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회를 마치고
세정제로 손을 씻는다
말없이 걸어 내려와
마을버스에 다시 오른다

4,900원짜리 베트남 쌀국수를
세 개 주문한다
커다란 그릇에 담긴 쌀국수를
한 젓가락 들어올린다



맛있다
쌀국수가
4,900원짜리 쌀국수가 맛있다

죽음이 이별이
원망이 슬픔이
이렇게 가까이 있는대도

맛있다
쌀국수가 맛있다
맛있다 쌀국수가

침상 위에서는
사투가 벌어지고 있는데
맛있다 쌀국수가
쌀국수는 맛있다



나는 아직 살아있고
그래서 쌀국수를 먹는다

나는 아직 살아있고
맛있는 쌀국수가
끝내 미안하다
맛있어서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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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레사 2019-06-04 20: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ㅜㅜ

단발머리 2019-06-05 10:46   좋아요 0 | URL
ㅠㅠ

2019-06-04 22: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6-05 07: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고미숙 선생님은 하루와 일년의 순환과 상생이 그러하듯 인생 또한 -여름-가을-겨울의 순환대로 이어지는 것이 자연의 섭리라고 하셨다(『나이듦수업』, 29). 사랑도 인간관계도 심지어 국가의 흥망성쇠도 이러한 자연의 흐름을 거스를 없다고 말이다. 하지만 죽음을 이러한 순환의 지점으로 편안하게 받아들일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죽음과의 대면을 초연하게 맞이하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내가 가진 직선의 시간관, 기독교적 세계관에 의하면 죽음은 이전 세계에서 다른 세계로 진입하는 하나의 문이다. 죽음을 통해 나는 이전의 내가 아닌 다른 나로 변신한다. 형태를 있는 유기체에서 다른 존재로의 전환. 모든 상상과 믿음의 근간은의미. 나는 내가 우주의 먼지이며, 별의 일부임을 인정하지만, 없는 화학물간의 의미 없는 조합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의미에 대한 강박. 의미에 대한 집착이 한사코 나를, 나이게 한다. 아무것도 아니라는 , 죽으면 끝이라는 말을, 나는 믿지 않는다. 




화면을 보며 환자의 상태를 설명해주는 담당교수는 나이쯤으로 보인다. 하얀 얼굴의 주치의는 스물 일곱. 앳된 얼굴의 간호사는 그보다 훨씬 어릴 것이다. 담당교수와 주치의, 담당간호사는 모두 우리에게선생님인데, 우리는 아무것도 모르기 때문이다. 주사기와 수액, 이름 모를 치료제와 진통제, 맥박, 호흡, 그리고 자가호흡률을 알려주는 기계와 기계들. 환자와 환자의 가족들은 모든 치료 과정에서 소외된다. 침상 위의 몸뚱이는 예전 그의 것이 아니다. 그것은 담당교수와 주치의, 그리고 담당간호사의 것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우리는 아무것도 없고, 아무것도 없기에 우리는 무력할 뿐이다. 



책을 번도 읽어본 사람처럼 책을 읽지 않았다. 책읽기의 즐거움을 전혀 모르는 사람처럼 책을 읽지 않았다. 책상, 식탁, 김치 냉장고 위에 쌓인게 책이라는 모르는 사람처럼 책을 읽지 않았다. 글을 줄도 쓰지 않았다. 이전에는 돈을 받고 글을 썼던 사람인 것처럼. 이젠 돈을 받지 않게 됐으니 글을 필요가 없어진 것처럼. 알라딘서재에 청탁을 받아 글을 썼던 것처럼, 이전에는 그랬지만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어진 것처럼. 아무런 글도 쓰지 않았다. 변명거리가 생겼으니 이제 일들에서 완전히 놓인 것처럼. 오랫동안 얽매였던 무거운 의무에서 이제 놓인 사람처럼. 




그러다 다시, 책을 읽게 됐다. 살금살금. 페이지 혹은 페이지씩. . 




중환자실 면회는 20분씩 하루에 , 명만 가능해서, 가까운 친척분이 면회를 오셨을 때를 제외하고는 오전에는 며느리들 오후에는 아들들이 들어가는데, 처음에는 오전오후 면회때마다 병원에 갔다. 집에 있어도 마음이 불편해 차라리 병원에 가는 나았다. 포기해서가 아니라, 일이, 기다림이 예상보다 길어질 있을 거라는 판단을 하게 됐던 네째 주부터 저녁 면회에 가지 않는다. 집이 엉망이다. 김밥에, 컵밥. 아이들 밥도 차려주지 않고 있는데, 다시 살아야해서, 그래서 책을 읽는다.   



머리가 복잡할 , 답답한 생각에 사로잡힐 , 현실에서 도망치고 싶을 , 책을 읽는다. 속상할 , 허전할 , 막막할 책을 읽는다. 책을 전혀 읽지 했던 지난 보다 책을 읽기 시작한 며칠이 암담한 때인지도 모르겠다. 책의 도움이 필요한 때가 되었다.  



