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렌체가 원근법을 통해
회화의 혁신을 이루어냈다면,
베네치아는 색채를 통해
회화의 혁신을 완성해냅니다. - P1

결국 자화상이라는
회화 장르가 탄생한 순간
우리는 북유럽 화가들의
강한 자의식을
목격하게 되는 거예요. - P1

북유럽에서 등장한 새로운 미술은
‘새로운 시대‘에 완전히
‘새로운 인류‘가 등장한 걸
보여주는 거예요. - P1

당시 사람들은
성당을 꾸밀 때 제대에
가장 많이 신경 쓰면서 그 위에
올리는 제대화에 정성을 아끼지
않았어요. - P1

이 책은 또 다른 르네상스로 떠나는 시간 여행입니다. - P6

사실 근대의 여명을 알린 르네상스는 이탈리아반도에 국한되지 않았습니다. 유럽을 가로지르는 알프스산맥 북쪽에서도 거대한 변화의 시간은 다가왔고 이 움직임을 북유럽 르네상스Northern Renaissance라고 부릅니다. - P6

이 책은 북유럽 르네상스 미술과 베네치아 르네상스 미술을 한 권으로 엮어낸 점에서 새롭다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이 두 지역은그간 일반적인 미술사에서는 거의 함께 다뤄지지 않았습니다. 번영하는 상업 문화라는 관점에서 플랑드르와 베네치아가 아주 매력적으로 연결되기에 미술에 있어서도 두 지역은 같이 살펴볼 필요가있습니다. - P7

결과적으로 이 책은 서양 근대 문명의 키워드를 자본과 개인으로압축해냅니다. 동시에 자본주의의 역사적 계보를, 그리고 그 속에서 개성을 갖춘 개인의 등장을 살펴볼 것입니다. 막대한 부의 이동에 따라 도시의 운명이 바뀌고, 그 속에서 한 걸음씩 성장해나가는새로운 시민 계층의 미술에 초점을 맞추려 했는데 이런 시도가 독자들에게 신선한 노력으로 다가가길 바랍니다. - P7

바다보다 낮은 땅. 둑을 쌓고 운하를 파고,
물길을 바꾸고 또 물을 퍼내고…
이 지난한 과정을 거쳐 척박한 땅을 개척해
인간의 치열함이 깃든 곳, 플랑드르
그 가운데 ‘북유럽의 베네치아‘라 불릴 만큼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하는 도시 브뤼헤에서
사람들은 오늘날에도 배로 운하를 오가며
한때 무역이 활발했던 상업도시의 옛 영광을 느낀다.
- 로젠후드카이에서 바라본 풍경, 벨기에 브뤼헤 - P12

내가 그 그림들을 볼 수만 있다면
나는 죽어도 좋을 만큼 행복할텐데.
--위다, 『플랜더스의 개」중 넬로의 대사 - P14

플랜더스는 대략 오늘날 벨기에의 북쪽 지역을 가리킵니다만, 원래는 벨기에 전역과 네덜란드의 옛 지명이에요. 보통 프랑스어로 ‘플랑드르‘라고 불려요. 플랜더스의 개』를 쓴 작가 위다가 영국 사람이라서 영국식으로 플랜더스라고 읽은 겁니다. - P16

『플랜더스의 개』 마지막 장면에서 추위와 굶주림으로 죽어가던 넬로는 평소에 꼭 보고 싶었던 그림이 있는 성당으로 향해요. 이 그림은 오늘날에도 안트베르펜의 성모 마리아 대성당에 있습니다. - P17

그리고 넬로가 그토록 보고 싶어 했던 그림은 17세기 화가 루벤스가 그린 ‘십자가에서 내려지는 그리스도‘입니다. 루벤스뿐만 아니라, 빛의 미술가라 불리는 렘브란트와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라는그림으로 유명한 베르메르처럼 미술사에서 빛나는 화가들이 모두17세기 플랑드르에서 활동했어요. 잘 알려진 19세기 화가 빈센트반 고흐도 이 지역 출신이고요. - P19

라인강의 하수구 - P27

스스로 사자라 여긴 사람들 - P29

강대국들 사이에 끼어 있다는 비슷한 환경 속에서 저지대지역 사람들은 스스로를 용맹한 사자로 생각했고 우리나라 사람들은 스스로를 용맹한 호랑이로 여겼다는 점이 흥미롭지요. - P31

프레임 아랫단에는 "얀 반 에이크가 1433년 10월 21일에 그렸다"고쓰여 있고 윗단 중앙에는 "Als Ikh Kan"이라 적혀 있습니다.
영어로 옮겨보자면 "As I can "이 되는데, 얀 반 에이크의 좌우명으로 알려져 있어요. 중간중간에는 그리스 알파벳을 섞어 썼습니다. - P37

어쨌든 이 말은 다양한 뜻으로 해석해요. 기본적으로 
"나/에이크는이 정도까지 그린다"라고 해석하는데요,  조금 과장하자면 "나/에이크는 이렇게 잘 그린다" 라고도 할 수 있죠. - P37

그래서 어떤 학자는 이 그림이 얀 반 에이크가 사람들에게 자신의실력을 증명할 때 쓰던 일종의 보증서였다고 봅니다. 누군가가 얀반 에이크에게 그림을 얼마나 잘 그리느냐고 물으면 이 그림을 보여줬다는 거예요. - P39

미술사에서의 북유럽과 남유럽 
미술사에서 북유럽은 알프스산맥 이북 지역 전체를, 남유럽은 알프스산맥 이남 지역 전체를 일컫는다. - P40

1430년에 접어들면서 알프스 이북 지역에서는 눈에 보이는 것을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듯 정밀하게 보여주는 그림이 등장합니다. 이렇게 놀라운 사실성을 갖춘 미술을 아르스노바Ars Nova 라고 합니다. - P41

라틴어로 ‘새로운 미술‘을 뜻하죠. 중세 때의 장식적이고 호화스러운 미술과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미술이 나타났다는 걸 의미해요. - P41

이 시기 북유럽에서 등장한 새로운 미술은 단순히 그림을 그리는방식이 변하는 것에 그치지 않습니다. 크게 보면 ‘새로운 시대‘에 완전히 ‘새로운 인류‘가 등장한 걸 보여주는 거예요. - P41

