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이지 삶과 작품 세계가 모두 파란만장하네요.
리멘슈나이더의 작품은 이후 사람들에게도 솔직하고 진정성 있게다가갔을 겁니다. 이런 이유에서 틸만 리멘슈나이더가 보여주는 미술은 언제나 매력적으로 보입니다. - P356

북유럽 제대화의 결정판: 이젠하임 제대화 
이제 마지막으로 제대화를 하나 더 살펴보러 갑시다. 프랑스의 자그마한 도시로 발길을 옮겨볼까요? 콜마르라는 곳인데, 여기에 가면 지금까지 살핀 제대화의 세계를 총정리해줄 만한 작품을 만날수 있습니다. 바로 마티아스 그뤼네발트의 이젠하임 제대화입니다. - P356

이 지방은 상황에 따라 프랑스에 속했다 독일에 속했다  하다가 제2차 세계대전이후 완전히 프랑스에 속합니다. 이젠하임 제대화도 지금 프랑스에 있습니다만 그걸그린 그뤼네발트는 독일출신작가예요. 아무튼 기차로 콜마르에가려면 일단 스트라스부르 같은 큰 도시에서 갈아타야 합니다. - P359

맥각 중독증은 맥각균에 오염된 호밀이나 보리 곡물을 섭취하면 결리는 병입니다. 밀을 주식으로 하던 유럽인에게는 아주 치명적인질병이에요. 요즘은 맥각 중독증이라 부르지만 당시에는 ‘성 안토니우스의 병‘이라고했죠. 이 병에 걸리면 손끝과 발끝이 불에 타들어가는 듯한 엄청난 고통을 겪는다고 해요. 성 안토니우스는 이 고통스러운 병을 낫게 해줄 거라 믿어졌고요. 맥각 중독증에 걸리면 처음엔 손발이 저리다가 나중에는 괴사해 결국 사지를 절단해야만 했어요. 끔찍한 결과를 초래하는 무서운 질병이었습니다. - P364

그림이 담은 
치유의 염원 이젠하임 제대화가 예수가 겪은 고통만 담아낸 건 아닙니다. 2단계모습의 오른쪽 날개엔 예수의 부활 장면이 그려졌어요.
다음 페이지를 보세요. 여기서 예수는 모든 상처가 말끔하게 치유된 모습이죠. - P369

네, 제대화를 볼 때 장소성을 고려하면 좋습니다. 앞서 본 병원용그림들이 담고자 했던 치유의 염원이라는 메시지는 병원이라는 공간 속에서 더 강렬하게 다가왔을 테죠. 저는 이처럼 당시 미술이 지닌 메시지를 작품이 놓였던 실제 공간 속에서 읽어내려는 오늘날미술사학계의 노력을 존중합니다. - P372

북유럽에서 그려진 수많은 제대화 중에서도 십자가에서 내리심, 포르티나리 제대화,
성 볼프강 제대화, 예수 성혈 제대화, 이젠하임 제대화는 빼놓을 수 없는 걸작이다. - P373

누구든지 무언가를 창조하려는 사람은이전에 전혀 볼 수 없었던 새로운 형식을 차용해야 한다.
알브레히트 뒤러 - P375

알프스산맥을 사이에 두고 제각각 다른 길을 걷던 이탈리아와 북유럽 미술은 1500년을 전후로 조화롭게 융합할 가능성을 찾습니다.
이런 움직임의 중심에 있었던 인물이 바로 알브레히트 뒤러입니다.
뒤러는 이탈리아와 북유럽 미술을 조화시켰을 뿐만 아니라 당시 미술을 한 단계 끌어올렸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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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히어르 반 데르 베이던, 십자가에서 내리심, 1440년경, 프라도미술관, 로히어르 반 데르 베이던은 로베르 캉팽의 제자로 그 화풍을 이어받았다. 베이던의 작품은 플랑드르 양식을 유럽 전역에전달하는 매개 역할을 했다. - P312

서로의 강점을 파악한 뒤 그 점을 배우려고 했던 이탈리아와 북유럽의 시도는 처음엔 엇박자를 냈습니다. 그렇지만 16세기에 접어들면서 각자의 특징이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자기화가 됩니다.
이탈리아의 시각적 혁신과 북유럽의 섬세한 표현력을 소화한 뒤러가 보여주는 완전히 새로운 미술에 대해서는 뒤에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 P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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쾰른 대성당 
1996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쾰른 대성당은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큰고딕 양식의 성당이다. 라인강 강변의 언덕 위에 세워진 쾰른 대성당의 웅장한 모습을 보려고 매일2만여 명의 여행객이 방문하고 있다. - P289

ㅣ다폭화의 세계: 헨트 제대화 
앞서 말씀드린 대로 세폭화에서 폭이 더 늘어나면 네폭화, 다섯폭화라고 하지 않고 다폭화라고 합니다. 아래에 보이는 헨트 제대화는 가장 대표적인 다폭화예요. - P292

