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여행 가방에 샌들과 자외선 차단제와 함께 『베어울프』를 챙길 계획이 없었다고? (11쪽)

당연하지. 여행 가방에 샌들과 자외선 차단제와 함께 『베어울프』를 챙길 수는 없지. 물론, <베어울프>로 말한다면야 영어로 씌어진 위대한 시들 중 가장 오래된 작품으로서, 그 명성에 걸맞는 포스를 적정히 풍기고 있지만서도 어떻게 베어울프를? 다른 걸 챙긴다면 또 모를까. <내 연애의 모든 것>, <욕망해도 괜찮아>, <1F/B1> 그리고 <보수를 팝니다>. 이 정도?

대학에서 『베어울프』를 배울 때는 한 가지 생각밖에 못 했다. “아, 진짜 길다. 얘네들은 싸우러 간다는 애들이 무슨 말이 이렇게들 많냐~~" 읽다가 조금 큭큭대긴 했지만, 여행 가방에 넣을 수는 없다. 영문학사에서 의미있는 작품이라 하시니, 배우긴 했지만, 재미있었다고는 차마 말하지 못하겠다.

저자 스스로가 “동양의 정전은 내 능력 밖이다.”라고 밝혔듯이, 이 책에서 말하는 고전이란, 정확하게 말해 “서양 고전”이다. 내 생각을 제일 잘 표현할 수 있는 언어, 아름다운 우리말로 된 “고전”도 있고, 한문으로 쓰여졌지만 우리의 것이 분명한 “열하일기” 같은 고전도 있다. 우리의 고전은 우리의 고전대로 나름의 목록이 필요할 것이다.

이지성의 <리딩으로 리드하라>에 고전 목록, 특별히 초중고생들을 위한 고전 추천 목록이 있는데, 은근 끌린다. 딸롱이가 4학년이 되면, 도전해 보리라 마음 먹었는데, 벌써 3학년이다. 5학년쯤 도전해 보리라, 계획 수정한다.^^

이 책의 장점은 고전 소개 책들이 일반적으로 취하는 “소개 및 요약”의 그 흔하디 흔한 구성을 따라가지 않았다는데 있다. 물론, 고전을 소개한다. 그거야 당연하지 않나. 책 제목이 <고전의 유혹>인데. 왜 고전으로 유혹을 하겠나. 고전은 읽어야하는 책이고, 읽어야지~~하고 다짐하지만, 실제로는 한두 장 넘기기도 어렵다는 게, 너도 알고 나도 알고 우리 모두 다 아는 사실인 바, 고전이 얼마나 재미있는지, 고전 읽기가 얼마나 즐거운 일인지 유혹해 보겠다는 것이다. 아! 고전도 이렇게 재미있구나.

각 고전을 소개할 때 보여주는 저자의 진심어린 경탄과 칭찬이 이 황홀한 유혹의 진수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실낙원』 - 사탄의 반란, 세계의 창조, 인간의 타락 그리고 그리스도에 의한 인간의 구원을 다룬 밀턴의 서사적 이야기 - 은 인간의 펜이 만들어 낸 가장 위대한 경이다. 단 하나의 작품, 단 하나의 정신, 그야말로 최고다. 이에 근접할 만한 경쟁자는 없다. (191쪽)

 

 

 

 

 

 

 

여기서 한 가지 더 강조하고 싶다. 『위대한 유산』 보다 더 즐겁게 읽을 수 있는 책은 몇 권 없으리라는 것이다 - 앞으로도 영원히. 내 말은 과장이 아니다. 이 소설은 따스함과 인간애, 유머 그리고 장담하건대 그야말로 이 책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달콤함이 넘쳐흐른다. 누구나 이미 『위대한 유산』이 고금을 통틀어 가장 즐거운 책 가운데 하나라는 걸 깨닫지 못했다는 사실이 참으로 기가 막힐 뿐이다. (291쪽)

 

 

 

 

 

 

내 생각에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만큼 인간 심리를 그렇게 통찰력 있게 - 그리고 경악스러울만큼 광범위한 인격 유형과 행동을 통해서 - 파헤친 소설은 없다. (317쪽)

인간의 펜이 만들어 낸 가장 위대한 경이란다, 고금을 통틀어 가장 즐거운 책 가운데 하나란다, 인간 심리를 가장 통찰력있게 파헤친 소설이란다. 어떻게 이 책들을 읽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어떻게 이런 책들을 몰라라 할 수 있단 말인가.

