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그날의 기록
진실의 힘 세월호 기록팀 지음 / 진실의힘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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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의 기록을 읽는다.

박수현 학생의 아버지 박종대 선생이 새벽마다 아들의 책상에 앉아 기록 더미와 씨름했다. 한겨레 21 정은주 기자가 세월호와 진실의 힘을 이어주었다. ‘세월호 프로젝트가 시작되었고 그리고 이 책이 나왔다. 2014416일 오전, 세월호에서 일어난 일, 침몰할 때까지 101분 동안 선장과 선원, 해경과 지휘부가 무슨 일을 했는지, 선장과 선원들을 안전하게 민첩하게 도주시킨 해경이 배에 갇혀 있는 승객들은 왜 못 구했는지를 정확히 밝혀진 사실에만 근거해 추적한다. 힘들게 만들어진 책이다. 아픈 기록이다. 세월호에 대한 기록이다.

안내방송. 배 안에 가만히 있으라는 안내방송은 탈출을 방해한 정도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 이러한 안내방송은 매우 집요하고도 지속적으로 이루어졌다.

 

9633초 안내방송 [음성]

선내 단원고 학생 여러분 및 승객 여러분께 다시 한 번 안내 말씀 드립니다. 현재 위치에서 절대 이동하지 마시고 대기해주시기 바랍니다. 현재 위치에서 절대 이동하지 마시고, 구명동의가 착용 가능하신 승객분들께서는 구명동의를 착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다시 한 번 안내 말씀 드립니다. 구명동의가 착용 가능하신 승객 여러분께서는 구명동의를 착용해주시고, (안 들림)에 계신 승객 여러분들께서는 절대 이동하지 마시고 대기해주시기 바랍니다.” (91)

가만히 있으라. 절대 이동하지 말라. 현재 위치에서 이동하지 말라. 다시 한 번 말한다. 절대 이동하지 말라. 대기하라. 이런 방송이 계속해서 나온다. 안내 방송이 탈출 의지를 강하게 가로막았다. 가만히 있으라. 절대 이동하지 마라.

 

조타실 선원들이 도주하던 945, 강혜성은 바깥 상황을 확인하지도 않은 채 다시 한 번 승객들을 주저앉혔다.

현재 위치에서 안전하게 기다리시고 더 이상 밖으로 나오지 마시기 바랍니다. 현재 위치에서 안전하게 기다리시고 더 이상 밖으로 나오지 마시기 바랍니다. (138)

조타실의 선원들은 이미 배 밖으로 탈출한 상황에서도 승객들은 또 다시 안내방송에 발이 묶인다. 밖으로 나오지 마라. 기다리라. 조금 더 기다리라. 시간은 흐르고 배는 점점 더 기울어졌고 결국엔 침몰했다. 그들은 탈출할 수 없었다.

 

과연 승객들을 구할 수 있었을까?’, ‘476명이 탄 여객선이 갑자기 침몰하는 상황에서 해경이 무엇을 할 수 있었을까?’ 모든 의문은 결국 이 질문으로 연결되었습니다. “제가 신이 아닌 이상 어떻게 이것을 다 챙깁니까?” 김문홍 목포해양경찰서장의 항변은 현장의 해경들은 물론 해경 지휘부의 생각을 대변합니다. 기록팀은 객관적인 자세로 검토했습니다. 그리고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구할 수 있었다!” (6)

처음부터 끝까지 이 책의 질문은 하나다. 구할 수 있었나? 과연 승객들을 구할 수 있었나? 기울어지는 배에서 승객들을 전부 구할 수 있었나? 그리고 697, 이 책이 내린 결론은 구할 수 있었다이다.

중요한 사실들이 너무 많아서 어떤 것을 앞에 두어야 할지 모르겠다. 이를 테면 상습 과적으로 사고 당시에도 세월호는 화물량만으로도 운항관리규정에서 정한 최대 화물 적재량인 1077톤을 배 이상 초과했다는 것(43), 화물에 대한 고박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 선반안전법 위반을 피해하기 위해 평형수를 조절했던 것, 이로 인해 빠른 침수가 일어났던 것, 원인을 알 수 없는 급격한 우회전과 초고속 선회가 이루어진 것, 1000명이상을 태울 수 있는 25인승 구명뗏목 44개중 단 2개만 펼쳐졌다는 것(133), 전화기의 0번을 누르면 선내 전체 방송이 가능했다는 것, 맞은편 방송 장비에는 빨간 버튼의 비상벨도 있었다는 것(135). 중요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중요한 사실들이 너무 많아서, 그 모든 사실들이 하나로 얽혀 강하게 조여와 마음이 답답하다. 정말 구할 수 없었나,라는 질문에 이 책은 이렇게 답한다.

 

1장 선원이 구할 수 있었다.

선장은 퇴선방송을 지시하지 않았다. 현재 위치에서 움직이지 말고 그대로 기다리라,는 안내방송이 반복되었다. 승객들이 휴대전화로 촬영한 동영상과 선원들의 진술조서를 기초로 했을 때, 85256, 96, 7, 14, 26, 28, 29, 35, 37, 42, 45분에 안내 방송이 있었다. 움직이지 말고 그대로 기다리라는, 현재 위치에서 절대 이동하지 말고 대기하라는 내용이었다. 위급상황에서 선원들의 지시를 기다리고 따를 수밖에 없는 승객들에게 이처럼 반복적인 대기 방송은 탈출 의사를 포기하게 만드는 강력한 억제력으로 작용했다. 탈출하려고 하다가 안내방송을 듣고 스스로 포기하거나 다른 승객들의 만류로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563)

세월호 제일 아래층에 있던 세 사람을 포함해 기관부 선원 7명은 모두 살아남았다. 갑판부 선원들은 사고가 발생한 뒤 갑판으로 나가기 쉬운 5층 조타실에 모여 있다가 해경 구명보트로 도주했다. “경황이 없어서 승객을 대피하도록 조치하지 못 했다는 선장과 가만히 있으라,고 방송하면서 해경 구명보트에 몸을 실은 선원들은 모두 살았다. 그들만 살았다.

