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연보 Happy Ending





 














꼭 작가의 생애에 한정 짓지 않더라도 작가의 삶과 그의 작품이 맺을 수밖에 없는 관계를 고려할 때, 작가의 삶은 작품을 읽어갈 때 주요한 나침반 중 하나가 될 수밖에 없다. <여성주의 책 같이읽기> 2개월 특별 프로젝트인 『다락방의 미친 여자를 읽어가면서 아쉬운 점은 프랑켄슈타인을 다시 읽지 않았다는 점이다. 하긴 그 책만 그런 건 아니고, 실패를 인정하고 오늘 반납해버린 실낙원2권이 그렇고, 65%에 머물러 있는 교수가 그렇고, 다시 읽기 예정 중(?)제인 에어빌레뜨가 그렇다.

 


예전에 『프랑켄슈타인을 읽고 나서 메리 셸리의 반해서 이렇게 적어두었더랬다.

 

 

메리 셸리의 삶이 행복했다면 좋았을 것이다. 태어나자마자 엄마를 잃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테고, 새엄마도 메리를 예뻐했다면 좋았을 테다. 새엄마가 메리와 윌리엄 부녀 사이를 질투하지 않았으면 좋았을 테고, 메리도 기숙학교에서 좋은 교육을 받을 수 있었다면 좋았을 것이다. 하지만, 전처의 딸이자 눈엣가시 같은 메리가 미워 학교에도 보내지 않고 집에 거의 방치하다시피 했는데, 그것이 오히려 메리에게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당대 최고의 지식인들이 방문하는 서재 한쪽에서, 그들의 대화를 곁으로 들으면서 방대한 서재에서 읽고 쓰는 삶. 그런 삶이 실현되었다. 최고의 교육 과정이 열렸다. 한 사람, 메리 셸리만을 위해.  

 

 

다양한 경험을 얻는 수단의 하나로 여행이 이야기 될때 나는 좀 회의적인 편이었다. 물론 독서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독서와 여행의 경험이 강렬할 것과는 별도로 우리 삶을 구성하는 순간들은 훨씬 더 단순하고 건조하다는 생각에서다. 느낌, 감각, 열정이 얼마나 지속되는가에 대해서도 의문이 들었다. 여행을 많이 하지 못하면서 자랐고, 책도 다양하게 읽지 않아서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 많은 여행 경험이 없는데, 다방면의 독서 경험이 부족한데, 그것이 좋은 것이다라고 쉽게 긍정할 수는 없지 않은가. 내가 가지지 않은 것을, 가지지 못한 것을, 쉽게 욕망할 수 없지 않은가.

 


제인 오스틴, 메리 셸리, 에밀리 브론테, 샬럿 브론테를 이어 읽어가면서는, ‘한정된경험 속에서 만들어낸 그녀들의 업적이 얼마나 대단한지 재차 확인할 수 있었다. 정확히는 감탄의 연속이었다. 마음대로 여행할 수 없는 여성들이, 교육 기회를 박탈당한 여성들이, 평생을 가족과 적은 수의 친구들과 교류했던 여성들이 이룩해낸 작품에, 그 깊이와 넓이에 경탄을 금할 수 없었다. 메리 셸리에게는 지혜의 창고가 어머니 울스턴크래프트의 글 그리고 아버지의 서재였던 것 같다.

 



고아가 된 이 문학적 상속인에게 여성성과 문학성의 고조된 관계는 틀림없이 초기, 특히 논쟁의 대상으로 떠오른 메리의 죽은 어머니와 관련해서 수립되었다. 앞으로 보겠지만, 메리 울스턴크래프트 고드윈은 자랄 때 어머니의 글을 반복해서 읽었다. 무엇보다 메리가 어머니의 유작을 다룬 논평을 대부분 (이들 논평은 메리 울스턴크래프트를 '철학적인 바람둥이'와 괴물이라고 공격했으며, 그녀의 『여성의 권리 옹호) (1792) '[매춘부] 선전하기 위해 교활하게 날조한 성경'이라고 했다) 읽었으리라는 점은 의심할 바 없는 사실이다. (416)

 



메리 셸리의 유명한 일기가 주로 자신과 퍼시 셸리의 독서 목록 일람표라는 사실이 그녀의 이례적인 과묵함을 암시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 일화는 메리에게 책을 읽는다는 것이, 대다수 작가들이 느끼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한 지적 행위였을 뿐만 아니라 빈번하게 감정적인 행위였음을 강조한다. 특히 메리 자신은 어머니를 전혀 몰랐고, 사랑하는 남자와 가출한 뒤 아버지가 자신을 명백하게 거부하는 것 같았기 때문에, 메리가 자신을 정의하는 주요한 방식은 (그녀가 『프랑켄슈타인을 썼던 시기, 그리고 셸리와 함께한 초창기 때는 확실하게) 일차적으로는 독서, 그다음으로는 쓰기였다. (417)

 

 



그녀의 삶 속에서 독서가 얼마나 중요한 활동이었는지를 밝히는 부분이 특히 눈에 들어온다. 일기의 주요한 부분이 독서 기록이라니.

 


이런 경우 메리는 일기를 다이어리형태로 기록한 듯하다. 전부는 아니고 살짝만 들여다본 바로는 버지니아 울프는 일기를 저널의 형태로 기록했다. 그날 있었던 사건의 내용과 추이를 기록하는 다이어리와 그날 일어난 사건에 대한 생각, 느낌 등을 기록하는 저널 중에, 창작 활동과 관련된 작가의 생각을 엿볼 수 있는 건 당연히 저널일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들이 밝혔듯이, 메리의 일기가 곧 독서 기록이었다는 사실은 메리에게 독서가 얼마나 중요한 활동이었는지를 보여주는 자료라 할 수 있겠다.

 

 



회사를 그만두고 공식일정이라는 게 없어진 사람이 되고 나서 일기를 쓰지 않은 날들이 한참이나 이어졌다. 종이 일기, 저널에 다시 습관을 들이는 게 힘들었고, 올해는 복잡한 마음에 더더욱 일기 쓰기를 멀리했던 듯 싶다. 그래도 다이어리는 쓰다 멈추다 이어지다를 반복했는데, 특별한 일정이 없으면 사적영역으로의 쏠림 현상을 막을 수가 없었다. 특히 코로나 시절에는 그런 현상이 두드러졌는데, 크린토피아/한살림/GS 프레시마트/반찬가게/메가커피로 이어지는 장보기 일정과 오늘의 메뉴만 덩그러니 남기는 했다. ‘장보기오늘의 메뉴사이에 읽고 있는 영어책의 쪽수를 기록하고, 찾아볼 책을 체크하고, 페이퍼 쓸 책의 제목을 적어두었다. 이건 뭘까,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자주 들기는 하지만, 아무튼 아무에게도 보여줄 수 '없는나만의 다이어리는 이렇게 계속되고 있다.

 

 


책이 잘 들어오지 않기도 하고, 좋은 책을 읽었는데도 생각이 잘 떠오르지 않아서 그냥 그렇게 보내는 요즘이다. 그래도 밤 9시 반쯤 되면 아, 오늘 그래도 조금은 읽어야지, 하고 김치냉장고 위를 쳐다보는데, 그때마다 나를 기다리는 책이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 책은 두껍기가 여간하지 않아서, 읽어도 읽어도 또 읽어도 좀처럼 반을 넘어가지 않는다. 참고 도서 같이 읽기의 원대한 계획이 모두 스러지는 찰나, 그래도 어찌하리. 읽어보자, 조금만 더 읽어보자.





진정한 의미는 무엇인가? 소설 속에서 빅토르가 스스로 아담이 아니라 이브고, 사탄이 아니라 ‘죄‘이며, 남성이 아니라 여성이라는 사실을 발견한 순간은 정확히 이 지점이 아닌가? 그렇다면 이와 같은 『프랑켄슈타인』의 핵심적인 부분이 실제로 재연하는 것은 바로 이브의 이야기가 단순히 이브가 타락했다는 이야기라기보다 이브가 여성으로 창조되었기 때문에 타락하고 말았다는, 즉 여성성과 타락이 본질적으로 동의어라는 사실의 발견이다. - P435

사실상 타락의 이야기는 자신들이 무구한 아담이 아니라 타락한 이브라는 사실을 여자들이 발견하는 이야기이지 않은가? 이처럼 자신이 여자이고, 따라서 타락했고 부적절하다는 여자아이의 무서운 발견은 프로이트의 개념, 즉 잔인하지만 은유적으로는 정확한 남근 선망이 실제로 의미하는 것이리라. 분명 빅토르 프랑켄슈타인이 (그리고 메리 셸리가) 이브, 아담, ‘죄‘, 사탄과 맺는 다양한 관계에 거의 기이할 만큼 불안한 자아 분석이 함축되어 있는 것도 이와 같은 남근 선망을 암시할 것이다. - P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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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괭 2022-11-22 18: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페이퍼다!
저는 자유여행은 꽤 좋은 걸 얻을 수 있는 경험이라고 생각해요. 자기 자신에 대해서 더 알 수 있는. 자유여행은 돌발상황이 많이 발생하니까, 그때그때 어떻게 대처하는지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어떤 여행이 내게 맞는지 등을 파악해 가고, 또 그런 대처 경험이 쌓일수록 자기효능감도 올라가는 것 같아요. 물론 사람 나름이겠지만..^^ 독서는 좀더 개인차가 클 것 같아요. 같은 책을 읽어도 얻어가는 게 전혀 다를 것 같은. 메리 셸리니까 서재에서만 지낸 게 좋은 자양분이 된 거지 저였으면 그냥 사회에 적응 못 하는 사람 되었을 듯요 ㅠㅠ 메리 셸리 새삼 대단하네요.
저 일기 쓴 지 3개월 정도 된 것 같은데 좋아요. 저는 저널 쪽인데요, 분량은 길지 않습니다 ㅎ 얼른 쓰고 책 읽으려고 ㅎㅎ
아니 근데.. 김치냉장고 위요..? 책이 김치냉장고 위에 있나요? 이 순간, 오스틴의 응접실 탁자가 떠오르는 건…!!!!

