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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초 아가씨 호가스 셰익스피어 시리즈
앤 타일러 지음, 공경희 옮김 / 현대문학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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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가스의 셰익스피어 프로젝트는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을 오늘날 가장 인기 많은 베스트셀러 작가들이 다시 쓰도록 후원하는 계획이다. 셰익스피어의 말괄량이 길들이기를 앤 타일러가 다시 썼다. 식초 아가씨.

식초 아가씨 케이트는 아주 껄끄러운 사람이었다. 친척들은 그녀를 곤란하게 하는 아이, 시무룩한 10대 소녀, 대학 생활 실패자(208)로 기억했다. 그래서 그녀의 결혼 소식을 들었을 때, 그들은 케이트를 치워버리게 되었다고 좋아했다. 사실은 그렇지 않다. 케이트는 현실 감각이 떨어지는 아버지 닥터 버티스타의 점심 도시락을 준비하고, 제멋대로인 10대의 표본인 늦둥이 동생 버니를 돌본다. 교사 보조로 일하는 찰스빌리지 어린이집에서는 선생님들과 학부모들과 신경전을 벌이고, 하루 종일 아이들과 실랑이를 해야 한다.

제 몫을 톡톡히 해내는 기특한 큰딸 케이트에게 그녀의 아버지는 비자가 만료되어 러시아로 돌아가야 하는 자신의 연구원 표트르가 시민권을 취득할 수 있도록 그와 결혼하라고 부탁한다. 처음에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며 펄쩍 뛰며 반대했지만, 기다리는 가족도 없이 미래에 대한 아무런 보장도 없이 고국으로 돌아가야 하는 표트르의 사정이 딱하게 느껴진다. 어설픈 외국어지만 진심을 전하려는 표트르의 마음이 가상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표트르와의 결혼으로 지긋지긋한 집을 떠나 독립하게 되는 것도 그리 나쁘지는 않을 것 같아 케이트는 그와 결혼하기로 한다. 하지만, 결혼식 당일, 닥터 버티스타 프로젝트의 전부였던 실험쥐들이 사라져 버리고, 케이트는 표트르와 결혼해야할 결정적인 이유가 사라졌음에도 불구하고 그와의 결혼을 강행한다.

실험실의 쥐들이 사라져버려 당황하고 화가 나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결혼식을 올리고 나서 원래의 성격이 나오기 시작했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이제 표트르는 예전의 그가 아니다.

 

결혼식 이후 표트르는 노골적이게 독단적으로 굴었다. 마치 이제 결혼했으니 멋대로 그녀를 대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표트르는 그녀가 그놈의 열쇠를 찾아 준 게 얼마나 도움이 됐는지, 혹은 먹을 것을 만들겠다고 제안하다니 얼마나 친절한지 인사조차 하지 않았다. (272)

 

표트르는 변했다. 수줍어하며 그녀 곁에 앉고, 그녀를 위해 새 수건과 칫솔을 준비하던 그 자상한 남자가 아니다. 자신의 실험쥐들을 찾기 위해 버니의 남자친구 에드워드의 집을 무단으로 침입하고, 에드워드를 제압해 실험쥐들을 구출해 내는데 거침없이 무력을 사용한다. 계속해서 그를 돕는 케이트에게 고맙다고 말하지 않고, 리우 부인에게 소리를 지른다.

남자친구에 대한 복수심에 불타는 버니. 좀비처럼 얼빠져서 그를 쫓아다닌다며 케이트를 비난하고, 시민권을 얻기 위한 그들의 결혼을 조롱하고, 자리에 어울리지 않는 그들의 옷차림을 비웃는다. 그런 버니에게 케이트가 말한다.

 

어떤 방식이든 네가 원하는 대로 네 남편을 대하도록 해. 하지만 그가 누가 됐든 그 사람이 가엾구나. 남자로 사는 것은 힘들어. 그 생각을 해 본 적이 있니? 남자들은 뭐든 고민을 숨겨야 된다고 생각해. 관리해야 된다고, 통제해야 된다고 생각하고, 진솔한 감정을 못 드러내지. 아프거나 간절하거나 슬픔에 휩싸여도, 상심하거나 고향이 그립거나 큰 죄책감에 시달려도, 뭔가 대실패를 할 순간이어도 그들은 , 난 괜찮아요. 모든 게 좋아요라고 말하지. 생각해 보면 남자들은 여자들보다 훨씬 자유롭지 못해. 여자들은 아장아장 걸을 때부터 사람들의 감정을 살피면서 살아. 레이더가 육감이나 공감, 대인 관계라나 뭐라나 하는 게 완벽해지지. 여자들은 상황이 이면에서 어떻게 작용하는지 아는 반면, 남자들은 스포츠 경기와 전쟁, 명예와 성공에 몰두하지. 남자와 여자는 다른 두 나라에 있는 것과 비슷해! 난 네가 말하는 것처럼 망가지지않아. 난 그를 내 나라에 들어오게 하는 거야. 우리 둘이 본모습으로 지낼 수 있는 곳에서 그에게 자리를 주고 있는 거라고. 제발 버니, 우릴 좀 봐줘!” (308)

 

지나가다가 케이트에게 한 마디.

케이트야. 남자라면 강해야 하고, 자신의 고민을 숨겨야 하고,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지 말아야 한다고 설파하는 그런 문화는, 남자들이 여자들 위에 군림하기 위해 남자들이 만들어내 허상이야. 오히려 여자들은 솔직하게 이야기 나눌 수 있는 그런 남자들을 좋아해.

