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야베 미유키의 장편을 통틀어 가장 귀여운 귀신들이 단체로 출동하는 소설 『메롱』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누구에게나 숨기는 일이 한두 가지는 있는 법이고, 두 가지가 있으면 세 가지가 있어도 이상하지 않아. 세 가지가 있으면 더 많이 있어도 이상하지 않다는 뜻이지. 자, 오린 너는 이제 그만 자렴. 내가 여기에 있으면 아무리 무더워도 시원하게 잘 수 있을 테니 부채는 필요 없을 거야. 뭣하면 자장가도 한 소절 들려주마.”

이 대사를 살짝 인용해서 이렇게 얘기하고 싶네요. 미야베 미유키의 소설이 있으면 아무리 무더워도 시원하게 잘 수 있으니 부채는 필요 없지, 라고.


인내상자 | 미야베 미유키 저,이규원 역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강인욱의 고고학 여행 - 미지의 땅에서 들려오는 삶에 대한 울림
강인욱 지음 / 흐름출판 / 2019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한편, 제국주의에 영합해 대중을 선동한 고고학자와 달리 전쟁 이후 참담한 사회 현실속에서 고고학 본연의 길을 걸어 그 학문적 성취를 이룬 고고학자도 있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1988년에 제작한 <이웃집 토토로>는 바로 제2차 세계대전 후에 엄마의 병간호를 위해 시골로 이사한 고고학자 가족들의 이야기이다. 주인공 두 자매가 숲속의 요정 토토로와 만나는 이야기를 믿고 동조해주는 유일한 사람인 아버지의 직업은 대학에서 시간강사를 하는 고고학자이다. 그런데 이 주인공 아버지는 실제 인물을 바탕으로 한다. 감독의 연출 노트에 따르면 아버지는 ˝젊은 고고학자로 대학에서 시간강사를 하면서 번역 작업으로 어렵게 생활한다. 지금은 혁명적인 새로운 학설을 담은 논문을 집필하기 위하여 강의할 때 이외에는 서재에 틀어 박혀 있다˝고 되어 있다.
감독이 모델로 삼은 실제 인물은 후지모리 에이지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를 통해서 후지모리를 알았고, 평소에도 자기가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꼽았다고 한다. 옆에서 지켜본 후지모리가 전쟁의 고통을 이겨내며 고고학을 연구하는 모습에서 힌트를 얻어서 이러한 설정을 만들어냈다고 한다. 그렇다면 후지모리가 생각하던 혁명적인 설은 무엇일까.
당시까지 일본에서는 한국의 청동기시대에 해당하는 2300년 전 야요이시대가 되어서야 쌀농사를 짓는 농경이 등장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후지모리는 그보다 훨씬 이른3500년 전인 죠몽시대의 중기에 이미 농사가 존재했다고 주장했다. 기존 학계의 권위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의 독창적인 설을 주장한 후지모리인지라 실제 삶도 그리 쉽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독창적인 가설 때문에 대학에 자리를 얻지 못하고 평생을 재야에서연구를 할 수밖에 없었다.
후지모리는 1930년대부터 또 다른 일본 고고학계의 민간영웅인 모리모토 로쿠지와.
함께 ‘도쿄고고학회‘를 창시했다. 하지만 동료였던 모리모토는 어렵사리 떠난 파리 유학중에 큰 병을 얻어서 요절했고, 후지모리는 홀로 고군분투했다. 고생 끝에 그는 1941년에 직접 출판사를 차리고 독자적인 고고학 잡지를 간행하는 등 활약했다. 하지만 곧바로불어닥친 전쟁의 소용돌이에서 그의 노력은 수포로 돌아갔다. 태평양 전쟁으로 전쟁터에 끌려간 후지모리는 다행히 살아남아 일본의 패망을 보르네오섬에서 맞이했다. 하지만 그 와중에 건강을 크게 해쳤고, 시간강사와 헌책방을 전전하다가 1973년에 세상을떴다.
하지만 일본의 많은 고고학자들은 그를 잊지 않았다. 재야에서 꾸준히 활동하던 그의모습에 일본인들은 열광했고, 그래서 지금은 가장 인기 있는 고고학자로 꼽힌다. 지금도재야의 고고학자들을 위해 ‘후지모리 에이지상‘이 제정되어 매년 수여되고 있다.
전쟁 이후의 참혹한 상황을 에둘러 표현한 영화인 <이웃집 토토로>에 그를 등장시킨것은 인간이 만들어 놓은 문명과 전쟁이라는 탐욕 대신에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사는 삶을 그리고자 하는 감독의 의도였던 것 같다. <이웃집 토토로>에서 숲속에 텃밭을 만들고 어린 자매가 토토로와 도토리를  주고받는 장면이 등장하는데, 이는 바로 후지모리가 그린 죠몽시대 농사의 모습과도 유사하다. 후지모리는 죠몽시대에는 쌀 대신에 도토리를 채집하고 수수 같은 잡곡을  텃밭에서 경작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후지모리의 가설은 2000년대에 들어서 학계의 폭넓은 지지를 받고 있다. 꽃가루 분석을 비롯한 여러 방법이 계속 개발되면서 죠몽시대에 원시적이나마 농사를 지었다는증거가 속속 발견되고 있다. 후지모리의 가설은 당시 부족한 자료임에도 불구하고 유물에 대한 통찰력과 유적의 위치 그리고 자연과 함께하는 삶의 방식을 종합적으로 검토해서 나온 것이기에 더욱 돋보인다.
에가미 나부오와 후지모리 에이지는 전쟁을 겪으며 살았던 동시대의 고고학자였다.
하지만 그들의 삶은 너무나도 달랐다. 한 명은 전쟁에 적극적으로 부역했고, 또 한 명은전쟁으로 인해 그의 학문이 빛을 발하지 못했던 불운한 고고학자였다. 각종 영화나 매체에서 주로 비추어지는 모습은 에가미와 같이 전쟁과 함께 사방을 다니면서 다른 나라의 유물을 찾는 모습이다. 하지만 실제 고고학의 가치를 실현하고 발전시킨 사람들은 후지모리와 같이 자신이 살던 자연 속에서 사소해 보이는 유물을 통해 진정한 과거의 모습을찾으려 했던 숨어 있는 고고학자들이었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레이스 2024-07-22 08:5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
그렇군요!
재밌네요, 이 책 집에 있는데,,, 강인욱 책들은 사놓기만 하고 아직 못읽었어요.

