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다는 보부아르의 주장에서 옳은 점이 있다면, 여성 자체가 과정 중에 있는 용어라는 것, 즉 시작하거나 끝난다고 당연하게 말할 수 없는 구성 중에 있다는 것, 되어가는 중에 있다는 입장을 따른다는 점이다. … 젠더는 본질의 외관, 자연스러운 듯한 존재를 생산하기 위해 오랫동안 웅결되어온 매우 단단한 규제의 틀 안에서 반복된 몸의 양식화이자 반복된 일단의 행위이다. (147)

 


여성 자체가 과정 중에 있는 용어라는 것을 완벽한 여성은 없다로 이해해도 괜찮을까 싶다. (단정하는 게 아니고, 묻고 있는 중입니다) ,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여성상 혹은 완벽한여성상이 존재하고, 그 여성상에 가까운 사람에게 당신은 매우 여성적이군요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실제로 그렇게 완벽한여성이란 아예 존재하지 않으며 (혹은 존재할 수 없으며), 우리가 여성적이라고 판단할 수 있는 근거는 그의 행동, ‘여성적이라고 규정되는 행동의 수행이 자연스럽고, 능숙하기 때문인데, 그때 여성적이라는 개념은 생물학적으로 결정된 섹스보다는 사회적 압력과 합의에 의한 젠더와 더 큰 상관관계가 있다. 버틀러가 말한바 젠더는 반복된 몸의 양식화’, ‘반복된 일단의 행위란 이런 의미일 거라 생각한다. (강한 추측)  

 














난티나무님의 놀라운 재발견에 따라한국 남성을 분석한다』 중 버틀러에 관한 부분을 다시 읽었다. 남성()과 여성()은 존재가 아니라 반복적 수행을 거쳐 구성되는 사회적 규범(norm)이자 임의적 범주(category)라는 것이다.(40) 이 문장에 다시 한번 밑줄을 그었다.

 














똑똑이 친구가 추천해준 조현준의 『쉽게 읽는 젠더 이야기』를 3분의 1 정도 읽었는데 중요한 부분은 여기 63쪽인 듯하다. 중요해 보이는 질문에 답하다 보면, 그것이 버틀러의 가장 핵심적인 주장과 닿아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젠더 트러블>은 이 사회가 이성애 중심 사회라면

1) 정말 여성/남성을 분명하게 구분할 수 있는지 ; 없다

2) 여성성/남성성의 내적 본질이 있는지 ; 없다

3) 동성애/이성애의 확고한 이분법이 가능한지 ; 가능하지 않다

를 심문합니다. (63)

 


『젠더 트러블』이라고 하는 어마어마하게 어려운 책의 번역자이기도 한 조현준의 문장 중에서는 특별히 71쪽에 눈길이 간다. 나는 또 새삼 프로이트가 궁금해지고.

 


마지막으로 나의 젠더는 사랑했던 사랑의 대상이 구성합니다. 내가 누군가를 무척 사랑했다가 이별했다면 그 대상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내 안에 남아 있습니다. 보통은 일정 기간 동안 대상을 끌어안고 있다가 서서히 잊게 되지요. 그런데 그 대상이 내 안에 남아서 나의 일부를 구성해 버리면 잊을 수가 없을뿐더러 그 대상을 나의 일부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리고 내 안에 들어와 있는 내가 사랑했던 대상을 인정해야 합니다. 이렇게 내가 된 사랑의 대상을 애증의 감정 때문에 미워하게 되는 것 그래서 사실상 내가 나를 괴롭히는 것을 프로이트는 우울증이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사랑하던 대상이 나를 구성하는 방식은 우울증의 방식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71쪽) 

 



오늘 서울 최고 기온 36. 더위랑 버틀러랑 싸우면 누가 이길까. 버틀러가 이긴다고 본다, 내가 보기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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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1-07-25 22:06   좋아요 8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번주말에 트러블 끝내서 트러블 없는 삶을 살겠다! 하였지만 트러블을 뒤로 미뤄두는 바람에 트러블과 계속 만나야할 것 같아요.
저도 저 책 정희진 쌤 때문에 샀었는데(한국남성을 분석한다) 그 다음은 기억이 안나네요? 다 읽은건지, 팔았는지, 책장에 있는건지, 안읽은건지..
인생..

아무튼 열심이 젠더 트러블 중이시군요. 무더위에 고생이 많으십니다. ㅠㅠ 이게 다 제 탓입니다. ㅠㅠ

단발머리 2021-07-25 22:37   좋아요 6 | URL
저는 이제 막 190쪽을 지나가고 있다는 기쁜 소식ㅋㅋㅋㅋㅋㅋㅋㅋㅋ을 전해 드리며, 저기 위에 정희진쌤 책은 다락방님 책장 어딘가에 꽂혀 있을 거 같습니다. 제 예감이 그래요.

저도 주말에 마치는게 목표이긴 했습니다. 이 책은 한 번은 꼭 읽고 지나가야 할 책이라 생각해서요. 많이 힘들지는 않지만, 그래도 어렵기는 해요. 그죠?

공쟝쟝 2021-07-26 09:06   좋아요 0 | URL
트러블 있는 한주 되세요 😜

단발머리 2021-07-27 17:58   좋아요 2 | URL
이거 굿모닝 인사 맞아요? 트러블 있는 한주 되세요?!? 🤔

미미 2021-07-25 22:15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아니 <쉽게 읽는 젠더 이야기> 최근에 사 두었는데 이 책도 조현준님 꺼군요;;<한국남성을 분석한다>도 있습니다! 다행ㅋㅋ

단발머리 2021-07-25 22:38   좋아요 5 | URL
네네, 그 조현준님이 이 조현준님 맞습니다. 저도 <한국 남성을 분석한다> 다시 꺼내 읽고 있어요.
저에게도 다행이고 미미님도 다행입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수이 2021-07-25 23:04   좋아요 7 | 댓글달기 | URL
이런 글 읽으면 좋아서 어쩔 줄 모르겠습니다. 저는 다 읽었습니다. 다 읽어도 무슨 말인가 하고 한숨을 크게 내쉬었습니다. 페이퍼는 아무래도 어려울 거 같습니다. 그냥 미미님이랑 단발머리님이랑 다락방님 페이퍼를 읽으며 음음 그렇군 하고 추임새를 넣는 걸로 만족하겠습니다.

단발머리 2021-07-26 09:33   좋아요 1 | URL
좋아하신다니 취향이 독특하시군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저도 버틀러가 어려워요. 생각해보니 페미니즘 쪽에서도 이 쪽은 특히 안 읽어서 겁나 뭔 말인지 모르겠는.... 비타님 부럽군요. 벌써 다 읽으셨단 말이지요. 버틀러 없는 한 주 되시는 겁니까? 🤗

공쟝쟝 2021-07-26 09: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울증과 애도는 정말 좋아할 수 밖에 없는 분석이죠! 그걸 여기에 가져온 버틀러도 대단하고…! 저는 오늘 안에 사라살리의 버틀러 해설서 끝낼거예요, 힘을 주세요!!!! (아바라 사서 도서관가는 중)

단발머리 2021-07-26 09:30   좋아요 0 | URL
도서관이라면 오늘 내에 끝낼 수 있겠군요 ㅎㅎㅎ 시원한 바람 솔솔 불어와 버틀러도 솔솔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바라가 아이스바닐라라떼 맞아요? 맞는거 같아, 왠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공쟝쟝 2021-07-26 09:34   좋아요 0 | URL
아이스 바닐라 라테 맞사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

단발머리 2021-07-26 09:36   좋아요 1 | URL
나중에 만나서 우리 제일 큰 거로 한 잔씩 합시다! 제일 큰 거로!! 똭!! 😎

공쟝쟝 2021-07-26 10:09   좋아요 0 | URL
(아바라 쪽쪽 마시며) 크크크크크 😎

다락방 2021-07-26 12:47   좋아요 1 | URL
미치겠다 진짜루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바라 라고 말하는 사람이나 그걸 또 맞히고 있는 사람이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사람들 왜케 재미져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무튼 저는 아바라 타입은 아니고 아아 타입입니다.

