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고도 가까운 - 읽기, 쓰기, 고독, 연대에 관하여
리베카 솔닛 지음, 김현우 옮김 / 반비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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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설공주를 죽이려했던 왕비는 새엄마가 아니라 친엄마일거라 확신한다. 경험에서 온 말이라고 생각해도 상관없다. 매번 질투하지는 않지만 부러울 때가 많다. 내가 갖지 못한 것에 대한 부러움, 내가 이미 잃어버린 것에 대한 아쉬움이 얼마 되지도 않는 모성을 압도할 때가 많다는 뜻이다.  

어머니는 금발이 거의 초자연적인 선물이라고 여겼다. 당신이 금발이 아니므로 나 역시 금발이라는 선물을 받을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던 어머니는 오랫동안 셀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하고 불행한 방식으로 나의 머리를 길들이려 했다. (38)

시작은 저자의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다. 딸이 가진 금발을 질투하는 어머니, 딸의 둥근 눈썹을 시기하는 어머니. 아들이 잘생겼다는 사실을 자랑스러워하지만 딸도 그런대로 봐줄만하다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어머니. 자신의 병을 아들에게는 비밀로 하지만 자신의 시중을 드는 딸에게는 불평하는 어머니. 그 어머니가 알츠하이머병에 걸렸다. 길을 잃어버리고, 열쇠를 잃어버리고, 결국에는 자신을 잃어버린다.

어머니가 행복했는가 아니면 불행했는가라는 질문 앞에서, 다른 사람들은 아주 잘 다듬어진, 꽃들이 만개한 평원에서 어머니를 만났던 반면(이것이 가짜라고는 할 수 없다), 나는 어머니의 불행이라는 진짜 늪에 머물렀던 것이라 생각한다. 어머니의 정신이라는 풍경의 또 다른 부분에 아주 멀찍이 자리 잡고 있던, 어머니 본인도 애써 알려 하지 않던 그 불행의 늪에 말이다. (45)

사람은 언제나 스스로를 옹호하려 든다. 거짓말은 아이들만 하는 게 아니다. 누구나 자신의 입장에서 보고 말한다. 그럼에도 이 사람, 오랫동안 어머니에게서 사랑 대신 미움을, 안전에 대한 약속 대신 뜻모를 불안감만을 전달받았던 그녀가, 스스로를 잃어버린 어머니를 돌보는 모습은 마음에 큰 감동을 준다. 그녀는 어머니를 이해하기 위해, 불행의 늪으로만 보였던 어머니를 이해하기 위해 그녀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간다. 어머니를 이해하고, 자기 자신을 이해하려 한다.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그 사람이 되고, 그 사람의 감정을 같이 느끼고, 그리고 같은 고통 속에 침잠하고, 그리고 같이 쉬려 한다. 기억을 잃어버린, 이야기를 잃어버린 그녀의 어머니와 함께 말이다.

어머니의 집을 처분하기 전, 남동생은 집 앞 살구나무의 살구를 모두 따서 그녀에게 보내온다. 100파운드, 40킬로그램이 넘는 살구가 세 개의 커다란 상자에 담겨온다. 무게에 짓눌리거나 좁은 곳에서 썩는 것을 막기 위해 침실의 평평한 바닥에 종이를 펼치고 살구를 넓게 깐다. 온 집안 가득한 달콤한 살구 냄새, 여기저기 썩어가며 진물을 내는 살구. 살구 때문에, 침대 바닥에 놓인 그 과일 덕분에 그녀는 다시 동화를 읽기 시작한다. (26)

백조왕자이야기. 계모의 미움을 받아 낮에는 백조로 밤에만 사람이 되는 열한명의 오빠들을 위해 맨손으로 쐐기풀 윗도리 열한 개를 지은 공주. 모두 완성될 때까지 말을 할 수 없는 공주는 마녀로 몰려 화형을 당할 위기에 처했다. 위험천만한 바로 그 순간, 윗도리가 완성되고 백조들이 그녀를 구하기 위해 날아오른다. 백조왕자들은 공주가 던져준 윗도리를 입고 사람의 모습을 되찾지만, 막내오빠는 한쪽 팔이 완성되지 않은 윗도리를 입는 바람에 한쪽 팔은 여전히 백조의 날개인 채로, 그렇게 영원히 백조 인간으로 살게 된다.

남자들의 마법을 푸는 데 무덤가에서 손에 피를 묻혀 가며 모은 쐐기풀과 침묵으로 지은 윗도리가 왜 있어야 하는가 하는 질문에 대해, 이 이야기는 대답할 필요가 없다. 이야기는 그저 추방과 외로움, 애정과 변신에 대한 이미지, 자신의 이야기를 입 밖에 낼 수 없어 거의 죽음 직전까지 갔던 여주인공의 이미지를 설득력 있게 전해 줄 뿐이다. (30)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어머니의 상태를, 그녀는 동화 속 저주를 받아들이듯 그렇게 받아들인다. 받아들일 수 밖에 없기에 그렇게 받아들인다. 그녀의 이야기는 이어진다.

어머니의 동화, 어머니의 이야기라고 생각하는 신데렐라 이야기, 신혼 첫날밤이 지나기 전 신부를 죽여 배신을 피하려는 술탄에게서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셰에라자드의 이야기, 프랑켄슈타인보다 더 극적인 메리 셸리와 울스턴크래프트 모녀의 인생 이야기, 그림 속에 작은 동굴을 하나 그리고는 그 안으로 걸어 들어가 그대로 사라져 버렸다는 당나라의 화가 우다오쯔의 이야기, 다른 세상으로 이어지는 옷장이 나오는 나니아 연대기’,

그녀는 말한다.

모든 이야기는 실제로는 하나의 이야기, 바로 변신 이야기의 조각들이다. 자신을 안으려는 아폴로를 피해 월계수로 변해 버린 다프네처럼 그 운명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이도 있고, 자신의 남은 생을 극저온 상태로 보존하려고 애쓰는 부자들처럼 격렬하게 저항하는 이도 있지만, 수용이냐 저항이냐를 선택할 수 있을 뿐, 변신 자체는 피할 수 없다. 위험으로부터 누군가를 구해 낼 수는 있지만, 변화나 죽음으로부터 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전투에서 살아남은 병사는 그 후엔 다른 사람, 다른 무언가, 다른 장소가 된다. 전쟁은 잠잠해지고, 기억은 희미해지고, 국가도 사라지고, 가장 근본적인 구조를 제외하고는 모두 썩어 간다. 한때 서로 전쟁을 벌이던, 육체들을 구성하는 원소들이 이제는 흙이 되고, 나무가 되고, 연인이 되고, 새가 된다. 모든 훈장은 낯선 이의 장난감이 된다. 대포를 녹여 만든 교회의 종이, 다시 녹아 대포가 되어 다른 전쟁에서 사용된다. (122)

어제의 저녁 하늘, 사랑의 밤, 산속에 흐르는 시냇물 소리, 내 정신에 불을 댕겼던 어떤 깨달음, , 조화로웠던 어느 날, 근사한 구름이 있었던 수천의 나날, 결국 사라져 버릴, 다시 볼 수 없을 그 순간들을 후손을 위해 유리병에 차곡차곡 담아둘 수 있으면 좋겠다. ... 하지만 역사가로서 나는 이 모든 것이 나타났다 사라진다는 사실이 쓸쓸하다. (126)

그녀의 이 긴 이야기에서 가장 인상적인 건 사라짐에 대한 것이다. 나타났다 사라지는 것, 무엇인가가 다른 그 무엇이 된다는 것, 그렇게 변하고 없어지고 사라져 간다는 건 너무 두려운 일이라 여겨지면서 동시에 아름답게 느껴졌다. 사라지기에, 사라질 것이기에 더 소중하다는 생각, 언젠가는 헤어질 것을 알기에 더 사랑할 수 있다는 생각, 아주 많이 늙어버릴 것이기에 지금 이 순간을 더 느낄 수 있다는 생각, 또는 그러할 것이라는 생각이 계속 머리를 맴돌았다.

감각을 잃어버린 나병 환자들의 이야기, 체 게바라의 전설적인 이야기 또한 아주 흥미로웠다. 그녀에 따르면, 무감각이 자아의 경계를 수축시키는 것이라면, 감정이입은 그 경계를 확장(161)하는 것이다. 감정이입을 통해 우리는 다른 사람이 된다는 것이 어떤 기분일지에 대해 배우게 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늘 슬픔을 먹고 산다. 그것이 아름다운 서정시와 대중가요의 본질이며, 슬픔과 상심이 그렇게 달콤한 이유는 그것이 우리 안에서 불러일으키는 감정, 즉 타인의 고통에 대한 감정이입과 혼자가 아니라는 작은 위안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173)

아슈바고샤의 불소행찬속 싯다르타의 이야기, 유한함, 덧없음, 불확실성, 고통, 변화의 가능성이 찾아와 삶을 그 전과 후로 나누어 버린, 변화를 강요하는 위기에 대한 이야기. 덴마크 작가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의 걸작 동화 눈의 여왕, 대상을 왜곡하는 거울 이야기. 얼어 죽은 남편과 아이들의 사체를 먹고 살아난 이누이트 여인 아타구타룩의 이야기, 프로이켄의 북극 모험. 블루스 음악가 찰리 머슬화이트가 알콜 중독으로 죽음의 위기에 몰렸다가 아이가 우물에 빠진 사고 소식을 듣고 술을 끊은 이야기, 아이를 성공적으로 구해낸 소방대원이 자살한 이야기. 그 모든 이야기는 새로운 이야기다. 다른 세계에서 온, 다른 이야기.