대장정 2024-07-22 08:56   좋아요 2 | URL
저도 읽은지 몇년되서 기억나는건 별로 없는데 대충 훝어보다보니 괜찮은 구절들이 많더라구요.
 

미지의 땅에서 들려오는 삶에 대한 울림

"고고학 이야기 중에서 가장 상큼하게 지적인 흥분을 일으키는 책이다!"

강인욱 교수는 고고학자로서 드물게도 유라시아를 전공으로 삼고 있다. 나는 우리인문 분야에 강인욱 교수 같은 폭넓은 시각의 현장 고고학자가 있음을 항시 든든하게 생각해 왔다. 그는 석사과정을 마친 뒤 곧바로 러시아로 유학을 떠나, 이후 시베리아, 몽골, 중앙아시아, 중국의 여러 유적지 발굴에 참여하고 이를 보고서와 저서로 펴낸 바 있다. 이 책은 그가 지난 20여 년간 발굴 현장에서 겪은 체험을 기록한일종의 고고학적 에세이다. 이 책에서 저자는 유물을 통하여 과거의 삶을 복원하는고고학이라는 학문의 참 가치와 고고학자로서의 보람을 말함과 동시에 우리가 살고 있는 한반도 역시 유라시아 대륙의 일부라는 사실을 새삼 일깨워주고 있다. 나는 강교수의 이 생생한 증언록을 통해 고고학이라는 하나의 인문학이 대중과 행복하고도 즐겁게 만나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해 마지않는다.

_유홍준 미술사가, 명지대 석좌교수

우리가 들어본 고고학 이야기 중에서 가장 상큼하게 지적인 흥분을 일으키는 책이다. 그동안 고고학의 발굴과 연구과정의 뒷이야기를 쓴 책들이 있었지만, 이 책은유물에서 나는 오래된 곰팡이 냄새가 향기롭게 느껴지게 적었다. 고고학자는 몸은땅 속에 있어야 하지만 머리는 하늘에서 구름을 타고 훨훨 다녀야 하는 사람이다.
세상의 모든 경우의 수를 꿰고 있어야 하고 상상력이 풍부하여 끊임없이 가설을 만들고 검증하는 만능학자이기도 하다. 강인욱 교수는 이러한 고고학자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 학자이자 유물의 뒤에 숨겨져 있는 사람들을 따뜻한 감성으로 생각하는 고고학자이다. 유라시아 대륙을 넘나드는 풍부한 고고학적인 지식 그리고 시간을 오르내리는 인간 경험을 토대로 유물을 맛깔스럽게 필자의 시각에서 해설한 새로운 설명들은 고고학을 멀리서 경원하는 독자들에게는 놀라운 흥분을 선사할 것이라 기대한다.
_배기동 고고학자

