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아크로폴리스 기둥을 만져보기 위해 그리스에 가고,
사해 물속에 발을 담그기 위해 이스라엘에 간다. 그리고 그녀는 그것을 그만둘 수 없는 것이다. 이집트에 가서 피라미드 위에 올라가보고, 인도에 가서 갠지스강에 들어가보고………… - P52

사람들은 그런 일은 무의미하고 헛일일 뿐이라고 말할지 모른다. 하지만 겉으로 드러난 갖가지 이유를 하나씩하나씩 제거해버리고 나면 결국엔 그것이야말로 여행이라는 것이 갖는가장 올바른 동기요, 존재 이유일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 P52

"멕시코에 가면 사람들이 반드시 당신에게 질문을 할 겁니다. 무슨 이유로 멕시코를 그토록 오래 여행하고 있는가 하고말입니다. 그렇게 질문해오면 이렇게 대답해주면 됩니다. ‘나는 멕시코 요리에 관한 책을 쓰려고해.알겠어? 멕시코 요리말이야‘라고 말입니다. 아마 이것이 그들이 납득할 수 있는 유일한 대답이 될 겁니다. 그러면 무사통과지요." - P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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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컨대 이스트햄프턴이란 곳은 좀 과장해서 말하면 문필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겐 일종의 성지와 같은 곳이다. 그만큼 많은 작가들이 이곳에 저택을 소유하고 있다.  - P15

그들 중 대부분은 성공한 작가들이다. 이스트햄프턴은 성공한작가를 좋아하고, 성공한 작가 역시 이스트햄프턴을 좋아한다. - P15

미국이란 나라의 자본이 얼마나 거대한지 실로 절감하게 된다. - P17

언젠가 뉴욕에서 존 어빙을 만난 적이 있는데, 그는 햄프턴을 오가는 차 안에서 디킨스의 소설을 오디오북으로 듣고 있노라고 말했다. - P17

어빙은 이제 캐나다로 이주해버려서 (어쩐지 미국이란 나라가 그에겐마음에 들지 않는 것 같았다), 그의 집은 매물로 나와 있다. "어때요,
무라카미 씨가 사실 생각 없으세요?" 하고 질리언은 웃으면서내게 말했다. - P17

"여러 유형의 작가들이 있어요." 스웨터는 말한다. "버드 슐버그(피츠세럴드를 모델로 한 소설 《꿈은 사라지고>를 쓴 극작가), 피트 하밀(그는 얼마 전에 이곳을 떠났다), 댓슨 레이더 등의 작가들이지요.
이번 모임이 내일 저녁인데, 무라카미 씨도 꼭 오실 거죠?" - P19

"그러고 나서 2주일인가 후에 올그렌은 죽었습니다." 캐니어씨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 P20

하지만 론과 수에게서 장사치 같은 면모가 느껴지지는 않는다. 그들에게서 받는 인상은 과거라는 것을 지극히 순순하게 물려받고 있다는 검소하고 곧은 마음씨뿐이다. - P22

"여관을 운영한다기보다는 내 집에 손님을 초대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요. 그래서 광고도 하지 않아요. 손님방엔 TV나전화기도 없습니다. 모두들 이곳의 거실이라든가 식당을 마치자기네 집에서처럼 마음 푹 놓고 이용해주기만 하면 되지요.
얼마 전엔 스필버그의 결혼식 하객들이 이곳에 함께 투숙했었어요. 그땐 얼마나 즐거웠는지 모릅니다. 로빈 윌리엄스라든가마틴 쇼트, 로브 로 같은 쟁쟁한 스타들이 이 거실에 앉아서함께 술도 마시고 음악도 듣고 노래도 불렀지요. 모두들 정말좋다고 하더군요." - P22

어째서 유명인사들은 이렇게 햄프턴에 모여 사는가? 무엇이 그들을 햄프턴으로 끌어들이고 있는가? - P24

이 대답이 가장 설득력 있게 들렸다. 
"유명인은 어쨌든 유명인과 함께있기를 좋아하지요. 그런 생활이 그들로서는 가장 마음이 놓이는 것 같아요." - P24

하와이의 니하우 섬은 이미 수십 년 동안 외부 사람은 절대 들여보내지 않고 옛날 생활 그대로 버텨나가는, 개방되지 않는 완고한 섬으로 유명하다. - P27