무엇이든 말로 바꾸어 놓았을 때 그것은 온전한 것이 되었다.”라고 버지니아 울프는 적었다. 그녀는 이어서 이렇게 적고 있다. “여기서 온전함이란 그것이 나를 다치게 할 힘을 잃었음을 의미한다. 갈라진 조각을 하나로 묶어 내는 일이 커다란 즐거움을 주는 이유는, 아마 그렇게 함으로써 내가 고통에서 벗어나기 때문일 것이다. 이것이 나의 가장 큰 즐거움이다. 글을 쓰다가 무엇이 무엇에 속하는지를 발견할 때 느끼는 희열도 그렇다. 여기서 나는 내가 철학이라고 부르는 어떤 것에 도달한다. 어찌되었든, 원단의 뒷면에는 하나의 패턴이 있게 마련이라고 나는 늘 생각해 왔다. 우리는, 그러니까 모든 인간은 그 패턴과 관련이 있다는 생각, 세계 전체가 하나의 예술 작품이며 우리는 그 예술 작품의 일부라는 생각 말이다.” (350)

아직 3월밖에 되지 않았고, 사실 올해에는 그렇게 많은 책을 읽지 않았지만, 어쩌면 그랬기 때문에 더더욱 이 책을 올해의 책으로 꼽고 싶다. 책 소개 그대로다. 읽는다는 것, 쓴다는 것, 변해가는 것에 맞선다는 것, 그리고 받아들인다는 것, 질투하는 어머니로 산다는 것, 어머니를 돌보는 딸로 산다는 것, 그리고 함께한다는 것에 대해 이 책만큼 진솔하게, 담담하게 말할 수 있는 책이 있을까 싶다. 내게는 그렇다. 그녀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따라가며, 그녀 자신의 이야기를 따라가며, 그 실타래를 풀어가며 내내 생각했다. 내 이야기는 무엇일까. 내 인생의 유리병 속, 절인 살구는 어떤 맛을 낼까. 어떤 모양을 하고 있을까, 어떤 냄새를 품고 있을까,라고 말이다.

그녀가 다시 묻는다.

당신의 이야기는 무엇인가?’

    

경계심과 의무감의 목소리, 미지의 것에 대한 두려움이 내는, 세상은 위험하고 언제나 안전이 최우선이라고 말하는 목소리, 즐거움과 위험을 종종 혼동하는 목소리. 내가 처음 도시로 이사를 하자 그 도시에서 강간, 살해당한 젊은 여성들의 기사를 오려서 보내 주었던 어머니의 목소리, 본인에게 평생 한 번도 일어나지 않은 막연한 시련과 손해를 늘 생각하던 어머니, 아무리 하찮은 것이라 해도 실수 자체를 두려워했던 어머니의 목소리. 그 목소리는 이렇게 말했다. “아직 설거지를 마치지도 못했는데 어떻게 천국으로 가니? 지전분한 접시가 부딪히는 소리가 천국의 소리보다 더 크게 들리면 어떡하니? (57쪽)

어린 시절의 나는 쉬지 않고 책을 읽으며 말은 거의 하지 않았다. 의사소통의 가치를 회의했고 무시당하거나 벌을 받을까 봐, 무언가를 들킬까 봐 늘 두려워했다. 이해를 받고, 용기를 얻고, 다른 사람에게 나를 알리고, 확신을 얻어야겠다는 생각은 좀처럼 들지 않았고, 내가 다른 사람에게 줄 만한 걸 가지고 있지도 않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책을 읽고, 많은 양의 글을 쓸어 담았다. 어린이용 이야기책을 읽고, 나중엔 소설을, 하루에 한 권씩 일주일에 일곱 권을 읽었다. 게걸스럽게 책을 파고들고, 말을 줄이고, 도서관에서 빌친 책 꾸러미를 집으로 날랐다. (100쪽)

우리는 습기와 건조함 자체가 신앙심을 형성하는 힘일지도 모르겠다는 이야기를 했다. 습도가 높은 지역 대부분에서는 윤회, 즉 삶과 세상의 끊임없는 재생에 대한 믿음이 있다. 이는 물론 끊임없는 죽음이기도 하다. 따뜻하고 습한 지역에서는 모든 것이 분해되고 다시 태어나며, 다시 세워져야만 한다. ... 건조한 세계에서는 변하지 않는 영속성이나 영원에대해 적어도 환상은 가질 수 있다. 사체를 미라로 만드는 것도 가능하고, 건조시켜 보관할 수도 있다. (136쪽)

우리가 보기에 다리에는 아무 문제가 없어 보였지만 걷기에 필요한 기술과 확신, 그리고 걸으려는 의지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나는 어머니가 그렇게 천천히 알려지지 않는 존재로, 알 수 없는 존재로 변해가는 과정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그리고 기술이나 사실들을 잃어버렸음에도 자아를 구성하는 것은 무엇인지, 기능을 잃어버린 자아의 가치란 무엇인지 생각하면서 많은 것을 배웠다. (33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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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철나무꾼 2016-03-18 14: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이책도 좋아보여요.
보관함에 담습니다. 제 장바구니를 늘 부풀려 주시는 님, 고마워해야 할까요, 미워해야 할까요?^^

단발머리 2016-03-18 14:34   좋아요 1 | URL
ㅎㅎㅎ 저는 도서관에서 빌려 읽었는데 너무 좋아 제것도 사고 친구에게도 선물하려고요.

사랑해주세요~~~ ㅎㅎ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합니다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 지음, 김명남 옮김 / 창비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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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의 책보다 1센티미터 정도 작은 크기, 100페이지가 채 안 되는 짧은 분량, 201212월 테드×유스턴 TED×Euston 강연을 다듬어 출간된 이 책은 페미니즘이라는 무거운 주제, 10초 안에 사람들을 모세의 홍해처럼 둘로 가를 수 있는 이 민감한 주제를 다루는 책이라는 선입견을 가볍게 밀쳐버린다.

보세요, 저는 이렇게 얇은 책이에요. 보세요, 저는 이렇게 가벼운 책이에요.

그 다음으로는 표지. 내가 워낙 하늘색(조금 더 정확한 표현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부디 다른 사람도 그러하기를. 나는 이 색을 하늘색이라 부른다)과 분홍색을 좋아하기도 하지만, 남성과 여성, 서로 다른 성에 속해 살고 있으면서도, 함께 살아가기를 원하는 두 개의 성을 영문자 WM으로 디자인화한 게 마음에 든다. 보통의 경우와 달리, 여성을 상징하는 W가 남성을 상징하는 M앞에 배치되어 있다는 것 또한 눈길이 간다. 특별한 의미가 없는데 나 혼자만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일반적으로 페미니즘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 좀 더 구체적으로는 페미니스트와 이야기하는 것에 대해 사람들은 부정적으로 생각한다. 편견이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다. 사회적으로 페미니스트를 불편해 하고 있음을 느끼는 여자들의 경우, 벨 훅스의 표현대로라면, “저는 페미니스트는 아니지만..“이라는 말로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자신이 페미니스트라고 밝히는 경우, 더 큰 오해와 반발를 불러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고 밝히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페미니스트: 모든 성별이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으로 평등하다고 믿는 사람이라는 사전적 정의(51)를 강조해도 마찬가지다.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고 밝히는 순간, 고백하는 순간 그 사람의 언변은 곡해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렇다면, 속여야할까, 말하지 말아야할까.

이런 난처한 상황에 대해 저자는 이런 방법을 사용한다. 재치 넘친다.

아무튼 페미니즘이 비아프리카적이라고 하니까, 나는 이제 스스로를 행복한 아프리카 페미니스트라고 부르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친한 친구 하나가 나더러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로 일컫는 것은 남자를 미워한다는 뜻이라고 말해주더군요. 그래서 나는 이제 스스로를 남자를 미워하지 않는 행복한 아프리카 페미니스트라고 부르기로 했습니다. 그러다 더 나중에는 남자를 미워하지 않으며 남자가 아니라 자기자신을 위해서 립글로스를 바르고 하이힐을 즐겨 신는 행복한 아프리카 페미니스트가 되었습니다. (14)

이 방법은 비교적 응용이 쉬워 일상생활에서 바로 적용가능한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안녕하세요, 단발머리입니다. , 저는 페미니즘에 찬성합니다. 페미니즘의 모든 이론이나 해석에 찬성하는 건 아니지만, 바탕이 되는 제일 기본적인 생각, 모든 성별이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으로 평등하다고, 혹은 평등해야 한다고 믿는 사람입니다. , 그럼요. 저는 페미니스트예요. 저는 남자를 미워하지 않고 남자가 아니라 저 자신을 위해 립스틱을 바르고 하이힐을 즐겨 신는 행복한 아시안 페미니스트예요.

또 어떤 남자들은 이렇게 반응합니다. “좋아요, 이건 흥미로운 문제입니다. 하지만 나는 마음에 들지 않아요. 나는 젠더를 의식조차 하지 않는다고요.”

어쩌면 정말 의식하지 않을지도 모르지요.

그리고 바로 그점이 문제의 일부입니다. 많은 남자들이 젠더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생각하거나 의식하지 않는다는 점 말입니다. (45)

나는 뭐든지 경험해봐야 안다고 믿지 않는다. 결혼하지 않아도 결혼의 폐해에 대해 알 수 있고, 아이를 낳아 보지 않았다해서 아이의 빛나는 순간순간을 알아채지 못할거라 생각지 않는다. 결혼했어도 외로울 수 있고, 제 배로 낳은 아이라도 인격이 없는 것처럼 머리에 꿀밤을 때리며 수시로 무시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뭐든지 경험해봐야 안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똑같은 근거로 남자라고 해서, 여자들의 사정을, 여자들의 입장을, 여자들의 상황을 끝까지 모를 거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물론 가까이에서, 자신의 어머니가, 자신의 아내가, 자신의 누나가, 자신의 여동생이, 자신의 딸이 처한 환경, 주어진 환경에서 어쩔 수 없이 제한된 선택을 하게 되는 걸 직접 보게된다면, 남자들도 젠더에 대해 의식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건강한 남자, 건전한 남자조차도 그런 젠더’, ‘젠더의 다름으로 인한 불합리와 모순을 스스로발견하는 것이 어렵다는 점이다.

<옮긴이의 말>을 보니, ‘스웨덴 여성 로비라는 단체가 출판사, 스웨덴유엔연맹, 스웨덴노동조합연맹등의 후원으로 이 책을 스웨덴의 모든 16세 학생들에게 선물했다고 한다. ’젠더 주류화 gender mainstreaming가 정부의 핵심 의제이고, 현재 장관 스물네명 중 열두명이 여성이며, 남녀 불문 480일의 육아휴직이 법으로 명시되어 있는 나라에서 말이다.(90)

오늘 아침에도 한국인 읽기 능력 최하위? 독서의 중요성이라는 기사가 떴던데, 어른들이야 책 한권 읽는다고 생각이 크게 바뀔리 만무하지만, 전국의 중학교 3학년들에게 이 책 한 권씩.