 

2장 해경도 구할 수 있었다

해경이 사고 현장에 도착한 934, 배는 약 50도 기울어져 있었다.(597) 세월호는 855분 제주 VTS에 구조를 요청했고 이후 사고 해역을 관할하는 진도 VTS95분부터 935분까지 30분간 교신했다. 세월호 선원들은 배가 기울어져서 계속 넘어가는데 승객들이 객실 내부에 있다고 말했다. “승객들을 탈출시키면 옆에서 구조할 수 있느냐고 물었다. 그 때 해경 지휘부가 세월호와 직접 연락해 승객 퇴선 준비를 지시했다면 상황은 완전히 달라졌을 것이다.

그럼에도 해경 지휘부는 배가 원래 상태로 돌아오거나 기울어진 상태로 상당 시간 버틸 것이라고 쉽게 생각했다.(599) 배 안에 승객 절반 이상이 갇혀 있다고 김경일(123정 정장)이 보고하는데도 침묵했다. 퇴선 명령을 하라고 지시하는 지휘부는 없었다.(602) 나중에 그들은 그것은 현장 상황을 잘 아는현장 지휘관의 일이라 판단했다고 주장했다.

해경은 제일 먼저 사고 현장에 도착한 123정의 방송 장비로 퇴선 방송을 할 수 있었다.(603) 해경이 123정 방송 장비로 퇴선하라고 방송했다면 세월호 갑판 출입문 가까이에 있는 승객들이 들었을 것이고, 객실과 복도에 있는 다른 승객에게 빠르게 전할 수 있었다. 휴대전화로 전파할 수도 있었다. 그 시각 승객들은 친구, 가족과 카카오톡을 주고받으며 해경의 구조를 기다렸다.(604)

승객의 퇴선을 유도하는 두 번째 방법은 해경이 세월호 선내에 진입해 승객들에게 퇴선하라고 소리치는 것이었다. 123정 대원 중 직접 구조 활동을 한 인원은 구명보트에 탄 2명에 불과했다. 123정은 직접 구조에 나서지 않았다. 구명보트만 왔다 갔다 했다.(607) 이에 대해, 법원은 123정이 헬기 항공구조사를 활용해 승객 퇴선을 유도하지 않은 부분에 대해 업무상 과실이 아니라고 판단했으며, 세월호 방송 장비로 승객 퇴선을 명령하지 않은 것도 무죄로 판단했다.(622)

 

3장 구할 수 있었다

가천대 초고층방재융합연구소 박형주 교수가 가천대 보고서를 검찰에 제출했다. 이 보고서는 세월호에서 퇴선 명령이 이루어진 경우 배의 기울기에 따라 선택할 수 있는 탈출 경로와 탈출 소요 시간을 예측했다.(625) 850분경 세월호는 좌현으로 약 30도 기울어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비교적 보행이 자유롭다고 보고 탈출 경로를 3층 좌현 갑판으로 한정했다. 아직 기울기가 작아 4층과 5층 갑판에서 바다로 바로 뛰어내리기에는 어려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시뮬레이션 결과, 이러한 환경에서 승선원 476명이 모두 탈출하는데 55초가 걸렸다. 850분경 선장이 퇴선 명령을 하고 선원들이 임무를 다했다면 늦어도 855분경에는 전원이 해상으로 탈출할 수 있었다는 뜻이다.(626)

 

 

924, 둘라에이스호 문예식 선장은 세월호와의 교신에서 탈출 시키라”, “빨리하라고 소리쳤다. 시뮬레이션 결과에 따르면, 이 시간, 476명이 모두 탈출하는 데 필요한 시간은 928초였다. 적어도 935분경에는 모든 승객이 탈출할 수 있었다. 945분경, 조타실 선원이 탈출했다. 해경이 선장과 선원들을 구한 직후 승객들을 퇴선시켰을 경우에도 거의 대부분의 승객을 구할 수 있었다.(627) 그 날, 그 바다에서, 승객들을 구조할 수 있는 시간이 충분했다는 뜻이다.  

 

해경이 단 한 명이라도 세월호 안으로 들어가서 나오라고 방송만 했어도, 그 소리가 야 나오란다이렇게 전달돼 다 나왔을 거여.”

세월호에 달라붙어 승객을 구하다가 뱃머리가 세월호 후미 난간에 걸려 함께 빨려 들어갈 뻔한 위기를 가까스로 넘기며 25명의 목숨을 살린 피시헌터호 김현호 선장은 통탄했다.

둘라에이스호와 어업지도선들 외에 1030분경까지 50여 척의 어선이 현장에 도착해 대기하고 있었다. 바다에 떠 있는 승객을 충분히 구조할 수 있었다. 공중에 떠 있는 3대의 헬기와 항공기 703호는 표류하는 승객을 추적할 수 있었다. 특히 헬기 511호와 512, 항공기 703호는 구명뗏목도 갖추고 있었다.

당시 해역 수온은 12.6도였다. 최악의 경우 승객들이 구명조끼를 입은 채 바다에 떠 있기만 해도 최대 6시간까지 버틸 수 있었다.

구조할 시간도, 구조할 세력도, 부족하지 않았다. (629)

 

구조할 시간도, 구조할 세력도, 부족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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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6-01 11: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단발머리 2016-06-01 11:48   좋아요 2 | URL
저도 여러번 읽기를 중단했습니다. 읽으면 읽을수록...
어떻게.... 여러 부분에서 동시다발적으로 구멍이 생길 수 있었는지...
너무 안타깝고 안타깝습니다.
그래도 힘내서.... 읽으시기 바래요.

