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3월 12일, 대통령 탄핵안 소추라는 헌법사상 유래 없는 ‘초국가적 위기 상황’에 온 국민이 뉴스를 통해 새삼스레 ‘사회 교과서’의 ‘대통령 탄핵’ 파트를 다시 공부하고 있던 때, MBC 손석희의 100분 토론에 유시민이 나왔다. (이 때는 'MBC'와 ‘손석희’가 모두 언론 공정 보도의 대명사였는데, 이제 ‘손석희’와 ‘공정성’은 떠나고, ‘MBC’만 남아있다. 나는 이 단락을 5월 7일에 썼다. 손석희는 진작에 ‘프리’ 선언을 한 상태이기는 했지만, MBC '손석희의 시선집중‘은 계속 맡아오던 터였다. 그런데, 5월 10일이던가, ‘손석희의 시선집중 하차와 JTBC행’ 뉴스를 들게 되었다. MBC를 완전히 떠났다. 이건 또 뭐야, 내가 쓰면 쓰는 대로 되는 거야?)

아수라장이 된 국회, 서로 밀고 당기는 국회의원들, 그리고 탄핵안이 가결되던 순간 단상에 올라 울부짖던 한 사람. 그 모습과 똑같은 모습은 아니었는데, 확실히 제 정신은 아닌 것 같아 보이는 유시민이 그 날 TV 화면에 등장했다. 그리고는, 말했다.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요, 아무리 대통령이 미워도요, 이렇게 하는 건 아니지요.”

오랫동안 내 머리 속에 남아있던 유시민의 모습은 그 때의 모습이다. 넥타이를 풀어헤쳤던가, 아니면 넥타이를 아예 매지 않았던가. 조금 정신없어 보이는 모습, 평소의 그와 다른 그 때의 그 모습이다.

나는 맞지 않으려고 맹렬하게 글을 썼다. 진술서를 쓰는 동안만큼은 때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맞는 게 정말 괴로웠다. 수사관들만 팬 것이 아니다. 무술 유단자라는 헌병들도 ‘군기’를 잡는다면서 근무자가 바뀔 때마다 팼다. 수사관은 몽둥이로 팼지만 헌병은 손과 발로 팼다. 체육관 천장에 매달린 샌드백이나 격파 시범용 송판이 된 기분이었다. 잠시라도 매를 피하려면 진술서를 써야 했다. 하루에 백 장을 쓰기도 했다. (151쪽)

나는 1990년대 중반에 대학에 들어가서, 00학번이 학교에 들어오는 것을 보고, 학교를 졸업했다. 나는 유시민이 말하는 시대를 겪지 않았고, 그런 시대를 겪었던 선배들도 보지 못 했다. 그래도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신입생일 때, 선배들, 그러니까, 그 때 3학년이었던 선배들은 그런 선배들의 선배들의 선배들의 이야기를 조금은 기억해보고 노력했던 것 같다.

첫 번째 과MT, 화기애애한 분위기, 부회장 언니는 정성들여 쓴 게 분명해 보이는 대자보를 한 쪽 벽면에 붙였다. 처음 보는 노래였다. 노래는 이렇게 시작됐다.

바위처럼 살아가보자.

모진 비바람이 몰아친대도

어떤 유혹의 손길에도 흔들림 없는

바위처럼 살아가보자...

바위? 웬 바위? 하면서 노래를 따라불렀다. 내용은 동요같은데, 리듬이, 그러니까 곡의 분위기는 동요도 아니고, 가요도 아닌, 그 때로서는 생소한, 설명하기 어려운 어떤 특별할 ‘느낌’이었다. 그게 ‘민중가요’였다는 건 한참 후에야 알게됐다.

그러니, 맞지 않으려고 맹렬하게 글을 썼다는 그의 이야기가 너무 멀게 느껴지는 건 당연하다. 한편으로는, 내가 참 좋은 세상에 살고 있구나 하는 생각도 든다. (사실 이런 성의없는 문장으로 지나치기엔 우리의 현대사가 가슴 아프다. 지금, 참 좋은 세상에 살게 되기까지 많은 사람들이 ‘잔인한’ 세월들을 지나쳐왔다. 자신의 모든 것을 던져서. 아무런 대가도 없이. 좋은 시절 오는가 싶더니만, 작금은 ‘잃어버린 10년’ 운운하던 사람들과 그 패거리들이 ‘도덕성’ 내지는 ‘여자 인턴 다루는 법’을 ‘잃어버려’ ‘국제적으로’ 찾으러 다니는 세월이다.)