이 책의 두 번째 장점은 이 책 자체가 하나의 재미있는 “책”이라는 거다. 이 책은 “책”이다. 그런데 이 책은 재미있는 “책”이다. 무슨 이런 말이 있나. 이 얘기가 가능한건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는 데 있다. 고전 소개 책들은 “책”은 “책”이되, 모양은 “책”이되, 그것들은 어디까지나 “안내서”의 기능을 하는 무늬만 “책”들이다. 이 책은 다르다. 이 책 자체가 재미있다. 발랄하다 못 해 약간 불온(?)스러운 느낌을 팍팍 풍기는 작가가 우리에게 과히 새로울 것 없는 책 하나를 달랑 들고 나타나 시대와 장소를 초월해 말 그대로 종횡무진한다. 유쾌하다.

이 책의 세 번째 장점 (나, 작가한테 연락해야겠네. 이렇게 사랑하네, 내가 이 책을)은 장마다 있는 요약 노트다. 이걸 보면 “아, 이 사람은 정말 이 책들을 꼼꼼히, 자세히 읽었구나.”하는 걸 느낄 수 있는데, 요약 노트라 함은 “오래된 소문, 사람들이 모르는 (그러나 알아야 할) 것, 최고의 구절, 성(性)스러운 이야기, 기묘한 사실, 건너뛸 부분”이다.

이 중에서 제일 마음에 들었던 건 “건너뛸 부분”. 책 전체를 다 읽지 않아도 된다는 저자의 말은 신선하다 못해 충격적이기까지 하다. 아, 정말이야? 그래도 돼? 다 안 읽어도 돼? 이렇게까지 자세히 가이드해 준다면야 나도 한 번 도전해 보지 뭐, 고전 읽기 프로젝트!

물론 저자의 말에 다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처음 열 개 장은 뒤의 장들보다 약하므로, 그 부분은 건너뛰어도 될 것 같다. 그리고 급히 서두르는 독자들을 위해서 마지막 2백 페이지 정도 (24장부터 끝까지)도 건너뛰거나 대충 읽어도 된다. (263쪽)

아니, 내~ 진정 사랑하는 『제인 에어』에게 이 무슨 돼먹지 못한 헐리우드 액션이란 말인가. 물론, 조금 지루한 부분 있다. 나도 인정한다. 제인이 붉은 방에 갇히고, 제인이 배고프고, 제인이 헬렌을 떠나보내고. 어디가 재미있겠나. 인정한다. 그래도 그렇지. 이렇게 꼭 집어서. 아니, 진짜 이 무슨, 경우 없는 경우인가.

 

 

 

 

 

 

 

다른 인쇄물들을 건너뛰어라. 교회를 빠지고, 데이트를 건너뛰고, 식사를 건너뛰어라. 그러나 부디 『백 년의 고독』에서는 단 한 순간도 건너뛰지 마시라. (478쪽)

에이, 이런 순.

기쁨과 환희, 격려로 시작한 이 페이퍼, 웬지 예감이 좋지 않다. 그래 좋다 이거야.

나도 내 할 말을 하겠어.

총평.

이 책은 편협한 시선의 작가가 옹졸하게 그려내는 소극적, 비판적 고전 평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아이, 시원~~~~하다. 메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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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도 예쁘고, 제목도 센스 있고, 물론 내용도 알차다. 알라딘 이웃 로쟈님, 대박나시길. 대박나셔서 계속해서 좋은 책 내시길. (ㅋㅋ 나만 아는 이웃, 나 혼자, 나홀로, 나 스스로 로쟈님을 이웃삼다.)

