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은 대법원이 재심 무죄를 확정한 사건들이다. 재심이 진행 중인 사건이 많아서 얼마나 더 무죄판결이 나올지 아직은 알 수 없다. ‘조작간첩 재심 무죄’를 키워드로 인터넷 포털 뉴스를 검색해보자. 모두가 간첩죄를 적용한 사건은 아니지만 정보기관과 검찰과 법원이 북한의 사주를 받았거나 북한과 연계됐거나 북한을 이롭게 하려는 목적으로 활동했다는 혐의를 씌워 수사하고 기소하고 유죄판결을 했다는 사실만큼은 예외가 없다.

평화통일론을 주장했다가 사형당한 정치인 조봉암(1959), 박정희 정부가 북한 앞잡이로 몰아 사형한 『민족일보』 사장 조용수(1961),• 간첩죄로 기소한 1차 인혁당 사건(1964), 작곡가 윤이상과 화가 이응노 등 유럽 지식인들을 엮어 넣은 동백림 사건(동베를린 사건, 1967), 이중간첩 이수근(1967), 납북어부 간첩 서창덕(1967), 조총련 간첩 김복재(1970), 납북어부 간첩 박춘환(1971), 유럽 거점 간첩단 사건 관련 조사를 받던 중 중앙정보부에서 사망한 최종길 교수(1973), 이철 등 민청학련 사건(1974), 손두익·전국술 등 울릉도 간첩단(1974), 김우종 교수 등 문인 간첩단(1974), 김우철 등 형제 간첩단(1975), 납북어부 간첩 정규용(1976), 김정사 등 재일동포 유학생 간첩단(1977), 석달윤·김정인 등 진도 간첩단(1980), 신귀영·신춘석 등 가족 간첩단(1980), 한국전력 검침원 간첩 김기삼(1980), 재일교포 간첩 이종수(1982), 나진·나수연 남매 간첩단(1981), 재일교포 간첩 이헌치(1981), 조총련 간첩 최양준(1982), 미법도 섬마을 간첩단(1982), 일본 취업 노동자 간첩 차풍길(1982), 납북어부 간첩 이상철·김춘삼·윤질규(1983), 조총련 간첩 조봉수(1984), 이준호·배병희 모자 간첩단(1985), 제주도 간첩 강희철(1986), 조총련 간첩 김양기(1986) 사건이 대법원의 재심 무죄판결을 받았다.

나의 한국현대사 1959-2020 | 유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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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개교 60주년을 맞은 서울대가 해방 이후 60년 동안 판매가 금지됐던 책 가운데 역사적 의미가 있는 스무 권을 발표한 적이 있다.
『전환시대의 논리』(리영희), 『신동엽전집』(신동엽),
『순이삼촌』(현기영),
『타는 목마름으로』(김지하),
『문제는 리얼리즘이다』(게오르그 루카치),
『빨치산의 딸』(정지아),
『사회주의 인간론』(에리히 프롬), 『무림파천황』(박영창),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황석영),
『한국전쟁의 기원』(브루스 커밍스), 『해방 전후사의 인식』(송건호 외) 등이었다.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는 광주민중항쟁 참가자들이 쓴 항쟁기록을 소설가 황석영이 손질해서 출판한 책이다. 1980년대 중반 ‘넘어넘어’라는 약칭으로 회자됐던, 광주민중항쟁의 진실을 널리 알린 최초의 공개 출판물이었다. 금서가 된 바람에 더 유명해진 무협소설 『무림파천황』이 불온서적 지목된 이유는 좀 우습다. 정파(正派)와 사파(邪派)의 대결을 변증법으로 설명한 딱 한 쪽 때문이었다. 그때 공안당국자들은 변증법과 마르크스주의를 같은 것으로 취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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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행자
행복 충전소

우리는 우리가 행복해지려고 마음먹은 만큼 행복해질 수 있다. 우리를 행복하게  만드는 것은 우리를 둘러싼 환경이나  조건이 아니라 늘 긍정적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아주 작은 것에서부터 행복을 찾아내는 우리 자신의 생각이다. 행복해지고 싶으면,  행복하다고 생각하라.

