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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라노폴리스-설명을 하고 넘어가자면,  우라노폴리스는heavenly town 천국과도 같은 마을이라는 의미이다-에는 몇 개의 작은 호텔이 있고,  타베르나 taverna 서민적인 식당 혹은 주가 있고, 해변이 있고, 부두가 있고, 길거리에는 독일 번호판을 단  캠핑카들이 빽빽하게 줄지어 주차해 있다. - P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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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은 더 가까워지는 법이다.
내가 머무는 곳이 청산일 것 하루하루의 생활이 청산일 것.
느리게, 빠르게, 그러나, 지나치지 않게.

산으로 내가 갈수 없다면 산이 내게 오게 할수 밖에.

오직 속이지 않는다는 두글자만이 일생을 마칠때까지 행하여도 좋으리라-북송의 정치가 범증엄

임상옥. 박송일, 홍경래, 이희저, 우군칙, 김사용, 홍총각
평서 대원수 홍경래, 혁명아. 천하제일왕

산으로 내가 갈 수 없다면 산이 내게 오게 할 수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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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무것도 바라는 것이 없다. 나는 아무것도 두려운 것이 없다. 나는 자유다‘라고 새겨진 그 유명한 묘비 앞에서 한동안 묵상을 했다. 묵상을 마쳤을 때 나도 모르게 발길이 가게로 향했다.  - P318

부리나케 우조(그리스의 증류주) 한 병을 사들고 다시 묘소로 돌아와서는 내 앞에 이 섬을 방문했던 이윤기  선생처럼 제단 앞에 술을 부어놓고 큰절을올렸다. 두 차례의 큰절에 이어 반절까지 올리고 나자 주변에 있던 그리스인들이 신기한 눈으로 바라보며 카메라를 들이댔다. - P319

"나는 멀리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한국에서 온 사람이다. 지금 이 의식은 우리나라에서 먼저 떠난 분에게 최고의 경의를 표하는 풍습이다."
그러자 그가 고개를 끄덕이며 내게 다시 물었다.
"멋진 풍습인 것 같다. 그런데 왜 멀리까지 찾아와 그리스 작가의 무덤 앞에 이런 경의를 하는가?"
순간 조건반사처럼 이런 말이 내 입에서 튀어나왔다.
"He‘s my hero(그는 내게 영웅입니다)." - P319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나에게도 영웅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친구입니다." - P321

그는 너털웃음을 터트리며 그렇게 대답했다. 그리스인들에게 우정이란 이런 것이다. 내가 사랑하는 것을 같이 사랑하고, 내가 살아가는곳에 같이 살아가고, 내가 아끼는 것을 같이 아끼는 사람. 그것이 친구이고, 친구에게는 모든 선의를 베풀어야 하는 것. 그것이 그리스인들의명예의 한 축을 담당하는 ‘우정‘이란 말의 의미다. 이 우정은 곧 명예고, 거기에 용맹을 더하면 탁월함에 이르게 된다. 그리고 그 명예를 누구보다 드높인 사람을, 그들은 ‘영웅‘이라 부른다. - P321

탁월함의 기준을 따른 것이다. 물론 이런 탁월함이 남자에게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오디세이아>에서 오디세우스의 아내인 페넬로페는정절과 도덕을 지혜롭게 지켜내 여인의 탁월함을 드러냈다. 오랫동안오디세우스가 나라를 비우는 사이 수많은 구혼자들의 청혼을 뿌리치고, 자신의 신분과 남편의 영지를 지킴으로써 여인의 탁월함을 실천했기 때문이다. - P322

유사 이래 지배자가 피지배자를 일방적으로 억압하고, 그 문화를말살하며, 가혹한 통지를 일삼는 시기에 문명이 태동한 일은 없다.
다시 말해 알렉산드로스의 헬레니즘이나 환웅의 홍익인간처럼, 지배자와 피지배자가 하나가 되고 공동으로 발전한다는 이념을 갖지않는 한 그 어떤 형태의 패권주의도 문명 그 자체에 재앙일 수밖에없다. 세계 제일의 관광 그리스에서 아무도 발길을 돌리지 않는스파르타는 그 사실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 P326

"대단하지 않은가? 이러한 스파르타 법은 ‘레트라Rhetri‘ 라는 신탁에의해 보호받았다고 하지. 레트라는 입법자인 리쿠르고스가 델피에서 받아온 신탁으로, 법에 신의 권위를 덮어씌움으로써 훗날 아무도 법에 손댈수 없도록 강력한 보호막을 치려고 했던 것이라고나 할까. 그만큼 스파르타는 그들의 법을 지키려는 의지가 강했어. 정말 불가사의한 일이지." - P345

그 전형적인 예가 바로 레오니다스 왕의아내 ‘고르고 Gorgo‘라 할 수 있다. 한 외국 여성이 고르고에게 "세상에서남자를 지배하는 것은 당신네 스파르타 어인들뿐이군요."라고 하자, 고르고는 "남자들을 낳아주는 것이 우리들뿐이니. 당연한 거 아니겠어요." 라고 답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이렇듯 전사의 나라 스파르타에서 여성들이 뜻밖의 지위를 가지게 됨으로써 사회 전체가 강력한 집단성을 유지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 P348