이만 총총.

얄라알라 2021-07-26 19: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라살리의 버틀러 해설서 / 자꾸 공쟝쟝님 서재 들락거려야 얻어 갑니다. 해설서 읽고 다시 원전 읽고, 왔다갔다 하는 방식으로 저도 시도해봐야겠어요

단발머리 2021-07-27 17:57   좋아요 1 | URL
네네! 북사랑님도 이번주에 버틀러 읽으시는거네요 ㅎㅎㅎㅎ 트러블 있는 한 주 되세요!!
 


 
















하늘의 별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어떤 사람이 하늘의 별을 연구하는 천문학자가 될까? 특별한 직업에 대한 약간의 환상을 더하자면, 그래, 바로 이거야! 이게 평생 내 일이 될 거야! 라는 운명의 순간이 있을 법도 하지만, 과학자가 말하는 운명의 순간은 생각보다 훨씬 더 밍밍하다. 쌀국수집 연구실 회식 자리에서 목성 스펙트럼을 찍어 왔는데 처리할 사람이 없어. 누가 해볼래?’라는 교수님의 물음에 저요!’라고 손을 들었던 날. 그날이 어쩌면 제일 극적인 날이고, 그날의 모습이 가장 극적인 장면이다. 그리고 인생을 바꿔버린 마법의 주문. “저요!”

 














칼 세이건의코스모스에 대한 솔직 담백한 의견도 인상 깊다. 세상에 많고도 많은 책이 있지만, 그 어떤 책에도 뒤지지 않을 만큼 코스모스는 자랑하기 쉬운 책이고, 또 천문학자라면 경탄할 만한 다양한 지점이 존재할 법한데도, 저자는 오히려 심드렁하다. 우주에 대한 찬사와 맹목적 사랑을 칼 세이건만의 것으로 미뤄두는 여유. 나는 점점 더 이 작가가 좋아졌다. 그리고.

 



나는 몰랐다. 나는 정말 몰랐다. 작가가 말해주기 전까지 나는 몰랐다. 우주비행사 고산이 내부의 규정을 어겨 우주 비행 프로젝트에서 쫓겨난 뒤, 대신 투입된 한국 최초의 우주인 이소연에게 그런 일이 있는 줄 몰랐다.

 


여성 우주인이 남성 우주인 옆에 후보로 있다가 역사적인 발사의 순간에 손뼉 치며 환호해주는 것이, 어떤 이들에게는, 보기 좋은 그림이었다. 고산이 이소연으로 교체된 사건은, 남자의 자리를 여자가 대신한다는 충격으로 퍼져나갔다. (100)

 


그가 수면 시간을 줄이면서까지 몰두했던 여러 실험을 수행하기에 적합한 생명공학 박사였다는 사실도, 여성성에 대한 악의적인 질문에 시달렸다는 것도, 지구로 돌아올 때 귀환 모듈의 결함으로 수백 킬로미터나 벗어난 곳에 불시착해 죽을 뻔했던 것도, 그리고 우주에서 돌아온 후 수백 차례의 대중 강연과 인터뷰를 통해 애초 의무계약의 갑절 시간 동안 우주인으로서의 소임을 다하고, 전공을 바꿔 미국 유학길에 올랐을 때 국비 낭비라며 크게 비난받았다는 것도. 나는 몰랐다. 규정 위반으로 우주 비행에 참여하지 못한 고산이 연구원과의 의무계약 기간을 마친 뒤 다른 분야로 유학을 떠났을 때, 많은 사람이 격려와 응원을 보냈다는 사실을. 나는 몰랐다. ‘국가 차원의 후속 지원이 없다는 이유로 뱀 허물 벗듯 우주인으로서의 책임을 벗어던졌다는 비난이 오롯이 이소연에게만 쏟아졌다(103)는 사실을. 남자의 자리를 차지한 여자에 대한 적의.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

 



그리고 저자의 아이 이야기. 설사 그 일이 별을 보는 일이 아니어도, 박사학위를 가진 사람의 일이 아니어도, 전문직이라 부를 만한 일이 아니어도, 아이를 키우며 동시에 일을 하는 건 힘든 일이다. 경력을 포기하고 싶지 않은 건 남자든 여자든 마찬가지다. 하지만 일을 계속하는 직장맘들은, 직장과 가정을 오가며 일해야 할 뿐만 아니라, 1 365일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을 빚진 채 살아간다. 그런 마음이 들지 않고 잠든 아이를 바라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전부는 아니겠지만, 많은 수의 직장맘이 그렇다. 잠든 아이를 쓰다듬으며 함께 하지 못한 오늘분의 사랑을 전한다.

 


어떡해야 하나. 여성들도 남성들과 마찬가지로 맡겨진 일을 프로답게 처리하기를 요구받지만, 아이가 아플 때, “, 오늘 제가 좀 일찍 퇴근했으면 해서요.”라고 말하는 사람은 여자인 것을, 엄마인 것을. 남성도, 아빠도 육아에 참여하자, 라는 말 이외에 할 말은 없나. 『불혹의 페미니즘』의 우에노 지즈코다.

 














정론은 시시하다. 말해봤자 소득 없이 끝나기 때문이다. 성차별은 악이다. 매춘은 나쁘다. 그렇다. 그래서, ? 정론을 아무리 떠들어도 바뀌는 것은 없다. 정론으로 세상은 바뀌지않고, 정론으로 인간은 움직이지 않는다. 정론대로만 된다면 세상에 힘들 게 없을 것이다. 정론이 시시한 까닭은, 정론으로 왜 인간이 움직이지 않는가를 이해하지 못하는 무지와 오만함에 있다. … 이런 시대에 대항 가치를 내세우는 운동이 정론의 틀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정론이 통하지 않는 현재의 시스템을 철저하게 이해하는 것, 즉 적을 아는 길밖에 없다. 적 이상으로 적을 분석하고 적의 약점을 잡아 역공격하지 않으면 힘이 약한 쪽은 이길 수가 없다. 매춘(賣春)은 나쁘다고 외칠 시간에, 그럼에도 남자는 왜 계속 매춘(買春)을 하는가(대체 그들은 무슨 생각일까?)를 연구하는 편이 훨씬 도움이 된다. (18)

 


아빠도 육아에 참여하자, 라고 100번을 말해도 용감한 아빠 1인이 애는 엄마가’, ‘직장에 다녀도 애는 엄마가의 강고한 벽을 혼자 돌파할 수는 없는 일이다. 결국은 문화가 바뀌어야 하지만 문화란 또 얼마나 많은 시간을 요구할 것인가. 뻔한 이야기, 다 아는 이야기, 울화통 터지는 이야기, 그런 이야기가 오늘까지 계속된다.

 


아무도 묻지 않았지만 내가 생각하는 대책을 말해보자면, 국공립 유치원, 어린이집을 대폭 확대하고, 사립유치원을 국공립 유치원의 범위로 편입시켜서, 아이들의 보육과 교육의 더 많은 부분을 국가가 책임졌으면 좋겠다. 사설 유치원에서도 직장맘을 위한 종일반이 운영되지만, 최대한 길게 잡아도 6시 전후다. 바쁘게 달려오는 직장맘들이  마음 편히 아이들을 맡길 수 있도록 운영 시간이 보장되어야 하되, ‘야근 형태선생님 돌려막기가 아니라 고용 확대를 통한 인력 보충이 필요하다.