19세기 문화사가 야코프 부르크하르트는 르네상스 시대를 개성의시대, 즉 개인의 인격이 비로소 주목을 받기 시작하는 시대라고 주장합니다. 이 주장의 확실한 근거가 바로 이 시기 알프스 이북 지역에서 등장한 개인초상화입니다. 왕이나 영주뿐만 아니라 아주 평범한 사람들, 그러니까 시민들이 그림의 주인공이 될 수 있는 시대가 드디어 열린 겁니다. - P64

땅이 척박한 플랑드르 지역에서는 일찍부터 상업이 발달했다. 플랑드르 사람들은 그런환경을 극복하고 살아남은 만큼 자의식과 독립심이 강했다. 이런 특징은 플랑드르에서그려진 초상화에서 잘 드러나며 곧 시민 계급의 탄생과도 연결된다. - P67

플랑드르
위치 오늘날 벨기에 북부 지역. 예전에는 네덜란드와 프랑스 일부 지역도 포함.북해로 나아가는 입구에 자리함.
→ 땅이 해수면보다 낮아 척박했기에 상업에 주력.  북해 무역의 중심지로 부상.
→ 상업을 통해 축적한 부를 기반으로 큰 자유를 누리며 자의식 성장. - P67

부르주아 
성안에 사는 사람들, 즉 시민, 상인, 장인 등 새롭게 부를 거머쥐며 등장한 신흥 계층, 높은 정치의식을 갖춤.
자부심을 강하게 담은 초상화들이 등장. 강렬한 시선 처리와 정교하고 사실적인 세부 표현, 이중 의미가 특징. - P67

시민경제는 시장경제다.
시장이 중심 역할을 하지 않는 시민경제는 존재하지 않는다.
-· 루이지노 브루니, 이탈리아 경제학자 - P68

위의 오른쪽 이탈리아 피렌체에 있는 팔라초 베키오가 그 전형적인예입니다. 이탈리아에서는 이런 건물이 시청사 역할을 했는데 브뤼헤에서는 시장 역할을 했다는 점이 다르죠. 어떻게 보면 플랑드르에서는 도시 자체가 시장을 중심으로 성장했다고도 볼 수 있어요. - P76

그만큼 플랑드르에서는 시장이 중요했던 거군요. 그런 중요한 곳에서 있으니 종탑을 더 크고 높게 짓고 싶었겠네요. - P76

ㅣ증권 시장의 탄생: 자본시장의 시작 
브뤼헤의 경제 번영을 보여주는 굉장히 특별한 장소가 하나 더 있습니다. 바로 테르 뷔르제Ter Buerse라는 광장이에요. - P86

테르 뷔르제, 브뤼헤 
테르 뷔르제 광장은 15세기의 금융가라고 할 수 있는 곳이다. 테르 뷔르제집안이 운영하던 여관은 세계 최초의 증권 거래소가 열린 곳으로 알려져 있다. - P87

뷔르제 가문의 여관이 점점 금융 거래의 중심이 되자 그 주변으로외국 상인들이 출신지별로 모이는 장소가 생깁니다. 그리하여 이광장은 오늘날 금융가의 기원이 되었지요.
그럼 뉴욕 월스트리트나 여의도 증권가도 브뤼헤에서 시작한 거라고 할 수 있겠네요. 신기합니다. - P88

한편 테르 뷔르제광장의 영향력은 오늘날까지 지속됩니다. 프랑스어로 증권 거래소를 북스Bourse라 하고, 독일어로는 뵈르제 Börse라하는데요, 이게 다 여관 테르 뷔르제Ter Bucrse를 어원으로 삼아요.
영어로도 증권 거래소는 원래 부어스 Burse로 불렸는데 18세기에 국가로부터 왕립 거래소라는 명칭을 부여받아 이름이 바뀌었죠. - P89

증권 거래소라는 단어의 시작이 여관 주인 이름이었다니 생각도 못했어요. - P89

브뤼헤에 가셨을 때 테르뷔르제 광장에 앉아 ‘여기서 현대 금융이 시작되었구나‘ 생각하시면 더욱 뜻깊지 않을까요? - P90

주목해야 할 것은 자본주의의 시작점이 공교롭게도 르네상스 시기와 겹친다는 점입니다. - P91

자본주의의 출발선은 자본주의를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달라질거예요. 그렇다면 무엇을 자본주의라고 할까요? 쉽게 말해서 자본주의는 이윤 추구를 목적으로 자본이 지배하는 경제 체제라고 할 수있죠. 다만 자본주의를 세부적으로 구성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중 무엇을 우선으로 둘지에 대해서는 경제학자마다 기준이 다 달라요. - P91

그런데 학자들 대부분은 산업자본주의 이전에 상업자본주의가 있었다고 봐요. 즉 자본이 상업으로 활성화되면서 국제화된 시기가한발 앞서 자리잡았다는 거죠. 그 시점은 빠르면 15세기, 좀 늦게잡으면 16~17세기라고 합니다. - P91

증권 거래소의 기원이 브뤼헤에 있다는 것도 결코 우연은 아니에요. 정리하자면 15세기에는 브뤼헤가 자본주의 세계의 중심이었고16세기에는 안트베르펜, 17세기에는 암스테르담을 중심으로 자본주의가 발전했던 겁니다. - P93

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
플랑드르에서 나타난 미술이 얼마나 새로웠는지 보여주면서, 그림 구석구석에 당시 브뤼헤 시장에서팔리던 상품들까지도 아주 잘 반영해놓았거든요. - P94

플랑드르는 시장을 중심에 두고 도시가 발전했다. 상업자본주의의 고향이라 할 만한브뤼헤에서 15세기에 최초로 탄생한 증권 시장과 미술 시장은 16세기에 이르면안트베르펜에서 더욱 크게 발전한다. 이러한 시장의 활력이 북유럽 르네상스를 움직이는 힘이었다. - P105

브뤼헤
위치 북해에 가까운 내륙.
만에 위성도시 다머를 건설해 국제 항구도시로 발전.
1500년경 즈빈만에 모래가 쌓이기 시작하며 쇠락. 이후 주도권은 안트베르펜으로 - P105

