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로옆에 새로 생긴 요릿집에는 다섯명의 귀신이 살고있다.

"처녀의 사령이라……. 나도 처음 듣는다.
그래서 그 처녀는 어떻게 되었느냐?"

―오카모토 기도
「쓰노쿠니야」, 『한시치 체포장*』

*『 한시치 체포장 半七捕物帳』 : 오카모토 기도의 연작 시대 소설. 에도 시대를 배경으로 쓴 추리 소설로, 일본 시대 소설·탐정 소설 초창기의 걸작

할아버지는 밥을 찻물에 말아 먹었다. 시치베에는 밥을 세 그릇이나 먹었고 세 그릇째에는 차가 아직 우려지지 않아 그냥 뜨거운 물에 말아서 먹었다.

―일을 하면 밥은 먹을 수 있어. 세상은 그렇게 되어 있거든.

시치베에는 그 시절 이야기를 할 때, 그를 붙잡아서 새 인생을 살게 해 준 할아버지의 이름을 말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냥 ‘할아버지’라고만 부른다. 사실을 말하면 시치베에라는 이름도 할아버지가 지어 준 것으로, 그때까지 그에게 이름 따윈 없었다고 한다.

"시치베에‘시치’는 일본어로 숫자 칠을 뜻한다

―나는 너라는 옷을 깨끗하게 빨기는 했지만 다시 지어 줄 수는 없어. 그래서 저 주인한테 맡긴 거다. 고맙게 생각해.

"지금 생각해 보면 꽤나 난폭하게 다시 지어 준 거지."

시치베에는 웃으며 당시의 일을 되돌아본다.

"하지만 덕분에 요리를 배울 수 있었어."

―네게는 그만한 실력이 있기 때문이지.

딸린 자식이 있었지만 이미 고용살이를 나가 있던 아이는 시치베에가 오사키를 아내로 맞은 지 얼마 되지 않아 고용살이 하던 곳에서 주인의 눈에 들어 사위가 되었고 곧 아이를 얻었다. 다시 말해서 시치베에는 아내를 얻었나 싶었더니 할아버지가 된 셈이다.

"나도 옛날에 누군가가 내 손을 잡아 준 덕분에 인생이 바뀌었어. 이번에는 내가 은혜를 갚을 차례지."

시치베에는 그렇게 말하며 오갈 데 없는 아이나 부모도 감당하지 못하는 엇나간 아이를 종종 데려다가 다카다야에서 키웠다.

오린은 튼튼한 아이였다. 아기 때도 배앓이 한번 한 적이 없고 큰오빠가 넘지 못했던 홍역의 벽도 탈 없이 넘어 다섯 살 여섯 살 나이를 먹어 갔다. 오린의 건강하고 밝은 목소리는 끊어져 가던 다이치로와 다에의 유대를 이어 주었을 뿐만 아니라, 이전보다 끈끈하게 만들어 주었다.

오린이라면 괜찮으리라.

그러나 그것도 결국 확신이 아니라 바람에 불과할 뿐이었다. 열두 살이 되던 해 봄, 서둘러 지는 벚꽃의 꽃잎이 첫눈처럼 마당을 하얗게 물들일 무렵, 오린은 고열로 쓰러졌다.

의외로 새 가게를 열기에 어울리는 장소를 찾기가 어려웠다.

고부신
봉록 삼천 석 미만의 하타모토와 고케닌 중 직책이 없는 자들

하타모토
쇼군가 직속 가신으로 쇼군의 알현이 가능한 무사

이 가게는 꼭 배 같네요. 오리나 가마우지와 함께 수로 위에 둥실둥실 떠 있는 것 같아요.

그렇군, 배라. 어울리지 않는가. 앞으로 우리 가족을 태우고 노를 저어 나갈 배다. 가게 이름도 후네야‘후네’는 일본어로 ‘배’라는 뜻라고 하면 되겠다.

‘대체 어떤 병인지, 저도 짐작이 가지 않습니다. 안됐지만 따뜻하게 해 주고 물을 주면서 지켜보는 수밖에 없겠지요…….’

마음속의 물음에 대답하듯 그림자가 한층 더 깊이 몸을 숙이고 오린의 눈앞에 얼굴을 내밀었다. 오린은 그것을 정면에서 보았다.

작은 여자아이였다. 오린보다 더 작다. 게다가 그 아이는―.

