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당한 위험 - 글쓰기에 대하여 철학의 정원 40
미셸 푸코 지음, 허경 옮김 / 그린비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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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이 내게는 거부되어 있었기 때문에 나는 글쓰기의 즐거움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말하기의 즐거움과 말하기의 가능성 사이에는, 어떤 양립 불가능성의 관계가 존재합니다. 말하기가 더 이상 가능하지 않은 곳에서, 우리는 글쓰기라는 비밀스럽고 어려우며 조금은 위험한 매력을 발견하게 됩니다. - P19

오히려 글쓰기는 내게 전적으로 가벼운 것이었습니다. 글을 쓴다는 것은 잘난 체하는 일이었습니다. 이제 나는 글쓰기에 대한 이러한 경시 속에서 표현되었던 것이 내 유년시절의 가치체계는 아닌지 스스로 묻곤 합니다. 나는 의사 집안, 그러니까ㅡ반쯤은 잠들어 있는 작은마을에 비하면 물론 상대적으로 적응된, 또는 사람들이 말하듯, 진보적인 - 의사 집안 중 하나에 속해있습니다. 물론 의사 집안이란 일반적으로, 특히 지방의 경우에는 더욱 더, 깊이 보수적인 것으로 머물러 있다는 점은 변함이 없지만요. 이러한 환경은 여전히 19세기에 속하고 있습니다. 프랑스의 지방에 존재하는 의학적 환경에 대한 사회학적 연구는 아마도 매우 흥미로운 주제가 될 것입니다. 이 경우, 우리는 의학, 보다 정확히는 의학에 관련된 인물[의사들이 부르주아 계급에 속하게 된 것이 19세기라는 사실을 알게 될 것입니다. - P20

글쓰기란 본질적으로, 그것을 통해 그리고 그 결과로서, 내가 이전에는 보지 못했던 무엇인가를 찾을 수 있게 해줄 어떤 작업을 감행함으로써 실현됩니다. 내가 하나의 연구, 한 권의 책, 또는 또 다른 무엇이든, 어떤 것을 쓰기 시작할 때, 나는 그 글이 어디로 갈지, 어떤 곳에 다다르게 될지, 내가 무엇을 증명하게 될지, 정말 알지못합니다. 나는, 내가 글을 쓰는 바로 그 움직임 자체안에서만, 내가 증명해야할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마치 글쓰기가 내가 글을 쓰기 시작하던 그 순간에 내가 말하고 싶었던 것을 정확히 진단하는 행위이기나 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나는 여기서 내가 나의 유산에 전적으로 충실하다고 생각하게 되는데, 이는 내가, 나의 아버지나 할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진단을 수행하고 싶어 하기 때문입니다. 다만, 내가 그들과 다른 점은 이는 내가 그들로부터 떨어져 나오고, 나아가 그들에 반하게 되는 지점입니다 - P33

글쓰기를 시작하기 전까지, 글쓰기는 의미가 없는 것, 있을 법하지 않은 것, 거의, 다른 어떤 것보다 불가능한 어떤 것, 여하튼 우리가 관련되어 있다고는 느끼지 않을 무엇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어떤 순간이 도달하고, 아마도 우리가 첫 쪽을 쓸때일까요? 첫 번째 쪽을 쓸 때? 첫 번째 책의 중간쯤, 또는 그이후 나는 언제 우리가 반드시 써야만 한다고 느끼게 되는지 모릅니다. 이런 의무감이 당신에게 고지되고 알려지는 방식은 여러 가지입니다. 예를 들면, 우리가 매일 그렇게 하듯이 작은분 량이라도 글쓰기를 하지 않았을 때 우리가 큰 불안이나 큰 긴장을 느낀다든지 하는 것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자신에게 부과한 이 작은 분량을 쓰게 되면, 우리는 우리의 실존에 대한 일종의 사면을 행하게 됩니다. 이 사면은 하루의 행복에 필요불가결한 것입니다. - P51

행복한 것은 글쓰기가 아니라, 글쓰기에 달려 있으며 약간은 다른 어떤 것, 곧 실존의 행복입니다. 이것은 매우 역설적이고, 매우 수수께끼 같은 일인데, 바로 다음과 같은 면에서 그렇습니다. 이다지도 허무하고 허구적이며 나르시시즘적이고 자신을 향해 침잠하는 이 몸짓, 다만 아침 나절을 할애해 탁자에 앉아 빈 종이 몇 장을 채우는 이 몸짓은 어떻게 하루의 나머지 시간에 대한 축복이라는 효과를 가져올 수 있는 것일까요? 어떻게 직업, 허기, 욕망, 사랑, 성, 노동과 같은 사물의 실재가, 아침나절 동안 또는 하루 중 어느 때인가 글쓰기를 했다고 해서, 변형될 수 있는 것일까요? 자, 이것이야말로 수수께끼 같은 일입니다. 어떤 경우든, 내게는 이런 일이야말로 내가 글쓰기의 의무를 느끼게 되는 방식 중 하나입니다. - P51

이제, 내게 있어 글쓰기의 역할은 본질적으로 거리두기 또는 거리를 재는 것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글을 쓴다는 것은 죽음과 죽은 것으로부터 우리를 분리시켜 주는 이 거리 안에 스스로를 위치 짓는 것입니다. 동시에, 죽음이 자신의 진실 속에서 스스로를 펼치는 것은, 결코 숨어 있는 비밀스러운 진실 또는 자신이 한때 그러했던 진실 속이 아닌, 이 무엇, 내가 죽은 것들에 대해 글을 쓰는 이 순간 내가 죽지 않았고 우리가 죽지않았음을 말해 주는 이 진실, 우리를 죽음과 분리시켜 주는 이 진실 속에서입니다. 내게, 글쓰기가 구축해 내야만 하는 것은 바로 이런 관계입니다. - P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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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6-18 22: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6-18 22: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6-18 22: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6-18 22: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6-18 22: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6-18 22: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6-18 22: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6-18 22: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잠자냥 2022-06-19 00:15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비밀 댓글이 아닙니다.

공쟝쟝 2022-06-19 09:18   좋아요 2 | URL
자냥 어제 술마셨쥬? ㅋㅋㅋㅋㅋㅋ

잠자냥 2022-06-19 09:34   좋아요 3 | URL
헉 어케 알았지 ㅋㅋㅋㅋㅋㅋ

공쟝쟝 2022-06-19 09:39   좋아요 3 | URL
🤭해장 잘해용

단발머리 2022-06-20 15:18   좋아요 2 | URL
월요일 아침이 밝았구요 ㅎㅎㅎ 해장은 잘 마치셨기를 바라옵니다.
비댓에는 우리가 천재가 아니냐 ㅋㅋㅋㅋㅋㅋㅋ 뭐 이런 대화가 오갔다고 합니다 ㅋㅋㅋㅋㅋ TMI인가요? ㅋㅋㅋㅋ
 
Pachinko : The New York Times Bestseller (Paperback, 영국판) - 애플TV 드라마 '파친코' 원작
이민진 / Head of Zeus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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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친코』를 읽었다. 전체적인 줄거리 말고 제3권의 챕터 8에 대해서만 쓰고 싶다.

 


노아는 대학을 마치지 않은 채, 가족을 떠나 다른 도시로 잠적한다. 어디에 사는지 알리지 않고 열심히 일해서 모은 돈을 꾸준히 선자에게 보낸다. 자신만의 삶을 일궈가는 노아를 마침내 한수가 찾아낸다. 한수는 노아를 찾았다고 선자에게 알리면서, 멀리서만 그를 보라고 말한다. 그가 선택한 삶 속에서 살게 하자고, 그걸 존중해 주자고 말한다. 선자는 그렇게 하지 못한다. 차문을 박차고 나가며 선자가 외친다. “노아야!”

