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통이 트인다 - 녹색 당신의 한 수
황윤 외 지음 / 포도밭출판사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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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녹색당에 관해서는 정리가 잘된 아무개님과 다락방님의 페이퍼 링크를 걸어둔다.

아무개님 페이퍼 : http://blog.aladin.co.kr/701246196/8351232

다락방님 페이퍼 : http://blog.aladin.co.kr/fallen77/8354270

 

내가 바라는 것, 내가 희망하던 것을 문자로, 활자로, 책으로 만난다는 건 정말 놀라운 경험이다. 내가 생각하는 제일 주요한 의제, 녹색당의 색깔을 선명한 녹색으로 만들어 주는 주요 공약은 탈핵기본소득이다.

녹색당 비례대표 2번 이계삼 후보는 5년째 밀양 대책위 사무국장으로 일하고 계신다. 국어교사셨고, 새로운 교육에 대한 희망으로 퇴직한 지 사흘 째 되는 날, 손자뻘 되는 용역들의 폭력에 깊이 절망한 이치우 어르신이 분신자결하신 사건을 계기로 밀양투쟁에 함께 하게 되셨으며 이번에 녹색당 비례대표가 되셨다.

두 분의 어르신이 목숨을 버렸고, 수백 세대 주민들이 10년 동안 싸웠습니다. 저와 대책위의 일꾼들이 몇 년간 사생활을 거의 반납해가면서 개미처럼 일하고 또 일했건만 저 끔찍한 765천볼트 송전탑은 들어서고 말았습니다. 왜 그렇게 되었던 것일까요. 지난 20여 년 동안 엄청난 규모의 핵발전소, 석탄화력발전소 건설이 이루어졌습니다. 전기가 남아 돌고 있고, 전력 소비의 가파른 증가세는 이미 꺾였으므로 새로운 핵발전소와 송전선로가 필요하지 않다는 사실이 밝혀졌지만, 왜 저들은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전국 곳곳에 발전소와 송전선로를 짓겠다며 새로운 싸움판을 만들어나가는 것일까요. 핵발전소 건설이 누구의 배를 불리기 위한 술책인지, 그것이 지금 무엇을 짓밟고 있는지, 태어나지 않은 미래를 어떻게 살해하고 있는지를 우리는 알게 되었지만, 그것이 밀양 주민들의 10년의 저항이 밝혀낸 중요한 진실임을 누구도 부인하지 않지만, 왜 전국 곳곳의 또 다른 밀양들은 머리띠를 매고, 어설픈 팔뚝질을 하며 투쟁의 소용돌이 속으로 휘말려 들어가고 있는 것일까요. (73)

 

 

 

탈핵에 대한 문제는 자세히 들여다보면 볼수록 암담해지는데, 제일 기본적인 것이라면, 우리가 교육받았고 기억하고 있는 것처럼 핵발전소가 안전하고 깨끗하며 효율이 높은 원자력발전소가 아니라, 작은 실수로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을, 아주 오랫동안 지속시킬 수 있는 매우 위험하고 비효율적인 핵폭탄 발전소라는 데 있다. 핵원료 보관 50년이 가능한 기술만을 가지고 있는 인간이, 10만년의 보관 기간이 필요한 핵원료를 만들어내고 있다. 100년도 못 사는 인간이, 그래 조금 더 쓴다, 120, 130년도 못 사는 인간이 10만년 동안 자연계와 분리되어야 하는 핵쓰레기를 만들어내고 있다.

 

 

<사진 설명 : 충남 당진에 설치된 765kV 송전탑 송전선 아래에서 전자파의 영향을 실험하기 위해 설치한 폐형광등에 불이 들어오고 있다.  그냥 꽂아놓기만 하고, 사람이 들고 있기만 한건데 불이 들어온다.