강인욱 교수는 이야기꾼 고고학자이다. 이 책에서 그는 먼 과거로부터 최근에 이르기까지 인류의 삶과 죽음에서 만나는 여러 주제를 유적과 유물로 쉽고도 흥미 있게풀어낸다. 더불어 그 자체가 역사가 되어 버린 여러 나라 고고학자들의 갖가지 발굴 에피소드도 종횡무진 다루고 있다.
그의 이러한 글쓰기는 일찍이 러시아 유학에서 시작하여 수십 년에 걸쳐 유라시아대륙의 수많은 유적 현장과 박물관, 연구소를 두루 섭렵하고 체험하여 얻어진 소중한 결과물인 것이다. 친근한 주제를 쉽게 풀어낸 고고학 교양서로서 일반시민과 학생들은 물론이거니와 개발에 따른 구제발굴 현장에 내몰린 한국의 젊은 고고학도들도 단숨에 끝까지 읽어낼 수 있고 새겨볼 만한 고고학 안내서라 생각되어 이에적극 추천한다.
_이청규 한국고고학회 회장, 영남대 교수

제가 고고학의 진정한 의미를 되새기게 되었던 건 지난 2016년 러시아에서 조선시대의 미라와 관련한 발표를 했을 때였습니다. 당시 한국의 미라 자료를 소개하면서 1998년에 안동에서 발견된 이응태 묘의 출토품을 다시 살펴보게 되었습니다.
31살에 요절한 남편을 떠나보내는 부인이 써서 무덤 속에 넣어준 마지막 편지인 <원이 어머니의 편지>는 지금 다시 떠올려 보아도 가슴을 뭉클하게 합니다.

"당신 생전에 함께 누워서 다른 사람도 우리처럼 서로 어여삐 여기고 사랑할까요라고 말하곤 하셨지요. … 이 편지를 보시고 제발 오늘 꿈에서만이라도 나와 주세요."

저는 이 책에서 유물을 통해 과거 사람들과 더 가깝게 만나보고자 합니다. 미지의 땅을 찾아가 수많은 유물과 과거의 사람들을 만나 느낀 감동을 여러분께 전해드리고 싶습니다. 발굴 현장에서 돌아오는 차 안에서 혹은 흐릿한 숙소의 등불 아래에서 메모했던 저만의 노트를 이제 꺼내 보이겠습니다.

잔설이 남아 있는 울란바토르에서 강인욱

고고학, 과거와 미래를 잇는
현재라는 다리

"시간여행은 너무나 위험해. 차라리 여자처럼 다른 우주의 신비를 연구하는 게  나을지도."
영화 <백 투 더 퓨처 2>에서 에머트 브라운 박사가 한 말

영화에서 이 괴짜 박사는 결혼을 안 한 노총각으로 나온다.

언제부턴가 영화나 드라마에서 시간여행을 하는 상황이 흔해졌다. 다른 시간대로 빨려 들어간다는 설정은 어쩌면 21세기에 우주여행을 떠나는 것보다도 더 비현실적이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시간여행이라는 테마에 쉽게 몰입한다. 그만큼 우리는 미래로의 혹은 과거로의 여행을 바라기 때문일 것이다.

과거의 유물을 찾고 연구하려는 인간의 욕구는 보물찾기가 아니라 바로 현재의 삶을살아가는 지혜를 얻기 위해서였던 셈이다. 그렇다면 인간이 최초로 과거의 유물을 인식하는 고고학적인 활동을 한 때는 언제였을까. 현재 알려진 가장 구체적인 증거는 터키에위치한, 8000년 전의 것으로 알려진 차탈 후유크(또는 차탈 회익) 유적이다.

시간여행을 꿈꾸는 인간의 판타지는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고고학이 발달해서사람들이 꿈꾸던 찬란한 과거 같은 건 없다고 밝혀진다 해도 혹은 인류가 바라마지않는미래는 결코 오지 않는다고 해도, 사람들은 여전히 시간여행을 꿈꿀 것이다. 그 이유는지금이라는 현실에서 도피하고자 하는 인간의 본능과 색다른 시공간을 경험하고 싶어하는 호기심에 있다.

죽은 이를 위한 사랑의 흔적
"공동묘지의 언덕 위에서 나는 영생을  갈구하던 영혼들의 얼굴을 보았다."
- 드미트리 플라빈스키

"If you live each day as if it was your last, someday you‘ll most certainly be right."
2005년 스티브 잡스가 스탠포드대학교 졸업식 축사에서 이야기한 것이다. 보통 "당신이 매일 마지막 날인 것처럼 살다보면 언젠가 당신은 바르게 살게 될 것이다"로 해석한다. 하지만 그 말을 듣는 청중들은 웃기 시작했다. 그 뜻이 중의적이기 때문이다. "매일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살아라. 결국은 당신은 그 말이 맞다는(즉, 죽는다는 것을 알테니"라는 의미도 된다. 이 당시 스티브 잡스는 암 판정을 받고 치료를 하던 중이었다.
아마 잡스에게도 삶은 중의적인 의미로 다가왔을 것이다.

