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금 쌍담 - 섹스.폭력.정치.종교
강신주.이상용 지음 / 민음사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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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을 쌓기 위한, 리더의 자리에 오르기 위한, 성공하기 위한 방편으로서의 인문학만이 각광받는 시대다. 아이에게 책을 읽히려는 이유가 공부를 잘하게 하기 위해서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더 나은 삶을 위한 도구로서의 인문학만이 소비되는 시대다.

삼십금 쌍담이라는 다소 자극적인 제목의 이 책은 인문학 정신의 근본이 금기에 도전하는 것에 있다고 말한다. 영화, 감각의 제국, 시계태엽 오렌지, 살로, 소돔의 120, 비리디아나를 통해 섹스’, ‘폭력’, ‘정치’, ‘종교에 대한 사람들의 위선적 태도를 지적하고, 그것에 대한 무조건적인 항복을 고발한다. 처음부터 끝까지 한결같이 불편했던 건 사진이다. 네 개의 영화 중 한 개의 작품도 본 적이 없어 예상할 수 없었기 때문에, 감독의 느낌과 생각을 이렇게 날것 그대로 표현한 영화들을 많이 접해보지 못했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진들이, 거의 모든 사진들이.... 참....

 

 

 

 

 

 

 

감각의 제국은 신성의 에로티즘까지는 아니더라도, 영화 내내 육체와 심정의 에로티즘을 다루고 있죠. 그런데 왜 인간은 이토록 섹스를 하고, 일체감을 얻으려고 할까요. 바타유는 동물과 인간의 섹스를 구분합니다. 동물의 섹스는 후손을 남기기 위한 생산성을 무엇보다도 중시합니다. 하지만 인간의 섹스는 생산에 관심이 없어요. 우리들 모두 자손을 꼭 남기고 말겠어!’라고 생각하며 섹스를 하지 않잖아요. 오히려 섹스를 통해 쾌락을 추구하죠. 바타유에 따르면 인간은 에로티즘을 통해 쾌락을 추구하는 유일무이한 동물이에요. 그래서 에로티즘과 에로티즘을 통한 쾌락을 이해하면 인간을 보다 깊이 이해할 수 있어요.(41)

사랑의 핵심에는 늘 불륜성이 도사리고 있어요. ... 결국 불륜이라는 건 무리에서 떠나는 행위입니다. 그 때문에 우리가 불륜을 저주하는 건 고착화된 욕망이에요. 기존의 틀을 유지하겠다는 욕망이 있기 때문이죠.(60)

 

감각의 제국의 주인공들인 사다와 기치의 사랑이 불편했던 건 그들이 불륜이어서가 아니다. 그들이 자신들의 섹스를 노출하고 싶어하고, 관객에게 자신들의 벗을 몸을 자꾸 노출시키기 때문이다. 나는 사다와 기치처럼 육체노출하는 것에 대해서는 소극적이지만, 글쓴이가 지적한 것처럼 다른 부분에서의 노출은 즐기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다. 이렇게 리뷰를 써서는 내 컴퓨터에만 저장하지 않고 이 글을 복사해, 나의 서재에 올리고, 사람들의 좋아요좋아하는이런 행위는, 나의 생각과 느낌을 노출해야만 얻어질 수 있다. 내 생각에 대해 지지를 받고, 내 느낌에 대해 공감을 받고, 내 일상에 대해 웃음을 얻고, 또 얻으려한다는 건, 나 자신을 노출하는 행위를 통해서만 받게 되는 보상이다. 노출하고 싶어하는 인간의 본성에 대해서라면 나 또한 사람인지라, 그러하겠지, 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나의 노출, 나의 벌거벗음이 어떻게, 어느 쪽으로 향하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좀 더 깊이 있게 생각해 봐야겠다.

섹스에 대해서라면, 후손을 남기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섹스가 아니라, 오로지 즐거움, 쾌락을 위한 통로로서의 섹스에 대한 이야기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다양하게 읽힐 수 있겠다. 섹스를 통한 즐거움이 인간만의 것이라고는 믿지 않지만, 여러 동물 중에 후손을 남기기 위한 목적으로서가 아니라, 쾌락 그 자체를 목적으로 삼는 종은 인간이 유일하다 생각한다. 섹스가 전부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섹스가 아무것도 아니라고도 말하지 못 하겠다.