그림에 대해서 기술하는 것은
그림을 재현하기보다는
그림에 대한 사유를 재현하는 것이다.
- 마이클 박산달 - P106

장르타베르니에, 미사를 드리는 선량공 필리프, 15세기, 브뤼셀왕립도서관 
부르고뉴 3대 공작 필리프는 나라를 잘 다스려서  ‘선량공‘이라는 별칭으로 불렸다. 미사를 드리는 방 한쪽에 공작을위한 기도 공간이 따로 마련되어 있다. 검은 옷을 입은 선량공 필리프는 앞쪽에 두폭화를 펼쳐서 걸어놓고 기도를 드리고 있다. - P117

앙제 성 
프랑스 서북부의 도시 앙제에 자리한 이 성에 태피스트리박물관이 있다. 이곳에서 14세기에 제작된 호화로운 태피스트리를 감상할 수 있다. - P123

왕실에서 태피스트리 제작에 몰두한 것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태피스트리는 ‘노마드를 위한 벽화‘라고 부르기도 해요. 다시 말해 ‘움직이는 벽화‘입니다. 둘둘 말아서 가지고 다니다가 언제 어디에든 걸어놓을 수 있으니까요.
앞서 보신 것처럼 규모도 큰 데다 장식도 무척 호화로워서 태피스트리를 걸어놓으면 어디든 아름답고 화사한 공간으로 바뀌지요. - P127

높이도 높이지만 벽 너비가 140미터가 되는 방을 가진 집도 드물지요. 이런 태피스트리를 소유하고, 또 벽에 걸 수 있다는 것 자체가엄청난 부와 권위를 상징해요. 그러니 당시 궁정에서 태피스트리를최고의 미술로 쳤을 만합니다.
높은 집중력과 노동력, 제작 비용을 필요로 하는 태피스트리를 만들 정도로 재력이 있고 그것을 걸 웅장한 공간까지 갖추었음을 한꺼번에 과시할 수 있으니까요. - P130

부르고뉴 와인과 에스카르고 
프랑스를 대표하는 달팽이 요리 에스카르고는 원래 부르고뉴의 전통 음식이다. - P132

송아지 한 마리에 독피지가 약 3~4장 나온다고 치면 송아지 50~70 마리가 이 책을 위해 몸을 바쳤겠죠. 이런 동물 가죽으로 제작된책장을 자세히 보면 벌레 물린 자국도 가끔 보입니다. 자기들끼리싸우다가 물고 물린 이빨  자국이 나 있기도 하고요.
- P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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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스쿨은 등교 거부아를 위한 민간 시설로, 오카자키는 교사경험이 있는 신지로에게 함께 일하자고 간곡히 부탁했다.

예전에는 동전이 왜 자꾸 늘어나는 걸까 이상했지만, 치매가 진행되면 계산이 서툴러지는 ‘계산 능력 저하‘ 증상이 나타난다는것을 며칠 전 인터넷으로 알게 되었다.

"이유는 다양합니다. 괴롭힘을 당하거나, 학교 공부를 따라가지 못하게 되거나, 가정 사정으로 갈 수 없게 되거나, 프리스쿨에서 일하는 것으로 새로이 제 뜻을 이루고 싶습니다."

여기는 일본이 아닌 건가? 마치 내가 자고 있는 사이에 세상이변해버린 것 같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영문을 모르겠다.

"당신 집이라면 어딘지 압니다."
남자의 말을 듣고 고개를 갸웃했다.
모르는 남자가 어떻게 내 집을 알고 있을까 싶어 이상한 생각이들었다.

"3D 업종으로 알려져 있어서 전과가 있어도 쉽게 채용해줄 줄알았나?"
"아뇨……얼마 전부터 계속 생각했습니다. 나에게 가장 괴로운 일, 가장 힘든 일이 무엇일까 하고요."

"아뇨, 모릅니다. 저는 도시락 배달원이 아니라서요."

"그럼
"제가오늘 저녁밥은 누가 가져다주나?"
아닌 것만은 확실합니다."

"・・・・・ 그래서, 오늘 저녁밥은 누가 가져다주나?"
"아마 조금 이따 누군가가 가져다주겠죠. 일단 앉으시죠."

"간이 좀 세구먼. 아무리 젊기로서니 짜게 먹는 습관은 주의해야 하네. 아내는 그 부분을 특히 신경 써서 음식을 만들지. 그런데 맛도 훌륭하지 않은가? 자네라면 밥을 몇 공기든 먹을 테지."

그렇기 때문에 만절을 더럽히는 행위만큼은 절대로 하지 않았으면 한다. 그리고 남은 인생을 가급적 평온하게 보냈으면 한다.
그것이 아들로서 바라는 간절한 소원이다.

‘더 이상 시간을 낭비하는 일은 하지 마.‘
문득 그 말이 뇌리에 되살아났다.

만약 훗날 쇼타에게 다쿠미의 존재를 밝힌다면 그것은 그가 갱생의 길을 걷고 있다고 확신할 수 있을 때여야 한다. 정규직으로취직하고 아니고의 문제가 아니라, 자기가 저지른 죄를 제대로마주하고 있는지 아닌지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될 수 있도록 나 또한 죄를 마주해야 한다.

"아니……… 딱히 무슨 일이 있었던 건 아닌데요………. 미쓰히로군이 얼마 전에 가족끼리 여행을 다녀온 이야기를 했더니 다른아이들도 여행 이야기를 꺼내서…………."

"아마 아버지 때문…………이 아닐까요?"
그 말에 정신이 번쩍 들어 다시 다쿠미를 봤다.
"…………왜어…………."
"미안해………… 다쿠미, 미안해……아야카는 그렇게 말하며 다쿠미를 꼭 껴안을 수밖에 없었다.
우리 집에는 아빠가 없는 거야? 나도 아빠랑 놀고 싶

"그렇지 않아. 앞으로 올 날이 훨씬 귀중하단 말이야. 우리는돌이킬 수 없는 잘못을 저질렀어. 하지만, 그래도 아이가 조금이라도 자랑스러워할 만한 어른이 되어야 해. 그랬으면 좋겠어."

