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대구나 서울에서 문경까지 가는 데 2~3시간이면 충분하고 접근성도 좋지만, 과거의 문경은 심산유곡의 산간지역으로 농업이 빈약하여 낙후된 지역이었다. 옛 묵객들이 문경의 산천을 두고 심향心鄕이라 부른 것은 마음의 고향이라는 뜻 외에도 심향深鄕이라는 중의적인 의미를 담고 있었을 것이다.

1970~1980년대 대한민국이 고도 성장기에 접어들면서 현재의 문경읍과 가은읍 지역에는 일자리를 찾아온 사람들로 넘쳐났다. 하지만 1990년대 이후 석탄 자원의 가치가 하락하고 도시를 향해 떠나는 사람이 늘어나면서 문경은 급격한 쇠퇴기를 맞이하게 된다.

불정역 테마 펜션열차 입구에는 지붕이 뾰족하고 벽체에 자갈이 촘촘히 박힌, 마치 게임기에 등장할 것 같은 특이한 건축물이 서 있는데, 바로 1955년에 지어진 등록문화재 제326호 문경선 불정역이다.

등록문화재는 근대 문화유산 가운데 보존 및 활용을 위한 가치가 크다고 판단되는 문화유산을 문화재로 지정하여 관리한다.

과거 문경지역의 주요 산업이던 광업과 흥망성쇠를 함께 해온 역사驛舍라는 점, 아름다운 문경 지역의 자연환경과 어우러진 멋진 풍경을 품고 있다는 점 때문에 2007년 4월 30일 326번째 국가 등록문화재로 인정받게 되었다

최근 우리나라에 열차를 개조하여 펜션으로 꾸미는 사례가 지역별로 점차 늘고 있다. 강원도 정선의 구절리역, 전남 곡성군의 가정역에 이어 오랜 기간의 준비 끝에 2008년 12월 2일 세 번째로 개장한 불정 테마 펜션열차는 과거 놀이방 객차 및 스넥카 등으로 쓰이던 실제 객차를 개조하여 만들었으며, 8개의 4인실과 2개의 단체실로 구성되어 있다.

진남역은 문경선과 가은선의 분기점에서 신호장으로 탄생한 목조 역사로, 문경선 열차가 더는 운행하지 않게 된 지금도 레일바이크의 출발점이 되어 본연의 역할에 충실한 간이역이다. 처음부터 여객 업무를 목적으로 한 곳이 아니다 보니 맞이방대합실 규모가 2평 남짓할 정도로 좁게 만들어져 있는데, 그것이 오히려 이곳을 더 아담한 간이역으로 만들고 있다.

1956년 영업을 시작한 가은역의 원래 이름은 은성역이었다. 주변에 규모가 크고 역사가 있는 은성광업소가 있었기 때문이며, 1959년에 지명을 따라 가은역으로 불리게 되었다.

경북선 열차를 타고 김천을 지나 상주역까지 이르는 길은 대체로 평평한 평야지대이면서도 구불구불한 곡선 철길이 유난히 많다. 눈을 감고 철길이 만들어내는 미세한 흐름을 마음으로 읽어보자. S자도 있고, 5자도 있고 3자도 만들어질 것이다.

축제다운 축제 군항제가 열리는 진해역,
벚꽃과 함께할 수 있는 경화역,
1년에 단 열흘만 벚꽃을 만날 수 있다는 통해역…
꽃 피는 4월, 진해에는 볼 것도 많다.

1년에 한국에서 열리는 축제가 몇 개나 될까? 많이 알고 있다고 하는 사람이라도 10개 이상의 축제명을 아는 경우가 드물 것이다. 2009년 문화관광부에서 집계한 한국의 축제는 모두 942개라고 하니, 개수로만 보자면 대한민국은 그야말로 축제의 도시다. 인천 자장면축제10월, 대구 폭염축제8월, 광주 김치축제10월, 대전역 0시축제8월, 울산 고래축제5월, 양평 메뚜기축제10월, 안흥 찐빵축제10월 등 이름만 들어도 재미있는 축제가 많다. 그러나 종류가 많아도 정작 축제를 즐기기 위해 찾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는 건 아쉬운 일이다.

1926년 11월 11일 준공된 진해역은 건축 연도로 따지자면 우리나라에서 다섯손가락 안에 들 만큼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곳이다. 건축 당시의 일반적인 지방 철도역사 모습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지붕에 난 5각형의 창이나 뾰족한 굴뚝 등이 이색적인 모양으로 남아 있어 2005년 등록문화재 제192호로 지정되었다. 2002년에 한 차례 보수를 거쳐 지금도 건강한 모습으로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역사로, 역 구내에 벚꽃이 피는 4월에는 역사의 붉은 지붕과 벚꽃이 잘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 같은 풍경이 만들어지기도 한다.

원래는 경화역에도 진해역과 같은 날 태어난 정말 멋진 모습의 역사가 서 있었는데, 여객 수요 감소와 열차 무정차 통과, 관리 문제 등을 이유로 2000년에 철거되고 말았다.

진해역과 경화역 외에도 진해에는 바다가 보이는 멋진 철길이 있다. 여객열차는 다니지 않고, 화물열차도 거의 운행하지 않는 행암선이라는 철길인데, 진해시내를 가로질러 바다를 따라 한참을 뻗어 있어 주민들의 산책로로 주로 이용되고 있다.

1961년 ‘통제부역’이라는 이름으로 영업을 시작하여 1986년 지금의 이름인 통해역이 되었다. 2006년까지는 이곳까지 통근열차가 들어오기도 했지만, 이제는 진해역이 여객열차의 종점이 됨으로써 여전히 미지의 간이역으로 남아 있는 곳이다.

통해역은 정말 아름답다. 개나리와 벚꽃이 만든 터널 아래로 기차라도 들어올라치면 행선지가 지옥이라도 떠나고 싶을 정도로 이상적인 간이역의 모습을 갖추고 있다. 봄뿐만 아니라 단풍이 물든 가을의 통해역도 무척 아름다운데, 일반인이 접근할 수 없기에 더더욱 보고 싶은 풍경이기도 하다. 지금은 비록 접근이 허가되지 않는 곳이지만, 간이역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폭발적으로 많아진다면 미지의 통해역에 걸려 있던 빗장도 서서히 풀리지 않을까?

통해역은 정말 아름답다. 개나리와 벚꽃이 만든 터널 아래로 기차라도 들어올라치면 행선지가 지옥이라도 떠나고 싶을 정도로 이상적인 간이역의 모습을 갖추고 있다. 봄뿐만 아니라 단풍이 물든 가을의 통해역도 무척 아름다운데, 일반인이 접근할 수 없기에 더더욱 보고 싶은 풍경이기도 하다. 지금은 비록 접근이 허가되지 않는 곳이지만, 간이역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폭발적으로 많아진다면 미지의 통해역에 걸려 있던 빗장도 서서히 풀리지 않을까?

장항선 새마을호 열차가 광천역에 진입하고 있다.
광천은 제법 큰 마을로, 장항선을 지나는 모든 여객열차가 정차하는 곳이다.

기차가 서지 않는 간이역에 키 작은 소나무 하나
기차가 지날 때마다 가만히 눈을 감는다.
기적소리 없는 아침이면 마주하고 노랠 부르네.
- 이규석의 ‘기차와 소나무’ 중에서

우리에게 ‘간이역’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역들 중 기차가 서는 간이역과 그렇지 않은 간이역, 어느 것이 더 많을까? 답은 ‘기차가 서지 않는 간이역’이다.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기차가 다니기 시작한 1899년 이후 철도노선이 전 국토를 가로지르면서 크고 작은 기차역이 생겨났다. 가장 많을 때는 기차가 한 번이라도 서는 간이역만 500개가 넘을 만큼 많았지만, 지금은 200곳 정도의 간이역에만 기차가 선다. 결국 ‘기차가 서지 않는 간이역’이 훨씬 많다는 것, 인정하기 싫지만 사실이다.

우선 없애지 않아도 기차의 통행을 불편하게 하지 않는다. 또한 얇은 쇠기둥 네 개에 나무벤치와 넝쿨로 이루어진 역사는 역사라 부르기도 민망할 정도로 단순하다. 거기다가 바로 앞의 마을 주민들이 일하다 쉬어가는 쉼터 역할까지 겸하기 때문에 멈춰 서는 열차가 없더라도 굳이 없애기보다는 남겨두는 것이 나았기 때문일 것이다.

또 다른 매력은 이곳의 역명판 디자인이다. 검은 바탕에 흰색 글씨, 정체모를 폰트로 쓰인 역명판이 몇 세대 이전 버전임을 느낄 수 있어 근대 철도사에 관심 있는 사람들에게 귀한 연구 대상이 되기도 한다. 원죽역이 통과하는 장항선 신성~청소 구간은 이설 순위상 맨 꼴찌에 해당하기 때문에 앞으로도 몇 년간 더 볼 수 있는 간이역 풍경이다.

맛있는 김장김치의 비결은 좋은 배추와 소금 그리고 어머니의 손맛이겠지만, 김치맛을 결정짓는 핵심 재료는 젓갈일 것이다. 강경, 속초, 곰소 등 젓갈로 유명한 곳이 많지만 광천은 토굴에서 숙성시킨 새우젓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난다. 광천 하면 떠오르는 게 오서산과 김 그리고 새우젓일 만큼 새우젓이 유명한 곳이다.

