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죠. 지중해 무역에서 가장 많이 거래된 물품이 후추였어요. 그래서 지중해 무역을 후추 무역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 P32

물론 후추만 거래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때 유럽인들은 동방에서흘러들어온 비단이나 도자기, 유리나 카펫 같은 호화로운 사치품에도 크게 매료되었습니다. - P32

그런 셈입니다. 베네치아를 필두로 제노바, 피렌체, 피사 같은 도시국가들은 이 지중해 무역을 통해 수백 년간 막대한 부를 축적합니다. 결국 축적된 부는 나중에 미술로 흘러들어가게 되죠.
이제 조금은 이탈리아 도시국가들이 어떤 배경을 가지고 성장했는지 감이 오실 겁니다. 그러면 좀 더 그 내부로 들어가 보도록 하죠. - P34

길드는 상인과 장인들이 직업별로 만든 단체나 조직을 뜻합니다.
그런데 당시 이탈리아에서 도시국가의 정부가 길드의 대표들로 구성되면서 국내 정치를 좌우하게 되었지요. - P35

고급 기술을 보유하지 못한 장인은 같은 그룹에 낄 수 없었나요?
그렇습니다. 하급 기술자를 포함해 단순 노동자들도 많이 있었는데, 길드를 만들 수도 없었습니다. ‘포폴로 그라소‘와 구별하기 위해 마른 사람이라는 의미의 ‘포폴로 미누토‘라고 불렀습니다. - P35

사실 아무리 설명해도 중세는 지금 우리가 사는 세계와는 너무 다른 세계였기 때문에 머릿속에 잘 그려지지 않을 거예요. 중세 이탈리아 도시국가에 살던 사람들을 생생하게 대면할 수 있는 확실한방법을 하나 알려드리죠. 바로 단테의 대서사시 『신곡』을 읽는 겁니다. 이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개성을 생동감 넘치게 잡아내고 있는 작품이거든요. - P36

『신곡』에서 단테는 지옥, 연옥, 천국 3개의 저승세계를 차례대로 방문합니다. 저승에서 여러 사람들을 만나는데 상당수가 실존인물입니다. 특히 당대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만한 유명 인사나 스캔들의주인공을 지옥에서 만나기도 하죠. 물론 아무리 지어낸 이야기라지만 지옥불에 타고 있는 사람으로 그려진 당사자는 기분이 좋지 않았을 겁니다. - P37

실존인물을 등장시킨 이유가 뭔가요? 요즘 같았으면 소송 당할지도모르는데….
사실 단테가 이렇게 실존인물을 등장시킨 데에는 어느 정도 사적인 감정이 담겨 있습니다. 자기에게 모질게 한 사람들은 지옥으로 보냈고, 잘해준 사람들은 천국으로  보냈거든요. - P37

단테는 피렌체의 유력한 귀족 집안에서 태어나 일찍 공직에 진출했으니 인생 초반은 탄탄대로였죠. 20대에 이미 고위 공무원이 되었고, 1300년경에는 짧게나마 국가수반의 역할을 맡기도 합니다. 그렇게 잘 나가던 단테는 피렌체 내부의 권력 다툼으로 1302 년에 졸지에 추방당했습니다. 이때 단테의 나이는 37세였습니다. - P38

피렌체 단테의 집 
단테는 피렌체에서 태어났지만 권력 투쟁 과정에서 추방당했다. 단테 가문의집은 현재 단테의 삶과 문학적 업적을 기리는 박물관이 되었다. - P38

그런 거죠. 단테는 백색당에 가담했습니다만 결국 백색당이 패하면서 반역죄로 영구 추방당합니다. 전 재산을 몰수당했고 잡히면 화형이라는 선고를 받았지요. 이렇게 해서 떠돌이 신세로 전락한 단테가 인생 후반에 이르러 쓴 글이 『신곡』입니다. 단테는 여기에 자기의 억울함과 배신감, 시대를 향한 분노까지 담았습니다. 당시 이탈리아를 잘못 이끈 정치인이나 부패한 성직자들, 조국 피렌체를배반한 인물들을 지옥으로 보냈고 자기한테 잘못한 사람도 일부 끼워 넣었습니다. 심지어는 교황들을 지옥에 보내기도 했어요. - P39

연옥은 현대인에게 낯선 개념일 테지만, 중세유럽 사람들의 내세관에서는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간단히 말하면 연옥은 천국과지옥의 중간 단계입니다. 당시 사람들은 연옥에서 일정 시간 죄를뉘우치고 회개하면 천국으로 갈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일종의 천국 대기실이 되는 셈입니다. - P42