 

아이는 자주 아프니까, 아이가 아플 때 휴가를 쓸 수 있도록, 엄마도 아빠도 눈치 보지 않고 휴가를 쓸 수 있게 하는 법적 제도가 필요하다. 작은 사업장에서도 반드시 시행되어야 하겠지만, 국가 기관, 대기업에서 선제적으로 도입하면 점차 확대될 수 있을 거로 생각한다. 북유럽처럼 아빠의 육아 휴직을 의무화하거나, 엄마의 출산 휴가, 육아 휴직을 출산 직후뿐 아니라, 원하는 시기에 지금보다 더 장기간 사용할 수 있게 하는 것도 방법 중 하나다. 실제로 공무원과 교사들은 출산 휴가를 포함해 아이 1명당 3년 정도의 육아 휴직을 보장받는 것으로 알고 있다. 공무원, 교사 아닌 사람들에게도 혜택이 돌아가길 바란다.   

 


별과 토성과 토성의 위성 타이탄과 달의 토양에 대한 책에서 육아 이야기가 나올 줄 몰랐다. 별을 연구하고, 자료를 정리하고, 그래프를 그리고, 논문을 읽고, 논문을 쓰는 와중에도, 아이는 자란다. 그런데 스스로 자라지는 않는다. 아이에게도 시간이 필요하다. 공부할 때, 연구할 때 절대적으로 필요한 양의 시간이 있는 것처럼, 아이에게도 시간이 필요하다. 시간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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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부만두 2021-07-13 22:35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읽다가 눈물 ㅜ ㅜ

단발머리 2021-07-13 23:05   좋아요 4 | URL
네, 맞아요. 전 이소연씨에 대한 악플이랑 무례한 인터뷰 질문 읽고 금방 빨갛게 변해버렸습니다. 너무 화나서요 ㅠㅠㅠ

공쟝쟝 2021-07-13 22:41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하… 이 글 넘 좋타… ㅠㅠ…
왜일까요, 왜 우주와 별은 압도당하면서도 아름답게 느껴지고 막연하면서도 알고 싶을까요. (하지만 숫자는 너무 무섭고…) 그리고 그 아득한 것들과 기묘하게 연결되는 사람의 이야기.. 물리학의 ㅁ도 모르지만 어쩐지 과학자들의 에세이는 그런 점에서 매료되는 것 같아요. 그리고 과학자들의 에세이를 읽고 삶을 떠올리는 단발님의 마음을 알 것도 같아요😷

단발머리 2021-07-13 23:12   좋아요 5 | URL
뭐랄까요. 전 종교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니까 거대한 우주 속 별들 속을 항해하다 보면 저절로 숭고한 마음에, 사람이 잔잔해지고 촉촉해지고 겸손해지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해요. 아름다움이 주는 힘에 압도당한다고 할까요. 저도 물리의 ㅁ도 모르지만 이 과학자는 대단한 척 하지 않아서 편안한 마음으로 읽게 되네요. 물론 모르는 부분은 패쓰패쓰하고요.

인기없는, 밥 먹기 힘든 직업을 가진 연구자의 삶도 감동적이기는 한데, 전 아무래도 아이 이야기에 맘이 가고요. 내가 이 작가를 ‘엄마‘로서만 제한하는게 아닌가 싶다가도, 국내 유일 토성의 위성 타이탄 전문이라는 전공 선택 과정의 에피소드처럼 이 부분도 중요한데, 왜 이 부분은 가리고 가야하나 하는 생각도 들고요. 그래서 이 책에 포함시켰겠지요. 논문을 싸들고 집에 돌아가 아이를 재우다 같이 잠들어 버리는 연구자의 고단한 하루 이야기 말이에요.

미미 2021-07-13 22:4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우린 모두 너무 몰랐네요.
회사 규모가 100인 이상인 곳은 회사에 어린이집 설치 의무화 어떨까 싶어요. 그럼 아빠들이 데려다놓을 수 있을거고 쓸데없는 회식은 줄어들 수 있고(아이 데리고 갈 수 없으니까) 조기 퇴근으로 이어질수도 있지않나 꿈같은 생각 해봅니다ㅎㅎ🤔

단발머리 2021-07-13 23:16   좋아요 4 | URL
네네, 이소연씨에게 많이 미안한 독서였습니다.

미미님의 의견 절대절대 찬성합니다. 어린이집 이용하면 아이들도 점심 시간에 아빠, 엄마 볼 수 있고요. 에너지도 절약되고 아이들도 좋아해서 업무효율도 높아질 거라 생각해요. 얼마 전에 코로나 단계 잠깐 풀렸을 때, 부장들이 회식 일정 잡으려 한다고 2030 젊은이들이 회식 없는 현재가 좋다, 그런 이야기 했다고 들었어요. 아이 있으면 자동 회식 면제되고 좋네요.
꿈은 이루어집니다!!!

mini74 2021-07-13 23:4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소연씨 국적 가지고도 말이 많았지요. 충분했고 넘쳤는데도 먹튀라는 둥ㅠㅠ저는 결혼 후 바로 아주 먼~~~곳으로 발령이 났지요 ㅎㅎ 나름 처우가 좋은 곳이었음에도요. 그게 20년전일이니까요 지금은 좀 나아졌겠지요. 아 이 책 리커버군요. 저도 재미있게 읽은 책입니다 ~~

단발머리 2021-07-14 09:20   좋아요 2 | URL
네, 국적 이야기도 나오더라구요. 나중에는 중고등학교 이야기까지. 뭐, 거의 다 뱉어내라 이런 식으로요. 생명을 걸고 이룩한 공헌은 인정 받지 못하고 원망만 들었더라구요. 조금씩 나아지겠지,라고 믿고는 있는데.... 쩜쩜.
전 도서관 책이라 겉표지가 없어 모르겠는데 리커버가 나왔더라구요. 많이 읽히나 봐요. 아주 반가운 일입니다.

독서괭 2021-07-13 23:5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으아 이책 갑자기 마구 읽고 싶어졌어요!! 이소연씨에게 그런 일이 있었는 줄 저도 몰랐네요. 너무 안타까워요 ㅜㅜ 저는요, 국가에서 아이를 낳아라 인구절벽 심각하다 이런 말은 계속 하는데 정작 아이를 키우는 데 대한 사회적 인식은 “남일”이라 생각하는 게 제일 문제인 것 같아요. 아이 낳을 생각 없는 사람들한테 자꾸 낳아라 하지 말고 낳고 싶어 낳은 아이를 함께 잘 키워보자는 사회가 되면 좋겠어요.

단발머리 2021-07-14 09:23   좋아요 2 | URL
저도 다른 기사들 좀 더 찾아보려고요.
인구절벽과 저출산을 극복하는 건 독서괭님 말씀대로 아이를 ‘공공재‘로 여기는 건데, 아직도 양육의 대부분을, 아니 거의 전부를 가정에서 감당해야하니까요. 주거랑 교육 문제가 제일 심각한 것 같고, 짧은 제 생각으로는 수도권 집중화, 밀집화도 그에 한 몫 하는 것 같습니다.
낳기만 하면 나라가 다 키워준다, 이 정도까지 가지 않으면 현재의 출산율 어떻게 회복할까요.