[출처] 밀양 송전탑|작성자 청다움 >

 

작은 단위의 마을 공동체를 완전히 파괴하는 송전탑이 마을을 가로, 세로로 난도질하며 줄줄이 세워지고, 밤마다 울어댄다는 이 전선을 타고 서울로, 도시로 농민들의 피와 땀으로 얼룩진 전기가 말도 안 되게 저렴한 가격으로 산업체에 공급된다. 발전소를 짓고, 송전선로를 연결하고, 발전소를 짓고, 송전선로를 연결하는 악순환이 계속된다. 핵마피아, 전기 마피아를 개인이, 작은 마을 공동체가 대항할 수 없다. 그들은 돈으로 마을 사람들의 마음을 나누고, 용역을 동원해 마을 사람들에게 모욕을 주고, 국가를 이용해 마을 주민들에게 폭력을 가한다. 녹색당은 이 모든 국가와 자본의 전횡 앞에서 농민들과 함께, 힘없는 이 나라의 시민들과 함께 해왔다. 이미 알려진 밀양의 이야기는, 우리가 듣고 싶지 않은 모두 이야기의 종합판이다. 돈이 모든 의제를 태풍처럼 빨아들인다. 한 개인이란, 마을이란, 공동체란 그 앞에서 크레인으로 밀어버려야 할 장애물,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이계삼 후보가 국회에 꼭 들어가게 되시기를 바란다. 농민을 위한 한 수, 밀양을 위한 한 수, 우리의 미래를 위한 한 수다.

 

두 번째는 기본 소득에 관한 것이다. 장기간의 경기침체와 요동치는 세계 경제, 더하여 국가의 총체적 무능 때문에 한국의 청년 실업률은 계속 높아지고 있다. 초고령화 사회로의 진입을 눈앞에 둔 지금, 노인 빈곤화 문제 역시 심각하다. AI의 등장으로 인한 일자리 감소 또한 눈앞에 예측되는 상황이다. 일자리, 좋은 일자리가 너무 부족하다.

극심한 부의 양극화와 사회 곳곳의 승자독식 구조로 인해 서로를 불신하는 한국 사회에 기본소득이라는 선물이 생긴다면 어떨까 상상해보았습니다. 돈이 많든 적든 그동안 쌓아온 모든 것이 한순간에 무너져내릴 것처럼 불안해하는 이들에게 기본소득이라는 안전망이 있다면 어떨까 상상해보았습니다. 내일이 오늘보다 나을 것이란 아무런 보장이 없어서 삶을 포기해버리거나 다른 이들의 삶을 테러해버리는 이들에게 기본소득이라는 희망이 있다면 어떨까 상상해보았습니다. (102)

기본소득은 삶의 전환을 위한 입구이자, 녹색당이 제안하는 탈핵, 탈토건, 농업, 먹거리, 에너지 전화, 동물권, 소수자 인권 등의 의제로 도약하기 위한 디딤돌이 될 것입니다. (104)

만약 대한민국이 OECD 평균 국민부담률(조세+사회보장기여금) 수준인 34.4% 수준까지 국민부담률을 끌어올린다면, 전 국민에게 1인당 30만원을 지급할 수 있는 재원이 마련됩니다. 증세분 145조 원에 예산 낭비 절감분까지 합치면 가능한 일입니다. (121)

 

아들러의 심리학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우리가 무언가를 공헌한다고 할 때, 그것이 특별한 것이어야만 한다는 뜻은 아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공헌한다는 것은 대개 어려운 것이 되고 만다. 비록 눈에 보이는 형태로 공헌하지 않더라도, 현재 도움이 되지 않더라도, 자기 자신은 누군가에게 힘이 된다고 느끼는 것 그 자체가 중요하다. 그러니 우리는 이렇게 생각해야 한다. ‘우리가 타인에게 무언가를 해주는 것만이 공헌이 아니다. 우리의 존재 자체가 타인에게 공헌하는 것이다.’ (166)

타인을 존재 자체로서 인정해주는 것, 존재하는 것만으로 타인에게 공헌하고 있다고 받아들이는 것은 개인과 개인의 문제다. 하지만, 그 개인이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갖고 살 수 있도록 최소한의 생활을 보장해주는 건 개인이 아니라 공동체, 국가에게 속한 일이다. 하고 있는 일의 성격이나 종류 혹은 그 양에 상관없이 인간이 인간으로서의 삶을 누릴 정도로 기본소득을 제공하는 일은 국가가 해야 하는, 국가라면 할 수 있는, 국가가 해 주어야 하는 일이다. 이를 가능하게 하는 건 정치, 더럽다고 욕하는 정치, 그 놈이 그놈이라며 고개 돌리게 하는 정치, 바로 정치의 영역이다.