섭씨 10~15도의 토굴 속에서 숙성시킨 새우젓은 음력 5월에 잡은 새우로 담근 오젓, 6월에 잡은 새우로 담근 육젓, 가을에 잡은 새우로 담근 추젓 등으로 구분된다. 그 중 살이 통통하게 오른 6월에 잡은 새우로 담근 육젓이 품질도 으뜸이고 가격도 비싸다. 시세는 비슷비슷하니 토굴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깊은 맛의 새우젓을 살 수 있다.

장항선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인 청소역
임피역과 함께 장항선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 중 하나이며, 등록문화재 제305호로 지정되었다. 주변 관광지는 없지만 멀리 오서산이 보이는 시원한 풍경과 하얀 벽돌 건물 역사, 굴뚝, 멍멍이와 시골마을 풍경이 어우러져 경관 좋은 문화재로 자리하고 있다. 임피역, 원죽역과 함께 장항선에서 가볼 만한 3대 역사로 손꼽을 수 있다.

원죽역에서 청소역 방향으로 달리는 기차는 김좌진 장군 묘를 지나면서 엄청난 상승경사를 만나게 되는데, 달리는 기차 안에서는 의식하지 않으면 그렇게 크게 느껴지지 않지만 밖에서 보는 철길은 마치 롤러코스터를 타는 듯한 엄청난 경사로 보이는 곳이다. 잠시 눈을 감고 상승경사를 느껴보자.

"나 다시 돌아갈래!"
아직 방황하고 있거나 돌아가야 할 순수를 찾지 못했다면,
영화 <박하사탕> 촬영지가 있는 삼탄역으로 가보자.

충북선 철도는 해당 지역 주민이 아니라면 일부러 타지 않는 이상 타보기 힘든 한반도의 가로축 철도 노선이다. 1928년 조치원에서 충주 구간이 개통된 후 1958년에는 봉양까지 개통되어 현재의 노선이 만들어졌다. 1980년 10월에는 시멘트 등의 물자 수송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 복선화가 완료되었다.

삼탄유원지 주변은 예로부터 나라의 변란을 피해 숨어들어온 사람들과 화전민들이 땅을 일구던 오지였다. 1958년 이 구간에 충북선 열차가 다니고 사람들이 여행 목적으로 찾기 시작하면서 물 좋고 경치 좋은 유원지로 알려지게 되었다. 지금은 기차와 버스가 하루에 몇 차례 운행을 하고 있으며, 자동차보다는 기차로 접근하는 것이 쉬워 여전히 기차여행지로 잘 알려져 있다. 열차도 하루 6회 삼탄역에 정차하고 있어 충북지역의 대표적인 기차여행지로 손꼽을 만하다.

삼탄은 천등산, 인등산, 지등산으로부터 흐르는 광청소여울, 소나무여울, 따개비소여울 등 세 개의 여울三灘이 합쳐진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높고 푸른 산과 아름다운 물길에 둘러싸인 유원지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이 중 삼탄역에서 출발할 수 있는 가장 가까운 등산로는 인등산이며, 인등산 정상해발 666m을 지나 동량역으로 내려가는 산행 코스3~4시간 소요는 기차를 이용해서 왕복 산행이 가능하다.

영화 <박하사탕>의 촬영지 진소천 철교
"나 다시 돌아갈래!"
영화 <박하사탕>에서 주인공 영호설경구가 철교에 서서 달려오는 기차를 마주하며 마지막으로 외친 말이다. 외마디 외침과 함께 영화 속의 기차는 세월을 거슬러 순수했던 시절을 향해 2시간 내내 거꾸로 달린다.

<박하사탕> 중 ‘나 다시 돌아갈래!’를 촬영한 진소천 철교 찾아가기

영화의 처음과 마지막을 장식하는 철교는 삼탄역과 공전역의 중간쯤에 있다. 대중교통을 이용한 접근은 쉽지 않기 때문에 기차를 타고 가 면서 진소천 철교 위에서 보거나 자가용을 이용해야 한다. 굳이 대중교통을 이용해야 한다면 충주에서 평동리행 버스를 타고 평동리에서 하차 후 10㎞ 정도 걸어가야 하므로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하고 가자.

특히 영화 <박하사탕>을 인상 깊게 본 사람이나 아직 가야 할 길을 찾지 못해 방황하는 사람, 순수했던 과거를 찾아 여행을 떠나고 싶은 사람이라면 놓쳐서는 안 될 풍경이다.

그런 점에서 삼탄역과 진소천 철교는 누군가에게는 시원한 자연의 모습으로 인해 지친 일상을 쉬게 해주는 역할을, 어떤 누군가에게는 영화 <박하사탕>을 통해 순수했던 삶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반환점이 되어줄 것이다.

자양영당은 조선 후기의 성리학자 유중교가 1889년고종 26년에 세운 <창주정사創州精舍>가 있던 자리에 유림이 창건한 서당의 이름이다. 또한 의병장 유인석이 팔도의 유림들을 모아 창의倡義의 비밀회의를 하던 유서 깊은 곳이기도 하다.

공전역과 자양영당 일대는 평탄해 보이는 지형이지만 공전역에서 삼탄역으로는 차로 다닐 수 없고 철도로만 연결되어 있을 정도로 지형이 험준하다. 또 그런 만큼 주위 계곡이 아름다워 여름철에는 알 만한 사람들만 오는 경치 좋은 장소로 손꼽힌다. 기차가 무척 자주 다니니 철로로 다니지는 말자.

깊은 산 속에 숨어 있는 상상 속의 간이역, 원박역과 연박역

항상 변하지 않을 것 같아 보이는 철도와 간이역도 현실에서는 무척 빠른 속도로 생겨나고 사라지고 옮겨지고 바뀌고 있다. 삼탄~공전역 일대에도 이런 크고 작은 이설과 사라짐의 역사가 있다. 1958년 충북선 충주~봉양 구간이 개통될 당시에는 산척역과 원박역이라는 역명이 지도상에 존재했었고, 철도도 지금과는 전혀 다른 위치에 단선 선로가 놓여 있었다.

동량역은 역무원들에 의해 아기자기하게 꾸며져 있다.
역 자체는 전형적인 충북선의 凸자 모양이지만, 역 구내에는 아기자기한 식물들이 역무원분들에 의해 직접 가꿔지기도 하고, 스스로 자라나 철길 주변을 덮고 있어 작은 식물원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역사 내부에는 수석이나 조각품이 전시되어 있어 작은 전시관 같다. 여객열차가 정차하지 않으므로 충주시내에서 충주호를 따라 동량면소재지를 찾아오면 된다.

조용한 플랫폼으로 호송병이 타고 있는 8칸짜리 통일호 열차가 들어온다.
나는 내 손으로 어설프게 꿰맨 이등병 계급장을 달고, 키만 한 더블백에 앉아 있다.
이제 나는 어디로 가는 걸까?

연산역에는 철도문화체험을 위한 시설 외에도 등록문화재로 등록되어 있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급수탑이 있다. 급수탑은 증기기관차가 운행하던 시절 기관차에 물을 대기 위한 시설인데, 연산역 급수탑은 호남선 대전~강경 구간 개통과 거의 동시인 1911년에 건설되어 현재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20여 개 철도역 급수탑 중 가장 오래 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한민국 남자들의 기억 속 단편, 강경선 연무대역

1992년 9월 모일, 필자도 6주간의 논산훈련소 생활을 마치고 연무대역에서 기차를 이용하여 훈련병에서 이등병의 신분으로 ‘업글’되어 자대배치를 받았다. 평생 한 번뿐인 기회이자,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타본 수백 수천 번의 여행 중 다시 하고 싶지 않은 ‘가장 무서운 기차여행’이었다.

제대하고 얼마 지나지 않은 사람들은 자기가 생활했던 군부대 쪽으로 ‘쉬~’도 안 한다고 하지만, 막상 시간이 조금만 지나면 힘들었던 기억들도 다 추억이 된다. 근처를 지나다 보면 어떤 식으로든 한 번쯤 훈련장이나 연무대역 쪽을 둘러보며 ‘그랬었지’ 하게 되는 걸 보면 말이다.

연무대역은 2개다. 하나는 번듯한 역사가 아직 남아 있고 여객영업까지 하다가 현재는 화물영업만 하게 된 연무대역과 연무대역사에서 1.5㎞쯤 떨어져 있고 플랫폼에 비 피할 지붕뿐이지만 군 시절 한 번은 기차를 타게 되는 신연무대역이 그것이다. 연무대역이나 신연무대역은 역사 자체에서 매력을 찾기보다는 주로 과거를 찾아 떠나는 사람들의 출발점이라는 점에서 그 의미를 찾아야 할 것이다.

호남선 개태사역
연산역 북쪽 5㎞ 지점에 있으며, 여객열차가 정차하던 시절에는 개태사역에서 넘어지면 코 닿을 거리에 개태사가 위치해 있어 간이역과 사찰 구경을 동시에 할 수 있었다. 좌우 균형을 이루는 지붕이 아담한 간이역의 모양을 갖추고 있었으며, 계절마다 조금씩 다른 종류의 꽃이 피는 역 구내가 인상적인 곳이다. 개태사는 고려 태조가 후백제의 신검神劍을 무찌르고 삼국을 통일한 것을 기려 황산을 천호산이라 개칭하고 창건한 절로, 보물 제214호 석불입상과 충남민속자료 제1호로 지정된 엄청나게 큰 철확철제 솥이 인상적이다.