메롱을 하고 있었다.

메롱을 하고 있었다.

아무리 눈을 비비고 봐도 역시 그 아이가 오린 위를 덮치다시피 얼굴을 내밀고 메롱을 하는 모습이 보인다.

일본에서는 눈동자를 위로 하고 손가락으로 아래 눈꺼풀을 끌어내려 빨간 속살을 보이며 메롱을 한다

"이미 만났다니―그럼 그 사람들도 모두 무사님이랑 똑같은 귀신인가요?"

"그래. 새삼 놀랄 것도 없겠지."

"모두 귀신?"

"미안하구나." 무사가 또 목덜미를 벅벅 긁었다. "그 외에도 더 있는데."

"더요? 다 합쳐서 몇 명이나 있는데요?"

"나까지 해서 다섯 명."

"다섯 명이나 이 집에 원한을 갖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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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조 아이오이초 히토쓰바시 옆에 있는 다카다야는 주인 시치베에가 부엌칼 한 자루로 일으켜 크게 키워 온 식당이다.

이 식당은 일명 ‘마카나이 가게’, ‘도름집’이라고도 불리는, 소위 말하는 도시락 가게다. 🍱

사람의 생활에서 식사는 빼놓을 수 없고, 높으신 무사님도 배는 고픈 법이라 이것은 꽤 큰 장사였다.

우선 상대가 삼백 제후라도 대부분이 돈에 쪼들리고 있어서 깎을 수 있는 것이라면 발가락 끝의 가죽까지 깎을 기세로 아등바등 생활하는 집뿐이었다.

복작거리는 장사 경쟁자들을 피해 출입 도시락 가게의 자리를 움켜쥐려면 때로는 이문을 포기하고라도 싸고 맛있는 도시락을 배달해야 한다.

처음부터 상대가 정해져 있는 장사이기 때문에 오른쪽에는 의리가 있고 왼쪽에는 겸손이 있으며 위에는 조심스러움이 있고 아래에는 연줄이 있는 식이어서, 무엇이 어찌 되었든 일만 잘하고 요란하게 팔아 치우기만 한다고 해서 크게 번성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특히 신참이 파고들기는 어렵다.

튀김 포장마차의 주인은 얼핏 보기에 간장에 조린 것 같은 안색의 할아버지였는데 어째서인지 시치베에를 쫓아오는 다리가 위타천韋陀天처럼 빨라서 ‘앗’ 하고 생각했을 때는 이미 뒷덜미를 잡혀 덥석 끌어올려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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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일곱 살의 가을, 긴 수험 공부를 마치고 오늘도 컴퓨터 앞에 앉았다.

깜빡거리는 가로등의 소리와 옅은 낙엽소리. 아무도 없는 텅 빈 거리의 밤은 글을 쓰기에 완벽한 계절이다.

이 시기가 되면 나는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결정을 한다. 일 년에 한 번, 전국의 모든 수험생과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공모전에 출전하는 것.

모든 남학생의 동경의 대상인 그녀는 많은 러브레터를 받은 주인공이었음에도 그 누구와도 연애를 하지 않았다.

누군가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 걸까? 라고 생각하면
괴로웠다. 카나는 내 첫사랑이니까.

첫사랑에도 유효기간이 있는 걸까?
얼마 전부터 그녀의 건강은 급격히 악화되기 시작했고, 이후 혈우병이라는 큰 병에 걸렸다.

나중에, 엄마에게 들은 얘기로는 카나의 집안이 대대로 몸이 약해 지병에 걸리기 쉽다고 한다.

혈우병은 카나의 어머니께서 걸려 돌아가신 이후 카나에게 그대로 유전이 되었다고 한다. 나는 언젠가 카나를 다시 만날 것을 기대하며 수험을 치뤘다.

물을 한 가득 따른 머그컵을 가지고 방으로 가던 도중, 소파 한 가운데에 앉아 신문을 읽고 계시던 할아버지가 나를 부르셨다.

"아키라, 너에게 줄게 있단다."
할아버지는 내 손에 한 만년필을 쥐어 주셨다.

낡고 오래되어 보이는 갈색 만년필이었다.

손바닥에 살짝 닿았던 펜촉은 정말 부드러웠다.