붕붕툐툐 2021-07-14 00:0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웅~ 진짜 너무 공감되는 글입니다. 저도 ‘저요‘를 외쳤다가 너무 스트레스를 받고 있긴 하지만, 인생의 마법의 주문은 맞는 거 같아요.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 아무 것도 일어나지 않는다.
이소연님의 억울함을 풀어주기 위해서라도 꼭 읽어봐야겠습니다!

단발머리 2021-07-14 09:28   좋아요 2 | URL
저는 나이들수록 점점 ‘저요!‘의 소리가 작아지는 소심한 인생을 사는지라 이 평범하고 차분한 작가의 ‘저요!‘가 너무 근사하고 멋지더라구요.
근데 툐툐님 말씀대로 아무일도 하지 않으면 아무 것도 일어나지 않으니, 오늘은 또 오늘몫의 ‘저요!‘를 해야겠어요.
좋은 책이라서, 즐겁고 행복한 독서시간입니다. 툐툐님께도 그런 시간 펼쳐지시길요!

2021-07-14 08: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7-14 08: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7-14 08: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7-14 09: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7-14 09: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7-14 09: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락방 2021-07-14 10:00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어려운 시기에 돈을 빌려주겠다는 지인(추후 브로커라고 알게 된)의 말에 고맙게 받았고, 나중에서야 ‘어려운 상황이니 갚을 필요 없다‘는 말을 받았습니다. 이어 ‘대신 너의 굉장한 팬인 내 지인과 소개팅 형식으로 좀 만나자‘는 말에 편하게 응했습니다. 이후 그 남성이 저와의 만남에 대한 댓가를 브로커에게 지불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위는 성매매 혐의로 활동 중단한 잘 나가던 여가수의 인터뷰 내용이에요. 한창 활동하다가 갑자기 추락해버린 건데요, 저 내막이 알려지기 보다는 성매매한 여자가수 가 되어버렸죠. 얼마나 많은 일들이 이런 식으로 와전되고 과대표되고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채로 여자들의 입과 행동을 막았을까 하게 되더라고요. 저를 비롯해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세상이 그 여성에게 붙여준 타이틀만이 기억에 남게 되잖아요. 그게 너무 속상하더라고요.

저는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갑자기 여성 한 명을 집중공격한다면, 거기에 동참하지 말자는 생각을 하게 되더라고요. 거기에는 아주 높은 가능성으로 잘못이 과잉되어 표현되고 혐오가 덮어 씌워졌을거라는 생각을 하게 돼서요. 그런식으로 여자들의 입을 막고 사회 활동을 막아버리는 것 같아서요.

너무 속상하죠, 단발머리님. 너무 속상합니다. 여자 하나 나쁜년 만들기가 너무 쉬워요. 너무요.

단발머리 2021-07-14 16:21   좋아요 1 | URL
네, 맞아요. 전 이 사건은 잘 알지 못하는 사건인데, 다락방님 댓글 읽으면서는 ㅎㅇㅅ이 생각나네요. 아무리 그 무언가를 밝힌다 해도 사람들이 만들어놓는 편견 속에서 여성들은, 특히 그 여성이 연예인이라면 더더욱 올무에 빠진 듯하고요.

속상한 일이 많은 세상이죠. 이소연씨 일을 이제서야 알게 되서 전 그것도 속상하더라구요. 헌신하고 양보해도 이렇게 쉽게 비난받는다는 사실이요.

초딩 2021-08-06 17: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단발머리님 이달의 당선 축하드립니다!

단발머리 2021-08-08 10:50   좋아요 2 | URL
초딩님! 매번 이렇게 축하해 주시네요. 감사합니다!

독서괭 2021-08-06 18: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글 좋았는데 역시나~! 축하드립니다^^

단발머리 2021-08-08 10:51   좋아요 1 | URL
아이고... 이달의 당선작되어서 좋지만 독서괭님이 좋다고 하시니 좋은 마음 5배 되었어요. 감사합니다!!

서니데이 2021-08-06 18: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단발머리 2021-08-08 10:51   좋아요 2 | URL
서니데이님, 축하해 주셔서 감사드려요~~

그레이스 2021-08-06 19: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축하합니다 ~♡

단발머리 2021-08-08 10:51   좋아요 2 | URL
그레이스님, 축하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멍하니 친구가 보고 싶어, 친구가 보고 있는 책을 꺼내고, 친구들과 함께 읽는 책을 꺼내고, 친구들이랑 같이 읽는 책을 꺼내고, 친구들이 나눠 읽겠다던 책도 꺼내놓는다. 책을 쌓고는 친구가 쓰는 앱으로 사진을 찍는다.

 


태풍이 지나가듯 이렇게 한 주가 지나고 흐릿한 아침. 서울은 오후 2시부터 3시까지 비가 온다고 해 큰애 가방에 작은 우산을 넣어 주었다








대부분의 사람이 다니던 직장에서 밀려나 입주 간병인, 대리주차원, 베이비시터 등의 저임금 직종으로 이직하는 나이에 나는 내 호기심을 충족시키고 도덕적 분노에 불을 지피는 문제에 관해 계속 글을 쓰는 행운을 누리고 있다. 그러면서 내가 창립에 깊게 관여한 ‘이코노믹 하드십 리포팅 프로젝트Economic Hardship ReportingProject‘를 통해서 빈곤 혹은 피부색, 성별, 성적 지향 때문에, 혹은 너무 어리거나 너무 나이가 많아서 글을 발표할 수 없는 저널리스트들을 돕는 데 노력하고 있다. 대릴, 조, 린다 같은 사람들과 함께 일하고, 그들이 번창하는 것을 지켜보는 일은 큰 기쁨이다. 성화 봉송의 정신으로 이 책을 그들에게 바친다. - P22

나는 닦고, 청소하고, 케첩 병을 채우고, 치즈 케이크가 충분히 있는지 보고 또 봤다. 심지어 고객 평가 카드가 제자리에 가지런히 놓여 있는지 보기 위해 테이블을 돌기까지 했다. 그러는 동안 온전히 매니저에게 보여 주기 위해 이렇게 연극을 하면서 태우는 열량이 얼마나 될까 생각했다. 손님이 하나도 없어서 특히 조용했던 어느 날 오후, 누군가가 놓고 간 《USA투데이》 신문을 내가 곁눈으로 슬쩍 보는 것을 발견한 스튜는 부서진 청소기로 식당 바닥 전체를 청소하라고 명령했다. 손잡이가 60센티미터밖에 안 되는 그 청소기로 청소하려면, 정형외과 신세를 지지 않기 위해서 무릎을 꿇는 수밖에 없었다. - P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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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1-07-09 10:1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단발님 다 화이팅이지만, 젠더 트러블 특히 화이팅이요! ㅜㅜ(해제에서 멈추고 돌아가지 않는 1인)

단발머리 2021-07-09 11:06   좋아요 1 | URL
여기서 이런 말씀 송구합니다만 젠더 트러블은 아직은 순서를 기다리고 있는 형국이라서요. 화이팅에 ㅜㅜ 자국이 선명합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2021-07-09 10: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7-09 11: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레삭매냐 2021-07-09 13: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모름지기 책 친구는 좋은 친구가
학실합니다.

코로나 4단계 발동으로 우울하네요.

단발머리 2021-07-12 08:18   좋아요 0 | URL
네, 맞아요. 제일 좋은 친구는 책 친구입니다.
오늘부터 4단계 시작하네요. 집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을 서둘러야 한다고 합니다. 아침부터 저녁 생각합니다^^

공쟝쟝 2021-07-13 17: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아… 사고싶… 무려 에런라이크 글모음이란 말이지요 ㅋㅋㅋ 문득 젠.트 에 비하면 200년 동안의 거짓말이란 얼마나 아름답고 소화가 수월한 텍스트였던가… 그리워진다

단발머리 2021-07-19 13:14   좋아요 0 | URL
그대로 따라합니다. 얼마나 아름답고 소화가 수월한 텍스트였던가. 아... 나의 젠. 트. 어쩌란 말인가!!!
 




