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 문학상 작품집 표지가 바꿨다. (다 아는 얘기를, 나 혼자 이렇게 외로이 발견하고는...쩝)

  

 

 

 

 

 

물론 그 이전의 표지가 더 장중하고 클래식한 느낌이 나기는 하지만, 웬지 어두워 보이는 느낌 또한 사실이다. 새로 바뀐 표지는 하얀색에 오른쪽 상단에 이상의 음영사진이 있고, 왼쪽 아래에 대상 수상자 김영하의 사진이 있다.

 

 

 

 

나는 자판 위에 손가락을 얹었다. 내가 한 일은 오직 그것뿐이었다. 그런데 손이 저절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손가락 끝에 작은 뇌가 달린 것 같았다. 미친 듯이 쓴다, 라는 말은 이런 때를 위해 예비된 말이었다. 문장들이 비처럼 쏟아져내리기 시작했다. 타자 연습 게임 같았다. ‘지구를 침공하는 다양한 문장들, 그들을 요격하는 지구 수비대 타이핑 챔피언 박만수!’ (46-7쪽)

창조주의 선물, 아름다운 여인을 만난 이후, 주인공은 초인적인 능력으로 소설을 써 내려간다. 뇌가 달린 것처럼 타이핑 한다면, 손의 속도를 따라올 수 없을 정도로 문장들이 쏟아져 나온다면, 얼마나 신날까. 얼마나 재미있을까.

그러나 지금은 180도 달랐다. 지금 쓰고 있는 소설이, 내가 만들어낸 주인공이 나를 밀어붙였다. 어떻게 그렇게 다작을 하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스티븐 킹이 그랬다지. “저야말로 궁금합니다. 다른 작가들은 매일 글을 쓰지 않으면 그 시간에 도대체 뭘 한답니까?” 아, 그는 이미 이 지경에 도달해 있었던 것이다. (51쪽)

매일 매일 쓴다. 세탁소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쓰고, 쉬는 날도 쓰고, 또 일하는 날이 되어도 쓴다. 계속해서 쓴다. 쓰다가 계속해서 쓰다가 스티븐은 미국에서 제일 유명한 작가가 되었고, 요즘에는 그의 작품이 문학적으로도 새롭게 조명받고 있다.

수상소감에서 김영하는 작가들이 흔히 하는 농담을 전해준다.

“글만 안 써도 되면 참 좋은 직업인데 말이야.”

작가는 말한다.

작가는 글을 쓰고 있는 사람이라기보다 글을 써야 한다고 믿는 (혹은 그렇게 믿어지는) 사람인지도 모른다고. 써야 하는데, 생각하며 사는 사람들. 그 사람들이 바로 작가다.

어떤 작업이든 창작의 과정이 어찌 그리 쉽겠는가. 그래서, 사람들이 쉽게 표절의 유혹, 그것도 약간의 노력을 더해 짜깁기 하는 것도 아니고, 오타까지 그대로 퍼다 옮기는 100% 표절에서 벗어나지 못 하겠는가.

그럼에도, 그런 겹겹이 둘러싸인 진한 고독과 고통에도 불구하고, 아, 부럽다. 소설가의 머리 속에는 이렇게, 또 다른 하나의 세계가 펼쳐지는구나. 이렇게나 재미있고, 이렇게나 기발하고, 이렇게나 놀라운 이야기가 펼쳐지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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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다섯이다.

책 분량이 짧다는 일각의 지적에 ‘수많은 독자들이 나에게 책을 다 읽자마자 다시 처음부터 읽었다고 말했다. 고로 나는 이 작품이 삼백 페이지짜리라고 생각한다 (원서로는 이 책이 150페이지 정도다)’고 답했다더니(옮긴이의 말, 260쪽), 그 말이 100% 이해된다.

앨릭스가 러셀과 비트겐슈타인을 읽었다면, 에이드리언은 카뮈와 니체를 읽었다. 나는 조지 오웰과 올더스 헉슬리를 읽었다. 콜린은 보들레르와 도스토옙스키를 읽었다. 어디까지나 도식화자면 그렇다는 것이다. (22-23쪽)

나는 누구를 읽었나. 나의 카뮈는, 나의 니체는, 나의 조지 오웰은 누구인가. 잠시 ‘생각하는 시간’을 가져본다.

나는 손에 잡히는 대로 아무 엽서 - 클리프턴 현수교 사진이 있는 - 나 집어들어 이런 식으로 썼다. ‘이십일일자로 온 자네의 서신을 수령하면서, 본인은 모든 것을 유쾌하고 즐겁게 받아들이고 있음을 명시하고자 상찬과 기원을 간절한 마음으로 바치네, 벗이여.’ (77쪽)

항상 ‘나’를 초라하게 만들었던 전 여자친구 베로니카가 대학시절 동경의 대상이었던 에이드리언과 사귀게 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된 토니. 그녀와 사귀어도 괜찮냐는 에이드리언의 편지에 토니는 이렇게 답한다. 정확히는 이렇게 답했다고 기억했다. 그 편지를 보기 전까지는 말이다.

우리는 살면서 우리 자신의 인생 이야기를 얼마나 자주 할까. 그러면서 얼마나 가감하고, 윤색하고, 교묘히 가지를 쳐내는 걸까. 그러나 살아온 날이 길어질수록, 우리의 이야기에 제동을 걸고, 우리의 삶이 실제 우리가 산 삶과는 다르며, 다만 이제까지 우리 스스로에게 들려준 이야기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도록 우리에게 반기를 드는 사람도 적어진다. 타인에게 얘기했다 해도, 결국은 주로 우리 자신에게 얘기한 것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에이드리언에게, 아니, 에이드리언과 베로니카에게.

