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로 산다는 것 - 잃어버리는 많은 것들 그래도 세상을 살아가는 이유
제니퍼 시니어 지음, 이경식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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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성인 10명 중 7명은 가장 후회되는 일로 학창 시절에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은 것’을 꼽는다고 한다. 나는 ‘대학에 다닐 때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은 것’을 후회한다. 고등학교 때 공부를 열심히 했다기보다는 대학에 다닐 때 워낙 공부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것 말고 후회되는 일이 한 가지 더 있는데, 그건 아무런 ‘대책 없이’ 첫째 아이를 낳았던 일이다. 나는 아주 일찍 결혼한 케이스가 아니고, 결혼 전에 아이를 낳은 케이스도 아니다. 다만, 나는 아무런 ‘정보 없이’ 아이를 낳은 케이스다. 임신했을 때는 각 개월별로 산모의 변화와 태아의 발달 단계에 대해 훤히 알고 있었지만, 막상 아이를 낳은 후에는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아이를 쳐다보고, 아이를 돌보기에도 벅찼다.

아기는 새로운 세상이다.

새로운 우주, 그 자체다.

텔레비전에서 연예인들이 아기들와의 일상을 이웃집처럼 가감 없이 보여줄 때, 뭐, 저리 호들갑을 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새로운 우주 그 자체인 자신의 아기가 얼마나 특별하고, 얼마나 예쁘게 보일련지, 일면 이해가 된다.

과거는 돌이킬 수 없고, 흘러간 시간은 되돌릴 수 없다. 하지만, 만약 그럴 수 있다면, 다시 시간을 돌이킬 수 있다면, 나는 첫 아이의 3살 때로 돌아가고 싶다. 그때로 돌아간다면, 그 애에게 더 많은 노래를 불러주고 싶다. 더 많이 그 애의 손을 잡아주고 싶다. 그 애를 더 많이 업어주고, 더 많이 안아주고 싶다. 생각해보니 굳이 돌아갈 필요가 없겠다. 그 아이는 나와 비슷할 정도로 키가 훌쩍 자랐지만, 아직은 내 옆을 좋아하고, 아직은 내 손을 뿌리치지 않으며, 아직은 내가 그 애에게 해줄 일이 많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책을 보니, 유아기는 어디까지나 예선경기라고 한다. 사춘기, 결선경기가 곧 시작된다.

적어도 (아빠들은) 아이들이 어릴 때는 자기들의 자유 시간을 더 적극적으로 지키고 누리려고 한다. 하지만 아빠들이 이렇게 한다고 해서 이들이 자기 아내들보다 아이를 덜 사랑한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그리고 아이들이 살아갈 운명에 대해서 관심을 덜 가진다는 뜻도 아니다. (153쪽)

 

나는 스스로를 ‘날라리 주부’, ‘모성 결핍 엄마’로 규정한다. 실제로도 그렇다. 나는 가정생활에 큰 취미가 없고, 모성이 부족하며, 결정적으로 게으르다. 게으름이야말로 나의 날라리 주부 생활의 모토, ‘무엇이든 설렁 설렁’을 일관되게 유지하게 하는 근간이다. 그래도 나는 내가 ‘엄마’인줄 알았다. 그런데 이 부분을 읽다가는, 무릎을 쳤다.

“아, 나는 ‘엄마’가 아니라, ‘아빠’구나!”

자신의 자유 시간을 적극적으로 지키고 누리려고 노력하는 아빠, 그런 아빠 같은 엄마, 내가 그런 엄마다. (사실, 어제 밤에도 3M을 남겨두고 밤외출을 감행했다.) 그런 엄마라 하더라도 내 남편보다 아이를 덜 사랑한다는 뜻은 아니다, 라고 저자가 말해준다. 맞다. 사실이다. 이렇게 말해줘서 고맙다.

