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ENT TO THE WOODS BECAUSEI WISHED TO LIVE DELIBERATELY,
TO FRONT ONLY THE ESSENTIALFACTS OF LIFE.
AND SEE IF I COULDNOT LEARN WHAT IT HAD TO TEACHAND NOT, WHEN I CAME TO DIE,
DISCOVER THAT I HAD NOT LIVED.
THOREAU
"삶의 본질을 확인하고 싶었고, 그로부터 다시 삶을 배우고 싶었다.
또한 삶의 마지막 순간에 제대로 살지 못했다는 후회를 하고 싶지 않았다." - P13

작은 호수
그 호숫가 숲속
가로 4.6m, 세로 3m, 높이 2.4m 의 통나무집
그 안에 놓인
나무침대 하나, 탁자 하나, 책상 하나, 벽난로 하나, 의자 하나
그리고 큰 창 하나 - P14

통나무집
28 달러 12.5 센트
8개월간의 식비
8달러 4 센트
의복비와 기타비용
8달러 40센트
그리고
그가 택한 삶에 쓰인 비용은
없다 - P15

"샤넬을 하나라도 갖고 있지 않은 여성은
패션의 승리자가 될 가망이 없다"
미국 패션잡지 <하퍼스 바자> - P21

"고급스러움이란 빈곤함의 반대말이 아니라
천박함의 반대말이다."
-가브리엘 샤넬(샤넬 창업주) - P23

나에게 잠을 허하라 - P46

콰이강의 다리
콰이강의 비극 - P266

1942년 일본군은
태국과 미얀마를 잇는 군수용 철도 공사를 시작했다
연합군 포로 5만5,000명이 강제동원된
콰이강의 다리그곳엔 전라남도 보성에서 끌려온
조선인들도 끼여 있었다 - P266

형식적으로는 ‘모집‘ 이었지만
실제로는 ‘강제동원된 3,000명의 조선 젊은이들...
그들의 임무는
콰이강 공사장에 끌려나온
연합군 포로들을 감시하는 것 - P267

1945년 8월 15일
일본 무조건 항복
조선인들에게는 꿈에 그리던 해방…
그러나 콰이강의 조선인들은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전범재판

A급 일본인 전범 7명 사형
B. C급 조선인 전범 23명 사형 - P268

"우리는 일본군보다 조선인을 더 증오했습니다.
철도공사현장으로 우리를 끌고갔던 것은 조선인이었고우리를 감시한 것도 조선인이었습니다."
-톰 모리스, 휴 클라크(당시 일본군 포로) - P268

새마을운동이 열리고
너도나도 잘살자고 외치며
1분 1초를 아끼던 시절
진기한 풍경이 있었다
아이들은 물론
선생님도 마음놓고 주무시던
국민학생 낮잠자기 캠페인
하지만 삼당사락이란 말도 있었다
3시간 자면 붙고 4시간 자면 떨어진다는..… - P49

한나라당 38.2%
열린우리당 11.9%
민주노동당 4.5%
민주당 4.0%
통합신당모임 2.4%
없음. 모름 37.7%
2007년 3월 22~24일 정당지지도 조사
(전국 성인남녀 929명 대상 <입소스코리아> 조사) - P120

다양한 계층과 계급들
다양한 삶과 갈등은
정당이 존재할 수 있는 필수조건이며
정당은 그 갈등을 대변하고
그 갈등을 풀 수 있는 정책으로 경쟁해야 한다
복지/교육/노동/한미FTA/주택 · 부동산/외교/일자리·먹고사는 문제들…
2007년 한국사회에 존재하는 갈등들... - P123

매니페스토
현대정치에서 ‘매니페스토manifesto‘ 란 선거와 관련한 구체적인 정책및 공약을 의미한다. 라틴어 이원인 ‘마니페스투스 manifestus‘는 ‘증거 또는 증거물‘ 이란 의미다. ‘매니페스토 운동‘이란 선거에 출마한후보자의 공약을 세밀하게 검증하여 유권자가 투표 때 중요한 판단기준으로 삼을 수 있도록 하겠다는 취지의 운동을 말한다. - P124