 

노아의 불행을 선자의 탓이라고 할 수 없다. 선자는 최선을 다했다. 지옥에서 자신을 구해준 남편에게 신의를 지켰고, 투옥된 남편을 위해 생활을 책임졌고, 늦은 밤 고된 일을 마치고서도 노아의 옷을 깨끗하게 세탁하고 다림질해 입혀 보냈다. 선자는 자신의 모든 삶을 걸고 두 아들을 지켜냈다. 하지만 그녀의 지극한 사랑이, 그녀의 선의가 항상 그에 맞는 결과만을 가져오는 것은 아니다.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에 대해 골몰할 때면, ‘선녀와 나무꾼이야기가 떠오른다. 앞부분은 대부분 비슷하지만, 뒷부분은 동화책에 따라 약간씩 다른 내용이다. 나무꾼이 하늘나라에서 선녀와 세 아이와 행복하게 살았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우리 집 아이들과 함께 읽었던 판본에서 결말의 나무꾼은 인간이 아닌 수탉이다. 하늘나라에서의 행복한 시간 속에서도 효심이 지극한 나무꾼은 땅에 살고 있는 어머니를 그리워하고, 선녀는 천마에 나무꾼을 태워 보내며 절대 땅을 밟아서는 안 된다고 간곡히 당부한다. 반가운 아들의 목소리에 달려 나온 어머니는 아들과 손을 맞잡고 이야기 나누고 싶은데, 아들은 천마에서 내리지도 못한 채, 이제 곧 하늘 나라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한다. 뭐라도 먹이고 싶은 어머니(어머니는 먹이는 사람이다)는 아들에게 팥죽을 권한다. 그러나 팥죽이 너무 뜨거운 나머지, 팥죽이 든 그릇을 손에서 놓치고, 깜짝 놀란 천마는 나무꾼을 떨어뜨리고 그대로 하늘로 올라가 버린다. 어머니는 나무꾼에게 따뜻한 팥죽 한 그릇을 먹이고 싶었을 뿐이다. 그녀의 의도는 아들을 붙잡아 두려는 게 아니었다. 하지만, 결과론적으로 나무꾼은 하늘로 돌아가지 못했고, 하늘을 바라보며 구슬피 홰를 치는 수탉이 되고 말았다. 괴로워하는 아들을 바라보는 어머니의 심정을 어떻게 헤아릴 수 있을까. 그녀는 아들의 불행을 원치 않았다. 하지만 결국 일은 그렇게 되고야 말았다. 나무꾼은 어머니와 함께 머물고 있으나 그의 마음은 자신이 속하지 못한 머나먼 세계를 끝없이 떠돌고, 탄식과 아쉬움, 슬픔과 원망이 그의 마음을, 아니 수탉의 마음을 가득 채웠을 것이다.

 

 


노아를 대하는 한수와 선자의 태도에는 차이점이 분명하다. 한수는 노아의 결정을 존중한다. 그렇게 살기로 한 노아의 결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 한다. 물론, 한수에 대한 노아의 증오심이 훨씬 더 컸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런데도 한수는 자신이 노아에게 요구할 수 있는 작은 권리마저 포기했다. 노아를 더 기다리는 편이 낫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선자는 달랐다. 대학을 그만두고 가족을 떠난 이유를 이미 오래전에 설명했음에도, 그렇게 긴 시간 동안 가족에게 돌아오지 않았음에도, 선자는 노아의 심정이 어떠했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자신이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다는 이야기를 했을 때, 그의 절망이 그에게 얼마나 큰 짐인지를 감히 예상하지 못했다. 그를 그렇게 사랑하면서도, 그를 그렇게 아끼면서도, 선자는 몰랐다. 알지 못했다. 우리 집으로 가자. 선자가 말한다. 여기가 제 집이에요. 노아가 답한다.

 


“Noa and Mozasu. They’re my life”, “I’ve lived only for them.” (421)이라고 말할 때의 선자를 이해한다. 내가 그런 엄마여서가 아니라, 그런 삶을 사는 엄마들을, 여성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자식을 위해 사는 어머니들, 자식만이 삶의 이유인 어머니들, 자식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 혹은 많은 것을 희생한 어머니들. 그런 어머니 앞에서 자식은 ‘a good boy’일 수밖에 없다. 선자를 사무실로 안내하고 차를 내주고 다음 주에 찾아가겠다는 다정한 말을 건네는 소년 노아. 그런 어머니 앞에서 자식은, 그 아들은 a good boy일 수밖에 없다. 어머니는 자식의 어떠함을, a good boy의 절망을 끝내 알아채지 못한다.

 

한수는 무책임했고, 사람 좋은 옆집 아저씨 같았지만, 그는 노아를 알았다. 노아가 어떤 사람인지 알았다. 한 발짝 물러설 줄 알았다. 노아를 만나고 돌아와 기분이 좋은 선자에게 “You should not have seen him.” 이라고 말한 이유를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선자는 노아를 사랑했고, 노아를 위해 살았고, 노아를 위해 자신의 젊음을 다 바쳤지만, 선자는 노아를 몰랐다. 노아가 어떤 사람인지를 몰랐다. 노아를 더 사랑한 선자보다 노아를 덜 사랑한 한수가 오히려 노아를 더 깊이 이해했다는 데 생각이 닿으면 슬퍼진다. 그렇게 보인다. 더한 사랑이, 더 진한 사랑이 결국 노아를 밀쳐버렸다는 생각을 멈출 수가 없다. 가장 큰 고통이 선자의 몫으로 남겨졌다. 너무나 가슴 아픈 대목이다.

 



호의와 선의와 사랑이 다른 사람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지는지를 꼼꼼히 생각하고 사는 건 너무나 피곤한 일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 일을 한다. 사랑하고 사랑받는다. 도움을 주고, 또 도움을 받는다. 지나친 사랑은 건강에 해롭습니다. 이 결론이 자식에게도 해당된다는 데 인생의 숨은 뜻이 있다고 생각한다. 노아를 그냥 그대로 살게 하는 것, 나와 멀리 떨어진 도시에 살게 하는 것, 그리운 마음에 찾아가더라도 몰래 숨어서 노아를 훔쳐보는 것에 만족하는 것. 그런 게 사랑이라는 나만의 결론에 또다시 마음이 쓸쓸해진다. 하지만 어린 자녀를 사랑으로 품어주는 것이 사랑인 것처럼, 장성한 자녀를 떠나보내는 것도 사랑일 테니. 출생 후 지금까지 한결같이 여전히. 모성이 부족한 채로 살아왔던 이 매정한 엄마는 한 번 더 생각한다. 과유불급. 넘치지 않도록, 넘치지 않도록 하자. 내 사랑이 넘치지 않게 하자. 보내주자. 놓아주자. 기다려주자. 멀리 가게 하자. 그래서 날아가게 하자. 저 혼자의 힘으로 날아가게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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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서로에게 져주는 것도 사랑이라는 건 좀 어려운 문제지
    from 의미가 없다는 걸 확인하는 의미 2022-09-29 12:24 
    밥 먹기를 명심하며 토스트를 우물거리면서 마감을 마친 자의 자유를 만끽하면서 쓴다. 오늘은 <디지털…>만 다 읽으면 되는 널럴한 날이다. 원래는 운동 다녀와서 페란테로 *알파수컷* 쓸려고 했는 데, 파친코 2권 어제 다 들었고 운동가기 싫으니까 이거 써야지. 근데 쓰기도 전 부터 너무 마음이 아프기 때문에 마음아픔 주의다. 아, 내 마음 아픔이지 나 빼고 다른 사람은 안 아플 것 같다. 그리고 이 글을 읽기 전에 꼭 단발머리님의 파친코 리뷰
  2. To 쟝쟝님 (부제 : 노아의 선택, 그 불가항력과 결정론의 함정 또는 변명의 문제)
    from 책이 있는 풍경 2022-10-03 07:38 
    이 글(https://blog.aladin.co.kr/jyang0202/13969259)에 대한 댓글을 쓰다가 길어져서 먼댓글로 씁니다. 댓글이어서 댓글처럼 씁니다^^ 제가 쟝쟝님의 글을 오독했을 가능성을 전제하고, 제 나름으로 다시 한번 써봅니다. 노아가 자신이 받은 최고 최대의 사랑이 엇나갓음을 알고, 보답할 수 없음을 알고 나서 그가 했던 선택에 대해, 쟝쟝님은 필연적이라고 썼습니다. 저 역시 그렇게 생각합니다. 저 역시, 노아는 자살할 수밖에 없
 
 
얄라알라 2022-05-01 18:1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파친고 한글판은 중고가가 4만원대더라고요. 영문판을 데려오긴 했는데 아직 엄두가 안 나서, 단발머리님의 리뷰로 중간 내용을 짐작해봅니다.