 












인생이 짧다. 뭔가 속은 것 같은 생각에 충분히 억울해하고, 다른 삶으로의 방향 전환을 시도하기에, 80 인생은 짧다. 남녀 차별의 이 길고 견고한 연결고리를 이해하는데 인생은 짧다.  

 















가부장제의 창조에서 거다 러너는 초기 인류 사회에서 사회의 존속 유지를 위해 가장 중요한 출산 및 육아를 여성들이 맡기로 합의한 것이, 당시의 상황을 고려한 전략적 선택이었으며, ‘기능적인 면을 고려한 것이었다고 평했다. 채집 수렵사회를 거쳐 농경사회, 산업사회를 지나 정보화 사회가 도래했으나, 아이를 낳아 키우는 일은 여전히 여성, 혹은 여성인 일이다. 무급 가사노동 가치가 491조로 GDP 대비 25.5%를 차지하고 있지만, 남성의 하루 평균 가사노동시간이 64분인데 반해, 여성은 그의 세 배에 달하는 205분으로 집계된 것이 그 증거다. (<연합뉴스>, 2021 6 21, ‘여성 1인 가사 노동 가치 연 1380만 원남성의 2.6)

 

여성을 억압하는 기제가 가사 노동만은 아니다. 재산권과 교육 기회 박탈, 이동의 자유 제한, 남녀에 따른 이중적인 성 관념, 질주름(처녀막)을 위시한 순결에 대한 강요, 모성 찬양, 여성 노인에 대한 혐오, 강간 협박, 페미사이드가 일반화된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은 인간으로서 살아가기 어렵다. 맞다. 이제 그런 시대는 아니다. 하지만, 아직도 구시대의 악습은 여전하며, 여성은 여전히 사회적 약자다.

 















통증 연대기는 통증과 고통에 대한 책이다. 책 전체를 통해 탐구하는 문제는 인간의 통증에 대한 고민해답이다. 각 챕터 말미의 통증일기는 저자가 경험했던 훨씬 더 내밀한 고통의 이야기다. 소설 같은 이야기를 읽으며, 나는 여러 번 혼란스러웠다. 이렇게나 젊고, 이렇게나 예쁘고, 하버드 대학을 다니고, 영문학을 전공한 최우수 성적의 그녀는 왜 연인관계에 들어서기만 하면 이렇게 소극적인 사람이 된단 말인가. 그 망설임의 중심에는 통증이 있었고, 책을 읽어갈수록 점점 더 그녀를 이해하게 되었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의 극심한 고통, 말로 설명하기 불가능한 통증, 의사조차 이유를 찾지 못하는 불치병과 그 치료 과정을 사랑하는 사람과 나누기 주저하는 마음이 어떤 것인지 헤아릴 수 있게 되었다. 혹 나의 이 통증 때문에 이 사람이 나를 떠나는 건 아닐까 하는 두려움. 사랑을 잃기 싫은 마음. 이 사랑을 놓치고 싶지 않은 마음이 뭔지 알 것도 같았다.

 

















얼어붙은 여자의 이야기는 뻔하다. 『82년생 김지영』을 읽을 때의 느낌과 비슷하다. 우리는 이런 이야기를 많이도 들었고 잘 알고 있다. 우리의 현실이 이렇다는 걸 다시 한번 확인하는 건 이젠 지루한 일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다시 한번 돌아보면 상황이 생각만큼 뻔하지않다는 걸 알게 된다. 어떤 여자와 어떤 남자의 이야기가 아니라, 그 여자와 그 남자의 이야기로 읽어보자.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을 사랑하게 될 때, 나와 그와의 관계는 어떠한가. 짧은 연애와 사랑의 경험을 통해 배운바, 내가 사랑할 그 사람과의 관계에서 나는 언제나 약자다. 나는 그 사람을 원하고, 그 사람이 나를 원하거나 혹은 원하지 않는 건 그 사람의 자유이기 때문이다. 『망각과 자유』에서 강신주는 썼다.




 












내가 어떤 사람을 특별한 사람으로 생각하는 것은 어려운 일은 아닐 수 있습니다. 다만 어려운 문제는 타자로 하여금 나를 특별한 사람으로 생각하도록 강제할 수는 없다는 데 있습니다. 그에게는 나를 특별한 사람으로 생각할 수도 혹은 그러지 않을 수도 있는 자유가 있기 때문이지요. 사랑에서 중요한 점은 우리 자신뿐만 아니라 타자도 자유를 가지고 있다는 자명한 사실에 있습니다.

 


결국 더 사랑하는 사람이 약자이고, 더 사랑하는 사람이 더 많이 양보한다. 우리가 사는 문화 속에서 남성은 사랑 앞에 좀 더 주도적이고 공격적인 자세를, 여성은 좀 피동적이고 수동적인 자세를 취할 것으로 요구받는다. 그렇지 않은 남자들이야말로 다른 세계에 사는 사람들이다. 『철학적 시읽기의 괴로움 속 이성복 시인 같은 사람.



 












앞날

 

당신이 내 곁에 계시면 나는 늘 불안합니다 나로 인해 당신 앞날이

어두워지는 까닭입니다 내 곁에서 당신이 멀어져가면 나의 앞날은

어두워집니다 나는 당신을 잡을 수도 없습니다 언제나 당신이 떠나갈까

안절부절입니다 한껏 내가 힘들어하면 당신은 또 이렇게 말하지요 당신은

팔도 다리도 없으니 내가 당신을 붙잡지요나는 당신이 떠나야 할 줄

알면서도 보내드릴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나는 김동률의 그림자를 떠올린다.  

 

기어이 그대를 보내야만 한다면

차라리 그대를 닮은 그림자로 숨어서

그대와 함께할 있다면 그리하겠소

서러운 나의 사랑이 영원히 모든 빛을 잃어도

그대를 지킬 수만 있다면 그리하겠소

그리하겠소 기꺼이



그리고는 생각한다. 누구든 그 사람이 여자이든 남자이든, 누군가를 진정으로 사랑하게 된다면, 상대방을 진정으로 원하고 그리고 상대방이 나의 이기를, 나만의 이기를 바라게 되는 그때에는, 누구든 약자가 된다고. 양보하고 싶고, 그리고 양보하게 된다고.


그래서, 의문은 다시 처음으로 돌아간다. 사랑에 빠졌을 때, 호르몬 과다의 그 미친 시간에 약자가 되는 조건이란 여남 두 사람에게 동일한데, 왜 아이와 함께 가정에 남는 사람은 여성인가. 가사노동에 3배의 시간을 소요하는 사람은 왜 여성인가. 경제지표에 보이지 않는 투명 인간은 왜 여성인가. 사랑과 함께 희생을 요구받는 사람은 역사적으로, 대대로, 그리고 오늘날까지 왜 여성이고, 여성이어야만 하는가. 그 남자와 그 여자의 사랑의 마지막은 왜 이러한가.