만원의 행복. 기대하는 건 무리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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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6-03-04 20: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만 느끼는건지 모르겠지만, 도서정가제 시행하고나서부터 독서 안하는 국민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고 보도하는 내용이 많아진 것 같아요. 그리고 결론은 항상 빌 게이츠나 스티브 잡스의 예를 들면서 독서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옛날에는 이런 내용의 글을 읽으면 정신 차리고 책을 읽기 시작하는 사람들이 있었겠죠. 그런데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책보다 훨씬 재미있는 게 더 많아졌으니까요. 무엇보다도 책을 안 읽는 이유는 도서정가제 때문입니다. ^^;;

단발머리 2016-03-07 08:29   좋아요 0 | URL
사실, 저는 도서정가제 이전보다 지금 책을 더 많이 사는 것 같거든요.
저는 책을 많이 사는 경우가 아니기 때문에 도서정가제 영향을 덜 받는다고 생각하는데, cyrus님 말씀 듣고 보니 그런것 같기도 해요. 도서정가제가 우리의 적인가요? ㅎㅎ
 
사피엔스 - 유인원에서 사이보그까지, 인간 역사의 대담하고 위대한 질문 인류 3부작 시리즈
유발 하라리 지음, 조현욱 옮김, 이태수 감수 / 김영사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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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시작하게 된 건 순전히 이 작은 책 때문이다.

 

알라딘 책박스 속 샘플북을 모두 읽는 건 아닌데, 이 책은 빨간색이 눈길을 끌었던가, 아니면 사피엔스라는 글자가 눈에 띄었던가, 그도 저도 아니면 빨간색사피엔스때문인가, 표지를 보고 끌려서 읽기 시작했고, 샘플북을 다 읽은 후로는 도서관에서 대출을 해서 이어 읽었다.

제일 먼저 인지혁명.

내가 인간 진화를 전제로 한 저자의 주장을 사실로서 받아들이느냐 받아들이지 않느냐와 상관없이, 저자는 사람들이 흔히 범하는 오류의 하나로 인간종을 모두 단일 계보라 이해하는 거라고 주장한다. 예컨대, 에르가스터-에렉투스-네안데르탈인-호모 사피엔스의 직선 모델로 진화가 진행되었다고 사람들이 오해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교과서에 친절하게 그림까지 곁들인 설명으로 이런 직선 모델로 배운 것 같은데 말이다.) 유럽과 서부아시아의 호모 네안데르탈렌시스’(네안데르 골짜기에서 온 사람), 아시아의 좀 더 동쪽 지역에 살던 호모 에렉투스’(똑바로 선 사람), 인도네시아 자밤 섬의 호모 솔로엔시스’(솔로 계곡에서 온 사람), 인도네시아의 플로레스섬의 작은 사람들 호모 플로레시엔시스’(플로레스인), 시베리아 데니소바 동굴 근처에 살던 호모 데니소바’, ‘호모 루돌펜시스’(루돌프 호수에서 온 사람), ‘호모 에르가스터’(일하는 사람), 그리고 우리 종 호모 사피엔스’(슬기로운 사람)가 공존했다고 것이다.

여기에서 이상한 점은 옛날에 여러 종이 살았다는 사실이 아니라 오히려 지금 딱 한 종만 있다는 사실이다. (26)

동시에 비슷한 지역에서 같이 살았던 적어도 6개의 인간종 가운데 우리 종 호모 사피엔스만 현재까지 살아남은 이유는 무엇일까? 튼튼하고 머리가 좋으며 추위에 잘 견뎠던 네안데르탈인은 어째서 우리 종의 맹공격을 버텨내지 못했을까? 저자가 추측하는 호모 사피엔스의 세계 정복의 도구는 이런 논쟁을 가능하게 하는 것, 즉 언어이다.(41)

인지혁명이란 약 7만 년 전부터 3만년 전 사이에 출현한 새로운 사고방식과 의사소통 방식을 말한다. ... 이를 통해 우연히 일어난 유전자 돌연변이가 사피엔스의 뇌의 배선 일부를 바꿨다는 것이다. 그 덕분에 전에 없던 방식으로 생각할 수 있게 되었으며 완전히 새로운 유형의 언어를 사용해서 의사소통을 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44)

놀라울 정도로 유연한 인간의 언어가 세상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는 수단으로 사용되었을 때, 공통의 관심주제에 대한 의견 교환으로 대규모 협력이 가능해졌을 때, 허구를 통한 집단적 상상이 이루어졌을 때, 사피엔스는 수없이 많은 이방인들과 매우 유연하게 협력할 수 있었으며, 수십만 명이 거주하는 도시, 수억 명을 지배하는 제국을 건설할 수 있었던 것이다. 또한 원시인류의 행동 패턴이 수십만 년간 고정되어 있던 데 비해 사피엔스는 불과 10년 내지 20년 만에도 사회구조, 인간관계의 속성, 경제활동을 비롯한 수많은 행태들을 바꿀 수 있었던 것 역시 사피엔스의 인지혁명의 결과이자 사피엔스만의 최대 강점이다.(62)

, 우리 인간종과 일대일, 십대십으로 보면 감각, 정서, 가족 간 유대 같은 요소는 매우 당황스러울 정도로 침팬지와 비슷하나 개체수 150명이라는 임계치를 초과할 때부터, 그리고 그 숫자가 1~ 2천 명이 되면, 그 차이가 엄청나게 벌어진다는 것이다. 우리와 침팬지의 진정한 차이는 수많은 개인과 가족과 집단을 결속하는 가공의 접착제에 있다는 것이다.(67)

진화를 전제로 인간이 유인원을 넘어설 수 있었던 이유, 그 중에서도 사피엔스가 다른 인간종을 압도하고 지구별의 지배자가 될 수 있었던 건 유연한 언어의 사용과 허구의 세계를 인지하는 상상력 때문이라고 보면 되겠다.

다음으로 넘어가기 전에 사촌 얼굴 전격 공개한다. 자세히 보면 진짜 사촌 같은데, 물론 우리 사촌오빠들은 아니다. 특히 가운데 동아시아 지역에 살았던 호모 에렉투스를 자세히 살펴보기 바란다. 언제 어디선가 많이 본 듯한 얼굴이다.

 

 

두 번째는 농업혁명.

농업혁명은 안락한 새 시대를 열지 못했다. 그러기는커녕, 농부들은 대체로 수렵채집인들보다 더욱 힘들고 불만스럽게 살았다. 수렵채집인들은 그보다 더 활기차고 다양한 방식으로 시간을 보냈고 기아와 질병의 위험이 적었다. 농업혁명 덕분에 인류가 사용할 수 잇는 식량의 총량이 확대된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여분의 식량이 곧 더 나은 식사나 더 많은 여유시간을 의미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인구폭발과 방자한 엘리트를 낳았다. 평균적인 농부는 평균적인 수렵채집인보다 더 열심히 일했으며 그 대가로 더 열악한 식사를 했다. 농업혁명은 역사상 최대의 사기였다. (124)

인간이 밀을 길들인 게 아니라, 밀이 인간을 길들였다는 문장으로 요약될 수 있는 농업혁명은 더욱 많은 사람들을 더욱 열악한 환경에서 살게 했다.(129) 한 곳에 정착하게 된 인간은 작물화, 가축화를 통해 자신의 먹거리를 통제할 수 있다고 믿었겠지만, 실제로 정착한 인간은, 대다수의 농민들은 장시간 노동과 미래에 대한 걱정에 내몰리게 된다. 영구 정착촌에 살면서 식량공급이 늘어나고 인구 또한 폭발적으로 늘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농경사회에서 최소한 어린이 세 명 중 한 명이 20세가 되기 전에 사망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계속 이전보다 아이를 더 많이 낳았기 때문에 출생률 증가가 사망률 증가를 앞질렀다. 가족을 먹이기 위해 더 열심히 일하고, 늘어난 수입보다 더 빠른 속도로 아이들이 늘어나고, 더 늘어난 아이들을 위해 더 많이, 더 열심히 일했다. 이런 방식의 삶이 계속해서 이어졌다. 사람들은 자신의 결정이 가져올 결과를 전체적으로 파악하지 못 했다. “일을 더 열심히 하면 삶이 더 나아지겠지.‘ 계획은 그랬다. (133)

이렇게 해서 축적된 잉여 생산물은 지배자와 엘리트의 출현을 가능하게 했다. 사회 피라미드 꼭대기에 서 있는 자들은 그들 스스로 상상의 질서를 신봉했는데, 기독교, 민주주의, 자본주의 같은 상상의 질서에 그들 먼저 투신함으로써 자신의 지배체제를 공고히 할 뿐만 아니라, 이러한 가공의 믿음이 피지배층에 대한 억압을 강화했다.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의 삶을 조직화하는 질서가 자신들의 상상 속에서만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하도록 만드는 주된 요인은 다음과 같은데, 1) 상상의 질서는 물질세계에 단단히 뿌리내리고 있으며 2) 상상의 질서는 우리 욕망의 형태를 결정하며 3) 상상의 질서는 상호 주관적이라는 믿음이다. 지금 지구를 사는 사람들 수억 명이 공유하는 달러화, 인권, 미국에 대한 개념은 모두 상상 속에만 존재한다. 하지만 우리 개인은 이러한 상호 주관적 존재 앞에 무력할 뿐이다. 이를 변화시키려면 수십억 명의 의식을 동시에 변화시켜야 하며, 그러한 대규모 변화가 가능하려면 정당이나 이념운동, 혹은 종교적 광신집단 같은 복잡한 기구의 도움이 있어야 하며, 그런 일은 오로지 그들이 뭔가 공통의 신화를 공유하고 있을 때 일어난다.(177)

상상의 질서를 가능케 하는 종교와 계급, 그리고 인종에 따른 구별은 전 세계적으로 나타난 현상이다. 저자는 알려진 인간 사회에서 최고로 중요한 위계질서에 대해 이야기 하는데, 그게 바로 성별이다. 사람들은 어느 곳에서나 스스로를 남자와 여자로 구분했고 그리고 거의 모든 곳에서 남자가 더 좋은 몫을 차지했다. 적어도 농업혁명 이후로는 그랬는데 농업혁명 이후 대부분의 인간사회가 부계사회라는 것이 그 증거 중의 하나이다. (212)

오랜 시간 동안 여성은 남성의 소유물로 인식되어, 강간 피해 또한 피해자의 아버지나 남자 형제에 대한 재산권 침탈로 여겨졌다. 어느 남자에게도 속하지 않은 여성을 강간하는 것은 범죄로 취급되지 않았고, 남편이 아내를 강간했다는 생각 자체를 모순으로 여겼다. 남편이 된다는 것은 아내의 성을 완전히 마음으로 할 권리가 있다는 뜻으로 이해했기 때문이다. 남성 우위의 사회가 전 세계적으로 일반적인 이유는 무엇일까? 남성과 여성과의 생물학적 차이를 문화적, 정치적 차이로까지 발전시킨 생각은 무엇일까? 저자는 남성우위가 가능했던 이유로 꼽히는 근력과 공격성에 대해 논하면서 그것이 진짜 이유가 아닌 이유도 설명한다. 현재로서는 명확한 답을 찾지 못한 이 어려운 과제에 대해 협력 덕분에 성공한 종(사피엔스)에서 협력성이 더 뛰어난 개체(여자)들이 서로 협력한다면 협력성이 더 떨어지는 개체(남성)들을 통제하는 것 또한 가능하지 않겠느냐는 질문을 던진다. 역시 여자의 적은 여자다,로 마무리 되어야 하나.