˝그냥 그대로 살게 하는 것˝

쉬울 것 같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혹시 제가 8장까지 이르게 된다면 단발머리님 말씀 새기면서 천천히 넘겨야겠어요

단발머리 2022-05-01 20:46   좋아요 2 | URL
한글판 인세 관련 협의가 마무리 되었다는 기사를 본 것 같아요. 책이 다시 나올것 같기는한데, 우아~~ 4만원이라니 놀랍네요.

저도 내용을 하나도 모르고 읽기 시작했는데, 중간 중간 놀란 부분이 많았어요. 얄라알라님도 즐거운 시간 되시길 바래요^^

다락방 2022-05-01 19:38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아 너무 좋은 글입니다, 단발머리님. 저희가 잠깐 이 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을 때 단발님은 모자관계 얘기를 하고 저는 자아에 대한 얘기를 했죠. 그건 우리의 접근 관점이나 성향의 차이일 수도 있겠지만 원서로 읽는 것과 번역본으로 읽는 것의 차이도 있을 것 같아요. 그래서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저는 이 책을 사러 교보문고로 가는 버스 안이라는 겁니다. 지금 시간은 일요일 저녁 19:37 이고요.

그럼 이만..

단발머리 2022-05-01 19:42   좋아요 3 | URL
지지지지지….. 지금이요?
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락방님? 🙄🙄🙄

그레이스 2022-05-01 22:0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영문판 난이도는 어떨지 궁금하네요

단발머리 2022-05-01 22:26   좋아요 3 | URL
짧은 문장으로 쓰고요. 사건을 시간순으로 서술하는 방식이어서 쉽게 느껴지는 편입니다^^

다락방 2022-05-02 08:10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단발머리 님, 어제 저녁에 교보까지 다녀왔음에도 불구하고 단발머리 님께 땡투하고 이 책 알라딘에서 샀습니다. ㅋㅋㅋ 부자 되시길 바랍니다. 제가 드리는 땡투로 책 더 많이 사시고 글 더 많이 쓰세요. 그럼 이만..

단발머리 2022-05-03 16:55   좋아요 2 | URL
입금하신 100원은 잘 적립되었으며 앞으로도 양질의 페이퍼와 리뷰로 찾아뵙겠습니다.
변함없는 사랑과 후원과 관심과 애정에 깊이 머리 숙여 감사드립니다.

수이 2022-05-02 10:1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노아를 선자의 남편으로 착각하고 엉뚱한 소리를 하고 말았네요 -_-;;;; 좀 알려주시지! 전 한글판 읽는 동안에 정신없이 읽어버리는 바람에 이렇게 세세하게 바탕을 보지 못했던 거 같아요. 다시 읽어봐야겠어요. 그런데 손꾸락은 왜 그래요 ㅠㅠ 왜 다쳤어요! 뭐 하다가!

단발머리 2022-05-03 16:56   좋아요 1 | URL
그 때쯤 저도 딴 생각하고 있어서 말을 못했나 봐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손꾸락은 ㅋㅋㅋㅋㅋ 원래 요리 잘 안 하는 사람이 칼에 손 잘 베인다고 해요. 다 나았어요. 헤헤

독서괭 2022-05-03 12:5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아 이래서 영어공부를 해야 하는 거군요.. 이 책 읽고 싶은데 품절이라 못 읽는구나, 하고 말았는데 원서로 읽으면 되는 거였다니.. 흑흑 ㅠㅠ 독해 수준은 어느 정도인지 궁금합니다.
˝내 사랑이 넘치지 않게 하자˝라는 말씀 멋져요. 아이 키우면서 정말 명심해야 할 말 같습니다. 희생한 만큼, 사랑한 만큼 놓아주기는 더 힘들어지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전 희생을 최소화 하려고 합니다..쿨럭.
좋은 글 잘 읽었어요, 단발머리님♥

단발머리 2022-05-03 16:59   좋아요 2 | URL
많이 꼬인 문장이 없어서 비교적 잘 읽히는 편이라고 생각해요. 미리보기 함 읽어보시고 결정하시면 좋을 거 같아요. 또 영화랑 같이 봐도 되니까요. 배경 알고 읽으면 더 잘 읽힐 것 같아요.
희생을 최소화하겠다는 다짐.... 넘 멋져요. 저도 한결같이 그 다짐으로 살아왔습니다. 그러면 더 쿨해질 수 있을 것 같아요.
자식들한테..... 내가 그들을 사랑한다는 건 충분히 알려줄 테지만 많이 앵기지는 않으려고 해요. ㅋㅋㅋㅋㅋㅋ

얄라알라 2022-06-05 11: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파친코 드라마가.아닌.원문.읽으며 다시.읽으니.단발머리님 이글 절절히 와닿아요. 더욱

공쟝쟝 2022-09-29 09: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 굿 보이… 아ㅜ영어로 읽었어야 했구나… 팥죽 ㅠㅠㅠ 단발님은 천재다 ㅠㅠㅠㅠㅠㅠ

공쟝쟝 2022-09-29 15: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단발님… 이 글이 마음 속에서 사라지지 않아서 다시 왔어요… 한수는 노아를 이해하지만 선자는 노아를 이해못한다는 지점이 무슨 말인지 너무 알 것 같아요. 아… 찐 좋은 글이다 진짜… 먼댓글 한 독후감에도 썼지만, 저는 정말 저희들 다 키우려고 부모님이 너무 고생 많이 하셨기 때문에 사랑이 부족하다고 느껴서 자신을 상처내는 아키코-하나 는 알듯 말듯 모르겠더라고요.

다만 부모님을 저도 사랑했기 때문에, 정말 ‘잘’ 살아야 한다는 욕망(?)이 있었는 데, 그건 일본인이 되고 싶다나 자수성가하고 싶다가 아니라, 제게 그건 어떤 양심껏 헌신하면서 사는 삶였던 거 같아요. 근데 내가 그렇게 살 수 없다는 것 혹은 내가 그렇게 살려고 할 수록 양심에서 멀어진다는 걸 견딜 수가 없이 괴로웠던 적이 있었거든요?… 뭔가 내 삶뿐만 아니라 내 부모의 삶까지도 다 부정 당한 것 같은 세계의 상실이 있었어요. 아.. 이건 뭐라고 설명이잘 안되는데… 어쨌든 노아를 너무 제 방식으로 읽어가지고ㅋㅋㅋ 무튼 헌신하는 사랑이라는 게 너무 아파요. 저는 아직도. 엄마가 ‘너 자신을 살아’라고 한번이라도 말해줬다면 어땠을까요?… 마지막에 노아가 엄마한테 책 주는 것도… 저는 거의 완벽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는 데…

독후감이 혼란의 도가니탕이지만… 동시에 단발님이 이렇게 선자의 마음과 한수가 본 것에 대해서 쓴 글을 읽지 못했다면, 저는 노아만 내 방식대로 이해하고 말았을 것 같아요 ㅎㅎ 다시 한번 읽고 쓰고 감상을 나누는 힘을 느낍니다.. ㅋㅋㅋ
 
나를 발명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나를 분리해내야 했다
랭스로 되돌아가다
디디에 에리봉 지음, 이상길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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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사회학자 디디에 에리봉의 회고록이다. 자신이 속했던 노동자 계급을 떠나고 가족을 떠났던 에리봉이 아버지의 죽음을 계기로 자신의 과거와 가족의 계급적 과거를 탐색해가는 과정을 담고 있다. 무슨 말을 더할까. 에리봉의 책을 읽기 전 혹은 읽은 후, 읽는 도중에도 100% 유용할 것이 분명한 쟝쟝님의 글을 링크해 둔다.



https://blog.aladin.co.kr/trackback/jyang0202/13492598 


<먼댓글(트랙백) : 나를 발명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나를 분리해내야 했다>

 



탈출. 어떤 상황이나 구속 따위에서 빠져나옴. 탈출이라면, 더 낮은, 더 열악한, 더 후진 상황에서 더 높은, 더 쾌적한, 더 고급의 상태로의 이전을 말할 것이다. 계급을 탈출할 수 있는 방법은 뭘까. 결혼. 부의 축적. 교육. 계급을 초월한 결혼은 이루어지기 어렵다. 예상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훨씬 더 가능성이 낮다. 왕자님의 숫자는 정해져 있고, 모두 다 신데렐라를 원하는 것도 아니다. 공주님과 온달의 경우도 마찬가지. 초단위로 변화하는 세계에서 축재는 기발한 아이디어와 그 아이디어를 구현할 수 있는 기술력이 필요하다. 이 역시 4차 산업 혁명을 앞둔 상황에서 쉽지 않은 일. 그나마 가장 쉽고 용이한 것이 교육을 통한 상층 계급으로의 진출이다. (요즘은 이마저도 쉽지 않다는 걸, 통계가 보여준다) 교육은, 그 어렵고도 고단한 계급 탈출을 낮은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적어도 가능하게 한다.