단발머리 2022-11-24 19:35   좋아요 0 | URL
저는 사실.... 자유여행 경험이 별로 없어서요. 여행,이라고 말할 때의 돌발상황을 별로 겪어보지 못했어요. 근데 기억이 많이 남는 여행은 순조로운 여행보다는 좌충우돌일텐데 말이지요. 저는 패키지를 선호하ㅋㅋㅋㅋㅋ
독서괭님 아침에 일찍 일어나시는 건 알았는데 저널도 꾸준히 쓰신다니 너무 대단하세요. 둘째가 일찍 자고 늦게 일어나면 좋을텐데요. 저희는 식탁 뒤에 김치냉장고가 있어요. 식탁이랑 키가 같고 책 쌓아두기에 딱 좋습니다. 다만 김치 꺼낼 때 책 옮기는게 좀 큰일이지요. 하하하. 오스틴님 탁자는 우아했을 거 같은데요 ㅋㅋㅋㅋㅋㅋㅋㅋ

책읽는나무 2022-11-22 19: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래도 400 여 페이지라니??
전 코로나 격리 해제 후, 어쩐 일인지?
19세기 소설이 그리 재밌어 죽겠고, 다미여도 재밌더니....격리 끝난 후, 집중도와 재미가 뚝 반감되었네요? 갑자기 무슨 일이 생긴 걸까??어리둥절 중입니다ㅜㅜ

그래서 전 되려 오래 전에 이런 관련 도서를 미리 미리 읽으셨다는 전설의 그 알라디너님 단발님과 다락방님이 참 부럽다는요~
여유있게 다미여를 읽고 참다운 깨달음을 얻고 계시는 듯해 보이네요?^^;;;
저도 단발님 글을 읽다가 비슷하게 느꼈던 부분이 있어요. 그 시절 여성 작가들의 활동범위가 좁아서 소설의 주제나 소재의 폭이 좁다곤 하지만, 다양한 경험이 부족했는데도 어찌 인간군상들의 다양한 성격을 입체적으로 표현하고, 삶의 이치를 현시대에 적용하기에도 모자라지 않게 소설을 그려냈을까? 전 그게 더 위대해 보였거든요. 만약 오스틴이나 브론테 자매들 메리 셸리가 더 다양하게 경험했었더라면?? 소설들은 어떻게 또 위대하게 탄생했을까요??

암튼 님의 다이어리 사적 영역 부분에 빵 터지고 갑니다. 저도 몇 년 전 일기를 쓰는데 죄다 장 본 거랑 책 몇 페이지 읽은 것밖에 없어서....에잇!!! 하면서 다이어리 안 샀네요ㅋㅋㅋ

단발머리 2022-11-24 19:40   좋아요 1 | URL
책나무님은 참고도서 많이 읽으셔셔 부럽습니다. 저도 원대한 계획을 가지고 시작했지만.... 허허허.
저도 미리미리 읽은 건 꽤 되는데 이번에 읽다보니 좀 후회가 되더라구요. 중요한 몇 작품은 다시 읽었어야 했구나, 그런 생각이요.
책나무님 말씀처럼 이렇게 제한된 경험 속에서도 눈부신 작품을 쏟아낸 여성 작가들이 더 다양한 경험을 했더라면 더 놀라운 작품들이 쏟아져 나왔을 거 같아요. 근데 그럼 우리 너무 바빠져서... 모두 헉헉대다가 ㅋㅋㅋㅋㅋㅋ

저는 올해에도 여전히 다이어리 준비중입니다. 올해에는 부진했으니 내년에는 잘하리... 이런 결심을 가지고요^^

바람돌이 2022-11-22 19:5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는 실낙원은 애초에 포기하고 이제 겨우 제인 오스틴을 넘어 이제 브론테 자매로 갑니다. 다른 분들 벌써 이만큼 읽으신거 보면 왠지 초조해져서 저도 이제쯤 시작해야 12월이 지나기 전에 다 읽을수 있겠구나 싶기도 하고요. 그런데 요즘 19세기 문학들이 또 너무 재밌어서 이것만 계속 읽고싶기도 하고... 항상 책읽기도 선택의 영역이라 미뤄지는 안타까운 책들을 쓰다듬는 시간도 만만찮네요. ^^ 김치냉장고 위에 책 위치가 너무 재밌어서 막 웃고 있는데 저희 시어머니가 김치 가지러 오라고 전화하셔서 왜 너는 김치냉장고를 안사느냐고 또 막 뭐라 하시네요.(우리 시어머니 단골 멘트 중의 하나입니다.) 오늘은 김치냉장고의 날인가? ㅎㅎ

단발머리 2022-11-24 19:43   좋아요 0 | URL
저는 바람돌이님의 전략이 훨씬 더 ‘학습친화적‘이라고 생각해요. 전 <다락방의 미친 여자>는 진도가 많이 나갔는데요. 아, 그걸 먼저 읽어야했어, 라는 후회와 탄식이 두 장 넘길 때마다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다락방의 미친 여자>는 행간이 아주 넓어서요. 쭉쭉 잘 넘어가더라구요. 12월 이전에 다 읽으실 거라 확신합니다 ㅎㅎ

김치냉장고가 없으시군요. 저는 김치도 담글지도 모르면서 진작에 김치냉장고를 준비하였고요. 한쪽에는 쌀을 넣어두었습니다. 하하. 김치냉장고의 날, 좋은데요!!

다락방 2022-11-23 07: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윳빛깔 단발머리 님, 안녕하세요? 우선,

1. <여성주의 책 같이읽기> 2개월 특별 프로젝트 라고 명명해주신 점, 대단히 감사드립니다. 가슴 가득 뻐근함이 차오르네요.

2. <실낙원> 2권을 반납하셨다니, 대단하십니다. 저는 1권 60페이지까진가 읽고 다시 꽂아놨어요. (네, 소장하고 있습니다.. 책부자) 그렇지만, 제가 앞으로도 독서 라이프를 유지하려면 실낙원은 읽어줘야 하지 않나... 생각하고는 있습니다. 워낙에 실낙원 언급이 자주 일어나더라고요.

3. 마침 저도 오늘 제인 오스틴에 대한 부분을 읽고 좁은 공간, 제한된 공간에 대해서 쓰려고 했었는데 단발머리 님의 이 글과 겹치네요.

4. 저도 요즘은 다이어리에 일기 쓰기를 거의 멈췄는데 말이지요, 제가 그동안, 아주 오랫동안 부지런히 써왔는데, 그걸 읽어보면 저 역시도 ‘이게 다 무슨 의미가 있나‘ 싶긴 하더라고요. 그러다가 또 ‘역시 내 일기가 제일 재미있다‘ 싶기도 하고요. 그도 그럴것이 저는 죄다 남자.. 얘기였어요. 하아- 다른 사람들 일기는 출판되어 독자들에게 사유를 하게 하는데 내 일기는 왜 순전히 남자, 남자... ㅠㅠ 그래서 요즘은 일기를 쓰지 않습니다.

5. 저는 이제 240쪽 정도 읽고 있어요. 저 언제 다 읽나요, 단발머리 님?


이만 총총.

단발머리 2022-11-24 19:57   좋아요 0 | URL
유연함의 화신 다락방님!

1. 2개월 프로젝트가 특별한 이유는, 심난하고 곤란하며 마음이 답답한 모든 이들에게 고향처럼 돌아갈 두꺼운 책을 선사해주었기 때문입니다. 탁월한 선택이었어요!

2. 저도 다락방님과 똑같은 이유, 나의 독서 라이프에 <실낙원>이 한 번쯤은 있어줘야 한다는 생각에 대출했습니다만... 아흐... 장난이 아닙니다. 어디 갇혀서 읽어야 될 판이에요.

3. 좁은 공간, 제한된 공간에 대한 다락방님의 글 잘 읽었어요. 저는 이번에 체슬러 책 <An American Bride in Kabul>에서 여성들은 마켓에서도 보이지 않는다는 부분이 생각나더라구요. 장 보러 갈 수 없는 여성들은 집에만 갇혀있겠죠. 저는 도서관에 자주 가는데 ㅋㅋㅋㅋㅋㅋ 거기에서 공부하는 여성들을 볼 때 항상 감동을 받습니다. 모두들 얼마나 열심히 공부하시는지요. 일단은 집을 벗어나야 합니다. 마차 없이 외출 못하는 여성들이 생각나는 대목이죠.

4. 그것은 아니될 말씀이구요. 다시 일기쓰기 시작하시기를 권하고 싶어요. 제일 중요한 이유는 ‘역시 내 일기가 제일 재미있다‘ 일 것인데 기록되지 않으면 바람 속에 모두 날아가 버리는거 아닙니까. 저도 남자 이야기 많아요. 다만 저는 못 만난 남자들 ㅠㅠㅠ 애덤, 조쉬, 마일스, 윌..... 저도 갑자기 슬퍼지네요.

5. 이 책은 2개월 특별 프로젝트로 ㅋㅋㅋㅋㅋㅋ 마감은 12월 31일이오나 일단 이번달에 600쪽 정도를 목표로 하심이 좋을 듯 싶습니다. 하하하.

그럼 다락방님, 굿이브닝 앤 굿나잇!

공쟝쟝 2022-11-23 21:0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울프 일기 보고 반가워서 랄랄라~하면서 들어왔습니다! 책 읽는 거 좋아요, 정말 좋아요. 그에 비해서 쓰는 건 좀 지치기는 하는 것 같아요. 저 당분간은 안 쓰고 덜 읽기~ 도전 중인데요. 뭔가 아쉬워서, 어제 저는 원고지를 샀어요. 필사 하려고!!