이탈로 칼비노의 말대로 고전이란 ‘나는 ~를 다시 읽고 있어’라고 말하는 책이기 때문이다. 너무도 유명하기에 ‘지금 ~를 읽고 있어’라고는 감히 말할 수 없는 것이 고전이다. 창피하니까. (78쪽)

맞다, 정말 창피하다. 그래서 이 표현은 정말 유용하다.

“나는 ~를 다시 읽고 있어.”

나는 ‘죄와 벌’을, ‘안나 카레니나’를, ‘폭풍의 언덕’을, ‘하얀 성’을, 다시 읽고 있어.

             

 고마워요, 칼비노. 고마워요, 로쟈님.

<모든 것이 끝났다> (푸슈킨, 1824)

모든 것이 끝났다; 우린 아무 관계도 아니다.

마지막으로 너의 무릎을 껴안고,

나는 애처롭게 호소했었지.

모든 것이 끝났어요 - 너의 대답을 듣는다.

다시는 나 자신을 기만하지 않을 것이다,

너를 우수로 괴롭히지도 않을 것이다,

지난 일들은 아마도 다 잊게 되겠지 -

사랑이 날 위해 만들어진 것도 아니고.

넌 젊고, 너의 영혼은 아름다우니,

또 많은 사람들이 널 사랑하게 되리.

넌 젊고, 너의 영혼은 아름다우니,

또 많은 사람들이 널 사랑하게 되리.

아...... 아, 푸슈킨을 깜빡했네.

난 ‘푸슈킨 선집’을, ‘대위의 딸’을 다시 읽고 있어.

   

<미운 오리 새끼>는 마치 안데르센의 인생역전을 보여주는 듯한 동화지만, 현실에서 안데르센의 운명은 ‘미운 오리 새끼’의 운명보다 덜 행복한 편이었다. ... 그의 ‘고향’은 콜린 집안이었지만 그 고향은 그가 끝내 도달할 수 없는 곳이었다. 더불어 안데르센은 자신이 선택받은 부류에 속한다는 사실을 그들에게 보여주어야 한다는 검증 필요성에 끊임없이 시달렸다. 그가 평생 동안 신경질환과 정신장애에 시달린 것은 우연이 아니다. (90-91쪽)

안데르센은 1805년 덴마크 오덴세의 가장 궁벽한 마을에서, 구두수선공인 스물 두 살의 한스 안데르센과 서른 살의 세탁부 안네 마리 사이에서 태어났다. 가난한 하층계급 출신이라는 점을 부끄럽게 생각한 안데르센은 작가로 성공한 뒤에는 하층계급 사람들과 어울리는 일이 거의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자신의 재능을 알아봐주고, 자신을 후원해주는 ‘콜린’ 집안 사람들과도 물 위의 기름처럼 겉도는 생활을 할 수 밖에 없었으니, 그가 바로 <미운 오리 새끼>의 ‘오리 새끼’이고, <인어공주>의 ‘인어공주’다.

제일 재미있게 읽은 꼭지는 “세계문학 전쟁이 시작됐다!”였다.

상업적으로 가장 성공한 시리즈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숨겨진 명작 발굴의 대산세계문학총서, 다양성이 장점인 책세상문고 세계문학, 작품 해설이 최고인 펭귄클래식, 거장들의 초역작품을 소개하는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69쪽).

열린책들이 빠졌네. 도스토예프스키 전집을 출간한 열린책들.

어느 책에선가, 진중권씨가 자신의 독서내력을 이야기하다가 어렸을 때 <강소천 어린이 문학전집>을 재미있게 읽었다고 말했다. 그 얘기를 했더니 신랑이 말했다.

“어, 나도 그거 집에 있었는데......”

“세상에..... <강소천 어린이 문학전집>이? 그게 집에 있었단 말이야? 그 시절에? 어? 야~~~ 자기는, 자기는 진짜 진중권씨처럼 훌륭한 사람 되야 돼. 그 때, 그 정도의 문화 혜택을 받았으면, 어? 어쩌구, 저쩌구....”