 



이 세계들을 분리하는 경계선들은 각 세계의 내부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존재하고 무엇이 될 수 있는지, 무엇을 기대할 수 있고 또 없는지를 근본적으로 다르게 상상하고 지각하도록 규정한다. 더욱이 우리는 일이 다른 식으로 진행될 수 있음을 알지만, 그것은 접근불가능한 저 멀리 있는 세계에서 이루어진다. 그리고 이 동떨어진 사회적 영역에서 매우 명백한 규칙을 구성하는 것에 접근할 수 없을 경우, 우리는 그것이 무엇이 됐든 배제되었다거나 박탈당했다고 느끼지 않는다. 이는 단지 사물의 질서일 따름이며, 그것이 전부다. 우리는 그 질서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알지 못한다. 그러려면 스스로를 외부에서 바라볼 수 있어야 하고, 자신의 삶과 타인들의 삶에 대해 내려다보는 시각vue en surplomb³을 택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저자가 말하는 바로 그 지점, 그 시각 때문에라도 되돌아가는 것은 탈출한 사람에게만 가능한 일이다. 외부에서 바라볼 수 있는 위치성, 그 관점이라는 건, 자신을 먹이고 키웠던 그 시간과 장소를 벗어나야만 가능한 것이고, 가난과 절망, 잔소리와 폭력을 서술할 도구를 이미 쥐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것이 꼭 학위여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필요한 단 한 가지는 목소리일 것이다. 하지만, 그 목소리가 출간되고 다른 나라의 언어로 번역된다는 건 다른 층위의 문제다. 그가 가난했고 노동자 계급에서 왔으며 성소수자로서 겪었던 고충을 축소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는 충분히 고통받고 그 고통 때문에 자신의 가족, 고향과의 단절을 선택했으며, 그렇게 30년 이상을 살아왔다. 동시에 그는 파리 근교에서 태어나 프랑스어가 모국어였으며, 브르디외, 푸코, 뒤메질을 직접 만날 수 있는 문화적 특권을 누렸던 사람이었다. 교수가 되었고, ‘지식인계급이라고 불릴 만한 자리에 자신을 위치시켰다. 탈출한 사람만이 되돌아갈 수 있다. 가난을 극복한 사람에게는 가난도, 가난의 유산조차도 자원이 될 수 있다.

 



커피, , 과일, 과자에 더해 밥통에 가득한 밥까지. 필요한 게 다 있다. 이 집에는 아무도 없고, 나를 방해할 사람이 아무도 없는데도 굳이 집을 나선다. 빨래를 돌려놓고, 아침 설거지를 마치고, 머리를 감고, 빨래를 건조기에 넣고, 전원/시작 버튼을 누른다. 혼자 있고 싶은 나는, 오래오래 혼자이고 싶은 나는, 혼자이기 싫어서 집을 나선다.

 


요즘은 중학교에도 사물함이 있어서 아이들 책가방이 무겁지 않은데 나는 사물함이 없으니까. 아이들 가방보다 무거울 게 분명한 검은 가방을 메고 걷는다. 반팔티(큰애꺼), 후드집업(작은애꺼)에 찢어진 청바지. 내 신발 중에 제일 비싼 운동화를 신고 도서관을 향해 걸어간다. 디디에 에리봉을 생각하면서 걷는다. 자기 자신을 재발명하기 위해 노동 계급 가족에게로 돌아온 사회학자. 극단까지 밀어붙인 자기 분석. 불굴의 정직성과 비상한 통찰력(이상, 책소개) 내가 속했던 계급에서, 난 탈출했는가. 난 이제 그 계급에 속하지 않는다고 자신 있게 혹은 자연스럽게 말할 수 있는가. 내가 속했던 계급을, 솔직하게 대면할 수 있는가. 우리 집은 가난했다, 라고 쓸 때, 가슴 한 켠이 따끔거리는 이 느낌은 그렇지 않음을 말하는 것 아닌가. 얼마나 가난했는지 쓸 수조차 없다면 (혹은 쓰고 싶지 않다면), 심정적으로는 여전히 그 상태에 사로잡혀 있는 것 아닌가. 3월과 4, 이 세상 누구보다 시간 부자인 나는 계급 탈출에 성공한 것 아닌가. 시간, 복장, 장소를 내 마음으로 조정할 수 있다면, 이전과 다른 계급에 들어섰다고 말할 수 있는 것 아닌가.

 


나는 성공했는가. 내가 속했던 계급에서, 탈출했는가. 탈출에 성공했는가. 되돌아갈 수 있는가. 랭스로, 나의 랭스로 돌아갈 수 있는가.




"지배 메커니즘에 관해서는 그렇게나 많은 글을 써댔던 내가, 사회적 지배에 관해서는 왜 쓰지 않았을까?" 혹은
"예속화assujettissement와 주체화subjectivation 과정에서경험하는 수치의 감정에 그토록 중요성을 부여했으면서, 왜 사회적 수치에 관해서는 거의 아무런 글도 쓰지않았던 것일까?" 결국 이렇게 질문을 바꾸어야 했다. "파리에 정착한 뒤, 나는 나와는 다른 사회 계층 출신의 사람들을 많이 알게 되었고, 종종 그들에게 내 출신 계급을 거짓말로 둘러대거나 진실을 고백하며 마음속으로 불편함을 느낄 때마다, 내 출신 환경에 대한 수치, 사회적 수치를 경험했다. 그런데 나는 왜 책이나 논문에서 이 문제를 다뤄볼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을까?" 이것을 다음과 같이 진술해보자. 내게는 사회적 수치에 관해 쓰는 것보다 성적 수치에 관해 쓰는 것이 훨씬 쉬운 일이었다. - P23

공부를 계속하지 못했다는 어머니의 좌절감은 모두 이런 식의 분노의 폭발로 표현되었다. 그리고 이는 다른 형태로 이어졌다. 내가 살짝 비판적인 의견을 내거나 가볍게 이견 표시만 해도 다음과 같은 대꾸가 튀어나왔다. "네가 고등학교에 다닌다고 우리 위에 있는 건 아냐" 라든지 "네가 뭐라도 되는 줄 아니? 우리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하는 거야?" 내가 "제우스신의 넓적다리"에서 나오지 않았다는 것을 일깨워주는 소리를 몇 번이나 들었던가? 하지만 어머니가 가장 자주 입에 올린 것은, 내가 자유롭게 얻을 수 있는것을 그녀는 박탈당했다는 사실을 내게 상기시켜주는문장들이었다. "나는 결코 ~할 수 없었단다"라거나 "나는 결코 가질 수 없었단다"라는 말, 아버지는 자신이 "가질수 없었던 것들을 우리에게 끝없이 상기시켰다. - P93

어머니의 노동은 내가 고등학교에서 몽테뉴Michelde Montaigne나 발자크Honoré de Balzac에 관한 강의를 들을수 있도록 해주기 위한 것, 그리고 내가 대학에 가고나서는 내 방에 몇 시간씩 틀어박혀서 아리스토텔레스나 칸트Immanuel Kant를 해독할 수 있도록 해주기 위한 것이었다. 어머니가 새벽 4시에 일어나기 위해 밤에 잠들어 있는 동안, 나는 동틀 녘까지 마르크스KarlHeinrich Marx와 트로츠키Leon Trotsky, 보부아르Simone deBeauvoir와 주네를 읽었다. 여기서 나는, 아니 에르노가 동네에서 작은 식품점을 운영하던 그녀의 어머니에 대해 쓰면서, 이 난폭한 진실을 표현했던 단순한 방식을 참조할 수밖에 없다. "난 어머니의 사랑과 그 부당성을 확신했다. 그녀는 내가 플라톤 강의를 들으러 대강당에 앉아 있을 수 있게 하기 위해 아침부터 밤까지 감자와 우유를 손님들에게 내놓았다." - P95