거기서 죗값을 어느 정도 치르면 천국에 갈 수 있을  거라고 믿었던 거죠. 더 중요한 점은 생전에 지상에서  선행을 많이 했거나 죽은 후에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영혼을 위해 기도해주면 연옥에서 천국으로 가는 대기시간이 줄어든다고 생각했다는 겁니다. 이렇게 상인들에게도 천국으로 가는 문이 열린 거지요. - P43

유럽미술은 1300년대부터 급격히 성장했는데, 특히 이탈리아 도시국가들에서 그성장이 두드러졌다. 도시국가의 내부 정치는 혼란스러웠지만 활발한 무역으로 부를축적한 상인 계층은 르네상스 미술의 기반을 마련하였다. - P45

스탕달 신드롬: 너무 깊게 미술 감상에 빠져 호흡 곤란과 격한 심장박동을 겪는증상. - P45

정치: 황제파와 교황파가 충돌했고, 양쪽 파벌 안에서도 유력한 가문을 중심으로 더 작은 파벌로 나뉨.
경제: 십자군 전쟁 이후 북유럽과 아시아·아프리카를 잇는 무역이 활발해졌고, 그 과정에서 지중해에 위치한 이탈리아 도시국가들이 막대한 돈을 벌어들임.
계층 상층부: 귀족, 성직자 / 중층부: 상인, 고급 기술자 / 하층부: 하급 기술자 / 최하층부: 빈민, 노예 - P45

살아가면서 어디서 구원을 찾고, 삶이 끝나면저기, 무덤 속에서는 무엇을 기대해야 하는지그것을 알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 톨스토이, 전쟁과 평화 중 - P46

엔리코 스크로베니는 크게 성공한 상인이었습니다. 정확히는 엔리코의 아버지 대에서부터 은행업, 그러니까 고리대금업으로 거금을긁어모았던 집안에서 태어났죠. 아버지로부터 막대한 재산을 물려받은 엔리코는 거대한 저택을 지은 뒤 바로 옆에 이예배당을 세웠습니다. 참고로 함께 지어진 저택은 허물어져버리고 지금은 예배당만 덩그러니 남았습니다. - P50

글쎄요, 엔리코가 순수한 마음으로 스크로베니 예배당을 만들었을까요? 엔리코는 이윤에 철저한 상인이었습니다. 분명히 미술을 통해 뭔가 더 큰 것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해서 미술에 돈을 쏟아부었을 겁니다.
사실 스크로베니 집안은 당시 기독교 교리에 따르면 큰 죄를 지은집안입니다. 교회는 노동 없이 얻는 소득을 죄악으로 봤거든요. - P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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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임자와 후임자의 교대[交承]‘에는 동료로서의 우의가  있어야 하니, 내가 내 후임자에게 당하기 싫은 일은  나도 나의 전임자에게 하지 않아야 원망이 적을 것이다. - P99

전임자의 흠이 있으면 덮어주어 나타나지 않도록 하고, 또 죄가 있으면도와주어 죄가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 P99

대체로 정사의 관대한 것과 가혹한 것, 명령과 법령의 득(得)과 실은서로 이어받고 서로 변통하기도 하여 그 잘못된 점을 해결해나가야 한다. - P100

구양수(歐陽修)가 개봉부(開封府)를 맡았는데, 
그는 전임자인 포증(包拯)의 위엄있는 정사 대신에  간단하고 편하게 순리를 따를 뿐 혁혁한 명성을 구하지 않았다.  - P100

어떤 사람이 포중의 정치를 그에게 권하자, 그는
"대개 사람의 재능과 성품은 서로 달라 자기의 장점을 살리면 일의 성과가 나타나지 않을 것이 없으니 나는 내가 능한 대로 할 뿐이오"라고 말하였다. - P100

공적으로 보내는 문서는 아전들에게 맡기지 말고 꼼꼼히 생각해서 자신이 직접 써야 한다. - P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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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상스는 분명 여러 천재작가들의 재능이 있었기에 탄생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공을 전부 작가의 재능으로만는돌릴 수는 없어요. - P1

구원을 향한 열망이야말로 르네상스 미술의 핵심  동기입니다. 그래서 죄가 커질수록 성당의 크기도 커지고 장식도 아름다워지지요. - P1

소실점도 하나, 개인도 하나지요. 결론적으로 원근법은 개인의 탄생을 전제로 합니다.  원근법을 단순히 그리는 방법을 넘어서 세계를  인식하는 세계관이라고까지 볼 수 있는이유입니다. - P1

중세 피렌체의 번영을 보여주는 기념비적인 건축물이  바로 피렌체의 대성당입니다. 
정식 명칭은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 대성당인데  간단하게 두오모라 부르죠. - P1

이 과정에서 우리는 르네상스 미술의 어두운 그림자도 목격하게 됨니다. 사실 르네상스는 대혼란의 시대였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무서운 흑사병이 1347년부터 유럽에 퍼져나가면서 유럽사회는 사상초유의 시련을 겪습니다. 이러한 위기의 시대를 수습하면서 유럽의미술은 한발 더 도약하게 됩니다. - P6