마치 그때 같다.
사고를 내고 방으로 돌아왔을 때도 지금처럼 하고 있었다.
아무것도 듣고 싶지 않고, 아무것도 생각하고 싶지 않고, 아무것도 받아들이고 싶지 않다.

‘지금 사죄하지 않으면 노리와 씨에게영원히 그 마음을 전할수없단 말이야.‘
알아. 그쯤은 알고 있다.
하지만……… 두려워…………

이제껏 읽기가 두려워서 개봉하지 않았다. 지금도 두렵기는 마찬가지다. 하지만 자신을 향한 아버지의 마음은  이제 이 봉투 속 말고는 존재하지 않는다.

나를 반면교사로 삼아다오.
네가 사고를 내고 나서 나는 내내 도망만다녔다. 부모의 책임으로부터, 너로부터, 가정으로부터, 일과 세상으로부터 도망쳐왔어.

그런 삶을 계속하는 가운데 아버지는 한가지 깨달은 것이 있단다.
웃지 못하게 되더구나.

도망치면 안 된다.
아무리 비난받아도, 그로 인해 마음이아무리 상처 입는다 해도………….

"그래, 전쟁…………. 그런데 죽인 사람의 대부분은 죄도 없는 시민이었어. 나를 죽이려 한 사람도, 소중한 사람을 죽이려 한 사람도 아니었네………….

"마음의 문제라네. 망령은 실재하지 않아, 망령은 마음속에 있지.

"이대로 계속 마음을 속이면 내 죄에 대한 응보가 또 나타나는 건 아닐까 생각했네.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나에 대한마지막 응보는 내가 죽기 전에 남은 가족을 먼저 데려가는 것. 그리고 저세상에 가도 기미코와 후미코를 만나지 못하는 것이지. 그래서 내가 살아 있는 동안 누군가에게 내 죄를 고해하고 싶었네. 그런데 가족에게는 차마 할 수가 없었지."

"왜 저를 선택하신 건가요?"

"나처럼 죄 많은 인간이기 때문이야. 다만 그뿐만이어서는 안 되었지. 나처럼 죄로 인해 고통받는 자가 아니면 이야기할수 없네."

똑같이 죄를 지었다 해도 자신의 고통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면 털어놓아도 의미가 없다는 것이리라.

따라서 앞으로 평생을 걸고 내가 쇼타를지켜보겠다. 나도 함께 그 짐을 지고 옆에서 나란히 걷겠다. 내 죄와 함께.

"저를 인간으로 되돌려주셨습니다. 그뿐입니다."
이 파란 하늘을 연상케 하는 싱그러운 미소를 띠고 그가 말했다.

지금껏 써온 죄와 벌의 문제를 새로운 각도로 조명한  《어느 도망자의 고백》. 그의 인생이 녹아 들어가 있는 작품인 만큼 야쿠마루 가쿠의 새로운 대표작이 되길  바란다.
이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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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만나서 이야기하고 싶어.

지금 당장 날 보러 오지 않으면 헤어질 거야.

차 안에 나나의 울음소리가 울렸다. 처음에는 신경 쓰지 않았지만, 평상시와 다른 소리로 울고 있었다. 왜 그럴까 싶어 조수석을 쳐다보며 이동 장에 왼손을 뻗은 순간, 엄청난 충격이 일어 앞 유리를 봤다.

"유전인데 나더러 어쩌라는 거야. 그런고로 나는 이만 자러 갈게."
가즈키는 그렇게 말하고 의자에서 일어나 거실을 나갔다.
그런고로는 무슨, 저 버르장머리 없는 자식.

"네, 그렇습니다. 갑자기 이런 전화를 드리면 의심스러울 수도 있지요. 일단 제가 이 전화를 끊을테니, 아게오서 대표번호로 전화를 주십시오. 인터넷으로 검색하면 금방 나옵니다. 그다음에 교통과 사와다를 찾으시면 됩니다. 그럼 잘 부탁드립니다."

"어머니가 틀림없습니다. 이제……… 천을 덮어주십시오.

"그만둬."
마사키의 말에 구미가 놀란 듯이 고개를 뒤로 돌렸다.
무심코 거친 말투가 튀어나왔다.
"보지 않는 게 좋아."

"봉지 얼음 두 봉을 사셨습니다."

"차가 없던데, 어떻게 된 일이니?"
그 후 차로 오케가와역까지 가서 유료 주차장에 세운 뒤 택시를 타고 집에 왔다.
"아아......."

자신이 들이받은 것은 사람이 아니다. 만약 사람이었다면 이 시간까지 발견되지 않을 리가 없다.
뉴스를 보면 확실히 알 수 있을 것이다. 뉴스에 보도되지 않았으면 이 불안한 마음에서 당장 벗어날수 있다.

P화면에 갑자기 아버지 얼굴이 나타나 질겁하여 리모컨을 떨어뜨렸다.
교육평론가인 아버지가 해설을 맡은 시사 정보 프로그램이었다.

이어서 바뀐 화면을 보고 심장이 튀어나오는 줄 알았다.
도롯가에 정차한 순찰차 영상과 함께 ‘차에 200미터끌려가, 여성 사망‘이라는 자막이 나왔다.

이대로 자수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나는 사람을 죽이고 말았다.
그것이 변하지 않는 현실이라는 것을 알게 된 이상, 이대로 양심의 가책을 견딜 수 있을 리가 없다.

항상 TV에서 엄격한 발언을 하는 아버지는 세상 사람들로부터 지탄받을 것이다. 그리고 결혼을앞둔 누나는 파혼을 당할지도 모른다.

전화를 끊은 순간 다리에 힘이 풀려 얼른 손잡이를 붙잡았다.
경찰이 어떻게 그 차에 도달한 걸까. 헤드라이트도 사이드미러도 깨지지 않은 덕에 현장에는 그차를 특정할 만한 것이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을 터였다.

전후에 태어난 신지로는 그전까지는 전쟁은 과거의 일이라고만 인식했다. 그런데 노리와의 이야기를 듣고 전쟁이 없는 생활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닫게 되어 다툼이 없는 평화로운 사회를 구축하기 위해 어떻게 하면 좋을지 깊이 고민했다. 그리고 노리와와 마찬가지로 교육이 가장 중요하다는결론에 도달해 자신이 맡은 교사라는 직업에 열정을 기울이게 되었다.