글을 쓰는 내내 안타까운 점이 두 가지 있었다. 하나는 더는 기차로 갈 수 없게 된 간이역이 점점 늘고 있다는 점, 다른 하나는 구불구불 곡선과 덜컹거리는 레일의 마찰음을 들으며 떠날 수 있는 재래선 철도가 이설, 개량과 함께 자꾸만 줄어든다는 점이다.

지금 남아 있는 간이역들은 하나둘 제 기능을 다하고, 언젠가는 거의 사라지게 될 날이 올 것이다. 그때쯤이면 이 책도 기억 속의 자료집이 되어 있을 것이고, 극히 일부만 문화재나 관광지로 개발되어 달라진 모습으로 남게 될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해 한 번이라도 간이역을 찾아 떠난 사람에게는 기억 속에 고이 남아 사라지지 않는 소중한 흔적이 되거나, 블로그 포스트, 사진, 일기가 되어 나만의 ‘여행세포’ 속에 남게 될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영업 중인 철도의 폭은 1,435㎜짜리 표준궤가 쓰이고 있지만, 1995년까지는 수인선을 따라 762㎜짜리 협궤열차가 운행됐었다. 우리나라 협궤철도의 역사를 좀 더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1972년에 폐지된 수려선수원~여주 구간 철도가 있고, 1930년대 이전으로 가면 지금의 대구~경주 구간도 협궤였다. 또한 경전선 삼랑진~마산 구간 개설 초기 철도와 현재의 군산, 전라선 일부도 협궤였다. 공통점이라면 더는 우리나라에서 운행 중인 협궤철도는 없다는 것이다.

간이역이 가장 충격적으로 변신한 곳이 중앙선 승문역일 것이다. 사람이 살고 표를 팔던 간이역이 소 풀 먹이는 외양간으로 바뀐 경우는 세계 철도사에서도 유래를 찾기 어려운 일일 것이다. 하지만 아직도 승문역은 그 원형을 그대로 유지한 채 경북 영주지방에 잘 남아 있다.

높은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에덴의 동쪽>에서 주인공의 어린 시절 황지역의 배경이 된 곳은 실제 황지태백와는 상당한 거리가 있는 중앙선 평은역이다. 이곳이 드라마 속에서 과거의 황지역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전형적인 간이역 모양의 역사와 실제 아무리 주위를 둘러봐도 마을이나 풍경을 방해할 만한 것이 없는 곳이기 때문이다.

삼랑진역 급수탑은 1923년에 설치되어 85년 넘는 역사를 가지고 있는데, 특이하게도 아래쪽은 돌로 만들어졌고 위쪽은 철근콘크리트로 만들어져 있어, 앞서 지어진 연산역 급수탑과 1930년대 이후에 지어진 급수탑의 과도기적인 모습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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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정역의 매력은 역시 바다라고 할 수 있다. 역에 내려 도보로 1분이면 넓고 푸른 백사장과 동해바다를 만날 수 있다. 어쩐지 송정역은 부산의 정동진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그곳에 위치한 정자인 송일정에서 느끼는 바닷바람이 왠지 백사장에서 느끼는 바람보다 조금 더 시원한 느낌이다. 바다에 좀 더 가까이 갔기 때문일까? 아니면 어떤가, 느낌이 중요할 뿐.

송정역은 등록문화재 제302호로 지정되어 앞으로도 그 원형을 유지하게 되었다.

송정역사松亭驛舍와 창고, 4,868m² 대지, 역사를 중심으로 좌우 철길 150m 등이 2006년 12월 등록문화재로 지정되었기 때문에 동해남부선이 이설된 후에도 그원형 그대로 바다마을의 상징적인 존재로 남게 될 것이다.

송정~해운대 바닷길 구간급격한 곡선을 따라 호랑이의 엉덩이를 스치고 지나가는 느낌으로, 바다가 이렇게 가깝게 붙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아슬아슬한 바다철길 구간 5분을 놓치지 말고즐겁게 감상하자.

주의: 송정-해운대 철길은 아름답지만 열차 운행 횟수도 많고 인명사고가 많이 나는 곳이므로 철길을 따라 걷는 무모한 일은 제발!

문화재도 아니다.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도 아니다. 하지만 그러기엔 너무 아깝고 예쁜 곳이 동해남부선 좌천역이다. 가을이면 역 구내에서 너무 크게 자라버린 은행을 따는 역무원들의 손길이 분주한 곳, 플랫폼 내부의 빨간 가로등이 70년 넘은 기차역과 조금은 부조화한 듯 보이지만 깔끔한 멋을 내는 곳, 벤치에 앉아 곡선을 따라 역 구내로 진입하는 기차를 보고 있노라면 CF의 주인공이 된 것만 같은 인상적인 간이역이다.

송정해수욕장 근처에 먹을 만한 해장국집이 몇 있다. 그 중 종가해장국집 사장님은 한식, 양식, 중식, 일식 조리사 자격증을 모두 딴 그랜드슬래머인 만큼 국물맛이좋은 해장국을 만들어내고 계신다.

용궁역을 출발한 열차가 개포역을 향해 서서히 속도를 높이고 있다. 뒤로 보이는 천마산 옆으로 회룡포와 내성천이 흐르고 있다.
가을이면 철길 주변이 모두 누렇게 물든다.

미포할매복국해운대에는 유명한 복국집 중 하나인 미포할매복국집은 적당한 가격에 시원한 복국물을 맛볼 수 있어 미포건널목이나 해운대 해변 끝까지 본 뒤에 들르기 좋다.

용궁역은 낭만적인 간이역을 꿈꾸는 여행자들에게 주변 관광지를 둘러보지 않고도 방문할 만한 괜찮은 선택이다.

시원한 논두렁 뒤로 낮은 산이 이어지는 모습은 경북선 철도의 전형적인 풍경이다.

여느 작은 시골마을의 느낌과 별다를 것 없으며, 용궁의 모습은 더더욱 아니다.

문득 떠오른 그리운 얼굴 있어
철길 따라 더듬어보는 아련한 추억
한 장의 엽서에 내 마음 띄운다.
- 점촌역 우체통에서

역전에서 만나는 따끈따끈한 박달식당 순대국밥은 용궁역과 회룡포 여행의 ‘기본 코스‘다. 1인당 5,000원이면 순대 한 접시와 느끼함 없는 따끈한 순대국밥을 동시에 맛볼 수 있다.

부르기도 곤란한 ‘반구역‘, 산양은 없지만 ‘산양역, 학교 선생님 별명 같은 ‘개포‘, 뭘 가동하는지 몰라도 ‘가동역‘, 무척 저렴한 ‘백원역‘ 같은 역들이 있다. 하지만 그중에 가장 흥미를 끄는 것은 아마도 ‘용궁역‘일 것이다.

경상북도를 가로지르는 경북선이라는 철도가 있다. 무궁화호가 하루 평균 3번 왕복하는 전형적인 ‘로컬선‘인데, 이 노선의 중간쯤 아이들을 위한 동화 속 기차역으로유명해진 점촌역과 회룡포로 유명한 용궁역이 있다.

용궁면소재지에서 2시간에 한 대꼴로 다니는 군내버스를 이용하거나 택시로 10분 정도 가면 내성천 물줄기가 휘감고 도는 회룡포 입구에 도착한다.

회룡포에 가면 너른 백사장과 공사장에서 쓰는 구멍 뚫린 강판을 이어놓은 ‘뿅뿅다리‘가 있고, 이 다리를 건너면 물돌이마을까지 갈 수 있다.

회룡포에서 바라보는 강물의 아름다움, 스릴 넘치는 뿅뿅다리의 추억은 드라마 <가을동화>로 거슬러 올라간다. 은서송혜교와 준서송승헌가 어린 시절을 보내며 사랑 이야기를 만든 곳이 바로 이곳이기 때문이다. 회룡대와 장안사를 찾는 사람들은 주로 혼자이거나 단체로 온 사진동호인들이고, 회룡포와 뿅뿅다리는 연인들이 즐겨 찾는 것은 아마도 그 때문일 것이다.

점촌역에 붙은 슬로건은 ‘신나는 동화 속 세상‘이다.

장안사는 통일신라 때 의상대사의 제자인 운명선사가 세운 사찰인데, 아담한 규모에 조용한 산사의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장안사에서 계단을 따라 몇 분을 더 올라가면 가슴이 탁 트이는 시원한 풍경을 만나게 된다. 회룡대에 만들어진 정자에 앉아 도시락이나 음료수를 먹는 즐거움은 짧은 시간의 산행 치고는 상당한 만족감을 준다. 매점이 근처에 없으니 음료수나 과자는 용궁역 앞 역전상회에서 구매하도록 하자.

기차역에서 쉽게 볼 수 없는 것이 또 하나 있는데 바로 빨간 우체통이다. 라디오에 하루에 몇 장씩 사연과 신청곡을 보내고, 여행지에서 보고 싶은 사람에게 엽서 한장 남기는 것이 너무도 자연스러운 일상이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1년에 손글씨로 된 편지 한 장 적어 보내는 일이 대단히 번거롭고 신기한 일이 되어버렸다.