단발머리 2022-11-24 19:59   좋아요 2 | URL
책 읽는 게 훨씬 좋죠. 근데 읽다보면 가끔, 아주 가끔 쓰고 싶기도 하고요. 저는 읽기도 쓰기도, 잘 안 되는 요즘인데..........
아, 저도 원고지 살까요? 필사는 별로 안 좋아하지만, 원고지는 좋아하는 ㅋㅋㅋㅋㅋㅋㅋㅋ
 




 


















오스틴 문학의 제일 반짝거리는 지점을 하나만 꼽으라고 한다면 인간사에 대한 명쾌한 통찰이라고 말할 듯 싶다. 단점? 한계? 라고 한다면 모든 소설이 행복한 결혼을 향해 돌진한다는 것. 작가가 여성인지라 쉽게 여성 소설, 로맨스 소설, (멸시하는 의미의) 그저 그런 소설 나부랭이로 평가절하되기 쉬운데, 오스틴을 한 권이라도 제대로 읽어본 사람이라면 그렇게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여성을 단일한 하나의 집단으로 볼 수 있는가는 페미니즘만의 질문은 아니다. 여성은 인종, 민족, 계급, 성 정체성에 따라 분화된다. 여성하나의 정체성이 될 수는 없다. 그럼에도 여성은 여전히 여성이라는 이유로, 구체적으로는 생물학적으로여성이라는 이유로, 여러 불이익을 감수해야 하며 물리적 폭력과 사회, 문화적 압박에 시달린다. 가부장제 오천 년 여성혐오의 전통(?)은 사람들 마음속에 내면화되어 있기에, 여성은 여전히 개인으로서가 아니라 여성으로서판단된다. 단지 그대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여자 주인공은 운송 수단을 소유하거나 조종할 수 없으므로 마을에서 가장 가난한 이웃 남자보다 못하다. 그 남자들은 자신들이 원하거나 필요한 곳에 어디든 갈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상 여자 주인공과 남자 형제들을 구분 짓는 것은 여성의 예외 없는 자유의 부재다. 오스틴은 남동생들도 자신들의 누나처럼 (예를 들면 배우자를 선택할 때 경제적으로) 제한을 받는다고 설명하지만, 항상 경제적 계급보다 성의 계급이 우선한다고 주장한다. (260)

 



페미니즘이라는 단어를 전면에 사용하지 않으면서도, 오만한 남성의 허위와 똑같은 무게로 허영에 찬 여성의 이기심을 조롱하면서도, 오스틴은 가부장제의 허울을 파헤친다. 결혼에 목맨 아름다운 처자의 결혼 성공담을 넘어서서 경제적 계급보다 우선시되는 성 계급의 존재와 유지, 그리고 억압에 대해 고발한다.

 


'영국 소설에서 돈이나 돈벌이는 남성적이기보다 여성 특유의 주제'라는 엘런 모어스의 주장은 과장일 수도 있지만, 여성에 대한 가부장적인 통제가 여성으로부터 돈을 벌거나 상속받을 권리를 박탈하고 여성을 좌지우지한다는 것, 그 특유의 방식을 오스틴은 독자적으로 탐색한다. (279)



 

당시 영국에서 재산과 지위의 상속이 남자를 통해서만 이루어지도록 했던 한정상속의 경우, 상속 재산이 없는 딸들의 경우 재산과 지위를 획득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결혼이었다. <오만과 편견>에서, 웃으면 안 되는데 웃을 수밖에 없는 프러포즈 장면을 연출하는 콜린스는 이러한 한정상속의 폐해와 그로 인한 남성 특권을 구체화한 인물이다. 콜린스는 한정상속으로 인해 재산을 잃을 위기에 처한 (아들 없이 딸만 넷인) 베넷 가를 배려하는 차원에서 엘리자베스와 결혼하려고 한다. 정확히는 결혼해 주려고한다.

 


사실을 말씀드리자면, 당신의 훌륭하신 부친께서 돌아가신 뒤에 - 물론 아주 오래 사실 수도 있지만 - 이 댁의 재산을 제가 상속하게 되어 있는지라, 그분의 따님들 중에서 제 아내를 선택함으로써 그 서글픈 사건이 일어났을 때 ― 물론 이미 말씀드렸듯이 앞으로 몇 년 안에 일어날 일은 아닙니다만 ― 따님들에게 닥칠 상실을 가능한 한 최소한으로 줄이기로 마음먹지 않고서는 저 스스로 용납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오만과 편견>, 153)

 



반면에 원치 않은 결혼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엘리자베스의 친구 샬럿의 이야기에는 당시 여성들의 무거운 고민이 담겨있다. 엘리자베스는 당시로는 파격적일 수 밖에 없는 애정 있는 결혼을 추구한다. 후에 엘리자베스는 인물/집안/재산의 삼박자를 완벽하게 구현하는 다아시와 애정 있는결혼을 하게 된다. 당시에도, 어쩌면 현대에도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을 해낸 셈이다. 하지만, 샬럿은 그렇지 못하다.

 

 

콜린스 씨는 똑똑한 사람도, 함께 있기에 즐거운 사람도 분명 아니었다. 그와 함께 있으면 지루했고, 그녀에 대한 그의 애정도 상상 속에나 존재하는 것임에 틀림없었다. 그렇지만 어찌 됐든 그녀는 남편을 갖게 될 것이었다. 남자나 혼인 관계 그 자체를 중시한 것은 아니었지만, 결혼은 언제나 그녀의 목표였다. 좋은 교육을 받았지만, 재산이 없는 아가씨에겐 오직 결혼만이 명예로운 생활 대책이었고, 결혼이 가져다줄 행복 여부가 아무리 불확실하다 해도 결혼만이 가장 좋은 가난 예방책임이 분명했다. 이제 마침내 그 예방책을 손에 넣은 것이니 스물일곱의 나이에 한 번도 예뻐 본 적이 없는 여자로서는, 이번만큼은 정말 운이 좋았다고 느꼈다. (<오만과 편견>, 177)



예쁘지 않은 나, 매력적이지 않은 나, 지참금이 없는 나와 결혼하자는 사람이 나타났을 때, 청혼한 사람이 먹고살기에 적당한재산을 소유한 사람이라면, 그녀의 선택지는 하나다. 그 사람과 결혼하는 것. 결혼하지 않는다면, 그의 청혼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그녀 앞에 남겨진 삶은 너무나 뻔하다. 하인과 비슷한 대우의 가정교사가 되거나, 일평생을 남동생과 그의 아내에게 경제적으로 의지해야 하는 집안의 천덕꾸러기가 되는 것이다.

 


"나도 네가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아." 샬럿이 대답했다.

"네가 놀라는 것도 당연해. 무척 놀랍겠지. 콜린스 씨가 너하고 결혼하고 싶어 했던 게 바로 엊그제니까. 그렇지만 시간을 두고 다시 생각해 보면 너도 내가 잘했다고 할 거야. 그러길 바라. 너도 알지만 난 낭만적인 사람이 아니야.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었지. 내가 원하는 건 단지 안락한 가정이야. 그리고 콜린스 씨의 성격과 집안 배경, 사회적 지위 등을 고려해 볼 때, 내 생각엔 우리에게도 다른 어느 커플 못지않게 행복할 가능성이 있다고 믿어." (<오만과 편견>, 180)

 

 


결혼에 대한 생각이 예전과는 많이 다르다. 20대 여성의 70%가 결혼을 고려하지 않는다는 기사를 흔하게 읽을 수 있는 요즘이다. 비혼 여성 삶의 즐거움과 자유에 대해, 나는 조금은 예상할 수 있을 것 같다. 비혼 여성 삶의 괴로움과 외로움에 대해서는 그저 추측할 뿐이다. 오스틴의 작품을 다시 살펴볼 때 놀라운 점은, 당시로서는 파격적일 수밖에 없는 비혼 여성으로서, 그녀가 샬럿의 입을 통해 그녀와 다른 삶을 살아가는 여성의 삶에 대해 말해주었다는 점이다. 변호라고 할 수 없겠지만, 변호 같은 말들.

 



사랑 없는 결혼의 허무함, 배우자로서 콜린의 부적합성을 이야기하는 엘리자베스가 오스틴인 것처럼, 이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이야기하는 샬럿 역시 오스틴이다. 결혼 후에 이어지는 일련의 책무들, 이를테면 가사, 임신, 출산, 양육 과정에서 여성이 아내와 어머니로서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음을 간파한 오스틴은, 그 자신은 그 함정에 빠지지 않았다. 걸어 들어가지 않았다. 결혼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럴 수 밖에 없었던 여성들에 대한 오스틴의 입장, 오스틴의 시선, 오스틴의 문장은 결혼의 압박이 덜한 시대에 결혼해버린 기혼 여성들에게, 정확히는 나 같은 사람에게도 이해와 협력의 손짓으로 느껴진다. 에이드리언 리치가, 결혼해 아들을 셋이나 낳아 길렀던 에이드리언 리치가 가정에 매이지 않은 채, 이성애적 짝짓기와 출산의 법칙을 거스른 여성들에게 보였던 존경과 사랑이 기억나는 대목이다. ‘아이 없는여성들의 연구와 학문이 우리 모두 여성을 정신적인 영양실조로부터 구해냈다(<우리 죽은 자들이 깨어날 때>, 215). 오스틴이야말로 그런 존경을 받을 만한 사람이 아닌가 싶다.

 


오스틴을 더, 읽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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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다락방의 미친 여자] 수녀의 운명
    from 책이 있는 풍경 2022-12-20 18:32 
    사회가 여성에게 요구하는 가장 큰 임무는 ‘출산’이고, 가장 중시되는 역할은 ‘어머니’다. 그래서 이것을 거부하는 여성은 사회 구성원들에게 지탄의 대상이 되고 또 한편으로는 멸시의 대상이 되는데, 이는 독신 여성이 사회가 요구하는 ‘여성적’ 임무와 역할을 거절했기 때문이다. ‘아이 없는 여성의 지적인 작업’에 대해서는 여러 번 썼기에 링크로 갈음한다. (제 글을 제 글에 인용하는 저의 게으름을…. 부디 탓하지 마소서.) 시몬 드 보부아르와 데버라 데비
 
 
다락방 2022-11-16 17:2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 단발머리 님 이 글 참 좋으네요. 인용하신 에이드리언 리치의 문장은 지난번에도 단발머리님 서재에서 만난 적이 있어요. 단발머리 님과 같은 책을 읽는다는 것은 제 인생의 행운입니다. 계속 읽고 써주세요, 단발머리 님! ♡

단발머리 2022-11-16 17:46   좋아요 1 | URL
다락방님과 함께, 다른 이웃님들과 함께 ‘여성주의 책 같이읽기‘ 하는 게 제 인생의 행운이죠.
얼마전에 친구가 어느 분이 젤 좋아요? 하고 묻더라고요. 에이드리언 리치라고 제가 답했거든요. 체슬러도 좋고 거다 러너도 좋은데. 보부아르도, 아렌트도 좋지만 ㅋㅋㅋㅋㅋㅋㅋㅋ 지금은 에이드리언 리치가 젤 좋아요. 헤헷!!