한번은 떠들썩하고 이러저러한 의견이 난무하는 아테네의 민회에 비해 침묵이 흐르는 스파르타의 민회를 보고 아테네의 한소피스트가 "왜 다들 아무 말이 없느냐?"고 비웃자, "말할 줄 아는 사람은 말하지 않을 때도 알고 있는 법이지요."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 P353

이런 스파르타 전사들도 일단 상대가 등을 보이고 달아나면절대 뒤쫓지 않았다. 그 이유는 맞서지 않고 달아나면 살 수 있다는 것을 적들에게 보여줌으로써 스파르타 군대를 만나면 꽁지를 빼고 달아나는 게 최선이라는 평판이 나도록 하려는 전략 때문이었다고 한다. - P355

이렇게 볼 때 문명이란 다양성이라는 비옥한 토양에서, 수많은 경쟁자들이 자유롭게 겨루는 창조적 긴장이라는 씨앗이 발아하여 이룬 결실인 것이다. 이에 비해 획일성은 창조적 긴장이라는 씨앗을 말라죽이고 마는 척박한 토양에 지나지 않는다. 이런 곳에서 문명의 발전이란애초부터 기대할 수 없는 것이 아닐까. - P359

코린토스는 다양성은 있었지만 그 내용이 문란하여 창조적 긴장이발아하지 못했고, 스파르타는 진중했으나 획일성이라는 척박한 토양을 취했기에 문명의 씨앗이 잉태될 수 없었다. 더구나 스파르타인들은자신들이 정복하거나 이웃한 이들과 어울려 문화의 이종교배를 이루기보다는, 이들을 억압하고 순혈주의를 강조함으로써 문화의 동종교배에만 만족하여 더 취약해질 수밖에 없었다. 결국 아무도 기억하지않는 스파르타의 오늘은 과거 잔혹한 군국주의가 배태한 초라한 결과에 다름 아니다. 돌아보면 유사 이래 지배자가 피지배자를 일방적으로억압하고, 그 문화를 말살하며, 가혹한 통지를 일삼는 시기에 문명이태동한 일은 없었다. 다시 말해 알렉산드로스의 헬레니즘이나 환웅의홍익인간처럼, 지배자와 피지배자가 하나가 되고 공동으로 발전한다는이념을 갖지 않는 한 그 어떤 형태의 패권주의도 문명 그 자체에 재앙일 수밖에 없다. 세계 제일의 관광국 그리스에서 아무도 발길을 돌리지않는 스파르타는 그 사실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 P360

페르시아의 침공은 반대로 그리스 혹은 서양인들의 가슴에 원한을 남겼다. 이 뿌리 깊은 원한은 먼 훗날 십자군 전쟁에서 다시 활활 타오르면서 인류사에 씻을 수 없는 만행을 저지르게 했던 것이다. 그결과동양의 서양에 대한 증오는 다시 누적되어 오늘날의종교 전쟁과 9·11테러로까지 이어지는 엄청난 원한의 뿌리가 된다. 그러니 미국의 부시대통령이 이라크 침공을 ‘십자군 전쟁‘이라고 표현하는 순간 그쪽 사람들이 되새긴 트라우마는 상상을 넘어서는 것이었을 터. 바로 그 한마디에 수천 년 묵은 상처가 곪아터지는 파열의 순간을 맞고 말았다. 그만큼 리더의 역사 인식은중요하고, 인간은 정신적 유전자 속에 상처를 기록하며, 이를 결코 잊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 P364

어쩌면 역사란 일부만 남은 퍼즐을 맞추며 상상으로 정교히 채워가는작업이 아닐까. 대지의 이야기는 모든 것을 품고 있을지도 모른다. - P367

이 두 가지 극단을초래한 것은 역시 탁월함과 엄격함, 문명과 야만을 동시에 품은 스파르타의 법이 분명할 터.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속에서 울화가 치밀었다.
‘누구냐? 대체 이 법을 만든 이는?‘ 하지만 이 질문은 허무하기 짝이없는 우문이다. 기록에 따르면 리쿠르고스가 제정했다고 하니 너무 빤한 답이 아닌가. 하지만 다시 질문 하나가 떠오른다. ‘도대체 이 법이만들어지게 된 동기는 무엇이었을까?‘ - P373

그리고 그 넓은 제국을 다스리기 위해 강력한 법치는 물론군현제에 기반한 중앙집권적 통치체제로 강력한 개혁 드라이브를 걸었다. 그 유명한 ‘분서갱유 서로 대립하고 다투기만 하는 학자는들의 소모적 논쟁에 내려진 철퇴라는 해석은 충분히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하지만 그렇게 이룬 통일도 겨우 20년 정도 유지되지 않았던가.
강력한 법치와 피도 눈물도 없는 가혹한 중앙집권제를 시행한 제국의운명이 왜 그리 짧았던가? 스산해 보이기까지 하는 스파르타의 유적지와 진나라의 허무한 운명이 하나로 겹쳐져 머릿속이 복잡했다. - P375

"원래 기요틴 guillotine 을 앞세운 개혁은 쉬운 법이지. 칼을 휘두르며 목을 치면 되니까. 공포정치는 효율적이야. 아무렴 효율적이고 말고. 다만 그 생명이 길지 못할 뿐이지." - P375