케이트야. 여자들은 아장아장 걸을 때부터 사람들의 감정을 살피며 살면서 레이더가 완벽해지지만 남자들은 다르다구? 그런 레이더는 여자들도 원하지 않아! 그런 레이더를 가져야만 생존할 수 있기 때문에, 그 이유 때문에 여자들은 레이더를 가동시키면서 사는 거야. 남자로 사는 게 힘들지. 그래, 인생은 다 힘들어. 요즘에는 이 나라 국민으로 사는 것도 참 힘들다. 실망과 분노가 하루에도 열 두 번씩. 겨울바람 맞으며 광장에 6번을 나가고 평화의 상징 촛불이 거대한 분노의 횃불로 번져갔지만 우리는 이번 주 금요일 오후까지는 안심하지 못해, 안절부절 또 이 한 주를 보내야한단다. 그 얘기는 그만하자. 마음이 아프다.

네가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게 된 건 참 기쁜 일이기는 한데. 너는 1장의 당당한 케이트가 아니구나. 정통 보수 말괄량이도 아니면서 너는, 길들여졌구나.

누구를 탓하겠니. 원작이 셰익스피어인데.

나도 널, 탓하지 않을게.

너까지 미워할 여력이 없어서 그래.  

너보다 더 어처구니없는 사람이 있어.

있어, 그런 사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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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6-12-19 07: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단발머리님 반가워요~ ^^
비록 모니터로 글을 읽는 게 힘들어서 주르륵 내려서 댓글만 달아요~ㅠ
광주는 지금 비가 내려요~
이 비 그치면 정말 추운 겨울을 제대로 만나게 될 듯...

서울 한번 가야지 하면서도 무에 바쁜지 일정을 못잡아서....
새해를 기약해요!!

단발머리 2016-12-30 08:23   좋아요 0 | URL
순오기님~~~ 잘 지내시죠~.*^^*
이번달에 이사하느라 하는 일 없이 바빠서 답글이 늦었어요. ㅠㅠ
서울은 요 며칠 추웠는데 오늘 오후부터 풀린다고 하네요.
날씨는 추워도 따뜻한 겨울, 포근한 연말 보내시길요~~~

새해에는 뵐 수 있기를요~~~ ㅎㅎ

서니데이 2016-12-23 2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단발머리님, 2016 서재의달인 축하드립니다.
행복한 크리스마스 되세요.^^

단발머리 2016-12-30 08:24   좋아요 1 | URL
서니데이님이 알려주셔서 알게 되었어요. ㅎㅎ
항상 다정한 댓글 감사해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서니데이 2016-12-30 23: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단발머리님, 연말이 되어 새해인사 드리러 왔어요.
올 한해도 좋은 시간 함께해주셔서 감사해요.
내년에도 잘 부탁드립니다.
따뜻한 연말과 행복한 일 가득한 새해 맞으세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단발머리 2017-01-03 16:10   좋아요 1 | URL
서니데이님~~ 감사해요~~~~*^^*
알라딘에서 좋은 분들 알게 되어 참 좋아요.
먼저 챙겨주시고 인사해 주셔서 감사해요.
서니데이님도 행복하고 평안한 한 해 되시기를 바랍니다.
 
사피엔스의 미래
알랭 드 보통 외 지음, 전병근 옮김 / 모던아카이브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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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피엔스의 미래는 알랭 드 보통, 말콤 글래드웰, 스티븐 핑커, 매트 리들리, 네 명의 세계적인 명성의 지식인들이 멍크 디베이트Munk Debates의 토론자로 나서 총 3,000명의 시민들 앞에서 인류의 앞날에 더 나은 미래가 기다리고 있는가?’라는 주제로 찬반 토론했던 내용을 책으로 엮은 것이다.

 

 

        

 

        

 

 

인류의 앞날에 더 나은 미래가 있다고 생각하는 스티븐 핑커와 매트 리들리가 한 팀이고, 인류의 앞날에 더 나은 미래가 있다는 주장 반대편에 알랭 드 보통과 말콤 글래드웰가 선다.

스티븐 핑커가 인류의 삶에서 긍정적인 변화로 제시한 것은 다음의 10가지다. 인간의 생명(수명이 30년에서 70년으로 늘어난 것), 건강(인류 역사에서 가장 치명적이었던 천연두와 우역의 완전 퇴치), 물질적 번영, 평화, 안전, 자유(세계 인구의 60% 이상이 열린 사회에 살고 있음), 지식(세계 인구의 82%가 기초 교육을 받음), 인권, 성 평등, 지능의 지속적 향상(35). 스티븐 핑커는 시간의 경과에 따른 좋고 나쁜 일의 발생 빈도를 그 근거로 제시하며 인류는 더 나은 미래로 전진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에 반해 말콤 글래드웰은 인류의 앞날에 더 나은 미래가 있어왔던가?’라고 묻는다면 그렇다고 대답하겠지만, 그 질문이 미래에 대한 것이라면, 인류의 미래가 더 나아질 것이라는 생각은 터무니없는 것이라 주장한다. 그는 25년 전에 걱정했던 만큼 기근을 두려워 할 필요는 없어졌지만, 기후 변화로 인한 문제들은 더욱 강력해졌고, 이러한 위험들은 이전에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규모의 타격을 인류에게 줄 것이라고 말한다.(69)

매트 리들리는 간단한 예로, 휴대전화가 전쟁을 악화시키는 데 사용되기도 하지만, 휴대전화를 사용할 수 있게 된 덕분에 아프리카의 서민들도 싼 비용으로 모바일 뱅킹을 하고, 자기 번호를 널리 알려 일자리를 구하고, 친구들과 통화를 할 수 있게 되었으므로 각 개인의 삶이 놀랄 만큼 좋아졌다고 주장한다.(75)

이에 반해 알랭 드 보통은 인간 존재에 대한 그들의 물질주의적 관점에 반대한다. , 인류의 삶은 물질적인 부분에서는 향상되었을지 몰라도,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한 고민이 빠져있다는 것이다. 말콤 글래드웰은 핵무기의 위협에 대해 말한다. 스티븐 핑커의 주장대로 핵무기가 80% 감소했다는 것은 사실일지 모르지만, 지금 지구에 남아있는 20%의 핵무기만으로도 우리 지구는 순식간에 날아갈 수도 있다는 주장이다.