아무래도 충격요법을 써야겠군...
제이미 올리버는
닭껍질과 닭찌꺼기를 믹서에 갈고
합성지방을 넣은 후
기름에 튀긴 것을 아이들에게 보여주며 이렇게 말했다
"이게 바로 너희들이 좋아하는 치킨너겟이야.
자, 이걸 먹을래? 아니면 닭다리구이를 먹을래?"
웩!
우웩!!! - P131

"새벽에 비행기로 폭탄을 떨어뜨렸어요.
우리는 모두 자고 있었어요..."
2006년 7월 30일
조용했던 레바논 카나마을에
폭격이 있었던 새벽
마을에서 살아남은 이는 8명..…
희생자 60여 명 중 37명은 어린이들
어린이들...

"충분히 군사공격에 대한 경고를내린 뒤였다"
-카나 폭격 직후 이스라엘 군당국

개새끼들 - P164

2006년 7월 12일
이슬람 무장단체 헤즈볼라 소탕을 명분으로
레바논을 무차별 침공한 이스라엘…
그러나 철군 촉구 결의안을 채택하지 못한 UN.…
번번이 미국의 거부권으로
중동의 안전을 보장해주지 않는 안전보장이사회・・・ - P167

"우릴 잊지 말아주세요.
그리고
제발말해주세요..."
*2006년 7월 27일 박노해 시인(샤일 박)과 레바논 친구와의 통화내용 중 발췌인용. - P167

청계천 철거 그 이후
청계천 복원공사로 터전을 잃은 황학동 벼룩시장 상인들 중 노점상900여 명은 동대문운동장으로 이전하여 2005년 1월 ‘동대문 풍물거리‘라는 이름으로 새둥지를 틀었다. 하지만 이전한 지 불과 2년도안 되어 다시 풍물벼룩시장의 존폐가 논란이 되고 있다. - P186

1974년 12월 20일 보통역으로 영업개시(정선선 구절리선)
1994년 구절리 광산 폐광
2004년 9월 역기능 중단
2005년 레일바이크 관광명소로 재개발
혼자 가만히 말해봅니다
Happy Birthday to you - P165

석탄경기
해방 이후 한국의 석탄산업은 ‘국내 유일의 부존에너지‘로 국가경제에서 절대적인 위상을 차지했다. 특히 무연탄을 가공하여 만드는구공탄(연탄)은 일산화탄소 중독의 위험성에도 불구하고 서민들의겨울철 가정난방에 꼭 필요한 생활필수품으로 자리잡았으며, 1973년과 1978년 두 차례에 걸친 석유파동의 위기를 극복하는 데에도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 P196

다음 문장을 완성하시오.
내가 잊고 싶은 두려움은~~~~~~~~
우리 가족이 나에 대해서~~~~~~~
나의 가장 큰 결점은~~~~~~~
언젠가 나는~~~~~~~ - P217

하루에 부모와 이야기하는 시간 30분 이하 30%
친구들과 노는 시간 거의 없다 30%
가출충동을 느껴본 적이 있다 53.3%
자살 욕구를 경험해본 적이 있다 27%
자살을 생각한 가장 큰 이유는 성적 문제 - P220

2006년 2월 인천
방학숙제를 하러 방으로 들어간 초등학교 6학년 아이가방문손잡이에 도복끈을 묶고 목을 매 자살했다
아이가 평소 자주 하던 말은
"학원을 조금만 다녔으면 좋겠다." - P220

한 평범한 초등학생이 완성한 문장

※ 다음 문장을 완성하시오
내가 잊고 싶은 두려움은(이번에 친 시험점수다)
우리 가족이 나에 대해서 (공부 잘하는 것만 밝힌다)
나의 가장 큰 결점은 (공부를 못한다는 것이다)
언젠가 나는(공부를 제일 잘하는 ○○○를 이기고 싶다)
그리고아직 완성되지 않은 문장
"나도 ( )처럼 자유롭게 날고 싶다" - P221