다시 말해 사회 속의 개인이 서로 주고받으면서 이익이 되는 쪽으로 교환하다보면 언젠가는 교환으로 인한 이익이 더 이상 늘어나지 않는 균형 상태에 이른다. 이른바 ‘내쉬균형 Nashe equalibrium‘이 그것이다. - P378

이렇게 효용극대화를 추구하는 합리적 개인이 존재하는 사회에서 어떤 제도의 수립이나 변화와 발전은 그들의 합리적 선택에 따른다는 ‘합리적 선택 제도주의 marional choice institutionalisen‘ 를 활용하면 인간 사회, 바로 고대 스파르타의 법제도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그토록 오랫동안 존속할 수 있었는지를 이해할 수 있는 힌트를 얻을수 있을 것이다. - P379

"물론 어떤 제도도 제도 자체로서 완벽하지는 않겠지. 다만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할 거야. ‘비록 제도가 불완전하긴 하지만 굳이 이 제도를 바꿈으로써 얻을 이익보다 바꾸는 과정에서 생길 혼란이나 불이익이 클지도 몰라. 그렇다면 그들은 계속 그 제도를 현행대로 유지하려고 할 테지. 어쨌든 한 제도가 그 사회에서 오랜 생명을 유지한 데는그 사회 구성원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무엇인가가 작동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을 테니 말일세." - P379

가장 첫 번째 요인은 바로 당시의 사회적 여건으로 볼 때 그 제도를도입함으로써 구성원들 모두에게 이익이 된다는 합의가 있었다는 점이다. 다음 두 번째 요인은 그 제도가 모두에게 이익이 된다는 것을 설득할 수 있는 합리적 조정자(리쿠르고스)가 있었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 P379

마지막 세 번째 요인은 그 제도를 바꿈으로써 빚어질 혼란보다 그대로유지하는 것이 스파르타인들에게 유리했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 P380

이렇게 공동체 구성원들의 요구가 간절할 즈음 때맞춰 나타난 그는사회의 변화 요구를 읽었던 듯싶다.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기 위해서는일사분란한 정치체제가 필요했을 것이다. 이 때문에 왕정은 유지하되,
시민들의 요구를 민주적으로 수용하기 위해 원로원을 통해서 왕권을견제하고, 이들은 다시 시민이 직접 선출한 에포르에게 감시를 받도록해서, 왕족-귀족-시민 간에 서로 권력을 나누도록 하는 제도를 제안한 것이다.  - P380

훌륭하지 않은가! 이런 ‘스파르타인들만을 위한 법‘은 후대에 플라톤을 비롯한 철학자들, 히틀러나 무솔리니를 비롯한 독재자들,
레닌을 비롯한 붉은 혁명가들에게 대단한 영감을 주었다. 뿐만 아니라오늘날도 ‘스파르타식‘이라는 이름으로 우리에게 전승되고 있다. - P380

하지만 여기서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 있다. 바로 이것은 어디까지나 지배자인 스파르타인의 입장에서만 그렇다는 것이다. 피지배자인페리오이코이나, 헤일로타이들에게는 영원한 속박과 압제를 가져다주는 사악한 법률이었기 때문이다. 기록으로 볼 때 그들이 피지배자를다룬 방식이 후대에 등장한 나치보다 가혹했고 일제보다 사악했던 것은 앞서 충분히 설명한 대로이다. 제도의 효율성만 보고 그 안에 있는
‘인간‘을 외면하는 ‘서양식 제도주의‘의 함정은 이미 그때부터 씨앗이뿌려졌는지도 모를 일이다. 이런 스파르타식 제도에 비하면 우리나라 상고사의 개국이념은 획기적이다 못해 충격적이기까지 하다 - P381

 ‘홍익인간‘이라는 개념은 고대 역사 어디에서도 발견할 수 없는 획기적인 선언이다. 어쩌면 현대에도 찾아보기드문 파격적인 선언일지도 모른다. 지배자가 피지배자의 등골을 빼먹거나 착취하려 들지 않고 앞선 지식과 문명으로 널리 인간을 이롭게한다‘는 뜻을 통치이념으로 내세울 수 있는 민족, 그것도 이미 4,500년 전의 극동에서. 이렇게 생각하면 늘 작게만 느껴지던 우리 민족도 대단한 민족임이 분명하다. 여행지에서는 누구나 애국자가 된다더니, 서양 문명의 뿌리를 찾아온 이 여행에서 우리 민족의 참모습을 이렇게 또렷하게 떠올릴 줄이야. 이는 여행이 주는 뜻밖의 선물이다. - P382

"그에게 중요한 것은 권력이 아니라 영광이었겠지. 실제로 크세르크세스는 레오니다스에게 페르시아 군에 가담하면 전 그리스의 지배권(샤리프)을 주겠노라고 제안했다. 하지만 레오니다스는 ‘살아서 그리스인을 다스리는 것보다 자유를 지키기 위해 죽겠다‘며 일언지하에거절했거든. 고대의 그리스인들에게 전쟁이란 생존이나 권력의 문제가 아니라 가치의 문제였던 셈이지." - P395