공쟝쟝 2022-11-16 18: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나는 아렌트가 좋아요 ㅋㅋ 얼마전에 아렌트 평전 앞부분 읽다가 울었어요 ㅋㅋㅋㅋㅋ 으허어어어엉 ㅠㅠㅠ ㅋㅋㅋㅋ 흐흐흐
오만과 편견의 저 대사들은 기억이 선명하게 나네요. 제인 오스틴이 지금 태어났다면 어떤 모습였을까요? 궁금합니다!

단발머리 2022-11-16 19:08   좋아요 0 | URL
나도 아렌트가 좋아요. 울 정도는 아니어서... 많이 부족합니다 ㅎㅎ

공쟝쟝 2022-11-16 20:09   좋아요 1 | URL
그냥 전 눈물이 흔한 사람 ㅋㅋㅋㅋ 😭😭😭😭

단발머리 2022-11-16 22:05   좋아요 1 | URL
나도 눈물이 흔한 사람.... 요즘 많이 삭막해졌어요. 슬프도소이다....

바람돌이 2022-11-16 20:3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스틴 문학의 매력이 한눈에 확 들어오는 글입니다. 전적으로 공감해요. 저 역시 오만과 편견 읽으면서 샬럿의 선택읽을 때 당대 사회에 대한 오스틴의 판단에 감탄했네요.
에이드리언 리치는 곳곳에서 너무너무 인용이 많이 되는데 언제쯤이면 읽을 수 있을지.....

단발머리 2022-11-16 22:04   좋아요 1 | URL
저는 처음 읽을 때는 엘리자베스와 다아시의 애정행각에 눈이 멀어서 샬럿의 마음을 읽지 못 했어요. 두 번째 읽을 때 샬럿이 다시 읽히더라구요. 오스틴이 완전 샬럿 편이라고는 생각지 않지만, 그래도 그 마음이 고맙습니다, 저는요.
앞으로도 계속 오스틴에게, 에이드리언 리치에게 감탄할 것 같아요. 감탄과 감동이 우리의 몫입니다^^

꼬마요정 2022-11-17 00: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단발머리님 글 너무 좋아요. 저는 제인 오스틴 참 좋아하는데요. 그 시대 결혼을 꼭 해야만 한다면 제인이 반영된 주인공들이 선택한 남자 정도는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어요. 하지만 세상은 다 그렇게 선택이란 것을 스스로 하면서 살게 하지 않으니까요ㅠㅠ 샬럿처럼 현실에는 그런 남자가 없으니 여자가 살아가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선택을 해야 한다는 것도 잊지 않고 알려주고요ㅠㅠ

제인은 적당히 행복한 걸 원하지 않았으니까요... 자신이 원하는 행복이 무엇인지 아는 것만으로도 제인 오스틴은 정말 대단한 것 같아요. 그리고 저 시대 좀 짜증나구요. 짜증 안 나는 시대가 있나 모르겠네요 ㅎㅎㅎ

단발머리 2022-11-19 11:44   좋아요 1 | URL
꼬마요정님, 댓글이 늦었어요 ㅠㅠ 저는 <오만과 편견>을 여러번 읽었는데 이번에 <다락방의 미친 여자> 읽으면서 샬럿이 다르게 보이더라구요. 저는 항상 엘리자베스 편이어서 안 보였던 것 같아요. 근데 오스틴이 냉소적으로 때로는 부드럽게 말해서 그렇지 사실 가부장제의 허울과 한계, 억압에 대해 얼마나 날카롭게 비판하고 있었나, 그런 면을 새롭게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꼬마요정님 말씀처럼 현실 속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는 면이 있으니까요.

짜증 안 나는 시대는 없는 것 같은데요. 그래도 제인이 살던 시대보다는 지금이 1이라도 나아진 세대다...저는 그렇게 생각하거든요. 찢어진 청바지에 운동화 꺾어신고 뛰어나갈 때 전 그런 생각해요.
오늘 좋은 날 되세요, 꼬마요정님! 자주 뵈어요^^

책읽는나무 2022-11-18 09:4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다미여 책 덕분에 요즘 오스틴, 브론테, 조지 엘리엇, 메리 셸리, 이디스 워튼등 그동안 읽고 싶었지만 줄곧 안 읽고 있었던 19세기 여성 작가들 소설들을 몰입독서하고 있는 지금 이 시간이 좀 행복하단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이때 아님 언제 읽어? 처음엔 그런 생각으로 읽기 시작했었는데 오스틴의 소설들은 점점 시선을 사로잡는 매력이 분명 있어요.
그 시절 여성들의 속박된 삶 속에서도 오스틴이 들려 주는 ‘주체적인 삶‘ 의 견본을 제시해 준 것이라고 봅니다. 특별하지 않고, 또 조금 속물처럼도 보이지만, 그것이 어쩌면 가장 큰 삶의 중심이 될 수밖에 없었던 시절, 그 속에서 제대로 된 삶의 선택을 할 수 있는 판단이 아니었나?싶구요.
등장인물들 악역으로 나온 사람들 욕하는 재미에 시간가는 줄 모르고 드라마 보듯 읽었어요ㅋㅋㅋ
전 콜린스 그 남자 책에선 참!! 한심하다! 그러고 읽었는데 영화를 보곤 빵~ 터져서 책에 콜린스 그 사람만 나왔다 하면 혼자 넘 웃겨서..ㅋㅋㅋ
근데 그런 콜린스를 선택한 샬럿이 그닥 후회하는 것 같아 보이지 않아, 샬럿은 또 그 나름으로 은근 삶의 고수인 게 아녔던가? 그런 생각을 했었는데 단발머리님이 샬럿도 오스틴이라고 딱 지적해 주시니, 역시 단발머리님!!!👍 생각했습니다^^
이제 전 <설득>이랑 <엠마> 두 개의 소설만 읽음 여섯 개의 대표작은 다 읽게 되었네요^^
네 개의 소설을 읽고 나니...오스틴은 제게 좀 사랑스러운 작가가 되었습니다^^

단발머리 2022-11-19 11:38   좋아요 1 | URL
책나무님 요즘 정말 열공에다가 속도까지 붙은 독서 진행 중이셔서 제가 많이 부러워하고 있습니다. 행복하다는 말씀, 저도 완전 이해되고요. 다미여, 기본 도서 읽으면서 제인 에어, 참고 도서 읽어가는 모습이 너무 멋지다고 생각해요.

저도 <오만과 편견> 영화에서 남자주인공보다 콜린스한테 더 눈이 가더라구요. 너무 콜린스 그 자체인 거에요. 그런 이상한(?) 행동들이 진심처럼 느껴지고요. 배우님에게 박수를 보내야 할 판입니다 ㅋㅋㅋㅋㅋㅋ
네 권이나 읽으셨다니, 정말 대단하세요. 두 권 마저 읽으시고 전자 작가에 오스틴 추가하시면 되겠네요. 기립박수 미리 보냅니다.
짝짝 짝짝짝!!

독서괭 2022-11-18 13:2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오 단발님, 울림이 있는 글이예요. 저도 다미여 4장 읽었는데, 오스틴 소설 얘기가 너무 많이 나와서 오스틴을 예습 좀 할걸 하고 후회중입니다 ㅎㅎ 가지고 있는 오만과 편견이라도 재독해야 하나.. 오스틴이 이렇게 패러디에 능하고 영리한 작가인지 미처 몰랐어요. <노생거 사원>이랑 <설득>은 꼭 읽어보고 싶어요.
에이드리언 리치, 엄청 멋진데요?? ‘아이 없는’ 여성들의 연구와 학문이 우리 모두 여성을 ‘정신적인 영양실조’로부터 구해냈다=> 저도 열심히 공부하고 업적을 이뤄내는 많은 비출산 여성들을 응원하고, 결혼 없이 살아가는 많은 멋진 여성 롤모델이 있는 현대 젊은 여성들이 부럽기도 합니다. 제인 오스틴도 참 넓은 시야를 가진 사람이군요. 이 멋진 언니들 보소~

단발머리 2022-11-19 11:35   좋아요 1 | URL
저도 안타까운 작품이 많아요. 저는 <프랑켄슈타인> 한 번 더 읽었어야 하는데... 하면서 안타까워하고요. 그나마 <아그네스 그레이>는 독서괭님 리뷰 읽을 수 있어서 아쉬움을 달랬습니다. 저도 <노생거 사원> 이번에 재미있게 읽어서 <오만과 편견> 다음 2순위로 올려두었습니다^^

좋아하는 페미니즘 작가 많지만, 에이드리언 리치가 요즘 제 최애 작가입니다. 그 다음은 체슬러. 그 다음은 (페미니스트는 아니지만) 아렌트, 그 다음은 ㅋㅋㅋㅋㅋㅋㅋ 멋진 언니들의 행진이네요.

서니데이 2022-12-08 18: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따뜻한 하루 보내세요.^^

단발머리 2022-12-09 16:52   좋아요 1 | URL
에궁 ㅋㅋㅋㅋㅋㅋ 서니데이님 축하말씀 감사드립니다!
서니데이님도 좋은 하루 되세요!!
 
[소설의 정치사] 광기의 여자

 

















<다락방의 미친 여자>를 24<산문 속에서 입 다물기>, 294쪽까지 읽었다. (작년에 300쪽 정도 읽었으니 여기까지는 재독이라고 주장하는 나란 사람, 누구?)

 

 


가부장적 서구 문화에서 텍스트의 저자는 아버지이자 창시자이며 낳는 자이고, 펜을 음경처럼 사용하며 자손을 만들어내는 힘을 가진 존재다(78). 남성 예술가들이 만들어놓은 여성에 대한 지독한 혐오, 여성에 대한천사와 괴물의 양면적 이미지 속에서 성장한 여성 예술가들은 자아 정의의 과정 내내 가부장적 정의와 맞서 싸워야 한다. 지금 말하는 나, 창조하는 나, 문장을 써 내려가는 가 바로 그 천사, 그 괴물이기 때문이다.