과잉 양육이라는 현상이 미래에 대한 혼란과 불안이라는 새로운 심리 상태를 반영한다. 다가올 미래에 제대로 준비할 수 있도록 아이들을 완벽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은 오늘날 중산층의 확고한 믿음이다. (204쪽)

 

부모가 하는 모든 일은 아이들을 위한 것이다. 부모는 이제 더 이상 가족을 위해서 혹은 가족의 범위를 넘어서는 보다 넓은 세상을 위해서 자기 아이를 키우지 않는다. 오로지 아이들만을 위한 목적으로 아이들을 키운다. (216쪽)

 

어린이에 대한 현대적 개념이 정립된 것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이다. 이전까지만 해도 어린이는 가정의 주된 ‘수입원’의 하나였다. 어린이는 쉽게 무시당했고, 학교가 아닌 일터로 내몰렸다. 그게 당연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오로지 아이들만을 위한 목적으로 아이들은 키워진다.’ 미국 중산층의 자녀에 대한 집중도가 한국과 별반 다르지 않아 오히려 어색하다. 아이의 학업은 물론이고 취미생활 전반까지도 관리하는 부모 모습이 보인다. 다른 점을 찾아본다면, 교육 전쟁의 전면에 엄마가 나서는 한국과는 달리, 미국에서는 부모가 이 일에 모두 나선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한국보다는 특기활동 중 ‘체육 활동’에 대한 투자비용과 시간이 많다는 것이다.

오로지 아이들만을 위한 목적으로 아이들을 키울 때, 그런 과정과 결과가 아이들 스스로에게 이로울 것인가. 아이를 키우는 부모에게 이로울 것인가. 가정의 주된 수입원에서 주된 지출원이 되어버린 아이들, 이 아이들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할 각오가 되어 있는 중산층 부모가 있다. 아이들 위주의 삶, 아이들 위주의 식사, 아이들 위주의 생활. 이것이 옳은가. 아이와 부모 모두에게 이로울 것인가.

스타인버그는, 아이가 맞는 사춘기는 일이든 취미든 간에 집 바깥의 어떤 일에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은 부모에게 특히 가혹하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아이가 자기 곁에서 멀어져 갈 때 자기 관심을 따로 쏟을 수 있는 대상이 없기 때문이다. (중략)

“결정적인 변수는 일반적으로 예상하듯이 어떤 부모가 양육에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이느냐 아니냐 하는 게 아니었다. 부모가 양육과 관련이 없는 다른 어떤 것에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이고 있는가의 문제였다.” (323-4쪽)

 

사춘기 전초전을 맞이하며 다시 한 번 마음에 새긴다. 양육과 관련이 없는 다른 일이 내게 있는가. 아이들과 관련이 없는 다른 일, 가정과 상관이 없는 다른 일, 그런 일들이 내게 있는가, 그런 이야기가 내게 있는가.

행복해지고 싶으면 무언가를 해야 한다. 주일학교에서 어린이를 가르치는 소박한 것이 될 수도 있고, 정부 권력에 비폭력 저항을 하는 거대한 것이 될 수도 있다. 암을 치료하기 위해서 머리를 쓰는 활동을 할 수도 있고 등산을 하는 육체적인 활동을 할 수도 있다. 그림을 그릴 수도 있다. 그리고 17세기 초 영국 시인인 벤 존슨이 일곱 살 아들을 위한 엘레지에서 썼던 것처럼 ‘내 최고의 시’인 아이를 키울 수도 있다. (418쪽)

 

서문에서도 밝혔다시피, 이 책에서 가장 주요하게 다루고자 했던 것은 ‘어떻게 자녀를 양육할 것인가’가 아니다. 오히려 ‘양육이 부모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는가’에 대한 것이다. 양육 활동을 통해, 그 지난하고 지루하며, 기쁘고도 행복한 과정이 부모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한 것이다.

이 책의 마지막 주제가 ‘행복’이라는 것은 특히 작가의 통찰을 돋보이게 한다. 행복이 기쁨만으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라는 것, 즐거움과 기쁨, 슬픔과 고통, 기대와 환희가 모두 양육의 과정 안에 들어있다는 것, 아이들이 우리의 삶을 복잡하게도 만들지만, 또한 아이들 때문에 우리의 삶이 단순해지기도 한다는 것(434쪽), 우리를 가장 필요로 하는 사람, 즉 우리의 어린아이들을 돌보는 과정을 거치면서 아이들을 더 사랑하게 되고, 기쁨을 느끼는 방법을 점점 더 익히고, 그러면서 우리가 성장한다는 것이다. (435쪽)

