. 내가 하는 일은 전통적으로 여성이 하는 일로 인정받는 것이기에, 나 역시 그렇게 인식된다. 내 노동은 그 중요성에 비해 철저하게저평가 당한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에 드디어 도달했다.

 


남성이 여성을 납치해 재산으로 삼은 것이 돈이 되었고, 마녀사냥이 돈이 되었고, 여성의 재산권을 탈취하는 것이 돈이 되었고, 여성의 정치적 자유를 구속하는 일이 돈이 되었던 시대를 지나왔다면. 힘겹게 그 시대를 일정 부분 탈출했다면.

 


이제는 왜 어떤 것은 돈이 되고, 어떤 것은 돈이 되지 않는지 물어야 한다는 것이다. 외국인 노동자의 노동력을 부당하게 이용해 돈을 버는 것, 부동산으로 돈을 버는 것, 버닝썬을 운영해서 돈을 버는 것이 옳지 않다는 생각을 넘어, 그런 것만이 돈이 되는 세상에 대해 물어야 한다는 것이다. 돌봄의 가치가 제대로 평가받아야 하는 이유와 근거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어떤 사람보다 백 배나 중요하다는 생각에 우리가 동의하지 않는 만큼, 왜 어떤 사람의 급여가 어떤 사람의 급여보다 320배나 많은지 물어야 한다. 원래 그런 것이 아니라, 그런 인식 자체가 사람들의 사고 속에서 만들어진 것임을 이제는 알고 있으니 말이다.

 



금요일 피곤한 저녁, 퇴근 후 교회 가기 전에 한쪽을 썼다. 토요일 아침, 수험생 아침을 차리고, 크린토피아에 교복 바지를 맡기고, 커피를 사 들고 와서 두 문단을 썼다. 설거지를 하고, 중간중간 세탁통 청소를 하면서 나머지를 썼다. 청소기를 돌리고 나서 지금 이 문단을 쓴다. 이제 다림질만 남았다.

 


보이지 않는 가사노동과 저평가된 돌봄노동에 대해 써야한다고 생각한다. 아무도 강제하지 않았지만, 이 일들의 의미파악, 의미부여, 의미생산, 결론도출의 책임이 나한테 있다고 느낀다. 아무도 시키지 않았지만. 나 혼자. 아무도 모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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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과함께 2024-06-01 21: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재독 축하드려요~ 수고하셨어요!!

단발머리 2024-06-02 15:36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햇살과함께님!
훌라춤을 추고 있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공쟝쟝 2024-06-02 17:1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요 글을 읽고 (긴박하게 뭐라도 써야한다) 버튼이 눌려서 일하다 말고 토닥토닥 썼습니다.
자유주의 페미니즘은 민희진. 신자유주의 (를 함께 사유하는) 페미니즘은 정희진 되시겠습니다 ㅋㅋㅋㅋㅋ
저는 돌봄에 관심이 많아요. 그래서 단발머리님의 글에 관심이 많습니다. 아무도 시키지 않았지만 쓰도록 하세요.ㅋㅋㅋㅋㅋㅋㅋ
요즘엔 보이지 않는 가사노동을 가시화(sns 전시) 시켜서 돈을 버는 현상들도 많아요. 영향력이 돈이 되는 시절. 모든 것이 수익화 구조로 연결되는 플랫폼 신자유주의 시대에서. 나를 돌보고 타인을 돌보는 수익없는 무익함에 대한 이야기가 어떤 힘을 가질 수 있을지. 선생님은 이상적이시구나. 라는 말을 하면서도. 저는 거기에 배팅하기로 했어요. 왜냐믄... 돈 버는 거 잼없고 힘들당. 헥헥. 돈 마니 줘도 안할 거 같당.

단발머리 2024-06-03 09:05   좋아요 2 | URL
자유주의 페미니즘은 민희진. 신자유주의는 정희진님 되시죠. 모두 희진으로 끝나야 가능해지는 세상 ㅋㅋㅋㅋ
최고로 돈 많이 벌어다 주는 능력 있는 여성이라도 남성 중심의 사회에서 살아남기 얼마나 힘든지를, 민희진님이 보여줬다고 생각합니다. ˝맞다이로 드루와!˝는 더욱 그러하고요.
나를 돌보고 타인을 돌보는게 수익이 될 수 없고, 없을 듯 하다면, 다른 해답을(해답이라고 하기에도 좀 뭣하지만요) 찾아야 한다고 생각하고요. 전 그래서 다시 ‘기본소득‘. 로봇은 일하고 인간은 노는 세상, 그런 세상을 꿈꿉니다.