-에이브러햄 링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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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행자
행복 충전소

우리는 우리가 행복해지려고 마음먹은 만큼 행복해질 수 있다. 우리를 행복하게  만드는 것은 우리를 둘러싼 환경이나  조건이 아니라 늘 긍정적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아주 작은 것에서부터 행복을 찾아내는 우리 자신의 생각이다. 행복해지고 싶으면,  행복하다고 생각하라.

-에이브러햄 링컨 - P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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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제 씨는 선한 의도가 있어야만 선을 행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역설을 온몸으로 보여줬다. 경선탈락-탈당-신당창당-독자출마로 이어진 그의 반칙행위는 비판받아 마땅하지만 그것 덕분에 진보 정권 10년을 경험할 수 있었기에 나는 텔레비전 뉴스 화면에서 그의 얼굴을 볼 때마다 감사의 마음을 되새기곤 했다.

표현의 자유는 정부가, 또는 압도적 다수의 국민이 옳다고 생각하는 견해를 보장하는 것이 아니다. 대다수 국민이 터무니없다고 판단하는 견해까지도 제한 없이 표현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비록 진리가 아니라 할지라도 그 견해를 표현하는 행위가 다른 사람의 자유와 권리를 부당하게 침해하지 않는다면 제약하지 말아야 한다.

2004년 봄의 탄핵규탄 촛불집회는 매우 이례적인 사건이었다. 우리 현대사에서 시민이 현직 대통령을 지키려고 연속·동시다발·전국적 집회시위를 벌인 일은 이전에도 이후에도 없었다. 탄핵규탄 촛불집회의 투쟁대상은 야당이었다.

인간이 불완전한 상태에서는 서로 다른 의견이 존재하는 것이유익하듯이, 삶의 실험도 다양하게 이뤄질 필요가 있다. 다른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 각자의 개성을 다양하게 꽃피울수 있어야 한다. 각자의 고유한 개성이 아니라 전통이나 관습에따라 행동하게 되면, 인간을 행복하게 만드는 중요한 요소가운데 하나이자 개인과 사회발전의 불가결한 요소인 개별성을잃게 된다.
- 존 스튜어트 밀, 『자유론』

가족계획과 기생충박멸

우리 세대는 난민촌과 병영을 체험했다. 선명하게 남아 있는 기억을 몇 가지만 되살려본다. 학교에 채변 샘플을 제출하고 회충약을 한 움큼 받아먹었다. 〈새마을 노래〉를 들으면서 새벽에 거리청소를 했다.

1961년 "알맞게 낳아서 훌륭하게 키우자"로 시작한 가족계획 구호는 1963년 "덮어놓고 낳다보면 거지꼴을 못 면한다"와 1971년 "딸·아들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를 거쳐 1980년 "잘 키운 딸 하나 열 아들 안 부럽다"까지 갈수록 강력해졌다.

2012년 질병관리본부가 실시한 ‘제8차 전국민장내기생충감염실태조사’에서 나온 감염률은 2.6%였고 2020년 제9차 조사 결과도 크게 다르지 않게 나올 것이다.

한국기생충박멸협회도 대한가족계획협회와 마찬가지로 ‘자기 성공의 희생자’가 되고 말았다. 전국 13개 시도에 지방조직을 만들고 청사도 갖췄는데, 정작 기생충을 박멸하고 나자 업무가 사라진 것이다.

개발제한구역 지정 자체는 공익을 위해 재산권 행사를 제한한 것이어서 위헌이 아니지만 재산권 행사를 통해 수익을 얻을 기회를 박탈당한 토지소유자에게 아무런 보상을 하지 않는 것은 위헌이라고 하면서 국회가 보상 관련 입법을 할 때까지 새로 개발제한구역을 지정하지 못하게 한 정도였다.

산림녹화사업과 그린벨트 제도는 산업화와 환경보호 사이의 복잡한 관계를 보여준다. 산업화는 불가피하게 생태계와 환경을 파괴한다. 하지만 산업화로 얻은 경제적 자원과 능력을 잘 활용하면 훼손된 환경을 어느 정도는 복원하고 보호할 수 있다. 그린벨트는 수도권과 부산, 대구, 광주, 대전, 울산, 창원 권역에 남아 있으며 대부분 사유지인 임야와 논밭이다.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으며 그런 사명을 띠고 태어난 사람 역시 없다. 그래서 그 헌장은 1993년 초등학교 교과서에서 지워졌고 정부의 공식 행사에서도 자취를 감췄다.