얼굴을 마주하기만 해도 기분이 우울해질 텐데 사무실에서 단둘이 있어야 하다니.

"뺑소니 사건을 일으켜서 체포되었어. 어젯밤부터 뉴스에 나오던데."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사야마 씨도 그런 농담을 하네요."
"농담 아니야!"

"그날 밤에 구보도 껴서 마가키랑 술을 마셨는데, 녀석은 꽤 취한 상태였어…………. 도대체 운전은 왜한 거야. 바보 같은 녀석…………."

"당신에게는 접견 등 금지 결정이 내려져 있습니다."

"경찰한테 말했는데요■■■■….‘
"기소될 때까지는 당신이 경찰에서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저희가 알 길이 없거든요."
그렇구나, 하고 두 사람의 이름과 선술집 이름을 댔다.

"집행유예・・・・・・."
"교도소에 들어가지 않아도 된다는 뜻입니다. 다만 경찰과 검찰은 당신이 사람을 친 것을 인식하고 그대로 도주했다고 주장하기 위해 증거를 확보할 겁니다. 법원이 그것을 어떻게 판단할지에 달렸지요."

"혐의를 부인하는 피고인에게 보석이 인정된 케이스는 매우 드물거든요."
사람을 쳤다는 인식이 없다고 말하는 한 보석은 인정되지 않는다는 걸까.

이런 짐승은 무조건 사형이지.

음주 운전으로 사람을 친 데다 200미터나 끌고 가서 죽이고 도망가다니 말도 안 된다.
같은 인간이라고 생각하면 구역질이 난다.
공부는 잘했을지 몰라도 인간성은 유치원생 수준. 아니, 그렇게 말하면 유치원생한테 실례인가.

인터넷의 글은 쇼타뿐만 아니라 그의 가족까지 겨냥하고 있었다. 부모님과 누나의 이름과 직장명..
이 노출되고 쇼타와 함께 살고 있던 가족에 대한 온갖 욕설이 난무했다. 특히 아버지에 대한 사람들의 비난은 무시무시했다.

"너만 그런 게 아니야. 여기는 망령이 자주 나오거든. 숨기는 것이 있으면 취조받을 때 순순히 털어놓는 게 좋을 거다."

아버지를 만나고 싶다. 모르는 것이나 고민거리가 있으면 아버지는 늘 명쾌한 해답을 제시해주었다. 그런 아버지를 신뢰하고 존경했다. 이제껏 살아오면서 가장 아버지의 해답이 필요한 순간이다.
나는 이제 어떻게 하면 좋으냐고 묻고 싶었다.

그렇다.
그랬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내가 사람을 치었다는 것을………….

‘저희 가족은 어머니가 피고인에게 살해되었다고 생각합니다. ‘
등 뒤로 증오의 시선을 느끼며 쇼타는 서둘러 법정을 나갔다.

"해야 할 일이 있다."

아니, 살아야 한다.

판결의 다음 날부터 14일 이내에 항소하지 않은 쇼타는 징역 4년 10개월의 형이 확정되었다.

항소하면 변호사 비용이 더 들 테니 더 이상 부모님에게 폐를 끼칠 수는 없다.
그리고 항소한다 한들 구치소 감방에 갇혀 지내는 생활에는 변함이 없을 테고, 승산이 희박하다는것은 교도소에 갈 날이 미뤄지기만 할 뿐이라는 뜻이리라.

‘신입자 대기실‘ 팻말이 걸린 방에 들어갔다.

"들어가."
안으로 들어가니 다다미 세 장 크기의 방이었다. 좁지만 화장실과 세면대가 달려 있다.

"신입 교육을 일주일쯤 받은 뒤에 잡거감방‘으로 옮길 거다."
교도관이 그렇게 말하고 문을 닫았다. 자물쇠를 채우는 메마른 소리가 귀에 울렸다.

"다시는 오지 마라."

교도소에 들어오기 전과, 들어와서 한동안은 하루라도 빨리 여기서 나가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그런데 막상 사회로 나가는 것이 현실이 되자 지레 겁이 나서 일부러 징벌을 받을 만한 일을 벌인 것이다.

체크인을 할 때 어머니는 결혼 전의 구성을 댔다. 쇼타는 걱정하는 마음으로 어머니와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저희 가족은 어머니가 피고인에게 살해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도저히 피해자 유족을 만날 용기가 나지 않는다.

감방 동료 중에는 교도관의 눈을 피해 자위행위를 하는 자도 있었지만 쇼타는 그런 욕구에 휩싸인적이 없다. 교도소에서 지내는 동안 한 번도 사정하지 않았고, 지금 이 수영복 화보를 봐도 아무 감흥이 없는 자신을 보며 동물로서 필요한 기능이 그 사건으로 인해 결여된 것이 아닌가 하고 약간 불안해졌다.

편의점 점원의 담백한 인사가 아닌, 인력사무소 직원의 업무 지시가 아닌, 수상쩍은 중년 남자불평과 잔소리가 아닌, 아주 잠깐이라도 좋으니 이 못 견디게 외로운 마음을 누군가 채워주었으좋겠다.

누군가와 어울리고 싶다……………

과거의 친구를 잃었다 해도, 원하면 누군가와 어울릴 수 있다. 마에조노나 이 순간 자신을 다정하게 치유해주는 여자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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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원구, 원뿔, 원기둥으로 구성되어 있다.
- 폴 세잔 - P307

성 삼위일체는 역사상 가장 영향력이 큰 그림 중 하나로 손꼽을 만합니다. 왜냐하면 이 그림을 원근법이 적용된 최초의 본격적인 그림으로 보기 때문입니다. 마사초의 이 그림 덕분에 미술에서 원근법이 실현가능한 기법이 되었죠. - P308

맞아요. 그러고 보니 비슷한 시기에 조선에서도 피렌체만큼 중요한일이 일어났습니다. 1446년에 우리 고유의 문자, 훈민정음이 반포되었으니까요. 15세기는 지역을 불문하고 중요한 문화 발전이 일어났던 시기였던 것 같습니다. 일단 그림을 마저 자세히 들여다보도록 할까요? - P310

