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이 오기 전부터, 나는 초조했다.
1월 한 달은 아이들 방학이고, 한 달의 절반이 방학인 2월 역시 아이들과 북적북적 정신없다. 내게 새해의 시작은 3월이다. 4월, 5월까지는 새 선생님에게 적응하느라 새친구, 새친구 엄마들 사귀느라 아이들도 나도 바쁘다. 여름 오는가 싶으면 방학이고, 휴가 다녀오면 방학 끝난다. 개학하면 곧 추석이다. 추석이 지나서야, 찬바람이 불기 시작해서야, 그 때서야 정신이 든다. 아, 한 해가 이렇게 가는구나. 그래서, 11월부터는 초조해진다. 특별히 하는 일 없이, 이룬 것 없이, 벌어 둔 돈 없이, 이렇게 한 해를 다 보냈구나, 하는 생각이 자주 든다.
이 한 해가 가기 전에, 이제 가면 다시 못 올 2015년을 기념할만한 책을 읽어야겠다, 연말이 되어서야 연초에 어울릴법한 결심을 하고는 이리저리 두리번거리며 책을 골라본다.
이 세상 모든 책은 다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 이 세상에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있다. 하지만, 이 세상 숱하게 많은 책들 중에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는 책이 있고, 오랫동안 기억되는 책이 있다. 나는 그런 책들, 위대한 정신의 증거이자 선조들의 지혜의 목소리들 중에 하나를 고르려 한다. 길게 말하면 입만 아프다.
나는, 자랑하기 좋은 책을 찾아 읽으려고 한다.
후보 1.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이 책은 작년부터 계속 리스트에 들어있던 책이다. 1권에 인물 소개만 두 장인 것을 보고, 바로 책장으로 돌려보냈다.
후보 2. 『안나 까레니나』
이 책도 계속 리스트에 들어있던 책이다. 문학동네 출판사 판으로 2권까지 읽었는데, 다시 시작하기가 쉽지 않다. 비닐을 뜯는 순간 읽기 시작할 거라 작정하고 있는데, 아직도 집에 도착한 그대로 비닐옷이다.
후보 3. 『셜록 홈즈 전집』
아이들에게 읽히려고 샀는데, 생각해보니 나도 1권 『주황색연구』만 읽은것 같아, 이번 기회에 의도치않게 전집에 도전해볼까, 가만히 쳐다본다.
이렇게 쟁쟁한 후보들을 골라놓고 보니, 대망의 ‘2015 마지막 책’을 선정하는 일이, 올해 MBC 연기대상 수상자를 고르는 일처럼 어려워(지성 vs 황정음) 그냥저냥 미루고 있던 찰나, 벌써 12월하고도 13일이 지나버렸다. 더는 물러설 수 없는데, 더 나가기도 막막하다.
하여, 지금 읽고 있는 책은 리스트에 없던 『마션』이고, 나는 즐겁다.
나의 독서 여정에는 계획이 없다. 목표도 없고, 방향도 없다. 무언가를 어떻게 이루겠다는 어떤 생각이, 내게는 전혀 없다.
신간이 나오면 읽고(『읽다』), 빨간 책방에서 추천하면 읽는다(『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알라딘서재에서 근사한 리뷰를 보게 되면 읽고(『읽는 인간』), 도서관 신착도서란에 꽂혀 있으면 읽는다(『극지의 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관계로 근사하면서도 내용이 훌륭한, 얇으면서도 폼이 나는 책으로 골라본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어떤 다른 생각이 들 수도 있겠지만, 나한테는 이 책이 그런 책이다.
2015년 독서 목록의 마지막을 장식할 책이다. 목표는 올해 안에 이 책을 마치는 것이고, 만만하게 여기는 건 절대 아니지만, 그래도 성공하지 않겠나,하는 희망적인 생각에 일단 마크 와트니에게 돌아간다.
장 자크 루소, 이 밤이 지나고 내일 다시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