200여년전
모내기를 끝낸 단오무렵
스물두 명의 사람들이 한양거리에서
막바지로 치닫는 씨름경기를 즐기고 있었다
갓을 쓴 양반들
털벙거지를 쓴 마부
그리고 구경하는 아이들.…
신분해체가 진행되던 정조 시대의 풍경
그 속에 숨어 있는
깜찍한 도상학
단오?
단오에는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부채를 선물하는 풍속이 있었다.
한양?
샅바 없이 진행하는 바씨름은 주로 한양과 경기 일원에서 즐겼다
막바지?
팔을 괴고 누운 구경꾼, 다리가 저려오는 구경꾼, 다음 선수의 벗어놓은 신발 - P338

이번 경기의 승자는 누구?
들배지기를 시도하는 선수・・・
패색이 짙은 선수・・・
들린 선수를 응원하던 구경꾼의 안타까움・・・
단정한 옷차림의 패자가 신었던 신발은 갖신!
따라서 승자의 신발은 그 옆에 놓인 짚신! - P339

화가가 숨겨놓은 수수께끼
좌우가 바뀐 구경꾼의 손
서민들이 그림 속에서
웃음을 찾길 원했던 화가의 선물 - P339

김광석
김광석은 1964년 대구에서 태어났다. 1976년 경희중학교에 입학하여 현악반에 들어가면서부터 바이올린, 오보에, 플루트 등 다양한악기와 악보를 익혔고, 1979년 대광고등학교에 입학해서는 합창단에서 활동하기도 했다. 1982년 명지대 경영학과에 입학한 후 대학연합동아리 ‘연합메아리‘에 가입하여 본격적인 음악인생을 시작,
1984년 김민기의 <개똥이> 음반에 참여한 것을 계기로 ‘노래를 찾는 사람들‘ 에서 주도적으로 활동하게 된다.
1987년 여름, 김광석은 주변의 음악친구들과 모여 그룹 ‘동물원‘
을 만들고 다음해 1집을 내놓았다. 이 음반은 서정적인 노랫말과 쉬운 멜로디로 대중적인 사랑을 받으면서 ‘김광석‘ 이라는 이름을 많은사람들의 뇌리에 각인시켰다.
이후 솔로로 전환한 후 많은 히트곡들을 잇따라 내면서 1990년대 모던포크 음악의 계보를 새롭게 써 나갔다. 특히 1970년대 한대수, 서유석, 김민기 등이 보여주었던 저항적이고 토속적인 포크 음악을 현대화시켜 자신만의 독특한 음악세계를 형성하며 평단과 대중들로부터 절대적인 지지를 받았다.
1996년 1월 6일, 김광석은 서른둘의 젊은 나이에 불의의 자살로생을 마감했다. - P362

권정생
권정생은 1937년 일본 도쿄의 빈민가에서 태어났다. 광복 직후인1946년 가족과 함께 귀국하여 나무장수, 고구마장수, 담배팔이 등을 하며 가난과 싸우다 결핵에 걸렸다. 가족의 부담을 염려한 그는,
합병증까지 얻어 만신창이가 된 몸을 이끌고 대구, 김천, 상주, 문경을 홀로 떠돌며 걸식을 하는 등 어려운 삶을 이어갔다. 1967년, 우연히 경상북도 안동시에 있는 한 교회의 종지기가 되면서 그곳에 정착한다. - P3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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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이희수

터키 이스탄불대학교에서 한국인 최초로 박사학위를 받은문화인류학자이자 중동 역사와 이슬람 문화에 관한 국내최고 전문가로, 터키 아나톨리아반도를 포함해 사우디아라비아·튀니지 ·이란·우즈베키스탄·말레이시아 등 이슬람권 전역에서 40년간 현장 연구를 해왔다. 이슬람협력기구(OIC) 산하 이슬람역사문화연구소 (IRCICA) 연구원, 튀니지 사회경제연구소(CERES) 연구원, 한국중동학회장 겸 한국이슬람학회장, 한양대학교 도서관장·박물관장·문화재연구소장· 세계지역문화연구소장, 외교부 정책자문위원회 아프리카중동분과 위원장, 중앙아시아학술연구소 (IICAS) 학술위원 등을 지냈다. 지금은 한양대학교 문화인류학과 명예교수, 성공회대학교 석좌교수와 이슬람문화연구소 소장으로 있으며, 서양 중심의 보편적 역사관을 넘어 인류문명의 뿌리인 오리엔트-중동 지역의 역사와 그 토양에서 발아한 이슬람 문명을 조망하고 연구하는 데 매진하고 있다.
《이희수의 이슬람》, 《세상을 바꾼 이슬람》, 《터키사 100》,《터키 박물관 산책》, 《헤이트》(공저), 《한국어-터키어사전》(공저) 등 80여 권을 쓰고, 《중동의 역사》, 《금의 역사》,
《문명의 대화》 등 10여 권을 우리말로 옮겼다.
지은 책 중《이슬람과 한국문화》는 아랍어, 터키어, 이란어로 번역 출간되어 한국과 이슬람 세계의 교류를 밝히는 저술로 평가받았으며, 페르시아 왕자와 신라 공주의 사랑 이야기가 담긴 고대 페르시아 서사시 《쿠쉬나메》를 발굴해 우리말로 옮겨 국내에 소개했다.