추억이 있는 사람이나 없는 사람이나 이 글을 읽으면서 누군가에게 엽서 한 장 보내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런 역무원들의 작은 배려가 흐뭇한 즐거움과 기쁨을 선사하고 있는 곳, 바로 경북선 점촌역의 모습이다. 우체통의 절반은 10년 뒤에 열어보는 타임캡슐로 쓰면 어떨까?

점촌역 명예역장 아롱이

동화 속 세상답게 이곳의 명예역장은 강아지다. 하얀 녀석이 명예역장 아롱이, 까만 녀석이 명예부역장 다롱이인데, 평일에는 유치원에서 놀러온 아이들과 놀아주느라 바쁘다.

주평역이 마니아들에게 인기 있는 또 하나의 이유는 아직까지 완목신호기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완목腕木이란 나무를 가로 댄다는 뜻이며, 완목신호기란 나무를 가로 대어 만든 재래식 수동 신호기를 의미한다. 즉 손으로 신호를 바꿔가며 열차와 열차 간 신호를 지키도록 만든 시설이 아직 주평역에 있다.

점촌역의 주요한 기능 중 하나는 석탄자원 운송을 위해 만들어진 문경선 철길이 분기하는 역이라는 점이며, 문경선으로 가면서 첫 번째로 만나게 되는 곳이 주평역이다. 역무원은 근무하지 않으며, 멀리 보이는 소백산맥과 주흘산이 인상적인 간이역이다.

시간이 된다면 회룡포를 보고 나오는 길에 잠깐 용궁향교를 구경하는 것도 좋다. 조선시대 지방의 주요한 교육기관인 만큼 건축물이 차분한 분위기 속에 ‘공부하기좋게‘ 지어져 있다. 부석사 가는 길에 만나게 되는 소수서원의 분위기를 닮은 듯한 용궁향교. 건축에 관심이 없더라도 이곳 향교에서 생활하고 공부하던 수백 년 전학생들의 모습을 상상하는 일은 흥미롭다.

경북선은 전체적으로 경북지역의 비옥한 곡창지대를 지나는 노선이라 산지보다는 논밭이 이어지는 구간이 많다. 예천역을 출발, 영주역 진입 전까지 내성천을 따라강과 나란히 이어지는 철도 구간은 매우 아름답다.

용궁면에는 순대를 맛있게 만들어 파는 집이 몇 집 있는데, 박달식당은 순대 한 접시를 먹기 위해 용궁역을 찾을 정도로 이 지역에서는 마니아가 형성될 만큼 유명한순대전문 식당이다. 순대 한 접시를 주문하면 머리 고기와 정통 순대가 먹기 좋게 썰어져 나오는데, 순대 특유의 냄새를 싫어하는 분은 약간의 거부감이 있을 수 있으니, 이곳을 찾는 분들은 ‘정통 순대’에 임하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기차에서 내려 자전거 타고 한 바퀴 돌아도 좋고, 그냥 시내를 무작정 걸어 다녀도 즐거운 하루를 보낼 수 있는 도시, 경주는 소중한 문화유산이자 멋진 기차여행지이다.

경주는 도시 전체가 국립공원으로 지정될 만큼 잘 알려진 우리나라 최고의 관광도시 중 하나다.

기차여행을 왔다면 경주시내나 보문관광단지에서 자전거를 빌려 타고 다니는 것이 짧은 시간에 여유 있게 많은 것을 둘러볼 수 있는 효과적인 여행이 될 것이다. 경주에 왔다고 해서 비슷한 왕릉만 구경하는 것보다는 가까운 간이역을 살짝 방문해주는 것도 여행의 흥미를 더해줄 것이다.

코스1: 경주시내 코스와 나원역
경주역 → 대릉원 → 첨성대 → 반월성 → 안압지 → 경주국립박물관 → 황룡사터 → 경주역

다만 2인용 자전거는 뒤에 탄 사람이 동력을 충분히 공급해줘야 힘들지 않고 사이좋게 다닐 수 있으니 밥 잘 먹고 체력을 비축한 뒤에 자전거를 빌리도록 한다. 간혹 동력공급 문제로 사소한 다툼이 생기기도 한다.

경주역 관광안내소나 자전거 대여소에서 한 장짜리 여행지도를 제공하는데, 지도를 펴보면 여행 코스는 대부분 경주역을 등지고 왼쪽남쪽에 몰려 있다. 대규모 왕릉에 관심이 많다면 첫 코스는 경주역 가까운 곳에 위치한 대릉원천마총을 먼저 둘러보고, 이웃한 첨성대, 반월성, 계림, 안압지, 경주국립박물관을 차례로 둘러보면 된다.

4~5월이면 첨성대와 반월성 주변의 넓은 터에는 그야말로 ‘작렬’이라는 표현이 어울릴 만큼 유채꽃으로 가득하다.

7~8월이 되면 경주의 결혼식 야외 촬영장소 1순위인 안압지 뒤편 동해남부선 기찻길 옆으로 연꽃이 가득 피어난다. 유채꽃과는 달리 단아하고 소박한 매력이 있어 안압지와 함께 많은 연인과 가족들이 인상적인 PC 배경화면 한 장 만들기 위해 방문하여 셔터를 누르는 곳이다.

황룡사지에서 경주국립박물관 방향을 바라보면 경주시내 한가운데를 향해 동해남부선 철길이 관통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철길이 놓인 넓은 들판 위를 기차가 지나가는 풍경은 참 아름답지만, 일제시대 일본이 경주지역의 풍수침략을 위해 일부러 경주시내를 관통하도록 철도를 설계했을 수도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기적소리가 조금 안타까운 외침으로 들리기도 한다. 거짓말 조금 보태서 경주는 ‘땅만 파면 문화재’라는 말처럼 많은 문화재가 매립되어 있어 철도 이설은 쉽지 않다.

경주시내에는 서경주역, 나원역, 동방역 같은 기차역이 있는데 그 중 가볼 만한 간이역으로는 나원역을 추천한다. 우선 역사 진입로에서 바라보는 철길의 탁 트인 모습이 시원하다.

역 앞에는 닭과 토끼가 어울려 사는 토끼동산이 있는데, 많을 때는 100마리 넘는 토끼가 이곳에서 살았다. 직접 목격했음! @.@

코스2: 보문관광단지와 불국사역
불국사역 → 불국사 → 보문관광단지 자전거관광 → 경주역

불국사역은 목조에 기와를 얹은 외형이 깔끔하고 특이한 곳으로, 1930년대 중반에 지어져 70년이 넘는 기간을 한 자리에 서 있었다. 전국 관광지 중 몇 손가락 안에 꼽히던 불국사나 석굴암의 위상은 과거에 비해 많이 줄었고, 경주역과 쌍벽을 이루던 불국사역의 지위도 이제는 사람들이 그런 역명이 있다는 것조차 모를 만큼 작아졌다.

지금은 믿기 어려운 일이 되었지만 1930년대 중반까지는 대구에서 경주를 지나 불국사까지 달리던 철길이 현재 궤도의 절반 크기인 762㎜ 협궤철도였고, 지금도 모량역 주변에는 그때의 흔적인 협궤철교 교각이 발견되고 있다.

1939년에 만들어진 모량역은 봄, 가을이 아름답다. 봄에는 역 앞 광장에 벚꽃과 개나리가 피고, 가을에는 역 구내 은행잎이 떨어지는 시기가 아름답다. 하지만 2008년부터 역무원이 근무하지 않는 무인 역사로 바뀌면서 창문이 판자 등으로 가로막혀 조금은 답답한 모습으로 변했다.

동대구 → 경주 방향으로 건천역 진입 전 오른편 창밖을 보고 있으면 산세가 아름다우며 굴곡이 무척 특이한 풍경이 나타나는데, 이곳이 여성의 중요 부위를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여근곡女根谷이다. 건천에서 경주 진입 전까지의 풍경은 전반적으로 평지를 달리면서도 아기자기한 모습이다.

1박2일 정도 일정을 잡았다면 경주~포항을 연계하여 하루는 경주 문화관광, 하루는 동해바다구룡포, 감포, 포항시내 앞바다, 칠포해변를 보고 7번 국도를 따라 올라가는 해변여행의 연계도 고려해보자.

비슷한 빵이 많지만, 황남빵은 하나뿐이다. 원조를 찾는 사람들에게는 꼭 추천하고 싶은 빵으로, 시중에서 판매되는 경주빵과 비슷한 듯하면서도 황남빵만이 가지는 특별한 맛이 있다.

낮에는 물과 산이 숨 쉬는 자연과 함께
밤에는 도시의 불빛 대신 별빛이 비치는 그곳,
하루쯤 쉬어갈 수 있는 산 속 간이역, 문경선 불정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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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즉흥적인 생각으로 아지무의 요시카와 마사코를 방문해보는 게 어떻겠냐는 암시를 준 것도 두 사람의 주의를 가능한 한 현재의 츠노시마에서 벗어나게 하기 위해서였다.

애거사의 립스틱에 청산가리를 발라 둔 것은 그 전날인 둘째 날 27일 오후였다. 이미 플라스틱 조각이 출현했지만 그들의 경계심은 그리 높지 않아서 방으로 잠입할기회를 포착하기는 쉬웠다.