토론 전 투표 결과는 찬성표가 전체의 71%, 반대가 27%였다. 토론이 끝난 후 최종 투표 결과는 찬성 73%, 반대 27%로 승리는 스티븐 핑커와 매트 리들리 팀으로 돌아갔다. 옮긴이는 번역을 시작할 당시에는 진보에 찬성하는 쪽이었는데, 번역을 끝낸 당시에는 거의 중간 지점으로 이동한 것 같다고 말했다. 나로 말하자면, 인류의 미래에 대해 낙관하고 있지만, 핵무기와 핵발전소를 유지하는데 필요한 천문학적인 사회적, 경제적 비용과 각 시설이 가지고 있는 어마어마한 파괴력을 고려할 때, 알랭 드 보통과 말콤 글래드웰의 의견이 좀 더 설득력 있다고 생각한다. 인류는 조금 더 잘 살게 되었지만, 훨씬 더 위험해졌다.

알랭 드 보통의 말이 기억에 남는다.

 

신사 숙녀 여러분, 저는 우리가 낙관론을 따르기보다 우리에게 훨씬 더 큰 도움을 줄 다른 종류의 철학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고 믿습니다. .... 남을 용서하고 친절히 대하고 서로 공감하는 것은 우리 자신이 근본적으로 불완전하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데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결함이 있는 피조물입니다. 따라서 진정한 인간이 되기 위에서는 우리의 결함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습니다. ... 우리는 자신을 좀 편하게 대하고 최대한 겸손해질 필요가 있습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당부하고 싶은 것은 바로 이러한 겸손입니다. (53)

 

사피엔스의 미래』 읽기는 이렇게 끝났다. <트럼프 당선 확실>의 뉴스를 보고, “엄마, 미국 개망했다.”라고 했더니, 엄마는 그런 말을 하지 말라고 했다. 그래, 우리가 그런 말 할 처지가 아니지. 트럼프의 미국과 최순실의 한국 중 누가 더 멘붕인가를 겨루는 이 암담한 상황에서 생각하는 사피엔스의 미래.

 

사피엔스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

미국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

우리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

 

 

 

 

 

 

 

 

 

<출처 : http://m.post.naver.com/viewer/postView.nhn?volumeNo=5477595&memberNo=11466887&vType=VERTIC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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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레사 2016-11-15 12: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눈물나요..우리 종 사피엔스의 미래는 있는 거겠죠? 우리는 늘 그랬듯이 답을 찾겠지요?

단발머리 2016-11-16 08:57   좋아요 0 | URL
우리 종의 미래보다 미국의 미래보다 우리 국민들의 미래가 더 걱정되는 요즘입니다. ㅠㅠ 답을 찾을 수 있을 거라 전 믿어요. 그렇다면 저도 낙관론인가요...
 
인간의 길을 가다 - 실천적 사회학자 장 지글러의 인문학적 자서전
장 지글러 지음, 모명숙 옮김 / 갈라파고스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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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길을 가다는 실천적 사회학자 장 지글러의 인문학적 자서전이다. 인간의 행복을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시작점은 불평등이다. 장 지글러가 인용한 인간 불평등 기원론1754, 루소가 디종 아카데미의 현상 공모에 응모한 논문이다. 주제는 인간들 사이 불평등의 기원은 무엇이며, 불평등은 자연법에 의해 허용되는가였다. 루소는 근본 오류, 즉 사회적 불평등을 만들어낸 행위는 사적 소유의 도입 때문이라고 주장했다.(55)

 

한 뙈기의 땅에 울타리를 두른 후 이건 내 것이라고 말할 대책을 생각해내고, 그 말을 믿을 만큼 충분히 순진한 사람들을 발견한 첫 번째 사람이야말로 부르주아 사회를 세운 진짜 창시자다. .... ‘이 사기꾼들의 말을 듣지 않도록 조심해라. 결실이 모두에게 돌아가고 땅이 아무에게도 속하지 않는다는 것을 잊는다면 그대들은 절망적이다.” (56)

 

지금이 바로 그 절망의 시대이다. 이러한 절망은 사적 소유의 도입 때문에 생겨났다. 끝이 없는 인간의 욕망은 더 많은 재산을 축적하게 했고, 이것을 제도적으로 완성시켰다. 많이 가진 사람들이 더 많이 가지게 되었고, 적게 가진 사람들은 그것마저도 빼앗겨 버렸다. 계층간의 간극은 더 벌어졌고, 최상류층은 불평등 자체를 당연하게 받아들이라 종용하고 있으며, 열심히 일해도 그 대가를 받지 못하는 많은 사람들은 그들의 불행을 자신의 탓이라 믿게 되었다.

