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리의 서재 6일째다. 너무 좋다.

 


친구가 밀리의 서재 구독권을 줬다. 늦은 봄이었다. 너무 더워서 책장 넘기기 힘들 때, 재미있는 전자책 왕창 봐야겠다, 다짐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나에게 여름은 없었다. 나의 여름, 나의 휴가, 나의 휴식은 없었다. 올해는 없었다. 그래서, 구독권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그저께 필통 사이에 구독권이 빼꼼히 보여서, 이거는 기한이 없나? 하고 확인해 봤더니, 왜 없겠나. 12 31일까지다. 어머나, 친구가 2개월 구독권이라고 했는지, 3개월 구독권이라고 했는지 잊어버렸는데, 3개월이라면 이미 한 달이 없어지고 만 상태. 부랴부랴 회원가입을 하고 앱을 깔고 책 서핑에 나섰다. <나의 서재>도 꾸며 보았다





흐뭇한 광경을 만끽하며 서랍에 고이 모셔져 있는 크레마 사운드를 꺼내 피씨와 연결했다. 누워서 크레마로 책 읽는 나의 모습, 크흐흐. 하지만, 헤매고 돌고, 돌고 헤맨 후에 밤 11시 반에 얻은 결론은, 내 크레마 사운드로는 밀리의 서재를 볼 수 없다는 것. 괜찮다, 괜찮아.

 



급하게 선택한 책들이기는 하지만 나름 신중하게 고른 이 책 중에, 나는 (내가) 유시민의 책이나 베블런의 책이나 혹은 정지돈의 책을 읽을 줄 알았다. (제일 먼저 다운받은 책은 유시민의 책이고, 제일 먼저 열어본 건 정지돈의 책). 그러나, 사실인즉슨 금요일 오후부터 토요일 아침까지 잭 리처와 함께했으니. 그는 언제 어디서나 최고다. 온몸이 무기요, 몸을 휘두르면 살인 병기이며, 잘 먹고, 잘 자고, 무엇보다 말 잘하는 사람이다. 크고 빠르고 정확하며, 어떤 사람보다도 강하다. 그런 사람과 1 2일을 함께했다.

 

나쁜 사람일 것 같은 사람이 그렇게 나쁜 사람은 아니었다가, 다시 속임수에 능한 사람이 되었다가, 다시 그저 그런 사람으로 변하는 순간마다 재미있었고, 피해자인 줄 알았던 사람이 거짓말쟁이가 되었다가 살인 기계로 변신하는 과정은 놀랍고 끔찍했다. 자세히 알고 싶지 않은 부분도 보게 되어 조금 무섭기도 했다(겁 많은 사람).

 


여기저기 돌아보니, 100자 평과 비슷한 한 줄 리뷰기능이 있던데 장강명의 한줄 리뷰가 간간히 눈에 띄었다. 내가 아는 장강명일까 했는데, 내가 아는 (나쪽에서만 아는) 소설가 장강명이어서 반가웠다. 장강명 바로 밑에 한 줄 리뷰남길까 말까 생각 중이다. 계획대로라면 다음 책은유한 계급론』이 되어야 하는데, 잭 리처를 만나지 않을까 싶다. 리처, 나의 리처. 나만의 잭 리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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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쟝쟝 2021-11-07 18:30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단발님.. 할수 있어요.. 밀리의 서재 크레마로 깔 수 있어요.... 가져와요... 깔아드릴게.... 저도 구형 크레마인데... 잘 설치해서 잘 읽구 있어여.... 할수 있어여... 우리는... 할 수 있어....