하는 아들들에게 ‘네가 방패를 들고 돌아오지 못하겠거든 차라리 그 위에 누워서 돌아오라‘고 했던 인삿말은 바로 죽음으로써 공동체를 지켜야 하는 전사들의 임무를 확인시키는 말이었으리라. - P399

하지만 어떤 생명체이든 공포는 본원적 감정이고, 그것은 본질적으로극복할 수는 없다는 것이 문제이다. 공포는 이성의 영역을 넘어 깊은 심연에 자리잡은 것으로 교육이나 학습에 의해 쉽게 제거될 수 있는 종류의 감정이 아니다. 아무리 수심이 깊어도 바닥은 있듯 아무리 용감한 자도 공포가 깊이 감추어져 있을 뿐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인간이 영원히공포를 이기는 방법은 없으며, 만약 공포를 넘어서는 순간이 있다면 그것은 단지 분노, 흥분, 도취, 탐욕, 애정 등에 의해 순간적으로 극복되는것일 뿐이라고 한다. 즉 영원히 극복되는 공포는 없다는 뜻이다. - P400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의 <지옥의 묵시록>을 보면, 주인공은 죽어가는 순간에 이렇게 외친다.
"fear(두려워!"
"fear(두렵다고!"
극중 말론 브란도가 이룩한 세계, 더없이 잔인하고 용감하며 절대적인 신적 공간을 구축한 그의 행동의 이면에는 더 깊은 공포가 자리잡고있었던 것이다. 이것이 모든 전쟁의 본질이다. - P400

"전쟁은 거대한 에로스의 순간이라네. 하지만 이 국면에서는 두 명의 개인이 서로 몸을 섞어 어린아이를 낳는 그런 게 아니지. 두 거대한군대가 서로 만나는 거야. 피와 함성 속에서 한 군대가 다른 군대를 집어 삼킨다네. 여기서 말하는 한 군대는 반드시 새 정자를 가진 남자일테지. 물론 다른 군대는 위축되어 울면서 승자의 씨앗을 받아들여 자신의 피로 그것을 양육하는 여자일 테고."-55 - P401

그리고 앞서 살펴보았듯 아킬레우스의 분노는 동성애인이었던 친구의 죽음에서 완벽하게 분출한다. 스파르타인들은 이 점을 잘 알고 있어서 군영 내의 동성애를 적극 권장했다. 그럼으로써 옆줄에 선 애인의 생명은 나의 생명보다 더 지켜야 하는 저 너머의 애정으로 전환된다. 이런 식으로 스파르타, 즉 라케다이몬인들은 공포를 이기는 막강전사를 길러냈다. - P402

"아름다움은 우리가 공포를 억제하기 위해 혹은 세상을 잊기 위해 복용하는 아편과도 같다네. 우리 주위의 각박한 인생을 보지 않으려고 혹은 현대인의 의무를 촉구하는 목소리를 듣지 않으려고, 인공적인 천국을 만들어내려고 애쓰고 있는 걸 테지. 바로 이것이 오늘날의 아름다움의 정체가 아니겠나. 스파르타는 현실을 왜곡하는 모든 인공적인 것들을 거부했던 거지. 그들은 공포를 회피하기보다 그 공포와 직접 대면하고 공포의 본질과 맞서면서, 공포와 함께했다고 생각했던 거야. 나는 이곳에 올 때마다 인간의 머리보다 높은 단계에서 신념이 지배하기 때문에 이성이 그것을 건드리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닫곤 한다네." -57 - P403

오늘날 최고의 의무는 용기라고 믿네. 철저하게 무장하고 준비하기 때문이 아니라 다가오는 고난을 위해 옥체야말로 위대한 무기로서단련시켜야 하기 때문이지. 오늘날은 새로운 스파르타의 시대로 들어선 것 같지 않은가. 용기, 검약, 결제, 인생에 의연하게 대처하기 이런것들이 우리 시대의 최대 덕목이 되었으니 말일세, 오늘날 비겁한 사절제하지 못하는 사람, 온유한 사람 등은 설자리가 없다네 스튜르타에 멋진 조각상이나 매혹적인 돌 장식을 찾아보려고 오는 자 또한실패한 인생일 돼지, 고개를 들어 타이게토스 산을 한번 바라보시게..
저 산은 현대의 시나이 산이 되었어. 저 산의 가슴에는 오늘날의 잔인한 십계명이 새겨져 있지. 선제공격을 하라. 당신의 목숨을 아끼지 않듯이 적의 생물도 아끼지 마라. 당신은 즐거워하고 사랑하기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라 무기를 휘두르기 위해 태어났다. 너의 신은 전쟁의 신뿐이니라"-59 - P415

전문가들은 고대 그리스군대에서 전력의 핵심은 1.8미터에서 2.7미터에 이르는 재블린 javelin즉 긴 창과 지름 90센티미터에 이르는 커다란 방패 아스피스로 무장한 중무장보병 즉, 호플리테스haplies라고 꼽는다. 이들이 보편적으로쓴 전술은 팔랑크스ptualianx로, 여덟 겹의 횡렬대형을 이루어 밀집방진으로 적을 향해 전진하는 것이었다고 한다. 실제 그리스인들의 팔랑크스는 대단히 위협적이어서, 이들이 왼팔로 단단한 나무에 청동을 입혀만든 아스피스를 들고 오른손에 길고 위협적인 재블린을 든 채 발을맞춰 전진하면 상대는 마치 거대한 청동 고슴도치가 돌진해오는 느낌을 받을 정도였다고 한다. - P398

