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욱에 관한 syo님의 페이퍼를 읽었을 때(syo~ 안녕하세요^^), 나는 마침 김경욱의 개와 늑대의 시간을 읽고 있었다. 친구들이 모두 김영하, 김영하 할 때, 김경욱이 좋았다는, 하지만 대놓고 말하지 못했다는 syo님의 글이 마음에 와닿았다. 작품을 읽을 때, 사람마다 다른 느낌을 갖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친구들이 한 목소리로 김영하, 김영하 해버리면, 나는 김경욱이 좋던데,라고 말하는게 쉽지 않다.

나도 그렇다. 다른 사람들에게 괜찮다,는 평가를 받은 책들을 괜찮다,고 평하는 경우가 많다. 괜찮다,고 말할 만한 책이 아니라면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그게 내가 책을 대하는 나름의 자세다. 불평과 불만에 가득찬 소리를 한가득 쏟아내기에는 시간이 부족하다. 마음에 안 든다면, 부족하다고 여겨진다면, 아무 말 없이 그냥 패쓰. 패쓰해 버린다. 밀려드는 책홍수 속에서, 진주같은 작가의 보석 같은 작품을 찾아낼 만한 감식안이 있다면 좋겠는데. 그럴만한 안목을 가질 수 있을만큼 많은 책을 읽은 건 아니니까. 그냥 그려려니 한다. 평가보다는 감상이 내게는 맞다고 생각한다.

 

 

 

 

 

 

 

 

얼마 전 2016년 현대문학상 수상소설집 베를린 필을 대출했을 때, 역대 수상작가의 최근작이라고 소개된 김경욱의 천국의 문을 읽었다. 가족을 돌보는 사람의 입장에서 쓴 글이라는 점, 병자를 돌보는 사람의 암울한 마음이 적나라하게 엿보인다는 점에서 김훈님의 화장이 자꾸 떠올랐다. 그렇게 머릿 속에 김경욱을 넣고 보니, 도서관 신착도서칸의 개와 늑대의 시간이 보였던 거다.

김경욱의 장편 중에서는 이 책이 처음이다. 작가 소개를 읽는데, 첫 줄이 이랬다.

김경욱은 1993년 작가세계 신인상에 중편소설 아웃사이더가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1993년이라면, .... 지금이 2016년이니까. 등단한지 20년이 넘었다. 언제 사진인지는 모르겠지만 책날개 속 작가는 무척이나 젊게 아니, 앳되보이기까지 하는데. 벌써 20. 20년이 넘게 계속해서 쓴다는 것. 작가로서 산다는 것에 대해 잠깐 생각했다. 그 무게가 느껴져 작가소개를 한 번 더 읽었다. 그러고는, 김경욱의 손을 잡고(손을 잡고^^), 김경욱이 소개하는 세계로 입장한다. 소설 속으로 들어간다.

내가 좋아하는 세계는 이런 세계다. 열대아를 이기게 하는 이런 세계는 논리의 세계이고 깨알 웃음의 세계이다. 한 마디로 웃기는 세계.

 

말단 순경이라꼬 무시하는 깁니까? 이래 봬도 각하를 경호하던 몸입니더.”

술냄새를 폴폴 풍기며 황이 소리쳤다.

논점과 무관한 논거였다. 그래도 손미자는 고개를 끄덕끄덕.

그래 잘났는데 와 이 촌구석까지 왔노?”

백부도 물러서지 않았다. 논점 일탈 논거를 이용한 되치기.

저를 만나러 온 거죠. 손미자는 이렇게 말하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잘난 돌이 정 맞는다꼬, 너무 잘나가 물먹은 깁니다.” 그릇된 논거, 주관적 판단에 의한 자기합리화.

희한한 말 다 듣네. 잘났는데 와 물을 먹노?” 타당한 질문.

이순신 장군도 모함을 받아가 감옥에 안 갔습니까?” 논점과 한참 무관한 논거.