다락방 2016-06-01 11: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침에 시사인 읽으면서 절망했고(강남역 살인사건 나왔거든요), 뉴스 읽으면서 절망했고(어느 젊은 노동자의 죽음이요) 단발머리님의 이 글 읽고 또 절망하게 되네요. 이 나라가 절망스러워요, 단발머리님.

단발머리 2016-06-01 12:14   좋아요 1 | URL
우리 사회의 모든 절망적 사건에 `세월호`라고 이름 붙이는 이유를 이제서야 알것 같아요.
배가 침몰하는 순간에, 절실한 협력이 필요한 순간에,
정보가 있는 사람들은 모두 먼저 탈출하고....
방송을 계속하는 거예요. 기다리라고. 움직이지 말라고...

사회적 약자들, 여자, 19살의... 2주 교육 받고 투입된 고등학생은
배 맨 아래층에서 방송 들으며 대기했던 세월호의 희생자들과 같아요....
혼자 작업 나갔다가 사고를 당한 아이를 보면서도,
보고 하지 않고 나갔다고, 그 아이가 절차를 지키지 않았다고,
자식 잃은 부모 가슴에 대못을 박는 나라가... 이 나라예요.
도대체... 아이들에게 뭐라고 가르쳐야 할지... 난 정말 모르겠어요.

건조기후 2016-06-01 13: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세월호 이후 나라가 점점 더 미쳐돌아가는 기분이에요. 그게 정말 무섭습니다. 세월호같은 납득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는 거 자체도 어이가 없지만.. 이후에 뭔가 조금이라도 나아지기는커녕 오히려 그 반대로 규제완화니 노동개혁이니 더욱 밀어붙이는 저 철갑같은 사이코패스 마인드가... 진심으로 무서워요.

단발머리 2016-06-01 13:30   좋아요 1 | URL
그렇게 많은 사람이 죽었는데도, 국민이 다 보는 앞에서.... 그렇게 허무하게 죽어갔는데도
사건에 대한 진실이 밝혀지기는 커녕, 조직적으로 은폐되는 걸 보면서, 무력감을 느낍니다.
눈에 보이는 명확한 사건에 대해서도 이렇게 밖에 대응하지 못하는데, 더 복잡한 문제들은 말할 것도 없지요. 평범한 사람들이 살기 어려운 세상이 되었어요. 브레이크가 없는 것 같아요.

수이 2016-06-02 16: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솔직히 아직 읽지 못하겠어요.

단발머리 2016-06-10 09:23   좋아요 0 | URL
읽으면 혈압이 많이 올라갑니다.
그래도..... 읽어야 할듯요... T.T
 
페미니즘의 개념들
(사)여성문화이론연구소 엮음 / 동녘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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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동수법

 

기본적 정의

선출직 공직에 여성의 수를 증가시키기 위해 프랑스 페미니스트들이 주도한 운동이다. (77)

 

1789년 프랑스 혁명기에 3신분Le tiers état을 저술했던 라파예트La Fayette는 프랑스 남성 시민들에게는 투표권을 부여했지만 여성들은 제외시켰다. 여성뿐만 아니라 문맹자, 빈민, 아이들, 정신병자, 외국인들을 함께 제외시켰다. 교육받지 못한 문맹자와 빈민은 무식해서 공적인 판단을 내릴 수 없다는 이유로 배제되었다. 하지만 이들 이등 시민은 위상이 바뀔 수 있었다. 예를 들어 아이는 자라서 성인이 된다. 빈민은 재산을 축적해 부자가 될 수 있고, 문맹자는 글을 배우고 읽어서 유식해질 수 있다. 정신병자는 병이 치유될 수 있고, 외국인은 프랑스 시민이 될 수도 있다. 하자만 여성은? 한 번 여성이면 영원히 여성으로 남는다. 그러니까 여성에게는 영원히 정치적 권리가 박탈된 셈이었다. (<남녀동수법>, 임옥희, 78)

 

남녀동수운동movement pour la parite은 선출직 공직에 여성의 수를 증가시키기 위해 프랑스 페미니스트들이 주도한 운동이었다. 그들의 목표는 200066일 법으로 인해 일부 현실화되었다. 이 법은 거의 모든 선출직 공직에서 전체 후보자의 절반이 여성이어야 할 것을 요구했다. (80)

 

여기에 남녀동수법의 혁명적인 성격이 드러난다. 남녀동수주의자들은 평등에 바탕해 남성 인간을 추상적이고 중립적인 것으로 설정할 채 그런 추상성에 여성도 도달하려고 하거나(평등주의) 아니면 차이에 바탕해 여성성이라는 분리된 구현체(성차주의)에 도달하려고 애쓰지 않았다. 그 대신 추상적 개인 그 자체에 이미 여성이 있다고 주장한다. 간단히 말하자면 인간은 남성여성으로 구성된다는 것이다. .... 그런 맥락에서 남녀동수의 근본적인 주장은 엄밀히 말하자면 보편주의에 바탕을 둔 것이었다. (86)

 

우리 시대 페미니즘 입문자들과 페미니스트들에게 요긴하게 필요하다는 이 책은 사전 순서와 같이 가나다순으로 엮여 있어 그때그때 참고하고자 하는 개념들을 찾아보기 쉽다. 아는 게 없기 때문에 가부장제, 감정노동, 글로벌라이제이션의 ㄱㄴㄷ 순으로 읽고 있는데, 비교적 쉬운 부분과 어려운 부분이 섞여 있다. 일테면, ‘가부장제’, ‘“나는 페미니스트는 아니지만증후군등은 쉽고 재미있지만, ‘글로벌라이제이션’, ‘문화유물론’, ‘생존 회로등은 페미니즘에 대해 알려고 하는데 이런 것까지 알아야 돼요?’라고 묻고 싶다. 아무에게나.

