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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스토리아 노바 - 주경철의 역사 에세이
주경철 지음 / 산처럼 / 2013년 7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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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2022.3.29

베를린 입성한 소련군, 광란의 복수극…
유럽 전체가 등돌렸다

[주경철의 히스토리아 노바] [62]
악을 악으로 갚은 2차대전

http://naver.me/x0Gqgeg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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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리 토지 나남출판사
지금은 절판된 2002년 판형
개인적으로 이판형이 젤 좋음. 지금판은 너무 밋밋

전라도(순천)에 조정래가 있다면, 경상도(통영)엔 박경리가 있다.

스브스 tv드라마 토지 2004.11.27. ~ 2005.05.22. 52부작, http://naver.me/F8KkhKL6
최서희, 김현주. 김길상, 유준상. 이용, 박상원
조준구, 김갑수. 김두수(거복), 유해진.
아! 김갑수씨는 나쁜역을 너무 자주 맡아. 태백산맥 염상구, 태조 왕건 종간(종간이 뭣여, 종간나 새이?)

크브스 tv드라마 토지 1987.10.24.~1989.08.06. 103부작, http://naver.me/I5on7UtQ
최서희, 최수지. 김길상, 윤승원. 이용, 임동진
조준구, 연규진. 김두수(거복), 백인철

윤씨부인과 김개주(동학접주 김개남 모델)의 설정 사생아 김환은 선을 좀 넘은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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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 2022-03-29 10:0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토지 전집 위치가 서가의 가장 위층. 저 아래 층으로 또 얼마나 많은 대장정님의 보물이 있을까 부러워서 상상해봅니다!

대장정 2022-03-29 12:56   좋아요 3 | URL
감사합니다. 얄라~~님은 더 많으실거 같은데요. 앞에 다른책으로 막기전에 한컷 찍어논겁니다.ㅎㅎ~~☆☆

햇살과함께 2022-03-29 11:23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저희 집에도 고이 모셔져 있는 판이네요^^ 도서관에서 빌려 읽고 제 생일 선물로 세트 샀는데 먼지만 쌓이고 있네요 ㅎㅎ

대장정 2022-03-29 16:46   좋아요 3 | URL
저도 사고 나서 읽기 시작할때 까지 많은 세월을 보냈습니다ㅠㅠ 하지만 읽기 시작하니 거침없이 읽어지더라구요. 시작이 반이다..~~☆☆ 생일 선물로 받았다는 줄 알았는데 😂 스스로 선물하신거군요ㅋㅋ~~☆☆
 

그 공책은 물론 몰스킨Moleskine 이다. 그렇게 강한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공책은 몰스킨 외에 거의 없다. 작고 검은 몰스킨은 거의 종교적인 열광을 불러일으킨다. 그런가 하면 허세의 상징으로 조롱받기도 한다. 전 세계 어느 도시에나 있는 똑같이 생긴 유명커피숍에 앉아 있으면서도 자신이 독창적인 사람임을 과시하기 위해사용하는 허세적 소도구라는 것이다. 작고 검은 몰스킨이나 희고 납작한 맥북 같은 것들. - P89

몰스킨 공책 안쪽에는 공책의 역사를 자세히 설명하는 작은 안내서가있다. 
몰스킨은 빈센트 반 고흐, 파블로 피카소, 어니스트 헤밍웨이, 브루스 채트윈Bruce Chatwin 같은 유명 인사가  사용한 전설적인 공책의 상속자이자 계승자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상속자이자 계승자‘ 라는문구다. 그런데 반 고흐, 피카소, 헤밍웨이, 채트윈이 사용한 공책은사실 몰스킨 공책이 아니었다. 그저 몰스킨 공책과 비슷한 종류의 공책이었을 뿐이다.
- P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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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장 서아시아

서아시아는 동서문명의 접합지로서 일찍이 그곳에서 개척된 오아시스로(왕의 길)는 서쪽으로 보스포루스 
해협을 거쳐 이 길의 서단인 로마로 이어졌다.
그리고 동쪽으로는 중앙아시아와 동아시아의 사막길과 연결됨으로써 비로소 유라시아를 아우르는 오아시스로가 완성되었다. - P246

