팻걸 선언 미래인 청소년 걸작선 13
수잔 보트 지음, 김선희 옮김 / 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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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제이미는 뚱뚱한 정도가 아니라 말 그대로 팻걸(THE Fat Girl)이다.

핫칙스(Hotchix) 매장에서는 맞은편 부인복 매장으로 가보라는 점원들의 차가운 응대와 맞서야 하고, 학교 연극반에서는 서쪽 마녀를 비롯한 모든 악녀를 도맡아한다. 대학입학시험 준비도 해야 하고, 장학금을 타기 위해 학교 신문에 <팻걸선언>이라는 새로운 연재기사도 써야 해서 바쁘고 빡센 고3 생활이 눈앞에 선하다.

뭔가를 감추려는 듯한 남자친구 버크를 으르고 협박해서 듣게 된 소식은 변심했다는 말보다 더 청천벽력. 팻보이 남친이 생명의 위협을 무릎 쓰고 체중 감량을 위해 위 접합수술을 받기로 한 것이다. 뚱보 뚜엣으로 남자친구를 믿고 의지했던 제이미는 버크의 수술을 기다리며 두 가지 감정에 휩싸인다. 위험한 수술로 버크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버크처럼 수술을 받고 싶지만 가정 형편 때문에 수술을 받을 수 없는 자신의 처지에 대한 안타까움이 바로 그것이다.

한편 뚱뚱하게 살 권리에 대한 <팻걸선언>은 지역신문에도 소개되는 인기를 누리게 되고, 전국 단위의 방송사에서도 인터뷰 요청을 받기에 이른다. 하지만, 당차고 야무진 그녀의 주장은 건강의 위협 요소인 비만을 옹호한다는 방송국의 악의적 방송으로 오해를 받게 되고 제이미는 위기에 처한다.

 

선택.

내가 뚱뚱하기로 선택했던가?

아주 어린 소녀 시절부터 평생 비만으로 살아가기로 선택했단 말인가?

매일매일, 의식적으로 뚱뚱한 몸을 유지하기 위해 무얼 먹을지 선택한단 말인가?

잘 모르겠다. 그럴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

선택에 대해 더 잘 자각하는 것만이 내가 유일하게 할 수 있는 거다. 내가 초래한 파문이 나를 익사시키려 할 때, 투덜거리며 낑낑거리지 않아야 한다. 물살을 더욱 잘 헤쳐 나가는 법을 익혀야 한다. 그리고 뒤돌아보며, 은밀하게 선택하는 나 자신을 파악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277)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삶에 대해 쉽게 이야기하는 경향이 있는데, 뚱뚱한 사람들 중 어느 누구도 비만으로 살기선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선택하지 않은 삶에 대해 비난하는 것은 비겁한 일이다. 선택이라면 더욱 그렇다. 어떤 사람이 어떤 삶을 사는가 하는 것은 전적으로 그 사람의 자유로운 선택이다. 그 삶이 다른 사람의 자유와 행복을 침해하지 않는다면, 그 사람의 선택은 존중받아야 한다. 자신의 선택 때문에 무시당해서는 안 되고, 경멸 받아서도 안 된다. 제이미를 위한답시고 의사들이, 가족들이, 친구들이, 선생님들이 하는 말들은 모두 제이미에게 상처를 주는 말들이다. 건강을 위해, 아름다운 외모를 위해, 대학 입학을 위해 살을 빼라, 살을 빼려고 노력하라,는 사람들의 말은 제이미에게 가해지는 명백한 폭력이다.

이제는 변해버린 모습, 날씬해진 자신의 모습에만 관심을 갖는 버크에 대해 제이미는 왠지 모를 소외감을 느끼고, 채찍을 휘두르며 서쪽마녀 에블린을 연기하는 그녀를 보러온 히스에게 느끼는 감정이 무엇인지 혼란스러워한다.

날씬해진 남친 버크, 좋은 냄새 편집부장 히스.

다정한 남친 버크, 매력적인 남자 히스.

사랑해~라고 말하는 남친. 너 정말 멋져~라고 말하는 히스.

제이미의 선택은?

 

키스를 끝낸 뒤에도, 우리는 오래도록 서로를 놓아주지 않았다. 이제 동굴은 하나의 섬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 섬에 살고 있는 유일한 사람들이다. 세상의 모든 마감시간과 옳고 그름 따윈 지옥에나 가라지.

이제, 이제 내가 무엇을 하든, 어떻게 하든 나는 욕을 먹을 거다. 하지만 아무래도 좋다. 만약 다시 시작할 수 있다면, 난 싸가지가 되지 않을 거다. 노노처럼 귀여워질 거다. 프레디처럼 각선미 있는 몸매를 가질 거다. 이상적인 제이미...... 온순하고 부드럽고, 받아들이기 쉬운 사람. (270)

 

이 책은 딸롱이 필독도서 목록에 들어있는 책이다. 필독도서를 찾아서 읽히지는 않았는데, 1년에 40여권 내외의 초등학생과는 달리, 중학생은 1년에 9권 정도라서 찾아서 읽어보라, 독서록도 좀 성의있게 써 보라, 잔소리를 하다가 나도 읽게 됐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아주 재미있게 읽었다.

뚱뚱해서 조금 힘들기는 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그것만으로 자신을 규정하는 것을 거부하는 팻걸, 부당한 대우에 이의를 제기하기 위해 불편한 비행기 여행을 감수하는 팻걸, 자신이 원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솔직하게 말할 줄 아는 팻걸.

그녀는 정말 멋지다.

 

평생 처음, 피곤하거나 두려움을 느끼지 않았다. 싸움을 시작하기도 전에 패배한 것 같은 느낌을 받지 않았다.

