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의 생활 좌파들 - 세상을 변화시키는 낯선 질문들
목수정 지음 / 생각정원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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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에 닷새를 일하는 베이글 전문 가게에서 예다는 월급을 받을 뿐 아니라 세끼를 모두 해결했다. 정규직이다. 대중교통 정기권을 할인받기 때문에 단돈 16유로(약 2만 2000원)면 한 달 교통비도 해결된다. 과일을 좀 사고, 쉬는 날에는 집에서 파스타를 만들어 먹으며, 벼룩시장이나 헌책방에서 책을 사보고, 다른 사람의 집으로 초대를 받았을 때는 포도주 한 병을 사 가는 정도가 그가 쓰는 돈의 전부다. 집세를 제외하면 50유로 정도로 한 달을 산다. 나머지는 저축한다.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가는 40여 분 동안 책을 읽는다. 지금의 삶에 아쉬움이 있다면 한국에 두고 온 보고 싶은 사람들, 좋아하는 사람들을 만나지 못하는 것. (133쪽)

 

실제로 사람들이 원하는 게 아주 대단한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고 싶은 일을 적당히 해도 먹고 사는데 지장이 없으며, 아플 때 부담 없이 병원에 갈 수 있고, 여의치 않아 일을 하지 못하게 되었을 때, 당분간은 생활비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는 것. 편히 쉴 수 있는 집을 마련하는데 평생을 바치지 않아도 되고, 아이들 학원비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환경. 그 정도를 바랄 뿐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녹록치 않다. 하고 싶은 일자리는 당최 찾기 어렵고, 초진 감기 진료비 1500원, 약값 1200원이던 좋은 시절은 가고(2004-2007년), 진료비 3700원, 약값 1500원의 시대가 왔다(2015년 현재). 실업수당은 조금, 아주 쪼금 올랐다는 반가운 소식이 있는 반면 나는 실제로 이에 해당이 안 되는 사람이고, 집 근처 아파트의 전세 가격이 모두 야무지게 1억씩 올랐다는 슬픈 소식만 전해진다.

그런데도, 우리가 원하는 게 이렇게 작고 소박한 것인데도, 실제로는 그것을 얻기까지 상상을 초월한 어려움이 뒤따른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밥을 먹을 때 돈을 내지 않아도 된다는 이런 상식과도 같은 일에 온 몸으로 저항하는 오세훈 같은 사람이 있어, 정치경험이 전무한, 이름도 모르는 사람이 허다했을 박원순 같은 사회운동가가 서울시장이 된 경우는 이러한 어려움이 반대방향으로 작용해 얻어낸 성과인 듯, 성과 아닌, 성과 같은, 성과다.

농담인듯 진담인듯 말하지만, 보유재산이 10억이 넘는 사람이 1번을 지지하는 건 이해가 된다. 자신의 권리와 재산을 지켜줄 정당에게 투표하는 건 당연하다. 이해하기 어려운 건, 그렇지 않은데, 그런 조건이 아닌데, 자신의 이해, 이득과 정반대의 정책을 가지고 있는 1번에게 투표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다. 자신과 자신의 자녀, 자신의 가정과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이익에 반하는 사람들을 지지하는 사람들이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2번당이 마음에 안 들수도 있고, 2번 당의 사람들의 행동이 꼴보기 싫을 수도 있다. 하지만, 현재와 미래에 자신의 삶에 가장 근접한 문제를 결정하는 사람들이 실제로의 나의 이익에 관심이 없다는 사실, 아니 가장 반하는 결정을 내린다는 사실, 그 사실 정도는 알고 있었으면 한다.

자크 제르베르 : 일상에서의 실천을 말하는 사람들과 혁명으로 세상을 바꾸려는 사람들은 각자의 입장만 고수하려 한다. 내가 보기에는 반드시 이 두 가지가 모두 충족되어야 한다. 그리고 세상을 변혁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반드시 이해해야 할 한 가지는 세상을 바꾸기 전에 자기 자신을 바꾸어야 한다는 것이다. 각자 스스로를 변혁할 수 있어야 세상도 변혁할 수 있다. (73쪽)

하나만 덧붙이자면, 일상적으로 연민과 너그러움으로 세상의 모든 사람들을 대하려고 노력한다. 나치나 인종 차별주의자를 제외한 그 누구에게도 우리는 너그러울 수 있다. 세상 모든 사람을 따스함으로 품는 것, 그 또한 좌파의 주요 덕목이다. (80쪽)

 

사람은 누구나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고 산다. 내 이야기가 맞다고 생각한다. 나는 스스로를 ‘좌파’라 여기는 책 속 사람들의 이런 이야기가 참 당연한 이야기라고, 많은 사람들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진지한 방법의 모색이라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테다. 그런, 나에게, 너는 뭘 잘 몰라, 네가 몰라서 그러는 거야, 라고 혼잣말을 하고 있는 나에게 베르베르가 말한다.

(나는) 일상적으로 연민과 너그러움으로 세상의 모든 사람들을 대하려고 노력한다.

내 의견에 반하는 사람들에게도, 자신의 이익에 반하는 줄도 모르고 행동하는 사람에게도, 나의 진의를 왜곡하려는 사람에게도, 연민과 너그러움으로 대하자. 더 나은 가치를 가지고 우리 모두를 위해 일하고 있다고, 애쓰고 있다고 확신하는 ‘좌파들’에게 더 엄격한 도덕적 자세를 요구하는가, 라고 의문하면서 이 말을 다시 한 번 더 생각한다. 연민과 너그러움으로 대하자.

이제 나온다. 내가 이 책을 잡은 이유, 이 책을 시작하게 했던 문장이다.

목수정 : 더구나 당신은 네 명의 자식을 먹여 살려야 했다. 어떻게 당신은 이토록 줄기차게 활동가의 삶을 살아올 수 있었나? 그 끊임없이 가동되는 모터의 역할을 한 것은 무엇인가?

테레즈 클레르 : 한 손에는 성서, 또 한 손에는 《자본론》. 이게 아주 괜찮은 시스템이었다. (29쪽)

 

한 쪽 극과 또 다른 한 쪽 극. 끝과 끝을 맞잡는 용기, 하고 있는 일에 대한 명확한 이해, 그리고 자신의 삶에서의 철저한 실천이 좌파, 레즈비언이자, 활동가로서의 테레즈 클레르의 삶의 원동력이다. 좌파로서 멈추지 않고, 절망하거나 낙담하지 않고 한 평생을 살 수 있게 한 힘, 끊임없이 가동되는 모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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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aru 2015-10-29 16: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리 인생이 시간이 그다지 많지 않다는 것을 생각하죠. 그럼 오히려 느긋해지는 것 같아요. 뭔가를 움켜쥐기 위해 쫒기듯 살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이게 녹록치 않은 현실에 대처하는 방법 아닌 방법이랄까.. ㅎㅎ;;
멋진 책의 아우라가 느껴지네욤^--^

단발머리 2015-11-02 08:37   좋아요 0 | URL
네, 아주 근사하고 멋진 책이었어요.

이렇게 살아도 되는구나, 많이 소유하려는 욕심, 자랑하려는 욕심을 버린다면 의외로 근사하게, 우아하게, 행복하게 살 수 있겠구나, 그러면서도 남을 도우며 살 수 있겠구나, 뭐 그런 생각이 많이 들더라구요.

느긋해져야겠어요. 더 많이... 이러다 게을러지면 어쩌죠@@
 
외계지성체의 방문과 인류종말의 문제에 관하여 - 대답 없는 우주에 대답을 던지는 두 지성 간의 대화
최준식.지영해 지음 / 김영사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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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종교학자 이화여대 최준식 교수와 신학자 옥스퍼드대 지영해 교수의 대담집이다. 가상의 질문을 받고 두 사람이 번갈아 대답하는 형식이다. 인터뷰를 엮은 책이 대부분 그러하듯 쉽게 읽히는 장점이 있다.

제일 궁금한 것은 역시 ‘외계인’에 대한 것이다. 그들은 누구이며, 그들은 왜 우리를 방문하고 있는가?