나는 아니었다. 나도 어린이였는데, 진중권씨가 어린이였을 때, 신랑이 어린이였을 때, 나도 어린이였는데, 우리집엔 <강소천 어린이 문학전집>이 없었다. 중 2 겨울, 우리집에도 세계 문학 전집이 등장하기는 했는데, 그건 책을 엄청 사랑하는 청소년 혹은 역시 책을 엄청 사랑하는 성인용 문학전집이었다. 우리교회 전도사님 사모님이 처녀 시절에 읽으셨던 소중한 책을 내게 물려주셨다. 아주, 아주 두꺼운 책들이었고, 세로쓰기였다.

나는 매일 제목들을 읽고 또 읽었다. 전쟁과 평화, 죄와 벌, 모비딕, 대지, 부활,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더는 기억이 안 나네. 책 속지는 눈처럼 새하앴지만, 아무래도 세로쓰기는 읽기 힘들었다. 난 그 책들을 다 읽지 못 했다. 그 때, 그 책들을 다 읽었더라면, 읽고 또 읽었더라면, 난 다른 사람이 되었을까. 난 정여울이 되었을까. 신랑은 진중권이 되고, 나는 정여울이 되었을까.

그 때, 이 책을 만났더라면, <로쟈의 세계 문학 다시 읽기>를 만났더라면, 난 ‘데미안’을,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을, ‘페스트’를, ‘노인과 바다’를 열 여섯에, 열 일곱에 만났을텐데. 그러면 진심으로, 사실적으로 이렇게 말할 수 있을텐데.

“난 ~를 다시 읽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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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2-07-17 08: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앗, 저 로쟈님 책 읽어봐야겠네요. 살까말까 망설이다가 말았는데 말이죠. 저도 로쟈님은 '나만 아는 이웃' 입니다. 으하하하.

단발머리 2012-07-17 06:45   좋아요 0 | URL
우아아, 다락방님도요? 다락방님은 유명하시니, 유명이웃 로쟈님이랑 서로 잘 아시는 줄 알았지요~~ 저, 위로 받은 거 맞겠지요?? ㅋㅎㅎ
 

여성 작가 열전이다.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을 시작으로 해서, ‘엠마’를 살짝 지나, 샬롯 브론테의 ‘제인 에어’를 거쳐,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이다. 지독한 사랑의 대명사, 죽음까지도 넘어서는 자기파괴적 사랑의 대표작, 바로 그 ‘폭풍의 언덕’이다.

어째서, 현재까지, 지금까지, 오늘까지 이 아름답고 훌륭한 작품을 읽지 않았느냐 물으신다면, ‘내용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라 초라하게 대답하련다. 사람들이 그러잖는가. ‘고전이란 모든 사람들이 다 읽어야 한다고 생각은 하지만, 실제로 읽지는 않는 책’이라고. 그런 의미에서 ‘폭풍의 언덕’이야말로 고전 중의 고전이다. 나는 문학동네 판을 선택했다. 최근에 나왔고, 책도 이쁘고.

 

 

 

 

 

“가지 마!” 캐서린이 힘주어 소리쳤습니다.

“가야 해. 갈 거야! 에드거가 나직하게 대꾸했습니다.

“못 가.” 캐서린은 문고리를 잡고 막아섰습니다. “지금 가면 안 돼, 에드거 린턴. 앉아. 그렇게 화내며 가버리면 안 돼. 그럼 나는 밤새 괴로워해야 해. 너 때문에 괴로워하기 싫어!” (115쪽)

린턴에 대한, 정확히는 타인에 대한 캐서린의 마음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캐서린은 누구를 위해서든 괴로워지기 싫은 거다. 누구를 위해서든 힘들고 싶지 않은 거다. 누구를 위해서든 아파하고 싶지 않은 거다. 누구를 위해서든 고통 받기 싫은 거다. 캐서린은 자기를, 자기 자신만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자신만을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에는 다른 사람의 자리가 없다. 캐서린은 누구도 사랑할 수 없다. 오직 자기 자신만을 사랑할 뿐이다.

