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을 처음 듣는 작가의 책이고, 제목을 통해 내용도 어느 정도 예상되는지라 큰 기대를 갖지 않았는데, 몇몇 기억할 만한 구절이 있다.

당신의 편견을 깨는 생각지도 못한 독서법

끝까지 읽지 않아도 좋다

금세 잊어도 좋다

잘못 이해해도 좋다

빠르게, 닥치는 대로 읽어라

 

금세 읽고 잊어버리고 잘못 이해해도 괜찮다면 무엇 때문에 읽는가, 라고 물을 수 있겠지만, 실제로 읽은 내용을 다 이해하는 것도, 이해한 내용을 정확히 혹은 세세히 기억하는 일도 불가능하다. 저자가 제안하는 독서법은 난독법이다.

일반적으로 난독은 속독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이를 조잡한 읽기법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편견이다. 의외로 천천히 읽으면 놓치는 내용을 바람과 같은 속도로 빨리 읽었기에 이해할 수 있는 경우도 많이 있다. 이것이 바로 난독의 효용이다. 책이 별로 없어 귀중해 손에 넣기 힘들었던 시대에 정독이 바람직하게 여겨졌던 것은 어찌 보면 자연스럽고 타당한 일이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책은 넘칠 듯이 많은데 읽을 시간이 없다. 이런 상황에서야말로 난독의 가치를 재정비해야 한다. (150)

 

같은 일본 작가의 책, 『, 열권을 동시에 읽어라』가 떠오르는데, 저자는 이런 빠른 책읽기를 통해 독서의 화학반응이 일어난다고 말한다. 그것을 세렌디피티라는 단어를 통해 설명하는데, 세렌디피티 Serendipity란 생각지도 못한 뜻밖의 발견을 하는 능력을 말한다. , 역사적 방법에 의해 이루어지는 문과 계통의 학문 연구에서 진보와 진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생각지도 못한 뜻밖의 발견을 하는 세렌디피티가 일어나야 하고 그것은 난독을 통해 가능하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여러 가지 예가 나오지만 특히 관심을 끄는 건, <정성스럽게 읽은 책이 화가 되어 돌아오다>라는 챕터에서 영어책도 빨리 읽어라는 주장이다. 외국어를 읽을 때는 아무래도 모국어로 읽을 때보다 읽는 속도가 느려지기 마련이고, 그러다보면 책을 읽는 게 아니라 내용을 해석하는 상황이 벌어진다. 저자는 천천히가 아니라, ’명확하게 소리를 내어 빨리 읽는 것만으로도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쉽게 이해해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소리 내어 읽음으로써 흐름이 생겨 말의 자연스러움이 회복되기 때문이라는 주장이다.

 

말의 흐름은 영화 필름과 같다. 하나하나는 정지되어 움직이지 않는다. 여기에 스피드가 결부되어(영사하면) 따로따로 흩어져 있던 필름의 한 장면 한 장면이 연결되면 움직임이 발생한다. 읽는 것도 이와 유사하다고 생각하면 된다. 앞 장면과 다음 장면은 조금 떨어져 독립되어 있다. 여기에 읽기라는 움직임이 더해지면 단어 사이에 있는 여백이 사라지고 장면과 장면이 연결되어 움직이는, 즉 의미가 발생한다. (96)

 

저자의 안내에 따라 이 더운 여름, 난독법으로 독파하고 싶은 책들을 골라본다.

 

 

1. 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

 

이 책의 제목을 내 경우에 맞춰 고쳐본다면 이렇다. 그래요. 내 문장은 이상합니다. 다 써 놓고 나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나도 모를 때가 많다. 내 문장에서 자주 나오는 버릇은 “~ 것은 ~ 것이다이다. 이 책에는 20년 넘게 교정 교열일을 해온 작가의 생생한 예시가 아주 풍부하다.

 

상상하는 은 즐거운 이라고 말하는 을 이해해 주는 에서부터 상대에게 한 발짝 더 다가가는 을 시작할 수 있다는 이 내가 주장하는 바로 그이다. (33)

 

이 재미있는 예를 읽으면서도 웃지 못하는 이 마음. 좋은 문장의 길은 진정 멀리에 있단 말인가.

  

  

2. eclipse

 

Twilight Saga 시리즈는 Twilight-New Moon-eclipse-breaking dawn의 순서인데, 두 번재 New Moon은 가운데를 빼먹고 앞쪽과 뒤쪽만 읽었다. 이유는 간단한데 내가 좋아하는 에드워드가 등장하지 않아서다. 에드워드가 벨라에게 이별을 고하는 앞부분과 에드워드와 벨라가 재회하는 뒷부분만 읽었다. 제이크에게 미안하지만, 에드워드가 등장하지 않으니 집중이 안 돼 어쩔 수 없었다. 저번 주에 초간단 12일 약식 휴가 때 이 책을 들고 갔는데, 짧은 휴가 중에도 큰 기쁨을 선사했다. 벨라-에드워드-제이크의 삼각관계에서 벨라의 애매모호한 태도 때문에 조금 짜증이 나기는 하지만 적어도 이 책에서는 에드워드를 만날 수 있으니 그것으로 만족하려 한다.