(베로니카, 개같은 년. 잘 지냈나? 너도 함께 이 편지를 읽도록.) (165쪽)

토니의 편지는 이렇게 시작한다. 자신의 필체로 남아있는 자신의 편지. 기억하지 못 했던 또 다른 나의 모습. 자기가 동경했던 친구를 저주하고, 자기를 초라하게 만들었던 그녀를 만신창이내며 토니는 말한다. ‘내가 너희를 소개해준 날을 저주하게 되길.’

베로니카의 일갈은 그에게 상처가 되지 않겠지. 결국은 이렇게 된 거니까.

'아직도 전혀 감을 못 잡는구나, 그렇지? 넌 늘 그랬어, 앞으로도 그럴 거고. 그러니 그냥 포기하고 살지그래.‘ (246쪽)

이 책은 마지막을 덮을 때, 아~~~~~~~~ 하고 깊은 탄식을 하게 되는데, 그 이야기를 자세히 하는 것은 작품에 대한 예의가 아닌 것 같아 그만둔다. 직접 읽어보시길.

문득 두려워진다. 내가 기억하는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기억하는 ‘나’는 어디서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을까.

문득 두려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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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결혼의 계절, 청첩장의 계절이 왔다. 얼마 전, 연예인들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호텔 예식이 일반인들에게까지 확대되면서 만만찮은, 정확히는 엄청난 액수의 결혼 예식 비용이 회자되더니, 요즘은 전지현의 결혼식이 단연 화제다.

 

 

 

 

 

 

 

 

 

 

 

 

 

 

 

 

 

 

 

 

나도 저런 드레스 입어봤으면 하는 소망, 나쁘다고만 말하지 말아 달라. 여자에게 웨딩드레스는 결혼만큼이나 중요한 사안이고, 이미 결혼은 했지만, 예쁜 드레스 또 입고 싶은 맘 매우 간절하다.

현대사회에서 사랑은 결혼의 전제다. 결혼은 사랑하는 사람과 해야 한다. 물론, 요즘 결혼 당사자간의 애정보다는 사회적, 경제적 조건을 더 중시하는 풍토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결혼의 전제가 ‘사랑’이어야 한다는 데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동의한다.

‘사랑’이 결혼의 전제가 된 것은 언제부터일까.

‘오만과 편견’의 작가 제인 오스틴이 살았던 1800년대의 영국은 결혼이 성사될 때에, 조건이, 그 중에서도 경제적 조건이 가장 중시되던 시대였다. 형제간에 비교적 동등하게 재산이 분배되던 대륙과는 달리, 영국에서는 장남에게 아버지의 재산 대부분이 상속되었다. 차남들은 수입이 안정적인 목사나 군인이 되는 것이 상례였다. (‘오만과 편견’, 옮긴이의 말, 535쪽)

여자들은? ‘오만과 편견’에서처럼, 딸들만 주르르 있는 집안의 경우, 인척 중 남자가 재산을 상속받는데, 이것이 ‘한정상속’이다. 즉, 아버지 사후, 인척이 집에서 나가달라 요청하면, 그 딸들은 눈 번히 뜨고, 아버지 집에서 쫓겨나야 하는 형국이다. 따라서, 여성이 경제적으로 안정을 취할 수 있는 길은 오직 하나, 오직 ‘결혼’ 뿐이다. 늦게까지 결혼하지 못한 노처녀는 오빠나 남동생, 이모부나 고모부의 도움으로 생활하거나, 하녀에 다름없는 가정 교사 생활을 해야만 했다. ‘낭만적 사랑’이 존재할 이유도, 자리도 없었던 것이다.

제인 오스틴도 어렸을 때에는 ‘예쁘고, 활달한 모습’으로 사교계에 진출하여, 결혼하기 위해, 누군가의 청혼을 받기 위해 노력했다고 한다. 그러나, 제인이 스무살 되던 해, 청혼하리라 생각했던 톰 르프로이가 제인보다 재산이나 배경이 좋은 여자와 결혼하기를 바랬던 남자 쪽 집안의 방해로 청혼을 포기하자, 제인은 크게 상심한다.

이후, 제인 오스틴이 27살 때, 친구의 오빠로서 많은 재산의 상속자인 해리스 비그위더의 청혼을 받아 결혼을 결심하지만 매력이나 사랑을 느낄 수 없었던 그와는 결혼할 수 없었기에, 그 다음날 아침 청혼 수락을 번복한다. 그녀는 사랑없는 결혼을 할 수 없었고, 사랑 없는 결혼을 거부했다. 그녀는 평생을 혼자 살았다.

당시의 상황을 고려할 때, 제인 오스틴의 삶이 소설 속 주인공들의 삶보다 더 현대적이라고 여겨진다. 결혼을 해야만 안정적인 생활을 할 수 있는데도, 자신을 보호해 줄 안전막이 될 가정을 거부하고, 진정한 사랑을 기다렸던 제인 오스틴. 그녀의 용기에 박수를 보낸다.

제인 스스로도 “이 작품은 너무 가볍고 밝고 반짝거려서 그늘이 필요하다.”고 말했을만큼, 이 소설은 밝고 명랑하다. 전체적으로는 둘째딸 엘리자베스가 전해주는 생기와 발랄함이 소설 전체를 지배하고 있다. 소설을 읽다가 영화를 보게 됐는데, 엘리자베스역을 연기한 키이라 나이틀리 때문에 더 행복했다. 영화는 전체적으로 원작에 충실하게 만들어져 더 좋았다.