내가 보기에는 계급 소속감의 부재가 부르주아의 유년기를 특징짓는다는 점이야말로 이론의 여지가 없는 것 같다. 지배자들은 그들이 특정한 세계 안에 위치지어져 있다는 것을 지각하지 못한다(이는 백인이나 이성애자가 스스로 백인이나 이성애자로서의 자의식을 갖고 있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다). 따라서 이러한 언급은 있는 그 자체 명백한 의미를 갖는다. 즉 자신의 사회적 지위를 기술하고 있을 뿐이면서 사회학을 하고 있다고 믿는 어떤 특권층 인사가 내놓은 순진한 고백인 것이다. - P112

어머니의 인종주의와 어머니(이민자의 딸!)가 이주 노동자들 일반과 특히 ‘아랍인들’에 대해 공공연히 드러내는 지독한 경멸은 혹시, 열등하다는낙인이 찍힌 사회적 범주에 속하는 어머니가 자기보다 더 심하게 박탈당한 사람들에 대해 우월감을 느끼는 하나의 방편이 아니었을까 하고 말이다. 그것은 타자의 가치에 대한 평가절하를 우회 수단으로 삼아, 스스로에 대해 가치 있는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하나의 방식, 그러니까 자기만의 시선으로 존재하는 한 가지 방식이었는지도 모른다. - P167

나는 보부아르가 『회고록』에서 묘사한 모든 것들에 매혹당한 나머지, 그녀와 그녀의 지인들이 자주 다니던 장소들, 그녀가 말한 거리들, 그녀가 말한 구역들을 모두 가보려고 했다. 오늘날 나는 그것이 일종의 전설이며, 신화화된 시각으로 채색된 것임을 안다. 하지만 당시 나는 이 전설에 도취되어 있었다. 그야말로 지적인 삶의 시대, 그리고 그러한 삶이 정치적·사회적·문화적 삶과의 관련 속에서 우리를 자석처럼 끌어당기고, 사유의 세계에 참여하려는 욕망을 불러일으키는 시대였다. 우리는 위대한 지식인들을 떠받들었고, 그들과 스스로를 동일시했으며, 그러한 창조적 활동에 참여하고 싶어 안달했다. - P215

우리는 지식인의 형상에 미래의 자기 모습을 투사했다. 책을 쓰고, 다른 사람들과 열띤 토론을 하며 아이디어를교환하고, 이론적으로뿐만 아니라 실천적으로도 정치에 개입하는 사람 말이다. 시몬 드 보부아르의 책들과 동성애자로서 자유롭게 살고자 하는 욕망이 내가 파리에 정착하게 만든 두 가지 큰 이유였던 것 같다. - P216

그렇다, 짐작하겠지만, 이 책은 바로 사르트르의 『성 주네Saint Genet다. 물론 두 책의 차이는 매우 크다. 푸코의 경우에, 그리고 정신의학적·정신분석학적 심문에 반대해 그가 관여한 투쟁의 경우에 문제가 되는 것은 그 자신이고 그의 경험이다. 또 그가 확인하는 것은 오직 자신의 목소리이고, 그가 방어하려는 것은 자신의 삶이다. 반면 사르트르는 타자에 관해 글을 쓴다. 그는 감정이입을 통해 완전히 몰입한 채로 다른 이[장 주네]의 궤적을 분석하고 이를 통해 지배 메커니즘과 자기발명의 과정을 설명하려고 한다. - P254

따라서 사르트르의 주네에 관한 책에 나오는 다음 문장이 내겐 핵심으로 다가왔다.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우리에게 행한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우리에게 행한것을 가지고서 우리가 스스로 하는 것이다." 그것은 금세 내 존재의 원칙을 구성했다. 자기에 대한 자기의 작업으로서 수행의 원칙. - P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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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74 2022-04-28 15:1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떠나서 다시 그 전의 계급을 되돌아본다는 것만으로 이 분 대단한 듯 합니다. 대부분 뒤도 돌아보기 싫을텐데요. 가장 잔인한 경계선은 보이지 않는? 누가 줄을 긋기 시작했을까요 땅에도 마음에도 사람에도. ㅠㅠ 단발머리님 찢청은 누구 소유인지 그 와중에 궁금한 ㅎㅎㅎ 순간 저인줄 알았어요. 아이에게 작아진 반바지와 티셔츠. 카디건만 제꺼네요 ~~ 관심 두고 있는 책인데 유익하게 잘 읽었어요 ~~

단발머리 2022-05-01 20:49   좋아요 1 | URL
책 속에서.... 자기가 떠나온 계급에 대해 거짓말했다 아니면 아닌 척 했다, 이런 이야기가 자주 나와요. 정말 되돌아가기 싫은데 이제서야 되돌아볼 수 있었다고 할까요. 정말 대단한 작가인 것 같아요. 찢청은 저만의 것으로서, 너무 많이 찢어져서 ㅋㅋㅋㅋㅋㅋㅋㅋ 수선하는 집에서 양쪽 끝은 약간 손질을 했습니다. 더 찢어지지 말라고요 ㅋㅋㅋㅋㅋㅋㅋㅋ 언제 한 번 미니님과 아이들 옷 배틀 한 번 해야겠는데요^^

청아 2022-04-28 15:51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단발머리님~태그 재밌습니다.ㅋㅋㅋㅋㅋㅋㅋ쟝쟝님 빨리 이 리뷰 보셨음 좋겠어요 태그도 꼭이요!!
저는 요즘 스터디카페 알아보는 중이예요. 공부자극도 되는 작품이었습니다.^^*

단발머리 2022-05-01 20:51   좋아요 1 | URL
뭐랄까요. 태그는 진짜 저의 진심?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쟝쟝님도 이 리뷰를 다 보셨을 거에요. 근데 태그는 모르겠네요.
좋은 스카 발견하시면 저도 좀 알려주세요. 미미님 열공 모드 저도 따라하게요!!

다락방 2022-04-28 17:37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탈출한 사람만이 되돌아갈 수 있다.
저는 영화 <매드맥스> 생각이 납니다. 여성들은 단순히 애낳는 도구로 보던 곳에서 기어코 그 성노예 여성들을 데리고 탈출했는데, 그러나 낙원이 있을줄 알았던 사막 그 끝에는 아무것도 없었고, 결국 정말 필요한 건 있던 곳으로 돌아가 그곳을 뿌리째 바꾸는 일이었죠. 이미 그곳에 도착해있던 나이든 여성들을 마주하는 샤를리즈 테른을 보면서 ‘돌아가야 한다, 그것이 최선이다‘ 라고 생각했었는데, 오늘 단발머리 님 리뷰 보니까 그 영화 생각이 납니다.

돌아가기 위해선, 탈출이 우선이어야 하죠. 그건 불변의 진리입니다.

공쟝쟝 2022-04-28 21:19   좋아요 3 | URL
아. 여기서 어떻게 매드맥스를 떠올립니까.....ㅜㅜ 진짜 그 영화 너무 개 띵작이죠. 근데 그걸 여기에다가 어떻게 엮어버려욧!!!!!! 다락방님은 정말.... ㅜㅜ 찐이야....
다시 돌아가는 것 역시 떠나본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고. 그리고 돌아간 거기서 다시 시작해야하는 것이라고.
그렇게 힘주어 말할 수 있는 어떤 굳건함.
저는 우리 모두에게 그런 자원이 있다고 생각해요. 삶에서 살아남은 사람들 그 어떤 누구라도.
굳이 어려운 언어와 말들이 아니라도.
그렇습니다. 탈출하려면 내가 갇혀있다는 것을 봐야하기도 하죠. 그렇네요. 증말...

단발머리 2022-05-01 20:59   좋아요 2 | URL
다락방님 / 저는 영화 매드맥스를 안 봐서요. 영화 정리한 유투브 살펴보았는데 아... 왜케 무섭죠. 명작이라고 하는데 겁이 많이 나네요. 탈출한 곳으로 돌아간다는 거 너무 어려운 일인데, 그게 최선이라고 하니까요...... 탈출을 해야죠. 일단 탈출이 먼저입니다.