이 섬의 주인인 무라카미씨라는 분은, 나와 성姓이같지만 유감스럽게도 혈연관계는 전혀 없는 사람이다. - P29

옛날엔 이인근 어린이들은 까마귀 섬까지 헤엄쳐서 갔다가 되돌아와야그때부터 비로소 한 사람 몫의 사람 구실을 할 수 있는 것으로인정받았다고 한다. - P29

‘까마귀 섬에 석양 그늘 드리워지자 해변의 검은 바위 위에 물새들 가물거리며 날고 있는데 배 저어 다가가니 더 잘 보이네‘ - P30

보트는 보고 섹스는 섹스다(이렇게 말해도 영화 <여자의 이별shirley Valentine>을 보지 않은 사람은 못 알아들으실 테지만). - P31

세상엔 많은 노래비가 있지만, 육군이 세워준 노래비는 이것이 유일한 것이다. 작은 섬이지만하나의 섬에는 그 섬 나름대로 온갖 사연을 안고 있다. - P33

여기에서부터 차츰 우리의 비극은 시작된다. 일이 안 풀리는 쪽으로 운명의 항로가 열리고 있는 것이다. - P37

밤이 되면 밤의 작은 생물들이 땅을 지배한다. 말하자면 우리는 그들의 세계에 제멋대로 쳐들어온 침입자들인 것이다.
그런 주제이고 보니 불평을 늘어놓을 처지도 못 된다. - P40

법률은 법률이고, 무인도는 무인도다. 보트는 보트이고, 섹스는 섹스다. - P44

0왜냐하면 나는 여행자인데, 여행자란 어디로든 갈 수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 남자 혹은 그 여자가 가방을 들고 표를 사서 어딘가로 가는 것, 그것이 여행 아닌가. - P49

어딘가에 가야만 한다고 할 때 그가 터키에, 그리스에, 혹은독일에, 그리고 혹은 멕시코에 가서는 안 된다는 법이 있는가?
이런 의미에서 나는 "당신은 어째서 멕시코에 왔는가?"라는질문을 받았을 때 "멕시코에 와선 안 되는 이유라도 있는가?"
라고 반대로, 어디까지나 담담하게 반문할 수도 있는 것이다. - P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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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나는 여행기를 이렇게 쓴다
여행하면서 쓰고, 쓰면서 여행하는 벅찬 즐거움
원제辺境‧近境

무라카미 하루키
1. 어렵지만 즐거운 여행과 글쓰기
오늘날 여행을 하고, 그 여행에 대한 글을 쓰고, 더욱이 여행에 관한 한 권의 책을 엮어낸다는 것은 참으로 여러 가지 어려움이 따르기 마련이다. 그도 그럴 것이 최근에는 해외여행이란 것이 그다지 특별한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 P6

그렇다고 두눈을 부릅뜨고 무슨 비장한 결의라도하고 써낸 느낌을 갖게 하는 여행기 역시 읽는 독자에게 약간은 따분하고 짜증스럽게 하지 않을까. - P7

그런 의미에서는 미국 대륙을 자동차로 횡단하는 것과 시코쿠에서 사흘 내내 하루 세끼를 오로지 우동만 계속 먹어대는것 중 도대체 어느 쪽이 변경 그 지방의 중심부에서 멀리 떨어진한적한 지대-옮긴이)인지 잘 모르겠다. 참 어려운 시대이다. - P7

2. 나스스로가 녹음기가 되고카메라가 되는 자세로
나는 실제로 여행하는 동안에는 별로 세밀하게 글자로 기록을 하지 않는다. 대신 작은 수첩을 가지고 다니면서 그때그때짤막하게 적어 놓을 뿐이다. - P7

요컨대 내가 가장 알아보기 쉬운 형태의 헤드라인이면 된다. 바다에 부표를 띄우듯이 그렇게 적어놓는다. 서류 서랍의 색인과 같다. - P8

오히려 현장에서는 글쓰기를 잊어버리려고 한다.  카메라 같은 것은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그런 여분의 에너지를 가능한 한 절약하고, 그대신 눈으로 여러 가지를 정확히 보고, 머릿속에 정경이나 분위기, 소리 같은 것을 생생하게 새겨 넣는 일에 의식을 집중한다. 호기심 덩어리가 되는 것이다. - P8

반대로 말한다면, 일일이 사진을 보지 않으면 모습이나 형태가 생각나지 않는 경우에는 살아 있는 글이 나오지 않는다.  - P8

그러니까 취재 여행을 가더라도 작가는 겉으로보기엔 편하다. - P8

거의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다만 잠자코 구경만 하고 있을뿐이다. 사진을 맡은 사람만이 바쁘게 뛰어 돌아다닌다. 그 대신 작가는 여행지에서 돌아오고 나서부터가 힘이 든다. - P9

