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기계라는 사실을 받아들인다면, 세상을 보는 관점도 크게 달라질 것이다. 브룩스는 자신의 저서에 다음과 같이 적어놓았다. “자신이 특별한 존재라는 생각을 떨쳐버리기란 결코 쉽지 않다. 그래서 로봇이 감정을 가지고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기 어렵다. 로봇이 인간과 같아지면 사람은 더 이상 특별한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류는 앞으로 50년 안에 이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388쪽)
제1국면 : 이세돌 vs 알파고
알파고는 구글 딥마인드가 개발한 컴퓨터 바둑 프로그램이다. 2015년 10월, 유럽 바둑 챔피언 판 후이 2단과의 경기에서 5대 0으로 이겼을 때만 해도 알파고가 이정도의 실력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고는 예상되지 않았다. 이세돌도 한 번 질까말까라며 큰 자신감을 내비쳤다. 하지만 ‘인간대표’ 이세돌은 ‘인공지능’ 알파고와의 대결에서 3월 9일 제1국에서는 어이없게, 3월 10일 제2국에서는 안타깝게 지고 말았다. 제2국에 패한 직후 인터뷰에서는 한 번만이라도 이기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이세돌과 알파고의 제2국을 살펴보자면 이런 모습이다.
바둑을 전혀 모르는 내가 알 수 있는 것이라고는 흰 돌은 이세돌 돌이고, 검은돌은 알파고 돌이라는 것뿐이다. 어느 수가 ‘인간이 둘 수 없는 기막힌 수’인지 당최 이해할 수가 없다. 정말 놀라운 지점은 기본적으로 한 가지 일밖에 할 수 없다는 알파고가 스스로 공략법을 찾아내는 ‘딥러닝 기법’을 적용해 실력을 향상시켰다는 것이다. 다른 부문에서도 인간에 대한 인공지능 AI의 도전은 계속될 것이며, 지금의 경우처럼 인공지능 AI가 승리하고 인간이 패배할 경우가 많아지리라 예상된다. 이세돌의 모든 경기 기록을 가지고 있는 알파고와의 대결은 <이세돌 vs 이세돌>의 격돌일 수 있겠지만, 알파고가 다른 바둑 기사들의 기록까지 가지고 있는 것을 감안한다면 정확히는 <이세돌 vs 지금까지의 모든 바둑기사들>과의 대결이다. 불리한 위치에서 시작한 이세돌, 도전을 받아들이던 자리에서 어느새 도전자의 자리로 옮겨앉고 말았다.
제2국면 : 이세돌 바둑학원
1997년 세계 체스 챔피언 가리 카스파로프와 슈퍼 컴퓨터 ‘딥블루(Deep Blue)’와의 대결에서 딥블루가 승리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바둑 경기에서는 인간이 단연 우세했고, 경우의 수가 우주의 원자수보다 많다는 바둑에 대해서만은 오랫동안 인간우위를 예상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알파고를 프로그램했던 사람들조차 이세돌과의 격돌에서 50 : 50의 승부를 예측했다. 하지만, 현재 제2국까지는 알파고의 연승. 이세돌 9단은 남은 경기를 모두 이겨야하는 부담까지 안게 됐다.
체스경기에서 슈퍼컴퓨터가 인간과의 경기에서 이긴 후에 체스에 대한 열기와 관심이 확연하게 줄어들었다는 기사를 보았다. 이것은 이세돌과만 연관된 문제가 아니다. 이것은 아롱이가 다니는 ‘이세돌 바둑 학원’의 미래와도 직접적으로 연결된 문제라 할 수 있다. 물론 아롱이가 다니는 ‘이세돌 바둑 학원’은 ‘이세돌’과는 특별한 연관성을 찾아볼 수 없지만, 이름만은 확실히 ‘이세돌 바둑 학원’이다. 이세돌의 분패로 바둑 학원의 미래가 암울해진 이 찰나, jtbc에서는 이세돌과 알파고의 5번기 4국 촬영을 위해 바둑학원을 방문한다고 하니, 아롱이와 나는 이번주 초등부 예배를 마치자마자 바둑학원으로 달려갈 것임을 굳게 다짐했다.
제3국면 : 남동생 vs 누나
이 국면은 너무 안타깝고 슬픈 사연이라 미리 손수건을 준비해야만 하겠다. 아롱이는 지난 11월부터 바둑학원을 다니기 시작했다. 3년 이상 다녔던 수영을 그만두고 나서, 넘쳐나는 시간과 활화산같은 에너지를 주체하지 못하던 차에, 이전부터 다니고 싶다던 바둑학원에 상담을 받으러 간 날, 바로 그날 등록을 했다. 다른 사교육을 해보지 않아 결제하러 카드를 건네는 손이 심하게 떨렸다. 근처에 어린이만을 위해 바둑학원이 없기도 하고, 원장님이 현재 활동중인 프로 7단의 실력자이기도 해서 바둑학원은 6세에서 9세의 남자 아이들로 앉을 자리조차 부족해 보였다. 11살의 아롱이는 조금이 아니라 많이 늦은 편이었는데, 방과후 26급에서 시작해 현재는 19급으로 실력이 향상됐고, 바둑학원에서의 1분도 소중히 여기며 열심히, 정말 열심히 바둑학원을 다니고 있다. 바둑이야말로 아롱이의 ‘특기 없음‘을 상쇄해준 ’특기 중의 특기‘다.
키도, 몸무게도, 공부도, 수영도, 피아노도, 바이올린도, 플릇도, 중국어도, 맙소사, 이탈리아어, 심지어 식사량까지. 넘사벽 누나를 넘어서는 유일한 종목이 ‘바둑’이다. 그저께 이세돌 9단의 2국패 소식을 접하고 상심한 우리 세 사람을 보면서 딸롱이는 '알파고스럽게' (‘알파고스럽게’란 내가 만든 신조어인데, 냉철한 판단에 감정을 배제한 어조로 말하는 것을 뜻한다) 이렇게 툭 던지고는 자기 방으로 들어간다.
“그러게, 왜 바둑학원에 보내요? 바둑 배우면 뭐해? 알파고가 사람보다 잘 두네, 뭐.”
아롱이는 고개를 떨구고 남편과 나의 낯빛은 흙빛으로 변했다.
제1국면, 인공지능 AI에 추월당한 인류의 미래가 어떻게 전개될지 알 수 없어 심히 안타깝고, 제2국면, 우리가 사랑하는 ‘이세돌 바둑학원’ 또한 잘 되기를 바라지만, 제3국면의 실제는 정말 암담하다. 이게 우리가 이세돌을 응원하는 진짜 이유다.
이세돌 힘내라! 인간 대표로서의 부담이 클 것이다. 자신의 실력을 믿고 당황하지 말고 알파고에 당당히 맞서라. 이세돌 학원의 미래가 네게 달렸다. 우리 문원장님과 이세돌 바둑학원 어린이들이 진심으로 너를 응원한다.
이세돌, 힘내라! 아롱이의 상심을 오늘에는 멈춰주어라!
이세돌 파이팅! 이세돌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