쟝님 안의 눌림 버튼 내 안에 있다!라고 자랑하고 싶은데, 쟝님 글(https://blog.aladin.co.kr/jyang0202/15585176) 너무 좋네요.
내가 쓰고 싶은 글이에요. 부럽고 존경합니다!!

다락방 2024-06-02 17:4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번에 재독하면서 두 가지에 놀랐는데요,
하나는 이 책이 너무나 좋다는 사실이었어요. 현실 감각에 있어서도 그렇고 철저하고 날카로운 분석에 있어서도 그렇지만, 그 해결 방법에 있어서도 그랬습니다. 게다가 그 사이사이 좌절하려는 저를 호되게 질책하며 다시 일으켜세워주는 것 같았어요. 정신 바싹 차리라고 하는 것 같아서 좋았습니다. 역시 책이 있어야 된다고, 누군가 써준 글이 필요하단은 생각을 했어요. 무너지려다가도 누군가의 어떤 글이 힘이 되기도 하는 거니까요.
두번째는 그런데 단발머리 님이 평소에 하시는 말씀이나 쓰는 글이 이 안에 다 있다는 거였어요. ‘아 단발머리 님이 이 책이 좋다고 말씀하셨던 건 다 이유가 있구나‘ 부터 시작해서, ‘단발머리 님의 그 생각들은 여기에서 왔을까?‘하는 것까지, 정말 단발머리 님 생각이 많이 나는 책이었습니다. 그런 한편, 저도 고개 끄덕이고 동의하면서 제가 ‘늦되다‘는 생각을 역시나 했어요. 단발머리 님은 이 책을 읽고 바로 캐치하셨던 것을, 저는 재독에야 비로소 담아둘 수 있겠단은 생각을 했거든요. 저는 늦되기 때문에 남들보다 더 부지런해야겠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앞으로도 많은 지도편달 부탁드립니다.

단발머리 2024-06-02 19:48   좋아요 3 | URL
저는 ‘이 과정은 고통스러운 과정이다‘라는 그 문장에서부터 이 책을 읽는 일이 괴로울 것이라는 예감을 했어요. 이번에 다시 읽으면서도 여전히 그런 시간이 이어졌구요. 그럼에도 다락방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철저하고 날카로운 분석으로 끌어가는 책이다 보니, 마리아 미즈의 설명과 해석, 그리고 해결책에 대한 모색이 너무나 저에게, 그리고 현시대를 같이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걸 몰랐으면 어땠을까, 이 책을 읽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라는 생각을 해보기도 했구요. 신의 한수와 같은 다락방님의 책선정 감식안에 다시 한 번 박수를 보내고 싶어요!!

이 책을 읽으며 제 생각을 많이 하셨다니.... 정말 너무너무너무 좋네요. 제가 좋아하는 책도 작가도 많지만요, 이 책은 그 중에서도 정말 좋아하는 책이구요. (하지만 원서는 능력치 밖.... 원서 읽기 도전했다가 3쪽만에 아웃ㅋㅋㅋㅋㅋㅋㅋ).
여성주의를 읽어가는 여러 방식과 태도가 있겠지만, 저는 ‘이해‘ 보다 중요한게 ‘감응‘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사실 저는 아직도 그게 잘 안 되고요. 다락방님이 여성주의를 읽는 방식과 태도 덕분에 <여성주의 책 같이읽기> 모임이 이렇게 오래 갈 수 있는것 같아요. 감동과 이해, 분노와 해석이, 그 적절한 균형과 조화가 우리의 읽기를 더 깊이있게 해줄거라고 믿어요. 저야말로,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우리, 오래오래 같이 읽어요!! 😘😍🥰
 
끝나지 않은 일 비비언 고닉 선집 3
비비언 고닉 지음, 김선형 옮김 / 글항아리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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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럽기는 한데, 사실은 사실이다. 이 책을 읽을 때 이 책이 꼭 나를 위해 쓰인 것만 같다고 느꼈다. 신기하게도. 내가 꼽은 문단은 여기다.



하지만 소설들과 나란히 발맞춰 등장한 긴츠부르그의 에세이들이야말로 나에게 직접 말을 걸어온 글들이었다. 딱 때맞춰, 꼭 나를 위해 쓰인 것만 같은 글들. 거기 그 에세이들 속에서 우리는 서술하는 페르소나의 창생을 보았다. 이 페르소나는 소설에 표현된 것과 똑같은 내면성에서 출발하되 어조와 조망의 관점은 확연히 달라서 논픽션 산문으로 은유를 창출하는 고전적 기예를 쓰면서도 차별화된 모더니즘적 특징을 확보했다. (157쪽)



고닉은 긴츠부르그의 에세이가 자신에게 그런 글이라고 말했는데, 내게는 고닉이 그랬다. 작년, 나의 발견. 작년에 읽은 책을 정리한 페이퍼에서 『상황과 이야기』를 말하며 나는 이렇게 썼다.