하늘을 날기 이전부터, 대기권 밖으로의 여행이 가능해지기 이전부터 인간은 지구 외의 행성에서 지적인 생명체를 찾기 위해 노력해왔다. 현재까지는 달에서도, 화성에서도, 태양계 안의 어떤 행성에서도 인간에 필적할만한 지적인 생명체를 발견하지 못 했다. 이 책에서는 UFO를 타고 인간을 찾아오는 외계인의 존재와 특성에 대해 UFO 목격자들과 외계인들에게 납치당해 생체실험을 당했던 ‘피랍자들’의 증언을 근거로 이야기하고 있다.    

 

1. 그들은 누구인가

제 생각에 그들은 물질과 비물질의 상태를 마음대로 오갈 수 있는 존재로 보이는데, 굳이 말하자면 그들의 몸은 물질보다는 에너지에 가까운 것 같습니다. 그래야 외계인들에게 납치당한 사람들의 증언처럼 벽을 투과해서 들어오는 외계인의 상태가 설명이 됩니다. (72쪽) 우리처럼 물질계에 속한 존재들이 아니라 우리보다 적어도 한 차원 높은 초trans 물질계에 속하는 존재인 것 같습니다. (143쪽) .... 저는 그 적나라한 예를 예수가 부활해 다시 지상에 나타난 장면에서 발견했습니다. 예수의 몸은 육체가 아니라 영체였습니다. 그렇게 추정할 수 있는 근거는, 그가 갑자기 나타났다 또 갑자기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육체라면 그렇게 할 수 없지요. 그런데 그렇게 영체로 움직이면서도 같이 밥을 먹는 등 육체를 가진 다른 제자들과 똑같이 행동했습니다. (156쪽) 

2. 그들의 외모는 어떠한가?

피랍자들의 증언에 의하면, 피랍과 관계된 외계인은 크게 네 가지 모습으로 한정됩니다. 첫 번째는 인섹토이드insectoid로, 곤충 특히 사마귀의 모습에 가까우며, 둘째는 큰 그레이로, 키가 150-180센티미터 정도 되는 키에 회색빛 혹은 연두색 피부를 가졌다고 합니다. 눈은 검고 큰 아몬드형이고, 궁둥이는 독립적으로 발달되어 있지 않다고 합니다. 코, 입, 귀는 퇴화되어 흔적만 있고 머리가 몸체에 비해 월등히 발달되어 몸이 전체적으로 가분수형입니다. 셋째는 작은 그레이로, 키만 90-120센티미터 정도로 조금 작을 뿐, 모양새는 큰 그레이와 거의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인간형인데, 이 외계인은 인간과 거의 같은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174쪽)

 

3. 그들은 어디에서 오는가?

모든 증거를 보았을 때, 현재 인간이 거주하고 있는 생명공간과 바로 맞닿은 다른 생명공간이 있고, 이들은 거기서 온다고 가정해야 합니다. (154쪽) ... 진화는 이 모든 생명공간 전체에 걸쳐 체계적으로 일어나는 것이고, 따라서 인간에게 알려진 지구생명공간과 외계인들이 속해 있는 생명공간 모두 하나의 더 커다란 진화권에 속해 있을 것으로 봅니다. (162쪽)

 

4. 그들은 왜 지구에 찾아오는가?

제 생각에는 외계인이 인간에게 나타나는 이유는, 인간을 특히 생각해주어서가 아니라, 인간 영역에서 벌어지는 일이 이제 그들의 영역에까지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 지금 인류가 처해 있는 가장 큰 위기는, 앞에서 본 대로 핵과 환경 문제입니다. 핵무기 발사 통제 시스템 무력화는 1967년 3월 16일 미국 몬태나주의 맘스트롬 공군기지에서 있었던 일이지요. (199쪽) 애초에 환경문제가 대두되게 된데에는, 세 개의 낯익은 주범이 있습니다. 하나는 경제적 요인으로 과생산, 과소비를 지향하지 않으면 몰락하는 현재의 시장자본주의입니다. 둘째는 정치적 요인으로 민주주의 체제이며, 셋째는 국제관계적인 요인으로 국가 이익을 우선시하고 국가 간 경쟁 체제 속에서 범국제적 기후 협약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민족국가 체제입니다. (220쪽)

 

5. 외계인들은 왜 지구인을 납치하는가?

피랍 사건의 핵심은 인간에 대한 생체 연구 및 유전자 실험과 함께 혼혈종 생산으로 집약될 수 있어요. (82쪽)

 

결론 : 인류의 생존에 치명적으로 위협적인 핵무기 개발과 환경 파괴로 인해 지구의 존립 자체가 위협받게 되자, 지구와 같은 생활권인 광역진화권에 속하는 외계인들이 지구를 찾아와 지구인을 납치하고 생체실험 및 유전자 연구를 통해 외계인과 지구인과의 혼혈종을 양산코자 한다.

UFO를 목격했다거나 외계인을 실제로 만났다는 것만 해도 믿어지지 않는 일인데, 외계인에게 납치되어 UFO 안에서 생체실험을 당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숫자가 적지 않고, 서로 멀리 떨어져 살고 있는 이들의 주장이 일치한다는 게 흥미로웠다. 미국과 프랑스가 보관하는 1만여건의 UFO 목격 공식 기록과 영국 정부가 공포했다는 UFO 현상 뒤 고도의 지능적 존재에 대한 리포트는 이 책이 정신 나간 몇몇 사람들의 증언과 할 일없는 교수들의 작업이 아님을 보여준다.

외계인에게 납치된 피랍자들이 소리를 지르며 생체실험을 거부하고 외계인을 손으로 때리거나 발로 차거나 할 때, 외계인들은 이렇게 말한다고 한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This is very important.' (86쪽)

누구에게 어떤 의미에서 중요한지는 모르겠으나, 정말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다면, 지구의 멸망이 가까웠다면, 지구를 구하기 위한 외계인 프로젝트가 가동되고 있다면, 오늘 나는 지금, 무슨 일을 해야 할까.

반면에 진보적 마인드를 가진 기독교인들은 외계인을 긍정적인 존재로 보고, 하나님이 창조한 세계 속에서 나름대로의 위치와 주어진 기능이 있다고 볼 수도 있어요. 좋은 천사 정도에 준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263쪽)

개인적인 생각을 밝히자면, 나는 외계인이 존재할 수 있다고 본다. 기독교의 전통적인 입장에서는 ‘인간’이 하나님을 제일 많이 닮은 존재로서, 우주에서 지적, 인격적 존재가 ‘인간’뿐이라고 말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자신만 아는 ‘인간’의 의견일 뿐이고. 내가 아는 하나님은 한 손으로는 코끼리를, 또 한 손으로는 개미를 만드시는 너무나 창조적인 분이시라 ‘인간’ 말고도 다른 존재, ‘지적이며 인격적인, 하나님을 닮은 다른 존재’를 만드실 수도 있다고 본다. 지금까지 이들의 존재를 몰랐던 건 알 필요가 없었을 뿐이고, 스스로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어 뻔히 정해진 파멸의 길로 들어서는 인류에게 마지막 ‘찬스’가 주어질 지도 모를 일이다.

추석날 밤에는 3-4년에 한 번씩 나타난다는 슈퍼문을 보러 밖으로 나갔다. 도심 아파트 숲 속 한복판에 서서 휘영청 밝은 달을 보고 섰노라니, 달 속의 음영이 새삼 또렷해 보이고, 그래, 외계인은 있어, 하는 생각과 넌 누구냐, 하는 생각이 수시로 교차한다.

앙증맞게 작아 제대로 보이기는 할까 기능이 의심스러운 작은 망원경을 들고 달을 관찰하는 지구인. 세상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뒷모습을 바라보며 드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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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5-09-29 17: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아 그러고보니 저는 연휴동안 달을 보지 않았네요 ㅜㅜ

단발머리 2015-09-29 18:16   좋아요 0 | URL
휘영청 밝은 달이 아주 크다해서 저는 잠시 밖에 나왔다가 의도치 않게 치 콜, 뭔지 아시지요? ㅋㅎㅎ 다락방님, 추석 잘 보내셨지요? *^^*

icaru 2015-10-15 09: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롱이에요? **,**)) 아아 아들~!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뒷모습 공감해요!!! ㅎ
치 콜,은 치킨 콜라??