영화 <신과 함께>에서는 저승사자가 삼도천을 헤쳐 나가는 장면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저승으로 가는 길을 건널 수 없는 강을 건너가는 과정으로 생각한다. 그리스 신화의스틱스가 그러하고 우리의 삼도천이 그러하다. 그리고 많은 고고학적 유물에서도 그러한 증거들이 나온다. 4000년 전 유라시아를 가로질러 중국 신장 지역에 위치한 유적인샤오허에는 사막이라는 기후적 특징 덕에 거의 완벽하게 매장 당시의 형태가 보존되어있다. 이 무덤은 마치 수십 대의 배가 무리를 지어 사막을 가로지르는 듯한 장관을 연출한다. 그 관의 끝에는 마치 배의 노처럼 생긴 표식, 즉 묘비석을 세웠다. 사막에서 발견된 샤오허 무덤은 학익진을 펴고 바다를 헤엄치는 배처럼 사막에 펼쳐져 있다.

불에 깃든 황홀과 허무
"만약 네가 먼저 잿더미로 되지 않는다면어떻게 다시 태어날 수 있단 말인가."
니체, 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중에서

불의 사용과 인류의 진화
1991년 11월, 록스타 프레디 머큐리의 사망 이후 그의 집안은 불을 숭배하는 조로아스터교를 믿는 파르시라는 것이 알려졌다. 그의 가족은 프레디 머큐리를 조로아스터교식으로 장례를 지내길 원했다. 전통적인 조로아스터교의 경우 조장이 원칙이다. 시신을잘게 해체해서 독수리가 쪼아 먹은 후에 남은 뼈를 항아리에 담는 방식이다. 하지만 그의 가족은 영국에서 살았기 때문에 전통적인 방식으로 하지 않고 교회에서 조로아스터교 사제가 주재하는 식으로 장례를 치렀다. 이 사제는 프레디 머큐리의 장례식 전 과정을 고대 아베스타어로 진행했다고 한다. 장례식 후에 그의 시신은 화장되었고, 유골은지금도 어딘가에 비밀리에 보관되어 있다. 프레디 머큐리의 죽음은 에이즈라는 질병과조로아스터교라는 종교에 대한 관심도 증폭시켰다.

술, 신이 허락한 음료
"진실은 와인에 있다."
-라틴어 속담

성스러운 두려움 느끼며 두 눈을 감을지니
그는 꿀 같은 이슬을 빨고
천국의 우유를 마실지니

신에게 가까이 가기 위해
"Lucy in the sky with diamonds."
- 비틀즈

이 노래는 하늘을 헤엄치는 루시라는 여성을 묘사한 것이다. 1960년대 유행하던 LSD의 환각을 경험한 비틀즈의 멤버들이 만들었다. 노래 제목의 앞글자만 따면 바로 LSD가 된다. 한편, 고고학적으로도 의미가 있는 노래이다. 에티오피아에서 최초의 여성 고인류를 발굴했던 고고학자들은 당시 현장에서 듣던 이 노래에서 착안해 그 여성을 ‘루시‘라고 불렀기 때문이다.

마음을 울리는 소리 없는 음악
"말이 사라지고 나면, 음악이 시작된다."
-하인리히 하이네

샤먼과 뮤즈
2015년 카자흐스탄의 세계문화유산인 탐갈리 암각화를 조사했을 때였다. 알마티에서 차로 다섯 시간을 달리면 병풍처럼 늘어진 바위산이 나온다. 그 바위산 곳곳에는3000년 전에 그려진 암각화들이 빼곡하게 채워져 있다. 유라시아 곳곳에 암각화 유적이 있지만, 특히 탐갈리 유적은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될 만한 가치가 충분했다. 샤먼을둘러싸고 춤을 추는 그림은 생동감이 넘쳐 마치 차가운 돌에서 음악소리가 나는 것만 같았다. 탐갈리 암각화에서 느껴지는 생동감은 유라시아의 어느 유적에서 찾을 수 없을 정도로 독보적이다.

빛바랜 유물에 숨어 있는 화려함
"색은 영혼을 직접 올리는 힘이 있다."
바실리 칸딘스키

흉노의 기동력 있는 기마술과 가공할 철제무기의 위력은 유라시아 최강이었다. 기원전 3세기에 흉노에 맞서 만리장성을 쌓다 국력을 소진한 진나라는 멸망했고, 그 다음에등장한 한나라 또한 흉노의 존재 때문에 골치 아파했다. 흉노를 계승한 훈족은 유럽사를바꿀 정도였다.

한나라도 처음에는 진시황처럼 무력으로 흉노를 꺾으려 했다. 한나라 고조 유방은 기원전 200년, 흉노 토벌에 나섰지만, 오히려 백등산 지역에서 포위되어 죽을 처지에 놓였다. 유방은 흉노 선우의 왕비에게 뇌물을 바쳐 가까스로 살아남았는데, 중국 군대를다 무찔러 버리면 앞으로 조공을 받을 수 없다는 왕비의 얄팍한 생각 덕분이었다.