하지만 ‘국기에 대한 맹세’는 민주화시대에도 살아남았다. 충남교육청 공무원이 1968년에 처음 만든 맹세문은 "나는 자랑스런 태극기 앞에 조국의 통일과 번영을 위하여 정의와 진실로서 충성을 다할 것을 다짐합니다"였는데 문교부가 문구를 살짝 바꿔 전국 학교에 하달했다. "나는 자랑스런 태극기 앞에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을 다할 것을 굳게 다짐합니다."

병영의 기본은 점호와 피아(彼我) 구분이다. 그래서 정부는 온 국민이 주민등록증을 만들게 했다.

주민등록증의 핵심은 주민등록번호와 지문 그리고 사진이다. 최초의 주민등록제도는 1942년 조선총독부가 도입했다. 일본 호적법에 바탕을 둔 「조선기류령」을 제정해 징용과 징병 등 식민지 수탈을 수월하게 했다. 1962년 국가재건최고회의가 제정한 「주민등록법」의 목적도 일제의 기류령과 비슷했다. 현행 주민등록증과 주민등록번호가 생긴 것은 1968년 가을이다.

2006년 개교 60주년을 맞은 서울대가 해방 이후 60년 동안 판매가 금지됐던 책 가운데 역사적 의미가 있는 스무 권을 발표한 적이 있다. 『전환시대의 논리』(리영희), 『신동엽전집』(신동엽), 『순이삼촌』(현기영), 『타는 목마름으로』(김지하), 『문제는 리얼리즘이다』(게오르그 루카치), 『빨치산의 딸』(정지아), 『사회주의 인간론』(에리히 프롬), 『무림파천황』(박영창),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황석영), 『한국전쟁의 기원』(브루스 커밍스), 『해방 전후사의 인식』(송건호 외) 등이었다.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는 광주민중항쟁 참가자들이 쓴 항쟁기록을 소설가 황석영이 손질해서 출판한 책이다. 1980년대 중반 ‘넘어넘어’라는 약칭으로 회자됐던, 광주민중항쟁의 진실을 널리 알린 최초의 공개 출판물이었다. 금서가 된 바람에 더 유명해진 무협소설 『무림파천황』이 불온서적 지목된 이유는 좀 우습다. 정파(正派)와 사파(邪派)의 대결을 변증법으로 설명한 딱 한 쪽 때문이었다. 그때 공안당국자들은 변증법과 마르크스주의를 같은 것으로 취급했다.

2008년 드러난 국방부의 장병 금서목록에서 보듯 개별 국가기관의 목록은 살아 있었다. 23권의 국방부 금서목록에는 『지상에 숟가락 하나』(현기영), 『북한의 우리식 문화』(주강현), 『통일, 우리 민족의 마지막 블루오션』(전상봉), 『미국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노암 촘스키), 『미군 범죄와 한미 SOFA』(주한미군범죄근절운동본부), 『소금꽃 나무』(김진숙), 『나쁜 사마리아인들』(장하준), 『김남주 평전』(강대석), 『대한민국史』(한홍구), 『세계화의 덫』(하랄드 슈만 외), 『삼성왕국의 게릴라들』(프레시안) 등이 들어 있었다. 목록이 공개되자 시민은 그 책들을 베스트셀러로 만들어 줌으로써 국가의 사상통제에 반격을 가했다.

1966년 〈뜨거운 안녕〉을 타이틀곡으로 한 쟈니 리의 앨범은 35만 장을 판매하는 대성공을 거뒀는데 여기에 들어 있던 김문응 작사, 길옥윤 작곡의 〈내일은 해가 뜬다〉도 걸려들었다. "사노라면 언젠가는 좋은 때도 올 테지"라는 가사가 권력자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든 탓이다. "그렇다면 지금은 나쁜 때란 말이냐!" 이 노래는 대학가 운동가요집에 〈사노라면〉이라는 제목으로 실린 탓에 오랫동안 작곡자 미상의 구전가요로 알려졌다. 1983년에는 한일관계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이유로 개그맨 정광태의 〈독도는 우리땅〉을 일시 방송 금지했다.

1993년 가수 정태춘 씨가 의미 있는 싸움을 시작했다. 공연윤리위원회의 사전심의를 받지 않고 음반을 제작·발표함으로써 문화관광부가 자신을 고발하게 만든 다음 사전심의를 강제한 「음반 및 비디오물에 대한 법률」에 관한 위헌심판을 제청한 것이다.