단발머리 2015-10-15 18:07   좋아요 0 | URL
저는 아롱이가 옆으로 돌아누워잘 때 그게 그렇게 귀엽더라구요.
쟤도 인간이구나, 이런 생각과
쟤도 많이 컸구나, 이런 생각이 동시에... ㅎㅎㅎㅎㅎ

딩동댕!! 치콜은 치킨, 콜라입니다. 아.... 치콜 먹고 싶어요!!!!!!!!!!!!!!!!!!!!!!!!
 
로마의 일인자 2 - 1부 마스터스 오브 로마 1
콜린 매컬로 지음, 강선재 외 옮김 / 교유서가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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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기 절정의 시리즈, ‘로마의 일인자’ 2권이다.

최하층민도 로마를 위해 싸울 수 있게 해 달라는 마리우스의 연설은 묵직한 감동을 전해주고, 자신의 엉뚱한 허영심 때문에 로마군을 전멸의 상태로 밀어넣는 카이피오의 어이없는 단호함에는 쯧쯧 혀를 찬다. 이 책에서 제일 흥미로운 이야기라고 한다면, 역시나 사랑 이야기 그리고(혹은?) 결혼 이야기이다. 2권에서는 두 쌍의 결혼이 진행되는데, 운명의 상대를 찾은 겁나게 운좋은 선남선녀 한 쌍의 이야기와 집안의 필요 때문에 결혼해야만 하는, 당시로서는 평범하다고 할 수 있는 두 쌍의 이야기가 바로 그것이다.

아우렐리아는 명문가의 외동딸이자 로마 당대 최고의 미녀로 손꼽였다. 결혼할 경우 그녀가 가지고 가게 될 엄청난 금액의 지참금은 그녀의 매력을 한껏 부풀려 주었는데, 딸을 결혼시키려다 주변에 수많은 정적을 만들게 될까 두려웠던 아우렐리아의 부모는 ‘아우렐리아 스스로 그녀의 배필을 선택하게 하라’는 외삼촌 루푸스의 제안을 받아들인다. 아우렐리아는 로마의 귀족 여인이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을 때까지 흠모하는 여성인 코르넬리아(162쪽)의 입장에서 자신의 배우자를 찾고자 한다. 로마인의 힘과 끈기, 로마인의 고결함과 인내를 갖고 있는 사람, 그런 사람과 결혼하고 싶어한다.

아우렐리아는 본래 큰 자줏빛 눈을 더 크게 뜬 채 자기 운명의 상대를 쳐다보았다. 로마인의 이상이나 코르넬리아는 전혀 떠올리지 않았다. 어쩌면 어딘가 그녀 마음속의 더 깊은 차원에서는 그랬을 수도 있다. 시간이 지난 후에야 깨닫게 되겠지만, 그는 실제로 두 가지 기준에 부합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처음 만난 순간 그녀가 그에게서 본 것은 로마인답게 긴 코와 긴 얼굴, 짙푸른 눈동자, 굵고 곱슬거리는 금발과 아름다운 입뿐이었다. 그간의 모든 내적인 갈등과 신중하지만 무익했던 숙고 끝에, 아우렐리아는 가장 자연스럽고 만족스러운 방식으로 자신의 난제를 해결했다. 그녀는 사랑에 빠진 것이다. (170쪽)

 

그렇게 지혜로운 여성, 그렇게 로마인의 불멸의 이상에만 몰두했던 아우렐리아는 그간의 모든 과정을 간단히 뛰어넘어, 지금 이 순간, 이 잘생긴 청년에게 빠져버린다. 아우렐리아를 만난 청년의 심정이라면 두말하면 잔소리.

“그래, 내 조카딸을 어떻게 생각하나?” 최고급 투스카니아산 포도주가 나오자 루푸스가 물었다.

“살아 있는 게 좋냐고 묻는 것과 비슷한 말씀입니다! 다른 대답이 있을 수 있을까요?”

“그애가 그렇게 좋은가?”

“그녀가 좋냐고요? 네, 물론입니다. 사실 저는 그녀를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174쪽)

 

살아 있는 게 좋냐고 묻는 것처럼 당연한 질문이라고? 루푸스는 ‘다른 대답이 있을 수 없는’ 걸 괜히 물어봤다. 젊은 가이우스 역시 첫 눈에 아우렐리아에게 반해버렸다. 하지만, 로마에서 제일 지체 높고 부유한 독신남들이 그녀와 결혼하려고 ‘결혼 신청자 명단’에 이름을 올려놓고 있는데, 가난한 가이우스에게 그것이 가당키나 한 일인가. 해결책은 의외의 곳에서 나왔다.

다음 날 아침 일어났을 때 아우렐리아는 자신이 어떻게 해야 할지 깨달았다. 그녀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카이사르 저택으로 카르딕사를 보내 청년에게 편지를 건넨 것이었다.

‘내게 청혼해 주세요.’

편지에는 대담하게도 이렇게 적혀 있었다. (179쪽)

 

가이우스는 청혼을 넣어 ‘대기표’ 마지막 번호를 받고, 아우렐리아는 자신의 부모에게 방금 ‘대기표’를 뽑은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2세’와 결혼하겠다고 말한다. 의붓아버지 코타는 아우렐리아에게 청혼했던 남자들에게 ‘단체 편지’를 발송하고, 그녀가 가이우스와 결혼할 것임을 공식적으로 알린다.

아우렐리아의 구혼자 목록에 있던 사람들은, 아무리 혈통이 좋다고는 하나 한낱 원로원 평의원에 지나지 않는 자의 차남에게 밀려난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게다가 그 운 좋은 청년은 지나치게 잘생겼고, 밀려난 구혼자들은 대부분 그것이 불공정한 특혜라고 여겼다. (183쪽)

 

직업-학력-재산 정도에 따라 급수를 매겨 사람을 평가하는 근래의 결혼 정보 회사나 당시 로마의 결혼 풍습이나 크게 다를 것이 없다. 집안이 중요했지만, 그보다는 재산이 더 중요했다. 재산이 많은 쪽은 어떻게 해서든지 더 좋은 집안과 결혼하려 했고, 명문가이지만 돈에 찌들린 집안은 돈이 넉넉한 집안과 사돈을 맺어 자신들의 자녀와 자녀의 자녀 뿐 아니라 자신들도 풍요로운 삶을 누리고자 했다.

더 좋은 집안의 남자, 더 부유한 집안의 남자들을 모두 물리치고 아우렐리아가 선택한 남자는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2세’. 예선과 본선에서 동시에 탈락한 남자들이 한결같이 외치듯 ‘반반한 외모’ 때문에 그녀의 선택을 받은 행운의 남자.

부모가 자신에게 물려줄 수 있는 최고의 자산이 결국 ‘외모’인가, 하는 쓸데없고 필요없으며 의미 없는 생각을 1초간 해보다가 다음 커플로 넘어간다.

다음 커플이라고 한다면 두 번째 커플이라고 할 수도 있고, 두 번째와 세 번째 커플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 두 커플은 첫 번째 커플의 탄생과 동시에 결혼이 진행되는데, 예선과 본선에서 동시에 탈락해 매우 불쾌한 드루수스가 친구의 아버지인 카이피오에게 결혼 동맹을 제안하는 것으로 그 이야기가 시작된다. 즉, 자신이 친구의 누이동생과 결혼을 하고, 자신의 누이동생을 친구의 아내로 맞게 함으로써 공고해진 두 집안의 위세로 잃어버린 미스 로마 아우렐리아와 결선에서 승리를 차지한 가이우스 집안을 견제하겠다는 야심한 계획에서 나온 것이다.