그렇다면, 당시의 사랑과 결혼은 어떻게 진행되었을까.

네버필드 파크에 외부인이 입주한다는 소문에 베넷 가족은 모두 큰 기대를 품는다. 새로 이사온 이웃은 미스터 빙리, 그의 누이 그리고 미스터 다아시. 연회가 열리고, 젊은이들은 유쾌한 춤을 추고, 이야기도 나눈다. 이 때 중요하다. 의례적인 인사와 대화, 눈빛만으로 서로의 감정을 확인해야 한다. 그가 내게 관심이 있는지, 없는지. 그녀가 내게 관심이 있는지, 없는지.

 

 

 그녀의 감정이 자신과 같다고 생각한 남자는 청혼을 한다. 청혼은 이렇게 시작된다.

“제게 00과 얘기할 수 있는 특권을 주십시오. 단둘이요.”

이 얘기만 들어도 사람들은 모두 안다. 아, 이 남자가 이 여자에게 청혼을 하려고 하는구나. 여자는 청혼을 받아들이고, 두 사람은 결혼한다. 이것은 베넷 가의 첫째딸 베넷 양의 경우다.

여기, 조금 더 복잡한 사례가 있다. 말이 적고, 새로운 사람 사귀기를 어려워하는 미스터 다아시는 엘리자베스가 마음에 들지만, 마음을 잘 표현하지 못한다. 용기를 내어 마차에 오르는 그녀의 손을 잡아주는 미스터 다아시의 손이 떨린다.

 

 

안절부절, 어찌할 바 모르던 미스터 다아시는 자신의 사랑을 엘리자베스에게 고백한다.

 

 

애를 써보았지만 소용이 없습니다. 그래 봤자 안 될 것 같습니다. 제 감정을 억누를 수가 없습니다. 제가 당신을 얼마나 열렬히 사모하고 사랑하는지 말씀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미스터 다아시는 그녀에 대한 자신의 사랑 뿐 아니라, 자신이 그녀에게 청혼하기 전, 왜 그렇게 고민했는지 자세히 말해 버림으로써, 오히려 그녀를 더욱 더 화나게 만든다.

왜 저를 불쾌하게 하고 저에게 모욕이 된다는 걸 뻔히 알면서 굳이 자신의 의지에 반해서, 자신의 이성에 반해서, 그리고 심지어는 자신의 인격까지 거슬러 가면서 저를 좋아한다고 말씀하신 거죠?

엘리자베스도, 미스터 다아시도 알고 있듯이, 그녀와 언니 제인을 제외한 베넷 가족의 품위없는 행동은 미스터 다아시로 하여금 청혼을 망설이게 했다. 하지만, 이미 알고 있더라도 직접 그 얘기를 들은 엘리자베스의 마음이 편할 리 없다. 엘리자베스는 단호히 청혼을 거절한다.

자신의 청혼이 받아들여지리라고 200% 확신하고 있던 다아시는 당황한 정도가 아니라, 치밀어오르는 분노에 어쩔 줄 모른다. 나보다 낮은 신분의 네가, 지참금도 가져오지 못하는 처지의 네가, 감히 내 청혼을 거절해? 네 정도가 감히? 화가 난 다아시는 마음에 있는 이야기를 그대로 전해버린다.  

제가 당신 집안이 열등하다는 사실을 기뻐할 거라고 기대할 수 있으십니까? 저보다 신분이 확실하게 낮은 사람들과 인척 관계를 맺는다고 춤이라도 출 줄 아셨나요? (273쪽) 

불 났는데, 기름 확 부어버리고 있다. 미스터 다아시는 지금 자기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르고 있다. 자기는 구애를 하고 있는 거다. 자신이 사랑하는 대상에게, 당신도 나를 사랑해 달라고, 내 사랑에 응답해 달라고, 내 손을 잡아달라고 말이다. 그런데, 이건 뭐야?

당신을 처음 알게 되었을 때, 저는 이미 당신의 태도를 보고 당신이 거만하고 잘난 체하며 자기 생각만 하면서 남의 감정은 무시하는 사람이라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 누가 뭐라고 해도 저는 당신 같은 사람과 결혼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이제야 미스터 다아시 제정신이 들었으나, 이미 늦었다. 엘리자베스 또한 마찬가지다. 이 세상 어떤 남자와 결혼하더라도 당신과는 결혼하지 않겠다고 장담하고 두 사람은 헤어진다. 다음날, 그간의 상황을 설명한 미스터 다아시의 장문의 편지를 읽은 후, 엘리자베스는 자신이 혐오한 도덕적 결점 대부분이 미스터 다아시가 아니라, 그녀가 호감을 가지고 대했던 위컴의 것임을 깨닫게 된다.

그 후, 우연히 다아시의 저택에 가게 된 엘리자베스는 그 곳에서 그를 다시 만나게 되고, 전에 없던 친절과 호의에 미스터 다아시에 대한 마음이 조금씩 열리기 시작한다. 영화를 보면, 엘리자베스가 다아시의 아름답고 웅장한 저택을 본 후, 다아시에 대한 호감이 급증!!하는 것으로 그리고 있으나, 소설에서는 다아시가 엘리자베스에게 여동생을 소개시켜주는 모습에서 엘리자베스가 크게 감동한 것으로 그려지고 있다.