충무공께서는 감옥에서 나와가 나라를 구하셨다.” 논점과 한참 무관한 논거와도 한참 무관한 반박. 백부는 이렇게 반박해야 했다. 이순신 장군의 억울한 옥살이와 이 동거가 무슨 상관이냐? (개와 늑대의 시간, 132)

 

한국 소설 혹은 국내 소설. 어느 표현이 맞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국내 소설을 찾아서 읽는 편이 아니다. 아주 유명한 작가들, 혹은 최근에 문학상을 수상한 작가들의 이름만 아는 정도다. 근래에는 어떤 서점이든 맨부커 인터내셔널을 수상한 한강의 채식주의자가 도배되어 있던데, 올 봄 나름 일찌감치 그 책을 읽게 된 것도 찾아서 읽었던 게 아니라, 책을 정말 많이 읽으시는 님이 빌려주셔서, 빌려주셨기 때문에 읽게 된 경우다. 당연히 요즘 한국 소설의 경향이나 흐름 같은 것도 모른다. 표절이 나쁘다는 것만 알고, 문단권력에 문제가 있다는 정도만 알지, 그 이상은 아무것도 모르는, 평균보다 못한 보통의 독자다.

 

창백한 말

 

 

 

 

 

 

 

 

 

그런 보통의 독자인 내가, 외모에 반해, 표지에 혹해 정지돈의 창백한 말을 읽었다. 신선했다. 물론 읽는 중간 중간, 브로드스키, 아흐마토바, 보리스 사빈코프등을 찾아봐야 했지만, 무식한 스스로를 탓하며 검색하고 위키피디아를 읽는 시간도 나름 즐거웠다. 봄에 시수업을 하면서 선생님을 이런 상황에 이렇게 말씀하셨다.

저는 그 시를, 참 좋게 읽었어요.

그러니까, 응용해보자면 나는 정지돈의 창백한 말을 참 좋게 읽었다. 후장 사실주의가 뭔지는 잘 모르겠고, 그에 해당하는 글도 앞만 대충 읽었지 무슨 말인지 당최 모르겠지만. 나 혼자, 아무런 배경이나 설명, 이해 없이 그냥 이 단편을 읽었을 때, 나는 그냥 좋았다. 좋게 읽었다. 설명하기 어렵고, 설명할 수도 없지만.

 

장의 사보타주가 성공적이었던 것 같진 않다. 그는 틈만 나면 돈을 빌려달라고 했고 뭐 하나 번듯하게 해내는 게 없었다. 어느 날은 시를 썼고, 어느 날은 소설을 썼으며, 어느 날은 영화를 찍었다. 카페에서 보자고 해서 갔더니 커피 네 잔을 마시고 식사 대용으로 브라우니와 크루아상까지 먹어치운 상태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물론 계산은 내가 했다. 나는 운이 좋게 취직을 했고, 돈도 꽤나 벌었다. 시는 읽지 않은 지 오래였고, 영화는 멀티플레스에서만 봤으며, 소설은 읽을 시간이 없었다. (창백한 말, 32)

    

 

 

 

 

 

 

 

 

 

 

정지돈의 내가 싸우듯이를 다음으로 읽어볼 생각이고, 등단 20년이 넘는 김경욱 작가의 책도 몇 권 골라본다. 제목에 대한 선호도로 다음 소설을 선택하는 이 독특하면서도 특별할 것 없는 소설 선택법에 근거하여, 다음 소설은...... 