아래의 글은 이계삼님의 글 중 일부다. 읽으면서, 중간 중간 울컥해 글씨가 흐릿해 보였다. 어쩔 수 없이 책을 덮었다. 한참 뒤에야 겨우 다시 읽어 내려갔다.

무더운 여름날 에어컨 바람을 쐬기 위해 시립 도서관에 가면 열람실 여기저기서 불쑥불쑥 스물 일고여덟 살 되는 졸업생들이 손을 흔들어주었습니다. 대부분 경쟁률 수십대 일이라는 공무원 시험, 이름도 긴 무슨 무슨 자격증 시험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대학에 다니는 의미를 찾지 못해 자퇴하고 길거리에서 딸기를 파는 졸업생, 사립대학 등록금을 낼 형편이 되지 않아 자퇴하고 케이블 TV 설치 기사를 하는 졸업생, 저는 늘 이런 식으로 거리에서 제가 가르친 친구들을 만나야 했습니다. 인생에서 가장 좋은 청춘의 시간을 이렇게 어이없는 방식으로 착취하는, 한 존재의 지적 도덕적 성장은 고사하고, 최소한의 밥벌이도, 인생길을 헤쳐갈 삶의 기술도 전수해 주지 않고, 16년간 학생들을 죽도록 경쟁만 시켜놓고서는 결국 산업예비군, 취업준비생, 비정규 저임금 노동자로 만들어 세상으로 밀어넣는 이 교육 체제를 대체 무어라 불러야 하는가. (63)

이 시대, 이 나라, 대한민국에 태어나 좋은 옷을 입고, 좋은 음식을 먹으며, 죽음과 폭력에 대한 급박한 위협 없이 살 수 있다는 것에, 작지만 행복이라는 것을 누리며 살 수 있다는 것에, 나는 항상 감사하게 생각한다. 난 그렇다. 좁은 나라, 인구가 많은 나라, 가까운 사람들 사이의 경쟁. 앞집, 뒷집, 옆집, 윗집, 아랫집. 엄마친구딸, 엄마친구아들, 아빠친구아들, 아빠친구딸과 경쟁하며 살았다. 이제는 경쟁에서 물러나 있다. 제일 뜨거운 경쟁의 시기를 지나왔다. 하지만, 아이들. 이 나라의 아이들을 생각할 때마다 암담하다. 하나의 목표, 하나의 표적을 향해 적성과 성격, 능력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미친 듯이 달려가고, 그 기준에 도달하지 못한 아이들에게 평생을 불평등과 불합리 속에 살아가라고, 그게 당연한 거라고, 네가 노력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이 미친 사회에서 살아가야 하는, 살아남아야 하는 아이들 때문에 맘이 아프다.

우리집은 오래도록 야당을 지지해왔다. 재산이 많지 않아서이기도 하고, 지역적 연고 때문이기도 하다. 대를 이어 충성해왔다. 이번에 처음으로, 나는 정의당을 지지해야겠다고, 비례 대표 투표에서는 4, 정의당을 찍어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도 스스로를 장담할 수는 없다. 하얀 천을 밀치고 기표소 안으로 들어설라치면, 문재인 대표 생각에, 정치가 하기 싫다고 그렇게 도망갔던 분, 사람들의 기대에, 시대적인 부름에 어쩔 수 없이 응하셨던 분, 사심없고 한없이 착한 그 분이 생각날 것 같아, 사실 자신이 없다.

그런데, 이번에는 녹색당. 녹색당 같은 정당이 우리나라에 꼭 필요하다는 생각에 자꾸 마음이 흔들린다. 엄마, 아빠, 이모, 사촌 동생 1, 사촌동생 2, 동생 1, 시어머니, 시아버지, 도련님, 동서까지 내가 관리하는 표는 10개이지만, 내가 기표할 수 있는 투표용지는 단 하나.

고민의 시간이다. 고민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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