그런데 더 아래쪽, 제대 아래 무덤을 보세요. 해골이 누워 있습니다. 그 바로 위에 "나도 한때 당신이었다"라고 적혀 있는데, 이 그림을 보고 있는 당신도 언젠가 나처럼 죽을 것이라는 메시지를 주고 있는 거죠. - P311

해골 근처에 그런 말이 적혀 있어서인지 좀 으스스한데요. - P311

죽음에 대해 깊이 묵상하고 죽음을 준비하라는 당시 종교의 가르침을 담은 겁니다. 일종의 종교적 경구인 셈이지요. - P311

원근법이 처음 등장했을 때는 정말 대단했군요.
그렇습니다. 기본적으로 원근법은 우리 눈이 입체감을 느낄 수 있도록 착시를 만들어내는 기법입니다. 그리고 이를 위해 소실점을기준으로 공간을 재구성하는 기법이지요. - P311

시선이 모이는 점: 소실점 
여기서 소실점은 시선이 모이는 점을 말합니다. 예를들어성삼위일체 속에 있는 건축물의 모서리를 전부 연결해보세요. 십자가 바로 아래에서 한 점으로 모이는데, 여기가 바로 소실점이에요. 그리고 이 소실점이 보는 이의 눈 위치입니다. - P312

마사초라는 이름은 ‘어리숙한 토마스‘라는 의미입니다. 아마 마사초는 이름 그대로 온화한 성격을 가진 사람이었을 겁니다. 성삼위일체를 그렸을 때 마사초는 겨우 20대 중반에 불과했습니다. 앞날이 창창한 천재적인 젊은이었죠. 하지만 안타깝게도 1428년에 닥친 흑사병으로 이른 죽음을 맞았습니다. - P313

원근법이 이론화되다 
원근법 발명의 역사를 따라가다보면 브루넬레스키와 마사초 말고도 ‘나도 원근법 발명에 참여했어‘라고 주장할 만한 사람을 한 명더 만나게 됩니다. 이 사람 덕분에 원근법이 회화의 기법으로 확실히 자리 잡게 되지요. 바로 레온 바티스타 알베르티입니다. - P317

알베르티는 보통 특출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너무나 다양한 방면에서 천재성을 드러냈기 때문에 ‘르네상스맨‘의 원조 격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지요. 르네상스맨이란 다재다능한 천재를 가리키는 말로 요즘도 여러 방면으로재주가 많은 사람을 그렇게 부르곤 합니다. 사실 많은 분들이 르네상스 맨이라고 하면 레오나르도 다 빈치를 먼저 떠올릴 거예요. 하지만 시작은 알베르티였다고 봐야 합니다. - P318

모든 것을 논리적으로 
원근법 발명 초기에 화가들이 보여준 열광에 관한 일화는 정말 끝도 없습니다. 파올로 우첼로라는 화가는 몇 날 며칠 밤을 새서 원근법 작도만 내내 했다고 합니다. 부인이 이제 그만 자라고 채근하자 "아 너무도 아름답다, 원근법이여!" 하고 외쳤다고 하죠. - P327

잘 보셨네요. 왼쪽 천사를 그린조수가 누군지 눈치채셨지요? 바로 레오나르도 다빈치입니다. 레오나르도는 이 그림을 그릴 때 대략 21세 정도였을 겁니다. 다만 베로키오가 붓을 꺾었다는 바사리의 글은 레오나르도의 천재성을 강조하기 위한 과장입니다. 베로키오는 이후에도 그림을 계속 그렸어요. 뿐만 아니라 레오나르도는 많은 것을 스승한테서 배웠던 것 같습니다.
베로키오, 예수 세례도(부분), 1476년경, 우피치 미술관 베로키오의 조수가 왼쪽 천사를 그렸다. - P335

모든 천재들도 학생이었다  - P336

세계의 중심으로서의 인간 
르네상스가 무엇이었냐고 묻는다면 인간을 세계의 중심으로 생각했던 시대였다고 답할 수 있습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그린 아래 드로잉은 이런 시대 분위기를 잘 반영하고 있어요.
이렇게 신체를 원과 정사각형 안에 배치시키는 방식을 ‘비트루비우스 인간‘이라고 부릅니다. 고대 로마의 건축가 비트루비우스가최초로 제시했기 때문이에요. - P341

화가들도 이런 그림을 그렸습니다. 다만 다른 화가들보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인간은 세계의 중심이며 만물의 척도‘라는 개념을훨씬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어요. - P342

원근법은 정말 르네상스를 상징하는 기법이네요.
알베르티는 "그림은 세계로 열린 창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물론르네상스 이전에도 그림은 여전히 세계로 열린 창이긴 했습니다.
다만 르네상스 이전의 창에는 유리에 먼지가 많이 끼어 있어 불투명했습니다. 르네상스를 맞이하고 나서야 먼지가 닦여 맑은 창이되었지요. - P344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는 정부 
그림 속에 이런 모습을 담은 건 이들이 거리에 실제로 있어서이기도 했겠지만 다른 관점에서 생각해볼 수도 있어요. 브루니는 피렌체 찬가』에피렌체 사람 중 부자는 자신의 부에 의해 보호를 받지만가난한 사람들은 정부에 의해 보호를 받는다고 썼습니다. 부자는 스스로를 지킬 힘이 있지만 사회적 약자들은 그런 힘이 없기 때문에정부가 그 약자들을 보호해줘야 한다는 의미죠. 브루니는 이런 정부의 보호 시스템 덕분에 피렌체가 강한 국가가 되었다고 자랑합니다. - P348

얼마나 오래 머리를 자르지 않았는지 긴 머리가 온몸을 감싸고 있습니다. 허리띠도 자세히 보면 머리카락으로 두르고 있어요. 얼굴을 보면 야윌 대로 야위었고 치아도 몇 개 빠져 있습니다. 여기서막달레나 마리아는 두 손을 조심스럽게 모아 경건하게 기도를 드리려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비참하고 거친 모습까지도 솔직하게잡아내려 했던 미술이 바로 15세기 피렌체의 미술이었습니다. - P352

성인과 거지의 구별이 사라지는 거죠. 실제로 성인과 거지라는 상반된 두 이미지가 모두 이 조각 속에 녹아 들어가 있다고볼 수 있습니다. - P354