다만 그 이상 오래 내버려두면 잊어버리는 것이 너무 많아 문제가 된다. 모든 일에는 어디까지나 ‘적당한 시기‘라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 P9

3. 여행기를 쓰는건 나에겐 매우 소중한 글쓰기 수업
그런 의미에서 여행기를 쓰는 것은 나에게 매우 귀중한 글쓰기 수업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생각해보면 여행기에서 원래해야 할 일은 소설의 원래 기능과 거의 마찬가지다. - P9

4. 어릴 때부터 닥치는대로 여행기를 읽으며 자랐다.
나는 원래 여행기라는 것을 좋아한다. 옛날부터 좋아했다. 어렸을 때부터 헤딘이나 스탠리 같은, 그런  사람들의 여행기를 닥치는 대로 읽으며 자랐다. - P10

그러나 어쨌든 여행을 하는 행위의 본질이 여행자의 의식이바뀌게끔 하는 것이라면, 여행을 묘사하는 작업 역시 그런 것을 반영해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그 본질은 어느 시대에나 변하지 않는다. - P11

가장 중요한 것은, 이처럼 변경이 소멸한 시대라 하더라도자기 자신 속에는 아직까지도 변경을 만들어낼 수 있는 장소가 있다고 믿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런 생각을 추구하고 확인하는 것이 바로 여행인 것이다. 그런 궁극적인 추구가 없다면, 설사 땅끝까지 간다고 해도 변경은 아마 찾을 수없을 것이다. 그런 시대다. - P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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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아나톨리아 고원에서의 체험이 너무나도 강렬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새파란 지중해를 보면서 무심결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그것과 동시에 뭔가를 상실한 것같은 기분이 들었다. 눈에 보이는 것, 손에 닿는 것들로부터 터키가 터키여야 하는 의미가 선명하게 전해져 오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에게 해에서는 어디를 둘러봐도 독일인 관광객밖에 눈에띄지 않았다. - P207

카라데니즈- 터키어인 이 말은 문자 그대로 ‘검은 바다‘다.
에게 해가 ‘흰 바다‘ 라고 불리는 것과 대조적으로 흑해는 어디까지나 ‘검은 바다‘ 인 것이다. - P208

왜 검은 바다라고 불리는지는 실제로 가보면 알 수 있다. 그것은 모든 의미에서 검은 바다였다. - P208

그럼 이란까지 오지 그래. 좋은 곳이야. 전쟁? 괜찮아. 끝났어. 이제 평화롭다고, 여권이 없어도 쉽게 들어갈 수도 있고 말이야. (이것은 거짓말이었다.) 좋은 곳이야. - P235

여성이 사람들 앞에서 큰 소리를 내거나 입을 크게 벌리고 웃거나 피부를 노출하는행동은-일본 여자들이 평소에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행동은-터키에서는 매우 수치스러운 일인 것이다. 마쓰무라 씨가한 여성의 사진을 찍으려고 하자 심하게 저항했다. 결국 어디에선가 남편까지 뛰쳐나와 "여보, 뭐가 어때서 그래. 사진 정도는찍게 해주라고"라며 설득을 해도(터키인들이란 정말 친절하다) 결코고개를 끄덕이지 않았다. 상당히 완고한 생각을 가진 여성이었던 것 같다. - P244

구석 쪽에는 유원지를 관리하는 일가가 사는 듯한 텐트가 있었다. 안에서는 텔레비전을 틀어놓았는지 푸른빛이 깜박깜박 흔들리고 있었다. 음식을 만드는 냄새도 났다. 텐트 주위에는 닭들이 목적지도 없이 신경질적으로 돌아다니고 있었다. 하필이면이런 곳에서 닭으로 태어난다는 게 대체 어떤 기분일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런 생각을 해봤자 어쩔 수 없겠지만. - P247

호텔에는 종업원이 쉬는 방은 없는지 청년은 밤이 되자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 아침에 다시 돌아온다. 그것은 상관없지만 문제는 그가 돌아갈 때 밖에서 입구 문을 잠근다는 것이다. 튼튼한문에 튼튼한 열쇠로 말이다. 그 덕분에 숙박하는 손님들은 밤 열시부터 아침 여덟 시까지는 호텔에서 한 발자국도 밖으로 나갈수 없다. - P248