실제 이 섬에는 등대 아래 그들이 타고 떠난 배를 묶었다던 녹슨 쇠막대가 남아 있다. 논리적으로 생각한다면 2,700년 전에 닻줄을 묶었던철봉이 남아 있다는 것은 터무니없는 이야기겠지만 전설을 검증할 필요도 그럴 이유도 없다. ‘역사는 전설이 되고, 전설은 신화가 된다‘는 영화 <반지의 제왕>의 대사처럼 오늘 우리가 만나는 신화는 어쩌면 역사의 한 조각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고대인들은 이 문제를 어떻게 보았을까? 헤로도토스가 《역사》에서 페르시아인들의 입을 빌려 한 이야기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 P424

니코스 카잔차키스라는 안경으로 그리스를 보다 - P429

‘내 삶에 가장 큰 은혜를 베푼 요소는 여행과 꿈이었다고 고백할정도로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삶에서 여행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것이었다. 하여 일일이 손에 꼽기 힘들 만큼 다양한 이력에도 불구하고 그를
‘위대한 여행자‘라 부르는 것이 가장 어울리는 듯하다.  - P430

실제로 그는아테네대학 졸업 후 6년을 제외하고는 집을 떠나 세계 곳곳을 여행하며 살았다. 20세기 초반 무렵, 그의 발길이 닿은 곳은 모레아를 비롯한자신의 조국 그리스는 물론 남유럽 서유럽, 북유럽, 아프리카, 심지어중국과 일본까지 거의 전 세계를 망라한다. 호메로스와 붓다, 니체와베르그송 그리고 조르바가 그의 영혼에 깊은 자취를 남긴 사람이라면그의 여행은 특유의 깊이 있는 통찰과 사색을 길어 올리는 샘이었음에틀림없다. 더불어 그가 남긴 모든 작품은 이 장대한 여행을 통해 잉태되고 탄생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 P430

따라서 크레타에 있는 그의 기념관에 비치된 브로슈어 표지에 그를 수식하는 수많은 표현을 제치고
‘위대한 여행자‘ 즉 "The great traveler, Nikos Kazantzakis."라고표현한 것은 탁월한 선택이 아닐 수 없다. 더불어 이것이 이번 여행에서 그와 동행하기로 한 이유이기도 하다. 그리스 땅을 속속들이 들여다보며 나는 더할 수 없이 귀한 안내자를 얻은 셈이다. - P430

"나는 이제 연장을 거두고 집으로 돌아간다. 하지만 그것은 두렵거나 지쳤기 때문이 아니라, 다만 해가 저물었기 때문이다."
임종 직전 니코스 카잔차키스가 쓴 메모에서 - P433

2011년 겨울부터 첫 발을 뗀 이 여행은 앞으로도 계속될 예정이다.
그리스 전체를 횡단하며 발길 닿는 곳에서 시간의 강을 종단하는 이여행은 펠로폰네소스에서 시작해서 아테네가 속한 아티카(그리스 북부)의 테살로니키 그리고 고대 그리스 권역을 아우르는 마그나 그라이키아 등으로 이어질 예정이다. 그리고 각각의 여행은 제1부 펠로폰네소스 편 세권, 제2부 아티카 편 네 권, 제3부 테살로니키 편 한 권, 제4부 마그나 그라이키아 편 두 권 등 모두 열 권의 책으로 정리할 계획이다. 이 글을 마무리하는 지금, 제2권의 초고 집필을 마친 상태이다. 짐작건대 2013년 한 해도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여행과 집필의 시간들로채워질 듯하다. 모쪼록 이 여행이 필자인 나는 물론이거니와 독자 여러분들에게도 의미 있기를 두려운 마음으로 바란다. - P432

"나는 이제 연장을 거두고 집으로 돌아간다. 
하지만 그것은 두렵거나 지쳤기 때문이 아니라, 다만 해가 저물었기 때문이다."

임종 직전 니코스 카잔차키스가 쓴 메모에서 - P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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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정이란 가장 어렵고 위험한 균형이며, 혼돈위에 얹힌 순간적인평정이지. 한쪽이 조금만 더 무거워도 찰나에 기울어져버리거든."