 


해럴드 블룸의 지적대로 남성 예술가는 선배 작가의 영향에 대한 불안과 싸워야 했다. 선배들의 작품이 자신을 넘어서서 존재하고 자기 작품보다 본질적으로 우월할 것이라는 불안(141)이 그들을 사로잡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여성 예술가들은 작가가 되는 것에 대한 불안을 이겨내야 한다. (145) 여자인 네가? 창조하겠다고? 선배가 되겠다고? 작가가 되겠다고? 의미 있는 무언가를 만들어내겠다고? 시인이 되겠다고? 소설을 쓰겠다고? 이건 외부의 소리가 아니라 여성 예술가 내부에서 들려오는 소리다. 내면화된 가부장제의 여성 혐오가, 여성 예술가의 몸 속에서소리치고 있는 것이다. 역시 생각날 수밖에 없는 토니 모리슨.

 















제 말씀은 남성들은 작가로서의 자격을 당연하게 여긴다는 겁니다. 저는 그럴 수가 없었는데 말입니다. 이상한 일이지요. 글쓰기가 인생의 핵심이고 마음을 몽땅 차지하고 있고, 기쁨을 주고 자극을 주는데도 저는 제가 작가라고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직업이 뭔가요?”라고 물으면 , 저는 작가랍니다.”라고 대답하지 못했어요. 대신 편집자랍니다.” 아니면 교사예요.”라고 대답하곤 했습니다. (<작가란 무엇인가 2>. 311)

 
















내 남편은 섬세하고 다정한 남자로 아이들을 원했고 학계에 직업을 가진 50대 남자로서는 드물게 기꺼이 '도와주려' 했다. 그러나 이 '도움'은 너그러운 행동으로 이해되었고, 가족 안에서 진짜 일은 그의 일, 그의 직장생활이었다. 사실 이 사실은 몇 년간 우리 두 사람 사이에 문제가 되지도 않았다. 나는 작가로서 나의 몸부림이 일종의 사치이자 나만의 특이성이라고 생각했다. (<우리 죽은 자들이 깨어날 때>, 144)

 



흑인 여성이라면 유모, 보모, 가정부만이 가능하다고 여겨지는 세계 속에서 글을 쓰는 흑인 여성인 자신을 작가라고 부를 수 없었던 토니 모리슨이 말한다. “저는 제가 작가라고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사고의 깊이와 넓이와 폭에 있어서 철학자에 비견할 만한 에이드리언 리치가 쓴다. “나는 작가로서 나의 몸부림이 일종의 사치이자 나만의 특이성이라고 생각했다.” 자신을 작가로 정의할 수 없는 여성 예술가의 고뇌, 자신이 속한 사회와의 불화, 미친 게 아닐까 하는 불안감. 여성 예술가는 이 모든 과정을 이겨내야만 한다. 내면의 여성 혐오와 싸워 이겨야만 한다. 자신을 작가로 정의하기 위한 여성 예술가의 이러한 투쟁은 여성 선배를 적극적으로 찾아내는 행위로 이어진다. 여성 예술가에게 여성 선배는 죽이거나 넘어서거나 미워해야 할 존재가 아니라, 가부장적 권위에 저항이 가능하다는 증거가 되기 때문이다. (146) 여성 예술가에게 여성 선배는 작가 세계의 입장권으로 작동한다.

 

 


물론 이 작가들은 자신들의 반항적 충동을 여자 주인공이 아니라 미치거나 괴물 같은 (소설이나 시 속에서 적절하게 벌을 받는) 여자에게 투사함으로써 자신의 자아분열, 즉 가부장적 사회의 억압을 수용하고자 하는 욕망과 거부하고자 하는 욕망을 동시에 극화한다. 그러나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여성 문학에 등장한 미친 여자가 남성 문학과 달리 단순히 여자 주인공의 적대자거나 들러리가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미친 여자는 어떤 의미에서 작가의 분신이고 작가 자신의 불안과 분노의 이미지다. (189)

 



이 문단이 이 책의 주요한 생각을 담고 있다고 생각한다. ‘작가일 수 없는 여성 예술가가 작품의 주인이 되었을 때, 자신들의 반항적 충동을 여자 주인공이 아니라 미치거나 괴물 같은 여자에게 투사한다는 것이다. 가부장제의 억압을 수용하는 여자 주인공이 작가의 분신인 것처럼, 가부장제를 거부하며 미쳐 날뛰는 미친 여자 역시 작가의 다른 모습, 즉 분신이라는 주장이다.

 

 


그래서 내 질문은 이렇다. <제인 에어>로만 특정해 보았을 때, 제인 에어 속 버사 메이슨 로체스터는 브론테의 분신인가. 미쳐 있고 갇혀 있으며 저택에 불을 지른 버사는 시련을 극복하고 자립하고 결혼하는 제인 에어의 다른 모습인가.

 


소설과 시에서 여성 괴물을 불러냈던 모든 19세기, 20세기 여성 작가는 자신을 괴물과 동일시함으로써 괴물의 의미를 수정하고 있다. 여성 작가는 보통 마녀-괴물-미친 여자야말로 작가 자신의 결정적인 분신이라는 생각에 물들어 있기 때문이다. 남성의 관점에서 가정생활의 순종적 침묵을 거부한 여성들은 무시무시한 대상(고르곤, 세이렌, 스킬라, 라미아, 죽음의 어머니, 밤의 여신)으로 간주되어왔다. 그러나 여성의 관점에서 보면 괴물 여성은 자신을 표현할 힘을 구하는 여자일 뿐이다. (191)

 



작년에 함께 읽은 [소설의 정치사]를 읽으면서 광기의 여자에 대해, 이렇게 정리해 두었다

 

 















가야트리 차크라보르티 스피박은 <제인 에어> <광막한 사르가소 바다> 읽기를 통해 버사를 야생 속 광기 어린 동물적 존재로 취급하면서, 미쳐 날뛰어 스스로 지른 불에 목숨을 잃게 하는 <제인 에어>의 서사 구조는 서구 주체가 인식하는 타자에 대한 인식의 폭력성을 보여준다고 해석했다. (<생각하는 여자는 괴물과 함께 잠을 잔다>, 46) 헬렌 티핀은 “<제인 에어>가 일조하는 식민주의 담론에 따르면, 술에 취해 있고 난폭하며 음탕하고 제정신이 아니라는 말은 곧 백인이 아니라는 말과 같다고 주장하며, “식민주의 이데올로기가 브론테의 서사에 미친 영향을 파헤친다. (<비평 이론의 모든 것>, 884)

 


, <소설의 정치사>의 낸시 암스트롱, <다락방의 미친 여자>의 길버트와 구바가 미친 여자를 사회적 정체성에서 탈피하고자 하는 작가의 분신으로 해석한 데 반해, 스피박과 티핀은 버사를 미친 여자로 이해하는 제인 에어가 가진 식민주의적 시선, 백인 위주의 세계관을 비판하고 있다. 

 

 


제일 관심을 끄는 건, 스피박의 해석이다. 1세계의 여성인 제인이 제3세계의 여성 버사를 죽이는데공모함으로써, 제인은 비로소 자유롭고 독립적이며 사랑을 획득하는 주체가 될 수 있었으나, 이는 제3세계 여성 버사의 죽음으로만 가능했다는 점에서 제인 역시 제국주의의 일원으로 볼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다. (<Three Women’s Texts and a Critique of Imperialism>/<세 여성의 텍스트와 제국주의 비판>) 비교적 최근의 저작(<Readings>, 2014 / 번역서 <읽기>)에서 스피박은 이렇게 밝힌다. 알라딘 책소개를 그대로 가져왔다.

 

















다음 장인 「스피박 다시 읽기」에서는 자신의 과거 텍스트인 「세 여성의 텍스트와 제국주의 비판」과 「잘못을 바로잡기」를 검토하면서 이 글들이 나온 배경과 더불어 저자인 과거 자신의 '검토되지 않은 문화적 가정들'이 무엇이었는지를 해명한다. 그리하여 그는 「세 여성의 텍스트와 제국주의 비판」이 "요컨대 그들은 틀렸고 우리가 옳으며, (비록 제가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노라 말할 만큼은 조심스러웠지만) 샬럿 브론테는 인종주의자라는 식"(99) 으로 읽혀 온 것에, 그리고 자신이 그런 해석의 여지를 제공한 것에 유감을 표명하며... (<읽기>, 알라딘 책소개)  

 



샬롯 브론테가 인종주의자라고 읽혀온 것에 유감을 표하는 데까지는 이해하겠는데, 그래서 그다음에 어쩌자는 건지. 이 책을 읽었는데도 잘 모르겠다. 읽을 때도 그렇게나 어려웠다, 한없이. 그래서? 그래서! <제인 에어>를 다시 읽어보려고 한다.

 

 



제인과 로체스터로만 읽었던 텍스트를 제인과 버사로 읽어보려고 한다. 버사가 제인의 억압받은 내면인지, 버사가 작가의 분신인지. 버사는 제인의 두려움의 상징일 뿐인지, 역사성을 소유한 인간인지. 그런 면에 중심을 두고 다시 읽어보겠다.