결국 우리는 두 시간이 지나도록 한 마리도 잡지 못했다. 그러나 일요일 아침에 흑해를 보면서 느긋하게 햇볕을 쬐다는 것은상당히 기분 좋은 일이었다. 호파를 마지막으로 앞으로 한참 동안은 바다를 볼 수 없을 것이다. 몇 주일 뒤가 될지 모르지만 다음에 보게 되는 바다는 지중해다. - P254

반 고양이는 반 호숫가에 사는 특별한 고양이를 말한다. 이 고양이는 언뜻 보기에는 평범한 흰색 고양이지만 실은 수영을 굉장히 좋아한다. 물이 있으면 어쨌든 헤엄치고 본다. 상당히 유별난 녀석이다. 그리고 오른쪽과 왼쪽 눈의 색깔이 다르다. 이 고양이는 반 호수 근처에서만 사는데 - P256

(결론부터 말하면 반 호수에서 수영을할 수는 있었다. 정말 기묘한 분위기의 호수였다. 그 옛날 화학 실험실에서맡았던 약품 냄새 같은 것이 났다. 아마도 무슨 나트륨의 냄새일 것이다.
수질도 조금 미끈거렸다. 하지만 염분이 높은 탓인지 수영을 하기에는 매우 쉬웠다. 삼십 분 정도 수영을 했는데도 전혀 피곤하지 않다. 물은 독특한 터퀴스 블루turquoise blue 색깔로 매우 깨끗하다). - P257

로 한다. 하지만 이곳은 상당히 엉터리 호텔로(참고로 호텔 이름은 ‘아크다마르‘ 라고 한다) 우리가  차에서  짐을 내리자 프런트 담당이
"두 분이 묵으신다면 침대 추가 사용료 1,600엔을 더 내셔야 하는데요"라고 말을 꺼냈다. 지금 장난하는 거냐. 아까 방을 봤을때는 침대가 양쪽 방에 하나씩 있지 않았느냐? 아니, 그건 치우는 걸 깜빡해서.…………. 라며 억지를 부린다. 하지만 너무나 화가나서 "됐다, 다른 호텔로 가겠다"라고 하자 "알겠습니다. 특별히호의로 서비스해드리겠습니다" 라고 한다. 대체 뭐가 호의라는거지? 하는 생각을 하면서 일단은 방을 잡고 욕조에 들어가 샤워를 하고 나서 맥주를 꿀꺽꿀꺽 마신다. 천국이 따로 없다. - P263

이 이야기의 교훈이라고 할 것까지는 없을지도 모르겠지만은 앞으로 반에 가시는 분들을 위해 결론 비슷한 것을 말하자면, 반에 있는 호텔 프런트 직원들은 반드시 어딘가 융단 가게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 이후에 만난 프런트 직원들 역시 반드시 나에게 융단 가게의 명함을 주었다. 이 동네에서 그곳이 제일 양심적이고 신용할 수 있는 융단 가게이니 꼭 가보세요,
라며 그들은 매우 열심히 권했다. 같은 호텔이라 해도 사람에 따라 제휴하고 있는 융단 가게가 다르다. 아무리 봐도 그들은 그리열심히 호텔 일을 하는 것 같지 않았지만 융단 가게 알선만은 정말 놀랄 정도로 적극적이었다. 호텔 일이 부업이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어쨌거나 일급 호텔이라고는 해도 변기의 물은 밤새도록 새고, 방에 전화는 없고, 뜨거운 물은 거의 나오지 않았고, 직원의 서비스는 나쁘고, 매우 지독한 곳이었다. - P272

마네키네코‘ ‘복을 부르는 고양이‘란 뜻. 일본의 가게는 한쪽 손을 들고 있는 고양이 인형을 두고 있는 곳이 많은데 그 인형을 가리켜 ‘마네키네코‘라고 부름다. - P273

이 동네의 사람들은 관광객만 보면 융단을 팔아야 된다는 생각밖에 하지 않는 것 같았다. - P273

그리고 아쉽게도 반 고양이가 헤엄을 치는 모습은 끝내 볼 수 없었다. - P273

"하카리 마을은 피해 가는 게 최고다. 이 마을 인구의 반은두려움에 떨면서 길거리의 더러운 폐가에 틀어박혀 있고 나머지반은 정부 관리를 죽이는 생각밖에 하지 않는다. 이곳에 근무하는 정부 관리는 다른 지방에서 뭔가 문제를 일으켜서 이곳으로내쫓긴 사람들뿐이다." - P276