쟝쟝님 / 쟝쟝님도 그 영화 아시는군요. 저는 사진 보다가 놀라가지고.... 우아, 개 띵작 어떻게 알고 있었냐 말이죠. 두 분은...
과거에 대해 솔직하게 대면하는 작가를 보고 좀 많이 놀랐구요. 그걸 해석할 수 있는 힘을 가졌다는데 부러움도 느꼈구요. 쟝쟝님 덕분에 좋은 책 읽었어요. 땡큐!!

책읽는나무 2022-04-28 17:08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아이들의 옷을 입는 단발머리님!!ㅋㅋㅋ
저도 요즘 애들이 안입는 옷 아까워서 제가 입고 다니거든요...혼자 웃었어요.^^
집에 모든 것이 갖춰져 있어도 굳이 도서관 같은 곳을 찾아 나서는 것은 모두 비슷한가 봅니다.

탈출했는데 다시 되돌아가는 심정은 어떨까?싶기도 하네요. 특히나 너무나도 탈출하고 싶었던 그 계급으로..
나 같으면??
그냥 탈출하여 더 상향 조정된 계급에 속해 있다면 굳이 되돌아가지 못할 것 같은데 말입니다.
암튼 에리봉의 책은 단발머리님의 리뷰를 읽으니 공쟝님의 글을 읽을 때와 느낌이 확 다르네요? 같은 책인데도 다른 책을 접하는 느낌이랄까요?
결론은 읽어봐야 아는 거겠죠?^^

단발머리 2022-05-01 21:01   좋아요 2 | URL
우리 모두 애들 옷 입는 거에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넘 재미있고 신기하네요. 저도 집보다는 도서관이 좋아 집을 나서는데 내일 월요일이라 큰일 났습니다. 갈데가 없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저는 에리봉 책 처음이었는데 좋았어요. 원래대로라면 쟝쟝님 같은, 자서전 같은(?) 글을 쓰고 싶었는데 우아... 그게 진짜 어려운 일이더라구요. (쟝쟝님 짱!) 그래서 저는 나름의 간단 리뷰를 올리고 말았습니다. 책나무님 버전도 기대해볼게요^^

공쟝쟝 2022-04-28 17:30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아 저 ㅠㅠ 이거 꼭 집에가자 마자 태그까지 해서 읽어볼께요 💕 오늘 모처럼 외근나와서 ㅋㅋㅋ 이동중에 폰으로 글쓰고 ㅋㅋㅋ 북플에 올리려고 들어왔더니 이런 귀한 글이 암튼 행복해요 ㅋㅋ

단발머리 2022-05-01 21:02   좋아요 1 | URL
에리봉은 사랑입니다.💕💕💕

공쟝쟝 2022-04-29 11:2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우리 자서전을 씁시다. (갑자기 몰리님 소환하기!)
여성이라는 계급. 아줌마라는 계급. 읽고 쓰는 언어라는 도구로.. 그냥 그럽시다. 그렇게 하십시다! 아직 못 가신거 아니예요. 떠나오셨을 거예요. 맞아요... 어쩌면 탈출할 수 없어요. 하지만 도망치고 싶어했던 그곳으로 다시 돌아가서 맨날맨날 그 자리에 선 것 같은 느낌일지라도. 그런데도 달라요. 다른겁니다. 그 부분에서 저는 확신합니다. 힘내요. 단발님, 힘내요! 영화 매드맥스 한번 더 봐야겠어요. 아. 뭐지. 나 왤케 벅참? 지금ㅋㅋㅋㅋ??

단발머리 2022-05-01 21:06   좋아요 2 | URL
저도 첨에 읽을 때는 쟝쟝님 같은 글을 쓰고 싶었거든요. 근데 머리는 엄청 복잡한데 그게 잘 안 잡히더라구요. 전, 아직 탈출 전인것 같기도 하고, 아님 탈출했는데 돌아가기 싫은 것 같기도 해요. 무엇보다 에리봉 같은 솔직함이 저한테는 없다고... 전 그렇게 느꼈어요.
여성이라는 계급, 아줌마라는 계급 속에서 쓸 수 있다고 생각해요. 세상에 어떤.... 의미를 전한다기 보다는, 그 일, 그 행위 자체가 바로 저에게 도움이 될 거라는 생각도 하고요. 어마어마하게 먼 훗날의 일일 수 있겠지만....
우리 자서전을 씁시다. (몰리님 대환영!) 우리도 자서전을 쓰자고요!!!

서니데이 2022-05-07 17: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단발머리 2022-05-07 17:33   좋아요 1 | URL
서니데이님 덕분에 좋은 소식을 알게됐어요. 넘넘 감사합니다!!
 
여성과 광기
필리스 체슬러 지음, 임옥희 옮김 / 위고 / 2021년 9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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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드리언 리치는 이 책을 정신의학적 사고와 실천을 여성화하는 데 공헌한 선구자적인 책이라고 평했다. 맞다. 이 책은 정신의학이 여성과 여성의 삶을 어떻게 왜곡시켰는지 보여주고, 그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들려주며, 여성과 광기의 그 가느다란 연결 지점을 해체하는 데 일조한다. 하지만, 내게 울림을 줬던 문장들은 이 책의 전체적인 맥락에서는 약간 벗어나 있다.

 


일반적으로 여성은 서로에게 심리적·사회적으로 중요하다. 그래서 서로에게 너무 많이 바라는 경향이 있다. 여성들 사이에서 가장 하찮은 실수, 가장 사소한 실망은 종종 확대되어 분개로 이어진다. (35)  

 


남자들은 또한 그다지 상냥할 필요가 없다는 보편적인 통념에 의해 어느 정도 보호받는다. (501)

 


전통적으로 남성뿐 아니라 여성은 남성의 희생이나 협력보다는 다른 여성의 도움이나 희생을 보다 쉽게 기대하고 요구하는 경향이 있다. 객관적으로 볼 때 그런 기대가 비교적 안전하고 성공 확률이 높다. (501)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은 동지를 찾기 어렵다. 가장 가까운 여성인 어머니가 가부장제의 신념을 내면화한 경우 여성은 아버지, 오빠 같은 남성들뿐 아니라, 여성인 어머니에게도 억압의 대상이 된다. 어머니를 통해 전해지는 가부장제 신념을 내면화한 여성은 결혼을 통해 어머니가 되어 (어머니처럼) 가부장제의 일원이 된다. 아들을 빼앗긴(?) 시어머니는 말해 무엇하랴. 여적여의 신화를 신봉하는 게 남자만은 아니다. 여자들도 그렇게 믿고 있다.

 


499쪽에서, 저자는 페미니즘이 어머니들(motherhood)’딸들(daughterhood)’이라는 단어보다 자매들(sisterhood)’라는 단어를 선택함으로써 여성들 사이의 위계 질서화된 장벽의 해체를 시도하고 그들 관계에 내제된 고통을 반영한다고 주장했다.

 

자매애는 페미니즘 운동의 실천을 위해 너무나 중요한 요소이다. 단일한 계급으로 통합되지 못했던 여성들에게, 자신만의 역사를 갖지 못한 여성들에게 자매애는 점진적이든 혹은 혁명적이든 사회의 변화와 발전을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한 요소이다.

 


하지만, 이러한 자매애가 그들 사이의 공고한 결합과 연대를 방해할 수 있다. 어떻게? 서로가 서로에게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함으로. 남성보다 더 친절할 것을 요구함으로써, 도움이나 희생을 더 많이 기대함으로써, 완벽함을 요청함으로써.

 

남성에게 요구하지 않는 친절, 도움, 희생을 남성이 여성에게 요구할 뿐만 아니라, 여성이 여성에게 요구한다는 그녀의 지적이 너무 새로웠다. 무례하게 행동해도 상관없는 남성과 항상 미소 짓고 있어야 하는 여성. 도움 요청을 가차 없이 거절해도 괜찮은 남성과 도와야 한다고 강요당하는 여성. 희생하지 않아도 되는 남성과 희생해야만 하는 여성.