 

젠더 모자이크 저자의 막내아들이 다섯 살 전후일 때 일이다. 친구 생일파티에서 분홍 닌자로 변신해서 상상 속 적에게 분홍 리본을 던지며 행복하게 놀던 아들이 저자에게 묻는다. “남자는 분홍색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 거 아세요?” 저자는 안다고 답했는데, 아들이 덧붙여 말한다. “그 사람들 이상해요. 왜냐하면 난 남잔데 분홍색을 좋아하거든요.”(198)


다섯 살 아이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이 점점 더 많아질 때, 여남간의 차이보다 성별 간 겹치는 부분에 주목하는 사람들이 더 많아질 때, 가부장제의 견고한 아성이 무너질 거라 생각한다. 얼마 전, 똑똑이 친구(쟝쟝님)는 똑똑한 친구(다락방님)의 서재 댓글에서 “90년대 이후 페미니즘이 (지금 말고요) 젠더-섹스-섹슈얼리티-퀴어 논쟁 등으로 치열해진 게 패착처럼 느껴진 적 있다 ….. 그게 많이 이야기 되면서 자매애에 기반한 어떤 대중적 동력(?)을 잃지 않았나 싶다고 말했다. 똑똑이 친구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여성운동이 총력을 기울였던 참정권 문제가 해결되었을 때, 오히려 여성운동이 약화되었던 선례나, ‘포르노를 둘러싼 자유주의 페미니즘과 급진주의 페미니즘 간의 피튀기는설전은 여성 운동, 페미니즘 운동의 전개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나 혼자 생각한다.


페미니즘 운동의 인식과 폭이 무한정 확대되어 가기를 바라지만, 동시에 구체적인 사안에 대해 서로의 의견이 첨예하게 대립할 때, 서로 간에 합의된 그 작은 지점에서 다시 시작하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가부장제와 자본주의』 속에서 발견되듯, 가정 폭력, 지참금 살해 문제에 대해 인도 여성들이 계급과 계층을 뛰어넘어 공동으로 투쟁했던 역사를 기억할 필요가 있다.



개인적인 생각을 밝힌다면, 페미니스트 혹은 자신을 페미니스트라고 부르는 여성들의 범위를 넘어서, 대부분의 여성, 대부분의 남성마저도 범죄로 인정할 수밖에 없는 영역에 대한 공동투쟁이 효과적이라고 생각한다. 여성에 대한 물리적이며 신체적인 공격에 대한 폭로와 처벌 촉구. 강간, 친족 성폭행, 직장 내 성희롱, 성추행, 가정 폭력, 리벤지 포르노 등등. 특히 초소형 몰래카메라를 이용한 신체 촬영 범죄는 가까운 사람이나 불특정 다수를 가리지 않으며, 범죄의 결과가 무한정 재생산될 수 있어 피해자에게 극심한 손해를 끼칠 수 있으니, 이에 대한 강력한 규제와 처벌을 요구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젠더 모자이크』 저자 아들의 말에서 희망을 찾고 싶다. 낙관하기에 현실이 녹록하지는 않지만, 결국 이 긴 싸움에서 이기는 사람은 희망을 갖고 있는 사람이 아닐까 싶다. 분홍색을 좋아하는 내가 아니라, 남자는 분홍색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네가 이상한 사람이야. 그렇게 말하자. 가볍게 혹은 아무렇지도 않게. 일상의 작은 일, 작은 사건에 대해서, 그 사건에 대해 해석할 때. 남자도 분홍색 좋아해. 여자인 내가 파란색 좋아하는 것처럼. 여자들도 그거 잘해. 여자들도 그거 할 수 있어. 아무렇지도 않게, 그러나 분명하게. 더 강하게 맞서고 더 끈질기게 밀어붙이자. 페미니즘이라는 단어를 빼도 된다고, 이제야 생각한다. 페미니즘이라는 단어가 그렇게 거부감을 일으킨다면 괄호 안에 넣으면 된다. 페미니즘이라는 단어를 넣지 않아도 우리가 만들고 싶은 새로운 세상, 새로운 세계는 페미니즘적일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페미니즘적 사고를 실천하자. 멈추지 말고 오래오래. 끈질기게, 말하고 다시 말하고, 쓰고 다시 또 쓰자. 길게 더 길게. 길게 더 길게 길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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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1-07-05 12:02   좋아요 8 | 댓글달기 | URL
저는 예전에 사람들이 모두 페미니스트라고 선언해주길 바랐거든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니까 그것을 선언하는 것보다 행동하는 것이 더 여성주의적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말로만 선언하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그것은 오히려 그 이름에 갇히게 되는 것 같다, 내가 누구다 말하기 이전에 행동을 하자, 라고 하게 되더라고요. 그러니까 한나 아렌트가 ‘나는 페미니스트이다‘ 라고 한 적 없지만, 저는 한나 아렌트를 읽을 때마다 더 멀리, 더 높게, 더 단단히 가자고 생각하게 되거든요. 이수정 교수가 나는 페미니스트 입니다 라고 한 적 없지만, 이수정 교수님의 여성에 대한 연대는 늘 감사한 마음이 들고요. 그 분은 ‘여성에게 연대할거야‘라는 것보다 왜 이들은 약자인가, 약자의 편에 서겠다, 하면서 필연적으로 그렇게 되신건데, 우리가 옳은 방향으로 가려고 하다 보면 그쪽이 페미니즘 인것 같아요.

그런 저의 생각을 돌아보게 하는 글입니다, 단발머리님.

문득 단발머리님이야말로 그 누구보다 더 읽고 쓰는 일을 멈추시면 안될것 같단 생각이 들어요. 단발머리님이 읽는게 점점 더 쌓일수록 더 넓은 글이 나오는 것 같아서요. 훗.
:)

단발머리 2021-07-05 12:18   좋아요 6 | URL
페미니스트라고 주장하는 것과 페미니스트에게 요구되는 행동양식에 대해서도 자주 생각하고 있거든요. 언젠가 글로 풀어볼 시간이 있겠지만, 말보다 행동이라는 다락방님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정희진 선생님의 경우도, 한나 아렌트, 이수정 교수님의 경우도 그러할테고요. 저는 점점 더 흑인 페미니즘 사상에 끌려요. 살고 살려라!의 주장이요. 다만 제 위치가 용감하고 씩씩한 그녀들과는 너무 떨어져 있다는 생각에 위축되기는 하지만요.

읽고 쓰는 일은 제가 좋아서 하는 일이어서 항상 기쁘고 즐겁지만, 같이 하는 친구, 응원해주는 친구, 기다려주는 친구가 있다는 건 정말 행운인것 같아요. 다락방님이 내겐 큰 행운이에요. 앞으로도 우리 읽고 쓰자고요!

공쟝쟝 2021-07-13 18:09   좋아요 1 | URL
다락방님 말씀에 엄청 동의! 내가 살아가는 삶 자체가 여성주의와 따로 떨어지지 않기를 바라요. 일단은 나 자신을 튼튼하게 보호하기!! 그리구 단발님 말씀에도 오래오래 길게길게 쓰는 걸로 동의할 테야요!! 저는 어쩐지 다시 돌아와서 올해의 띵문이었던 장혜영의원의 글이 생각나요. 피해자 정체성에 대한 어떤 희망을 본 것도 같았던. 아주 많은 전략들이 중첩적으로 나타날 수 밖에 없는 혼란한 세상이지만 읽고 쓰고 공부하고 각자의 방식으로 연대하면서 자신을 구성하고 다져 나가는 게 지금은 저의 그리고 각자 다른 우리들의 페미니즘 방식😭 아 좋아라 ㅎㅎ

2021-11-07 12: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11-07 15: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통증의 한 가지 저주는 통증이 없는 사람에게 거짓말처럼 들린다는 것이다. 환자는 멜로드라마 같은, 비현실적이고 상투적인 은유로 통증을 표현하려 안간힘을 쓴다. 당뇨 신경병에 걸린 노숙인은 작은 신경들이 산소 부족으로 죽어 허벅지와 발이 덴 듯한 통증을 이렇게 묘사했다. "얼음송곳처럼 따갑고 찌르는 것처럼 아파요…" (163)