다만, 마음에 들면 일단 무조건 자고 보라,는 제안은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 격렬한 호흡과 몸짓으로 서로의 육체를 격하게 더듬으며 탐닉한 후에, 말 그대로 뜨거운 밤을 보낸 후에, 지난 밤 불태운 열정이 성욕이었는지, 아니면 사랑이었는지를 알게 된다(80)는 것인데, 보수적이고 체제 순응적이며, 기혼의 여자사람이라서 그런가. 내게는 인간 수컷의 교묘한(?) 호소로밖에는 들리지 않는다. 뜨거운 밤이 지나면 아침이 오고, 마음은 쉽게 변한다.

인간 수컷이 그건 호소가 아니었다고 하면, 그 말도 믿어주겠다. 호소가 아니라면 유혹일 테고, 유혹이 아니라면 유인(誘引). 그것도 아니면 인유(引誘).

 

살로, 소돔의 120는 연합군에 의해 이탈리아 파시스트가 몰락하고 그 잔당들이 모여 수립한 괴뢰 정권의 대표자들인 공작, 주교, 판사, 의장이 자신들의 탐욕을 충족시키기 위해 베푼 사악한 연회에서 일어난 추악하고 사악한 일들을 보여준다. 난잡한 성교 파티와 폭력. 잔인한 고문과 살인. 서로에게 을 먹으라 강요하며, ‘최고의 항문을 선정하는 이 미친 사람들의 미친 행동들은 불쾌함의 극치를 보여준다.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것 또한 그것이다. ‘파시즘에 굴복했을 때, 저항을 잃어버렸을 때, 인간은 무참히 짓밟힌다는 것, 똥을 먹어야 하는 상황에까지 이르게 된다는 것 말이다.

피아니스트는 영화 속에서 유일하게 사유를 시도했던 인물이에요. 성에 모인 여러 부류의 인물 중에 오직 그녀만이 숨구멍을 찾아냈죠. ... 파시스트들은 소년과 소녀들을 사물로 취급합니다. 이를 단적으로 보여 주는 예가 아름다운 엉덩이를 선별하는 장면입니다. 인간을 상품으로 보는 것이죠. 이러한 시선은 파시스트만 지닌 게 아니에요. 돈이 지배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장 강력하게 드러나는 부분이죠. 자본주의는 모든 것을 사물화해요. 그런 면에서 파시즘과 자본주의는 서로 연결됩니다. 인간을 사물처럼 대하는 파시즘은, 생명을 돈으로 환산하는 자본주의와 등가를 이루죠. (165)

그게 파시즘입니다. 무조건 나에게 맞추라는 거죠. 파솔리니는 이 지점에 집중하고 있어요.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와 같은 힘의 논리는 금기의 명령으로 다가오기도 합니다. 한 사회를 지배하는 극한의 금기, 사실 이건 우리 스스로가 불러일으키는 어떤 괴물 같은 존재가 아닐까요. 그런 점에서 한계를 넘어서려는 이 영화가 주는 메시지는 분명합니다. 저항하지 않는 삶은, 인간 대접은커녕 똥만 먹어야 한다고, 장난감처럼 놀리다 버려질 수밖에 없다고 명백히 선언하고 있습니다.(165)

파시즘이 인간에게 미칠 수 있는 해악을 감독은 ’, 사람들이 가장 불쾌해하는 똥으로 표현한다. 그 불쾌함으로 파시즘의 위험성을 경고하려 한다. ‘파시즘을 방치하면 너희들 다 좆 된다.’ ‘파시즘을 따르면 너희들은 똥을 먹게 될 것이다’,(174)라고 말하는 것이다.

 

쎄게 이야기하는 사람을 두려워하면서도 좋아하는 나와 같은 이중적 기호가 일반적인 것인지 아닌지 잘 모르겠다. 섹스, 폭력, 정치, 종교에 대한 이야기는 하나같이 자극적이고, 언사는 쎄다. 받아들이기 어려운 구절이 종종 있다. 더 솔직히 말하면 꽤 많다.