 

어제는 카레를 만들었다. 일품요리로서 카레만한 게 없는데, 만들기가 쉽고, 영양이 풍부하며, 아이들에게 야채를 먹일 수 있고, 한 번 만들어 두 끼 이상을 해결할 수 있어 그야말로 가정요리계의 초특급 아이템이다. 마침, 그저께는 카레의 강황성분이 손상된 뇌를 치료한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되기도 했다. 큰아이가 5살 정도부터 카레를 만들었으니, 대략 8년째다. 한 달에 1-2번 정도 카레를 만들었다고 계산하면, 1년에 20번으로 잡아도 벌써 160번 카레를 만든 셈이다.

커다란 웍에 가득찬 161번째 카레를 보며 생각했다. 그래, 아이들이 다 커서 결혼하고 남편이랑 나만 남으면 이렇게 많이 카레를 만들어도 먹을 사람이 없어서, 오래오래 먹게 될 거야. 아이들이 있으니까, 이렇게 많이 만드는구나. 기쁘고, 감사하다.

내 요리에 별다른 코멘트가 없는 남편은, 역시나 별말없이 카레가 올려진 밥 위에 신김치를 한 조각 올려 맛있게 먹는다. 하지만, 아이들은 카레를 부은 카레라이스를 식탁에 올려놓자마자 둘이 한 목소리로 외쳐댄다.

‘“카레, 싫어~~~~~~~~~~~~~~~~~~~~~~~~!“

내가 말한다.

“알았어, 이제 카레 안 만들게. 근데 이미 만들었으니까,

이건, 먹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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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aru 2014-12-02 15: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육아서 리뷰도 유머러스 훈훈하게 쓰시는구랴요~~!!!

단발머리 2014-12-03 08:43   좋아요 0 | URL
헤헤.... 그래요? 육아서 리뷰는 나름 진지하게 쓸려고 하는데요. 반성도 많이 하구요.
근데, 결론은 항상 이렇게 유머로 끝나네요.
쓰시는구랴요!!! 좋아요 ㅎㅎㅎ
 
이미, 서로 알고 있었던 것처럼 문학동네 시인선 57
윤희상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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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여자가 사는 집’, ‘닮다’, ‘김대중주의자’, ‘인화하지 못한 사진’, ‘연학이 형 생각’, ‘아, 김근태’, ‘걸식’, ‘징병검사장에서’. 

가을이라 시를 읽게 된건 아니었지만, 가을에 읽기 좋은 시를 많이 만났다. 다 옮기고 싶지만, 전문을 실어야 하기에 간신히 두 개를 골랐다.

 

영산포 장날

 

광식이네 소 팔러 가는 날입니다

서둘러서 아침밥을 먹고

우리는 광식이네 집으로 달려갔습니다

모두 야단이었습니다

마당에서 광식이 엄마가

소의 고삐를 붙잡고

소에게 억지로 여물을 먹이고 있었습니다

소는 더 먹지 않으려고 고개를 돌렸습니다

여물을 다 먹은 소는 마치 새끼를 밴 것처럼

배가 부풀어올랐습니다

이제 광식이 아버지가 소를 이끌고 문을 나서는데

광식이 엄마가 소의 등을 쓰다듬으며 말했습니다

고생했다 잘 가거라

길에는 아카시아꽃이 환하게 피었습니다

소는 오줌을 싸며 걷고

우리는 그 길을 뒤따라 걸었습니다

읍내에 이르러 광식이 아버지와 소는 우시장으로 가고

우리는 학교로 갔습니다

그날 광식이 아버지는

술에 취했습니다

우리는 아카시아꽃 향에 취했습니다

모두 흔들렸습니다                                   (‘영산포 장날‘ 전문-윤희상)

 

 

김승재

 

김승재는 나의 친구이다. 서울 장충초등학교 6학년 2반 담

임 선생님이다. 2008년 4월 10일, 집에서 잠을 자다가 갑

자기 죽었다. 오매, 우리집 대들보가 무너져부렀네. 고향

에서 오신 어머니가 영안실에서 밤이 새도록 통곡했다. 장

례를 치르는 동안 내가 죽은 친구의 핸드폰을 가지고 있었

다. 어린 제자로부터 문자메시지가 왔다. 죽은 친구를 강진

의 양지바른 곳에 묻었다. 내가 다른 사람들 몰래, 죽은 친

구에게 읽었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저 유림이에요.