 


흔히 쓰는 말 중에 내가 싫어하는 게 저 애, 저거, 저거 꾀병이야.” 하는 말이 있다. 사랑스럽고 귀여운 자신의 아이에게 누가 그런 말을 할까 싶겠지만 나는 많이도 보았다. 주변의 엄마들도, 가까운 사이의 어떤 분도 아이들이 어릴 때 이런 말을 자주 했다. 저거, 저거 꾀병이야. 하긴 육아서의 바이블삐뽀삐뽀 119 소아과』에서도 아픈 아이에게 혜택을 주지 말라고 쓰여 있기는 했지만, 난 아이가 아프다고 하면 그 말을 믿어주는 편이었다. 그렇게 많이 다친 게 아니어도, 어디가 다친 건지 당최 모를 때조차도, 아프다는 그 말을 믿었다. 정말 아무것(?)도 없을 때는, ~ 한 번 불어주고 후시딘 발라주고 캐릭터 밴드를 붙여주고는 했다. 그건 내가 통증이란 타인이 공유할 수 없다는 진실을 알아서라기보다는. 믿었기 때문이다, 그 말을. 나도 많이 아팠으니까.

 

다른 통증은 차치하고 우주의 섭리에 의한 생리통만 해도 내 우주는 너무 버거웠다. 어느 정도 생리통이 심했냐 하면 출산의 고통에 비견될 만큼 심했다. 5분 진통이 와서 분만실에 들어가기 직전에도 출산의 괴로움이 생리통의 강도와 비슷해 도와주던 간호사님이 이제, 들어가실께요!’라고 소리칠 때 그래? 이게 정말 다야?’라고 생각했을 정도다. 작고 딱딱한 책상, 생리통 때문에 엎드려 있는 친구를 보기만 해도 눈물이 나왔다. 내가 아는 고통이었다. 아프지 않은 사람은 모를 일이다. 남자는 물론 여자도 마찬가지. 겪은 사람만 아는 통증이었다.

 


이 책은 통증의 역사를 다루고 각종 통증을 유발하는 원인을 추적한다. 통증을 이겨내려는 인류의 지난하고 고단한 과정을 보여주고, 눈부시게 발전한 현대 의학의 위업 속에서도 여전히 나아는 통증의 괴로움에 관해 기술한다. 통증의 근본 원인을 추적하려는 의학적 노력에 더해 마취제를 비롯해 통증을 감소시킬 약제와 약품에 대해 논한다. 무엇보다 통증에서 벗어나고자 전국 혹은 전 세계 병원을 투어하는 환자들의 생생한 이야기를 전해준다. 자신의 몸에 대한 이야기에 귀 기울여 주는 의사, 어느 환자에게나 똑같이 처방하고 다음 주에 만나자는 의사, 환자에게 필요한 바로 진통제를 처방해주지 않는 의사. 통증에서 벗어난 사람은 새로운 삶을 시작하고, 통증에서 벗어나지 못한 사람은 또 하루를, 그다음 하루를 통증과 씨름한다.

 


커트가 말했다. "길을 벗어나면 제자리로 돌아가기가 여간 어렵지 않군. 뭐 생각나는 거 없어?" 내가 대답했다. "내 인생이 그랬어요." 당신을 만나기 전에는, 이라고 덧붙이고 싶었다. 듣고 싶어 한 말이었을 테니까. 하지만 커트와 함께 있는 것이야말로 잘못된 길에 빠진 것이 아닐까, 이렇게 약해진 몸으로는 예전의 나로 돌아가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커트는 모든 여자가 좋아할 만한 남자다. 얼굴과 마음씨가 훌륭하고 지적이고 재치 있는데다 하늘빛 눈망울의 소유자이니까. 남부러울 것 없는 커트를 생각하면 혼란스러웠다. 사귀는 내내 그랬다. 커트를 보기만 하면 언제나 가슴속에 불이 타올랐다. 하지만 커트와 사귀면서 나는 건강과 체력과 역량과 솔직함을 잃었다. (104)

 


이 책의 백미라고 한다면. (, ‘통증 일기를 백미라고 말하는 나의 이 잔인함에 용서를 구한다) 이 책의 백미라고 한다면, 당연히 저자의 통증 연대기, 통증 일기다. 오랫동안, 인류는 고통과 통증이 잘못된 행동에 대한 징벌이라고 여겼다. 저자 역시 그랬다. 탐내서는 안 되는 남자를 탐내서. 너무 근사한 남자를 꼬시려고 해서. 완벽한 그와 첫날밤을 보낸 후부터 그녀는 경추증, 척추관 협착증, 후두 신경통, 충돌 증후군, 회전근개 증후군으로 인한 통증으로 고통당한다. 자신의 통증을 이해하려는 노력과 통증에서 자유롭기 위한 여정들은 한 편의 소설과 같이 아름답고 눈물겹다. 아마도 그녀의 기록이 진실에 닿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소설에서 얻을 수 있는 감동과 슬픔과는 또 다른 결의 여러 감정이 그녀의 통증일기에는 살아있다. 솔직한 것이 무엇에든 답이 된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그녀가 자신의 통증에 솔직하게 맞서는 장면들은 그녀의 숭고한 용기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라서 더욱 그녀에게 감동하게 된다. 미안한 마음이지만, 그녀의 통증과 고통에서 많은 것을 느끼고 많은 것을 배운다.  

 


대다수 사람들은 행운을 자기가 타고난 것으로 생각한다. 내가 당연히 나이듯 행운이 당연히 내 것이라고 여긴다. 하지만 행운이 행운인 것은 언제든 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어느 때고 그늘에 내던져질 수 있는 것이다. 동전이 뒤집히듯 내 삶도 뒤집히고 또 뒤집혔다. 역사적으로 좋은 시기(대다수 시기와 비교할 때), 좋은 나라(질적으로, 양적으로), 좋은 혈통, 좋은 몸, 좋은 심장, 좋은 신장, 좋은 폐, 그리고 또 …… 동전이 뒤집히는 건 반갑지 않았다. (305)


 

자신이 가지고 있는 행운이 원래부터 내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만큼 위험한 건 없다. 돈과 시간, 열정과 체력 혹은 긍정적인 성격에 타고난 유머 감각. 아니면, 내가 좋아하는, 나를 좋아하는 사람마저도. 이 모든 건 동시에 혹은 차례로 어느 때고 그늘에 내던져질 수 있고, 눈앞에서 이내 사라질 수 있다. 그래서 인생이란 자고로 경거망동하지 말고, 나대지 말고, 까불지 말아야 한다. 오만방자하지 않았던 그녀마저 이렇듯 소중한 것 하나를 잃어버리지 않았던가. 행운이 나와 함께함을 기뻐하고, 내가 가진 것에 감사하고, 그리고 이 책을 마저 읽어야겠다. 그녀가 통증에서 자유로워졌기를 고대하면서.  