단발머리 2021-11-07 23:12   좋아요 3 | URL
깔............수............. 있는 거였어요? 후덜덜덜덜.....
일단 만나서 이야기하죠. 가지고 나갈께요. 만세! 불러야 하는데 놀라서 말이 안 나오네요 ㅎㅎㅎ

mini74 2021-11-07 21:0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ㅎㅎ 잭 리처의 동반자 단발머리님 ~ 글에서 행복이 느껴져서 읽는내내 저도 기분이 좋아요 ~~공쟝쟝님의 애타는 마음도 아주 잘!! 느껴집니다. ㅎㅎ

단발머리 2021-11-07 23:16   좋아요 3 | URL
저는 그제도 어제도 그리고 오늘도.... 잭 리처와 함께 있습니다. 지금 읽고 있는 <악의 사슬>에서는 작은 마을에 숨겨진 범죄의 비밀(실종, 살인사건)에 휘말린 리처가 숨을 곳 없이 들판을 헤매고 있습니다. 적들의 눈에 띄지 않고 리처는 이 난관을 어떻게 이겨나갈 수 있을까요? (다음 페이퍼에 계속됩니다)
쟝쟝님이 해준다고 했어요. 어흑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21-11-08 08: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악의 사슬 넘나 재미있지요? 저 진짜 정신없이 빨려 들어가서 읽었어요. 후훗. 잭 리처 그동안 잊고 살았는데 단발머리 님 덕에 다시 만나야겠네요. 아니 알라딘 서재를 들어오지를 말아야지, 여기 들어오면 잭 리처도 빨리 봐야겠고 보부아르 전기 빨리 읽어야겠고 에밀 졸라 사둔거 읽어야 되고 아주 미치고 팔짝 뛰겠네요. 단발머리 님 잭 리처랑 주말 보내시다니, 잭 리처 이 자식 정말 넘나 역마살 있는 것...

단발머리 2021-11-09 12:53   좋아요 0 | URL
악의 사슬 넘나 재미있어요. 이제 반 정도 넘었는데, 리처 코뼈가 옆으로 밀렸ㅠㅠㅠㅠㅠㅠㅠ 리처 만나 너무 좋은데요, 대신 다른 책이 손에 안 들어오네요. (이리가레 책은 오고 있거든요) 이래저래 저만 즐거운 시간입니다.
보부아르 전기, 저도 반 정도 남았는데 갑자기 기억나네요. 마저 읽어야하느니.... 하고 있어요. (먼 산)
 

















2의 성 읽다가 힘들고 어려운 시간 많았지만, 돌아보니 좋은 시간도 많았다. 다음에 또 읽을 기회가 생긴다면, 그 때도 망설임 없이, 가차없이 읽을 생각이다. 같이라면. 함께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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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1-11-06 17:34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어머 아름다워요!! 🤭

단발머리 2021-11-06 17:35   좋아요 4 | URL
저 잭 리처 리뷰 쓰고 있어요. (댓글이 너무 딱이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잭 리처는 사랑입니다! 💕

막시무스 2021-11-06 18:54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이토록 달달한 유혹이라니요!ㅠ.ㅠ...편의점 순방 한번 해야 할 것 같네요!ㅎ 즐건 주말되십시요!ㅎ

단발머리 2021-11-07 23:17   좋아요 4 | URL
편의점 순방 잘 하셨는지요ㅎㅎㅎㅎ 저도 즐거운 주말이었습니다. 막시무스님 좋은 한 주 되세요!!

mini74 2021-11-06 18:5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책 무게만큼 몸무게 늘어나신거 아닌가요 ㅎㅎ 책도 예쁘고 간식은 더 예쁘고. 사진 잘 찍으시는 분들 부러워요.ㅎㅎ

단발머리 2021-11-07 23:18   좋아요 3 | URL
책 무게보다 몸무게가 더 늘어났습니다만 그래도 즐거웠네요. 책이 예쁜데 간식이 더 예쁜가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미미 2021-11-06 20:0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 이 간식들 주문이 가능하다면 다음주 월~금 까지 차례대로 시키고싶어요~♡♡

단발머리 2021-11-07 23:19   좋아요 3 | URL
딱 다섯개라 아주 딱이네요. 쿠키랑 스콘은 저희 동네 새로 생긴 디저트집 작품이구요.
정새우와 신당동 떡볶이도 실망시키지 않을 것입니다.