1425년 피렌체는 대성당 위에 돔이 올라가고 있는 광경과 평면 위에 입체감을구현한 원근법이 적용된 그림의 등장과 마주하고 있었다. 원근법의 등장은 앞으로작가들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정해버렸을 뿐만 아니라 당시 사람들의 세계관까지도바꾸어놓았다. - P355

원근법 소실점을 기준으로 공간을 구성해 눈이 입체감을 느낄 수 있도록 해주는 기법.
브루넬레스키가 발명하고 마사초가 최초로 본격적으로 그림에 적용해 성 삼위일체를그림. 알베르티가 회화론을 통해 이론화.
-참고 소실점: 시선이 모이게 되는 지점 = 눈의 위치 - P355

르네상스가 이룩한 업적은 작가들뿐만 아니라 후원자 가문과 긍정이있었기에 가능했다. 이들은 작품을 감상하는 데에 그치는 게 아니라높은 안목을 갖추고 재능을 가진 작가들을 발굴해냈으며 고전적 취향을 바탕으로 자신들만의 문화를 발전시켰다. 이들이 머물렀던 도시에는 지금도 여전히 그 화려한 유산이 남아 사람들의 발길을 끌고 있다.
곤차가 궁정, 이탈리아 만토바 - P360

예술만큼 세상으로부터 도피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또한 예술만큼 확실하게 세상과 이어주는 것도 없다.
- 요한 볼프강 폰 괴테 - P362

앞서 우리가 나눈 이야기를 떠올려보면 이렇게 되물어 볼 수 있습니다. 혹시 우리나라에 천재 작가가 없는 이유는 그런 작가를 알아봐줄 사람이 부족해서가 아닐까요? 어쩌면 재능 있는 작가들을 발굴하고 교육하는 시스템이 충분하지 않을 수도 있고요. 어떤 경우든 단순히 작가만의 문제로 볼 수는 없을 것 같아요. - P365

이렇게 작가들이 끊임없이 도전을 할 수 있는 환경을만들어줬던 이들을 후원자, 영어로 ‘패트론(patron)‘이라 부릅니다. - P365

후원자들과 작가들이 르네상스를 함께 만들었다고 봐야 하겠네요. - P365

메디치 가문의 정체 
르네상스의 미술 후원자는 작가들만큼 많고 다양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가문은 역시 메디치 가문일 겁니다. 메디치 가문이주도한 역사적인 미술 프로젝트는 수도 없이 많습니다. 게다가 중요한 작가들을 많이 발굴해서 후원했죠. 앞서 브루넬레스키나 도나텔로, 보티첼리, 레오나르도다빈치 그리고 미켈란젤로까지 모두메디치 가문과 인연을 맺으며 대가로 성장할 수 있었어요. - P366

메디치 가문은 상업으로 돈을 모은 집안입니다. 메디치 가문의 문장을 보면 집안의 내력이 담겨 있습니다. 문장에 있는 동그란 게 알약이에요. 메디치 (medici)라고 하면 왠지 익숙하지 않나요? 메디치라는 가문 이름이 메디신(medicine; 약)에서 온 거거든요. 원래 의사나 약재상 일을 했던것같습니다. - P367

ㅣ한번 쌓은 신용은 절대 배반하지 않는다  - P371

그렇죠. 프리마베라는 메디치 가문이 소유한 별장을 장식했던 그림입니다. 뒤에서 자세히 볼 비너스의 탄생과 나란히 걸려 있었던 걸로 추정됩니다. - P399

먼저 프리마베라라는 이름을 살펴봅시다. 프리마베라(primavera)는봄이란 뜻입니다. 오른쪽은 서풍의 신인 제피로스인데 클로리스라는 요정에게 다가가고 있습니다. 바로옆 장면에서 클로리스는 꽃의 신 플로라로 변합니다. - P399

보티첼리, 비너스의 탄생, 1484~1485년, 우피치 미술관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에서 나오는 비너스의 탄생 이야기를 묘사했다. 비너스의 자세는 고대 조각에서 본뜬 것으로 추정된다. - P401

"요즘 우리나라 정치가 돌아가는 걸 보면 반세기가 지나가기도 전에 우리 집안은 쫓겨날 것 같네. 비록 우리 집안이 쫓겨나더라도 나의 미술품들은 여기에 계속 남아 있을 것이네." - P407

분명히 그 점을 고려했을 겁니다. 코지모의 예상대로 메디치 가문은 1494년 피렌체에서 추방당합니다. 하지만 피렌체 사람들은메디치 가문이 다스리던 시절에 점점 향수를 느꼈습니다. - P408

르네상스 미술의 후원자들은 단지 작품을 구입하는 것을 넘어서서 작가들이 재능을펼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다. 상인 출신의 유력한 가문들은 좋은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미술을 이용했는데, 그들이 후원한 작품들에는 돈에 대한 긍정적인 시각이 드러난다.
한편 15세기 후반에는 현실과 거리가 먼궁정취향의 작품들이 나타나기도 했다. - P409

궁정신하는 뭐든지 태연하게 행동하도록 연습함으로써,
예술적 기교를 감추고 말과 행동이 꾸며냈거나 공들여 만드는것이라는 인상을 주지 말아야 한다.
- 카스틸리오네, 궁정론 - P410

르네상스를 이끌었던 주인공 중에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독특한인물들이 있습니다. 바로콘도티에로(Condottiero)라 불리는 용병대장들이죠. - P411

추측하건대 이런 벽화는 선전 효과를 의도했을 겁니다. 쉽게 말해
‘피렌체를 위해서 싸워주면 이렇게 거대한 기념물을 세워주니 피렌체로 오세요‘라고 실력 있는 용병대장들을 유혹하기 위한 거지요. - P414

한 가지만 꼽아보자면 스프레차투라(Sprezzatura)라는 덕목을 들 수있습니다. 이 말은 ‘꾸민 듯 안 꾸민 듯한‘ 것을 가리킵니다. 즉 카스틸리오네는 궁정 사람들의 행동은 너무 꾸민 듯해서는 안 되지만그렇다고 너무 안 꾸며도 안 된다고 주장한 겁니다. 모든 행동이 너무나 익숙해진 나머지 마치 꾸미지 않은 것처럼 자연스럽게 배어나오듯 해야 한다는 거죠. - P426