나는 이것이 과장이 아닌가 하고 하카리에 가보았는데 전혀과장이 아니었다. 물론 눈앞에서 사람이 죽는 것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그래도 마을을 뒤덮고 있는 분위기는 정말 그 내용 그대로였다. - P276

터키인을 비방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전반적으로 터키인들이 괜찮다는 것치고 실제로 괜찮은 경우는 별로 없다. 물론 그들이 거짓말쟁이라고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가끔너무나 희망적인 견해라는 형태를 취하는 경우가 많을 뿐인 것이다.  - P279

즉 "I hope that it is so.(그랬으면 좋겠네요)"가 자기도 모르게
"It has to be so.(그래야 해요)"가 되고 결국에는 "It sure is so.(분명코그래요)"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정말 그렇다. - P279

개들은 모두 크고 흉폭하다. 반쯤은 들개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무시무시하다. 오토바이나 자전거로 여행을 하는 사람들이만약 이 개들의 습격을 받는다면 흔적도 없이 사라지지 않을까걱정될 정도였다. 나는 가끔 차에서내려조깅을 하고 싶었지만개들의 습격이 무서워 터키에서는 단 한 번도 달리지 못했다.  - P284

실은 몇 년 전에 터키 정부가 전국적으로 들개를 사냥하려는 계획을 세운 적이 있었으나 서구의 동물 애호 단체의 항의 때문에 포기했다고 한다. 터키에서는 실제로 개에게 잡아먹히는 사람도많다고 한다. - P284

카페의 텔레비전에서는 서울 올림픽 중계를 하고 있었다. 레슬링이다. 사람들 몇 명이 테이블에 앉아 물끄러미 그 흑백 화면을 보고 있다. 그저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 P293

눈에 띄지 않기 위해 기둥에 가려진 테이블에 앉아 차이를 주문한다. 차이는 없다고 한다. 그럼 주스를 달라고 한다. 그리고 치즈파이를 주문한다. 얼마 뒤에 차이와 치즈파이가 나왔다. 이유를 알 수가 없다. - P293

이 마을에서는 명확한 목적을 가진 행위라는 것을  좀처럼 찾아보기가힘들다. 그 대신 목적이 없는 행위라면 몇 가지 찾아볼 수 있다. - P297

하지만 이 길은 실제로는 최고의 프라블럼들로 가득 찬 길이었다. 길 자체도 산을 넘어가는 상당히 험한 길이었지만 문제는그것뿐만이 아니었다. 나중에 알아본 바에 의하면 이 길은 쿠르드인 산악 무장 게릴라가 출몰하는 가장 위험한 지역이었던 것이다. 물론 경찰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 P300

그리고 이라크군의 만행을 전 세계에 알려주기를 바랐을 것이다. 특히 이 당시에는 앞에서도 언급했듯이터키 정부가 국경을 넘는 쿠르드인과 외국인 저널리스트의 접촉을 완전히 금지했기 때문이다. 나는 진심으로 그들을 동정하고아무리 사정을 잘 몰랐다고는 해도 그들을 위해 아무것도 해주지 못했던 것에 대해 너무나 미안하게 생각한다.
- P302

하지만 그건 그렇다고 해도 그 당시 광경을 상상해본다면 이해할 수 있겠지만, 산길에서 무장한 쿠르드인 무리에게 차가 멈춰 세워지고, 주위를 빙 둘러싸인 채 눈앞에서 갑자기 눈의 흰자위를 뒤집어 보이는 꼴을 당한다는 것은 상당히 무서운 경험이었다. 두 번 다시 그런 일은 겪고 싶지 않다. - P302

한편 여행 안내서를 읽고 그 정보 중에서 어떤 것이 도움이 되고 어떤 것이 도움이 되지 않는가를 판단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특히 처음 가는 나라라면(생각해보면 대부분 처음 가는 나라이기때문에 여행 안내서를 읽을 것이겠지만) 이 판단은 더 어려워진다. - P303

어쨌든 장기간에 걸쳐 터키를 여행하려는 사람에게 절대적으로 도움이 되는 정보를 하나 소개하고자 한다. 당신이 담배를 피우든 피우지 않든 반드시 말보로 한보루 사가기를 권한다. 이건 정말 큰 도움이 된다. - P304