문제는 여동생의 결혼을 진행하는 데서 발생했다. 드루수스의 여동생 리비아는 다리가 짧고 여드름난 얼굴에 어느 모로 보나 못생긴 세르빌리우스와 결혼하지 않겠다고 했기 때문이다. 원래부터 갇혀서 지냈던, 오빠의 친구 한 두 명의 얼굴을 가끔씩 볼 수 있을 만큼 집 안에 갇혀 살았던 리비아는 자신의 침실에 감금된다. 음식이 제한되고, 빗장을 설치하고, 문 밖에 사람을 세워 항시 감시하게 했다. No라는 대답. 더 작은 방으로 옮겨가 감금되고, 식사도 효모를 넣지 않은 빵과 물로만 한정시켰다. 닷새 동안 완전히 혼자 있도록 했다. 그래도 리비아의 대답은, No. 그리고 또 다시 진지한 협박.

아버지가 없는 가정에서의 오빠. 실질적 가장. 삶에 대한 절대적인 통제권을 강조하는 오빠. 죽음에 대한 절대적인 통제권을 이야기하는 오빠.

리비아는 항복한다.

“너를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 내겐 진정한 기쁨이다, 리비아. 네가 적절한 로마 여성처럼 행동하고 네게 기대되는 일을 하기만 한다면 말이다. 나는 네가 자신의 결혼을 기뻐하는 여느 처녀와 마찬가지로 퀸투스 세르빌리우스를 대하기를 원한다. 그는 네가 기뻐한다고 생각해야 한다. 너는 그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는 경의와 존경과 관심과 애정으로 그를 대해야 한다. 단 한 순간도, 결혼한 후 침실에서조차, 네가 그를 남편으로 택한 것이 아니라는 암시를 줘서는 안 된다. 알겠느냐?“ (228쪽)

 

사랑하지 않는, 아니 싫어하는 사람과 결혼하는 것도 모자라 그 사람에 대한 ‘애정없음’을 눈치채지 못하게 하라는 오빠의 주문은, 가장의 이 엄숙한 요구는 그의 지배 아래있는 리비아를 완전히 굴복시킨다.

삶과 죽음의 통제권을 모두 빼앗긴 존재. 여동생. 여자. 리비아.  

 

 

 

 

위의 사진에서 확인되는 바, 로마의 일인자 1권의 표지의 주인공은 금색이다. 2권의 주인공은 은색. 3권의 주인공은 당연히, 동색이다. 금, 은, 동. 나는 다음 시리즈의 표지 주인공이 무슨 색을 입고 등장할지 아주 궁금했는데, 금, 은, 동의 올림픽 배열이 끝났다면, 다음에는 빨강, 노랑, 초록의 신호등 배열 혹은 빨주노초파남보의 무지개 배열이 가능하겠다 혼자만 생각했다. 그런데 어제 도서관에 가서는 금색의 [로마의 일인자 3권]을 발견했다. 확인해보니 쇄가 다르다. 금메달은 1쇄, 동메달은 2쇄이다. 금, 은, 동 올림픽 정신을 이어가야 하는데...

이제 글을 마무리하려는 찰나, 서비스차원에서 아우렐리아 사진 한 장 투척한다.

좋아하시는 분도 없지 않으리라 생각하지만, 나처럼 놀라시는 분들 여럿 있으시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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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5-09-17 14: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리비아의 오빠 때문에 빡치네요.. ㅠㅠ 그래서 리비아는 어떻게 되는겁니까!! ㅠㅠㅠ

단발머리 2015-09-17 15:05   좋아요 0 | URL
그 리비아의 오빠는 친구 여동생이 맘에 들었거든요. 집안끼리의 결합이기도 하고, 아우렐리아보다야 아니지만, 그래도 괜찮았거든요. 자기는 일단 괜찮으니까...

리비아는... 다른 대답이 있을 수 있을까요?

리비아는 오빠가 정해준 사람이랑 결혼하기로 했어요.
리비아가 결혼식을 어떻게 맞이했는지는 나오지 않아 모르지만, 아무튼 결혼하기로 했어요. 오빠 뜻대로요.
오빠의 협박은 정말... 압권입니다.

˝진심이다, 동생아. 책도, 종이도, 빵과 물을 제외한 그 어떤 음식도, 목욕도, 거울도, 여종도, 깨끗한 옷도, 새 이불도, 겨울에 화로도, 담요도, 구두와 덧신도, 목을 매어 자살할 수 있는 벨트나 띠나 리본도, 손톱과 머리카락을 자를 가위도, 스스로를 찔러 죽을 수 있는 칼도 주지 않을 것이다. 만일 네가 굶어죽으려고 하면 네 목에 음식을 강제로 밀어넣도록 할 것이다.˝ (225쪽)


다락방 2015-09-17 16:00   좋아요 0 | URL
이런 개자식 ㅠㅠ

단발머리 2015-09-17 16:02   좋아요 0 | URL
이라고 부르셔도 전혀 무방합니다~~

2015-09-17 17: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9-22 11: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9-22 12: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9-22 12: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9-22 12: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9-22 12: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9-22 17: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9-23 07: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올 어바웃 러브
벨 훅스 지음, 이영기 옮김 / 책읽는수요일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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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 제일 흔한 게 사랑이다. 모든 시, 모든 소설, 모든 노래는 궁극적으로 ‘사랑’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 세상 하고 많은 사랑이 있겠지만 협소한 의미의 사랑, 남녀간의 사랑, 로맨틱한 사랑이 가장 많이 ‘사랑 받는다’.

이 세상 제일 찾기 어려운 것도 또한 사랑이다. 영원한 사랑을 맹세하던 입으로 어쩔 수 없다며 이별을 고하고, 떨림을 전하던 따뜻한 손으로 사랑하는 그/그녀를 가차없이 후려친다. 사랑하고 미워하고, 만나고 헤어지고, 다시 어렵게 만나서는 마침내 결별한다. 진정한 사랑, 모든 사람이 갈망하는 ‘진정한 사랑’이 이 시대에 가능한 일이기는 한가.

 

1. 사랑이란

정신의학자인 스캇 펙 Mr. Scot Peck이 1978년에 출간한 『아직도 가야할 길The Road Less Traveled』에서 그는 사랑이란 "자기 자신과 다른 사람의 영적인 성장spiritual growth을 위해 자아를 확장하고자 하는 의지“라고 규정했다. (35쪽)

모두 다 사랑을 원하지만, 모두 다 사랑받고 사랑하기를 원하지만, 아무나 다 사랑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사랑하려는 ‘의지’를 갖고서 사랑을 ‘선택’하는 사람만이 사랑을 할 수 있다 (35쪽). 사랑이라는 선택, 즉 단순한 애정을 넘어선 진정한 사랑이란 상대에 대한 관심과 보살핌, 상대를 인정하고 존경하는 태도, 상대에 대한 신뢰와 헌신(36쪽)을 모두 포함하는 것이다. 스캇 펙의 사랑에 대한 정의는 ‘순간적 충동이나 끌림’이나 ‘폭발적 감정 몰입’의 유무로 사랑을 판단하는 우리에게 진지한 사랑의 단면을 제시한다.

사랑이란, 자기 자신과 다른 사람의 영적인 성장을 위해 자아를 확장하고자 하는 의지이다.