그러나 방 상태를 알리는 것은 그렇게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준비를 담당한 책임도 있고 해서 자신이 나쁜 방을 선택했다고 하면 되겠지만, 가능한 한 알리지 않는것이 가장 좋다. 그 때문에 그때는 포의 제안에 반대했던 것이다.

확실히 그는 매우 명석한 두뇌의 소유자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부주의하고 멍청한 측면도 있다. 그렇게 수상쩍은 지하실로 무작정 뛰어 들어간다는 것은 ‘탐정‘이라는 이름에 너무도 어울리지 않는 행동이다. 그는 발이 조금 삐었을 뿐 큰 부상은 입지 않았다.

중지만 자르면 다른 사람도 금방 손가락에 끼고 있던 반지를 떠올릴 것이다. 또한 왼손을 자른다는 것은 우연히도 작년 청옥부 사건의 ‘흉내를 내는 셈이 되기도 한다. 양자의 부합은 한 가지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즉, 시마다 기요시가 말했던 ‘세이지의 그림자‘를 섬에 있는 작자들에게 은근히 암시하는 효과이다.

만일 1/6의 확률로 그 컵이 자신에게 돌아올 경우는 그냥 마시지 않으면 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럴 필요도 없이 카가 ‘제2 피해자가 되어주었다.

겁쟁이 르루가 왜 이런 시간에 혼자서 바위 더미가 있는 곳까지 왔을까. 그러나 천천히 생각할 여유 따위는 없었다. 바위에 매어두었던 끈을 발견하고 수상쩍다는 생각으로 그것을 조사했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들켰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었다. 아마도 그는 단 한 번 목격으로 이 모든 사태를 완벽하게 이해해버렸을 것이다.

‘살인은 이제 지겹다, 사체는 더 이상 싫어!‘ 마음속에서 그런 외침이 들려왔다. 참을 수 없는 구토감이 몸의 중심부에서 솟구쳐 올라왔다. 정신도 육체도 이미 한계에달했다는 느낌이 왔다.

극도로 긴장된 신경은 선잠도 허락하지 않았다. 온몸이 마비된 듯이 맥이 없고, 가슴도 조금 울렁거렸다. 이윽고 손목시계의 알람 소리에 눈을 뜨고 물을 마시러 방을나섰다. 거기서 저 애거사의 사체와 맞닥뜨린 것이다. 그날 아침에야 그녀는 빨간 립스틱을 바른 것이었다.

단 그가 최후에 그 십일각형 컵을 통해 십각관 열한 번째 방의 존재를 추리해낸 분석력에는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왜 그런 컵이 하나 존재하는지, 자신도 의아했던 것이다. 그러나 설마 그것이 그런 장치와 관련되어 있을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육지에서 가와미나미와 시마다에게 건축가 나카무라 세이지의 기묘한 건축적인 장치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엘러리는 전혀 엉뚱한 곳으로 결론을 이끌어가고 말았던 것이다. 범인은 세 사람 가운데 있는 것이 아니고, 섬의 외부에서 배를 타고 들어왔다는 것이었다.

나카무라 세이지라고 말하고 싶었음이 틀림없었다. 그는 세이지가 살아 있다고 확신했던 것이다. ‘세이지의 그림자‘가 여기서 결정적으로 자신을 지켜 주리라고는........

그는 결국 최후의 최후까지 자신에게 협력해주었던 것이다. 그는 명탐정이라는 착각을 즐겼다. 도저히 구제할 길 없는 광대였다. 그는 우스꽝스럽게도 묘한 부분에서스스로 선언을 하지 않았던가. 최후에 남은 두 사람이 ‘탐정‘이고 ‘살인범‘이라고.

엘러리는 갑자기 눈을 퍼뜩 떴지만, 그때는 이미 등유를 흠뻑 머금은 침대에 불이 붙은 다음이었다.
불꽃이 혀를 날름거림과 동시에 창문을 닫았다.

잠이 오는군. 아무래도 긴장이 풀어진 것 같아. 밴? 넌 괜찮아? 잠시만 눈을 붙일게. 걱정하지 마. 무슨 일이 있으면 바로 깨워줘......."
명탐정 최후의 대사였다.

모든 전개는 예상 이상으로 순조로웠다.
육지에서의 행동을 증명하는 그림 가운데 불필요한 두 장은 이미 처분해버렸다. 이제 할 일은 아무것도 없다. 아무것도 두려워할 필요도 없다. 이제 아무것도......!
이제 모든 것이 끝났다고 모리스는 생각했다.
모든 복수는 끝났다. 끝난 것이다.......

"부탁 좀 들어줄래?"
아이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를 돌아보았다. 그는 노을 진 바다처럼 은은한 미소를 머금고 아이의 손에 그것을 쥐여주었다.
"저기 있는 아저씨에게 이것 좀 전해줄래?"

그것은 엷은 녹색의 작은 병이었다. 파도에 밀리며 반쯤 모래에 잠긴 그 병 속에는 몇 번이나 접은 몇 장의 종잇조각이 있었다.
‘아아.......!
그는 그것을 주워들고 방파제에 앉아 이쪽을 내려다보고 있는 남자 쪽을 돌아보았다.

"고지로가 범인이 아닐까 하고 언젠가 말한 적이 있었지만, 사실은 그때부터 시간이 나는 대로 이런저런 상상의 나래를 펼쳐보았어. 그러다 한 가지 재미있는 생각이들더군. 그 이야기를 오늘 해주고 싶어서 말일세."

이렇게 머리를 숙이면서도 나는 지금, 눈이 날카로운 독자 여러분을 ‘속이기 위한 다음 수를 찾으려고 빈약한 뇌세포에 채찍질을 가한다.
1987년 여름
아야츠지 유키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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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이역에는 추억과 그리움,
소박하지만 정겨운 풍경
그리고 즐거움이 있다. - P-1

1990년 겨울, 형과 함께 무박5일 일정으로 완행열차를 타고 전국을 돌아다니는 기차여행을 떠난 적이 있다. 춥고 배고프고 졸리고. 찜질방도 없던 시절이라 날마다 새벽기차를 타고 다니며 일상과의 사투를 벌였는데, 요즘 들어 자꾸만 그때 떠난 여행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 P-1

간이역 여행의 매력은 그런 것이다. 지금 그곳에 원하던 무언가가 당장에는 없을지라도,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크게 기억되고 언젠가 그리워할 무언가를 찾았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마음의 고향인 것이다. - P-1

간이역이란?

국어사전 [명사] 일반 역과는 달리 역무원이 없고 열차만 정차하는 역 - P-1

철도용어 해설집
철도 운영자가 직원을 배치하지 않고 간단한 설비로서 여객을 수송하는 역 - P-1

위키피디아
이용객이 적고 효율성이 낮아 역장이 배치되지 않고, 일반역에 비해 규모가 작은 역 - P-1

국유철도간이역설치기준령
‘간이역’이라 함은 역장을 배치하지 아니하고 간이한 설비로서 여객 또는 화물을 취급하는 역을 말한다. - P-1

책에 등장하는 ‘간이역’은 사전적 정의와 여행자의 시각에서 본 ‘한적한 마을 외딴 역’을 모두 포함하고 있습니다. - P-1

원북역은 사람들이 상상하는 간이역의 모든 요소를 갖추고 있다. 간이역사, 벤치, 벚꽃, 나무 그늘, 곡선 철도, 그리고 완행열차까지…… - P-1

원북역이 가장 아름다운 시기는 4월이다. - P-1

커다란 벚꽃 두 그루,
누군가의 역사가 담긴 작은 집 한 채,
그곳에 원북 간이역이 있다. - P-1

수도권에 사는 사람들은 그 존재조차 잘 모르는 경전선이라고 하는 철길이 있다. 경상도와 전라도를 이어주는 철길이라고 해서 경전선이라고 하는데, 호남선, 경부선을 경유하여 목포~서광주~순천~진주~마산~부전까지 이어준다. - P-1

빠른 이동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는 답답하게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마을 사람들에게는 버스가 잘 다니지 않는 간이역을 이어주는 기차가 고맙기만 하다. - P-1

3월 말~4월 중순에 경전선 열차를 타고 벚꽃 가득한 역 구내에 진입할 때면 모든 계획을 뒤로 하고 그냥 기차에서 내리고 싶어진다. - P-1

원북역에는 역무원이 근무하지 않고, 역사 내부가 3평 남짓한 네모난 상자처럼 생겼다. - P-1

박계도 씨는 이 지역 원북마을 출신으로 일제시대에 일본으로 건너갔다가 1980년대 초 고향으로 돌아온 마을의 유지였다. 고향에 돌아와 제대로 된 기차역이 없는 것을 보고 "이곳을 위해 좋은 일을 해야 하지 않겠나"라는 생각에 1984년경 역사를 기증했다고 한다. 그의 업적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당시 전기가 들어오지 않던 마을에 전기를 끌어오는 비용 일부를 조달하였고, 농사를 잘 지을 수 있도록 마을 저수지를 만드는 데에도 일조했다고 한다. - P-1

채미정은 조선 단종 때 생육신 중 한 사람인 어계 조려 선생이 조정을 등지고 고향에 돌아와 여생을 보낸 정자이다.