"시가라 sgara boreg, 터키식 컬련?" 라고 말한 뒤 활짝 웃으며 말보로 한 개비내밀면 대부분 쉽게 해결된다. 그야말로 마법의 담배다. "말보로가 아니면 안 돼? 윈스턴은?" 이라는 질문을 받는다면 어떻게대답을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왠지 말보로가 아니면 안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말보로라는 것은 아마도 하나의 상징인것이다. 아마도.
Come to Marlboro country. - P305

"터키에서 신상에 관련된 사건을 일으키면 이유와는 상관없이 끝이니까 조심하세요" 라는 관계자의 충고가 귀에 선하다. - P311

나는 터키를 3주 동안돌았지만 냉수기를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왜 이런 가축우리 같은 호텔에 냉수기 같은 물건이 있는지 나로서는지금까지도 이해할 수 없다. 하지만 확실히 있었다.  - P322

나는 굉장히 목이 말랐고 이 냉수기가 굉장히  매력적으로 보였기 때문에 그곳에 놓여 있던 잔으로 차가운 물 두 컵을 벌컥벌컥 마셨다. 그리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뒤에 비극적이라고 할 만한 설사를겪어야 했다. - P322

(믿을 수 없는 얘기지만 이곳의 샤워기는 빨간 꼭지가 찬물이고파란 꼭지가 뜨거운 물이다. 덕분에 나는 마지막 순간 그 사실을 깨닫기까지 계속 화를 내면서 찬물에 샤워를 하고 있었다). - P326

어쨌거나 지독한 곳이다. 내가 산책을 하러 나가자 근처에 있던 아저씨가 "당신은 네덜란드사람인가?"라고 물어왔다. 대체 나의 어디가 네덜란드 사람처럼보이는 것일까? - P327

하지만 오 분도 지나지 않아 그들은 돌아온다. 그리고나를 둘러싼 뒤 다시 물끄러미 바라본다. 끈기 싸움이다. 나도고집이 센 편이라 이런 아귀들에게 질까 보냐 하고 생각한다. 아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존재라는 것은 인식을 기반으로 삼는 것이다. - P334

디야르바키르에서는 좋은 추억이라고는 없다.
아니, 좋은 일이 하나 있기는 했다.
전화국에 가서 공중전화에 제톤Jeton (전화용 코인)을 20엔어치넣고 일본에 전화를 했더니 원래는 십초 만에 끊겨야 하는데 고장이 나는 바람에 이십 분이나 통화를 할 수 있었다. 이것은 기적이었다. - P340

어쨌든 터키의 전화는 제대로 연결된 적이 없었다. 그런데 이때는 기적이 일어나 도쿄에 있는 아내와 이십 분 동안이나 공중전화로 얘기를 나눌 수 있었던 것이다. 아내는 내가 그녀를 버려두고 터키로 훌쩍 떠난 것에 대해 화를 내고 있었다.
"당신 전화 한통안했잖아요. 내가 얼마나 걱정을 했는지 알기나 해요?" - P340

그녀는 말한다. 그녀는 모르는 것이다. 호텔에 전화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하지만 어쨌거나 아내와 이십분 동안 통화를 했다. "남자 둘이서 재미 보고 계시겠네"라고 그녀는 말했다. 이것 봐라, 하고 나는 생각했다. - P344

‘작가적 힘‘은 무엇일까? 하루키는 여러 가지 글을 로테이션하듯번갈아 쓰는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소설, 특히 장편소설만 계속 쓰다 보면, 정신적으로 산소 결핍 상태가 될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다른 종류의 글쓰기를 통해여기저기 닫혀 있는 창문을 열고, 신선한 공기를 방 안으로 끌어들인다." - P347

하루키는 《먼 북소리》에서 "어느 날 아침 눈을 뜨고 귀를 귀울여보니 어디선가 멀리서 먼 북소리가 들려왔다. 아득히 먼 곳에서,
아득히 먼 시간 속에서 그 북소리는 들려왔다. 아주 가냘프게. 그리고 그 소리를 듣고 있는 동안, 나는 왠지 긴 여행을 떠나야 할 것같은 생각이 들었다"라고 긴 여행을 떠나는 의미를 부여했었다. - P349

그리고 이 책에서 하루키는 그리스와 터키의 변방을 여행하게된 계기를 이렇게 말하고 있다.
"나는 책에서 아토스에 관한 얘기를 읽은 후로 어떻게 해서든 꼭한 번 이곳에 와보고 싶었다. 그곳에는 어떤 사람들이 있고 어떻게살아가고 있는지, 실제 내 눈으로 보고 싶었던 것이다." - P349