시아버지가 병원에 입원하신지 30일째다. 



시간이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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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산휴가 마지막 날, 울지 않는 아이를 안고 한없이 눈물을 흘렸다. 보육시설도 아니고 모르는 사람도 아닌 시어머니에게 아이를 맡기는데도 그랬다.

시댁은 마주 보이는 아파트였지만 아이를 안고 걷기에는 조금 먼 거리여서 아침에는 남편과 함께 차로 이동했고 저녁에는 남편이 퇴근하면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 날은 남편이 늦는다고 해 저녁을 먹고 집에 가야했다. 아기띠를 할 정도의 월령이 아니어서 아이를 안고 가야 했는데 시아버지께서 아이를 안고 가시겠다 했다.

화창하고 맑은 날이었다. 시아버지는 반팔에 칠부반바지를 입으셨고 하이힐에 핸드백을 든 나는 작은 아기가방을 들고 시아버지를 뒤따라 걸었다.

빠른 어른 걸음으로 5분, 천천히 걸으면 7-8분 정도의 거리인데, 아기를 안고 가는 걸음걸이라 그런지 꽤 시간이 걸린 듯 했다. 집에 도착하니 아버님의 머리위로 송글송글 땀방울이 맺혀 있었다. 아버님은 본의아니게 젊은 시절부터 머리 위 땀방울이 보이는 헤어스타일이셨다. 아버님~ 땀이 많이 나셨어요. 허허허, 괜찮다. 그 때 아버님에게 시원한 물이라도 한 잔 내드렸던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며느리사랑은 시아버지라는 말처럼, 아버님은 강성, 아니 초강성이신 시어머니와 우리 며느리들 사이에서 가림막이 되어 주셨다. 물론 한두가지 서운한 기억도 있다. 아들 둘인 집안이기에 처음 맞은 며느리를 딸이라 생각하겠다는 아버님의 말씀을, 그 때는 아버님도 나도 믿었을 때니까. 그게 불가능한 일이라는 걸 깨닫는 과정은 그렇게 서운하고 씁쓸한 일들로 채워졌다.

아버님께 감사했던 기억과 서운한 기억을 1대1로 두고 싶지 않아, 내가 아직 어리고 아버지가 젊으셨던 때를 기억한다.



아버님, 제가 참 부족한데도 사랑해주셔서 감사해요.
아버님, 그동안 참 고마웠어요.



중환자실, 내과 17번.
쉬지 않고 기도하다가 아버님과 나만 남게 되었을 때, 아버님 귀에 대고 말한다. 

듣지 못하실지 몰라도 말해야만 할 것 같아서. 나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생각일지 몰라도...
그래도 말하고 싶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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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환자실 의자에 이렇게 앉아 있은 오늘로 일주일 째다. 



타미플루와 감기약을 20여일 먹는 동안 사람이 얼마나 있는지에 대해 많이 생각했다. 낮에 자도 밤에 있다는 , 밤새 자고 일어나도 다시 있다는 알게 됐다. 때문인지 의욕 감퇴에 기운이 딸려 차려주는 일도 버거워 짜장면에 떡볶이에 갈비탕까지. 시켜 먹을 있는 것들은 시켜 먹고 먹을 있는 것들을 먹었다. 모두들 자신의 자리로 부지런히 뛰어가는 아침, 다시 침대에 몸을 누일 때마다 금쪽 같은 소중한 시간을 아쉬워했다. 인생을 낭비하고 있다는 생각,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는 생각을 멈출 없었다. 그렇게 의무와 필요를 본체 하며 간신히 기운을 차렸다. 



그리고 며칠 후 시아버지가 쓰러지셨다. 아빠였다면, 엄마였다면. 엄마였다면, 나는 글을 쓰지 못했을 것이다. 순간과 사건을 객관화할 없기 때문이다. 시아버지는 응급으로 수술을 받으시고 응급 중환자실에서 중환자실로, 중환자실에서 일반병실로, 일반병실에서 다시 중환자실로 옮겨져 치료를 받고 계시다. 힘들고 고통스러운 시간에 가족 간에 서로를 믿고 의지하는 마음이 커지면 좋으련만. 절망과 후회 속 시어머니는 시아버지와 자식들을 원망하고, 시아버지는 시어머니를 원망하고, 나는, 겉으로는 말하지 못하지만 시어머니를 원망한다. 