역시 다 읽은 책은 하나도 없다. 소유욕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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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집 2022-07-02 23: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소유욕에서 빵 터졌네요!! ㅎㅎ

대장정 2022-07-02 23:57   좋아요 0 | URL
도저히 참을수 없습니닷ㅠㅠ

바람돌이 2022-07-03 14: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 10권 읽었는데 왠만한건 다 읽었다 생각했는데 아니네요. ㅎㅎ 진짜 이분 책 많이 쓰셧군요. 이분 책은 쉽게 읽을 수 있어서 좋았던 듯해요. 이 책들을 다 가지고 있는 대장정님의 소유욕에 감탄 감탄합니다. 소유욕 만세!!!! ^^

대장정 2022-07-03 15:09   좋아요 1 | URL
엄청 많이 읽으셨네요. 대단하십니다. 만화책은 없어요ㅎㅎ😅😅😂 절제!
 

고추는 어떤 맛을 낼까? 일단 고추를 먹으면 혀가 아려오면서매운맛이 느껴진다. 알아두어야 할 것은 인간이 지닌 미각에 ‘매운맛‘이 없다는 사실이다. 본래 인간의 미각은 살아가는 데 필요한 정보를 얻기 위한 수단 중 하나다. 예를 들어 쓴맛은 독을 식별하는 수단, 신맛은 상해서 시큼해진 음식을 판별하는 수단이다.
단맛은 인간으로 진화하기 전 원숭이가 먹이로 삼던 과일의 익은정도를 식별하는 수단이다. 그러나 흥미롭게도 혀에 매운맛을 느끼는 부분은 없다. - P108

고추는 아시아인의 밥상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음식 재료로 부상했다. 음식이 매우 매울수록 우리 몸은 더 많은양의 엔도르핀을 분비하고 이로써 사람들은 쾌감을 느낀다. 여기에 더해 고추에는 비타민C도 풍부해 여러 질병 예방 및 치료에도효과가 있다. 그러고 보면 고추가 사람들에게 그토록 사랑받는것도 어쩌면 당연한 일이 아닐까. - P112

새를 이용해 번식하는고추의 독특한 진화 전략
고추는 불가사의한 열매다. 왜일까? - P112

원숭이 같은 포유동물은 매운 고추를 먹지 못하지만 새는 태연하게앉아 잘 익은 고추를 맛있게 먹어치운다. 실제로 닭에게 새빨갛게 독이 오른 고추를 주면 녀석은 신이 나서 쪼아 먹는다. 새에게는 고추의 매운맛 성분인 캡사이신을 느끼는 수용체가 없기 때문에 매운맛을 느끼지 못한다. 그러므로 어쩌면 새는 매운 고추를먹으면서 토마토나 딸기를 먹을 때처럼 달콤하다고 느낄지도 모른다. - P114

고추는 한국과 일본에 모두 전해졌으나일본과 달리 한국에서는 매우 성공적으로 자리매김했다.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한국인들은 이 매운 식물로
‘고추 음식문화‘를 그야말로 활짝 꽃피웠다. - P116