성역광장
전체 너비가 75만m나 되는 터에 자리 잡은 마슈하드의 성역광장(하람)은 하나의 복합문화도시를 연상시킨다. 중앙에 있는 레자 묘당을 비롯하여 고하르 샤드 마스지드, 각종 박물관, 도서관과 신학대학 등이 광장 안에 다 자리를 잡고 있기 때문이다. 그 크기나 화려함은 이슬람 세계에서도 보기 드물 정도다. 예로부터 마슈하드는 교통이 사통팔달한 곳이다.

- P247

투스에는 이란의 대민족시인 피르다우시(Firdausi, 935~1020년)의 영묘가 있다.
피르나우시는 신화시대부터 아랍 정복기까지의 
이란 역사를 35년 간 무려 6만 편의 시를 써서 
민족적 대서사시 사나마 (Shub-Nina, 왕서書)란 
책에 담아냈다. - P247

혜초의 서역 기행노선
세계 4대 여행기의 하나라고 할 수 있는 
「왕오천축국전(往五天쓰國傳)」은 
중국 둔황의 막고굴 장경동에서 그 잔권이 발견된 지 
7년 후(1915년)에야 저자가 신라승 혜초(慧超)임이 밝혀졌다. 현존「왕오천축국전」은 필사본(현재 파리국립도서관 소장)으로 총 230행(매행27~30자)에 
약 6,000자밖에 안 되는 절략본 진간이다. 혜초는 이 여행기에서 그가 인도뿐아니라, 중앙아시아와 서아시아의 여러 나라들을 편람하면서 직접 보고 들은 각국의 역사·문화 · 정치 · 풍속 · 불산 · 종교 등을 사실적으로 기술하고 있다. 이 여행기는 8세기의 이 지역에 관련된  서적으로는 그 내용의 다양성과 정확도에서 단연 으뜸가는 명저로 평가받고 있다. 혜초는 이 여행기에서 사상 최초로 아랍을 대식(大食)이라 명명하였고, 한자(漢字) 문명권에서는 처음으로 대식 현지에서의 견문을 여행기에 담아 전함으로써 한자문명권과 아랍-이슬람 문명권  간의 상호 이해와 교류를 도모하는 데 선구자적 역할을 하였다. 혜초의 도축 순례는 중국 광저우에서 출발하여 해로로 동남아시아를 지나 동천축에 상륙했으며, 거기서 육로로 중천축 · 서천축 · 남천축 · 북천축을 두루 거친 후 페르시아(현 이란)의 동북부까지 갔다가 귀로에  올랐다. 왕오천축국전의 기록을 통해 보면 그의 노정은 당시 서역의 니샤푸르까지 이어졌을 것으로 추측된다. 그리고 실크로드 오아시스로를 따라 귀로에 올라 당시 당나라수도 장안에 도착하였다.
혜초는 밀교(密敎)의 선도자로 불교 발전에도 불멸의  기여를 하였다. 그는 어려서 당나라로건너가 중국 밀교의 시조 금강지(金剛智)를 스승으로 삼았으며,  그의 권유에 따라 도축구법 순례를 하였다. 당나라에 돌아온 후 혜초는 장안의 천복사(薦寺)와 대흥선사(大興善寺), 그리고 만년에는 오대산(五臺山)의  건원보리사(乾元菩提寺)에서 밀교 경전을 연구하고  필수(受)- 한역(漢譯)하였다. 
그는 밀교의 제2대조인 불공삼장(不空三藏)의 6대 제자 중 제2인자로 밀교 전도에 일생을 바쳤다. 혜초는 밀교 경전의 한역과 주식에 진력하다가 787년경  건원보리사에서 입적하였다. - P253