 

 

 

에드워드.

지금 나에게 는 오직 에드워드이며, 당연히 에드워드이고, 반드시 에드워드이다.

항상 에드워드이고, 아무렴 에드워드이고, 정말 에드워드이다.

에드워드와 환상 여행. 올 여름 가장 기대되는 여행임에 틀림없다.

 

“There’s something . . . strange about the way you two are together,” she murmured, her forehead creasing over her troubled eyes. “The way he watching you it’s so . . . protective. Like he’s about to throw himself in front of a bullet to save you or something.”

I laughed, thought I was still not able to meet her gaze.

“That’s a bad thing?”

“No.” She frowned as she struggled for the words. “It’s just different. He’s very intense about you . . . and very careful. I feel like I don’t really understand your relationship. Like there’s some secret I’m missing . . .” (68)

 

 

 

3. 레이먼드 챈들러

 

현대문학의 <세계문학 단편선>은 모든 산문의 형식 중 가장 응축적이고 예술성이 높은 단편 소설에 포커스를 맞추어 세계적 작가들의 주옥같은 단편들을 모아 연속적으로 출간하고 있다

탐정소설을 오락물에서 문학의 자리로 끌어올린 하드보일드 문체의 마스터 레이먼드 챈들러‘.

책 뒷면의 소개된 레이먼드 챈들러에 대한 설명이다. 셜록 홈스와 함께 탐정의 대명사가 된 필립 만로를 아직 만나지 않은 상태에서 일단 레이먼드 챈들러의 단편의 세계로 들어가 본다. 들어가서 헤매지 않고 길을 잘 찾아야 할 텐데... 

 

    

 

 

4. 아름답고 쓸모없기를

  

수단과 방법으로 배워갑니다

 

편집자 황예인과의 채팅

<대감놀이> 듣는다

언니 대감 복장도 어쩐지 어울리심

굿 듣고 싶어 미치겠다 밤새 틀어놔

무당 기운이 흐르나봐요 옆집에서 안 무서워하게 살살

틀어놔요

요령 흔들고 싶고 장구도 치고 싶고

요령 어서 구할 수 있지? 뭔가 해소해보아요

요령 사고 싶다 진짜

뒤져보니 방울처럼 생긴 건 안 나오고 종처럼 생긴 것

만 나오네요

? 어디서 파냐 이러다 작두도 사겠어.

http://shopping.naver.com/search/all_search.nhn?query=% ...

쥐마켓과 11번가에서 요령 파는 세상

나 이구절 시로 써도 되냐

언니와 나눈 대화 ....... 언니 다 가져요......

 

김민정 시인의 시집 아름답고 쓸모없기를은 알라딘 17주년 기념 비틀즈 노트를 주문하면서 선물로 받은 시집이다. 시를 다 읽어보지는 않았는데, 일단 아름다운 외모, 연한 핑크빛 외모에서 70점 먹고 들어간다. 그리고 제목 아름답고 쓸모없기를에서 20점 얻고. 기본점수가 90점이라 더욱 기대되는 시집이다.

 

준비는 끝났고, 이제는 책을 펼쳐서 읽으면 되겠다.

책은 펼치고 사람은 만나고...

 

맨 앞줄을 넘어서다 못해 아예 벽에 등을 대는 곳에 자리를 잡다 보니 시간 대부분을 작가님 뒷모습을 보며 보냈다. 그게 그렇게 나쁘지는 않았지만 아무튼 정훈이 작가님이 귀여운 만화사인을 해주시는 동안, 의자를 들고는 앞으로 나섰다. 작가님과 사이에는 빈 책장이 있었는데, 책장 칸막이 사이에 얼굴을 내밀고는 그 쪽을 쳐다보았다. 그렇게나 좋아하신다는 아메리카노. 그 날은 아이스 아메리카노.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기 위해 책장 쪽으로 고개를 돌려 빨대와 조우하는 그 순간, 그 곳에는 내가 있었으니 작가님은 일순 깜짝 놀라셨다. 작가님을 기다리고 있었지만 그 순간이 그렇게 빨리 오리라 예상치 못했던 터라 나도 잠시 놀랐다. 하지만 금세 평정심을 되찾고는 열혈 독자 모드에서 평범 독자 모드로 반갑게 인사. 안녕하세요~

여기에도 사람이 있었나, 작가님은 놀라셨지만 금방 안녕하세요~라고 말을 건네시고는 환하게 웃으셨다. , 세상에... 안녕하세요~는 그렇게나 다정한 말이었다. 안녕하세요,와 환한 미소만으로도 사람은 사람에게 감동을 전할 수 있다는 걸, 나는 그걸 알았다. 그날 밤에.