지금 같아서는 히스클리프와 결혼하면 나도 천해지는 거야. 그러니까 내가 히스클리프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그 애가 알아서는 안 돼. 넬리, 내가 그 애를 사랑하는 건 잘생겼기 때문이 아니야. 그 애가 나보다 더 나 자신이기 때문이야. 그 애의 영혼과 내 영혼이 뭘로 만들어졌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같은 걸로 만들어져 있어. 린턴의 영혼이 우리의 영혼과 다른 것은 달빛이 번개와 다르고, 서리가 불꽃과 다른 것과 마찬가지인걸. (130쪽)

넬리, 나도 알아, 너는 지금 나를 나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아이라고 생각하지? 하지만 너 이런 생각 안 해봤어? 나랑 히스클리프랑 결혼하면 둘 다 거지꼴이 되겠지만, 내가 린턴이랑 결혼하면 히스클리프가 잘되도록 도와줄 수 있고, 오빠 손이 닿지 않는 곳에서 살게 해줄 수도 있어. (132쪽)

오빠의 학대 속에 고통 받는 히스클리프를 구원하기 위해 캐서린은 린턴과의 결혼을 결심한다. ‘내가 린턴이랑 결혼하면 히스클리프가 잘되도록 도와줄 수 있다’는 캐서린은 히스클리프를 정말로 도와주는 것이 무엇인지 모른다. 캐서린, 캐서린... 너는 모르는구나.

함께하는 것이 사랑이란다.

같이 있는 것이 사랑이란다.

흙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생수 한 병을 나눠 먹어도, 늦은 밤 라면 한 개를 보글보글 맛있게 끓여 한 젓가락 두 젓가락 나눠 먹어도, 우산 한 개를 나눠쓰고 가다가 쏟아지는 폭우에 한 쪽 어깨가 다 젖더라도.

함께하는 것이 사랑이란다.

같이 있는 것이 사랑이란다.

린턴에 내 사랑은 숲 속의 잎사귀들 같아. 겨울이 나무의 모습을 바꾸듯 시간이 내 사랑을 변하게 하리라는 걸 나는 너무나 잘 알고 있어. 하지만 히스클리프에 대한 내 사랑은 땅속에 파묻힌 변치 않는 바윗돌 같아. 눈에 뵈는 행복을 가져다주지는 않지만, 반드시 필요한 거니까. 넬리, 내가 곧 히스클리프인 거야. 그 애는 내 마음속에 항상, 항상 있는 거야. 기쁨을 주려고 있는 게 아니야. 내가 나 자신에게 항상 기쁨을 주지는 않잖아. 그 애는 기쁨을 주려고 있는 게 아니라, 나 자신으로 있는 거야. (133쪽)

내가 곧 히스클리프인 거야.

내가 곧 히스클리프인 거야.

계속 잊혀지지 않는 구절이다.

내가 곧 그이다.

내가 곧 그 사람이다.

내가 곧 히스클리프인 거야.

아, 개봉한 영화 보고 싶다. 캐서린은 내가 생각한 캐서린 그대로의 모습이다. 히스클리프는 잘 모르겠다. 일단은 영화를 보고 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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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freyja-고마워영화 2012-07-15 09: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단발머리님, 영화에서도 결혼을 앞두고 고민하며 캐서린이 그래요.
"히스클리프는 미치도록 나와 닮았어."
그리고 나중엔 "네가 날 떠났을 때 내 영혼은 이미 죽었어."라고도요.
님의 페이퍼 제목 "내가 히스클리프인거야"랑 맞아떨어지는 대사에요.^^
히스클리프는 검은 피부의 배우를 기용해 이들 사랑의 장벽을 더 확고히 보이게 했고요.
저는 섬세한 소리로 표현해낸 이번 '폭풍의 언덕'이 좋았답니다.
문학동네 책은 담아두고 있어요.^^

단발머리 2012-07-16 02:20   좋아요 0 | URL
아하, 안녕하세요, 프레이야님. 어설픈 서재 방문해 주셔서 감사해요. 검은 피부의 히스클리프 보고 싶네요. 찾아봐야겠어요. 나랑 같이 '폭풍의 언덕' 볼 사람, 여기 여기 붙어라~~~~`

비로그인 2012-07-15 15: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폭풍의 언덕. 폭풍의 언덕! 저도 어여 읽어야겠어요.