어쩌면 내가 나 자신에 대해 솔직해졌기 때문일지도.

좋은 친구들이 있어서일지도.

히스 때문일지도.

또는 내 선택에 대해 더 잘 알게 되었기 때문일지도.

잘 모르겠다. 여전히 난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게 많다.

하지만 아무렴 어때?

내 선택을 믿고 끝까지 가보는 거다.

난 팻걸이니까. (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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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이 2016-08-18 20: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나도 팻걸❤️ 당당하게 살래요~

단발머리 2016-08-18 20:37   좋아요 1 | URL
그대는 팻걸은 아니지만~~~
당당하게 사는게 멋져요~~~ ㅎㅎ

다락방 2016-08-19 08: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거, 제가 읽어야 하는 책이군요!

단발머리 2016-08-19 08:17   좋아요 0 | URL
청소년도서라 주제를 무겁게 다루지도 않았고 통통 튀는 주인공 제이미가 매력적이기는 합니다.
다락방님은 자신이 원하는 걸 아는 멋진 사람이니까 패쑤하셔도 될듯요~~ ㅎㅎㅎ

cyrus 2016-08-19 16: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몸이 너무 뚱뚱하다, 너무 말랐다, 다른 사람의 체형 가지고 수군거리고 쓸데없이 걱정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요. ㅠㅠ

단발머리 2016-08-21 22:59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다른 사람에 대해 너무 쉽게 말해요.
저는 다른 사람 외모에 대해서는 이야기 하지는 않지만... 그치만....
급.... 혼자 반성 모드....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나와 세계 - 인류의 내일에 관한 중대한 질문
재레드 다이아몬드 지음, 강주헌 옮김 / 김영사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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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이 베스트셀러 중의 베스트셀러 , , 보다, 바로 이전 저서인 어제까지의 세계보다 더 나은 점을 딱 한 가지만 고르라고 한다면, 쉬운 내용과 짧은 분량 때문이라고 말해야겠다. 200쪽이 조금 넘은 분량에 비교적 이해하기 쉬운 내용이 편안하게 기술되어 있다. 물론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이 책의 문제의식이나 그에 대한 해답이 그렇게 간단하지는 않다.

관심 가는 몇 개의 챕터에 대해서만, 중학교 중간고사 사회 시험 준비하는 심정으로 대강의 내용을 정리해보면 이렇다.

 

1. 왜 어떤 국가는 부유하고 어떤 국가는 가난한가?

부유한 국가가 부유한 국가가 될 수 있게 하고, 가난한 나라가 가난한 나라가 되게 하는 두 가지 요인은 지리적 요인과 제도적 요인이다(25). 지리적 요인에 대해 살펴보자면, 적도에 가까울수록 토양의 비옥토가 낮은 박토이며, 유기물이 많아 농업 생산성이 매우 낮다. 공중 보건이 열악한 상황에서, 열대 지방에는 병원균이 많아 병에 걸리기가 쉽고, 또 열대성 질병 대부분이 재발성 질병이기 때문에 높은 사망률과 이환율(일정기간 내에서 이환자수의 특정인구에 대한 비율, 이병률 혹은 발병률이라고도 한다)을 보인다(31). 가난을 부채질하는 또 하나의 지리적 요인은 육지에 둘러싸인 입지 조건이며(37), 마지막 지리적 이유는 천연 자원의 저주라는 패러독스이다(38).

 

2. 제도적 요인이 국가의 빈부에 미치는 영향

살기 좋은 사회란 좋은 제도를 가진 사회를 말한다. 그렇다면 좋은 제도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역사학과 고고학 등 사회과학의 연구에서 밝혀졌듯이, 복잡한 제도의 발전은 궁극적으로 인구밀도가 높은 정주사회의 발전과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한편 정주사회는 농업의 출현으로 잉여 식량을 생산해 저장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따라서 복잡한 제도의 최종적인 궁극인은 농업이며, 다음의 궁극인으로는 저장할 수 있는 잉여식량을 확보하며 인구밀도가 높아진 정주사회를 꼽을 수 있을 것입니다.(63)

 

길들일 수 있는 야생식물, 야생동물이 집중된 지역 농업 발달 잉여 식량 발생, 높은 인구 밀도, 정주사회 왕족, 관료집단, 상인, 발명가등의 특수 계급 탄생 군장사회, 국가(중앙정부)

 

3. 중국은 세계 1위가 될 수 있는가?

중국이 이런 선두적 위치를 상실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중국인이 세계 전역으로 뻗어나가 세계를 정복하지 않고, 유럽인이 먼저 세계 곳곳으로 진출해 세계를 정복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

물론 그 이유를 나름대로 해석하는 여러 이론이 있기는 합니다. 내 생각에는 이른바 보물함대’ (treasure fleet)라 불리는 중국의 탐험대에 닥친 사건이 이 의문을 해결할 수 있는 중요한 단서인 듯합니다. (93)

통일된 제국의 단 한 명의 황제가 해외 원정에 필요한 결정을 독점한 중국과 달리, 여러 정치적 단위로 쪼개져 있던 유럽에서는 해양 원정대의 파견을 지시할 수 있는 황제, 왕과 대공 같은 명령권자가 다수였다. 지리적인 이유 때문에 쉽게 통일을 이룬 중국과 달리, 역시 지리적인 이유 때문에 통일 상태를 이루지 못한 유럽에서는 수십 개의 나라로 분할된 까닭에 수많은 군주가 수많은 실험을 시도할 수 있었다는 설명이다. 단 한 명의 결정으로 이미 선두의 위치를 점하고 있던 중국의 해양 원정은 중단되었고, 이탈리아의 탐험가 크리스토포로 콜롬보는 이탈리아의 군주와 프랑스 공작, 포르투갈 왕, 스페인 백작의 거절에도 불구하고, 스페인의 페르난도 2세와 이사벨 1세 부부를 설득한 끝에 범선을 지원받고 신세계를 발견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94).