여기에 ‘서태지와 아이들’이 그 싸움을 키웠다. 4집 앨범 ‘컴백홈’ 수록곡 〈시대유감〉에 대해 공윤이 수정을 지시하자 가사 전체를 삭제하고 연주곡만 수록하는 방식으로 검열에 대항했고 서태지의 팬들은 격렬하게 공윤을 비난했다.

결국 공윤은 1996년 6월 사전심의제를 폐지했고 넉 달 후 헌법재판소는 사전심의제도가 표현의 자유를 규정한 헌법 제21조 위반이라는 결정을 내렸다. 대중예술인들이 끈질긴 싸움을 벌여 일제강점기 이래 1990년대까지 존속해온 사전검열제도를 폐지한 것이다.

권력자는 역사에 자신의 인격을 각인한다. 한국현대사에 가장 뚜렷한 각인을 남긴 지도자는 박정희 대통령과 김대중 대통령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그러나 때로는 아무 지위도 권력도 없는 사람이 역사에 자신의 인격을 각인하기도 한다. ‘영원한 청년 노동자’ 또는 ‘노동열사’ 전태일이 바로 그런 사람이다. 김수환 추기경이나 법정 스님도 권력자는 아니었지만 비슷한 경우다.

빨갱이라는 욕설에도 주눅 들지 않고 소신을 관철했던 정치인 이인제는 멋있었다. 고용보험을 만든 것 하나만으로도 그의 정치인생은 의미가 충분했다고 나는 생각한다.

페미니즘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다양한 견해가 있지만, 나는 미국 문화비평가 리베카 솔닛(Rebecca Solnit, 1961~ )의 생각을 받아들인다. 페미니즘은 ‘여성도 남성과 똑같이 존엄한 인간이라는 사상’이다.• 누구도 내놓고 부정하지 못할 만큼 당연해 보이는 이 사상이 ‘혁명성’을 띤 것은 현실이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역사에 대한 지식은 어떤 유형의 정부가 성공할 가능성이높으며 또한 어떤 유형의 정부가 실패할 가능성이 높은가에대해서도 실마리를 제공한다. 사실 성공적인 정부의 세 가지주요 적은 이데올로기, 도덕성, 공포다. 이데올로기에 의존하는정부는 실패하기 쉬운데, 이데올로기는 역사를 올바르게이해하는 것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이데올로기는 경험을받아들이는 데 필수적인 개방성을 낳지 않고 오히려 폐쇄적인사고 체계를 낳는다.
-- 버넌 보그다너, 『역사, 시민이 묻고 역사가가 답하고 저널리스트가논하다』

"북한의 침략과 도발을 물리치려면 대한민국 내부에 ‘이념적 배신자’가 있어서는 안 된다. 배신자는 북한보다 더 위험한 ‘내부의 적’이다. 철저히 색출해 처단해야 한다." 정부는 오랜 세월 그렇게 주장했고, 많은 시민이 그것을 의심해서는 안 될 신조로 받아들였다.

배신자를 가리키는 말은 시대에 따라 바뀌었다. 처음에는 ‘공산당’, ‘빨갱이’, ‘간첩’이었다가 ‘좌경(左傾)’, ‘친북(親北)’, ‘용공(容共)’을 거쳐 ‘종북(從北)’으로 이어졌다.

정부와 공안기관은 민족의 화해와 공존을 추구하고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시민을 ‘공산당’, ‘빨갱이’, ‘좌경’, ‘용공’, ‘친북’, ‘종북’이라고 모함했고 시민들은 침묵하거나 동조하는 시늉을 했다. 그것을 꼭 믿어서가 아니라 자신과 가족의 안전을 지키고 싶어서.

국가정보원은 모기를 향해 대포를 쏘았다. 모기를 잡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람들을 움츠리게 하려고 쏘았고 그 목적을 이뤘다. 그 사건은 국정원의 불법 대선개입과 박근혜 후보 선거대책본부 고위관계자들의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유출, 각종 대선공약 파기와 청와대의 불통논란, 인사파행 등 당시 정부여당에 불리하게 작용하던 모든 정치 이슈를 집어삼켰다.