그러고 보니 단발머리님 서재에 흔적 남기는 건 처음인 듯~ ^^;
제인 오스틴과 <제인 에어> 그리고 <폭풍의 언덕>으로 이어지는 독서를 저도 비슷하게 따라갈 것 같네요 ㅎㅎ

단발머리 2012-07-16 02:21   좋아요 0 | URL
말없는 수다쟁이님, 안녕하세요. 제인에어 좋아하신다 하셨잖아요. 제 방에 처음 오시는 거 아닌뎅. 제 <오만과 편견> 페이퍼 보시고 댓글 달아주셨잖아요. 엉엉 T.T.

비로그인 2012-07-16 12:55   좋아요 0 | URL
ㅋㅋ 아맞다, 깜빡했어요! 아, 왠지 친숙하다 했더니!
점심 시간에 새로운 글을 읽고 가려고 했는데 남은 시간이 6분 ㅠㅠ

단발머리 2012-07-17 06: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완전 완전 괜찮습니다용. 저는 단발머리예요. 철없고 수줍은 열 일곱, 강풀과 나이가 같네요. ㅋㅎㅎ
계속 친숙해주세여~~~~~
 

 

 

 

 

학력이 부진한 댈러스 소재 학교에 다니는 2학년 학생이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은 뭘까?

책을 읽어라, 1권당 2달러.

삶 속에 나타나는 좋은 것에 가격을 매기는 행위는 그것을 오염시킬 수 있다. 시장이 단순히 재화를 분배하는 역할에만 머물지 않고, 교환되는 재화에 대해 어떤 태도를 드러내면서 부추기기 때문이다. 아이들에게 돈을 주어 책을 읽게 하는 행위는, 아이들을 독서에 힘쓰게 만들지는 모르나 독서를 내재적 만족의 원천이 아니라 일종의 노동으로 여기도록 한다. (26-7쪽)

시장 매커니즘으로서 시작한 방법이 시장 규범이 되고 있다. 분명히 우려되는 점은, 독서를 장려하기 위해 돈을 주면 아이들이 독서를 돈 버는 수단으로 생각하는 데 익숙해지며, 결국 독서의 내재적 장점을 퇴색시키고 밀어내거나 서서히 파괴할 수 있다는 것이다. (94쪽)

우선 탑승권, 렉서스 차로, 대리 줄서기 사업, 불임시술을 장려하기 위한 현금보상, 핵 폐기장 건설, 청소부 보험, 돈으로 살 수 없었으나, 이젠 돈으로 살 수 있는 여러 사례들이 흥미로웠다.

그 중에서 제일 관심을 끈 건, 독서 장려를 위한 현금 지급이었다. 누구나 그 중요성을 인정하는 독서, 독서를 장려하기 위해 돈을 지급한다. 이를 찬성하는 사람들은 “독서를 하는 도중, 격려금의 도움을 받던 도중, 독서의 매력에 빠져 나중에는 격려금의 도움 없이도 스스로 독서하게 되는 일”이 일어날 거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격려금의 액수는 계속 올라가고, 아이들은 건성으로 책을 읽고, 대충 읽은 책에서 간단한 내용을 기억하는 것만으로 돈을 벌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독서가 주는 즐거움은 완전히 물 건너 가는 일 아닐까.

독서, 독서 지도에 대한 여러 책들 중 내가 최고로 꼽는 책이다. 첫 아이를 낳은 지인들에게 많이 권하기도 했다. 간만에 찾아보니, 표지가 바꿨다.

 

 

 

 

 

 

 

그 책의 자매편 비슷한 책이다. 이 책도 좋아한다. 뒷표지에 독서 지도에 대한 지침이 있다.

1. 아이에게 직접 책을 골라주지 않는다.

2. 아이의 독서 여정을 방해하지 않고 희생을 요구하지 않는다.

3. 독서에 상을 내리지 않는다.