잠자냥 2021-11-06 21:29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역시 고칼로리가 필요한 책이군요….;

단발머리 2021-11-07 23:20   좋아요 3 | URL
과자 먹으면서 읽을 책은 아니지요. 주로 간식 없이 읽었다는 점 강조하고 싶습니다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고칼로리가 필요한 책이었습니다

책읽는나무 2021-11-06 21:30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오호~~^^
몸과 정신을 살찌우는 제2의 성이라니~~ㅋㅋㅋ

단발머리 2021-11-07 23:21   좋아요 3 | URL
몸과 정신이 모두 살쪘습니다. 으흑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수이 2021-11-07 00:48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이렇게 맛난 것들과 함께 제2의 성을 읽으셨다니 그중에 저는 스콘이 제일 짱!

단발머리 2021-11-07 23:22   좋아요 3 | URL
저 스콘으로 말씀드리자면 ㅋㅋㅋㅋ 허름한 동네 구석에, 앉을 자리도 없는, 테이크 아웃 스콘 앤드 쿠키 전문점의 인기 상품으로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레이스 2021-11-07 08:4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주인공이 제2의 성 맞지요?^^
떡볶이 과자, 제가 둘째가 사올때마다 왜 그런걸 먹냐고 했던건데,,,,
비밀은 맛있다는 사실^^

단발머리 2021-11-07 23:23   좋아요 3 | URL
다섯 장에 모두 등장하니 제2의 성이 주인공 맞습니다.
저도 그 과자를 큰애를 통해 전도받고 그레이스님과 똑같은 코스로..... 이제는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공쟝쟝 2021-11-07 18:3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맛있는거 많이 드셨다... ㅋㅋㅋㅋㅋ >_<

단발머리 2021-11-07 23:24   좋아요 3 | URL
모두 맛있었습니다. 만세!!!

psyche 2021-11-14 11:1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정새우 먹어봤습니다! 왜이렇게 반갑죠? ㅋㅋㅋㅋ
동생이 맥주 안주 하라고 사줬는데 진짜 안주로 딱 이더라고요. 저 사진 옆에 맥주가 빠져 아쉽네요. ㅎㅎ

단발머리 2021-11-14 20:53   좋아요 1 | URL
프시케님!! 정새우는 사랑입니다 ㅋㅋㅋㅋㅋㅋㅋ
저는 딱 한 개 샀거든요. 저 혼자 다 먹으려고 숨겨놓았고 사진 찍고 또 숨겨 놓았습니다.
제게는 커피가 곧 맥주이며 ㅋㅋㅋㅋㅋㅋㅋ(뭐라고 하는 건가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어젯밤에는 친구에게서 카톡이 왔다. 성공회대 하종강 교수님의 강의를 듣다가 내 생각이 나서 연락하는 거라고 했다. 어머나, 하종강 강의를 들으면서 생각나는 친구라니. 너무 근사한 거 아닌가. 좋은 강의 듣는구나, 답했다. 친구는 다른 강의에서 헨리 조지가 나오면 또 내가 생각난다고 했다. 어머나, 진보와 빈곤. 헨리 조지를 들을 때 생각나는 친구라니, 이건 또 무슨 일인가.

 

이 친구는 나를 많이, 계속 좋아하는 친구다. 15년 전인가. 친구 아버님이 돌아가셔서 친구 집에 갔다. (그 지역은 조문을 집에서 받는 분위기) 일행이 나까지 넷이었는데, 서울에서 큰딸 친구들이 왔다는 이야기에 어머님이 우리를 맞으시는데, 내 두 손을 꼭 잡으시며 네가 **이니?” 하고 물으시는 거다. 어머님의 따뜻한 손과 반짝이는 눈빛을 보고 단번에 알았다. 친구가 나에 대해 어머님에게 어떻게 말했는지를. 기대와 기대와 또 기대감에 가득 찬 사랑의 눈빛.