... 이 책이 ‘특별히’ 좋은 책이기는 하지만, 무엇보다 내가 이 책을 만났어야 하는 때에 만난 것이 신기하고 놀랍다. 오래 고민하고 궁금해하던 답을 이 책에서 찾았다. ‘논픽션 페르소나’에 대한 글을 머릿속으로 반 정도 써두었는데, 첫 문장이 떠오르지 않아 내내 미루고 있다. ‘나는 이 책으로 나를 가르친다’는 이슬아 작가의 말을, 이제는 이해할 것도 같다. (단발머리 페이퍼)



고민의 일부가 해결되었을 때 느껴지는 해방감, 쾌감, 즐거움을 나는 고닉의 문장에서 찾았다. 픽션뿐 아니라, 논픽션을 쓰는 사람도 페르소나를 쓴다는 것. 그 페르소나를 실제의 나와 분리해도 된다는 친절한 설명. 페르소나 속의 나는 훨씬 더 객관적이고 근사한 사람이어도 된다는 허락. 나는 마음껏 기뻤다. 한편으로는, 또 다른 깨달음이 찾아왔는데, 나의 것이든 혹 다른 사람의 것이든 논픽션 페르소나에 심취할 필요는 없다는 거였다. 일종의 주의사항이라고 할 수 있는데, 아름다움에 대한 찬미와 부끄러움과 후회, 성찰과 회복이 진실이 아니라거나 잘못되었다는 뜻이 아니라, 페르소나를 쓰고 있는 한 그건 어디까지나 작위적일 수 있다는 것. 그러니까, 이 한 문단을 쓰면서도 내가 (←)를 얼마나 많이 눌렀는지를 생각해 보면 될 일인데, 만들어진 것은 그 무엇이든 창작자의 의도가 숨어 있다는 것을 잊지 말라는 거였다. 내가 나에게 주는 위로 그리고 내가 나에게 주는 경고.



이 책에서 제일 주요한 거라면 아무래도 '다시 읽기'가 아닐까 싶다. 다시 읽는다는 것. 처음 읽을 때 보지 못한 것을 발견하는 순간들은 찬란하고 고요하다. 두 번 읽을 책이 아니면 아예 읽지 않는다는 원칙 아닌 원칙을 세웠던 때가 있었다. 지금도 금방 책을 고르지는 못하는 편인데, 그때는 진짜 책 고르는 데 시간이 많이 들었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며 좋은 책을 읽고 시간이 흐른 후에 다시 그 책을 읽는 것이 얼마나 기쁜 일인지 확인하게 되니 다시 그 원칙이 생각나기는 한다. 좋은 책을 골라 정성 들여 읽고, 머지 않은 시간에 그 책을 찾아 '다시' 읽기.

고닉의 페미니즘 모먼트(20쪽)는 더 이상의 부연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이고, 엘리자베스 스태턴의 연설문에 대한 부분은 유수님의 페이퍼를 참고하셔도 좋을 듯하다. 읽어야할 페이퍼가 2개이니 그것도 참고하시길.

(https://blog.aladin.co.kr/727621184/15544300https://blog.aladin.co.kr/727621184/15538317)


엘리자베스 스탠턴의 이야기는 나 역시 읽다가 멈춘 부분이고, 이것이 가부장제의 근간이 되는 '강제적 이성애'와 어떻게 결합하여 작동하는지에 대해 고민했던 부분이다. 다만 '실존'이라는 측면에서, 모두가 혼자이고, 또 혼자일 수밖에 없지만, 죽을 때까지 연결을 원하는 심경, 합일에 대한 갈구가 인간 본성의 부인할 수 없는 측면이라고 생각한다. 육체 안에 갇혀있기를 거부하는 힘이 인간 내부에 존재한다고, 나는 믿고 있다.

이야기하고 싶은 부분이 많지만, 오늘은 어제 올린 페이퍼와 관련된 문단만 올려보기로 한다. 긴츠부르그와 그의 두 번째 남편 간의 삶을 문학적으로 활용한 에세이가 「그와 나He and I」이다. 역사의 총아이고 의례적 숭배의 대상이 되는 결혼이 결혼 생활을 거치면서 어떻게 불행하게 만들어져 가는가를 그려낸 작품인데, 그 작품에서 불행은 화자 한쪽에게만 닥친 것처럼 보인다. 온갖 피해를 초래하는 건 전적으로 그, 그 남자다! 하지만, 저자는 서서히 자신이 이 불행에 공모하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아, 또 나오는 것인가. 그놈의 쌍방과실!