좋은 나라 가셔서

행복하게 사시고

다음 생에는 꼭 오래 사세요.                      (‘김승재’ 전문 - 윤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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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0-14 11: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10-14 11: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Harry Potter and the Sorcerer's Stone (Paperback, 미국판) - Harry Potter Series, Book 1 Harry Potter 미국판-페이퍼백 1
조앤 K. 롤링 지음 / Scholastic / 199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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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해리포터를 읽는다

인상 깊었던 건 아래의 두 장면이다. 영화에서도 멋지게 그려지기는 했지만, 실제로 눈으로 확인하는 것보다는 머리 속에서 상상해 보는 게 더 재미있기는 하다. 

 

 

 

"No post on Sundays," he reminded them cheerfully as he spread marmalade on his newspapers, "no damn letters today - "

Something came whizzing down the kitchen chimney as he spoke and caught him sharply on the back of the head. Next moment, thirty or forty letters came pelting out of the fireplace like bullets. The Dursleys ducked, but Harry leapt into the air trying to catch one - (41p)

 

 

 

 

He started to walk toward it. People jostled him on their way to platforms nine and ten. Harry walked more quickly. He was going to smash right into that barrier and then he'd be in trouble - leaning forward on his cart, he broke into a heavy run - the barrier was coming nearer and nearer - he wouldn't be able to stop - the cart was out of control - he was a foot away - he closed his eyes ready for the crash -

It didn't come ... he kept on running ... he opened his eyes. (93p)

 

영화가 촬영된 곳에서는 이렇게도 만들어 놓았다고 한다. 오랫동안 인기있는 관광지가 될 것 같다.

 

 

 

2. 조앤 롤링 K.

이미 하나의 신화가 되어버린 작가, 조앤 롤링 K. 불행의 유일한 도피처였던 문학이 그녀에게 보상한다. 부와 명예를 모두 얻었다. (더불어 새 남편도 얻었다.) 더 이상 작품을 쓰지 않아도 충분히 행복하지 않겠나 싶지만, 그녀의 생각은 다른 것 같다.

3. 이 책, 저 책

책은 장식품이 아니라고. 소유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읽기 위해서 만들어진 거라고, 만든 거라고, 아무리 되뇌어봐도 소용없는 것 같다. 예쁜 책을 보면 읽고 싶다기보다 갖고 싶은 마음이다. 이 책을 몰랐다면 저 책을 예뻐라 했을텐데, 이 책의 예쁜 표지 때문에, 조금 커진 판형과 읽기 쉽도록 넓어진 자간 때문에 저 책이 더 초라해 보인다.

내가 사는 집은 표지가 다른 똑같은 책을 산다는 것이 용인되지 않지만...

이 책을 사고 싶다.

갖고 싶다, 다, 다,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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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슬비 2014-09-28 16: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해리포터 처음엔 양장본만 구입했는데, 양장본 정리하고 다시 읽을때는 도서관에서 페이퍼백으로 읽고 그랬어요.
돈과 장소가 도와준다면 사실 같은 책으로 다양한 표지디자인과 판형으로 갖고 싶은 책이기도 해요.
전 둘다 안되니 포기.. ㅠ.ㅠ

단발머리 2014-09-29 09:07   좋아요 0 | URL
아,,,, 아쉽습니다. 저는 미국판 페이퍼백으로 다 샀는데요.
딸롱이가 자기는 하드커버로 미국판 영국판 다 사겠다고 해서, 제가 `니 돈으로 사라~~` 했습니다.
제가 갖고 싶은 건 미국판 페이퍼백 개정판이니까요~~ 종이재질도 좋고, 그림도... .흐흑

예뻐요~~~~~~~~
 
여인들의 행복 백화점 1 세계문학의 숲 17
에밀 졸라 지음, 박명숙 옮김 / 시공사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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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리뷰는 중부지방에 일주일이상 열대아 현상이 계속되던 7월의 마지막 주, 그 때의 뜨거운 감흥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겸손(humilitas)이란 인간이 자기의 무능과 약함을 고찰하는 데서 생기는 슬픔이다.