미술은 물질이며 동시에 이미지입니다. 물질은 소유할 수 있지만, 이미지는 소유할 수 없습니다.  이미지는 누구에게나 허용된 열린세계이며, 굳이 이미지에 대한 소유권을 따지자면 그것은 이미지를 이해하고 누리는 자에 속할 겁니다. - P7

만약 이 책을 통해 우리가 르네상스 미술의 실체에 한발 더 다가선다면 우리는 이미지의 세계에그만큼의 부분을 우리들의 것으로 되가져왔다고 자부할 수 있을 겁니다. 다시 말해 르네상스라는 매력 넘치는 미술도 결국은 그것을이해하고 즐기는 자의 것입니다. 바로 이점을 기억하면서 이탈리아로 미술 여행을 떠나도록 합시다. - P7

르네상스의 시작에서 피렌체와 단테를 빼놓고 말할 수있는 것은 거의 없다. 하지만 둘의 사이는 그리 좋지 못했다. 피렌체는 단테를 추방했고, 단테는 생선에 자신을 추방한 고향 피렌체로 죽어도 돌아가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후일 피렌체 사람들은 대문호를 그리워하며 단테의 동상과 가짜 무덤까지 만들었다. 하지만 여전히 단테는  돌아오지 않고 있다.
--- 산타 크로체 광장 앞, 이탈리아 피렌체 - P12

나는 노래하리라 두 번째 왕국을
여기에서 인간의 영혼이 깨끗이 씻겨,
하늘로 오르기에 마땅해진다.
--- 단테, 「신곡」 연옥편 1곡 4~6- - P14

유럽여행은 조금 여유 있게 일정을 짜는 게 좋습니다. 때로는 광장에앉아 차 한 잔 할 수 있는 시간이 있어야 해요. 아래 사진 속 느긋해보이는 관광객들처럼 말입니다. 그렇게 중간 중간 쉬어가면서 보고,
느낀 것들을 음미해본다면 여행은 좀 더 의미있어질 겁니다. - P16

스탕달 신드롬이 뭔데요?
미술 감상에 지나칠 정도로 심하게 빠지면 겪을 수 있다는 증상입니다. 너무 감상에 몰입하다가 호흡이 가빠지고 심장이 빨리 뛰는데 심하면 실신에 이르기도 한다고 해요. 실제로 19세기 프랑스의 대표적인 소설가 스탕달이 1817 년 이탈리아 피렌체를 여행하다가겪게 되면서 알려진 증상입니다. 요즘도 피렌체 여행객중에는 이 증상으로 병원을 찾는 사람들이 있다고 합니다. - P18

1300년대라고 하면 약 700년 전입니다. 한반도는 고려 말이었을 때죠. 생각보다 먼 옛날입니다. 당시 이탈리아의 모습은 우리의 생각과그만큼 거리가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지금 같은 국가가 아니었어요. - P20

이탈리아는 중세의 상당 기간 동안 신성로마제국 황제의 영역이었습니다. 그러다 1100년 전후로 황제에게서 자치권을 얻어내 독립하는 도시들이 나오기 시작합니다. 이렇게 자치권을 얻은 도시들을이탈리아어로 코무네, 영어로 코뮌이라고 합니다. - P21

도시국가들은 대부분 돈으로 자치권을 샀습니다. - P21

보통 평화 속에서 예술이 꽃핀다고 하지 않나요?
그런데 막상 역사를 살펴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오히려 혼란스럽고 갈등이 심한 상황에서 미술이 발전했던 경우가 많습니다.
르네상스 미술이 바로 그런 경우입니다. - P24

그런 복잡한 상황은 다른 이탈리아 도시국가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산지미냐노의 탑들이 잘 보존되어 있는 것뿐이지 다른 이탈리아 도시국가 안에도 이런 탑들이 많이 자리하고 있었어요. 참고로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의 배경인 베로나도 늘 정치적으로복잡한 도시 중 하나였죠. 가문끼리의 갈등이 이토록 심각했으니『로미오와 줄리엣』 같은 이야기가 나왔을 겁니다. - P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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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에 난쟁이가 나타나 나더러 춤을 추지 않겠느냐고 했다.
그것이 꿈이란 건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때 나는 현실에서와마찬가지로 꿈속에서도 몹시 지쳐 있었다. 그래서 "미안하지만피곤해서 못 추겠는데" 하고 정중하게 거절했다. 난쟁이는 그일로 그다지 기분 나빠하지는 않았다. 난쟁이는 혼자서 춤을 추었다. - P133