‘혼돈 위에 얹힌 순간적인 평정‘이라………. 랜턴을 비춘 순간 빛바랜성화에서 느낀 평온 그의 말마따나 그것이 곧 ‘절정‘이었다. - P189

아무리 곱씹어보아도 이곳의 유적은 야만에 대한 이성의 끝없는도전이 이뤄낸 결과물이다. 그리스 문명은 척박한 땅에서 살아남은 자들의 차가운 이성과 뜨거운 열정 그리고 단련된 육체가 어우러져 피워낸 꽃이며, 정신과 육체의 조화로운 균형을 추구하던 현장이기도 하다. 건강한 육체의 승리자에게는 월계관이 씌워졌고,
위대한 서정시인의 시가 낭독되었으며, 승리의 기쁨은 신화와 함께 은유가 가득한 조각상으로 남겨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 이런 고대의 조화는 무너졌고, 오늘날의 경기는 육체적 기능의승리자로서 스타디움의 불꽃놀이처럼 명멸하는 영광 속에 갇히고말았다. - P194

"바로 이 시기에 피어난 그리스문명은 결코 향기도 촉감도 없는 초자연적인 개화가 아니었다네. 그것은 땅속 깊이 뿌리를 내리고 진흙을빨아먹으며 꽃을 피운 나무였던 게야. 실제로 진흙을 많이 빨아먹을수록 꽃은 더욱 아름답게 피어나는 법이라네." -35 - P233

아르고스는 스파르타에 맞서 공화정을 유지하려 한 펠로폰네소스반도 내의 거의 유일한 도시였다. 따라서 펠로폰네소스 내에 고립된성과 같았고, 조상들의 그런 기질은 지금도 여전히 아르고스 사람들에게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고 한다. 헤르메스의 시링크스에 쉬 잠들지 않았던 100개의 눈을 가진 ‘아르고스‘처럼, 그들의 자존심도 그리 쉽게는 잠들 수 없는 모양이다. - P250

까페 문을 열고 들어서며 "크리스토스 아네스티 (Christos anesti, 주께서 부활하셨습니다!" 하고 먼저 인사를 건넸더니, 까페 안의 사람들이일제히 모자를 벗으며 "알리또스 아네스티 (Alithos anesti, 참으로 부활하셨습니다!" 하고 합창했다. 그렇게 인사를 건넨 이유는 그날이 부활마지막 주일이었기 때문이다. - P254

"완전한 균형은 보는 이에게 두려움을 준다네. 예술가가 추구하는 것이 건축을 통해 신의 느낌을 표현하는 것이라면, 그 ‘신의 느낌‘ 즉 ‘영감‘은 건축가가 신적 균형과 조화를 구현함으로써만 표현할 수 있을테지. 그리고 그 조화가 신앙의 본질인 성스러운 두려움을 창조하는것 아니겠는가." - P265

신전에서 되돌아 나오는 길에 다시 매표소에 들렀다. 이번엔 10유로짜리 가이드북을 사기 위해서였다. 역시 20유로짜리 지폐를 내밀며 혹시나 해서 ‘10유로의 잔돈은 있느냐‘고 물었더니, 조금 전의 그가 싱긋 웃으며 책 한 권과 10유로의 잔돈을 거슬러 주었다. 그가 연 서랍에는 5유로짜리 지폐와 1유로짜리 잔돈이 가득 차 있었다. 그 순간 그가내게 눈을 찡긋해보였다. 아까 잔돈이 없다는 것은 저 멀리 동양에서이곳까지 찾아준 여행자에 대한 그의 호의였던 것이다. 내 가슴에 맺힌 그리스인의 또 하나의 모습이다. - P269

말이 나온 김에 한마디 하자면, 그리스의 도로에서 흔히 만나는 이정표는 연구의 대상이다. 좀 과장해서 말하면 옛날 길손을 괴롭히던 신화속 괴물이 오늘날에 되살아난 것이 바로 그리스의 이정표가 아닐까 싶을 정도다. - P270

이렇게 볼 때 여기 인용한 부분은 《역사》라는 책을 통틀어 헤로도토스가 얼마나 탁월한 역사가였는지 단박에깨닫게 해주는 부분이다. 여기서 보듯 그는 최초의 역사서를 저술한것을 넘어, 자기 민족의 입장뿐 아니라 적대국에서 듣고 본 이야기들까지 객관적으로 서술했다. 우리는 그 덕분에 그리스인들과 페르시아인들의 아슬아슬한 감정선과 그에 얽힌 신화의 전개 과정까지 알게 되었으니, 역사가의 객관적 진술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여기서 다시금 깨닫게 된다. - P279

"바로 그런 시대였다네. 원래 그리스어에는 ‘바다‘라는 단어가 없었을 정도로 그리스인들은 바다를 두려워했지. 멀리 북쪽에서부터 밀고내려와 원주민을 복속시킨 도리아인들이 바다를 구경했을 리가 만무했을 테니까. 이에 비해 일찍이 바다를 주름잡던 페니키아인들이 이런 미개한 그리스인들을 상대로 무역도 하고 더러는 약탈도 하는 일이야 특별한 일도 아니었을 게야. 그러다가 그리스인들이 바다로 나서면서 제해권을 두고 서로 충돌이 일어났겠지. 그 압권이 바로 ‘트로이 전쟁‘이었던 게야 - P281

였던 게야. 그 이전에 일어났던 사건들은 약탈이나 납치 등 돈으로 해결하거나 서로 돌려주고 돌려받으면 끝나는 일종의 국지적 사건이었지그러나 스파르타의 왕비이자 전 그리스 남성들의 로망인 헬레네를 납치한 사건은 단순하지 않았어. 결국 그 사건이 빌미가 되어 그리스 연합군이 대대적으로 트로이를 공격해서 폐허로 만들어버린 것이지." - P282