 

6. 건강하게 삶의 질을 유지하며 오래 사는 법,에서는 이 문단이 기억에 남는다.

이탈리아인들은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서도 건강한 삶을 누릴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살아 있는 증거입니다. 올리브유와 생선과 채소가 주원료인 이탈리아의 전통적인 식단은 인류의 전통적인 식단과 무척 유사합니다. 이탈리아인들은 세계에서 가장 맛있는 요리를 즐기는 사람들입니다.(177)

우리나라 전통식도 인류의 전통 식단과 유사하다는 생각을 잠시 해보면서...

건강을 원한다면, 이탈리아식으로! 건강을 원한다면, 한식으로!

 

7. 세계가 직면한 중대한 문제들,에서는 이미 환경오염으로 인해 지구 온난화가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이런 심각한 기후변화를 중단시킬 수 있는 방법을 제안한다.

기후변화는 인간 활동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인간 활동을 줄이면 기후변화를 줄일 수 있습니다. 인간 활동을 줄이자는 것은 화석연료를 덜 태우고, 핵에너지(여기에서, 조금 엥?했는데, 일단은 넘어간다)와 재생 가능한 에너지로부터 더 많은 에너지를 얻자는 뜻입니다. 미국과 캐나다만이 이산화탄소 배출에 관한 쌍무협정을 맺어도 현재 배출량의 41퍼센트를 줄일 수 있습니다. 유럽연합과 인도와 일본이 다자간협정을 맺으면 현재 배출량의 60퍼센트를 줄일 수 있습니다. 결국 주된 장애물은 정치적 의지가 부족하다는 것입니다(190).

 

이 책의 가장 중요한 질문으로 나는 이 문장을 꼽는다.

당신은 언제, 어디에서 태어났는가

 

 

 

미국인과 한국인은 언제 어디에서나 이런 혜택을 누릴 수 있지만, 아이티나 르완다에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이런 혜택을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아이티인과 르완다인, 그 밖에도 수많은 국민이 한국인과 미국인만큼 똑똑하고 똑같은 정도로 열심히 일하지만 넉넉한 보수를 받지 못합니다. 그들은 자가용이나 지하철을 이용하지 못하고, 일터까지 걸어갑니다. 또한 자기가 직접 지은 주택이나 오두막에서 생활하며, 자신이 먹을 식량을 직접 재배합니다. 옷도 직접 지어 입거나, 아예 입고 지내지 않습니다. 건강관리와 치아관리는 꿈도 꾸지 못하고, 텔레비전과 영화 같은 대중오락물은 아예 존재하지 않습니다. (22)

 

나는 1970년대, 서울에서, 여자로 태어났다.

11녀의 장녀이고, 지금은 11남의 엄마다. 책을 좋아한다. 책읽기를 좋아한다. 커피를 좋아하고, 하이힐을 좋아한다. 짧은 치마를 즐겨 입고, 롱원피스를 자주 입는다. 백화점을 좋아하고... 좋아하고, 좋아하면서도, 가능하면 시장 골목 할머니의 물건을 사려고 자꾸 들여다본다. 스스로를 진보적이라고 생각하고, 우리 사회의 불균형이 어떤 방식으로 해소되어야 하는지에 대해 관심이 있다.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문제는 교육으로 인한, 교육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교복을 입고 와르르 쏟아져 나오는 아이들을 보면 세월호 생각에 고개를 숙인다. 현대를 사는 그리스도인의 삶이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해 자주 고민한다.

의식하지는 않지만 어쨌든 분단 조국에서 태어나, 끈질기고 오래된 전쟁의 위협 속에 살고 있다. 밤에도 낮처럼 밝다는 강남 한복판에서 여자라는 이유로 살인이 발생하는 나라에 살고 있으며, ‘그 사건은 여혐에 근거해 일어난 일이다라고 주장해도 살해의 위협은 느끼지 않을 정도의 사회에서 산다.

이러한 생각과 판단조차도, 정확히는 이러한 생각과 판단을 할 수 있는 상황조차도 내가 선택한 것이 아니다. 내가 페미니즘 관련 도서를 읽을 수 있는 건 그 책이 거기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페미니즘 도서를 찾아 읽을 수 있는 시대, 환경, 조건은 내가 선택한 것이 아니다. 나는 늦게 태어났고, 그리고 여러 가지 혜택을 무료로, 무상으로 누리고 있을 뿐이다.

나는 자랑할 것이 없는 삶을 살고 있지만. 실제의 내 삶은 그러하지만. 그래도 가끔은, 내가 가지고 있는 여러 가지 조건들 때문에 부끄럽다. 내가 받은 축복과 행운에 걸맞는 삶을 살아내고 있는가, 스스로에게 물을 때 말이다. 지금 치열하게 살고 있는가. 스스로에게 물어볼 때, 나는 항상 할 말을 찾지 못한다.

나는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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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공개 2016-07-13 15: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바로 엊그제 이 책을 읽었습니다. 리뷰를 쓰려고 하는데 단발머리님이 워낙 잘 정리해주셔서 안써도 될 것 같네요. ㅎㅎ 리뷰 잘 읽고 갑니다.