"이건, 우리 후지와라 가문의 오랜 역사를 지닌 만년필이야. 무슨 일이 있더라도 이 만년필을 꼭 소중히 해야 한다."

"널 생각하며 열심히 만들었어."

"황혼의 소녀?"
나는 마우스를 움직여 작품을 클릭했다.
글을 쓴 사람은 "카나코" 라는 사람이었다.

[나는 어느 날 갑자기 혈우병에 걸렸다. 그것도 첫사랑에게 답장을 보내지 못한 채.]

[좋아했다는 말을 전하지 못한 것이 아직도 후회스럽다.]

그녀에게 답장이 온 것만으로도 걱정되었던 마음이 안정되었다. 또 다시 아픈 상처를 주기 싫으니까, 그때로 두 번 다시 돌아가기 싫었다.

[널 만나고 싶어.]
이 문장을 읽는 순간, 내 심장은 고동처럼 마구 뛰었다.

"카나 짱...."
펜촉이 모두 닳아서 이젠 카나를 위한 글을 쓸 수 없는데, 걱정과 슬픔이 동시에 끊임없이 밀려왔다.

집에 돌아가 나는 카나 짱을 위한 소설을 썼다.
손에 만년필을 꼭 쥔 채 간절한 소원을 빌면서.

"카나의 행복을 돌려주세요."
마지막 문장을 써내려 간 순간 만년필은 바람에 날리며 사라졌고, 이후 병원에서 카나의 병이 기적처럼 회복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병원에서 카나의 병이 기적처럼 회복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카나를 생각하며 쓴 글은 베스트셀러 작품이 되었고, 신문과 언론에서는 내 글이 소개되며 나는 인기 작가가 되었다.

나는 다시 한번 카나에게 진심을 전했다.
"카나 짱, 좋아해."

그렇게 그녀를 생각하며 쓴 ‘첫사랑의 만년필‘ 은 세상에서 가장 기적적이고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로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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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인터뷰에서 왜 무서운 이야기를 쓰느냐는 기자의 물음에 작가 미야베 미유키는 이런 대답을 한 적이 있지요. "부모자식간의 애틋한 정을 소설에서 그대로 묘사하면 듣는 사람이 머쓱해질 수 있지만, 그걸 잃어버리거나 위협받는 상황을 그리면 얼마나 소중한가를 비로소 떠올릴 수 있"다고.

"소행성 충돌이라는 것은 언뜻 보면 비일상적인 설정 같지만, 이 소설은 현실 사회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항상 의식하며 썼습니다. 멸망으로 향하는 세계 속에서 하루의 정의감이나 도덕관은 여러 번 흔들리지요. 어차피 다 죽을 테니까 무슨 일이 벌어지든 상관없지 않느냐고요. 하지만 어떤 상황에서도 소중히 여겨야 할 것이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하루 일행의 선택이 조금이라도 독자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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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에 아무도 없는데도 증거 인멸을 꾀하다니, 일단 비열하고 소심한 자야. 나 같은 사람이, 세상이 끝나는 날까지 살인범을 추적하며 다니는 인간이 너무나 무서운 거지. 내가 잡아내겠어."

잡아낸다고 하지만 그 후 어떻게 하겠다는 걸까. 얼마 안 남은 시간에 재판이니 이송이니 하는 복잡한 절차를 밟으리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지만, 강사의 표정이 너무 진지해서 차마 그렇게 지적할 수 없었다.

"……저어, 아가씨 소리를 들을 나이는 아닌 것 같은데요."

"몇 살이세요?"

"스물셋이요."

"아가씨라고 부르기에 딱 맞는 나이 아닙니까."

이 사람은 그 답답한 트렁크 속에서 이사가와 강사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생각만 해도 고통스러워 눈물이 나올 뻔했다.

한다 선생은 혼잣말처럼 "히즈미 씨라는 분이었나" 하고 중얼거렸다.

"내 말은, 하루 짱은 면허 따면 어디론가 가고 싶은 거잖아? 운전은 아직 서툴지만 전진과 후진만 할 줄 알면 충분하지. 이제 원하는 곳으로 출발하는 게 어때?"

"왜 갑자기?"

"하루 짱은 나 같은 인간이랑 어울리는 걸 어려워하잖아."