 

 

위험한 독서, 동화처럼, 소년은 늙지 않는다

 

 

 

 

 

 

 

 

 

장국영이 죽었다고?, 야구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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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16-07-26 1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이름이 나와서 깜짝 놀랐습니다;;
지은 죄가 많은가봐요.....ㅎ

단발머리 2016-07-26 10:33   좋아요 0 | URL
아니 아니 아니예요. <너무 한낮의 연애>에 관한 페이퍼였죠? 즐겁게 잘 읽었어요. syo님 페이퍼 읽고 났더니 한국 소설이 막 읽고싶더라구요~~~*^^*

syo 2016-07-26 11:39   좋아요 0 | URL
그 글로 <너무 한낮의 연애> 마니아가 되고 말았어요. 그 글은 <너무 한낮의 연애>에 관한 글이라기보다는 그저 한 김경욱성애자의 커밍아웃 글일 뿐인데 말이죠. 뻘쭘합니다. ㅎㅎㅎ

단발머리 2016-08-01 09:31   좋아요 1 | URL
저도 <너무 한낮의 연애>를 읽고 싶기는 한대, 김경욱 소설을 한 권 더 읽고 싶기도 하구요.
저는 책을, 특히 한국 소설을 안 읽고 너무 오래 살아왔네요..
김경욱을 이번에 읽었습니다. 등단 20년이 넘었는대요 ㅠㅠ

다락방 2016-07-26 10: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야구란 무엇인가>를 읽었는데, 별로 기억에 남아있는 게 없어요. 저는 김영하도, 김경욱도 안좋아하고요-syo님의 그 글을 저도 읽었습니다-, 이승우를 좋아합니다! 하하하하하.

(은근히 고백 놓고 사라지기.. )

단발머리 2016-07-26 11:04   좋아요 1 | URL
아하하... 그럼 저는 <야구란 무엇인가>는 패쓰하기로 하구요. 저는 김영하를 좋아하는데... 이번에 김경욱을 좋아하게 됐지요~~
<개와 늑대의 시간>은 30여 년 전 `남한`의 벽촌에서 하룻밤새 동네 사람 쉰여섯을 총으로 쏴 죽인 순경이야기가 모티브예요. 사연사연이 모두 절절하고 재미가 넘쳐나요^^

물론, 아무렴, 이승우도 좋지요~~
좋아하는 남자만 수두룩!!! ㅎㅎㅎ

지금행복하자 2016-07-26 16: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김경욱 동화처럼을 인상깊게 읽었어요~ 그후론 안 봤는데.. 오늘 개와 늑대의 시간을 빌려왔지요~ 그때의 그 느낌을 다시 가질수 있을까 싶어서요 ㅎㅎ
저는 김경욱도 김영하도 안 좋아합니다 ㅎㅎ

단발머리 2016-08-01 09:33   좋아요 1 | URL
그 후로는 안 보신 이후가 별로여서인가요? ㅋㅋ
저는 <동화처럼>을 읽어보지 않아서 모르겠는데, 요즘같은 폭염에 <개와 늑대의 시간>은 정말 좋은 선택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저는 김영하와 김경욱을 좋아합니다.
김경욱과 좋은 시간 되시기를요ㅎㅎ

지금행복하자 2016-08-01 09:58   좋아요 1 | URL
개와 늑대의 시간.. 도서관에서 빌려 놓고.. 두고만 있는데.. 봐야겠군요 ㅎㅎ

그 후 안본건 별로라기보다는 자연스럽게 잊혀진듯해요~ 그러다가 가끔 동화처럼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어 소환되고 ㅎㅎ

2016-07-27 06: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좋은건 위험한거라고 했던 어느 선생님의 말씀이 생각나네요. 전 김경욱도 김영하도 안읽었어요. 이승우만 읽었는데 까마득한 옛얘기네요^^정지돈은 가장 최근에 읽었네요.ㅎㅎ
인사는 담주에 나누려고 그냥 나왔어요(라고하면뻔뻔한거짓말이되려나요ㅋ)암튼 담주에 뵈어요(라고 우기기)♡

단발머리 2016-08-01 09:35   좋아요 1 | URL
네... 좋은 건 위험하죠. 제가 좋아하는 게 위험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예요.
저도 이승우님 좋아해요. 작품을 다 읽지는 않았지만.... 좋아합니다. ㅎㅎ

쑥님의 따님을 붙잡고 꿈섬님이랑 제가 그랬죠.
설마... 엄마가.... 그대를 두고????
내일 뵈요. 만세만세만만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