남녀동수법은 정의 그 자체로서 이해하기 쉽다. 이해가 잘 안 된다면 그건 그 개념 자체가 어렵다기 보다는 수긍할 수 없다는, 혹은 수긍하기 싫다는 뜻일 것이다. 남녀동수법의 전제는 인간은 남성여성으로 구성된다는 것이다. 인간이 남성과 여성으로 구성된다는 걸 인정한다면, 하나의 인간이 남성 혹은 여성이라는 걸 인정한다면 남녀동수법의 이해와 적용은 어렵지 않다. (인간을 남성 혹은 여성으로만 나눌 수 있다는 인식과 성소수자에 대한 논의는 이 사안과 별개로 한다.)

문제는 인간을 남성과 여성으로 나누지 않고, 지금껏 인간인 남성과 여성으로 나누었다는 데 있다. 여성이 남성과 똑같은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인간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을 때,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할 때, 사회가 문화가 국가가 그것을 강요할 때, 여성은 2등 시민, 2등 인간으로 살아야한다. 오랜 시간 사회와 문화와 국가의 말을 믿었고, 배운 대로 들은 대로 그렇게 살았다. 그대로 생각하고 말했다. 하지만, 이젠 아니다.

이제 곧 좋은 시절이 오게 될 거라고, 나는 믿는다. 아주 가까운 시기는 아니겠지만, 2013년 프랑스의 사회당 올랭드 정부처럼 한국의 내각도 남녀동수로 구성될 날이 곧 오게 될 거라고, 그리고 그러한 변화와 변혁을 멈출 수는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적어도 엄마장관님은 제 몸 하나 가누지 못하면서 엄마와 떨어져 기관에 가야하는 아이들의 다층적 어려움과 13역 워킹망들의 말 못할 고충을, 조금은 더 자세히, 더 실질적으로 알 수 있지 않겠는가. 그녀와 그녀의 가족을 위한 정책, 아이들과 엄마들과 그리고 그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어 하는 아빠들을 위한 친보육’, ‘친가정’, ‘친행복정책들이 조금 더 나오지 않겠는가, 하는 긍정적인 생각을 혼자 해 본다. 먼 훗날 이루어질 핑크빛 바람이라 말할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허튼 바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가정에서부터 시작해 남녀동수로 인한 사회적, 국가적 에너지의 1+1 시너지효과가 한껏 발휘될 수 있을거라고 믿는다. ‘여성이라는 인류가 남성이라는 인류와 같은 지위와 처우를 받게 되는 날, 여성과 남성 모두 행복해지는 날, 그런 날이 올 수도 있을 거라, 난 믿는다. (들어가는 말, 5)

기다려라, 남녀동수법.

우리가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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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집을 하시겠습니까 - 가고 싶은 카페에는 좋은 커피가 있다
구대회 지음 / 달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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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모카만 마시던 시절이 있었다. 에스프레소와 우유, 초코시럽과 휘핑크림의 달콤한 맛이 어우러진 카페모카가 맛있었다. 커피를 그리 좋아하지 않지만 마시게 되면 아메리카노만 마신다는 어떤 사람은 커피의 참맛은 아메리카노에 있다며 카페 모카만 고집하는 나를 커피맛도 모르며 커피 마시는 사람이라 했다. 요즘엔 나도 가끔씩 아메리카노를 마시는데, 이름이 기억나지 않은 대학로 커피숍에서 맛보았던 아이스 아메리카노 때문이다. 내가 카페 모카만 마신다는 걸 알고 있는 친한 동생이 여기 아메리카노를 꼭 마셔봐야 한다 해서, 그 애의 간곡한 주문 때문에 나도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주문했다. 색다른 느낌이었는데, 그 애의 설명처럼 갓 볶은 좋은 원두를 사용해서 그런가, 아메리카노가 고소하고 향긋한 보리차 같았다. (고소하고 향긋한 보리차가 내게는 맛있는 차의 최상급인가보다). 그 후로는 나도 여름에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신다. 아이스 카페 모카와 아이스 카페라떼, 아이스 카라멜 마끼아또와 아이스 녹차라떼를 뒤로하고 말이다. 아이스 아메리카노의 계절이다.

이 책을 읽는 내내 커피를 마시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혔다. 카페모카, 카페라떼,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계속해서 생각났다. 사실 나는 맛나게 마실 줄만 알았지, 실제로 각종 원두별로 독특한 커피맛의 차이를 알지 못한다.

 

전동 그라인더가 없어 이상하다 생각했는데, 주인장은 커피 통에서 미리 갈아놓은 커피 가루를 한 스푼 떠서 포터필터에 담았다. 탬핑도 하지 않고 바로 머신에 장착하고는 손으로 레버를 내렸다. 이윽고 추출되는 진한 갈색의 에스프레소는 보기만 해도 그 향과 맛이 전해지는 듯하였다. 머신이 구형이라 크레마는 두텁게 추출되지 않았다. (26)

 

그라인더는 어떻게 생겼는지, 포터필터는 또 어떤지 나는 잘 모른다. 탬핑 동작은 대체 그러하다고 여겨지는 동작이라 예상할 뿐이고, 크레마는 그림 혹은 사진에서 보았던 갈색의 커피 뭉게 구름일거라 생각한다.

내게는 이렇게나 멀고도 먼 커피의 세계. 그 세계를 넘나드는 저자의 커피 사랑이 여기저기서 속속들이 펼쳐진다. 예술의 경지에까지 이른 커피맛을 몸소 느끼기 위해 콜롬비아, 쿠바, 베트남, 오스트리아, 모로코, 칠레 등의 카페를 방문하고, 커피에 대해 더 자세히 알기 위해 전 세계 커피 원산지와 커피 농장을 방문한 이야기들은 찰지고 재미있다.