피망의 일종인 파프리카는 보통 완전히 익은 상태로 팔리기 때문에 색도 선명하고 단맛도낸다. 참고로 파프리카는 헝가리어로
‘검은 후추‘를 의미하는 단어에서 비롯되었다. 그러고 보면 파프리카에도 후추를 향한 유럽인의 아련한 추억과 동경이 은밀하고도 다채롭게 스며 있는 셈이다. - P119

양파가 없었다면 피라미드도 없었다?
양파는 인류 역사와 맞먹을 정도로 유서가 깊은 작물이다.
기원전 수십 세기의 사람들이 제작한 피라미드 부조를 유심히살펴보면 놀라운 것을 발견하게 된다. 피라미드를 건축하는 노동자들이 허리에 양파를 매달고 일하는 장면이 바로 그것이다. 이는 당대의 노동자들이 양파를 일종의 보양식품으로 챙겨 먹었다는 걸 보여준다. - P123

고대 이집트 왕실에서는 피라미드 건설 현장에서힘들게 일하는 노동자들에게 강장제 역할을 하는양파를 지급했다고 전해진다. - P125

양파의 둥근 부분을 우리는 ‘알뿌리‘라고 부른다. 그런데 사실이 부분은 뿌리가 아니다. 그럼 뭘까? 열매? 아니다. 놀랍게도 줄기다. 식물학에서는 양파의 알뿌리를 ‘비늘줄기 (鱗, Bulb)‘라고 부른다. 이는 비늘 모양으로 생긴 줄기라는 뜻이다. - P128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양파는 줄기도 아니다. 뿌리도 열매도줄기도 아니면 도대체 뭐란 말인가. 우리가 먹는 동그란 양파는사실 ‘잎‘이다. 양파를 세로 방향으로 반으로 자르면 가장 안쪽에
‘심‘ 같은 게 들어 있는데, 그 부분이 바로 양파의 줄기다. 그 줄기에서 차곡차곡 포개지며 잎이 나온 것이다. 양파는 건조지대에서살아남기 위해 이 잎 부분을 두툼하게 만들어 영양분을 저장하는방식으로 진화한 것이다. 그러고 보면 우리가 마트에서 사다 반찬으로 해 먹고 즙을 짜서 먹는 양파는 줄기와 잎으로 구성된 먹을거리인 셈이다. - P129

신비로운 음료 홍차와 사랑에 빠지는 사람이
늘어날수록 영국은 더 많은 차를
청나라에서 수입해야 했다.
차를 수입하느라 은이 대량 유출되자
영국은 아편을 중국에 내다파는
천인공노할 해결책을 내놓았다. - P132

찻잎을 말린 산차를 널리 보급하려는 홍무제의 노력으로 중국에서 자취를 감춘 말차는 일본으로 건너가 명맥을 유지했다. 일본에서 말차가 인기를 얻은 이유는 ‘와이사비 (불완전함에서 미를 찾는 일본의 전통적 미의식-옮긴이)‘라는 일본 특유의 미의식과 절묘하게 맞아떨어졌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아무튼 말차는 일본의 독특한 다도(茶道)문화로 진화하며 자리매김해갔다. - P136

‘미국 독립전쟁‘이라는 화약고에
불을 댕긴 도화선, 홍차 - P142

1773년 미국인은 세금을 피하려고 네덜란드에서 차를 밀수하는 꼼수를 부렸다. 영국이 미국에 수출하는 차에 무거운 세금을매긴 탓이었다. 영국은 차 조례 법을 제정하여 미국의 차 밀수를엄격히 단속했다.
영국의 강압적인 제제에 분노한 미국인들은 차를 운송하던 영국 배를 기습해 차 상자를 빼앗은 뒤 모조리 보스턴항에 던져버렸다. 1773년 12월의 일이었다.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보스턴 차사건‘이다. 그때 얼마나 많은 차를 바닷속에 던졌는지 바닷물이온통 홍차 빛깔로 붉게 물들 정도였다고 한다. 그런 맥락에서 이사건은 ‘보스턴 티파티 (Boston Tea Party)‘라는 이름으로 역사에 기록되었다. - P143

재배에 손이 많이 가는 작물을 키우기 위해 유럽인은
식민지인들에 눈독을 들였다.
그리고 아프리카에서 신대륙으로 향하는 배에
사탕수수 재배에 투입할 노예를 가득 태웠다. - P154