거기에 더해, 엘리자베스의 철없는 동생 리디아는 위컴과 함께 다른 주로 도망을 가 버려, 베넷 가족에게 큰 슬픔과 낙담을 안겨주는데, 이 일에 미스터 다아시가 나서서 큰 도움을 준 것을 알게 된 엘리자베스는 미스터 다아시에게 고마움과 호감을 동시에 느끼게 된다.

하지만, 어쩌겠나. 저쪽은 지난번 청혼이 거절된 것에 깊이 상처를 받았을테고, 똑같은 사람에게 두 번 청혼하는 바보는 이 세상에 어디에도 없을테니, 이제 애가 타는 쪽은 엘리자베스 쪽이다.

미스터 빙리와 함께 네버필드로 돌아온 미스터 다아시에게 리디아의 일에 대해 고맙다는 인사를 전하는 엘리자베스. 그녀에게 미스터 다아시는 의외의 말을 한다.

그렇게 한 데에는 다른 동기도 있었습니다만, 당신을 행복하게 해드리려는 소망이 거기에 영향을 주었을 거라는 걸 부정하지 않겠습니다. 그러나 당신의 가족은 제게 빚진 것이 없습니다. 그분들을 무척 존경은 합니다만, 저는 당신만을 생각했습니다.

엘리자베스는 너무나 당황하여 한마디도 할 수 없었다. 잠시 침묵을 지켰다가 미스터 다아시는 이렇게 덧붙였다.

 

 

당신은 너그러운 분이니 제 말을 진지하게 들어주시겠지요. 당신의 감정이 지난 4월 그대로라면 당장 그렇다고 말씀해 주십시오. 제 애정과 소망에는 변함이 없습니다만, 당신의 한마디로 저는 이 문제에 대해서는 영구히 입을 다물겠습니다.

아...

 

 

 

엘리자베스는 자신의 마음이 변했다고, 지금은 그가 한 말을 고맙고도 기쁘게 받아들이게 되었다고 말한다.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 두 사람, 이제는 행복해질 차례다.

 

 

 

 

 

10년전에도, 5년전에도, 그리고 지금도 내게 최고의 책을 꼽으라면, 난 주저하지 않고 말한다. 내게 최고의 책은 언제나 “제인 에어”다. 비슷한 시대적 상황과 사랑 이야기를 다뤘다는 공통점에도 불구하고, “제인 에어”와 이제 막 만난 “오만과 편견”은 분위기가 많이 다르다.

음산한 분위기에 장엄한 톤의 “제인 에어”에 대한 애정이 줄어든 것은 아니지만, 밝은 햇살 아래 환하게 웃을 수 있게 하는 “오만과 편견”도 좋아하게 됐다. 어머나, 너무 늦었나?

마지막으로, 영화 감상에 큰 도움 준 여자주인공 사진 하나 올린다. 아, 이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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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2-04-23 14: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단발머리님. 글 정말 잘 읽었어요! <오만과 편견>을 다시 제대로 읽고 싶은 욕망이 불끈 솟네요. 영화도 보고 싶구요! 다아시의 한마디 한마디가 마음을 찌르네요... 나중에 <제인 에어>에 대한 글도 써주시면 좋겠네요 :)
저도 <제인 에어> 참 좋아한답니다 ㅎㅎ

단발머리 2012-04-24 10: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말없는 수다쟁이님. 엉성한 서재에 방문해주셔서 감사해요^^ <제인 에어> 좋아하신다니, 너무 너무 반가워요. 담에 짬내서 말없는 수다쟁이님과 <제인 에어> 수다 길~~~~~~~~~~~~게 풀어봤음 좋겠어요.

순오기 2012-04-25 22: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인에어와 오만과 편견은 영화가 더 좋았어요.
왜냐면 번역이 오래전에 한 거라서 그런지 ~~~~~ 그 맛을 못 살리는 거 같아요.
제목이 아주 멋집니다~~~~ ^^

단발머리 2012-04-26 10:19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ㅋㅋ 저도 전지현 드레스 다음으로 제목이 맘에 들어요.
 

이 책을 꼭 읽어야 하는 이유는 이렇다.

(1) 재미있다.

인생은 생각보다 짧다. 훌륭한 말씀, 지혜의 잠언, 실용적 지식, 모두 다 필요한 것이겠으나, 책은 모름지기 ‘재미있어야 된다’는 것이 평소 내 지론이다. 재밌는 책, 훌륭하면서도, 인생의 지혜를 알려주면서도, 냉혹한 현실에 맞서는 용기를 불어넣으면서도, 상상력의 저 너머를 보여주면서도 재미있는 책, 엄청 많다. 재밌는 것, 본인에게 흥미 있는 것을 읽을 때, 뇌도 활성화된다고 하지 않던가. (아니던가? 아님 말고)

(2) 인생에 도움이 된다.

강의 하나, 하나, 말씀 하나 하나, 인생에 도움이 된다. 피와 살이 된다. 우리 함께 사는 이 세상을 어떻게 하면 좀 더 살기 좋은 세상으로 만들 수 있을지, 고민한 흔적이 역력하다.  

(3) 실천가능한 (꼭 실천해야하는) 간단하고, 중요한 ‘실천사항’을 알려준다.

박경철 시골의사님은 마트 가지 말고, 시장에 가서 장 보라 주문하셨고, 이범님은 시켜서는 안 되는 사교육 세 가지 꼭꼭 찍어 주셨다. 생각해 보면,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다. 하루에 한 가지씩 실천해 봐야겠다.