단발머리 2016-07-13 15:37   좋아요 0 | URL
두서없이 부족한 글인데 잘 정리했다고 칭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날이 많이 덥네요~
무덥지만 즐거운 오후 되시길요~
앞으로 자주 뵈어요^^

꿈꾸는섬 2016-07-19 22: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커피를 좋아하고 하이힐을 좋아하고 짧은 치마와 롱원피스를 즐겨 입는 단발머리님~^^ 진보적이고 사회문제에 관심을 가지며 스스로의 삶을 반추할 줄 아는 멋진 여자사람이란 생각이 드네요. 게다가 겸손까지 한 아름다운 단발머리님~^^

단발머리 2016-07-20 14:36   좋아요 0 | URL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갖고 스스로의 삶을 반추할 줄 아는 멋진 여자사람이 되는게 제 꿈 중의 하나이기는 합니다. 겸손과 겸양도요...
아름다운,은 어려울수도 있겠지만 롱원피스는 포기하지 않을테야요~~~~ ㅎㅎㅎ
 
악어 프로젝트 - 남자들만 모르는 성폭력과 새로운 페미니즘 푸른지식 그래픽로직 5
토마 마티외 지음, 맹슬기 옮김, 권김현영 외 / 푸른지식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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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으로 그려졌지만 악어의 생각을 가지고 있는 여자들의 한 마디, 한 마디는 희생자, 피해자들에게 2차 피해를 준다. 옷차림으로 여성임을 가릴 수 있는가. 성범죄는 밤에만 일어나는가. 여자는 집에만 있어야 하는가. 여자는 밤에 자기 마음대로 돌아다닐 수 없는가. 여자는 헤어진 남자 앞에서 다른 남자랑 춤출 수 없는가.

 

 

 

 

성폭력에 대항하는 전략 요약본.

 

    

 

성폭력 인식, 즉각 대응                                                    대결

본인과 희생자와의 안전에 유의, 사람들을 모음                      공권력과 같이 제어할 수 있는 사람에게 알림

가해자에게 따지는 건 우선순위가 아님,                               (경찰, 경비, 종업원, 교수 등등)

희생자의 잘못을 따지지 않음                                            가해자 주의를 분산해서 도망갈 기회를 줌

 

페미니즘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지면서 봇물 터지듯 나왔던 여러 여성들의 용기 있는 증언들을 들으면서, 읽으면서 얼마나 무서웠는지 모른다. 그들이 느꼈던 절망, 두려움은 모두 다 내 안에 있던 것들이다. 생기발랄한 소녀 시절과 나름 활짝 피었던 아가씨 시절, 그리고 아직은 젊은 아줌마로서 나는, 항상 그 두려움을 느끼며 산다. 늦은 밤, 놀다 놀다 하루를 넘겨 집으로 돌아오는 발걸음은 언제나 불안하다.

 

마지막으로 악어 이야기.

어떤 남성은 악어 프로젝트에 나오는 여성의 처지에 서볼 수 없었을 뿐더러, 왜 그렇게 해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들은 계속해서 남성층에 동일시하려 하며, 남성을 악어로 그린 것에 기분 상해했다. 그들은 여기에 표현된 것이 현실이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여기서 말하는 현실은 모든 남성이 실제로 성적 포식자라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여성의 관점에서는 좋은 남자와 공격자, 이렇게 두 가지 범주로 명확하게 나뉘지 않는다는 현실이다. 이 두 범주는 서로 만나고, 섞이고, 혼동된다. 모든 남성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이 범주에서 저 범주로 순식간에 옮겨갈 수 있다. (159)

 

그들은 우리가 강간, 폭력 그리고 아주 심각한 것을 이야기하는 동안에도 무언가를 느끼기는커녕 자신들의 에고를 보호하느라 바쁘다. 그 심리는 무엇일까? 그런 일이 자신들에게는 절대 일어나지 않으리라고 생각하는 걸까? (하지만 남성도 성폭력의 희생자가 될 수 있다.) 혹은 단순히 자신의 이미지를 보호하려는 걸까? 하지만 바로 이런 생각을 하는 것 자체가 악어의 모습인 것이다. 말하자면 타인의 필수적인 요구(특히 여성의 육체적 안전)보다도 남성이 자신의 요구와 욕망(예를 들어 좋은 이미지를 갖고 싶어 하는 욕망)을 독단적으로 상대방에게 들이미는 행동은 악어의 그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악어 프로젝트에서 수많은 여성이 진술한 이야기의 핵심이다. (161)

 

딸아이 공개 수업에 갔다. 여중, 여고, 여대를 나왔기 때문에 나에게 남자 친구라는 건, 아무리 노력해도 남자인 친구. 그들의 의도건, 혹 나의 의도건 이성적인 감정이 완전히 배제될 수가 없다. 나에겐 그런 남자 친구들만 있다. 음악 실에는 세 개의 책상이 서로 마주보는 형태로 배열되어 있었는데, 딸아이의 짝궁은 여자아이였다. 딸아이 맞은편에 남자아이가 앉아 있었고, 딸아이의 뒤에도 남자아이였다. 그렇게 등을 대고, 마주 보고 앉아 수업을 듣는다. 중학교 1학년 아이들 36명이 뿜어내는 열기를 한 교실에서 다 감당할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 줄 아는가. 그 재미없는 음악 이론 수업, 종묘 제례악 수업도 아이들과 함께 들으면 그냥 마냥 웃을 일 밖에 없다. 딸아이에게는 남자아이들도 친구다. 나처럼 남자라는 말을 붙일 필요가 없이, 그 애들도 그냥 친구다.

그 친구들이 얼마 전에는 둘이 한 의자에 겹쳐 앉아서는 무엇을 뜻하는지가 명확한 기묘한 신음 소리를 내며 히히덕거렸다는 거다. 딸아이의 이야기를 듣던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고, 그래서 너 어떻게 했니? 하고 물었다. 딸아이는 니네 뭐야! 저리 가! 라고 말했다는데, 복도로 쫓겨난 남자 아이들은 거기서도 계속해서 즐겁게 히히덕거렸다는 거다.