달콤한 맛과 냄새를 찾는 일이
생존과 직결된 문제였던 이유

인간은 단맛을 몹시 사랑한다. 아이들은 달콤한 과자에 열광하고 어른도 이 점에서 별반 다르지 않다. 어른들은 이따금 자신에게 주는 상이라며 달콤한 디저트를 즐기거나 날을 잡아 단맛을내는 음식을 질리도록 먹는다. - P155

사탕수수는 동남아시아가 원산지인 아열대 식물이다. 사탕수수에서 설탕을 정제하는 기술은 인도인이 개발했다. 기록에 따르면 불교를 창시한 석가모니 고타마 싯다르타도 고행을 마치면 설탕이 들어간 우유죽을 마셨다고 한다. - P157

결국 사탕수수를 생산과 동시에 정제하는 공장이 세워졌다. 공장이 문을 열자 쉴 새 없이 설탕을 생산하는 일만 남았는데 이 일련의 과정을 ‘플랜테이션(Plantation)‘이라 부른다.
플랜테이션에는 대량의 집중적이고도 지속적인 노동력이 필요했다. 그런 터라 플랜테이션 농장주들은 처음에 전쟁 포로를사탕수수 농업 및 정제 과정에 투입했다. 그러다가 전쟁 포로로는 엄청난 일손을 감당할 수 없게 되자 점차 노예 노동력으로 대체했다. - P160

"무엇에 쓰려고 돈을 법니까?"
외국인 사업가가 대답했다.
"풍광이 아름다운 남국의 섬에서 유유자적하며 살려고요."
그 말을 들은 섬 주민들이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우리는 이미 그렇게 살고 있습니다."
흥미로운 이야기가 아닌가! - P161

카리브해 섬들의 온난한 기후에 주목한 콜럼버스는
사탕수수를 아메리카 대륙에 들여왔다.
그의 계획대로 그렇게 도입해 재배된 사탕수수는
후추를 대신해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자라났고
막대한 부를 창출했다. - P163

노예무역이 시작된 1451년부터
노예제가 완전히 폐지된 1865년까지 
940만 명에 달하는엄청난 수의
아프리카인들이 아메리카 대륙으로 끌려와
노예로 비참한 생활을 했다. - P166

노예를 부릴 수 없었던 하와이에는
다양한 민족 사람들이 부나비처럼 모여들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 하와이에는 전 세계적으로도 보기 드물게
다민족 다문화가 공생하는 독특한 사회가 탄생했다. - P169

18세기 후반 값싼 면직물을 원하던 영국 사회에
혁신적 사건이 발생했다. 증기기관 출현으로
작업을 기계화하면서 대량생산이 가능해진 것이다.
이것이 바로 산업혁명이다. - P174

주로 양털 등을 사용한 모직물로 옷을 지어 입던
유럽인 대다수가 ‘섬유는 마땅히 
동물의 털에서 얻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보니 유럽인은 양이 과일처럼
주렁주렁 열리는 식물이 있는 모양이라고 상상했다는
우스운 이야기도 전해 내려온다. - P179

18세기 후반에 이르자 저렴한 면직물을 원하던 사회에혁신적인 사건이 일어났다. 석탄을 이용하는
증기기관이 출현하면서 기계화가 실현되고
대형 공장에서 면직물 대량생산이 가능해진 것이다.
이 일련의 과정이 바로 그 유명한 산업혁명이다. - P182

링컨 대통령은 ‘노예해방 선언‘이라는
히든카드를 내놓았다. 이는 전쟁 목적이
노예해방에 있음을 나라 안팎에 널리 알려
영국이 남부를 지원하지 못하게 하려는
고도의 전략이 숨어 있는 행위였다. - P187

인류는 어느 순간 위대한 발명과 함께
획기적인 전환기를 맞이했다. 돌연변이를 일으킨
한알의 ‘밀‘을 만나면서 인류는 수렵생활을 버리고
농경생활의 길로 나아갔다. - P192