아무튼 맹렬하게 진술서를 쓰는 와중에 그는 자신의 ‘글쓰기 재능’을 발견한다. 맞으면서, 맹렬하게 맞으면서 발견한다.

열정과 재능의 불일치는 회피하기 어려운 삶의 부조리이다. 재능이 있는 일에 열정을 느끼면 제일 좋다. 그러나 열정을 쏟을 수 있는 일이기만 하다면, 재능이 조금 부족해도 되는 만큼 하면서 살면 된다. 경쟁은 전쟁이 아니다. 져도 죽지는 않는다. 이겨서 꼭 행복한 것도 아니다. 사람은 저마다 가진 것으로 인생을 산다. 가진 것이 많다고 꼭 행복한 건 아니다. 적게 가져도 행복할 수 있다. 끝없는 경쟁 속에 살아야 하지만, 즐기면서 경쟁에 임하면 이겨도 이기지 못해도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174쪽)  

국제 가수 싸이, 은반의 여왕 김연아, 백신 박사 안철수, 밀리언셀러 작가 혜민 스님, 국민 미남 장동건도 부럽지만 열등감은 없다. 그들은 각자 자기의 나무를 오르고 있을 뿐이다. 나도 적당한 나무를 골라 오르면 된다. 그게 세상에서 제일 큰 나무가 아니면 어떤가. 내게 맞고 오르는 것이 즐거운 나무라면 된 것 아니겠는가. (44쪽)

‘경쟁은 전쟁이 아니다. 져도 죽지는 않는다.‘는 그의 말은 새겨둘 만하다. 경쟁은 얼마나 깊숙이 우리 삶 가운데 들어와 있는지,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 아니다. 생후 6개월부터 시작되는 영어, 수학, 과학, 창의력, 논술 수업에, 미술, 피아노, 바이올린, 태권도, 발레, 골프, 바둑, 학교 수업은 더 말할 나위 없다. 6개월 선행은 기본이요, 1년, 2년 선행도 보통에 속할 정도다. 사회가 학교의 서열에 따라 학생들을 평가하니, 학생들과 학부모들이 우수한 학교에 들어가기 위해 ’출혈경쟁‘을 하는 것도 당연하다. 한 사람을 그 자체로 보아 주는 것, 한 인간을 그 모습 그대로 받아주는 것, 그 가능성을 믿어주는 것. 그것은 정말 불가능할까. 현재로선 불가능한 것 같다. 학업 성적 이외에는 어떤 것도 중요하지 않다. 대학 이름 말고는 물어보지 않는다. 아무도.

즐기면서 경쟁에 임하는 건, 김연아 정도가 되어야 가능하다. 한 때 그 분야에서 세계 최고라 했던 아사다도 그 정도까지는 아니다. 즐기면서 경쟁에 임하는 건 어렵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어떻게 해야 즐기면서 경쟁에 임할 수 있는가. 방법은 경쟁이 느슨해지는 것. 그렇다면 어떻게 경쟁의 강도를 느슨하게 할 수 있을까.

초등 1학년, 4학년 엄마로서 제안 하나 하자면, 초등학교에서 ‘시험’의 빈도를 줄여 보면 어쩔까 싶다. 내 생각으로 최소한 3학년까지는 학교시험이 필요하지 않다고 본다. 기본적인, 정말 기본적인 평가를 위해 시험이 꼭 필요하다면, 1년에 2번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는 학교가는 게 재미있고, 즐거우면 된다고 생각한다. 다양한 책읽기를 통해 ‘배움’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게 하는 것이 초등 저학년 ‘학습’의 처음과 끝이라고 생각한다. 적당한 강도의 학습이란 것은 그 이후에도 할 수 있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그 이후에도 공부하고, 시험 볼 시간은 창창하다.