1. 이마트 피자를 거부해야 모두가 산다 - 박경철

경제가 고도 성장을 할 때는 모르지만 성숙기에 접어들기 시작하면 삽질을 할 게 아니라 그 돈으로 사람을 재교육하고 사회 속에서 인간의 역량을 개발하는 사업에 투자를 해야 합니다. (27쪽)

OECD 가입국인 우리나라가 아직 성숙기에 접어들지 않았다고 믿는 분들이 위에 계시니, 전 국토 5년 내내 계속해서 삽질이다. 손해 안 보면 다행이라는 아파트 앞 경전철 때문에 차는 엄청 막히고, 사계절 내내 먼지 폴폴 날린다.

일본은 왜 개인이 부자이고, 정부는 가난한지, 일본도 우리와 같은 동양문화권으로 자식 사랑 극진하다고 하는데, 왜 다다미 밑에 돈 깔아놓고 자식에게는 주지 않는지, 미국은 앞으로 어떨는지, 중국시장은 기대해도 되겠는지, 우린 어떻게 되겠는지. 다른 사람들은 (가까운 예 : 신랑) 다 알고 있는 얘기라는데, 나는 잘 모르는 이야기라서, 눈이 휘둥그레지면서 재미있게 읽었다.

두부 한 모, 콩나물 한 바가지라도 동네 시장에 있는 할머니한테 사면 세상이 바뀝니다. 어떻게 바뀌는지 아십니까? 할머니가 콩나물 판 돈으로 손녀에게 줄 공책을 한 권 사거든요. 공책 판 문방구 주인은 저녁에 두부 한 모 사러 시장에 나갑니다. 두부 장수는 두부 팔아서 통닭 한 마리 시켜 먹고, 통닭집 주인은 통닭 팔아서 옆에 있는 편의점 가서 콜라 하나 사 먹죠. ... (사실, 편의점 주인은 별로 남는 게 없는데요...) 지금과 같은 대기업 중심의 혹은 약탈적 경제체제는 자기파괴적 속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한쪽이 탐욕을 부리면 이익이 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과적으로 이웃이 죽음으로써 내가 죽는 자기파괴적 속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약탈적 경제체제의 속성입니다. (42쪽)

내가 해야 할 일은, 마트 가지 말고 시장 가서 콩나물 사기, 코스트코 자주 가지 않기, 저축률 끌어올리기 등등이다. 1번, 마트 안 가기도 쉽지 않은데, 세 번째는 가히... 어허....

2. 그대 아직도 부자를 꿈꾸는가 - 정태인

여러분 다 사교육 시키죠? 그 이유는? 남들이 사교육 안 시키니까 우리 애만 사교육 시켜서 성적 올리자고 합니까? 아니면 남들이 다 시키니까 우리 애만 안 시킬 수 없어서 시켜요? 후자가 큰 이유일 겁니다. 그런데 다 사교육을 시키니까 아무 효과가 없습니다. 그러나 사교육은 차이가 있죠? 그러니까 더 좋은 사교육을 시켜야겠단 생각이 굉장히 강해지죠? 사교육 가격은 자꾸 올라가요. 그러면 다 망해요. 그건 무조건 문제가 있는 게임입니다. 지금 우리 교육은 모두 망하는 교육입니다. (61-62쪽)

세상에 제일 두려운 사람이 ‘옆집 엄마’ 아니겠나. 우리 동네는 그래도 조용한 편에 속하는데, 아들 녀석 친구네는 아파트 전체적으로 사교육을 ‘많이’ 시키는 분위기다. 우리 큰 애가 좀 더 나이가 있어서, 내가 사교육 많이 안 시켜도 괜찮다고 말해도, 친한 엄마는 불안한 모양이다. 아들에게 ‘더 많이’ 시키고 싶어한다. 이해한다. 요즘엔 웬만한 ‘강심장’ 아니면 그 유혹 이기기 쉽지 않다.

시장의 원리가 사회의 모든 부분을 지배하면 안 됩니다. 실제로 시장의 원리를 자꾸 관철시키면 그 사회는 망합니다. 그게 지금의 세계 금융 위기입니다. ... 그러나 시장이 해결할 수 없는 많은 문제가 있어요. 그런 것들은 국가와 사회 경제가 적절하게 해결하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 아이들이 살 수가 있어요. (83쪽)

‘노무현 대통령을 사랑하는 한 사람’으로서, 노무현 대통령 당시 청와대를 뛰쳐나와 반FTA 운동을 하시는 이 분이 솔직히 마음에 들지는 않았으나, 이 분의 주장 중 많은 부분이 공감되는 것도 사실이다. 부동산, 사교육의 딜레마에 빠져 모두가 패자가 되는 진흙탕 사회를 아이들에게 물려줄 수는 없지 않은가.

추천도서 있다.

<이타적 인간의 출현> 최정규 저. 스스로에게 일독을 권한다.