장 지글러는 오늘날 인간들 간의 불평등이 가장 분명하게 드러나는 것은 우리 행성에서 같은 인간을 잡아먹는 잔인한 경제 질서 때문이라고 주장한다.(60) 이것은 개인 간의 불평등이기도 하지만, 국가 간의 불평등, 대륙 간의 불평등이기도 하다. 그의 주장은 여러 통계자료에 의해 뒷받침되는데, 이를 테면 세계 인구 중 16퍼센트가 지구의 자산 84퍼센트를 소유하고 있다거나, 2007, 2008년 금융시장 붕괴로 전 세계 굶주리는 사람들의 수가 6,900만 명 더 많아졌으나, 그럼에도 갑부들의 재산은 금융 위기 이전보다 1.5배나 많아졌다는 것 등이다.

 

세계 식량 농업기구(FAO)세계 식량 불안정 상황 보고서에 따르면, 성인 1인당 하루 2,200킬로칼로리를 보급할 경우, 현재 생산력 수준만으로도 대략 120억 명을 부양할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바로 이 순간에도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영양실조와 굶주림의 고통 속에 죽어가고 있다.(65) 수백만 명이 굶주림 속에 죽어가는 현재의 상황은 식량 생산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이것은 식량에 대한 접근성과 관련이 있다.

소비에트 제국의 종말로 양극으로 나뉘어 대립하던 구도가 사라지고 이로써 서양의 정치 및 금융 권력 지배계급들이 전 세계를 무대로 활동할 수 있게 되었다. 바야흐로 신자유주의라는 이데올로기가 지구를 지배하게 된 것이다.

 

1989년 세계은행 부총재이자 수석 경제연구원인 존 윌리엄슨은 워싱턴 컨센서스(중남미 개발도상국에 대한 미국식 자본주의 국가발전 모델)를 공식화했다. 그 기본 원칙은 국가적인 것은 물론이고 다른 것들도 가능한 한 빨리 모든 규제 기관들을 철폐하고 가능한 광범위하게(상품, 자본, 서비스 등을 위한) 시장의 자유화를 달성하며, 마지막으로 국적 없는 글로벌 거버넌스, 즉 외부의 규제 없이 완전히 자율적으로 운영되는 단일한 세계시장을 목표로 한다.(95)

 

부자들의 수입에 대한 조세 부담의 감면,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세제 혜택 폐지, 금융시장 제한 철회, 외국 투자의 안정 보장, 국가 소유 또는 학교, 병원, 운수기업, 수도 및 전력 공급 등과 같은 준국영 법인소유의 민영화, 규제 완화, 사유재산 보호 강화, 관세 인하, 국가 재정적자 최소화등의 조치를 통해 국적 없는 글로벌 거버넌스가 단일한 세계 시장을 마음대로 운영토록 하는 것이 이들 세계 거대 자본의 목표이다.

사람들은 열심히 일해도 대가를 얻지 못하고 노동의 현장에서 소외된다. 자본주의 생산방식은 인간을 상품사회에 기능하는 것으로 축소함으로써, 인간을 노동의 산물에서 소외시킨다. 일에서는 보람을 찾을 수 없고, 미래를 꿈꾸기에는 월급이 너무 적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이러한 현실의 근본적인 이유가 사회 구조의 불합리때문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자신이 열심히 일하지 않았기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받아들이고, 그렇게 견디어낸다.

부의 추적에는 객관적 한계가 존재한다는 스미스와 리카도의 이론은 틀렸다.

 

돈이 돈을 생산한다. 돈은 권력과 지배의 수단이다. 또한 지배하고 싶은 욕망은 근절할 수 없고, 그 욕망에는 객관적 한계가 존재하지 않는다. (102)

 

평생, 혹은 자신의 자식 평생 동안 쓰고도 남을 돈을 축적해놓고도 사람들은 만족하지 못한다. 돈이 돈을 생산하고, 권력과 지배의 수단으로 기능할 때, 사람들은 계속해서 돈을 추구한다. 그 욕망에는 브레이크가 없다. 이제 공산주의적대안은 사라졌다.(153) 세계화된 금융자본과 극단적이고 비판적으로 단절할 길을 모색하는 일은 우리 모든 평범한 사람들의 몫이 되었다. 그리고 이제 그 일은 그 누구의 일도 아니다.

장 지글러가 비판하는 또 한 가지는 국가 권력에 대한 것이다. 현대적 의미의 국가가 어떻게 생겨났는지 설명하고, 국가가 권력자들의 무기가 되었던 역사적 과정과 사실에 대해 서술한다. 관료들이 권력에 기생하여 어떻게 생존해 왔는지를 추적하고, 효율성이라는 이름으로 국가에 의해 자행되는 국가이성의 사악함을 고발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가의 개입을 통해 학교, 대학, 문화시설, 병원, 사회안전망, 노동재판소, 피고용자와 연금 생활자와 실업자 등을 보호하기 위한 다양하고 효과적인 기관들이 존재하며, 최소한 가장 기본적인 사회적 공정함이 보증되어 왔는데, 이 마지막 보루가 점차 무너지고 있다는 것 또한 지적한다.(193)

 

세계화된 금융자본의 권력 신장, ‘소수 국가의 신자유주의 도그마, 세계의 민영화, 이 모든 것은 점차 국가들의 규제력을 약화시킨다. 확장된 금융자본의 힘은 의회와 정부를 짓밟는다. 그것은 대부분의 선거와 거의 모든 국민투표를 무의미하게 만든다. 이것은 공공기관의 규제 능력을 해친다. 그리고 법을 질식시킨다. (193)

 

장 지글러는 함께 살고자 하는 바람’, 국민 구성원 다수가 공유하는 역사에 대한 공동의 비전과 영토 및 언어를 통해 새롭게 탄생된 국민들이 이러한 위협에 맞설 수 있다고 말한다. 문명을 위협하는 인종주의를 배격하고, 실패한 탈식민지 원민족들의 비극을 치유하며, 자본주의 이전의 전통사회가 지닌 역동적인 힘을 복구함으로써, 현재 지구를 지배하고 있는 자본주의 이데올로기에 맞설 수 있다고 주장한다.