백등산 전투 이후 한나라의 정책은 바뀌었다. 한나라는 무력으로 흉노에 대응하기보다는 다양하고 아름다운 색깔의 선물로 흉노의 마음을 흘리기 시작했다. 한나라는 매년정월에 엄청난 양의 비단, 칠기 등의 사치품은 물론이고 중국의 4대 미인으로 꼽히는 왕소군을 비롯한 공녀들을 바쳤다. 한나라 조정이 받은 경제적 타격은 컸다. 하지만 조공품의 공세를 통해 흉노의 풍습을 바꿀 수 있었다. 원래 봄과 가을에만 모이던 흉노의 부족장들은 중국으로부터 받은 공물을 나누기 위해 한겨울인 정월에도 모였다. 유목민족이기 때문에 땅이나 곡식이 아니라 전쟁으로 얻은 전리품을 부하들에게 나눠 주는 것이중요한 통치수단이었다. 그런데 중국의 조공품이 매년 들어오게 되니 흉노로서도 굳이주변 지역을 정복할 동기가 사라졌고, 점차 그 세력이 약화되기 시작했다.

2000년 전 유라시아의 최대 군사강국이었던 흉노를 무너뜨린 것은 강대한 군사력이아니라 그들의 마음을 간파하고 흔들던 중국의 화려한 사치품들이었던 것이다. 단조로운 초원의 빛깔에 싫증을 내어 아름다운 빛깔을 탐한 결과가 나라의 멸망이라니. 진정한경국지색은 이런 것이 아닐까.

지난 세월의 향기
"향기는 말, 외모, 감정이나 의지의 힘보다 강한 설득력을 가지고 있다."
파트리크 쥐스킨트, 향수:어느 살인자의 이야기 중에서

발해인들도 돼지고기를 좋아했을까
"당신이 무엇을 먹는지 말해보시오,
그러면 난 당신이 누구인지 말해보지요."
브리야 사바랭, 미식의 생리학 중에서

중국 황제도 반한고 조선의 젓갈
"오뉴월 보리밥엔 새우젓이오. 한겨울 김치국엔 어리굴젓이오. 장장 나지 않는 꼴뚜기젓이오. 막걸리 안주 삼는 갈치젓일세."
〈새우젓 파는 소리〉(노동요)

몸에 새겨진 시간의 기억

그는 이발사의 비누칠, 면도, 마사지에 몸을 맡겼다.
이발사는 돈을 더 받지도 않고 그의 어깨와 등도 솜씨좋게 주물러서 근육을 풀어주었다.
왕릉은 새로 깎은 머리에 시원한 바람이 스며드는 것을 느끼며 중얼거렸다.
"평생 한 번이니 괜찮아!"
펄벅, 「대지」 중에서

어느덧 우리는 몸으로 느끼는 기억이 적어지고 있다. 영화 <루시>의 여주인공(스칼렛요한슨)이 약물의 효과로 인해 자신의 모든 인생을 기억할 수 있게 되었을 때, 가장 먼저한 행동은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어 자신이 모유를 먹은 그 순간과 자신의 이마에 했던수천 번의 입맞춤을 기억한다고 말한 것이었다. 내게는 아주 인상적인 장면으로 남아 있다.

파괴와 복원,
고고학 발굴의 패러독스
"고고학 발굴이란, 일종의 유적 파괴 행위이다."
김원룡(전 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 교수)의 정년논총에 수록된 회고록에서

고고학을 꽃피우게 한 제국주의
"이 3억 인의 인도인이 열등한 민족이고우리는 우수한 인종이라고 말하는 것은 아주 흥미 있는 일이었지요."
레오나르드 펄, 돼지와 진주 중에서

전쟁 속의 고고학
"모든 페이지에는 승리가 가득하다.
그 누가 승전 잔치를 준비했는가?
10년을 두고 위대한 영웅들이 탄생하고 있다.
그 대가는 누가 치렀는가?
너무나 많은 기록만큼이나 생겨나는 너무나 많은 의문들."
베르톨트 브레히트, <어느 책 읽는 노동자의 의문> 중에서

모티머 휠러는 말했다.
"고고학은 과학이 아니다. 그것은 전쟁이다."
전직 군인으로 영국 식민지였던 인도의 고고학과 군사법에 의거한 현장 고고학의 기틀을 세웠던 영국의 고고학자.