- 스캇 펙

 

2. 소리 지르는 딸

우리 집에서 오빠는 아무리 말대꾸를 해도 벌을 받거나 꾸중을 들은 적이 없었다. 오히려 자기 의견을 고집하는 것은 남자다운 모습이라며 권장되었다. 반면 딸들이 의견을 강하게 내세우면 버릇없고 나쁜 행동이라며 제지를 당했다. 특히 아버지는 여자들이 자기 의견이 강하면 여성스럽지 않다며 꾸지람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경고를 무시했다. 우리 집안은 가부장적인 성격이 강했지만 남자는 아버지와 오빠뿐이었고, 여자가 더 많았기 때문에 마음 내키는 대로 말을 하고 말대꾸를 해도 안전했다. (96쪽)

중국계 미국 여성들, 중국인인 어머니들과 미국인으로 자란 딸들에 대한 소설 『조이럭클럽』에는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10여전 전에 읽었던 거라 정확한지는 잘 모르겠지만, 대략 이런 내용이다. 주인공 중의 한 명인 ‘나’의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아버지는 새어머니를 들였고, 새어머니는 새어머니, 소설 속의 ‘나’는 갖은 구박을 받게 된다. 당시 중국에서는 죽은 사람의 영혼이 그 다음 해, 새해 셋째날에 돌아온다는 미신이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 날, 죽은 엄마의 영혼이 돌아온다고 믿어지는 바로 그 날부터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이 세상에 완벽한 객관성이라는 게 존재할 수 있을까 싶다. 세상은 원래 자기중심적으로 돌기 마련이다. 사람은 어디까지나 자기 입장에서만 생각할 수 있을 뿐이다.

내 주위에는 온통 고집 센 둘째들뿐이다. 아들-딸, 딸-아들, 딸-딸, 아들-아들의 경우를 모두 조사해보았지만, 결론은 똑같다. 첫째들은 말을 잘 듣고 눈치가 없다. 체제 순응적이고 융통성이 없다. 둘째들은 말을 안 듣고, 애교가 많다. 반항적이고 생존기술이 뛰어나다. 이럴 때, 가장 안 좋은 경우의 수는 딸-아들의 구성으로 태어난 ‘누나’, 여자 아이다. 애교가 많아 덜 혼나고, 고집쟁이로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고, 막내라는 이점을 마음껏 누리는 아들에 비해, 누나인 큰아이는 엄마, 아빠 말은 잘 듣지만, 융통성이 없어 더 많이 칭찬받지 못한다. 위와 아래에서 모두 치인다.

초등학교 1학년, 간식으로 나온 ‘콜팝’을 태어나서 처음 먹게 된 딸아이는 ‘환상적인 맛’에 완전 감동했음에도 불구하고, 10개의 팝콘볼중에서 4개만 먹고 6개를 고이 남겨왔다. 사랑하는 동생과 이 ‘환상적인 맛’을 나누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다. 나는 딸애에게 잘했다고 말하기는 했지만, 그 다음을 더 강조해서 말했다.

“그러니까, 다음부터는 남기지 말고, 네가 다 먹어. 맛있는 거잖아. 네가 다 먹어.”

둘째가 커가면서 싸우는 일이 잦아졌는데, 말로 몸으로 싸우고 나서 우는 아이는 누나인 큰아이였다. 동생은 누나를 때렸고, 누나는 동생을 때리지 못 했다. 더 이상은 안 되겠다는 생각에, 나는 딸애에게 ‘폭탄선언’을 했다.

“앞으로는 동생에게 양보하지 마.”

형이라고 언니라고 무조건 양보해야 한다는 건 불합리한 일이다. 스스로 선택해서 양보한다면 참 좋겠지만, 무조건 그렇게 해야 한다면, 자기주장이 강하지 못 해 항상 양보해야 하는 사람에게는 억울한 일이다. 남동생에게 맞고 우는 여자아이라면 어디에 가서도, 누구에게도 결국은 양보할 수 밖에 없다는 생각에, 나는 딸아이를 더 강하게 키워야겠다고 생각했다.

아롱이에게는 양보와 배려를 강조했고, 딸아이에게는 자기 스스로를 주장할 것을 가르쳤다.

요즘은 거의 대부분의 가정이 그렇겠지만, 아이들도 부모의 권위를 두려워하지 않고 자신의 의견을 자연스럽게 말할 수 있는 분위기다. 신기한 건, 가르쳐주지 않았는데도 아들은 소리 높여 자신의 주장을 이야기했고, 딸애는 무슨 이야기든 말만 할라치면 일단 눈물바람이었다.

다시 한 번,

아롱이에게는 양보와 배려를 강조했고, 딸아이에게는 자기 스스로를 주장할 것을 가르쳤다.

양보하지 않아도 된다,라는 걸 딸애에게 말한 건 지금으로부터 5-6년 전인데, 페미니즘 책을 읽었거나 읽지 않았거나 그에 상관없이, 나는, 딸애를 소리지르는 아이로, 소리 지를 수 있는 아이로 키워내고 있었다.

소리 지르는 딸, 소리 지르는 여자로 말이다.

 

3. 영적인 삶

나는 오랫동안 영적인 실천을 행하고 있다는 사실을 친구나 동료들에게 털어 놓지 않았었다. 진보적인 사상가나 학자들은 ‘신성한 정신’에 열정적으로 몰두하기보다는 무신론적인 태도를 취하는 편이 더 멋지고 자신들에게 어울린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다. ... 그토록 젊고 똑똑하고 멋진 학생들이 연구실로 찾아와 자신이 얼마나 삶에 낙담하고 있는지 고백하는 이야기를 듣고 그 고통을 위로만 하고 끝내는 것은 너무 무책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121쪽)

청소년기 시절, 내가 기억하던 두 개의 다른 구절.

책 제목도 기억나지 않는 책의 한 구절, “이성으로부터 오는 따뜻한 격려와 사랑이 인간이 받을 수 있는 최고의 위안”이다. 또 한 구절, “인간 영혼의 가장 깊은 내면은 오직 신에 의한 사랑으로서만 채워질 수 있다. 인간은 오직 신, 하나님 안에서만 완벽한 평화를 누릴 수 있다.”

초등학교 때 제일 친했던 친구는 초등 6학년 때 좋아하던 오빠가 있었는데, 나이 스물에 웨딩드레스를 입고 그 오빠의 손을 잡고는 결혼식장에 입장했다. 중학교 때 제일 친했던 친구는 중학교 2학년 겨울부터 좋아하던 오빠와의 ‘연애전선’에 뛰어들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내게서 너무 멀리 있었고, 근처에는 나를 좋아하는 사람도, 내가 좋아하는 사람도 없었다. 나는 그냥 그렇게 혼자였는데, 당시에는 이성교제가 요즘처럼 흔하지 않아 남자친구가 없다는 게 그리 유난한 일은 아니었지만, 가까운 친구들이 모두 남자친구가 있는데, 나만 남자친구가 없어, 쓸쓸한 나날이었다. 당시에는 조금 심각했는데, 써놓고 보니 조금 웃긴다. 그 때는 진지했는데, 지금은 왜 웃긴가. 나는 왜 웃는가.

무튼, 나는, 혼자인 나는, 내게 사랑을 주는 어떤 대상을 갈구했다. 나를 사랑해줄 사람, 변하지 않는 사랑으로 날 사랑해 줄 어떤 사람을 말이다. 물론 그런 사람을 만나지 못 했다. 다시 한 번 말하자면, 내가 좋아하는 그 사람은 내게서 너무 멀리 있었고, 그건 물리적 거리 뿐만 아니라 심리적인 것을 포함한 거였다. 그런 사람을 찾고 찾았지만, 만나지 못 했다. 그런 사람을 만나지는 못 했지만, 그런 사랑은 만났다.

나를 지탱해주는 것은 신God이 곧 사랑 ― 사랑은 모든 것이고, 우리의 진정한 운명이다 ― 이라는 믿음이다. 나는 매일 명상과 기도, 묵상과 봉사, 예배와 자비로움을 통해 이 믿음을 확인한다. (121쪽)

나를 설명하는 여러 가지 말, 정체성, 아이덴티디 중에서 가장 중요한 건, 내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이다. 나는, 내가 찾던 사랑을 찾았고, 그 사랑을 찾은 후에야 그 사랑이 먼저 나를 찾아왔음을 알았다. 그 사랑이 나를 먼저 찾아왔고, 나를 위해 죽었고, 나를 다시 살렸으며, 지금도 내 곁에 살고 있음을 알게 됐다 (로마서 5장 6-10절). 이 사랑이 내게는 가장 소중한 사랑이었고, 그리고 지금도 그러하다.