 

(아프리카 전통적인 종족들의) 역사는 오직 다음과 같은 물음처럼 다룰 만한 가치가 있는 질문들만 다룬다. 인간은 어디에서 오는가? 지구에서 인간의 과제는 무엇인가? 인간은 어떻게 죽는가, 그리고 인간은 살아 있는 동안 신과 관계를 만들어내길 바랄 수 있는가? 아프리카의 구전 전통은 물화되지 않은 구체적인 자기해석의 체계다. 이 체계를 통해 사회는 자기 자신을 설명한다.(323)

 

더하여, 눈에 띄지 않는 밤의 인류애가 전 세계 남녀 수천 명을 집결시킴으로써, 역사의 최종적 목표, 즉 연대적인 사회의 건설, 인간의 인간화, 인간의 무한한 창조적 힘, 행복하고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을 발휘하는 사회의 건설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새로운 시민사회가 성공할 수 있을까. 그 길에 도달할 수 있을까. 우리 평범한 사람들이 세계화된 금융자본의 전 세계적인 독재와 맞서 싸울 수 있을까. 우리는 승리할 수 있을까.

장 지글러는 이러한 운동의 중심점이 도덕적 명령과 격분, 세상의 혼돈에 대한 분노라는 점을 일깨워준다.

남쪽과 북쪽에서, 동쪽과 서쪽에서 바람이 일고,

민중의 희망이 저항전선들에 의해 공고해질 때.(356)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밤은 열두 시간이고, 그다음엔 낮이 온다.

낮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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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6-11-02 16: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내년 대선 기간이 다가오는 시점부터 불평등, 빈부격차 문제가 다시 화제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이런 문제가 단순히 좌파들이 고민하는 것이 아니니까요.

단발머리 2016-11-03 14:27   좋아요 1 | URL
네 맞아요. 불평등을 조장하고 고착화시키는 제도에 대한 논의가 조금 더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정혜신의 사람 공부 공부의 시대
정혜신 지음 / 창비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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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진정한 치유

내가 불완전한 인간이라는 것을 일상에서 자각할 수 있고 끊임없이 자기를 성찰할 수 있는 심리적인 힘이 있는 사람, 그것이 타고난 치유자입니다. 그것을 아는 것이 바로 공부가 시작되는 출발점이 아닐까 싶어요. 우리가 진짜 배워야 할 지식은 교과서에 적혀 있는 지식 자체가 아니라 어떻게 해야 제대로 된 공부를 할 수 있을까에 대한 것일 거예요. (77)

밥상이나 뜨개질처럼 우리 일상 속 도구들에 숨어 있는 치유적 요소를 더 효율적으로 극대화시키는 것, 그것이 상처 입은 사람에게 가장 깊고 빠르게 스미는 치유제인 것 같아요. 현장에서 뼈저리게 느낀 사실입니다. (94)

    

 

2. 건강한 갈등

건강한 갈등과 모순을 견뎌야 오래 공감하고 함께할 수 있습니다. ‘사회가 지금 이렇게 아픈데 어떻게 나 하나만 돌볼 수 있겠어, 지금 내 삶은 좀 희생해야지그러면 길게 가지 못할 가능성이 더 높습니다.... 개인적인 욕구와 욕망을 완전히 탈색하고 살 수 있는 인간은 없으니까요. ... 내가 조금 더 오래 버티는 편이 좋을 것 같아서 끊임없이 나를 챙기면서 나름 이기적이라고 할 정도로 자기보호를 합니다. 이웃의 이명수 대표와 저는 부부로서 둘의 개인적인 시간을 언제든지 놓치지 않아요. (103)

 

 

3. 노란 리본

세월호 희생학생의 오빠가 죽을 만큼 힘든 날들을 보내고 있었어요. 그러다 이 아이가 전철을 타고 가던 중에 가방에 세월호 리본을 단 학생을 봤대요. 그런데 그 순간 세상이 다 잊은 건 아니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대요. 그 때부터 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요. ... 노란 리본은 그런 상징물입니다. 꼭 달아주세요. 그 순간 우리는 모두 치유자가 돼요. (116)

     

사람은 기능적인 존재가 아니고, 모든 사람은 개별적인 존재라는 것, 사람의 마음속에는 서로 모순된 여러 감정들이 동시에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달았다. 치유란 그 사람이 지닌 온전함을 자극하는 것임을, 전문가가 아니라 내가 나의 일상에서 주도권을 잡고 있어야 한다는 것도 확인했다. 끊임없이 자기를 성찰할 수 있는 심리적인 힘이 있어야 한다는 것도, 개별적 존재로서 한 사람의 삶과 사회적인 연대를 하는 공익적 삶 사이의 갈등을 건강하게 풀어가야 한다는 것도 배웠다. 그리고 노란 리본 달기를 계속해야겠다, 다짐했다.