하지만, 하루 20분씩의 면회 시간마다 시아버지와 시어머니는 견우직녀도 울고 , 눈물 없이 들을 없는 아름다운 사랑의 맹세를 하시며 완치의 약속을 주고 받으신다. 시아버지를 이렇게 두고 없다며 시어머니가 종일 중환자실 앞에 진치고 계시기에, 시어머니를 혼자 없어 동서와 나도 중환자실 의자에 나란히 앉는다. 휴게실에서 잠깐 쉬기도 하고, 동서가 망고주스와 바나나우유를 마시며 시간을 보낸다. 주말 보낸 , 내가 준비한 유부초밥과 토마토는 동서가 준비한 토스트에 밀려나 알뜰한 사랑을 받지 했기에, 후로는 손으로 너털너털 병원으로 간다. 시간을 보내기 위해, 시간이 흘러가고 있음을 확인하기 위해, 그렇게 하염없이 의자에 앉아 있다. 



아침에 아이들을 보고 밤에 돌아와서는 쓰러져 자기 바쁘다. 이제 웬만치 자란 아이들을 학교가 보살펴 주니 고마운 마음뿐이. 부목사님과 찬양인도자에게 몇몇 예배에 참석할 없음을 카톡으로 알린다. 이렇게 다시 의무와 책임, 해야할 일들에서 걸음 뒤로 밀려난다. 지금은 의자에 앉아 있을 때다. 하염없이 기다릴 때다.

 



성경은 66권이 하나의 책처럼 묶여 있는데, 내가 제일 좋아하는 책은 <로마서>이고, 번째로 좋아하는 책이 <전도서>이다. 세계를 통틀어 가장 부유하고 가장 평화로운 시기를 구가했다는 이스라엘의 번째 왕, 지혜의 임금 솔로몬이 책이 전도서이다. 




태어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다. 

심을 때가 있고 수확할 때가 있다. 

죽일 때가 있고 치료할 때가 있다. 

파괴할 때가 있고 건설할 때가 있다. 

울어야 때가 있고 웃어야 때가 있다. 

탄식할 때가 있고 환호할 때가 있다.    

사랑을 나눌 때가 있고 멀리할 때가 있다. 

껴안을 때가 있고 떨어질 때가 있다. 

찾을 때가 있고 포기할 때가 있다. 

붙잡을 때가 있고 놓아 보낼 때가 있다. 

찢을 때가 있고 꿰맬 때가 있다. 

입을 다물 때가 있고 소리로 말할 때가 있다. 

사랑할 때가 있고 미워할 때가 있다. 

전쟁을 벌일 때가 있고 화친을 때가 있다. (전도서 3:2-8)  




사랑할 , 찾을 , 붙잡을 , 꿰맬 때이기를 바란다

지금이 바로 그런 때이기를 바라며 기다린다. 하염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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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5-10 21: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5-10 21: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5-10 22: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5-10 22: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5-10 21: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5-10 22: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공쟝쟝 2019-05-10 22:02   좋아요 0 | URL
아무리 적당한 거리감이 있더라도 보는 것 만으로도 힘드실 것 같아요.. 토닥토닥... ㅠ..ㅠ

2019-05-10 22: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5-10 22: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5-10 22: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5-11 00: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5-11 08: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5-11 07: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5-11 11: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blanca 2019-05-11 09: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어떤 댓글을 달 수 있을지. 그냥 그 무게가 전해져 와서 눈물이 나요. 전도서 구절 하나 하나가 가슴에 와 닿습니다. 단발머리님, 부디 힘내셔서 이 시기를 또 잘 이겨나가서 돌아볼 때 그땐 그랬구나, 하는 시간이 오기를...

2019-05-11 11: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5-11 09: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5-11 11: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독서괭 2019-05-11 16: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힘내세요...!!!

2019-05-11 16: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han22598 2019-05-16 23: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셨구나...얼마나 힘드실까? 이글을 보기 전 상황을 몰랐을때 요즘은 책을 안 읽으시나 했어요..
용기내어 상황을 글로 알려주셔서 감사하고 큰 위로는 되지 않겠지만 힘내시라는 말을 전하고 싶네요.

함께 존재함만으로 위로받으시는 시간들이 되었으면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는 것처럼.

2019-05-18 14: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5-17 13: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5-18 14: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5-17 16: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5-18 14: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5-18 01: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5-18 14: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5-22 06: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5-24 08: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6-04 22: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6-05 10: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부모를 죽이고 싶다는 마음은 옳습니다. 물론 부모님을 죽여도 된다는 말이 아니라 그런 마음에는 반드시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말입니다. 나를 괴롭히는 상사처럼 나와 크게 상관없는 사람을 죽이고 싶을 만큼 미워하기는 쉽습니다. 하지만 사랑하는 내 부모에게 느끼는 살의는 남이 준 상처보다 백배, 천배쯤 더 심한 상처들이 쌓여야 떠오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부모를 죽이고 싶을 만큼 미워하게 됐다면 거기에는 반드시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부모님을 죽이고 싶다는 말을 들으면 항상 온 체중을 다 실어서 당신이 그렇게 말했을 때는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이야기해줍니다. (92-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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