 

3<인류의 통합>에서는 인간이 창조한 신뢰 시스템 중 유일하게 거의 모든 문화적 간극을 메울 수 있으며, 종교나 사회적 성별, 인종, 연령, 성적 지향을 근거로 사람을 차별하지 않는 유일한 신뢰 시스템 화페, ‘에 대해 이야기하고, 전 세계적으로 여러 지역, 여러 민족을 지배했던 제국의 자취가 현재 우리의 삶에까지 미치는 영향에 대해 살펴본다. 폭넓은 종교적 관용을 보이는 다신교도들과는 달리 기독교, 유대교의 일신교도들이 얼마나 과격한 방식으로 자신의 신앙을 강요했는지에 대해서도 살펴본다. 일신교인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와 이신교의 마니교, 조로아스터교에 대한 설명이 풍부하고, 불교의 기원에 대한 해석 역시 흥미롭다.

 

4<과학혁명>에서 제일 주된 질문은 어째서 유럽인가?로 정하고 싶다. 지난 5백 년간 경이적으로, 유례없이 커져버린 인간의 힘은 인구면에서, 생산한 재화와 용역의 가치면에서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인구가 열네 배로 늘어났고, 생산은 240, 에너지 소비는 115배 늘어났다는 것이며, 이 대부분은 과학의 발전으로 이룩한 것이다. 이토록 놀라운 과학의 발전 중에 저자가 가장 결정적 순간으로 지목한 때는 1945716일 오전 52945초이다. 정확히 그 때, 미국 과학자들은 앨러머고도 사막에 첫 원자폭탄을 터뜨렸으며, 이 일로 인해 인간은 놀라운 문명을 이룩할 뿐만 아니라 스스로를 파멸시킬 수도 있음을 입증했다.(353)

중국과 이슬람은 실제적으로 활용 가능한 과학 기술과 정보를 이미 가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왜 유럽에게 뒤처지고 말았을까. 1775년까지도 경제적 난쟁이에 불과했던 유럽이 어떻게 세계 권력의 중심이 될 수 있었을까. 유라시아 변방의 그들이 어떻게 전 세계를 정복하고 1900년에는 세계 경제와 대부분의 땅을 확고히 지배하며 세계 질서와 세계 문화의 지배자가 될 수 있었을까.

보통은 그 공의 큰 부분을 유럽 과학자들에게 돌린다. 물론 1850년 이래 유럽의 세계 지배가 군사-산업-과학 복합체와 기술의 묘기에 크게 의존했다는 점 역시 의문의 여지가 없다고 한다. ... 민간기술의 중요성도 군사기술 못지않았다. 통조림은 병사들을 먹여 살렸고, 철도와 증기선은 군대와 장비를 수송했다. .... 병참 부문에서의 이 같은 진보는 유럽인의 아프리카 정복에 기관총보다 더욱 중요한 역할을 했다. (397)

그럼에도 의문은 계속되는데, 어째서 영국의 약진에 프랑스, 독일, 미국은 재빨리 그 뒤를 따라갔는데, 중국, 페르시아, 이집트, 오토만 제국은 실패했느냐는 것이다. 근대 초기 유럽은 어떤 잠재력을 개발했기에 근대 후반 세계를 지배할 수 있었을까. 이 질문에 대한 서로 보완적인 답으로 저자는 현대 과학자본주의를 꼽는다.(399)

유럽인은 기술적인 우위를 누리기 전부터도 과학적이고 자본주의적인 방식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습관이 있었다. 그러다가 기술의 노다지가 쏟아지기 시작하자, 유럽인들은 다른 누구보다 그것을 잘 부릴 수 있었다. (400)

유럽 제국주의를 다른 모든 제국주의 프로젝트와 구별하는 지점도 바로 여기인데, 유럽인들은 새 영토 뿐 아니라 새 지식을 획득한다는 희망을 가지고 먼 곳으로의 항해를 두려워하지 않았던 것이다. ‘탐험하고 정복한다는 근대의 사고 방식, 비어있는 지도를 채우겠다는 종교에 가까운 열망, 아메리카 대륙의 발견, 방대한 새 영토를 통제하기 위한 정보의 수집의 필요성들이 더 많은 유럽인을 아시아로, 북아메리카로, 남아메리카로 이끌었다. 1405년부터 1433년까지 일곱 차례에 걸쳐 대함대를 이끌고 중국에서 인도양의 먼 곳까지 항해한 정화 제독의 대항해를 통해서도 확인되듯, 유럽은 뛰어난 기술적 우위를 누리지 못했다. 유럽인들이 이례적인 점은 탐험과 정복의 야망이 어느 누구와도 비견할 수 없이 탐욕스러웠다는 데 있다.

탐욕스러운 유럽인들의 도착은 남미의 아즈텍인과 잉카인에게는 외계인의 침공과 같았을 것이다.

콜럼버스의 아메리카 첫 항해(1492)와 코르테스의 멕시코 상륙(1519) 사이 시기에 스페인인들은 카리브 제도의 섬 대부분을 정복해 일련의 식민지를 건설했다. 정복당한 원주민들에게 식민지는 지상의 지옥이었다. ... 열악한 작업 환경과 정복자의 범선에 무임승차해온 질병 바이러스 탓에 카리브해의 원주민 거의 모두가 20년 만에 사라졌다. (412)

 

이런 심각한 인종청소가 아즈텍 제국의 바로 코앞에서 일어났지만 코르테스가 제국의 동부 연안에 상륙했을 때 아즈텍인들은 그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었다. 이들의 비극은 외부세계와의 첫 조우가 하필이면 탐욕스러운 유럽인이었다는 데 있다. 그들은 스페인들을 몰랐다. 다른 생김, 다른 냄새, 거대한 배, 그들이 데려온 커다랗고 무시무시한 동물(), 빛나는 긴 칼과 뚫을 수 없는 갑옷. 그들을 신이라고 믿는 아즈텍인도 있었고, 악마나 죽은 자의 유령, 강력한 마법사라고 주장한 사람들도 있었다. 아즈텍인들이 머뭇머뭇하는 사이, 처음 도착했을 때 500명의 군인으로는 아무 일도 할 수 없었던 코르테스는 그동안 얻은 지식을 바탕으로 아즈텍인들의 내분을 촉발한다. 그 다음부터는 우리 모두 아는 바다.

코르테스가 베라크루스항에 상륙한 지 1세기 만에, 아메리카의 원주민 수는 90퍼센트 가량 줄었다. 주로 침략자들과 함께 유입된 생소한 질병 탓이었다.(417)

코르테스를 모방한 피사로의 잉카 침략도 이와 다르지 않다. 만약 잉카 제국의 피지배 민족들이 멕시코 주민들의 운명을 알았더라면, 침략자들과 함께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알지 못했다.

 

자본주의 교리에서 가장 중요한 문장이라면, 이 문장을 꼽고 싶다.

우리는 이미 모두 스미스의 주장을 당연히 여기는 자본주의 세상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매일같이 뉴스에서 이 주제의 변주를 듣는다. 하지만 스미스의 주장 개인적인 수익을 늘리려는 이기적 인간의 욕구는 공동체 부의 기반이다 은 인류 역사에서 가장 혁명적인 아이디어에 속한다. (440)

지금 현재의 우리를, 가장 강력하게 지배하는 도구가 이라는 데는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것이다. 다만 이윤만을 추구하는 자본이 정부의 제재와 감시를 벗어났을 때, 순수하게 이익만을 위해 봉사할 때,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날뛰는 자본주의의 행태에 대해서는 분명히 알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역사가 가르쳐준 그대로다.

대서양 노예무역은 아프리카인에 대한 인종적 증오에서 생긴 것이 아니다. 주식을 구매한 개인이나 그것을 판매한 중개인, 노예무역 회사의 경영자는 아프리카인에 대해 거의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 인도네시아에서 네덜란드 동인도회사가 벌인 군사작전에 돈을 댄 것은 자기 자녀를 사랑하고, 자선사업에 돈을 내고, 좋은 음악과 미술을 즐기는 네덜란드의 정직한 시민들이었다. 하지만 이들은 자바, 수마트라, 말라카 주민들이 겪는 고통은 중히 여기지 않았다. 지구의 한켠에서 현대 경제가 성장하는 데는 수없이 많은 범죄와 악행이 뒤따랐다. (469)

과학과 기술의 발전으로 고통받는 것은 흑인들과 제3세계 주민들만이 아니었다. 2차 농업혁명으로 인해 동식물의 기계적 재배, 사육이 일상화된다. 태어나자마자 자동 절단기 속으로 떨어지거나 그냥 쓰레기통에 들어가 질식사하는 수평아리, 가로 25cm, 세로 22cm의 면적위에 제대로 서 있지도 못하고 알을 낳는 산란용 암탉, 유인원을 제외하고 가장 지능과 탐구심이 뛰어난 돼지는 몸을 돌릴 수조차 없는 좁은 우리에서 새끼를 낳고 또 새끼를 낳는다. 젖소는 자신의 대소변 위에서 서고 앉고 잠을 자며 평생 우유를 생산해낸다. 약품을 주입받고 우유를 짜내는 젖통 이상의 취급을 받지 못하는 젖소들. 동물의 주관적 욕구를 무시한 산업화된 농업으로 인해 인간은 더 여유롭고 더 풍족한 삶을 누리는 것 같지만, 현대 기업농이 역사상 가장 큰 범죄를 저지르고 있음을 부인할 수는 없을 것이다.