"......나는 터키라는 나라에 대해 강한 흥미를 갖게 되었다. 왜그런지는 나로서도 잘 알 수가 없다. 나를 끌어당긴 것은 그곳 공기의 질 같은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 이상스럽게 느껴지는 공기의 질적인 차이는 다른 어느 곳의 공기와도 같지 않았다." - P350

하루키는 이 책에서 무엇을 말하고자한 것일까? 아마도 그리스정교의 수도원을 돌며 느낀 성聖과, 터키 사람들의 생활에서본속을 통해 얻은 인생의 깨달음이 아니었을까. - P350

전편을 통해서 하루키의 여행은 각기 다른 특이한 세계와 환경에 젖어, 사색에 잠겨, 새로운 소설을 탄생시킬 구상을 가다듬는기초가 된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다. 이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 하루키가 찾아갔던 그 미지의 세계로의 여행을 상상력을 구사하여함께 재체험할 수 있는 즐거움뿐만 아니라 깊고 진지하게 언어와문학의 참맛도 음미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 P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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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는 군인이 많은 나라다. 전시체제하에 있는 국가를 제외하면 이렇게 많은 군인을 볼 수 있는 나라는 아마 없지 않을까.
그리고 군인뿐만 아니라 경찰도 많다. 좌우지간 제복을 입은 인간들이 너무 많다. 기지의 수도 많고 시내를 배회하는 군인들의수도 많다. - P153

"잠깐 오시오" 하면서 끌고 가 조사를 하고 필름을  압수한다. 아무리 군인이나 경찰을 찍을 의사가 없었다고 해도 결과적으로 그 모습이 찍혀 있으면 불쾌한 일을 겪게 된다. 시간 낭비는 물론이고 기분도 상한다. 우리도 이스탄불에서 한 번 그런 일을 당한적이 있다. 그들은 매우 진지하다. - P153

부대가 휴가 중인지 알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하이테크정보 전쟁시대에 이스탄불의 공원에서 햇볕을 쬐고 있는 해군병사 제복의 사진을 찍은 뒤 그것을 단서로 부대이동을 알아내는 귀찮은 짓을 도대체 누가 한단 말인가? 만약 정말로 그런 걱정을 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완전한 사대주의 히스테리라 할 수 있다 - P154

물론 그들이 그렇게 되기까지에는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있다는 사실도 이해할 수 있다. 지리적으로나 역사적으로 보면터키는 드물 정도로 일관되게 고독했던 나라다. 일찍이 광대한영토를 가진 거대한 나라였고 20세기 초반까지는 주변 나라의국민들을 군사적으로 가혹하게 지배한 만큼 그 과정에서 생긴역사적 알력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우선 그리스와는 철저하게 사이가 나쁘다. 이것은 아마 회복이 불가능하지 않을까 싶을정도다. - P157

차를 세웠다. 하지만 대부분은 "기지까지 데려다주지 않겠나"라고 부탁할 뿐이다. 참 느긋한 군대다. 마침같은 방향이었기에태워주는 것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지만 바닥에 내려놓은 기관총의 총구가 뒷덜미 쪽을 향하고 있기라도 하면 아무리 안전장치가 되어 있다고 해도되어 있겠지?) 썩 유쾌하지만은 않다. 핸들을 잡은 손에 땀이 배어버린다. - P161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것은 같은 아시아 사람이기 때문이라는 단순한 이유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그들의 눈 속에 뭔가 순수한 것이 혹은 왜곡되지 않은 것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 P162

터키의 레스토랑은 한국 식당과 마찬가지로 한 걸음만 안으로 들어가도 독특한 냄새가 코를 찌른다. 그런 것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참을 수없을 정도로 매력적이겠지만 그런 것에 약한 사람에게는 참기힘든 고통이다. - P176

예전에 나폴레옹 3세가 황후와 함께 이곳을 방문했을 때 오스만투르크 황제가 그를 만찬에 초대했다. 그 만찬을 즐긴 황후가 요리에 감동받아 수행하던 궁정요리사에게 "터키 요리사를찾아가 이 음식의 요리법을 배워오라" 라고 명령한 적이 있을 정도로 훌륭한 요리다(이 얘기에는 뭔가 빠뜨린 부분이 있었는데 그게 무엇이었는지 잊어버렸다. 어쨌거나 미안하긴 하지만 나와는 맞지 않았다. - P177