나우엔은 “아무리 친구가 많고, 사랑하는 애인이 있고, 남편과 아내가 있고, 어떤 탄탄한 조직에 속해 있어도 완전한 wholeness 자아, 통일된unity 자아를 찾고 싶다는 내면의 갈증을 충족시켜주지는 못한다”면서, 그 갈증은 우리가 고독을 기꺼이 받아들여서 자기 안에 ‘신성한 정신’이 드러나게 될 때 해소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183쪽)

남편, 아이, 애인, 부모, 동생 그리고 친구.

날 아껴주고 지금도 변함없는 사랑과 지지를 보내주는 사람과 결혼했다. 사랑을 하고, 아이들을 낳았다. 뜨거운 사랑과 뿌듯한 사랑, 가슴 찡하고, 가슴 벅찬 사랑이 있었고, 지금도 그러하다. 하지만, 나를 가장 행복하게 하는 사랑은, 나의 진정한 첫 사랑은, 남편도 아이도, 내게서 항상 멀리 있던 그 사람도 아니다.

나의 내면의 갈증을 충족시켜주는 이는, 내 영혼을 만족케 하는 이는, 내 안에 사는 이, ‘신성한 정신’, ‘거룩한 성령’, 하나님이자 인간인 예수 그리스도다.

진정한 사랑을 하고 있는 커플들과 오랫동안 대화를 해보고 내린 결론은, 진정한 사랑의 가장 공통된 특징은 ‘무조건적’이라는 점이다. 진정한 사랑을 하는 사람들은 상대에 대해 어떤 조건도 내걸지 않는다. 서로가 상대를 통해 자신을 변화시키려고 건설적으로 투쟁하고 노력하는 가운데 진정한 사랑이 꽃피는 것이다. (234쪽)

결국엔 사랑이다.

마지막은 사랑이며,

또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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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개 2015-08-31 13: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가끔은 신앙을 가진 분들이 대단하다거나 부럽다거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흠...모르겠어요.
앞일은 모르는거지만
이따위 세상에서는 제게 신에 대한 믿음이나 사랑은 불가능하게 느껴지네요.

2.따님이 너무 착한건
아무래도 단발머리님을 닮아서 그런게 아닐까요? *^^*

단발머리 2015-09-01 13:07   좋아요 0 | URL
1. 흐음.... 맞아요.
신에 대한 믿음이나 사랑을 갖고 살기 힘든 세상이예요. 그건 참 맞습니다. T.T

2. 저를 닮은 건 아닌 것 같구요. 헤헤.
강하게 키우고 싶어요. 당당한 여자로요. 그런데 조금 사근사근했으면 좋겠구요.
이거 가능한 건가요?

다락방 2015-08-31 13: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따님이, 단발머리님의 바람대로, 소리지를 수 있는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기를 같이 바랄게요.
잘 읽었습니다, 단발머리님. 좋은 책을 읽고 좋은 글을 써주셨어요. 뭐랄까, 고마운 마음도 들어요. 읽고 써준 것에 대해서도, 그리고 아이의 교육에 대해서도요.

단발머리 2015-09-01 13:49   좋아요 0 | URL
다락방님, 뭐 이미 아시겠지만서도.
저는 이 책을 다락방님 서재에서 보고는, 나도 읽어야겠다~~ 하고서 한참 지나서 지금에서야 읽었네요.

정말 좋은 책이예요. 자극적이지 않으면서도 감동을 주었던 글이구요.
저는 기억력이 진짜 별로라서, 한 번 본 건 꼭~~ 잊어버리는데, 리뷰도 그렇고 다른 페이퍼에서도 다락방님이 이 책을 반복 소개해주셔서 제가 읽을 수 있었네요.

감사해요, 다락방님~~

지금행복하자 2015-08-31 14: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연년생 두 남자아이를 기르면서 큰 애. 작은 애의 개념을 심어주지 않으려고 무지 노력했었어요. 아들. 큰 아들 작은 아들 요련거 없이 항상 이름불러주고~
4
형의 의무 안 심어주려고 애썼고, 무조건 양보는 안되고~ 동생이라고도 의무. 무조건양보 이런거 없이 나름 동등한 개체로 키웠더니~~
음~~ 사춘기가 되니 집안이 ~~ ㅎㅎㅎ

어째든 좀 시끄럽기는 해도 자기목소리내고~ 엄마인 저 한테도 지지않으려고 하는걸 보면 원하는 대로 큰것도 같은데., 속으로는 쩝~~ ㅎㅎ

서운한건 서운한거고 자기 목소리내고 제 몫 다 해내는 아이로 기르는 것이 우리 부모들이 해야할 일인것 같아요~ ㅎㅎ

조이럭 클럽은 진짜 오래전에 봤었고 읽었던 책인데.. 지금 보면 좀 느낌이 다를것 같아요~

단발머리 2015-09-01 13:14   좋아요 0 | URL
무조건 양보 없이 키우는 엄마가 별로 없다고 봐요. 제 주위의 엄마들은 대부분 첫째에게 양보를 강요하더라구요. 지금 행복하자님, 정말 대단하세요.

자기 목소리를 낸다는 점에서... 저는 큰 아이가 딸이라는게 크게 작용했던것 같아요.
연배보다 성차이요.
그러니까, 큰애가 작은애한테 밀리는 것으로 이해했다기 보다는 누나가 남동생한테 지는 상황이 싫었어요.
지금은 많이 싸웁니다. 정말 많이 싸워요. 아침에도 점심에도 저녁에도. 오늘은 새벽에도요.
자기 주장은 하되, 배려를 아는 아이로 키우는 게 제 목표이지만.... 가능한가요?
세상에 제일 어려운 일이 자식키우는 일... @@

지금행복하자 2015-09-01 14:37   좋아요 0 | URL
정말 많이 싸워요~ 심할정도로.. 부모도 몰라보고~~ㅎㅎ
아직은 자기 목소리만을 내는 시기라 더 그럴거라 생각해요~ 생각해보면 남 생각하고 주위둘러보기시작한것이 그리 오래전은 아닌것 같아요. 많이 싸우고 싸우면서 타협도 하고 포기도 하고 하면서 배려라는 걸 배우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어요. 배려를 받아보지 못했는데 배려를 할 수는 없잖아요.
배려가 인권지수에서 높은 레벨이라고 하더군요~ 그 만큼 어려운거라고~~
잘 하실거에요~ 아이들도 엄마의 마음을 충분히 알고요~~~

우리는 가장 힘든 자녀교육을 하고 있을지도 몰라요 ㅎㅎ 인성교육.
차라리 공부시키고 말지~~ 라는 생각 정말 많이 했어요~~ ㅎㅎ

단발머리 2015-09-07 15:18   좋아요 0 | URL
저는 요즘, 소리 지르는 걸 너무 가르쳤나 하는 생각이. ...
소리를 정말, 너무 지릅니다. 그래서, 요즘엔 예절을... 불만이 있으면 조근조근 이야기하자.
나는 소리 안 지르는데, 넌 왜 소리지는냐, 한답니다.

저도 님 생각에 동의하는데, 사랑 받아야 사랑할 수 있고, 배려 받아야 양보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충분히 사랑해 주려하는데.... 아
교육 중에는 인성 교육이 제일 어렵죠.... @@

cyrus 2015-08-31 16: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3년 전에 이 책을 밑줄 그어가면서 읽었는데 공감되는 문장이 많았어요. ^^

단발머리 2015-09-01 13:16   좋아요 0 | URL
아... 역시 cyrus님의 좋은 책을 알아보는 놀라운 심미안~~~
3년 전에 읽으셨군요.
저도 이 책이 너무 좋아, 그녀의 다른 저서도 찾아볼까 하고 있어요.
꼬리에 꼬리를 무는 독서랄까요~~~~~~~~~~~

icaru 2015-09-18 13: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이럭클럽의 세세한 내용까지 기억하시네요 와아--..
저도 이 책을 읽고 밑줄도 긋고 했었던 것 같은데,,, 또 느낌이 달라요~ 단발머리님이 풀어내신 리뷰로 읽는 맛도 근사하고 말이죠... 분명한건.. 벨 훅스의 이 책 속에서, 스캇 팩의 아직도 가야 할 길,을 소개받았던듯 싶어요..오오 위에도 나와요! ㅋㅋ
첫째와 둘째 통계 내신 것 어쩌면,,딱.. 맞나요.. 체제순응적인 둘째와 구테타를 꿈꾸는 반골의 첫째 좀 한번 만나고 싶네요!!! ㅋㅋ 어디 있어 니들은..