흑해의 조류가 거꾸로 흐르는 터라 배를 타고 곧장 넘어가지 못한그리스의 선박들은 트로이를 경유해야만 했다고 한다. 이러한 약점을노려 트로이가 비싼 통행세를 물리며 폭리를 취하자. 전 그리스의 도시국가들이 생존 차원에서 당시의 묵계를 깨고 연합하여 덤빈 것이 바로 ‘트로이 전쟁‘이다. - P283

호메로스의 서사시 《오디세이아》에는 주인공 ‘오디세우스‘가 트로이 전쟁을 마치고 돌아오는 귀향길에 갖은 고생과 모험을 하는 동안 구혼자들의 끈질긴 구애를 물리치며 남편을 기다려준 왕비‘페넬로페‘ 앞에 거지꼴로 나타나 이렇게 찬양한다.

부인! 끝없는 대지 위의 어떤 인간도 그대를 비난하지못할 것이오. 그대의 명성이 넓은 하늘에 닿았기 때문이오.
신을 두려워하며 수많은 강력한 인간들을 다스리고법을 준수하는 나무랄 데 없는 왕의 명성처럼 말이오. 42 - P287

즉 백성들의 입장에서 보면 오디세우스는 모두에게 선물을 남겼지만,
아가멤논은 모두의 것을 앗아간 셈이었다. - P290

어쨌든 아르고스는 스파르타에 맞서 민주정을 유지하려 한 펠로폰네소스 반도 내의 거의 유일한 도시였다. 따라서 펠로폰네소스 내의 고립된 성과 같았고, 조상들의 그런 기질은 지금도 여전히 아르고스 사람들에게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고 한다. 헤르메스의 시링크스에 쉬 잠들지 않았던 100개의 눈을 가진 ‘아르고스‘처럼, 그들의 자존심도 그리 쉽게는 잠들 수 없는모양이다. - P294

그들은 현실적이었고, 신을 숭배했으되 무조건 따르지는 않았다.
신이 정해준 운명에 끝없이 도전하며 스스로가 신의 반열에 오르길 목숨을 걸 만큼 간절히 바랐다. 그 결과 그리스의 많은 영웅들은 마침내 신의 자리에 앉았다. 그리스인들에게는 인간이 곧 신이었고, 신이 곧 인간이었다. 이렇게 사상과 종교적 제약으로부터자유로웠던 그리스인들은 일찌감치 인간에 눈을 떴던 최초의 인간이었던 셈이다. 그리고 그들은 이것을 ‘탁월함‘이라 불렀다. - P298

"당신들이 스파르타의 흔적을 찾으려 해도 찾지 못하는 날이 올 것이다."
제아무리 빛나는 영감이나 높은 이상도 누군가가 시로 쓰거나, 돌에새기거나, 그림으로 남기지 않는다면 모든 것이 허공으로 증발해버릴것이라는 뜻을 담은 이 말은, 시대를 빛나게 할 높은 이상도 받아들일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자들에 대해서는 절대 팔을 벌리지 않는다는뜻이리라. 그런 의미에서 스파르타에는 호메로스의 시가 영원성을 부여한 헬레네 외에는 실제로 아무것도 남은 것이 없어보인다. - P300

실제 호메로스의 《일리아스》가 단순히 애정전쟁을 기록한 것이었다면 오늘날까지 우리에게암송될 리 없다. 이 이야기는 신의 정체, 본질, 인간의 숙명과 한계, 그러나 그것을 뛰어넘으려는 장엄함이 실타래처럼 얽혀 있다. 이런 인간의 부조리와 한계는 파리스가 헬레네의 전 남편 메넬라오스와 결투를벌이다가 패배 직전 아프로디테의 도움으로 살아 돌아온 직후, 헬레네와 주고받는 다음의 대화에서 극적으로 드러난다. - P305

하지만 헬레네는 전쟁이 끝난 후 전남편 메넬라오스가 그녀를 죽이기 위해 목덜미를 움켜쥐었다가도 칼을 버리고다시 품에 안을 만큼 신의 아름다움에 필적하는 여인이었다. 이 여인은쌍방의 수많은 희생을 뒤로 한 채 어떤 처벌도 받지 않고 다시 스파르타로 돌아갔으며, 훗날 그녀를 기리는 신전이 세워지고 숭배의 대상이되기에 이르렀다.  - P307

이러한 아이러니는 터무니없는 설정이 아니다. 나는오히려 바로 그 때문에 일리아스의 정통성이 아킬레우스가 아니라 헬레네에게 있다고 생각한다. 양립할 수 없는 것이 양립하고 수용할 수없는 것을 수용하며, 지극히 비현실적인 것을 현실로 받아들이는 그리스 혹은 그리스인들의 특질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바로 헬레네이기때문이다. - P308