같이 밥 먹고, 같이 공부하고, 같이 땀 흘리고, 같이 성장하는 친구들. 친구이자 남자인 아이들이 그것이 잘못된 것인 줄도 모르고 서로를 바라보며, 여자 아이들을 의식하며 히히덕거릴 때, 그렇게 하는 것이 잘못된 거라고, 그렇게 했을 때 여자들이 불쾌할 수 있다고 가르치는 게 우리 어른들의 몫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나는 아이들 학교 가기를 무엇보다 싫어하는 사람이지만, 한 번 더 이런 문제가 발생하면 학교에 찾아갈 생각이다.

그 일이 꼭 나만 해야 하는 일인가.

그냥 하는 말, 재미로 하는 말, 예쁘다고 하는 말이 성희롱이 될 수 있음을 가르치는 게 여자들만의 몫인가.

본인이 그런 사람이 아니더라도, 이 책을 읽고 나서, 나는 정말 몰랐어, 여자들이 이런 공포와 두려움 속에 산다는 걸 말이야, 라고 말해줄 책임 있는 남자 어른이 우리에겐 하나도 없다는 말인가.

왜 남자를 잠재적 가해자로 여기느냐고, 왜 우리를 악어로 그렸느냐고, 돌려 말하며 불평하는 남자의 소리만 들어야 하는가.

중학생 딸애에게 세상에는 이상한 남자도 있지만, 더 많은 근사한 남자들이 있다고 말할 수 없도록 하는 건 누구인가.

남자를 좋아하고, 남자와 같이 살고, 남자를 낳은 나를, 이런 극단으로 몰고 가는 건 도대체, 악어가 아닌 그 누구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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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avis 2016-07-08 12: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너무너무 좋아요
그리고 감사드려요

단발머리 2016-07-08 12:04   좋아요 1 | URL
저의 생각을 솔직하게, 약간은 과격하게 그대로 쏟아내서요.
올려놓고도.... 아하...참.... 하고 있었는데,

좋다고 말씀해 주셔서, 감사하다고 말씀해 주셔서
제가 더 감사합니다. 감사해요, clavis님~~~~

clavis 2016-07-08 12: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모두가 내 안에 있던 것..나만의 공포와 두려움이라 생각하며 나를 야단치고 질책했던 모든 순간에

괜찮아,니 잘못이 아니야
해 주고 싶어요

멋진 글 감동입니다^^

단발머리 2016-07-08 16:41   좋아요 1 | URL
저는 그 공포와 두려움에 직면할 수 있도록 해 준, 용기 있는 여성들에게 고맙습니다.

나만의 경험 혹은 나의 잘못이라 여기며 살았는데,
학교에서 사회에서 직장에서 경찰서에서 심지어 법정에서도....

이것이 피해자, 여성의 잘못이 아니라는 걸, 먼저 말해준 여성들이요.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했던 여성들이요.
그 분들이 먼저 말했기 때문에, 그것이 나 혼자만의 경험이 아니라는 걸 알았고, 우리가 무언가 잘못해서 일어난 일이 아니라는 것도 인식하게 된 것 같아요.

밤늦게 다니는 건 잘못이 아니다.
짧은 치마를 입는 건 잘못이 아니다.
네 잘못이 아니다. .....

moonnight 2016-07-08 12: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기가 악어일 리 없다고 생각하는 악어들이 얼마나 많은지ㅠㅠ;; 단발머리님 글을 읽으면서 저도 막 심장이 벌렁벌렁ㅠㅠ;;;;;;;;;;

단발머리 2016-07-08 12:48   좋아요 0 | URL
악어 논의에서 제일 중요한 문제는 `남자는 악어다`는 아닌 것 같아요.
이 책의 저자도 남자가 악어다,라고 말하고 싶어하는 건 아닌것 같구요.
저도 남자들이 다 악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요는,
스스로를 여자라고 생각하라는 거죠.
스스로를 여자사람이라고 가정했을 때, 여자의 입장에서,
여자의 관점에서 이 책을, 이 현실을 보라는 거예요.

자꾸 남자들이 자기가 악어라고... 자기가 굳이 악어라고.... 왜 악어로 그리냐고.
여자한테 대입을 하세요.
스스로를 여자사람에게 대입하세요.... 라고 제가 말합니다. ^^

다락방 2016-07-08 12: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단발머리님이 이 책을 읽으셔서, 그리고 이렇게 또 감상을 남겨주셔서 좋아요. 우리가 함께 공부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요.
:)

단발머리 2016-07-08 12:47   좋아요 1 | URL
저도 다락방님 덕분에 이 책을 읽게 되서, 이 책을 읽고 생각하고 또 제 생각을 글로 남길 수 있어서 좋아요.
우리 함께 공부하고 있다는 느낌도 아주 좋은대요. ㅎㅎ 함께 해요, 우리...

블랙겟타 2016-07-08 13: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이 책 최근에 읽어봤었거든요.. 좋은 글 잘읽었어요. 단발머리님 ^^ 저도 곧 느낀점을 써볼려구요. ㅎㅎ;;

단발머리 2016-07-08 14:06   좋아요 0 | URL
네~~ 블랙겟타님의 리뷰도 읽고 싶네요. 우리 같이 읽고 이야기하고 또 같이 생각해봐요~~^^

다락방 2016-07-08 14: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단발머리님께서 지적해주신대로,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게 `남자는 모두 악어다`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걸 말하고자 그린 만화도 아니라고 생각하고요. 다만 나쁜 남자든 그렇지 않은 남자든 모두 악어로 그려둔 것은, `너희들 모두가 여자 입장이 되어봐`를 강조하기 위함이었다고 생각해요. 그걸 말씀해주셔서 고마워요.

