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은 강한 종교적 열망을 기반으로 한다. 그러므로 종교와 예술은 늘 협력한다. 요한 볼프강 폰 괴테 - P168
오늘날 예루살렘 예배당 뒤로는 작은 건물들이 많이 들어섰습니다. 위 사진처럼 하얀색으로 칠하고 바깥쪽에 작은 창을 낸 단층 건물들을 여기뿐만 아니라 브뤼헤 곳곳에서 자주 보게 되실 거예요. 이런 건축물을 호츠하위스Godshuis라 부르는데요, 부유한 상인들이사재로 만든 일종의 복지재단입니다. 브뤼헤의 상인들은 늙고 생활이 어려운 사람들을 호츠하위스로 불러와 살게 했죠. 요양원이나빈민구호소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경건함과 소박함을 나타내기 위해 외벽을 흰색으로 칠했어요. - P213
길가로 난 창이 하나뿐인 건 당시 세금이 창의 개수로 매겨졌기 때문이에요. 세금을 적게 내려면되도록 창을 최소한으로 내야 했던 겁니다. - P213
지금은 백작부인이지만 귀족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보니 조상은상인이었군요. 그렇죠, 사람들은 대부분 유럽 귀족들이 주로 전쟁에서 공을 세운영주나 기사들이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르네상스라는 상업적인 시대에 와서는 부를 축적한 제3신분이 또 하나의 지배 계층으로 성장하고 있었어요. 지금껏 살펴본 것처럼 상인 계급이 성장하는 데 미술은 중요한 역할을 했고요. 이들이 후원한 미술 작품들은 오늘날에도 당당히 남아 제3신분의 꿈과 노력, 갈등과 고민까지도 고스란히 보여줍니다. - P216
아무리 돈과 전문 기술이 있다고 해도 시민 계급은 여전히 가장 낮은 신분에 속했다. 그런 상황에서도 이들은 미술과 밀접한 관련을 맺으며, 점차 새로운 지배 계급으로성장해나갔다. - P217
제3신분 유럽의 신분 제도: 성직자, 기사, 평민 새로 등장한 상인, 장인은 모두 제3신분이었으며, 신분 상승은 매우 어려웠음 - P217
성 바보는 아내의 죽음을 계기로 무절제한 삶을 청산하고 속죄하며 가난한 이들에게 전 재산을 나누어 준다. 플랑드르 곳곳에서 선교 활동을 펼치다 헨트 근처의 숲속에서 생을 마감한 성 바보를 기리기 위해 세워진 성 바보 대성당. 오늘날 성당 깊숙한 곳에는 성 바보의 인생만큼이나 곡절을 겪었던 헨트 제대화가 놓여 있고, 성당 앞에는 이 탁월한 제대화를 완성해낸 반 에이크 형제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성 바보 대성당, 벨기에 헨트 - P222
우리는 실수한 게 아닙니다. 그저 행복한 사건이 일어난 것뿐이죠. 그림을 그리면서 행복하지 않으면 뭔가 잘못되고 있는거죠 - 밥 로스 - P224
예술사에서는 탁월한 예술가가 등장하면서 흐름을 완전히 바꿔놓는 경우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바흐나 모차르트, 베토벤 같은 음악가들이 없었다고 상상해보세요. 서양 고전음악의 사회적 위상이나인식이 지금과는 많이 달라졌을 겁니다. - P225
북유럽 르네상스 미술의 ‘스타플레이어‘ 로베르 캉팽과 얀 반 에이크 - P226
마치 요즘 고화질 화면처럼 디테일이 선명하네요. 누구나 이런 그림을 보고 나면 화가가 지닌 필력에 감동할 수밖에없었을 겁니다. 당시 북유럽 사람들이 이렇게 세밀하고 꼼꼼하게그린 그림의 가치를 제대로 인정해주었기에 화가들은 자기 직업에자부심을 느낄 수 있었죠. - P228
그렇기 때문에 얀 반 에이크가 등장하는 1420 년대에서 1430년대에 북유럽에서 그려진 그림들을 아르스노바 Ars nova, 즉 ‘새로운 미술‘이라 하는 거겠지요. 도시 경제가 활성화되면서 새로운 소비 문화가 만들어졌고, 상인과 장인 등 제3신분이 등장해 시민사회가 형성되었죠. 이 같은 일련의 변화는 ‘새롭고 정확한 미술‘이 나오는 데중요한 시대 배경이 되었습니다. - P243
멜키오르 브루델람이 그린 그림과 얀 반 에이크가 그린 그림이 보여주는 많은 차이는 상당 부분 재료와 기법의 차이에서 기인한다고볼 수 있습니다. - P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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