평촌역이 가장 아름답게 보이는 계절은 예술제가 열리는 11월이다. 역 뒤에 서 있는 커다란 은행나무가 노랗게 변하고, 낙엽이 바람에 폴폴 날리는 11월, 예술제도 감상하고 간이역에서 가을도 마음껏 느껴보자. 이렇게 아름다운 간이역의 가을을 홀로 보내도록 놔두는 건 국가적으로도 낭비가 아닐까?

기차를 타고 함안역에 내린다. 함안역 장터를 구경하고 난 뒤 다시 기차를 타고 원북역에 도착하여, 원북역 들판을 한 바퀴 크게 돌며 채미정과 서산서원을 둘러보고다시 기차를 타고 반성역이나 진주역으로 이동, 오후 시간을 반성수목원에서 보내거나 진주성, 진양호 등을 둘러보다 보면 하루 여행 끝.

군북역에도 커다란 벚나무가 역 주위를 휘감고 있어 시기를 잘 맞추면 벚꽃이 만들어내는 황홀한 절경을 감상할 수 있다.

2008년에 새로 생긴 간이역 진주수목원역간이역은 사라지기만 하는 곳이 아니다. 진주수목원역은 2008년에 개업한 가장 최근에 생긴 간이역이다. 부전 출발 기준, 원북을 지나 평촌역을 지난 열차는 임시 승강장인 진주수목원역이나 반성역에 정차한다. 진주수목원역에 내려 경상남도수목원까지 도보 15분또는 반성역 택시 기본요금이면 도착 가능하므로 아이들과함께이거나 식물을 좋아하는 커플이라면 간이역과 함께 경상남도수목원을 꼭 감상하는 것이 좋겠다.

반성역에서 진주 방향으로 두 번째 역인 갈촌역은 가을이면 은행잎으로 가득한 가을역이 된다.

작년 4월에 만난 할아버지를 올해 또 만났다.
할아버지는 여전히 지게에 무언가를 지고 부지런히 실어 나르고 계셨고,
나는 여전히 이곳에 와서 인사 한 번 하고는 할아버지를 모델로 셔터를 눌러대고 있었다.

사람들일 것이다. 승차권에 구애받지 않고 아무 역이나 내리기, 마음 가는 대로 머무른다는 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기차가 섬진강 철교를 지나 하동역에 진입하자마자 차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 전체가 일순간 벚꽃으로 둘러싸여 분홍빛으로 바뀌었다. 그 풍경을 보던 연인들의 눈이휘둥그레지면서 충동적으로 짐을 대충대충 싸고는 내 뒤를 따라 열차에서 내리는 것이다. 그들은 하동역의 벚꽃터널에 완전히 반해버린 것이다.

수많은 인파에 둘러싸여 쫓기듯 벚꽃을 맞이할 것인가,
한가로운 간이역에서 마음껏 벚꽃을 즐길 것인가.

선택은 자유다.

하동 하면 수식어처럼 따라 붙는 것들이 있다. 섬진강, 재첩국, 녹차, 화개장터, 쌍계사 십리벚꽃길, 지리산, 망덕포구. 하동역은 이런 훌륭한 볼거리들의 출발지이자 동시에 그 자체로 멋진 벚꽃관광지로 부족함이 없다.

하동역은 섬진강을 기준으로 전라도와 경상도를 이어주는 중간 지점으로 경전선 철도에서는 상당히 중요하고 규모 있는 지위를 차지하고 있어서 플랫폼도 길고 역구내 공간도 넓은 편이다.

지금은 기차로 타고 내리지 못하는 간이역이 되었지만, 매력적인 곡선과 벚꽃터널을 직접 보기 위해 버스나 자가용을 타고 온 이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그렇더라도 돌아갈 교통편은 미리미리 확인하자.

쌍계사 십리벚꽃길이 ‘눈‘이 즐거워지는 여행이라면, 하동역은 ‘기억‘이 즐거워지는 여행이다.

다솔사역의 매력은 ‘보이지 않는 풍경의 조화‘다. 붉은 벽돌 건물은 한가로운 버스 정류장의 모습을 닮았고, 영업을 중단한 소화물 취급소, 불필요하게 큰 플랫폼과 가로등은 왠지 사람들의 마음을 적적하게 만들기도 한다.

이름 때문에 호기심이나 흥미를 유발하며 높은 점수를 받고 있는 간이역이 경전선에 몇 곳 있다.

사람들이 모두 친절할 것 같은 양보역, 뭔가 크게 잘못한 일이 있으면 찾아가 보고 싶은 반성역, 무한도전 마니아라면 한 번은 방문해야 하는 진상역, 지금은 폐역되었지만 이름만 들어도 마음의 평정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은 평화역이라는 곳도 있었다. 다솔사역은 그 이름처럼 규정하기 힘든 매력을 가진 곳이다.

산과 논으로 이어진 경전선 구간에서 눈을 즐겁게 만드는 풍경은 진주에서 순천 방향으로 다솔사역 진입 전의 곡선, 하동역 진입 전 벚꽃터널, 진입 후 섬진강철교 구간이 대표적이다.

하동~다솔사역 사이에 위치한 북천역에서는 매년 가을대체로 9월 중순경 코스모스, 메밀축제를 개최하는데, 한가을이 되면 역 구내를 가득 메우는 코스모스밭이 장관이다.

역무원들의 엄청난 노력으로 만들어진 코스모스 꽃밭은 2007년 제1회 코스모스축제 때는 그리 많은 사람이 찾지 않는 평범한 간이역이었지만, 그 아름다움이 사진과 소문을 통해 전해지면서 2회 축제가 개최된 2008년에는 하루 수천 명이 찾는 인기 관광지로 변신에 성공했다.

하동역 벚꽃으로 부족하다면 진해 군항제와 함께 벚꽃놀이의 대표주자인 쌍계사 십리벚꽃길로 가보자.

용산역을 출발하는 열차를 타고, 화개장터와 쌍계사 벚꽃, 섬진강 기차마을을 다녀올 수 있는 기차여행 코스로, 매년 3월 말~4월 초 벚꽃축제 기간에 운행된다.

단 벚꽃이 핀 시기에는 대형버스를 비롯하여 수많은 차와 사람이 길을 가득 메우므로 자동차를 이용할 경우 하루 종일 차 안에서 벚꽃터널을 감상하게 될지도 모르니주의하자.

시간이 지나 도시가 빌딩숲을 이뤄도 해운대 앞바다는 바다로 남아 있습니다.

해운대~송정역 구간은 기차 안에서 바다 위로 떠오르는 일출을 볼 수 있는 몇 안 되는 곳 중 하나이며, 2~3년 후 동해남부선 복선전철화로 인한 이설을 앞두고 있어그 전에 한 번은 타봐야 할 구간이다.

기차여행을 떠나는 사람에게는 동해남부선을 경유, 영천~경주~울산을 지나 동해 바다가 보이는 철길을 따라 달리는 ‘가장 느린‘ 코스를 추천하고 싶다.

해운대에는 웬만한 건 다 있다. 농담 삼아 해운대 4학년 재학 중이라는 말로 혹세무민 하던 시절도 있었지만, 이제 대부분 해운대가 어떤 곳인지는 알 만큼 안다.

서울에서 기차 타고 부산으로 가는 방법은 빠른 길, 보통 길, 느린 길, 이렇게 세 가지이다. 고속철도를 타고 2시간 30분 만에 서울~대전~동대구를 지나 부산역까지가는 방법과 경부선을 따라 서울~대전~동대구~부산 찍고 4시간 만에 달리는 방법 그리고 동대구에서 동해남부선을 경유하여 영천~경주~울산을 지나 해운대에 도착하는 느린 길이 그것이다.

너무 가까이 있어 돋보이지 않는 철길이 있다.
동해남부선 송정~해운대 바다 구간이 그렇다.

이설되고 나면 무척 그리워질 기찻길이다.

해운대에는 웬만한 건 다 있다. 농담 삼아 해운대 4학년 재학 중이라는 말로 혹세무민 하던 시절도 있었지만, 이제 대부분 해운대가 어떤 곳인지는 알 만큼 안다.

금전적인 여유가 없다면 해운대 바닷가와 동백섬을 벗 삼아 헝그리하게 노는 것도 나쁘지 않다. 마음만 먹으면 승차권 값만으로도 얼마든지 즐길 수 있는 곳이다. 물론 여유가 된다면 저 멀리 보이는 센텀시티 불빛 따라 달려가면 되고.

운 좋으면 건널목과 일출을 함께 담을 수도 있고, 운이 더 좋다면 일출과 건널목 앞을 지나는 기차를 함께 담을 수도 있다. 미포건널목도 동해남부선이 이설되고 나면빠른 시간 내에 철거될 예정이니 특별한 사진 한 장을 남기고 싶다면 한 번쯤 가볼 만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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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긴다이치 코스케와 시마다 기요시: 공적 수사 바깥에서 진실을 여는 두 탐정

1. 검토 배경

가. 작성 목적

ㅇ(비교의 출발점) 작년 여름 요코미조 세이시의 긴다이치 코스케 시리즈를 다 읽고, 올여름 아야츠지 유키토의 관 시리즈를 이어 읽다 보니 두 작품군의 탐정이 묘하게 비슷한 위치에 있다는 생각이 들어 특별기고를 작성하게 되었음.