책으로만 만났던 사람을, 오랫동안 좋아했던 사람을 직접 만나는 일이 항상 유쾌하지는 않을 것이다. 글 속에서만 멋진 사람일 수 있고, 좋아했던 사람인데 직접 만나니 기대와 달라 실망할 수도 있다. 책으로만 만났던 사람을, 오랫동안 좋아했던 사람을 직접 만나,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나누고, 눈빛을 교환했다. 그 모든 순간들이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따뜻하고 다정했으니, 이번 여름도 역시 최고의 여름이다. 사람을 만나는 기쁨을 선사한 여름. 올해 들어 최고의 여름.

자고로 책은 펼치고, 사람은 만나야.

그게 제 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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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7-29 10: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침에 잠깐 조는데 꿈에 유작가님 등장. 우리?는 동네서점 야나문에 앉아 유작가님 얘기를 듣고 있었어요. 베를린 다녀오셨다믄서
장난감 우드블럭을 선물로 주시고. 게테 콜비츠 박물관 다녀온 이야기를 들려주셔서 넘 잼나게 귀를 쫑긋 거리고 듣고 있는데 세탁소 아저씨의 초인종 소리에 꿈깨!
아 아쉽 ㅜㅜ 우드블럭이 넘 작고 아기자기해서 손으로 만지작 만지작 촉감도 남아있는데, 다른 이들에게 선물한 것들도 기웃하며 보려던 찰나였는데. . .

단발머리 2016-07-29 16:32   좋아요 1 | URL
하하핫!!! 섬세한 꿈을 꾸는 사람들은 예술가 기질이 있는 사람이라고 하던대요. 쑥님의 꿈은 완전 영화처럼 눈앞에 펼쳐지네요~~
저도 촉감이 살아있는 우드블럭 장난감 필요하거든요.
혹 꿈 속에서 유작가님 만나시면 제가 기다리고 있다고...
제 꿈 속은 항상 조용하다고... 좀 전해주세요^^

cyrus 2016-07-29 11: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사는 곳이 너무 더워서 책을 읽기가 힘들어요. ^^;;

단발머리 2016-07-29 16:35   좋아요 0 | URL
cyrus님 사시는곳 대구 아니던가요? 아하... 대구...
서울은 월화수목까지 화끈하게 덥더니 어제오늘은 비 때문인지 좀 살것 같아요.
너무 더운 cyrus님에게 시원한 위로를...^^

세실 2016-08-07 10: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호호 좋은 자리 양보하시고 구석진 자리~~ 착하신 단발머리님^^
단발머리님 글의 내공이 깊은데, 젊고 예쁜 분이라 놀랐지요.
반가웠습니다~~
짧은 만남 아쉬웠어요.

단발머리 2016-08-09 08:23   좋아요 0 | URL
아이고~~~ 자리 양보는 아니구요~
유작가님께 좀 더 가까이, 좀 더 가까이 하다보니 벽에 붙게 되었어요~~ ㅎㅎ
아름다운 세실님을 만남으로 저는 세실님, 순오기님, 프레이야님 이렇게 오공주 다섯분중 세분을 만났네요~
잠깐이었지만 너무 반가웠어요~~
담에 또 뵈어요~~ 세실님^^

icaru 2016-08-09 11: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천천히 읽으면 놓치는 내용을 바람과 같은 속도로 빨리 읽었기에 이해할 수 있는 경우도 있다니,,, 정녕 그럴 수 있나 하면서,,, 음 그럴 수도 있겠어 결국엔 ㅎㅎㅎㅎㅎ

그런데,, 단발머리 님 페이퍼는 천천히 읽으면 읽을수록 맛이나긴 해요!! ㅎㅎ

훈훈한 조우가 되기 어려울 수도 있었을 텐데~~~ 그런 만남으로 승화될 수 있었던 것은 서로에게 미덕이 있었기 때문일까요? ㅎㅎㅎ

단발머리 2016-08-09 22:14   좋아요 0 | URL
천천히 읽기보다 빠른 속도로 읽기는 특히 외국어 읽기에서 빛을 발한다고 하더라구요.
저도 몇 번 그런 경험이 있어서 이해가 되기도 하구요.

제 페이퍼를 천천히 읽어주신다니 더욱 감사한대요~~
천천히 읽어도 빨리 읽어도 별 내용은 없지만, icaru님 칭찬에 흥겨운 단발머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