단발머리 2015-09-22 11:19   좋아요 0 | URL
역시나~~~ icaru님은 조이럭클럽도 읽으셨군요.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위의 에피소드만 기억나네요.
벨 훅스의 책은 다른 책도 찾아서 읽고 있어요. 쉬우면서도 깨달음을 주는 책들이라 좋아요.

첫째, 둘째 통계 괜찮았나요? 제가 주변에서 보는 애들은 그렇더라구요.
체제순응적인 둘째는 그래도 몇 명 생각할 수 있는데, 반골의 첫째는.... 오호라....
 
필경사 바틀비 - 미국 창비세계문학 단편선
허먼 멜빌 외 지음, 한기욱 엮고 옮김 / 창비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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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쉬는 시간을 갖자고, 내가 나를 꼬셔, 책장 앞에 선다.

진작에 ‘읽고 싶어요’의 범주에 들어 우리 집 책장에 꽂힌 책들 중, 자랑스러운 ‘읽고 있어요’와 명예로운 ‘읽었어요’의 전당에 들지 못하고 아직도 염치 없이 ‘읽고 싶어요’로 분류되는 책들을 돌아본다.

           

 

 

 

 

밀란 쿤데라의 『불멸』, 김승옥의 『무진기행』, 소세키의 『갱부』를 앞에 두고 잠깐 고민에 잠긴다. 갈길이 멀어 엄마 찾아 삼만리인데(여기에서 엄마는 물론, ‘페미니즘’ 엄마씨이다), 이 와중에 장편이 웬 말이냐. 김승옥님 작품은 경건하게 이어서 읽어야 하느니. 단 번에 끝낼 수 있는 단편 중에서 골라라. 그렇다면 예전부터 찜해두었던 게 있다. 『필경사 바틀비』. 

 

 

 

 

 

『필경사 바틀비』를 골랐다면, <필경사 바틀비>를 읽어야 할 테지만, 내가 읽은 단편은 <에밀리에게 장미를>이다. 대학 때 읽었으니까, 이게 얼마만인가,라고 말하며 정확한 년수를 밝히지는 않으니, 내 나이를 짐작조차 하지 마시라.

 

 

<에밀리에게 장미를: A Rose for Emily>은 1930년 3월 30일자 포럼(Forum)에 발표되었고 첫 단편집 『이 13편』(These 13, 1931)에 수록되었다. 에밀리의 장례에서 시작하여 그녀 생애의 특정 국면을 이리저리 옮겨 다니는 화법을 구사하며, 화자가 에밀리의 삶에서 중요하게 생각한 것을 암시하는 방법으로 전개된다. (308쪽)

살아생전에 에밀리는 하나의 전통이자 의무이자 걱정거리였고, 시장이던 싸르토리스 대령 ― 흑인 여자는 앞치마를 하지 않고서는 길거리에 나와서는 안된다는 포고령을 만든 장본인 ― 이 그녀의 세금을 면제해준 1894년의 그날부터 마을에는 일종의 세습 채무이기도 했다. (310쪽)

 

 

 

 

에밀리의 아버지가 죽은 후 그녀에게 남겨진 게 집 한 채밖에 없다는 소문이 돌았을 때, 사람들은 에밀리를 동정할 수 있어 오히려 기뻐했다. 그리어슨 가의 마지막 후예로서 얼굴을 꼿꼿이 들고 다니던 에밀리는 몸집이 크고 검게 탄 민첩한 북부 출신의 십장 배런과 노란색 바퀴의 사륜마차와 한쌍의 적갈색 말을 몰고 다니며 새로운 삶을 꿈꾸는 듯 했다(316쪽). 그녀가 보석상에서 품목 하나하나마다 H.B. 라는 이니셜을 새긴 은제 남성용 의복을 주문했음을 알고는 사람들은 그들의 결혼이 임박했음을 알았다.(319쪽)

하지만 그걸로 끝이었다. 호머 배런도, 에밀리도 한동안 보이지 않았다. 장바구니를 들고 들락날락하던 흑인 하인의 머리가 점점 세어가고 등이 굽어갔지만, 에밀리는 그대로였다.

그렇게 에밀리는 세대에서 세대로 양도되었다 ― 소중하고, 피할 수 없고, 무감하며, 차분하며, 외고집인 존재로서. (321쪽)

 

하나의 전통이자 의무로 세대에서 세대로 양도되었던 에밀리, 그녀가 죽었다. 그리고, 그녀가 죽고 나서야 층계 위쪽 닫혀 있는 방에서 사라졌던 그 남자, 호머 배런이 나타난다.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자신을 떠난다고 할 때, 그 사랑 없이, 그 사람 없이 살 수 없는 사람, 연인으로부터 버림받은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할까. 말없이 고이 보내드려야 할까, 십리도 못 가서 발병날 것이라 저주해야 할까.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만난 배런과 에밀리. 이별에 대한 두 사람의 생각은 확연히 다르다. 배런은 그녀를 사랑하지만 헤어져 지낼 수 있을 거라 생각하고, 에밀리는 배런을 사랑하기에 잠시도 떨어져 지낼 수 없다고 생각한다. 혹 배런은 이제 그녀와 헤어져야겠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으나, 에밀리는 그와 헤어진다는 상상조차 할 수 없다.

배런과 에밀리의 차이는 ‘정도’의 문제가 아니다. 즉, 배런이 에밀리를 덜 사랑했다거나, 에밀리가 배런을 더 사랑했다는게 아니다. 배런에게 에밀리는 ‘선택의 문제’지만, 에밀리에게 배런은 ‘생사의 문제’이다. 배런은 에밀리 없는 세상을 살아갈 수 있을 테지만, 에밀리에게 배런 없는 세상이란 아예 존재하지 않는 공허한 세계일 뿐이니 말이다.

지고지순한 사랑, 지독한 사랑, 그보다 더한 이런 끔찍한 사랑을 받아 본 적이 없어, 나는 잘 모르겠지만, 이 정도면 스토커다. 사건은 배런이 자신을 향한 에밀리의 이런 간절한 열망을 알아채지 못했다는 데서 시작되고 그리고 거기서 끝난다.

떠나려는 애인을 막아서는 방법으로 에밀리는 배런이 자신의 방에서 영원히 잠들게 한다. 에밀리는 배런에게서 생명을 빼앗았다. 에밀리는 배런에게서 움직일 수 있는 자유를 빼앗았고, 그녀를 사랑할 수 있는 자유를 빼앗았다. 에밀리는 배런에게서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자유를 빼앗으려 했겠지만, 그의 생명을 빼앗음으로 해서, 배런이 그녀를 사랑할 자유 또한 영영 빼앗아 버렸다.

결국, 그녀가 빼앗은 것은 그녀와의 사랑을 선택할 수 있었을 배런의 자유다. 그녀가 죽인 건, 연인 배런이 아니라, 그녀를 사랑해주었던 바로 그 사랑이다. 그녀의 삶을 가능하게 하는 사랑. 그녀를 다시 살 수 있게 했던 바로 그 사랑 말이다. 배런이 죽음으로 해서 그녀의 삶을 지탱해주던 사랑도 이제 이 세상에서 영원히 사라져 버렸다. 찬장 아래칸 라면 한 봉지나 찬장 윗칸 예쁜 머그잔처럼, 잠시 배런을 소유한다는 것이 그녀에게 잠시 위로를 주었을지도 모르겠다. 배고플때는 라면 한 봉지 마냥 반갑고, 예쁜 머그잔으로 마음 맞는 친구들과 커피 한 잔, 하면 우아할 테지만, 백골이 되어 버린 내 남자, 내 애인은 그냥 그렇게 누워있을 뿐이다.