지구 전체의 행복을 평가할 때 오로지 상류층이나 유럽인이나 남자만을 대상으로 하는 것은 잘못이다. 인류의 행복만을 고려하는 것도 마찬가지로 잘못일 것이다. (535)

신선한 우유를 좋아하고, 까페라테를 틈날 때마다 마셔대고, 계란후라이를 즐겨 먹고, 소등심을 좋아하는 나도 그에 일조하는 있는 것이라 생각하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실천이라는 건 하나다. 덜 먹는 것. 지금보다 조금 덜 먹는 것. 덜 사는 것. 지금보다 조금 덜 사는 것이다.

 

이제 진짜 마지막이다. 사피엔스의 종말.

우리가 아는 한, 순수한 과학적 관점에서 볼 때, 인간의 삶은 절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인류는 목적이나 의도 같은 것 없이 진행되는 눈먼 진화과정의 산물이다. 우리의 행동은 뭔가 신성한 우주적 계획의 일부가 아니다. ... 그러므로 사람들이 자신의 삶에 부여하는 가치는 그것이 무엇이든 망상에 지나지 않는다.(552)

인간의 삶이 절대적으로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말, 자신의 삶에 가치를 부여하는 것은 망상에 지나지 않는다는 저자의 말에,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이 두꺼운 책의 결말이 이러하리라고 예상치 못한 것은 아니지만, 그의 단오한 어조에 조금 놀랍기는 하다. 절대자, 인간에 대한 믿음, 삶에 대한 의미를 찾는 것 자체가 망상에 빠진 행동이라면, 만약 그렇다면 그 다음은 어쩌면 당연하다. 인간은 영원을 살려고 할 것이다. 사피엔스는 사피엔스의 한계를 넘어서려 할 것이고, 그 새로운 종은 사피엔스가 아닌 다른 이름으로 불리우게 될 것이다.

아직은 오지 않은 미래를 상징하던 2000년은 이미 한참 전에 지나왔다. 그 모든 것이 가능하리라 믿어졌던 2030년도 이제 14년밖에 남지 않았다. 유전정보를 조작해 이 세상에 없었던 새로운 생명체를 만들어내는 생명공학, 인간과 기계의 결합을 가능케 하는 사이보그 공학, 무생물적 존재(실리콘 의식)의 진화가 바로 우리 눈 앞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우리의 의식이 작동하는 방식과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작동하는 의식을 가진 존재는 인간인가? 인간이 아닌가? 인간의 의식과 정체성에 대한 너무나 근본적인 이런 질문들은 곧 인간적이라는 용어에 대한 새로운 정의를 요청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사피엔스의 마지막 세대로서 마지막으로 우리에게 남은 하나의 질문이라면, ‘우리는 무엇이 되고 싶은가?’하는 것이다.(585)

이제 사피엔스는 무엇이 되려 하는가?

우리는 무엇이 되려 하는가?

우리는 무엇이 되고 싶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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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개 2016-02-22 13: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엄지 척!(^o^)/

단발머리 2016-02-22 13:15   좋아요 1 | URL
저는 아무개님의 엄지척!!!을 가차없이 받겠어요. 너무 두꺼웠어요....
재미있었으니까 그걸로 봐주는겁니다ㅎㅎ

2016-02-22 13: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도 좋다. 지도 있는 책은 무조건 무조건이야~~
안 읽고 읽은 척이 가능하겠어요.
고마워요 님 ㅎㅎ

단발머리 2016-02-22 13:42   좋아요 0 | URL
네~~ 다른 지도 몇 개 더 있었는데, 쑥님이 지도 좋아하신다면 더 넣을걸 그랬어요.
쑥님의 안 읽고 읽은 척에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ㅎㅎ

다락방 2016-02-22 13: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도전의 욕망이 조금은 생기지만 다 읽어낼 능력이 안될 것 같아 망설여지네요. 이런 책을 다 읽어내시다니, 엄지척 받으실만 합니다. 꺅 >.<

단발머리 2016-02-22 13:41   좋아요 0 | URL
다락방님의 엄지척 받으실만하다,에 사기충천해서... 은근슬쩍...

총 636쪽입니다.^^
근데 어렵지는 않아요. 실례 하나하나가 다 재미있어요. 두꺼울 뿐입니다.ㅎㅎ

2016-02-22 13: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호모 솔로엔시스. 맘에 들어요. (솔로 계곡에서 온 사람.이런 시적표현이라니..)
현재의 가설들을 뒤집는 가설들은 언제가 사람의 마음을 설레게 하네요.
이것 읽는 것도 고생스러운데, 두꺼운 책 읽느라 애쓰셨어요~

단발머리 2016-02-22 13:46   좋아요 1 | URL
네, 감사합니다.
아주 재미있어서요. 중간에 한 번 위기를 빼고는 빨리 읽은 것 같아요.
호모 솔로엔시스, 같은 시적표현에 신경을 못 썼어요.
쑥님 말씀 듣고 보니 정말 멋진 표현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저자가 이런 말을 하더라구요.
우리는 뻔뻔스럽게도, 우리 종 스스로에게 `호모 사피엔스`(슬기로운 사람)라는 이름을 붙였다.

오만한 종이예요, 진짜... ㅎㅎ

비로그인 2016-02-22 14: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니까 우리의 조상은 호모 사피엔스라는 것, 우리 조상들의 이야기라는 것이죠. *^

단발머리 2016-02-22 21:51   좋아요 0 | URL
저는 우리의 조상이 호모 사피엔스라는 것에는 동의하는데,
그 이상 어디까지가 우리의 조상이냐는 데에는 저자와 의견이 좀 달라서요. ㅎㅎㅎ

책읽는나무 2016-02-22 14: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집에도 샘플북이 있어요^^
저는 던져두었는데 단발머리님의 페이퍼에서 제목이 눈에 익다?싶었더니 제게도 샘플북이 그제서야 눈에 들어오더라구요!
음~~~
장장 600페이지가 넘는다구요??
하지만 별은 다섯 개라구요??
음~~~~~~

단발머리 2016-02-22 21:55   좋아요 0 | URL
네, 별은 다섯 개예요.ㅎㅎ

이 책의 내용을 다 기억하려고 하거나 아는 것을 확인하려 하면 무척 힘들고 어려웠을 수도 있는데요.
저는 옛날 이야기 대하듯 슉슉 넘기면서 읽어서 그런지 많은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어요.

흥미로운 실례가 아주 많아요.
스페인들 주연의 중남미 아메리카 잔혹사라던가, 현대 물질 문명이 얼마나 폭발적으로 변화됐는가에 대한 설명들은 아주 일품이예요. 음~~~~

수연 2016-02-22 16: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켁_ 밖이라서 이따가 모니터로 읽어야겠어요_ 길어요. ^^;;

단발머리 2016-02-22 21:56   좋아요 0 | URL

인생은 짧고

읽을 책은 많아요.

이 긴 리뷰를

읽지 않아도 되겠어요. ㅎㅎ


해피북 2016-02-22 17: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샘플북이 오면은 절대 열어보지 않았어요. 왜냐하면 열어보는 순간 그 책이 집에 쌓여있을 것만 같았거든요 ㅎㅎㅎ
사피엔스가 장장 600페이지에 달했군요. 단발머리님의 촘촘한 글을 읽다보니 왠지 <총,균,쇠>도 막 떠오르고요, 그 옛날 시대에 태어나지 않고 현재에 살아갈 수 있다는 사실에 무한한 감사를 드리게되고요, 그리고 마지막 말씀처럼 `아무런 의미가 없는 망상적인 삶`이라는 말에 저도 동의하지 않을래요. 설령 그게 진실이라고 해도 말이죠. 어려운 책이지만 저도 언젠가는 이 책에 도전해볼 날이 있겠죠? ㅎㅎ

단발머리 2016-02-22 21:59   좋아요 0 | URL
ㅎㅎㅎ그럼요.

아무런 의미가 없는 망상적인 삶에 대한 해피북님의 반대가 무척이나 반가워요.
일단 저는 그게 진실이 아닐 거라고 믿는 입장이거든요.
얼마전에 읽었던 뇌에 관한 책들도 그렇구요. 대부분 진화론자들의 의견이다 보니, 결론적으로는 인간을 물질, 물질들의 결합 이상으로 보지 않는 것 같아요.

그 의견에 반대하지만 아직은 논리가 많이 부족.... ㅎㅎ
언제든 편안할 때, 편안하게 도전!!

양철나무꾼 2016-02-22 18: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와~, 저는 요즘 안 읽고 쟁여놓은 책이 너무 많아,
일부러 책을 사는 일은 잘 없는데...이 책 장바구니로 직행이예요~^^

단발머리 2016-02-22 22:00   좋아요 0 | URL
장바구니로 직행한 <사피엔스>가 잘 살아남기를...
구매-독서-리뷰의 순환으로 저도 양철나무꾼님의 근사한 의견과 리뷰를 엿볼수 있게 되기를 바래요^^

oren 2016-02-26 15: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단발머리 님께서 흥미롭게 풀어주신 이야기를 다 듣고 나니 정말로 두꺼운 책 한 권을 순식간에 다 읽은 느낌이 드네요. 이런 글을 읽으니 `우리의 먼 과거`만큼 우리의 흥미를 끄는 이야기도 드문 듯싶고, <총,균,쇠>를 비롯한 여러 다른 책들의 책장들도 이 글과 함께 휙휙 빠르게 넘겨지는 듯한 착각마저 듭니다. 그리고, 고고학자들은 `돌도끼`를 기준으로 진보를 바라보았다고 하는 얘기가 문득 떠올라서 `호모 파베르`에 대한 두 꼭지의 글을 (매우 길지만 염치없이) 인용해서 덧붙여보고 싶네요...