 


제인 에어는 소중하니까. 오랫동안 제인으로 살았던 내가 버사라면, 이 역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일일 것이나. 내가 생각하는 최상은 제인의 다른 자아로서의 버사이다. 은유로서의 버사. 찬찬히 다시 살펴보자. 제인인지 버사인지. 버사인지 제인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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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다락방의 미친 여자] 로체스터를 믿을 수 있는가
    from 책이 있는 풍경 2022-12-04 00:24 
    『제인 에어』에 대한 질문, ‘버사는 제인의 분신인가’에 대해 쓴다. 공동 저자 샌드라 길버트와 수전 구바는 “미친 여자를 작가의 분신 혹은 작가 자신의 불안과 분노의 이미지”(189쪽)로 보았다. 작가들이 자신들의 반항적 충동을 여자 주인공에게 투사할 수 없으니 괴물 같은 미친 여자에게 투사했다는 주장이다. 그들의 결론은 이렇다. 밤중에 나타나는 유령은 버사 메이슨 로체스터다. 그러나 비유적 심리적 수위에서 버사라는 유령은 제인의 또 다른 (사실상 가
 
 
바람돌이 2022-11-09 15:1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버사가 작가의 또다른 분신인가? 그럴수도 있겟다는 생각이 드네요.
제인에어 읽을 때 이 부분도 잘 생각하면서 읽어야겠습니다. ^^
그런데 버사를 제3세계의 여성으로 볼 수 있나에 대해서는 의문점도 드네요. 출신지역만으로 따지면 제 3세계지만 버사는 식민지에서 부자가 된 백인의 딸이잖아요. 그쪽 인종으로 얘기하자면 크리오요인셈인데, 이들이 본토의 유럽인에 비해서 차별을 받은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제3세계라고 말할 정도는 아닌거 같은데말이죠.
하여튼 쉬운게 없네요. ㅎㅎ

단발머리 2022-11-09 15:35   좋아요 3 | URL
일단 이 책의 저자들은 작품 속 ‘미친 여자‘를 작가의 분신으로 보고 있는 것 같습니다. 가부장제에 거부하고 싶은 작가의 욕망을 미친 여자, 괴물이 체현하고 있다고요. 제가 관심이 가는건 스피박의 해석 쪽인데요.

제인을 제1세계 여성으로, 버사를 제3세계 여성으로 본 건 스피박의 해석입니다. 바람돌이님 말씀처럼 버사는 식민지 부자인 백인의 딸인 크리올이지만, <제인 에어>에서도 ‘검은 피부‘를 가진 여성으로 그려진만큼 백인이라기 보다는 혼혈여성으로 예상됩니다. 그렇다면 버사는 백인 사회에서는 멸시를 받고, 원주민 사회에서도 속할 수 없는 애매한 위치에 있었던 건 확실한 것 같고요. <광막한 사르가소 바다>의 저자, 진 리스의 경우처럼 말이지요.

부유한 가문, 백인 혈통의 여성일지라도, 버사가 재산을 빼앗기고 감금되고 미친 여자로 규정되는 과정을 식민주의 침략의 은유로 보았을 때, 스피박은 제인도 버사의 ‘제거‘에 공모했다고 보는 것 같아요. 저도 다시 읽어봐야하고, 또 그렇게 보는 면이 불편한 지점이 없지 않지만, 지금까지 제가 대략적으로 살펴본 바로는 그렇습니다. 제2페미니즘 물결이 한참일 때, 백인 여성들이 운동의 주도권을 독점하고 흑인여성, 유색인종의 여성들을 억압했던 역사도 겹쳐져 보이고요.
쉬운 건 정말 없는 것 같습니다 ㅎㅎㅎ

바람돌이 2022-11-09 21:37   좋아요 0 | URL
아 저는 제인에어를 읽지 않았고, 버사 이야기는 다른 책에서 얘기한걸 본거였는데 백인이 아니라는 생각은 한번도 못해봤는데 저의 또 선입견이었군요. ㅠ.ㅠ 똑바로 읽고 다시 오겠습니다. ㅠ.ㅠ(지금 잠시 벌서고 있어요. )

지금 읽고 있는 메리 셀리의 <최후의 인간>에서도 작가의 제국주의적인 관점이 너무 분명하게 나옵니다. 이 시대의 시대적 한계랄까싶기도 해요.

다락방 2022-11-09 16:1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버사 부인을 비백인으로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아직 <다락방의 미친 여자>를 읽기 전이지만, 단발머리 님의 이 글을 읽으니 버사 부인이 제인의 분신이라는 해석에도 그럴 수 있다는 생각이 들지만, 이 페이퍼를 읽었을 때 스피박의 해석 쪽으로 저는 좀 더 기울긴 하네요. 제가 다락방의 미친 여자 책을 읽는다면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요. 저는 진 리스도 결국 스피박 처럼 보았기 때문에 버사 부인의 입장에서 광막한 사르가소 바다를 썼다고 생각되거든요. 읽은지 오래돼서 광막한 사르가소 바다 도 다시 읽어야 할 것 같네요.

와 다락방의 미친 여자는 제가 아직 서문 딸랑 한 편 읽고 멈춘 상태지만, 읽고 써주는 여러분들의 글이 정말 재미있어요!

단발머리 2022-11-09 16:30   좋아요 2 | URL
진 리스는 버사의 목소리를 전면에 내세운 소설을 쓰고, 스피박은 제국주의 관점에서 두 소설을 비교, 분석했는데요. 언어의 힘에 대해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됩니다. 저 <광막한 사르가소 바다> 아직도 안 읽었답니다.

책이 좋아서 앞으로도 여러분들의 좋은 글이 많이 올라올 것 같아요. 또 비교적 ㅋㅋㅋㅋㅋㅋ 잘 읽히기도 하구요.
책선정의 달인님이 참 좋아하실 일입니다^^

건수하 2022-11-09 16:2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단발머리님 많이 읽으셨네요. 저도 <생각하는 여자는 ~ > 읽고 스피박에도 관심이 가던데, 워낙 어렵다는 말을 (정희진 님 책에서) 많이 봐서 겁을 먹고 있어요. 또다른 분신이라고 볼 수도 있겠네요. 저는 하나의 가능성 (언제든 될 수 있는) 이라고 생각했는데..

<제인 에어>도 그렇고 <노생거 사원/수도원>에서 캐서린의 틸니 부인에 대한 상상 (아닌 것으로 밝혀졌지만) 이 언젠가 본인의 상황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니까요. 재미도 있었지만, 그 부분 때문에 노생거.. 가 좋았어요.

저도 (제3세계 여성이라서 그런가) 스피박의 해석을 부정할 수는 없더군요.

단발머리 2022-11-09 16:32   좋아요 2 | URL
<서발턴은 말할 수 있는가?> 같은 경우는 뭐, 이루 말로 다할 수 없을 정도로 어렵다고 하더라구요. 해러웨이님이랑 두 분이 좀 겨뤄주시면 좋을 거 같습니다.

저는 수하님 리뷰 보면서 <노생거 사원>을 이번에 다시 읽었는데 너무 잘한 거 같아요. 캐서린이 틸니 장군 의심하면서 틸니 저택 돌아다니던 장면, 저는 그 장면이 좀 의아했거든요. 작가의 불안이 그 장면에 속속들이 숨어있더라구요.

저는, 아직은 스피박 쪽은 아닙니다. 아직도 제인이고 싶은 나여. 나, 제인이여.....

다락방 2022-11-09 17:03   좋아요 2 | URL
근데 스피박은 이름부터가 너무 어려운 느낌이지 않나요? 스피박... 이름부터 ‘나는 어렵지롱!‘ 하는 것 같아요..

단발머리 2022-11-09 17:07   좋아요 1 | URL
사진 보셨어요? 사진 봐도 그런 느낌.... 나는 어렵지롱! 하는 느낌 들더라구요, 저는.

다락방 2022-11-09 17:11   좋아요 2 | URL
저 지금 단발머리 님 댓글 읽고 검색했거든요? 근데 이미지가 정희진 쌤 비슷한 것 같아요.

단발머리 2022-11-09 17:17   좋아요 2 | URL
응응, 맞아요. 근데 정희진쌤이 좀 더 순한맛 같아요.
스피박은 키가 크다고 어디선가 읽은 거 같아서요, 180센티미터 가깝다고요. 그래서 정말 그런가 찾아볼래니, 못 찾겠어요.

책읽는나무 2022-11-09 19: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지금 <제인 에어 2> 읽고 있는 중입니다.
숨가쁘게 달리고 있었는데, 단발님 리뷰 읽으면서 잠깐 끼익!!!!!! 멈춰지네요.
제인이 작가의 분신일 것이라 생각하고 읽고 있었는데 버사가 분신일 수도 있다구요?
아...그래서 샬롯 브론테 작가를 제국주의자, 인종주의자라고 비판하는 거였군요?
그게 살짝 이해가 안갔었는데 2 권을 읽으면서 로체스터의 넋두리에서 살짝 제국주의적 의식이 엿보이는 말들이 있어 이걸 두고 그러나? 싶었는데...버사의 설정이 이유였군요.
제가 제인 에어를 늦게 읽어 아둔했네요ㅋㅋㅋ
근데 비평들이 일리가 있기도 합니다.
남은 부분들은 좀 더 꼼꼼하게 읽어봐야겠어요.
순전히 제인의 고통에 빠져 읽다 보니...로체스터 바람둥이로 눈 흘기고 읽었는데, 또 한편으론 가문에 이용당한 피해자로 보이기도 하고, 지금은 제인의 슬픔에 빙의되어 있어 앞뒤 눈에 보이지 않았는데.....정신 바짝 차리고 읽겠습니다.^^;;;

단발머리 2022-11-10 17:55   좋아요 1 | URL
제인이 작가의 분신이며 버사도 작가의 분신이라고 하네요. 저도 좀 더 읽어봐야 하는데 읽어갈수록 머리 속이 복잡해지고 있습니다. 안 그래도 책나무님 제인 에어 열독하시는 피드 보았습니다. 참고도서 읽기에 다미여 읽기까지.... 진정한 학인이십니다!!

공쟝쟝 2022-11-09 20: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재밌어요! 너무 재밌어요! ㅋㅋㅋ
이상한 말이지만 저는 한번도 선생님이 되고 싶었던 적이 없어서, 만약에 제인에어를 어렸을 때부터 읽었더라면…. 제인에어에 이입했을까? 싶었거든요 ㅋㅋㅋ
노생거도 ㅋㅋㅋ 저 캐서린에 이입이 안되어서 너무 읽기 힘들어요 ㅋㅋㅋㅋㅋㅋ (오늘 쯤엔 다 읽을 거 같은데 ㅋㅋㅋㅋ)
저는 데미안이 인생책이고 사주팔자도 남자사주였음 좋을거 같단 이야기 듣고, 만화도 순정만화보단 차라리 소년만화였는데요 ㅋㅋㅋ
인생책이 제인에어였던 단발님께 스피박의 지적이 얼마나 중요한 질문인지 뭐랄까 좀 가슴이 아프지만 지적으로 흥분되는 그런 시선으로 이 글을 읽게 되었어요. 스피박의 읽기는 사야겠네요 ㅋㅋㅋㅋㅋ 후…. 종횡무진 겹쳐읽기에 레퍼런스마저 미치도록 지적인 글에 좋아요 백개 누르고 갑니다 ㅋㅋㅋ

단발머리 2022-11-10 17:57   좋아요 1 | URL
쟝님 인생책 데미안 기억할게요. 나도 데미안 이었으면 근사할텐데...
나는 온 국민이 다 아는 제인 에어가 인생책이어서... 스피박의 지적은 저에게 너무 날카롭고, 그래서 저는 부담스러우며, 진도는 지지부진하고, 흥분되면서 동시에 힘이 빠지는.... 그런 형국입니다.
스피박 좀 읽어주세요. 설명 좀 해줘요, 쟝쟝님!!!