배런이 침대 위에 고이 누워 버린 이후로 에밀리의 삶이란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사랑이 없으니 살아 있으나 죽은 것이나 진배 없다.

사랑 없는 삶, 사랑이 죽어 버린 삶을 그냥 그렇게 하루하루 살아갈 뿐이다.

그녀에게 남겨진 건 그런 삶이다. 에밀리에게 장미를 줄 일이 아니다. 아니다. 장미라도 주어야겠다. 사랑을 영영 잃어버린 그녀에게 장미를 준다. 그리고, 위로의 말을 건넨다.

사랑을 모르는 그대,

그대는 사랑을 잃었군요.

사랑을 몰라

그 소중한 사랑을 잃었군요.

그대,

사랑을 모르는 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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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행복하자 2015-07-31 09: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작품 드라마인가 영화로도 있지 않아요? 들어본 이야기 같아요~
저도 읽어봐야겠어요~~

단발머리 2015-07-31 09:25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지금 행복하자님^^
저는 이 작품이 드라마나 영화로 만들어진줄은 잘 모르겠는데요.
조금만 기다려 보세요.
제 방에 가끔 놀러오시는 분들 중 고수가 많으시니, 혹 다른 정보가 있을 수도요.
아주 짧지만 강렬해서요.
한 번 읽고, 한 번 더~~ 하게 된답니다. ㅎㅎ

지금행복하자 2015-07-31 09:31   좋아요 0 | URL
ㅎ 그래야겠어요~ 무슨 소개해주는 글에서 본것 같은 이유는 도대체 뭘까요 ㅎㅎㅎㅎ

단발머리 2015-07-31 09:35   좋아요 0 | URL
오래된 작품이라 그렇지 않을까요? ㅎㅎ
유명한 작품이기도 하구요.

그런데, 님 말씀대로 영화면 더 근사할 것 같아요.
쇠락한 남부 가문의 마지막 상속자니까요. 작품 속에는 그렇게 예쁘다고는 안 나오지만, 엄청 야리야리하면서 예쁜 배우로요. 저는.... 한국 배우로는 에밀리는 아이유가 괜찮을 것 같구요. (외국 배우를 몰라요... 엉엉)
남주는....
에.. 몸집이 크고 호탕하고, 남성미 물씬이니까, 아... 20대에서 찾고 싶은데 없네요.
다들, 꽃미남들이라... 남자 배우는... 생각 좀 해보고 올께요. 끄응.

지금행복하자 2015-07-31 09:41   좋아요 0 | URL
김우빈은 어떠세요? 그나마 20대중에선 남성미 물씬파인데~~ ㅎㅎㅎ
몸도 좋구요 ㅎ

단발머리 2015-07-31 09:45   좋아요 0 | URL
앗!!! 맞아요!!!
김우빈 딱이네요. 제가 왜 김우빈을 생각 못 했을까요?
이민호, 송중기, 유아인... 아 이런 이미지 아닌데... 하면서요.

제가 `신민아-김우빈` 조합으로만 기억해서 아닐까요? ㅋㅎㅎㅎ
그럼, 어떻게, 김우빈으로 결정하고, 연락 함 넣어봐요?

지금행복하자 2015-07-31 09:47   좋아요 0 | URL
ㅎ 연락 넣으면 드라마 찍어지는 건가요? ㅎㅎ

단발머리 2015-07-31 09:56   좋아요 0 | URL
그 애가 바빠서요.
스케줄이 될까 모르겠어요. 요즘 연애도 하느라 많이 바쁩니다.
우리 셋이서 그냥 밥 한 번 먹고 말겠죠.
그 애 번호가 일단 010- ****-****
뒷번호는 개인정보보호.... 아시죠? ㅋㅎㅎㅎㅎ

책읽는나무 2015-07-31 12: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우빈 번호 바뀌었어요!!모르셨어요?
어젯밤 단체문자 보냈더라구요 이제 자기번호 지우라고 번호 바꿀꺼라고ㅜㅜ
신민아랑만 함께 하고팠나봐요ㅜ
어쩌면 신민아랑 김우빈 이 둘이 찍어도 좋을 듯하군요(전 아이유보다 신민아를 더 좋아해서^^)

에밀리의 지독하면서 섬뜩한 사랑!!
저도 어떤영화에서 이런 똑같은 결말을 본 듯해요 남자를 사랑하여 결국 죽이더군요 보면서 섬뜩했어요!!
이책 무척 땡기는군요?
아~ 읽고 싶어요!에 부끄럽게 또 올려야하나요?읽지도 못하면서 읽고 있어요!와 읽고 싶어요!에 올릴때마다 양심이 찔립니다만~~읽고 싶어요!에 기록해놓아야만 훗날 찾아볼 수있기에^^

그나저나 이카루님 서재에서도 북스탠드 오오~~했는데 지금 여기서도 어쩌지?하고 있어요
이건 사진빨이 분명 아닌거죠??^^

단발머리 2015-07-31 16:21   좋아요 0 | URL
아하... 어쩐지 지금 행복하자님이랑 같이 밥 먹으려고 전화했는데, 먹통이더라~~~
어제 밤에 단체문자는 저한테는 왜 안 온 거죠?
제가 잘생김수현에게 너무 신경썼더니, 이제 그 쪽에서 그렇게 나오깁니까?
신민아는 예쁘지만.... 난 반댈세. 키가 커요. 에밀리는 작아야 합니다. 작고 야무진!!!

저도 읽고 싶어요!에 고민 많아요. 알라딘에 말하고 싶습니다. 내가 `읽고 싶어요` 한 걸 다른 분들이 모르게 할 수 없나요? 가능하면 `읽었어요` 만 표시되면 좋겠어요. 뉴스피드의 내가 올린 `읽고 싶어요`도 싫을때가 있거든요.

북스탠드 괜찮지요? 이카루님 꺼랑 같은 거네요. 같은 구도로.... ㅎㅎ
사진빨 아니예요. 이뻐요. 이것만 켜고 책보기는 어렵겠지만, 분위기 살릴 때~~~ 유용합니다.

책읽는나무 2015-08-01 09:51   좋아요 0 | URL
ㅋㅋㅋ
김수현이랑 아이유 저 요즘 프로듀사 몇 편을 보고 아이유 그닥 안좋아했는데 자꾸 좋아져가고 있어요.
노래도 막 찾아서 듣고...나머지 편도 얼른 찾아봐야겠는데 애들 방학이라 모든 것이 올 스톱이 되버린 듯해요.ㅜ 저런 달달한 드라마는 애들 없이 나혼자 봐야 재미진^^
그래요...아이유에 저도 추천하겠어요.노래도 잘 부르니깐!!

분위기.....정말 분위기....
지금 저도 북스탠드 분위기에 빠져드네요.
다시 또 주섬주섬 장바구니를 살펴봐야겠어요.^^


단발머리 2015-08-05 10:20   좋아요 0 | URL
그럼요!!! 달달한 드라마는 혼자 봐야합니다.
애들이 방학이라 바쁜데,... 라고 쓰면서 아직 아침을 안 차려주었다는...

알라딘 사은품은 진짜 소비를 부르는 지름신인것 같아요.
알아도 속아주는... ㅋㅎㅎ

2015-07-31 12: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7-31 12: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icaru 2015-08-03 10: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앗,, 네네 같은 거 ㅎㅎ 정작 빙과 라는 책에 대해선 정보없음 인데, ㅎㅎㅎ
잠드는 머리맡에 켜두었다가, 잠들 즈음에 꺼두면 딱인듯 해요~~

단발머리 2015-08-05 10:21   좋아요 0 | URL
저도랍니다. 예의상 [빙과] 검색 한 번 해야겠는데요.

북스탠드 잠드는 머리맡에 켜두어야겠어요.
저는 정말 누으면 3초만에 잠들어서 잠들기 전에 꺼야하겠지만요...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