4. 불필요한 읽기 훈련으로 독서의 아름다움을 왜곡하거나 어지럽히지 않는다.

5. 아이에게 잘못된 정보나 공공연한 비판의 말을 하지 않는다.

이 책과 관련해 3번이 기억났다. 독서에 상을 내리지 않는다. 독서 뿐 아니라, “삶 속에 나타나는 좋은 것에 가격을 매기는 행위는 그것을 오염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독서 행위에 상을 내릴 수 없는, 보상할 수 없는 또 한 가지 이유는, 독서 행위 그 자체를 통해 책을 읽은 당사자는 이미 보상을 받았기 때문이다. 독서를 한다는 것, 책을 읽는다는 것은 짧지 않은 우리네 인생에서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즐거움 중 하나이다. 독서할 수 있다는 것, 책을 읽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이미 최고의 보상이다.

그 좋은 일을 경험한 사람에게 2달러는 필요하지 않다. 돈을 주지 않아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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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선정하는 “올해의 책 Best 5”에 넣고 싶은 책이다. 다시 읽고 싶다.

우울한 인간은 노동하는 동물 animal laborans로서 자기 자신을 착취한다. 물론 타자의 강요 없이 자발적으로. 그는 가해자인 동시에 피해자이다. 강조적 의미의 자아 개념은 여전히 면역학적 범주다. 그러나 우울증은 모든 면역학적 도식 바깥에 있다. 우울증은 성과주체가 더 이상 할 수 있을 수 없을 때 발발한다. 그것은 일차적으로 일과 능력의 피로 Schaffens- und Kőnnensmődigkeit이다. 아무것도 가능하지 않다는 우울한 개인의 한탄은 아무것도 불가능하지 않다고 믿는 사회에서만 가능한 것이다. (28쪽)

타인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 의해 스스로 착취당한다. 가해자인 동시에 피해자가 되는 우울한 인간. 아무것도 불가능하지 않다고 믿는 사회에서, “난 못 하겠어요.”라고 말할 때, 그는, 우울한 인간, 우울한 개인이 되고 만다.

노동사회, 성과사회는 자유로운 사회가 아니며 계속 새로운 강제를 만들어낸다.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은 모두가 자유롭고 빈둥거릴 수도 있는 그런 사회로 귀결되지 않는다. 그것은 오히려 주인 스스로 노동하는 노예가 되는 노동사회를 낳는다. 이러한 강제사회에서는 모두가 저마다의 노동수용소를 달고 다닌다. 그리고 그 노동수용소의 특징은 한 사람이 동시에 포로이자 감독관이며 희생자이자 가해자라는 점에 있다. 그렇게 인간은 자기 자신을 착취한다. (43쪽)

하지만, 우울증, 소진증후군,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와 같은 오늘날의 정신 질환은 심적 억압이나 부인의 과정과는 무관하다. 그것은 오히려 긍정성의 과잉, 즉 부인이 아니라 아니라고 말할 수 없는 무능함, 해서는 안 됨이 아니라 전부 할 수 있음에서 비롯된다. (92쪽)

자본주의가 일정한 생산수준에 이르며, 자기 착취는 타자에 의한 착취보다 훨씬 더 효과적이고 능률적으로 된다. 그것은 자기 착취가 자유의 감정을 동반하기 때문이다. 성과사회는 자기 착취의 사회다. 성과주체는 완전히 타버릴 Burnout 때까지 자기를 착취한다. 여기서 자학성이 생겨나며 그것은 드물지 않게 자살로까지 치닫는다. (103쪽)

성과주체는 가해자이자 희생자이며 주인이자 노예가 된다. 자유와 폭력이 하나가 된다. 자기 자신의 주권자, 호모 리베르를 자처하는 성과주체는 호모 사케르임이 밝혀진다. 성과사회의 주권자는 자기 자신의 호모 사케르인 것이다. (110쪽)

옮긴이도 지적했듯이, 긍정성의 과잉이 결국은 자아를 새로운 궁지로 몰아가고 있다. 그러한 사회가 피로사회이다. 피로사회에 살고 있는 우울한 인간들.

아........... 피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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