 

 

사랑이 지극하면 어떤 일이 생길까. 지극한 커피 사랑에 취한(?) 지은이는 커피 사업을 통해 강연 등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기도 한다. 카페를 오픈하고 나서는 손님이 스스로 찾아오기를 기다리는 소극적인 자세가 아니라, 싸고 맛있는 커피를 파격적인 가격으로 제공하면서 주위 사람들에게 커피를 알리고 카페를 알리면서 이를 통해 수익을 창출한다.

 

 

특히, 마음에 들었던 것은 매일 1(군인), 12(경찰관), 15(교사), 19(소방관)에 해당하는 직업인에 한해 메뉴 주문시 사이즈를 무료로 업그레이드 해주고, 1년에 하루 네 가지 직업의 기념일(국군의 날, 경찰의 날, 스승의 날, 소방의 날)에는 커피 한 잔을 무료로 제공하는 것이었다.(153) 더불어 <구대회 커피>에 배송을 오는 택배기사님들에게는 8월 한 달간 매일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씩을 제공하고 있다고 한다.(154)

사람이 직업을 가지고 생활을 이어갈 때에는 경제적인 의미가 적지 않다. 장사가 되어야, 이익을 창출해야 계속해서 그 일을 해 나갈 수 있다. 그런데, 지은이는 무료로 커피를 제공하는 작으면서도 의미 있는 일을 통해 다른 사람에게도 커피를 통한 기쁨을 전해 준다고 하니, 말 그대로 따뜻하고 착한 커피 전도사.

카페 모카에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로 커피 메뉴는 바뀌었지만 나의 커피 사랑은 계속될 듯하다. 커피 사랑에 불을 지피는 이런 멋진 책을 읽었으니 말이다.

바로 지금, 따뜻한 커피 한 잔이 간절한데, 핸드메이드 가내 수공업 커피는 아무래도 사양하고 싶다. 새로 오픈한 알라딘 중고서점에서의 여유로웠던 한 때를 기억하며 아쉬움을 달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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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온 2016-05-25 15: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매일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커피를 먹죠. 제가 직접 볶아 갈은 커피 ^^ 들어간 것은 물 밖에 없어도 단맛이 납니다 ㅎㅎ

단발머리 2016-05-26 17:52   좋아요 1 | URL
앗! 신갈나무님의 커피는 저의 핸드메이드 카누와는 격이 다르군요.
물 밖에 없어도 단맛이 나는 커피라니.... 에구... 부럽습니다^^

수퍼남매맘 2016-05-25 18: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가 좋아하는 로알드 달의 ˝ 마녀를 잡아라˝ 가 보여 반갑습니다.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우리나라 사람들만 즐겨 먹는 메뉴라고 ˝수요미식회˝ 에서 들은 기억이 있어요 . 서양에서는 커피에 얼음을 넣어 먹는다는 건 있을 수 없다고 ...겨울에도 아이스 아메리카노 먹는 사람 보며 신기해하는 일인이에요 .

단발머리 2016-05-26 17:53   좋아요 0 | URL
저도 로알드 달 아주 좋아하는데 <마녀를 잡아라>는 아직 안 읽었어요.
알라딘 중고서점에서 완전 새거같은 중고라 얼른 집어 왔는데, 읽어야할 어린이가 그림이 마음에 안 든다고... 하네요.

수퍼남매맘님 말씀 듣고 보니 그런것 같아요. 정말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우리나라 특허 상품일까요? ㅎㅎ

2016-05-25 18: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로알드 달 ㅎㅎㅎ
커피집 같이 가요~~~~♡

단발머리 2016-05-26 17:54   좋아요 0 | URL
꼭이요~~~
맹세, 약속 그리고 다짐^^

2016-05-25 21: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5-25 23:1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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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5-26 06:3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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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5-26 08:4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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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조기후 2016-05-25 22: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커피 패턴은 단 거에서 안 단 거로 꾸준히 바뀌어온 거 같아요. 아메리카노에 안착한 이후로 다른 종류는 거의 안 마셨는데 요즘은 새삼 라떼에 꽂혀가지고 거의 매일 한 잔씩 마시네요. 밖에서도 그렇고 집에서 먹을 때도 커피 내리고 우유 후루룩 끓여서 부어 먹거나 귀찮으면 찬우유 넣어서 간단하게 만들어 먹는데 그냥 그 단순한 맛이 은근 중독성 강하더라고요. 어제 투썸에서 라지사이즈로 두 잔이나 마셨더니-_- 오늘은 좀 어지러워서 하루 걸렀네요. ㅎㅎㅎ

단발머리 2016-05-26 17:57   좋아요 0 | URL
ㅎㅎㅎ 저도 여름엔 아이스 아메리카노 마시는데, 그 외 계절엔 따뜻한 라떼예요.
그러니까 저는 모카-아메리카노-바닐라라떼-라떼로 거쳐왔다고 할 수 있네요.

라지사이즈로 두 잔이나 드셨군요. 저는... 커피를 좋아하는 저는...
카페인에 대한 반응이 강해서요. 보통은 샷을 반만 넣어달라고 해요. 라떼도 물론, 반샷만 넣어요.
투샷인 경우에는 한샷만 넣고요.
커피를 오래오래 마시고 싶어요. 그래서 조금씩 조금씩 아껴먹고 있어요. 아.... 갑자기 슬픈.... ㅎㅎㅎ

나이니 2016-05-25 22: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나몬 향 때문인지 풍부한 우유 거품의 부드러움 때문인지 한 때 카푸치노만 고집하며 마시던 일이 생각나는 글입니다. 대학로 커피집 이름이 궁금해지네요~^^

단발머리 2016-05-26 18:01   좋아요 0 | URL
네... 카푸치노도 좋지요.
저는 카페인 반응이 좀 강한 편이라 몇 분께 여쭤봤거든요.
라떼가 연하냐, 카푸치노가 연하냐~~ 그랬더니, 그래도 보통은 라떼가 좀 더 연하다고 하시더라구요.
그래서 요즘엔 라떼를 많이 마십니다.