문명은 짧고 인생은 길다
"문명이란 어둠과 혼돈의 깊은 바다 위에 떠 있는 얇은 얼음장과 같다."
-워너 헤어초크

그들은 왜 유물을 위조했는가
"조상의 위대함이 나의 위대함을 증명하지는 않는다."
정예푸

고고학자의 시행착오와 해프닝
"비판받기 싫다면 아무 짓 하지 말고, 아무 말도 마시오. 그저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되시길."
엠버트 허버드

황금유물을 둘러싼 운명들
"난 황금 구덩이를 두 번 발견했지요. 영광을 얻기위해서가 아니라 유물에 숨겨진 진실을 위해서요."
아프가니스탄 황금을 발굴한 고고학자 사리아니디

고고학이 밝히는 미래
"전에 있던 것도 다시 있을 것이며이미 한 일도 다시 하게 될 것이니세상에는 아무것도 새로운 것이 없나니."
전도서 1장 9절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최초에 말씀이 있었다." 나는 계속 말했다. "그렇다면 말에서 신이 태어날 수도 있다는 뜻이지."

일찍이 인간은 믿었다. 신이 세계를 창조했다고. 그러다 어느 순간 말했다. 신은 죽었다고. 그래서 세계와 인간만이 존재한다고.

신이 죽을 수 있다면 다시 태어날 수도 있다. 신이 없는 세계에서 인간이 신을 잉태하면 된다. 지금이야말로 말이라는 ‘정보’를 본떠 만들어진 이 세계에 ‘정보’에 의해 창조된 신을 만들어야 한다.

지상을 살아가는 우리의 키에 어울리는 새로운 신을.

나는 예언자였던 걸까, 죄인이었던 걸까. 말이 신을 만든다면, 사람이 신을 만든다면 사람은 신을 쓰러뜨릴 수도 있는 걸까. 신의 잘못을 메시아가 바로잡을 수도 있는 걸까.

나의 신이여, 나는 믿고 있습니다. 이 손에 새겨진 피의 표식은 성흔이 틀림없다고.

∷ 가모 저택 사건

역사가 먼저냐, 인간이 먼저냐. 영원한 수수께끼지. 그렇지만 난 이미 결론을 내렸어. 역사가 먼저야. 역사는 자기가 가려는 쪽을 지향해. 그것을 위해 필요한 인간을 등장시키고, 필요 없게 된 인간은 무대에서 내리지. 때문에 개개의 인간이나 사실을 대체하더라도 상관없는 거야. 역사는 스스로 보정하고 대역을 세우면서 사소한 움직임이나 수정 등을 모두 포용할 수 있거든. 그러면서 내내 흘러가는 거지.

∷ 이유

노부코는 언젠가 국어선생님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사람은 ‘보다’라는 단순한 동작을 못한다고 한다.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은 ‘관찰하다’, ‘내려다보다’, ‘재보다’, ‘노려보다’, ‘쳐다보다’처럼 특정한 의미가 있는 눈동자 동작뿐이고, 그냥 단순히 ‘본다’는 동작은 할 줄 모른다는 것이다. 과연 노부코를 포착한 된장국 아저씨의 눈동자는 그가 아니면 의미를 알 수 없는 어떤 움직임을 보여주고 있었다.

∷ 누군가

어린애는 모든 어둠 속에서 괴물의 모습을 찾아낸다. 불쑥 내 머릿속에 그런 말이 떠올랐다. 어디서 읽은 구절일까? 육아 관련 책인가? 그래서 부모들은 애들이 뭔가를 두려워할 때 무시하고 웃어넘겨서는 안 된다.

믿을 수 없을 정도의 행복 속에서 그것을 빼앗기지 않을까 불안해하지 않고 살기 위해서는 얼마만큼의 배짱이 필요한 걸까. 그게 양동이 하나의 분량이라고 한다면 내가 가지고 있는 건 한 컵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이 컵이 양동이로 자라리라는 전망도 없다. 결혼한 지 칠 년. 나는 언제나 내 컵을 소중히 들고 다녔다. 작지만 전혀 없는 것보다는 낫다.

∷ 화차

특히 젊은 사람들이 이런 속임수에 걸려들기 쉽습니다. 소비자신용은 젊은 층 이용자 개척에 힘을 쏟고 있으니까요. 어느 업계나 마찬가지겠지만, 기업은 고객에게 달콤한 말밖에 안 합니다. 이쪽이 현명해지는 수밖에 없어요. 그런데 현 상태에서는 그 부분이 뻥 뚫려 있는 겁니다. 대형 도시은행에서 학생용 신용카드를 발행한 지 올해로 딱 이십 년째인데, 그 이십 년 동안 어느 대학교가, 고등학교가, 중학교가 이 신용사회에서의 올바른 카드 사용법을 지도했습니까? 그것이야말로 지금 당장 시작해야 하는 일인데 말이죠. 도립 고등학교에서는 졸업을 앞둔 여학생들을 모아 메이크업 강습을 하는 모양인데, 그렇게 멋을 부릴 여유가 있으면 신용사회로 나가는 데 필요한 기초 지식을 가르치는 강습도 같이 해야 옳은 거 아닙니까?