- 스피노자, 『에티카』에서

스피노자의 말대로 무레의 겸손은 자신이 자랑하던 돈의 무기력함을 자각하는 데서 오는 슬픔이다. 그렇지만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그의 겸손은 동시에 한 여자를 자기 뜻대로 할 수 없다는 자각이기도 하다는 점이다. 바로 이것이 사랑 아니겠는가? ‘나의 뜻대로‘가 아니라 ’당신 뜻대로‘가 바로 사랑의 표어이기 때문이다. (『감정수업』, 284쪽) 

 

프레첼은 2,500원, 공차는 3900원이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2층으로 향한다. 샘소나이트 매장 오른쪽에는 가운데 탁자를 두고 두 사람이 앉을 수 있는 의자가 세 쌍 있다. 가운데에 자리를 잡고 앉는다. 왼쪽에는 샘소나이트 모델 김수현의 전신 크기 광고판이 세워져 있다. 김수현은 왼쪽으로 약간 갸우뚱하게 서서 65도 각도로 오른쪽을 쳐다보고 있다. 가운데 의자에 앉아 35도 각도로 왼쪽을 쳐다보면 김수현과 눈이 마주친다. 책을 읽다 눈이 피곤할 때, 적정한 안구정화 효과를 기대할 수 있겠다.

책을 펼친다. 책 속도, 책 바깥도, 백화점이다.

그녀의 한쪽 팔에는 이제 겨우 다섯 살인 어린 동생이 매달려 있었고, 어깨 뒤로는 한창 물이 오른 열여섯 살 소년 장이 두 팔을 출 늘어뜨린 채 서 있었다.

“저건,” 드니즈는 너무 놀라 나머지 말을 제대로 잇지 못했다.

“백화점이잖아!” (1권, 8쪽) 

 

자본주의의 가장 강력한 상징, 백화점이다.

“하지만, 이제 너하고도 상관이 있는 일이니 어디 한번 네 생각을 말해보거라. 단순한 직물점에서 온갖 잡동사니들을 다 판다는 게 이치에 맞는 일인가. 예전에 다들 정직하게 장사를 할 때는 직물점에서는 오직 옷감만 취급했다. 다른 건 팔지 않았어. 그런데 지금 저들의 머릿속은 온통 이웃을 짓밟고 먹어 치우려는 생각만으로 꽉 차 있어 ...... 그래서 온 동네 사람들이 못마땅해하고 있는 거야. 저놈의 백화점 하나 때문에 우리 같은 소상인들이 다 죽게 생긴 거란 말이지. (1권, 45쪽) 

 

자신의 이름과 명예를 걸고 물건을 제조하던 시대에 백화점의 등장은 가히 충격적이라고 밖에 할 수 없다. 옷감이면 옷감, 우산이면 우산, 모자면 모자. 소상인들은 오직 하나의 물품만을 제조하고, 판매했다. 각자의 영역이 있었고, 서로를 침범하지 않았다. 하지만 여기, 괴물 같은 백화점은 이런 규칙을 지키지 않는다. 백화점에서는 모든 것을 판매한다. 백화점에서는 무엇이든 살 수 있다.

특이할 만한 것은 고급스럽게 전시된 진열품과 양질의 상품 공급 뿐만 아니라, 소비자들에게 가장 민감한 ‘탄력적 가격 정책’이 백화점의 주요한 판매 전략 중의 하나라는 것이다.

“여기 이 손수건도 좀 보실래요. …… 다들 놀라지 마세요. 브뤼셀의 아플리케랍니다. …… 오! 이런 게 내 눈에 띄다니 정말 운이 좋았지 뭐예요! 게다가, 고작 20프랑밖에 안 된다니까요!” (1권, 143쪽)

 

이 전략은 현재에도 계속된다. 이런 식이다.

 

 

<사진 : 해외 명품 대전 '인산인해', 소공동 롯데백화점, 충청매일, 2014년 8월 6일>

“오! 이런 게 내 눈에 띄다니 정말 운이 좋았지 뭐예요! 게다가, 80% 할인된 가격이라니까요!”