이뿐만이 아니에요. 위를 보시면 교황이 세 명 보입니다. 1309년에교황이 로마에서 아비뇽으로 거처를 옮기자 이에 불만을 가진 사람들이 따로 교황을 선출하는 일이 생기거든요. 이 시기를 교회 대분열 시기라고 합니다. 맨 오른쪽부터 마르티누스 5세, 알렉산데르5세, 그레고리오 12세 교황으로 추정해요. - P299

헨트 제대화는 종교라는 신비한 주제를 다루면서 당시 현실 문제에 대한 참여의 메시지도 전해줍니다. - P300

글쎄요. 가끔 제게 이처럼 고화질 도판이 나오는 세상에 굳이 시간과 돈을 들여 작품을 보러 갈 필요가 있는지 묻는 분들이 있어요. 그때 저는늘 이렇게 되묻습니다. 사람을 사진으로 보는 것과 직접 만나보는 것이같으냐고 말이죠. - P308

작품을 사진으로 보는 것과 가서 눈에 담는 건 차이가 큽니다. 분명 고화질 도판이 주는 정보량은 엄청나죠. 그렇다고 실물을 대체할 수는 없습니다. 오늘날에도 반 에이크 형제가 그린 그림이 우리에게 주는 감동은 그 어떤 사진이나 복제품이 주는것보다 강렬하지요. - P308

르네상스 시기의 미술 작품 상당수는 성당을 장식하거나 채우기 위해 만들어졌다.
그중에서도 제대 위에 놓이는 그림이나 조각인 제대화는 당시 교회 미술의 핵심이었다. - P309

종교에 있어서는 신성한 것만이 진실이며,
철학에 있어서는 진실한 것만이 신성하다.
- L. A. 포이어바흐, 『종교의 본질」 - P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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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한그루를 켰을 때 그림그리는 데쓸만한 나무판은 가운데 한두장뿐이다. - P246

오크나무가 그림 그리기에 좋은 나무였나요?
그렇게 특별한 이유가 있는 건 아니었어요. 북유럽은 날씨 때문에오크나무가 많았습니다. 오크나무는 단단하고 밀도가 높아 잘 뒤틀리지 않아요. - P246

중세 시대 화가의 작업실 풍경, 1403년경
화가 옆에서 조수가 물감을 개고 있다. 중세 시대부터 르네상스까지 화가는 물감을직접 만들어 써야만 했다. - P249

슬슬 이쯤이면 이토록 경이로운 유화 기법을 누가 발명했는지 궁금해질 법도 한데요. 이에 대한 설은 16세기에 이미 정립되어 있었습니다. 그 전설적인 화가가 바로 지금껏 여러 번 등장한 얀 반 에이크라는 거죠. 이탈리아 화가들의 생애를 정리한 조르조 바사리 역시 플랑드르의 대가 반에이크 형제가 유화 기법을 발명했다고 자기 책 『미술가 열전』에 적었습니다. - P254

이 시기 알프스 이북에서는이탈리아의 원근법을 배우려 했고, 알프스 이남 그러니까 이탈리아에서는 플랑드르의 유화 기법을 배우려했어요. - P260

1420 년에서 1430 년 사이, 북유럽에서는 로베르 캉팽과 얀 반 에이크 같은 화가들이나타나 이전과 완전히 다른 사실적인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이들이 보여준 놀라운사실성은 유화 기법이라는 새로운 미술 매체의 등장에서 비롯되었으며, 이는 곧이탈리아 미술에도 영향을 끼쳤다. - P267

신은 새로운 것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 - P268

르네상스라고 하면 새로운 미술이 많이 나왔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실제로는 여전히 종교 그림이 지배적이었어요. 그중에서도 규모가 크고 수준 높은 패널화들은 성당에서 제대화로 쓰였죠. 혹시 유럽에 여행 가서 성당이나 미술관에 들러 제대화를 본 적이 있으신가요? - P269

르네상스 시기에도 여전히 미술의 중심은 교회였어요. 그 가운데서도 제대화는르네상스 교회 미술의 핵심 중 핵심이었습니다. - P269

성모 마리아 대성당의 내부, 안트베르펜 
종교개혁기 안트베르펜은 일시적으로 신교 편에 선다. 이때 대성당 내부에 자리했던 미술 작품들은 우상으로 간주되어 파괴당했다. 하지만 이후복구 현재는 전통적인 고딕 성당의 내부 모습을 보여준다. - P271

안트베르펜 성모 마리아 대성당 중앙 제대의 모습 
제대 위에는 루벤스가 1626년에완성한 성모승천도가 자리한다. - P273

초기 제대화와 알타프론트의 모습 상상도 
제대 위에 놓인 손햄 파르바 제대화는 현재 영국서퍽의 성모 교회에 있고 알타프론트 그림은 프랑스 파리의 클뤼니국립중세박물관에 있다.
1330~1340년경 만들어진 작품으로 추정된다. - P275

이 시기 북유럽에서는 ‘데보티오 모데르나Devotio Moderna‘, 즉 현대적 신앙이라고 해서개인 묵상이나 영적 수련을 강조하는 분위기가 널리 퍼졌습니다. 이 그림 속 남성은 이런가르침을 충실히 따르고 있는 거죠. - P282

