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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비행 - 제10회 사계절문학상 대상 수상작 ㅣ 사계절 1318 문고 79
홍명진 지음 / 사계절 / 2012년 8월
평점 :
"야, 도대체 꿈이란 게 뭐이네. 좋아하는 걸 하는 기야."
누구는 버스운전기사가 되겠다고 하고, 전동차를 운전하는 엔지니어가 되겠다고 하고, 학교 선생님이 되어서 아이들을 가르치겠다는 꿈을 꾸는데 내 꿈은 왜 웃음거리가 되는 거냐고 형은 억지를 부리듯 핑핑 콧방귀를 뀌기도 했다.
그리고 쉼터를 떠나기 전에 민우 형은 춤을 추던 옥상에서 나에게 물었다.
"넌 뭘 하고 싶네?"
형은 내 눈을 깊이 들여다보았다.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그 순간의 내 머릿속은 밀가루 반죽처럼 뭉쳐진 그냥 한 덩어리일 뿐이었다. 아직 눈과 코와 입이 생겨나지 않아 형상도 없는. 이곳에 와서 내가 보고 듣고 느끼는 것들이 온전히 내 것이 아니듯이, 내 생각도 내 것이 아닌 것 같았다.(85p.)
몇 년 전에, 탈북하신 분과 함께 일을 한 적이 있다.
처음 만난 나를 언니라고 부를 정도로 붙임성이 좋은 30대 여성이었는데
억양이 특이해서 관심이 많이 갔었다.
처음엔 연변에서 온 조선족인가 했는데 좀 더 세다고 할까
아무튼 뭔지 모르게 억양이 조선족과는 다른 느낌이어서 대놓고 물어보았다.
"중국에서 오셨나봐요?"
"북한에서 왔어요."
북한이라는 말이 나왔을때 잠시 멍할 정도로 놀랐다.
배고파서 중국으로 넘어왔다가 두 번 다시 잡혀들어갔다가
세 번째 중국 왔을 때 숨어지내던 마을에서 지금 남편을 만나서
아이도 낳았는데 아무래도 불안해서 혼자 우리나라로 왔고
지금은 남편도 우리나라로 와서 지내며
아이는 중국에 있는데 돈 벌어서 자리 잡으면 아이도 데리고 올거라고 했다.
중국에서 8개국을 거쳐 우리나라에 오기까지 이야기는 정말 파란만장했는데
한참 그렇게 이야기하다가 갑자기 한숨을 쉬면서
"그런데 사실 우리 여기서 행복하지 않아요. 그렇다고 북한으로 가고 싶지는 않고
나에게 자유가 있다면 나는 중국에서 살고 싶어요."
라고 말할 때는 어쩐지 뜨끔했다.
보이고 싶지 않은 부끄러운 모습을 들킨 느낌이랄까.
어쩔 수 없이 나도 속으로 '나는 여기서 행복한가?'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책의 주인공은 열일곱 살 탈북 청소년 박승규다.
엄마와 누나와 함께 압록강을 건너 중국으로 갔고 일자리를 얻은 누나는 중국에 남고
엄마와 주인공 승규만 한국에 와서 새터민이 된다.
엄마는 24시간 식당에서 밤낮이 바뀐채 열심히 일해서 번 돈을
누나를 위해 중국으로 보내고
승규는 검정고시를 준비한다며 집에서 빈둥거리다
동네 사회복지사 노랑머리의 권유로 복지관 밴드부에 들어간다.
"넌 뭘 하고 싶네?" 라는 질문에 똑부러지게 대답할 수 있나? 지금 나는?
글쎄.. 글쎄다.
결혼을 하고 싶나?
아이를 낳고 싶나?
살림을 하고 싶나?
일을 하고 싶나?
집을 짓고 싶나?
뜨개질을 하고 싶나?
피아노를 치고 싶나?
수영을 하고 싶나?
달리기?
글쎄.. 글쎄다.
주인공 승규는 적어도 한가지 대답을 한다.
"드럼을 치고 싶습니다." 라고..
그가 드럼을 치고 싶다는 대답을 하면서 '밀가루 반죽 덩어리'같던 그의 머릿속이
정리되기 시작한다. 눈코입이 생기지도 않아 아무런 형상이 없던, 내 것 같지 않던 생각들이
차츰 어떤 형상을 이루고 뚜렷해지기 시작한다.
그래서 결국 그의 생각이 그의 것이 되고 생활이 되어가는 이야기.
이것이 내가 읽은 『우주 비행』의 이미지다.
하룻밤에 다 읽었고,
장편이라지만 느낌은 단편 소설 한 편 읽은 듯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묵직하게 남아 자꾸 되묻게 되는 질문
"넌 뭘 하고 싶네?"
고민하는 나에게 어렵게 생각할 거 없다며
"야, 도대체 꿈이란 게 뭐이네. 좋아하는 걸 하는 기야."
쿨하게 한마디 던져주는 소설 『우주 비행』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