서울대 백선하 같은 의사가 있는가 하면, 한국에는 이런 의사도 있다. 선생님,을 붙이기에 전혀 부끄럽지 않은, 아니 자랑스러운 의사 선생님이 있다. 정혜신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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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16-10-17 14: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말씀을 실천하는 사람이 되라는 성경 구절이 생각 납니다. 단발머리님 좋은 리뷰 감사합니다^^:

단발머리 2016-10-18 10:36   좋아요 1 | URL
네, 맞아요. 알고 있는 것에 넘어서서 말씀을 실천해야하지요.
항상 부끄러운 1인입니다. 감사합니다, 겨울호랑이님~~

2016-10-18 11: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10-18 11: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10-18 11: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10-18 11: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10-18 11: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10-18 12: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10-18 12: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10-18 12: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북프리쿠키 2016-10-23 07: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노란 리본을 실천하는
단발머리님 멋집니다.
이책 읽고 제 자신이 부끄러웠습니다~


단발머리 2016-10-26 21:28   좋아요 2 | URL
부끄럽습니다.
앞으로도 노란 리본을 실천하는 1인이 되겠습니다.
북프리쿠키님도 함께 해요~~~~~~ ^^
 
짝짓기 - 생명진화의 은밀한 기원 EBS 다큐프라임 <생명, 40억년의 비밀> 2
김시준.김현우,박재용 외 지음 / Mid(엠아이디)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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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 40억년의 비밀. EBS 다큐프라임 시리즈 두 번째 책. 생명진화의 은밀한 기원, 짝짓기.

자연계에 존재하는 가장 신비하고 경이로운 남과 여에 관한 이야기를, 종의 보존 즉, 생존을 위한 진화의 코드로 설명한다. <들어가며>에서부터 감동적이다.

 

짝짓기는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이다. 수컷은 암컷의 선택을 받기 위해 같은 종의 수컷과 경쟁한다. 암컷은 더 나은 수컷을 선택하기 위해 같은 종의 암컷과 경쟁한다. 암컷은 수컷을 선택하고 수컷은 암컷을 선택한다.

짝짓기는 애정이다. 사람에게만 해당하는 이야기는 아니다. 애초에 유전자를 서로 교환하기 위해 시작된 짝짓기지만 많은 동물에서 짝짓기는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거의 평생 일부일처제를 유지하는 늑대의 경우도, 난교를 즐기는 보노보의 경우도, 페로몬으로 서로를 유혹하는 곤충의 경우도 짝짓기는 서로에 대한 애정으로 발전한다. (<들어가며>, 5)

 

성은 왜 생기게 된 것일까. 수컷은 왜 선택받으려 하고, 암컷은 왜 선택받으려 할까. 성은 나름의 역할이 있는 걸까. 아니면 그 자체로 의미 있는 걸까. 짝짓기가 먼저일까, 아니면 애정이 먼저일까. 성은 도대체 무엇일까.

 

성이란 무엇인가. 성은 감수분열meiosis이며 동시에 유전자 재조합genome recombination이다. 성은 한 개체가 다른 개체와 유전자를, 또한 DNA를 섞는 것이다. 두 개체의 유전자를 섞기 위해서 일단 내 것을 포기해야 한다. ... 세포 분열하면서 염색체도 정확히 반을 나눈다. 이제 나는 반쪽의 내가 된다. 그리고 다른 반쪽을 기다린다. 그 반쪽이 다가온다. 두 반쪽은 기꺼이 하나의 세포가 된다. 두 핵이 모여 하나의 핵이 된다.... 이제 반쪽의 나와 반쪽의 타인이 만나 나도 아니고 타인도 아닌, 내가 아닌 것도 아니고, 타인이 아닌 것도 아닌 새로운 타인 내가 된다. (8)

 

이 책에 의하면, 성의 애초 목적은 번식도, 유전적 다양성도, 쾌락도 아니다. 진화의 다른 결과물처럼 성도 그 목적이 없다. 진화의 과정 속에 성이 생겨났고, 그것이 좋은 돌연변이의 전파와 유전적 다양성을 가져오고, 나쁜 돌연변이 제거에 효과적이었으며, 면역체계를 유지, 보수 및 최신화에도 유리했기에 성을 가진 생물들이 살아남아 현재까지 이르렀다는 것이다. 진화에는 목적이 없고, 성도 마찬가지다,라고 이 책은 말한다.

생물을 암수로 나눌 때의 구분법은 생식세포의 크기다. 염색체의 절반만을 넣어둔 아주 작은 크기의 생식세포(정자)를 만드는 쪽은 수컷이고, 유전자의 절반과 함께 수정된 후 하나의 개체로 발생할 때 필요한 영양분과 세포기관 등을 갖춘 큰 크기의 생식세포(난자)를 만드는 쪽이 암컷이다.(53) 짝짓기를 하고 이를 통해 후손을 남기는 긴 타협의 시간 동안, 왜 정자는 작은 크기의 운동성을 갖춘 형태로 발전했는지, 왜 암컷은 난자를 많이 만들기보다는 더 많은 에너지를 가진 소수를 만드는 쪽으로 진화했는지에 대한 설명을 들을 수 있다. 또한 교미를 빼곤 신체에서 가장 쓸모없는 기관인 페니스가 각 동물별로 어떤 식으로 발전했는지, 왜 교미 중에 오르가즘을 느끼는지에 대해서도 말해준다. 짝짓기를 하는 동안 둘은 무방비 상태가 되고 외부 천적의 위협에 완벽하게 노출됨에도 불구하고, 왜 오르가즘이라는 극도의 흥분 상태에 도달하는지에 대해서도 자세히 설명을 들을 수 있다. 63쪽이다.