 


내 친구는 비상한 기억력의 소유자인데, 이를테면, 4학년 때 구내식당에서 1학년 때 들었던 수업 내용에 관해 물으면, 수업 내용과 예시는 물론이요, 그 앞뒤로 선생님의 시답잖은 농담까지 기억하는 친구다. 기억의 쌍두마차 중 한 명이다. 진보와 빈곤이라니, 안 봐도 비디오다. 대학교 4학년 때 『진보와 빈곤』을 읽은 거다. 아무것도 모르면서 얼마나 아는 척에, 깝치고 다녔을까. 비상한 기억의 소유자이자 착한 내 친구는 헨리 조지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때의 나를 긍정적으로기억해내고, 내게 말하는 거다. “그걸 지금에야 알아듣고 삽니다. ㅋㅋㅋㅋ, 비상하고 착한 친구여.


 

기억의 쌍두마차 중 다른 친구는 고등학교 친구다. 얼마 전에 카톡을 하다가(카톡 많이 하는 사람), 큰아이를 낳고 얼마 안 되어 친구가 우리 집에 놀러 왔던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나는 친구가 딸기를 사 왔다고 했는데, 친구는 딸기는 기억이 안 나고 아이 내복을 사 갔다는 말을 했다. 그렇다면 친구 말이 맞다. 왜냐하면, 이 친구는 기억의 쌍두 마차 중 하나니까. 이 친구의 기억은 무조건 옳다. 그래서 얼른, ‘그래, 딸기랑 아기 옷을 사 왔지라고 말했다. 그랬더니 친구가 네가 복숭아를 너무 예쁘게 깎아서 깜짝 놀란 기억이 있어그러는 거다. 복숭아라. 나는 과일을 잘 못 깎지만, 복숭아는 그중에서도 워스트다. 사과, , 참외, 수박, 멜론과는 결이 다르다. 특히 말랑이는 최고의 난이도다. 이번 추석에도 동서가 복숭아를 이쁘게 깎고 있길래 복숭아이렇게 깎는 거지?”하고 물었더니, 동서는 응응.”하고 간단히 대답했다. 그런데, 친구가 그러는 거다. 네가 복숭아를 너무 예쁘게 잘 깎아서. 20년 전의 내가? 진짜? 그래서, 그 친구는 기억의 쌍두마차 중 한 명인데도, 나는 용감하게 말했다. “설마?”

 














최근에 읽었던생명이란 무엇인가』는 를 이렇게 정의한다.  

 




란 내 기억의 총합이다. 하지만 그런 경우라도 두 가지 측면이 있을 수 있다. 내가 아는 나와 남들이 기억하는 나. 친구들의 기억 속에 나는진보와 빈곤』을 읽고 복숭아를 예쁘게 깎는 사람이지만, 실제의 나는 지난번 이사 때진보와 빈곤』을 버렸고 (후회막급), 아직도 복숭아를(다른 과일도) 볼품없는 모양으로 내놓는 사람이다. 어떤 게 진짜 나일까. 어떤 모습이 진짜 내 모습에 가까울까.  

 

기억을 다운받아 그것이 물질적인 형체를 갖지 않은 채 데이터 형식으로 우주를 유영한다면, 혹은 디지털 공간에서 영원히살아간다면, 그걸 나의 현존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육체 속에 갇혀 있어야만,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는 존재여야만 라고 할 수 있을까. 어디까지가 나일까. 어디서부터 내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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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21-11-06 17: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랜 친구와 어떤 이야기를 하다 같은 상황에 기억이 서로 다르게 앉아 있다는 사실에 서로 깜짝 놀라곤 하죠. 내가 기억의 총화라고 한다면 그 기억은 나의 기억이 아니라 타자의 기억일 가능성이 더 큰 거 같아요. 망각도 기억의 한 방식이죠. 어떤 일은 감쪽같이 망각하곤 없는 일이 되어 있는데 타인의 기억 속엔 살아 있으니 지울 수 없지요. 자신의 기억에 없다고 해서 없는 일이 아닐텐데 말이죠. 더구나 변조된 기억은 어떡하나요. 단발머리 님 페이퍼대로 진짜로 나는 무수하더라구요. 세상 사람 수만큼이나. 어떤 나는 맘에 들기도 하고 어떤 나는 한 대 때리고 싶고요 ㅎㅎ