차 한 잔 곁들이며 우아하게 읽고 싶은 인문학은 어느 새, 섹스와 폭력, 피범벅의 난장판과 근친상간의 위험한 현장으로 일순 변해 버린다. 스스로의 욕망에 충실한 섹스, 악한 것도 선택할 수 있는 인간의 자유, 파시즘에 대항할 수 있는 유일한 힘으로서의 사랑, 그리고 가장 안전한 대상으로서의 신을 거부하는 인간.

나는 인간 본연의 심성, 본래의 성정에 대한 믿음이 적다. 인간은 충분히 사악한 존재라고 믿기 때문에, ‘자신의 마음이 원하는대로, 끌리는대로 하라.’는 이야기에 쉽게 동의하지 않는다. 하지만, 금기에 도전하는 삶, 행복하게 살기보다 용감하게 사는 삶, 편안하게 살기보다 자유롭게 사는 삶에 대해 동경한다.

나는 어디까지 와 있나. 지금 나는 어디에 와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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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북 2016-04-12 22: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노출`을 은근 즐기는..아니 은근도 아니네요. 제 서재 곳곳에 글이 넘쳐나고 있으니 말이죠 ㅎㅎ 그렇지만 이런 `노출`은 상당히 유쾌하고 즐거운거 같아요. 함께 생각하고 느끼고 이야기할 수 있으니까요. 그러니 `육체적 노출`보다 `정신적 노출`이 제겐 더 쾌락(?)적 인거 같아요 ㅎ 그리고 소개해주신 영화나 책을 읽지 못했지만 더글라스 케네디의 소설 <템테이션>에 <살롬, 소돔의 120일>을 묘사해놓은 부분이 있었거든요. 그 부분을 읽으며 정말 불쾌했던 기억이 많았는데요 그래서인지 커피 한 잔 곁들이며 읽기엔 정말 힘드셨겠구나 싶은 생각이 듭니다.

또 `인간은 충분히 사악한 존재`라는 표현에 고개를 끄덕이게 됩니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재는 `도덕성`과 `이성` 또 `감성`이라는 의식으로 내재된, 억압된 존재들이기 때문인데..만약 그게 풀려버린다면 혹은 그런 통제가 없는 세상에서 살아가게 된다면 어떻게될지.. 정말 생각만해도 아찔해집니다. 더욱이 전에 읽었던 <세컨드 타임>이나 <오르부아르>라는 소설에서도 아니 그렇게 멀리까지 갈 필요도 없이 이전에 <눈 먼 자들의 도시>만 봐도 정말 끔찍한 세상이었으니까요.어휴~~ 생각만해도 ~~!!!

그나저나 내일이 벌써 선거일이예요. 지난번 글에 고민하고 계셨는데 결정은 잘 하셨는지 모르겠습니다. 내일 오전에 비가 온다고 하니 우산 꼭 챙기셔서 멋진 한 표 행사하시길 바래요!! 즐거운 저녁시간 보내세요 ㅎㅎ

단발머리 2016-04-19 10:21   좋아요 0 | URL
더글라스 케네디의 소설, <템테이션>은 제목만 아는 책인데, 은근 관심이 가네요. <살롬, 소돔의 120일> 묘사해 놓은 부분만도 불쾌하군요. 요 위의 책에는 사진이 정말 불쾌합니다.
한 번 이상 보기 어려운 영화라고 하더라구요. ㅎㅎㅎ

투표하러 가서는 기표소 안에서 좀 오래 있었지요. 좋아하는 사람 두 사람에게, 미안하다~ 했어요.
그리고 퐉! 기표했어요. 참, 예상을 많이 빗나간 선거 결과인데, 그래도 새누리 과반 저지에 일단 박수를 치고 싶어요. 이제 마음대로는 못 하겠지요.

해피북님, 오늘도 즐거운 하루 되시고, 좋은 시간 보내시기를요.
또 재미있는 책이야기로 만나요. ㅎ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