무기 제작 전문가, 발명가, 토목 공학자라고 소개하는 부분이 두드러지긴 합니다만 자기소개서 끝부분에 조각과 회화에 대해 누구보다 잘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표현하고 있기도 합니다. - P440

 프랑스, 손을 내밀다 15세기 이탈리아에서 문화예술이급속도로 발전할 수 있었던 이유는 피렌체, 밀라노, 만토바 등 지금까지 살펴본 도시국가들끼리 힘의 균형이 얼추 맞으면서 잠시나마 평화로운 시기가 이어졌기 때문입니다. - P450

방황하던 레오나르도의 손을 잡아준 사람은 프랑스의 왕, 프랑수아1세였습니다. 프랑수아 1세는 안정된 후원을 약속했고, 레오나르도는 63세의 나이로 험준한 알프스 산맥을 넘었습니다. 무사히 프랑스에 도착해 프랑스 중부에 위치한 루아르 지역에 머물게 되었지요. - P452

용병대장 출신의 영주들은 단지 용맹할 뿐 아니라 높은 안목을 갖추고 예술을 후원했다.
이들은 고대 그리스·로마 풍의 건축에 관심을 보였고, 우아하고 지적인 궁정 문화를만들었다. 이들의 후원을 받은 작가들은 궁정 생활의 단조로움을 해소할 수 있는재미있는 시도들을 작품에서 선보였다. - P456

레오나르도다빈치
본래 피렌체에서 활동하다가 밀라노의 스포르차 가문의 궁정으로 자리를 옮김. 파격적인 실험 정신을 발휘했으나 안정적인 지원을 얻지 못하고 이후로 여러 도시를 떠돌아다님.
청동 기마상 스포르차 가문을 기념하는 7.3미터 높이의 청동 기마상을 계획했으나 실패로 돌아감.
최후의 만찬 새롭게 개발한 벽화용 물감이 얼마 지나지 않아 탈색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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돔 아래 돔을 두다 크닉
브루넬레스키는 무게를 지지하기 위해 여러 가지 방법을 동원했는데, 바깥쪽과 내부의 돔을 분리시킨 이중 돔을 쌓은 것도 그중 하나였습니다. 역시 굉장히 혁신적인 디자인이었죠. - P286

이런 이중 돔 구조 때문에 안쪽 돔과 바깥돔사이에 1미터 남짓한공간이 생겼습니다. 지금도 이 공간 사이로 난 계단을 통해 돔의맨 꼭대기까지 올라가볼 수 있어요. 아래사진처럼 말이죠.
참고로 돔 이곳저곳에 뚫려 있는 동그란 구멍은 전부이 공간을 위해낸 창이에요. 창을 통해 외벽과 내벽 사이에 있는 공간에도 빛이 들어오게 됩니다. 이중으로 돔을 쌓고 거기에 창도 내야 했다니정말 힘들었을 겁니다. - P287

이 중에서도 브루넬레스키의 역할은 누구보다도 컸습니다. 새로운발상으로 중세 사람들이 던져놓고 풀지 못한 문제를 해결한 새로운 ‘르네상스인‘이라고 할 수 있죠. 브루넬레스키의 거대한 건축적도전은 가히 대혁신이라고 부를 만합니다. - P292

나지막한 건물들 사이에 30층 높이의 대성당이 우뚝 솟아 올라있다고 상상해 보세요. 거대한 돔은 마치 하늘에 떠있는 듯하고, 윤곽선은 가파르게 솟아올라 보는 이를 압도합니다. - P294

결국 브루넬레스키라는 천재를 발굴해냈으니 피렌체 사람들도 보는 눈이 있었다고 할 수 있겠네요. - P294

브루넬레스키는 이제 영예롭게도 자신이 설계한 돔 아래에 묻혀 있습니다. 피렌체 대성당 지하에 말이죠. 그 앞에는 최고의 찬사가 적힌 비문이 세워집니다. 대성당의 박물관에는 데스마스크까지 전시되어 있습니다. 당시 피렌체 사람들은 브루넬레스키에게 국가가 할수 있는 최대의 예우를 표한 셈입니다. - P295

 수학적 질서를 공간에 구현해내다 
브루넬레스키의 이야기는 몸에서 끝이 아닙니다. 1420년부터 피렌체 정부는 본격적으로 도시 개발 사업을 벌입니다. 브루넬레스키는 당시 피렌체 대성당 돔 프로젝트를 책임지는 국가 최고의 건축가였기 때문에 다양한 도시 개발 프로젝트에 참여할 수 있었습니다. 일명 ‘오스페달레 델리 인노첸티‘라 알려진 국립 고아원의 설계도 이렇게 해서 맡겨졌지요. - P296

비밀리에 아이를 놓고 갈 수 있도록 세세하게 구성되었군요? - P298

브루넬레스키는 고전 건축물에서 얻은 아이디어를 기반으로 수학적인 질서와 규칙성을 극대화한 건축물을 만들었습니다. ‘모듈‘로건물을 구성한 거죠. 여기서 모듈이란 규칙적으로 반복되는 한 단위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 P299

광장을 완성하는 데에 거의 200년이 걸린 거군요? 도시를 꾸미는데 있어 피렌체 사람들의 끈기는 정말 대단했네요. - P304

아름다운 도시를 가지려면 그 정도의 집념은 지녀야 하는 건가 봅니다. - P304

15세기 피렌체는 대성당 돔 공사와 원근법의 발명이라는 두 가지 변화를 맞이했다.
그 변화를 이끌어낸 건 브루넬레스키였다. 세례당청동문 프로젝트 경연에서 진브루넬레스키는 로마를 여행하고 돌아와 건축가로 변신해 르네상스로만 설명할 수있는 혁신들을 만들어냈다. - P305

브루넬레스키는 고전 건축물에서 모티브를 얻어 수학적인 질서와 규칙성을 극대화한형태로 피렌체 국립 고아원을 설계함. 엄격한 수학적 비례감 덕분에 경건하고 장엄한느낌이 생겨남.
모듈 규칙적으로 반복되는 기준.
예 기둥의 높이를 기준으로 설계한 피렌체 국립 고아원 - P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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