니샤푸르는 720여 년 경 신라 고승 혜초가 단행한  서역기행의 서단(西端)으로 추정된다. 
그가 토화라(吐火羅, 현 아프가니스탄)에서  설정한서행(西行)의 방위나 소요 노정과 지세,  그리고 현지 상황에 관한 정확한 기록 등을 감안한다면, 이곳을 기행의 서단으로 잡는 데 큰 무리가 없어 보인다.당시로서는 동양의 그 누구도 닿아보지 못한 이곳에  다녀와서 혜초는 귀중한 현지 견문록을 남겼다.
- P251

역사적으로 볼 때 아케메네스조 페르시아는 유라시아 중심부에 우뚝섰던 최초의 세계적 통일제국이었다. 제국은 대대로 문화적 절충주의와포용성을 추구해, 당시로서는 가장 뛰어난 문명요소들을 적극 섭취하고 창의적으로 조화시켜 소중한 인류공동 유산을 창출하였다. 왕도 떼르세폴리스는 명실상부한 ‘문명의 모임터‘로서, 그 여파가 실크로드를타고 멀리 동방의 한반도에까지 미쳤다는 것은 문명의 교류가 보여주는파급력의 효과라고 할 수 있다. - P255

팔미라는 기원을 전후해 약 300년간 시리아 사막 한가운데 자리했던 오아시스 도시국가다. 오아시스로를 통한 교역의 중계지로 번영을 누린팔미라가 실크로드 전개사(展開史)에 이름을 남기게 된 것은, 20세기 초의 일이었다. 
당시 무덤 골짜기의 아르타반 탑묘(塔墓)에서  중국 한나라 때의 비단, 즉 한금(漢) 조각이 여러 점 발견되었던 것이다. 그전까지만 해도 한금이 중앙아시아와 인도 서북 해안 일대에서만 발견된 점을 감안해 독일의 지리학자 리흐트호펜(F. v. Richthofen)은 처음으로그 발견지들을 이은 길을 ‘실크로드‘ 라고 명명하였다. 이것이 실크로드개념 확대에서의 제1단계, 즉 중국~인도로 단계다. 그러나 그후 팔미라 - P288

까지 이르는 이 길의 서쪽 여러 오아시스에서도 한금이 발견되자 1910년역시 독일의 동양학자 헤르만(A. Henmann)은 이 길을 지중해의 동안인 팔미라까지 연장하고 ‘오아시스로‘라고 불렀다. 이것이 이른바 실크로드 개념 확대의 제2단계, 즉 중국~ 팔미라 노선 단계다. 이 길에서 팔미라는 지중해 연안과 중국 간의 교역 중계지 역할을 해왔다.
이곳에서 출토(1881년)된 팔미라 관세표(關稅表)‘ 석비의 기록을 살펴보면, 당시 팔미라를 통해 진행된 교역품의 명세와 가격 및 관세율 같은 구체적 사항을 파악할 수 있다. - P289

흔히들 한국과 터키는 ‘형제국가‘라고 한다. 그것은 두 민족이 인종학적으로 같은 어족에 속하고, 역사적으로 공통된 운명을 겪어왔으며, 여기에 더해 지난 한국전쟁 때 터키가 혈맹으로 참전했다는 데 근거를 두고 있다. 앙카라에 있는 한국공원과 그 안에 있는 한국참전 토이기(터키) 기념탑(높이 9m의 4층탑)이 그것을 웅변적으로 말해준다. - P301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보스포루스 다리
이스탄불은 보스포루스 해협을 사이에 두고 유럽과 아시아의 두 개 대륙에 걸쳐 있다. 양 대륙을 잇는 보스포루스 다리는 1973년에 완공되었는데, 동쪽의 베이러베이(Beylerbeyi) 지구와 서쪽의 오르타쾨이 (OrtakOy) 지구를 연결함으로써 동서 교류의상징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 - P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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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메일의 사용도가 점점 높아지는데도 만년필 판매량이매년 줄어드는 대신 들어난다는 사실 자체가 놀랍다.
만년필 판매량이 안정적인 것(이따금 급격히 치솟는 상황은 물론)은 이상해 보인다. 
그러나 글을 적을 일은 항상 있을 것이고 그럴 일이 줄어들기는 해도 그 기회는 더욱 소중히 여겨지게 된다. - P40