독서괭 2022-11-18 13: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단발님, 이글 읽고 잊고 있던 ‘찜‘기능을 이용했어요. 넘 좋네요. 여러 책을 넘나드는 단발님의 깊이 있는 생각 넘 좋아요!
예전에 <제인에어> 두번 읽었는데도 버사가 제3세계 사람인지 몰랐어요;; 아놔.. 다시 읽어야겠어요 ㅠㅠ
그리고 방금 제가 <아그네스 그레이> 리뷰를 쓰면서 제인에어의 남주인공을 ‘맨체스터‘라고 썼는데 이글 읽으며 ‘로체스터‘임을 깨닫고 후다닥 고쳐쓰고 왔어요 ㅋㅋ 감사합니다 ㅋㅋ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야 뭐야 ㅋㅋㅋ
제인에어 재독하고 쓰실 단발님 글 기대할게요!!

단발머리 2022-11-24 20:04   좋아요 0 | URL
독서괭님, 맨체스터 저 너무 웃겨서 ㅋㅋㅋㅋㅋ 저도 다른 분 방에서 마리 앙투아네트 이야기하다가 ˝알라딘 대유형˝ 이렇게 썼더라구요 ˝알라딘 대유행˝인데요. 지금 월드컵이라 독서괭님 오타는 괜찮은데 저는 어째요. 저는 하루 지나 발견했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저는 제가 제인인지 버사인지가, 저한테는 중요한 문제라서요. 제가 <제인 에어> 재독하고 돌아오겠다 했는데... 저 시작도 못하고요. 이러다 발췌독하게 생겼습니다. 흐미....
 

















예순이 다 되어가는 해러웨이가 병상의 아버지에게 반려견 카옌과의 어질리티(장애물 넘기를 포함한 인간과 개의 협동 게임) 경기에 대해 설명한다.





아버지는 돌아가실 수 없었다. 스포츠 기자였기 때문에, 그리고 나의 아버지였기 때문에. 나는 아버지의 관심을 원했고, 아버지의 인정을 원했고, 내가 하는 것을 제대로 알아주시길 바랐다. (220쪽) 











재가 된 사체를 땅에 묻는 것은, 떠나는 것이 단순히 그 사람이나 그 영혼만이 아니라는 인식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신체라고 부르던 매듭으로 묶여있던 것이 떠났다. 그것은 풀려버렸다. 내 아버지가 풀려버렸다. 그것이 내가 그를 기억re-member *해야만 하는 이유다. 나를 비롯해서 아버지와 얽혀 살았던 모든 것들이 아버지의 육신이 된다. 우리는 죽은 자와 친척이다. 왜냐하면 그들의 신체가 우리를 접촉해왔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신체는 내가 딸로서 알았던 신체이다. 나는, 내가 물질적 기호론과 기호론적 물질성이라고 부르는 것에서 텍스트와 신체를 연결하는 육신으로서, 물질적 문채와 물질적 실수로 아버지의 신체를 계승한다. - P204

사업가이자 지역의 명사이기도 했던 할아버지는 덴버에 베이브루스와 루 게릭 같은 스포츠 명사들을 오게 했다. 그들은 꼼짝 못 하고 누워 있는 아버지를 위해 집에까지 와서 야구공에 사인을 해 주었다. 할아버지를 비롯한 지역의 사업가 동료들은 우리가 알고 있는 현재의 프로농구보다 훨씬 이전에 백인 농구 리그를 만들었다. BF 굿리치, 에크론 굿이어, 피글리 위글리를 비롯한 중서부와 서부의 실업 농구팀 선수들은 모두 중간관리자의 지위가 약속된 백인남성이었다. 인종화라는 신체적 실천은 많은 형태를 취할 수 있다. - P208

가족, 스포츠, 비즈니스가 뒤섞인 계보는 그 전형일 것이다. 아버지는 스포츠 기자였다. 그것은 나의 백인으로서의 존재 방식이나 게임 이야기를 구성하는 일부이다. 인종과 돈은 아버지가 스포츠 기자가 된 경위를 구성하는 일부이다. - P209

나는 신체성을 통해서 아버지와 관계를 맺고 아버지의 관심을 받게 되었는데, 그것은 말의 관능성과 쓰는 행위를 통해서였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말에 관해서 이야기하고, 말장난을 하고, 저녁 식사로 말을 먹었다. 그 말들은 우리의 음식이기도 했다. 어머니가 요리를 해 주시는 가운데, 그녀의 외로움과 우리가 거의 눈치채지 못한 그 신체적인 허약함 속에서, 우리가 그녀의 마음-몸을 먹고 있는 사이에도, 그 말들은 우리의 음식이었다. - P215

중년 여성과 재능 있는 개가 함께 몰두하는 스포츠, 지금은 월요일 밤의 황금시간대를 아메리카 풋볼이라 불리는 인간을 깨부수는 그 스포츠가 차지하고 있지만 언젠가는 그 시간에 방영하게 될 경기. 아버지가 고통으로 정신을 못 차리고 진통제 때문에 환각을 보고 있을 때도 나는 국제 수준의 상급코스 도판을 보여드리고, 기술적으로 어떤 것들이 필요한지 설명하고, <미국 개 어질리티 협회> USDAA 전국 대회 비디오를 보여 드렸다. 그리고 카옌과 나의 희비가 교차하는 자초지종도 적어서 보내 드렸다. 아버지는 돌아가실 수 없었다. 스포츠 기자였기 때문에, 그리고 나의 아버지였기 때문에. 나는 아버지의 관심을 원했고, 아버지의 인정을 원했고, 내가 하는 것을 제대로 알아주시길 바랐다. - P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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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1-08 17: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11-08 21: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바람돌이 2022-11-08 21: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질리티라고 해서 또 책상 어지르는 이야기인줄 알고 들어옴요. ㅠ.ㅠ

단발머리 2022-11-08 21:48   좋아요 0 | URL
저도 처음에는 그런 줄 알았고요. 혹시나.... 해서 사진 넣어보았습니다. 강아지랑 호흡 맞춰서 같이 달리는 게임인가 봐요.

다락방 2022-11-09 07: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이것은 반려종 선언에서도 언급된 바로 그것이 아닙니까! 저 오늘 임소연의 <신비롭지 않은 여자들> 읽었는데 거기에도 도나 해러웨이 언급되더라고요. 사이보그 선언 얘기하는데 그전에 사이보그 선언 읽어둔 게 어찌나 좋던지요. 당시에 이해하지 못해도 다른 책에서 언급될 때마다 조금씩 더 가까워지는 것 같아요.

단발머리 2022-11-10 17:59   좋아요 0 | URL
임소연의 책에도 어질리티가 나온다는 거에요? 신기하네요. 읽었던 해러웨이 책 중에 이 책이, 이 챕터가 제일 쉬웠어요.
저는 해러웨이 아버님에게 무한한 감사를 드리며..... 해러웨이 더 많이 읽기를 다짐했습니다.
사이보그 선언 미리 읽어두기 진짜 잘했어요. 헤헤
 

















너무나도 특별하고 독특해서 과거에 존재한 적도 없었고, 앞으로도 절대 존재하지 않을 유일한 배열로서의 나’ (<거의 모든 것의 역사>, 11)’ 그리고 마찬가지로 유일한 조건으로서의 너같은 표현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위인들의 개인사를 좋아하지 않을 수 없다. 내가 아는 보부아르의 처녀 시절, 내가 아는 체슬러의 반항적 10대 시기, 내가 아는 아렌트가 하이데거와의 관계를 두고 고민했던 시간에 대해 듣는 것은, 내게 그런 일이다.

 


도나 J. 해러웨이의 <종과 종이 만날 때>에서 아마도, 거의 확실히 가장 쉬울 것이라 예상되는 챕터 <6 : 유능한 신체와 반려종>를 읽었다. 해러웨이는 아버지 프랭크 해러웨이의 삶을 비교적 자세히 서술한다.

 

 



















원서 읽기 친구들과 같이 읽는 <Me before You>는 이제 두 주 정도의 분량이 남았다. 미리 읽어두자, 하는 마음에 이번 주 분량을 어제 읽었는데 마음이 아팠다. , 이렇게 아름답고 감동적이며 마음을 울리는 책을 원서 읽기 책으로 선정했는지 도대체 모르겠다. 안타까움과 슬픔, 그리고 약간의 원망이 차오르는데, 그런데도 주인공 윌을 미워할 수 없어서 더욱 속상했다. 교통사고로 하체가 마비되고, 얼굴과 목, 그리고 손가락 몇 개만을 움직일 수 있게 된 윌은 스위스에서의 안락사를 선택한다. 윌의 부모는 새 간병인 루이자에게 마지막 희망을 건다. 티격태격하던 두 사람이 서로에게 마음을 열어가고, 자기 집, 자신이 살았던 동네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루이자에게 윌은 새로운 가능성, 삶의 새로운 희망을 불어넣어 준다. 루이자는 윌을 통해 새로운 꿈을 꾸게 되고, 그 길에 윌과 함께하기를 원하지만, 윌은 자신의 결정을 바꾸지 않는다. 루이자는 자신의 사랑에도 불구하고 스위스행을 고집하는 윌을 원망하지만, 결국에는 그의 선택을 존중하기로 하고 그의 마지막 순간을 함께한다. 소설 끝부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윌을 이해하게 됐다. 그가 자신을, 자신의 삶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그리고 그가 얼마나 강한 사람인지 알게 됐다. “I can make you happy.“라고 루이자가 말할 때, 그녀의 그 모든 말들은 100% 진심일 테지만, 그녀의 마음이 어떻게 변할지는 루이자조차도 모를 일이다. 그리고 윌은 그걸 알고 있었다.