잘 보면 주변에 앉아 있는 서민 아저씨들은(물론 이런 곳의 손님은 모두 남자들뿐이다. 종업원도 남자) 모두 150엔 정도의 전쟁이 비슷한 것을 먹고 있었다. 그것도 매우 맛있어 보였다. - P178

내륙을 향해 남하하자 사정은 어려워졌다. 전부가 양고기뿐이다. 어디를 봐도 양, 양, 양이다. 길을 걷다 보면 빈번하게 양과조우하고, 정육점을 들여다보면 털을 벗긴 양이 매달려 있고, 레스토랑에 들어가도 양고기밖에 없다. 마을 전체에서 양 냄새가난다. 화폐 대신 양을 쓰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그 정도로양 중심의 문화이다. - P180

빵과 차이 각각의 값은 잊어버렸지만 모두 합쳐서 약 28엔이었다. 나쓰메 소세키의소설 중에 "그것은 가격이 아니군"이라는 대사가 나오는데 이것이야말로 정말 가격도 아니다‘ 라고 생각한다. 물가가 싸기로유명한 터키에서도 이 가격은 그야말로 압도적이었다. - P184

아무리 보고 있어도질리지 않는다. 나 말고도 뒤에서 지루한 기색 없이 구경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 세상 어디를 가도 인간의 행동이란 대부분 비슷한 것 같다. - P189

아무튼 차이하네 - P189

차이는 원래 평범한 홍차에 불과하지만 그래도 신기하게도 차이는 차이일 뿐 홍차가 아니다. 어째서인지는 알 수 없다. 차이는 차이 맛이 나고 홍차는 홍차 맛이 나는 것이다. - P191

터키를 여행하면서 제일 처음 느낀 점은 이 나라의 넓이와 다양함이다. ‘터키‘, ‘터키인‘ 이라고 하면 보통 단일국가, 단일민족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로 돌아보면 그 지역마다의 큰차이를 보고 놀라게 된다. 터키는 지형적으로 몇 가지 얼굴로 분명하게 나뉘어 있다. 그리고 각 지역에 따라 풍경도, 기후도, 사람들의 생활도 혹은 인종마저도 전혀 달라진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나의 개인적이자 주관적인 구분이므로 정확한 것은 아닐지모르지만 우리 눈에 터키는 확연하게 다섯 부분으로 나뉘어 있는 것처럼 비쳐졌다. - P197

유럽에서 차를 몰고 가면 우선 유럽풍의 터키가 있다. 트라키아 지방이다. 이것이 첫 번째 터키, 지형적으로는 그리스 북부와 거의 다름이 없다. 경치는 동유럽에 가까울 듯. - P197

하지만 방향을 왼쪽으로 틀어 우리는 흑해로 나아가기로 한다.
흑해 연안 이곳이 두 번째 터키다. 이곳은 멋진 지역이다. 조용하고, 관광객도 적고, 풍경도 아름답다. 단, 에게 해 연안지대에 비하면 도로와 호텔의 질이 말도 안 되게 형편없다. - P201

그리고 시계 방향으로 소련, 이란, 이라크의 국경 방면이 제3의 터키다. - P201

그리고 남쪽으로 내려와 시리아 국경지대에서 지중해에 걸쳐있는 중부 아나톨리아, 이것이 제4의 터키, 아랍 색채가 진한 터키다. 호텔과 도로 사정은 조금 나아진다. - P201

그리고 서쪽의 지중해와 에게 해 연안의 터키, 이것이 제5의터키다. 여기까지 오면 경치는 환하게 밝아진다. 내륙지방의 먼지 날리던 공기에서 해방된다. 사람들의 표정도 밝아진 듯한 느낌이다. 아름다운 해안이 펼쳐지고 고급 리조트가 여러 군데 있다. - P203

그것은 유럽이나 일본에서는 절대로 볼 수 없는신선하고 폭력적인 눈빛이었다. 거기에는 이해하기 어려운 유보 조항은 없었다. 하지만‘ 이나 ‘그러나 가 없는 그곳에 존재하는 것 전부가 그 자체라는 눈빛이었다. 그곳에서 대부분의 일들은 예측이 불가능했고, 규칙은 대부분 허무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성급히 말하자면 엉망진창이었다. 하지만 그곳에는 진정한 여행의 즐거움이 있었다. - P204

그 곳에는 풍경의 아름다움과 서구적 편리함이 존재했지만 그것뿐이었다. 내가 과거에 크사다시의 거리에서 맡았던 그 공기는 더이상 그곳에는 없었다. - P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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