* * *

인간의 손

『인간의 유래』에서 다윈은 무엇보다도 원숭이에서 인간으로 진화하면서 정신의 능력이 엄청나게 증대했다는 점을 보여주고자 했다. 진화가 느리고 완만한 과정이라면 그런 커다란 변화가 어떻게 가능했을까? 다윈의 답은 그 책의 4장에 있다. 그는 인간이 독특한 신체적 속성을 가졌다는 논리를 발전시켰다. 그것은 바로 그가 이 책을 쓰게 된 동기인 인간의 직립자세다. 다윈은 직립자세와 직립보행으로 인간의 손이 자유로워졌고, 그 결과 도구를 사용하는 능력이 발달했다고 주장했다. 또한 그 때문에 원숭이들 가운데 한 종류의 지능이 급속히 발달했으리라고 보았다.

직립의 관념은 다윈이 처음 도입했으나 처음에는 그다지 중요하다고 인식되지 않았다. 1891∼1892년 외젠 뒤부아가 `자바인`, 즉 피테칸트로푸스 에렉투스(지금은 `호모`를 붙여 부른다)를 발견한 뒤에야 그 이론이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피테칸트로스의 대퇴골은 직립보행을 했다는 것을 말해주며, 두개골의 크기는 원숭이와 인간의 중간이었다. 그래도 직립의 중요성이 완전히 이해된 것은 1930년대의 일이다.
- 피터 왓슨, 『생각의 탄생』

* * *

호모 파베르 Homo faber

인간 지성에 관해서 말하자면 사람들은 기계적 발명이 처음에 그 본질적인 행보였다는 것, 오늘날에도 여전히 우리의 사회적 삶은 인공적 도구의 제작과 사용을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것, 그리고 진보의 길에 표적을 세우는 발명들은 그 방향도 역시 그려주고 있다는 것을 충분히 주목하지 않았다. 우리가 그것을 깨닫기 어려운 것은 인간성의 변형은 보통 도구의 변형들보다 뒤늦게 오기 때문이다. 우리의 개인적이고 심지어 사회적인 습관들은 그것들이 적응하기 위해 만들어진 상황들보다 상당히 오랜 기간 살아남아 있기 때문에 한 발명의 심층적 영향은 우리가 이미 그것의 새로움을 잃어버렸을 때 비로소 주목된다. 증기기관이 발명되고 한 세기가 흘렀는데 이제서야 우리는 그것이 야기한 심층적인 동요를 느끼기 시작하고 있다. 그것이 산업에 일으킨 혁명은 인간들 사이의 관계조차 뒤집어 놓았다. 새로운 생각들이 떠오른다. 새로운 감정들이 개화하고 있다. 수천 년 후에 과거를 되돌아보고 그 주요한 선들만을 파악할 수 있게 된다면, 전쟁과 혁명들은 사람들이 그것들을 아직 기억한다고 해도 별 것 아니게 생각될 것이다. 그러나 증기기관 그리고 거기에 수반되는 각종 발명들에 대해서 사람들은 아마도 우리가 청동이나 석기(石器)에 대해 말하듯이 말하게 될 것이다. 그것은 한 시대를 정의하는 역할을 할 것이다. 우리가 모든 오만에서 벗어나 인간종을 정의하기 위해 역사시대와 선사시대가 우리에게 인간과 지성의 항구적인 특성으로 제시하는 것에 엄밀히 머물기로 한다면, 우리는 [인간을] 아마도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라 말하지 않고 호모 파베르Homo faber라고 말해야 할 것이다. 요컨대 지성을 그 본래적인 행보로 나타나는 것 안에서 고찰할 경우 그것은 인공적 대상들을 제작하고, 특히 도구를 만드는 도구들을 제작하며, 그 제작을 무한히 변형시키는 능력이다.
- 앙리 베르그송, 『창조적 진화』

단발머리 2016-03-01 08:22   좋아요 0 | URL
이 책을 <총, 균, 쇠>와 비교한 사람들이 아주 많다는 걸 다 읽고 나서야 알았습니다.
그에 필적하다와 그 책을 넘어선다는 의견이 반반인데, 저는 재미면에서는 이 책이 <총, 균, 쇠> 보다 낫지 않나 하고 생각합니다.^^

<사피엔스>에서는 사피엔스가 다른 동물뿐 아니라 다른 종을 압도하고 지구의 지배자가 될 수 있었던 이유로 `언어의 사용`과 `상상력을 통한 협동`을 제일 주요한 요소로 보았던 것 같습니다. 물론 도구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데, 그건 `상상력의 질서`가 `물질문명`과 깊이 연관되어 있다고 설명하는 부분에 나옵니다. 저자는 그 예로 `개인주의`의 발현으로 모든 현대 가정에는 `문`이 달린 개인 공간이 있다,라는 식으로 설명했었는데, 저는 그 부분이 참 인상깊었습니다. 인간의 의식과 사용하는 도구, 공간이 어떤 식으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가에 대해서는, 핸드폰을 항상 손에 쥐고 사는 바로 제 자신과 아이들이 직접적인 실례가 되는 터라 조금 착잡해지기도 했습니다.

긴 댓글, 감사합니다. 덕분에 제 서재가 더 근사해진것 같아 마음이 흡족합니다. : )

oren 2016-03-02 12:21   좋아요 0 | URL
단발머리 님께서 말씀해 주신 것처럼 `인간의 상상력` 만큼 놀라운 역할을 하는 것도 드물지 싶습니다. 과학기술이 발달하면서 이제는 `상상 이상`을 넘보는 일마저 흔한 일이 되다시피 했으니까 말이지요. 인공지능, 로봇, VR(가상현실) 등이 머지 않아 인류의 삶을 여러모로 많이 바꿀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그맘때쯤 되면 아마도 `스마트폰`도 참 원시적인 기기였다고 회상할 테지요..

oren 2016-02-26 15: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참, `인간의 유래`와 `인간의 미래`에 대해서는 한번쯤 이 분야의 전문가였던 `다윈의 말`을 곱씹어 생각해볼 필요도 있다고 저는 봅니다. 어쨌든 인간은 `호모 사피엔스`만 살아남아 여기까지 진화해 오기 이전에, `털이 있고 꼬리가 달린 네발동물`에서 유래했던 사실도 밝혀졌고, 온갖 종류의 원숭이 중에서도 `단 한 종류의 원숭이`로부터 진화했다는 것도 밝혀졌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인류의 미래에 대해 저 책의 저자가 저런 식으로 단 한 순간에 `허무주의`로 급전직하하는 건 저로서도 참 이해하기 어렵군요. 다윈의 말대로 어쨌든 우리는 `엄청난 연속 사건의 결과`로 태어난 것만은 결코 그 누구도 부정하기 어려운 일일 테니까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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털이 있고 꼬리가 달린 네발동물에서 유래했다는 사실

발생 중인 인간의 배를 생각해보자. 또 인간이 하등동물과 공유하고 있는 유사한 여러 구조와 흔적 기관, 그리고 종종 나타나는 복귀돌연변이를 행각해보면 우리는 인간의 먼 조상이 가졌을 모습을 일부나마 상상해볼 수 있다. 그리고 동물 계열의 적당한 위치에 그들을 대략 끼워넣을 수 있다. 그렇게 해서 우리는 인간이 털이 있고 꼬리가 달린 네발동물에서 유래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아마 그들은 나무 위에서 생활했을 것이며 구세계에서 살았을 것이다. 만약 박물학자가 이들의 모든 구조를 조사해본다면 이 생물은 구세계 원숭이와 신세계 원숭이의 매우 먼 조상과 마찬가지로 사수목 동물에 속하는 것으로 분류될 것이 거의 확실하다. 사수목 동물과 모든 고등 포유류는 아마 먼 옛날의 유대류에서 유래했을 것이다. 그리고 이 유대류는 양서류와 비슷한 생물에서 출발하여 오랜 시기에 걸쳐 다양한 형태의 생물을 거치며 형성되었고 다시 이 양서류는 어류와 비슷한 동물에서 유래했을 것이다. 과거의 모든 상황이 명쾌한 것은 아니지만 우리는 모든 척추동물의 먼 조상이 아가미를 갖고 암수의 특징을 한 몸에 갖추었으며, 뇌와 심장처럼 매우 중요한 기관은 불완전했거나 전혀 발달되지 않은 수생동물일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 동물은 다른 생물보다는 오늘날 바다에 사는 멍게와 매우 유사했을 것으로 보인다.

- 다윈, 『인간의 유래Ⅱ』(1871년) <제21장 전체 요약과 결론> 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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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청난 연속 사건의 결과

이 책에서 얻은 결론은 상당히 비종교적이라는 이유로 비난받을 것임을 나는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이 결론을 비난하는 사람은 뚜렷한 하나의 종인 인간의 기원이 변이와 자연선택의 법칙을 통해 어떤 하등동물에게서 유래했다고 설명하는 것이 본래의 생식 법칙에 따라 한 개인이 태어났다고 설명하는 것보다 왜 더 비종교적인지 그 이유를 밝혀야만 한다. 종의 출현이나 한 개체의 출현은 모두 엄청난 연속 사건의 결과다. 우리의 마음은 이 엄청난 사건이 단지 무계획적인 우연의 결과라고 받아들이기를 거부하는 것이다. 상황을 이해하면 신체 구조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소한 변이, 결혼으로 맺어지는 한 쌍의 융합, 그외 비슷한 여러 사건이 모두 어떤 특별한 목적에 따라 미리 결정되었다고 믿을 수 있느냐의 여부를 떠나, 이러한 결론에 비위가 상할 것이다.

- 다윈, 『인간의 유래Ⅱ』(1871년) <제21장 전체 요약과 결론> 中에서

단발머리 2016-03-01 08:29   좋아요 0 | URL
사실 저는, 어떤 목적이나 목표를 두고 책을 읽는 사람이 아닌데요. 최근에 <마음의 미래>와 <사피엔스>를 읽으면서 진화심리학에 대해 조금, 아주 쪼금 알게 되었습니다.