"남편이 한 번 실수를 저지르면, 나는 그가 못 참고 기어이 분통을 터뜨릴 때까지 그 얘기를 하고 하고 또 하곤 했다." 새로운 발견이다. 고함 지르기와 신경 긁기가 맞물려 소정의 역학이 생겨나고, 그 역학은 애매모호함에 빌미를 주고, 그 애매모호함이 관계를 규정하는 짜증스러움을 담보하게 된다니.(159쪽)

삶의 역학. 그 끝없는 복잡함. 완벽한 가해자는 없고 완벽한 피해자는 없다. 전적인 잘못이란 없으며, 피해자 역시 불행에 공모할 수 있다. 이 모든 것은 쌍방과실이며.... 나의 책, 나의 고뇌. 고닉의 페이퍼를 푸코의 문장으로 마무리 짓는다. 고난과 역경을 헤쳐 나가기가 쉽지 않을 것이나, 그것이 전혀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권력은 그들을 포위공격하고, 그들을 거쳐 가고, 그들을 가로질러 간다. (『감시와 처벌』, 6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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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수 2024-05-27 15:1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선좋아요 후 하원하려다 읽어버림 중..

단발머리 2024-06-07 16:56   좋아요 1 | URL
고닉은 사랑입니다. 하트뿅뿅!
먼댓글 서비스가 잠정적으로 중단됐어요 ㅠㅠㅠ 유수님 페이퍼랑 딱 엮고 싶었는데 그게 안 돼서 좀 아쉬워요.
아쉬운대로 유수님 글 링크 똭! 걸었습니다. 무척 기쁘게 생각합니다!!

다락방 2024-05-27 15:2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맞춤할 때에 내개로 온 책이 있다는 것은 정말 행운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점에서 행운을 맞이하시 것 축하드리고요! 사실 저의 경우에는 너무 재미있게 읽은 책들에 대해서 그런 생각을 종종 하곤 합니다.

저는 고닉의 책을 한 권 읽고 더는 읽지 않는데요, 최근에 이 책에 대한 상찬이 여기저기 올라와서 흐음 한 번 더 도전해볼까 했거든요? 그런데 단발머리 님이 이 페이퍼에 옮기신 인용문들을 보니 저는 역시 고닉과는 친해질 수 없을 것 같아요. 저에겐 문장이 너무 어렵습니다. 저는 고닉의 책을 읽고 감탄하는 단발머리 님의 페이퍼를 읽는 걸로 대신하겠어요!!

단발머리 2024-06-07 17:01   좋아요 0 | URL
네, 맞아요. 저도 사람이 만날 때가 있는 것처럼 책도 만날 때가 있다고 생각해요. 꼭 저를 위해 쓰인 것 같은 글을, 딱 맞춤할 때 만났습니다. 너무 행복했고요, 축하말씀도 감사합니다 ㅋㅋㅋㅋㅋㅋㅋ

제가 읽어보니 (겨우 3권 읽음) 고닉의 스펙트럼이 넓은 거 같아요. 왜 <사나운 애착>이 제일 큰 센세이션을 일으켰는지 알겠고요. 그래도 전 아직은 <상황과 이야기>가 좋고요. 할 이야기가 많아요ㅎㅎㅎ 페미니즘에 대해서, 이성애에 대해서, 짝을 이루며 사는 것, 그리고 이별과 외로움에 대해서도요. 찬찬히 풀어보겠습니다^^

2024-05-27 16: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4-06-07 16: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4-05-27 20: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4-06-07 16: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그레이스 2024-05-27 22: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빨리 읽고 싶어요 ㅠ

단발머리 2024-06-07 16:15   좋아요 1 | URL
전 다 읽고 나서 얼마나 아깝던지요. 바로 <짝 없는 여자와 도시> 들어갔습니다.
그레이스님도 저처럼 좋은 시간 가지게 되시길 바래요^^

독서괭 2024-06-01 12: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엄머.. 꼭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요즘 머리 아픈 게 싫어서 페미니즘 책에 손이 잘 안 갑니다만.. ㅜㅜ

단발머리 2024-06-07 16:13   좋아요 0 | URL
페미니즘 글쓰기의 전사 고닉의 책이기는 한데, 페미니즘 말고 다른 부분에 대한 이야기도 많아요. 전 무척 좋았어요, 이 책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