단발머리 2021-11-06 17:55   좋아요 0 | URL
프레이야님 말씀 너무 공감되고 동의합니다. 더 정확한건 타자의 기억 같아요. 전 이불킥을 자주 하는 사람이기는 한데, 타인의 기억 속에 나는 그렇게 큰 자리를 차지하지는 않더라구요. 생각보다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 ‘무관심‘한 것 같아요. 그렇게 생각하니 훨씬 더 자유롭게 느껴지기도 하구요.
타인의 기억 속의 나와 진짜 나를 비슷하게 맞춰가는게 좋은 것 같아요. 전, 타인의 기억 속의 저를 쪼금 더 좋아하기는 하지만요.
 



















마찬가지로 우울증도 사람마다 다르게 나타난다. 어떤 이들은 그것에 저항하거나 이겨 내는 힘이 있는 반면 어떤 이들은 꼼짝없이 휘둘린다. 유약하고 순종적인 사람을 무너뜨리는 우울증을 고집과 자존심으로 이겨 내는 사람도 있다. (31쪽) 




나는 이 문단을 만나려고, 읽으려고 이 책을 읽었던 게 아닌가 싶다. 어떤 사람은 우울증에 더 취약하다는 것. 우울증의 극복은 노력으로 되지 않는다는 것. 관심 있는 두 세 챕터만 읽어보고 마무리할 것 같다. 완독은 언감생심. 





그레이엄 그린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이따금 나는 글을 쓰거나작곡을 하거나 그림을 그리지 않는 사람들은 어떻게 인간의 고유한 광기와 멜랑콜리, 돌연한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는지 궁금해진다. - P10

삶은 슬픔을 내포한다. 우리는 결국 죽게 될 것이고, 각자 자율적인 육체의 고독 속에 갇혀 있으며, 시간은 흘러가고, 지나간 날들은 다시 똑같이 되풀이되지 않는다. 고통은 무력한 세상의 첫 경험이며 평생 우리를 떠나지 않는다. 우리는 안락한 자궁에서 떨어져나오는 것에 대해 분노하며 그 분노가 사그라지기가 무섭게 세상의고뇌가 그 자리를 메운다. 내세에서는 완전히 다를 것이라는 약속을 믿는 사람들이라도 현세에서 고통받는 걸 피할 수 없다. 예수 자신도 비탄에 젖은 자였다. 우리는 완화제들이 계속 증가하는 시대에 살고 있으며, 무엇을 느끼고 무엇을 느끼지 않을지 결정하는 것도 더 쉬워졌다. 그런 회피 수단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인생의 불가피한 불쾌함도 점점 줄고 있다. 그러나 약학계의 열띤 주장에도 불구하고, 우울증은 우리가 자신에 대해 의식하는 존재인 이상 완전히 없앨 수 없다. 기껏해야 억제할 수 있으며, 현재 행해지는 우울증치료의 목적은 억제에 머물러 있다. - P18

그것은 오로지 은유와 우화로만 설명될 수 있다. 성안토니오는 사막에서 허름한 옷을 입고 찾아온 천사들과 화려하게 치장한 악마들을 어떻게 구분할 수 있었냐는 물음에 그들이 떠난후 어떤 기분이 들었는지를 보면 알 수 있다고 대답했다. 천사가 왔다가 떠나면 그의 존재로 인해 힘이 솟고 악마가 왔다 떠나면 공포에 사로잡혔다는 것이다. 슬픔은 우리에게 강하고 분명한 생각들과 자신의 깊이에 대한 이해를 남기는 허름한 옷차림의 천사다. 그리고 우울증은 우리를 겁에 질리도록 만드는 악마다. - P19