관련된 책을 찾아, 내용을 인용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인간의 기원`에 대한 여러가지 전제 중에 제가 특히 이해하기 어려운 건, 인간이 원숭이, 그 중에서 `단 한 종류의 원숭이`에서 진화했다는 겁니다. 어떻게 단 한 종류의 원숭이에게만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그게 궁금합니다. 무조건 긴~~~~~ 시간속에서는 이 일이 가능할까요? 다윈이 스스로 말했든, `이 엄청난 사건이 단지 무계획적인 우연의 결과`라는 걸 저는,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위에 소개해주신 책 <인간의 유래 2>를 읽어보면 될까요? ㅎㅎㅎ

oren 2016-03-02 12: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생명 진화의 기적`을 일반인이 이해하기가 그리 쉽지는 않은 듯합니다. `우연과 필연 사이의 모호한 경계` 또한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구요. `문제는 시간`이겠지요. 상상할 수 없이 기나긴 시간을 두고 관찰한다면, 인간의 눈이나 머리로는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운 현상들이 벌어지기 마련이라고 저는 봅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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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시간

종과 관련해서 가장 큰 어려움은 그것이 무엇인지를 결정하는 일이다. 문제는 시간이다.(즉 3차원으로 전개되는 어떤 것을 현재라는 2차원으로 묘사하는 것이 문제인 것이다.) 분류자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미래이다. 모든 동식물은 30억 년 전에 한 조상으로부터 유래했기 때문에 똑같다.
- 스티브 존스, 『진화하는 진화론』

* * *

생명은 최초의 창조자에 의해 소수의 형태로, 또는 하나의 형태로 모든 능력과 함께 불어 넣어졌다고 보는 견해

온갖 종류의 식물이 자라고, 숲속에서는 새가 노래하고 곤충은 여기저기 날아다니며, 축축한 땅속을 벌레들이 기어다니는 번잡스러운 땅을 살펴보는 것은 재미있는 일이다. 그러한 개개의 생물은 제각기 기묘한 구조를 가지고 있고, 서로 매우 다르며 매우 복잡한 연쇄를 통해 서로 의지하고 있지만, 그런 생물이 모두 지금 우리 주위에서 수행되고 있는 여러 가지 법칙에 따라 만들어진 것임을 깊이 생각해 보는 것도 흥미롭다. 그러한 법칙은 가장 넓은 의미에서 말한다면, `생식`을 수반하는 `성장`, 거의 생식 속에 포함된다고도 할 수 있는 `유전`, 생활의 외적 조건의 직접 또는 간접적인 작용에 의한, 또 용불용에 의한 `변이성`, 생존경쟁과 나아가서는 `자연선택`을 초래하고, 마침내 `형질의 분기`와 열등한 생물을 `멸종`시키는 높은 `증가율` 등이다. 그리하여 직접적으로 자연계의 싸움에서, 또 기아와 죽음에서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최고의 사항, 즉 고등동물의 산출이라는 결과가 나오는 것이다. 생명은 최초의 창조자에 의해 소수의 형태로, 또는 하나의 형태로 모든 능력과 함께 불어 넣어졌다고 보는 견해, 그리고 이 행성이 확고한 중력의 법칙에 의해 회전하는 동안 이렇게 단순한 발단에서 지극히 아름답고 지극히 경탄스러운 무한의 형태가 태어났고, 지금도 태어나고 있다는 이 견해에서는 장엄함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 다윈, 『종의 기원』(1859년), <제14장 요약과 결론> 中에서

icaru 2016-03-11 09: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오! 지금 저는 앞부분 읽고 있는데, 이 리뷰를 보니,,, 오!
참으로 브리핑을 훌륭히 해내셔요 단발머리 님!!!!

단발머리 2016-03-12 11:58   좋아요 0 | URL
칭찬 감사합니다. icaru님~~~
님의 칭찬에 제가 더 쑥쑥 자랍니다.
키는 큰데, 더 쑥쑥!!! ㅎㅎㅎ
 
한국이 싫어서 오늘의 젊은 작가 7
장강명 지음 / 민음사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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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한국이 싫은 이유, 지금 한국을 떠나고 싶은 이유, 지금의 한국을 헬조선이라고 부르는 이유를 말해보라고 한다면, 한국사람이라고 한다면 세 가지 혹은 네 가지의 이유를 댈 수 있을 것이다. 모든 조건에서 불리한, 기울어진 판 위에서 시작하는 20대라고 한다면, 적어도 7개 아니, 8개 정도는 댈 수 있지 않을까. 한국이 싫은 이유, 한국을 떠나고 싶은 이유를 말이다.

장강명의 소설은 댓글부대이후 두 번째인데, 우리 모두를 울적하게 만드는 무거운 주제인데 반해 편하게 읽을 수 있었다. 독자에게 쉽다고 인식되면서 빠르게 읽을 수 있도록 만드는 것 역시 작가의 역량이다,라고 생각하면서, 나 역시 빠르게 책장을 넘긴다.

 

애국가 가사 알지? 거기서 뭐라고 해? 하느님이 보우하는 건 내가 아니라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야. 만세를 누리는 것도 내가 아니라 대한민국이고. 나는 그 나라를 길이 보전하기 위해 있는 사람이야. 호주 국가는 안 그래. 호주 국가는 호주 사람들이여, 기뻐하세요. 우리들은 젊고 자유로우니까요.”라고 시작해. 그리고 우리는 빛나는 남십자성 아래서 마음과 손을 모아 일한다.”, “끝없는 땅을 나눠 가진다.”고 해. 가사가 비교가 안 돼. (171)

몇 년 사이에 이렇게 빠른 속도로 국가, 나라에 대한 신뢰가 실종될 수 있다는 게 신기하기는 하다. 좋은 시절, 일테면 근로자 우대 비과세 적금이율이 10%였던 때를 별 생각 없이 당연하게 살았던 사람으로서는 더 어리둥절한 일이다. 있는 집 자식들은 군대를 가지 않는다,는 믿지 못할 이야기를 장관 내정자들의 청문회에서 속속들이 확인하면서도 이런 게 바로 금수저-흙수저의 적용편이라는 걸 바로 믿지 못 했다. 부모의 경제력과 자녀들의 명문대 진학률 사이의 연관관계도 아무래도 그렇겠지,하고 그냥저냥 넘겨 버렸다. 하지만, 상황은 생각보다 훨씬 더 심각한 것 같다. 한국이라는 나라는, ‘헬조선은 떠나고 싶은 나라가 됐다.

한국이 싫어서, 라기보다는, 한국에 살 수 없어서, 한국이 살지 못하게 해서 떠나려하는, 떠날 수밖에 없는 청춘들, 한 해에 호주 이민을 신청한 젊은이들이 이만 오천명을 넘어 삼만 명에 가깝다는 이야기가 아무래도 가깝게 다가오지 않는다. 한 해에 이만 오천명. 아니, 삼만명.

종횡무진 한국사에서던가, 고 남경태님은 정조 이후 몇몇 가문에 의한 세도정치가 왕을 좌지우지하고, 백성들은 탐욕스런 지방관들에게 끊임없이 수탈을 당하고, 더 이상의 강탈을 감당하지 못해 집을 버리고 유랑하는 백성들의 이야기, 즉 삼정의 문란과 홍경래의 난, 진주민란 봉기를 전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이 때, 이미 조선은 망한 상태였다. 나라가 망한 거나 마찬가지였다.”

조선은 망한 상태로 100년을 갔다. 열강의 침략과 일본에 의한 국권피탈은 망한 나라 조선에게는 당연한 수순이었을 수도 있다. 놀라운 건 조선이 일본에게 어떤 방식으로 당했다는 게 아니라, 나라가 망한 상태로 100년을 갈 수 있었던 것 아닐까. 그 망할 놈의 100년 동안 그 모든 고통과 괴로움은 민중의 몫이다. 무식하고, 가진 게 없고, 힘이 없는 민중들에게 그 100년은 참으로 끈덕지게 길다. 물론 일본의 침략 뒤에는 더 고단한 삶이 이어진다.

밑줄은 좀 다른 문장에 긋는다. 나 역시 강남 출신이 아니고, 집도 그냥 그렇고, 그리고 여자니까, 나도 2등 시민이라는데 껄끄럽게 동의한다. 여자는 자기의 꿈을 이루려는 남자를 따라가야 하지만, 남자는 자기의 꿈을 이루려는 여자를 따라 갈 수는 없다는 걸 슬프게 확인한다. 그리고 마지막.

나도 전업주부로 살고 싶지는 않다. 원래부터 전업주부로 살려고 했던 것도 아니고. 원래부터 그렇게 똑똑한 여자애는 아니었지만, 집 안에 틀어박혀 있으면서 바보 되는 것 같다는 느낌이 많이 드는 건 사실이다. 밖에 나가서 다른 사람을 만나는 일은 사실 좀 귀찮기는 하다. 게을러진 것 또한 사실이고, 사고의 폭 또한 좁아진 걸 느낀다. 다른 사람 입장에서 생각하는 건, 나는 참 잘 하는 사람이라 생각하지만, 아무튼 작가가 그려낸 전업주부의 그림은 나 역시 싫어하는 모습이라는 걸 일부러 밝혀둔다.

오늘의 결론은 한국이 싫어서-헬조선-2등시민-페미니즘-전업주부인가.

한국이 싫어요. 여긴 헬조선이라 2등시민인 제가 살기 힘들어요. 페미니즘이라니요. 그런 얘기 했다간 대쎈 여자라고 따돌림 당해요. 저요? .... 전업주부인데요

    

“어차피 난 여기서도 2등 시민이야. 강남 출신이고 집도 잘 살고 남자인 너는 결코 이해 못해.” (61쪽)

실제로 걔는 좀 졸렬하게 굴었지. 사랑을 인질로 삼았어.

“너 나 사랑한다며. 나를 사랑하면 그냥 내 옆에서 한국에 있어 주면 안 돼? 호주에 가는 게 그렇게 중요해?”

난 그 말을 이렇게 받았지.

“너도 나 사랑한다며. 나 사랑하면 날 따라서 호주에 가면 안 돼? 기자가 되는 게 그렇게 중요해?”