좋은 상품을 낮은 가격에 공급하던 백화점이 적정한 수준의 매출을 올리지 못했을 때, 사업 경영에 적자가 발생했을 때는 어떨까. 아름답게 보여지던 모습은 내팽겨쳐지기 일쑤이다.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온 백화점은 중간 관리자를 통해 ‘정리해고’를 감행한다.

그에게는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장애물을 제거하는 핑계로 쓰일 수 있었다. 저지르지도 않은 잘못을 지어내기도 하고, 아주 사소한 부주의도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었다. “당신이 의자에 앉아 있는 걸 봤소, 뮤슈. 창구로 가시오!*” “지금 나한테 말대꾸를 한 것 같은데. 창구로 가시오!” “구두를 반들반들 닦지 않았군. 창구로 가시오!” 그리하여 가장 잘나가는 판매원들조차 그가 저지르는 대학살의 광경 앞에서 두려움에 몸을 떨었다. (1권, 260쪽)

(* “창구로 가시오!”라는 표현은 해고를 당한 노동자가 회계 창구에서 급료를 정산받는 것을 의미한다.)

이 무지막지한 기계의 주인은 무레이다. 모든 여자의 마음을 사로잡지만, 어느 여자에게도 자신의 진심을 주지 않던 무레. 무레는 쉽게 여자를 얻고, 쉽게 여자를 버리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러다 한 여자가 눈에 들어오면, 그땐, 꽉 잡고 절대 놓지 않는 거야. 그러면 절대 실패하는 일이 없어. 난 내 여자를 결코 남에게 뺏기지 않거든. 하지만 중요한 건 여자가 아니야. 나한테 여자는 그다지 중요한 존재가 아니거든. 알겠나, 중요한 건 의지를 가지고 적극적으로 행동하면서 무언가를 창조해내는 거야. (1권, 117쪽)

 

원하는 모든 것을 손에 넣을 수 있었던 그가, 돈으로 원하는 모든 여자를 얻었던 무레가, 돈으로 살 수 없는 여자, 돈의 유혹에 굴복하지 않는 여자를 만나게 된다. 그녀의 이름은 드니즈. 허름한 옷차림, 발에 맞지도 않은 큰 신발을 힘들게 끌고, 두 눈을 휘둥그레. 경탄어린 시선으로 백화점을 돌아보던 순진한 시골 처녀 드니즈. 그녀의 매력을 발견한 무레는 다른 여자 대하듯 그녀를 대한다.

그는 그녀에게 ‘돈’을 제시한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돈’의 힘으로 그녀의 ‘사랑’을 사려고 한다. 하지만, 드니즈는 특별한 사람이다. 그녀는 돈의 힘에 무릎 꿇지 않는 사람이다. 가난한 점원 드니즈 앞에서 이 거대한 기계의 주인 무레는 크게 당황한다.

이제 무레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그의 유혹에 넘어오지 않은 여자는 그녀가 처음이었다. 그동안 그는 몸을 숙여 여자를 줍기만 하면 되었다. 주변의 모든 여자들이 순종적인 하녀처럼 그의 입에서 나오는 변덕스러운 말 한마디를 기다렸던 것이다. 그런데 이 여자는 그럴 듯한 핑계조차 대지 않으면서 단번에 그를 거절했다. (2권, 112쪽)

 

톱니바퀴처럼 어김없이 굴러가는 시스템과 군대를 방불케 하는 수많은 직원들이 그의 눈앞을 차례로 지나가면서 그가 지닌 막강한 힘을 확인시켜줄수록, 그는 자신의 무력함으로 인한 수모를 더욱더 절실히 느낄 뿐이었다. 심지어 유럽 전역에서 주문이 몰려들어, 우편물을 운반하기 위한 특별 운반차가 필요한 실정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고개를 가로저으며 그를 거부했다. (2권, 176쪽)

 

자신의 힘으로도, 자신의 돈으로도,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없는 드니즈를 맞딱뜨렸을 때, 무레는 변한다. 이전의 방탕한 생활을 정리하고, 재미로 만나던 여자들을 정리한다. 백화점 직원들의 복지를 증진시키기 위한 드니즈의 제안을 받아들이고, 그녀의 가족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숨기지 않는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다시는 결혼하지 않으리라’던 이전의 생각마저 바꾸게 된다.