초등학생 때부터 ‘간첩 식별법’을 배웠다. 새벽에 구겨진 양복을 입고 산에서 내려오는 사람, 오랫동안 연락이 없다가 갑자기 찾아온 친척, 심야에 북한 방송을 듣는 사람, 직업이 없는데도 고급 담배를 피우는 사람은 신고해야 한다고 배웠다.

제일 널리 퍼진 반공표어는 "때려잡자 김일성 무찌르자 공산당"이었지만 내게 가장 인상적이었던 표어는 "옆집에 오신 손님 간첩인지 다시 보자"였다. 평범한 시민이 이웃을 간첩으로 의심하도록 권하는 세상을 산 것이다.

학생들의 반공궐기대회 강제동원은 사라졌지만 반공포스터 그리기는 요즘도 여전한 모양이다. 어느 초등학교에서 대상을 받았다는 반공포스터에 깜찍한 문구가 들어 있었다. "포스터 그리기 지겹다 통일해라."

다음은 대법원이 재심 무죄를 확정한 사건들이다. 재심이 진행 중인 사건이 많아서 얼마나 더 무죄판결이 나올지 아직은 알 수 없다. ‘조작간첩 재심 무죄’를 키워드로 인터넷 포털 뉴스를 검색해보자. 모두가 간첩죄를 적용한 사건은 아니지만 정보기관과 검찰과 법원이 북한의 사주를 받았거나 북한과 연계됐거나 북한을 이롭게 하려는 목적으로 활동했다는 혐의를 씌워 수사하고 기소하고 유죄판결을 했다는 사실만큼은 예외가 없다.
평화통일론을 주장했다가 사형당한 정치인 조봉암(1959), 박정희 정부가 북한 앞잡이로 몰아 사형한 『민족일보』 사장 조용수(1961),• 간첩죄로 기소한 1차 인혁당 사건(1964), 작곡가 윤이상과 화가 이응노 등 유럽 지식인들을 엮어 넣은 동백림 사건(동베를린 사건, 1967), 이중간첩 이수근(1967), 납북어부 간첩 서창덕(1967), 조총련 간첩 김복재(1970), 납북어부 간첩 박춘환(1971), 유럽 거점 간첩단 사건 관련 조사를 받던 중 중앙정보부에서 사망한 최종길 교수(1973), 이철 등 민청학련 사건(1974), 손두익·전국술 등 울릉도 간첩단(1974), 김우종 교수 등 문인 간첩단(1974), 김우철 등 형제 간첩단(1975), 납북어부 간첩 정규용(1976), 김정사 등 재일동포 유학생 간첩단(1977), 석달윤·김정인 등 진도 간첩단(1980), 신귀영·신춘석 등 가족 간첩단(1980), 한국전력 검침원 간첩 김기삼(1980), 재일교포 간첩 이종수(1982), 나진·나수연 남매 간첩단(1981), 재일교포 간첩 이헌치(1981), 조총련 간첩 최양준(1982), 미법도 섬마을 간첩단(1982), 일본 취업 노동자 간첩 차풍길(1982), 납북어부 간첩 이상철·김춘삼·윤질규(1983), 조총련 간첩 조봉수(1984), 이준호·배병희 모자 간첩단(1985), 제주도 간첩 강희철(1986), 조총련 간첩 김양기(1986) 사건이 대법원의 재심 무죄판결을 받았다.

나의 한국현대사 1959-2020 | 유시민

경제논리로 설명하자면 이렇게 된다. 간첩 ‘수요’는 여전한데 ‘공급’이 줄었다. 간첩을 더 보내달라고 북한에 요청할 수는 없으니 공급부족 현상을 해소하려면 간첩을 직접 ‘생산’하는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해서 만들어낸 것이 바로 ‘한국산(made in Korea) 간첩’ 또는 ‘DIY(Do It Yourself) 간첩’이었다.

간첩 생산비를 적게 들이려면 가공이 수월한 ‘원자재’를 찾아야 한다. 그래서 조총련 인사들과 안면이 있는 재일동포 유학생, 귀환 어부, 외딴 섬마을의 어민, 동유럽 사회주의국가를 오간 경력이 있는 유럽 교민과 유학생, 반정부 민주화운동을 하면서 ‘불온서적’을 읽은 국내 지식인들을 잡아다 간첩으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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