크기가 클 뿐만 아니라 영양분과 세포기관을 갖춘 난자를 만들어내는 암컷은 임신과 출산 후에는 새끼를 도맡아 키우는 경우가 수컷보다는 훨씬 더 많다.(65) 암컷으로서는 임신 자체가 위험한 모험일 수밖에 없다. 임신기간 뿐만 아니라, 출산 후 새끼가 일정한 크기로 자랄 때까지 자신과 새끼의 생존을 위해 엄청나게 많은 에너지를 소비하게 된다. 암컷이 수컷을 선택할 때 신중할 수 밖에 없는 이유다. 암컷은 자손에게 강건한 신체를 물려줄 좋은 유전자를 가진 수컷을 선택한다. 이것에는 예외가 없다. 어떠한 동물의 암컷도 가장 먼저 보는 것은 좋은 유전자를 가진 수컷이다.(66)

수컷은 수컷 나름대로 자신의 유전자를 후대에 전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사마귀 수컷은 교미 도중 암컷의 먹이가 되기도 하고, 나비는 정자가 들어있는 주머니인 정포를 암컷에게 바쳐 암컷이 수정하고 알을 만드는데 충분한 영양분을 제공한다. 여치 역시 사정 때마다 암컷에게 정포를 제공하면서 암컷이 다른 수컷에게 가지 못하도록 한다. 제일 흥미로운 곤충은 유럽풍선파리Hilara maura인데, 이들은 암컷에게 짝짓기를 하러 갈 때 작은 곤충을 잡아서 가지고 간다. 곤충 선물을 암컷 앞에 흔들며 춤을 추며 구애한다. 암컷이 허락하면 수컷은 암컷이 그 선물을 먹어치우는 동안 짝짓기를 하는데, 어떤 녀석들은 교미를 더 오래하기 위해 선물을 포장하기도 한다고 하니, 수컷들의 치열한 투쟁이 눈물겹기도 하다.

 

 

 

하지만, 이 친절한 EBS Media 기획팀(이 책의 공동저자들)은 다르게 말한다.

여기까지 읽으며 수컷으로 살기 참 팍팍하네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계시겠다. 사실은 그래도 암컷이 더 힘들다. 수컷이 주는 먹이 혹은 영양분이라고 해봤자 암컷이 알을 낳고 기르는 과정에서 소비하는 에너지와 시간에 비하면 어림없다. 하루 종일 살림하고 애보고 녹초가 된 아내에게 집에 와서 설거지 한 번 정도하고 유세떠는 식인 것이다. (71)

<짝짓기가 뭐라고>라는 챕터에서는 목숨을 내놓고 강을 거슬러 올라가 산란 후 삶을 마치는 암컷 수컷 연어의 삶과 정자기계처럼 단 한 번 결혼비행을 통해 여왕벌과의 교미를 마치자마자 폭발해버리는 수벌의 이야기를 읽을 수 있고, 인간 뿐 아니라 동물과 식물에서도 나타나는 영아살해와 낙태의 예를 볼 수 있다. <성적 강압, 강간>에 대한 꼭지에서는 성적 강압이 지배의 수단으로 활용되는 여러 동물들의 실례가 소개되는데, 지구 내 최상의 문명을 이룩했다고 자신하는 우리 인간 사회와 너무나 많이 닮아있어 놀라울 뿐이다.

 

곤충 중에서 대표적인 강간범으로는 밑들이벌레가 있다고 한다. 영어로는 scorpionfly라고 하는데 전갈의 독침과 비슷하게 생긴 수컷의 생식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이 곤충들은 짝짓기를 위해 암컷에게 선물로 먹이를 가져다주는데, 먹이를 구하지 못하면 그냥 암컷을 포박해버리고 강제로 교미를 한다. 암컷 역시 이런 수컷의 정자가 난자에 닿지 못하도록 조처를 취하도록 진화되었다. 그렇다면 이런 파렴치한 수컷은 왜 사라지지 않을까? 그 답이 또한 의외다. 애초에 강간범이 따로 있는게 아니라는 것이다.

암컷들이 파렴치한 수컷의 정자를 수정시키지 않는다면 당연히 그러한 수컷들의 유전자가 후대에 전해지지 않으니 사라져야 할 것 같은데 현재도 건재하다. 즉 이것은 애초에 강간범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란 걸 말해준다. 선물로 줄 먹이가 있으면 먹이를 주고 교미를 하지만 선물로 줄 먹이가 없을 때 암컷이 나타나면 불문곡직하고 강간을 해버리는 것이다. 대부분 실패로 끝나지만 열에 하나 성공한다면 수컷 입장에서는 손해가 아니라는 것이다.(112)

  

  

육상에 사는 포유류 중 하나인 (      )의 예도 있다.

(      )의 경우 난교형 무리인데 최상위 수컷alpha male이 자신의 지위를 확인하기 위해 폭력을 휘두른다. 물론 아래 서열의 수컷과 암컷 모두가 최상위 수컷의 폭력에 시달리게 된다. 그러나 암컷에겐 대단히 불행하게도 다른 서열이 낮은 수컷들도 암컷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이때 수컷들의 폭력은 암컷이 다른 수컷과 교미를 하지 못하게 예방하는 의미를 가진다. 무리 밖의 다른 수컷과 교미를 하면 맞는다는 의미. 또한 자신이 교미를 요구할 때 교미 확률을 높이기 위해서다. (118)

차분히 읽어보면 괄호 안에 들어갈 말은 유인원들 중 하나인 고릴라, 침팬지 혹은 오랑우탄이 아닐까 추측할 수 있겠으나(정답은 침팬지), 큰 주위를 기울이지 않는다면 괄호 안에 인간을 넣고 싶은 충동을 느낄 만도 하다. 영장류 강간에 대한 설명도 그렇다. 자꾸, 만물의 영장이, 만물의 영장이라고 하는 종이 생각난다.