하지만 대체 왜? 통증은 행복의 대가였을까, 행복을 누린 벌이었을까? 통증의 어원은 처벌을 뜻하는 라틴어 ‘포이나 ‘poena, ‘갚다’를 뜻하는 그리스어 ‘포이네‘’ poine’, ‘지옥에 떨어진 영혼이 겪어야 하는 처벌과 고통’을 뜻하는 고대 프랑스어 ‘펜peine’이다. - P37

인간은 통증을 느낄 때 남에게 동정심을 일으키려는 듯한 행동을 취하지만 대다수 동물은 동료가 부상당하면 상처가 나을 때까지 본능적으로 거리를 둔다. 게다가 부상당한 동물은 상처 부위가 쓸릴까봐 무리나 가족에게서 떨어져 지낸다. 사람이 다가가면, 달아나려고 미친 듯 몸부림을 친다. 다리를 살펴보려고 접근하면 사슴은 머리를 필사적으로 뒤틀며 반대쪽 다리로 공격한다. 사슴이 아니라 여우나 늑대였다면 물었을 것이다. - P41

나는 툭하면 기침이 났는데, 그때마다 동네 병원을 찾아가 의사가 처방전 쓰는 모습을 보는 것이 좋았다. 48시간 안에 나을 걸 알았으니까. 예외는 한 번도 없었다. 처방전을 쓰는 행위는 일종의 제의적 만족감을 선사했다. 귀에 닳은 투약지시를 의사가 읊을 때 나는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의사가 처방전을 건네는 순간 기침은 사실상 멈추었다. 처방전은 적의 퇴각을 타전하는 전보였다. 전투가 며칠 끌 수는 있겠지만 전쟁은 사실상 끝났다. - P55

환자의 시간은 아무 가치가 없다. 프랑스 작가이며 매독으로 죽은 그자비에 오브리에는 1870년에 이렇게 썼다. "질병은 가난 못지않은 실패다. 내 옆에서 기다리던 환자들에게는 실업급여를 타려 기다리던 실업자의 남루함이 묻어 있었다. - P70

고통을 감수하려면 가장 원초적인 본능을 이겨내야 한다. 그러려면 (고통을 언제나 부정적으로 여기는) 생물로서의 본능보다 (고통이 바람직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문화적 신념을 우위에 두고, 통증의 영적 의미를 육체적 의미보다 중요하게 여겨야 한다. 사람들이 성인과 순교자를 떠받드는 것은 고통을 대하는 태도가 여느 인간과 다르기, 아니 초인적이기 때문이다. - P91

텍사스 대학 오스틴 캠퍼스의 로버트 A허머 박사 연구진은 미국에 사는 성인 2만여 명을 9년 동안 추적 조사한 유명한 연구에서 교회 출석과 사망률 사이에 놀라우리만치 강력한 통계적 상관관계가 있음을 밝혀냈다. 일주일에 한 번 교회에 출석한 기독교인은 교회에 가지 않는 사람보다 평균 6년을 더 살았으며 두 번 이상 출석한 사람은 평균 7년을 더 살았다. 죽는 시점도 종교의 영향을 받는 듯하다. 독실한 신자는 중요한 종교 기념일을 앞두고 죽는 일이 드물다. 아프리카계 미국인 중에서는 일주일에 한 번 교회에 출석한 기독교인이 8년을 더 살았으며 두 번 이상 출석한 사람은 14년이나 더 살았다.

- P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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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6-21 07:1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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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6-21 12: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Jeremy 2021-06-21 13:06   좋아요 2 | URL
뭐, 제가 딱히 한국책이나 만화책 아니면 그냥 아마존에서 책을 살 수 밖에 없는
미국생활 30년 넘은 사람이라서지 특별하게 멋질 건 없답니다.

제 시간으로는 일요일 이른 오후라 단발머리님 글 읽고 꽂힌 김에
일필휘지로 그냥 댓글 길게 썼는데
월요일 시작하셔서 바쁘실텐데 이렇게 성의껏 답글 써주시니
상냥하신 마음씀씀이에 감사드리며
편안하고 좋은 한 주를 보내시길 바래봅니다.

단발머리 2021-06-29 08:43   좋아요 0 | URL
Jeremy님 방에 놀러갔다가 좋은 글, 좋은 책 소개에 깜짝 놀라고 왔습니다. 앞으로 서재에서 자주 뵈어요!
한주가 벌써 다 지나버렸네요 ㅠㅠㅠ 이번 한 주도 좋은 시간 되시길요^^

mini74 2021-06-21 18:4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우리나란 유난히 통증을 참는 것에 대해 후한 점수를 주는 것 같아요. 사람마다 통증의 정도가 다 다른데도요. 저도 감사하며 살겠습니다 *^^*

얄라알라 2021-06-23 13:02   좋아요 1 | URL
아 정말 흥미로운 말씀입니다.

제 지인의 어머니는 산통을 참으시다가, 어금니가 다 부서지셨다고하는..

그게 미덕이었던 시절이 있었겠죠? 설마 지금은 아니겠죠?

단발머리 2021-06-29 08:46   좋아요 2 | URL
미니님/ 네, 맞아요. 고통에 대한 호소가 그렇게 받아들여지요. 근데 최근에 정희진 선생님 글 읽으면서는, 어쩌면 다른 사람은 내 고통을 끝까지 이해할 수 없으니, 특히 육체적 통증 같은 경우요.... 아픈 사람도 아프지 않은 사람을 배려해야한다는 문장이 기억에 남더라구요. 저도 감사하면서 살려구요.

북사랑님/ 지금은 출산시에 무통 주사를 맞으니까요. 어금니가 부서질 정도는 아니지 싶어요. 그렇다고 아프지 않다는 건 아니구요.

수이 2021-06-21 22:4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나대지 말고 조심조심 엉금엉금

단발머리 2021-06-29 08:46   좋아요 0 | URL
조심조심 한발한발. 오늘도 그렇게 살자구요. 찬찬히 조심조심.

얄라알라 2021-06-23 13: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단발머리님 글 읽다보니 ˝꾀병˝이야말로, 저평가된, 제대로 파보면 정말 흥미로운 이야기를 끌어낼 거리인데요.
이런 느낌이에요 내가 호소하면 고통, 네가 말하면 꾀병..

단발머리 2021-06-29 08:47   좋아요 1 | URL
그렇게 생각하기 쉽지 뭡니까. 자매품은 내가 하면 로맨스, 네가 하면 불륜이 있겠습니다 ㅎㅎㅎ

2021-06-24 08: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6-29 08: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6-29 09:3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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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쟝쟝 2021-06-24 18:5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 책을 어디서 봤나 했더니, 정희진샘의 신간이었군요! 고통이나 통증은 고통스러울 수 밖에 없는 주제라 살짝 꿍 비껴있었는 데, 흥미가 생기네요? (통증일기에 백미를 가져다 붙이신 것 처럼... 흥미가 생긴다는 표현도 좀 거시기 하지만 서도 ㅎㅎㅎ) 단발님 리뷰 좀더 읽고 읽을지 말지 생각해 봐야겠읍니다 ^^

단발머리 2021-06-29 08:52   좋아요 1 | URL
저 다 읽었고요. 무척이나 흥미로운 시간이었어요. 말 그대로 연대기라서 별로인 지점도 사람마다 있을 수 있겠고요. 전 고통에 관심이 있어서, 재미있었어요. 통증일기는, 일기니까 에세이에 가까운데, 이 사람이 하버드 영문과 수석졸업생이잖아요.
소설 같아요. 그냥 툭툭 써내는데, 파바박 찌르는 느낌? 전 좋았어요. 크흑.

공쟝쟝 2021-06-29 09:29   좋아요 0 | URL
하바드 영뭉과 수석의 느낌이 한글에서도 느껴지면 워떡한데??? ㅋㅋㅋ 저자가 여자네요 ㅋㅋ 남자였음 안보려고 해따 ㅋㅋ

2021-06-29 11:5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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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6-29 12: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6-29 12:3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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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6-29 12: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6-29 13: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6-29 13:5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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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딩 2021-07-07 23: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단발머리님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려요~

단발머리 2021-07-18 19:28   좋아요 0 | URL
초딩님 인사가 늦었어요 ㅠㅠ 축하감사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