∷ 낙원

아카네는 강한 에너지와 지나칠 정도로 예민한 감성을 지니고 있었다. 아카네의 자아의 중심에는 한결같은 욕구가 있었다. 그 어느 것이나, 잘만 펼치면 아카네가 남들 못지않은 성숙한 여성으로 커가는 데 도움이 될 만한 요소였을 것이다.

∷ 우리 이웃의 범죄

세상에는 불공평한 일 따위는 얼마든지 있다는 사실 말이다. 선생님도 부모님도 "노력해라, 노력하면 보답받을 거야"라고 하지만, 말하는 목소리에 힘이 실려 있지 않은 이유는 본인들 삶 주변에서도 비슷한 일이 잔뜩 있기 때문이리라. 그런 것도 모르고 "노력하자, 노력하면 보답받지 못할 일은 없어"라고 진지하게 받아들이며 자라 버리면, 어른이 되고 나서 자기를 차고 월급을 더 많이 받는 남자와 결혼해 버린 옛 애인을 죽여서는 보스턴백에 쑤셔 넣어 내다버리는 전개가 되는 거다.

∷ 레벨 7

닭과 달걀이다. 어느 쪽이 먼저지? 어린 시절의 다케조가 자신이 착한 아이가 되고 싶어 하며, 장난친 죄를 누군가 다른 친구에게 덮어씌운 게 발단일까. 아니면 두뇌가 명석하고 ‘착한 아이’인 다케조를 주위에서 시기하며 약간 따돌린 것으로부터 모든 게 시작되었을까?

어느 쪽이든 먼 옛날 일이다.

∷ 쓸쓸한 사냥꾼

그동안 가게가 큰 적자를 내지 않고 굴러갈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가바노 유지로가 생전에 확보해 둔 손님들이 좋은 사람들이었다는 사실과 ‘즐거움을 주는 책만 취급한다’고 하는 경영 방침 덕분이었으리라.

책이란 함부로 남에게 선물하는 게 아니지. 뭔가를 준다고 하는 것은 강제하는 일이기도 하잖아? 관심 없는 물건이라면 받는 입장에선 오히려 부담이지. 대개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남에게 권하기는 해도 선물은 하지 않는 것 같은데.

∷ 이름 없는 독

이 넓은 세상에는 우리의 상식 범위 안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사고를 가지고, 그 사고에 따라 행동하는 사람들이 우리가 막연히 예상하는 것보다 훨씬 많다. 특히 도시에서 살아가다 보면 싫어도 깨닫게 된다. 하지만 그런 사람이 이렇게 폭발적으로, 바로 옆에 출현하게 되면 아무래도 어떻게 반응해야 좋을지 모르게 된다. 화가 나면서도 공포를 느끼게 된다. 하지만 그런 감정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액션으로 연결해야 좋을지 알 수가 없다.

∷ 마술은 속삭인다

"마모루, 자물쇠라는 건 말이지, 다름 아닌 사람의 마음을 지키는 거란다."

네 아버지는—할아버지는 슬픈 듯이 말했다.

"자물쇠를 따는 기술이 있는 사람이 아니었어. 여벌 열쇠 하나도 혼자서 못 만드는 사람이었지. 그런데도 해서는 안 될 짓을 하고, 다른 사람의 돈에 손을 대고 말았어. 그건 많은 사람들이 맡겨 놓은 마음의 자물쇠를—그걸 ‘신용’이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다만—멋대로 여는 짓이었지.

∷ 대답은 필요 없어

어떻게도 할 수 없는 일은 있어.

태어났을 때부터 따라붙어 다니는 읽기 힘든 희귀한 성姓처럼.

아무리 연습해도 극복할 수 없는 서투름과 같이.

어쩔 수가 없는 것은 있어.

불문율

"지하도의 비라."

아사코는 몸에서 접시를 떼고 그녀 쪽으로 돌아섰다.

"계속 지하에 있으면 비가 내려도, 줄곧 내려도 전혀 눈치채지 못하지? 그런데 어느 순간 별생각 없이 옆 사람을 보니 젖은 우산을 들었어. 아, 비가 내리는구나, 그때 비로소 알지. 그러기 전까지 지상은 당연히 화창하리라고 굳게 믿었던 거야. 내 머리 위에 비가 내릴 리가 없다고."

어수룩하지, 하고 그녀는 말했다.

"배신당할 때 기분이랑 참 비슷해."

∷ 고구레 사진관

그런데 요즘 들어 다시 슬금슬금 되살아나는 것 같았다. 처음부터 아예 ‘재미 삼아’ 하는 거라고 익스큐스를 끝낸 텔레비전의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이나 명백하게 픽션인 영화가 단서가 되었다. 70년대 당시의 열광과는 다른 종류의 좀 더 오락에 가까운 취급 방식이긴 하지만 여전히 심령사진이나 심령 영상은 존재하며 사진에 유령이 찍히는 일이 있다는 ‘상식’도 건재하다. 요즘에는 오로지 인터넷으로만 정보가 퍼져나가 도시 전설화하는 패턴이 많다고 한다.