대학로 커피집은 마침 그 동생이 어제 저희집에 놀러와서요. 물어봤더니 대학로 그 집은 없어졌다고 하네요.
커피숍 이름은 <디초콜릿카페>라고 하네요. 수제초콜릿전문인데 커피도 맛있다는...ㅎㅎㅎㅎ
 
나는 커서 문학동네 시인선 81
김현서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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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커서

                                                           

                                                               김현서 

 

 

나는 커서 눈 밑의 반점

나는 커서 선물 상자

나는 커서 빨강 머리 소녀

 

나는 커서 잠이 깼을 때

나는 커서 죽은 지 6년 된 굴참나무

나는 커서 밑동에서 자라난 독버섯

나는 커서 방문을 열고 나갔지

 

나는 커서 깜빡거리는 별똥별

나는 커서 피아노

나는 커서 외발 당나귀와 길을 걸었지

 

나는 커서 눈을 감고 생각했지

나는 커서 까만 털에 붙어사는 이상한 벌레

...

 

나는 커서 알게 되었지

나는 커서 사라진 토끼

 

 

 

 

커서 뭐가 되겠다고 많이 생각하지 않았다. 생각할 필요가 없었고, 그래야한다고 말해주는 어른도 없었다. 초등학교 졸업 전에 이미 어른만큼 커버렸다. 나도 모르게 훌쩍 커버리고 나니 그 다음엔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게 돼버렸다. 진짜 크고 나서야, 엄마라는 이름, 며느리라는 이름을 갖고 나서야, 그제서야 제대로 크고 싶다는, 바르게 커야겠다는 생각을, 말 그대로 뒤늦게 하게됐다.

이 시집의 시가 다 마음에 와닿지는 않았는데, 시집 한 가운데에 자리한 이 시가 참 좋았다. 32행의 나는 커서 피아노가 특히 좋다. 마음에 쏙 든다.

나는 커서 피아노.

요즘엔 키보드나 신디사이저도 좋은 제품이 많아 터치감이 좋다고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피아노의 터치감에는 못 미치는 것 같다. 묵직한 피아노의 터치. 항상 그 자리에 앉아 누군가 연주해주길 기다리는 피아노. 그 곳이 어디든 스스로 자리한 그 모습 그대로 우아한 기품을 품기는 피아노. 특별한 훈련과 연습이 필요한 바이올린이나 플릇과 달리 아무나 와서 건반을 누르면 건반 그대로의 소리를 들려주는 피아노. 소리를 내 주는 피아노. 노래하고 연주하고 두드리고 만지고. 이 모든 것이 가능한 피아노.



나는 피아노

나는 커서 피아노

나는 커서

피아노가 될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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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6-05-10 14: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희 집에 있는 키보드는 피아노 건반 개수에 두 세 개 모자릅니다. 그래서 높은 옥타브의 음을 연주할 수 없어요. 키보드를 장만하려면 피아노 건반 개수와 비슷한 걸로 사야 해요. ^^

단발머리 2016-05-10 14:16   좋아요 0 | URL
cyrus님도 피아노 연주하시는군요.
키보드는 아무래도 피아노보다는 건반 수가 작지요.
저는 최근에 신디 구입할 때, 나는 다 필요해요!! 라고 우겨서 88건반으로 구입했는데, 문제는 무게예요.
너무 무거워서 한 번 움직이려면 온 가족 동원입니다. ㅎㅎ

cyrus 2016-05-10 14:18   좋아요 0 | URL
생각해보니까 피아노 건반 개수가 비슷한 키보드는 없을 거 같아요. 단발머리님처럼 신디사이저를 장만해야겠어요. ^^

단발머리 2016-05-10 14:35   좋아요 1 | URL
다른 건 잘 모르지만, 피아노 소리, 말 그대로 기본소리가 예쁜 걸 찾으신다면,
제가 구입한 커즈와일 추천합니다.
사실 야마하가 좋기는 하지만 가격이 만만치 않구요.ㅎㅎ

cyrus 2016-05-10 14:39   좋아요 0 | URL
좋은 정보 알려주셔서 고맙습니다. 단발머리님 말씀 꼭 기억해두겠습니다. ^^

단발머리 2016-05-10 14:42   좋아요 0 | URL
헤헤....
나중에 cyrus님 연주 듣게 되는 건가요? 기대하고 기다립니다^^

cyrus 2016-05-10 14:44   좋아요 0 | URL
연습을 엄청 많이 해야됩니다. ㅎㅎㅎ 중학생 때부터 키보드 건반을 멀리 했어요. 그 대신 컴퓨터 키보드를 열심히 두드렸어요. ^^

단발머리 2016-05-10 15:52   좋아요 0 | URL
중학생 때부터라면 정말 연습하셔야겠네요. 연습 많이 하셔가지고~~~ ㅎㅎ
다행이라면 둘 다 키보드라는 거네요.
컴퓨터 키보드도 손가락을 부지런히 움직여야 되니까, 금방 실력 회복하실듯 해요^^

2016-05-10 14: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나는 커서 나무

단발머리 2016-05-10 15:05   좋아요 0 | URL
나는 커서 피아노. 띠리링~~~~^^

꿈꾸는섬 2016-05-10 17: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 딸이 좋아하겠어요.

나는 커서 피아노....