 


윌은 자신을 사랑했고, 자신의 몸을 사랑했다. 운동을 좋아했고, 수영을 좋아했고, 그리고 섹스를 좋아했다. 휠체어에 갇힌 삶, 몸을 움직일 수 없는 이런 삶을 계속 살아야 하는 자신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모든 사람이 그런 것은 아닐 것이다. 그는 그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런 자신을, 그런 자신의 모습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해러웨이의 아버지는 생후 16개월 때 넘어져서 엉덩이를 다치고 그때쯤 앓게 된 결핵으로 8살에서 11살 때까지 가슴에서 무릎까지 단단하게 깁스로 고정된 상태로 침대 위에서 생활했다. (208) 휠체어와 목발이 그의 다리가 되어 주었다. 그는 휠체어에 탄 채로 농구 경기에 나갔고, 탁구 경기에 나가 3회 연속 우승을 했다. 목발을 짚고 스포츠 현장에 나가 경기를 기록했다. 스포츠 기자가 되었고, 그 일로 돈을 벌었다. 해러웨이의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읽어갈수록 그의 호기심과 열정, 그의 생명력이 어디에서 오는지 궁금했다. 고통과 고난, 절망과 좌절이 모든 사람에게 똑같은 형태로 작동하는 건 아니지만, 이처럼 명확한 불행속에서 이렇게 담대하게 삶에 직면할 수 있었는지 궁금했다. 나는 이 문장이 그에 대한 답이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해서 아버지는 1930년대의 콜로라도주 탁구 선수권 대회에서 3회 연속 우승을 했다. 상대가 되받아치기 불가능한 서브 - 그 서브들은 몇 년 후에 규칙 위반이 되었다 - 를 구사했고, 운 좋게 타이밍도 겹쳐서다. 한 번이라도 탁구를 본 적이 있다면 자신의 다리로 테이블 주위를 움직이는 것이 이 스포츠에서 필수임을 알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정확히 아버지가 할 수 없는 것이었다. 아버지가 이길 수 있었던 것은 손과 눈의 동조, 균형, 근성, 상체의 강인함, 마음과 신체의 창의성, 그리고 욕망 때문이었고, 또한 자신의 신체와 관계를 맺음에 있어서 단 1분이라도 그것을 거부하거나 부동의 상태(, 신체 바깥에서 사는 것)를 실행 가능한 선택지로 상정한 적이 없이 살았기 때문이다. (213)

 


그런 삶을 예상치 못했던 윌과 그런 인생이 삶의 기준점이었던 프랭크 해러웨이. 인생은 예상치 못했던 일들로 가득 차 있기에 다른 삶, 다른 가능성에 대해 윌이 받아들여 주기를 간절히 바라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외부자의 희망일 뿐이다. 프랭크 해러웨이가 윌보다 더 강인해서가 아니라, 윌에게는 그런 삶의 조건으로 자신의 삶을 상상할 수 없었다는 것이 더 주요한 이유가 될 것이다. 윌이 강원래처럼 살아남기를 바라지만, 그리고 루이자는 그의 김송이 되어줄 거라 믿지만, 이것 역시 쓸데없는 생각일 수도 있겠다. 윌은 윌이고, 루이자는 루이자인 것을.

 

 

 


 

모두 다 그렇겠지만 나 역시 조용하고 우울한 한 주를 보냈다. 내가 돌아간 일상에는 나 혼자여서 얼마든지 조용할 수 있었는데, 생각 없이 켠 라디오에서 생존자 인터뷰가 나오면 나도 모르게 주르륵 눈물이 흐르고. 미안하고 암담한 마음 너머에는 무력감이 자리했다. 세월호 사건 때도 그렇고 이번 사건도, 나는 마흔을 넘긴 모든 사람에게 이 일에 대한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결국 우리는 젊은이들을 지켜주지 못했고, 아이들은 그렇게 죽어갔다. 서울 한 복판, 이태원에서.

 


사건을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말라는 말을, 오래오래 생각했다. 슬픔의 전시라는 말에 대해서도. 이 일로 인해 온 국민이 느끼는 슬픔과 아픔, 그리고 애통한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 희생자들과 유가족들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것인가. 그렇게 볼 수 있는가, 에 대해서도 생각했다. 잘 모르겠다. 나의, 잘 모르겠다, 는 그건 아니라고 말하는 것이지만, 정말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들의 애도는 무엇인가, 어떤 방식인가라는 의문이 들었다.

 


고통을 이겨내고 슬픔을 잠재우고 그리고 떠나간 이를 애도하는 방식이 사람마다 다를 수 있는데. ‘잊지 않겠습니다의 세월호에 대한 마음이 24시간 365일 세월호을 생각하겠다는 다짐은 아닌데. 10.29 참사에 대한 애도가 한정되어야 하는지, 나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웠다. 입에 밥을 넣은 채로 애도할 수 없단 말인가. 장례식장에서도 그렇게 한다. 조문을 하고 상주에게 안타까운 심정을 전하고, 그리고 밥을 먹는다. 입에 밥을 넣은 채로도 울 수 있고, 밥을 먹으면서도 애도할 수 있다. 애도의 방식이, 애도의 표현이 어떠해야 한다고 규정하는 것 자체가 피해자다움의 요구일 수 있다는걸. 모른다는 말인가.

 


나는, 밥을 먹고 책을 읽었다. 빨래를 널고 물을 마시고 책을 읽었다. 인터뷰를 들으며 한 번 울고, 진공청소기를 돌렸다. 설거지를 하면서 한 번 울고, 그리고 수건을 개어 욕실 서랍장에 넣었다. 생각만해도 얼굴에 미소가 피어오르는 친구들과 톡을 하면서, 힘을 내, 우리 힘을 내자, 말하고, 빨래를 하고 다시 책을 읽었다. 아침에 나가 주검이 되어 돌아온 아들, 딸을 마주한 희생자 가족들의 원한, 하늘 끝까지 사무칠 그 억울함. 친구를 잃은, 친구는 죽고 나만 살았다, 고 말하며 우는 젊은이들의 눈물. 한 사람이라도 더 살리겠다고 이리저리 뛰어다닌 소방대원과 경찰들의 죄책감. 그날, 그 시간, 그 장소에 간 것이 잘못이 아니고, 친구는 죽고 살아남은 것이 잘못이 아니고, 최선을 다했지만 살리지 못한 것이 그들의 잘못이 아님을. 밝혀줄 사람이 누군가. 누가 이 일을 해야 하나. 우리 어른들은 무얼 해야 하나, 생각하고 또 생각한다. 진상 조사와 책임자 처벌로 이미 세상을 떠난 젊은이들을 살려낼 수는 없겠지만, 그들의 억울함을, 유가족의 원한을 그리고 온 국민의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그것이 애도의 시작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잊지 않고, 모른체 하지 않고, 이 비극적 사건의 추이를 지켜보는 일이 거기에 포함된다고 믿는다. 

 

 




10. 29 참사 희생자에게 깊은 애도를 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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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1-08 17: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11-10 18: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독서괭 2022-11-08 17:4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아, 단발님 글 읽으니 또 마음이 아프네요 ㅠㅠ 애도를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말자‘라는 사람들이 정작 그 말로써 사건을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있는 건 아닌지, 의문입니다. 애도하면서 밥도 먹고, 생활을 이어가고, 그러면서 또 애도하고 생각하고, 힘내서 다시 이런 일이 없도록 해야겠지요.
미 비포 유를 꼭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페이퍼네요. (해러웨이 읽겠다는 말은 안함.. 심지어 해러웨이는 집에 있음..ㅋㅋ)

단발머리 2022-11-10 18:01   좋아요 2 | URL
어떻게 애도해야 하는지, 저는 어떻게 해야하는지 자주 생각합니다. 슬픈 마음을 뒤로 하고요.

미 비포 유는 정말 베셀의 반전이라고 할까요. 생각할 거리를 많이 던져주는, 그러면서 재미와 감동을 선사하는... 추천합니다!!

건수하 2022-11-08 20:5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단발님이 이런 글 써주실 줄 알고 기다렸어요. 감사해요.

단발머리 2022-11-10 18:01   좋아요 1 | URL
수하님, 댓글 감사해요.....

공쟝쟝 2022-11-09 20:2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현재진행형인 사건에 어떤 말을 가져다 붙이는 것 마저 쉬운 타자화같단 생각이 들어서 가슴아프다는 표현을 짤막하게 일기에 써둔 것 말고는 이태원 참사에 대해선 말을 아끼는 중예요. 이성은 차갑고 감정은 뜨겁다고 오래오래 그게 우리의 도식였잖아요. 연결을 끊을 수 없는 이 세계를 사는 동안 참사는 계속될 것이고, 정치 역시 이어질 것이며, 고통은 목도될 것인데, 감정은 차갑게 이성은 뜨겁게라고 혼자 열심히 생각했어요. 한나 아렌트가 자꾸 생각나고…

그리고, 이 글에서 ‘그런 인생이 삶의 기준점’이었다는 말에 대해서도 전 더 생각해보고 싶어요. 그 기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기 위해서 내가 놓아야하는 것은, 무엇일까하고… 질문들은 또 제게서 부딪히는 데요. 너무 한꺼번에 다 답을 내겠다고 스스로를 볶아대진 않으려고요. 애도합니다. 애도 중입니다. 그런 방식으로.

이 글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

단발머리 2022-11-10 18:04   좋아요 2 | URL
감정은 차갑게 이성은 뜨겁게 나도 기억할게요. 말이 안 되는 상황이 억울한데 누구한테든 물어볼 수가 없네요.
어떻게든... 답을 찾아야겠죠. 암담하긴 하네요.
오래 고민하고 올린 글이라서..... 저도 답을 모르겠고요. 댓글 고마워요, 쟝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