"인간사에 일어나는 일들을 두고 굳이 목적을 알려고 할 필요가 있을까? 신도 우리들과 함께 살아가고 함께 추구하며 때로는 위기를 맞고 스스로도 투쟁에 휘말리니 말일세. 어느 누구도, 심지어 신조차도알지 못하는 것일 테지. 짙은 안개처럼 본성은 우리도 모르는 깊은 심연 속에 존재한다네. 우리가 보는 세상은 허깨비가 아니어서, 제아무리바람이 분다 할지라도 그 안개가 걷히지는 않을 것이네. 그것들은 뼈와살이니………. 한번 만져보시게 존재할 테니까. 신이 우리를 부른다고보나? 아니면 우리가 신을 부르는가? 도와달라고 말이지. 하지만 우리의 임무는 그렇게 신에게 요청하는 대신 자신의 주먹을 불끈 쥐고상승의 길, 오름길을 묵묵히 올라가는 것일 게야." - P308

스파르타
신이 곧 인간이요, 인간이 곧 신이다
스파르타는 ‘그‘가 펠로폰네소스를 여행하면서 가장 많이 머문 곳이라고 한다. 또한 ‘그‘가 사려 깊은 문장으로 짙은 애정과 아쉬움을 서슴없이 표현했던 바로 그곳이기도 하다.
고대 이래로 스파르타는 그 이름만으로도 사람들을 설레게 하는 곳이었던 셈이다. 역사상 가장 강력했던 전사들의 도시. 고금의 역사를 통틀어 가장 완벽한 법치와 법의 정신을 구현했던 도시, 세상에서 가장강력한 공동체 연대를 구축했던 나라. 죽음으로 영생을 얻은 레오니다스Leonidas 300명의 전사가 전설로 살아 있는 곳. 스파르타에 대한 첫인상은 이렇듯 강렬하기만 하다. - P310

전역 어느 기념품 가게를 들러도 ‘I Love Greece!‘ 보다 ‘와서 빼앗아보라‘라는 뜻을 가진 스파르타 전사의 구호 ‘Molon Labe! 모론 라베 가 찍힌 티셔츠가 더 많이 걸려 있을 정도로 스파르타는 사람들의 가슴속에불도장으로 새겨진 로망 그 자체이다. - P311

저 멀리서 레오니다스의 외침이 들리는 듯하기 때문이다.
"와서 빼앗아보라!"
이 언덕에 올라선 침입자들은 정녕 저땅을 빼앗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스파르타는 보무도 당당하게 이렇게 외쳤다.
"자신 있으면 오라!" - P311

추구했던 ‘탁월함‘에 대한 상징적 장면이다. 바로 이러한 ‘탁월함이야말로 고대 그리스 정신의 고갱이라 할 수 있다. 그 이전까지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 Muphates 강 유역의 아시리아와 바빌로니아Babylonia, 인더스강 유역의 인도, 나일강의 이집트, 황화의 중국 문명으로 꼽히는 4대 고대 문명은 모두 동양의 것이다. 다시 말해 그리스 문명 이전에 존재했던 세상의 법과 질서는 모두 동양에서 비롯되었다. 그리스 이전의 서구는 야만의 땅이자 야만의 시간이었다. 그런데 이 정지해버린 야만의 땅에 갑자기 한줄기 번개가 들이치고 문명의 불꽃이 점화되었던 것이다. 처음 이곳 그리스로 떠나올 때부터 가졌던 가장 본질적인 질문 가운데 하나가 다시금 떠올랐다. 왜 하필 그리스였을까? - P314

"그리스에서는 신이 사람의 자리로 혹은 사람이 신의 자리로 가기위해 끊임없이 도전했다고 할 수 있지. 천하의 난봉꾼 제우스는 세상의 어느 인간도 해보지 못한 비뚤어진 사랑에 몰입했고, 친부살해, 친자살해까지 예사로 일삼지 않았던가. 그리스 신들은 틈만 나면 마셨고, 아름다움을 거루있으며, 질투와 시기의 놀음에 빠져 있었던 인간보다 비윤리적일 뿐 아니라 반인간적인 모델이었다고도 할 수 있을 게야. 그리스인들은 인간의 모든 약점을 신에 투영했으며, 신들이 내린규율 중에 살인이나 배신과 같은 종류 이외에는 거들떠보지도 않았지.
신이래야 길거리 시정잡배의 행동보다 별로 나을 바가 없었는데 인간이 그 신의 지시를 따를 리가 없잖은가." - P316

316그 결과 그리스의 많은 영웅들은 마침내 신의 자리에 올랐다. 그리스인들에게는 인간이 곧 신이었고, 신이 곧 인간이었다. 이렇게 사상과 종교적 제약에서 자유로웠던 그리스인들은 일찌감치 인간에 눈을 떴던 최초의 인간이었던 셈이다. 그리고그들은 이것을 ‘탁월함‘이라 불렀다.

《일리아스》를 펼치면 아킬레우스와 헥토르가 최후의 일전을 겨루기직전에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나온다. 그 장면에서 헥토르는 이렇게 제안한다. "둘 중 누가 죽더라도 패자의 시신을 모욕하지 말고 정중히 돌려주도록 하자." 이에 아킬레우스는 단호하게 대답한다. - P317

"헥토르여, 잊지 못할 자여! 내게 합의에 관해 말하지 마라.
마치 사자와 사람 사이에 맹약이 있을 수 없고늑대와 새끼 양이 한마음 한뜻이 되지 못하고시종일관 서로 적의를 품듯이, 꼭 그처럼나와 그대는 친구가 될 수 없으며 우리 사이에맹약이란 있을 수 없다." ―52 - P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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