단발머리 2016-05-11 08:11   좋아요 0 | URL
자매품으로
나는 커서 바이올린
나는 커서 플릇.도 있습니다 ㅎㅎㅎ

쟈스민 2016-05-11 0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야마하 p115 추천이요~~^^ 가격도 착하고 공간도 많이 차지 하지 않고 무엇보다 소리가 너무너무 좋아요^^

단발머리 2016-05-11 08:10   좋아요 0 | URL
아하~~ 슈기님 감사해요~
저도 정보 없이 급하게 구입하게 되서 사실 잘 몰랐구요. 야마하는 가격 때문에 부담됐는데 다음에는 야마하 p115도 고려해봐야겠어요~~~^^

쟈스민 2016-05-11 08: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나름 이분야 전문가라 ㅎㅎ 아이가 피아노 연습 하기에도 너무 좋은 악기에요^^ 좋은 하루 되세요^^*

단발머리 2016-05-11 08:15   좋아요 0 | URL
그러시군요~~ 반가워요, 슈기님~ 저는 전문가는 아니지만 일주일에 한두번은 신디를 연주해야해서 이 쪽으로 관심이 많아요. 앞으로도 자주 뵈어요^^

수이 2016-05-12 09: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는 커서 훈염_

단발머리 2016-05-12 18:05   좋아요 0 | URL
아하... 넘 우아한 훈염의 자태
야나님은 커서 훈염~~ㅎㅎ

추억팔이소년 2016-05-15 17: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불과 2년 전까지는 뉴에이지나 게임 애니메이션 영화의 영향으로 연습하고 실력이 늘어가는 재미를 느꼈는데. 확실히 삶이 바빠지고 무수한 일들이 발생하는 요즘 추세에 따라 자연스레 손을 놓게 되었네요. 시간이 없어서 라는 말은 핑계라고도 하는데 예외도 있는 것 같습니다. :)

단발머리 2016-05-16 19:54   좋아요 0 | URL
좋아하는 영화의 주제곡을 연습하는게 쉽고 재미있게 실력을 늘릴 수 있는 좋은 방법이지요^^
많이 바빠지셔서 손을 놓게 되셨다니, 괜시리 저까지 아쉬운대요. ㅎㅎ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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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은 금기와 판단을 넘어서는 영역이다. 쉽게 한 마디로 이야기할 수 없다. 김영하가 그랬던가. 간단히 몇 개의 문장으로 요약되는 소설은 좋은 소설이 아니라고. 그건 나쁜 소설이라고. 동의한다.

다른 사람의 판단에만 의지해서 살 수는 없지만, 다른 사람의 의견을 마냥 무시하며 살 수도 없다. 하루키에 대한 세간의 평가는 극과 극이다. 일본 문단은 한결 같이 하루키를 냉대하고 무시했지만, 하루키는 이제 일본을 넘어 아시아, 미국, 전 세계에서 출간이 기대되는 베스트셀러 작가 중의 하나가 되고야 말았다. 하루키를 좋아한다는 말을 작가들이 내놓고 하기 부끄러워했다는 얘기가 종종 들려오지만, 평일 오전 시간에 사람들을 광화문 교보문고에 줄세울 수 있는 작가로서 유일하다는 이야기 또한 들려온다. 이제는 노벨문학상도 기대해 볼 수 있지 않나,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결국 하루키의 작품이라는 건 고급 포르노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라고 간단히 정리하는 사람도 있다(내가 좋아하는 사람, 강아무개). 하루키의 많은 작품 중에서 상실의 시대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만 읽었기 때문에 잘 모르겠지만, 내가 느끼는 하루키만의 특이점은 성적인 면에 대한 묘사가 불편하게 읽힌다는 점과 우유부단한 남자 주인공이 매력적으로 느껴진다는 거다.

소설을 읽을 때마다 항상 주인공=작가,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또 생각하는데, 이런 구절이 있었다.

 

일인칭 소설을 쓸 때, 많은 경우 나는 주인공인(혹은 화자인) ‘를 대략 넓은 의미에서 가능성으로서의 나 자신으로 인식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실제의 나는 아니지만 장소나 시간이 바뀐다면 어쩌면 이렇게 되었을지도 모르는 나 자신의 모습입니다. 그런 형태로 가지를 쳐나가면서 나는 나 자신을 분할하고 있었다는 얘기인지도 모릅니다. (246)

 

그렇다면, 우유부단하지만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소설 속의 남자 주인공들은 어느 정도 작가를 투영하고 있다 판단해도 되겠다. 그럼에도 나는 하루키의 소설 속 남자주인공들보다 하루키가 더 좋은데, 그건 이런 구절 때문이다.

 

이사크 디네센은 나는 희망도 절망도 없이 매일매일 조금씩 씁니다라고 했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나는 매일매일 20매의 원고를 씁니다. 아주 담담하게. ‘희망도 절망도 없다는 것은 실로 훌륭한 표현입니다. 아침 일찍 일어나 커피를 내리고 네 시간이나 다섯 시간, 책상을 마주합니다. 하루에 20매의 원고를 쓰면 한 달에 600매를 쓸 수 있습니다. 단순 계산하면 반년에 3,600매를 쓰게 됩니다. (151)

 

어쨌거나 작가에 대해 그런 반세속적인 이상상을 원하시는 분께는 참으로 죄송하지만, 그리고누차 되풀이하는 것 같지만어디까지나 나로서는 그렇다는 얘기지만, 육체적으로 절제하는 것은 소설가를 지속해나가기 위해서는 불가결한 일입니다. (194)

 