ㅇ(공통된 위치) 긴다이치 코스케와 시마다 기요시는 모두 공적 수사기관의 요원이 아님. 긴다이치는 사립탐정이고, 시마다는 관 시리즈 안에서 아마추어 탐정에 가까운 위치에 있음.

ㅇ(대비되는 방식) 두 사람은 모두 경찰 수사가 놓친 진실에 접근하지만, 사건을 바라보는 방식은 다름. 긴다이치는 가문과 전설, 원한과 혈연의 비극을 듣는 탐정이고, 시마다는 관과 도면, 동선과 시간표의 논리를 읽는 탐정임.

ㅇ(비교의 핵심) 이 글은 두 탐정의 신분만 비교하려는 것이 아니라, 두 사람이 사건을 바라보는 방식과 작품 안에서 맡는 기능이 어떻게 다른지를 살펴보려는 것임.

나. 비교 대상

ㅇ(긴다이치 코스케) 긴다이치 코스케는 요코미조 세이시가 창조한 대표 탐정으로, 『본진 살인사건』, 『옥문도』, 『팔묘촌』, 『이누가미 일족』 등에서 활약함.

ㅇ(시마다 기요시) 시마다 기요시는 아야츠지 유키토의 관 시리즈에 등장하는 탐정적 인물로, 『십각관의 살인』, 『수차관의 살인』 등에서 사건의 구조를 해체하는 역할을 함.

ㅇ(비교의 범위) 두 인물은 이름의 계보보다, 고전 본격과 신본격 미스터리 안에서 탐정의 역할이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중심으로 비교할 필요가 있음.

2. 공통점: 공적 수사기관 바깥의 탐정

가. 공권력의 대표자가 아님

ㅇ(긴다이치의 신분) 긴다이치 코스케는 경찰이 아니라 사립탐정임. 그는 수사권을 가진 공무원이 아니라, 사건 현장에 외부인으로 들어와 진실을 파헤치는 인물임.

ㅇ(시마다의 신분) 시마다 기요시 역시 경찰이나 검찰 같은 공적 수사기관의 요원이 아님. 그는 법적 권한이 아니라 관찰력과 추리력으로 사건에 접근함.

ㅇ(비공식 탐정의 성격) 두 탐정은 모두 제도 바깥에 있기 때문에, 경찰이 이미 정리한 결론을 의심하고 사건을 다른 각도에서 다시 들여다볼 수 있음.

나. 사건 현장에 들어오는 외부자

ㅇ(외부자의 위치) 긴다이치와 시마다는 사건이 벌어진 공동체나 저택의 내부자가 아니라, 바깥에서 들어온 사람임.

ㅇ(불편한 존재) 두 사람은 현장의 사람들에게 반갑지만은 않은 존재임. 이들은 숨기고 싶은 과거, 감추어진 관계, 이미 정리된 수사결과를 다시 건드림.

ㅇ(질서의 교란자) 탐정은 단순히 범인을 찾는 사람이 아니라, 현장 사람들이 믿고 있던 거짓 질서를 흔드는 인물임.

다. 공식 수사의 빈틈을 파고듦

ㅇ(공식 수사의 한계) 경찰은 눈에 보이는 증거, 현장 정황, 증언을 바탕으로 사건을 정리하지만, 때로는 겉보기 구조나 선입견에 갇히기도 함.

ㅇ(비공식 추리의 기능) 긴다이치와 시마다는 공식 수사의 틈새에서 질문을 던짐. “정말 저 사람이 범인인가”, “정말 저 사람이 죽은 사람인가”, “정말 저 공간은 닫혀 있었는가” 같은 의문이 이들의 출발점임.

ㅇ(비공식성의 힘) 두 사람은 절차의 중심에 있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이미 내려진 결론을 자유롭게 의심할 수 있음. 이 비공식성이 공식 수사가 놓친 맹점과 선입견을 건드리는 힘이 됨.

ㅇ(진실의 층위) 두 탐정이 밝혀내는 진실은 단순한 범인 색출을 넘어, 사건을 낳은 관계와 구조를 드러내는 데 있음.

3. 긴다이치 코스케: 가문과 저주의 목소리를 듣는 탐정

가. 긴다이치가 들어가는 세계

ㅇ(폐쇄된 공동체) 긴다이치가 들어가는 세계는 외딴 마을, 섬, 명문가, 오래된 저택처럼 바깥과 분리된 공간인 경우가 많음.

ㅇ(가문과 혈연) 그 세계에는 가문의 비밀, 상속 문제, 혈연관계, 오래된 원한이 얽혀 있음.

ㅇ(전설과 저주) 사건은 흔히 전설, 저주, 기괴한 풍습, 불길한 노래 같은 외피를 쓰고 나타남.

ㅇ(비극의 현장) 긴다이치의 사건들은 단순한 수수께끼가 아니라, 오래 누적된 인간관계의 비극이 폭발하는 현장임.

나. 긴다이치의 탐정 방식

ㅇ(이야기를 듣는 탐정) 긴다이치는 현장의 사람들에게 말을 듣고, 가문의 과거와 사람들의 관계를 파고듦.

ㅇ(비극의 해석자) 그는 기계적 장치만 해체하는 탐정이 아니라, 사건 뒤에 숨어 있는 슬픔과 원한, 비극의 계보를 해석하는 탐정임.

ㅇ(뒤늦은 진실) 긴다이치의 진실은 대개 너무 늦게 도착함. 사건은 이미 여러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뒤에야 전체 모습이 드러남.

ㅇ(저주의 해체) 그는 저주를 믿는 탐정이 아니라, 저주라는 말 뒤에 숨은 인간의 욕망과 원한을 밝혀내는 탐정임.

다. 대표작을 통해 본 긴다이치의 역할

ㅇ(『본진 살인사건』) 『본진 살인사건』에서 긴다이치는 명문가와 폐쇄된 공간, 불가능범죄의 구조를 파헤침.

ㅇ(『옥문도』) 『옥문도』에서는 섬이라는 고립공간, 전쟁의 그림자, 가족과 공동체의 비극이 사건의 중심에 놓임.

ㅇ(『팔묘촌』) 『팔묘촌』에서는 마을의 전설과 광기, 오래된 학살과 복수가 얽히며, 긴다이치는 그 비극의 근원을 추적함.

ㅇ(『이누가미 일족』) 『이누가미 일족』에서는 상속, 가면, 혈연, 가문 내부의 욕망이 사건을 밀고 가며, 긴다이치는 명문가의 어두운 진실을 드러냄.

4. 시마다 기요시: 관의 구조와 시간표를 읽는 탐정

가. 시마다가 들어가는 세계

ㅇ(기괴한 관) 시마다 기요시가 들어가는 세계는 나카무라 세이지가 남긴 기괴한 건축물임.

ㅇ(나카무라 세이지의 그림자) 관 시리즈에서 사건의 배경은 단순한 저택이 아니라, 설계자의 기묘한 의도가 남아 있는 구조물임.

ㅇ(물리적 폐쇄성) 외딴섬, 산속 저택, 고립된 관, 닫힌 방, 회랑, 탑, 숨겨진 장치가 사건의 조건을 만듦.

ㅇ(공간의 장치성) 시마다의 세계에서는 가문의 저주보다 도면, 원한보다 동선, 전설보다 물리적 구조가 더 중요한 단서가 됨.

나. 시마다의 탐정 방식

ㅇ(구조를 보는 탐정) 시마다는 인물의 심리만 보는 것이 아니라, 공간의 구조와 이동 가능성을 먼저 따짐.

ㅇ(도면의 해체자) 그는 관의 평면, 방의 배치, 문과 회랑, 계단과 엘리베이터, 벽과 창문의 위치를 통해 사건을 다시 읽음.

ㅇ(과거의 재검토) 시마다는 이미 끝난 것으로 처리된 사건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과거의 수사결과와 증언을 다시 따짐.

ㅇ(불가능성의 분해) 그의 추리는 “불가능해 보이는 사건이 실제로는 어떤 물리적 조건에서 가능했는가”를 밝히는 데 집중됨.

다. 대표작을 통해 본 시마다의 역할

ㅇ(『십각관의 살인』) 『십각관의 살인』에서 시마다는 섬과 본토, 별명과 본명, 시간 조작이 만든 착각을 해체하는 역할을 함.

ㅇ(『수차관의 살인』) 『수차관의 살인』에서 시마다는 1년 전 사건의 공식 결론을 뒤집고, 가면과 휠체어, 소각로 시신, 손가락, 벽난로 엘리베이터 장치를 통해 신분 탈취의 진상을 밝혀냄.

ㅇ(『미로관의 살인』) 『미로관의 살인』에서는 미로처럼 구성된 관의 구조와 폐쇄공간의 논리가 사건 해명의 핵심이 됨.

ㅇ(『시계관의 살인』) 『시계관의 살인』에서는 시간, 시계, 관의 구조가 결합하며, 시마다는 시간과 공간의 장치를 함께 해체하는 탐정으로 기능함.

5. 결정적 차이: 가문의 비극과 건축적 논리

가. 긴다이치의 세계: 피와 전설의 비극

ㅇ(가문의 무게) 긴다이치의 사건은 대개 가문과 혈연, 상속과 원한의 무게를 안고 있음.

ㅇ(혈연의 굴레) 인물들은 과거 세대의 죄, 숨겨진 출생, 뒤엉킨 가족관계에서 자유롭지 못함.