단발머리 2016-07-08 16:48   좋아요 0 | URL
저는 악어 문제를 생각하면서...
그러니까 여자의 입장이 된다는 게 그렇게 어려운가 하고 생각했어요.
만약 저자가 여자를 사람이 아닌 `작은 새`로 그렸다면 어땠을까도 생각하고요.
여자들은 작은 새에 스스로를 대입하는게 어렵지 않았을거라 예상합니다.
비슷한 이야기들을 들었고 그리고 실제로 경험했으니까요.

이 책을 읽는 사람은, 스스로를 여자에게 대입하면 됩니다.
그게 공감이고, 그게 감정이입이고, 그게 역지사지죠.
그건 그렇게 어렵지 않은데.... 어려운 일이 아닌데...

cyrus 2016-07-08 17: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지금 이 책을 보고 있는데, 악어들의 태도에 너무 화가 났습니다. 가족, 연인이 책 속에 나오는 불미스러운 상황에 처할까 봐 걱정되기도 했습니다.

단발머리 2016-07-08 17:21   좋아요 0 | URL
네... 저도 화가 많이 났고요. 그리고 한 명의 여자로서 무섭기도 했습니다.

실제로 이 책에서는 성희롱, 말로 이루어지는 성적 폭력이 자세히 다뤄지는데 우리 나라 같은 경우,
아무 말 없이, 아무런 예고 없이 갑자기 일어나는 성추행의 경우가 더 많다고 하더라구요. 암울하지요ㅠㅠ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 일러스트와 함께 읽는 세계명작
안톤 파블로비치 체호프 지음, 하비에르 사발라 그림, 이현우 옮김 / 문학동네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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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책, 올해의 작가에만 집착하느냐. 물론 아니다. 나는 최고의 문장, 최고의 문단에도 집착한다.

로쟈님과 출판사에서는 최고의 문장, 이 책의 느낌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최고의 문장으로 이 문장을 뽑은 것 같다.

정말 제대로 살아보고 싶었어요!” 

 

 

그림으로는 표지 그림을 최고로 뽑았지 싶다.

 

 

내가 뽑은 이 책 <최고의 문장>은 어떻게, 어떻게?” 이다.

    

두 사람은 오랫동안 머리를 맞대고 상의했다. 사람들을 속여가며 숨어서 만날 수밖에 없고, 서로 다른 도시에 살면서 오랫동안 만나지 못하는 이런 상황에서 벗어날 방법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 참을 수 없는 속박에서 어떻게 하면 해방될 수 있을까?

어떻게, 어떻게?” 자신의 머리를 감싸쥐며 그는 물었다. “어떻게?” (57)

 

함께 있어서 행복했던 사람이 하나도 없었던 구로프. 많은 여자들을 만나고 사귀고 헤어졌지만 단 한 번도 사랑을 느끼지 못했던 사람. 그랬던 그가 정말 사랑하는 여자를 만났다. 머리가 세기 시작하는 지금, 지금에 와서야 진짜 사랑을 하게 된 것이다.(57) 남편이 있는 안나, 아내가 있는 구로프. 머리를 맞대고 상의해도 방법이 없다. 두 사람이 함께 할 방법이 없다. 깊은 탄식. 어떻게, 어떻게 해...

 

그림 하나하나 모두 느낌 충만하지만, 내가 뽑은 <최고의 그림>은 이렇게 세 장이다.

 

  

 

 

 

<최고의 문단>은 48. 안나를 만나기 위해 구로프는 상트페테르부르크에 간다. 오페라 초연 공연을 보러 온 그녀를 발견한 구로프. 상층 입구라고 쓰인 좁고 어두운 계단에서 두 사람은 재회한다.

 

뭐하시는 거예요, 지금 뭐하시는 거냐고요!” 그녀가 겁에 질려 그를 밀어내며 말했다. “우리 둘 다 제정신이 아니에요. 오늘 당장 떠나세요. 지금 당장이요....... 제발 부탁이에요, 제발........ 누가 오고 있어요!” (48)

 

...이라고 쓰고 보니, 내가 추구하는 정신 상태는 제정신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야, 제정신이 아닌 걸 좋아하는 사람. 제정신이 아닌 상태를 추구하는 그 어떤 제정신의 소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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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7-07 15: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단발머리 2016-07-07 15:11   좋아요 0 | URL
네... 그 문장은 여주의 문장인데, 참.... 인상적이지요.
다른 그림들도 모두 근사합니다. 한 장, 한 장, 모두 예술이지요^^

수이 2016-07-07 15: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시 읽어야겠습니다~ 그림 보고 대사 응?! 읽으니 확 제정신이 아니고파서_ ^^

단발머리 2016-07-07 15:29   좋아요 0 | URL
여기요~~제정신이 아니고픈 언니 하나 추가요~~ ㅎㅎㅎ

수이 2016-07-07 15:35   좋아요 0 | URL
팔짱 끼고 데이트하고 싶소_ 날씨가 너무 찬란하오~~

단발머리 2016-07-07 15:36   좋아요 0 | URL
아흐..... 나도 가고 싶소.
이 발걸음이 이리도 무겁단 말이요 ㅠㅠ

수이 2016-07-07 15:38   좋아요 0 | URL
아니 ㅋㅋ 여기 놀러오라는 소리가 아니라 바깥에서 자유롭게 놀고싶다고~
예를 들어 햇빛 찬란한 해변 이런 데서 비키니 입고 비치볼을 서로 퉁기며 체호프 이야기를 하면서 맥주를 마시면서~~

단발머리 2016-07-07 15:42   좋아요 0 | URL
나는 야나문에 가고 싶소.
그대에겐 그 곳이 일터일 것이나
내게는 그 곳이 해변... ㅎㅎ
여하튼 체호프 콜, 비키니 콜!!!

