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일 거야."
또 시작이다. 상은이의 말버릇. 막 담배 구매를 시도하다 퇴짜를 맞고는 애먼 아르바이트생에게 저주를 날린 참이다.

"뭘 더 가져가려고?"
더는 뺏기기 싫다. 무엇으로 변했는지도 모르는 채 변해버렸는데 더 나빠질 수는….

근거는 없지만 알 수 있다. 이 거리는 함정이다. 알바생은 미끼다. 그래서 알아채지 못했던 거다.

"맞아요. 자세히 설명하긴 힘들지만 지금 분명히…."
"내 눈엔 그렇게 보이지 않는데."

"너, 혹시 그런 생각 안 들어? ‘왜 쟤가 미친놈인 줄 미리 알지 못했지?’ 이 얘길 왜 하냐면, 나는 보자마자 알았거든. 너, 알맹이 어딘가가 없어졌지?"

"넌 몰랐는데 나는 아는 이유를 말해줘? 그건 말이지, 범위의 문제야. 박살난 영역이 작아도 잘 안 보이지만, 그 반대의 경우에는…."

"아예 종자가 달라지거든."

"여유 잡는 건 다 그럴 만하니까 그래. 하지만 지루하니 여기서 끊자. 잘 가!"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 앞으로 앞으로…."
열어놓은 창문에서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함께 노래가 들렸다.

호영은 욱신대는 어깨를 붙잡은 채 집 주위를 돌았다. 콘크리트 담은 뒤틀리고 금이 갔어도 제 역할을 다했다.

"아씨. 야, 내 얼굴이 호구 같아?"
"너만 모르는 사실이지."

이상했어. 그렇잖아. 아파트를 돌아다니면서 초인종에 자기 침을 묻히는 사람이라니. 이상하잖아.

무심코 거둬들이는 눈길에 낮달이 걸렸다. 낮달의 위쪽은 임신한 엄마 배처럼 둥글고 아래쪽은 희끄무레하게 부옇다.
"

용역들은 바리케이드 안에 숨어 지내는 오염자들을 바퀴벌레만도 못하게 여긴다. 오염지역 철거주택조합에서 보상금을 한푼이라도 더 뜯어내기 위해 고용된 사람들이다보니 깡패나 조폭같이 험상궂게 생긴 건 기본이고 하나같이 힘깨나 쓰는 덩치들이다. 철거자들도 무서워 함부로 대하지 못한다. 용역들은 무법천지의 바리케이드 안에서 제일 무서운 존재라고 할 수 있다.

그중 ‘저주 편’은 인간의 본능에 충실한 소재를 다루고 있습니다. 저주라는 것은 결국 원한과 욕망, 증오의 산물이기 때문입니다. ‘저주 편’은 무엇보다 월영시라는 공간과 깊이 결부되어 있습니다. 다른 도시였다면 단순히 증오와 미움만으로 끝날 수 있던 일들이 월영시라는 공간과 결합이 되면서 폭발하듯 부풀어 오르는 것입니다.

만약 인간이 가진 미움과 증오를 눈으로 볼 수 있도록 형상화할 수 있다면 기괴한 일들이 벌어질 것이 분명합니다. 월영시란 그런 것이 가능한 공간입니다. 저주가 단순히 저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직접적으로 누군가를 해할 수 있는 힘을 부여하는 도시. 《괴이한 미스터리》 시리즈에서 월영시가 주요한 소재이자 또 하나의 주인공인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대부분의 추리, 호러 작가들이 가장 잘하는 일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당신의 가장 약한 부분을 공격하는 것입니다. 가장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일, 절대 배신하지 않았으면 하는 믿음, 무슨 일이 있어도 실제로 맞닥뜨리고 싶지 않은 그것을 당신의 견고한 현실 속에 슬그머니 밀어넣는 겁니다.

"공포를 창조하는 일은 무술로 상대를 제압하는 일과 상당히 흡사하다. 급소들을 찾아내서 그곳에다 압력을 가하는 일인 것이다."

언젠가 독자 여러분들도 ‘순한 맛’ 말고 ‘매운 맛’도 제대로 볼 수 있기를 기대하며, 마지막 반전에서도 부디 눈을 돌리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어쩌면 진정한 디스토피아는 우리의 마음속 정경일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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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히 나한테 이별을 통보해? 제까짓 게 뭔데? 당연히 죽을 만한 짓을 한 거다. 어디서 기어올라? 이제는 전여친이라고 불러야 하나?

집에서 자고 있던 그녀를 죽이고 도망쳐 나왔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잘못한 것이 없었다. 감히 나에게 이별을 통보하고 끝까지 반성하지 않은 그년 탓이었다. 제 주제에 어디 헤어지느니 마느니 운운인지. 그건 오직 나만이 내릴 수 있는 결정이었다.

"당신은 얼마나 맛있을까요? 마음속에 어떤 욕망을 가지고 이번엔 또 누구를 희생시킬까요? 그래요, 바로 그겁니다. 당신이 먹음직스러운 이유. 악인이니까. 그러면서 우리보다 약한 인간에 불과하니까."

"악에게 최고의 먹잇감은 자신보다 작은 악이에요. 그럴 수밖에요. 악이 악에 끌리는 건 당연한 거 아닌가요? 우리 월영시에 와줘서 고마워요. 당신의 모든 것, 맛있게 잘 먹겠습니다. 이제 안녕히 가세요."