하지만 그런 게 아니라면, 즉 당신이 (안타깝지만) 희유의 천재가 아니라 자신이 가진 (많든 적든 한정된) 재능을 시간을 들여 조금이라도 높이고 힘찬 것으로 만들어가기를 희망한다면, 내 이론은 나름대로 유효성을 발휘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의지를 최대한 강고하게 할 것, 또한 동시에 그 의지의 본거지인 신체를 최대한 건강하게, 최대한 튼튼하게, 최대한 지장 없는 상태로 정비하고 유지할 것그것은 곧 당신의 삶의 방식 그 자체의 퀄리티를 종합적으로 균형 있게 위로 끌어올리는 일로 이어집니다. (200)

 

사람이 어떻게 매일 똑같이 살 수 있겠나. 저번주에는 아이들 봄방학이어서, 중학생은 수요일부터, 초등생은 목요일부터 어제까지 장장 4-5일을 학교에 가지 않았다. 계획을 세워놓지 않아 여행을 가기에는 그렇고, 어버이날도 있고 해서 멀리 갈 수 없었다. 집에만 있으면 핸드폰과 뽀뽀하며 등으로 거실 바닥청소할 게 뻔하기에 나가기 싫다는 애들의 등을 떠밀고 밖으로 나갔다. 규칙적인 생활,이라는 게 쉽게 않다. 항상 소소한 일이 생기고, 신경이 쓰이고, 만나고, 헤어지고, 화를 내고 화해를 한다. 그 와중에도 자신의 일을, 정해진 시간에 꿋꿋히 해나가는 건 정말 대단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소설가, 보통 생각하는 예술가로서의 소설가라기 보다는 기술자로서의 소설가로 느껴진다.

 

아침 일찍 일어나 커피를 내리고 네 시간이나 다섯 시간, 책상을 마주합니다.

 

에서는 장인의 품격을 느낀다. 책상을 마주하고 유투브에서 음악을 듣거나, 팟캐스트(요즘 나의 페이버릿은 정봉주의 전국구’)를 듣거나, 책을 읽거나 하는 건 그래도 쉬운 일. 네 시간이나 다섯 시간 책상을 마주하고 앉아 보이지 않는 세계를 창조한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닐테다. 이 어려운 일을 희망도 절망도 없이 담담하게’, 그것도 매일 해나간다는 건 정말 대단한 일이다. 쓴다는 것, 쓰고 있다는 그 사실 만으로도 칭찬받아야 한다.

쉽게 성공한 사람의 이야기는 재미가 없다. 주어진 것을 가지고 있어서, 가지고만 있어서 얻게 되는 기쁨이란 건 크게 부럽지 않다. 진구 구장에서 다카하시가 던진 제1구를 힐턴이 깔끔하게 띄워 올려 2루타를 쳤을 때, 하루키는 그래, 나도 소설을 쓸 수 있을지 모른다라고 생각했다. 소설을 썼고, 그리고 소설을 출판사에 보냈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렸다. <군조> 신인상을 수상했고, 그리고 소설가가 되었다. 간절히 원하지 않았는데도, 마음을 다해 갈망하지 않았는데도 그에게는 이런 일이 이렇게도 쉬웠나. 나는 아주 작게 속으로만, ‘!’했다.

하지만, 그의 말 그대로 소설이라는 장르는 누구라도 마음만 먹으면 쉽게 진입할 수 있는 프로레슬링 같은 것이다(16). 링에 오르기는 쉬워도 거기서 오래 버티는 건 쉽지 않다. 30년 이상 소설을 쓰고, 게다가 재미있는 소설을 쓰고, 자신을 투영한 주인공을 만들고, 그리고 아침마다 커피를 내리고 네 시간, 다섯 시간 책상을 마주하는 하루키가 특별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링에 오를 수 있었던 건 그가 잡은 행운이었을지 모르지만, 지금까지 현역으로 뛸 수 있는 건 불굴의 노력 때문이다.  

이제 제일 좋아하는 구절이 남았다.

 

내가 오랜 세월에 걸쳐 가장 소중히 여겨온 것은(그리고 지금도 가장 소중히 여기는 것은) ‘나는 어떤 특별한 힘에 의해 소설을 쓸 기회를 부여받은 것이다라는 솔직한 인식입니다. 그리고 나는 어떻게든 그 기회를 붙잡았고, 또한 적지 않은 행운의 덕도 있어서 이렇게 소설가가 됐습니다. 어디까지나 결과적인 얘기지만, 나에게는 그런 자격이 누구에게서인지는 모르겠으나 주어진 것입니다. 나로서는 일이 그렇게 된 것에 대해 그저 솔직히 감사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내게 주어진 자격을 마치 상처 입은 비둘기를 지켜주듯이 소중히 지켜나가면서 지금도 이렇게 소설을 계속 쓸 수 있다는 것을 일단 기뻐하고 싶습니다. 그다음 일은 또 그다음 일입니다. (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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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5-09 17: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설은 서너권 에세이는 대여섯권 읽은 것 같아요. 팬도 안티도 아니지만 그의 라이프 스타일을 좋아해요 후훗~

단발머리 2016-05-10 13:59   좋아요 0 | URL
저는 막 찾아서 읽지는 않고 또 사실 읽다가 포기한 작품도 있어서요.
팬이라 할 수는 없는데, 관심이 가는 작가이기는 해요.
소설가 중에서도 좀 특별한 느낌이 있지요.
달리기, 수영, 건강 캐릭터? ㅎㅎ 이런 것들이요^^

2016-05-10 14:28   좋아요 0 | URL
전 와인.섬.뜨내기? ㅎㅎ 이런 것들요^^

단발머리 2016-05-10 14:32   좋아요 0 | URL
오호~~ 저두 그거 좋은대요, 뜨내기요.
그럼 저는 달리기.커피.뜨내기. 요렇게 할께요.

이거 주문하는 거 맞지요? ㅎㅎㅎ

2016-05-11 22: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5-12 18:08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