 


남성이 여성에게 요구하는 것들을 여성이 여성에게 요구한다는 그 지점이, 새롭게 놀라웠다. 나는 도덕적 우월성에 대해 말하는 게 아니다. 나는 착한 사람이 좋다. 멀리서 봐도, 가까이에서 봐도 착한 사람이 좋다. 좋은 사람 곁에 있고 싶고, 나 역시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 잘 안 되지만 노력하고 싶고, 내 곁의 좋은 사람들의 좋은 점들을 배우려고 나름대로 노력한다(노력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좋은 사람이 되는 것과는 별개로, 그 사람이 착하다는 것과는 별개로, 여성이 여성에게 더 많이 친절과 도움, 그리고 희생을 요구하고 있다는 그 지점이,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 더 크게 실망하고 분개한다는 그 지적이 놀라웠다.

 


여성들은 적어도 자신을 희생하는 데 관심이 없는 여성을 불신하고 남성들은 그런 여성을 파괴한다. … 달리 표현하자면 아직까지도 대다수 여성에게는 특별히 다른 사람을 위해 자기를 희생하는 것(희생하고 싶다고 말하는 것)을 중단하기가 대단히 어렵다. (503)

 


희생하겠다는 말을, 양보하겠다는 말을, 본성이 아닌 학습과 문화에 의해 강요된 말을 중단하기는 대단히 어렵다. 하지만, 말해야 한다. 가끔은 거절해야 한다. 한편으로, 우리는 여성에게 남성보다 더 많이 요구하지 말아야 한다. 자매애를 잊으면 안 된다. 우리가 자매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하지만, 이해를, 친절을, 도움을 그리고 희생을, 여성에게 더 많이 요구하지 말아야 한다. 여성에게 더 많이 요구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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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1-12-31 10:20   좋아요 7 | 댓글달기 | URL
저도 언급하신 부분 인상깊게 읽었는데요, 최근에 읽었던 소설 <무엇이든 가능하다> 생각도 났어요. <무엇이든 가능하다> 혹시 읽어보셨다면 아시겠지만, 그 단편중 하나에 자신의 집에 머무는 여성손님들을 불법촬영하고 그걸 보는 남편이 나오고, 그걸 묵인하면서 그 집에서 함께 사는 아내가 나와요. 근데 이 부부의 딸이 그 사실을 알고는 끔찍하다고 집을 나가면서 ˝엄마가 더 나빠!˝ 라고 하거든요. 저는 이 부분이 너무 인상적이었어요. 물론 그 사실을 그냥 넘기고 피해자들을 계속 만들어내는 아내 공범이고 나쁘지만 그런데 ‘더‘ 나쁘다니.. 실제 그런 일을 저지르고자 해서 실행에 옮긴 사람은 아빠인데, 그런데 왜 엄마가 더 나쁘다고 할까. 실제 원 가해자보다 왜 가해자 옆의 공범이 ‘더‘나쁜가. 만약 그 공범이 남자였다면 딸이 ‘더‘ 나쁘다고 했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러면서 저 역시도 그런데 강간피해자에게 2차가해를 하는 여자들한테 더 실망하거든요. 이 ‘더‘는 왜일까, 그런 생각을 하게 되더라고요.

그러다가 필리스 체슬러의 여성과 광기를 읽고 느낌표 천 개 된겁니다. 여전히 잘 안될것 같지만 제가 같은 여성이라는 이유로 더 도덕적이고 더 연대하기를 당연히 바라고 있었던 것 같아요. 이게 잘못된거라는 생각은 사실 들지 않는데, 그러나 더 요구한 것만큼은 분명한 것 같아요. 이건 계속 더 생각해보려고 해요.

단발머리 2021-12-31 13:34   좋아요 3 | URL
저는 어제 오후쯤에 이 글을 쓰고요. 저녁 늦게 기사 하나를 봤어요. <‘한국여성정치네트워크 ‘국민의힘 신지예‘ 놓고 격론> 이런 제목이었는데요.

신지예에 대해서라면 모두 다 할말이 있을 것 같고 저도 뭐 하고 싶은 말이 많지만, 어제 저녁 이 글을 써놓고 위의 기사 읽는데 참 맘이 묘하더라구요. 그날 아침까지도 같이 했던 동지들에게 말 한마디 없이 조직을 떠나간 신지예에게, 그의 결정의 어떠함과는 별개로....그래도 여태 고마웠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참 복잡하더라구요. 더 큰 희생을 요구하지 않으면서 페미니즘이 운동으로 발전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지, 그게 정말 가능한지....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는 저는, 또 혼자 생각만 했더랬습니다.

이제 올 해가 몇 시간 안 남았어요, 다락방님. 시간이 가고 있다고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공쟝쟝 2021-12-31 14:08   좋아요 0 | URL
저는 이 말로 대신합니다 ㅋㅋ 신지예 화이팅 (ㅋㅋㅋ)

수이 2021-12-31 10:36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여성이 여성에게 더 요구하는 그 마음을 잠깐 더듬어보았어요. 뭘까요, 대체. 여성들을 마주할 때 여성들과 이야기를 나눌 때 여성들을 싫어하게 될때 지난 날들도 잠깐 헤아려보았어요. 확실한 건 저 역시 말씀하신 것처럼 더 요구하지 말아야 한다고 마음속으로만 그러고 더 요구했던 거 같습니다. 이걸 어떻게 구체적으로 이야기하기가 애매하네요. 저도 더 생각해봐야 할 숙제를 안고 돌아갑니다. 확실한 건 여성주의 책을 읽을수록 여성들이 더 좋아지고 있어요. 오픈되어가는 과정이지만 그 과정을 조금씩 즐길 수 있겠다 장기적으로, 그런 생각도 더불어 합니다. 마지막 문단, 콕 새기도록 하겠습니다. 해피 뉴 이어!

단발머리 2021-12-31 13:22   좋아요 2 | URL
비타님 댓글 읽으면서 떠올랐던 부분 가져와봤어요.

여러 연구와 상식에 의하면 우리 문화에서 개인적인 ‘이타주의‘는 자유나 자기애보다는 죄의식, 두려움, 낮은 자존감에서 비롯된다. (488쪽)

이 문장과 비타님의 댓글을 연결해보면서 제가 얻은 결론은... 좀 거칠지만 말이에요.
여자들은 좀 더 이기적이어야 한다는 거에요. 우리 좀 더 이기적인 사람이 되자구요, 비타님.
내일부터 새해라 결심하기도 딱 좋네요. 내년부터 시작이에요!!

수이 2021-12-31 13:53   좋아요 2 | URL
전 너무 이기적이라...... 여기에서 더 이기적인 인간이 되어버리면 친구들에게도 가족에게도 버림받을 걸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언제나 감사합니다 그대는 조금 많이 이기적인 사람이 되어도 여전히 좋을 거 같아요. 조금 더 많이 이기적인 사람이 되어봅시다 아니 되어요 그대 곁에는 이미 이기주의자인 비타가 서있도록 하겠습니다.

단발머리 2021-12-31 13:57   좋아요 1 | URL
아이고, 역시 사람은 자기 자신을 잘 모르는군요. 비타님은 이기심이 필요한 사람이에요.
이타주의 좀 버리시고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제 새해에는 이기주의 좀 장착하세요!!!
제가 옆에서 종종 알려드릴께요. 이타주의 버리고 이기주의 챙기세요, 하면서요. 내년에도 그 다음해에도, 그 다음해에도... 쭈욱!!!

(이기주의, 이기주의... 하니까 막 누가 생각나고 그래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수이 2021-12-31 15:07   좋아요 1 | URL
외제차 타고 드넓은 평수 사시는 그 베스트셀러 작가님 맞으시죠? 하아 부럽군요, 분발합시다 ㅋㅋㅋㅋㅋ

mini74 2021-12-31 11:04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이 분들 정말 볼때마다 대단!하십니다. 전 내년에 도착한다기에 실눈뜨고 봤습니다. 항상 응원합니다 *^^* 단발머리님 즐거운 새해 보내세요 ~~~

단발머리 2021-12-31 12:27   좋아요 3 | URL
미니님 대단! 댓글 감사합니다 ㅎㅎㅎㅎ 응원도 감사하구요.
오늘 남은 시간도 잘 마무리하시고, 즐겁고 복된 새해 되시길 바래요!!

건수하 2021-12-31 11:09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여성에게 많이 요구해서는 안된다…

저는 여성이 여성을 적대적으로 대하는 것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었는데, 단발머리님 덕분에 이 생각도 해보게 됩니다.