수이 2016-07-07 15:43   좋아요 0 | URL
놀러오면 쭈쭈바 먹으면서 청운문학도서관 산책이나 갑시다 ㅋ
한가할때 오시오~

단발머리 2016-07-07 15:48   좋아요 0 | URL
아하.... 쭈쭈바~~
아하~~~ 청운~~~ 갈께요 갑니다^^

꿈꾸는섬 2016-07-07 22: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글도 재밌게 읽었는데 댓글도 재밌게 읽었어요.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 읽고 싶어요. 그림도 완전 최고네요!

단발머리 2016-07-08 08:12   좋아요 1 | URL
함께 하시지요, 꿈섬님.
준비물은 체호프 이야기와 비키니, 그리고 쭈쭈바 되겠습니다.

아주 짧아서요. 금방 읽을 수 있어요. 그림이 예술입니다.
제가 얌전한 것 위주로 골랐어요. ㅎㅎㅎ

꿈꾸는섬 2016-07-10 13:53   좋아요 0 | URL
좋지요!
 
작은 것들의 신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35
아룬다티 로이 지음, 박찬원 옮김 / 문학동네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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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책, 올해의 작가에 심하게 집착하는 내게 커다란 고민을 안겨준 책이다. 이 책을 읽기 전만해도 올해의 작가는 레비카 솔닛이요, 올해의 책은 멀고도 가까운이었는데... 괜찮다. 카테고리를 수정하면 된다. 올해의 에세이는 멀고도 가까운이고, 올해의 소설은 작은 것들의 신이다.

 

아름다운 소설이었다. 아름답다,는 말 말고는 다른 말을 찾기 어렵다. 아름답다. 아름다운 소설이었다. 그리고 아름다운 시, 아주 긴 아름다운 시 한 편을 읽은 느낌이다.   

 

영국 문화와 인도 문화, 지주와 공산주의자, 불가촉민과 가촉민, 남자와 여자, 어른과 아이의 대립된 축이 이야기 속에서 매듭을 묶어가고 풀어가는 방식이 아주 탁월했다. 일상적이고 평범한 상황 속, 주인공의 태도나 생각이 그려지는 방식이 특히 좋았다. 예를 들면 이런 문장.

 

라헬은 공항 라운지에서 빈 의자 쪽으로 걸어가는 승객처럼 결혼으로 흘러들어갔다. ‘그냥 자리에 앉는다는 기분으로. 그녀는 그와 함께 보스턴으로 돌아갔다. (34)

그때, 그들이 코친 외곽에 이르렀을 때, 빨간색과 하얀색이 칠해진 철도 건널목 차단기가 내려왔다. 자기가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희망했기에 이렇게 됐음을 라헬은 알았다. (87)

우리 고모 베이비야.” 차코가 말했다.

소피 몰은 곤혹스러웠다. 두 눈을 반짝이며 흥미롭게 베이비 코참마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소의 베이비도 개의 베이비도 알았다. 곰의 베이비도, 그래. (곧 라헬에게 박쥐 베이비도 보여줄 것이다.) 하지만 고모 베이비라니 당황스러웠다. (201)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대해 난 너무 가볍게 생각했던 것 같다. 나는, 이루어지지 않은 사랑이 가장 완벽한 사랑이라 믿는 사람이다. 가장 따뜻하거나, 가장 아름다운 사랑은 아닐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가장 완벽한 사랑이라고 말이다. 완전하지 못한 인간이, 정확히는 완전하지 못한 인간들이 마음을 다해 사랑한다 해도 그들의 사랑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노력하고 애쓴다 해도 인간의 사랑에는 마지막 순간이 찾아온다. 권태의 모습으로, 질투의 모습으로 혹은 이별의 모습으로. 사랑은 끝나고, 새로운 사랑이 또 그렇게 시작된다. 사랑이라면,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이 가장 완벽하다고 생각했다.

 

마마치 시대엔 파라반들이 다른 불가촉천민과 마찬가지로 공공도로에서 걸어다니는 게 허락되지 않았고, 상체를 가리는 것도 허락되지 않았고, 우산을 가지고 다니는 것도 허락되지 않았다. 말할 때는 상대에게 오염된 숨결이 가지 않도록 소능로 입을 가려야만 했다. (107

 

인간을 위와 아래, 고귀한 혈통과 천한 혈통으로 분류하는 것을, 그 분류에 따라 인간을 심하게 차별하는 것을 아주 가까이에서 본 적이 없다. 신분 차별 때문에 사랑이 금지된다는 게 쉽게 상상되지 않는다. 구체적인 예를 읽게 되었을 때 더 실감나게 전해진다. 만지지 못한다는 것, 오염된 숨결이 가지 않도록 말할 때 손으로 입을 가려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태어나기 전부터 인생에 씌워진 굴레. 할아버지, 아버지, 그리고 자기 자신에게까지 전해오는 정해진 운명. 물건을 건넬 때 손이 닿지 않도록 손바닥 위에 물건을 올려두는 삶. 그런 삶, 그런 역사를 당연하게 받아들이며 살아왔던 벨루타가 변한다. 한 순간에 변한다. 암무와 눈길이 마주친 순간, 수 백 년의 시간이 덧없는 한순간으로 응결되었다.(245)

 

그 짧은 순간, 고개를 들자 벨루타는 그전까지 본 적이 없었던 것을 보았다. 너무나도 까마득하게 한계를 벗어나 있었던 것들, 역사라는 눈가리개에 가려져 있어 보기 힘들었던 것들을.

간단한 것들.