 

 

 

 

3. 아이들에게 공부의 즐거움을 허하라 - 이범

우리가 세계 기록을 가지고 있는데, 선진국에서 100년 걸린 일을 10년, 20년에 해버린 게 너무 많아요. 그래서 세대 차이도 전 세계에서 제일 큰 나라예요. 우리가 키우는 아들딸을 아들딸이라고 생각하시면 안 돼요. 선진국 기준으로는 두세 세대 차이입니다. 사실 증손자, 증손녀를 키우고 있는 거예요. (88쪽)

빵! 터졌다. 그래, 우리 엄마하고 딸내미 하고만 말이 안 통하는게 아니었어. 나도 우리 딸이랑 말이 안 통해. 할머니들 문화센터에서 “요즘 것들... 쯧쯧“. 이해가 된다. 이해돼.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사교육 세 가지는 이렇습니다. 1) 초등학교 선행학습 2) 중학교 종합반 3) 고등학교 때 언어영역이나 외국어 영역 문제집 열심히 푸는 것 (124쪽)

1, 2는 해당사항 없고, 3은 고등학교 때 친구들 사례 많이 봐 왔고, 안 해야 하는 것 세 가지는 제가 확실히 끼고 있네요. 감사합니다.

124쪽 도표 (아하.... 사진을 안 찍어놨네요... 어쩔)

30년 뒤를 생각해봐야 합니다. 30년 뒤에 같은 집에서 살 확률은 높지 않겠지만 부모와 자녀가 행복하고 즐겁게 만나야 하잖아요. ... 내가 30년 뒤에 자녀와 어떤 감정적 관계로 대면할 것이냐, 공부를 어떤 방식으로 하는 게 아이의 인성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인가? 더 깊게 생각해볼 필요가 있어요. 결국 이게 우리나라 교육 혁신의 목표이자 방향일 거예요. (127쪽)

아이를 위한다고, 아이를 사랑해서 하는 것이라고 말하지만, 편향된 사랑의 결과는 자신과 아이에게 파멸이다. 행복하게 만나자. 30년 뒤에, 내 아이들과. 상상이 안 되네.

4. 사교육과 외도, 그 오묘한 관계 - 나임윤경

중산층 가족은 그야말로 ‘프로젝트 가족’이에요. 한국의 가족은 애정 공동체가 아니라 프로젝트 공동체인 거죠. 프로젝트를 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결과예요. 결과 이외에는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죠. 애정이 가족 안에서 안 만들어지고 있다는 거죠. (133쪽)

한국 가족의 내면을 보면 자식과 어머니의 관계가 굉장히 도구적이예요. 아버지는 무관심해야 하고 엄마는 정보력이 많아야 하고 할아버지는 돈이 많아야 자식 교육에 성공한다잖아요. 애정은 돈으로 사오는 아주머니가 메워주죠. 기능이 철저하게 분업화되어 있어요. 협력이나 소통 없이 기능적으로 움직이고 각자의 분업에 충실할 수 있을 때 프로젝트를 효율적으로 달성할 수 있겠죠. (140쪽)

우린 사실 이렇게 살고 있는데, 이렇게 살고 있다고 적나라하게 듣고 나면, 실제로 우리의 현실이 얼마나 가혹한지 다시 한 번 깨닫게 된다. 지금, 우리의 가정은 프로젝트 가정이다. 목표를 위해, 결과를 위해, 전속력으로 질주하는, 멈출 수 없고, 돌아설 수 없는 브레이크 고장난 자전거 같은 삶들.

프로젝트 아래에서 자란 아이들은 모든 욕망을 유보한 채로 살고 있어요. 고등학생은 대학 가서, 대학생은 취직하면, 욕망을 그때그때 실현하고 그것이 자기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발견해야 합니다. ... 오늘을 유예하는 것의 아름다움. 지금 우리 애들이 그렇게 크고 있잖아요. 대학 가서 해. 대학 가서 못해요. 취직해야지. 취직하면 또 승진하고 나서. 그러니까 계속 욕망을 유예하다가 결국 왜곡된 방식으로 발현되는 거예요. (146쪽)

대학 가서 해. 라는 말 앞에는 여러 단어가 붙을 수 있는데 예를 들면, 연애는 대학가서 해, 친구 사귀는 건 대학가서 해, 멋내는 건 대학가서 해, 진로 고민은 대학가서 해 등이다. 자꾸 듣다 보면 밖에서 들려오는 그 말이, 내 안에서 들려오는 말인것처럼 느껴진다.

그러니까, 고등학교 2, 3학년 때, 아직도 어두운 오전 6시 15분, 버스를 타러 정류장으로 향할 때면 항상 찬바람을 만났다. 얄미운 바람은 종아리를 세차게 내리쳤다. 다리가, 종아리가 너무 시려웠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찌릿찌릿, 얇은 교복 사이로 들어오는 바람이 너무 얄미웠다. 그 때, 생각했다. “지금이 내 인생에 제일 추운 날이야. 이 날이 지나고 나면 곧 따뜻한 날 올거야. 지금이 내 인생에 가장 추운 날이야.”

'대학가서 해'라는 말이 내 안에 또리를 틀고, 난 그걸 내 안의 소리로 받아들였다. 내가 내 스스로에게 말하는 거다. "그래, 대학 갈 때 까지만 참자."

물론, 따뜻한 봄날 있었다. 잠깐이었지만, 봄은 봄이었다. 1990년대 말의 대학가는 요즘처럼 삭막한 분위기는 아니어서, 나는 좋아하는 동아리에 들어가 원없이, 정말 원~~~없이 활동했고, 과내 동아리 모임에도 나가 밥먹고 수다떨며 놀다 오기도 했다. 좋은 학점은 아니었지만, 졸업을 했고, 취업도 했다. 내게 봄날 있었음을 감사한다. 하지만, 추운 날, 그 이후로도 많았다. 바람이 더 세차지면 세차졌지, 잦아들 기미는 없었다.