함부르크의 문구 판매상인 클라우스 요하네스 보스 Claus-johannes와 연락했다. 
그들이 세운 심플로 필러 펜 회사 Simplo Filler PenCompany는 2년 안에 첫 번째 제품인 루주에누아르 Rouge et Noir 만년필을 출시했다. 그다음 제품은 그 회사가 달성하려는 품질의 상징처럼유럽 최고봉인 몽블랑 Mont Blanc 이라는 이름을 달았다. 1913년 그 회사는 여섯 모의 흰색 별을 로고로 채택했다. 그 산의 이름은 나중에그 회사의 이름이 되었다.
1924년 몽블랑은 첫 번째 마이스터스퇴Meisterstick 만년필을 출시했고 1952년에는 마이스터스퇴 149를 선보였다. 합성수지로 만든 149의 검은 몸체와 금도금된 삼중의 띠를 두른 뚜껑은 처음 선보인 이후지금까지 거의 변하지 않았다. 각 펜촉에 새겨진 숫자 4810은 미터로 표시된 몽블랑의 해발고도다. - P71

초록색 펜과 기벽의 연관성은 칼 세이건이 1973년에 쓴《우주 커넥션(cosmic Connection)에서 조금 더 뚜렷이 드러난다. 세이건은 자신이 받은 편지를 설명했다.

손글씨로 된 85 페이지짜리 편지가 우편으로 배달되었다. 그 편지는 오타와의 한 정신병원에 있는 신사가 초록색 볼펜으로 쓴 것이었다. 그는내가 다른 행성에도 생명이 존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는 이야기를 어느지방 신문에서 읽었다면서 내게 그 가정이 전적으로 옳다는 확신을 주고싶다고 말했다. 자신이 직접 체험했기 때문에 안다는 것이었다.

"초록색 잉크 여단 green ink brigade" 이라는 말은 기자와 정치인에게 음모의 증거나 뭔가 비현실적인 이론을 설명하는 길고 살짝 혼란스러운편지를 쓰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용어다. - P82

1963년 일본의 펜 회사인 오토OHTO는 롤러볼 roller ball을 개발했다.
이것은 다른 회사의 제품처럼 유성 잉크가 아니라 수성 잉크를 쓰는볼펜이었다. 수성 잉크를 쓰면 잉크가 묽어서 펜촉의 공이 지면에서 더 유연하게 굴러가기 때문에 글씨가 더 쉽게 쓰인다 - P84

선택지는 많지만, 그래도 나는 흰 종이 위에 검은색 잉크라는 단순성이 더 좋다. 그것은 내 말에 권위를, 내 삶의 모든 영역에 결여된 권위를 더해준다. - P85

글쓰기 매체로서 연필은 그 내용을 책임질 필요가 절대로 없었다. 연필로는 충동적으로 글을 써도 된다. 완전히 결심한 단계는 아니더라도 연필로 일기에 그것을 써둘 수는 있다. 언제나 빠져나갈 구멍이 있는 것이다. - P126

콩테는 원래 초상화가가 되려고 했지만 프랑스 혁명 이후 관심을 과학으로 돌린 사람으로 머릿속에 모든 과학을 담고 있고 손에는 모든예술을 담고 있다"는 평판을 듣기도 했다. - P131

콩테 덕분에 세계는 이제 순수 흑연 없이도 연필을 만들 수 있게 되었다. - P132

한편 뉘른베르크는 18세기 내내 ‘세계 연필 생산의 중심지‘ 라는 타이틀을 놓고 케즈윅과 경쟁을 벌이기 시작했다. 지금도 이 도시에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연필 회사 두 곳이 있다. 
바로 스테들러 Staedtler와 파버카스텔 Faber-Castell이다. - P133

그가 회사에서 일하고 얼마지나지 않아 소로의 연필은 네 종류의 굳기로 판매되었다(미국에서는이 분류법이 지금도 지배적으로 쓰이며 2번 등급이 대략 HB 에 해당한다) - P135