예를 들면, 라헬의 어머니가 여자라는 것을 알았다.

그녀가 미소를 지을 때면 깊게 볼우물이 패고 눈에서 미소가 사라지고도 오래도록 남아 있다는 것을. 그녀의 갈색 팔이 둥글고 탄탄하고 완벽하다는 것을 알았다. 그녀의 어깨는 빛이 났지만 눈은 어딘가 먼 곳을 바라본다는 것도. 그녀에게 선물을 줄 때 이젠 더 이상 자신에게 손이 닿지 않도록 손바닥 위에 올려서 줄 필요가 없다는 것도 알았다. 배와 상자. 작은 풍차. 그만이 선물을 주는 것이 아님도 알았다. 그녀 역시 그에게 줄 선물이 있음을.

이러한 깨달음이 날카로운 칼날처럼 단번에 그를 베었다. 차갑고, 또한 뜨거웠다. 한순간의 일이었다.

암무는 그가 알았음을 알았다. 그녀는 고개를 돌렸다. 그도 시선을 돌렸다. 역사라는 악귀가 다시 돌아와 그들을 사로잡았다. 그들을 다시 그 오래된 상처투성이 가죽으로 포장해서 그들이 진짜 살던 곳으로 끌고 갔다. ‘사랑이 법칙이 누구를 사랑해야 하는지 정해주는 곳으로. 그리고 어떻게. 그리고 얼마나.

암무는 베란다로, 다시 연극으로 되돌아갔다. 몸을 떨면서. (246)

 

날카로운 칼날처럼 다가오는 깨달음을 뒤로 하고, ‘역사의 자리, 연극의 자리로 돌아가려는 벨루타와 암무. 하지만, 이미 보아버렸으므로, 이미 그가 알았음을 알아버렸으므로 이전으로는 돌아갈 수 없다. 예전처럼 연기하며 살 수 없다.

이 사랑이 이렇게 절절한 이유가, 이루어지면 안 되는 사랑이기 때문인가, 하고 생각한. 그 사랑에 대한 금지가 그들의 욕망을 더욱 부추긴 것은 아닌가. 그 사랑에 대한 반대가 그들의 사랑을 더욱 아름답게 한 것은 아닌가. 만약 학교에서, 캠퍼스에서, 직장에서 그리고 지하철에서. 두 사람의 눈빛이 만나고, 서로 알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면, 그런 경우에도 그들의 사랑은 이처럼 절절했을텐가. 이처럼 필사적이었을텐가.

나는 아직도 이루어지지 않은 사랑을 지지하고 있나 보다. 나는 아직도 이루어지지 않은 사랑이, 오직 이루어지지 않은 사랑만이 완벽하다고 믿고 있나 보다. 그건 다른 말로 하면, 꼭 이루고 싶은 사랑이 있었다는 이야기고, 그리고 결국에는 그 사랑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만을 응원한다는 건, 죽어도 좋을 만큼 위험한 사랑을 하지 못했다는 뜻이고, 그리고 그런 사랑이 두렵다는 뜻이다.

나는 벨루타처럼, 암무처럼 사랑할 수 없다.

이런 사랑은 용기 있는 사람들만이 가질 수 있는 사랑이다.

이들의 사랑이란, 이들의 사랑이란 건 그런 사랑이다.

 

암무쿠티 …… 무슨 일이에요?”

그녀가 그에게 다가가 온몸을 기대었다. 그는 그저 거기 서 있을 뿐이었다. 그녀에게 손대지 못했다. 그는 몸을 떨고 있었다. 춥기도 했고, 무섭기도 했고, 아려오는 욕망이기도 했다.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그의 몸은 그 미끼를 물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녀를 원했다. 절실하게. 그의 젖은 몸이 그녀를 젖게 했다. 그녀가 양팔로 그를 안았다.

그는 냉정해지려 애썼다.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상태는 뭘까?’

모든 것을 잃을 수도 있다. 내 일. 내 가족. 내 생계. 모든 것을.’

그녀에게 격렬하게 뛰는 그의 심장 소리가 들렸다.

그녀는 잠잠해질 때까지 그를 안고 있었다. 어느 정도라도.

그녀는 자신의 셔츠 단추를 풀었다. 두 사람은 거기 그렇게 서 있었다. 살과 살을 맞대고. 그의 검은색에 그녀의 갈색을 맞대고. 그의 단단함에 그녀의 부드러움을 맞대고. (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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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딩 2016-07-06 14: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문동 서점 갔을 때부터 계속 눈에 들어오던데 :-)
장바구니 담았습니다 ~

단발머리 2016-07-06 14:22   좋아요 1 | URL
저는 도서관에서 빌려서 읽는 경우가 많고 이 책도 그런대요^^ 구입하려고 해요.
세 번은 더 읽을 것 같아요~~~~

잠자냥 2016-07-06 16: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두고 아직 읽지는 않았는데, 얼른 읽어보고 싶게 하는 글이군요. ㅎㅎ

단발머리 2016-07-06 17:29   좋아요 0 | URL
으흠...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저같은 경우는... 우앗!!! 했어요.
읽을 페이지가 줄어드는게 마냥 아쉬웠구요.
다시 처음부터 읽고 싶어요.^^

2016-07-06 20: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7-06 20: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시이소오 2016-07-07 0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동감입니다. 비교불가할 정도로 아름다운 소설이죠 ^^

단발머리 2016-07-08 08:08   좋아요 0 | URL
정말 아름다운 소설이죠. 작중 인물들에게 완전히 매료됐어요.

저는 번역가에게도 큰 점수를 주고 싶어요. (심사단도 아닌데 점수를 줍니다.ㅎㅎ)
원서를 안 읽어봐서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한글로도 아름답게 읽히니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