그 역할을 지금까지 가정에서 내 아이만 돌봐온 우리 여성들이 했으면 좋겠어요. 우리 여성들에게는 타인을 돌본 역사가 있거든요. 모성을 공공의 영역으로 확장하는 일, 비전을 세우고 구체적인 길을 모색하는 일은, 사적인 영역에서 내 아이만을 돌봐온 엄마들이 할 수 있는 일이에요. 그럴 때 우리 가정이 프로젝트 공동체가 아니라 애정 공동체로 거듭날 수 있겠죠. (156쪽)

모성을 공공의 영역으로 확장하자. 지은이는 이렇게 제안한다. 모성을 공공의 영역으로 확장해보자. 만약 이게 가능하다면, 그 에너지와 활력이 가져올 긍정적 효과는 가히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내 아이를 좀 덜 돌보고, 다른 아이를 좀 더 돌보다. 직장맘이 그렇게 하기는 어려울 듯하다. 내 아이 더 돌보기도 심히 바쁘다. 그렇담 우리 전업맘들에게 이 중차대한 임무가 주어지는 건가. ^^ (난, 아직 준비가...)

5. 아이를 살리는 교육, 반란이 답이다 - 윤구병

내가 늘 하는 말이지만 아이들은 주말이면 자연 속에서 뒹굴고 마음껏 뛰놀면서 행복을 맛보고 살아야 합니다. 주먹밥이나 김밥 싸가지고 아이들 스무 명 데리고 나가서 놀게 할 수 있습니다. ... 자연이 가장 큰 스승이고 위대한 교사입니다. 사람이 가장 짧은 시일 내에 가장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곳은 자연밖에 없습니다. (178쪽)

사람이 가장 짧은 시일 내에 가장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곳이 자연이라는 말씀이 마음에 와 닿는다. 우리가, 조급한 부모들이, 아이들에게 강제하는 것이 사실 ‘정보의 효과적 습득’ 아닌가. 하지만, 지혜는 은근 가까운 곳에서 찾아진다. 자연. 제일 위대한 스승은 자연이라는 거다.

근데 여러분이 아이들을 통제할 때 죽고 사는 문제를 건드립니까? 아니죠? 죽고 사는 문제가 아니라면 통제는 안 할수록 좋습니다. 여러분이 아이를 통제할 때 이것이 정말 아이들 미래와 행복을 위해서 꼭 해야 할 통제인가 아닌가를 마음으로부터 꼭 물어보고 하시고요. (180쪽)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본다. 정말 그런가. 아이들을 통제할 때 죽고 사는 문제를 건드리는가. 아니다. 적어도 난 아니다.

어제 저녁에도 아들녀석이 나한테 엉겨붙다가 (우리 가족은 아침은 식탁에서, 저녁은 밥상에서 밥을 먹는다.) 오이김치 접시가 바닥에 인사를 해 버렸다. 나는 화가 나서 소리 한 번 빽! 질렀고, 아들녀석은 알아서 완전 불쌍 모드로 “엄마, 미안해요~” 연발하신다. 그러고 보니, 크게 화낼 일도 아니다. 아들은 실수한 거고, 바닥은 닦으면 된다. 괜히, 혈압만 올라갔네. 미안하다, 아들.

물론, 이뿐 아니다. 하지 말아야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고소한 잔소리는 줄줄이 비엔나마냥 끝이 없다. 아, 오늘의 결심. 죽고 사는 문제만 통제하자.

6. 공부란 무엇인가? - 신영복

차이와 다양성을 승인하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차이와 다양성에서 자신이 변화하려는 노력을 시작하는 것. 그게 진정한 공부입니다. 자기 변화로 이어지지 않는 공부, 머리에 축적하는 공부, 개인의 애정으로서만 관리되는 공부, 이건 진정한 공부가 아니라서 숲을 만들어낼 수가 없습니다. 자기 변화를 해야 합니다. (199쪽)

공부란 물처럼 흘러가면서 부딪히는 모든 것으로부터 배우는 것입니다. 과정 그 자체가 진정한 공부입니다. (216쪽)

참 공부가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 보여준다. 신 교수님 스스로도 여러번 밝히셨듯이, 감옥에서 그가 공부한 것은 동서양의 고전 뿐 아니라, '사람‘ 그 자체였으니까. 머리에 축적하는 공부가 아니라, 자기 변화를 일으키는 공부. 아.... 참 공부의 길은 멀고도 험하다.

신호등을 안 본 분은 없을 겁니다. 보통 신호등인데, 빨간불, 노란불, 화살표, 파란불에서 다 같 수 있는 방향이 우회전입니다. 우회전은 언제든지 해요. 좌회전은 반드시 화살표를 받아서 가야 합니다. 우리 사회의 개혁과 진보의 위상이 이와 같지 않은가? 저는 버스 타고 가다가 신호등 볼 때마다 그 생각해요. 이거구나. 이거구나. 이게 우리 현실입니다. (213쪽)

아무 때나 해도 되는 우회전과 신호 받고, 화살표 받고 해야 하는 좌회전. 어쩔땐 비보호다. 알아서 잘 찾아가라~~~. 좌회전이 더 어렵고, 힘든 건 사실이지만, 우회전만 해서는 가고자 하는 곳에 못 간다. 신호 기다리고, 주위 잘 살피고, 조심조심 좌회전 해가며 찾아가야 한다. 시간 좀 걸리더라도 결국에는 가야할 곳이니.