착한 아이, 착한 학생, 착한 친구, 착한 동료, 착한 사람이고 싶은데, 좋은 사람으로 비치고 싶은데 영 바람대로 되지 않았다. 그리고 세상의 종말이 눈앞에 닥친 지금 그 변신의 허울마저 벗겨지려 하고 있다.

"지구는 아직 끝나지 않았어요."

"지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라. 대단하군요."

"왠지 최근까지 누군가 타고 다닌 것 같은 느낌이네, 저 차."

"외골수로 착실하기만 한 것도 사람 질리게 하지."

"우리는 한국으로 밀입국할 거야. 한국에는 북조선 핵무기에 대비해 견고한 쉘터가 많이 건설되어 있다잖아. 거기라면 운석이 떨어져도 괜찮을 거라는 얘기를 들었어."

한국의 쉘터가 안전하다는 것은 말할 나위도 없는 헛소문이다. 불행한 수요일 이후 끝도 없이 생겨나는 가짜뉴스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아무래도 형은 그것이 어리석은 계획이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쉘터에 들어가면 진짜 안전하다니까. 어때, 같이 가자."

"그러니까 나중 일은 여러분이 서로 협조해서 어떻게든 해 보세요"

"부자들은 생존할 권리를 살 수 있어서 좋겠다."

"하지만 우주로 도망쳐본들 살지 어떨지 알 수 없잖아."

전혀 위안이 되지 못하겠지만 나는 그 계획의 약점을 지적했다.

강사가 핸들을 잡고 적당한 거리를 두며 여자의 자전거를 따라갔다. 거리를 두고 있다고 해도 도로에 다른 차가 다니는 것도 아니니 상대방도 뻔히 알 수밖에 없는 미행이었다. 여자도 미행당하고 있음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민트그린 자전거는 태평하게 계속 움직였다. 나의 불안감은 더욱 깊어졌다.

"아무리 쓰레기 같은 놈이라도 생명을 위협받지 않을 권리는 있으니까, 라고 할까. 잘 모르겠네."

"아니, 그 사람은 아마 전혀 반성하지 않았을 거야."

"그래도?"

"응. 그래도, 나는 반성하고 후회해."

"후회하세요?"

"그래. 후회해. 차라리 그때 내가 그놈을 때려죽였어야 했어. 그랬으면 와카나 짱이 죽지 않았지."

"네?"

"쓰레기 같은 자들은 한 놈도 남기지 말고 죽여야 해. 그게 어렵다면 전과자에게는 위치추적 목걸이라도 채워야 해. 나쁜 짓을 하는 순간 폭발해서 목을 날려버리는 걸로."

"경찰관은 자기 권력이 가진 폭력성을 이해하고 법률의 범위를 넘어서는 수사로 시민의 권리를 위협하는 일이 없도록 늘 노력해야 한다. 뭐 이런 식으로 말하는 거, 좀 우습지 않아?"

"전혀 우습지 않아요. 경찰관에게는 중요한 마음가짐 아닐까요?"

"그야 그렇지. 나도 이론은 알아, 이론은. 하지만 나로서는 지켜야 할 시민인지 뭔지에 범죄자가 포함되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단 말이야. 남의 생명이나 정신을 위협한 범죄자를 왜 굳이 배려해야 하지? 범죄자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격리해야지."

"나는 전부터 사형제도에 전적으로 찬성이었어. 빼앗긴 생명과 권리는 되돌아올 수 없는 거니까 흉악범을 감방에 몇 년 처넣어둔다고 죄가 씻기지 않잖아. 인과응보, 즉각 죽이면 된다고 생각했어. 지금도 그렇게 생각해. 그런데 세상의 조류는 사형 폐지이고, 전 세계의 형사법 연구자들은 ‘사형은 살 권리를 침해한다, 야만스럽고 잔학하고 비인도적인 제도다’라고 인식하고 있지. 다시 말하지만 나도 이론은 이해할 수 있어. 하지만 감정이 받쳐주질 않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어. 왜냐하면, 그렇게 되면 약탈한 놈이 이기는 거잖아."

타인의 인생을 위협한 악인에게는 목걸이라도 채워둬야 한다. 사람을 죽인 악인에게는 죽음으로 갚게 하자. 죄인은 무조건 엄하게 다스려야 하며, 그것을 위해서라면 경찰은 무슨 짓을 해도 상관없다.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그 생각은 바뀌지 않았다고 강사는 한숨과 함께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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