그와 그녀의 사랑이 ‘결혼’이라는 형태로 마무리된 것에 대해 전혀 이견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여성의 사회적 권리가 ‘결혼’ 이외의 방식으로 보장받을 수 없던 사회였던 걸 감안한다면, 이런 결론도 그렇게 나쁜 것만은 아닌 것 같다.

여하튼, 무레는 드니즈를 안게 되었으니까 말이다. 숱한 눈물의 시간과 열정적 고백, 계속되는 구애에도 냉담한 침묵으로 일관하던 그녀를, 마침내는 얻게 되었으니 말이다. 그에게 그렇게도 중요했던 ‘돈’의 힘이 아니라, 이전에는 그에게 없었던 ‘사랑’의 힘으로 그녀의 마음을 얻게 되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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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aru 2014-09-01 17: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직도 여전히 강신주의

단발머리 2014-09-02 15:30   좋아요 0 | URL
네~~~ㅋㅎㅎ 아직도 '강신주의 ~' 라고 시작할 만한 책이 일곱권정도 남아있어요. 부지런히, 달려갑니다.

icaru 2014-09-03 14: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제가 본래 달았던 글은 대여섯줄이었는데,,
아직도 여전히 강신주의,,까지만 올라가다니.. 대략 난감인데요 ㅠ,ㅠ
기억을 더듬어서...
저도 아직 강신주의 상처받지 않을 권리를 읽고 있는데, 무슨무슨 상 받았던데,, 정말 상받을 만한 책!이라고 생각하고,
단발머리님께 댓글 단다는 것이... 음. ㅠ,ㅠ

이 책을 읽진 않았지만, 무레라는 사람 진짜 대단한걸요...
결국 돈으로 얻지 못했던 여인의 사랑을 스스로 깨달음에 의하여,, 혹은 여인이 원했던 방식으로 돈을 씀으로써 ( 노조,,) 사랑도 얻게 되었으니,,, 안 가진 것이 무엇이뇨!! ㅎㅎ

단발머리 2014-09-03 15:22   좋아요 0 | URL
ㅎㅎㅎㅎ 요즘 알라딘 댓글 다는데 오류 많아서요.
저도 다른 분 방에서, "강준만의... "여기까지만 쓰여있더라구요^^

저도 [상처받지 않을 권리] 재미있게 읽었어요. 이 소설이랑 연결되어 있어서, 페이퍼에서 관련지어 쓰고 싶었는데, 아하..... 용량이 부족하여~~~

무레는 흰 얼굴에 금발, 잘 생겼답니다~
 

 

 

내 친구는 그림책 시리즈. 제18회 일본그림책상 대상 수상작. 한 아이의 하루를 동물들의 행동과 연관 지어 보여 주는 책이다. 평범한 일상은 어린이의 놀라운 상상력을 통해 다채롭게 변화한다. 그림책 속 아이가 덤덤하게 말하는 일상의 흐름은 강렬한 그림과 어우러져 환상적으로 표현된다.

그를 통해 우리는 색다를 것 없는 자연 현상이 어린이들에게는 무척이나 놀랍고도 아름다운 변화임을 알게 된다. 또한 어린이들이 가지고 있는 상상력의 거대한 힘을 느낄 수 있다. 어린이의 상상력과 그림책의 힘을 동시에 보여 주는 강렬하고 매혹적인 그림책이다.

 

 

표지에서부터 눈길을 끈다. 동물들의 점 하나, 털 하나까지도 생동감있게 그려져 있다.

 

 

 

 

화려한 색감이 눈을 즐겁게 한다. 이 책을 읽을 때는 넓은 곳에서 쫘악 펼쳐놓고 읽어야한다.

 

 

 

  

 

하늘에서 늑대가 뛰어다니고 있기 때문에 바람이 분다고 생각한다. 아이다운 생각이다.  

 

 

 

 

 

 

 하기 싫은 일을 앞두고 시간이 안 간다고 불평하거나,

좋아하는 일을 하면 시간이 잘 간다는 마음을,

동물을 이용해 예쁘게 표현했다.

 

아이들보다 내가 더 좋아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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