"수국꽃이 꼭 파란색만 있는 건 아닙니다. 수국은 보통 꽃이 피기 시작할 때는 이렇게 녹색이 약간 들어간 흰 꽃이었다가 점차 연한 청색으로, 이어서 붉은 기운이 도는 자색으로 변하죠. 하지만 토양이 강한 산성일 때는 청색, 알칼리성에서는 붉은색을 띠는 특성이 있죠. 만약 붉은 꽃을 보고 싶으시면 알칼리성 용액이나 석고가루 같은 걸 뿌리 쪽에 뿌려두시면 됩니다."

월영시 4구역 사업 시행인가를 축하드립니다.
신속한 사업추진을 기원합니다. -GX건설 임직원 일동

하긴, 월영시가 어떤 곳인가. 집값이며 물가가 싸다고는 해도 전국에서 범죄율이 가장 높은 도시가 바로 이곳이다.

《괴이한 미스터리》 4권 중 ‘범죄 편’은 가장 섬뜩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우리는 흔히 귀신보다 무서운 것이 사람이라고 합니다. 귀신이나 괴이라는 존재는 우리에게 두려움을 줄 뿐 직접적으로 사람을 해하는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하지만 옆집에 살고 있는 범죄자는 언제든 나에게 위해를 가할 수 있습니다. 현실적인 공포를 자아냅니다.

예전에 브루스 캐시디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추리소설이야말로 현대의 혼탁한 세태를 반영하는 거울이다." 거울에 비친 상이 얼마나 일그러져 있든, 그것을 들여다보는 것은 늘 즐거운 일입니다.

"아직도 월영시에 자발적으로 왔다고 생각해요? 아닙니다. 끌려온 거예요. 악인이라면 거부할 수 없죠. 여긴 어떤 악행도 가능한 곳이니까요."
아직도 이 책을 자발적으로 집었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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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보니 병오는 오작인(作人)이었다. 사망 원인이 분명치 않은 시신을 검시(檢屍)하는 사람. 오작인은 죽은 자가 자살인지 타살인지, 만약 타살이라면 어떻게 살해당했는지를 면밀하게 조사하는 일을 맡아 한다고 했다. 검시는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꼭 필요한 일이었지만, 시신을 만지는 일이다 보니 사람들은 오작인을 천하게 여겼다.

"다들 이해하기 힘든 상황에 맞닥뜨리면 귀신 짓이다, 마귀 짓이다, 하는데 그건 핑계에 불과해. 우리가 그 상황을 이해할 만큼 지혜롭지 못할 뿐이지.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 생길 때마다 마귀 짓이라고 해버리면 그건 진짜 살인자가 밖에서 활개 치고 다니도록 그냥 내버려 두는 거나 마찬가지야."

"인간이 왜 살인을 저지르는지 아니?"

"나는 이제껏 그런 이야기를 믿지 않았어. 말도 안 되는 미신 취급했지. 하지만 그 안엔 어리석고, 서글픈 인간의 본성이 녹아 있다는 걸 알게 됐다. 너한테서 들은 저주받은 가면 이야기도 마찬가지고."

"이야기의 힘은 생각보다 크다. 사람을 웃기고, 울리고, 때로는 죽이거나 살릴 수도 있어. 차돌이에게 이야기는 살아갈 힘이었을 거다."

신기한 이야기가 만나는 곳에서 선노미는 자신의 긴 여정을 시작했다. 이야기를 통해 괴짜 선비 연암과 만나고, 그와 함께 이야기를 찾아 더 넓은 세상으로 떠났다.

한때 어두운 마음에 홀려 홀로 길을 헤맸던 소년은 이제 한층 성숙하고 성장한 모습으로 다시 자신의 출발점을 향해 돌아가려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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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노미는 종종걸음으로 지나는 사람들을 멀거니 쳐다보았다. 얼마 전까지는 자신에게도 돌아갈 곳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 선노미에겐 가야 할 곳도, 갈 수 있는 곳도 없다. 당장 폭우가 쏟아진다 해도 어디 처마 밑에 들어가 비 긋기를 기다리는 게 고작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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덥다! 덥다! 덥다!
入秋가 지난지 두주, 處暑가 코앞이지만.

1994년 지하철 5호선 왕십리역 공사
노가다 뛸 때보다 덥다.

이렇게 더울 땐 역시 괴담을 읽어야된다.

왕십리 5호선역은 지하5층이다.
다들 지하로 작업배정받으려했다. 너무더워서.
지하가 시원하고 좋았지만, 한가지 단점이 있었다.
바로, 배설욕구를 어디에. ..
다시 올라갔다 오기는 너무 멀고.
어딘가에는 싸야했다.
어딜까? 승강장밑!
1994년은 너무 더웠다. 나는
휘경동 옥탑방에서 자취하는 자취생이었고 선풍기는 당연히 없고, 무릎높이만한 냉장고가 하나있어 냉장고에 머릴 처박고있었다.
방에서는 잘수가 없어 밖에 나가 자기도 하고...

미스테리하고 기이한 일은 전혀 없었다.

어느날 새벽인가는 창밖에서 누군가 나를 쳐다보는 눈길에 가위눌리는 일만 가끔 있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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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4-08-20 16:0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는 며칠 전부터 귀뚜라미 소리를 들었어요. 더위가 물러갈 준비 단계에 있다고 봅니다.^^

대장정 2024-08-20 16:22   좋아요 1 | URL
네, 아침저녁 산책길 풀벌레 소리들을 땐, 더위가 이제 한풀 꺽이는가 해도 아직이네요. 그래도 천천히 선선한 🍂 🥮 가을이 오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