나는 앞에서 우울증은 탄생이며 죽음이라고 했다. 탄생하는것은 덩굴 식물이다. 죽음은 곧 자신의 붕괴, 가지들의 부러짐이다.
처음 사라지는 건 행복이다. 그 무엇에서도 기쁨을 얻지 못하게 된다. 그것은 중증 우울증의 주요 증상이다. 그리고 곧 다른 감정들이행복의 뒤를 따라 망각에 이른다. 우리가 일찍이 알고 있던 슬픔, 우리를 여기까지 인도해 온 듯한 슬픔, 유머 감각, 사랑에 대한 신념과사랑하는 능력. 그렇게 모든 것들이 걸러져 나가면 스스로에게도멍청이로 보인다. 원래 머리숱이 적었다면 더 적어지고 원래 피부가 나빴다면 더 나빠진다. 자신에게조차 역겨운 냄새를 풍기게 된다. 다른 사람을 믿거나 감동하거나 슬퍼하는 능력도 잃는다. 결국빈껍데기만 남는 것이다. - P24

생물학적 취약성을 지닌 사람들에게 최선의 방어책은 외적인 굴욕들을 흡수하고 최소화하는 ‘행복한 결혼 생활이다. 조지 브라운은 이렇게 인정한다. "사회심리적 변화가 생물학적 변화를 만든다. 다만 취약성은 반드시 먼저 외적인 사건에 의해 자극을 받아야 한다." - P100

… 우울증이라는 병은 약물치료를 중단하면 1년 이내 재발률이 80퍼센트에 이르며 약물치료를 하면 회복률이 80퍼센트입니다." 국립정신건강연구소의 로버트 포스트도 같은 의견이다. "사람들은 평생 약에 의존하는 것의 부작용에 대해 걱정하지만 그 부작용은 미미하다고 볼 수 있어요. 우울증을 방치하면 치명적인 결과에 이를 수도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지요. - P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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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1-03 09: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11-03 09: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11-03 09: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11-03 10: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보고 또 봐도 무슨 말인지 이해하기 어려운데 조금 웃기기도 해서 한 번 웃고나니 자꾸 웃게 된다. 촉수 사유라니…

‘페미니즘 이론의 최신’이라는 『해러웨이 선언문』을 3분의 1 밖에 못 읽은 이유를 오늘에서야 발견한다.


나는 이론가들과 스토리텔러들이 제공하는 사유하기에 필요한 재능을 탐구하기에, 이 장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공-산共-産, sympoiesis — 함께 만들기 making-with – 이다. 과학과 인류학, 스토리텔링 분야의 나의 동료들 이자벨 스탕제르 Isabelle Stengers, 브뤼노라투르Bruno Latour, 솜 반 두렌Thom van Dooren, 애나 칭Anna Tsing, 메릴린 스트래선Marilyn Strathern, 한나 아렌트Hannah Arendi, 어슐러 K. 르 귄Ursula K, Le Guin 등은 촉수적 사고를 함에 있어서 나의 반려들이다. - P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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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 2021-10-25 10:42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저도 뭔가 고통스러워 읽다만 책이예요.(해러웨이 선언문) 아웅.. 다른 분 번역이 나왔으면! (ㅠㅇㅠ)해러웨이 때문인가..

