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24일 크리스마스 이브. 방송이 나왔다. 크리스마스를 맞이하여 부녀회에서 아이들에게 작은 선물을 준비했다고, OOO 문고 여는 시간에 와서 선물을 받아가라는 거였다. 나는 아이들과 옷을 챙겨입고 집을 나섰다.

선물은 우리 딸롱이, 아롱이가 좋아하는 ‘닭다리 스낵’과 ‘귤’이었다. 선물을 받는 것은 언제나 즐거운 일이다. 선물을 손에 들고 OOO 문고 회원가입을 했다. 한 가구당 3권씩 빌릴 수 있다고 했다.

딸롱이는 ‘빙하에서 살아남기’를, 아롱이는 ‘큰 동물 도감’을, 그리고 나는 ‘크리스마스 캐롤’을 빌렸다.

 

 

 

 

 

 

문고 한 쪽에 나란히 꽂혀있는 ‘펭귄 클래식’이 나에게 주는 선물이었다. (이 귀한 선물들을 서둘러 열어보아야 할텐데, 쩝.) 당연히, ‘크리스마스’를 맞이하여, <크리스마스 캐롤>을 읽으려 했으나, 제목이 눈에 띈 짧은 글을 읽게 되었다.

<늙어가는 우리에게 크리스마스란 무엇일까?>

우리의 완전한 행복을 위해 누군가를 (그 시절에는 아주 사랑스럽고 아름다우며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하다고 믿었다.) 필요로 했으며 우리 또한 그 사람이 앉은 크리스마스 난롯가에 꼭 필요한 존재였던 (혹은 우리만 그렇게 생각했더라도 그것만으로도 좋았다.) 시절, 우리의 삶이 온통 누군가의 이름으로 화환과 꽃 장식처럼 수놓였던 시절 말이다. (225쪽)

그 시절, 누군가를 간절히 필요로 했던 시절, 그리고 나 또한 그 누구가의 소중한 누군가이기를 갈망했던 시절, 그 시절이 생각난다. 그 때, 누군가의 마음을 간절히 기다리던 나는 무척이나 외로웠고, 또 외로웠으며, 그 극한 외로움에 치를 떨었다. 그런데, 지금으로서는 그 때도 나름, 그런대로, 그럭저럭 ‘행복’했었다는 생각이 든다. 이 유한한 육신 속에, 이 형편없는 기억 속에 사는 한, 과거는 무조건 아름다운가. 과거의 기억은 무조건 추억이 되는가.

뭐라고! 그 후로는 크리스마스가 오지 않았다고? 젊은 시절 선택한 소중한 인연과 불가능하게만 보였던 결혼에 성공하고 달콤한 행복을 맛보던 중, 견원지간 같았던 두 집안으로부터 드디어 인정받은 후로는 그와 같은 진정한 크리스마스는 온 적이 없다고? (226쪽)

나는, 이 대목에서 빵! 터져 혼자서 큭큭 웃고 말았는데, ‘찰스 디킨즈도 그랬는가‘ 하는 생각에, 그렇지 않았다면 그는 이런 글을 쓸 수 없었을 거란 생각이 들어서이다. 그도 그렇게 생각했던가. 불가능해 보였던 사랑이 이루어진 뒤, 마음 속에 품었던 그 사람, 이 세상에서 오직 한 사람, 바로 그 사람의 마음을 얻은 뒤, 완벽하게 그가 나의 사람이 된 뒤의 크리스마스는, 이제 예전의 크리스마스가 아니란 말인가. 이제는 더 이상 아무것도 기다릴 것이 없기에, 아무것도 간절히 소망하지 않기에, 이제 더 이상 완벽한 크리스마스란 없단 말인가.

아니, 잃어버린 친구, 잃어버린 아이, 잃어버린 부모, 잃어버린 형제, 자매, 잃어버린 남편이나 아내, 우리는 당신들을 잊지 않을 것이다! 당신들은 우리의 크리스마스 추억 속에, 그리고 우리의 크리스마스 난롯가에서 소중한 자리를 차지할 것이다. 영원한 소망의 계절, 영원한 자비의 탄생일에 우리는 그들 모두를 환영할 것이다! (231쪽)

크리스마스에는 누구라도 거절당하지 않고, 누구라도 초대된다는 작가의 말은 이미 자신을 떠나간, 죽음으로 이별한 사랑하는 이들에 대한 그리움을 보여준다. 나에게도 잊을 수 없는 사람이 있다.

나밖에 모르던 어린 시절,

공부가 제일 중요하다며 친구들을 살뜰히 챙기지 못했던 나보다 훨씬 더 나았던 내 친구,

내가 잊고 있던 고등학교 1학년의 나를 기억해주던 내 친구,

10년 넘어 만났을 때, 내 손을 잡고 반갑게 나를 맞아주었던 내 친구,

내 친구,

이제는 하늘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한 내 친구,

내 친구 김진희.

내 친구 김진희에게도 크리스마스 인사를 전한다.

진희야, 메리 크리스마스.

그 곳에서도 여기에서처럼 환히 웃으렴.

너무 빨리 주어진 안락함이라 불편해 하지 말고, 마음 편히 누리렴.

편히 쉬렴, 내 친구야.


댓글(6)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다락방 2012-12-28 09: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니까 저 이야기도 저 책 안에 들어있다는거죠, 단발머리님? 장바구니에 넣어야겠어요.

단발머리 2012-12-28 12:15   좋아요 0 | URL
넹, 다락방님. <크리스마스 캐럴> 안에 <늙어가는 우리에게 크리스마스란 무엇일까?>라는 수필(?)이 들어있는 거지요. 아주 짧아서 단숨에 휘리릭 읽을 수 있어요. ^^

근데, 다락방님, 저 그림은 계속 저렇게 나오는 거겠지요. <크리스마스 캐럴>이 나와야 되는건데, 내용은 크리스마스인데, 사진이 <빙하에서 살아남기>라, 나름 어울리나요?

마녀고양이 2012-12-29 12: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후, 단발머리님.
마지막 쓰신 글귀 때문에 제 곁을 떠나간 이들이 갑자기 생각나기 시작했습니다.
곁에 있을 때 더 귀히 보듬어야 했는데, 늘 가지기 전에, 떠나간 후에, 그 소중함을 알게 되네요.

연말, 제 곁에 있는 분들을 사랑해야지 다시 다짐해봅니다.
즐거운 날 되셔요.

단발머리 2012-12-29 12:53   좋아요 0 | URL
네, 올해 제 친구가 하늘의 식구가 되었습니다. 그 애의 이름을 꼭 적어두고 싶었어요. 크리스마스에 그 애를 기억하고 싶어서요.

지금 이 순간, 내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 사랑을 줘야지, 저도 맘 먹어요. 지금 이 순간, 지금 이 순간.
지금, 지금 이 순간...

2012-12-31 08: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1-01 02:19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