‘특별수행원’은 특별히 하는 일 없이 따라다니면서, 국무총리가 그 나라 임금님이나 장관들을 만날 때 아무 말 없이 좌우에 앉아 모양을 내 주는 사람이다. ‘외교는 의전이 절반’이라고 하니, 특별히 하는 일은 없었지만 국가를 위해 ‘중요한 의전 임무’를 수행했다고 이해해주면 고맙겠다. (196쪽)

나는 이런 식의 유머를 좋아한다. 특별히 하는 일 없이 따라다니면서 좌우에 앉아 모양을 내 주는 사람이라니. 다른 사람들은 그렇지 않다. 자기가 조금 중요한 일을 했으면, 꽤 중요한 일을 했다고 하고, 자기가 비교적 중요한 일을 했다면, 아주 중요한 일을 했다고 한다. 자기가 진짜로 중요한 일을 했다면, ‘국가와 민족을 위해 이 한 몸 바쳤다’고 말한다.

그런데, 유시민은 말한다. “특별히 하는 일은 없었지만 국가를 위해 ‘중요한 의전 임무’를 수행했다고 이해해주면 고맙겠다.” 나는 이런 자세가 좋다. 힘이 들어간 사람은 넘어지기 쉽다. 힘이 들어간 사람이 넘어지면, 다치기도 많이 다친다.

지금의 5060은 그렇게 한 시대를 살았다. 그렇게 자기의 시대를 살면서 대한민국을 산업화와 민주화 둘 다 모두에서 성공한 나라로 만들었다. 그래서 박정희와 전두환의 독재와 인권유린, 부정부패에 대한 혹독한 비판은 전적으로 정당하지만 그것이 그 시대에 대한 전면적인 부정으로 여겨진다면 일정한 반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5060세대가 독재자의 딸을 압도적으로 지지한 것은 지난 시대와 자기 개인의 삶을 동일시하는 정서 때문이 아니었을까 짐작해 본다. (231쪽)

지난 대선 이후에, 대선 패배에 대한 분석 중, 나는 유시민의 이 분석이 가장 설득력있다고 본다. 투표율이 높다고 헤헤거렸는데, 개표 해 보니, 결과는 예상 외였다. 많은 수의 젊은이들이 투표했지만, 더 많은, 훨씬 더 많은 수의 5060이 투표에 나섰고, 박정희의 시대를 자신의 삶과 동일시하는 5060은 투표장에서, 기표소 속에서 박근혜를 선택했다. 이제 더 절망할 일은, 더 창피할 일은, 이제는 없을거라 생각했는데... 사건 사고 참 다양하다.

이제는 하고 싶은 일을 하겠다는 유시민을, 말릴 수는 없을 것 같다. 물론, 나는 유시민이 좋고, 수없이 회자되는 ‘강력한 싸가지 없음’과 웬만하면 포기하기 싫다는 그의 ‘아메리카노’도 사랑하지만, 하지만, 그를 말릴 수는 없다. 책 제목을 ‘어떻게 죽을 것인가’에서 ‘어떻게 살 것인가’로 바꿨다는 이야기가 완전히 수긍될 정도로 ‘어떻게 죽을 것인가’에 대한 무거운 고민이 역력히 드러난 그의 글을 읽으며,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삶을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사랑하며, 연대하며 살고 싶다는 유시민을 말릴 수는 없다. 그는 이미 오랜 세월을 ‘해야만 하는 일’을 하고 살아왔기 때문이다. 다만, 나는 아쉬울 뿐이다. 다만이 아니다. 많이 아쉬울 뿐이다.

그나저나, 오늘은 5월 23일이다.

그 날처럼, 오늘도 그렇게나 푸르른 날이다. 그 날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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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3-06-21 08: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시 읽어도 감동과 뭉클~물결이 출렁입니다~

단발머리 2013-06-21 08:48   좋아요 0 | URL
순오기님, 생각해보면 평생에 한 번 있을까말까한 일들이 너무나 많이 있었던거 있죠.

노무현 대통령님 당선되신 일이나, 탄핵때문에 대통령 직무가 중단된 일이나, 다시 대통령 업무로 복귀하신 일이나, 5월 23일의 일이나, 모두 다요.

너무나 감격스럽고, 자랑스럽고, 부끄럽고, 억울한 일들이 너무 많았어요. 그래도 사랑하면서 연대하면서
한 걸음씩 앞으로 전진해야겠죠.

가슴 한 구석 너무 시리고 아프지만, 희망을 생각해봅니다. 사람 사는 세상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