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딸이에요. 그런데 아무래도 살지 못할 것 같아요. 원하시면 보시겠어요?"
내가 엄마가 되고 나서 처음 들은 말이다. 아이 뇌에 대해 나는 단순히 흥미로운 관찰자 수준을 넘어, 부모로서 관심을 가져왔다. 그리고 몇몇만이 경험할 수 있는 두 가지 관점에서 뇌가 지닌 힘과 가능성을 실감했다.
나는 스스로 ‘공부하는 전문가’라고 생각한다. 평생 동안 초기 두뇌 발달에 관한 최신 연구들을 파고들어 필요한 사람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조언하는 일을 업으로 삼아왔다. 또 그러한 목적으로 ‘유아 두뇌 발달을 위한 새 방향 연구회’라는 비영리 재단을 공동으로 설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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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둘째딸 크리스틴은 UCLA의 아만손 러브레이스 브레인 매핑 센터에서 아동의 두뇌 발달을 연구하고 있다. 이 센터는 신경과학 여구 분야에서 최고라고 할 수 있는 곳으로 현재 세계 최대 규모의 뇌지도brain-mapping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다.
내 아이와 함께 첨단 연구에 대한 관심을 공유할 수 있다니 얼마나 멋진 일인가! 일찌감치 아이의 뇌에 대해 가졌던 우리 가족의 관심이 그처럼 흥미로운 반전을 만들어낼 줄은 꿈에도 몰랐다. 우리 부부는 크리스틴의 언니인 제니를 낳고부터 아이 뇌에 관심을 갖게 되었따. 개월 수를 채우지 못하고 너무 일찍 태어난 탓에 다들 제니가 얼마 살지 못할 거라고 했었다. 하지만 비록 방식은 다를지라도 내 딸들은 둘 다 성공적인 삶을 살고 있으며, 나는 자랑스럽기도 하고 조금 놀랍기도 하다.
1974년 제니를 임신했을 당시 스물여덟 살이었던 나는 교사로 근무하고 있었다. 교육 과정 개발을 전공했는데 박사 학위 과정이 모두 끝나고 논문 쓰는 일만 남아 있던 때였다. 젊은 시절 내내 아이들과 함께 지낸 나는 내 아이가 생겼다는 사실에 한껏 고무되어 있었다. 임신 5개월쯤 된 어느 날, 세상의 모든 예비 엄마들과 똑같은 생각을 하면서 교실로 들어섰건 것이 기억난다.
‘내 몸이 이렇게까지 늘어날 수 있다니 믿을 수가 없어!’
그 며칠 후 갑작스럽게 진통이 왔다. 당신에 몰랐지만 어머니가 나를 가졌을 때 디에틸스틸베스트롤diethylstilbestrol를 맞았다고 했따. 유산을 막기 위해 흔히 쓰이던 합성 에스트로겐의 일종으로 선천적인 결함을 야기할 수 있는 것으로 밝혀진 약물이었다. 그 결과, 거의 모든 여성들의 자궁은 자연스럽게 커지면서 점점 자라는 태아를 9개월 동안 품고 있을 수 있지만 나는 그러지 못했다. 내 자궁은 반으로 나뉘어 있었고, 아이는 그 반쪽 공간만 차지할 수 있었다. 때문에 내 딸은 거의 4개월이나 일찍 태어나고 말았다.
남편과 나는 엄청난 충격에 사로잡혀 어쩔 줄을 몰랐다. 아이는 30센티미터 정도에 500그램 정도밖에 나가지 않았다. 크기가 정상적인 부분은 긴 속눈썹뿐인 것 같았다. 만약 제니를 안는 것이 허락되었다면, 손바닥에 테니스공을 올려놓듯 아이를 한 손에 담을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안아볼 수 조차 없었따
태어난 지 1분 된 제니의 아프가 점수는 1점이었다. ‘아프가 점수’란 신생아의 심박수와 근육의 힘, 호흡, 자극에 대한 반응, 피부색 등을 측정하는 것으로 아홉 달을 다 채우고 나온 건강한 신생아들은 보통 8점에서 10점 사이다. 5분이 지나도 제니는 여전히 1점이었다. 10분이 지나도 마찬가지였다. 제니는 축 늘어져 있었고, 피부는 파리했으며, 아무런 움직임도 없었다. 하지만 희미하게 심장이 뛰고 있었다.
제니는 순전히 운 좋게 그 병원에서 태어난 덕분에 살 수 있었다. 신생아 학자인 조셉 댈리 박사는 조산아를 살리는 것이 자신의 소명이라고 여겼고, 덕분에 제니는 미국에서 네 번째로 인공호흡기를 단 아기가 되었다. 오늘날에는 몸무게가 1킬로그램밖에 안 되는 조산아들도 대개 살아남아 잘 자란다. 하지만 제니가 태어났을 당시에 이는 매우 급진적인 생각이었다. 기적적으로 인공호흡기를 단 제니는 곧바로 혈색을 되찾아갔다. 12시간을 넘기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던 아기는 하루, 한 주, 그리고 또 한 주가 지날 때까지 살아 있었다. 하루하루 기계 덕분에 숨을 이어가는 아이를 보며 솔직히 나는 기적이 일어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이대로 아이를 계속 잡아두어야 하는 걸까?’