「그리스도를 본받아」 표지, 1505년, 네덜란드 출판본토마스 아 켐피스가 15세기에 썼다고 알려진 이 책은 개인 묵상이나영적 수련을 북유럽에 널리 유행시켰다. - P282

맞아요. 바로 메로데 제대화를 후원한 기부자 부부입니다. 그런데부인이 뒤로 밀려나 있네요. 기부자가 그림을 주문하고 제작하던도중에 결혼을 한 것 같아요. 급하게 부인의 모습을 넣으려다 보니한쪽으로 몰리게 된 거겠지요. - P2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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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은 강한 종교적 열망을 기반으로 한다.
그러므로 종교와 예술은 늘 협력한다.
요한 볼프강 폰 괴테 - P168

오늘날 예루살렘 예배당 뒤로는 작은 건물들이 많이 들어섰습니다.
위 사진처럼 하얀색으로 칠하고 바깥쪽에 작은 창을 낸 단층 건물들을 여기뿐만 아니라 브뤼헤 곳곳에서 자주 보게 되실 거예요. 이런 건축물을 호츠하위스Godshuis라 부르는데요, 부유한 상인들이사재로 만든 일종의 복지재단입니다. 브뤼헤의 상인들은 늙고 생활이 어려운 사람들을 호츠하위스로 불러와 살게 했죠. 요양원이나빈민구호소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경건함과 소박함을 나타내기 위해 외벽을 흰색으로 칠했어요.  - P213

길가로 난 창이 하나뿐인 건 당시 세금이 창의 개수로 매겨졌기 때문이에요. 세금을 적게 내려면되도록 창을 최소한으로 내야 했던 겁니다. - P213

지금은 백작부인이지만 귀족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보니 조상은상인이었군요.
그렇죠, 사람들은 대부분 유럽 귀족들이 주로 전쟁에서 공을 세운영주나 기사들이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르네상스라는 상업적인 시대에 와서는 부를 축적한 제3신분이 또 하나의 지배 계층으로 성장하고 있었어요. 지금껏 살펴본 것처럼 상인 계급이 성장하는 데 미술은 중요한 역할을 했고요. 이들이 후원한 미술 작품들은 오늘날에도 당당히 남아 제3신분의 꿈과 노력, 갈등과 고민까지도 고스란히 보여줍니다. - P216

아무리 돈과 전문 기술이 있다고 해도 시민 계급은 여전히 가장 낮은 신분에 속했다.
그런 상황에서도 이들은 미술과 밀접한 관련을 맺으며, 점차 새로운 지배 계급으로성장해나갔다. - P217

제3신분
유럽의 신분 제도: 성직자, 기사, 평민 새로 등장한 상인, 장인은 모두 제3신분이었으며, 신분 상승은 매우 어려웠음 - P217

성 바보는 아내의 죽음을 계기로
무절제한 삶을 청산하고 속죄하며
가난한 이들에게 전 재산을 나누어 준다.
플랑드르 곳곳에서 선교 활동을 펼치다
헨트 근처의 숲속에서 생을 마감한
성 바보를 기리기 위해 세워진 성 바보 대성당.
오늘날 성당 깊숙한 곳에는 성 바보의 인생만큼이나
곡절을 겪었던 헨트 제대화가 놓여 있고,
성당 앞에는 이 탁월한 제대화를 완성해낸
반 에이크 형제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성 바보 대성당, 벨기에 헨트 - P222

우리는 실수한 게 아닙니다.
그저 행복한 사건이 일어난 것뿐이죠.
그림을 그리면서 행복하지 않으면 뭔가 잘못되고 있는거죠
- 밥 로스 - P224

예술사에서는 탁월한 예술가가 등장하면서 흐름을 완전히 바꿔놓는 경우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바흐나 모차르트, 베토벤 같은 음악가들이 없었다고 상상해보세요. 서양 고전음악의 사회적 위상이나인식이 지금과는 많이 달라졌을 겁니다. - P225

북유럽 르네상스 미술의 ‘스타플레이어‘ 
로베르 캉팽과 얀 반 에이크 - P226

마치 요즘 고화질 화면처럼 디테일이 선명하네요.
누구나 이런 그림을 보고 나면 화가가 지닌 필력에 감동할 수밖에없었을 겁니다. 당시 북유럽 사람들이 이렇게 세밀하고 꼼꼼하게그린 그림의 가치를 제대로 인정해주었기에 화가들은 자기 직업에자부심을 느낄 수 있었죠. - P228

그렇기 때문에 얀 반 에이크가 등장하는 1420 년대에서 1430년대에 북유럽에서 그려진 그림들을 아르스노바 Ars nova, 즉 ‘새로운 미술‘이라 하는 거겠지요.  도시 경제가 활성화되면서 새로운 소비 문화가 만들어졌고, 상인과 장인 등 제3신분이 등장해 시민사회가 형성되었죠. 이 같은 일련의 변화는 ‘새롭고 정확한 미술‘이 나오는 데중요한 시대 배경이 되었습니다. - P243

멜키오르 브루델람이 그린 그림과 얀 반 에이크가 그린 그림이 보여주는 많은 차이는 상당 부분 재료와 기법의 차이에서 기인한다고볼 수 있습니다. - P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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