특이하게도 볏과 식물은 독 대신
유리의 원료인 ‘규소‘라는 단단한 물질을
몸속에 축적해 자신을 지키는 길을 택했다.
이는 대단히 효과적인 방법이다. - P199

먼저 ‘위‘에 변화가 일어났다.
이 초식동물들은 진화를 통해 
‘네 개의 위를 갖게 되었다.
그네 개의 위 중에서 인간의 위처럼
소화 흡수를 담당하는 기관은 네 번째 위뿐이다. - P204

이유가 뭘까? 그 이유는 바로 ‘탈립성(脫粒性)‘ 때문이다. 탈립성이란 식물이 자신의 몸에서 씨앗을 땅에 떨어뜨림으로써 번식가능성을 높이는 고유의 성질을 말한다. 대다수 야생식물은 씨앗이 여물면 뿔뿔이 흩어지게 한다. 즉, 오늘날 우리가 만나는 식물들은 대부분 탈립성을 지니고 있다. 빗과 식물 역시 마찬가지였다. 씨앗이 여물대로 여물면 남김없이 땅에 떨어져 버리기 때문에식물의 번식에는 유리할지언정 인류에게 안정적으로 식량을 공급해주지는 못했다. - P207

고되게 중노동을 해서라도 굶주리지 않고 살 수 있다면 농사일은 충분히 가치 있는 행위다. 고대 인류는 자신을 둘러싼 척박한자연환경에 굴복하지 않고 당당히 맞서며 농경을 시작하고 식량을 생산하며 생존하고 번성했다. 그리고 농업을 기반으로 찬란한문명을 이루어냈다. 농업은 그 자체로 척박한 자연환경에 맞서싸워 승리한 인류의 눈물겨운 투쟁기다. - P210

인류는 씨앗의 이러한 속성을 지혜롭게 활용했다.
인류는 먹고 남은 식물 씨앗을 버리거나 없앨 필요가 없었다.
남은 씨앗은 잘 보관해두었다가 땅에 심으면 곡식으로 자라 머지않은 미래에 확실한 수확을 보장해주었다. - P219

16세기 일본은 같은 섬나라인 영국보다
6배 많은 인구를 부양했다.
그 많은 인구를 먹여 살린 것은
논농사 기법과 ‘벼‘라는 작물이다. - P224

구체적으로 생산량의 차이를 비교해보자. 15세기 유럽에서 밀을 뿌려 수확한 양은 종자 대비 3~5배 정도에 불과했다. 반면 벼는 17세기 무렵종자대비 20~30배의 수확을 올렸을 정도로 생산성이 뛰어났다. 오늘날에도 벼는 종자 대비 120~140배의 수확량을 얻지만 밀은 20배 정도의 수확량밖에 얻지 못한다. - P232

5월 무렵 아시아 대륙이 따뜻해지고 저기압이 발생하면 인도양 상공의 고기압 영향으로 대륙을 향해 바람이 부는데 이것이바로 몬순이다. 몬순이대륙의 히말라야산맥에 부딪히면 진로를동쪽으로 변경한다. 이때 습기를 머금은 축축한 바람이 비를 몰고 오면서 아시아 각나라는 우기에 접어든다. 몬순의 영향으로형성된 고온다습한 아시아의 여름 기후는 벼를 재배하기에 적합하다. - P234

중국이 원산지인 콩은 쌀과 영양 면에서 궁합이 좋고
콩으로 만든 된장도 영양이 풍부하다.
중국 4,000년 문명을 뒷받침한 콩은 전 세계로 뻗어 나갔다.
오늘날 전 세계 콩생산량의 85퍼센트가 아메리카 대륙에서 나온다. - P246

중국 4,000년 문명을 뒷받침해준 위대한
두 가지 작물, 벼와 콩

인류 4대 문명은 주요 작물과 관계가 깊다. 예를 들어 메소포타미아 문명과 이집트 문명에는 보리·밀 등의 ‘맥류(麥類)‘가 있다.
그리고 인더스 문명에는 벼가, 중국 문명에는 대두가 있다. 아메리카 대륙으로 눈을 돌려보자. 아스테카 문명과 마야 문명이 있던 중미는 옥수수의 원산지이고 잉카 문명이 있던 남미의 안데스지역은 감자의 원산지다. 중국 북부 황허강 유역에서는 대두와조를 중심으로 한 밭농사가 발달했으며 남부 양쯔강 유역에서는벼를 중심으로 한 논농사가 발달했다. - P248