맞아요, 너무 여성들끼리만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것 같아요. 문제는 밖에 있는데…

단발머리 2021-12-31 12:26   좋아요 4 | URL
친절하지 않을 때, 공감해주지 않을 때, 도와주지 않을 때, 실망을 넘어 분개한다... 이 대목에서 저는 콱 숨이 막히더라구요.
맞아, 그랬어. 그랬었지.... 하면서요.... 문제는 밖에 있지요. 수하님 말씀이 맞아요.

책읽는나무 2021-12-31 12:32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이렇게 이성적으로 읽어야 하는 건데...역시 단발머리님은 이렇게 리뷰를 써주실 줄 알았어요^^
책을 읽고 나서는..몇 몇 분들의 리뷰를 읽어야 뭔가 해소되는 것 같고, 두뇌의 회로를 똑바로 설치하는 기분이 든다고 할까요?
리뷰도 한 권의 책을 읽는 기분입니다.
500페이지 대에서도 밑줄 긋고 생각해야 할 대목들이 많았어요!!!

단발머리 2021-12-31 13:26   좋아요 3 | URL
저의 리뷰를 예상하셨다니, 감동적입니다. ㅎㅎㅎ 부족한데도 좋은 말씀 주셔서 감사하구요.
같은 책을 읽으면서 같은 부분의 밑줄에 환호하고, 다른 부분의 밑줄과 해석을 같이 생각해볼 수 있어서 <같이 읽기>가 좋은 것 같아요.
저도 이 책 <개정판을 펴내며>부터 맨 끝까지 좋았어요. 좋은 읽기였습니다^^

공쟝쟝 2021-12-31 14: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웅.. 그래서 나 부둥부둥하기 싫었다...? 부둥부둥하기싫어...부둥부둥안하고싶어...
그런데 그거는 뭐, 이런 저런 생각을 정리하면서 나한테도 부둥부둥하고 관대해져야지~~로 노선을 좀 틀었구요.. (헤헤)
저도 태어나기를 희생당하는 포지션으로 태어나 (아시나요 장녀라고?) 그것이 사랑인줄 알고 살아왔는 데, 가장 좋아했던 남자 후배에게서 제가 페미니스트가 되고 난 후 들은 말은 ˝누나 왜 이렇게 이기적으로 변했어?˝ 였어요. 그 말이 너무 더럽고 역겨워서 존나 더 이기적이어야지 싶어졌다. 는 것과는 별개로 ㅋㅋㅋ 여자들에게 더 바라지 말자...더 많이 요구하지 말자... 는 진짜 실천하며 살겠습니다. 남은 생애에서.
저도 35페이지에 밑줄 좍좍 그어놨거든요. !!! 음........
굳이 위악을 떨 필요는 없지만, 제가 가진 친절과 호의 이면에 어떤 기대가 있는 지는 점검해보겠습니다. 좋은 글 감사해요 >_< (나도 읽어야하는데..)

단발머리 2022-01-04 16:27   좋아요 1 | URL
‘이기적‘이라는 말이 남자들에게는 ‘목표지향적‘으로 해석되고 여자들에게는 ‘이기적‘이라고 해석되는 환경 속에서, 우리가 살죠.
희생과 양보를 강요받으면서요. 전, 이 책에서 그 지점을 보고 좀 놀라기도 하고, 아, 맞아 하고 감탄하기도 했어요.
남자에게 관용적이고 여자에게 더 많은 것을 요구하는 사회, 남자들 그리고 여자들. 여기에서 밑줄은 여자들에게 있죠.
제가 생각한 걸 잘 풀어냈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쟝쟝님은 찰떡같이 잘 알아들으시네요. 하하하.
 
하나이지 않은 성 동문선 문예신서 167
뤼스 이리가라이 지음, 이은민 옮김 / 동문선 / 200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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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다른 책을 같이 읽었다면 더 이해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역시나 다 읽었다는데 의미를 두고.


오늘의 교훈 ; 읽은 후에 바로 정리하자.





E. —— 마찬가지로 가정은 왜 남성 소외의 특수한 장소가 될 수 없는가?

——분명 소외는 늘 상호적이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소유는 아무 방향으로나 결정되지는 않는다. 가부장적 가정과 사회에서 남성은 여자와 아이들의 소유자이다. 이를 인정하지 않는 것, 그것은 모든 역사적 결정을 거부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이는 ‘어머니의 권위‘를 구실로 삼는다. 그러나 이 권위는 남자들이 만든 체제 ‘안에서’만 일어난다. - P187

이 ‘남성 중심적’ 권위에서, 남성의 실패가 없는것은 아니다. 특히 자기 육체에 대한 쾌락에서 그렇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볼 때, 가정에서 자신의 재산처럼 여자와 아이들의 육체와 욕망·노동을 양도할 수 있는 자는 남자 - 아버지이다. - P188

독서와 문체·해석 · 증명의 다른 어떤 양식이 남성인 당신과 관계를 맺으면서 여성인 나의 양식이 될 수 있는가? 이러한 차이가 다시금 서열화의 과정으로 되돌아가지 않는 일이 가능한가? 타자를 동일성에 복종시키는 과정으로 되돌아가지 않을 수 있는가? - P208

가부장적 사회들을 조직하는 이 교환들은 오로지 남자들 사이에서만 일어난다. 여자들·기호들·상품들 · 화폐는 모든 교역을 마비시키게 될 근친 상간 관계들과 동족들만의 관계로 추락하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그렇게 믿고 있다 —— 항상 한 남자에게서 다른 남자에게로 넘겨진다. 그리하여 대지- 어머니에게서 생겨난 것을 포함한 노동력 · 생산물들은 오로지 남자들간 상호 작용의 대상이 될 터이다. 이것은 사회-문화의 가능성 자체가 동성애를 요구하리라는 것을 의미한다. - P251

여성은 전통적으로 남성을 위한 도구로서의 가치, 남자들 사이의 교환 가치이기 때문이다. 즉 상품인 것이다. 이것은 그녀를 물질의 수호자로 남기고, 그들의 가격은 그들의 노동과 주체들, 즉 노동자들 상인들 소비자들에 의한 필요- 욕구의 기준에 따라 평가될 것이다. 여자들은 그들의 아버지와 남편 · 매매춘업자들에 의해 남성 중심적으로 구분된다. 그리고 매매춘에 있어서 이러한 구별의 표시가 그들의 가치를 결정한다. 여성은 대지-어머니를 소유하는 경우를 포함해서 영원히 남자들 사이의 다소 경쟁적 교환 장소일 뿐이다. - P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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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나무 2021-12-30 22:2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뉘.....저기 보이지 않는 투명한 글들????
저걸 보려면 어뜨케 하나요???
책도 어려웠는데 리뷰 읽기도 어려워요.ㅋㅋㅋㅋ
이 책도 강렬했어요.넘 어려워서요!!!!ㅜㅜ

단발머리 2021-12-30 22:24   좋아요 2 | URL
투명한 글들 없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글이 밑줄과 딱 붙어서 빈 공간으로 만들었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책읽는나무 2021-12-30 22:45   좋아요 2 | URL
단발머리님의 지성이라면 분명 투명 글이 씌어져 있을 듯해서요^^
단발님의 이런 리뷰는 처음이라 넘 놀라서 농담을ㅋㅋㅋㅋ
새해 복 미리 많이 받고 있읍시다!!!!^^

단발머리 2021-12-31 11:17   좋아요 2 | URL
감사해요, 책나무님!!
우리 새해 복 많이 받기에요!!!

다락방 2021-12-31 09:2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이 책 읽느라 특히나 더 수고하셨습니다, 단발머리 님. 이 책 완독은 진짜 수고했다는 말 평소의 두 배 이상 해줘야 해요..

단발머리 2021-12-31 11:11   좋아요 2 | URL
그래서 다락방님의 ˝수고하셨습니다(곱하기 2)˝는 매우 잘 접수되었습니다. 감사해요, 다락방님! 우리 모두 애 많이 썼어요!

공쟝쟝 2021-12-31 14:21   좋아요 0 | URL
나 내 후년에 반사경읽을 거예요. 그전에 이리가레 관련한 책들좀 더 찾아서 읽을 거지만. 이리가레 제 목표예요. ㅋㅋㅋ 진짜 4년짜리 페미니즘 책읽기의 자존심이 상했던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