영장류의 강간에서 보자면 오히려 번식은 부차적인 문제가 된다. 영장류의 수컷에 의한 강간과 성적 강제, 강압은 명백한 목표가 있다. 그것은 무리 내에서 사회적 지위 문제와 긴밀한 연관관계가 있다. 돌고래나 침팬지 등에서 나타나는 성적 강제 혹은 강간은 다른 방법이 없어서 이루어지는 교미의 수단, 혹은 번식의 수단이라기보다는 무리 내의 서열을 확고히 하고 자신의 지배력을 강화하고자 하는 고도의 정치적 행위인 것이다. ... 인간의 예를 들어서도 마찬가지다. 그 개인적 동기는 번식과는 무관하며 사회적 지위에 대한 욕구나 박탈감 혹은 가학적 쾌락 등으로 변이되었다. 그리고 그 행위 또한 본능이 이끄는 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학습된 과정이다. (120-121)

가족 형태에 대한 탐구 역시 흥미롭다. 포유류의 경우 90% 이상이 일부다처제이고, 대규모 떼를 형성하는 물고기들이 다부다처형이다. 포유류의 경우 다부다처형은 흔히 난교형이라고도 하는데, 사자, 침팬지, 보노보의 경우다. 동물의 세계에서 일처다부는 흔하지는 않은데, 일처다부형의 특징은 육아를 수컷이 도맡아 한다는 것이다. 신세계 원숭이의 일종인 타마린 속에 속하는 원숭이들이 그렇다. 일부일처제는 포유류에서는 드물고 오히려 새들의 경우를 살펴봐야 한다. 새들의 경우 전체의 90%가 일부일처제를 선택하고 있다. 하지만 이것 역시 알에서 깨어난 후 돌봐야 하는 시간 동안만이다. 표지의 주인공 황제펭귄이 대표적인 예다. 남극의 긴 겨울 동안 이들은 짝을 지어 알을 낳고 부화시키고 키운다. 새끼가 독립하면 이들의 부부관계는 끝이다. 막내 아이의 대학 입학 때까지만 이혼을 유예한다는 근자의 이야기가 생각나는 지점이다.

유전자 차원에서 그리고 진화론적으로 가장 가까운 동물은 침팬지와 보노보인데, 이들과는 구별되는 인간 성의 특징은 세 가지다. 첫째는 다른 사람들이 보지 못하도록 숨어서 섹스를 한다는 것이고, 둘째는 암컷의 배란기가 드러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셋째는 일정한 시기가 되면 여자가 폐경을 한다는 점이다.(220) 이 책에서는 인간 여성에게 발정기 신호가 없어진 것은 상호 신뢰와 정서적 혹은 감정적 교류의 강화 때문이라고 본다. 발정기 신호가 없어짐으로 해서 수컷은 암컷을 감시하기 힘들어졌다. 흔히 구석기 시대라고 하는 시대에, 주변에 다른 남자들도 있는 상황에서 일부일처제를 유지하며, 더구나 내 여자의 발정기가 언제인지도 모를 상황에서, 인간 남자는 어떤 선택을 했을까. 수컷은 육아와 먹이 구하기를 암컷과 함께 함으로써 암컷이 자식을 기르는 과정에 커다란 도움이 되고 이를 통해 다른 수컷과의 교미에 대한 필요성을 감소시키려 했다.(225) 현재에 그 해결책이 완벽하게 이루어지지 못했다 할지라도, 선택 그 자체로 보아서는 잘한 선택이다. 훌륭한 선택이다.

이 책은 너무 재미있다. 서로의 유전자를 섞고 그를 통해 촉발되는 변이, 수컷의 눈물겨운 노력, 암컷의 숭고한 희생, 여자친구를 위한 곤충의 곤충선물, 거침없는 물고기의 체외수정, 혼자서도 할 수 있다 도마뱀의 처녀생식, 육체파 고릴라의 성적 억압, 시도 때도 없이 성을 탐닉하는 보노보, 그리고 자기는 안 그런 척 옷을 입는 인간의 성에 대한 가감 없는 관찰이 자세히 서술되어 있다. 책을 읽으며 얼마나 큭큭댔던지, 간만에 정숙하게 숙제를 하고 있는 아들을 의도치 않게 방해하고 말았다. 도대체 뭐가 그렇게 웃기냐며 책을 빼앗아간 아들이 펼친 페이지에는 개구리의 짝짓기 사진이 자리하고 있었다. 이런 식으로.

 

 

 

생명, 40억년의 비밀,을 알고 싶은 분들에게는 부담 없이 읽으시라 권하고 싶지만, 오늘날 이 시대, 이 사회에서 수컷의 위상에 대해 불만이 있는 분들에게는 권하고 싶지 않다. 내가 큭큭대며 웃었던 여러 대목에서, 불끈 화가 날 수도 있으니 말이다.

수컷의 생산력이 가족 전체의 부양이라는 책무를 감당하기 힘들었을 옛날에 암컷을 마냥 가두고 있을 수만은 없었을 것이고, 무리 내에 살면서 다른 이들과의 교류를 원천적으로 차단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따라서 수컷과 암컷이 같이 자식을 기르고 공동의 이익을 위해 헌신하는 모습을 만드는 것이 최선이었으리라. 이것을 모르는 수컷, 남성이 아직도 있기는 하지만. (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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