"사람들에게 의식적이거나 무의식적 생각, 사실, 아이디어, 꿈을가질 능력을 부여하며, 그들 자신을 간단하게 연장해주는 도구를 사용하여 그런 것을 보존해준다. (딕슨 타이콘데로가에 의하면) - P139

"내 오른손 가운뎃손가락에는 굳은살이 박여 있다. 매일 너무많은 시간 동안 연필을 쓰는 바람에 생긴 것이다." 존 스타인벡John Steinteck은 썼다. 
알다시피 나는 매일 여섯 시간씩은 손에 연필을 쥐고 있다. 이상하게 보일지 모르지만 그게 사실이다. 정말로 난 조건화된 손을 가진 조건화된 동물이다."
- P140

오랫동안 난 완벽한 연필을 찾아다녔어. 아주 좋은 연필을 찾아냈지만 그건 완벽한 연필이 아니었어. 언제나 문제는 연필이 아니라 내게있었지. 어느 날은 괜찮았던 연필이 다른 날에는 나쁜 연필이 되어버리니까. 어제만 해도 난 부드럽고 섬세한 연필을 썼어. 그건 근사하게 종이 위를 미끄러지듯 움직였어. 그래서 오늘 아침에도 같은 종류의 연필을 집어 들었지. 그런데 말을 듣지 않는 거야. 촉이 부러지고 완전히 난리가 났어. - P143

스타인벡은 마음에 드는 연필을 찾아내면 한꺼번에 수십 자루씩 사두곤 했다. 그가 써본 것 중에는 브레이스델 캘큘레이터 BlaistelCalculator, 에버하드 파버 몽골 therhard Faber Mongol 480("아주 검고 연필심이 단단해")도 있었지만 스타인벡이 제일 좋아한 품종은 블랙Blackwing602였다.

새 연필을 찾아냈어. 지금껏 써본 것 중에 최고야. 물론 값이 세 배는더 비싸지만 검고 부드러운데도 잘 부러지지 않아. 아마 이걸 항상 쓸것 같아. 이름은 블랙윙인데, 정말로 종이 위에서 활강하며 미끄러진다니까.

블랙윙 602는 에버하드 파버가 1934년에 출시한 제품이었다. 특유의 부드러운 심은 흑연에 왁스를 더하고 점토를 섞은 결과물이었다. - P144

스타인벡 외에도 블랙윙의 팬은 많았다. 프랭크 시나트라 Frank Sinatra와 함께 작업한 것으로 유명한 기획자 넬슨 리들 Nelson Riddle은 그 연필을 제일 좋아했다. 퀸시 존스 Quincy Jones는 작업할 때마다 주머니에 이연필을 한 자루 꽂아두었다.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Vladlimir Nabokov는 그의 마지막 소설인 《할리퀸을 보라 Look at the Harlequins!>에 그 연필을 등장시킨다("난 네가 부드럽게 만지작거리던 블랙윙 연필의 각진 면을 쓰다듬었다"). 만화작가 척 존스Chuck Jones는 자기 그림을 "블랙윙으로 만들어낸 흩날리는 드로잉들 이라고 묘사했다. 그러나 유명 인사들 사이에서 팬 층이 두터운데도 블랙윙은 1998년에 생산이 중단되었다. - P145

깎지 않은 블랙윙 602 연필이 이베이에서 한 자루당 30~40달러에 팔린다. - P146

헤밍웨이는 2호 연필 일곱 자루가 닳아 없어지는 정도가 하루 종일 열심히 일한 분량 이라고 생각했다. 파리에 있는 동안 그는 어디에 가든 공책 한 권, 연필 두 자루, 
연필깎이("주머니칼로 깎으면 연필의 낭비가 너무 심하다") 하나를 들고 다녔다. - P149

"정상적인 글쓰기 자세로 연필을 잡았을 때 연필 지우개의 금속 부분이 손에 닿으면 나는 그 연필을 퇴역시킨다." 스타인벡은 이렇게 썼다(그렇게 퇴역한 연필은 어린 자녀들에게 주었다). - P150

문구류는 쓸모가 있는 물건이며,
쓸모가 있는 물건은 사람들이계속 갖고 있게 된다. - P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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