다양한 영양소를 갖춘 안전 영양식으로 일컬어지는 쌀은 유일하게 아미노산인 라이신이 부족하다.
이 라이신을 풍부하게 함유한 식품이 바로 대두다. - P253

옥수수는 단순한 식량이 아니다.
옥수수는 공업용 알코올과 종이상자 같은 자재,
석유를 대체할 바이오 에너지 등으로 쓰인다.
현대 문명은 옥수수 없이 성립할 수 없을 정도다. - P264

마야 전설에 따르면 신이 옥수수로 인간을 만들었다고 한다.
이는 인간이 옥수수를 만든 게 아니라
옥수수보다 나중에 등장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 P269

네덜란드는 동인도회사를 설립해 해양무역으로
자산을 축적하면서 황금시대의 막을 올렸다.
그리고 사람들은 남아도는 금으로 앞다투어
튤립 알뿌리를 사들였다. - P280

십자군의 짐에 섞여 유럽에 잠입한
터키의 야생 튤립 씨앗

‘튤립‘ 하면 여러분은 머릿속에 어느 나라가 가장 먼저 떠오르는가? 아마도 누구나 네덜란드를 떠올리지 않을까? 그러나 사실튤립의 원산지는 네덜란드가 아니며 유럽도 아니다. 그럼 어디일까? 중근동(아프리카 북부지역과 서아시아-옮긴이)이다. 그렇다면 튤립은 유럽에 어떤 경로로 전해졌을까? 아마도 야생 튤립이 십자군의 짐에 섞여 유럽으로 들어간 것으로 추정된다. 십자군 원정이후 터키에서 품종 개량이 이루어졌고 이후 16세기 네덜란드 상인이 육성한 원예종이 등장했다. - P281

튤립은 터키의 국화다. 터키어로 튤립은 ‘랄레 (Lale)‘라고 부른다. 말하자면 튤립이라는 이름은 착각에서 비롯된 엉뚱한 이름인셈이다. - P282

네덜란드인은 봄을 장식하는
그 아름다운 꽃에 열광했고
튤립은 ‘봄을 알리는 꽃으로 여겨져
네덜란드인 사이에 인기가 높았다. - P283

네덜란드 사람들이 튤립 알뿌리를 말도 안 되는
엄청난 가격에 거래하면서 비현실적인 거품경제가 형성되었다.
공교롭게도 최고가에 거래된 튤립의 이름이
‘파산하다‘, ‘무너진다‘라는 의미의 ‘브로큰‘이었다. - P288

만약 지구 밖에서 온 생명체가 지구를 관찰한다면 어떻게 생각할까? 그의 눈에 비친 지구의 진정한 지배자는 누구일까? 어쩌면그것은 ‘인간‘이 아니라 ‘식물‘일 수도 있지 않을까? 아니, 한발 더나아가 그 외계인은 인류를 ‘지배자인 식물의 시중을 드는 가엾은 노예‘로 자신의 별에 보고할 수도 있지 않을까?
이 책이 당신이 통념을 깨고 사고의 틀을 넓히는 유용한 도구가 되기를 소망해본다.
- 이나가키 히데히로 - P2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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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aladin.co.kr/events/wevent.aspx?EventId=235140&CustNo=3538673

알라딘보다 인팍을 훨씬 많이 이용했었지.
알라딘보다 10배쯤
지금은 인팍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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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럼버스의 성공을 시샘한 이들의 말대로 대서양 서쪽으로 계속 항해하면 인도에 도달하게 된다는 것은 사실 콜럼버스만의 독특한 아이디어가 아니라 당대에는 상식과도 같은 보편적인 생각이었다. 관건은 아이디어의 참신성이라기보다는 행동과 실천의여부였다. 콜럼버스는 바로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과감히 실행에 옮겼고 스페인 여왕을 끝내 설득하여 탐험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바로 이 행동력 · 실천력에 콜럼버스의 위대함이 있다. - P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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