하루에 다섯 번씩 찾아가 수많은 튜브와 조명, 경보 장치, 모니터, 측정기들에 둘러싸여 미숙아 보육기 속에서 꼼짝도 않고 누워 있는 조그만 아기를 들여다 볼 때마다 나는 그런 생각이 들곤 했다.
"아이는 앞으로 어떻게 될까요?"
나는 아이의 위에 연결된 관을 통해 몇 방울이라도 먹게 하려고 부지런히 짜낸 모유를 건넬 때마다 그렇게 물어보았다. 심지어 위에 관을 주입하는 수술은 마취조차 하지 않은 채 이루어졌다.
"고통스럽지 않을까요?"
위사들은 아이가 마취를 감당할 수 없기 때문에 이럴 수밖에 없다고 확신에 찬 목소리로 날 설득했다.
"기억하지도 못할 겁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하지만 나는 걱정스러웠다. 그로부터 거의 20년이 지나서야 신경과학자들은 초기 뇌 조직이 형성될 때 받은 충격이 미칠 수 있는 영향에 대해 알아냈다. 생후 초기에 겪은 손상은 뇌의 모든 부위가 발달하는 데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1974년에는 그에 대해서 아무도 알지 못했다.
또 산소 공급을 끊어도 될 만큼 제니의 폐가 자랐을 때도 그 뒤의 일을 예측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제니는 태어난 지 넉 달 반 만에 겨우 혼자 숨을 쉴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나중에 복합장애아라는 진단을 받았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제니는 시력이 나빴고, 이는 아이를 살리기 위해 쓴 고농축 산소 탓이었다. 팔다리는 뻣뻣하게 경직되어 마음대로 움직이기가 어려웠는데, 태어나서 인공호흡기를 달 때까지 약 15분 동안 산소 공급이 안 된 상태로 있었기 때문에 뇌성마비가 일어났던 것이다.
집에 왔을 때 제니의 몸무게는 2킬로그램이 채 안 됐다. 한 살쯤 되어서야 제니는 내가 기대했던 건강한 신생아의 몸무게인 3.5킬로그램 정도가 되었다. 우리 부부는 전체적인 발달 검사를 받기 위해 제니를 데리고 캘리포니아로 갔다. 그리고 의사에게 ‘제니는 신경 발달이 진행될 조짐이 보이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는 덧붙였다. 걷지도, 말하지도, 읽지도 못하게 될 것라고...
그러고 나서 눈 깜짝 할 사이 30년이 흘렀다. 어떤 의미에서 그 의사 말은 옳았다. 제니는 걷지 못했기 때문에 휠체어를 타고 다녀야 한다. 하지만 말을 어떨까? 그렇다. 제니는 말을 할 수 있다. 웃고, 질문을 하고, 농담을 하고, 놀라고, 따지고, 친구들과 수다를 떨고, 화가 나면 흥분을 하고, 장을 봐야 할 목록에서 단 한 가지도 잊는 법이 없다.
오랜 세월이 지난 뒤 나는 이처럼 힘들게 얻은 지혜를 이용해서, 건강한 아이를 가진 부모들을 돕고 그들이 아이와 상호작용을 해야 할 올바른 시기를 알려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내 따릐 더딘 성장을 지켜보면서 나는 꾸준한 노력과 경험에 대한 반응으로 뇌가 그토록 발달할 수 있다는 것에 큰 흥미를 갖게 되었다. 제니의 발달은 몹시 느려서 나는 말 그대로 학습이 일어나는 과정을 "지켜볼" 수 있었다.
제니를 통해 뇌가 천천히 연결되는 것을 봤다면 다섯 살 어린 크리스틴은 빠르게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위험하기는 했지만 자궁 모양을 바꾸는 시술이 성공함으로써 두 번쨰 임신은 지극히 정상이었다. 아홉 달을 다 채우고 튼튼하고 건강하게 태어난 크리스틴은 마치 상처 받은 내 마음을 위로해 주기 위해 태어난 아이 같았다. 그리고 내가 이미 오래전에 관심을 끊었던 발달 지표에 따라 무럭무럭 잘 자라주었따. 머리 회전도 말 그대로 번개처럼 빨랐다.
이처럼 판이하게 다른 경험을 한 덕분에, 나는 소중한 아이의 뇌를 어떻게 키워야 할지 고민하는 부모들에게 자신감을 심어줄 수 있게 되었다.
"인내심을 가지세요. 충분히 할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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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린아이들을 가르치면서 배웠던 것들, 대학에서 교사가 되기 위한 학생들을 가르쳤던 경험, 그리고 제니로 말미암은 시련을 통해 아이들이 어떻게 배우는지 아주 세심한 관심을 기울인 엄마로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이 책을 썼다. 이 개인적인 경험은 신경과학자로서 내가 접하고, 듣고, 읽고, 연구한 모든 것들을 부모들이 이해하기 쉽게 전달할 수 있는 필터 역할을 해줄 것이다. (16~22p.) _프롤로그