"북쪽 나라에서 왔어." 난쟁이는 내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고멋대로 이야기를 시작하면서 손가락으로 딱 소리를 냈다. "북쪽사람들은 아무도 춤을 추지 않아. 아무도 춤추는 법을 몰라. 춤이란 게 있는지조차 몰라. 하지만 나는 춤추고 싶었어. - P135

"이렇게 춤을 추고 싶었어. 그래서 남쪽으로 온 거야. 남쪽으로 와서 무용수가 되어 술집에서 춤을 추었어. 내 춤은 평판이좋아서 황제 앞에서도추게 되었지. 그래, 그건 물론 혁명 전의얘기지만 혁명이 일어나서 너도 알다시피 황제가 죽게 되자 난마을에서 쫓겨났어. 그래서 숲속에서 살게 된 거야." - P136

"정해져 있거든." 난쟁이는 말했다. "이제 누구도 그걸 바꿀수는 없어. 그러니까 너랑 나는 곧 다시 만나게 될 거야." - P137

그러나." 노인은 내 얼굴 앞에서 손가락을 하나 세웠다. "다른 사람에게는 말하지 마. 혁명이 일어난지 꽤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춤추는 난쟁이만은 아직 사람들 앞에서 입 밖에 내면 안 되는 얘기야. 그러니까 남들한테는 말하지마. 내 이름도 말하지 마. 알겠지?"
"알겠습니다." - P146

"혹시 시간 있으면 내일 토요일 밤에 춤추러 가지 않을래요?"
나는 꼬드겨보았다.
"내일밤은 시간이 있고 춤추러 갈 생각이지만, 당신과는 가지않을 거예요." 그녀가 말했다. - P154

섹스, 성행위, 성교, 교합, 그 밖의 뭐라도 좋지만, 그런 말, 행위, 현상에서 내가 상상하는 것은 언제나 겨울 박물관이다. - P175

겨울 · 박물관-물론 섹스에서 겨울 박물관에 이르기까지는 적잖은 거리가 있다. 지하철을 몇 번 갈아타고, 빌딩 지하를 빠져나가고, 어딘가에서 계절을 다시 보내는 등의 번거로움도 있다. 그러나 그런 번거로움은 처음 몇 번뿐이고, 그 의식 회로의 코스를 한번 숙달하면 누구라도 눈 깜짝할 사이에 겨울 박물관에 도달할 수 있다. - P175

2. 헤르만 괴링 요새 1983
헤르만 괴링은 베를린 언덕을 파내어 거대한 요새를 구축하면서 대체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는 말 그대로 언덕을 통째로 파내어 그 내부를 콘크리트로 견고하게 발라버렸다. - P181

그러나 1945년 봄 러시아군이 계절의 마지막 블리자드 같은모습으로 베를린 시가지에 쳐들어왔을 때, 헤르만 괴링 요새는가만히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러시아군은 지하도를 화염 방사로 태우고, 고성능 폭탄을 장치해요새의 존재 자체를 소멸시키려했다. 그러나 요새는 소멸되지 않았다. 콘크리트 벽에 금이갔을 뿐이다. - P182

"여기 좀 보세요." 그가 그런 탄환 자국 하나를 가리킨다. "러시아군과 독일군의 탄환은 금방 구분할 수 있죠. 마치 벽을 깨부술 듯이 예리한 모양이 독일군 탄환이고, 쑥 들어가 있는 것이러시아군의 것이에요. 생긴 것부터 이렇게 달라요, 유노." - P183

그녀는 거대한 페니스를 찬양하는 듯한모습으로 맥주잔을 끌어안고 우리 테이블로 가져왔다. - P184

나는 혼자 프리드리히 슈트라세를 따라 북쪽으로 걸어가면서,
1945년 봄에 헤르만 괴링이 무슨 생각을 했는지 상상해본다. 그러나 1945년 봄 천년왕국의 원수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그런 건 결국 아무도 모르는 것이다. 그가 사랑했던 아름다운 하인켈 117 폭격기 편대는 마치 전쟁 그 자체의 시체처럼, 우크라이나 황야에 수백 개의 흰 뼈를 드러내놓고 있었다. - P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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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부엌 바닥에 드러누워 죽은 척해보았다. 내가 죽었다고믿고 그대로 계속 죽어 있는 훈련을 한 것이다. 나는 벌렁 누워눈을 감고 어둠 속에서 숨을 꾹 참았다. 물론 하염없이 참을 수는 없다. 그래도 최대한 오래 숨을 멈추었다가, 한 번 들이마신뒤 다시 멈추었다. 몸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겉으로는 누가 봐도 죽은 듯이 보였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머리를 텅 비워보았다. - P200

이것이 죽음이라고 나는 생각하려 했다. 이것이 죽음이다. - P200

그러나 그것은 죽음이 아니었다. 단순한 어둠이었다. - P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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