단발머리 2021-10-25 14:07   좋아요 2 | URL
요기 위에 제가 다른 책 하나 더 올렸는데요. 맨 오른쪽 <해러웨이 공-산의 사유>가 이 책 번역하신 분 저서더라구요.
해러웨이 전문가신가봐요. 그냥 읽어야겠다, 싶은데 어렵지요.... (시무록)

다락방 2021-10-25 11:39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촉수 사유 자체는 뭔 말인지 알긴 하겠는데 말입니다 ㅋㅋㅋㅋㅋ 저 문장은 뭔말인지 ㅋㅋㅋㅋㅋㅋㅋㅋ 저 해러웨이 선언문 사두었는데 계속 사둔 상태로만 있겠네요? 깔깔 🤣🤣

단발머리 2021-10-25 13:18   좋아요 3 | URL
촉수 사유와 문어발 사유가 비슷한걸까요? 전 진짜 너무 웃긴데 알지도 못하면서 웃는 게 부끄럽기도 하고요.
저 해러웨이 선언문 다시 도전할꺼에요. 나아아아아아아아~~~ 중에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공쟝쟝 2021-10-25 13:37   좋아요 4 | URL
초...옥수 사...아유...?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저도 사둔 상태로만 있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
우리 같이 읽을까요? ㅋㅋㅋㅋ 다리다님... 내년 10월 도서로 선정해주십셔 ㅋㅋㅋ

다락방 2021-10-25 15:09   좋아요 2 | URL
단발머리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촉수 사유는 문어발 사유와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그러나 문어발 보다는 좀 더 뻗어나가는 느낌이 강한 느낌적 느낌? ㅋㅋㅋㅋㅋㅋㅋㅋ

단발머리님, 공쟝쟝님. 해러웨이 선언문 같이읽기 도서 선정할까요? 지금 계획상으로는 가장 빨리 잡아야 내년 5월이에요. 4월 도서까지 이미 다 정해두었음. 나란 여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단발머리 2021-10-25 15:10   좋아요 1 | URL
저는 찬성이지만 그 전에 제가 먼저 읽으면 어쩌죠? 🤭🤭🤭

공쟝쟝 2021-10-26 10:05   좋아요 0 | URL
단발님의 쓸쓸한 뒷모습을 보니 그 때까지 잡아두셔도 충분히 읽기 어려워할 것 같아요 ㅋㅋㅋㅋㅋ 해러웨이잖아여 ㅋㅋㅋ

다락방 2021-10-26 12:10   좋아요 0 | URL
단발님, 그 전에 읽으실건가요? 해러웨이 선언문 4월... 너무 늦어요? (간절) ㅎㅎ

단발머리 2021-10-26 12:50   좋아요 0 | URL
절대로 늦지 않을 것입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 4월까지 리스트가 다 나와 있다고 하던대요, 우리 팀장님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수이 2021-10-25 13:08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트러블과 함께하기 읽고 계시는 건가요? 저는 저 멀리서 표지만 바라보아도 저릿저릿거려서 차마 읽을 생각 못했는데 ㅋㅋㅋ 해러웨이 선언문 읽다가 집어던진 아줌마 여기 손!

단발머리 2021-10-25 13:18   좋아요 4 | URL
14쪽까지 읽었다지요. 저 쓸쓸히 <제2의 성>에게로 갔다고 합니다. <제2의 성> 재밌어요. 안 그래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공쟝쟝 2021-10-25 13:38   좋아요 4 | URL
쓸쓸히 제2의 성으로 돌아가는 단발님 왤케 귀엽고도... 웃긴가....

단발머리 2021-10-25 14:04   좋아요 2 | URL
귀엽고 웃긴 것은 매우 즐거운 일이나.... 저, 엄청 쓸쓸하다니까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엄청 쓸쓸해서 막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뒷모습이 막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붕붕툐툐 2021-10-25 22: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개그맨 선배들이 후배들 아이디어 뺏어다가 쓴다는 게 생각나는 단어였어요~ 빨대 꽂는다고도 하던데~ㅎㅎ 저도 촉수 사유의 달인이 되고 싶네용!!ㅎㅎ

단발머리 2021-10-26 12:52   좋아요 1 | URL
촉수,라고 하면 왠지 곤충이 생각나서 전 별로이기는 한데… 해러웨이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