지명이 한참 동안 고개를 숙이고 있다가 울 것 같은 표정으로 그건 안 되겠다고 하더라. 자기는 기자가 되는 게 꿈이라고. 이제 내 마음을 이해할 것 같다고도 했어. “호주에 가는 게 너의 꿈이구나.”라고 그는 맥없이 중얼거렸어. (62-3쪽)

한국에서 살아도 그냥 전업주부로 살고 싶지는 않았거든. 딱히 어떤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은 없었고 한국의 구직 시장이 어떤지도 몰랐어. 그래도 일은 하고 싶었어. 은혜도 그렇고 학생 때는 똑똑하던 여자애들이 집 안에 틀어박혀 있으면서 바보 되는 거 많이 봤거든. 밖에 나가서 다른 사람을 만나고 부딪치고 그러지 않으면 되게 사람이 게을러지고 사고의 폭이 좁아져. 다른 사람 입장에서 생각할 줄 모르게 되고. 난 그렇게 되기 싫었어. (14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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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섬 2016-02-10 15: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구직활동에 자신감 상실돼서 다시 일할 수 없을 거라는 비관적인 생각이 강해요.ㅜㅜ
전업주부 11년새 정말 바보된 것도 같고 세상을 보는 시야도 좁고 얕고 꽉 막히기까지한 저를 느껴요. 막막하고 답답해요. 나 자신은 없고 가족을 위해 사는 느낌요.ㅜㅡ

단발머리 2016-02-10 17:44   좋아요 0 | URL
생각하면 할수록 그런 생각이 더 많아져서 될 수 있으면 생각지 않으려고 하는데, 이런 글을 읽게 되면 정말 그런가 싶어, 조금 울적해지기는 해요.
그래도 꿈꾸는 섬님은 아이들이랑 건강하게 잘 지내시는 것 같아 보기 좋아요.
책도 많이 챙겨주시고, 책도 같이 읽고요.
저한테는 어려운.... T.T
 
놈이었습니다 문학동네 시인선 77
이덕규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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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이덕규는 1961년 화성에서 태어났다. 1998현대시학을 통해 등단했다. 시집으로 다국적 구름공장 안을 엿보다, 밥그릇 경전등이 있다. <알라딘 저자소개>

처음 읽는 이덕규 시인의 시집이다. 마음을 건드린 2개의 시 중에, 죽자 죽자 죽어버리자을 옮겨본다.

 

죽자 죽자 죽어버리자

 

코밑이 거뭇해지던 늦은 겨울 이야긴데요 산속으로 솔방

울 주우러 갔을 때 일인데요

인근 야산엔 겨우내 사람들 발길이 잦아서 좀더 깊은 산

속으로 들어가다가 한순간

나도 모르게 그만 털썩 주저앉고 말았는데요

저걸 봐야 되나 말아야 되나, 그러면서 처음부터 끝까지

다 보아버리고 말았는데요

양지바른 산소 풀 위에 낯선 남자하고 이웃 마을 혼자 사

는 친구네 엄마하고 꼬옥 부둥켜안고 있었는데요

한동안 나는 거기서 꼼짝 못하고 뜨거운 손에 쥔 솔방울

하나를 다 부숴버리고 말았는데요

그런데요 친구 엄마는 울고 남자는 달래느라 나지막이 속

삭이는 소리가 생솔나무 가지를 타고 내려와

내 귓속에까지 생생하게 흘러들어왔는데요

마침내는 서로 흐느끼면서 죽자 죽자, 우리 같이 죽자,

염없이 울고 또는 소리가 들려왔는데요

그날 늦은 저녁까지 나는 산속을 헤매다니며 죽자 죽자 솔

방울을 마구 주워댔는데요

땅이 푹푹 꺼지듯, 무겁고 긴 한숨이 흘러내려와 내 작은

가슴을 짓누르며 두방망이질 치던 그 말,

죽자 죽자, 우리 같이 죽자는 그 말을 부대 자루 가득 담

아 메고 이미 어둑해진

겨울 산을 으슬으슬 내려섰는데요

그러니까, 그날이후 며칠 동안 깊은 신열을 앓으며 깜박

깜박 죽었다가 깨어나서는

비몽사몽 관자놀이에 검지를 대고 수없이 방아쇠를 당겼

는데요 누군지도 모를 먼 사람에게

속삭이듯, 나지막이

죽자 죽자 죽자, 우리 같이 죽어버리자는 것이었는데요

 

여성의 순결만큼 중요한게 여성의 정조이다. 여성의 정조보다 더 우위에 있는 건 어머니의 정조이다. 그래야만 하는 당위를 깨뜨려버린 장면을 목격한 는 털썩 주저앉는다. 손이 뜨거워지고 들고 있던 솔방울을 한 손에 부숴버리는 이유도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여성은 그래서는 안 된다. 어머니는 더더욱 그래서는 안 되고, 친구의 어머니도 그래서는 안 된다. 하지만, 함께 있으면 안 되는 두 사람이 깊은 산 속에서 서로 부둥켜 안고 있는 것을 목격한 는 며칠 동안 깊은 신열을 앓게 되는데, 그건 두 사람이 나눈 말 때문이었다.

죽자 죽자 죽어버리자.

만약 그 말이 사랑한다,였으면 어땠을까.

만약 그 말이 도망가자,였으면 어땠을까.

사랑한다,였다면 두 사람을 미워할 수 있었으리라. 짐승처럼 이끌린대로 이끌려버린 사랑놀음이라고 욕할 수 있었으리라. 더러운 사랑이라고 조소하고 두 사람의 사랑을 경멸했으리라.

도망가자,였다면 두 사람을 멸시할 수 있었으리라. 무책임하게 인간의 도리를 버렸다고 비웃을수 있었으리라. 도망가서 시작하게 될 두 사람의 사랑을 저주할 수 있었으리라.

그런데 울고 있는 여자를 달래던 남자의 말은 사랑한다,도 도망가자,도 아니다.

서로 부둥켜안고 흐느끼며 두 사람은 말한다.

죽자 죽자, 우리 같이 죽어버리자.

이제 여기서, 이 곳에서 두 사람의 사랑은 이루어갈 방법을 찾지 못한다. 서로의 마음을 확인했고 도망가서 새롭게 시작하고 싶지만, 이것 또한 두 사람에게는 허락되지 않는다. 두 사람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고, 그렇다고 이 사랑을, 찾아온 사랑을 포기할 수도 없다. 사랑할 수도, 도망갈 수도 없는 상황에서 두 사람은 죽음을 이야기한다. 죽음으로만이 이 사랑을 이길 수 있고, 죽음으로만이 이 사랑을 지킬 수 있기 때문이다.

코밑이 거뭇해 사랑에 눈뜨기 시작했지만, 아직도 뜨거워 솔방울을 다 부숴버리던 는 누군지도 모를 먼 사람에게 자꾸만 이렇게 말한다.

속삭이듯, 나지막이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죽자 죽자 죽자, 우리 같이 죽어버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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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aru 2016-02-04 15: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전기현 씨네뮤직 깔대기 같아요. 이 시를 읽으며, 다르긴 하지만, 결말이 딱 엘비라 마디간(몇일전 씨네뮤직으로 봄이요,,)이라고 생각했네요.. 사랑하는 사람들이 결국엔 동반 죽음을 선택하려 한다는 점에서,,
죽자죽자죽어버리자 하는 마음이었겠지만, 중년의 사랑을 이루지 못하고 각자의 현실로 돌아갔을 법하긴 해요 ㅎ,ㅎ;;

단발머리 2016-02-05 08:58   좋아요 1 | URL
저는 이 다음은 상상하기가 싫더라구요.
힘없이 각자의 집으로 돌아서는 장면이요.
그래서 시의 마지막이 두 사람을 바라보던 `나`로 끝나나봐요.

저는 엘비라 마디간은 잘 몰라서, 또 바로 폭풍검색^^
icaru님 설연휴네요. 즐거운(?) 연휴 되세요~~~ ㅎㅎ

cyrus 2016-02-04 18: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가 내용이 긴 시는 안 좋아하는데, 이런 이야기가 있는 시는 좋아해요. 특히 슬픈 사연이 있는 거요.

단발머리 2016-02-05 08:59   좋아요 1 | URL
네, 저도 사실 시가 어려워서 많이는 못 읽는데, 이야기가 있는 이런 시는 너무 좋네요.
슬픈 사연에 마음이 좀 아프지만요...

서니데이 2016-02-04 18: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단발머리님, 오늘도 편안한 저녁 되세요.^^

단발머리 2016-02-05 08:59   좋아요 2 | URL
네, 서니데이님~
설연휴 첫날이네요.
맛난거 많이 드시고, 즐거운 연휴 되세요~~

서니데이 2016-02-05 20: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단발머리님 , 좋은 저녁시간 되세요.^^
설연휴도 즐거운 시간 보내세요.^^

단발머리 2016-02-10 12:48   좋아요 2 | URL
서니데이님, 저는 즐거운 설연휴 보내고 있어요~~~

서니데이 2016-02-07 18: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단발머리님, 오늘도 많이 바쁘셨지요. 좋은 저녁시간 되세요.^^

단발머리 2016-02-10 12:48   좋아요 2 | URL
많이 바쁘지는 않았구요. ㅎㅎ
올해는 시어머니께서 음식을 많이 안 하셨거든요.
서니데이님도 연휴 마지막 날 즐겁게 보내시기를요~~~~

[그장소] 2016-03-17 20: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혼자 되서 사는 친구의 엄마인데 ㅡ정조라니 ㅡ왜...열녀문이라도 세워주어야 해서인가요? 친구만 크면, 아니 어린 아들이 있어도 우리 여자는 오로지 일부종사를 펴~엉~새~앵~해야하는가요...오죽하면 답답하여 죽으려 하나 ㅡ저 들의 사랑이 안타까워요...그러지 않았다면 좋았겠지만 ㅡ어떤 이유로 친구는 홀어머니가 된 걸까요..이땅의 깊이 박힌 강제적 모성을 저는 슬퍼해요...부제한 부성을 서글퍼해요...사랑이 뭔지 몰랐을 코밑 수염 돋기 시작 하는 화자의 심정은 ㅡ보지 말아야 할 것 ㅡ이란 것 보다 ㅡ처참한 마음의 사랑 ㅡ을 말하려 했을 텐데 ...마음이 아닌데 몸만 순결하면 순결일까 ㅡ단발머리님 ㅡ어머니의 지고한 순결보단 ...늦게 온 사랑에 절망하는 이들을 봐주셨으면 더 좋았을 것만 같아요...
그저 ㅡ제 생각일뿐 ㅡ옳다거나 틀리다는 문제는 아니니 불쾌하지 않으셨음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