7. ‘부정의’의 시대, ‘정의’를 꿈꾸자 - 조국

저는 당시 ‘뇌무현’이라고 부른 사람이 모두 처벌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뇌무현’이건 ‘쥐박이’건 부를 수 있어야 합니다. 이 정도 일로 처벌해서는 안 됩니다. 이명박 대통령 입장에서 ‘쥐박이’라고 불리면 기분 나쁘겠죠. 내가 왜 쥐야? (웃음) 기분 상할지 모르겠으나 그럴 수 있는 거지, 하고 웃어 넘겨야 됩니다. (239쪽)

그걸 바라는게 너무 큰 기대라 한다면, 아, 더 이상의 코멘트는 없다.

이정희 대표의 ‘총선 사퇴 기자 회견’을 보고 난 후, 난 말했다.

“그래, 잘 했어. 크게 생각해야지. 멀리 봐야지. 우리도 여자 대통령 가질 수 있겠네. (이거, 조심해야된다. 이번은 아니다. 이번에 유력한 대선후보 중 한 명이 여자분이시니, 다시 한 번 강조한다. 이번은 아니다. 올해는 아니다.)”

“왜~~ 심상정도 있잖아.“

그래, 우리한테는 심상정도 있다. 우하하. 신난다.

(그 주, 한겨레 21 표지기사 첫 단락이 이거다.

“대한민국 최초의 여자 대통령 이정희”. 이정희 통합진보당 공동대표가 서울 관악을 총선 후보에서 사퇴한 3월 23일 오후 트위터에는 이런 내용의 글이 폭주했다.

나같은 생각 가진 사람들 많았나보다. 그래, 우리도 되는거야!)

* 위의 글은 3월 25일에 작성된 거다. 오늘은 4월 15일. 총선 끝나고 투표 결과에 밥맛까지 잃었다는 분이 있을 정도로, 사실, 결과는 암담했다. 애쓰신 분들에게 격려를 보낸다. 문성근님, 천호선님, 천정배님, 정동영님, 김부겸님, 특히 애쓰셨다. 지역에 따라 꼼꼼히 나눠지는 서글픈 한반도 색칠공부는 언제쯤이나 끝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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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박노자는 천재다

고미숙의 ‘공부의 달인’에는 음독, ‘소리내어 읽는 것’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소리내어 읽는 것 자체가 어려운 공부를 할 때에 큰 도움이 되지만, 외국어를 배우는 데도 아주 효과적인 방법이라는 거다. 그 예가 박노자 교수였다. 박노자 교수는 <춘향전>과 북한신문 <로동신문>을 소리내 읽어가며 한국어를 배웠다는 거다. 사실 그의 글을 읽다보면 내용면에서 뿐만 아니라, 그가 구사하는 한국어의 유려함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어떻게 그럴 수 있지? 우리도 그렇게 하면 이렇게 될 수 있는거야? 가까운 분의 한 마디 들어본다.

“박노자는 천재야.“

아, 맞다.

2. 돈이 없는 사람은 비국민이다.

구미권에서는 합법적 살인의 대상이 주로 피부색이 다른 이방인이지만, ‘선진화’된다는 이명박 대통령 치하의 대한민국은 주로 저항을 시도하는 빈민들을 합법적으로 죽임으로써 자기확립을 한다. 용산 참사의 경우, ‘국살’을 당한 서민들은 사후 보수 언론으로부터 ‘도심 테러리스트’라는 호칭까지 받았다. 미국이나 러시아, 노르웨이 군경들이 죽이곤 하는 비유럽적 타자들과 비교할 만하다. 대한민국에서 돈이 없는 사람은 ‘비국민’인 것이다. (25쪽)

대한민국에서 돈이 없는 사람은 비국민이라는 그의 진단은 인정하기 싫지만 사실이다. 그렇게 대우받고 있고, 그렇게 인정되고 있다. 돈이 없는 비국민이 청하지도 않은 인사와 존경을 받는 때가 있는데, 그 때가 이른바 선거철이다. 그 때는 ‘국민이 주인이고, 국회의원은 머슴’이다. 하지만, 금배지 달고 나면, ‘국민의 머슴’은 ‘의원님’으로 돌아가시고, 돈이 없는 사람은 다시 '비국민‘으로 돌아간다.

3. 국가는 전쟁을 좋아한다.

그러면 자본가들이 전쟁 비용을 증세와 국채 발행 등 사실상 인플레를 통해 조달하는 ‘국방국가’의 탄생을 반긴 이유는 무엇일까? ... 전쟁이 가져다주는 ‘특수(산업 호경기)’가 없으면 자본주의 경제는 이윤율이 경향적으로 저하되며 장기적으로 지탱되지 않는다. ...주기적 불경기로 소비재 시장이 위축될 때 적당한 투자처가 없는 엄청난 잉여자본을 가격이 안정적인 무기 생산에 쏟아부어 불황을 유보하는 것은 자본주의 체제의 중요한 운영 기법이다. (115쪽)

자본주의가 계속해서 운용되기 위해서는 ‘전쟁’의 발발, ‘전쟁’의 지속이 필수 불가결한 요소라는 지적이다. 많은 이윤을 남길 수 있고, 가격이 안정적이고, 개발이 용이한 무기 생산을 통해 자본가는 부를 축척하고, 국가는 본연의 이데올로기를 ‘강화’한다.

나를 위한 국가는 없다. 그렇게 알고는 있었지만, 웬지 서글퍼진다. 나를 위한 국가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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