∷ 스나크 사냥

아 참, 『스나크 사냥』이란 이야기 아세요? 이것도 슈지 씨가 해준 이야기예요. 루이스 캐럴이란 사람이 쓴 아주 이상한, 긴 시 같은 건데 스나크라는 것은, 그 이야기에 나오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괴물 이름이에요.

그리고 그걸 잡은 사람은 그 순간에 사라져 버리죠. 마치 그림자를 죽이면 자기도 죽는다는 그 무서운 소설처럼.

"우리는 피해자끼리 서로 죽이고 상처 입힌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군요"라고요.

게이코 언니는 어떻게 생각해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청탁병탄"
도량이 커서 선악을 구별하지 않고 받아들인다는 뜻

미성년자였기 때문에 소년 본인에 대한 프로필은 보도할 수 없었다. 그래서 살해된 그의 부모가 기삿거리가 되었다.

"지방 사람들은 도시 사람보다 어수룩해 보여도 한번 안 된다고 마음먹으면 요지부동이에요. 어머니 입에서 가즈미는 그 여자 아이고, 내 손자라고 생각한 적은 없다는 말을 듣고 귀를 의심했지만서도."

"걸리면 뭐든 다 들통이 나는군요."

외삼촌은 유전자 검사로 고지로와 가즈미가 부자지간으로 판명되는 것이 두려웠던 게 아닐까? 매사에 눈치가 빠른 인물이라면 그런 식으로 위기를 관리하는 것이 어울린다.

"지금도 시바노 가즈미라고 불러요. 나는 반대했습니다. 데라시마라는 성으로 바꾸자고. 그런데 가즈미가."

―아버지의 가족들이 불편해할 거예요.

자기를 학대하고, 보험금을 노려 살인까지 계획했던 어머니에게 죄송함을 느낀다. 그것이 시바노 가즈미에게는 진정한 갱생일까.

그런 의문이 내 머릿속을 스쳐갔다. 그게 타당한 선악의 구별일까. 본인은 정말 그렇게 믿고 있을까.

"‘검은 메시아’라고 합니다. 인간이 아니고 괴물 같은 거죠. 그게 여기저기서 다른 사건을 일으킨다고 합니다. 아이를 학대하는 부모나, 아이를 희생물로 삼는 범죄자를 퇴치하고 있다는 거예요."
그 괴물을 시바노 가즈미가 보았다고 한다.
―정말이에요, 아버지.
그 괴물은 나예요.

인터넷 사회를 그다지 잘 알지는 않지만, 거기서 오가는 이야기들이 항상 ‘진실’이고 ‘진정한 자신’을 이야기한다고 믿을 만큼, 나는 순박하지 않다. 특히 이런 주제를 둘러싸고는 단순하게 이야기가 흘러가는 양상이 재미있어 끼어드는 사람도 있다. 그런데 데루무의 주장에 동의하는 사람들이 올리는 글에는 그들을 그렇게 반응하게 만드는 흥미 이상의 무언가가 전해졌다.

―그 사람들은 그냥 주저앉아서 언젠가 구원받을 거라고 생각할 뿐이니, 나로서는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잖아요.
―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어요.
구원을 기다리는 것으로 만족하지 못하는 자들.

―아버지, 아무리 나쁜 놈이라도 죽어 마땅한 사람은 없어요. 내가 한 짓은 잘못된 거예요.

―자기들만이 진실을 안다고, 정의를 행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결국 그렇게 되어 버린다구요.

유체이탈은 일정한 조건하에서 건강한 사람이라도 경험할 수 있다. 하지만 시바노 가즈미에게 이것은 일종의 긴급 피난이자, 경도의 괴리 증상이었으리라. 그가 처한 가혹한 상황을 생각하면 얼마든지 가능한 이야기다.

청소년 사건은 대부분 학교나 가정에서 발생한다. 학교와 가정은 이 세상에서 가장 굳게 닫힌 밀실이다. 제삼자의 눈으로 봤을 때 밀실에서 일어난 사건은 피해자와 가해자가 분명해도 결말은 늘 애매모호하다. 구원받아야 될 자가 구원받지 못하고 상처는 그대로 방치된다. 가해자는 보호를 받아 제재받지 않는다.

죄악이 지상을 활보하고 있다. 정의의 가치는 티끌보다 가벼웠다.

"그래도 우연일 뿐이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었어요. 다만 세상은 아직 쓸 만하구나. 우연이 정의를 행사할 때도 있으니까."

친딸을 건드릴 만큼 정신의 균형을 잃어버린 남자가 액셀과 브레이크를 혼동해서 실수를 저질렀다. 크게 이상한 일도 아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