ㅇ(전설의 외피) 사건은 저주, 민요, 전설, 기괴한 의식 같은 형식을 통해 나타남.

ㅇ(비극의 잔향) 긴다이치가 사건을 해결해도 현장에는 슬픔과 허무가 남음.

ㅇ(긴다이치의 질문) 긴다이치의 질문은 “이 가문과 공동체는 어떤 과거의 비극을 감추고 있었는가”에 가까움.

나. 시마다의 세계: 구조와 논리의 미궁

ㅇ(건축의 지배력) 시마다의 사건에서는 가문보다 관이 더 중요하고, 저주보다 건축 구조가 더 중요함.

ㅇ(동선의 추적) 그는 누가 어디서 어디로 움직일 수 있었는지, 어떤 문과 장치가 가능성을 만들었는지 추적함.

ㅇ(시간표의 균열) 시마다의 추리는 시간표와 증언의 틈, 과거와 현재의 어긋남을 파고듦.

ㅇ(논리의 복원) 그는 감정의 비극보다 사건의 논리적 구조를 복원하는 데 강점을 보임.

ㅇ(시마다의 질문) 시마다의 질문은 “이 불가능해 보이는 사건은 어떤 구조를 통해 가능해졌는가”에 가까움.

다. 핵심 대비

ㅇ(긴다이치의 키워드) 긴다이치의 키워드는 가문, 혈연, 전설, 저주, 원한, 상속, 비극임.

ㅇ(시마다의 키워드) 시마다의 키워드는 관, 도면, 동선, 시간표, 장치, 시신의 신원, 논리적 반전임.

ㅇ(추리 방향의 차이) 긴다이치가 인간관계의 어두운 뿌리를 따라 내려간다면, 시마다는 건축물과 시간표의 구조를 따라 사건의 불가능성을 해체함.

ㅇ(탐정 기능의 변화) 긴다이치가 가문과 전설, 저주와 원한의 세계를 해석했다면, 시마다는 관과 도면, 동선과 장치의 세계를 해체함.

6. 이름의 계보와 미스터리사적 의의

가. 시마다 기요시라는 이름의 계보

ㅇ(이름의 직접적 헌정) 시마다 기요시(島田潔)라는 이름은 요코미조 세이시의 긴다이치 코스케와 직접 연결되는 이름이 아님. 이 이름은 일본 신본격 미스터리의 선구자 시마다 소지(島田荘司)의 성 ‘시마다’와, 시마다 소지가 창조한 명탐정 미타라이 기요시(御手洗潔)의 이름 ‘기요시’를 결합한 헌정으로 볼 수 있음.

ㅇ(신본격의 계보) 따라서 시마다 기요시는 이름의 차원에서는 요코미조 세이시보다 시마다 소지와 미타라이 기요시의 계보에 더 직접적으로 놓여 있음. 이는 아야츠지 유키토가 고전 본격을 계승하면서도, 동시에 신본격 미스터리의 흐름 안에서 자기 탐정을 세웠다는 점을 보여줌.

ㅇ(이름과 기능의 분리) 긴다이치 코스케와 시마다 기요시를 비교할 때, 두 탐정의 이름이 직접 연결되어 있다고 보면 안 됨. 이름은 시마다 소지와 미타라이 기요시에 대한 오마주이고, 긴다이치와의 비교는 작품 구조와 탐정 기능의 차원에서 보아야 함.

나. 요코미조식 고전 본격과 관 시리즈의 관계

ㅇ(고전 본격의 유산) 요코미조 세이시의 긴다이치 코스케 시리즈에는 폐쇄된 마을, 외딴섬, 명문가, 오래된 저택, 연속살인, 과거의 원한 같은 고전 본격의 요소가 강하게 나타남.

ㅇ(관 시리즈의 계승) 아야츠지 유키토의 관 시리즈도 외딴섬, 산속 저택, 폐쇄공간, 기괴한 건축물, 제한된 인물, 연속살인이라는 고전 본격의 뼈대를 적극적으로 활용함.

ㅇ(창작의 맥락) 아야츠지 유키토는 관 시리즈를 통해 고전 본격 미스터리의 낭만적 비극을 이어받으면서도, 그 비극의 원인을 저주·가문·혈연의 어두운 사연이 아니라 건축물의 구조와 물리적 장치로 바꾸어놓음.

ㅇ(관 시리즈의 전환) 관 시리즈에서 사건의 핵심은 흔히 나카무라 세이지가 남긴 기하학적이고 물리적인 건축 장치와 연결됨. 따라서 비극의 무게중심은 “무슨 원한이 있었는가”에서 “어떤 구조가 불가능범죄를 가능하게 했는가”로 이동함.

ㅇ(오마주와 안티테제) 이 점에서 관 시리즈는 요코미조식 고전 본격의 폐쇄공간과 참극의 형식을 빌려오는 오마주이면서, 동시에 그 비극의 원인을 신본격의 도면과 논리로 치환한 안티테제라고 볼 수 있음.

다. 일본 미스터리 흐름 속 의미

ㅇ(긴다이치의 위치) 긴다이치 코스케는 일본 고전 본격 미스터리에서 전설과 가문, 혈연과 원한의 비극을 해석하는 대표 탐정임.

ㅇ(시마다의 위치) 시마다 기요시는 신본격 미스터리 안에서 기괴한 관과 건축 장치, 시간표와 동선을 해체하는 탐정적 인물임.

ㅇ(흐름의 변화) 두 탐정을 비교하면 일본 미스터리가 가문의 비극과 저주의 세계에서, 건축물과 논리적 장치의 세계로 옮겨가는 흐름을 볼 수 있음.

ㅇ(비교의 의의) 이 차이는 두 탐정의 우열을 가르는 문제가 아니라, 시대와 장르가 달라지면서 탐정이 읽어내는 대상이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보여주는 지점임.

ㅇ(최종 평가) 두 탐정은 모두 공적 수사 바깥에서 진실을 여는 인물이지만, 긴다이치가 고전 본격의 비극적 세계를 대표한다면, 시마다 기요시는 신본격 미스터리의 건축적·논리적 세계를 대표하는 탐정적 인물이라고 할 수 있음.

<공적 수사 바깥에서 진실을 여는 두 탐정>

작년 여름 요코미조 세이시의 긴다이치 코스케 시리즈를 다 읽고, 올여름 아야츠지 유키토의 관 시리즈를 이어 읽다 보니 두 탐정이 묘하게 비슷한 자리에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긴다이치 코스케와 시마다 기요시는 모두 공적 수사기관의 요원이 아니다. 긴다이치는 사립탐정이고, 시마다는 관 시리즈 안에서 아마추어 탐정에 가까운 인물이다. 두 사람은 경찰처럼 공식 권한을 행사하지 않지만, 오히려 그 바깥의 위치에서 이미 정리된 사건을 다시 의심하고, 공식 수사가 놓친 진실을 밝혀낸다.

다만 두 탐정이 들어가는 세계는 다르다. 긴다이치가 들어가는 세계는 외딴 마을, 명문가, 오래된 저택, 전설과 저주, 혈연과 상속의 세계다. 그의 사건에는 가문의 어두운 과거와 오래된 원한이 깊게 깔려 있다. 긴다이치는 저주를 믿는 탐정이 아니라, 저주라는 말 뒤에 숨은 인간의 욕망과 비극을 듣는 탐정이다.

반면 시마다 기요시가 들어가는 세계는 나카무라 세이지가 남긴 기괴한 관의 세계다. 시마다는 가문사보다 도면을 보고, 전설보다 동선을 따지며, 원한보다 시간표와 물리적 장치를 분석한다. 『수차관의 살인』에서도 그는 소각로 시신, 왼손 약손가락, 가면과 휠체어, 벽난로 엘리베이터 장치를 통해 마사키 신고의 신분 탈취를 밝혀낸다.

시마다 기요시라는 이름은 긴다이치 코스케와 직접 연결되는 이름이 아니다. 이 이름은 시마다 소지의 성 ‘시마다’와, 시마다 소지가 창조한 명탐정 미타라이 기요시의 이름 ‘기요시’를 결합한 헌정으로 보는 것이 적절하다. 따라서 긴다이치와 시마다의 관계는 이름의 계보가 아니라, 작품 구조와 탐정 기능의 차원에서 비교해야 한다.

아야츠지 유키토의 관 시리즈는 요코미조식 고전 본격의 폐쇄공간과 참극의 형식을 이어받는다. 그러나 그 비극의 원인을 저주, 가문, 혈연의 어두운 사연에만 두지 않고, 나카무라 세이지가 설계한 건축물의 구조와 물리적 장치로 바꾸어놓는다. 이 점에서 관 시리즈는 고전 본격에 대한 오마주이면서도, 동시에 신본격의 도면과 논리로 고전적 비극을 다시 설계한 안티테제라고 볼 수 있다.

결국 긴다이치 코스케와 시마다 기요시는 모두 공적 수사 바깥에서 진실을 여는 탐정이다. 그러나 긴다이치가 가문과 전설, 원한과 혈연의 목소리를 듣는 탐정이라면, 시마다 기요시는 관과 도면, 동선과 시간표의 구조를 읽는 탐정이다. 두 사람의 차이는 일본 미스터리가 고전 본격의 비극적 세계에서 신본격의 건축적·논리적 세계로 이동해가는 흐름을 잘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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